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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20

사유리 - 오시키리 렌스케 : 별점 2점

[고화질] 사유리 (완전판) - 4점
오시키리 렌스케/대원씨아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모님, 누나와 남동생, 모두 7명으로 이루어진 노리오의 가족은 그동안 꿈꿔왔던 단독주택으로 이사왔다. 그러나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죽음 뒤 남동생은 사라졌고, 할아버지도 급사하고 말았다. 누나와 어머니마저 자해, 자살하여 순식간에 노리오와 치매에 걸린 할머니만 남게 되는데...

오시기리 렌스케의 하우스 호러. "하이스코어 걸"이라는 레트로 청춘 연애 코미디로 유명하지만, 사실 이 작가는 "미스미소우"로 대표되는 호러물로도 유명하지요. 이 작품도 호러물이고요. 이런 작품이 있다는걸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영화화가 되었다고 하여 찾아보니 우리나라에도 이북으로 출간되어 있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한 권 분량이라 부담도 없었고요.

행복했던 7인 대가족이 꿈에 그리던 단독주택으로 이사한 뒤, 온갖 괴현상을 겪으며 한 명씩 죽어나가는 과정은 귀신들린 집(Haunted mantiion) 설정 그대로, 하우스 호러물의 전형대로 진행됩니다. 가족이 이사한 집은 '사유리'라는 소녀가 가족들에게 살해당하고 암매장된 곳이라, 사유리가 행복한 가족들에게 복수를 하고 있던 겁니다.

그래도 다행히, 가족들이 차례로 죽고, 자살하고, 사라지는 과정의 묘사는 그렇게 뻔하지는 않습니다. 일견 자연사처럼 보이는 평범한 죽음이 점차 진화해 나가는건 충분히 공포스러웠거든요. 누나가 혼자 혀를 물어 뜯는 묘사는 굉장했어요.

그리고 노리오와 치매에 걸렸던 할머니를 제외한 전 가족이 죽은 상황에서, 할머니 정신이 돌아오는 부분부터는 아주 신선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강단있고 행동력 강한 할머니 캐릭터가 굉장히 강렬했기 때문이지요. 정신이 돌아오자마자 담배를 한 대 피우는 모습은 와~ 정말 '핵간지'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르더군요. 귀신에게 지지않는 생명력을 갖추고, 오히려 복수를 위해 사유리를 죽인 사유리 가족을 모두 납치해서 죽이려 하는 모습은 광기어리면서도 통쾌했고요.

하지만 사유리가 자기를 죽인 가족도 가족이라고, 그들을 동정해서 약해진 탓에 노리오의 죽은 가족들에게 끌려가 성불하는 결말은 솔직히 영 아닙니다. 너무 급작스럽잖아요. 애초에 자기를 죽인 가족에게 원한을 품지 않은 이유도 불분명하고요. 할머니와 사유리의 제대로 된 대결이 펼쳐지지 않은 것도 실망스럽습니다. 남편과 아들, 며느리에 손자, 손녀까지 5명이나 죽인 악령을 그냥 놓아준다는게 앞서의 할머니 캐릭터와는 영 어울리지도 않았어요. 죽은 할아버지에게 이야기해서 영혼이라도 갈기갈기 찢어버렸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전형적인 전개를 특유의 스타일, 그리고 독특한 캐릭터로 풀어낸건 좋았는데, 결말은 전혀 그렇지 못해서 감점합니다.

2005/01/21

분신사바 - 이종호 : 별점 2.5점

분신사바 - 6점 이종호 지음/황금가지

서울에서 아버지의 고향인 Y시로 전학온 유진은 왕따때문에 고통받다가 자신과 더불어 "왕따패밀리"인 희선, 정섭과 같이 한밤중에 교실에서 "분신사바" 주문으로 귀신을 불러 자기들을 괴롭히는 4명을 죽여달라는 소원을 빈다. 한편 아이들의 담임인 한재훈은 새로 근무하게된 미모의 여성교사 은주에게 호감을 가지고 접근하지만 은주는 자신과 가까이 한 사람에게는 모두 불행이 닥친다고 경고한다.
이후 4명의 학생이 차례로 자살같지만 자살이 아닌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되고, 계속되는 괴이한 현상을 통해 유진과 은주는 각자 자기 자신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무언가 사건들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조사끝에 아이들의 죽음에 30년전 마을에서 발생했던 한 사건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재훈은 마을 사람들의 두려움과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노력하지만 점차 마을은 두려움과 공포로 광기에 휩싸이게 되며 드디어 폭주하게 되는데...

작년에 개봉했던 영화의 원작으로 국내에서는 꽤 알려진 호러소설가 이종호씨의 작품입니다. 원작에 대한 평이 좋았던 기억, 그리고 괜찮은 기획이라 생각되는 "밀리언셀러 클럽" 시리즈의 한권으로 나오기도 했고 책의 장정과 디자인도 깔끔한 편이라 주저없이 구입했습니다.

그러나 다 읽고 떠올린 첫 단어는 아쉽게도... "진부함"이라는 말이었습니다. 호러라는 쟝르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은 이제 나오기 힘든걸까요? 전체적으로 어디선가 본듯한 내용과 장면으로 구성된 책으로 신선한 느낌 보다는 어디선가 본듯한 느낌이 강하더군요.
이야기 배경에서 "여고"와 "왕따"를 중심으로 흘러가며 일종의 "한"을 다루고 있는 것은 기존 호러물(여고괴담 등)에서 많이 보여졌던 요소를 거의 그대로 답습하고 있고 왕따 학생이 귀신을 불러 저주를 걸다가 스스로 자멸해 나가는 설정 역시 너무나 흔하디 흔한 설정이죠. 다만 "분신사바"라는 주문으로 귀신을 부르는 방법이 약간 독특할 뿐이에요.
또 "Y시"라는 폐쇄적인 한 마을, 그리고 마을에서 30년전에 벌어진 한 사건에 대한 과거의 업보를 짊어지고 두려워하는 마을 사람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는 외딴 마을에서의 마을내 좀비들과 마을 사람들의 관계와 폭주 이야기인 오노 후유미의 "시귀" 등에 를 연상케 하고요.

물론 "Y시"를 떠나서는 불행한 죽음을 맞게되어 "Y시" 주민들은 마을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저주같이 참신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하여 점차 공포를 더해가고 과거의 비밀이 겹쳐지며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이야기 구조는 괜찮아요. 현재와 과거를 잘 접목하면서도 혼란스럽지도 않고 깔끔하게 진행되니까요.
하지만 잘 나가다가 마지막에 은주가 춘희로 돌변하여 살인귀로 변신하는 장면은 아니다 싶었습니다... 섹스에 칼부림 난도질까지 등장하는 식으로 강도가 점점 더 세지면서 사람이 죽어나가야 진정한 공포물이 되는 것은 아닐텐데 말이죠. 저는 잔잔하지만 마을 사람들을 평생 쫓아다니는 저주가 더 공포스럽지 않았나 생각되거든요. 또 30년동안 환생과 빙의를 하며 유지해 온 복수의 한이 풀리는 것도 전형적인 헐리우드 호러물식 엔딩같이 너무 쉽고 작위적이었다고 보입니다. 허무하기도 하고요. 거기에 마지막의 에필로그는 나올 필요도 없었던 안일한 끝맺음이라 생각됩니다.

그래도 작품이라고 보기 힘든 세련된 문체와 깔끔한 장면묘사로 이루어져 있어 더 흥미진진했던 것 같네요. 이러한 점은 작가가 PD출신인 덕이라 생각됩니다. 장면묘사에 대해 상당히 강점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영화적인 서술방식으로 구체적이면서도 확실하게 이야기가 전개되기에 읽기가 무척 편하고 즐거웠던 것도 좋았어요.
또 첫 머리의 상당히 영화적이지만 충격적이었던 "분신사바하는 펜을 잡은 또 다른 손!"에 대한 묘사, 여타 호러물에서 보기 힘들었던 비닐봉지를 머리에 뒤집어 씌운 후 불에 태워 질식사 시킨다는 굉장히 참신한 살인방법, 그리고 무당 춘희와 딸 인숙의 일종의 텔레파시 같은 의사소통 방법 등이 차례로 등장하며 공포와 함께 읽는 재미를 전해줍니다.

한마디로! 한번 손에 잡으니 한번에 읽게 되는 정도의 재미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나저나 소설 그대로 콘티를 짜서 찍었어도 보통 이상은 해 줬을 것 같은데 영화가 너무나 평이 안좋고 어설픈 장면이 많아 우스개로까지 전락해버린것이 불가사의합니다. 감독도 호러계에선 나름 유명한 안병기 감독이라 한번 보고싶긴 하지만 너무나 무참한 평들을 보고 참는 중이죠.^^ 저자가 PD출신인데 직접 감독을 했으면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PS : 황금가지의 밀리언셀러 클럽이라는 기획에 대해서는 박수를 보내지만 종이를 좀 가벼운걸 썼으면 책 두께가 2/3으로 줄었을것 같은 아쉬움이 살짝쿵 생깁니다.^^

2021/12/18

일곱 명의 술래잡기 - 미쓰다 신조 / 현정수 : 별점 2.5점

일곱 명의 술래잡기 - 6점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북로드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니시도쿄의 생명의 전화 자원봉사 상담원 누마타 아예는 "다~레마가 죽~였다 ..." 라는 섬뜩한 전화를 자정 경에 받았다. 어린아이가 놀이를 하는듯한 기분 나쁜 목소리였다. 전화는 곧이어 자살을 결심했다는 남자로 연결되었다. 다몬 에이스케는 자살할 생각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동네 신사를 찾았다가, 옛 추억이 떠올라 당시 함께 놀던 친구들에게 차례로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전화가 연결되지 않으면 목을 맬 요량이었다. 그러나 친구는 그를 포함해 여섯 명 뿐이어서 월요일부터 한 명 씩, 다섯 명의 옛 친구에게 전화를 걸은 뒤 토요일에 생명의 전화에 전화를 건 것이었다. 

이후 다몬이 실종되었고, 친구들도 괴전화를 받은 뒤 한 명씩 차례로 살해당하기 시작했다. 유준, 사야에 토시까지 죽고, 사건 해결을 위해 힘을 함친 다츠요시와 고이치만 남게 되었다. 그들은 일곱번째 친구 '사카야노 요시코'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요시코와 관련되었던 무서운 기억을 떠올리게 되는데...

미쓰다 신조의 장편 소설입니다. 

가장 큰 특징은 호러가 아니라 정통 추리물에 가깝다는 점입니다. 탐정역인 하야마 고이치가 호러물 설정으로만 보였단 '다레마의 귀신 들린 아이'가 실존했고, 그 사건과 자기들의 어린 시절 놀이가 어떻게 엮였는지를 밝혀내는 과정이 꼼꼼하면서 합리적인 덕분입니다. 

여기서 과거, "오오니타 군"을 "오오타 군" 이라고 말하는 식으로 세 번째 음절을 빼먹고 말했던 요시코의 버릇을 떠올려 요시코가 '사카야노 요시코'라고 말한건 사실 '사카X야노 요시X코", 즉 "사카나야노 요시히코"라고 말했던 거란걸 걸 밝혀내는 추리도 굉장했고요. 

오오니타가 남겼던, TF라는 일종의 다이잉 메시지를 이용하는 추리도 깔끔합니다. 이건 완성된 메시지가 아니며, TEL을 쓰려고 했다는 것을 설득력있게 풀어내기 때문입니다. 전화 상담을 했던 누마타 야예가 진범이었다는게 여기서 드러나게 되지요. 

이어지는 누마타 아예의 범행 동기와 과정도 이치에 맞습니다. 아무리 30년 전 일이라고 해도, 금쪽같았던 아들이 사라지고, 남편이 자살한 사건에 관련된 아이들에게 살의를 품는건 당연합니다. 범행을 실제로 저질렀던 '귀신 들란 아이'도 나쁘지만, 이 범행 사실을 알고도 침묵했던 아이들도 큰 잘못을 한건 사실이니까요. 

그리고 연쇄 살인극에서 오오니타를 마지막에 죽이려 했던 이유가 그가 술래였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인상적이었어요. 술래는 처음부터 엔카쿠, '귀신 들린 아이'가 뒤에 있다는걸 알고 있었는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제일 악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데 아주 그럴듯했습니다.

물론 미쓰다 신조의 작품답게, 마지막에 하야마 고이치가 추리쇼를 펼치기 직전까지는 호러물로의 가치도 높습니다. 연쇄 살인극이 마타테 시에서 아직도 두려움의 대상인 다레마 가문의 귀신 들린 아이, "다~레마가 죽~였다 ..."는 동요와 결합되어 섬뜩함을 자아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동일한 "다~레마가 죽~였다 ..." 놀이를 하다가 술래가 뒤를 돌아보자, 다른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는 이야기를 가지고 공포스럽게 풀어낸 솜씨도 절묘했어요. 그래서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친구들을 한 명 씩 술래가 잡았던 거지요, 설득력 넘치면서도 호러물에 딱 맞는 그런 상황과 이야기였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단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어린 시절에 겪었던 끔찍한 기억은 봉인되고 말았다는 지극히 편의적인 설정입니다. 무려 여섯 명이나 되는 친구들 모두가, 그것도 초등학교 4학년이라는 비교적 고학년인데 요시코가 납치되는걸 보고 충격을 받은 나머지 모두 똑같이 기억을 잃었다? 말도 안돼죠. 게다가 "다~레마가 죽~였다 ."는 동요를 듣자 봉인이 풀리고 다시 기억을 떠올린다는건 더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설정도 지나칠 정도로 전형적입니다. 마타테 시에 아직도 영향력을 끼치는 다레마 가문과 그들의 융성과 몰락을 가져왔단 다레마 신사의 다루마, 몰락의 상징같은 잔혹했던 후계자 '귀신 들린 아이' 등의 설정은 이런 류의 작품에서 너무 많이 보아와서 식상하다 못해 지겨울 정도였습니다. 

추리적으로도 공정하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 큰 문제가 있습니다. 처음에 다몬 에이스케가 생명의 전화에 걸었던 전화 내용 묘사가 그러합니다. 사실을 적시하는 것 처럼 쓰여 있지만, 이 전화 내용만 가지고 상담원 누마타 야에가 자기 아들의 실종과 죽음이 다몬 에이스케와 친구들과 관계가 있다는걸 알아채는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한게 분명합니다. 즉, 애초부터 공정함과는 거리가 먼 설정이 아니었나 싶어요. 처음에 "다~레마가 죽~였다 ."는 노랫소리가 들려온 것도 설명되지 않고요. 

또 야에의 범행도 세세한 면에서 설명되지 않는게 너무 많습니다. 구호단체 직원들보다 먼저 현장을 찾아가 다몬 에이스케를 살해한 첫 번째 범행이 대표적입니다. 현장에 누군가 출동한다는걸 알고 있는 상황에서 범행을 저지른다? 이보다는 어차피 자살을 앞두고 있었다면, 자살하도록 놔두고 친구들 정보를 빼 내는게 훨씬 손 쉬운 방법입니다. 그가 구조를 받는다면, 그 뒤에 죽여도 되고요. 다른 범행들도 어설프기는 마찬가지며, 범행 전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어서 "다~레마가 죽~였다 ."를 들려준 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범행 과정 전반에 죽은 요시히코의 원념이 도왔을거라는 지극히 미츠다 신조스러운 설정이 덧붙여져 있습니다만, 이건 합리적인 추리물과는 거리가 멀지요. 

엔카쿠 다카야키 경부가 다레마가의 귀신 들린 아이였다는걸 밝히는 마지막 추리쇼도 설득력이 약합니다. 근거는 오오니타가 남겼던 TF라는 메시지로, 이는 TE를 쓰다가 만 것으로 사건 관계자 중 TE라는 이니셜을 가진 엔카쿠 다카아키 경부밖에 없다는게 요지였지만 이건 TEL을 쓰려고 했다는 거니까요. 이 이니셜을 엔카쿠 경부와 엮을 필요는 없었어요. 이런저런 디테일로 그가 사건 해결에 소극적이었다는걸 드러내고 있기는 하지만, 그 정도로 그가 요시히코 등을 납치해서 죽였던 다레마가의 귀신 들린 아이였다는 증거가 되지는 못합니다. 비약이 너무 심해서 제대로 된 추리라고 하기 어려웠습니다. 현장에 나타나 하야미 고이치와 대면한다는 지극히 작위적이면서 편의적인 상황 설정은 둘째치고서라도요.

그 외에도 다레마 신사에 모셔진 다루마의 정체라던가, 다몬 에이스케가 전화를 하려고 했던 일곱번째 친구가 누구인지 결국 밝혀지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에요. 사건 해결에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것 처럼 보였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는 '맥거핀'의 전형적인 예가 아닐까 싶네요. 

