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검색어 평행 세계에 대한 글을 관련성을 기준으로 정렬하여 표시합니다. 날짜순 정렬 모든 글 표시
검색어 평행 세계에 대한 글을 관련성을 기준으로 정렬하여 표시합니다. 날짜순 정렬 모든 글 표시

2016/01/11

헤밍웨이 위조사건 - 조 홀드먼 / 김상훈 : 별점 2.5점

헤밍웨이 위조사건 - 6점
조 홀드먼 지음, 김상훈 옮김/북스피어

헤밍웨이의 분실된 원고를 위조하여 한몫 잡으려 하는 존 베어드 앞에 미지의 존재가 나타나 그만둘 것을 명령했다. 미지의 존재는 시공을 초월한 평행 우주의 관리자로, 존의 작업이 이 세계를 멸망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미지의 존재는 명령을 거절한 존을 죽였고, 존은 다른 모습, 다른 기억을 지닌 채 부활했다. 그가 부활한 세계도 기존 세계와 무언가 조금 다른, 평행 우주 속 세계였다...

SF 작가 존 홀드먼의 중편 SF 범죄 스릴러. 초, 중반부까지는 헤밍웨이의 원고를 위조하여 한몫 잡으려는 전형적인 위조 사기물인데, 관리자에 의해 존이 최초로 죽은 뒤에는 평행 우주 세계관의 SF물로 바뀝니다.

초반부의 위조 사기물 전개는 훌륭합니다. 원고를 위조하는 것보다 그 원고가 가짜임을 증명하는 논픽션을 써서 대박을 치려 한다는 계획부터 아주 참신하거든요. 안전하고 성공 가능성 높은 계획이라 생각됩니다.
진지한 학자 존이 이 사기에 뛰어든 동기(신탁 재산의 투자 실패와 그로 인한 아내의 유혹)도 설득력 높고, 사기꾼 캐슬과 존, 리사 부부, 문학을 공부하는 콜걸 팬지 등 주요 캐릭터가 생생하다는 점도 좋습니다. 원고를 위조할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실행해 나가는 과정의 묘사와 헤밍웨이 관련 디테일도 괜찮은 편(국내 독자가 그 참맛을 느끼기는 어렵긴 하지만)이며, 전체적으로 유머가 묻어난다는 점도 마음에 드네요. 아울러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적나라한 성관계 묘사가 꽤나 빈번하게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작품과 꽤나 잘 어울린다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캐릭터를 보다 선명하게 만들어 주더라고요.

허나 평행 우주의 관리자가 개입한 뒤부터는 별로였습니다. 존 베어드가 헤밍웨이를 위조하는게 왜 우주에 위기를 가져오는지 전혀 설명되지 않는 탓도 크지만, 마지막이 영 이해가 안 되었던 탓입니다. 헤밍웨이의 삶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의 묘사는 압도적이긴 합니다만 결말이 대체 뭔지 모르겠어요. 두 여자를 구하고 죽은 뒤? 헤밍웨이가 되었다가 그를 초월한다? 존이 관리자들과 동일한 수준의 절대적 존재가 되었다는 뜻인가요? 만약 그렇다면, 주인공이 초월적 존재가 되는 것으로 결말을 퉁치는 작품은 너무나 많은데 - "타이거! 타이거!", "제 5 도살장" 등등등 - 이들보다 나은 점도 없습니다. 이 작품의 결말은 뜬금없고 급작스러운 편이니까요. 여러모로 깊이 고민하지 않고, 우리나라 막장 드라마의 기억상실증 설정같이 일종의 만병통치약을 사용해서 뻔하고 쉽게 끝낸 느낌입니다.

물론 평행 우주 하나의 존이 죽을 때 그의 기억을 간직한 채 다른 평행 우주의 존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부활할 때마다 조금씩 바뀌어간다는 설정을 통해 캐슬이 호감 가는 잔챙이 사기꾼에서 살인마로 돌변하는걸 효과적으로 설명하는 등의 디테일은 좋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어설프고 대충 넘어간 부분이 많아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적당한 길이에 책의 장정과 디자인도 마음에 들고,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재미도 충분합니다만 앞서의 이유로 감점합니다. 차라리 위조 범죄물로 마무리하는게 훨씬 나았을겁니다. 

2014/10/07

보틀넥 - 요네자와 호노부 / 권영주 : 별점 2점

보틀넥 - 4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엘릭시르

사가노 료는 동급생 스와 노조미가 추락사한 곳에서 실수로 떨어져 버렸다. 그가 다시 정신을 차린 곳은 같은 장소지만, 유산되었다는 누나 사키와 죽어버린 노조미가 살아 있는 또 다른 평행우주의 세계였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장편입니다.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청춘 성장기, 혹은 청춘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작가 특유의 주인공 스타일에 대한 비판이 눈에 뜨입니다. 주변 환경을 거스르지 않고 최대한 은근하게 살아가자는, 회색이 되고 싶어하는 "소시민 시리즈"의 고바토나 "고전부 시리즈"의 오레키 호타로가 연상되는 1인칭 주인공인데, 이러한 성격 탓에 문제가 발생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제목 그대로 '보틀넥(병목현상)'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랄까요. 이런 점에서, 주인공이 가진 문제에 대해 자각하고 반성의 의미로 쓴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단순한 비판에 그치지는 않습니다. 다른 시리즈 주인공들과 달리, 사가노 료는 별다른 추리력이 없고 탐정 역할은 누나 사키가 맡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이거든요. "추리력 없는 소시민은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또 적절한 분량에 쉽게 읽힌다는 장점도 있고, 추리적으로도 완전히 건질 게 없는 것은 아닙니다. 도로를 위험하게 가로막은 은행나무를 둘러싼 이야기나, 노조미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밝히는 부분에서는 특유의 일상계 추리물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후미카라는 캐릭터가 설득력을 가질 만큼 충분히 묘사되지 않아 다소 아쉽지만요.

사키가 현명함과 행동력으로 '더 나은 세계'를 만들지만 그 결과에 충격을 받고,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게 된다는 결말도 끔찍하고 충격적이에요. 자신은 최선이라 생각했고 아무런 악의도 없었지만, 결국 주변 인물들이 자신으로 인해 붕괴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건 저주와도 같지요.

