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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2

채소의 인문학 - 정혜경 : 별점 2점

채소의 인문학 - 4점
정혜경 지음/따비

한민족, 한식과 채소의 관계를 다룬 식문화, 인문학 서적입니다. 한국인이 채소를 언제부터 먹어왔는지, 누가 먹었는지, 채소가 등장하는 콘텐츠는 어떤 것이 있는지 등을 알려주는 1부 "한국인에게 채소는 무엇인가"는 아주 재미있고 유익했습니다. 채소별로 주요 특징과 역사를 소개해 주는 2부 "한국인의 상용 채소 이야기"도 나쁘지 않았고요. 몇 가지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단군 신화 속 쑥과 마늘 중 마늘은 시기적으로 보아 달래나 명이나물일거라고 합니다. 현재의 마늘은 이후에 중국으로부터 전래되었기 때문입니다. 

채소가 일찍부터 재배가 일상화되어 있었다는 이야기도 기억에 남습니다. 고려 후기 이규보가 '가포육영 (집 채마밭에서 지은 여섯 수의 시)'이라는 제목으로 오이, 가지, 순무, 파, 아욱, 박에 대한 시를 읆을 정도였다는군요. 

거래도 활성화되어 있어서, 조선 후기에는 본격적으로 상품화되어 널리 판매되었다고 합니다. 우하영이라는 학자는 "미나리 두 마지기를 심으면 벼 열 마지기 심어서 얻는 이익을 올리고 채소 두 마지기를 심으면 보리 열 마지기를 얻어 수확하는 이익을 올릴 수 있다"라고 기록했다는데, 미나리가 엄청 고급 채소였나 봅니다. 

조선에서의 채소 인기를 알려주기 위해 소개되는 여러 유명인물들의 글과 삶도 상세해서 자료적 가치가 높습니다. 율곡 이이는 동초를 좋아했다던가, 허균의 "도문대작"속 많은 채소들을 소개하는 식입니다. "도문대작" 속 방풍싹을 쌀가루에 넣어 끓이는 방풍죽은 한 번 먹어보고 싶네요. 다산 정약용도 강진 유배 시절 두부, 부추, 아욱국과 미역국, 녹차를 즐겼다고 하고요.

"토지", "미망" 등 여러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음식들에 대한 상세한 소개도 흥미롭습니다. 이 중 "미망"에서 할아버지가 이야기해 주는 '삘기'라는 간식거리가 인상적이었어요. 띠의 새로 난 순으로 뽑아서 씹으면 껌처럼 질겅질겅하게 씹히며 달짝지근한 물이 나온다고 소개되고 있는데, 그 맛이 실로 궁금합니다. 현대가 되면서 우리가 잃어버린게 정말 많다는 생각도 함께 드네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싱아는 줄기와 잎에서 신 맛이 나는 채소라고 하고요. 그 외 "식객"과 "대장금"까지, 다루고 있는 콘텐츠의 폭도 넓습니다.

그런데 3부부터는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물론 다양한 채소 조리에 대해 알려주는 부분만큼은 나름 자료적인 값어치는 있습니다. 디테일만큼은 좋았으니까요. 또 그간 생각하지 못했던 튀김, 튀각, 부각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던건 수확이었고요. 옷을 입혀 튀기는건 튀김 옷을 입히지 않고 튀기는게 튀각, 부각은 그 중간 형태라고 정의되는군요. 몰랐습니다. 쌈문화의 역사도 볼 만 했던 정보였고요.
하지만 3부 후반부의 '고조리서를 통해 본 채소 요리법의 세계'는 제목 그대로 고조리서인 '제민요술' 등에서 번역하여 인용한 조리법이 전부입니다. 시대별, 나라별, 채소별로 어떤 특징이 있는지 등은 전혀 소개되지 않아요. 예를 들어 소개된 내용을 보면 "증보산림경제" 속 개발가법이라는 요리는 중국 요리법과 유사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런 부분을 파고드는 깊이가 아쉬웠습니다. 아주 약간 시대별 특징이 언급되기는 하지만, 대단한 내용은 없습니다. 구성도 종류, 주재료, 간단한 조리법으로 구성된 표 형태라 재미를 느끼기 힘들었고요. 

4부, 5부는 더 별로입니다. '채소를 먹으며 오래 살 수 있고, 채소가 음식의 미래다'는 주제도 뻔하지만, 내용도 모두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거나 단순한 번역에 불과한 탓입니다. 장수인이 채소를 즐긴다는 것도 조사는 했다지만, 데이터는 수록되어 있지 않아서 수긍하기 어려웠고요. 아무리 당연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조사를 해서 그 결론을 설명하는 것이라면 누구를 대상으로 어떻게 조사했는지에 대한 내용은 정리해서 알려주었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전체 약 390여 페이지 정도 분량 중 절반 정도만 기대에 값하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21/09/19

커피인문학 - 박영순 : 별점 2점

커피인문학 - 4점
박영순 지음, 유사랑 그림/인물과사상사

커피의, 그리고 커피가 관련된 역사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는 식문화 관련 인문학 서적입니다.

커피의 간략한 역사부터 시작하는데, 이 책에 따르면 커피는 에디오피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예멘을 거쳐 이슬람 세계에 널리 퍼졌고, 오스만 제국 시기에 베네치아를 통해 유럽에 상륙하여 대중화 되었습니다. 1645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문을 열었고, 이후 각국에 사람들이 모여 커피를 마시는 곳에 관련된 시설들이 생겨나게 되었지요. 당시에는 간판도 없어서 사람들이 '커피'라는 말로 그 장소를 특정한게 '커피'를 뜻하는 '카페'가 마시는 공간까지 아우르게 된 이유입니다.

커피 추출법은 16세기 초 오스만 제국 이스탄불 시대부터 기록이 전해진다는군요. 지금까지 전해지는 '터키시 커피' 방식으로 '체즈베'라는 도구에 볶아 빻은 커피콩을 끓여내는 방식이지요. 이후 유럽에서 가루를 걸러내기 위한 필터를 도입했고, 더 맛있게 마시기 위해 생크림을 얹거나 우유를 가미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1711년에 천주머니에 원두가루를 채워 '우려내기' 방식으로 마시기 시작했고요. 1908년에는 독일의 멜리타 벤츠가 드립법을 창시했고, 1906년 이탈리아에서는 최초의 에스프레소 머신을 발표했습니다. 1933년에는 비알레티의 모카포트가 발명되었고요. 1938년, 아킬레 가치아가 드디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현대적인 에스프레소 머신을 만들어 내었다고 합니다.

이런 역사와 함께 커피에 관련된 일화도 소개해줍니다. 바흐의 커피 칸타타라던가, 볼테르는 하루에 40~50잔의 커피를 마셨고, "커피가 독이라면, 그것은 느리게 퍼지는 독일 것이다"는 말을 남겼는데, 실제로 84세까지 장수했다고 하는 이야기들입니다. 루소, 탈레랑, 나폴레옹, 베토벤, 슈베르트, 모차르트 등 여러 유명인들이 등장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커피가 대중화 된 이유는, 일본인들이 우유 먹기를 힘들어하자 메이지 정부에서 커피에 섞어 마시도록 했기 때문이라는 소소한 역사도 재미있었고요.

그리고 미국의 독립, 조선의 커피 음용이나 우리나라 해방 이후 현재까지의 커피 역사도 알려준 뒤, 각 주요 커피 산지에서 커피가 재배된 역사와 현재를 다루는 이야기가 책 마지막까지 이어지는데, 크게는 브라질과 자메이카, 파나마, 르완다와 우간다, 하와이, 콜롬비아 순입니다. 이를 통해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명성을 얻게 된 건, 대공황 등 여러가지 이유로 추락한 자메이카 커피 산업에 1960년대 일본 자본 투자가 이루어지면서 부터였다는건 처음 알았네요. 일본은 명확한 품질 관리와 최고 등급 커피의 세계 시장 유통을 인위적으로 조절했고, 커피 생두를 오크통에 담아 파는 고급화 전략으로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을 세계 최고급 커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맛도 맛이지만, 마케팅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그 외 파나마 게이샤 커피의 역사와 르완다 커피의 감자맛 결함, 하와이와 콜롬비아 커피의 역사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읽다보니 "홍차 애호가의 보물상자"가 바로 떠올랐습니다. 특정 음료의 역사와 관련된 문화적 의미에 대해 고찰하고, 유명 산지와 주요 결과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똑같으니까요. 그러나 책의 완성도는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커피에 대한 과대평가가 너무 심하다는 겁니다. 이런 시각은 "커피견문록"에서 이미 접했었지만 그 정도가 더욱 심해요. 커피가 프랑스에서 계몽 사상을 일깨운 각성제로 프랑스 혁명을 이끌어냈고, 미국에서 커피가 독립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남북전쟁에서 북군이 승리한건 커피 때문이다라는 식이거든요. 뒤로 가면 갈 수록 더 가관입니다. 조선에서 모던 보이들 중심으로 커피하우스 개업이 이어졌지만, 주권 회복을 위한 시대적 각성과 독립을 위한 저항심을 기르는 커피와 카페의 역할이 작동한 사례가 발굴되지 않았다면서 아쉬워하는데, 대관절 커피가 독립 운동과 무슨 상관이랍니까? 솔직히 어처구니가 없는. 뭐라 언급하기도 어려운 억지스러운 발상이었습니다. 커피에 계몽의 힘 따위는 없습니다.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커피가 아니라 카페인의 힘이에요. 이런 각성이 중요하다면, 다른 각성제도 다 마찬가지겠지요.

목차가 명확히 정의되지 못하고 두서없이 섞여있는 구성도 아쉽습니다. 각 주요 산지의 커피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커피가 선악과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식이에요. 재미있는 주제이고, 한 번 볼 만 했지만 이는 커피 역사 부분에 포함시켰어야 하는 이야기였다 생각됩니다. 심지어 같은 주제 안에서도 두서가 없을 정도입니다. 예를 들어 우간다 커피를 소개하는 부분에서, 우간다 로부스타는 로부스타 중에서도 품질이 좋기로 소문나 인스턴트 커피용보다 에스프레서 블렌딩용으로 인기가 높다는 말로 시작됩니다. 하지만 우간다 로부스타종은 인스턴트 커피의 주 원료로 이용되고 있다는 글로 마무리되지요. 뭐가 맞는걸까요?