이렇게 불필요하고 진부했던 설정을 일부 제외하고, '귀신 들린 아이'가 엔카쿠 경부였다는 비약을 잘 정리했더라면 훨씬 간결하면서도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되었을텐데 여러모로 아쉽네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09/06/03

몸 - 김종일 : 별점 2점

 - 4점
김종일 지음/황금가지

인터넷에서 평이 상당히 괜찮았던 한국작가의 호러단편집입니다. 중고서점에서 저렴한 가격덕분에 충동구매로 구입하여 읽게 되었네요. 한국 호러소설은 "분신사바" 이후 처음이군요.

"몸"에 속한 소재들을 주제로 쓴 단편집이라는 설정은 얼마전 읽었던 "인체 모형의 방" 과도 유사한데... 읽고난 감상은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입니다. 모든 단편이 기발한 상황전개나 반전이 있는 작품은 하나도 없이 단지 "이형異形" 이나 "컴플렉스"와 같은 불쾌한 부분에 대한 집요한 묘사로 공포심을 유발시키려고 할 뿐으로 - 예를 들자면, "눈" 은 깡패들에게 한쪽 눈을 잃은 주인공이 의안을 통해 깡패들에게 복수하고 스스로 "눈알" 이 된다는 전개. "입"은 다이어트 때문에 거식증에 걸린 여주인공 몸에 입이 돋아난다는 이야기. "귀"는 남들이 듣지 못하는 사신의 소리를 듣는다는 이야기, "몸"은 키가 작은 것에 대한 컴플렉스가 많은 남편이 PC에 빠져 살더니 결국 PC와 한몸이 된다는 내용... 식으로 - 전체적으로 비스무레하다는 인상만 줄 뿐 큰 재미를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자주 등장하는 스플래터, 고어 장면에서의 뻔한 동어반복적 묘사 역시 비스무레하다는 인상만 더욱 강화시킬 뿐이고요. (덧붙이자면 왜 이 책의 등장인물들 욕은 항상 "십할" 일까요???? 이거 하나 때문에 등장인물들 성격마저 똑같아 보입니다!!!)

어차피 "몸"이라는 소재에서만 통일성을 지니는 연작 단편집이라면, 앞서말한 "인체 모형의 밤" 이나 "Zoo" 처럼 꼭 괴물이 등장하거나 신비한 능력이 등장하지 않는, 일상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공포를 전달해 줄 수 있는 "일상계" 호러물을 포함시켜 강-약을 조절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 같습니다. "손톱"을 소재로 해서 손톱을 깎다가 손톱깎기에 손가락이 잘리는 호러물라던가....^^ (농담입니다) 물론 이 책에도 일상계 호러물이라고 할 수 있는 "손" 이라는 작품이 한편 실려있기는 합니다만 아쉽게도 다른 작품들과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 유사한 묘사 때문에 강약 조절에 실패하고 있습니다.

덧붙여, 작가가 스스로의 글에서 밝히고 있듯이 지나칠 정도로 "이토 준지" 스러운 스타일이라 신선함이 떨어지는 것도 큰 약점으로 보이네요. 이토 준지는 싫어해서 많이 읽지는 못했습니다만 특히 "머리카락"이라는 단편은 아무리 봐도 이토 준지 단편을 그대로 소설로 옮겨놓은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 외의 "이형異形" 묘사들도 대체로 유사해 보이더군요. 하지만 이토 준지의 경악스러운 기묘한 상상력은 따라가지 못한채 단편적인 묘사만 유사하다는 것이 안타까운 부분이겠죠...

그래도 컴플렉스와 일종의 정신착란? 적인 상황을 다루고 있는 "얼굴", 등산 중 조난을 당한 뒤 과거의 망령과 맞부닥친다는 "링반데룽" 정도는 괜찮았습니다. 두 작품 모두 지나칠 정도로 전개와 결말이 뻔하긴 하지만 사뭇 다른 분위기의 작품이라는것이 마음에 들었거든요. 이 두 작품처럼 작품마다 확실히 다른 이미지, 다른 전개를 보여주었더라면 좋았을텐데 아쉽네요. 아직 이 나라에서 호러 소설은 갈길이 멀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금 갖게 하는 독서였습니다. 정치가 호러라서 사람들이 정작 호러라는 쟝르에서는 별로 공포를 느끼지 못하는 것인걸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10/01/16

벽장 속의 치요 - 오기와라 히로시 / 신유희 : 별점 3점

벽장 속의 치요 - 6점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신유희 옮김, 박상희 그림/예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표제작 이외 8편, 그러니까 총 9편의 단편이 실린 호러 단편집입니다. 잘 모르는 작가인데 책 소개만 보고 충동구매한 책이죠.

총 9편의 단편을 분류하자면 3가지 분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유령이 나오긴 하지만 인간적이고 따뜻한 "말랑말랑 에피소드" (벽장 속의 치요 / Call / 신이치의 자전거), 끔찍한 현실에 대한 모골 송연한 결말을 그리고 있는 "모골송연 에피소드" (어머니의 러시아 수프 / 늙은 고양이 / 어두운 나무그늘), 마지막으로 빠른 전개와 박력과 더불어 블랙 코미디적인 느낌이 잘 살아있는 "박력화끈 에피소드" (예기치 못한 방문자 / 살인 레시피 / 냉혹한 간병인) 정도로 말이죠. 이 가운데에서 개인적으로는 "화끈 에피소드" 쪽이 제일 마음에 들었습니다. 발상도 기발하고 전개과정에서 쉴틈 하나 주지 않는 박력이 인상적이었거든요.

하지만 아쉽게도 나머지 두 분류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일단 "말랑말랑 에피소드"는 너무 분위기가 안 맞았어요. 유령이 등장한다고 해서 "사랑과 영혼"이 호러는 아니잖아요? 그나마도 너무 뻔한, 독특한 요소도 없는 이야기들이라 지루했습니다. 반대로 "모골송연 에피소드"는 호러물이라는 장르에 충실하긴 해서 어느정도 재미는 주지만 좀 억지스러운 설정이 많더군요. 물론 호러물이 설득력을 갖출 필요는 없겠지만 약간 아쉽더라고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평균적으로 3점입니다. "화끈 에피소드"와 "모골송연 에피소드" 만 실려있더라면 3.5점을 줬을텐데 나머지 이야기가 너무 취향이 아닌지라 0.5점 깎았습니다. 베스트 에피소드로는 "예기치 못한 방문자"를 꼽고 싶네요. 작가의 역량은 충분히 알았기에 "화끈" 쪽 장편이 있다면 한번 구해봐야겠습니다.
벽장 속의 치요
게이타는 실직 후 이상하게 싼 집세의 맨션으로 이사한 뒤, 벽장속에서 "치요"라는 소녀 유령이 나타나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단편집의 표제작이긴 한데 사실 큰 재미는 없었습니다. "치요"의 슬픈 과거를 게이타가 밝혀내어 성불시켜주는 이야기가 되어야 하나로 완성될 것 같은데 이야기 서두에서 서둘러 끝마친 미완성 작품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약간의 반전이 있기는 하지만 이야기에 큰 영향을 주는 요소도 아니라서 이래저래 애매해 보이네요. 별점은 2.5점.

Call
나는 미유키와 함께 죽은 대학 동창 묘지를 찾아간다. 우리 세명은 같은 대학 초자연현상 연구회 소속으로 나도 미유키를 좋아했었다...
중간에 시점이 바뀌는 일종의 서술트릭이 쓰인 말랑말랑한 멜로물입니다. 하지만 시점이 바뀌는 시점이 아무리 보아도 억지스러워서 트릭을 위한 트릭이라는 느낌밖에는 들지 않네요. 이건 완전 반칙이죠... 내용도 너무나 진부한 이야기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어머니의 러시아 수프
나와 소냐는 어머니의 보살핌으로 중국에서 탈없이 살아가는 9살배기 쌍동이.
9살배기 꼬마의 1인칭 시점으로 세모녀의 힘든 삶을 다룬 이색 단편입니다. 힘든 시기 살기 위해 몸을 파는 어머니의 모습같은 이야기 등은 굉장히 뻔한 이야기죠. 하지만 이 작품은 마지막 반전과 현실적인 공포를 드러내는 결말을 통해 상당히 재미있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별점은 3점.

예기치 못한 방문자
히라이와 리쿠조는 정부 사토미를 우발적으로 살해한다. 어떻게는 시체를 숨기려 하는 찰나 청소서비스 더스 클린의 예기치 못한 방문을 받게 된다.
리쿠조의 살해 직후 이야기가 시작되는 단편입니다. 전편에 걸쳐 시체를 숨기려는 자와 불청객간의 숨바꼭질이 숨가쁘게, 그리고 유머스럽게 펼쳐지는 블랙코미디에 가까운 작품이죠. 시종일관 긴장감이 넘치면서도 유머스러워서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별점은 4점. 영상화해도 좋을 것 같은 흥겨운 분위기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살인레시피
야스다 후미히코는 아내 구미코를 살해할 결심으로 특별 요리를 준비한다.
바로 전 작품인 "예기치 못한 방문자"와 동일한 블랙 코미디 서스펜스 스릴러물입니다. 부부만 등장하여 식탁에서 서로의 생명을 건 사투를 벌인다는 설정은 흔하디 흔한 이야기죠. 하지만 딱 두명만 등장해서 저녁식사하는 식탁에서 혈전이 벌어진다는 설정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요. 식탁에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식재료에 대한 묘사도 디테일하고요. 단 결말이 구태의연하다는 단점이 있어서 별점은 3.5점입니다.
혹 영상화한다면 규모와 등장인물은 적지만 서스펜스 하나는 제대로 뽑아내고 있기에 영화보다는 연극에 더욱 어울릴 것 같습니다.

냉혹한 간병인
소노코는 치매로 쓰러진 시아버지 젠조를 돌보는 척 하나 실제로는 학대하는 악질 며느리.
현실적이면서 주위에 있음직한 소재에서 "몬스터 호러물"을 뽑아낸 듯한 작품입니다. 전반부의 자기중심적 악질며느리 소노코도 괴물이지만 후반부에서 본격적 복수와 응징에 나서는 젠조의 존재감, 카리스마가 압권으로 아주 흥미진진하게 읽은 작품입니다. 젠조가 갑자기 정신을 차리는 계기에 대한 설명이 미흡한 등 단점도 물론 있지만 워낙에 박력이 넘쳐 별점은 4점입니다. 이 단편집에서 국내 시장에 가장 잘 맞지 않을까 생각도 됩니다. 우리나라야말로 고부간 갈등이 많잖아요^^

늙은 고양이
나는 히데오 숙부의 사후 숙부의 집을 상속받아 이사가게 된다. 숙부가 키우던 늙은 고양이와 함께 가족이 이상하게 변해가는데...
일종의 "이형 공포물" 정도 될까요?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양이 한마리로 나를 제외한 가정의 붕괴를 접해가는 주인공의 심리묘사가 포인트인 작품입니다. 다른 이형, 또는 바이러스 등으로 전염되듯 붕괴되는 공동체를 다룬 작품으로 좀비물이나 흡혈귀물과도 어떻게보면 맥락이 같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이런 류의 작품군에서 가장 중요한 매개체, 즉 가장 중요한 고양이의 정체를 속 시원히 밝혀주지 않는다는 것이 치명적인 약점으로 보입니다. 분위기와 묘사는 그럴듯 했지만 단점이 너무 크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어두운 나무 그늘
15년전 숨바꼭질을 하다가 동생 야요이가 실종된 뒤 처음으로 나는 다시 외갓집을 방문한다. 외갓집은 사촌오빠 유이치 혼자 머물고 있었다. 야요이의 흔적을 다시한번 찾던 나는 마당의 오래된 녹나무에서 이상한 무언가를 느낀다.
실제 범죄가 가증스러운 것이기에, 그리고 결말의 묘사 하나가 섬찟해서 (유이치의 얼굴이 떠올라 있던 곳은, 지상 2미터가 넘는 높이였다는 것을) 개인적으로는 "모골송연" 쪽으로 분류했지만 어떻게 보면 일상계 심리물이기도 한 작품이죠. 별것 아닌 무대장치에서 서스펜스를 자아내는 전개도 흥미진진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진상이 15년동안 은폐될만한 것은 아니라는 단점 때문에 감점해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신이치의 자전거
나에게 신이치가 찾아와 한밤중 사당을 탐험하는 모험을 제안한다...
어린 시절 추억을 약간의 괴담처럼 꾸민 작품. 잔잔하긴 하지만 심심할 뿐 아니라 뻔하기까지 해서 높은 점수를 주긴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18/02/24

검찰측 증인 - 애거서 크리스티 / 강영길 : 별점 2.5점

이 바닥에서 전설급 명성을 자랑하는 표제작을 포함하여 모두 여덟 편의 작품이 수록된 단편집입니다. "애거사 크리스티 완전 공략"(이하 "공략")에서의 별점은 무려 5점입니다! 이 정도면 달려가서 구입해야 하는 걸작이지요. 이미 소장하고 있고, 읽어보기도 했지만 너무 오래전에 읽은 탓에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리뷰도 올리지 않았기에 겸사겸사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참고로, 제가 소장한 책은 '동서 추리 문고' 출간본으로 "공략" 에 소개된 수록작은 일치하는데, 뒷부분에 "카리브 해의 수수께끼"가 추가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한 권 값으로 두 권을 읽는 셈이니 이득이죠? "카리브 해의 수수께끼" 은 별도로 리뷰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단편집의 특징이라면 '정통 추리물' 이 아닌 심령 소재 오컬트 호러물이 많다는 겁니다. 대부분의 심령 현상을 '영혼' 과 결부시켜 설명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주요 인물로 '정신 의학자' 가 등장한다는 점도 독특했고요. 그런데 정신 의학자가 영혼에 대해 이야기하는건 영 와 닿지 않더군요. 종교인이 등장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요?
하여튼, 호러물인데 "공략"에서 언급되는 '지극히 연극적인 전개' 가 가득하다는 여사님 작풍도 한껏 느껴집니다. 표제작부터 그러해요. 레너드 볼이 결정적으로 무죄를 선고받게 되는 이유는 아내 로메인이 벌인 연극이 결정적 역할을 하니까요. 그 외에도 "라디오" 에서는 핵심 트릭이, "푸른 항아리의 비밀" 에서는 이야기 전체에 연극이 활용되며 "붉은 신호등" 이나 "네 번째 남자", "마지막 강령술""SOS"는 설정과 내용이 한 편의 연극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읽기에는 별로 무섭지 않으며, 낡았다 여겨지기까지 한다는 호러물로서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시대를 앞서간 부분은 분명 있지만 시대를 초월하지는 못한거죠. 솔직히 읽고나서 "공략" 에 대한 신뢰도가 대폭 감소했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은데,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검찰측 증인" 

부유한 노부인을 살해한 혐의로 레너드 볼은 재판에 넘겨졌다. 범행 시각에 아내와 함께 있었다는 유일한 알리바이는 아내 로메인에 의해 부정되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변호사 메이헌은 로메인의 증언을 뒤집을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는데...

유명한 작품이기는 한데 "공략" 에서 몇몇 작품에 대해 언급한 바와 같이, 지금 읽기에는 너무 낡았습니다. 레너드 볼을 무죄로 만들기 위한 로메인의 노력이 너무 어설픈 탓입니다. 당시 시대에서는 위증죄는 큰 죄가 아니었을까요? 게다가 로메인의 위증은 엄밀하게 말하면 살인 미수에 가까운 중죄로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을텐데, 왜 이런 부분을 간과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중요한 재판에 편지만 증거로 제시될 뿐, 정작 법정에 로메인을 옭아매었다는 노파를 증인으로 부르지 않은 이유도 설명되지 않고요.

그래도 '일사부재리' 원칙과 배심원 제도의 맹점 등 현대 재판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주제 의식과 아이디어 만큼은 현 시점에도 건재합니다. 무엇보다도 레너드 볼이 진범이라는 마지막 로메인의 외침 하나만으로도 읽어볼 만 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붉은 신호등" 

절친 잭 트렌트의 부인 클레어를 연모하는 더못 웨스트는 저명한 정신과 전문의인 백부 앨링턴 경에게 그 사실을 들킨 후 언쟁을 벌였다. 그러나 직후 앨링턴 경이 살해되자 웨스트는 범인으로 체포될 위기에 빠지는데...

주인공이 누명을 쓰고 위기에 빠진다는 서스펜스 단편입니다. 약간 윌리엄 아이리쉬 느낌도 나는데 서스펜스에 집중하기 보다는 웨스트의 짝사랑, 그리고 제목의 '붉은 신호등' 이라는 웨스트가 지닌 일종의 예지 능력이 더 중요하게 묘사되는게 차이점입니다. 이 능력을 활용하여 최대의 위기를 벗어나는 (경찰이 덥쳤을 때 하인인 척 연기) 장면이 클라이막스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궁지에 몰리는 과정에서의 서스펜스를 잘 살리지는 못했으며, 클레어가 아니라 잭 트렌트가 광기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작위적입니다. 이 부분에서 앨링턴 경이 웨스트를 압박하는 이유도 잘 설명되지 않는 것도 문제에요. 뒤에 영국의 이혼법 등 몇가지 이유가 등장하는데 이국의 독자가 지금 읽기에는 설명이 많이 부족하거든요. 웨스트의 예지 능력 역시 설명이 부족한건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이 설정으로 윌리엄 아이리쉬가 썼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습니다.

