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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9

All of panpanya

최근 푹 빠진 작가 panpanya의 국내 소개된 작품 8편을 모두 완독하였습니다. 제 순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주먹밥이 굴러가는 마을>> (5)
  2. <<두 번째 금붕어>> (4)
  3. <<동물들>>, <<구아바노 홀리데이>>, <<게에게 홀려서>>, <<물고기 사회>> (3)
  4. <<침어>> (2.5)
  5. <<아시즈리 수족관>> (1.5) 
전권 평균 별점이 3점 이상이라니 놀랍네요. 
완독 기념으로 전권 리뷰를 올립니다. 상세한 내용은 아래를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시즈리 수족관 - 4점
panpanya 지음/미우(대원씨아이)

초기작 중심 단편집. 작화는 안정되어 있지 못합니다. 편안함과 거침이 공존하고 있어요. 특유의 부드럽고 편안한 그림체가 아닌, 정석적인 만화식 펜 드로잉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몇 편 수록되어 있는게 특이했습니다. 뎃생력은 영 아니었습니다만.
수록작은 기묘한 수족관, 기묘한 상점가, 기묘한 박물관, 두 번째 교토 타워와 같은 비현실적인 공간을 방문한 방문기가 많습니다. 심지어 프랑스까지 가서 망자의 거리를 방문할 정도입니다. 환상적인 공간 구성을 보여주기는 하는데, 문제는 대부분 '우연히' 그 곳에 가서 기묘한 공간을 보고 올 뿐 특별히 기승전결이 갖추어진 완성된 이야기가 없다는 점입니다. 설정이 치밀하지 않고 기존 작품들의 재구성이나 패러디가 많아서 신선함도 부족하고요.
그나마 이야기로 볼 수 있는건 <<심부름>> 정도입니다. 어머니가 써 준 심부름 메모에서 알 수 없는 글자로 쓰여진걸 사기 위해 없는게 없다는 완전 상점가 까지 여정을 떠나 알지도 못하는 무언가를 구입해 온다는 이야기죠. 

주인공의 기묘한 착안에 따른 노력과 그 결과를 보여주는 특유의 매력 포인트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자판기 안에 동물들이 들어가 움직인다는걸 알고 나서, 전기의 힘으로 움직이는 자동 자판기를 자유연구 과제로 제출하여 동물들에게 자유를 선사한다는 <<자판기>> 정도만이 기대에 값합니다.
그 외에는 수족관에서 보여줄 물고기를 잡으러 떠나는 이야기로 주인공을 구하고 격류에 휩쓸린 레오나르도가 물고기가 되어 돌아온다는 결말의 <<너의 물고기>>가 눈여겨볼만 했습니다. 딱히 재미가 있던건 아니지만, 파트너 레오나르도가 첫 등장한다는 점에서 말이지요.
반면 제목의 수록작이야말로 일종의 맥거핀에 가깝습니다. 열 페이지도 안되는 짤막한 작품으로 별 비중은 없거든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기대와 전혀 달랐고, 습작 수준의 수록작도 많아서 점수를 줄 여지가 없습니다. 팬이 아니시라면 구태여 구해 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침어 - 6점
panpanya 저자/미우(대원씨아이)

단편보다 짧은, 쇼트쇼트라 부를 만한 초단편이 많이 수록된게 특징. 
벌 서면서 이런저런 새로운 걸 깨닫는다는 <<벌 서는 법>>, 일상 속 이야기를 짧은 분량 안에서 무려 12년에 걸쳐 빌드업하고, 평범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끝맺는 <<가로수의 순서>> 등이 기억에 남습니다. 비교적 긴 이야기로는, 비가 올락말락 하다가 갑작스럽게 폭우가 쏟아질 때 우연히 만난 개구리 덕분에 무사히 귀가한다는 <<비 오는 날>>이 기묘하면서 따뜻하고 서정적인 느낌이라 좋았고요.

표제작, 그리고 젤리같은 물고기 뉴 피시의 정체를 밝히는 과정을 그린 <<뉴 피시> 두 작품은 '물고기'를 주 소재로 삼은 단편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뉴 피시>>는 물고기들이 살기 위해 만들어낸 식품이었는데, 맛이 없어서 외면받았지만 주인공 활약으로 기사회생하게 된다는 내용이고, 표제작은 전설의 편안한 오더메이드 베개 '침어'의 존재를 알고 쿠슈 카고시마로 떠난 주인공과 레오나르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너무 편안해서 베개로 쓰이던 물고기 '침어'는 실존했습니다. 그러나 하룻밤 베고나면 죽어버려서 (물밖에 나와 하룻밤이 지나게 되니까), 그것과 최대한 비슷하게 베개를 만든게 현재의 '침어'였습니다. '침어' 베개를 구입한 주인공은 운 좋게 해변에서 진짜 침어를 한 마리 주웠고, 그래서 가끔 침어에 얼굴을 파묻곤 한다는 결말로 끝나는데,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일상 이야기처럼 펼쳐놓는 전개가 매력적이었습니다. 수록작 중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반면 신주쿠 지하의 이상한 공간에서 피자 만두를 찾는 <<지하답사>>는 제법 길지만, 작화나 전개 모두 초기작 느낌으로 <<아시즈리 수족관>>과 비슷하더군요. 솔직히 별로였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아직은 스타일이 완성되지 않았기에 감점합니다만, 볼 만한 작품도 제법 많았습니다.


두 번째 금붕어 - 8점
panpanya 지음/미우(대원씨아이)

'연구'를 바탕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가 많다는게 특징. 소재도 다양합니다. <<멜로디>>는 저녁이 되면 마을에 울려퍼지는 음악의 정체가 무엇인지 찾아나서는 이야기입니다. 어디서 울려퍼지는지를 찾아내기 위해 고민해서 아이디어를 짜내는 과정도 재미있고, 결국 찾아낸 음악의 정체도 기발했어요. '숨바꼭질'을 잘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와 고민이 펼쳐지는 <<숨바꼭질의 주의사항>>, 매미 소리를 겨울에 틀면 따뜻함을 느낄지도 모른다는 <<계절 보내는 법>>, 완벽한 등교길에 대해 연구한 결과를 펼쳐보이는 <<통학로의 소양>> 등도 모두 독특하고요. 그 외에도 소품 서랍을 정리하는 방법, 풍선 편지를 개조했더니 영원히 날게 될 지도 모르는 물건이 되었다는 등 다른 수록작들도 갖가지 분야에 대한 연구와 고민을 망라하여 선보여줍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주인공이 항상 무언가를 깨닫거나 익히고 끝나는데, 그게 예상대로 흘러가지만은 않는다는 것도 재미요소였어요.

연구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상 생활 속 사물에 대한 독특한 고민을 보여주는 작품도 많습니다. 전자동 부적 제작 기계가 어떻게 '공덕'을 부여 받는지를 그려낸 <<길흉화복 챙기기>>는 정말 생각도 못했던 전개를 보여줍니다. 해변의 집과 해수욕장의 시즌 오프 방법이 등장하는 <<바다 폐장하는 법>>도 그러하고요.

학교에서 키우던 금붕어를 잃어버린 뒤 새로운 금붕어를 구입하러 나서는 표제작은 그닥이었지만, 전체적으로 panpanya의 독특함과 기발함을 한껏 만끽할 수 있는 좋은 단편집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구야바노 홀리데이 - 6점
panpanya 지음, 장지연 옮김/미우(대원씨아이)

단편집이기는 한데, 무려 3부작 여행기 <<구야바노 홀리데이>>가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
표제작 외에는 작가의 다른 단편들처럼 뭔가를 만들고, 찾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엉터리 일기술>>, <<비교 비둘기학 입문>>, <<부호>> 등 일상에 밀착해 있는 이야기가 많다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일상 속에서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린다는건 분명 대단한 재능이라 생각됩니다. <<고구마 줄기 원더랜드>>는 는 고구마를 캐면서 땅 속을 헤집고 다닌 끝에 진짜 맛있는 군고구마를 알게되지만, 다시 캐 낼 수는 없게 되었다는 다소 환상적인 이야기인데, 결말만큼은 현실적이라는게 인상적이었고요.