도판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커피로 그렸다는 일러스트도 구태여 필요했을지 의문입니다. 잘 알려진 사진이나 그림을 그대로 모사한 것에 지나지 않은 것들이 많고, 내용에 꼭 필요했는지도 의문이며, 그리 잘 그린 것 같지도 않거든요. 실제 그림에서는 커피 향이 느껴질 수도 있었겠지만, 인쇄된 책으로 보는데 커피로 그렸어야 할 이유도 잘 모르겠고요.

커피에 대한 역사를 알 수 있고, 여러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책인 건 맞지만, 단점도 명확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많은 커피 관련 책을 읽어봤지만, 그 중에서도 특별히 두드러진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2021/01/31

지도 위의 인문학 - 사이먼 가필드 / 김명남 : 별점 3점

지도 위의 인문학 - 6점
사이먼 가필드 지음, 김명남 옮김/다산초당(다산북스)

시대 별 중요했던 지도 22개를 선정하여, 그 지도에 얽힌 여러가지 이야기를 소개해 주는 인문학, 미시사, 잡학 (?) 서적입니다. 각 지도별로 20~30 페이지 정도가 할당되어 자세하게 소개되기 때문에 500페이지를 훌쩍 넘는 방대한 분량을 자랑합니다. 

읽기 전에는 특정 시대를 대표하는 지도들을 통해 당대 사람들의 세계관과 역사적 흐름을 알아볼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 시대 지식인들의 세계관을 가장 잘 드러낸건 지도였을 테니까요.
그런데 제 생각과는 좀 다르게 역사적 흐름 보다는 '지도' 그 자체에 집중해서 소개해주고 있더군요. 미술 사조에 빗대어 이야기한다면 사실주의 화풍에서 인상파, 입체파 등의 흐름을 거시적으로 훝어주며 대표작과 대표 작가와 함께 화풍이 변한 이유를 설명해 주기를 원했는데, 그냥 대표작만 소개되는 셈입니다.

물론 미대륙이 왜 '아메리카'가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설명처럼, 당대 사람들의 세계관과 분위기를 알 수 있는 내용이 없지는 않습니다. 1507년 만들어진 '발트제뮐러 지도'에 '아메리카'라고 명기한 뒤 다른 지도 제작자들이 그 이름으로 대량 생산해서 지도를 유통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이는 아메리고가 했던 거짓 주장을 발트제뮐러가 믿었기 때문으로, 발트제뮐러는 고작 3년 뒤 그 선택을 후회하고 아메리고의 이름을 본인 저작물에서는 삭제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고 합니다. 콜럼버스 입장에서는 통탄할 일인거지요.
덧붙이자면, 여기서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소개되고 있습니다. 1519년 정복자 코르테스는 멕시코 상륙을 앞두고 선주민 몇 명을 자기 배로 초청해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러다가 자신이 곧 약탈하려는 장소 이름을 그들에게 물었죠. 한 남자가 "마 쿠바 단"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를 코르테스와 부하들은 "유카탄"이라고 알아듣고 지도에 그렇게 적었고요. 그로부터 정확히 450년이 흐른 뒤 마야어 전문가들 조사 결과 "마 쿠바 단 (Ma c'ubah than)'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라는 뜻이라는걸 밝혀냈다고 합니다. '캥거루' 이야기가 떠오르지요? 진위 여부는 알 수 없다지만요.

그 외에도 빈 아프리카 지도를 통해 제국주의의 탐욕을 설명한 내용, 찰스 부스가 런던 시내를 사는 계층으로 구분했던 '런던 가난 지도'도 제 기대에 값하며, 그 양은 많지 않지만, 서구 유럽 뿐 아니라 중세 일본과 중국의 지도가 소개된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히 12세기 제작된 중국의 '우적도'는 지금 시점으로 보아도 으스스할 정도로 정확하다니, 중국이 얼마나 앞서가는 국가였는지를 또 다시 느끼게 해 주네요.

하지만 이렇게 역사적 흐름을 함께 알 수 있는 내용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지도 그 자체에 대한 설명에 치중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빈랜드 지도' 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 보면, 제 생각대로의 글이라면 빈랜드 지도를 작성했음직한 1,000년 경, 당시 바이킹들의 항해에 대한 다양한 기록을 분석하여 그들이 정말 미대륙을 방문했을지를 검증하는 내용이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빈랜드 지도를 발견한 사람이 누구이며, 이 지도의 진위여부를 어떻게 검증했는지에 대한 내용 뿐입니다. 재미있는 내용임에는 분명하지만, 제 기대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그래도 다행인건, 이렇게 지도 자체에 집중한 덕분에 새롭게 알게된 내용도 많다는 점입니다. 그 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것 몇 가지를 소개해 드리자면, 첫 번째는 매리 애시퍼드 살인 사건 때 사건 현장과 용의자 이동 경로를 자세하게 설명한 '살인 지도' 입니다. 지금은 신문 기사 등에 널리 활용되는 방식이고, 이 매리 애시퍼드 사건 지도가 첫 번째 살인 지도는 아니지만 이를 만든 사람이 영국 우편제도를 혁신한 젊은 시절의 롤런드 힐 경이었다는게 신기했습니다. 콜로라 유행 당시, 식수가 원인임을 증명하기 위해 지도에 펌프의 위치와 근처 사망자를 함께 나타낸 존 스노의 지도는 말 그대로 '닥터 하우스'를 연상케 했고요. 

보물 지도 이야기도 있습니다. '트리니나드 지도'와 같은 사기극, 보물이 묻힌 장소를 암호화하여 책 "가면 무도회"에 수록해서 발표했던 진짜 보물 지도 이야기 모두 아주 흥미로왔어요. 책에 삽입된 삽화 속 인물들의 손이 가리키는 방향, 시선의 방향을 연결하여 마지막 글자를 이어 붙여 문장을 만들고, 문장 앞 철자만 조합하여 키워드를 뽑아내는 방식인데 그럴듯 하더라고요. 마지막 암호를 풀었다는 사람도 책 저자의 전 여자친구의 증언을 통해 단서를 잡았다는 일종의 반전까지 완벽해서, 한 편의 소설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지도를 만드는 기법에 대한 설명도 상세판 편입니다. 그래서 메르카토르 도법을 발명한 메르카토르와 그의 지도에 대한 설명, 그리고 메르카토르 지도의 문제점을 설명하는 내용도 재미있었습니다. "구"를 "평면"으로 바꾸면 왜곡이 생기는건 당연하지만,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지도가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다는건 큰 문제니까요. 당연히 지구본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글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지도를 읽는 방법에 대한 소개도 있습니다. 특히 남자가 여자보다 지도를 더 잘 읽는다는 사회적 통념에 대한 조사 결과가 아주 재미있었어요. 여자는 광범위한 2차원 공간보다 랜드마크에 더 의존하기 때문이며, 이는 과거 수렵을 담당했단 남자와 채집을 담당했던 여자 유전자의 차이가 아닐까라는 가설이 등장하는데 상당히 설득력있다 생각되었습니다. 채집은 지금도 그렇지만 '어디어디 무슨 소나무 밑' 처럼 지형지물에 의존해야 하니까요.

그 외에도 지도책을 뜻하는 '아틀라스'라는 말의 유래, 지도에 그래픽적 요소가 도입된 시기, 진정한 '거리 지도'의 시작, 여행용 가이드 맵의 유래 등 재미있는 내용이 가득하며, 아우르고 있는 지도도 게임 속 지도와 지도를 사용했던 보드 게임까지 망라하고 있기 때문에 담고있는 정보의 질과 양 모두 만족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 지도가 얽혔던 사건 설명은 지나친 감이 없지는 않습니다. 도입부인 제 2장, "세계를 팔아넘긴 간 큰 남자들"에 등장하는 '마파문디'에 대한 설명이 대표적입니다.'마파문디'는 중세에 그려진 세계 지도를 통상적으로 일컫는 말로, 이야기 속 주인공은 1290년대에 영국 헤리퍼드에서 그려진 지도입니다. 하지만 온갖 상징으로 가득차 있다는 설명 외에는 그 지도를 경매로 팔고자 했던 일련의 과정에 대한 설명이 더욱 자세합니다. 최소한 누가, 무엇을 위해 만들었는지 정도는 설명해 주었어야 했는데 말이지요. 경매 이야기가 딱히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요.

그리고 뒤로 가면 갈 수록 지도보다는 기술에 집중하는 듯 한데 지루했습니다. "카사블랑카"와 "인디애나 존스" 등에서 사용된, 지도를 가로지르는 화살표로 등장 인물의 여정과 현재 위치를 알려주는 방식 소개는 재미는 있었지만 이게 지도와 무슨 관계가 있나 싶었고, GPS는 이미 일상이 되어서 구태여 책으로 설명을 봐야 하는 내용도 아니었거든요. 게임 속 지도에 대한 이야기는 책 방향과도 잘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고요.

무엇보다도 지도가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도판이 그닥 미려하지 않다는게 큰 단점입니다. 컬러였어야 하지만, 컬러 수록된 지도는 앞뒤 내지에 인쇄된 영국 지하철 노선도밖에는 없습니다. 접는 방식으로 확대 인쇄했어야 했는데 그렇지도 못하고요. 책 판형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지도 않아서, 세부를 보는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물론 이 책에 수록된 지도들은 대부분 인터넷 검색을 통해 큰 이미지로 확인할 수 있기는 하지만 여러모로 아쉽네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재미도 있고, 자료적 가치도 높습니다. 특정 항목은 담고있는 정보가 과하거나 심하게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크게 흠잡을 정도는 아닙니다. 이런 류의 '잡학' 서적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8/08/04

강호인문학 - 이지형 : 별점 3점

강호인문학 - 6점
이지형 지음/청어람미디어

사주, 풍수, 주역이라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실체에 대해 잘 모르는 동양 철학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개념과 원리를 알려주는 입문서입니다. 어딘가의 책 소개를 보고 구입했는데, 소개대로 굉장히 쉽게 쓰여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자의 정리에 따르면 사주는 오행의 확장판이며 주역은 음양의 확장판, 풍수는 기의 확장판이라고 합니다. 오행은 세상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기운이며 음양은 밤과 낮의 순환, 기는 땅속 신경망이 에너지고요. 이 설명을 기반으로 사주, 풍수, 주역을 한 챕터씩 할애하여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 중 사주는 만세력을 기반으로 한 실제 사주 보는 방식과 결합하여 설명해 주는데 아주 흥미롭습니다. 읽으면서 직접 만세력 앱을 설치하여 딸과 아내의 사주를 살짝 볼 정도로요. 딸아이가 불과 금의 기운이 강하고 물과 흙의 기운이 없다는 걸 알았는데, 다음에 혹시 이사가면 딸아이 방은 황토방에 까만 색으로 인테리어를 해 줘야 하나 싶네요.