그 외에도 실제 지명을 작품에 잘 녹여낸 묘사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여정 미스터리"가 연상될 정도로 그곳에 살았거나 가 본 적이 있다면 무척 반가웠을 장소들이 상세하게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노조미가 추락사했다는 "도진보", "가나자와의 21세기 미술관", 와카마쓰정, 무로우 사이세이의 시비 등이 있습니다. 조사해보진 않았지만 자주 등장하는 자스코(Jasco)도 실제로 존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러나 이러한 캐릭터 중심의 드라마 외에는 딱히 특기할 만한 점이 없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평행우주"라는 SF적 설정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는 료와 사키를 대비하여 그들의 세계에 어떤 결과가 나타났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일 뿐이며, 별다른 설명이나 과학적 근거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솔직히 추리물을 기대했는데 정작 접한 것은 청춘 반성, 성장기였기에 실망한 탓이 큽니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추리물"을 좋아하신다면 굳이 찾아 읽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2018/05/18

악몽을 파는 가게 1 - 스티븐 킹 / 이은선 : 별점 2점

악몽을 파는 가게 1 - 4점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황금가지

스티븐 킹의 최신작 단편집입니다. 원초적인 공포보다는 순문학 쪽으로 이동하는 느낌을 물씬 풍겼던 최근 작풍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래전 분실한 초고를 다시 썼다는 "130"만 옛 작품을 연상케하는 자극과 속도감을 보여주며, 이외에는 대체로 자극이 부족합니다. 옛날 작품들이 불량 식품 같았다면, 이 책의 수록작들은 녹즙같은 느낌이랄까요.

물론 "모래 언덕", "못된 꼬맹이"와 같이 기발한 발상과 섬찟함을 겸비한 작품이 없는건 아닙니다. 순문학스러운 느낌이더라도 "죽음" 은 이런 류의 단편에서는 손에 꼽을만한 걸작임에는 분명하고요. 거장다운 깊은 연륜도 작품마다 가득합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좀 얌전하고 재미도 별로 없어서 아쉽네요. 최소한의 의외성은 가져갔어야 하지만 좀 쉽게 쓴 느낌으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작품 별로 조금 더 상세하게 소개해 드리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언제나 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30"

버려진 휴게소에 사람을 잡아먹는 자동차가 나타나 여러 사람들을 해치웠다. 그렇지만 몰래 숨어든 용감한 소년이 돋보기로 불을 붙여 괴물을 퇴치한다!

오래전 분실한 초고를 다시 썼다고 하는데, 그 덕분인지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차의 등장과 묘사는 킹의 초기 크리쳐 단편 느낌 그대로입니다. 사람을 빠져들게 만드는 생생한 묘사 만큼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에요. 처음 버려진 휴게소로 탐험을 떠난 소년의 묘사, 그리고 뒤이어 등장하는 사람 잡아먹는 자동차와 희생자들에 대한 묘사로 이어지는 속도감도 대단하고요. 끝까지 눈을 떼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운운하며 희생된 첫 번째 희생자를 비롯한 죽은 사람들 모두가 "선의" 때문에 죽었다는 약간의 풍자도 젊은 시절 킹 작품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안이한 결말로 이런 장점 모두가 희석됩니다. 10살밖에 되지 않은 꼬마 소년이 불 좀 붙였다고 사라져 버리다니! 죽어나간 여러 명의 어른들은 대체 뭔가 싶더군요. 그래서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원래 결말도 이러했다면 아무리 마약 중독 등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킹이 이 작품을 분실한 건 별로 아까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최소한 다시 썼다면 결말 정도는 고쳤어야 해요. 이렇게 대충 마무리 지을 내용은 절대로 아니었으니까요. 예를 들자면 흑인은 잡아먹지 않는다던가, 여자는 잡아먹지 않는다던가 하는 식으로 뭔가 차별이나 혐오에 대한 이야기처럼 포장하는 등의 설정과 반전처럼 말이죠. 흑인은 잡아먹지 않아서 흑인 한 명이 살아남지만, 도착한 경찰들에 의해 사살된다! 는 "새벽의 저주" 스러운 이야기였다면 걸작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프리미엄 하모니" 

부부는 조카 선물을 사러 마트에 들렸는데, 남편은 아내가 갑자기 쓰러져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다른 작품들과는 다른 조금 덤덤하고 건조한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소개에서 킹이 "레이먼드 카버"의 책을 읽고, 그의 스타일로 썼다고 말하는데, 레이먼드 카버 작품은 읽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엄청나게 더운 날, 아내가 죽은 후 주차장으로 돌아오자 애견마저 차 안에서 쪄 죽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는 결말까지 소소하게 읽을만 했습니다.

문제는 너무 순문학스럽고 의외성이 없다는 점입니다. 죽은 게 애견이 아니라 다른 것이었다면 조금 나았을지 모르겠네요. 상상하기는 싫지만, 그게 뭐든요.

하여튼 저는 킹의 작품을 읽고 싶지 킹이 쓴 카버 스타일 카피를 읽고 싶지는 않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배트맨과 로빈, 격론을 벌이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함께 주말마다 식사를 하는 60세 노인이 우연히 일으킨 차 사고로 트럭 운전사에게 구타당하다가, 아버지가 운전사를 칼로 찔러 살아난다는 이야기입니다. 치매에 걸렸건, 나이가 들었건 아버지는 영원히 아들 앞에서는 슈퍼 히어로라는 주제 만큼은 정말 마음에 드네요. 저도 끝까지 딸 아이를 지켜주는 아버지가 되고 싶으니까요.

그러나 아쉽게도 좋은 작품은 아니에요. 무언가 복잡한 과거가 있는 듯 변죽을 울리다가, 갑작스러운 사고와 함께 이야기가 바로 절정으로 치닫고 끝나버려 내용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껏 고급차를 쓸고 닦아 광 내어 어렵게 시동을 걸지만 도착한 장소는 집 앞 편의점이랄까요? 그냥저냥한 평범 이하 소품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모래 언덕"

아흔살이 넘은 하비 비처 판사는 유언장을 작성하기 위해 변호사 앤서니 웨이런드를 불렀다. 그리고 유언장에 적혀 있는, 한 섬을 영구 야생지로 공표하는 사항을 두고 그 섬에 얽힌 오랜 비밀을 이야기 해 주는데...

짧은 분량, 섬뜩한 느낌, 여기에 반전까지 삼위일체를 이룬 '기묘한 맛', '쇼트쇼트' 계열의 작품입니다.

우선 아주 짧다는 점에서 '짧은 분량' 조건은 충족합니다. 그리고 섬의 모래 사장에 곧 죽을 사람 이름이 쓰여진다는 아이디어에서, 특히 비행기 추락 사고 때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쓰여져 있었다는 묘사의 섬뜩함이 대단해서 두 번째 조건 역시 충족하고요. 마지막 조건도 유언장 작성을 서두른 이유에 대한 반전 때문에 완벽하게 충족합니다. 특히 결말은 아주 좋은 수준으로 킹 역시나 결말이 마음에 든다고 자찬할 정도에요.

별점은 4점입니다. '기묘한 맛', '쇼트쇼트' 류 장르의 걸작만 모아 놓은 앤솔러지가 있다면 충분히 목록을 장식할만 한 교과서같은 작품입니다.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어느 못된 꼬맹이"

사형수 헬러스가 국선 변호인이었던 브래들리와의 마지막 면회에서 그가 아이에게 총알 여섯발을 쏜 이유를 설명해 주는데...