그런데 표제작은 구야바노를 찾기 위해 필리핀을 간 여행기라 달리 기발한 상상력이 발휘되고 있지는 못해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바라보는 시각이 독특해서 재미있기는 했는데, 작가의 특징이 온전히 발휘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게에게 홀려서 - 6점
panpanya 지음/미우(대원씨아이)

기묘한 반전들이 있는 작품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는게 특징. 
워싱턴 조약에 위배되는 왕도룡뇽을 키우다가 아마존으로 가서 놓아주지만, 알고보니 왕도룡뇽은 일본 원산의 고유종이었다는 <<왕도룡뇽 사건>>처럼요. 최고는 완벽한 일요일을 보내기 위해 토요일 하루를 온전히 일요일 준비에 바치는 <<perfect sunday>>입니다. 완벽한 일요일을 위해 온갖 기계 장치를 만들고, 일요일 산책 코스까지 사전에 답사하는 등 준비를 마치지만 '소풍은 당일보다 전날 준비와 저녁이 더 설레었던 것 같다'는걸 깨닫고, 알고보니 그 날이 일요일이었다는 반전, 다행히 다음날도 공휴일이었다는 반전이 계속 이어집니다.
 
쇼트쇼트 중에서는 <<decoy>>가 기억에 남습니다. 호수에 띄워놓은 가짜 나무 오리를 디코이라고 하는데, 동료로 착각하고 찾아온 오리를 그리는 사람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림을 계속 그러다보니 수면을 잘 그리게 되있다는 다소 황당한 결말로 끝납니다.
암흑 전골 세트가 초심자 용이 있었다는 <<전골>>, 파인애플이 어떻게 열리는지 몰라 조사하러 나섰지만 결국 사실을 알아내지 못한다는 <<파인애플을 모르신다>>, 살아있는 돌고래 계산기가 리만 가설을 풀어낸다는 <<계산기의 마음>>도 재미있었고요. 인터넷에서 먼저 유명해진, 단무지만드는 프라모델이 나오는 <<DANMUJI DREAM>>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다만 별다른 내용이 없었던 표제작이나, 전철에서 몸을 두고 내린다는 등으로 비교적 평이한 발상의 이야기도 수록되어 있어서 수록작별로 재미와 수준에 있어 다소 편차가 있습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동물들 - 8점
panpanya 지음/미우(대원씨아이)

앞 부분은 일상 생활을 소재로 - 특히 이사에 대해서 - 에서 지극히 평범하지만 비현실적인 느낌을 전해주는 단편들이, 뒤에는 제목에 걸맞게 붉은귀 거북이라던가, 야생동물 마미와 같은 동물들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중 주인공을 쫓아다니는 동물 마미에 대해 그려낸 <<마미>>는 panpanya 작품 치고는 꽤 큰 스케일 - 일종의 대형 로봇까지 등장하는 등 - 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반면 <<무지나>>는 마미와 똑같은 동물인 무지나가 등장하는데, <<마미>>와는 다르게 일상과 결합된 전개를 보여준다는게 재미있었어요. 주인공이 무지나를 구해주자, 무지나는 은혜를 갚기위해 도토리를 가져오고 주인공이 도토리로 빵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는 식으로 전개되거든요. 같은 동물로 정 반대 분위기의 이야기를 그려낸, 일종의 '빛과 그림자'인 셈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일상계 쪽이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다른 작품들도 panpanya 특유의 상상력과 기발함이 가득하며, 뒤에 용어집이 수록되어 있는 등의 디테일도 좋았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주먹밥이 굴러가는 마을 - 10점
panpanya 지음, 장지연 옮김/미우(대원씨아이)

환상의 동물 츠치노코를 발견하고 난 뒤 생활을 그린 <<츠치노코 발견하다>>, 츠쿠바산 관광 이벤트에 당첨되어 말하는 여행권과 함께 투어를 떠나는 꽤나 긴 이야기인 <<츠쿠바산 관광 불안내>>, 쓰레기도 돈을 주고 사는 상점에 대한 <<도가니>>는 기발한 상상력을 토대로 한 가공의 세계관을 재미나게 묘사한 작품들입니다.
표제작인 <<주먹밥이 굴러가는 마을>>은 주먹밥이 굴러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연구하는 내용인데, 비현실적인 설정을 일상과 결합하고, 그것을 '연구'하면 어떤 결과물이 될까?에 대해 상상력을 발휘한 작품이고요.
언덕 위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올라가는 <<거기에 언덕이 있으니까>>와 카스텔라풍 찜케이크의 맛에 빠져 잘 수급되지 않는 찜케이크 확보를 위해 노력하는 <<카스텔라풍 찜케이크 이야기>>는 일상의 디테일을 극대화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끔 등장하는 짤막한 일기도 이러한 일상성을 강화시켜 주는 역할을 합니다.
환상, 기발한 설정, 연구, 일상 등 panpanya의 대표적인 매력 포인트를 잘 알려주는 좋은 작품집입니다. 별점은 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엘리베이터와 케이블카의 차이가 뭘까요? 좌석이 있고 없고의 차이라고 하네요. <<츠쿠바산 관광 불안내>>에 나옵니다!


물고기 사회 - 6점
panpanya 지음, 장지연 옮김/미우(대원씨아이)

'일상'을 특별하게 그려내는 panpanya의 매력 포인트가 잘 살아있는 작품집. 
<<맞지않는 계절>>은 크리스마스 산타 썰매의 순록은 아르바이트였고, 썰매도 평상 시에는 주차 중이라는 독특한 일상성이 좋습니다. 일상과 환상의 결합을 보여준달까요. 기묘한 일상성이 돋보이는 작품들도 매력적이었어요. 여행을 갔다가 이상적인 기념품을 직접 만드는 <<선물의 마음가짐>>이 대표적입니다. 최애빵 '카스텔라 풍 찜 케이크'를 소재로 한 연작은 일상성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카스텔라 풍 찜 케이크 생산 종료를 앞두고 마지막 생산품을 구하기 위해 편도 2시간 반 걸려 3개를 확보한다던가 -서울에서 대전 정도를 가서 호두과자를 사온 느낌 -, 직접 만들기위해 다양한 연구를 거치고, 생산이 재개된 후 재 구입을 위해 발품을 팔다가 안정적인 주문 방법을 알아내는 과정을 담담하지만 매력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레시피 소개도 충실하고요. 한 번 만들어 보고 싶을 정도에요.


하지만 물고기가 진화하여 인간의 해산물 가공 공장을 인수하여 자체 통조림을 납품하게 된다는 표제작은 별로였습니다. 일상도 아니고, 환상으로 보기에는 상상력이 다소 부족했습니다. 일상 쪽에 집중하는게 더 나았을겁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10/01/19

명탐정 홈즈걸의 사라진 원고지 - 오사키 고즈에 / 서혜영 : 별점 2점

명탐정 홈즈걸의 사라진 원고지 - 4점
오사키 고즈에 지음, 서혜영 옮김/다산책방

교코와 세후도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 미호가 편지를 보내온다. 그녀는 편지를 통해 자신이 일하는 나가노의 고서점 마루우도에 유령이 나타났다는 것을 알리며 유령사건의 진상을 밝혀줄 것을 부탁한다. 교코는 서점 동료이자 명탐정(?)인 다에와 함께 휴가기간을 이용하여 나가노로 떠나게 된다.

이전에 읽었던 1권이 재미있었기에 구입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심히 실망스럽네요.
일단 전편의 장점이었던 서점과 책에 관련된 디테일과 일상성이 많이 사라진 탓이 큽니다. 서점이 주요 무대 중 하나이긴 하지만, 책이나 서점에서 있음직한 아이디어를 토대로 한 내용이 아니라서 사건과의 연계성이 약해요. 구태여 서점이 아니라도 상관없을 정도거든요. 일상성 역시 살인사건이 등장하는 등, 묵직해진 이야기 관계로 많이 희박해졌고요. 나가노라는 무대역시 기행문같은 풍광 묘사만 있을 뿐 별다른게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나가노에 관련된 무언가가 사건과 중요하게 얽혀있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게다가 추리적으로는 도저히 봐줄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일단 범인이 사건을 일으킨 동기도 지문에 대한 이야기가 설득력이 없기에 애매하며, 공소시효도 끝났고 증거로서도 부족한 등 여러가지 정황상 소동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훨씬 타당해 보이는데 사건을 키워나간다는 것은 말도 안되죠. 모든 사건의 핵심인 27년전 사건의 용의자 고마츠 아키오가 죄를 조용히 뒤집어 쓴 이유가 명쾌하지 않은 것도 불만스러웠고요.
또 너무나도 중요한 단서인 사라진 원고에 대한 이야기를 마지막까지 밝히지 않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이 원고에 대한 "증언"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열쇠인데 질질 끌다가 결말부분에서야 끄집어낸다는건, 작품을 길게 늘리기 위한 억지로밖에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트릭 역시 별다른게 없습니다. 그냥 "범인이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게 행동하는데 성공했다" 는 현실적이기는 하지만 이건 트릭도 뭐도 아니잖아요.