또 항상 궁금했던 것, 사주가 정해져 있다면 운명의 갯수가 몇개일까? 도 51만 8,400개라고 알려주고 있으며, 사주는 오랜 기간 축적한 데이터베이스에 기반하고 있을 뿐 결함이 없는게 아니고 운명은 정해져 있지 않으니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고 타인을 자신의 삶 속에 적극적으로 끌여 들여야 한다는 조언도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풍수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이 없더군요. 풍수의 역사적 배경에서부터 시작하는 도입부는 재미있었지만, 저자의 말대로 지금은 단지 아파트 정도에 머무를 담론이 되어버린 현실에서는 딱히 흥미를 끌 만한 부분이 없습니다. "바람을 가두고 물을 얻는다!" 고 해 봤자 이를 개인이 어쩔 수 있는건 아니니까요.

그래도 마지막 주역은 분량은 적지만 괜찮았습니다. 괘와 효의 구성과 의미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에서 현대에서 실제로 효를 하나씩 뽑아 괘를 만들어 점을 치는 방법까지 소개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주역의 괘를 뽑는 행위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기억에 강하게 남네요. 랜덤에 불과하니 하늘의 뜻을 묻는게 아니라 무작위에 향후 상황을 맡기는 것에 불과할 수 있지만, 이는 논리적인게 아니라 '믿음'에 기댄다는 것으로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 크리스천이 기도하고 불자가 발원하는 것과 다를게 없다는 주장인데 이치에 맞긴 하니까요. 아니, 생각해보면 단순히 기도와 발원만으로는 어떤 응답을 기대하기 힘들지만 직접 괘를 뽑으면 그래도 결과는 바로 나오니 기도보다는 괘를 한 번 뽑는게 나은 것이죠! 캬~

이렇게 사주, 풍수, 주역에 대한 설명 뒤에는 이 모든 건 자연의 흐름이고 순환이니 걱정하지 말고 몸을 맡겨라라는 글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어른들 말씀대로 그냥 재미삼아 보는 것이지 너무 의미를 부여하면 곤란하다는 뜻이겠죠?

아쉬운건 그야말로 입문서라 조금만 깊게 알고 싶어도 이 책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 점입니다. 저자의 의도가 사주와 풍수, 주역의 개념에 대해서만 짚고 넘어가려는 것이라 그런 것일테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부록 삼아 참고가 될 만한 서적을 추천해 주고 있긴 합니다만 아쉽긴 아쉬워요.

허나 개인적으로 어렵게만 생각했던 동양 철학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아 만족스럽습니다. 모든 분들께 추천해 드리기는 조금 어렵지만 관심이 있으신 입문자 분이 계시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괜찮을 것 같네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18/12/15

18세기의 맛 - 안대회 외 : 별점 2.5점

18세기의 맛 - 6점
안대회.이용철.정병설 외 지음/문학동네

18세기의 문화를 음식과 함께 잘 소개해주는 인문학, 미시사 서적으로 모두 23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네이버 캐스트에 연재된 글을 묶어 출간한 책인데, 연재 당시 몇몇 글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 구입해 보았습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각자의 전문 분야에 대해 연관된 음식과 함께 소개해준다는 아이디어도 좋고, 결과물들도 상당한 수준이기는 합니다. 전문가다운 독특하면서도 새로운 시각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버터의 확산은 카톨릭에서 이탈한 나라와 일치한다던가, 감자가 확산이 늦어진 이유는 당대의 오해와 의혹인데 이를 감자를 소재로 해서 작품을 남긴 유명 화가는 민중 화가인 밀레와 고호밖에 없다는 사실과 연결시키고, 파스타는 18세기에 부유층만 소비하는 고급 음식으로 이를 "그건 마카로니야"라는 당시 속어로 드러내는 등의 방법이 그러합니다. 커피는 남성적 담론을, 홍차는 여성적 담론을 상징했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에요.

진은 사회적 폐혜를 불러일으켰지만 맥주는 활력과 번영의 상징이었다는 것을 호가스의 그림으로 드러내는 이야기와 같이 도판이 중요한 이야기가 많은데, 이를 위한 도판 및 그 외의 각종 참고 자료 역시 최고 수준입니다.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모두를 아우르는 등 다루는 범위도 넓습니다. 복어와 식용 국화, 삼해주와 조선의 술 문화 등을 통해 음식 그 자체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내용도 많아요. 이 중에서는 항상 궁금했던 "솔잎"을 먹는 방법에 대한 상세한 소개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신선들이나 무림 고수들이 먹는 나름 괜찮은 음식으로 알았는데 심한 변비를 일으킨다는 건 처음 알았거든요. 하긴, 몸에도 좋고 맛있었다면 지금도 많이 먹고 있을테지요. 변비를 극복하고 맛을 좋게 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도 상세하게 소개되어 무척 재미있었어요.

하지만 지엽적인 이야기 소개에 그치는 내용도 적지 않고, 어떤 이야기는 너무 좁은 분야에 매몰되어 소개되는 등 전체적인 수준이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나는 전문가다" 라는 인식을 지나치게 드러내는 너무 어렵게 쓴 글들이 적지 않은 것도 아쉬운 점입니다. 네이버 캐스트 연재물이라면 독자를 고려해서 조금 더 쉽고 일상적으로 써 주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책의 주제라 할 수 있는, "18세기에 대한 인문학"을 "음식"으로 잘 드러내는 글들이냐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도 감점 요소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전문가들의 식견이 느껴지는 좋은 글들도 많지만 전체적인 글들의 편차가 일정하지 않은 등의 단점도 많아 감점합니다. 그래도 몇몇 특정 주제만큼은 다른 책에서 찾아보기 힘든 전문성이 느껴지는 만큼, 이런 류의 글을 좋아하시는 분들께서는 한번 쯤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5/10/24

그거 사전 - 홍성윤 : 별점 3점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지만 명칭이나 유래를 잘 알지 못했던 물건들에 대해 하나하나 짚어주는 책입니다. 원래는 매일경제 연재물입니다. 접할 때마다 흥미롭게 읽었는데, 책 한 권으로 묶여 나와 반가운 마음에 집어들었습니다. 

단순한 사물 설명을 넘어, 그것들이 가진 인문학적 의미까지 함께 풀어냈다는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예를 들어 중국집 반찬으로 자주 나오는 자차이를 소개하면서, 중국에서는 자차이의 지역별 판매량이 도시화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소비되는 반찬으로 도시 거주 인구수와 비례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와 비슷한 지표 역할을 하는 음식이 놀랍게도 커피라고 하네요. 이처럼 단순한 사물에서 출발해, 관련된 사회적 맥락까지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구성이 돋보입니다.
배달 음식 포장을 벗길 때 사용하는 랩칼을 다루면서는, 우리나라 배달 음식 문화의 역사가 함께 소개되고요. 과거 젓가락으로 그릇과 랩이 닿은 부분을 문질러 벗겨내던 '젓가락 신공' 소개는 저에게도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해 주었습니다.

초밥 사이에 넣는 인조 대잎에 대한 설명이 조지 오웰의 소설 "엽란을 날려라"로 이어지는 부분에서도 저자의 넓은 식견을 느낄 수 있었으며, 상표나 가격이 적힌 꼬리표를 고정하는 택핀 항목에서는 과거 서태지가 유행시키기도 했던, 흑인 문화에서 상표 태그를 떼지 않았던 이유에 대한 문화적 배경 설명도 인상적입니다. 여러가지 설 중에서도 '난 이렇게 대단한 물건을 새걸로 가지고 있다'는걸 자랑하고 과시하는 문화에서 비롯되었다는건 확실히 그럴 듯 했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자부심의 표현이었다는 것이지요.

도어 스토퍼를 다루며 엘러리 퀸의 "용 조각 문 버팀쇠의 비밀"을 언급한 대목은 추리소설 애호가로서 반가왔습니다. 참고로, 원래 문 버팀쇠는 여닫이창을 열린 상태로 고정하기 위해 받쳐 세우는 막대를 뜻하므로 엄밀히 말하면 오역이라고 하네요. 문이 천천히 닫히도록 하는 현관문 위에 달린 장치는 도어 체크, 혹은 도어 클로저라는 것도 도어 스토퍼 설명에서 소개되고요.

뚫어뻥의 어원은 흥미로운데, 1980년대 백광산업이 출시한 '백광 트래펑'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하수구 트랩에 펑크를 내는 도구라는 의미의 '트래펑'에, ‘뚫어’와 ‘뻥’이라는 직관적인 이름이 더해진 멋진 네이밍인데 아직 사전에 등재되지 않았다는게 오히려 놀랍게 느껴졌습니다.
어원이라면 사이펀 펌프로 알고 있던 기름 펌프의 정식 명칭이 '간장 츄르츄르'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된 정보입니다. 이 이름을 붙인 사람은 일본의 기발한 발명가 닥터 나카마츠로, 그의 엉뚱하면서도 놀라운 발명 인생에 대한 짧은 소개도 인상 깊었어요.

여러 익숙한 물건들의 명칭을 처음 알게 된 것도 수확입니다. 예를 들자면 중식당 회전 테이블의 '레이지 수잔', 신발끈 끝의 '애글릿', 끈이 통과하는 구멍인 '아일릿', 창문 잠금장치인 '크리센트', 마트 계산대에서 사용하는 막대는 '체크아웃 디바이더', 겨울 가로수에 묶는 볏짚은 '잠복소', 사원증 목걸이 끈은 '랜야드'라고 부른다고 하네요.
신장개업 가게 앞에서 바람에 춤을 추는 풍선 인형에도 이름이 있었는데, '스카이댄서'입니다. 원래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처음 선보인 예술 작품이었다고 합니다. 아이디어를 낸 예술가는 트리니다드 토바고 출신의 민셜, 하지만 특허는 협업했던 풍선 예술가 가짓이 등록했다고 합니다. 가짓은 유대인이었다니 그럴만도 하겠다 싶습니다.

