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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8

깃털 - 소어 핸슨 / 하윤숙 : 별점 4점

깃털 - 8점
소어 핸슨 지음, 하윤숙 옮김/에이도스

깃털에 대해 모든 것을 고찰하여 알려주는 과학 서적입니다. 부제는 "가장 경이로운 자연의 걸작"이지요. 책은 어떻게 깃털이 진화하여 만들어졌는지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깃털의 주요 기능과 목적인 온도 조절과 비행, 그리고 장식 용도 세가지 항목을 각각 상세하게 설명해 주고요. 마지막으로 인간이 깃털을 활용해왔던 여러가지 사례들을 설명해주며 마무리됩니다.

인터넷 서점 소갯글을 보고 읽게 되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대박입니다.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거든요. 시조새 화석 이야기에서 시작되는 첫번째 단락부터 푹 빠져버렸습니다. 저는 공룡에서 새가 진화했다는 이론을 접했던 세대가 아니라서 더욱 빠져든 것 같아요. 이 책을 통해서 공룡이 갖춘 초기 깃털은 아마도 보온과 장식 용도가 더 컸을 것이다, 그리고 이후 진화하여 일종의 '활공' 용 깃털이 생겨난 것이다라는 진화의 과정을 상세하게 알 수 있었던 덕분입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건 이미 날 수 있는 공룡 (익룡) 이 있었는데 왜 활공용 깃털로 진화가 이루어졌을까? 라는 의문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이른바 WAIR 가설(Wing assisted incline running)로 발과 조합하여 높은 경사를 오르기 위함이라는데 무릎을 탁 치게 됩니다. 여기서 뛰어내리거나, 날아오르는 방향으로 점점 진화해 나가게 된 것이지요. 퍼덕거리며 높이 올라간 후 퍼덕거리며 뛰어내린다, 너무나도 그럴듯해요!

새의 온도 조절 메커니즘에 대한 이야기도 새로왔습니다. 새가 영하 수십 도의 높은 고도에서의 비행과 극지방, 물속에서 벼텨내고 뜨거운 열대 기후 속에서 생존할 수 있는 이유가 전부 '깃털' 덕분이라니 놀랍기만 합니다. 덕다운 파카, 이른바 오리털 파카는 우리도 한겨울 보온용으로 친숙한데, 새의 솜털은 우리가 생각한 그 이상으로 대단한 보온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솜털을 포함한 깃털은 현대의 공업 기술로도 만들어 낼 수 없는 복잡한 구조물(?)이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농담삼아 하는 "오리털 대신 닭털을 써서 싸구려다!"는 말은 책에 따르면 근거가 없네요. 깃털의 메커니즘은 모두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솜털을 쓰지않고 다른 깃털을 써서 싸구려다!"라고 해야 맞는 말인 것이지요.
새들이 체온이 올라갔을 때 체온을 내리는 다양한 방법도 재미있는데, 동물원 가면 가끔 보는 열대 조류인 큰부리새의 큰 부리도 체온을 내보내기 위해서 크게 발달했다는군요 단지 귀염귀염한 외모를 위해서가 아니었던거죠! 이렇게 체온을 유지하고 관리하는데 최적화되었기 때문에 이런 능력을 갖추지 못한 박쥐와는 다르게 전 세계 어디에서나 살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연의 신비는 정말 놀라워요.

극락조로 대표되는 새들의 기묘한 깃털 장식들과 인간 사회에서 유행했던 깃털 모자들, 이 때문에 이루어졌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바르바리 타조 밀수 작전, 그 외 깃털을 활용하여 만들어진, 심지어는 화폐로까지 이용되었던 공예품과 예술품들 이야기와 마지막을 장식하는 다양한 깃털 관련 물건들 이야기도 흥미가 넘칩니다. 깃털 책에서 플라이 낚시 미끼라던가 깃털 펜의 역사와 특징에 대해 읽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깃털 펜에 대해서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한 책은 읽어본 적이 없는데, 이런건 이전에 읽었던 문구 관련 서적에서 인용해서 다루어 주어도 좋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이 외에도 재미있는 내용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중국의 이시안 지층, 시애틀의 깃털 회사, 라스베이거스 깃털 의상 제조자, 뉴욕의 깃털 모자 디자이너, 오리건 동부의 플라이 낚시 전문가 등 여러 지역을 방문하여 현지 취재 및 인터뷰를 감행한 저자의 노력과 이러한 연구 와중에 곁들여지는 좌충우돌 경험담도 재미를 더해주고요.

한마디로 지식의 충족과 읽는 재미 모두를 갖춘 최상급의 과학 교양 서적입니다. 도판이 전부 흑백에다가 주요한 도판이 제대로 수록되어 있지 않은 점 때문에 감점하지만 별점 4점은 충분해요. 깃털에 대해 관심이 전무하셨던 분들이라도 한번 읽어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저처럼 새와 깃털에 푹 빠지시게 될 것을 장담합니다.

2019/06/01

이웃집 살인마 - 데이비드 버스 / 홍승효 : 별점 4점

이웃집 살인마 - 8점
데이비드 버스 지음, 홍승효 옮김/사이언스북스

사람이 왜 살인이라는 범죄를 저지르는지를 진화심리학 측면에서 분석해서 알려주는 책입니다. 살인이라는 감정이 생기는 이유에 대한 분석이 굉장히 설득력 있습니다. 짝짓기, 성적 경쟁 과정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며 다양한 예를 들어 설명하는 부분이 특히 그러합니다. 여성이 자신을 보호해주고, 많은 음식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남성을 선호하기 때문에 남성은 폭력을 통해 자신의 강함을 드러내는 쪽으로 진화해 왔다는 겁니다. 반대로 남성은 여성의 외모와 젊음에 많은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여성 간에는 이러한 부분에서 경쟁과 다툼이 일어나게 되었고요. 이는 나름 타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후손을 많이 남기기 위해 남성은 최상의 생식 능력을 지는 여성을 선호하도록 진화한 것이거든요. 당연하겠지만 단자 사람 뿐 아니라 모든 종에 거의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칙이라고 하네요. 정답이라고 하기에는 심리학 측면 내용이 많아 애매하지만, 최소한 저에게는 아주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남녀 관계를 분석한 부분도 흥미롭습니다. 인간은 여성의 배란 시기가 은폐되어 남성과 여성이 후손을 위해서는 장기적인 관계를 가질 수 밖에 없으며, 이는 남성의 손해와 희생을 불렀다는 대목입니다. 시간과 에너지가 한정되는 탓에, 남성이 자신의 후손을 가진 여성 외의 여성에게 자원을 투자하기가 힘들어 졌고 남성과 여성 사이의 관계가 가치있고 유지되어야 함을 보장해야 했기 때문에'사랑' 이라는 감정이 등장했다는 식입니다.
또한 이렇게 이어진 남성과 여성의 등급차가 존재하게 되면 각자 바람을 피우는 식으로 서로에게 원하는 자원을 획득하려는게 정상이라고도 합니다. 저자의 연구진이 여성들이 단기적인 관계를 가질 때에는 '섹시한 아들' 유전자를 추구한다는 정황적인 증거를 찾아내어 이를 증명했지요. 섹시한 아들이 후손을 많이 남길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아내가 바람을 핀 경우 남자는 자신이 자원을 투자한 여성이 자신의 후손을 남기지 않고, 다른 사람의 후손을 남기면 이중의 손해를 보게 되기 때문에 살인이라는 감정이 생겨나게 된다는데 굉장히 와 닿습니다. 이를 통해 사랑에 빠지거나 빠졌다고 착각한 남자가 왜 위험한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내용에 대한 검증도 통계와 실제 사례로 충실하게 이루어 집니다.

강간범에 대해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분노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도 합리적입니다. '성의 약탈자'는 상술한 자연스러운 후손 만들기와 그것을 위한 자원 투자에 역행하는 중요 범죄이기 때문입니다. 사악한 행위로 유전자에 깊이 기록되는건 당연합니다. 계부가 의붓 자식들을 학대하고 살해하는 이유 역시, 자신의 자원을 투자하기 싫다는 자연스러운 진화 이론의 결과고요. 

이외에도 다양한 살인의 유형을 진화와 심리학적 측면으로 분석하고 있으며, 각 유형별로 실제 사례도 충실하게 소개하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나저나 이 책의 방향성이 맞다면 일본의 유토리 세대나 우리나라의 3포 세대처럼 결혼과 가정, 후손에 특별한 목적 의식을 지니지 않는 사고 방식이 퍼지면 살인이 감소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하긴, 다른 것들을 포기한 사람들이 살인과 같은 노력과 수고가 많이 필요한 일을 벌이지도 않겠지만요.

실제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살의'를 품었다는 사람들의 인터뷰 내용이 많다는 점 외에는 딱히 단점을 찾아보기 어려운 좋은 책입니다. 제 별점은 4점입니다. 살인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해 궁금하신 분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2022/03/27

프로젝트 헤일메리 - 앤디 위어 / 강동혁 : 별점 3점

프로젝트 헤일메리 - 6점
앤디 위어 지음, 강동혁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태양의 에너지가 급감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타난 페트로바선이 에너지를 빼앗아 갔기 때문이었다. 태양 에너지를 흡수하는 외계 생명체 아스트로파지가 대량증식하여 이산화탄소를 찾아 금성으로 향하며 에너지를 내뿜는게 페트로바선의 정체였다. 아스트로파지의 증식과 감염으로 모든 항성들이 10% 정도의 에너지를 잃었지만 타우세티만 건재하다는걸 알아낸 페트로바 대책위원회는, 그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우주선 헤일메리를 건조했다.

'나'는 기억을 잃고 나는 기억을 잃고 우주선 안에서 홀로 깨어났다. 동료 두 명은 수면 여행 중 사망한 상태였다. 서서히 기억을 되찾은 '나'는, 내가 지구의 운명을 걸고 타우세티로 향한 헤일메리호의 유일한 생존자 라일랜드 그레이스 박사라는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타우세티에서, 같은 목적으로 이 별을 찾아온 외계인 '로키'를 만나게 되는데...


<<마션>>의 원작자가 쓴 장편 SF 소설. 지구를 살리기 위해 용감한 전문직 종사자가 목숨을 건다는 내용의 작품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일단 <<아마게돈>>이 생각나네요.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과학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날아오는 운석을 파괴하는 수준이 아니라요. 태양 에너지를 빼앗고, 이산화탄소를 향해 움직이면서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증식하는 아스트로파지의 생태에 대한 상세한 설정은 특히 돋보입니다.
뒤 이은,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위해 전 지구의 의지를 모으는 과정에 대한 묘사도 대단합니다. 라일랜드 그레이스가 아스트로파지에 대해 연구하여 그 생태의 비밀을 알아내는 과정, 알아낸 정보를 토대로 일종의 반물질 에너지원같은 아스트로파지를 우주선 연료로 사용하려는 모습 모두 적절한 과학적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어서 굉장한 설득력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전혀 개념은 다르지만, 엄청난 효율의 에너지원이기도 한 아스트로파지는 '시즈마 드라이브'가 연상되더군요.

타우세티에 도착한 후, '항성 40 에리다니'에서 온 외계인 로키와 만나 커뮤니케이션에 성공하고, 목숨을 건 모험 끝에 아스트로파지를 먹어치우는 '타우메바'를 채집하는 장면도 박진감 넘치고 흥미롭습니다. 탄탄한 과학적 배경을 바탕에 둔 건 마찬가지고요. 아스트로파지의 천적 타우메바도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스쳐지나가는 듯한 '진화' 관련 담론이 인상적이었어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진화한 로키와 그레이스가 어떻게 같은 주파수 소리를 듣는지에서 시작해서, "왜 같은 속도로 생각하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지는데 답이 아주 그럴듯했기 때문입니다. 그레이스의 가설은 각자 행성을 확실히 지배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지능을 갖춘 뒤 진화를 멈췄다는 겁니다. 그 기준은 '중력'이고요. 중력이 높아지면 땅과 접촉하는 시간이 늘어나므로, 움직임이 더 빨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데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과학자 역할의 그레이스, 그리고 뭐든지 만들어내는 엔지니어 로키로 확실히 구분되어 있는 팀 구성도 재미를 더해줍니다. 서로의 언어를 습득하고 진짜 친구가 된 뒤, 그레이스가 죽을걸 알면서도 로키를 구해주러 가는 장면은 뭉클하기까지 했습니다. "가고 있어 친구. 기다려"는 정말 명대사였어요.