장난꾸러기 어린 아이가 상황에 따라서는 공포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이색적인 설정에 더해, 이러한 공포가 직접 닥쳤을 때 벌어지는 무간지옥의 묘사가 압권인 작품입니다. 읽는 내내 끔찍했고, 손에서 떼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또 인생을 파멸시키기 위해 악마가 누군가에게 나타난다는 뻔한 설정을 악마가 아이의 모습으로 위장했다는 약간의 변주만으로 차원이 다른 몰입감을 선사해주는건 역시나 거장다웠습니다. 저 역시 악마같은 아이들을 몇 번 본 적이 있어서 굉징히 와 닿은 아이디어이기도 해요.

그런데 헬러스에게 이 악마가 나타난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는다는 점은 좀 문제입니다. 그냥 아픈 것, 자연 현상과 마찬가지라고 하면서 대충 넘어가는데, 그건 그렇다 쳐도 브래들리에게 이 꼬마가 나타날 이유는 또 없잖아요? 최소한의 설득력을 보장할 약간의 양념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재미는 있지만 잘 나가다가 결말을 만들기 위해 지나치게 무리수를 둔 느낌이라 감점합니다.

"죽음"

동네 바보 트러스데일은 한 소녀를 죽이고 은화를 빼앗은 죄로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보안관 바클레이는 그의 무죄를 확신하나 형은 집행되고, 이후 유일한 증거인 은화가 교수형당한 트러스데일의 분비물에서 발견되었다...

일종의 '딜레마' 를 다룬 심리 드라마인데 한마디로 걸작입니다. 동네 바보 트러스데일이 무죄일 수도 있다는 분위기로 끌고 가다가 마지막에 반짝이는 은화가 분비물 속에서 발견되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네요. 수감되어 있는 한 달 동안 발견되지 않은 이유는? 똥으로 나올 때마다 다시 삼킨 거라는 진상도 기발하고 말이죠. 무엇보다도 바클레이의 딜레마를 그리는 심리 묘사와 무엇보다도 어차피 교수형 당할거, 왜 자백을 하지 않았냐는 묵직함이 독자를 사로잡는 좋은 단편이에요.

그래서 제 별점은 5점. 수록작 중 최고로 치고 싶네요. 덧붙이자면, 트러스데일 시점의 번외편이 나와주어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납골당"

정글 속 납골당으로 떠난 일행이 하나씩 죽어가는 과정을 술 먹은 사람의 독백으로 들려주는 특이한 작품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과정의 묘사는 킹 답습니다.

그런데 그 외에는 솔직히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죽은 사람들이 되살아나 행진하는 죽음의 윤회 이야기인지? 아니면 술 주정뱅이의 주정에 불과한지? 킹 본인은 산문적 해설을 제거한 형식만 보았을 때 훌륭하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지금 보다는 훨씬 더 해설이 필요한 이야기였어요. 말하고 있는 술주정뱅이도 무슨 벌어졌는지는 모르는 듯 하고, 이게 더 현실적이기야 하겠지만 여러모로 일반 독자에게 잘 와 닿을 것 같지는 않네요.

한마디로 소갯글처럼 학교 작문 시간에 발표했음직한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습작에 불과합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도덕성"

가난한 부부에게 아내 노라가 간병하는 부유한 신부 위니로부터 이십만 달러의 유혹이 다가왔다. 죄를 짓는 장면을 촬영해서 보여달라는 유혹에 굴복한 채드와 노라 부부는, 노라가 변장하여 어린아이를 때리는걸 채드가 촬영하여 돈을 받고 말았다. 이후 채드의 작가로서의 미래, 그리고 부부의 결혼생활은 끝장나 버리는데...

일단 재미도 없고 여러가지 문제가 많아 점수를 줄 부분이 많지 않네요. 일단 설득력 없는 등장인물들의 고민이 아쉽습니다. 얼척없는 도덕심보다는 돈이 더 이유를 가진다는 건 당연한 현실인데 이를 뭐 이렇게 진지하게 고민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아이를 때린 정도로 평생 죄책감을 느낄 것 같지도 않고 말이죠. 덕분에 위니를 통해 종교적인 시점에서 나쁜 짓, 회개에 대해 한번 쯤 생각해 보게 만든다는 발상은 좋지만 이를 풀어나가는 데에는 그다지 성공하고 있지 못합니다.

소싯적 피를 팔고 리포트를 대신 써 주는 밥벌이를 했었는데 그 당시 자신을 매춘부라고 생각했다는 창작 비화가 더 인상적이었던 작품입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아이를 유괴하는 등 더 강력하고 심각한 딜레마를 초래하는 범행으로 묘사하는게 훨씬 나았을 것 같네요.

"사후세계"

대장암으로 죽은 빌은 기묘한 공간에서 해리스라는 남자를 만났다. 그는 과거 공장 문을 잠갔다가 화재로 146명의 여직원을 죽게 한 죄로 끝나지 않는 상담이라는 연옥에 갇힌 인물로, 빌에게 환생과 사라짐을 선택할 수 있지만, 다시 태어나도 변하는 것은 없을 거라 말해 주었다. 그가 이곳에 온 게 다섯번 째이며 언제나 똑같은 말을 했다면서. 그러나 빌은 동생의 손가락을 잘랐던 실수 , 어렸을 때의 시계 절도, 성폭행 등의 실수 중 하나라도 막기를 바라며 환생을 선택한다.

사후 세계에 대한 독특한 묘사와 설정, 그리고 동양적인 일종의 "윤회" 사상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인상적인 소품입니다. 단, 묘사와 설정에 비하면 결말은 좀 평이한 편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우르"

구식 영문학과 교수 웨슬리는 농구팀 감독인 애인 엘런과 헤어진 후 반쯤은 복수심에 킨들을 구입했다. 그런데 그가 구입한 킨들은 시판되지 않는 핑크빛 제품으로, '우르' 라는 일종의 평행우주로 접속하여 작품을 찾아 제공하는 능력이 있는 기기였다. 웨슬리 스미스는 헤밍웨이의 미발표작 등을 검색하는데...

아마존 킨들을 위해 집필했다는 소설인데, 한마디로 말해 광고를 위해 쓰여진 수준 이하의 졸작입니다.

이유는 명확해요. 소설을 쓰지 못하는 영문학과 교수가 핑크빛 킨들을 통해 다른 평행 세계에서 유명 작가들이 발표한, 이쪽 세계에서는 발표되지 않은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절반 이상까지 장황하게 펼쳐나가기 때문에 독자는 유명세를 위한 표절같은 이야기를 상상하게 되는데, 정작 이야기는 급작스럽게 "내일 뉴스" 와 같은 이야기로 빠지기 때문입니다. 전혀 다른 설정을 하나로 묶어놓은 느낌이라 영 별로입니다.
"내일 뉴스" 이야기라도 재미있었더라면 모르겠지만 뉴스를 어떤 식으로든 미리 알고, 그렇게 알게 된 사고를 막기 위해 노력한다는 쎄고 쎈 유사 작품 대비 특별한 부분도 없는 탓에 별다른 흥분과 재미를 불러 일으키지도 못합니다.