한마디로 전편의 장점은 거의 다 사라져버린 후속권으로 "사건 - 동기 - 트릭" 모두 추리소설로 봐주기 힘든 수준미달의 작품입니다. 그나마 톡톡튀는 신선한 캐릭터와 나가노에 대한 작가 특유의 섬세한 몇몇 묘사는 건질만했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만 절대로 아무에게도 권하고 싶지 않네요. 아무래도 이 작가는 장편에는 재능이 좀 없는듯한데, 출간 예정인 다음권도 장편이라면 절대로! 구입하지 말아야겠습니다.

2013/11/20

빈둥빈둥 환타스틱 유럽여행기 - 환타 (김환타) : 별점 2.5점

빈둥빈둥 환타스틱 유럽여행기 - 6점
환타(김환타) 지음/중앙books(중앙북스)

이글루스 블로거이신 김환타님이 블로그에 연재했던 유럽 여행툰 단행본.

블로그 연재 당시 꼼꼼히 챙겨보았는데 출판된 책으로 보니 또 다른 맛이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만화로 그려진 관광여행기라는 점에서 "낢 부럽지 않은 네팔 여행기"와 여러모로 비교되는데 정보와 재미 측면에서는 "낢..." 쪽이 더 좋지만 그림과 일상성 측면에서는 이 작품이 더 마음에 들더군요.

정보 전달 측면이 떨어지는 이유에 대해 부연 설명드리자면, "낢..." 쪽은 네팔 트레킹 여행에 대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되는지 적당히 알 수 있게 해 주지만 이 책은 유럽 여행에 대해 딱히 알려주는 것이 없습니다. 배낭이 캐리어보다 낫다, 이런 준비물을 챙겨라, 집시를 조심해라 등등의 내용은 이 책이 아니라 인터넷에 검색어 한 줄만 입력해도 나오는 정보들이잖아요? 재미 역시 마찬가지라서 빵 터지는 그런 맛은 부족한 편입니다. 아무래도 제가 작가의 젊은 미혼 여성 마인드를 따라잡기 힘든 탓도 크겠지만...

그러나 확실히 그림은 훨씬 마음에 들 뿐더러, 그야말로 남의 이야기 같지 않은 일상성은 마음에 들었어요. 네팔 트래킹 여행보다는 유럽 배낭여행이 더 친숙한 덕이겠죠.

결론적으로 점수는 2.5점.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여행이 소재인 일상툰으로 추천드립니다.

그런데 정가 17,000원이라는 가격은 심히 부담스럽긴 하네요. 아무리 풀컬러라도 그렇지...

2022/11/13

고양이가 있는 카페의 명언탐정 - 기타쿠니 고지 / 문승준 : 별점 2점

 

고양이가 있는 카페의 명언탐정 - 4점
기타쿠니 고지 지음, 문승준 옮김/내친구의서재

변호사가 탐정 역할을 수행하는 작품은 굉장히 많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 속 도시타는 가난한 동네 변호사로 마을 사람들의 소소한 의뢰 해결이 주 업무라 법정 다툼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법정물로 보기는 힘듭니다. 그보다는 일본 추리 소설 시장에서 나름대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작은 마을에서 특정 분야 전문가가 소시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 역할을 수행하는 일상계 추리 단편집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다른 전문가 - 서점 점원헌책방 주인, 요리사, 화과자 장인, 시계 수리 전문가, 사진가, 바리스타라쿠고가복화술사, 호텔리어, 심지어 스님까지 - 들이 등장하는 작품들은 각자의 직종과 관련된 사건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반해, 이 작품은 그냥 동네 사람들의 다양한 의뢰를 받기 위해서 변호사라는 직업을 설정한 것으로 보일 뿐입니다. 법률 전문가스러운 느낌이 별로 들지 않거든요. 도시타는 화자이자 커뮤니케이션 담당일 뿐, 탐정 역할은 도시타의 동생 리쓰가 담당하고 있어서 더 그렇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 리쓰 캐릭터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어요. 일단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떨어지고,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도시타' 에 관련된 말을 하는 루틴이 있고, 현재 상황과 분위기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해야 하는 말은 반드시 해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정상이 아닙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우영우를 떠오르게 만드네요. 결은 좀 달리하지만 엄청나게 머리가 좋다는 설정마저도 똑같고요. 그러나 우영우만큼 호감가게 묘사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전문가 일상계에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설정이었습니다. 비일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느낌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독특함에 목숨을 건 나머지 이상한 만화 주인공이 되어버리고 만 거지요.
또 추리한 결과를 형에게 바로 알려주지 않는 이유도 설명이 없는데, 여기에 무뚝뚝하고 무례한 행동에 더해져 굉장히 비호감이었어요. 다른 캐릭터들도 글래머 소꼽친구 간호사 사키, 여자를 밝히는 스님 마루메, 전 야쿠자 출신이자 현 카페 주인인 이모부 등 비현실적이거나, 호감가지 않는 인물들이 대부분이었고요.

그래도 추리적으로 괜찮았다면 나쁘지 않았겠지요. 하지만 수록된 네 편의 단편들 모두 그렇게 좋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정보 제공이 공정하지 못하거나, 이야기 전개가 리쓰 캐릭터처럼 극단적이고 비현실적인 설정이 많았던 탓입니다. 입 안에 넣은 치과 치료용 충전물이 라디오처럼 동작한다는 이야기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 따뜻한 인간 드라마 중심의 전형적인 일상계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지만 전문가 일상계로 보기에는 전문성, 일상성 모두 떨어지며 추리적으로도 그닥이라 점수를 줄 부분이 많지 않습니다. 그나마 한 가지 꼽자면 일본에서도 변호사가 먹고 살기 힘들다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정도?
딱히 영상화 되었다는 소식도 없고, 후속권도 출간되지 않았으며 국내에서도 금새 절판된걸로 보면 다른 분들의 평가도 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생각되네요. 구태여 찾아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참고로 '고양이'는 내용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시피 한 수준이므로 집사분들께서는 낚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길....

1화 <<못된 며느리와 낙서 소동>>
고토에 아줌마는 도시타에게 며느리 험담 끝에 며느리를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고토에 아줌마가 돌아간 후, 리쓰는 그녀의 섬망성 기억 상실을 눈치챘다. 형제는 사태 수습을 위해 며느리 에가와 씨를 만나러 갔다가 ,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던 낙서 소동에 휘말리는데...

진상은 알고보니 고토에 할머니의 병을 낫기 위해 며느리 에가와가 마당에 자생하는 디기탈리스 잎을 떼어 말린 뒤 몰래 먹였다는 겁니다. 고토에 할머니는 디기탈리스 잎의 부작용으로 치매와 비슷한 용태를 보인거지요.
그런데 솔직히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디기탈리스가 심장병에 효과가 있지만 독성 또한 강하다는건 정보 검색으로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예 자동 완성으로 '디기탈리스 중독'이 함께 뜰 정도로요. 이걸 약재로만 알고 먹였다? 설득력이 약합니다. 자기 험담만 하는 시어머니에 대한 며느리의 살의가 더 크게 느껴집니다. 때문에 이를 효심으로 포장하는 마무리는 억지스러웠습니다. 도시타가 제대로 된 변호사였다면 며느리를 경찰에 신고하는게 맞았어요.
추리를 하기 위한 정보 제공도 빈약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고요.