전편에 흐르고 있는 유머도 남다릅니다. 프로젝트의 어원부터가 미식축구 등에서 경기 종료 직전에 역전을 노리고 시도하는 성공률이 매우 낮은 작전을 일컫고, 그레이스도 자기 부정 등이 포함된 기묘한 유머 감각으로 상황을 그려낼 뿐더러, 상황 자체가 유머스럽게 그려진게 많거든요. 목숨을 건 임무를 거부했던 그레이스를 속여서 강제로 우주선에 태웠던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총책임자 에바의 행동이 대표적이었습니다. 충격적인 반전이기도 한데 솔직히 너무 웃겼습니다.

그러나 편의적인 전개가 너무 많기는 합니다. 그레이스와 로키가 만나고, 서로 커뮤니케이션에 성공한다는 것 부터가 그러합니다. 이게 가능하다면, 아이큐가 80이 넘는다는 돌고래와는 왜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한건지 설명이 안됩니다. 설령 가능했다 한 들, 만나고 얼마 되지도 않아서 아스트로파지를 없애는 방법을 함께 찾을 정도로 서로의 언어에 숙달하게 되었다는건 억지입니다. 외계인이 언어 체계를 제외하면, 사고 방식 등이 모두 인류와 유사하다는 설정도 지나치게 편의적이었고요.
그 외에도 타우메바의 진화가 쉽게 이루어지는 등 비교적 해결책이 쉽게 도출된다던가, 진화한 타우메바가 제노나이트를 뚫고나와 아스트로파지를 먹어치우는 위기에서 타우메바의 유일한 천적(?)인 질소를 우주 비행사 중 한 명이었던 두보이스가 자살용으로 헤일메리에 실어놓았었다는 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도 7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에 과학적인 설명도 가득 담겨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미까지 있어서 무척 놀라왔던 작품입니다. 별점 3점은 충분하지요. 베스트셀러 작가는 확실히 다르네요.

2025/11/02

일상 감각 연구소 - 찰스 스펜스 / 우아영 : 별점 3점

우리의 오감이 어떻게 일상에 영향을 주는지를 흥미롭게 풀어내는 과학, 인문학 서적입니다. 감각은 단순히 받아들이는 수단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 행동, 관계, 심지어 생산성과 건강까지 좌우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요. 

'일상의 감각들을 어떻게 더 나은 방향으로 해킹할 수 있을까'에 대한 여러 가지 팁들이 가득한데, 특히 실생활에 적용해볼 수 있는 구체적인 팁들이 인상적입니다. 예를 들어, 수면의 질을 높이기 위해선 귀마개를 '오른쪽 귀'에 꽂아야 한다는 연구처럼요. 이는 수면 중 좌뇌가 경계 태세를 유지한다는 뇌의 편측성에 근거한 것으로, 처음 알게 된 사실이라 꽤 놀라웠습니다. 잠들기 전 발을 따뜻하게 해주는게 수면을 유도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도 기억에 남고요. 자기 전 따뜻한 물로 샤워하거나, 발 밑에 뜨거운 물병을 두는 것만으로도 수면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아진다고 하니, 잠이 잘 오지 않는다면 시도해 볼 만 해 보이네요.

또 하나 흥미로웠던건, 운동 경기력에 영향을 주는 ‘탄수화물 음료 헹구기’ 실험이었습니다. 단 몇 초간 입 안에서 단 음료를 헹구는 것만으로도 뇌가 에너지 유입을 예측하며 운동 성과가 향상된다는데, 우리가 얼마나 무의식적으로 감각에 영향을 받는 존재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향기 하나, 소리 하나, 피부에 닿는 감촉 하나까지도 우리의 뇌는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반응을 달리한다는걸 이만큼 잘 드러내는 실험도 없지 않을까 싶고요.

이렇게 과학적 실험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일반 독자들도 쉽게 이해하고 일상에 적용할 수 있도록 잘 정리되어 있고, 실용적인 팁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례가 가득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목차가 좀 정리되지 않은 느낌은 들고, 도판이 전무하다는 단점은 있지만 사소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기획, 마케팅 전문가들이 꼭 참고해야 할 도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주제별로 아래와 같이 간략히 정리하여 소개드립니다. 


공간과 감각

- 집의 냄새는 그 공간의 인상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이며, 바닐라나 커피 향은 긍정적인 인상을 주는 반면, 반려동물이나 담배 냄새는 집값을 낮출 수 있다.
- 인간은 진화적으로 개방된 조망과 은신처가 있는 공간을 선호하며, 이는 실내 식물, 곡선 구조, 원형 테이블 등을 더 편안하게 느끼는 이유로 설명된다.
- 원형 테이블은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 테이블보다 협동적 분위기를 만들고, 음악이 흐르면 사람들 간의 거리도 좁아진다.

자연 노출의 효과

- 잠깐의 자연 노출만으로도 기분과 건강, 집중력이 향상되며, 이는 용량 의존적이다.
- 숲 가까이 사는 사람은 실제로 뇌 구조에서 회백질 밀도가 높아지는 변화가 나타났고, 병원 창밖에 자연 경관이 보이는 경우 회복 속도도 빨라진다.
- 자연의 시각 자극 외에도 자연 소리나 냄새 등 감각 자극 역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수면과 환경

- 최적의 수면 환경은 조용하고 어둡고 서늘해야 하며, 온도는 16~24도 사이가 이상적이다.
- 잠자기 전 따뜻한 목욕은 심부 체온을 낮추고 수면 유도를 돕는다. 이때 이상적인 수온은 40~42.5도이다.
- 귀마개는 오른쪽 귀에 착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며, 이는 좌뇌가 경계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 수면 중에는 간단한 학습이 가능하다는 연구도 있으며, 좋은 수면은 창의성 향상에도 기여한다.
- 낯선 공간에서의 첫날 밤 효과는 진화적 경계 반응으로, 익숙한 향기나 소리로 완화할 수 있다.

소리와 경계 반응

- 운전자의 뒤에서 들리는 경고음이 가장 효과적인 이유는 뇌가 머리 뒤 공간을 감지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 자동차 문 소리, 대시보드 두드림, 방향 지시등 소리까지도 소비자의 감정과 신뢰감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사무실과 소음

- 개방형 사무실은 생산성과 만족도 모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많으며, 소음이 특히 문제가 된다.
- 갈색 소음은 자연 소리보다 실제로 집중력 향상에 더 효과적이었으며, 자연 소리는 실내보다는 야외에서 더 효과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운동과 감각 피드백

- 빠른 템포의 음악은 운동 능력을 향상시키며, 자신이 음악을 통제하고 있다고 느끼면 그 효과가 더 커진다.
- 에너지 음료를 마시지 않고 입 안에서 헹구는 것만으로도 뇌는 에너지를 예측하고 운동 성과를 높인다.

매력과 진화심리

- 얼굴의 대칭성, 미소, 시선, 목소리, 피부색 변화 등은 모두 진화적 적합성 신호로 작용하며,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 남성은 여성의 엉덩이 움직임에, 여성은 남성의 상체 움직임(특히 오른쪽 무릎)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춤 관련 연구도 있다.
- 빨간색 옷이나 하이힐은 요추 곡률을 강조하며, 남성에게 성적으로 더 매력적인 신호를 줄 수 있다.

향기와 매력, 마케팅

- 링스 데오도란트처럼 쾌적한 향기는 사진 속 얼굴의 인상까지 바꿀 수 있으며, 뇌의 보상 중추가 활성화된다.
- 다카사고와의 협업 연구에서는 특정 향기가 여성의 나이를 더 젊게 보이게 만든다는 결과도 있다.
- 향기는 의식하지 못할 정도의 약한 농도에서 더 효과적이며, 사람의 판단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소비 행동과 감각

- 레스토랑에서는 느린 음악이 손님의 체류 시간을 늘리고 소비 금액을 증가시키며, 매장 온도가 낮을수록 제품을 더 고급스럽게 느낀다.
- 소비자가 듣는 음악의 국가 분위기에 따라 와인 구매 선택이 달라지는 등의 사례도 있으며, 감각 자극은 소비 결정에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간단한 센스 해킹 방법

- 좋은 냄새가 나는 수건이 더 부드럽게 느껴진다.
- 샤워를 좋아한다면 냉수샤워를 해보자. 병가 일수를 줄일 수 있다.
- 주름을 일시적으로 제거하는 페이스 크림의 주요 기능은 향이다.
- 자연의 소리는 평온한 느낌을 주며, 새소리가 많이 들릴수록 더 효과적이다.
- 옆집이 시끄럽다면 같은 소리를 들으면 더 잘 잘 수 있다.
- 가족용 자동차는 스포츠 모드에서 빨간 조명과 엔진음을 키워 성능 향상 느낌을 준다.
- 실내 식물은 사무실 공기 오염을 줄이고, 깨끗한 공기는 업무 생산성을 높인다.
- 여성은 사무실에서 더 추위를 많이 타므로 온도를 높이면 생산성이 증가한다.
- 스트레스를 유발한 회의 뒤에는 다른 냄새를 맡아 정신 상태를 전환해보자.
- 개방형 사무실에서는 하루 평균 86분이 방해받는다. 배경음악을 들으면 생산성이 오른다.
- 패스트푸드점에서 빵 굽는 냄새는 고객의 구매 가능성을 높인다.
- 느린 음악이 흐를 때 쇼핑객은 돈을 더 많이 쓴다.
- 운동할 때 음악 속도를 10퍼센트 빠르게 하면 운동 효과와 즐거움이 향상된다.
- 테니스 경기에서 포효는 실제 경쟁 우위를 제공한다.
- 관중의 소음은 심판의 판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 운동 중 웃으면 달리기 효율이 향상된다.
- 운동 중 7~8분마다 탄수화물 맛만 봐도 운동 능력이 증가한다.
- 스포츠 팀의 장비 색상을 검은색으로 하면 승률이 높아질 수 있다.
- 데이트 중엔 스릴러 영화를 보면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 사람의 나이는 냄새로 알 수 있지만, 성별은 알 수 없다.

2009/11/09

별의 계승자 - 제임스 P 호건 / 이동진 : 별점 3.5점

별의 계승자 - 6점
제임스 P. 호건 지음, 이동진 옮김/오멜라스(웅진)

달에서 5만년이 경과된 것으로 보이는 우주비행사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우주복 안의 유골은 인류와 똑같은 호모 사피엔스. "찰리"라고 불리우게 된 이 유골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일전에 "해물파전" 님이 댓글로 추천해주신 책인데 이제서야 구입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읽어보니 해물파전님의 추천 그대로 엄청난 하드 SF이기는 하지만 추리소설적인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SF라는 쟝르에 태생적으로 거부감이 있는 (? 예체능과 출신입니다^^) 제가 무척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을 정도로 뛰어난 작품이더군요! SF는 원래 취향이 아닌지라 해물파전님의 정보가 아니었다면 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정말 감사드립니다.^^

사실 이 작품과 같이 인류는 어떻게 유래되고 진화되었는가? 라던가, 진화상의 미싱링크의 이유는? 과 같은 인류의 발생과 진화에 대한 수수께끼를 밝혀나가는 이야기는 널리고 널렸죠. 인류의 기원과 진화에 있어서 외계인이 개입했다는 아이디어 역시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니고요. 그러나 이 작품은 21세기 달에서 발견된 5만년전 유골이 우주복을 갖춰입은 현생 인류와 동일한 호모사피엔스라는 이야기의 발단부터 무척 흥미진진하며 이후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전개 과정이 굉장히 기발하면서도 내용도 대담하고 스케일이 무척 커서 차별화된 재미를 선사해주고 있습니다. 추리소설로 보아도 괜찮을 정도로 공정한 단서와 치밀한 전개가 맞물려져 있기에 추리 애호가로서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마지막의 반전도 좋았습니다. 유물 발굴에 대한 사족은 없는게 나았겠지만...^^;;

또한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찰리가 남긴 유물(?)들을 토대로 제기되는 다양한 단서들, 예를 들면 "달력"과 지형지표, 각종 서류들에 대한 디테일한 언급과 그에 따르는 여러 묘사들 - 찰리의 유체를 토대로 인체에 미친 조석간만의 차를 연구해서 하루의 시간을 알아내어 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밝혀내려 한다던가, 언어를 파악하기 위하여 달력으로 보이는 문서와 개인 서류를 조사하여 공통된 단어를 찾아낸다던가 - 은 하드 SF답게 많은 이론들이 전개되지만 이 역시 추리적인 재미가 곁들여져 있었기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70년대 쓰여졌지만 낡아보이지 않는 상상력 역시 단연 돋보이는 부분이고 말이죠.

