트레저헌터 쿠카이 8 - 수에나가 시게노부 지음/학산문화사(만화) |
보물찾기라는 소재는 웬만한 추리물에서 한 번쯤 등장하는 소재입니다. 보물이 어디 있는지를 알려주는 단서는 암호 트릭의 일종으로 보아도 무방하며, 이를 풀어가는 재미와 함께 보물의 정체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대로만 만들면 본전 이상은 충분히 하고도 남지요. "다빈치 코드"가 좋은 예입니다. 반대로 제대로 만들지 못하면 더 큰 혹평을 받을 수도 있고요.
이 작품 역시 제목 그대로 보물을 찾는 '트레저 헌터'가 등장하는 만화입니다. 출간된 지 10년이 훨씬 넘었지만, 취향이 아닌 그림 탓에 그동안 방치해 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읽어보니 이야기만 놓고 보면 본전 이상은 충분히 한, 성공한 케이스라 깜짝 놀랐습니다!
보물들의 종류만 해도 토벌당한 오슈 후지와라가 숨겨놓았다는 황금, 기이구목 문좌이문의 숨겨둔 재산, 마경 속 암호를 이용한 아마쿠사 시로의 보물, 오다 노부나가 최후의 가신 나리마사의 보물, 다케다 신겐의 매장금, 총통 미술관 등 다양하고 흥미진진합니다. 이러한 보물을 찾아가는 암호 트릭도 꽤 탄탄한 편입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보물찾기 외의 에피소드들 수준 역시 상당하다는 점입니다. 특정 바이올린의 음색을 이용한 암살 계획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웬만한 정통 추리물 수준이며, 주인공 쿠카이의 원래 가업인 '골동품상'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도 몇몇은 "갤러리 페이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입니다. 예를 들면, '화조오련도'라는 5폭짜리 그림의 일부를 찾는 에피소드는 발상과 전개, 반전이 훌륭할 뿐만 아니라, 위작을 감별하는 방법 등의 디테일이 "갤러리 페이크" 최고작 못지 않더라고요. 조각가 나오키의 최고 걸작을 찾는 에피소드에서는 흙손 그림이 등장하는데, 역시 "갤러리 페이크"의 미장 기술자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했고요.
그러나 이 만화가 걸작이 되지 못하고 비교적 짧은 8권으로 종료된 이유 역시 확실합니다. '만화'라는 측면에서 부족한 점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강약 조절에 실패해 전혀 긴장감을 불러오지 못하는 허술한 작화와 전개도 문제지만, 시대착오적인 고전 소년만화 느낌이 물씬 나는 것도 큽니다. 보물에 대한 설정과 이를 찾아가는 과정은 훌륭하지만, 결말 부분의 과장이 너무 커서 설득력이 떨어지고요. 금으로 만든 교회나 사원이라니... 거짓말도 정도껏 해야 하는 법이겠죠.
아울러 주인공 쿠카이가 별다른 매력 없는 올드한 열혈 청년이며, 라이벌로 등장하는 캐릭터들 역시 어처구니없는 존재들이라는 점도 아쉽습니다. 등장 캐릭터 모두가 생김새는 물론 성격과 행동까지 마음에 들지 않아 이야기에 몰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좋은 내용이 없는건 아닌데, 만화라는 매체로 보면 단점이 너무 커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군요. "마스터 키튼" 스타일로 풀어냈거나, "용오" 방식으로 전개했다면 시대를 뛰어넘는 걸작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작가 스스로 지나치게 소년 모험 만화라는 장르에 매몰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덧붙이자면, 작가의 본명인 末永 繁信로 검색해 보아도 후속작을 찾기 어렵습니다. 앞서 언급한 이유로 작가 역시 진작에 다른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싶은데, 혹시 정보를 아시는 분이 계시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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