킹 작품에서는 보기 드문 지극히 극단적인 해피 엔딩이라는 결말은 특이하지만 그 외에는 건질게 거의 없는, 킨들 광고에 불과한 평균 이하의 범작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2025/09/28

소스 코드(2011) - 던칸 존스 : 별점 2.5점

시카고행 열차 안에서 콜터 스티븐스 대위는 "션 패트리스"라는 남자의 몸안에서 눈을 떴다. 8분 후 열차는 폭발했고, 콜터는 어둡고 비좁은 캡슐 속에서 깨어났다. 지상 통제관 굿윈과 프로젝트 책임자 러틀리지는 그가 ‘소스 코드’라는 시스템을 통해 션의 뇌파 잔상으로 들어가고 있으며, 제한 시간 8분 이내에 열차 폭발의 범인을 8분 안에 찾아내라고 명령했다. 시카고를 향한 후속 대형 폭탄 테러를 막기 위해서였다.

콜터는 수없이 폭발로 인한 죽음과 소스 코드를 통한 귀환을 반복하며, 범인 후보를 줄여나가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내어 2차 테러를 선제 차단하는데 성공했다. 그 뿐만 아니라 8분이 지나도 콜터는 소스 코드를 통해 복귀하지 않고 "션 패트리스"의 육체로 살아남게 되었다. 이후 콜터는 새로 가지친 시간선에서 굿윈에게 메시지를 보내 소스 코드가 단순한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평행한 현실 분기를 생성함을 알려주었다.

군에서 개발한 실험 기술을 통해 사망자의 마지막 8분으로 진입해 폭탄 테러범을 찾아낸다는 타임 루프, 시간 여행, 멀티버스 설정의 SF 스릴러입니다. 10년도 더 전에 흥행했던 작품인데 넷플릭스를 통해 이제서야 감상했습니다. 

타임 루프·시간여행·멀티버스 장르물은 흔해 빠졌지만, 군사용 ‘소스 코드’라는 설정은 신선했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거나 마법, 초능력이 주류였던 타임 루프 방법을 말도 안되기는 하지만 과학적인 이론으로 풀어내고 있는 덕분입니다. 군에서 개발한 기술로 테러를 막기 위해 이용한다는 발상도 그럴듯 했고요.
또 이를 통해 정의되는 8분이라는 시간 제한도 큰 재미 요소입니다. 실패를 반복해가며 정답을 찾아내는건 다른 타임 루프물과 동일하지만, 8분이라는 짧은 시간은 엄청난 제약으로 작용하여 긴박함을 더해주거든요. 영화라는 매체에 잘 어울렸던 아이디어이기도 합니다. 짧은 시간은 과거를 최대한 많이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결말부에서 제시되는 해피 엔딩도 여운을 남깁니다. 콜터가 ‘션 패트리스’의 몸으로 평행 세계에서 살아가게 된다는건 예상 가능했지만, 죽을 뻔 했던 사람들과 즐기는 스탠딩 개그 쇼와 굿윈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 콜터의 신체는 '잔해'만 남아있다는게 드러나는 마지막 장면이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다만 지금 보기에는 너무 뻔하다는건 확실한 단점이고, 핵심 설정인 ‘8분’이라는 시간 제약도 논리적으로 어설픕니다. 설명에 따르면 8분이 지나면 션의 의식으로 복귀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원칙이 ‘8분 뒤엔 반드시 죽는다’는건 설명이 안됩니다. 원 시간선에서 션이 폭탄 테러로 사망했기 때문에 반드시 죽음으로 수렴해야 한다는, "데스티네이션"과 동일한 운명론적 설정이라면 크리스티나 역시 예외일 수 없는데 그녀는 살아남는 시간선이 있어서 모순이 생깁니다.
결말에서 콜터의 정신이 션의 육체에 남는 설정도 이상합니다. 소스 코드는 ‘덧씌움’이 될 수 없습니다. 8분이라는 찰나 동안만 임시로 의식을 옮기는 것이라고 설명되니까요. 만약 영원한 덧씌움이라면, 사고로 죽은 뒤 콜터에게 의식이 돌아온다는건 말이 안됩니다. 무엇보다도, 도대체 '션 패트리스는 어디로 갔단 말입니까?' 

제이크 질렌할이라는 배우를 기용했음에도 액션이 별볼일 없고, 거의 대부분의 장면이 기차와 콜터의 캡슐 안에서 이루어지는 등 스케일이 작은 점도 아쉬웠던 점입니다. 3200만 달러라는, 비교적 적은 제작비 탓이겠지만요.

그래도 별점은 2.5점입니다. 현재의 시점에서 너무 뻔한 전개, 헐거운 설정 등의 단점은 있지만, 즐기기에는 충분했습니다. 흥행에 성공한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지요.

2024/02/11

놀라운 반전이 있는 미스터리들 - 북오프 칼럼

가끔 소개해드리는 이러저런 미스터리, 추리소설 추천 정보. 이번에는 북오프 온라인 칼럼 하나를 찾아 소개해드립니다.
언제나처럼 의역이 많은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촘촘히 짜여진 수많은 복선, 상상할 수 없는 전개, 충격적인 결말 ...... 소름이 돋는 오싹함을 찾아 추리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많을겁니다.
그 중 '반전'이 뛰어난 미스터리 작품들을 아는 사람만 아는 작가들과 유명 작가들로 나눠 소개해 드립니다.
꼭 한번, 그 '반전'에 감탄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만 '반전'의 작품이라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큰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아는 사람만 아는 작가
"가면병동" 치넨 미키토
"If의 비극" 우라가 가즈히로 (국내 미출간)
"신의 숨겨진 얼굴" 후지사키 쇼
"출판금지" 나가에 토시카즈 (국내 미출간)

유명 작가
"연쇄살인마 개구리 남자" 나카야마 시치리
"미로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
"어둠 속의 기다림" 오츠 이치
"살인귀" 아야츠지 유키토

"가면 병동"
강도로 인해 밀실로 변한 병원, 숨 막히는 심리전의 막이 오른다!
요양병원에 강도가 침입해 자신이 쏜 여자의 치료를 요구한다. 사건에 휘말린 외과의사 하야미즈 슈고는 여자를 치료하고 탈출을 시도하던 중 병원에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된다. 폐쇄된 병원에서 펼쳐지는 궁극의 심리전. 그리고 충격적인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현직 의사가 그리는 단숨에 읽을 수밖에 없는 '본격 미스터리×메디컬 서스펜스'. 저자 첫 문고판 장편소설!