"네번째 남자" 

유명한 변호사, 의사, 종교인이 우연히 밤 기차에 동승했다. 그들 중 의사 캠벨 클라크 박사가 한 집에 사는 여러 사람들처럼 몸 하나에도 여러 개의 영혼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과거 '펠리시 볼' 이라 불렸던 처녀의 다중인격 사례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네번째 승객 라울 르타르도는 자신이 알았던 펠리스 볼과 아네트 라블이라는 소녀에 대해 말해주는데...

다중인격을 소재로 한 일종의 심령 호러물. 다른 수록작들은 모두 잊어버린지 오래지만 아직까지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던 작품입니다. 다중인격에 대한 진상도 흥미로울 뿐더러, 펠리시가 자신의 몸에 침입한 타인을 격퇴한 결말이 충격적이기 때문입니다.

딱 한가지, 이러한 펠리시의 격퇴를 좀 더 극적으로 드러내지 못한 점은 좀 아쉽습니다. 이미 그녀가 상상을 초월한 방법으로 자살했다는게 밝혀진 후 과거 이야기가 등장하기 때문이에요. 라울의 회상이 끝난 다음에 나오는게 훨씬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아울러 다중인격을 여러 '영혼' 이 한 몸에 깃든 탓이라는 설명은 구시대적인 발상이죠. 쓰여진 시기를 감안하면 단점이라고 하기는 좀 어렵지만요.

하지만 지금 읽어도 서늘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멋진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이 단편집의 베스트에요. 별점은 4점입니다.

"SOS"

정신 의학의 권위자 모티머 클리블랜드는 우연한 사고로 외딴 집에 살고 있는 딘스머스 씨 가족의 신세를 지게 되었다. 딘스머스 가족에게는 무언가 알 수 없는 이상한 분위기가 감돌았는데, 이를 눈치챈 클리블랜드는 자신의 침실에서 SOS 신호를 발견했다. 

이상한 말을 지껄이는 딘스머스를 비롯한 가족들의 묘사, 주변 인가에서 수 km 이상 떨어진 외딴 집이라는 설정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지만 내용은 꽤 깔끔한 추리물입니다. 무엇이 이상하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추리하는 일종의 와이더닛 물이죠. 그런데 추리를 위한 단서들이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제공되고 있으며 진상도 납득할 만한, 설득력있는 이야기로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여사님의 비소 사랑도 눈에 뜨이네요.

딱 한가지, 탐정역을 정신과 의사에게 시켜가며 딘스머스 가족의 별장에 초자연적인 무언가가 깃들어 있다고 분위기를 끌고가는 묘사가 잘 살아나지 못한건 조금 아쉽습니다. 이 부분만 공포스럽게 묘사했다면 정말 좋았을텐데 말이지요. 아무래도 여사님과 고딕 호러는 잘 맞지 않는 듯 합니다.

그래도 그 외에는 단점을 찾을 수 없는 깔끔하고 완성도 높은 수작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그나저나... 죽을 뻔한 의붓딸 샬럿과 가족들과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가 더 궁금합니다. 유산 상속만 되면 영원히 연을 끊고 살겠지만 그 전에 진짜 지옥이 열리지 않을까 싶은데요. 비소가 아니라 도끼가 등장할지도?

"유언장의 행방 (라디오)" 

리지웨이 부인의 돈을 노리는 조카 찰스가 라디오로 쇼크사를 일으키는 계획을 실행하는 이야기로, 돌아가신 패트릭 고모부를 가장한게 찰스라는게 너무나 뻔해서 부인이 죽을 때 까지 긴장감은 전무합니다. 솔직히 이대로 끝나는 시시한 이야기겠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유언장이 사라졌다는 반전이 기가 막힙니다! 덕분에 흔해빠진 범죄물에서 약간 오 헨리 느낌의 블랙 코미디로 작품이 확 살아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청자의 비밀"

회사원 잭 하팅턴 (24)의 인생 유일한 목적은 골프의 핸디를 줄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골프장 근처에 방을 얻어 살면서 매일 출근 전 1시간 연습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날 부터 그는 매일 아침 7시 25분에 여자의 비명소리를 듣게 되는데...

등장인물들이 유령과 감응한다는 식으로 전개되는 작품입니다.
유명 정신과 전문의가 등장하는데, 정신과 의사 배빙턴이 영혼의 치료자로 자칭한다는 점에서 과학적이라기 보다는 뭔가 쎄~한 느낌이 들더군요. 심지어 영매의 존재를 믿기까지 하니까요. 이래서야 사기꾼이라는 생각이 안 들기 어렵지요. 그런데 결국 이 모든게 잘 짜여진 사기극이라는 진상으로 넘어가서 잘 맞아 떨어지게 됩니다. 이걸 의도한건 아니겠지만, 시간이 흐른 탓에 오히려 작품과 더 잘 어울리는 모양새가 된 셈이지요.

물론 단편인 탓에 설명이 부족한 부분이 몇 군데 있긴 합니다. 래빙턴 박사가 실제로 유명한 의사라며 등장하는 부분이 대표적입니다. 잭이 백부의 컬렉션을 잘 알고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말이죠.

그래도 옥의 티 수준일 뿐, 유쾌하고 즐거운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집시"

집시 여인을 만나 경고를 받은 후 사망한 친구 사건에 대해 파헤치고자 집시 여인을 찾아 나선다는 이야기로 일종의 예지 능력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붉은 신호등"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단순한 예감이 아니라 핏줄로 전해지는 신비한 능력이라고 포장하고 있다는게 차이점입니다. 합리성을 떠나 최소한 설명을 해 준다는 점에서 마음에 드네요.

하지만 완성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방향을 잘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탓이 큽니다. 집시 여인을 공포스럽게 조성하는 식으로 캐릭터 공포물처럼 시작하여 공포 분위기를 한껏 잡아나가지만, 불안에 떨던 주인공이 약혼녀 레이첼을 만나자마자 행복함에 휩싸인다는 결말이 뜬금없기 그지 없거든요. '두번 다시 보기 힘들겠다' 는 말 뜻이 주인공이 아니라 집시 여인의 죽음을 뜻했다는 일종의 반전은 신선했으나 효과적으로 활용되지 못했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램프"

오래 전 굶어죽은 아이의 유령이 살고 있다고 알려진 집으로 이사 온 3대 가족의 손자 조프리가 병으로 죽고, 소년의 유령과 함께 떠난다는 이야기로 이 단편집에 많이 수록된 영혼 소재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어디선가 영화에서 본 듯한 내용이에요. 아이의 눈에만 유령의 실체가 보인다는 설정도 그러하고요.
그런데 별로 무섭지도 않고, 결말도 시시합니다. 전개에 기복이 없고 묘하게 담백한 탓으로 하나 뿐인 손자가 죽었는데도 불쌍한 소년 유령과 함께 떠난 것에 만족하는 할아버지 윈버 씨 묘사가 대표적입니다. 그냥저냥 잔잔한 평균 이하 소품이랄까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아서 카마이클 경의 이상한 사건" 

저명한 심리학자이자 의학박사인 에드워드 카스테아스는 친구 세틀 박사의 부탁으로 아서 카마이클 경의 저택을 방문했다. 준남작 아서 카마이클이 갑자기 백치가 되어버린 증상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회색 고양이와 관련된 기묘한 상황을 마주하게 되는데...

진상은 카마이클 부인이 의붓 아들과 키우던 고양이와 몸을 맞바꾸었다는 겁니다. 자신의 아들에게 재산을 상속시키기 위해서요. 그녀는 동양의 피가 흐르는 마녀로 흑마술이나 최면술, 혹은 또 다른 기묘한 재주를 지녔다는 설정이고요. 

만화 등에서는 흔히 보아온 것이지만, 이를 상당히 이른 시기에 작품화하여 발표했다는 선구자적인 부분은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그러나 선구자적 부분 외에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은 없습니다. 이 단편집 수록작 대부분이 지닌 '설명이 부족하다' 는 단점이 극명하게 드러나 있는 탓이 가장 큽니다. 어떻게 정신을 바꾸었는지? 에 대한 설명도 없고, 청산가리로 살해된 고양이의 몸 속에 들어간 아서 카마이클의 정신이 어떻게 다시 본인의 몸으로 돌아오는지에 대한 설명 역시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이야기는 에드워드 카스테아스 1인칭이며, 그가 실제 목격한 내용만 기록되어 있다는 설정으로 부족한 설명을 메꾸고 있지만, 독자는 카스테아스의 비망록이 아니라 소설을 읽고 있는 만큼 최소한의 설명은 해 주었어야 합니다. 이래서야 한 편의 이야기로 완성도를 논하기도 어렵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날개의 부름" 

부호 사이러스 헤이머가 장애가 있는 거리의 악사의 연주를 듣고 높은 곳으로 향하는 꿈을 꾸지만, 속박으로 인해 다시 지상으로 떨어지는 것을 반복한다는 이야기.

장애인 악사가 신의 사자인 "목양신" 이라는 등 판타지 설정을 갖추고 있지만 정작 내용은 "부" 가 현실적인 속박으로, 모든걸 내려 놓아야 "승천" 할 수 있다는 약간은 동양적인 사고방식으로 흘러가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한마디로 크로스오버인데... 다른 작품들에서 느껴지는 공포나 서스펜스는 전혀 느낄 수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좋은 이야기이긴 한데 특별한 반전도 없고요.
무엇보다도 "공략" 에서 코즈믹 호러라고 설명하고 있어서 굉장히 호기심이 생겼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서 실망이 컸습니다. 덕분에 "공략" 에 대한 신뢰도가 대폭 감소해 버렸어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마지막 강령술" 

라울은 결혼을 앞둔 영매 시몬의 마지막 강령술 의식에 참석했다. 그것은 이미 죽은 딸 아메리를 구체화한 영혼을 불러내기 위해 거액을 지불한 마담 엑스를 위한 강령술이었다. 

영매가 불러낸 구체화한 영혼(엑토플라즘?)에 손대면 영매가 죽는다는 설정이 전부입니다. 구체화한 영혼이 진짜가 되었을 때 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어야 하는데, 이래서야 이야기가 너무 알맹이가 없지요. "공략"은 논리를 철저히 관철함으로써 발생한 현상이라 무서운 작품이라고 설명하는데 솔직히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논리' 자체가 딱히 설득력이 없을 뿐더러, 이 논리를 관철하는 이유는 작품 내내 강하게 설명되고 있어서 의외성있게 다가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논리적인 반전, 혹은 또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공략" 신뢰도 감소 2연타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죽음의 사냥개"

1차 대전 중 벨기에의 한 수도원에서 벽에 검은 사냥개 모양의 화약 흔적만 남긴 채 독일군 부대가 날아가 버렸다. "나" 는 이 사건에 관련된 수녀 마리 앤젤리크를 찾아냈는데, 그녀는 한 과학자의 연구 대상이었다... 

고대 문명 및 그 문명의 사제들이 가지고 있는 초능력을 다룬 이색작입니다. 수녀가 제 2 그리스도, 수정궁의 지도자 운운하는 신성 모독을 서슴치 않는 등 뭔가 있음직한 분위기는 물씬 풍기지만... 다른 단편들과 마찬가지로 내용에서 제대로 설명되는게 거의 없어서 무척 답답했습니다. 수녀가 가진 능력은 무엇인지, 로즈 의사가 어디까지 알아내어 음모를 꾸몄는지 등 뭐 하나 드러나지 않거든요.
"공략"에서는 논리가 부족해서 불안하고 두려운 작품이라고 설명되는데, 논리가 부족한게 아니라 미완성으로 보일 뿐입니다. "공략" 신뢰도 하락 3 콤보 되겠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2011/11/08

더 크레이터 2 / 3 - 데즈카 오사무 : 별점 1점 / 1.5점

The Crater 더 크레이터 2 - 2점 데즈카 오사무 지음/학산문화사(만화)
The Crater 더 크레이터 3 - 4점 데즈카 오사무 지음/학산문화사(만화)

1권을 읽고 실망한 나머지 더 읽지 않으려고 했는데, 관성으로 결국 읽게 된 2, 3권입니다.

그런데 1권과 동일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더군요.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는 시대를 뛰어넘는 아이디어, 설정은 찾아보기 힘들었으며 이야기의 장르적 속성이나 전개 방식에도 많은 의문점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수준 이하라고 생각되었어요.

각 권마다 보다 자세하게 살펴보자면, 2권은 쌈장 고딩 오쿠친을 주인공으로 한 3편의 이야기 "오쿠친의 기괴한 체험", "운이 좋은 계절", "오쿠친과 위대한 괴도"로 시작하는데 도라에몽의 청소년판 같은 느낌입니다. 유령과의 이상한 거래나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 미래에서 온 또 다른 나라는 설정과 과학적인 근거나 배경 설명 없이 밑도 끝도 없는 대소동이 일어난다는 전개가 유사하거든요. 그러나 도라에몽처럼 작정하고 아동 - 개그물로 나간 것도 아니고, 나름 진지한 복선을 깔고 있으면서 결말이 뭔가 석연치 않다는 점에서 이도저도 아닌 듯한 이질감을 느꼈습니다. 차라리 작정하고 즐겁게 달려주었더라면 훨씬 나았을 것 같은데 말이죠.

"토모에의 가면"은 초·중반은 진지한 괴담류의 호러물인데 마지막 결말은 개그에 불과한 당황스러운 작품으로 디씨에서 봄직한 썰렁 호러 개그 수준의 졸작입니다. 좋은 점을 찾는다는 게 힘들 정도였습니다.

"3명의 침략자"는 데즈카 오사무가 중요한 배역으로 등장하여 스스로의 희생으로 분위기를 호러스럽게 만들기는 하나, 이후의 결말이 개그스러울 뿐 아니라 독자의 상상의 범주 안에 머무르기에 역시나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나름의 반전이 있다는 점 하나는 괜찮았기에 "토모에의 가면"보다 살짝 좋은 정도랄까요? 별 차이 없는 평균 이하의 작품이긴 합니다.

3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팔각형의 저택"은 두 명의 내가 있다는 전형적인 패러렐 월드물인데 설득력 없는 전개에 더하여 급작스럽고 이해하기 어려운 결말은 어이가 없을 뿐입니다. 생각하기가 귀찮아서 대충 마무리한 느낌마저 들어요.

"브룬넨의 수수께끼"는 지금 읽기에는 낡아 빠진, 뻔하디 뻔한 판타지 멜로 + 크리처물입니다. 미지의 미녀와 그녀의 애인, 우연히 사건에 휩쓸린 주인공과 그들을 위협하는 미녀와 관계 있는 크리처라는 설정과 이야기 모두 너무나 전형적이어서 놀랐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한 치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지...

"추락기"는 독특한 반전 블랙코미디 장르물이기는 하나 역시나 지금 읽기에는 너무 오래된 소재와 설정, 전개였습니다. 더 웃겨줬더라면 점수를 줄 만했는데 조금 아쉽긴 하네요.

상당히 묵직한 정통 SF "크레이터의 남자"도 발상과 전개, 주제의식은 좋았으나 지금 읽기에는 핵전쟁의 공포가 만연했던 냉전 시대의 흔해빠진 SF물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어요.

아예 볼 만한 작품이 없는건 아닙니다. 2권에서의 "두 개의 드라마"는 어이없는 전개에도 불구하고, 결말의 반전으로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게 나름 명쾌한 맛이 좋았습니다. 3권의 "풍혈(風穴)"은 설정이 황당하고 전개도 설득력이 없기는 하나 결말이 깔끔해서 마음에 들었던 심리 호러물이었고요. 복잡한 인간 군상이 폐쇄된 비행기 안에서 대형 독거미로 갈등을 일으킨다는 "졈보"도 하나의 이야기로서의 완성도는 확실한 편이라 읽을 만했습니다.

그래도 전체적인 분량에 비해 좋은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은 많이 빈약한 편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네요. 그리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솔직히 그린 게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킨 느낌이에요.

별점은 2권은 1점이고 그나마 읽을 만한 작품이 더 많은 3권은 1.5점입니다. 역사적이고 자료적인 가치 이외의 다른 장점을 찾기는 어려웠고 가격도 많이 비싼 편이니 추천하기 어렵습니다. 작가의 팬이 아니시라면 구태여 찾아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09/08/05

극락도 살인사건 (2007) - 김한민 : 별점 2점

 


작지만 평화로운 섬 극락도에서 섬 주민 모두가 사라지는 괴사건이 일어난다. 사건은 마을이 우수 낙도로 선정되어 포상받은 직후 마을 잔치날 벌어진 화투판 살인사건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영화를 본건 2년전인데, 리뷰를 작성하고 비공개로 돌려놓고 잊어먹고 있다가 이제서야 올립니다.^^ (앗싸 하나 건졌다~)

일단 이 영화는 개봉 당시에 크리스티 여사님의 "열개의 인디언 인형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둥 하며 정통 추리물인 것 처럼 포장하여 선전했던 영화죠. 