그 외에도 과일을 감싸는 포장재인 팬캡이나 과일망이 재활용이 안 된다는 사실, 회 밑에 깔린 천사채의 한자가 '천사(天使)'가 아닌 '하늘이 내린 채소(天賜)'였다는 등 짧지만 밀도 있는 정보가 가득하고, 단순한 설명을 넘어 인문학적인 부분도 전해준다는 점은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다만 핵심이 되는 '그거' 말고는 도판이 부실하다는건 단점입니다. 연재물로 접했던 독자에게 별다르게 새롭게 전해주는 정보도 별로 없고요. '그거' 종류에 따라 분량도 조금씩 다르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평균 이상은 되는 좋은 인문학, 잡학 서적이라 생각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가볍게, 하지만 의미도 있는 독서를 원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2022/04/03

플레인 센스 - 김동현 : 별점 3점

플레인 센스 - 6점
김동현 지음/웨일북

비행기 개발의 역사가 아니라 '비행'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알려주는 인문학 서적.

개인적으로 범죄, 사건, 사고에 관심이 많은 탓에 사고 사례 소개에 관심이 많이 갔는데, 책의 도입부를 장식하는 비행기 납치 사례들 소개부터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하이잭' 단어의 의미에서부터 시작해서, 보안승무원이 기내에서 테러범을 사살했던 1971년의 김상태 대한항공 월북 기도 사건, 베트남전에서 퍼플 하트 훈장을 수여받을 정도로 능력있는 해병대원이었던 라파엘 미니첼로가 월급 횡령에서 비롯된 실망감에 미국에서 비행기를 납치해 모국 이탈리아로 향했던 1969년 TWA 85편 납치 사건, 무려 넉 대의 여객기를 같은 시기 피랍했던 팔레스타인 해방 인민 전선 (PFLP) 비행기 납치 사건, 일본 적군파가 평양으로 향하기 위해 납치했던 1979년의 요도호 사건, 평범한 오타쿠가 비행기 납치를 시도해서 대형 참사가 일어날 뻔 했던 1999년의 니시자와 사건 등 모두 흥미로운 이야기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꼼꼼하게 수록되어 있는 후일담들도 마음에 들었고요. 예를 들어 라파엘 미니첼로는 미국에서는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이탈리아에서 국민적 영웅이 되어 곧바로 석방되었고 본인 이야기를 다룬 영화 주인공으로 캐스팅되기까지 했다는군요. 팔레스타인 해방 인민 전선 납치 사건이 일어난 후 미국은 정예 요원에게 사복을 입혀 비행기에 탑승시키는 스카이마샬 제도를 도입했고, 그 외에도 테러를 막기 위해 좌석에서 승객에게 독극물을 주사하는 인젝션 키트나 납치범을 쉽게 격리할 수 있는 부비트랩 플로어 등의 발명이 이어졌다고 하고요. 니시자와 사건도 결국 니시자와가 지적했던 하이재킹 방지 정책이 실행되었다네요. 911 이후에는 국가의 안전이 더 우선시되어 테러범에게 납치된 비행기의 영공 진입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다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모두 인터넷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이를 일종의 통사처럼 시대순으로 모아놓은 구성도 좋았습니다. 덕분에 어떻게 비행기 납치가 시작되어서, 어떻게 발전되어 나갔는지를 상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끔찍했던 비행기 사고에 대한 사례 소개도 충실합니다. 저 역시 몇 년 전 까지는 출장 등으로 비행기를 자주 탔었기 때문에 더 몰입해서 읽었던 것 같네요. 언제든 저에게도 닥칠 수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하니 집중을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더라고요. 과냉각된 적란운 속으로 비행기가 진입했을 때, 비행기가 거대한 응결핵이 되어 순식간에 얼어붙은 탓에 추락하고 만 에어프랑스 447편 사고는 정말 무섭더군요.
기내에 화재가 일어났을 때 15분 내로 긴급 착륙하지 못하면 다 죽는다는 이야기도 무섭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실 많은 승객들이 타고있을 비행기 내에서의 화재 진압이 왜 어려운지가 궁금했었는데, 외부 공기를 유입하기 위한 여압 시스템 때문이라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연기가 빠져나갈 곳이 없어서 순식간에 일산화탄소 중독에 빠진다니 무섭습니다. 화재 현장을 빠져나가기도 불가능하니, 정말 죽을 수 밖에 없겠어요. 그동안 있었던 기내 화재로 인한 사고들은 많은 경우 기내 흡연 탓에 벌어졌다는 이야기는 황당했고요. 저도 아주 오래전, 90년대 비행기를 처음 탔을 때 기내에서 담배를 피웠던 기억이 나는데 얼마나 무식한 짓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리튬 배터리 폭발로 인한 화재 사고가 많다고도 하는데, 앞으로 편한 마음으로 비행기 타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아울러 비행기를 탈 때의 주의 사항도 몇 가지 알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인건 산소 마스크가 내려왔을 때 바로 써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압에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산소 공급이 순식간에 끊어지므로 산소 마스크를 바로 쓰지 않으면 곧바로 의식을 잃게 된다고 합니다. 이런 경험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만약 산소 마스크가 떨어지면 재빨리 뒤집어 쓰고 볼 일입니다.
사고는 아니지만, 랜딩 기어에 숨어서 밀항하려다가 떨어져 죽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끔찍하더군요. 14세 소년 키이스가 비행기에서 떨어지는 장면이 우연히 찍혔다는 아래 사진 이야기가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네요.



그 외에도 스튜어디스의 탄생이라던가 콜사인, 웨이포인트 등 여러가지 비행 관련 이야기를 풀어 놓는데, 여기서는 기장 출신 실무 전문가다운 노하우가 빛납니다. 항공 통신에 대한 소소한 디테일들처럼요. 한국과 미국의 사고 방식의 차이를 들며 원할한 무선 교신을 위한 팁을 알려주고 있거든요. 이런건 실제로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겠지요.
여객기의 양대 산맥인 보잉사와 에어버스사의 간략한 역사와 콩코드 취항 등으로 알아보는 여객기의 발전 과정과 항공사별 대표 기종 소개도 흥미로운 정보였습니다. 도판도 충실하며, 보잉과 에어버스사 기종의 차이도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어 눈길을 끕니다. 두 회사의 차이도 인상적이에요. 보잉은 인간의 판단이 더욱 중요하다는 쪽이고, 에어버스는 반대로 인간의 조작을 컴퓨터가 모두 모니터링하고 제한한다는데, 앞으로는 에어버스 쪽이 대세가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은 들었습니다.
링크 트레이너 등 다양한 비행기 시뮬레이터 개발의 역사를 이 책처럼 상세하게 알려주는 책도 또 없으리라 생각되고요. 한마디로 비행에 관련된 모든 것을 모아 놓은 종합 선물 세트같은 책이에요. 간만에 좋은 독서를 했습니다.

그러나 욕심이 좀 과하기는 했습니다. 위도, 경도에 대한 이야기는 제대로 요약해서 풀어놓지는 못했고, 대서양 횡단 비행을 한 린드버그의 모험담도 억지로 수록한 느낌이었거든요. 이야기 목차도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느낌이 강했거든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2024/09/29

수학, 인문으로 수를 읽다 - 이광연 : 별점 2.5점

수학, 인문으로 수를 읽다 - 6점
이광연 지음/한국문학사

인문학이 문학이나 철학 등 문과 계열 뿐 아니라 수학이나 건축 등 이과 계열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걸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청소년용 교양서. 수학이 인간 생활과 뗄레야 뗄 수 없는 학문이라는걸 여러가지 알기 쉬운 예제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딸 아이 논술 교재라서 겸사겸사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이 중 수학 공부와 건축의 원리가 같다는 주장은 인상적이었어요. 특히 건물을 설계하는게 책의 목차라는 주장이요. 수학책에서 목차를 보면 앞으로 공부할 내용이 무엇인지 머릿속에 조감도를 그릴 수 있고, 목차를 알면 이미 50%를 알고 들어간다는데 수학책에서 목차가 중요하다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앞으로 목차를 좀 더 꼼꼼히 보는 습관을 들여야겠어요.
또 기둥이 튼튼해야 건물이 무너지지 않는데, 수학에서의 기둥은 기하와 대수이며 기하와 대수는 3,000년 전 고대 수학부터 통합되어 있었다는 주장과 매듭이론에 대한 쉬운 설명도 좋았습니다. 이론적으로 완전하게 이해하는 건 불가능했지만, 왜 필요한지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있었습니다.
제 딸은 음악에 대한 설명을 좋아하더군요. 그 중에서도 피타고라스가 음계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요. 저는 피보나치수는 장음정 6도와 단음정 6도로 귀로 들어도 아름답다는게 기억에 남습니다. 유튜브로 한 번 찾아보니 과연 그러하네요.
또 음악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에 다양하게 피보나치수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것은 악절을 황금비로 나누는 건데, 이건 과연 무슨 효과가 있었을지 궁금해 집니다.
주식 시장의 엘리엇 파동 원리가 피보나치 수열이고, 블랙 숄즈 방정식은 확률 미적분 이론을 이용해 파생상품 옵션의 가격을 계산한 모델이라는걸 설명해 주는 부분에서는, 가난한 수학자가 이세계에 환생한 뒤, 그곳의 시장 경제를 가지고 노는 환생물이 떠올라 재미있었어요. 용(드래곤)을 파는 시장을 지배해서 수학자가 용왕이 된다!는 그런 이야기,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요?
영화를 가지고 수학에 대해 알려주는 부분도 쉽게 이해할 수 있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설국열차 등을 예로 드는데, 이 중에서 바이러스 감염률 한계 이론에는 놀랐습니다. 100만 명으로 모수가 늘어나면, 정밀도 99%의 검사라도 무려 9,999 명이 잘못 판단된다는데 여태 생각도 못했던 부분이에요.
그 외에도 사이클로이드 곡선은 직선보다 훨씬 빠르게 특정 물체를 이동시킬 수 있어서 겅사면에는 사이클로이드를 적용한다, 동물들, 독수리나 매도 땅 위에 있는 사냥감을 잡을 때 사이클로이드에 가깝게 목표물을 향해 곡선 비행을 한다는 이야기, 우리나라 전통 건축은 전형적인 황금비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금강비(5:7)로 이루어져 있고 이는 서양인보다 상대적으로 동양인이 키가 작아서 황금비보다 작은 비에서 아름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한자 모양에서 중국에서 결승법 - 끈을 묶어 수를 표시하는 방법 - 을 썼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등의 이야기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렇지만 뒷부분 이야기는 억지가 심해서 아쉬웠습니다. 대표적인건 삼국지 속 계륵이 암호이며, 이건 수학이는 주장입니다. 암호가 수학일 수는 있지만, 계륵은 수학과는 관련이 없는 심리적인 말장난에 가까우니까요. 또 그 뒤에 이어지는 암호에 대한 이야기는 수학인지 아닌지 여부를 떠나서 다른 책에서 지겹게 많이 접혔던 내용이 대부분이라 실망스러웠어요.
김삿갓, 이순신과 조선 수군 이야기도 수학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수군에 훈도라는 수군직급이 있고 그들이 각종 계산을 담당했다고 해서 그들이 수학자라는 말도 안되지요. 지금 육군의 관측병들이 모두 수학자인가요? 마방진 이야기도 분량에 비하면 별다른 알맹이는 없었습니다.
여러 가지 그림 그리는 얘기도 황금비라든가 외상 예술 같은 건 뻔하고 대단한 수학적인 이론이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카르타고를 세웠다는 디도의 문제라던가, 달리의 4차원 그림 같이 그림의 주제가 된 수학 문제를 설명하는게 훨씬 좋았습니다. 이런 쪽으로 방향을 잡있어야 했을텐데 말이지요.