차라리 낙서 소동 쪽이 추리적으로는 조금 더 낫습니다. 다른 낙서들과는 그림이 달랐고, 키가 작은 사람이 그렸다는걸 추리해내는 과정은 꽤 그럴싸했거든요.
하지만 진상은 앞서 사건과 마찬가지로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더군요. 초등학교 3학년생이 새가 부딛힐까봐 '버드 스트라이크'를 리카 씨네 가게 쇼윈도에 그렸다는게 전혀 와 닿지 않았거든요. 쇼윈도가 그 가게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닐테고, 1층 건물 쇼윈도에 새가 날다가 부딛힐일이 그렇게 많을리 없으잖아요. 애초에 범인 신지의 집 창문에 새가 부딛혀 죽은 것부터가 작위적이지요. 이를 리쓰가 맨션의 깨진 창문만 보고 바로 알아챘다는 추리도 비현실적이고요.

아울러 전혀 다른 두 이야기를 억지로 결합할 필요가 있었을지도 의문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화 <<협상 상대는 요통으로 고생하는 전과자>>
도시타 형제는 연립 재건축을 앞두고, 퇴거를 거부하는 임차인을 설득하는 의뢰를 받았다. 리쓰는 찾아간 임차인 아라키 데쓰조의 집 안에서 '사취'가 나는걸 느꼈고, 여러가지 주변 정보들을 조합하여 그가 길고양이를 돌보고 있다는걸 추리해 내는데...

길고양이를 돌본다는걸 훔쳐온 쓰레기 봉투 속 내용물을 통해 추리하는 과정, 그리고 사취는 길고양이가 물어온 쥐의 시체였다는 진상까지의 전개와 과정은 깔끔했습니다. 퇴거를 불응했던 이유가 유치원에 드는 햇볕 때문이었다는 내용도 작위적이지만 나쁘지는 않았고요.

전반적으로 잔잔한 일상 드라마 느낌을 가득 전해주는 작품으로 수록작 중에서는 베스트로 꼽을 만 합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3화 <<만화가 지망생과 사라진 유언장>>
도시타는 이모네 카페 단골인 만화가 지망생 레논 씨의 사건 을 수임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형이 레논 씨가 유언장을 숨겼다고 주장해서 법정에서 다툼을 벌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레논 씨는 도시타에게도 유언장은 없었다고 말했지만, 형이 어머니가 유언장을 남겼다는 말을 녹음해서 궁지에 몰리게 되는데....

수록작 중 유일하게 변호사가 활약할만했던 이야기. 핵심은 '유언장은 어디에 숨겼나?' 라서 변호사가 나설만한 부분은 없지만, 레논 씨가 왜 유언장을 숨겼는지에 대해서는 법률적 해석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레논 씨가 어머니 장례식 초야 직후, 카페를 방문한 뒤 책꽂이 위에 있는 책을 떨어 트렸다는 점에 착안하여 카페의 만화책 중 한 권 안에 유언장을 숨겼다는걸 추리해내는 과정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만화책에 대해 사소해보였던 레논 씨의 질문이 중요 단서가 된다는 점도 좋았고요.

하지만 유언장 내용이 유산을 형이 아니라 레논 씨에게 전부 남긴다는 거라서 유언장을 숨기고 형과 유산을 반으로 나누려 했다는 동기가 영 와 닿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착하고 바보같아도 이건 너무 비현실적이잖아요? 그리고 이런 동기였다면 유언장을 숨기는게 아니라 태워버리는 식으로 없애는게 당연합니다. 유언장을 어떻게든 드러내지 않으려고 사력을 다하는 전개를 보면 더더욱요. 이는 유언장이 없을 경우 법률적으로 레논 씨가 한 푼도 건지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작가가 선택한 억지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4화 <<한심한 피고인과 소음 트러블>>
도시타는 마약용 주사기를 수백개 구입하려다 경찰에게 상처를 입힌 에비스 씨의 국선 변호인으로 선임되었다. 어떻게든 집행유예를 받으려고 도시타는 노력했지만, 에비스 씨는 거부했다. 하지만 법정에서 리쓰가 급작스럽게 증인 요청을 하여 판결은 연기되었다.
그 사이 도시타는 소꼽친구 사키의 소개로 이웃이 내는 소음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도모코 씨를 만났다. 하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조사한 결과, 도시타 형제는 아무런 소음도 들을 수 없었다....


도시타가 국선 변호사로 선임되어 법정 장면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법정에서 날선 공방이 펼쳐지는 법정 미스터리는 아닙니다. 왜 에비스 씨가 징역형을 받고 싶어하는지를 추리해낸 뒤, 진상을 파악하여 그의 갱생을 돕는다는 감동적인 (?) 인간 드라마이기 때문입니다. 도모코 씨 이야기도 마찬가지에요. 소음 공해는 단순한 소재였고, 도모코 씨 남편이 정리 해고를 앞두고 회사에서 수모를 당하면서 근무하는 상황의 극복이 핵심이거든요.

드라마 모두 좋은 이야기에요. 문제는 추리적인 부분입니다. 에비스 씨 시간의 경우, 오래전 이혼한 아내가 키우던 아들이 칼에 찔린 뒤, 부모는 수혈이 안 되는 탓에 행인들로부터 피를 뽑으려고 주사기를 구입했다는 동기부터 어처구니 없었습니다. 딱히 추리를 할 부분도 없고요.
도모코 씨가 치과 진료를 받은 이후, 이빨에 채운 충전물이 우연히 방송을 수신하게 되어, 일종의 광석 라디오처럼 동작했다는 진상도 황당하기 그지없더군요.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확률은 극히 드물겁니다. 설령 실제 일어나더라도 입 안에서 소리가 나는걸 모른다는건 말도 안되겠지요.

그래서 별점은 1.5점. 마지막 이야기였는데, 아쉬움이나 여운을 남기기는 커녕 더 읽어볼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만 굳게 만들어 주네요.

2023/08/30

플라네테스 1~4 - 유키무라 마코토 : 별점 2점

[고화질 세트] 플라네테스 (총4권/완결) - 4점
Makoto Yukimura/학산문화사(만화)

한 20여년전 발표 당시에는 애니메이션도 만들어졌던 인기작. 오프닝 곡이었던 "Dive in the Sky"는 좋아해서 당시에 자주 듣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제 기억 속에서는 사라져버린지 오래되었었는데, 오랫만에 본가에 방문하니 형이 발굴해두었다고 하여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전 4권의 짤막한 분량이라 읽기에 부담이 없어서 좋더군요.

작품은 데브리(우주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을 하는 하치로타가 꿈 - 자신의 우주선을 가지고 우주를 돌아다니는 것 - 을 이루기 위한, 그리고 '왜 우주를 향하는지?'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한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핵심은 명성과 거액이 보장되는, 목성으로 향하는 우주선 '폰 브라운' 호의 승무원이 되는 것이고요. 하치로타는 승무원 선발 과정에서 있었던 여러가지 고군분투, 그리고 승무원이 된 후의 경험들로 결국 '모든 것은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다'는걸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꽤 긴 호흡의 이야기를 여러가지 단편 에피소드들과 잘 섞어서 깔끔하게 마무리한게 좋았습니다. 여러가지 우주에 관련된 탄탄한 설정도 읽는 재미를 더해주고요. 특히 데브리가 생성되는 과정이라던가, 선외 활동, 승무원 선발 과정 등에 대한 상세한 묘사는 작가가 공부를 많이 했다는걸 새삼 깨닫게 해 줍니다. 이를 표현하는 작화력도 대단했고요. 

하지만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던가 "사랑이 중요하다"는걸 핵심인 결말은 실망스러웠습니다. 고작 이 정도 이야기였나?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하치로타의 입을 빌어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탓에, 오글거리는 80년대 팝송 가사같다는 느낌도 강하게 들고요.
또 이 내용은 하치로타와 아이가 서로 사랑하게 되는 3권에서 이미 마무리 되었습니다. 휘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4권과 목성 우주선 이야기는 불필요했어요. 우주 방위 전선의 테러는 비중에 비하면 결말이 황당할 정도로 시시했고요. 이런걸 보면 작가가 갈팡질팡한 느낌이 강하게 드는데, 과연 결말이 작가가 원했던게 맞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이럴 바에야 초반부 '토이박스 호' 승무원들과 함께 벌이는 데브리 수거를 중심으로 하는, 일상성 강한 SF 일상 드라마로 끌고가는게 훨씬 좋았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래 4컷 만화처럼 말이지요.