그러나 아니니다를까 뚜껑을 열어보니 정통 추리물과는 약 10만광년 정도 떨어진 작품이었습니다. 차라리 블랙 코미디 성향이 짙은 호러물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죠. 마을 주민들이 죽어나가는 연쇄살인의 동기, 범인의 정체 모두 "약물"에 의한 환각 때문이었다는 설정 때문에 추리의 여지가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범행이 다 우발적인 것이었다는데 추리할게 있을리가 없잖아요. 또 어차피 제정신들이 아닌 상황에서 벌어지는 잔인한 살인사건이라면 마을 주민들이 하나씩 좀비가 되면서 벌어지는 호러물하고 다를게 없겠죠.

다만 마을 주민들을 중독시킨 "약물" 의 정체와 극락도에 반입된 이유가 반전으로 등장해서 약간 추리적으로 사건을 마무리하기는 하는데, 문제는 사건의 핵심인물인 박해일이 연기하는 "제우성"이라는 캐릭터의 설정과 묘사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가득차 있기에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했습니다. 지가 사건을 저질러 놓고 그 수수께끼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 처럼 묘사해놓으니 어이가 없을 뿐입니다...

물론 마을 주민들을 연기한 배우들의 연기력이 좋으며 전체적으로 짜임새나 얼개는 잘 갖추어 놓은 잘 만든 영화이긴 합니다. 더운 여름 보기에는 서늘한 감이 있기도 하고요. 그러나 추리 애호가로서 전체적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에 별점은 2점밖에는 못 주겠습니다.

그나저나 왜 우리나라에서는 추리물이라고 하면서 호러를 찍을까요? 추리물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단서나 전개는 전무하고 불필요할 정도로 피와 깜짝쇼가 난무하니 저같은 추리물을 기대하고 본 관객은 김이 샐 수 밖에 없잖아요. 중요하지도 않은 귀신은 왜 이리도 자주 등장해서 사람 김을 빼 놓는건지 원....

2012/10/30

스노우화이트 - 모로호시 다이지로 : 별점 1.5점

스노우화이트 - 4점
모로호시 다이지로 지음/미우(대원씨아이)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그림동화를 소재로 한 단편집. 모두 12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다양한 장르를 소화해 가며 그림동화를 재해석한다는 아이디어는 돋보입니다. 뱀파이어 호러물로 변주한 "스노우화이트", 영혼 이동 호러물 "카라바 후작"은 어디 내놓아도 손색없는 작품이었고요. 좀 뻔한 근미래 종말론적 분위기 SF "라푼젤"도 그럭저럭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작품들은 실망스럽습니다. 단순한 아이디어나 설정만으로 승부하는 작품이 많은데다가, 딱히 재미있지도 않을 뿐더러 완성도도 별로인 탓입니다. 허무 개그스러운 분위기가 많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작가 특유의 기괴한 센스가 딱히 두드러지지 않는 것도 감점 요소입니다. 책 소개 글처럼 "모로호시 World 초보자를 위한 최적의 입문서"일지는 몰라도, 이 작가의 매력이 잘 표현된 작품은 아닙니다. 과연 이 작품으로 모로호시 다이지로를 접한 초심자가 다른 작품을 찾아보게 될까요?

어차피 전부 12편에서 3편만 마음에 드니 별점 척도로도 1.5점 이상은 못 주겠습니다. 8,500원이라는 가격도 용서가 되지 않네요. 작가의 팬과 초심자 모두에게 적합하지 않은 책으로 판단됩니다. 그래도 궁금하신 초심자 분 계시면, 딱 한 번 읽은 책 4,000원에 양도하겠습니다....

2022/02/04

금요일의 괴담회 - 전건우 : 별점 1.5점

금요일의 괴담회 - 4점
전건우 지음/북오션

한국 작가의 괴담 모음집입니다. 금요일에 리뷰 올리기 좋은 제목이네요. 모두 열 일곱 편의 괴담이 수록되어 있는데, 수록작 대부분은 괴담답게 기승전결보다는 괴이현상, 섬찟함 등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수록작 중에서 "여우고개", "열세 번째 계단"의 두 편은 아주 좋습니다. 뻔한 이야기를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범죄, 사건과 결합하여 독특하게 풀어내고 있는 덕분입니다.

그러나 그 외에는 모두 평균, 수준 이하입니다. 괴담치고는 별로 무섭지 않았던 탓이 가장 큽니다. 지나치게 짧다는 것도 단점이고요. 설명도 부족할 뿐더러, 설정 등에서 아무런 밀도를 느낄 수 없습니다. 미쓰다 신조 만큼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이야기가 성립할 수 있도록 기본 바탕은 깔아주었어야 했어요. 그리고 너무 뻔한 이야기가 많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대체로 어디선가 접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답습할 뿐입니다. 최소한의 반전, 아니면 최소한의 새로움이라도 더해 주었다면 나름대로 가치가 있었겠지만, 예상을 벗어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그래서 좋은 이야기를 살리지 못한 측면도 없지 않아요.

그래서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여러모로 그리 권할만한 책은 아닙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조용한 집" 

새로 이사온 집에서 불길한 기운을 느끼다 독감에 걸려버린 규선에게 그 집에 살다가 요양원에서 죽은 노인의 가족이 찾아와 노제를 하고 떠났다. 그래도 이상한 꿈을 꾸는 등 괴현상이 계속되자, 규선은 빈 집을 찍울 수 있도록 핸드폰을 셋팅하고 외출했다. 나중에 확인한 핸드폰 영상에는 소리를 지르는 시커먼 형체가 찍혀 있었다... 

노망에 걸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노인의 원혼이 집에 깃들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하나의 이야기로 보기에는 완성도가 낮습니다. 일단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노인이 왜 집에 집착하는지 설명되지 않습니다. 규선이 저주를 받을 이유도 딱히 없고요. 또 노인의 원혼을 달래기 위한 노제를 했다면 원혼이 사라졌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게 아니라면 구태여 노제는 전개에 들어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원혼이 규선을 덮치는 결말도 예상 가능했고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여우고개" 

할머니는 어린 시절, 색연필을 훔쳤던 자기를 쫓아온 여우 '매구'를 매실의 힘을 이용하여 자기 대신 친구를 잡아가게 만들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무에 걸려있던 빨간 카디건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카디건이 사라지자, 할머니는 다른 동료 할머니 3명이 카디건을 숨겼다고 오해하고 그들에게 농약 사이다를 먹이고 마는데... 

가끔 뉴스에 나오곤 했던 '농약 사이다' 사건을 '매구'라는 요물 여우가 배후에 있다는 괴담 형태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작품 속 매구는 특정 물건에 집착하는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여 다른 사람을 해치고 죽게 만든다는 설정인데, 이를 정신이 나간듯한 할머니 시점의 끔찍한 묘사들과 잘 섞어서 설득력있게 그려낸 솜씨가 일품이에요. 한국식 사회파 호러물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매구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는걸 명확하게 하는게 훨씬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어린 시절 할머니 친구가 실종된게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이 역시 할머니가 죽였다는 진상이 드러나는 식이었다면 말이 됐을테니까요. 지금처럼 매구가 있는지 없는지, 카디건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호한 상태로 끝나버리면 할머니가 나쁜게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인데, 이런 마무리는 호러물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싶거든요. 깔끔한 느낌도 들지 않고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그 여름의 흉가" 

여름 한 철, 나는 호러 가이드로 일하면서 어머니처럼 자살 충동에 시달렸다. 그리고 강원도 흉가 체험을 한 어느날, 열정적으로 살라는 투어 멤버의 조언을 듣는데... 

손님을 가장하여 투어에 참가한 어머니의 영혼을 만나 정신차리고 열심히 살게 된다는, 성장물에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한 명 더 있던 손님, 죽은 어머니의 영혼과 사진의 존재 등 전형적인 괴담 클리셰를 모아서 만든 이야기로 뻔한 내용에 주인공이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이유도 설명되지 않는 등, 여러모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자살하는 캐릭터" 

신작 게임 블라인드 테스트 중, 이상한 NPC가 발견되었다. 그 NPC를 참혹하게 죽여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었다. 알고보니 개발팀에서 폭언을 듣고 자살한 신입 개발자 은정이가 NPC가 되었던 것이었다. 그 뒤 개발팀 멤버들이 하나, 둘씩 은정이가 게임에서 죽은 방식대로 죽어갔다... 

저주를 게임의 NPC를 통해 풀어낸건 참신했지만, 그 외에는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작품입니다. NPC 목을 베어 죽였던 주인공 목에 금이 간다는 결말까지 뻔했습니다. 저주를 푸는 방법이라던가, 저주의 실체에 대해 보다 심도깊게 파고들었다면 아주 흥미로운 작품이 되었을텐데 아쉽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한밤의 엘리베이터" 

여자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배달원과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와 함께 갇히고 말았다. 엘리베이터는 곧 정상 가동되었지만, 찜찜함을 느낀 여자는 중간에 내려 계단으로 향했다... 

배달원이 여자를 쫓고 있었다는 결말인데, 너무 뜬금없을 뿐더러 흔해빠진 이야기라 반전의 묘사도 느낄 수 없습니다. 수십년 전에 보았던 영화 "캠퍼스 레전드" 도입부가 바로 떠올랐거든요. 한 여자가 주유소였나? 어딘가에 잠깐 들렀는데, 굉장히 수상해보이는 주인이 갑자기 쫓아오기 시작해서 부리나케 도망을 칩니다. 그러자 주인은 뒤에서 "차 뒷 자리에 누군가 숨어있단 말이야!"라고 소리친다는건데, 거의 똑같지요? 

게다가 이야기의 완성도만 놓고 보면 "캠퍼스 레전드"쪽이 훨씬 낫습니다. 이 이야기에서는 양복입은 남자의 존재가 제도로 설명되지 않는 등 단점이 더 많은 탓입니다. 이래서야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지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인형 뽑기" 

회식에서도 팀장에게 시달리던 세호는 우연히 인형 뽑기 기계를 마주쳤다. 기계에는 인형에 눈, 코, 입을 그려 넣고 이름을 붙이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세호는 뽑은 인형에 팀장의 이름을 붙인 뒤 눈, 코, 입을 그리고 인형을 패대기쳤다. 다음날, 세호는 팀장이 사고로 인형과 똑같은 부분에 큰 부상을 입고 당분간 회사를 쉬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세호가 인형을 뽑아 자기를 괴롭히던 상사들에게 복수하지만, 세호도 부하 직원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내용입니다. 기승전결이 명확한 하나의 이야기라는건 장점이지만 그 외는 그닥입니다. 진부하기 짝이 없으니까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저주받은 숲" 

미스터리 사이트에 무서운 숲 사진을 올리고, 그 곳에서 캠핑을 하겠다는 글이 올라왔다. 누군가가 회색 숲은 음기가 강하고 귀신이 많으니 도망치라는 글을 올렸지만 처음 글쓴이는 캠핑을 감행했고, 뒤이어 이상한 현상에 대한 글을 계속 올리기 시작하는데... 

미스터리 사이트 게시판에 올라온 글과 댓글들로 전개되는 작품입니다. 파운드 푸티지라는, 한 시대를 풍미했고 지금도 선보이고 있는 호러 영화 장르물을 글로 옮기면 이런 형태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하지만 저는 이 장르를 싫어합니다. '현실감'을 주는데 치중해서,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로는 볼 수 없는 작품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블레어 위치"가 대표적이지요. 이야기 결말도 보통 주인공이 사라지는 형태로 애매모호하게 끝나곤 했었지요. 이 작품 역시 완성된 이야기가 아니고, 처음에 글쓴이, 구해주러 갔던 직업 군인, 숲에 대해 썰을 풀어놓는 박수무당 등 주요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는 점 등에서 똑같습니다. 

이렇게 제가 싫어하는 점을 답습했을 뿐더러, 새로운 아이디어도 딱히 찾아보기 힘들어서 좋은 점수는 줄 수 없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화분" 

선미는 시장에서 빨간 색 꽃이 핀 화분을 사 왔다. 그리고 꽃에게 자기 소원을 이야기한 다음날, 소원이 이루어져 연적인 이 대리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걸 알게 되었다... 

선미가 생기, 젊음을 댓가로 김 대리와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이상한 꽃에게 소원을 빌지만, 마지막에 소원을 빈 목적이었던 김 대리마저 죽게 만든 뒤, 자기에게 꽃을 팔았던 할머니처럼 선미도 시장에서 화분을 팔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소원을 들어주는 저주받은 물건'에 대한 이야기는 하늘의 별만큼 많습니다. 그 중에서 변별력을 가질 만큼의 새로운 이야기로 생각되지는 않네요. 김 대리가 죽고 만다는 결말은 괜찮았지만, 그 외는 평이했습니다. 소원은 이루어졌지만, 본인도 불행에 빠진다는 전형적인 결말도 뻔했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열세 번째 계단" 

한 계단 씩 올라갈 때마다 피를 한 방울 흘리면, 열세 번째 계단까지 올라가서 뒤를 돌아볼 때 서 있을 여자 아이에게 소원을 말해주면 뭐든지 들어줄 것이다. 

전교 1등을 죽이면 자기가 전교 1등이 될 거라는 괴담의 파생형입니다. 여기에 성적 때문에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 이야기가 결합되어 있고요. 

짧은 분량 안에서 할 이야기는 다 하고 있고, 깔끔하게 마무리되는건 좋습니다. 1등 원석이가 계단에 소원을 빈 게 아니라, 노는 척 하면서 죽을만큼 공부했다는 진상이 특히 와 닿네요. 괴담을 현실로 만드는데 정말로 적절한 소재였다 생각되거든요. 부모를 죽이고, 원석이의 장난까지 알아버리자 완전히 미쳐버려 계단에서 여자 아이를 보게 된 주인공의 시점 변화도 탁월했고요.

주인공의 부모의 비정상적인 집착이 좀 더 묘사되었더라면, 그리고 부모를 죽인 주인공이 부모로부터 피를 받아 왔을텐데, 그 이야기를 더 무섭게 푸는게 좋지 않았을까 싶기는 합니다. 부모 머리를 잘라왔다는 식이었다면 더 충격적이지 않았을까요? 좀 은근하게, 지나치게 흉칙하지 않게 묘사하는게 이 책 수록작들의 특징이기는 한데, 이 이야기만큼은 보다 엽기적인 묘사를 하는게 좋지 않았을까 싶어요. 어차피 범죄 자체가 극단적인 패륜 범죄이니까요.

그래도 완성도 높은 작품이었습니다. 약간 사회파 느낌을 전해 주는 것도 마음에 들었어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가위" 

주인공 혜미가 가위에 눌린 이야기가 전부인 소품. 무섭지도, 재미있지도 않았습니다. 괴담으로 보기에도 너무 알멩이가 없고요. 별점은 1점입니다.

"외로운 아이 부르기" 

중학교 2학년 친구들 세 명이 몰래 학교에 숨어들었다. '외로운 아이 불러내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제목은 좀 있어보였지만, 알고보니 '외로운 아이 불러내기'는 '분신사바'와 거의 똑같더군요. 불러낸 외로운 아이가 질문을 잘못한 탓에 화가 나서 아이 하나를 데리고 가는게 전부인 이야기는 무섭지도 않고, 의외성도 없고요. 별점은 1점입니다.

"자유로 귀신" 

헌팅한 여자가 파주로 가자는 말에 남자는 차를 몰고 자유로를 탔다. 여자는 '자유로 귀신' 이야기를 꺼냈다. 

뭔가 했더니, 음주 운전 차량에 희생된 여자가 원혼이 되어 자유로를 음주 운전으로 지나가는 운전자들을 응징한다는 내용이더군요. 그렇게 완성도 높은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어요. 별로 무섭지도 않고요. 함께 수록된 사진이 더 무서웠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음주 운전자는 죽어도 싸다고 평소에 생각하고 있어서, 그 부분에 약간의 점수를 더합니다. 모든 음주 운전자가 이런 귀신을 만나서 천벌을 받기를 바랍니다.

"유괴" 

지수는 아영을 데리고 놀이 공원에 갔다. 그런데 한 할머니가 자기가 미래를 볼 줄 안다면서, 아이 앞날이 어둡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지수는 유괴범이었고, 아영이를 놀이 공원에 데리고 온 건 몸값을 받으러 왔던 거라는 진상이 반전으로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현실적인 범죄가 등장하는 범죄물로 유괴범 시점으로 바라본 유괴극이라는 아이디어는 꽤 독특합니다. 그러나 이상한 할머니의 존재는 도무지 뭔지 모르겠어요. 할머니가 지수의 정체가 유괴범이라는걸 알아낸 방법이 무엇이었는지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건 미래를 본다는 능력과 별 상관도 없잖아요? 또 할머니가 아영이를 지수 몰래 데리고 가려고 했다는 것도 억지스러웠습니다. 경찰에 신고하는게 당연하니까요. 