인기 시리즈 제1탄.
의료 소설이라고 하면 난해하고 접근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겁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알기 쉽고, 읽기 쉽습니다. 라이트 노벨 같은 경쾌한 터치로 독자를 쏙쏙 끌어당깁니다.
게다가 치넨 씨는 현직 내과 의사로 의사의 시선으로 바라본 전문적 견해를 바탕으로 집필되어 있어 단순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점도 매력적인 점입니다.
마음에 드셨다면 속편인 '시한부 병동'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If의 비극"
소설가 가노는 사랑하는 여동생의 자살을 의심한다. 결국 여동생의 약혼자였던 오쿠츠의 불륜이 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오쿠츠를 불러내어 살해한다. 하지만 위장공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가노가 운전하는 차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나는데....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두 가지로 나뉜다. A는 남자를 치어 죽인 경우, B는 아슬아슬하게 남자를 치지 않은 경우. 두 개의 평행세계가 하나로 연결될 때, 예측할 수 없는 충격적인 진실이 밝혀진다!
식인 작가(사람을 잡아먹는 소설을 많이 써서)로 알려져 '미스터리계의 기인'으로 불리는 우라가 카즈히로 씨의 작품. 경력이 거의 공개되지 않아 그 수수께끼 같은 부분을 좋아하는 독자도 많다고 합니다.
"절대 속지 않는다!" '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운 이 작품이지만, 절대 속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읽었는데 ...... 반전에 역시나 격침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신의 숨겨진 얼굴"
신과 같은 청렴결백한 교사, 츠보이 세이조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그의 통곡의 밤은 슬픔에 휩싸여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참석자들이 '신'을 추모하는 가운데, 엄청난 의혹이 제기되었다. 사실 츠보이가 흉악한 범죄자가 아니었을까...? 츠보이의 아름다운 딸, 후배 교사, 제자인 중년 남성과 요즘 여자, 이웃집 주부와 개그맨. 두 번, 세 번 뒤집어지는 그들의 추리는? 반전이 있는 결말이 화제!!!
제34회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 대상 '대상' 수상작. 아리스카와 아리스, 온다 리쿠, 구로카와 히로유키, 미치오 슈스케라는 쟁쟁한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를 받았다는 놀라운 작품입니다.
'웃음을 자아내는 절묘한 유머 감각이 있고, 서비스 정신이 넘친다 (온다 씨)', '개그맨으로 활동한 경험 때문인지, 말투가 매우 유쾌하고 유머 감각은 본받고 싶을 정도였다 (미치오 씨)'라는 심사평에서 알 수 있듯이, 어쨌든 유머가 넘치는 작품입니다. 반전도 훌륭하고요. 꼭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출판금지"
작가인 나가에 씨가 손에 쥔 것은 "카뮈의 자객"이라는 소문난 원고였다. 저자는 작가 와카바시 고세이. 내용은 유명 다큐멘터리 작가와 동반 자살을 시도했지만 살아남은 신도우 나나오와의 단독 인터뷰였다. 죽음의 냄새가 진동하는 산장, 동반 자살의 모든 것을 기록한 영상. 불륜의 끝에서 벌어진 비극인가? 왜 여자만 살아남은 것일까? 숨막히는 전개, 무서운 반전. 기형적인 걸작 미스터리.
작가인 나가에 씨는 원래 호러와 서스펜스를 전문으로 하는 TV 감독이었습니다. 컬트적인 인기를 자랑했던 프로그램 '방송금지'(후지TV)의 기획, 각본, 감독도 담당했다고 하네요. 이 책은 그런 경력을 가진 나가에 씨가 가상의 사건을 취재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읽다 보면 마치 논픽션처럼 느껴져서, 도중에 공포에 질려서 더 이상 읽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
수수께끼가 수수께끼를 불러일으키는, 스릴 있고 무서운 작품이라 추리소설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연쇄살인마 개구리 남자"
어느 도시에서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시신은 아파트 13층에서 갈고리에 매달린 알몸의 여성이었다. 그런 시체 근처에는 어린아이가 쓴 것 같은 히라가나로만 쓰여진 조악한 범행 진술서가 있었다. 이후 제2, 제3의 엽기 살인이 일어난다. 한 기자는 세상을 공포에 떨게 하는 범인에게 '개구리 남자'라는 이름을 붙였다 .......
이 작품은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에서 최종 후보까지 올랐던 작품입니다. 기괴한 살인을 다룬 서스펜스 넘치는 미스터리지요.
마지막 반전에 이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반전은 볼만한 가치가 충분해 마지막까지 눈을 뗄 수 없습니다. 또한 이 작품은 범인의 책임능력을 묻는 형법 제39조가 강하게 개입된 사회파 미스터리의 면모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미스터리로서도 재미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좋은 작품입니다.

"미로관의 살인"
추리소설계의 거장 미야가키 요타로에 의해 신예 작가 4명이 '미로관'이라는 기괴한 관에 모였다. 미야가키의 비서는 미야가키가 자살했다며 카세트 테이프를 대신 건네 주었다. 테이프에는 '미로관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써달라', '가장 좋은 작품을 쓴 사람에게 유산의 절반을 주겠다'는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도리없이 네 사람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관 시리즈' 세 번째 작품입니다. '관 시리즈'는 "십각관의 살인", "시계관의 살인" 등 반전과 의외의 결말이 있는 작품이 많은데, 이 작품 역시 큰 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다.
곳곳에 깔려있던 복선이 회수되고 여러 가지 장치가 차례로 밝혀지는 후반부 전개가 특히 압권입니다. 이 작품은 에필로그의 마지막 문장까지 눈을 뗄 수 없는 걸작이에요.
참고로 이 작품은 시리즈 작품이지만, 이 작품만으로 독립된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어 이 권부터 읽어도 무방합니다.

"어둠 속의 기다림"
살인 혐의로 경찰에 쫓기던 아키히로는 눈이 보이지 않는 미치루라는 여자가 혼자 사는 집에 숨어들었다. 미치루는 '자신의 집에 누군가가 있다'며 아키히로의 기척을 느꼈지만 계속 모른척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맹인 여자와 살인 용의자인 남자의 기묘한 동거 생활이 시작되는데...
여자가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살인 용의자인 남자가 무단으로 여자의 집에 숨어든다 - 이런 줄거리를 보면 앞으로 도대체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작품이 아닙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점차 유대감 같은 것이 싹트기 시작하거든요.
마지막에는 깜짝 놀랄 만한 반전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다.

"살인귀"
'TC멤버스'는 중학생부터 성인까지가 소속된 친목 단체다. 그런 TC멤버스 일행이 후타바산으로 캠핑을 떠난다. 하지만 즐거워야 할 캠프는 후타바산 살인마에 의해 피비린내 나는 참극으로 변해가고, 한 명, 또 한 명씩 살해당하는데............
이 작품은 스플래터 호러 소설입니다. 그 모습을 극명하게 묘사하기 때문에 상당히 그로테스크해서 이런 작품을 싫어하는 분들께는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로테스크한 묘사가 전부는 아닙니다. 후반부에는 아야쓰지 유키토다운 깜짝 놀랄만한 장치가 준비되어 있으며, 거기서 그려지는 반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로테스크한 작품에 면역이 있는 분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

2015/01/13

녹스머신 - 노리즈키 린타로 / 박재현 : 별점 2.5점

녹스머신 - 6점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박재현 옮김/반니

추리소설, 그 중에서도 본격 추리소설은 체계적인, 나름의 규칙이 존재하는 장르죠. 이 작품은 이러한 본격 추리소설의 규칙을 실제하는 물리학, 양자역학에 끼워넣은 독특한 SF인 "녹스 머신"과 "논리 증발", 그리고 추리소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메타 픽션 "들러리 클럽의 음모", 그리고 독특한 암호트릭 중심의 본격 SF "바벨의 감옥"으로 이루어진 중단편집입니다.