이러한 대단한 전개와 비교한다면 캐릭터가 너무 매력이 없는 무미건조한 인물이라는 것이 조금 아쉽긴 한데 어차피 캐릭터의 매력에 기대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큰 흠으로 보이지는 않네요. 별점은 3.5점입니다. 취향을 좀 타기야 하겠지만 SF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일반 대중들을 만족시킬만한 재미가 있는 매력적인 작품임이 분명하기에 적극! 추천합니다.

PS : 책의 표지 디자인은 지나치게 전위적...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최소한 제목은 좀 잘 읽을 수 있게 해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울러 표지가 너무 구김이 많이 가는 소재로 제작된 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네요...

2016/03/04

요리 본능 - 리처드 랭엄 / 조현욱 : 별점 3점

요리 본능 - 6점
리처드 랭엄 지음, 조현욱 옮김/사이언스북스

인류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진화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요리"였다는 것을 다양한 근거를 들어 설명하는 책으로 진화, 인류학, 생물학 모두를 아우릅니다.

최근 유행한다는 "생식"을 주로 하는 생식주의자를 찾아가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생식주의자의 체중이 감소하고 여성의 생리불순에 성욕마저 떨어진다는걸 알려주지요. 그 뒤 인간은 화식, 즉 불로 조리를 해야 살아갈 수 있다는걸 차근차근 설명해 줍니다. 소화는 에너지 소비가 큰 고비용의 처리 과정인데 익힌 음식을 먹게 된 덕에 더 적은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소화를 잘 시킬 수 있었고, 덕분에 더욱 건강해지고 번식도 잘 하게 되었으며 궁극적으로 생태계의 정점에 서게 되었다는 겁니다. 내용 중에 찰스 다윈은 불로 하는 요리를 "언어를 제외하면 아마도 인간이 이룩한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고 했다는데 정말 그 말 그대로에요.

이러한 내용이 상세하고 다양한 근거들을 통해 뒷받침됩니다. 익힌 음식을 섭취할 때의 효율이 더 좋다는 여러 조사 결과라던가, 다양한 원주민들의 식문화를 조사하여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익히 알려진 것과 다르게 생식 대신 열을 가하여 조리해 먹는다는 문화사적 연구 결과 등이 그러합니다.

"요리가 언제 처음 시작되었을까?"에 대해서도 80여만 년 전의 유적지 발굴을 통한 근거 제시는 물론, 인류가 하빌리스에서 직립원인으로 진화한 변화를 가지고 시점을 추측하여 설명하는데 상당히 논리적이라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울러 요리가 도입되었기에 인간의 활동 반경이 넓어졌는데, 일종의 '사회'가 구성된 후 남녀의 역할이 명확하게 정해진 이유에 대한 설명도 설득력이 높습니다. 자신 몫의 음식, 요리를 지키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암묵적으로 발생했고, 여성이 남성이 수렵해 온 고기를 요리하는 것이 당연해졌다는데 아주 그럴싸했어요.

저도 평상시 식사 칼로리는 신경을 쓰는 편인데, 단순히 칼로리가 아니라 "얼마나 소화에 에너지를 소비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도 재미있었고요.

이렇게 독특한 주제를 쑥쑥 읽힐 정도로 쉽고 재미있게 쓴 책이라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도판이 굉장히 부실하다는 점, 그리고 주석이 방대한데 비해 보기가 힘들다는 점 정도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인류학, 진화, 그리고 요리에 대해 관심 있으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2018/10/06

과학의 미해결 문제들 - 다케우치 가오루, 마루야마 아쓰시 / 홍성민 : 별점 2점

과학의 미해결문제들 - 4점
다케우치 가오루.마루야마 아쓰시 지음, 홍성민 옮김, 최재천 추천/반니

대멸종의 원인에서 블랙홀 관찰까지, 과학사의 열두 가지 미 해결 문제를 설명해 주는 과학 서적입니다. '미해결'이라는 단어의 울림이 좋아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실망이에요. 평범한 직장인이 이해하기에 너무 어러웠던 탓입니다. 처음의 '푸앵카레 추측'은 어떻게든 쉽게 설명해 주려는 노력이 돋보이는데, 뒤로 가면 갈 수록 그런 노력이 전무합니다. 특히 시간 여행을 설명하며 등장하는 초끈 이론은 정도가 너무 심해요. 무슨 이야기인지 도무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또 수학과 과학 분야에 있어 독자가 이해하기 위한 결정적 한 방도 부족합니다. 푸앵카레 추측이 증명되었다는게 서스턴의 기하화 추측을 증명해냈기 때문이라는데, 뭘 어떻게 증명했는지는 설명되지 않는 식입니다. 물론 한 주제 당 30~40 페이지에 불과한 분량에서 이런 내용을 모두 설명하는건 불가능했겠지만, 그래도 제일 중요한 내용이 빠진 느낌이라 기분이 영 별로에요. 소수와 리만 가설에서 1, 2 다음에 오는 숫자가 42라는 것도 왜인지 설명되지 않아 답답했고요. 그 외에도 설명이 부족한 내용이 너무 많습니다.

물론 조금이나마 제 지식을 채운 부분도 있기는 합니다. 대표적인 것은 진화론 관련 설명입니다. 라마르크의 용불용설 - 획득 형질 유전설 - 이 잘못되었다는걸 부모가 열심히 공부했더라도 자녀의 머리가 좋아지지 않는다는 단순한 한 마디로 알려주는데 머리에 쏙 들어오더라고요. 이와 다르게 다윈의 진화론은 '형질의 차이는 우연히 발생하며 환경에 적응한 생물이 선택되는 것이다'라는 차이가 있으며, 진화는 아직 명확히 증명된 게 아니라는 이야기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고요. 진화에는 방대한 시간이 걸리며, 진화는 한번 뿐인 현상이기 때문이라네요.
마지막으로 뱀장어의 번식이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도 처음 알았는데 꽤 재미있었습니다. 지금은 조사를 통해 뱀장어의 산란 장소가 대충 밝혀졌는데, 이는 대륙 이동 이전의 장소가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론도 새로왔습니다.

하지만 재미있고 가치있던 내용보다는 그렇지 않은 내용이 훨씬 많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별로 권해드릴만한 책은 아니네요.

2024/03/29

딜리셔스 - 롭 던. 모니카 산체스 / 김수진 : 별점 4점

딜리셔스 - 8점
롭 던.모니카 산체스 지음, 김수진 옮김/까치

진화생물학과 인류학 관점에서 먹거리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를 알려주는 과학, 식문화사, 인문학 서적.

이 책에 따르면 동물들의 거주지가 제한되는건, 동물들의 미각 수용체가 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물들은 입맛에 맞는 먹이가 있는 장소를 떠나기 힘들지요. 그러나 인류는 조리를 통해 이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재료를 자기 입맛에 맞게 만들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인류가 불을 사용한 것도 불로 조리한 음식이 더 맛있어졌기 때문이고요.
음식 조리는 음식 소화 시간도 단축시켰습니다. 침팬지는 깨어 있는 시간의 40%를 먹이를 씹는데 씁니다. 하지만 인류 조상들은 이 시간을 대폭 줄였고(현재는 평균 하루의 4.7%를 씹는데 소모), 남는 시간과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조리가 문명을 발달시킨 한 요인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맛있는 요리에 대한 집착은 수렵 채집으로 살아가는 원주민들을 조사한 결과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선호하는 음식 - 1위는 꿀 - 을 구하는데 더 큰 노력을 기울인다고 하거든요.
이런 집착은 북아메리아에서는 거대 동물(매머드 등)의 멸종도 불러왔습니다. 불법이지만 코끼리 고기를 먹어본 사람들에 따르면 엄청나게 맛있다니까요. 특히 코끼리는 발 요리가 최고라고 합니다. 당연히 매머드도 맛있었을테고, 그래서 크로비스인들도 멸종할 때까지 매머드를 집중적으로 노렸던 것이지요.
맛있는 동물만 사냥하는건 지금도 수렵인들을 통해 증명됩니다. 현실적으로는 찾아서 죽이기 쉽고, 가공하기 쉽고 많은 열량을 제공하는 동물을 잡아 먹는게 일반적이겠지만, 연구 결과 사냥꾼들은 맛있는 동물들을 발견하면 무조건 추격한다고 합니다. 사냥하기 쉬운 동물은 그렇지 않았는데 말이지요. 게다가 맛없는 동물들은 아예 사냥 대상에서 배제되고요.

향미에 대한 추구는 향신료의 사용도 불러왔습니다. 처음에는 항균제로 사용되었을 수도 있지만, 쾌락적 경험을 불러오는 효과 때문에 널리 퍼졌습니다. 이는 고추의 캡사이신을 조금씩 늘려 제공했을 때, 모든 사람들이 견딜 수 있는 가장 매운 맛이 가장 맛있다고 골랐다는 연구 결과로도 증명됩니다. 통각을 자극하는 맛은 실제 죽음의 위협을 받지 않으면서도 위험을 피할 때의 황홀감을 느끼게 해 주는게 아닌가 싶네요.
발효도 항균제 효과와 같은 이치로 생겨났을 겁니다. 장기 보관을 위해서요. 같은 이치로 염장, 훈제, 건조도 발명되었고요.
참고로 이 부분에서 아예 고기를 물에 담궈놓는 일종의 습식 숙성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말 한마리를 호숫물에 담궜던 실험이 소개되는데 굉장히 신기했습니다. 진공 포장을 하지도 않았는데도 장기 보존되었다는데 이유가 궁금해지더라고요. 일종의 발효같은 과정이 일어난 것이겠지요?

손이 많이 가는 복잡한 숙성 연성 치즈가 만들어진 것도 맛에 대한 추구때문이라는 이론도 흥미로왔습니다. 노동과 근면을 장려하고, 재료는 모자람이 없었지만 먹는건 제한적이었던(고기를 먹지 못햇던) 수도사들이 심혈을 기율여 그들이 먹을 수 있는 가장 맛있는 치즈를 제조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는게 숙성 연성 치즈 제조의 원인이라는데 참 그럴듯했어요. 이 이론은 숙성 연성 치즈의 맛은 고기와 흡사하다는걸로 증명될 수 있고요.

이렇게 맛있는 음식, 요리에 대한 추구가 문명 발전과 인류 진화를 이끌었다는걸 알려주는데, 목차 구성이 다소 정리가 불충분한 느낌이 드는건 아쉬웠습니다. 주제에 맞게끔 통사적으로 구성하는게 좋았을텐데 말이죠. 도판과 등장 레시피 소개도 부실합니다. 

그래도 맛에 대한 집착이 진화를 이루어냈고, 식문화의 발달을 만들었다는걸 여러가지 연구 결과를 통해 쉽고 재미있게 알려주는 좋은 책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그나저나, 이 책을 보니 맛에 대한 집착이 많은걸 이루어낸건 분명한 만큼, 맛에는 다소 엄격해져도 될 것 같군요.