별로 무섭지도 않았고, 제목 자체가 스포일러라는 점도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든 요소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더블"

진수는 자기와 똑같이 생긴 남자를 두 번째 본 뒤, 옛 군대 선임인 박수무당 영우를 찾아갔다. 영우는 산 사람한테 붙어 영혼을 빨아먹는 악랄한 홉혼귀라며 부적을 한 장 써 주었다. 한 번 더 홉혼귀를 보면 죽는다는 말과 함께. 그러나 세 번째로 홉혼귀를 마주치자, 영우는 분노에 휩싸여 그를 죽이고 마는데... 

자기와 똑같은 사람에게 분노를 품고 죽였는데, 죽이고나니 하나도 안 닮았더라... 는 이야기. 홉혼귀다, 도플갱어다 하면서 뭔가 설정을 깔기는 하는데 그런게 무슨 상관인지 잘 모르겠을 정도로 허무한 결말이었어요. 진수를 홉혼귀가 쫓아다니는 이유도 설명되지 않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1킬로미터" 

한수는 이상한 문자 메시지를 따라가 어플을 하나 깔았다. 깔고나니 일종의 매칭 어플이었다. 한수는 어플에서 이상형인 박수희를 발견해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는데... 

어플을 통해 젊은 남자를 납치한 뒤 고깃배에 태우는 범죄 조직이 등장하는데, 너무 비현실적이라서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어요. 대한민국에서 백주대낮에 건장한 남자를 폭행 후 납치한다는게 말이나 될까요? 어림반푼어치도 없지요. 마지막에 GPS로 위치를 확인하여 한수의 집까지 침입한다는 결말은 어이를 상실케 했고요. 별점은 1점입니다.

"화장실" 

데이트 중에 갑자기 배가 아파 화장실을 찾았는데, 옆 칸에서 누군가 노크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화장실 안에 붙어있는 장기 매매 스티커 번호를 물어보았다... 

장기가 적출되는건 나였고, 이건 여자 친구의 음모였다는 이야기. 

누구나 잘 알고 있는 화장실 장기 매매 스티커를 이야기 전개에 활용한건 좋은 아이디어였는데, 그 외 모든 내용과 과정은 뻔하고 억지스러웠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그 목소리" 

윤미 일행은 도심 근교 펜션으로 여행을 떠났다. 우울증 약을 건너 뛴 윤미는 남자친구 동민과 친구 영화가 윤미를 몽키 스패너로 처리할거라는 음모를 엿들었다... 

우울증 약을 먹지 않아서 정신착란을 일으킨 윤미가 남자친구, 자기 친구와 그 남자친구까지 모조리 죽인다는 이야기입니다. 

피해자로 보였던 여주인공이 알고보니 가해자였다는건 많이 보아왔던 설정입니다. 그러나 이 설정이 효과적으로 사용되지는 못했습니다. 윤미에게 우울증이 있다는게 밝혀지자마자 곧바로 살인으로 이어져버리니까요. 이런 급발진 전개 덕분에 아무런 복선이나 반전도 없어서 시시했습니다. 이야기의 설득력도 낮고요. 별점은 1점입니다.

2009/10/21

의뢰인은 죽었다 - 와카타케 나나미 / 권영주 : 별점 3점

의뢰인은 죽었다 - 6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북폴리오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과 "네 탓이야" 로 친숙한 와카타케 나나미의 신작 단편집. "네 탓이야"의 주인공 프리터 하무라 아키라 주연의 단편 9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읽고난 감상으로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는 것은 생각하고는 많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단편집은 제가 기대했었던 "추리물"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전체적으로 볼 때 이야기의 전개나 구조는 추리물적인 성격이 강하고, 대체로의 내용들도 범죄와 호러를 근간에 깔고 있는 등 광의의 의미로서 추리물이라고 부르기에는 전혀 문제는 없습니다. 그래도 범죄가 등장하고 그 범죄를 파헤쳐서 숨겨진 진상을 알아낸다던가, 교묘한 범인의 트릭을 간파해서 진범을 찾아낸다는 등 전통적인 추리의 영역을 벗어나 있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죠. 작가의 전작을 통해 이러한 추리적인 요소를 많이 기대했던 저에게는 정말 뜻밖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기대하고 달랐다고는 해도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유는 당연히 작품들이 재미있었기 때문이죠.

먼저 전통적인 추리적인 면만 놓고 본다면 표제작이기도 한 "의뢰인은 죽었다"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갑자기 날아온 난소암을 알리는 통지서에 당황하던 여자가 우연찮게 알게된 하무라에게 관련된 내용을 물어본 뒤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어 하무라가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는 이야기로 통지서라는 존재 자체가 좀 작위적이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기는 하지만 "동기"와 일련의 과정이 아주 합당하면서도 설득력있게 짜여져있는 좋은 작품으로 충분히 기대에 값합니다.
그리고 두번째 단편인 "시인의 죽음"에서부터 등장하는 하무라의 친구 아이바 미노리가 탐정역을 소화하는 이색작 "여탐정의 여름 휴가"도 제목 그대로 여름휴가를 보내는 호텔에서 벌어진 실종사건을 다룬 이야기로 설정부터 완전 고전 영국식 추리물 티가 팍팍나는, 단순하지만 "복선"과 "단서", 그리고 "트릭"이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추리물로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재미있던 것이, 이러한 추리물을 포함해서 이 단편집의 작품들은 일관되게 "자살"이라는 죽음을 주요 테마로 삼고 있다는 것과 이러한 자살 행위 뒤에 "인간의 악의"가 굉장히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들고 싶네요. 그것도 친족이 관련된 사소하지만 무서운 악의를 말이죠. 정도가 지나쳐서 작가가 친족에게 큰 스트레스를 받아온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어쨌건, 이러한 악의가 사소한, 또는 일상속에 묻힌 사건 배후에 깔려있는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살짝 소름이 돋는 내용들로 짜여져 있기에 굉장히 몰입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앞서 언급한, 친구 아이바 미노리의 약혼자였던 공무원이자 시인이었던 인물의 자살 사건 뒤에 감추어진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아버지의 속셈을 그린 "시인의 죽음"과 한 평범한 주부가 의뢰한 그녀 친구의 급작스러운 자살사건에 대한 이야기인 "내 조사에 봐주기는 없다"가 대표적으로 이 두 작품은 그야말로 일상계 악의 범죄소설이라 명명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람의 사소한 악의가 타인에게 어떻게 작용되는지를 철저하게 표현하고 있거든요.

그 외에도 은인과 불륜관계에 빠진 아내를 데리고 귀향한 화가에 대한, 조금은 뻔한 내용이지만 충분히 설득력있는 일상계 호러물 "철창살의 여자"도 굉장히 좋았습니다. 작위적인 무대장치와 작중에 "수없이 많은 모델이 견디지 못해서 교체되었다" 라는 설정이 조금 거슬리긴 했지만 (사건의 진상을 모델들이 알 수 밖에 없으니까요) 충분히 공포를 안겨다 주는 작품이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의 경우는 실제 등장하는 그림이 비쥬얼로 보여지는 영상물로 작업된다면 정말 모골 송연한 전연령(?) 호러물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더군요. 드라마화라도 되면 좋겠는데....
작가 특유의 인칭과 시점을 오가는 묘사력이 잘 표현된 "아베마리아"도 좋은 작품이었고요.

아울러 주인공 하무라의 독특함. 그 어떠한 일이라도 방관자적이면서도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내 조사에 봐주기는 없다"같은 집요함도 재미의 핵심 포인트 중 하나입니다. 전작 "네 탓이야"와 비교한다면 단독 주연(?) 이면서 연륜이 쌓인 덕인지 훨씬 캐릭터가 확실해지고 매력적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정말 실존할 것 같은 여탐정 캐릭터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단, 일종의 스토리라인을 설정한 듯 첫번째 작품인 "짙은 감색의 악마"와 마지막 작품 "편리한 지옥"이 서로 연결되며 이야기가 시작되고 마무리되는데 이 두 작품이 단편집과 너무나 이질적으로 느껴진 것 하나는 아쉽습니다. 평범한 일상속에서의 악의라는 테마를 일관되게 끌고나갔더라면 좋았을 것을, 일종의 "마인"과도 같은 악역의 생뚱맞은 등장으로 일상성과 평범함, 그리고 악의라는 중요 이야기축이 통째로 무너져 버려서 혼란스러워지더군요. 예를 들자면 그런대로 괜찮은 추리물이었던 "케이조쿠" 에서 "아사쿠라"라는 마인의 등장으로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는 느낌 그대로였어요. 그냥 하무라라는 캐릭터와 일상에서의 악의만 가지고도 충분히 이야기가 가능했는데 왜 이러한 악역이 등장해서 이야기에 개입했어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충분히 이름값은 하는 작품이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다음 작품은 하무라 아키라가 등장하는 첫 장편이라는데 특유의 일상성을 잘 살린 작품이면 좋겠습니다.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요.

2006/12/06

나는 전설이다 - 리쳐드 매드슨 / 조영학 : 별점 3.5점

나는 전설이다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황금가지

표제작 중편 이외에 10편의 단편이 같이 실려 있는 중단편집. 이 바닥에서는 유명하지만 호러 계열은 취향이 아닌지라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형의 지인이 대여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읽게된 책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굉장히 재미있더군요! 제 취향때문에 안 읽었더라면 큰일날뻔 했어요.
일단 표제작이자 작가의 대표작이기도 한 뱀파이어 호러물 "나는 전설이다"는 정말 대단한 작품으로 여러모로 생각해 볼 부분이 많더군요.
중편이긴 하지만 하나의 긴 기둥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기 보다는 4개의 시즌으로 구분하여 각 에피소드별로 나뉘어져 있는 방식인데 개인적으로는 살아남은 강아지 에피소드가 제일 마음에 들긴 했습니다만 다른 에피소드들도 전부 보통 이상입니다.
바이러스가 일종의 공기로 전염되는 것이라는 것이라던가 주인공이 뱀파이어 바이러스에 어느정도 면역이 있다는 등의 설정부터 쓰여진 시기를 생각한다면 굉장히 획기적이고 특이하며 홀로 집을 요새처럼 꾸며놓고 거의 좀비와 같은-사고(思考) 없는- 뱀파이어들과 싸운다는 설정은 후대 다른 많은 작품들, 특히 좀비물에 엄청난 영향을 준 것이 확실해 보였습니다. 또한 혼자서 뱀파이어들을 퇴치하기 위해,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는 모습의 리얼함이 정말 생생합니다. 읽다가 어느새 감정이입하게 될 정도로 말이죠.
아울러 뱀파이어라는 이질적 존재에 대한 나름의 과학적인 전개도 곁들여서 재미를 더하는데 주인공이 뱀파이어를 퇴치하기 위해 마늘과 십자가, 햇빛에 대해 여러가지 연구를 하는 부분, 또 그들의 라이프사이클(?)을 파악하고 낮에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생존과 전투에 필요한 장비를 구하고 만드는 부분 등은 리얼하면서도 설득력이 넘칩니다.

딱 한가지 아쉬웠던 것은 마지막 에피소드, 즉 작품 후반부에 중간존재(?) 격인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너무 영화적이고 작위적인 설정이었어요. 이 여성이 등장하지 않고 더 묵직하게 끝나면 훨씬 좋았을 것 같은데 말이죠.

그래도 모두가 비정상인 곳에서 혼자만이 정상이면 그 혼자가 결국 비정상, 괴물이라는 주제는 묵직하게 전달됩니다. 외눈박이 마을에 두눈박이가 가면 안되는 것 처럼요. 제목 그대로의 주인공 네빌의 독백이 정말로 와닿는, 재미도 있으면서도 작가의 철학과 주제가 잘 전달되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다른 단편들도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이니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덧1 : 영화 "오메가 맨"의 원작인지는 몰랐는데 확실히 영화는 많이 달랐었죠. 영화에서는 정상적인 사람들이 등장해서 주인공의 고독을 극대화시키지 못했었던 기억이 나거든요. 이번에 다시 영화화 한다는데 주인공 네빌의 절망과 음울한 분위기를 얼마만큼 잘 살릴지 궁금해집니다. 그러나! 주인공 역으로 윌 스미스는 영 아니라는 생각이...
덧 2 : 읽다 보니 제가 좋아하는 이마 이치코의 걸작 단편선 3권 "외딴섬의 아가씨"에 수록되어 있는 단편 "침묵"이 생각나네요. 정상인인 듯(?)한 한 마을에 동굴을 통해 찾아온 이웃 마을 마법사의 이야기인데 해피엔딩이긴 하지만 주제는 비슷한 것 같습니다.

던지기 놀이 :
작은 마을의 카니발. 탁구공을 던져 어항안에 집어넣으면 상품을 주는 코너에서 한 남자가 연달아 탁구공을 집어넣기 시작한다.
사소한 작은 일상에서 점차 커져나가는 스릴과 공포를 잘 나타낸 수작이라 생각합니다. 결말이 약간 황당하긴 하지만 전개가 상당히 매끄럽고 탄탄하네요.

아내의 장례식 :
굉장히 짧은 꽁트 형식으로 내용 요약이 어렵지만 유머러스하고 섬뜩한 반전이 인상적입니다. 이른바 "기묘한 맛" 류의 단편입니다.

죽음의 사냥꾼 :
아멜리아는 서른이 넘어서도 어머니에게 속박당한채 자유스럽지 못한 삶을 산다. 그러던 어느날 남자친구 아서에서 선물하기 위해 골동품상에서 구입한 인형이 주술걸린 사슬이 벗겨져 그녀를 습격하는데...
스티븐 킹 느낌이 물씬 나는 호러물입니다. 약간의 배경 및 캐릭터 소개를 제외한다면 거의 전편에 걸쳐 주인공 아멜리아와 죽음의 인형의 사투를 다루고 있어서 깊이는 좀 없지만 내용 자체는 무척 재미납니다. 공포스럽기도 하고요. 그러나 마지막 결말에서의 반전은 좀 뜬금없다는 느낌이 드네요.

마녀의 전쟁 :
P.G 센터의 일곱명의 예쁜 소녀들은 사실 마녀로 적군을 마법으로 습격하는 작전을 시작한다.
굉장히 짧은 작품으로 마녀들의 저주와 술법에 대한 묘사가 대부분이라 그다지 알맹이는 없습니다. 단지 아이디어만 좀 기발하달까... 작가의 이력에 TV시리즈 "환상특급" 원작을 여러편 썼다는 내용이 있는데 정말 "환상특급"의 한 에피소드를 보는 듯한, 영상화가 더 어울릴법한 소품이었습니다.

루피 댄스 :
순진한 소녀 페기는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 건달인 버드와 렌, 그리고 렌의 파트너 바바라와 같이 금지된 우범지역 세인트루이스로 놀러가 "루피댄스"를 처음 접한다.
뭔가 전쟁이나 다른 이유로 약간 맛이간 세계를 무대로 해서 황폐하고 무절제한 젊은이들을 그린 작품. 초반부의 맛간 젊은이들 묘사는 스티븐 킹 작품의 하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비슷한데 괴물이 등장하는 등의 공포로 이어지지는 않고 "루피댄스"라는 기묘한 춤을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끝납니다. 그래서인지 약간의 SF적인 몇몇 설정과 대사는 재치있지만 그다지 생각보다 재미있진 않았습니다. 어차피 제가 나이가 좀 들어서 그런건지 무절제한 청춘 이야기는 식상하기도 했지만요.

엄마의 방 :
짧기도 하고 내용 요약이 힘든 작품이지만 나름 반전이 있는 소품입니다. 역시 "기묘한 맛" 류일까요? 루스 렌들 여사의 단편 느낌이 들었습니다.

매드 하우스 :
한때 작가를 꿈꾸던 크리스는 허름한 집에서 결코 끝나지도 못할 소설을 붙들고 사는 말단 영어 강사로 삶에 대한 그의 분노가 너무 커져 그의 아내 샐리가 그를 떠난다고 통보한다.
분노와 성질이 누적된다는 굉장히 이색적인 아이디어로 설득력있게 쓰인 작품으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결말까지 깔끔해서 무척 마음에 드네요. 이 책의 단편들 중에서는 개인적으로 베스트로 꼽고 싶습니다.

장례식 :
장의사 모튼 실크라인 앞에 에스퍼라는 작자가 나타나 최고급 관을 주문한다...
지금 읽기에는 많이 낡은 소재이긴 하지만 무척 유머러스할 뿐더러 끝까지 유머의 끈을 놓지 않아 마음에 든 작품입니다. 역시 영상이 더 설득력 있을 것 같은 "환상특급"류의 작품 이었습니다.