별점은 2점입니다. 찾아보니 e-book으로 다시 출간되었던데, 구태여 찾아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11/02/16

에키벤 철도 도시락 여행기 - 하야세 준 / 채다인 : 별점 3점

에키벤 1 : 큐슈 - 6점
하야세 준 지음, 채다인 옮김, 사쿠라이 칸 감수/에이케이(AK)

에키벤 4 : 홋카이도편 - 6점
하야세 준 지음, 채다인 옮김, 사쿠라이 칸 감수/에이케이(AK)

블로그 이웃이시기도 한 채다인 님이 번역하신 철도 - 에키벤 소개 만화. 요리 만화를 좋아하는 저이기에 주저 없이 1권을 구입하여 읽었고 2, 3권은 아직 구입하지 않았는데, 채다인 님의 도움으로 4권을 먼저 증정받아 읽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내용은 도시락집을 운영하는 주인공 다이스케가 일본 전국 철도 일주를 하면서 각 지방역의 맛있는 에키벤을 찾아 먹는 것이 전부입니다. 한마디로 지극히 심플하죠. Channel J에서 방영했었던 "ekiben 일본 기차 도시락"이라는 여행 프로그램과 거의 동일한 구성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러한 심플한 구성이 이상하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요리나 와인 하나로 세상의 모든 근심과 걱정이 사라진다는 식의 요리 만화보다 훨씬 현실적이잖아요? 세밀하고 정교한 그림 역시 철도 여행과 에키벤을 간접 체험하는 데 부족함이 없고, 여행 과정과 방법을 소개하는 부분의 디테일도 대단하기에 일본 철도 여행 가이드 측면에서도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그러나 정보 전달 요소 중심이라 내용에 별다른 드라마가 없다는 점은 큰 약점이라 호불호는 갈릴 것 같습니다. 압도적인 묘사와 정보량에서 단순한 재미 이상의 것을 전달하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정보보다 재미를 추구하는 독자에게는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읽으면서 다른 만화도 많이 떠올랐는데, 누구나 사 먹을 수 있는 에키벤이 소재라는 점에서 느껴지는 소박함과 일상성은 "고독의 구루메"가, 철도와 에키벤이 50:50 비율로 섞여 있어서 에키벤 만화이기도 하지만 "철덕"들을 위한 만화이기도 하다는 점에서는 "월관의 살인"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에키벤" 만화라는 점에서 떠오른 만화는 바로 이겁니다.


신장개업 3 - 4점
츠치야마 시게루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요리 만화의 숨은 실력자 츠치야마 시게루의 작품 "신장개업" 3권! 하코다테의 레스토랑 '오릉곽정'의 요리장 토시죠가 전국을 돌며 망해가는 가게를 업그레이드해 준다는 만화로, 3권에는 쇠락해가는 관광지의 에키벤인 "혼마루 도시락"을 새롭게 업그레이드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업그레이드 방법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허무하기는 하지만 (한마디로 껍데기만 바꾸는 것입니다) 에키벤 팬의 로망이라 할 수 있는, "에키벤을 먹기 위해 철도 정차역을 변경시킨다!"라는 꿈이 담겨 있어 비교하며 읽게 되더군요. 어처구니없는 과장과 오버로 점철된 전형적인 성장 - 배틀형 요리 만화이기는 하나, 에키벤을 좋아하신다면 이 작품 역시 한번쯤 찾아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2023/03/04

맛있는 인생 - 루시 나이슬리 / 최세희 : 별점 4점

맛있는 인생 - 8점
루시 나이슬리 지음, 최세희 옮김, 박찬일 감수/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일상계 먹부림 만화는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흔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일본 작품이라면 <<고독한 미식가>> 등 구스미 마사유키가 원작을 맡은 작품들이 대표적일테고, 우리나라는 조경규의 작품들을 떠올릴 수 있지요.
하지만 이런 일상성 넘치면서 먹부림 이야기만 하는 만화는 미국 등 서구권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었던게 사실입니다. 국내 소개된 미국이나 유럽 만화는 슈퍼 히어로물 시리즈아니면 모두 고급진 - 이해하기 어렵고 힘든 - 작품성으로 승부하는 만화가 대부분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뉴요커가 그려낸 일상계 먹부림 만화가 있더군요. 첫 등장은 10여년 전 (2013년) 이고 국내 소개도 2014년에 되었었는데 제 무지 탓에 이런 작품이 있는지도 몰랐었습니다. 알고나서 주저없이 구입하였습니다.

작가 루시 나이즐리가 어렸을 때 부터 성장해 나가면서 접했던 여러 음식, 요리들과 관련된 추억과 에피소드들을 총 12장에 걸쳐 소개해주고 있는데, 별로 평범하지 않았던 루시의 추억담 - 요리 전문가 엄마가 아빠가 이혼한 뒤 귀농하여 농사를 지었고, 엄마 덕분에 요리에 눈을 떠서 관련된 아르바이트를 했던 등 - 을 재미있게 펼쳐나가면서 요리, 음식 소개를 곁들이는 전개를 보여줍니다. 각 장마다 등장하는 요리들은 상세한 레시피를 소개해주는 식으로 상세한 소개와 설명을 곁들여주고 있고요. 루시의 엄마표 버섯 소테는 바로 도전해보고 싶을 정도였어요. 미리 버섯을 말려야 한다는게 조금 걸리는데 뭐 그냥 해도 괜찮겠지요. 물론 일본 여행을 갔을 때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소개해주는 기묘한 초밥 등 받아들이기 힘든 레시피도 없지는 않고, 어떤 장은 본편과 전혀 상관없는 부록같은 정보가 실려있기도 합니다만 이런 내용도 재미는 충분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건 음식과 요리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루시의 추억과 일생이 가득 녹아들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무엇보다도 마지막 장을 통해 루시가 "왜 이 만화를 그렸는지"를 잘 알 수 있게 해 주는게 최고였요. 즉, 이 작품은 누군가 시켜서(편집부) 그려낸 맛집이나 요리 소개 만화라기 보다는, 개인이 주체적으로 그려낸 자신만의 세계관이 담긴 작품이라는 뜻이니까요. 그게 무엇이건 간에 자신의 경험이 더 중요하다는 내용으로도 읽히는데, 이런게 동양과 서양의 차이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울러 작화도 제 취향이었습니다. 조금은 전형적인 미국 카툰 스타일이기는 한데, 내용에도 잘 어울리면서 과하지 않은 컬러가 마음에 쏙 들더군요.

지나치게 개인 추억담에 가까운 탓에 기승전결이 확실치 않은 이야기가 많기는 한데, 추억이라는건 다 그런 법이죠. 딱히 단점을 찾기 어려운 재미있고 좋은 작품이었기에 별점은 4점입니다. 찾아보니 다른 작품들도 국내에 몇 편 소개되었던데, 차분히 구해봐야겠습니다.

2016/06/12

살인해드립니다 - 로런스 블록 / 이수현 : 별점 2.5점

살인해드립니다 - 6점
로런스 블록 지음, 이수현 옮김/엘릭시르

감성 킬러 켈러를 주인공으로 하는 로런스 블록 (로렌스 블록)연작 단편집입니다. 원제는 "Hit Man"이고요. 모두 10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두번째 이야기는 "미스테리아 1호"에서 읽었던 작품입니다.

살인 청부업자가 의뢰를 받고 특정 지역에 잠입하여 타겟을 제거한다는 이야기는 많습니다. 하지만 이 단편집 수록작들은 다른 킬러물과는 확실히 다릅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사람을 죽이는 작전이 내용의 핵심이 아니라는 점이에요. 켈러가 작전을 위해 방문한 지역과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다양한 상황이 더 상세하게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켈러의 심리 묘사 역시도 발군이고요. 이러한 묘사들과 전편에 흐르는 감수성은 확실히 로런스 블록의 작품답다는 느낌을 전해줍니다.