2014/03/12

한중일 밥상문화 - 김경은 : 별점 2.5점

한중일 밥상문화 - 6점
김경은 지음/이가서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의 음식 비교를 통해 문화적 고유성과 유전자를 탐색한다는 취지의 책입니다. 같은 재료를 다르게 조리하거나, 같은 조리 방식이지만 다르게 진화한 것 같은 비교 가능한 주제들로 엮여 있습니다. 식은 밥을 요리해 먹는 것의 대명사가 한국에서는 비빔밥이고 중국에서는 볶음밥이라는 차이, 김밥과 스시의 차이, 누룽지를 이용한 숭늉과 누룽지탕의 차이, 빈대떡과 전병(라이빙), 오코노미야키를 비교하여 소개하는 식으로요.

묵직한 주제를 가지고 있지만 풀어나가는 과정은 요리와 식문화 중심이기 때문에 꽤 재미있습니다. 새로 알게된 정보도 제법 됩니다. "가이세키(회석) 요리"의 명칭 유래처럼요. 누룽지탕의 유래, 고추에 관련된 쓰촨과 후베이 출신 혁명 동지들의 일화 등 소소한 에피소드들도 마음에 들었어요.

중국 4대 미인 요리도 처음 알게 된 것인데, "서시설"은 서시가 희생된 바닷가에서 잡히는 사람의 혀를 닮은 조갯살 요리. 상하이의 "귀빈계"는 포도주로 간을 한 암탉 요리로, 양귀비가 사람을 홀리는 것처럼 취하게 만든다고 하여 붙은 이름입니다. "초선두부"는 모두부와 미꾸라지를 함께 끓인 추두부탕이고요. 간교한 동탁은 미끌미끌 미꾸라지, 하얗고 부드러운 두부는 초선으로, 두부로 미꾸라지를 요리했다는 직선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마지막 왕소군의 "소군오리"는 당면으로 오리탕을 끓인 음식이라네요. 상상이 잘 가지는 않습니다만.

그러나 단순히 해당 국가에서 그 음식이 어떻게 진화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대부분이며, 문화적 고유성과 유전자를 탐색한다는 취지에 걸맞는 수준을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음식 진화 방향에 대한 배경은 객관적이라 보기 어려운 탓입니다. 학술적 근거도 명확하지 않고요. 

책 소개에 - 한ㆍ중ㆍ일 DNA음식, 국민음식이 된 유래와 재료는 물론 음식을 대하는 그 나라 국민의 태도, 정치에 투영된 음식문화, 식생활과 습관 그리고 미용(美容)과 보양식 등을 동원하여 그 흔적과 함께 3국 국민성을 찾아간다. 그리고 이를 통해 생존이라는 보편적인 욕구가 독창적 요리로 발전, 각 국 고유의 음식문화로 정착되고 이웃나라와 영향을 주고 받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규범과 정치적 이해 그리고 권력의 기호 등에 의해서 설정된 규칙이 독특한 ‘밥상문화’를 형성한다고 보았다. - 라고 언급되는데, 대체 저런 시각과 논리가 어디에 등장하는지 저는 전혀 모르겠습니다.

이럴 바에야 요리, 식문화에 대한 역사적인 내용과 관련된 에피소드만 실어주는 게 훨씬 나았을 거예요. 딱히 요리를 비교해서 뭔가 얻어낼 게 없다면 말이죠. 요리 자체가 문화적, 사상적, 역사적으로 강한 의미가 있지도 않으니까요. 아예 주제를 좁혀서 그 주제에 맞는 음식, 요리, 식문화만 걸러내는 게 낫지, 어렵게 주제의식을 가지고 접근해봤자 사실 와닿지도 않을 뿐더러 그러한 주제의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도 어려운데 왜 어려운 길을 가려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비슷하게 접근했던 주영하 씨의 "챠폰 쟘폰 짬뽕"이나 "음식 전쟁 문화 전쟁"이 떠오르네요.

주영하, 윤덕노 씨의 저서 내용이 인용되는 등 다른 곳에서 읽은 내용도 적지 않고, 오히려 다른 콘텐츠에서 소개한 것과 다른 정보를 전달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도 아쉬웠습니다. 특히 "자장면", "짬뽕" 이야기는 아무리 3국을 비교하기 쉬운 소재였다 하더라도 너무 많이 알려진 것이라 후발주자 위치에서 또 소개하기에는 적절치 못했습니다.

소를 잘 먹지 않은 중국과 한국에서 소는 그만큼 중요한 가축이었다고 이야기한 뒤, 바로 우리 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소를 세분화하여 먹는다고 소개하는 식의 전개도 좀 어이가 없더군요. 중국이 김치의 종주국임을 주장한다던가, 일본의 기무치도 호시탐탐 김치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던가 하는 식의 국수주의적인 글도 문화사와는 별 상관이 없지 않나 싶었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재미가 없지는 않으나 앞서 이야기한 대로 특정 재료, 음식을 주제로 하여 3국의 차이와 소소한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식문화를 재미와 함께 전달하는 취지의 책이 더 나았을 겁니다.

2022/05/22

제노사이드 - 다카노 가즈아키 / 김수영 : 별점 2.5점

 

제노사이드 - 6점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황금가지

<<아래 리뷰에는 소설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학원생 고가 겐토는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친 뒤, 아버지가 보낸 수수께끼의 메일을 통해 기묘한 노트북과 거액, 그리고 은신처를 입수하였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불륜을 의심했지만, 곧 아버지가 '폐포 상피 세포 경화증'의 치료약을 만들고 있었다는걸 알게되었다. 영문도 모른채 경찰에 쫓기게 되자 겐토는 은신처에 숨어 아버지의 연구를 이어받는다.
한 편, 아프리카에서 예거가 이끄는 용병 4명에 의한 '네메시스 계획'이 진행되었다. 피그미 족 부부에게서 태어난 초인류 아키리를 말살하는 미국 주도의 작전이었다. 그러나 미 정부는 용병들도 모두 죽일 생각이었고, 이를 알아챈 용병들은 아키리와 손을 잡고 아프리카를 빠져나갈 계획을 세우는데...


다카노 가즈아키의 장편 과학 액션 스릴러. 아프리카 탈주극과 일본에서 약을 제조하려는 겐타의 이야기라는 두 개의 큰 축을 가지고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이 중 아프리카 탈주극, 즉 미국 정부가 진화한 초인류 아키리를 말살하려 하지만, 아키리 일행이 이를 뿌리치고 아프리카를 탈출하기 위해 벌이는 여러가지 모험들은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무제한의 자금은 물론, 거의 대부분의 정보를 쥐고 있는 미국 정부의 목표물이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여러가지 계획들의 짜임새가 돋보였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설정도 괜찮았습니다. 사실 이 작전에 정식 미국 군대가 투입되었다면 아무리 초인류의 지능이라도 아키리 일행이 살아남기는 불가능했을거에요. 그러나 정치적, 외교적으로 섣불리 정식 군대를 투입할 수 없었기에 소수의 용병을 고용하여 작전을 실행했고, 이들을 막아서는건 미군이 아니라 현지 무장 단체라는 상황이 조성되어 그나마 탈출할 수 있었으니까요. 이를 내다본 아키리 일행이 자기들이 포섭하여 탈출에 활용할 수 있는 인물들로 용병들을 구성했다는 것도 꽤 그럴싸했고요.
작전에 참여한 용병들의 이력과 그들의 능력은 물론, 도주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겪는 아프리카 무장 단체와의 교전도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제일 압권은 클라이막스라 할 수 있는, 소년병 집단과의 교전이었어요.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아이를 죽여야 하는 딜레마가 실존했던 아프리카에서의 소년병 징집과 훈련 역사와 맞물려 극대화되어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아키리의 누나 에마가 일본에서 이들을 도와주고 있었다는 반전도 괜찮았습니다. 아키리의 능력만으로는 어려웠을 여러가지 일들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가 명쾌하게 설명되면서도, 초인류의 가공할 능력을 잘 선보이고 있기도 하니까요.

이런 밀리터리 스릴러스러운 이야기 외에도 '초인류'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도 볼거리였습니다.
만약 지금 인류의 지성을 아득히 뛰어넘는 초인류가 진화의 결과 나타난다면, 그는 인류를 어떻게 할 것인가? 에 대해 화두를 던지고, 이에 대해 등장인물들 (주로 루벤스)의 입을 빌어 털어놓는 작가의 생각이 아주 흥미로왔던 덕분입니다. 초인류가 무서운 것도 그의 지력과 무력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이의 인격이라 말하며 이를 현재 인류에 빗대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현재 인류가 얼마나 호전적이고 폭력적인지에 대한 설명을 여러 명의 입을 통해 쌓아올리다가, 아프리카에서의 잔혹한 체험에 뒤 이어 이야기하니까 훨씬 더 와 닿았던 것 같네요.
미국은 민주주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일종의 독재 국가로 그 리더가 누구냐에 따라 전 세계적인 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는 현실을 드러내는 번즈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캐릭터들도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반대 의견의 문제점은 꼬치꼬치 따지면서 배제하고, 찬성하는 사람들만 주위에 가득하게 채워 가는 것'은 미국 정부 뿐 아니라 작은 회사에서도 흔히 보아왔던 일인데, 이렇게 설명되니 이해가 쉬워서 좋았고요.
'하이즈먼 리포트'를 중심으로 한 초인류가 탄생할 수 있는 여러가지 가능성에 대한 그럴듯한 이론들 등 작가의 생각을 설명하기 위해 방대한 자료를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부분에서는 굉장한 노력이 느껴졌습니다.
덧붙이자면 저 개인적으로는 '초인류'가 나타났다 하더라도, 그 개체 한 명이 과연 인류에게 위협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조금 회의적입니다. 실제로 이 작품에서도 아키리 혼자서는 절대로 살아남지 못했을테니까요. 현생 인류의 지성을 아득히 뛰어넘어 온갖 자연 현상마저도 예측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현대 무기를 이겨내지 못한다는 한계는 존재하고요. 노화와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 역시 분명합니다. 즉, 최소한의 '세력'을 형성할 수 있는 개체수가 필요합니다. 물론 잘 성장한다면 지극히 '신'에 가까운 존재가 될 테니, 인류에게 위협이라는건 분명한 사실입니다만, 한, 두명으로는 조금 버거운 것도 사실이지요.

하지만 다른 한 개의 축, 일본에서 겐토가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아 에마가 만든 프로그램 기프트를 활용하여 '폐포 상피 세포 경화증'이라는 불치병을 치료하는 약을 만들어 낸다는 이야기는 솔직히 별로였습니다. 아버지의 의문의 죽음 이후, 아버지로부터 기묘한 메시지를 받고 우연찮게 노트북을 손에 넣기까지의 과정은 재미있어요. 신약 개발에 대한 디테일도 엄청난 수준이고요. 그러나 평범했던 주인공이 급작스럽게 '세계를 위해' 일했던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고, 이를 막으려는 거대 조직과 싸운다는 일본 만화 등에서 수도 없이 보아왔던 전형적인 설정에서 그다지 나아가지는 못했습니다. 경찰에게 쫓긴 뒤 은신처에 잠입하고 나서부터는 딱히 위협도 없어서 재미도 떨어지고요. 오히려 겐토가 이 약을 만드는데 거의 목숨까지 거는 이유가 제대로 설명되지 못하는 단점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약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하여 과학자로 한 걸음 나아가고, 아버지에 대해 되새기게 되는 성장기스러운 부분도 지나칠 정도로 전형적이었어요.
또 겐토 이야기가 이렇게 많은 비중을 차지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아키리를 죽이려고 했던 용병단 리더 예거의 아들이 이 병에 걸렸고, 예거를 자신들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약을 만드는 것 처럼 묘사되고 있지만 이 계획은 헛점이 너무 많습니다. 예거가 이런 터무니없는 말만 믿고 아키리를 돕게 된다는게 과연 말이나 될까요? 예거의 아들이 작전 완료 시점까지 살아있을 가능성, 약이 그 때까지 완성되리라는 보장도 없고요. 용병들을 설득하는건 미 정부가 그들에게 준 약이 독약이라는걸 증명하는걸로 충분했을겁니다. 실제로도 그랬고요. 즉, 겐토 이야기는 모두 빼더라도 이야기 전개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습니다. 겐토의 가장 중요한 조력자로 한국인 유학생 '정훈'이 등장하는 부분은 한국인 독자로서 반가왔지만 이 역시 큰 줄기의 이야기와는 관계가 없다는 점은 마찬가지였어요.
하긴 애초에 아프리카 탈출부터가 문제입니다. 아프리카에서 그냥 탈출해서 은신하면 되었을 텐데, 왜 자기 존재를 노출하여 스스로를 위험에 빠트리는지가 전혀 설명되지 않으니까요. 초인류가 생각해 낼 만한 작전치고는 헛점이 너무 많았습니다. 헛점은 그 외에도 많아요. 용병단 구성도 안배된 것으로 보이지만 일본인 믹이 왜 포함되었는지는 불분명하고, 마지막에 전투기를 자연 현상으로 격추하는 부분도 완벽한 초인류의 예측과는 별개로 조종 자체는 불완전한 '인간'이 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계획이라고 하기는 힘듭니다. 여객기 추락 후 피어스 해운의 배가 근처를 지나간다는걸 미정부가 놓쳤다는 결말도 안일하기 짝이 없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재미는 있었지만, 설득력이 낮은 부분이 많아서 아쉬웠습니다. 일본에서의 이야기를 구태여 삽입할 필요 없이, 아프리카에서의 탈출 계획만 정교하게 그려내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겁니다. 악의 우두머리도 미국 대통령보다는 CIA 국장 쯤으로 하는게 보다 현실적이었을테고요. 만화로 각색된 버젼이 있다면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그간 격조했던 이유는 리뷰를 쓰기 위해 이용하는 에버노트 모바일 버젼이 심각하게 느려지고, PC와 동기화가 되지 않는 문제가 생겼던 탓입니다. 그동안 모바일로 썼던 글 여러 편을 날려먹었네요. 십 년도 넘게 사용해 왔지만, 에버노트를 버려야하나 심각하게 고민 중입니다....