어둠의 주술 :
의학박사 제닝스는 자신의 딸 패트리시아와 약혼한 피터가 광분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피터가 주술에 걸렸다고 이야기 한 덕분에 자신의 친구이자 주술의 권위자인 대학교수 하월박사를 불러 그를 치료하려 하는데...
주주 주술이라는 정체불명의 주술을 소재로 한 작품인데 주술에 대한 상상력과 그것을 묘사하는 내용은 리얼하고 생동감있지만 그다지 알맹이는 없는, 이색적인 소재에 많이 기댄 범작입니다. 괜히 길기만 기네요.

전화벨 소리 :
밀만은 새벽 3시에 걸려오는 전화때문에 미칠 지경. 그의 정신과 의사 팔머 박사의 조언대로 전화를 받아보지만 상대방은 정부 요원이니, 발명가니, 아버지니 하는 헛소리를 계속 해 대는데...
이 작품 역시 호러라고 보기엔 약간 썰렁하지만 나름 서늘한 맛이 있는 "기묘한 맛" 류의 작품으로 이색적이고 기발하면서도 서늘한 소재와 전개, 그리고 뒷통수를 치는 반전이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2019/09/20

일러바치는 심장 - 에드거 앨런 포 / 박미영 : 별점 3점

일러바치는 심장 - 6점
에드거 앨런 포 지음, 박미영 옮김/스피리투스

에드거 앨런 포단편집은 그동안 굉장히 많이 소개되어 왔습니다. 저 역시 "우울과 몽상" 이라는 완전판을 가지고 있고요. 하지만 장황한 문체, 그리고 비슷한 작품들이 많고 모든 작품이 전부 빼어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얇고 가벼운 책은 에드거 앨런 포 입문용으로 상당히 괜찮습니다. 수록 작품은 모두 아래의 11편인데 에드거 앨런 포의 진가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들로 엄선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 어셔가의 몰락
  • 일주일에 일요일 세 번
  • 붉은 죽음의 가면
  • 구덩이와 추
  • 검은 고양이
  • 일러바치는 심장
  • 도둑맞은 편지
  • 긴 상자
  • 타르 박사와 페더 교수의 치료법
  • 아몬틸라도 술통
  • 절름발이 개구리

물론 워낙 유명한 작가인 탓에 기존에 접했던 작품이 많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누가 편집을 하더라도 "어셔가의 몰락", "붉은 죽음의 가면", "검은 고양이"를 빼기는 힘들었을테니까요. 추리 소설 애호가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도둑맞은 편지" 역시 지나칠 정도로 잘 알려진 작품이고요.
그 외의 작품들도 포하면 바로 떠오를, 음산한 분위기의 친숙한 (고딕) 호러물이 대부분이기는 합니다. 솔직히 표제작 "일러바치는 심장"은 "검은 고양이"와 너무 비슷하면서도 의외성이나 반전의 묘미는 부족한 범작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보석같은 작품들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비교적 밝고 경쾌한 소품인 "일주일에 일요일 세 번"이 좋은 예입니다. 날짜 변경선을 따라 세계일주를 했을 때 요일이 바뀌는 설정을 잘 써먹은게 인상적입니다. 특히 "80일간의 세계일주"보다 30여년 앞서 발표되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만 합니다.
정신병자들의 세계를 그린 블랙 코미디 "타르 박사와 페더 교수의 치료법"도 눈에 띕니다. 독특한 치료법을 시행하고 있다는 정신병원을 견학하려는 평범한 방문객이 광인들의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며 겪는 대소동이 끔찍하면서도 웃기기 때문입니다. 스티븐 킹이라면 고어 파티가 펼쳐졌을텐데, 그래도 나름의 해피 엔딩이니 다행이긴 합니다.
호러물이기는 하지만 가슴아픈 비련의 사랑을 그린 드라마이기도 한 "긴 상자"도 아주 유명하다고 보기 어려운 괜찮은 작품이고요.
번역도 이전 번역본들과 비교해보지는 않았지만 깔끔합니다. 작가 특유의 장황한 문체를 잘 살리기도 했고요. 장황하다 못해 지나치게 길어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포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이니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추리 소설의 시조새격인 작품이라면 "모르그가의 살인"이 더 나았을테고, 다양한 작품을 싣자는 취지라면 모험물 성격을 띈 "황금충"도 수록해 주는게 더 나았겠지요. 그래도 이 정도면 '에드거 앨런 포'의 매력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휴대하면서 읽기에 부담없는 크기와 두께, 만원 초반이라는 비교적 상식적인 가격도 마음에 듭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20/05/02

악몽과 몽상 2 - 스티븐 킹 / 이은선 : 별점 2.5점

악몽과 몽상 2 - 6점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엘릭시르

어쩌다보니 1을 읽지않고 2부터 읽게 된 스티븐 킹중단편집입니다. 12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보너스격인 논픽션 "고개를 숙여"와 시 "브루클린의 팔월", 우화인 "거지와 다이아몬드"를 제외하면 수록작은 9편입니다.

그간 순문학적인 부분으로 흘러가던 중, 단편집들과 비교해볼 때, 좀 더 화끈한 작품이 많다는게 특징이에요. 과거의 스티븐 킹 스타일을 보여주는 작품이 많기 때문입니다. 거장과 과거에 대한 오마쥬 형식의 작품들도 신선했고요. 전통적인 크리쳐 호러인 "장마", 기발한 호러 액션 모험물인 "10" 등이 과거 킹의 스타일을 보여준다면, "다섯 번째 4분의 1"은 화끈한 마쵸 하드보일드 액션, "크라우치앤드"는 러브크래프트크툴루 신화 오마쥬, "의사가 해결한 사건"은 셜록 홈스 파스티쉬로 모두 나름 매력있는 작품들이었습니다. "클라이드 엄니의 마지막 사건"도 하드보일드 탐정물에 변주를 가한 독특함이 좋았고요. "10"을 제외하면 대체로 클리셰로 가득한 친숙한 이야기들이지만, 워낙에 필력이 원숙하고 묘사가 대단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누구나 만들 수 있는걸 특별하게 만드는, 이런게 바로 장인의 솜씨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할아버지의 충고가 전부인 "내 귀염둥이 조랑말", 일종의 타임 슬립물인 "죄송합니다, 맞는 번호입니다", 기묘한 가족 드라마 SF인 "메이플 스트리트의 그 집"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화끈함이 부족했던 탓입니다. 부록격인 논픽션과 시, 우화는 딱히 점수를 주기 애매하고요.

그래도 12편 중 6편, 제대로 된 수록작만 치면 9편 중 6편이 평균 이상의 재미를 선사하니 전반적으로 괜찮은 작품집에는 분명합니다. 아주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어도 이 정도면 본전치기는 하는 셈이지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장마"

시골 마을 윌로에서 여름을 보내기 위해 찾아온 젊은 부부에게 마을 사람들이 그날 하루만 다른 곳에서 보낼걸 요구했다. 이유는 그날이 칠 년에 한 번 찾아오는 '두꺼비 장마'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존과 앨리스 부부는 객기를 부려 윌로에서 머무는데, 오래지않아 비처럼 내리는 무시무시한 식인 두꺼비 떼와 조우하게 된다.

그야말로 스티븐 킹! 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크리쳐 호러물입니다. 무언가 꿍꿍이를 숨기고 있는 마을 사람들, 비가 곧 오기 직전인 축축한 공기에 대한 묘사로 가득찬 도입부에서, 식인 두꺼비가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져 부부를 습격하는 중, 후반부까지의 전개 모두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눈을 떼기 힘들 정도였어요. 정말로 두꺼비가 장마처럼 쏟아진다니, 상상도 못했습니다... 두꺼비들이 모두 다음날 햇볕과 함께 녹아서 사라지는 이유가 젊은 부부를 장마 직전인 7년에 한 번씩 인신공양한 덕분일 거라는 결말도 꽤 참신했어요. 보통 이런 크리쳐 호러물의 경우, 원인이 무엇인지, 해결책은 무엇인지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게 대부분인데 최소한의 설명 정도는 덧붙인 셈이니까요.

달릴 때 확실히 달려주는 킹의 맛이 잘 살아 있는, 읽는 재미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그나저나, 마을 사람들의 권유대로 부부가 장마날 다른 곳에서 하룻밤을 보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조금 궁금한데, 소설의 결말처럼 결국 벌어질 일은 벌어졌겠죠?

"내 귀염둥이 조랑말"

할아버지가 "어른이 되면, 이상하게 시간이 빨리 갈 때가 있다"는 충고를 손자에게 해 주는게 전부입니다. 시골 마을에 대한 묘사도 좋고, 시간이 빨리가는 상황 설명도 흥미롭지만, 한 편의 이야기로 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별다른 드라마도 없는데다가, 엄마는 알콜 중독에, 누나는 외모에 대한 자격지심으로 뭉쳐있다는 등의 불필요한 묘사가 많아서 읽기도 지루했고요.
아니나 다를까, 책 뒤 해설을 보니 손자 클라이브 배닝이 살인 청부업자가 된 이야기를 그린 오래전 '리처드 바크만' 필명으로 착수했던 동명 장편에서 뽑아낸 회상 장면이라는군요.

순문학적인 소양이 엿보이기는 하나, 구태여 찾아 읽어볼 필요는 없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죄송합니다, 맞는 번호입니다"

작가 빌 위더먼이 아내, 세 명의 자식과 함께 살고 있는 집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끔찍하고 처절한 목소리로 "제발 데려가..."는 말을 남기고 끊어진 전화를 받은 아내 케이티는, 그 목소리가 자기 가족이 확실하다고 느끼고 기숙사의 딸, 어머니 등의 안부를 확인했다. 그리고 동생이 연락이 되지 않자 남편과 함께 그 집으로 찾아가는데....

시나리오로 쓰여진 작품입니다. 덕분에 시각적인 상상과 여러가지 배경 음악들을 머릿 속에 떠올리기 좋았습니다. 전화를 걸어온게 다름아닌 '미래의 케이티' 였다는 진상도 그럴듯했고요. 목소리를 듣자마자 가족임을 확신했다는데 그게 바로 자기였다니! 이런거야말로 발상의 전환이 아닐까 싶네요. 시공을 초월하여 메시지를 나누는 작품은 많지만, 연인이나 가족이 아니라 본인 자신이었다는 작품은 처음 봤습니다.

그러나 "제발 데려가.."는 그날 바로 심장발작을 일으킨 빌 위더먼을 병원으로 데려가라는 뜻이었다는건 좀 허무합니다. 전화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면, 걸 때에 보다 명확하게 메시지를 남기는게 당연하잖아요? 빌 위더먼이 처제의 집을 찾아가며 느끼는 서스펜스는 나쁘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작가에게서 기대해 봄 직한 공포나 스릴, 서스펜스도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고요.

소품에 가까운 작품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이대로 영상화되었다는데, 영상물로 보는게 훨 낫지 싶네요.

"10"

출근 후 잠깐 담배를 피우러 나온 브랜든 피어슨은 '박쥐 인간'을 보고 충격에 휩싸였다. 비명을 지르려던 그를 진정시킨건 같은 회사 프로그래머 듀크였다. 듀크는 '박쥐 인간'은 흡연자들에게만 보인다며 브랜든을 '박쥐 인간'을 본 사람들 모임에 초대했다. 그러나 모임은 리더 델레이의 배신으로 박쥐 인간의 습격을 받게 되고, 브랜든은 모임에서 처음 만난 캐머런, 모이라와 함께 탈출하는데....

아, 세상에 이런 작품이 있다니! 출근 후 10시, 지정된 흡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끼리 일종의 유대 관계가 생길 수 있다는 건 저 역시 과거 흡연자라서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소수의 흡연자들만 그들을 지배하는 사악한 '박쥐 인간'을 꿰뚫어보는 능력을 갖게 된다는 생각은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죠. 금연 열풍, 담배 혐오가 널리 퍼지고 있는 현대 사회에 대한 작가의 역습이자 발버둥같은 작품이에요. 물론 흡연자들에게는 경전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테고요. 스티븐 킹이 흡연자일 거라는 확신이 듭니다.

그러나 좋았던 아이디어에 비하면 전개는 그냥 그렇습니다. 일단 박쥐 인간과의 혈투가 시시합니다. 끔찍하게 생겼을 뿐, 별다른 능력이 있지도 않고 물리적 공격에 바로 격퇴되기 때문입니다. 어찌어찌해서 겨우 오마하로 탈출한 뒤, 브랜든 일행이 다시 '10시의 사람들'을 규합하여 박쥐 처단에 나선다는 한 페이지짜리 후일담으로 끝낼 이야기도 아니었고요. 서둘러 대충 끝낸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좀 아쉬웠어요. 아울러 '10시의 사람들'은 그냥 흡연자가 아니라 '담배를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라는 디테일도 사족이었다 생각되네요.

하지만 그 어떤 단점에도 워낙에 아이디어가 압도적이라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이런 생각과 발상은 정말이지 본받고 싶네요. 아직도 담배를 피우는 제 주변 흡연자들에게 권해주고 싶습니다.

"크라우치 엔드"

남편이 실종되었다며 미국인 로니 프리먼이 경찰에 신고했다. 그녀는 극심한 공포에 사로잡힌 채, 경찰 베터와 로버트 파넘 순경에게 부부가 방문했던 런던 근교 '크라우치엔드'에서 겪었던 기묘한 경험을 상세하게 이야기하는데...

크라우치엔드가 크툴루를 위한 '크라우치엔드 토운'으로 이어지고, 그곳에서 부부가 크툴루를 만난다는 이야기입니다. 러브크래프트를 위한 오마쥬로 러브크래프트와 크툴루 신화의 팬이라면 제법 즐길만한 작품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특별한 드라마는 없습니다. 부부가 겪는 공포스러운 상황만 이어질 뿐 크라우치엔드가 왜 크라우치엔드 토운으로 이어지는지, 어떻게 그 거리로 빠져들어 희생되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고요.물론 이런게 러브크래프트 작품이라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한 마디로 요악하자면, "지나치게 잘 쓴 팬픽"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메이플 스트리트의 그 집"

장남 트렌트, 여동생 리사와 로리, 막내 브라이언은 의붓 아버지 루와 함께 사는 집에서 기묘한 금속 생명체가 자라난다는걸 알게 되었다. 트렌트는 엄마가 루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로 기절까지 하자, 금속 생명체를 이용하여 루를 없앨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기는데...

집 안에서 기묘한 금속 생명체가 자라나고, 이윽고 그 생명체가 만든 시한장치에 의해 지하실에서 알 수 없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된걸 트렌트가 알아채는 부분까지는 꽤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카운트다운은 '미국에 사는 남자아이라면, 시계가 0을 가리키면 폭발하든지, 이륙하든지 둘 중 하나라는걸 알고 있다'는 설정에 따른 결말은 좀 안이했습니다. 아이의 생각 그대로, 단지 카운트다운에 의해 나중에 '이륙해 버린다'는건 너무 단순한 발상이었으니까요. 또 이 기계 생명체가 무엇인지, 왜 성장한 끝에 이륙했는지 등 설명이 전무해서 답답했습니다. 어차피 가상의 이야기라 하더라도, 설득력을 조금이나마 보충해 줄 만한 최소한의 설명은 필요했는데 말이지요.
그리고 아무리 엄마가 힘들었다 하더라도, 새 아빠에 집까지 없어져버리면 엄마가 네 아이를 데리고 잘 살 수 있었을까? 라고 질문하면 그리 희망적인 답을 할 수는 없을거에요. 실제로 엄마가 루를 엄청나게 사랑했을 수도 있고요. 한마디로 무책임한 결말입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잔인함은 전혀 찾아보기 힘든, 가족 드라마스러운 내용은 이색적이나 아이디어를 전개와 결말이 잘 받쳐주지 못했습니다.

"다섯 번째 4분의 1"

바니의 친구 제리는, 키넌에 의해 죽어가는 바니에게 들은 정보로 키넌과 병장을 습격했다. 이유는 바니에 대한 복수와 그들 4명이 나눠가진, 현금이 묻힌 4장의 지도 조각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부제는 "레이먼드 챈들러가 "4"을 쓴다면?" 인데, 내용도 그에 걸맞는 충실한 하드보일드 액션물입니다. 보물 지도 때문에 사람들을 서로 죽이는 고전적인 설정에 더해, 4인 중 마지막인 재거와 벌이는 죽음의 사투가 인상적이에요.

'다섯 번째 4분의 1'이라는 제목은 이미 죽은 바니와 주인공 제리, 그리고 키넌과 병장, 재거라는 등장인물 5명을 의미합니다. 등장인물은 5명 뿐이고 (심지어 한 명은 이미 죽었고), 장소도 키넌의 집과 병장의 집이 전부이며 분량도 굉장히 짧지만 화끈한 액션이 휘몰아쳐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레이먼드 챈들러라기 보다는 미키 스필레인에 가깝지 않나 싶더군요. 그만큼 파괴적이고 화끈했거든요.