물론 타겟 제거 작전도 허투루 묘사되지는 않습니다. 치밀한 준비와 범행을 하는 순간의 묘사가 빼어난 작품도 있거든요. 자신이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여겨 경호를 철저히 하는 타겟을 살해하기 위해 소금통에 독약을 넣는 "개를 산책시키고 화분에 물을 줍니다", 의뢰인이 누구인지를 알아낸다는 "현장의 켈러"는 작전과 일상이 잘 조화되어 있습니다. 켈러가 속아넘어간다는 내용의 "빛나는 갑옷을 입은 켈러"와 "켈러의 마지막 피난처"도 독특한 맛이 좋았고요.

또 작품들의 설정과 시점이 모두 이어져 있어서 긴 호흡의 장편을 읽는 느낌을 준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이를 통해 켈러가 점점 인간성을 회복해가는 전개를 선보이는 점도 인상적이고요. 흐름으로 본다면 첫 단편 "솔저라고 부르면 대답함"에서는 타겟과는 대화하는 정도이며, 켈러가 그 지역에 대해 흥미를 잃자마자 바로 냉정하게 살해합니다. 하지만 두 번째 단편 "말을 탄 사나이 켈러"에서는 타겟에 대해 알게된 뒤 오히려 의뢰인을 살해하게 됩니다. 세 번째 단편 "켈러의 상담 치료"에서는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하다가 우연찮게 개를 맡아 키우게 됩니다. 그리고 개 넬슨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식으로 감정을 드러내며("개를 산책시키고 화분에 물을 줍니다"), 작전 때문에 부재 시 넬슨을 돌봐주기 위해 고용한 앤드리아와 동거는 물론이고 자신의 정체까지 밝힙니다("켈러의 카르마"). 그리고 앤드리아가 넬슨과 함께 떠난 후 켈러는 은퇴를 결심하고, 우표 수집이라는 취미를 갖게 되지만 취미에 돈이 너무 많이 들자 복귀하면서 마무리되지요.
이러한 전개는 작품에 일상성을 부여하며, 묘하게 현실적인 느낌을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켈러라는 캐릭터를 극적으로 드러내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옆집 아저씨가 킬러더라'라는 느낌을 현실적으로 구현했달까요? 여튼 이러한 캐릭터 설정과 묘사 만으로도 충분히 읽을만 합니다.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시리즈의 한권으로 만든 모양새, 크기 모두 좋다는 것도 마음에 든 점이고요.

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큰 문제는 켈러의 정체를 너무 많은 사람들이 쉽게 알아챈다는 것입니다. 10편의 작품 중 첫번째의 잉글먼, 세번째의 브린, 앤드리아, 여덟번째의 월리까지 무려 네 명이 알아내거든요. 그것도 그냥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켈러가 치밀하지 못한 탓에 정체가 드러나는 이야기가 많아서 답답합니다. 첫번째 작품 "솔저라고 부르면 대답함"에서 타겟이 운영하는 '퀵 프린트'에 잃어버린 개를 찾는다는 전단 복사를 의뢰하지만, 전단지에 쓰여진 번호가 실존하지 않는 다는 것을 타겟이 전화를 직접 걸어보고 눈치챈다는 식으로요. "켈러의 상담 치료"에서는 정신과 의사에게 미행당하고요.

게다가 앞서 말씀드렸듯 "빛나는 갑옷을 입은 켈러"와 "켈러의 마지막 피난처"에서는 사기까지 당합니다. 그나마 도트에 의해 의뢰받은 "빛나는 갑옷..."이야 그렇다쳐도 "켈러의 마지막 피난처"는 아마추어에게 농락당하는 수준이라 많이 실망스러워요. 이래서야 진작에 체포되지 않는게 신기할 정도죠.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나름 인간적이고 감성적인 킬러를 등장시킨 색다름은 좋았지만 정교함이 부족하여 감점합니다. 드라마로서는 충분히 재미있지만 범죄물로 보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했어요. 한마디로 로런스 블록의 장점, 단점을 그대로 갖춘 작품집입니다. 로런스 블록의 팬이 아니시라면 구태여 읽어보실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2009/11/25

명탐정 홈즈걸의 책장 - 오사키 고즈에 / 서혜영 : 별점 3점

명탐정 홈즈걸의 책장 - 6점
오사키 고즈에 지음, 서혜영 옮김/다산책방

세후도 서점 사건메모 시리즈 제 1작으로 출간된 서점을 주무대로 한 일상계 옴니버스 추리 단편집입니다.

일단 작가가 실제 서점근무를 오래했다고 하는데 덕분에 서점과 책에 관련된 이야기의 디테일이 놀라울 정도로 상세한 것, 그리고 실제 존재하는 책들이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소재로 쓰인다는 점이 굉장히 독특했습니다. 제가 이런 디테일 굉장히 좋아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탐정역은 고참 서점직원인 교코와 아르바이트생 다에의 2인조로 구성되어 있는데 교코가 서점 근무 경력을 잘 살려 여러가지 단서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실제 추리는 다에가 담당하는 구조로 둘의 협력관계가 잘 맞아떨어지는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내용도 5편의 작품 대부분이 일상계 작품이라는 테마를 잘 살리고 서점의 디테일과 결합한 소품과 같은 귀여운 이야기들이라 읽는 내내 흐뭇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우울할때 읽으면 좋을 치유계 소설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또 책의 특성상 맨 뒷부분에 부록처럼 실제 서점 직원들의 좌담회가 실려있는 것도 무척 좋더군요. 아이디어도 좋지만 의외로 재미있더라고요. 일상성이 강조되고 서점이라는 공간이 강조된 나머지 추리물로서 성립하기 어려운 작품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조금 아쉽긴 하지만 재미 하나는 빠지는 책이 아니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추리물을 처음 접하기 시작하는 분들, 특히 여성분들에게 추천하고 싶네요. 가벼운 마음으로 편하게 읽기에는 정말이 최고라 생각합니다. 책도 너무 이쁘게 잘 나왔어요! 작품을 만화화한 구제 반코의 작품(아래 이미지 참고)도 꼭 출간되면 좋겠습니다.

덧붙이자면, 손님과 서점 직원과의 해프닝이 이야기의 주 소재들인데 이렇게 대형 서점에서 직원과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일본의 출판 시장이 부럽기만 하네요. 저도 근처에 세후도 서점처럼 인간냄새 나면서도 친절한 직원들로 가득한 서점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단골이 되고 싶습니다...

1. 판다는 속삭인다

한 손님이 교코에게 자신이 아는 경증 치매노인이 원하는 책 3권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이 노인은 치매가 있어서인지 알 수 없는 말로 책을 요청했는데, 교코와 세후도 서점 직원들은 그 수수께끼를 결국 풀지 못해서 다른 책을 권해주었다. 그 뒤, 니시오카라는 손님은 그 책이 아니었다고 말하며 다시금 암호같은 말로 책을 찾아달라고 하는데... 

일종의 암호트릭물입니다. 노인이 말하는 엉뚱한 대사가 가르키는 대상은 대단하지는 않지만 작가의 서점 근무 경력을 드러내는 굉장히 효과적인 트릭이었으며, 이 책들이 나타내는 메시지 역시 굉장히 잘 짜여져 있어서 이야기의 완성도를 높여줍니다. 트릭이 거창하거나 웅장하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나타내는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집의 베스트 작품으로 꼽고 싶네요. 

2. 사냥터에서, 그대가 손을 흔드네 

기타가와는 어머니 사와마츠씨가 갑자기 연락이 끊기자, 어머니의 단골이었던 세후도 서점을 찾았다. 마침 사와마츠씨가 실종전에 구입한 것은 한권의 만화책이었다... 

한권의 만화책으로 20년 전의 기억과 자취를 떠올린다는 내용인데 작중에 만요슈와 겐지이야기를 잘 녹여내어 부드럽게 접근하는 작가의 솜씨는 놀랍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추리물이라고 보기는좀 힘들더군요. 여성취향이 물씬 나는 미스터리가 믹스된 드라마 단편입니다.