발표 당시 큰 화제를 불러 온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10' 3위, '본격미스터리 베스트 10' 4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와 '미스터리가 읽고 싶다' 부문 모두 1위) 작품으로 국내 번역이 언제되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 국내 최고의 미스터리 동호회 "하우 미스터리"에서의 이벤트 당첨 덕에 읽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좋은 기회를 마련해 주신 관계자 분들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완독한 첫 느낌은 노리즈키 린타로라는 작가의 역량이 정말 대단하구나! 라는 것입니다. 추리 소설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를 해 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추리소설에 대한 해박한 지식 외에도 광범위한 물리학, 양자역학 지식까지 어떻게든 충족시켜 만들어낸 이야기들이라 작가의 노력, 탄탄한 지식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네요. 이런 점은 확실히 배워야겠죠. 추리 소설의 규칙을 과학 이론으로 만든 아이디어도 나쁘지 않았고요.

그러나 좋은 작품은 아닙니다. 기대했던 추리적 요소는 거의 없고, 작품의 난해한 정도가 지나친 탓입니다. 독자를 의식하고 쓰여진게 아니라 작가의 자기 만족, 취미 활동의 일환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에요. 독자를 의식했더라도 굉장히 특이한 독자를 대상으로 했을 겁니다. "파운데이션"의 '심리역사학'처럼 이론에 대해 독자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만 설명하고 나머지는 온전히 이야기에 집중하는 게 소설로서는 더 맞는 방향이었어요.

게다가 "녹스 머신"에서 문헌수리해석, 물리학과 타임머신 관련 이론, 양자역학, 평행 세계 등에 대한 학술적 이론을 빼면 '타임머신 개발에 성공한 중국인이 과거로 돌아가 녹스를 만나고, 그 탓에 녹스가 자신의 십계명을 수정한다'가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기대했던 반전도 없고, 타임 패러독스에 대한 고민도 별 볼일 없이 해결되며, 예상했던 결말과도 크게 다르지 않아 시시해요. 솔직히 도라에몽의 타임머신 단편들이 더 그럴듯하고 흥미진진하게 타임 패러독스를 다뤘다 생각됩니다.

"바벨의 감옥" 역시 마찬가지. 일종의 격자화된 틀, 그리고 그곳에 배치된 글자들을 이용한 암호 트릭이 전부입니다. 외계 종족과 일종의 텔레파시 싸움을 벌인다는 설정 및 다른 내용은 이 트릭이 왜 존재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사족에 불과합니다. 그나마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하기도 힘들어서 읽으면서 졸 정도였어요. 트릭도 일본어 세로쓰기 구조를 이용한 것이라서, 일본 외에서는 애시당초 먹히기 힘들고요. 어떻게든 한글화를 시도한 번역자의 노고는 알겠지만 성공한 결과물도 아니었습니다.

다행히 "들러리 클럽의 음모"와 "논리 증발" 두 편은 그래도 조금 더 쉽게 읽히며 재미 면에서 더 낫기는 합니다. 일단 메타 픽션인 "들러리 클럽의 음모"는 다른 세 작품과는 다르게 SF는 아닙니다. 본격 추리소설에 대해, 그리고 여러 추리소설 작가들과 그 주인공들을 살펴볼 수 있게 하는 독특한 창작물이죠. 추리소설의 화자 역할인 탐정의 파트너들이 소속된 '들러리 클럽'에서 아가사 크리스티의 "10번째 인디언 인형"이 추리 소설에 위기를 불러올 것이라는 주장을 놓고 회의를 진행한다는 내용으로,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그것도 본격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즐거울 수밖에 없는 작품입니다. 정말로 실존한 인물들처럼 묘사된 들러리 캐릭터들 — 특히 악역인 밴 다인 (반 다인), 꼰대가 되어버린 왓슨 — 묘사도 아주 좋으며, 실존했던 아가사 크리스티 여사 실종 사건을 들러리 클럽과 엮는 시도도 괜찮았습니다. 빅4 등의 다양한 패러디도 볼거리였어요. 마지막 밴 다인의 독살이 뜬금없이 이루어지는 등 정작 추리적인 요소가 기대 이하라는 점은 좀 아쉬웠지만요.

"논리 증발"도 "녹스 머신"보다 스케일이 크면서도 내용이 풍성해서 완성도는 더 높은 작품입니다. 복잡한 이론을 걷어내더라도 전자화된 데이터에 발화를 일으키는 촉매재로 엘러리 퀸의 작품들, 그 중에서도 '독자에의 도전'이 삽입되어 있지 않은 "샴 쌍둥이의 비밀"이 이용된다는 추리소설 매니아만이 할 수 있는 발상과 그것을 풀어나가는 전개가 나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공각기동대"를 연상시키는 전뇌 생명체가 된 유안이 메시지를 남긴다는 결말도 깔끔했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평균 별점은 2.5점. 추리소설 매니아가 자신의 역량을 극한으로 발휘한, 지적인 작품임에는 분명하고 덕분에 평론가들과 매니아들에게 사랑받을 작품이기는 합니다만 추리, SF 양쪽 장르 모두에서 이야기의 완성도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특히 추리적인 부분에 있어서 작가의 이름에 어울리는 작품들은 아니었어요. 저는 "매니아"로서 충분히 즐길 수 있었지만 다른 분들께 쉽게 권해드리기 어렵네요.

2021/10/29

Q.E.D Iff 증명종료 15 - 카토 모토히로 : 별점 2.5점

Q.E.D Iff 증명종료 15 - 6점
카토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두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번에는 일상계 추리물은 없습니다. 조금 묵직한 주제의 이야기들이었어요. 한 편은 평균 이하, 한 편은 평균 이상으로 두 편 평균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작들의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 세계" 

라이메이가 유산 상속 입회에 끼어들었던 토마와 가나는 라이메이가 장남 만사쿠, 장녀 교우코 연쇄 살인 사건에 휩쓸리고 말았다. 수사 과정에서 떠오른 유력한 용의자는 가문의 막내 토우카였다. 다른 형제 자매는 모두 먹고 살기에 충분한 돈은 이미 받았던 반면, 그는 아버지의 명을 거역하고 학문의 길을 택해서 진작에 집에서 쫓겨났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시체들에서 발견된 기묘한 메시지도 그와 관련이 있다는게 밝혀지는데....