그래도 건질 내용이 없는건 아닙니다. 몇몇 주장은 와 닿기도 했고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수학에 대해 어려워하는 청소년들이 읽으면 좋을 책입니다.

2022/04/24

예나 지금이나 - 박성호 / 박성표 : 별점 2.5점

예나 지금이나 - 6점
박성호.박성표 지음/그린비

100년전 신문 기사를 통해 그 시절과 지금이 별로 다르지 않았다는걸 알려주는 미시사인문학 서적.
<<조선의 풍속과 청춘>>, <<조선의 교육과 문화>>, <<조선의 정치와 역사>>의 3개의 주제로 나누어 총 38개 항목에 대해서 100년전과 지금 모습이 별로 다르지 않다는걸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100년 전의 벛꽃 놀이, 애완견에 대한 여러가지 정책들, 미래 상상, 음란물 규제와 대응, 청춘들의 허세, 썸타기 등 정말 지금과 별로 다르지 않은 모습들은 재미있었습니다. 대부분 '문화'와 '사고 방식'에 가까운 것들이라는 점에서 이런게 과연 쉽게 변하는건 아니구나 싶더라고요. 이를 기사 뿐 아니라 여러가지 사료와 도판으로 설명해주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는게 아니라, 오히려 100년 전에 시대를 엄청나게 앞서갔던게 아닌가 싶었던 아이디어들이 더 눈에 뜨이기는 했습니다. 2000년의 '선영아 사랑해'를 떠올리게 만드는 1914년 매일신보 광고처럼요. 신문 하단을 통으로 이용해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미녀 사진을 싣고, "이 미녀가 누구인지, 무엇을 위한 광고인지 알고 싶으면 내일 같은 지면 광고를 확인하시라"는 문구만 실었다는데, 이건 정말 100년 전에 광고 천재가 살고 있었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 대단한 아이디어였다고 생각됩니다. 이를 허가해 준 광고주도 대단한 사람이었을테고요. 이를 통해 처음에 광고는 개인적 용도로도 - 누구누구를 욕하고 비방하는 등 - 사용되었고, 이후 허황된 사기성 제품 광고에도 사용되었다는 등의 초기의 신문 광고에 대해 알려주는 것도 좋았고요.
참고로, 저 티저 광고의 정체는 담배 광고였다고 합니다. 미녀 등 자극적인 소재로 사람들 시선을 잡아끄는건 지금도 술, 담배와 같은 기호품 광고가 많으니 그야말로 '예나 지금이나' 라는 말에 딱 맞는 소재이기도 하네요.
'조선의 키보드 배틀'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던, 김동인과 필명 '제월'인 평론가가 기고를 반복하며 설전을 벌였다던 이야기도 흥미로왔습니다. 김동인이 제월에 대해 인신공격과 '카더라 통신'을 끌어들여 썼던 글들은 김동인이라는 작가도 보통 사람이었구나, 라는 생각을 갖게 만듭니다. 게다가 김동인 공격의 핵심은 '소설도 쓸 줄 모르면 비평도 하지 마라' 였는데, '제월'이 이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결국 소설을 한 편 썼고, 그 작품이 바로 <<표본실의 청개구리>>였다는 일종의 반전도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제월'이 바로 소설가 염상섭이었던 거지요.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읽고 김동인도 굉장한 충격을 느끼고 호평했다는 또 다른, 마지막 반전(?) 역시도 기억에 남네요. 몇 년 전 인터넷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었던, 만화가 양경일의 루리웹 만지소 인증 사건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역시나 '예나 지금이나' 다를게 없는 듯 합니다.

하지만 중반을 넘어가면 약간 취지에 맞지 않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다르지 않은 세태를, 현실 비판 용도로 들고 오는 내용이 많기 때문입니다. 현재 영어 조기 교육을 100여년 전 일본어 조기 교육 열풍에 빗대어 비판한다던가, 청춘들이 공무원을 꿈꾸던 세태 비판 등이 그러하며, 마지막 3장인 <<조선의 정치와 역사>>은 전체 내용이 '예나 지금이나'와는 거리가 먼 내용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식민지에서의 여러가지 정치 활동 등이 주요 내용이거든요. 현재 시점에서 되새겨봄직한 내용인건 맞지만, 다른 주제들과는 확실히 결이 많이 달랐어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2부까지는 재미있는 소재들이 많았는데 뒷 부분은 기대와 달랐기에 감점합니다.

2024/09/08

언어의 역사 - 데이비드 크리스털 / 서순승 : 별점 3점

언어의 역사 - 6점
데이비드 크리스털 지음, 서순승 옮김/소소의책

영국 언어학자 데이비드 크리스털이 쓴 인문학 서적. 언어가 무엇인지, 언어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언어가 왜 필요한지, 언어를 어떻게 학습하게 되는지, 언어가 어떻게 전파되는지, 왜 세계에 많은 언어가 존재하는지, 언어는 시간이 흐르며 어떻게 변하는지, 표준어와 방언은 무엇인지, 문법은 무엇인지, 언어의 스타일이 왜 필요한지 등에 대해 항목별로 상세하게 알려줍니다. 한마디로, '언어에 대해 궁금한 모든 것'이 담겨있습니다.

몇 가지 인상적인걸 소개해드리자면, 우선은 아이들이 언어를 쉽게 배우는 까닭은 우선 리듬과 억양부터 배우기 때문이라는 주장입니다. 한 20여년 전 유행했던 "영어 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라는 책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 책에서도 무조건 들으면 귀가 뚫린다고 했는데, 같은 이치인것 같아요. 단어의 뜻이나 문법을 모르더라도 그냥 들으면서 그 나라 말의 리듬과 억양부터 깨우치면 된다는 의미일테니까요. 물론 저는 영어의 리듬과 억양을 깨우치지는 못했습니다만....
표준 영어 문법이 생겨난 이유는, 상류층이 하층민이나 평민과 자신들을 구분하기 위해 개발한 하나의 방법이었다는 내용도 기억에 남습니다. 새로운 악센트도 마찬가지고요. 또 악센트나 방언을 진화의 '적자생존'과 연결하는 발상은 신선했습니다. 낯선 악센트는 우리 소속이 아닌 '적'임을 드러내기 때문이라나요. 이를 이튼, 해로 등의 학교에 갓 입학한 지역 악센트 아이가 놀림당하는걸 예로  든 것도 영국 학자답더군요. 우리나라로 따지면 경상도에 전학간 전라도 사투리 소년 상황과 비슷하겠지요? 아, 상상만해도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마지막 부분의 응용 언어학자 같은 연관 학문에 대한 소개도 좋았습니다. 언어학이 언어를 연구만 하는게 아니라 언어를 어떻게 더 쉽게, 잘 배울 수 있도록 하는지, 언어 학습을 어떻게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는지 등은 충분히 실용적으로 써 먹을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되네요. 제가 관심있는 범죄 분야에서도 응용 언어학이 한 분야인 '법 언어학' 전문가들이 활약하여 증거인 문서 자료를 누가 말했고 누가 썼는지를 밝혀낸다니, 언어학의 쓰임은 정말 방대한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예를 통해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해 주는 글 솜씨도 좋습니다. 문법은 지겹게 외워야 하는게 아니고, 단어들의 의미를 통하게 하는 방법이라며 'BAND'라는 단어의 사용 예를 알려주는 식으로요. 이 중 속어를 설명하면서 런던 이스트엔드의 코크니들 말을 예로 든 부분은 "미스터리를 읽은 남자"의 "존 크리시를 읽은 소녀"와 내용과 거의 똑같기도 했고요. 이 작품을 예로 들어주었어도 좋았을 것 같네요.

그런데 '한글'에 대한 설명이 전무하고, 대부분 영어로 된 예제만 포함되어 있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영국 학자의 책이니 영어 예제만 포함된건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 안내할 수 있는 설명이 포함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소의 지루한 부분과, 각 부문별로 지엽적 접근이 이루어지는 구성을 통사적으로 보완하면 좋겠다 싶고요.
그래도 많은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재미까지 놓치지 않은 좋은 책인건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26/04/25

가구, 집을 갖추다 - 김지수 : 별점 2.5점

가구와 인테리어를 단순히 취향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생활사와 주거문화의 변화 속에서 풀어내는 에세이 모음집입니다. 

읽으면서 가장 눈에 들어온 장점은 가구와 인테리어 전문가인 저자의 식견이 곳곳에서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화장대 설명에서 청동기시대의 거울 대체품 이야기에서 출발해, 르네상스 이후 화장 문화의 변화, 17세기의 로보이 화장대, 18세기의 토일렛 테이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더치스 화장대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자연스럽게 정리하며 화장대가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미의식, 계급 문화, 생활양식의 변화와 함께 발전해 왔다는 점을 알려주는 식입니다.