2020/06/28

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 - 강석기 : 별점 2점

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 - 4점
강석기 지음/Mid(엠아이디)

과학 전문 컬럼니스트 강석기의 일러스트가 있는 과학 에세이로 과학 동아에 연재되었던 글들을 엮은 책입니다. 

그런데 일러스트는 사실 별 볼일 없습니다. 딱히 일러스트가 있어야 할 이유도 모르겠고요. 또 모두 50편의 수록된 컬럼 모두가 흥미롭거나, 재미를 자아내지는 못했습니다.

물론 재미있는 주제도 없지는 않습니다. 몇 가지 인상적이었던 내용을 꼽아보자면, 우선은 사람들의 대인관계 범위, 즉 네트워크가 한정돼 있어 새로운 사람을 사귀게 되면 기존 네트워크에 올라와 있는 사람 가운데 누군가를 잘라내기 마련이라는 이야기입니다. 1990년대 영국 옥스퍼드대 실험심리학과 로빈 던바 교수는 사람의 뇌 크기를 토대로 인류의 이상적인(구성원 각자가 서로 잘 아는) 집단의 규모가 150명 내외라고 주장했다는군요. 이를 '던바의 수'라고 부르는데, 오늘날 던바의 수는 실질적인 인적 네트워크의 한계로 인식되고 있다고 합니다. 즉, 네트워크에 한계가 있으니, 누군가 선호 네트워크에 추가되면 누군가는 내려가야 하는 법인 셈이죠. 저는 150명까지는 안 될 것 같은데, 나중에 한 번 추려봐야겠습니다.

위대한 철학자, 과학자들의 산책 습관과 이들의 엄청난 창조력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놀랍습니다. 학술지 실험심리학저널 2014년 7월호에는 걷기가 정말 창의력을 높여준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고 하네요. 걷는 게 무조건 도움이 되는 건 아니며, 걷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을 정도의 편안한 걸음, 즉 산책 같은 걷기가 효과가 있다는데, 정확한 이유는 아직 모른답니다. 여튼, 회사에서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는 잠깐 걷는게 상책인 듯 합니다.

선택 어업의 부작용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자연 상태에서 물고기는 한 번에 알을 수만 개나 낳고, 이 가운데 살아남은 강한 녀석들이 짝짓기를 해(물론 체외수정이지만) 종을 이어갑니다. 자연계에서는 어리거나 병든 녀석들은 사망률이 높기 마련이고요. 그런데 선택 어업은 정 반대로 작고 어린 녀석들은 그물망을 빠져나가 살아남으며 커다란 물고기만 잡히게 됩니다. 어획량이 적다면 자연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겠지만, 지금처럼 어자원고갈에 이르지 않는 범위 내에서 총량을 규제하는 상황에서는 선택어업이 덩치 큰 물고기의 사망률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결국 몸집이 크게 자라고 늦게 성숙하는 유전자를 지닌 물고기들의 비율이 줄어들고 대신 조숙하고 몸집이 작은 경향의 물고기들이 늘어나게 됩니다. 큰일이에요.
이런 부자연 선택은 캐나다 큰뿔양의 뿔 크기에서도 증명됩니다. 사냥꾼 한 사람이 사냥할 수 있는 큰뿔양 마리수를 제한하자, 사냥꾼들은 돈을 많이 받을 수 있는 '큰 뿔을 지닌 큰뿔양만을 골라 사냥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불과 20여 년 만에 뿔의 크기는 평균 25%나 줄어들었다네요. 원래 큰 뿔은 성선택으로 나타난 표현형으로, 뿔이 크고 화려할수록 수컷이 더 건강하고 활력이 넘친다는 증거이므로 암컷들이 선호하기 때문에 오랜 세월에 걸쳐 큰뿔양의 뿔은 더 커지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는데 사람들이 선택적인 사냥에 나서면서 불과 20년만에 성선택에 완전히 반대가 되는 방향의 진화를 이끌어낸 셈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선택어업' 대신 어획량과 크기를 규제하지 말고 어획량만 규제하는 '균형어업'으로 어업정책을 바꿔야 할 때라고 하는데, 그럴 듯 합니다. 앞으로는 "도시 어부"와 같은 프로그램에서 자를 대고 기준에 못 미치는 물고기는 놓아주는 모습도 사라져야 할 것 같네요.

아울러 더운 여름, 주목할 수 밖에 없었던 내용이 있습니다. 완벽한 냉난방 시스템은 우리 몸의 대사율을 떨어뜨리는 데 일조한다는 내용이지요. 25도 내외에서 정적인 생활을 하게 되면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우리 몸이 별도의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너무 더우면 땀을 내 체온을 식혀야 하고 너무 추우면 몸을 덜덜 떨어, 즉 근육에서 영양분을 연소시켜 열을 내야 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25도 내외의 온도가 유지되어 몸의 대사율이 떨어지면, 즉 에너지를 덜 쓰게 되면 섭취한 여분의 에너지는 지방으로 축적되고 이것이 현대 사회 비만이 만연하게 된 원인 중 하나라고 하네요. 그래서 연구자들은 겨울철 난방 온도를 좀 내려 몸이 지방을 태우는 '열생성'을 통해 체온을 유지하게 만들자고 주장한다는데, 잘 되면 좋겠습니다.

집단의 크기가 문화적 복합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험도 재미있습니다. 그물 설계 실험을 거쳐 집단 내 구성원 숫자가 많으면 많을 수록 높은 점수를 받는다는걸 증명한 실험입니다. 이를 통해 고립된 개인이나 소수 집단은 복잡한 문화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고 만들어낼 수도 없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한편 피험자들이 두 과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하는 실험 조건 역시 집단의 크기가 클수록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는군요. 능력에 따른 노동의 분업을 통해 두 과제 모두 성공적으로 수행했기 때문입니다. 오래전 ABE 문고에서 "마지막 인디언"이라는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결국 이 마지막 인디언이 모든 문화를 전달하는건 불가능했을거라는게 참 아프게 다가옵니다. "나는 전설이다"역시 마찬가지고요.

마지막으로 동아시아인들이 관계지향적이고 통합적 사고를 하는 이유가 벼농사를 지었기 때문이며, 개인주의이고 분석적 사고를 하는 서구인은 밀농사를 지었기 때문이라는 가설도 재미있어요. 벼농사는 물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규모 관개시설이 필요하고 농사를 지을 때도 이웃 간에 물을 잘 나눠 써야 한며, 피를 뽑는 작업 등 밀농사에 비해 두 배 이상 손이 많이 가는 탓입니다. 그 결과 벼농사권에서는 상부상조하는 관습이 이어져왔고 나보다는 우리'를 앞에 둘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죠.
그러나 밀농사는 자연 강우에만 의존하고, 일이 고되기는 해도 나 혼자 힘으로 내가 먹을 걸 얻는 데 큰 어려움이 없기 때문에 농사의 독립성이 컸고 그만큼 다른 사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됐기 때문에 이런 생활패턴이 수천 년 이어져오면서 동아시아인과 서구인의 사고방식에 근본적인 차이가 생겼고, 동아시아인 가운데서도 특히 논농사가 압도적인 한국인과 일본인에서 전형적인 동아시아적 사고 패턴이 보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럴싸하지요?
그러나 요즘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앞으로는 어떻게 바뀔지는 잘 모르겠네요. 저 개인적으로는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상부상조하는 전통만큼은 앞으로도 유지되면 좋겠다 싶습니다.

그러나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는 글은 소수이고, 전체적으로는 재미 측면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제 관심사 밖의 이야기도 많았고요. 또 제목처럼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지만, 내용은 별다를게 없는 글들도 실망스러웠습니다. 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 그냥 인간이 오래 전에 키웠기 때문이랍니다. 다른 내용은 없어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2006/05/10

디지털이다 (being Digital) -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 백욱인 : 별점 3점

이 바닥의 권위자 니콜라스 네그로폰테의 저서. "정보 초고속 도로에서 행복해 지기 위한 안내서"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뒤늦게 읽게 되었네요.

'이제는 "아톰"이 아니라 "비트"를 전송하는 시대'라는 대 전제를 가지고 디지털 시대에 발맞춰 진화해 나가는 생활에 대한 정의를 나름대로 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견지명이 너무나 놀라와서 감탄스러울 뿐입니다. 95년도 정도에 쓰여진 것으로 아는데 이 당시 이 책의 발상만 고민하여 연구하였어도 대박날 수 있었던 아이템이 너무 많더군요. 진작 읽을 걸.. 하는 후회가 가장 컸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구글 데스크탑"과 각종 위젯들이며, 그 외에도 익히 잘 알려진 P2P나 동영상 제공 서비스 등의 개념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인터페이스 분야도 사용자 중심으로 제공되는 미래 지향적인 개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향후 발전 방향은 디바이스가 똑똑해지는, 개인 비서형태로 진화해 나갈 것이다라는 개념도 요새는 흔하지만 당시에는 분명 혁신적인 발상이었다 생각되네요.
이외에도 그래픽, 디스플레이 등 디바이스 전반에 걸쳐 전문적인 식견과 이론을 피력하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뛰어난 혜안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읽기에는 좀 낡은 것은 사실입니다. 책 속에서 미래 사회로 묘사된 거의 대부분이 현재 구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론적이고 원론적인 측면 외의 해결방안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도 아쉬웠고요. 독특한 사고로 발전시킨 몇몇 방안들은 분명 인상적이지만 현 시점에서 보면 그다지 특이할 것은 없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인터페이스 쪽의 미래가 궁금했는데 다른 책들에서도 볼 수 있는 상식적 수준의 접근으로 그치고 있어서 약간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래도 IT 기획자라면 한번쯤 꼭 읽어볼 만합니다. 재미만으로도 읽을 가치는 충분하니까요. 별점은 3점입니다.
 저자가 칼럼을 연재하는 WIRED라는 잡지는 잘 알고 있고 자주 보기도 하지만 사실 영어가 짧아 연재되는 칼럼까지는 내용 해독이 어려운 판에 이런 책이 나와주면 너무나 감사할 뿐입니다.