3. 배달 빨간 모자 

세후도 서점 근처 상점가에 있는 미용실 노엘에서 손님의 몰래 카메라 사진이 발견되는 대형 사고가 터졌다. 사진이 세후도 서점이 공급하는 정기 구독 잡지 안에 들어있었던 탓에, 노엘 점장의 친구인 미남 이발소 바버 K의 점장 "킹"이 세후도 서점을 찾아와 관련된 내용을 문의했다. 마침 당시 구독 잡지를 배달하던 세후도 서점의 아르바이트생인 미소녀 히로미 양이 배달을 나갔다가 사고가 나 다치게 되는 사건이 겹치는데... 

사소한,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사건을 그리고 있는 정통(!) 일상계추리물입니다. 대단한 트릭은 없지만 몇가지 단서를 토대로 추리를 펼쳐나가는 교코와 다에 컴비의 활약이 빛을 발하는 수작이죠. 결국 히로미양의 이야기가 모든 단서를 제공한다는 결정적인 약점은 있지만 단편적인 단서를 이야기와 잘 엮어놓고 있기에 재미있게 읽었답니다. 이른바 "배달 빨간 모자" 캐릭터인 히로미양도 귀엽고요. 추리도 괜찮고 나름의 액션과 긴장감도 잘 살아있는 작품이라 만화로도 꼭 보고 싶어지네요.

4. 여섯번째 메시지 

가와다 나호코가 자신이 입원 중에 읽을 책을 골라준 점원을 찾아 세후도 서점을 방문했다. 그러나 그녀에게 책을 추천한 점원은 존재하지 않았다? 

굉장히 간단한 소품이지만 실제 존재하는 책들이 이야기의 주 소재로 쓰이고 있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등장하는 작품은 총 5권으로 하야시 간지의 "하늘 여행", 가와이의 "산책 - 시골 꽃", 이케다 아키코의 "다얀의 스케치 교실", 아사다 지로의 "다미코", 마지막으로 하인라인의 "여름으로 가는 문"입니다. 이렇게 서로 연관성 없는 다양한 종류의 도서를 누가 어떻게 추천했는지를 간단한 추리로 풀어냅니다.

추리가 없었더라도 실제 누가 책을 추천했는지를 찾아내기는 별로 어렵지 않았을 터라 추리물로 보기는 좀 힘들지만... 그래도 여성분들이 아주 좋아할 만한 감성적이면서도 따뜻한 이야기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나저나 "다얀의 스케치 교실"은 저도 사고 싶어지는데 이거 큰일이네요...^^

5. 디스플레이 리플레이 

출판사가 주최하는 디스플레이 콘테스트에 세후도 서점도 응모하기로 했다. 디스플레이 주체는 아르바이트생 유키로 교코가 담당하는 인기만화 "트로피컬"의 디스플레이라 교코도 적극 협조했다. 그리하여 디스플레이는 멋지게 완성되지만 어느날 그 디스플레이가 심하게 훼손되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인기 만화와 그 작품의 표절 논란이라는 소재의 이야기인데 추리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모두 공감하기 힘든, 이 단편집의 워스트로 꼽고 싶은 작품입니다. 일단 추리가 거의 등장하지 않고 실질적 증거나 단서를 토대로 이루어지지 않기에 추리적으로 점수를 주기 어려운 탓입니다. 이야기 자체도 별로 잘 짜여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요. 여러모로 아쉬움이 큽니다.

2011/04/01

러브로마 1 - 토요다 미노루 / 김동욱 : 별점 3점

러브로마 1 - 6점
토요다 미노루 지음, 김동욱 옮김/세미콜론

항상 직구승부, 하고싶은 말은 무조건 하는 정직맨 호시노와 화끈하다는 점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네기시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블로그 이웃이신 벨제뷔트님이 번역하신 작품으로 벨제뷔트님의 배려로 읽게 되었죠. 이 자리를 빌어 먼저 감사드립니다. 

설정만 놓고 본다면 진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즐겁고 유쾌한 학교생활, 주변에 있는 만만치않게 개성적이면서도 유쾌한 친구들 등 그야말로 우울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는 차이점이 큽니다. 거대한 사건이나 음모 없이, 별다른 삼각관계나 위기 없이도 여자친구와의 첫 키스, 그녀가 싸준 도시락, 처음 가본 그녀의 집에 대한 추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 깨닫게 만들어 주는 일상성도 아주 마음에 들었고요. 순수한 감수성과 즐거움이 가득하여 독자를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작품이에요.

아쉽게도 그림이 썩 좋다고는 할 수 없는데, 찬찬히 보면 목판화가 연상될 정도로 선의 느낌이 개성적이고 순진해서 작품이랑 딱 어울린다 생각됩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 고교생 연애물은 역사도 깊고 그 종류도 많겠지만 그 중에서도 독특하고 인상적인, 자기만의 세계를 꾸려가고 있다는 점에서 추천합니다.

2022/06/19

악스 - 이사카 고타로 / 김해용 : 별점 2.5점

악스 - 6점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해용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아래 리뷰에는 이야기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평범한 문구회사 영업사원이자 공처가면서 한 아이의 아빠인 미야케는 사실 '풍뎅이'라는 별명의 유명 킬러였다. 그는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일에 지친데다가, 친구가 될 수 있으리라 여겼던 마쓰다와 나노무라와도 거리가 멀어진 탓에 은퇴를 결심했다. 그러나 문제는 관리자인 '의사'였다. 의사가 가족에게 보복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풍뎅이는 보복을 막으려고 여러가지 준비를 했지만, 결국 선수를 친 의사에게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10년 후, 풍뎅이의 아들 가쓰미는 우연히 아버지에게 무언가 비밀이 있었다는걸 눈치챘다. 몇 안 되는 단서를 더듬어 아버지 소유의 맨션을 찾아낸 가쓰미는 '의사'와 엮이게 된 탓에 위험에 빠지고 마는데....

이사카 코타로 장편 소설입니다. 킬러들이 나오는 무언가 시리즈의 후속작이라는군요. 전작은 읽어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네요. 

특징이라면 킬러물과 일상계라는 두 장르를 오가고 있는데, 일상계 비중이 훨씬 높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그야말로 '일상' 이야기 쪽으로요. 킬러물과 일상성을 결합한 작품으로는 "살인해드립니다"가 있기는 한데, 이 작품은 아예 킬러 업무와 상관이 전혀 없는, 풍뎅이의 아내와 가족 이야기에 집중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킬러가 타겟을 죽이고 해치는 이야기보다도요. 특히 '풍뎅이'가 어떻게 하면 아내와 트러블이 없을지 항상 고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킬러 업무보다 오히려 아내의 대화에서 훨씬 큰 긴장감이 느껴지게끔 그리는 덕분이지요. '풍뎅이'가 아내와의 대화를 계속 머릿 속으로 시뮬레이션하고, 여러 권의 노트에 대화를 기록하며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감동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저 역시 따라하고 싶은 노하우도 가득해요. "결점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개선을 약속한다. 그것이 가장 원만하게 해결하는 지름길이었다."처럼요. “저는 19 년의 결혼 생활을 통해 배웠습니다 . 아내의 말에는 어쨌거나 힘들겠다는 말이 최고라는 걸요 . 불평은 물론이고 의문형의 말에 대해서도 ‘힘들겠는걸’ 하고 말하는 게 아내를 가장 잘 위로하는 방법이죠."라는, 풍뎅이가 처음 만난 마찬가지로 공처가인 친구 마쓰다의 말도 심금을 울립니다. 밤에 아내를 깨우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최고의 야식은 어육 소시지라는 등의 디테일들도 좋아요.

단순히 가정 문제 뿐 아니라 '공정함'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성품 등 풍뎅이라는 인간에 대한 세밀하면서도 깊이있는 묘사는 읽는 재미를 더해줍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생길 정도로 잘 그려내었기 때문입니다. “대화의 내용이야,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요 . 인사를 하고 뭔가 말을 주고받는 것 자체가 중요하죠 . 종교나 이데올로기는 사람마다 다르고, 스포츠 역시 사람에 따라서는 종교 같은 거니까 말이에요 . 아무래도 딱딱해질 가능성이 있잖아요 . 그런 점에서 날씨 이야기는 비교적 안전하죠.” 라는 말에서 잘 드러납니다. 때문에 기절한 상대를 죽이지 않고, 상대방에게도 공정한 기회를 부여하는 작위적인 설정도 설득력있게 다가옵니다. 친구가 없지만, 친구 같은 주변 인물들이 서서히 생겨나고, 가족에 대해 새삼 곱씹게 되면서 은퇴를 결심하고, 그로 인해 닥칠 수 있는 위험을 없애고자 노력하는 모습도 일종의 성장기스러운 맛이 느껴져서 괜찮았습니다. 10년 후, 아들 가쓰미가 아버지의 비밀(?)을 파헤쳐 가는 과정도 추리적으로 볼 만 했고요.