이런 설명은 서양 가구사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조선 말기의 경대, 유리 거울의 보급, 좌식 문화에 맞추어 발달한 소반의 구조와 쓰임, 사랑채와 안방의 변화를 통해 한국의 주거문화와 가구를 연결해 설명해 주기도 하거든요.
덕분에 읽다보면 왜 과거의 가구들이 작고 이동하기 편한 구조였는지, 왜 안방이 오랫동안 생활의 중심이 되었는지, 또 근대 이후에는 거실과 식탁 중심의 공간으로 어떻게 옮겨갔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온돌의 일반화와 좌식 문화의 정착, 그리고 그에 따라 소반이나 경대 같은 생활 가구가 발달해 나갔단 것이지요. 

현재의 생활 방식과 이어지는 제안들도 흥미롭습니다. 소파보다 식탁에 투자하라는게 대표적입니다. 이는 단순한 인테리어 조언이 아니라, 거실과 부엌을 통합하고 한 공간에서 함께 있으면서도 각자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생활 방식으로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따라 하고 싶은지와는 별개로, 집을 꾸민다는 일이 결국 어떤 삶을 선택하느냐와 연결된다는 점을 생각하게 만드네요. 이사를 계획 중인데 여러모로 참고가 됩니다.

엠파이어 스타일, 리젠시 양식, 아르데코 같은 서양 디자인사의 흐름을 대중문화와 사회 변화 속에서 풀어내는 대목도 흥미롭게 읽혔습니다. 예술가와 장인, 파리지엔느와 프렌치 시크 등의 설명도 재미있게 읽었고요.

다만 책의 성격에 비해 도판이 부실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설명을 뒷받침해주는 시각 자료가 꼭 필요한 책인데 말이지요. 저자의 일러스트가 수록될 필요가 있었을지도 의문입니다.
아울러 인문학 서적으로 보기에는 전문성이 조금 부족합입니다. 흥미로운 이야기와 넓은 범위의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정작 근거는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는 부분이 적지 않거든요. 

그래도 가구와 집을 둘러싼 역사, 문화, 생활양식에 대해 쉽게,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크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2026/06/05

딜쿠샤, 경성 살던 서양인의 옛집 - 최지혜 : 별점 2.5점

서울 종로구 행촌동에 있는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에 지어진 서양식 주택 "딜쿠샤"의 역사와 복원 과정을 다룬 인문학, 미시사, 근대미술사 서적입니다.

책은 우선 "딜쿠샤"의 역사부터 짚습니다. 테일러 부부가 이 집을 지은 과정, 화재 이후 다시 보수한 과정, 그 뒤 누가 이 집에 살았고 누가 이곳에서 일했는지를 차례로 알려주거든요. "딜쿠샤"는 이른바 문화 주택 열풍의 출발점처럼 볼 수 있는 집으로, 이 집의 건축 과정 소개를 통해 당시 조선에 방갈로를 비롯한 서양식 주택이 어떻게 들어오고 퍼졌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책의 핵심인 복원 과정에 대한 내용이 이어집니다. 당시 촬영된 사진을 기준으로 실내의 세부 요소를 하나씩 찾아내고, 그것을 다시 재현하는 과정이 자세하게 소개됩니다. 전등이 몇 개였는지 같은 고증은 물론, 복원에 필요한 물품을 어떻게 구입했는지, 구할 수 없는 물건은 어떻게 제작했는지도 설명됩니다. 이를 통해 복원이라는 일이 단순히 낡은 건물을 고치는 수준에 그치는게 아니라는걸 알 수 있습니다. 사진과 온갖 자료들을 조사하여 물건의 쓰임을 확인하고, 없어진 것은 다시 만드는 굉장히 치밀한 작업이더군요. 그 정성은 정말 놀라울 정도였어요.

그리고 복원 과정에서 구하거나 만든 여러 소품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좋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아래와 같습니다.

비연호는 코담뱃가루를 담는 작은 병입니다. 청나라 때부터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청에서는 담배는 금지했지만, 코로 흡입하는 코담배는 감기, 두통, 위장병 같은 증상을 완화하는 치료약으로 허용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코담뱃가루는 습기에 약했기 때문에, 공기에 덜 닿도록 입구가 작은 병을 만들었고요. 그 병이 비연호입니다.

딜쿠샤 벽난로 옆에 놓인 둥근 그릇은 히바치로 일본 전통 화로입니다. 나무, 도자기, 동으로 만들었는데, 특징이라면 난방용으로만 쓰인건 아니라는 점 입니다. 방 안에서 차나 국을 데우거나, 김을 굽고, 찰떡을 구워 먹고, 깨를 볶는 데에도 썼다고 하네요.

2층 거실 탁자는 상판과 다리까지 조각 장식으로 뒤덮여 있는데, 이건 일본의 닛코보리 탁자입니다. 닛코보리는 일본 닛코 지역의 공예품입니다. 1643년 제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가 닛코의 도쇼구를 크게 고치면서 많은 조각 장인들이 모였고, 공사가 끝난 뒤 이들이 그 지역에 정착해 방문객을 대상으로 쟁반과 가구 같은 기념품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유래라고 합니다.

서양인의 서양식 주택이지만, 당시 조선의 가구와 소품들도 갖추어져 있었는데 이에 대한 설명도 확실합니다. 조선의 돈궤를 서양인들이 캐시박스라고 불렀고, 우리나라 전통 가구 중 장은 분리되지 않지만 농은 층층이 분리되는걸 의미하며, 당시 서양인들에게 삼층장은 조선 가구의 대표였는데 1920~30년대 조선을 찾은 미국인들은 화려한 것을 좋아해서, 번쩍거리는 장식이 많이 붙은 삼층장을 선호했다는 등의 정보가 가득한 덕분입니다. 

이런 정보들과 함께하는 도판도 좋습니다. "딜쿠샤" 복원에 관련된 소품과 세부 디테일 사진이 많이 실려 있습니다. 소품과 관련된 도판, 당시 분위기를 알려주는 사진도 충실합니다. 이런 책은 글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데, 사진 자료가 많아서 읽기 편했습니다.

다만 단점도 분명합니다. 특히 문장이 아쉽습니다. 이런 저런 명언과 미학 이론을 들먹이며 이야기를 멋스럽게 쓰려는 표현이 많은 탓입니다. 책의 소재 자체가 이미 충분히 재미있는 만큼 오래된 사진을 보고, 사라진 물건을 찾고, 공간을 다시 만드는 과정만 담백하게 쓰는게 좋았을 것입니다. 괜히 문장을 꾸미려는 부분이 오히려 정보 전달을 방해한다고 느껴집니다.

또 다른 단점은 일부 정보의 근거가 약하다는 점입니다. 저자의 전문분야인 건축, 미술, 복원 외의 생활문화 부분은 다소 부실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영국인들이 홍차를 좋아한 이유를 영국 물의 미네랄 함유량이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부분이 그렇습니다. 차 문화는 그렇게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닙니다. 역사, 무역, 계급, 식민지, 기호품 소비 등 여러 요소가 얽혀 있으니까요. 이 책에서처럼 한, 두 페이지로 간단하게 정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4/03/29

딜리셔스 - 롭 던. 모니카 산체스 / 김수진 : 별점 4점

딜리셔스 - 8점
롭 던.모니카 산체스 지음, 김수진 옮김/까치

진화생물학과 인류학 관점에서 먹거리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를 알려주는 과학, 식문화사, 인문학 서적.

이 책에 따르면 동물들의 거주지가 제한되는건, 동물들의 미각 수용체가 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물들은 입맛에 맞는 먹이가 있는 장소를 떠나기 힘들지요. 그러나 인류는 조리를 통해 이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재료를 자기 입맛에 맞게 만들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인류가 불을 사용한 것도 불로 조리한 음식이 더 맛있어졌기 때문이고요.
음식 조리는 음식 소화 시간도 단축시켰습니다. 침팬지는 깨어 있는 시간의 40%를 먹이를 씹는데 씁니다. 하지만 인류 조상들은 이 시간을 대폭 줄였고(현재는 평균 하루의 4.7%를 씹는데 소모), 남는 시간과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조리가 문명을 발달시킨 한 요인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맛있는 요리에 대한 집착은 수렵 채집으로 살아가는 원주민들을 조사한 결과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선호하는 음식 - 1위는 꿀 - 을 구하는데 더 큰 노력을 기울인다고 하거든요.
이런 집착은 북아메리아에서는 거대 동물(매머드 등)의 멸종도 불러왔습니다. 불법이지만 코끼리 고기를 먹어본 사람들에 따르면 엄청나게 맛있다니까요. 특히 코끼리는 발 요리가 최고라고 합니다. 당연히 매머드도 맛있었을테고, 그래서 크로비스인들도 멸종할 때까지 매머드를 집중적으로 노렸던 것이지요.
맛있는 동물만 사냥하는건 지금도 수렵인들을 통해 증명됩니다. 현실적으로는 찾아서 죽이기 쉽고, 가공하기 쉽고 많은 열량을 제공하는 동물을 잡아 먹는게 일반적이겠지만, 연구 결과 사냥꾼들은 맛있는 동물들을 발견하면 무조건 추격한다고 합니다. 사냥하기 쉬운 동물은 그렇지 않았는데 말이지요. 게다가 맛없는 동물들은 아예 사냥 대상에서 배제되고요.

향미에 대한 추구는 향신료의 사용도 불러왔습니다. 처음에는 항균제로 사용되었을 수도 있지만, 쾌락적 경험을 불러오는 효과 때문에 널리 퍼졌습니다. 이는 고추의 캡사이신을 조금씩 늘려 제공했을 때, 모든 사람들이 견딜 수 있는 가장 매운 맛이 가장 맛있다고 골랐다는 연구 결과로도 증명됩니다. 통각을 자극하는 맛은 실제 죽음의 위협을 받지 않으면서도 위험을 피할 때의 황홀감을 느끼게 해 주는게 아닌가 싶네요.
발효도 항균제 효과와 같은 이치로 생겨났을 겁니다. 장기 보관을 위해서요. 같은 이치로 염장, 훈제, 건조도 발명되었고요.
참고로 이 부분에서 아예 고기를 물에 담궈놓는 일종의 습식 숙성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말 한마리를 호숫물에 담궜던 실험이 소개되는데 굉장히 신기했습니다. 진공 포장을 하지도 않았는데도 장기 보존되었다는데 이유가 궁금해지더라고요. 일종의 발효같은 과정이 일어난 것이겠지요?