2012/06/16

바람피우고 싶은 뇌 - 야마모토 다이스케 / 박지현 : 별점 2.5점

바람피우고 싶은 뇌 - 6점
야마모토 다이스케 지음, 박지현 옮김/예담

세계적인 행동유전학의 대가라는 야마모토 다이스케의 저서. 복잡 미묘한 남녀의 차이점과 일상생활 속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재미난 이슈들을 의학적 실험 결과와 다양한 자료들로 설명해주는 과학 에세이입니다. 남녀관계에 대한 이야기나 인간의 본능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주제도 흥미롭지만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짧고, 저자의 자상함이 묻어나는 듯한 쉽고 따뜻한 글들이라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깊이는 별로 없지만 가벼운 기분전환에 좋았달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것들을 조금 소개해보자면,

"바람기"

바람기 많은 동물들의 비교 연구를 통해 성적 쾌락을 크게 느끼면, 상대방에 대한 유대감과 애착이 강해져 단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 연구 결과가 소개됩니다. 바소프레신 수용체 양을 늘리면 가능하다고 하는데, 이거 참... 먹고 싶다!

여성의 성욕을 자극하는 이른바 최음제가 있는가?

연구 결과 성페로몬 - 여성의 성욕을 자극하는 물질은 젖먹이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의 체취였다고 합니다. 이건 진화 과정에서 그렇게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네요. '주변에 젖먹이를 안고 있는 여성이 있을 때 아이를 낳으면 아이가 잘 자랄 확률이 높아진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위험이 닥치더라도 다른 여성이 대신 젖을 먹일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데 꽤 설득력있는 이야기라 생각됩니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PT에서 좋은 결과를 얻으려면? 동물의 세계에서 빨간색은 승리의 색. 같은 실력이라면 빨간색 유니폼을 입은 팀이 승률이 높으니 PT에서도 빨간색 옷을 입자는 이야기. 그런데 오늘 PT가 있고 제가 입은 옷은 검은색... 나는 아마 안될 거야.

도박 중독에 대하여

이전 게임에서 손해를 본 사람은 다음 게임에서 위험한 선택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분석 결과를 소개해줍니다. 즉, 손해를 보면 볼수록 도박을 더 하게 된다는 거죠. '크게 잃었을 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것'이 도박 중독을 막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합니다.

남자가 가슴이 큰 여성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가?

원래 가슴이 큰 여성을 좋아하는 것은 진화생태학상 당연하다는 설이 있다고 합니다. 이유는 가슴과 엉덩이가 크고 허리가 잘록한 여성이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많다는 다산의 원리때문이라죠. 과연 그러한지 외부 교류 없는 페루의 소수민족 마젠카족을 통해 조사를 해 보았더니... 가장 인기 있는 스타일은 통통한 체형이었고, 두 번째 조건은 허리가 잘록하지 않은 것이었다고 하네요. 다산의 원리에 따른 것보다는 문화의 영향이 더 크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침식사를 꼭 먹어야 하는지?

실험 결과 아침식사를 먹은 그룹은 민첩성, 행복감, 마음의 평온이 좋아지며 카페인(커피)은 주의력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즉 아침식사를 먹고 카페인이 들어간 커피를 마시면 새로운 정보에 민감해지고, 모든 상황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억력도 좋아지며, 안정된 기분으로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다는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답니다. 역시 최고의 조합 아침 & 커피!

그리고 단기 기억력은 아침식사의 질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군요. 기억력이 최고가 되는 식단은 단백질과 탄수화물 비율이 4대 1일 때이며, 여기에 채소를 곁들이면 성적은 더욱 향상된다고 하니 수험생 부모님들은 꼭 기억해 두어야겠어요.

2021/01/29

빵의 지구사 - 윌리엄 루벨 / 이인선 : 별점 2.5점

빵의 지구사 - 6점
윌리엄 루벨 지음, 이인선 옮김, 주영하 감수/휴머니스트

얼마 전 <<향신료의 지구사>>를 읽고 탄력받아 한권 더 집어든 '지구사' 시리즈. 이 시리즈도 이제 8번째 리뷰입니다. 시리즈 완독까지는 두 권 남았네요.

그 동안 읽었던 '지구사' 시리즈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건 <<커리의 지구사>> 였습니다. '커리'가 무엇인지에서 시작해서, 커리의 역사와 세계화된 과정, 대표적인 커리 요리까지 화려한 도판과 함께 짤막하면서도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시리즈 다른 책들은 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고요.

물론 아주 건질게 없는건 아니에요. 특히 이 언제, 어디서 생겨났는지?에 대한 설명은 마음에 듭니다. 어떤 빵을 어떻게 만들었을지에 대해 관련 사료를 통해 잘 알려주고 있는 덕분입니다. 특히 농경 생활을 택한 뒤 빵을 먹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수렵과 채집 생활에 비해 부정적이었다는 시각이 독특했습니다. 예를 들어, 장 자크 루소는 농경 도입으로 노예 제도가 생겨났다고 주장했고, 창세기를 다룬 구약 성경과 유대 신화에서도 농업은 부정적이었다고 하네요. 최초의 농부였던 카인은 가장 처음 살인을 저지르고, 하느님에게 거짓말을 하며, 비자발적 노역으로 도시를 세운 인물로 그려졌기 때문이랍니다. 유대 신화에서는 불신의 상징인 저울과 자를 끌어들였고요. 그럴듯하죠?
하지만 농경 생활은 필연적이었고, 결국 이 덕분에 문명이 발달하게 되었는데 이를 '빵'과 연결하여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게 우르크 발굴 결과를 토대로 한 설명입니다. 기원전 3200년경, 이라크 남부 지방에서 농경지에 효과적으로 물을 대는 중앙관개농법이 발달하면서 '잉여 생산물'이 쌓이게 되었고, 그 덕분에 전 인구가 농사에 매달리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게 되었으며, 결국 분업과 전문화가 진행되어 인구가 3만명에 달하는 대도시로 진화했다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고대 빵 역사에 대한 자세한 서술에도 불구하고,밀의 종류, 배합, 이스트의 종류 등을 모두 정확하게 알아낼 수 없어서 현재 어떤 빵인지 재현하는건 어렵다고 하는 주장도 독특했습니다. 고대 이집트, 로마 시대 등 빵에 대해 많은 자료가 남아 있는 시대 모두 마찬가지라고 하니 신기하네요. 저자의 말에 따르면 재현이 가능한 빵은 근세시대 (1500년 이후)에 처음 등장한다는군요.

이러한 빵의 탄생 이후는 부자와 빈자가 빵으로도 구분되는 시기에 대한 설명도 기억에 남습니다. 저버스 마컴의 <<영국 주부>> (1615) 속 하류층 농장 노동자를 위한 갈색 빵 레시피가 아주 충격적이기 때문이에요. 특징은 완두콩 가루를 섞은 것인데, 놀랍게도 저자 마컴이 경주마에게 먹이는 빵보다도 못한 빵이었다고 하니까요.

그러나 그 뒤 재료, 맛 모두가 별로였던 하위 계층의 빵은 당연히 상위 계층은 거부해 왔는데. 이 현상이 빵의 역사를 이끌었다고 보는 저자의 주장은 잘 와 닿지는 않습니다. 16세기 ~ 18세기 흰 빵은 부의 상징이며 갈색 빵은 가난의 상징으로, 이런 상징은 저도 당시를 다룬 소설 등에서 많이 접해보았었습니다. <<하이디>>에서도 '하얀 롤빵'이 선망의 대상이었죠?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호밀빵을 멀리하는건 현대도 마찬가지죠. 그러나 이건 모든 식품, 사치품, 기호품에 해당되는 내용이 아닌가 싶어요. 구태여 '빵'에 한정지을 이유는 없습니다.
또 맛있는 빵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도 별로에요. 밀가루의 종류, 발효 방법, 설탕을 넣는지 소금을 넣는지 등 다양한 빵 제조법을 소개하는 내용이 대부분인데, 설명은 깔끔하지만 기대했던 지구사적인 설명은 아니었거든요. 좀 더 빵의 역사에 대해 파고들줄 알았는데 말이죠.
그 뒤의 세계의 빵 소개는 더욱 실망스럽습니다. 그냥 국가별 빵 몇가지가 등장할 뿐이며, 미래의 빵도 자가 제조 기계가 발전하고 공장제 빵도 진화할거라는 일반적인 이야기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제 특성상 유럽 중심의 이야기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점도 약점이에요.

다행히 부록처럼 수록된 주영하의 한국 빵 역사가 실망을 조금은 만회해 줍니다.조선 시대 이기지가 청나라 연행길에 먹었던 카스테라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일제 시대 널리 퍼졌던 빵 문화가 해방과 6.25 후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잘 요약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제과제빵의 거목인 삼립 식품과 크라운 제과의 시작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어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아주 나쁘지는 않고, 얻을게 없지도 않지만 제목처럼 빵의 범지구적 역사를 다룬 책이라고 보기는 좀 어렵습니다.

2008/11/19

Arms 암스 1~22 - 미나가와 료지 : 별점 3점

Arms 암스 21 - 6점
료우지 미나가와 지음, 박련 옮김/세주문화

료는 평온하게 학교생활을 보내는 평범한 고등학생. 그러나 그의 학교에 하야토가 전학온 뒤 그의 일상이 급변한다. 료는 몸에 나노 생체 병기가 이식된 실험체, 이른바 “암스” 의 한명이었던 것. 료는 하야토, 그리고 또다른 암스인 다케시 등과 함께 자신들을 노리는 비밀의 조직 “에그리고리”에 맞서게 된다.

최근 남는 시간에 만화책 읽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읽게 되었네요. 
이 만화는 이른바 90년대 식 소년 만화의 왕도랄까.. 뭐 그렇습니다. 외계에서 온 미지의 무언가에 의해 전투 무기가 되는 소년(들), 그리고 그 소년(들)이 그들을 쫓는 범세계적인 어둠의 조직과 맞서 싸운다는 배틀물로 지금 읽기에는 너무나 낡은, 흔해 빠진 설정이지만 당시 상당히 유행을 이루었던 소재로 기억됩니다. “열혈”과 “근성”, 그리고 “노력”으로 대표되는 소년만화 감수성이 강한 것 역시 90년대라는 시대를 느끼게 하기에는 충분하고요.

하지만 이 작품은 이러한 설정을 답습한 배틀물이 전부인건 아닙니다. 외계에서 온 생체병기(?)와 “진화”가 뒤섞인 이야기는 이미 “가이버”가 써 먹긴 했지만, 접근 방식이 전혀 다른 독특함을 지니고 있어서 아류작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요. “진화”를 곁들인 이야기의 변주가 괜찮았고, 이른바 “암스”라는 존재 보다는 “인간”이 더 강하고 소중하다는 주제가 꽤 그럴싸했던 덕분입니다.
아울러 주인공이 두뇌파에 실력을 겸비한 소년이라는 것 역시 독특했습니다. 주인공이 그 자체로는 이미 완성된 인물이라는 접근은 새로왔기 때문입니다. (물론 암스 "자바워크"를 다루기 위한 약간의 성장통은 등장합니다만) 덕분에 “성장기” 로서의 소년만화적인 접근은 주인공 료보다 주인공 친구 하야토, 그리고 케이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것도 신선했고요. 그 외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에서 따온 몇가지 장치들도 작품에 잘 어울렸습니다.
그러나 문제점도 확실합니다. “가이버”를 너무나 연상시키는 줄거리야 앞서 말했듯 “유행”이라고 넘어간다고 치더라도, 단편 옴니버스 스타일이 아닌 장기 연재 장편이기 때문인지 곳곳에 스토리상의 헛점이 눈에 뜨입니다. 점점 강해지는 악당 캐릭터들의 상성도 문제점이었고요.
캐릭터들도 애매합니다. 대표적인 인물이라면 “백토끼” 다케시와 “하트의 여왕” 케이, 그리고 악당 중 한명인 “키스 그린”을 들 수 있습니다. 다케시와 케이는 "오리지널 암스"라는 거창한 칭호에 걸맞지 않게 주인공 친구 1, 2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이야기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할 정도로 비중이 모호하고, 잔인하고 냉정한 악당 “키스 그린’ 역시 갑작스럽게 카츠미에게 버닝하며 자신을 희생하는 이타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영 이해가 되지 않았던 탓입니다. 아울러 료의 부모인 전설의 용병 부부는 “만화” 라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과장의 극치라 설득력이 0에 수렴합니다.