그러나 일상계스러운 모습의 강조로 인해 킬러로서의 전문성을 드러내는 부분이 너무 약해졌다는 문제는 있습니다. 클라이막스라 할 수 있는 '의사'와의 대결부터가 굉장히 시시합니다. 아무리 지인이라 하더라도 나노무라 앞에서 헛되이 자살을 택한다는 것도 그렇고, 확실치도 않은 의사의 단독 행동을 노리고 함정을 파는 계획도 그렇게 잘 짜여졌다고 느껴지지 않은 탓입니다. 간단한 석궁 발사 장치가 10년이나 아무 탈 없이 맨션에 잘 설치되어 있다가, 결정적 순간에 문을 연 의사를 쏘아 죽인다는건 설득력이 낮아요. 또 석궁 장치 설정에 대한 힌트를 주지 않아서, 아들 가쓰미가 문을 먼저 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긴장감을 주지 못한건 실수였다 생각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단점도 있지만 독특한 재미만큼은 확실했습니다. 다른 시리즈도 읽어보고 싶네요.

덧붙이자면 킬러의 지극히 평밤한 일상을 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너무 사람을 잘 죽이고, 인간다움이 없는 탓에 보스가 억지로 1년간 사람을 죽이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가도록 시킨 "더 페이블"의 사토 아키라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가끔 일상 속에서 킬러의 기술을 드러내는 모습도 비슷했으니까요. 물론 풍뎅이는 일상 생활 자체를 아예 모르던 사토 아키라와는 다르게 평범한 영업사원이기도 해서 일상 생활에 능숙하다는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에필로그(?) 같은 걸 보면 풍뎅이도 원래는 사토 아키라와 같이 사회 생활을 시작했나본데, 저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차별화되어서 훨씬 좋았습니다. 풍뎅이의 사회 생활 적응기는 분명 "더 페이블" 스러울터이니....

2009/10/21

의뢰인은 죽었다 - 와카타케 나나미 / 권영주 : 별점 3점

의뢰인은 죽었다 - 6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북폴리오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과 "네 탓이야" 로 친숙한 와카타케 나나미의 신작 단편집. "네 탓이야"의 주인공 프리터 하무라 아키라 주연의 단편 9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읽고난 감상으로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는 것은 생각하고는 많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단편집은 제가 기대했었던 "추리물"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전체적으로 볼 때 이야기의 전개나 구조는 추리물적인 성격이 강하고, 대체로의 내용들도 범죄와 호러를 근간에 깔고 있는 등 광의의 의미로서 추리물이라고 부르기에는 전혀 문제는 없습니다. 그래도 범죄가 등장하고 그 범죄를 파헤쳐서 숨겨진 진상을 알아낸다던가, 교묘한 범인의 트릭을 간파해서 진범을 찾아낸다는 등 전통적인 추리의 영역을 벗어나 있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죠. 작가의 전작을 통해 이러한 추리적인 요소를 많이 기대했던 저에게는 정말 뜻밖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기대하고 달랐다고는 해도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유는 당연히 작품들이 재미있었기 때문이죠.

먼저 전통적인 추리적인 면만 놓고 본다면 표제작이기도 한 "의뢰인은 죽었다"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갑자기 날아온 난소암을 알리는 통지서에 당황하던 여자가 우연찮게 알게된 하무라에게 관련된 내용을 물어본 뒤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어 하무라가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는 이야기로 통지서라는 존재 자체가 좀 작위적이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기는 하지만 "동기"와 일련의 과정이 아주 합당하면서도 설득력있게 짜여져있는 좋은 작품으로 충분히 기대에 값합니다.
그리고 두번째 단편인 "시인의 죽음"에서부터 등장하는 하무라의 친구 아이바 미노리가 탐정역을 소화하는 이색작 "여탐정의 여름 휴가"도 제목 그대로 여름휴가를 보내는 호텔에서 벌어진 실종사건을 다룬 이야기로 설정부터 완전 고전 영국식 추리물 티가 팍팍나는, 단순하지만 "복선"과 "단서", 그리고 "트릭"이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추리물로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재미있던 것이, 이러한 추리물을 포함해서 이 단편집의 작품들은 일관되게 "자살"이라는 죽음을 주요 테마로 삼고 있다는 것과 이러한 자살 행위 뒤에 "인간의 악의"가 굉장히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들고 싶네요. 그것도 친족이 관련된 사소하지만 무서운 악의를 말이죠. 정도가 지나쳐서 작가가 친족에게 큰 스트레스를 받아온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어쨌건, 이러한 악의가 사소한, 또는 일상속에 묻힌 사건 배후에 깔려있는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살짝 소름이 돋는 내용들로 짜여져 있기에 굉장히 몰입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앞서 언급한, 친구 아이바 미노리의 약혼자였던 공무원이자 시인이었던 인물의 자살 사건 뒤에 감추어진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아버지의 속셈을 그린 "시인의 죽음"과 한 평범한 주부가 의뢰한 그녀 친구의 급작스러운 자살사건에 대한 이야기인 "내 조사에 봐주기는 없다"가 대표적으로 이 두 작품은 그야말로 일상계 악의 범죄소설이라 명명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람의 사소한 악의가 타인에게 어떻게 작용되는지를 철저하게 표현하고 있거든요.

그 외에도 은인과 불륜관계에 빠진 아내를 데리고 귀향한 화가에 대한, 조금은 뻔한 내용이지만 충분히 설득력있는 일상계 호러물 "철창살의 여자"도 굉장히 좋았습니다. 작위적인 무대장치와 작중에 "수없이 많은 모델이 견디지 못해서 교체되었다" 라는 설정이 조금 거슬리긴 했지만 (사건의 진상을 모델들이 알 수 밖에 없으니까요) 충분히 공포를 안겨다 주는 작품이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의 경우는 실제 등장하는 그림이 비쥬얼로 보여지는 영상물로 작업된다면 정말 모골 송연한 전연령(?) 호러물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더군요. 드라마화라도 되면 좋겠는데....
작가 특유의 인칭과 시점을 오가는 묘사력이 잘 표현된 "아베마리아"도 좋은 작품이었고요.

아울러 주인공 하무라의 독특함. 그 어떠한 일이라도 방관자적이면서도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내 조사에 봐주기는 없다"같은 집요함도 재미의 핵심 포인트 중 하나입니다. 전작 "네 탓이야"와 비교한다면 단독 주연(?) 이면서 연륜이 쌓인 덕인지 훨씬 캐릭터가 확실해지고 매력적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정말 실존할 것 같은 여탐정 캐릭터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단, 일종의 스토리라인을 설정한 듯 첫번째 작품인 "짙은 감색의 악마"와 마지막 작품 "편리한 지옥"이 서로 연결되며 이야기가 시작되고 마무리되는데 이 두 작품이 단편집과 너무나 이질적으로 느껴진 것 하나는 아쉽습니다. 평범한 일상속에서의 악의라는 테마를 일관되게 끌고나갔더라면 좋았을 것을, 일종의 "마인"과도 같은 악역의 생뚱맞은 등장으로 일상성과 평범함, 그리고 악의라는 중요 이야기축이 통째로 무너져 버려서 혼란스러워지더군요. 예를 들자면 그런대로 괜찮은 추리물이었던 "케이조쿠" 에서 "아사쿠라"라는 마인의 등장으로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는 느낌 그대로였어요. 그냥 하무라라는 캐릭터와 일상에서의 악의만 가지고도 충분히 이야기가 가능했는데 왜 이러한 악역이 등장해서 이야기에 개입했어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충분히 이름값은 하는 작품이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다음 작품은 하무라 아키라가 등장하는 첫 장편이라는데 특유의 일상성을 잘 살린 작품이면 좋겠습니다.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