한마디로 고전적이고 화끈한 마초 하드보일드 액션물로는 최고에요. 달릴 때 확실히 달려준, 그런 작품인 셈이죠. 딱히 드라마가 돋보이지는 않지만, 그런건 애초에 불필요해요. "터미네이터"에게서 내면 연기를 기대할 필요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의사가 해결한 사건"

홈스에게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찾아왔다. 헐 경이 밀실에서 살해되었는데, 방이 완벽한 밀실이었기 때문이었다. 헐 경은 가족들에게 가혹하게 대했던 터라, 아내와 아들들 모두 동기가 있던 상태였는데, 함께 방을 조사하던 왓슨이 사건의 진상을 꿰뚫는다.

와, 이제는 이런 작품까지 등장하네요. 스티븐 킹의 셜록 홈스 파스티쉬이자, 트릭이 사용된 본격물을 쓰다니! 정말이지 상상도 못했습니다. 작품도 놀라운 점이 많습니다. 홈스가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어서 제대로 현장 검증을 하지 못할 때, 왓슨이 진상을 꿰뚫고 추리 쇼를 벌이는 탐정 역을 맡는다는 과감한 설정, 피해자인 헐 경이 가족의 마음을 가지고 논 인간 말종이라 진범과 진상 모두를 알았지만 홈스, 왓슨, 레스트레이드 모두 진상을 덮고 단순 강도 사건으로 위장한다는 결말까지 모두 특이하거든요.

밀실 트릭의 정체는 화가인 둘째 아들 조리 헐이 엄청난 하이퍼 리얼리즘 기법으로 그려낸 배경 그림을 테이블 다리 사이에 설치하고, 그 뒤에 숨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특수 효과나 마술에서 쓰임직한 방법이죠. 주로 거울을 쓰는데, 하이퍼 리얼리즘, 극사실주의라는 미술 기법을 활용했다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개인적으로 비슷한 트릭을 예전 "경성탐정록" 창작 시절 써 먹어 볼까 고민했던 적이 있어서 그런지 무척 반갑기도 했고요.
또 이 트릭 하나 뿐만이 아니라, 헐 경은 통풍으로 걸을 때 앞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조리가 아버지를 지나쳐 서재로 먼저 들어갈 수 있었다던가, 조리가 방에 들어가 있던건 모든 가족이 알고 있어서 그들 모두가 공범이라는 등 추리적으로 볼 만한 부분이 많다는게 놀라왔어요.

물론 본격물 치고는 허술한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헐의 아내와 아들들이 모두 공모해서 헐을 죽일 생각이었다면 구태여 이런 복잡한 장치를 설치해가며 밀실을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요. 다 모여있는 응접실에서 범행을 저지른 뒤, 함께 현장을 조작하는게 더 현실적이잖아요? 하인 스탠리의 증언? 정 필요하면 스탠리까지 죽이면 됐을테고요...
트릭도 비록 헐 경이 비명을 질렀다는 변수가 있다손 치더라도, 애초에 너무 거창한 장치가 필요한 트릭이었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그림자까지 가짜로 만들어야 해서 공이 지나치게 많이 들고, 날씨에 따른 변수도 있었다는 점에서도 영 별로죠.
아울러 파스티쉬인데 캐릭터에 대해 지나치게 창조적인 해석이 들어간 것도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부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불호 쪽입니다. 왓슨의 성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게 특히나 이질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여러모로 독특하며, 제가 읽은 최초의 스티븐 킹 본격물이자 셜록 홈스 파스티쉬라는 가치는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셜록 홈스 팬이시라면 놓치기 마시길 바랍니다.

"클라이드 엄니의 마지막 사건"

유능한 사립탐정 클라이드 엄니는 어느날, 자신을 둘러싼 모든게 이상해졌다는걸 깨닫는다. 매일 시끄럽게 만드는 이웃 데믹 부부가 조용하고, 매일 아침 신문을 사는 신문팔이 피오리아가 복권에 담청되고, 단골인 식당 블론디스는 문을 닫고, 사무실이 있는 건물 엘리베이터 안내원 버넌이 은퇴한다고 하는 등 익숙치 않은 일들이 연이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클라이드 엄니 앞에 새뮤얼 D.랜드리라는 인물이 나타나, 그를 둘러싼 모든건 모두 소설 속 설정이며 자신이 그 모든걸 창조한 창조주, 작가라고 이야기하는데...

소설이나 영화 속 캐릭터와 현실의 작가, 또는 현실 세계가 만나서 사건이 벌어지는 작품은 많습니다. 특정 컨텐츠로 현실 인물이 빠져들어 벌이는 모험담이야 쌔고 쌨고, 현실과 픽션이 결합하여 벌어지는 일종의 패러독스를 다룬 작품도 있지요. 오래전 "라스트 액션 히어로"처럼요.

이 작품은 구태여 이야기하자면 후자 쪽에 가까운데, 특징이라면 픽션으로 빠져드는 현실 속 인물이 주인공이 아니라, 픽션 속 캐릭터의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자신의 세계를 멋대로 비집고 들어와, 그 세계를 엉망으로 만들고 심지어 나 자신을 지워버리는 멋대로인 창조주의 희생양이라는 포지션이에요. 마른 하늘에 날벼락 제대로 맞는 캐릭터인데, 이런 비현실적으로 암담한 상황 묘사야 말로 킹의 특기 중 하나이지요.

또 클라이드 엄니는 더쉴 해밋 등 정통파 하드보일드 작가의 영향을 짙게 받은 캐릭터이기 때문에 작 중에서 상황에 휘둘리면서도 추리하거나, 또는 상황 반전을 위해 노력하는 여러가지 행동들이 그야말로 클리셰대로라는 것도 재미있던 점입니다. 상대방에게 이야기를 계속 하도록 유도하는게 대표적이에요. 당연히 실패하지만요.

결국 새뮤얼 랜드리에게 자신의 세계를 빼앗긴 클라이드 엄니가 현실의 새뮤얼 랜드리가 된다는 결말도 독특합니다. 일종의 바꿔치기가 일어난건데, 클라이드 엄니는 하드보일드 탐정답게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소설을 창작하여 자신의 세계를 되찾을 결심을 한다는 마지막 장면도 인상적이에요. 그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죽어도 포기하지 않는게 탐정이니까요. 과연 클라이드 엄니가 새뮤얼 랜드리에 의해 붕괴한 자신의 소설 속 세계를 재 구성하여 되 찾을 수 있을지,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뻔한 설정이지만 약간의 변화로 새로움을 안겨다 준다는 점, 특별한 액션 없이 둘의 대화가 거의 대부분이지만, 긴장감도 넘친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좋은 작품이었어요. 별점은 3점입니다.

"고개를 숙여"

스티븐 킹의 아들 오언 킹이 뛰는 리틀 야구팀 뱅고어 웨스트가 지구 우승을 차지한 시즌에 대해 기록한 논픽션입니다. 리틀 야구이기는 하지만 마지막 회에 역전 홈런을 쏘아 올리는 등 상당히 드라마틱한 경기 묘사가 이어져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하지만, 별점을 주기에는 좀 애매한 결과물이에요. 제가 원한건 스티븐 킹의 논픽션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이 작품을 비롯하여 나머지 부록들에 대한 별점은 따로 없습니다. 참고하시길.

2022/01/28

노조키메 - 미쓰다 신조 / 현정수 : 별점 3점

노조키메 - 6점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북로드

아래 리뷰에는 괴이 현상의 진상 등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괴담을 수집하던 미쓰다 신조는 '노조키메'라는 괴이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 후, 우연히 민속학자 아이자와 소이치가 오래전 겪었던 경험을 기록했던 노트를 입수했다. 그리고 노트 속 내용이 이미 수집해서 "엿보는 저택의 괴이"라고 이름 붙였던 괴담과 시간은 다르지만, 같은 장소에 일어났던 일이라는걸 깨달았다.

두 편의 이야기를 묶어 "종말 저택의 흉사"라고 이름 붙이고 발표한 후, 미쓰다 신조는 괴이 현상에 나름의 추리를 덧붙이는데....

미쓰다 신조호러 추리물입니다. 

미쓰다 신조가 입수한 두 개의 괴담을 엮어 선보이고, 괴담에 대한 진상을 추리하는 결말로 이어지는 구성은 "괴담의 테이프"와 유사합니다.

첫 번째 괴담인 "엿보는 저택의 괴이"는 이야기를 전해 준 시게루의 대학생 시절 체험담입니다. 당시 시게루는 사이코, 카즈요, 유타로와 함께 여름 방학 동안 산골 마을 별장 관리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관리인이었던 미노베는 절대 가면 안되는 산책길이 있고, 순례자가 나타나면 자기에게 꼭 알리라는 당부와 경고를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순례자 모녀를 만나서 산길을 걸었다는 카즈요의 제안으로 네 명은 가면 안되는 길을 걷다가 폐허가 된 마을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무언가에 씌워졌고요.

미쓰다 신조 특유의 집요한 묘사가 돋보이는 폐허가 된 마을 묘사, 그리고 이 곳에서 '괴이'에 씌워진 뒤 모든 틈새에서 시선을 느끼게 되는 등장 인물들에 대한 묘사는 대단합니다. 방 안에 처박혀 모든 틈새를 막고, 눈까지 막아버린 카즈요도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시게루가 귀가한 뒤, 찬장 안에서 시선을 느끼고 그 문을 열자 비좁은 찬장 안에 몸을 웅크려 시게루를 응시하고 있던 이와노보리 카즈요의 모습을 봤다는 장면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기억에 남네요. '무언가 쳐다보는 느낌'을 이만큼 글로 잘 표현한 작품은 또 없을 것 같아요.

그러나 유타로와 사이코는 지나치게 씌워졌던 탓에 죽고, 영험한 기도사의 기도로 시게루와 카즈요는 살아남았다는 결말은 설명이 부족하고 급작스러웠습니다. 물론 괴담은 이렇게 설명이 부족한게 더 현실적이기는 하겠지요. 미쓰다 신조 스스로가 작 중에서 괴담과 기담에 완결을 원하는건 뭘 모르는 행동이며, 오히려 이야기 도중에서 뚝 하고 끊어지는게 더 무섭다고도 하니까요. 카즈요가 시게루를 몰래 엿보는 버릇이 생겨 둘의 관계가 끝장났다는 후일담도 오싹하기는 했던만큼, 이 정도면 괜찮은 호러, 괴담 단편으로는 충분했던 수작이었다 생각됩니다.

두 번째 이야기 "종말 저택의 흉사"는 전편 괴담의 프리퀄입니다. 이 작품에서 폐허가 된 마을에 대한 이야기와 '엿보는 괴이'가 무엇인지에 대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민속학에 관심이 많았던 학생 아이자와 소이치가 비명횡사해 버린 친우 사야오토시 소이치의 고향 마을 토노무라에 명복을 빈다는 핑계로 방문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사야오토시 가문은 마을에서 배척받는 존재였고, 그 이유는 조상 중 한 명이 순례자 모녀를 참살했던 뒤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문은 저주를 풀기 위해, 원령에 씌워지는 '시즈메'라는 역할을 하는 소녀를 데려오기에 이르렀지요. 그러나 시즈메들도 역할을 하다가 미쳐버려 여러 사건을 일으켰고, 작금에 이르러서는 그 역할을 할 소녀가 없어서 이미 4년 전에 명맥이 끊겼습니다.
마침 아이자와 소이치가 도착했을 때 사야오토시 가문은 할머니 코노에의 죽음으로 장례 절차를 진행 중이었습니다. 이를 엿본 소이치 앞에, 사야오토시 가족을 엿보는 꼬마 여자 아이가 소이치에게만 보이는 등 여러가지 괴이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야오토시 가문 당주 기이치, 아내 노리코, 조린 주지, 그리고 그 외 사야오토시 일족 모두가 차례로 죽고 말았습니다. 소이치는 홀로 살아남아 원래 참살당했던 모녀 공양 목적의 순령당 옆에 지어진, 비밀스러운 사당 문을 열어본 뒤 사건의 진상을 깨닫고 도망치는데 성공한다는 걸로 마무리됩니다.

그런데 재미, 공포보다는 지루함을 더 많이 느낀 작품입니다. 전편 괴담은 분량도 짧고, 일행의 모험(?)과 공포 체험이 1회성에 그치고 있지만, 이 작품에서는 아이자와 소이치가 토노무라 마을에서 겪는 괴이 체험이 계속 1인칭 시점으로 반복되는 탓에 금새 식상해질 수 밖에 없었거든요. 괴이 체험도 실체가 있는 공포라기 보다는 착각과 기분 탓에 불과한게 많아서 섬찟함을 전해주기는 부족했어요. "마을 사람들 모두가 자기를 쏘아보는 시선을 느꼈다"는건, 솔직히 이런 시골 마을에 외지인이 찾아가면 누구나 겪을 당연한 경험이잖아요? 

묘사도 너무 장황합니다. 소이치가 직접 '노트'에 적었다는 일종의 수기가 이렇게 길고 상세한 묘사로 쓰여졌을리 없다는 점에서는 현실성도 떨어지고요. 더 큰 문제는, 아이자와 소이치가 지나칠 정도로 민폐를 끼치고 다녀서 영 호감을 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지 말라고 하는 것만 골라서 하고 다니는 느낌이 들 정도로 사고뭉치에요. 이를 호기심, 용기라고 포장하는건 불가능합니다. 그가 겪는 공포 체험은 모두 본인 탓으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았고, 그만큼 캐릭터가 비호감이라 몰입하기도 힘들었어요. 쉽게 이야기하면 대학생 호러물에서 사건을 불러일으키는 철부지 대학생이 주인공인 작품이었달까요? 문제는 대학생 호러물에서는 이 철부지들은 초반에 끔살당해 나름 카타르시스를 전해주는 반면, 이 작품에서는 끝까지 혼자 살아남는다는 점이겠지요....

하지만 이런 고구마스러운 답답함은 다행히 마지막 종장에서 해결됩니다. 미쓰다 신조가 부조리한 존재인 '노조키메'에 대해 논리적으로 해석한, 나름대로 시원한 동치미스러운 결과를 내어 놓는 덕분입니다. 이 결과를 내 놓는 과정은 한 편의 추리물과 다를게 없고, 심지어 그가 수기에서 숨겨져 있는, 알아내야 하는 항목 8개를 목록으로 소개하는 부분은 '독자에의 도전'과 유사합니다! (목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아이자와와 대화 중 사야오토시가 '어떤 사람이 조린 주지라고 이야기하는걸 주저한 이유
  2. 조린 주지에게 환대받으면서도 아이자와는 그가 자기를 쫓아내고 싶어한다고 느꼈던 이유
  3. 사야오토시 가에 시즈메가 없는 상태가 계속되면 노조키메가 나타나서 앙화가 내린다는걸 알면서도 4년간 방치한 이유
  4. 열 살 무렵의 사야오토시 소이치와 자기 아이 쇼이치를 겹쳐보고 토키코가 어두운 얼굴을 한 이유
  5. 순령당에 신찬을 바치는 역할이 노리코가 아니라 토키코에게 인계된 이유
  6. 토키코가 맡은 일을 할 때 무섭고 괴롭다고 한 이유
  7. 노조키메가 된 순례자 모녀 공양 목적으로 세워진게 순령당인데, 그렇다면 순령당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그 옆에 사당이 새로 지어진 이유와 사당에 모셔진게 무엇인지?
  8. 사야오토시가의 종말 저택이 지사이 저택이라고도 불린 이유

독자도 똑같은 수기를 읽었으니, 정보 제공도 공정하다는 점에서 완벽한 본격 추리물인 셈이지요. 괴담, 호러와 본격 추리의 조합이 완벽하게 이루어진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쓰다 신조의 추리는, 사야오토시 가에서는 시즈메 대신에 '지사이'를 이용했다는 겁니다. 4년 전 순례자 모녀가 찾아왔을 때 딸은 시즈메 역할에 부적합했지만, 주술에 정통했던 조린 주지가 딸을 '지사이', 즉 액맞이 역할로 삼은 것이지요. 딸은 병약한 모친을 순령당에서 모시는 조건으로 이를 수락하고, 순령당 옆에 새로 세운 사당에서 살았습니다. 이 주술을 강화하기 위해 조린 주지는 의식주를 챙겨주는 것 외에, 소녀의 존재를 전혀 인정하지 않도록 했었고요.
그러나 소녀의 어머니가 죽고 말자 사야오토시가는 어머니가 살아있는 척 꾸몄습니다. 처음에는 연기에 능했던 코노에가 어머니 역할을 맡았고, 코노에가 증손자의 사고사로 몸져 누운 뒤로는 어머니와 나이가 비슷한 토키코가 그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 사실을 알아낸 소녀가 사야오토시 가문을 멸족시켰고, 손님이었던 아이자와만 살려준게 진상이었습니다. 