그래도 적당한 길이로 완결지어 다행이랄까요? 이야기는 전형적이지만 완벽하게 마무리되고 결말 또한 뒷끝없이 깔끔한 해피엔딩이라 마음에 듭니다. 왕도의 길을 걸은, 마음 비우고 뒤적이기에는 좋은 작품이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그림도 좋은 편이니까요. 아직까지도 읽지 않으셨다면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2012/09/09

다윈상 - 웬디 노스컷 / 지현 : 별점 0.5점

다윈상 - 2점
웬디 노스컷 지음, 지현 옮김/북앳북스

"아무도 구제할 수 없는 한심한 바보들은 어떻게 진화에 기여하는가? 오로지 더 이상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릴 수 없게끔 죽거나, 생식 능력을 상실함으로써만 가능하다. 이 책은 이처럼 어리석은 죽음으로 인류 진화에 기여한 이들에게 수여하는 '다윈상(The Darwin Awards)' 사례 모음이다." 라고 거창하게 홍보하고 있기는 하나, 결론적으로는 인터넷 유머 모음집과 별다를 게 없는 책. 차라리 트렌드라는 게 존재한다는 점에서 인터넷 유머가 더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워낙 많은 사건이 실려 있기 때문에 제법 관심이 가는 것도 몇 가지 있기는 합니다. 이란의 사냥꾼이 뱀을 개머리판으로 눌러 잡으려다가 뱀이 방아쇠 쪽을 휘감아 당겨 총에 맞아 사망한 사건, 잠수 장비를 완비한 남자가 산불 화재 현장에서 시체로 발견된 사건 - 헬기로 바닷물을 퍼 날라 화재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희생됨 -, 머리카락은 소화액으로 분해되지 않기에 잘못 먹으면 축적되어 위석이 된다는 이야기 등은 추리 퀴즈 소재로는 제법 괜찮은 것들일 수 있죠.

그러나 이 정도로는 구제하기 힘든 결과물이에요. 화장실에서 한번 쓱 보고 피식하기에 적합한 책입니다. 별점은 0.5점입니다.

2014/04/28

끝없는 시간의 흐름 끝에서 - 고마츠 사쿄 / 이동진 : 별점 1.5점

끝없는 시간의 흐름 끝에서 - 4점
고마츠 사쿄 지음, 이동진 옮김/폴라북스(현대문학)

노노무라는 은사의 친구 반쇼야 교수가 발굴했다는 기묘한 모래시계 때문에 탐사여행을 떠났다. 모래시계는 어느 방향으로 뒤집든 끊임없이 모래가 떨어지는 4차원적인 구조를 가진 물체였다. 그러나 발굴 현장인 고분을 탐사하던 모든 일행과 관계자가 잇달아 사망하거나 실종되었고, 노누무라 역시 시속 70킬로미터로 달리던 택시 안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저자인 고마츠 사쿄는 호시 신이치, 츠츠이 야쓰타카와 함께 이른바 일본 3대 SF 작가 중 한명입니다. 그러나 다른 두명에 비하면 국내에서의 인지도나 대접이 시원치 않아서 영화로 더 잘 알려진 "일본침몰" 이외에는 소개된 적이 없었죠. 그래서 소개만으로도 무척 반갑고 기쁜 일인데다가, 이 작품은 일본 SF 최대 걸작 중 하나로 이런저런 매체에서 항상 소개되고 있어서 큰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끝없이 떨어지는 모래시계, 모래시계가 발굴된 고분의 기이한 구조, 모래시계와 고분 탐사에 관련된 인물들에게 벌어진 기묘한 사건이라는 초반부만큼은 이해하기도 쉽고 굉장히 흥미로왔습니다. 노노무라 - 사요코 커플의 장대한 러브스토리 역시 인상적이었고요.

그런데 결국 도대체 뭘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인지 전혀 모르겠더군요. 짧게 이해한 바로는, 노노무라는 신에게 선택받았지만 우매한 인류에게 지혜를 전해주려다가 신에게 쫓기게 되었으며. 이는 최후의 순간에 신에게 가까이 다가서긴 하는데 결국 추락하여 평범한 인간이 되어버린다는 타천사 루시퍼 이야기의 변주로 보였습니다. 여기에 진화와 우주에 대한 이야기가 복잡하게 꼬여있고요.

그런데 이를 설명하는 초반 이후의 이야기는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초과학 연구소에서 일어난 폭발사건, 태양의 이상현상으로 멸망이 닥친 지구에 찾아온 외계인들, 외계인들에 의해 분류되는 인류, 이어지는 습격과 추격 등은 모두 토막나 있어서 제대로 연결되지도 않고 앞뒤의 인과관계도 불명확한 탓입니다. 게다가 반쇼야 교수는 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외계인들이 찾아온 뒤에 지구가 멸망한 것인건지 아닌건지, 엘마와 한스 마리아 후민은 어떻게 되었다는건지, 애초에 대립하는 두 단체의 성격과 대립의 과정은 무엇인지 등 뿌려놓은 복선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모래시계의 정체를 일종의 발신기라고 설명하는건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이래서야 모래시계는 작품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그냥 흥밋거리 소도구에 불과하니까요. 그야말로 전형적인 맥거핀, 흥미거리 떡밥이랄까요. 여튼, 작가의 욕심만 지나칠 뿐 이야기를 제대로 정리하고 마무리짓는 힘이 부족하다 느껴졌습니다.

게다가 쓸데없이 복잡합니다. 시공간을 4차원 축으로 놓고 어쩌구 한다는 이론은 작품 이해에 도움을 주기는 커녕, 작가가 나 이만큼 똑똑해! 라고 현학적 능력을 과시한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어요. 이러한 현학적 과시의 대표적인 예는 네안네르탈인 집단에 던져진 호모 사피엔스 생존자를 묘사하던 부분입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피해자가 한다는 말이 "1930년에 발굴된 이스라엘 카르멜 산 동굴 기억하나?" 어쩌구라니 오버도 정도가 있어야죠.

차라리 초반부 이야기만 더 깔끔하게 정리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아쉽습니다. 시간 이동에 대한 SF 멜로는 "민들레 소녀"가 이미 한 정점을 찍기는 했지만 이 작품은 물리적인 시간 이동과는 조금 다르게 설명되기 때문에 평행 우주 이론을 살린다던가 하는 식으로 다른 방식도 가능했을 것 같거든요. 모래시계가 발신기라는 작중 아이디어를 더하여 다른 시공에 있지만 모래시계의 한쪽 끝이 연결된 사요코에게 모르스부호와 같은 신호를 보낸다던가 하는 식으로 모래시계도 적절하게 이용해가면서 말이죠.

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입니다.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적어서 좋은 별점을 준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로저 젤라즈니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작가의 생각을 잘 전달하는 작품은 쎄고 쎘죠. 예를 들어 불멸의 삶과 그에 따른 진화, 생명에 대한 고찰은 "불새 우주편"이 훨씬 쉽고 재미있었어요. 그 어렵다는 "쿼런틴" 조차도 이 작품에 비하면 차라리 재미있었던 것 같네요.

제가 나이가 든 탓에 쉽게 쉽게 읽히는 간단한 독서에 익숙해진 탓도 있겠으나, 뭔가 있어보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 좋은 대접을 받았던 시대의 유산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고마츠 사쿄라는 작가의 작품을 접한 기쁨은 크지만 널리 권할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2015/08/22

인간은 왜 박수를 치는가? - 고바야시 도모미치 / 임정은 : 별점 3점

인간은 왜 박수를 치는가? - 6점 고바야시 도모미치 지음, 임정은 옮김/다반

동물행동학이라는 학문이 있습니다. 동물의 본능이나 습성, 행동의 특성이나 의미, 진화 등을 비교·분석하여 연구하는 학문이지요. 이 동물행동학 관점에서,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취하는 동작과 행동 심리를 풀어낸 과학 에세이입니다. 당연한 습관과 같은 동작, 행동, 심리를 꽤나 그럴싸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몇 가지 예는 아래와 같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나란히 길을 걸을 때 여성은 안쪽, 남성은 바깥쪽에서 걷는 이유는 남자와 여자의 진화적 적응으로서의 성차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목이기도 한 인간이 박수를 치는 이유는, 박수에는 우호적이고 친화적인 감정이 담겨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호의 감정과 박수의 높은 고음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인데, 부모들이 아기에게 말을 걸 때 의도적으로 목소리의 음정을 올리는 경향이 있는 것과 같다는군요. 아기는 높은 목소리를 들었을 때 웃는 빈도가 높아진다고 하고요. 이렇게 낮은 목소리는 적의, 높은 목소리는 친근하고 온화한 감정을 나타내는건 사람 말고도 많은 동물에게서 확인되었습니다. 운동경기에서의 응원이 고성인 것과 콘서트장이나 운동경기장에서 부는 호각 역시 같은 이치라네요. 반대로 선수에게 불만이나 적의를 나타낼 때에는 신발로 바닥을 울리거나 우우 하고 야유하는 낮은 소리를 내고요. 옳거니! 정말 그럴싸하지 않습니까?

선글라스를 쓰거나 주머니에 손을 넣으면 건방져 보이는 이유도 재미있어요. 상대방의 언동에 따라 표정과 자세가 바뀌는데 선글라스를 쓰면 눈과 눈 주위의 상태 변화가 보이지 않게 되기 때문에 상대방을 무시한다는 메시지가 은연 중 전달되기 때문이랍니다. 즉, 당신은 내가 굳이 에너지를 쓸 만큼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 라는 뜻.
주머니에 손을 넣는 것은 팔에서 힘을 뺀 자세로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것인데, 윗사람은 작은 에너지를 쓰고 아랫사람은 큰 에너지를 써야하는 보편적 동작 규칙에 부합하지 않는 탓에 건방져 보인다고 하고요.
그 외에 선글라스는 포커페이스 전략과 동일하게, 표정을 감춰 강한 상대로 보이게 만들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자세는 팔꿈치가 밖으로 휘어지면서 어깨가 부풀어 올라 상대방을 위협하는, 위압감을 주는 자세가 되는 것도 이유라고 합니다.

언어가 발전한 것은 다채로운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남성이 여성의 인기를 끌기 쉬웠기 때문이라는 학설도 새로웠습니다. 여성의 인기를 끌면 그 남성의 특성이 그만큼 많은 자식들에게 계승되어 호모 사피엔스 공통의 특성이 된다는데 참 신선한 이론이었어요.
이렇게 사람이 자신의 유전자를 더 많이 다음 세대에 남기기 위해 행동하는 동물이라는 전제로 설명되는건 그 외에도 많습니다. 오래 전에는 수렵에 능한 남성이 인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먹이 획득 대신 돈, 즉 사냥을 잘하는 이성 대신 재산을 많이 가진 이성이 그만큼 여성의 인기를 끄는 데 유리하다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지만, 이것이 경쟁에서 순위를 높이고 싶은 심리로 이어져 출세에 목을 매게 된다는 것이지요. 돈이나 좋은 이성 획득이 용이하니까요.
데이트 중 남자만 한눈을 파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짝을 찾는 데 있어 여성은 남성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가 최우선이나, 남성은 여성의 용모와 젊음이 우선 순위가 높기 때문입니다. 여성은 임신과 육아 기간에 자신을 원조해 줄 남성과 짝을 이루어야 하지만, 남성은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서는 건강하고 임신하기 쉬우며 안전하게 출산할 가능성이 높은 여성 다수와 성교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니까요. 아~ 이건 역시나 유전자가 남자에게 시키는 행동이었어!

그 외에도 상사와 부하와의 관계를 상사는 상사 자신의 이익 증대 방향으로 행동하는 부하를 우대하고, 부하도 상사의 이익 증대 의도를 어필하는 것으로 풀어낸 것도 인상적이에요. 구체적으로 상사의 에너지를 조금만 소비하고, 부하가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여 상사의 희망을 이루어 주려고 하는 상황, 예를 들어 상사가 차를 내릴 때 문을 열어주거나, 복도에서 길을 양보하거나, 농담에 박장대소하거나... 존댓말이 더 긴 것도 마찬가지 이유라고 합니다.