손이 많이 가는 복잡한 숙성 연성 치즈가 만들어진 것도 맛에 대한 추구때문이라는 이론도 흥미로왔습니다. 노동과 근면을 장려하고, 재료는 모자람이 없었지만 먹는건 제한적이었던(고기를 먹지 못햇던) 수도사들이 심혈을 기율여 그들이 먹을 수 있는 가장 맛있는 치즈를 제조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는게 숙성 연성 치즈 제조의 원인이라는데 참 그럴듯했어요. 이 이론은 숙성 연성 치즈의 맛은 고기와 흡사하다는걸로 증명될 수 있고요.

이렇게 맛있는 음식, 요리에 대한 추구가 문명 발전과 인류 진화를 이끌었다는걸 알려주는데, 목차 구성이 다소 정리가 불충분한 느낌이 드는건 아쉬웠습니다. 주제에 맞게끔 통사적으로 구성하는게 좋았을텐데 말이죠. 도판과 등장 레시피 소개도 부실합니다. 

그래도 맛에 대한 집착이 진화를 이루어냈고, 식문화의 발달을 만들었다는걸 여러가지 연구 결과를 통해 쉽고 재미있게 알려주는 좋은 책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그나저나, 이 책을 보니 맛에 대한 집착이 많은걸 이루어낸건 분명한 만큼, 맛에는 다소 엄격해져도 될 것 같군요.

2018/07/29

대구 - 마크 쿨란스키 / 박중서 : 별점 3점

대구 - 6점
마크 쿨란스키 지음, 박중서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세계의 역사와 지도를 바꾼 물고기의 일대기" 라는 부제 그대로, 대구라는 물고기가 인류 역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를 상세하게 알려주는 일종의 미시사 서적으로 이런저런 음식 관련 저서로 잘 알려진 마크 쿨란스키의 또 다른 역작입니다.
바이킹의 장기간 해외 원정이 가능했던 이유는 풍부했던 대구의 장기 보존 방법을 깨우쳤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이후 대구를 소금에 절이는 방법을 알아낸 바스크인들이 대구 무역 시장을 세계적으로 확장시켰고, 영국 뉴펀들랜드의 대구 어업이 시작된 후 신대륙 대구 어장을 둘러싼 강대국의 세력 다툼 속에서 거대한 어항, 도시가 생겨났고, 현대에 접어들어 국가별 배타적 수역 설정과 대구 남획으로 인하여 이 도시들이 쇠퇴했다는 전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해 줍니다.

단순히 역사적인 사실의 나열에 그치지 않고 대구를 잡아서 처리하는 방법이 어떻게 진화하여 남획에 의한 고갈 사태에 이르렀는지, 세계 각지의 대구를 이용한 요리들은 어떤게 있는지 그 레시피까지 50여 페이지에 걸쳐 소개하는 등, 그야말로 대구에 대해서는 총 망라된 대구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재미있게 만드는 마크 쿨란스키의 글 솜씨도 정말 탁월합니다. 도무지 재미가 없을 것 같은 내용인데 한번 손에 잡으면 내려놓기가 쉽지 않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대구 때문에 북아메리카에 식민지가 생겨난 건 아닐테고, 보스턴도 유럽과 유럽의 식민지가 열렬히 원하던 뉴펀들랜드의 대구를 중계하는 무역에서 비롯되었다던가 대구가 가난한 식민지 뉴잉글랜드를 국제적 상업 세력으로 격상시켰다는건 조금은 지나친 비약으로 느껴졌습니다. 물론 그만큼 상세한 근거를 제시해 주고 있기는 합니다만 잘 와 닿지는 않네요. 미국 독립 전쟁까지 엮는건 비약 아닐까요? 사탕수수에서 설탕을 생산하는 노동 집약적 노예 무역이 저렴한 식량인 대구의 보급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주장도 마찬가지고요.
또 당연한 현실인 남획으로 인한 어장 고갈 이후의 이야기가 지나치게 긴 것도 조금 지루했습니다. 가장 공들여 취재가 이루어진 부분인건 맞지만 결론은 신세 한탄 외의 대안이나 미래를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분량을 이렇게까지 할애할 필요가 있었을지 의문이에요. 마지막으로 도판이 부실한 것도 옥의 티입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하며 가치와 재미가 어디 갈 정도는 아닙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이런 류의 미시사, 인문학 서적을 좋아하신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관심이 없으시더라도 마크 쿨란스키의 마법과 같은 글솜씨를 보기 위해서라도 한 번 읽어볼 가치는 충분합니다. 

그나저나 읽다보니 대구 요리가 먹고 싶어지는데 조만간 대구 지리나 한 번 먹으러 가야겠네요.

2021/04/02

복수의 심리학 - 스티븐 파인먼 / 이재경 : 별점 2.5점

복수의 심리학 - 6점
스티븐 파인먼 지음, 이재경 옮김, 신동근 추천/반니

복수에 대해서 생물학적, 역사적, 사회적 사례들과 함께 설명해 주는 인문학 서적입니다.

생물학적 사례는 책 서두에 설명된 2000년 사우디아라비이아에서 있었던, 비비 원숭이가 인간에게 덤벼들었던게 대표적입니다. 비비 원숭이와 침팬지를 통해 복수가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하고요. 삶의 목적이 패권과 짝짓기라면, 이를 위협하는 존재에 대한 보복믄 반드시 필요하며 이는 인간 영장류와 다르지 않다네요. 그럴듯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집단이 훨씬 크고, 삶의 목적과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도 훨씬 복잡하기 때문에 단순한 개인적 응징은 사라지고, 국가가 공정과 냉철을 원칙으로 대신 복수를 하게 된게 현재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법 체계인 것이지요.

뒤이어 종교, 문학, 사법 체계, 여성 대상 범죄 등 여러가지 복수의 역사와 실제 사례가 소개됩니다. 예를 들어 종교에서 복수는 대체로 신의 것이며, 대부분 종교 교리는 복수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다고 합니다. 힌두교는 카르마, 즉 업과 윤회가 공통 사상이라서 남을 해치면 내게도 화가 미치게 됩니다. 기조 사상인 아힘사는 비폭력과 불살생을 표방하고요. 그래서 폭력적 말과 행동은 삼가야 합니다. 불교에서 보복 행위는 적은 남이 아니라 내 속에 있다는 부처의 가르침을 어기는 일이에요. 그러나 이 모든 영적 이상은 세속 정치에 의해 엇나갑니다. 사람들은 교리와 경전을 각색해서 복수를 정당화하지요. 종교간, 종파간 분쟁과 전쟁은 지금도 끊이지 않으며, 일부 종교 지도자들의 증오와 분노만 가득한 선동은 지금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이 쯤 되면 교리와 경전은 없고, 지도자들 개인의 복수심만 남아 있는 상황이지요. 이 책을 읽으니 종교를 믿을 이유가 없다는 신념이 더욱 강해집니다.

그 외에도, 소프클레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유서가 깊다는 서두에서 시작된 문학에서의 복수에 대한 소개는 흥미로왔습니다. 중세 결투와 종교 재판 등에 대한 자세한 설명, 16세기 이후 지역 공동체가 국가 대리인 역할로 법을 집행했던 상황에 대한 설명 등에서, 법 집행이 복수나 보복일 수 있다는 견해도 굉장히 그럴듯했고요. 이와 반대로, 특정 지역 부족간, 가족간 보복이나 명예 살인, 갱단의 보복은 영역과 위상을 지키기는게 전부인 후진적 발상이라는 설명도 와 닿더군요. 여성 대상 범죄와 여성들의 복수는 사회 체제가 미개하고 잘 갖추어져 있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라는 소개에서는, 우리나라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 바로 떠올랐습니다. 참고로 리벤지 포르노와 학교 내 총기 사고. 학교 총기 사건 방지는 교사와 학교 상담사, 학부모 역할이 중요하다. 심리적 위축과 같은 위험 징후들을 경계하고 방심하지 말아야 한답니다. 직장 내 복수 사례에서는 큰 사건은 물론 상대방 커피에 침을 뱉는 류의 자잘한 복수까지 망라하고 있는데. 콜 센터나 식당, 항공사 등 감정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복수 사례가 특히 재미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독재 정치가 끝나고 복수에 대한 열망이 끓어오르지만 새 정권이 통치 기반을 다지는 과정에서 지난 정권 지지층 반발을 피하는데 급급해서 대충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은 뼈 아팠습니다. 우리나라가 바로 그런 경우니까요. 일제 강점기 때 친일 부역자들과 독재자 전두환과 그 일당은 제대로 처벌해서 정의를 바로 세웠어야 했습니다. 책에 나온 스페인 프랑코 정권 피해자가 "화해의 미덕은 믿지만, 반성과 사죄 없이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고 했는데, 말 그대로죠. 사면 따위는 사치였습니다. 정치 보복 역시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아왔기에 남 이야기 같지 않더군요. 그 중에서도 "인신 공격은 대중매체가 정치를 사유화하는 경향이 강한 풍토에서 더욱 극성을 떤다. 이 점에서도 미국이 선두다. 토머스 제퍼슨이 애덤스 뒷통수를 친 사건이나 최근의 도널드 트럼프가 좋은 예이다." 라는데, 언론의 불공정하고 비합리적인 기사가 많은 우리나라에 딱 들어맞는 이야기라 생각됩니다. 언론의 보복이 민주주의 투사들과 맞장을 떠 온 역사도 마찬가지에요. 책에서는 토머스 제퍼슨과 랜돌프 허스트의 언론을 이용한 여론 조작, 그리고 루퍼트 머독이 호주 정치에 개입한 악질적인 사례가 언급되는데, 우리나라 사례를 추가시켜 달라고 요청하고 싶을 정도에요.