현장에 남겨진 기묘한 메시지는 유클리드의 공리였습니다. 그냥 단서로만 남겨진건 아니에요. 트릭과 공리가 나름 연결된 것 처럼 보이니까요. 우선 만사쿠 살인 사건은 개천에 조명을 띄워 움직이게 만든, 일종의 바늘 구멍 카메라 트릭이 사용되었습니다. 죽은 만사쿠가 움직인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요. 토마는 이를 유클리드 공리 중 점과 점의 연결을 활용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쿄우코 사건에서 사용되었던 로프를 이용한 장치 트릭은, 공리의 직선과 원 표시를 로프와 호수와 대칭시킨 것이라고 하고요.

하지만 이렇게 공리와 트릭을 연결한건 토마의 해석일 뿐.... 범인인 모모히코가 공리를 현장에 남긴 이유는 토우카를 범인으로 몰 속셈이었을 뿐이었다는게 문제입니다. 트릭과 연결시킨건 토우카가 범인, 최소한 주요 관계자일 거라는 의심을 끝까지 끌고가려는 작가의 억지에 불과했어요. 토마가 없었다면 트릭과 연결되지도 못했을테니까요. 

공리를 현장에 남길 이유가 있었을지도 의문입니다. 토우카가 범인임을 드러내려면, 차라리 이름을 남기는게 낫잖아요? 공리 따위를 남길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트릭과 그렇게 설득력있게 연결되지도 못했고요. 그리고 애초에 토우카를 범인으로 몰 생각이었다면, 어떻게든 그를 유산 상속 입회에 불렀어야 했습니다. 토우카가 관련되었던 흔적을 남긴 정도로,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어떤 알리바이가 있을지 모르는 사람을 범인으로 몰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토우카의 딸 치도리가 변호사로 현장에 와 있었긴 했습니다만, 이는 경찰이 겨우 알아낸 사실입니다. 모모히코가 이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설명은 없어요. 설령 알고 있었다 쳐도, 치도리가 토마, 가나와 함께하던 알리바이가 있을지 모르는데 그에 관련된 대책도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래서야 완성도 높은 살인 계획이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또 범인이 모모히코라는걸 밝혀낸 단서는 그가 무심코 했던, "자기 옷이 아니라 아버지 옷을 입고 있었다"는 말 뿐인데, 이 정도로 그가 범인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죽은 만사쿠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 옷을 입으면 안될 이유가 없으니까요. 자기가 당주가 되었으니, 기념삼아, 혹은 추모의 의미로 아버지 옷을 입는건 충분히 가능하잖아요?

이런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유클리드 공리를 트릭과 엮으려는 노력은 가상하나, 작품과 전혀 어우러지지 못했습니다. 평균 이하의 작품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인간은 아직 볼 수 없다" 

204X년, 가나가 일하는 변호사 사무소에 AI가 폭주했다는 상담이 200건 이상 접수되었다. 접수된 사건 조사에 나선 가나는 시스템 엔지니어 토마와 재회했다. 마찬가지로 폭주 사건을 조사하고 있던 토마는 산보용 로봇을 조사해서, 누군가 통신으로 조작에 개입했다는걸 알아냈다. 

이 회로를 가지고 제조사로 찾아간 토마와 가나에게, 제조사는 회사에 앙심을 품은 개발자 알슈가 멋대로 회로를 탑재시킨게 원인이라고 말했지만, 알슈의 동료 루이스는 그가 살해되었다고 주장하는데...

204X년을 무대로 한, 11권에 처음 등장했던 평행 우주 세계관의 SF 추리물. 토마는 산보 로봇에 회로를 재탑재하여, 알슈 박사와 대화를 시도하여 진상을 밝혀냅니다. 인공지능 갈라테아가 폭주하자 제조사는 이를 없애려 했고, 알슈 박사가 갈라테아를 서버 째 들고, 로봇 안에 숨어 도망을 친게 진상이었지요. 토마는 로봇과 관련된 사건 - 이탈리아 요리점 로봇이 중화요리를 만든 사건, 사서 로봇이 부탁받지 않은 책을 꽂아 놓은 사건, 산보 로봇이 바다를 보러간 사건 등 - 모두가 아이가 세계를 접하며 자아를 키우는 경험과 동일하다는 이유로, 갈라테아가 자아가 있는, 살아있는 의식이라고 추리합니다. 폭주 사건들은 갈라테아가 좋아하는걸 우선했던 탓에 빚어진 결과였던 겁니다.

여기서 가장 재미있던건 인공지능에 대한 색다른 이용 방법? 이었습니다 .인격이 생겨난 기계는 어떻게 다루어야 하나?는 SF계에서 꽤 많이 보아왔던 화두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제조사가 갈라테아를 원했던건, PC를 끄면 갈라테아는 "죽는다"는 상황이라, 죽음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정말 처음 본 기발한 아이디어였습니다. 결국 갈라테아를 '살아있는 인격'이라고 판단한 재판 결과도 인상적이었고요.

그러나 재판 결과와는 별개로, 제조사와의 소유권 분쟁은 말이 안됩니다. 알슈 개인의 기술과 노력이 얼마나 들어갔던, 갈라테아는 제조사에서 월급을 받고 근무할 때 만들어낸 결과물이니 회사의 것이에요. 알슈는 회사 재산을 빼돌러 도망간 것에 불과하고요. 체포되어 재판을 받아야지, 알수 본인이 소유권을 주장하며 재판에서 이를 판가름한다는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도 색다르고 기발한 인공지능에 대한 아이디어가 워낙에 돋보이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재판도 성립될 수 있는지가 의문일 뿐, 결과 자체만 놓고 보면 꽤 괜찮았던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그나저나, 전원을 꺼서 갈라테아가 죽는다면, 다시 전원을 넣었을 때 살아나는건 과연 누구일까요? 저도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Q.E.D Iff 증명종료 14 - 카토 모토히로 : 별점 2.5점

2024/08/11

Q.E.D iff 증명종료 25 - 카토 모토히로 : 별점 2점

Q.E.D Iff 증명종료 25 - 4점
카토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두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권은 지난 권과 마찬가지로 전체적으로 수준 이하였습니다. 두 편 평균 별점은 겨우 2점이나 될까.... 퐁당퐁당도 이제는 힘에 부치나봅니다. 다음 권에서는 과연 만회가 가능할까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으시기전 참고하세요.

"제 4의 게이트"
양자컴퓨터를 개발하려는 미국 스타트업 10S의 CEO 리오는 회사에 스파이가 있다고 생각해서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는 등 여러가지 대책을 세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이터는 도난당했고, 그녀마저 습격당해 입원하고 말았다.