이 추리는 모두 합리적이며, 덕분에 여러가지 괴현상들도 모두 설명 가능해집니다. 소녀가 아이자와 눈에만 보인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모르는 척 했기 때문입니다. 코노에 화장 시 시체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되어 따로 움직였던건, 아래 쪽에 죽은 순례자 모친을 함께 화장했기 때문이고요. 사고가 일어날 수 없었던 벌목 현장에서 기이치가 사고로 죽었던건, 소녀가 마을 지리와 상황에 정통했던 덕분이었습니다. 그러고보면 표지가 스포일러인 셈이군요.... 

아울러 코노에 할머니가 과거 극단 출신으로 연기에 능했다는 등의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았던 단서들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등, 한 편의 잘 짜인 추리물로 보아도 손색없습니다. 아이자와의 부인이 이 소녀였을 거라는 여운을 남기는 것도 아주 좋았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입니다. 앞의 이야기는 괴담으로는 충분한 완성도를 보여주었고, 두 번째 이야기는 비록 지루했지만 종장에서의 놀라운 추리가 단점을 상쇄해 줍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기대가 됩니다.

2016/05/14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 - 오노 후유미 / 정경진 : 별점 2.5점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 - 6점
오노 후유미 지음, 정경진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오노 후유미일상계 호러 단편집으로 모두 6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모두 평범한 사람이 오래된 집으로 이사온 후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와 마주치는데, 이것을 '영선 가루카야'라는 상호의 수리점 목수 오바나가 약간의 수리를 통해 해결해 준다는 동일한 구조를 갖추고 있고요. 

일상계 호러물이라는 표현이 적합하다 싶을 정도로 일반인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것으로 담담하게 묘사한 장면들이 인상적입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전문가의 일상계 퇴마(?)물이라는 점에서는 "충사"와 비슷한 느낌도 드네요. 전체적인 분위기도 유사하고요. 대체로 그곳에 있는 존재들을 인정하고 어르고 달래는 수준이라는 해결 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일상계'인 덕분에 독자를 몰입시킬만한 요소는 확실히 부족합니다. 지나치게 담담하거든요. 흥행(?)을 위해서라면 충격적인 설정이나 이야기를 한두편 선보이는게 좋았을텐데 말이죠.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호러 매니아 기준으로는 맹숭맹숭한 순정물에 불과한 작품들로 제 기대에 미치지는 못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군요. 호러 및 괴담물 초보자에게 권해드립니다.

이야기별 간략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뒤뜰에서"

쇼코는 고모에게서 물려받은 오래된 주택으로 이사했다. 그런데 서랍장으로 막혀있는 미닫이 방의 문이 스스로 열리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랍장을 치우고 정리하던 날 밤, 쇼코는 여자 형체의 무언가가 그곳을 통해 기어나오려는 것을 목격하는데...

앞서 말씀드린 이야기의 기본 구조를 잘 보여줍니다. 유령의 첫 등장, 고모가 예전에 미닫이를 아예 막은 적도 있지만 긁는 소리가 집안 전체에 울려 견디지 못했다라는 일화 등 섬찟한 부분도 제법 있고요. 오바나가 등장한 후 설명하는 진상 - 유령은 위협을 가하려는 것이 아니라 목이 말라서 그런 것이다 - 이 앞부분의 거리 묘사 및 방의 과거 수리 이력과 엮여 드러나는 전개도 깔끔합니다.

한마디로 시리즈의 첫 시작으로는 차고 넘치는 작품. 수록작 중 가장 무서운 작품이기도 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천장 위에"

오래된 무가 저택에 사는 고지는 어머니가 천장 위에 누군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자 치매를 의심했다. 천장 수리 후 아이들에게도 무언가가 나타나자, 고지는 천장을 수리한 목수 구마다에게 연락했다. 구마다는 '영선 가루카야'의 오바나와 함께 찾아오는데...

합리적으로 설명되는, 깔끔한 맛이 부족합니다. 천장에 있는 존재가 무엇인지, 왜 나타나는지 제대로 설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말도 설명 없이 옛날부터 있던 일종의 봉인을 원상복구 시키는게 전부고요. 뭐 이게 현실적인 것일 수는 있지만 독자로서는 많이 아쉽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방울 소리"

조모의 집으로 이사온 유코는 비오는 날마다 정체불명의 상복입은 여자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몇년간, 그 거리의 집들에 정체모를 상복입은 여자가 찾아오면 집안 사람 중 누군가 죽는 일이 연이어 벌어졌다는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 상복입은 여자의 이동 경로의 마지막은 유코의 집이었다!

작품들 중 유일하게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죽이는) 무언가가 나옵니다. 이대로라면 유코가 곧 죽을 수 밖에 없는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지요. 그런대 전개는 담담해서 묘한 맛이 느껴집니다.

허나 이러한 묘한 괴리감이 작품에 어울리지는 않습니다. 가장 무서울 수 있었던 작품인데, 소재를 허투루 낭비한 느낌이에요. 작가가 원한 것이 이러한 담담함이라면 그건 그것대로 의미가 있겠지만, 곧 죽을 예정인 유코마저 담담하게 묘사한건 실수로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무언가의 정체는 끝까지 불분명해서 전작과 마찬가지로 개운한 맛도 부족하고요.

그나마 해결책은 마음에 듭니다. 맞서 싸우는게 아니라 그냥 순응하는 것으로 '그것'이 그냥 지나갈 수 있도록 우회로를 내어준다는건데, 작품 분위기와 잘 어울릴 뿐 아니라 현실적이라는게 좋았어요. 오래된 거리가 자동차가 들어오면서 문의 위치가 바뀐 탓에 문제가 일어난 것이라는 설정도 나쁘지 않았고요.

이렇듯 단점, 장점이 명확한데, 그래도 평작 수준은 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이형의 사람"

할아버지의 가업을 잇기 위한 아버지를 따라 시골로 이사온 마나카는 언제부턴가 집 안 어딘가의 공간에서 노인의 유령을 만나기 시작했다...

마나카가 할아버지 유령을 만나는 장면의 묘사들은 섬찟한데 그 뿐입니다  나머지는 딱히 마음에 들지 않네요. 집안에서 학대받았다는 할아버지의 유령의 정체도 진부했어요. 오바나도 제대로 등장하지 않아서 이게 같은 시리즈인가 싶기까지 했습니다. 해결책 역시 구마다와 오바나가 집을 수리한  나타나지 않더라... 가 전부이고요.

이래저래 부족함만 많이 느껴진 작품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만조의 우물"

마리코는 결혼과 함께 조모가 살던 집을 물려받아 살게 되었다. 남편 가즈시가 취미로 정원 우물을 복구한 뒤, 정원수와 식물이 모두 죽어나가고 집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들어오는데...

정원의 식물들이 죽은 이유가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것이 특이했던 작품입니다. 이유는 우물물이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라서 물을 준 식물들이 죽었다는 겁니다. 해결 방법도 '우물을 메워야 한다'는 단순명쾌하며 현실적이라서 다른 작품들과 확실히 다른 느낌이에요.

허나 집 안에 들어온 것이 무엇인지 등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등 단점도 여전합니다. 그냥저냥한 평작 수준이랄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우리 밖"

이혼 후 딸과 함께 친정으로 돌아온 마미는 친정 식구에게 쫓겨나다시피 오래된 고택을 빌려 살게된다. 그런데 주차장에서 아이의 유령을 보게 되는데...

호러물의 기본 공식 중 하나인 '이형 존재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우는 작품.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이 전부터 있었으며, 유령 때문에 이전 거주자가 해를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결혼에 실패하고 돌아온 꼴보기 싫은 딸자식을 치워버리기 위해 싸다는 이유만으로 유령 집에 살게 만든 친정 식구들의 행동이 그것입니다. 시골이라 더 이웃 눈치를 본다는 설정도 살짝 들어가 있기는 한데 여튼, 어딜가나 참 사람이 무섭다 싶더군요.

여기에 더해 아이가 등장하는 장면이 호러영화 스타일로 묘사된 것이 이채로왔습니다. 자동차 후방 카메라 등을 활용한 장면들이 그러한데 글로만 읽어도 섬찟한 맛이 있었어요. 차가 없으면 생활이 어려운 시골 마을의 환경과 유령을 엮은 설정도 마음에 들었고요,

딱 한가지, 학대로 아이가 죽었다라는 뻔하디 뻔한 설정만 뺀다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대미를 장식하기에 부족함은 없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19/03/10

보기왕이 온다 - 사와무라 이치 / 이선희 : 별점 2.5점

보기왕이 온다 - 6점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arte(아르테)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부
다하라는 어린 시절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와 집을 볼 때 정체불명의 회색 덩어리 그림자를 응대했다. '치가쓰리'라는 기묘한 말을 하며 집에 들어오려는 '그것'을 할아버지가 모처럼 맑은 정신으로 소리쳐 퇴치했다. 그리고 몇 년 뒤, 할머니로부터 사람을 끌고가는 요괴 '보기왕'을 집에 들이거나 대꾸를 하면 안된다고 들었다.
세월이 흘러 직장을 얻고 결혼한 다하라에게 수수께끼의 전화가 걸려왔고, 수상쩍은 인물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회사 후배 다카니시가 큰 상처를 입고 아내와 딸 치사마저 위험에 처하자 다하라는 고교 동창인 민속학 교수 가라쿠사를 통해 오컬트 작가 노자키와 퇴마사 마코토를 만났다. 그러나 퇴마사 마코토가 알려준 대책이라고는 "부인과 아이에게 다정하게 대해주라'는게 전부였다. 다행히 노자키와 마코토는 다하라의 집에 정기적으로 찾아와 아내 가나와 아이에게 힘이 되어 주었고, 다하라도 그들에게 마음을 열지만 '보기왕'이 집에 찾아와 부적을 찢고 난동을 부렸다. 겨우 침입을 저지한 마코토는 자신의 힘이 미력하다며 언니를 불러냈다. 언니는 당장은 시간이 없다며 지인들을 부르나 고명한 스님을 비롯한 지인들 모두 겁을 먹고 거절했고 딱 한 명, 부탁을 수락한 영매사 세쓰코마저 한 팔을 잃는 큰 부상을 입고 죽고 말았다. 다하라는 마코토의 언니 도움으로 결계를 치려 하지만 그것 역시 언니를 위장한 '그것'의 음모였다. 결국 '그것'에게 다하라는 죽었다.

2부
아내 가나는 다하라의 죽음이 기뻤다. 다하라는 자신만의 가치관에 따라 아내와 딸을 심리적으로 학대했기 때문이었다. 노자키와 마코토의 도움으로 가나와 치사 모녀는 어느정도 안정을 찾아가나 다시 '그것'의 습격이 시작되었다. 마코토가 목숨을 걸고 저지하지만 실패했고, 도망치던 모녀를 덥친 '그것'은 치사와 함께 사라졌다. 그 뒤 미쳐버린 가나는 병원에서 깨어났다.

3부
가나와 치사를 습격한 '그것'으로부터 치사를 지키다가 중상을 입은 마코토를 병원으로 옮긴 노자키는 드디어 마코토의 언니 고토코를 만났다. 그녀는 자신이 직접 치사를 구하겠다며 중상을 입은 마코토에게 휴식을, 노자키에게 협조를 부탁했다. 다하라의 본가에 찾아간 둘은 다하라 가족의 숨겨진 끔찍한 과거를 알아냈다. 오래전 할아버지 긴지의 가혹한 폭행으로 다하라의 외삼촌, 외숙모가 죽었고, '그것'은 할머니가 복수와 원망으로 할아버지를 저주했기 때문에 찾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둘은 치사를 구하고 보기왕을 퇴치하기 위해 최후의 결전에 나선다...

제22회 일본 호러소설대상 대상 수상작으로 작가의 데뷰작입니다. '보기왕' 이라 불리우는 크리쳐와 맞서 싸운다는 정통파 크리처 호러물이죠. 그렇지만 이유없이 괴물이 튀어나와 사람을 도륙하는 흔해빠진 고어 크리처물과는 다릅니다. '보기왕' 이라는 크리처의 정체와 그것이 나타난 이유를 설득력있게 포장하고 있다는 차이점 덕분입니다.

'보기왕'이라는 이름의 유래부터 그러합니다. 일찍이 일본에 진출했던 유럽인들에게서 비롯된 명칭이라고 설명하고 있거든요. "부기맨"이 변형된 말이라는데 그럴듯하죠? 또 노자키가 "기이잡설" 등의 이런저런 자료와 고문헌을 뒤지다가 밝혀낸 정체도 꽤 괜찮습니다. 오래전, 먹고 살기 위해서 K시에서는 산에 사는 요괴에게 노인과 아이를 일부러 바쳤다는게 그 유래가 된 것입니다! 실제로 요괴가 있건 없건 간에 사람을 납치하는 요괴와 입을 줄이기 위한 마을의 이해관계가 일치했다는 이야기로 굉장히 설득력이 높아요. '고려장' 이야기와 별 다를 것도 없으니까요. 이렇게 크리쳐물인데도 일본 역사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은 "요괴헌터"가 떠오릅니다. 대단한 이론적 배경이 있는건 아니지만 몇몇 디테일 들이 괜찮다는 점도 비슷하네요.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저주하여 마도부를 통해 불러내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섬찟합니다. 할아버지 긴지의 가혹함과 외삼촌의 죽음 등 앞부분에서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던 복선을 통해 이를 뒷받침하는 전개도 일품이고요. 데뷰작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의 솜씨입니다.
이러한 전개는 1, 2, 3부로 나뉜 구성에서도 돋보입니다. 1부는 다하라, 2부는 가나, 3부는 노자키가 주인공인데 각각의 이야기의 구멍을 메워나가며 새 주인공의 시각에서 새로운 사실을 드러내기 때문에 독자를 몰입하게 만듭니다. 1부에서 다하라가 굉장히 가족에게 지극 정성을 다하는 아빠로 '괴물, 혼령은 대부분 빈틈으로 들어온다. 이는 가족 간에 생기는 마음의 빈틈인 '골'을 의미한다.'는게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2부의 가나 시점 묘사를 통해 다하라가 사실은 나쁜 아빠였다는게 밝혀지는 과정이 좋은 예입니다.
'알고보니 나쁜 놈' 인 다하라와 소극적으로 상황에 끌려만 다니는 가나가 아닌 진 주인공 노자키와 마코토, 고토코가 전면으로 부상하여 힘을 합쳐 괴물을 퇴치하는 왕도적인 결말도 나쁘지 않아요. 정의롭고 착한 주인공이 악을 물리친다는 이야기는 너무 전형적일 수 있지만 이 작품에는 정말 딱 어울립니다. J호러 특유의 찝찝한 결말이었다면 더 마음에 들지 않았을거에요.

크리처물 다운 섬찟한 묘사도 볼거입니다. 일종의 영적 덩어리로 입과 이빨만 강조되는 보기왕에 대한 묘사는 별 거 없지만 '그것'이 고토코를 가장하여 다하라를 농락하는 장면이라던가 '그것'은 뒷문으로부터 들어오는게 진짜 공포라는 앞 부분의 복선이 이어져서, 가나가 화장실 입구에 결계를 치지만 뒷문이 있다며 변기로부터 '그것'이 기어나오는 장면이 특히 압권입니다. 얼마전 일본에서 영화화되어 개봉되기도 했는데 예고편을 보니 화장실 장면은 제대로 등장하는 듯 해서 기대가 됩니다. 소설에서도 아주아주 무서웠으니 영화로 보면 효과는 그 이상일거라 확신이 드네요.

이렇게 대상을 받을만한 좋은 점도 많지만 단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앞서 칭찬한 전개에서 딱 한 가지, 가라쿠사가 다하라를 저주했고, 다하라의 남은 가족까지 저주했다는 설정은 과합니다. 술 자리에서 쓸데없는 이야기 좀 들었다고 돈과 노력을 더해 '마도부' 까지 선물한다? 그것도 정작 원망의 대상은 죽은 다음인데? 이래서야 설득력이 너무 떨어져서 등장하지 않는 것만 못해요. 또 마코토는 그럭저럭이지만 그녀의 언니 고토코 캐릭터는 지나치게 만화적입니다. 뛰어난 능력으로 괴물들 사이에서도 이름이 높고, 경찰 최고위층도 움직일 수 있는 어둠의 실력자라는 설정인데, 식신만 나오지 않을 뿐 "마법사의 딸" 에 나오는 일본 최고의 음양사 스노즈키 무잔과 판박이니까요. 만화였다면 모를까 소설에 등장하기에는 비현실적입니다. '보기왕' 처럼 설득력있게 그 존재에 대해 설명해 주었더라면 조금 나았겠지만 그런 설명도 전무하고요. 이런 점에서 보면 "요괴 헌터"의 한 에피소드로 그려지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소설 보다는 영화나 만화 쪽이 더 잘 어울렸을 것 같아서 조금 감점합니다만, 재미도 있고 흡입력도 괜찮아서 킬링 타임용으로는 적당한 작품입니다. 호러물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