이렇게 재미난 이야기가 가득하고, 쉽게 설명해주는 글솜씨도 좋아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단점이라면 아무래도 "에세이"에 가까운 책이라 그런지 그럴싸하지만 실제로 "증명"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내용들이 대다수라는 겁니다. 저자 스스로도 대부분의 내용을 "가설"이라고 하고 풀어나가고 있고요. 또 책과는 전혀 어울리지도 않고 설명에 딱히 도움도 안 되는 기묘한 일러스트들과 읽기 거북하게 편집된 책의 디자인도 마음에 들지 않네요.

그래도 단점이 책의 가치를 폄하할 정도는 아니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근거는 없지만 이러한 이론도 있다는 측면에서는 충분히 값어치를 하는 것 같아요. 알라딘을 찾아보니 절판되었던데, 책의 디자인을 일신하여 개정판으로 새로 출간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여튼, 구해보실 수 있다면 한 번쯤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1/01/15

외국어 전파담 - 로버트 파우저 / 혜화 1117 : 별점 2.5점

외국어 전파담 - 6점
로버트 파우저 지음/혜화1117

외국어 전파 과정을 통해 시대별로 당대 패권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알려주는 사회사미시사문화사 서적. 저자의 주장은 명확합니다. 모어 외 외국어를 개인이 배우는 이유는 '권력과 자본' 때문이라는 거지요. 이를 역사적인 흐름을 통해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중세 유럽에서는 기독교가 모든 권력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지도층은 모두 모어 외 외국어로 라틴어를 배웠습니다. 그러나 르네상스 이후 교회만큼 귀족과 상인 세력이 성장하고, 제국이 붕괴되고 도시 국가가 융성하면서 고대 그리스어가 유행하게 됩니다. 유명한 메디치 가문이 고대 그리스어 문헌을 라틴어로 번역하는걸 지원하고,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 문헌을 모은 도서관을 설립하는 등 카톨릭 교회 견제를 위해 고대 그리스 문화를 재발견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지요. 종교 개혁 과정에서 금속 활자로 독일어 성경이 출간되며 라틴어 영향력은 더 줄어들었고, 대항해 시대와 제국 주의 시대에 영국과 프랑스가 유럽 최고의 강대국이 됨으로써, 영어와 프랑스어가 외국어에서도 패권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2차 대전 이후 세계 최강국이 된 미국의 영향하에 프랑스어도 밀려나게 되었고요. 영어의 세계화는 외교에서 사용되는 언어가 영어로 통일된 것으로 대표됩니다.
한국과 일본은 당대 동아한시아 최강국 중국 영향권하에서, 모어와는 다른 한자어를 지배계층이 열심히 배웠다는 측면에서는 이와 다르지 않겠지요.

이러한 유럽 중심의 흐름과 함께, 제국주의와 식민지 하에서 유럽 국가의 언어가 제 3세계로 어떻게 뻗어나갔는지에 대한 설명도 상세합니다. 그러나 권력과 자본에 의한 외국어 학습이라는 맥락은 동일합니다. 시작만 조금 달라요. 침략과 선교를 위해서, 일단 유럽인들이 현지 언어를 배웠다니까요. 얼마전 읽었던 <<빨간 리본>>에서도 중국으로 향하던 선교사들이 중국인 '싼'으로부터 중국어를 배우는 장면이 등장했었죠. 그러나 일단 자리를 잡고 난 뒤에는 현지인들이 권력, 자본을 손에 쥐고자 침략자들의 언어를 배우게 된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그 뒤에는 침략자들도 식민지의 피지배층이 독립을 꿈꾸는 민족의식을 생성하지 못하게끔, 해당 식민지의 모어를 의도적으로 말살시키려 하는 과정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공식 언어로 침략자들 언어를 쓰는 간단한 정책에서부터, 아예 민족 고유의 이름까지 바꿔버렸던 일본 제국 주의처럼 강력한 정책 등이 모두 이에 해당됩니다. 이 책에 따르면 이렇게 식민지를 '내국인화' 하려는 강력한 정책은 식민지와 지배국 거리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면서 그 예로 아일랜드와 조선을 들고 있고요. 꽤 그럴듯한 발상이에요. 민족 고유 언어를 중요시하는, 민족주의가 극대화된 파시즘적인 발상과 이 때문에 세계 공용어를 꿈꿨던 에스페란토어 관계자들이 히틀러에게 학살당했다는 이야기도 비슷한 관점으로, 눈여겨 볼 만 했습니다.
꼭 필요한건 아니겠지만 화려한 도판도 여러모로 흥미를 자아냈고요.

그러나 이렇게 세계사 흐름과 동기화되는 언어 전파 과정은 굉장히 흥미로왔지만 책의 또다른 축인 '어떻게' 배우는지, 즉 '외국어 학습법'에 대한 내용은 솔직히 지루했습니다. 문법을 참고하는 학습법은 1471년 시작되었으며, 17세기에 예문으로 단어를 설명했고, 19세기 말, 벌리츠가 말하기 교육이 중요하다는 학습법을 크게 유행시켰고 이후 습득 이론, 청각 구두 교수법, 의사 소통 중심 교수법 등으로 진화했다는 내용 등인데, 우선 각 학습법의 차이가 명쾌하게 머리에 들어오지는 않더라고요. 글보다 말이 중요하고, 독해보다 회화가 중요하다는 개념 정도만 이해될 뿐이었어요.
또 외국어 학습법과 외국어 전파 과정이 잘 연결된다는 느낌도 받기 어려웠습니다. 물론 전파와 학습은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처럼 세계사 흐름과 병행해서 설명할 필요는 없었어요. 세계사 흐름과 일치하여 머리에 쏙속 들어오는 외국어 전파 과정이 흐려질 뿐이였거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외국어가 전파되는 부분, 그리고 학습 방법의 진화 부분은 분리해서 따로 소개하던가, 외국어 전파 과정만 더 상세하게 서술하는게 훨씬 좋았을 것 같네요.

2022/01/30

고쿠 1~6 - 테라사와 부이치 : 별점 2점

[고화질세트] 고쿠 (총6권/완결) - 4점
테라사와 부이치 지음/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걸작 "우주해적 코브라"로 스페이스 판타지의 신기원을 연 작가 테라사와 부이치의 또다른 대표작입니다. 작품이 발표되었을 1987년에는 비교적 먼 미래로 느껴졌을, 2014년을 무대로 한 근미래 SF 액션 스릴러로, 우리나라에는 e-book으로만 소개되었습니다. 설 연휴를 맞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주인공은 경찰 출신의 사립탐정 후린지 고쿠입니다. 맨 몸에 쟈켓을 입고 목에 넥타이를 메는 다소 충격적인 패션 센스를 가진 남자지요.



고쿠는 첫 번째 사건에서 악당의 최면에 걸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 왼쪽 눈을 찔러 실명하는데, 누군가 그 왼쪽 눈에 소형 컴퓨터 단말기가 장착된 '의안'을 설치해 줍니다. 그 의안은 전 세계의 모든 컴퓨터는 물론, 인공위성까지도 연결하여 제어할 수 있는 물건이었지요. 고쿠는 이른바 '신의 눈'이라고도 하는 이 의안을 최대한 이용하고, 그 누군가가 전해 준 또다른 장비 여의봉(?)을 무기로 악당들과 싸워나갑니다.

여러 면에서 작가의 출세작 "코브라"가 떠오릅니다. 미인들의 부탁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기본 전개부터,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한마리 외로운 늑대로 엄청난 마초인데다가 시니컬하면서도 독특한 유머 넘치는 대사를 내뱉는 고쿠 캐릭터가 완전히 똑같기 때문입니다. 갖추고 있는 피지컬만으로도 세계관 최강자인데다가, 강력한 무기 '싸이코 건' 까지 소유한 코브라와는 다르게 고쿠는 비교적 평범한 인간이라는 차이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 차이도 전능하다고 칭해도 부족하지 않은 왼쪽 눈의 의안 덕분에 별로 와 닿지 않습니다. 의안으로 왠만한 적들은 쉽게 무력하게 만드니까요.

그래도 단순한 자가복제 아류작은 아닙니다. '신의 눈'이라는 아이디어 덕이 큽니다. 모든 단말에 접속하여 조작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최소한 10년 이상 시대를 앞서간 것입니다. 인공 위성으로부터 현재의 GPS, 카 네비게이션과 동일한 정보를 전달받아 이를 추격에 활용하는 장면 등은 미래를 보고 온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인공 위성과 각종 단말을 조작하여, 악당 하크류 겐지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영상을 건물 전광판으로 표시하는 장면은 능력의 특징을 제대로 선보여준 명장면이었고요.
정보를 장악하는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탐정'이 주인공인 이야기에도 잘 어울렸어요. Private Eye가 Midnight Eye를 갖게 되니, 금상첨화인 셈이지요.

탐정물답게 놀라운 진상과 반전을 갖춘 이야기들도 꽤 됩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의 류는 의붓 아버지에 의해 사이보그로 개조되어 몸에 강력한 보호막을 두르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 대신 중화제를 투약하지 않으면 미치광이 살인마로 돌변하기 때문에, 여동생 요시코는 고쿠에게 류를 죽여달라고 의뢰했고요. 그런데 알고보니 류는 의붓아버지 젠조의 복제인간으로 창조된지 고작 30일에 불과했던 생명체였습니다. 젠조는 자기 몸에 보호막을 설치하기 위해 류를 실험 대상으로 삼았던 겁니다. 수정체를 만든 건 여동생인줄 알았던 요시코였고요. "차이나타운"이 떠오르는, 하드보일드스러운 막장 관계를 인공수정, 급속 성장, 기억 이식 등 미래 기술에 녹여낸 멋진 이야기였습니다.
슈퍼 스타 시노즈카 레이라가 자기 노래를 표절했다며 죽이려고 하는 지하 록의 여왕 야마가미 리사와 동일 인물이었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꽤나 놀라운 진상을 설득력있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 4권(일본 기준)으로 끝나버린 이유도 분명합니다. 뒷 부분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암흑의 선녀" 편에서 귀신 '천동녀'의 정체는 쿠키 일족의 정신을 넣은 인공두뇌로 구현된, 일종 에너지 덩어리였다는게 대표적입니다. "우주해적 코브라"의 사라만다 설정과 똑같죠. 다카르 랠리에 참여한 오토바이 레이서 보니의 문신 속에 마이크로 필름의 정보가 새겨져 있다는 이야기도 "우주해적 코브라"와 유사했고요. 
유령 유전자 실험에 자원하여 스스로 생명체의 모든 진화를 구현해 낼 수 있게 된 카산드라 설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실험 덕분에 생물 진화의 최종 단계로 변신할 수 있었고, 그건 바로 악마였다는건 재미있는 발상입니다만 이는 "코브라"에서 화성의 최종 병기 이야기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악마가 고작 금괴를 노린다던가, 그 최후가 녹아버린 뜨거운 금을 뒤집어 쓰는 것에 불과했다는 등 세부적인 이야기 완성도에서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요.
후반부 에피소드들에서는 '신의 눈'의 능력도 잘 선보이지도 못합니다. 모든 장치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다는 기본 설정만 답습할 뿐입니다. 이런 능력을 활용하여 악당에게 자신의 경고를 날린다던가, 공장에서 자기만을 위한 특별한 무기를 만든다던가 하는 초반부 에피소드들같은 새로움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모든걸 통제할 수 있는 능력자가 악당들과 육탄 액션을 펼친다는 설정도 별로였고요.
한국어판 e-book은 에피소드별 제목이 제대로 부여되어 있지 않은 등 편집이 그닥이며, 마지막 권에 '지금 밝혀지는 고쿠의 비밀'이라는 저자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다고 소개되는데 정작 수록되어 있지 않은 등 여러모로 문제가 많아서 도저히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초반부의 기세를 이어가지 못했던게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유튜브를 뒤지면 카와지리 요시아키가 감독한 애니메이션을 찾아볼 수 있는데, 비교적 수작인 초반부 에피소드를 영상화한 만큼 애니메이션만 찾아서 보시는게 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