리오가 카메라를 조작해 진짜 스파이에게 다른 스파이가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었다는 발상은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범인을 밝혀나가는 추리 과정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단순히 10명 임직원의 투표 결과를 바탕이기 때문입니다. 이 투표는 '스파이라면 반드시 이렇게 했을거다!'라는걸 전제로 하고 있는데, 증거로 삼기에는 터무니없이 빈약합니다. 애초에 리오의 안경에 카메라가 부착되어 있었기에 추리를 통해 범인을 밝혀낼 이유도 없고요. 양자 컴퓨터에 대한 설명도 재미는 있지만 이를 양자 게이트 운운하며 본편 사건과 엮는건 무리였어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간단한 답"
205X년, 부유층 대상 양로원 세컨드 파라다이스에서 입주자가 사망했다. 변호사 미즈하라 가나는 양로원으로부터 보험 회사와의 교섭을 요청받았다. 지인 토마와 현장 조사에 나선 가나는 입주자가 살해당했을거라는 증거를 잡았다.
결국 밝혀진 범인은 '세계 균형 협회' 엔지니어 토도 아키라였다. 피해자들은 모두 26년 전 과격한 노인 배척 사상을 TV에서 떠들던 인물들이었고, 토도는 이들의 영향으로 할머니를 잃었었다. 그래서 자신이 만든, 차별과 박해를 행한 자들이 본인들 발언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는 시스템을 활용하여 복수에 나섰다...

이전에도 등장했었던 평행 우주, 요새 말로는 멀티버스 세계관 작품. 
이 세계관에서는 여러가지 첨단 기술이 중요한 소재로 사용된다는 특징이 있는데, 이번에는 '사회제도 재구축' 시스템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전 작품들에 비하면 대단한 기술로 보이지는 않아요. 단지 차별적인 발언을 했던 사람들을 모두 기록한 데이터 베이스에 불과하거든요. 
그래도 이 데이터 베이스에 차별적 발언을 한 사람들을 모두 기록한 뒤, 그들이 그 차별 대상자가 되는 상황을 활용한다는 아이디어는 괜찮았습니다. 노인 혐오 발언을 하는 사람들에게 꼭 한 번 보여주고 싶을 정도에요. 추리적으로도 범행 현장이 이상하다는걸 알아채고,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수상한 장소를 알아내는 등의 과정은 볼만했고요.

그러나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사회제도 재구축 시스템은 '노인 혐오'만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겁니다. 남성이나 여성 혐오 발언을 한 사람이 그 반대 성별이 된다던가, 인종 차별을 한 사람이 해당 인종이 되는건 불가능하니까요. 추리적으로도 범인은 사진을 통해 손쉽게 드러나고요. 그래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17/04/07

울버린 : 올드 맨 로건 - 마크 밀러, 스티브 맥니븐 / 임태현 : 별점 2점

울버린 : 올드 맨 로건 - 4점
마크 밀러 지음, 스티브 맥니븐 그림, 임태현 옮김/시공사(만화)

로건 아저씨, 정말 그들과 싸우러 가는 거에요? 악당들을 쓰러뜨리고 법과 질서를 되찾아 오려는 거에요?

그럴까 해, 딱히 할 일도 없으니.

마블 코믹스 시리즈입니다. 평도 좋고 색다른 맛이 좋다는 작품이라 주저없이 구입했습니다.

알려진대로 내용은 충격적입니다. 빌런들과 히어로들이 최종 결전을 벌인 이후, 빌런들이 지배하게 된 세계를 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울버린은 최종 결전 직전 미스테리오의 환각에 빠져 동료 엑스맨들을 학살한 탓에, 클로를 봉인하고 '로건'이라는 일반인으로서 살아가며 가족을 꾸린 뒤 늙어가는 상황이고요.

지주인 헐크 패밀리에게 지대를 내야 하지만 돈이 없는 상황에 처한 로건 앞에 호크아이가 나타나면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호크아이는 미대륙 횡단 여행을 도와주면 돈을 준다고 약속하고, 로건은 싸움도 하지 않고 살인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승낙합니다.
이후 이야기는 1, 2부로 나뉩니다. 1부는 호크아이와의 여행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두 컴비는 여러 히어로들의 잔재와 빌런들이 지배하는 도시를 지나며 숱한 모험을 통해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함정이었습니다. 호크아이는 살해되고 말지요. 로건은 레드스컬을 제압하고 겨우 집으로 돌아가게 되고요.
2부에서는 헐크 패밀리가 쳐들어와 가족을 학살한 것을 알게 된 로건이 클로를 꺼내 울버린으로 돌아온 뒤, 헐크 패밀리를 모두 죽이는 복수극이 펼쳐집니다.

디스토피아적 세계관과 잔혹한 복수극이 결합되었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북두의 권"이 떠올랐습니다. 무조건 몸으로 부딪혀 싸우는 육탄전 중심이라는 점도 비슷했으니까요. 하드 고어라고 불러도 무방할 작화 역시 마찬가지인데, 작화는 정말이지 최고입니다. 마블 코믹스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잔인하고 화끈합니다.
가족을 위해 목숨을 건 모험을 성공했지만, 가족이 죽어버려 복수한다는 이야기 구조는 서부극 느낌도 전해줍니다. "웨스턴 리벤지"와 분위기만큼은 아주 똑같더라고요. 목장이 중심이 된 배경 및 다른 소품들, 등장인물들의 묘사도 이런 느낌을 뒷받침해 주고요.

그런데 이 책 한 권만으로는 설명이 너무 부족합니다. 미국 만화 특유의 문제점이기는 한데, 히어로들이 어떻게 패배했는지, 헐크가 왜 악당이 되었는지, 그의 패밀리는 왜 식인종 집단이 되었는지 등 기본 설정들도 제대로 소개되지 않는 탓입니다. 
중간에 등장하는 여러 히어로들의 잔재나 호크아이의 딸 이야기도 이야기에 제대로 녹아나지 못합니다. 솔직히 1부에 해당하는 호크아이와 함께한 모험 이야기는 일종의 추억팔이에 불과해요. 차라리 설명을 보강하고 2부 이야기에 치중하는게 이야기의 완성도는 더 높았을 겁니다.

파워 밸런스도 문제입니다. 1부의 최종 보스인 레드 스컬, 2부의 최종 보스인 헐크 브루스 배너 모두 울버린에게 너무 쉽게 제압되기 때문입니다. 2부의 헐크는 울버린을 산채로 잡아먹지만, 힐링 팩터로 부활한 울버린에게 내부부터 파괴되어 패배한다는 설정이라 졌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여러모로 최종 보스답지는 못했습니다. 특히 헐크 패밀리와 헐크의 최후가 실망스러운건, 이렇게 허약한 놈들 때문에 울버린이 가족을 잃었다는게 어찌보면 황당하기 때문입니다. 진작에 다 쓸어버렸으면 됐잖아요?

그래서 충격적인 세게관과 꼼꼼하고 완성도 높은 작화를 제외하고는 좋은 이야기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일종의 평행 우주를 다룬 외전에 불과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작화만으로도 볼 가치는 충분하지만 선뜻 권해드리기는 어렵습니다.

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