하지만 재미있고 인상적인 내용이 많음에도 아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복수가 필요하다는건 잘 전달하고 있기는 한데, 제목처럼 '복수'에 대한 심리학적인 분석을 잘 담고 있느냐 하면 솔직히 잘 모르겠거든요. 법 집행을 광의의 복수로 보는 시각도 그럴듯하지만, 이건 심리학과는 좀 거리가 있는 이야기라 생각됩니다. 심리학적으로 풀려면 피해자와 법 집행에 의해 처벌받는 가해자와의 관계와 그 심리를 보다 자세하게 다루었어야 했어요. 그 외의 이야기들도 사례는 재미있지만 심리학적인 부분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요. 책의 부제인 "사람들이 왜 용서보다 복수에 열광하는지"에 대한 정의도 없습니다. 관련된 사례, 그리고 일종의 교훈?만 존재할 뿐이죠.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1/04/23

튀김의 발견 - 임두원 : 별점 2점

튀김의 발견 - 4점
임두원 지음/부키

국내 과학자가 쓴 튀김에 대한 인문학, 과학, 교양 서적입니다. 박찬일 셰프 등의 호평이 인상적이라 눈여겨보던 차에, 구입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책은 튀김의 역사와 대표적인 튀김 요리에 대한 소개로 시작됩니다. 이 책에 따르면, 튀김 요리가 처음 등장한 문헌은 로마 요리서 "요리에 대하여"입니다. 유명했던 전설의 미식가 아피시우스가 썼다고 알려진, 1세기 경 편찬되었을 걸로 추정되는 책이죠. 여기에 '알리테르 둘키아(또 다른 달콤한 요리)'라는 튀김 요리가 실려 있다고 합니다. 밀가루와 우유로 만든 도우를 올리브유에 튀겨낸 뒤 꿀을 듬뿍 바르는 요리로, 지금의 프렌치 토스트와 비슷합니다. 

하지만 튀김의 핵심 재료였던 기름이 비쌌던 탓에 튀김이 대중화되는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13세기 이후부터 많은 튀김 요리가 등장한다고 하니, 거의 천 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 셈이죠. 그 뒤에는 대표적인 튀김 요리로 덴푸라, 돈카츠, 라면, 프라이드 치킨, 프렌치프라이, 피시앤칩스, 탕수육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이어집니다.
다 재미있지만 특히 피시앤칩스에 대한 소개가 괜찮았습니다. 유대인들이 스페인의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이주했는데, 이 때 스페인 전통 튀김 요리 '페스카도 프리토'가 전파된게 그 유래라고 하네요. 식초를 뿌리는게 중요하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요. 

2부 격인 튀김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았습니다. 튀김의 핵심인 '겉바속촉'의 원리에 대한 설명을 예로 들자면, 이는 '수분 배출이 유리한 구조' 와 '육즙의 유출을 막는' 두가지 기법이 동시에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기름에 튀길 때 수분들이 기화하면서 수분이 빠져나간 자리가 팽창하여 부풀어 오르고, 무수히 많은 작은 구멍이 생기게 됩니다. 튀김옷의 글루텐과 전분은 재료를 감싸는 보호막 역할을 수행하고요. 그래서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요리가 탄생하는 겁니다!
돈카츠가 맛있는 이유는 겉바속촉을 강화했기 때문이에요. 돈카츠는 보호막용 밀가루옷, 튀김옷에 고소한 맛을 더하고 빵가루를 붙여주는 달걀옷, 마지막으로 바삭거리는 식감을 강화하는 빵가루 옷을 입혀 튀겨내니까요. 책에서 설명한대로 '묻고 더블로 가는' 조리법입니다.
튀김이 왜 맛있는지에 대한 설명도 실려 있습니다. 고온에 의한 마이야르 반응, 그리고 캐러멜화 반응 때문이라네요. 겉바속촉에 마이야르와 캐러멜화 반응이라니, 이건 정말 반칙입니다. 이래서야 맛이 없을 수가 없겠죠. 

마지막 3부로 기름, 튀김옷, 튀김기의 종류가 설명되며 책은 마무리 됩니다. 항목별 분류와 차이점에 대한 소개가 아주 상세합니다. 튀김업 입문자라면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내용이 아닐까 싶네요.

이렇게 모두 3부에 걸쳐 튀김에 대해 전반적인 부분을 모두 터치하고 있기는 한데, 광고에 낚인 기분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책에서 접할 수 있었던 내용이 많았던 탓입니다. 대표적인 튀김 요리 소개가 그러합니다. 대부분 다른 요리 관련 서적에서 한 번 이상 접했던 요리들이거든요. 총 7종의 요리 중 3종이 일본 요리라는 것도 잘못된 배분이 아닌가 싶고요. 우리나라에서 즐겨 먹는 튀김 요리를 소개한 것일까요? 그렇다면 분식집 튀김의 유래에 대해서 파헤쳐주는게 더 나았을 겁니다.
또 튀김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과 설명은 "맛있는 요리에는 과학이 있다"에서, 글루텐 때문에 튀김옷을 많이 반죽하면 안되고, 차게 놔 두어야 한다는 건 "맛의 달인"에서, 프렌치 프라이는 "오무라이스 잼잼"에서, 그 외의 다른 소재들도 다양한 많은 작품에서 이미 선보인 바 있습니다. 

그리고 책의 목차와 설명에서 정리가 잘 되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쉽게 쓰여진 듯 하지만 읽다보면 뭔가 두서가 없다고나 할까요? 반대로 전문적인 부분은 너무 전문적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이 책만 읽는다면 나름의 가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류의, 요리 관련 전문 서적을 많이 읽은 분이시라면 구태여 읽어보실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2024/01/06

필요의 탄생 - 헬린 피빗 / 서종기 : 별점 3점

필요의 탄생 - 6점
헬렌 피빗 지음, 서종기 옮김/푸른숲

냉장고 도입에 따른 가정의 변화를 알려주는 과학사, 미시사, 인문학 서적.

냉장고 도입의 역사는 얼음과 아이스박스에서 시작됩니다. 가정 내에서 얼음을 사용한 역사가 생각보다 오래되었더군요. 17세기에 시작되어 18세기에는 귀족들 계층에 확고하게 자리잡았고,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는 일반 가정에도 보급되었다고 하니까요.
그리고 유명한 19세기 영국의 만국 박람회에 여러가지 제빙기의 등장 후 모든게 바뀌었습니다. 얼음을 언제든지 대량으로 생산하는 시대가 열리자 저온 유통 체계가 자리잡아서 식료품 공급망에 엄청난 영향을 줬습니다. 한 마디로 신선한 식품들이 계절과 지역에 상관없이 전 세계 곳곳에서 값싸게 거래되는 세상이 된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가정용 냉장고가 도입된건 필연적인 흐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유럽보다도 보급은 훨씬 빠르고 광범위 했습니다. 이유는 20세기 초 근교 주택이 성장하여, 미국의 주택 크기가 계속 커진 덕이 큽니다. 그래서 실내에 냉장고를 충분히 설치할 수 있었거든요. 반면 유럽의 주택 크기는 그대로라 냉장고 크기는 작을 수 밖에 없었을 뿐더러, 영국의 경우는 식품 저장고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서 가정 내에 냉장고를 들이기가 여의치 않았다고 하네요. 1953년에도 영국 전체 가구의 5% 정도만 냉장고를 보유했다고 할 정도로요. 그러나 이후 신규 주택 단지에 냉장고가 기본 설치되고, 중앙 난방의 보급으로 식품 저장고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 등의 이유로 냉장고 보급은 가속화되었습니다. 음식의 보존 기간을 늘리기 위한 각종 첨가물이 금지된 것도 한 몫 단단히 했습니다. 건강을 강조한 광고도 이런 분위기를 이끌었고요. 심지어 1950년대 뉴질랜드에서는 냉장고에 보관하지 않은 우유를 파는게 범법행위에 해당하기도 했다니, 보급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인겁니다.

그 외에도 냉장고 문 안쪽에 선반을 단 발명 특허는 사장될 뻔 했다던가, 선반 특허를 반격했던 회전식 선반은 좋은 아이디어였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사장되었다, 냉장고 소리를 감추기 위해 라디오를 다는 발명도 있었다는 등 소개되는 냉장고 관련 잡학들도 재미있었어요. 그 중 냉장고에 음성 메시지를 남기는 발명은 최근에서야 여러가지 센서와 칩으로 가능했을 기술같은데, 이미 1970년대에 카세트 테이프 레코더를 이용해서 구현했다는게 놀라왔습니다.

'냉장고'하나만으로 미국과 유럽의 주거 환경, 가정 내 상황, 그리고 미국의 교외화 현상 등을 설명할 수 있다는게 인상적이었던 독서였습니다. 냉장고와 냉동 기술이 핵심 이유는 아니겠지만 최소한 영향을 미쳤다는건 부인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이렇게 하나에 대해 깊이 파고 들면, 관련된 다른 것들에 대해 이해하기 쉬워진다는게 미시사의 묘미가 아닐까 싶군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18/01/04

우리가 사랑한 비린내 - 황선도 : 별점 3점

우리가 사랑한 비린내 - 6점
황선도 지음/서해문집

2018년 첫 리뷰네요. 한국 어류학자 황선도가 한국 해산물에 대해 전문적 지식과 함께 소개하는 책입니다. 16종의 어패류 및 우리 바다 환경에 대한 글들이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빼곡하게 수록되어 있으며, 관련된 도판도 충실합니다.

바다에 관련된 전문 지식의 양과 깊이가 실로 방대합니다. 그 중에서도 아무래도 제목과 연관된, "먹거리" 관련 이야기들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오분자기는 원래 지천에 널렸었고 국물 맛이 전복보다 좋아 해물 뚝배기에 많이 썼는데 지금은 씨가 말라버렸다는 이야기처럼요. 지금의 오분자기 뚝배기는 작은 전복을 쓴다는군요.
조선 정조 대 문인 이옥의 "백운필" '석화' 편에 "석화의 쓰임은 회가 최고이고, 무치는 것이 다음이고, 젓갈로 만드는 것이 그 다음이고, 죽을 만드는 것이 또 그 다음이고, 전을 만드는 것이 그 다음이고, 국으로 만드는 것이 제일 못하다"고 적혀있다는 것도 인상적이에요. 이 당시에는 튀김이 들어오기 전이었겠죠? 튀김이 있었다면 회하고 좋은 승부가 되었을텐데 말이지요.
"노인과 바다"에서 산티아고가 2박 3일 동안 사투를 벌여 잡은 물고기가 "대서양 녹새치"라는 주장도 재미있습니다. "맛의 달인"에서 새치를 주문한 이사무를 주위 사람들이 비웃는 에피소드도 떠오르네요. 새치가 "노인과 바다" 속 사투의 주인공이었다는 이야기를 이사무가 알았더라면 비웃던 사람들에게 "새치는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가 2박 3일 동안 목숨을 걸고 잡은 물고기입니다. 여러분들도 문학의 향기를 좀 느껴 보시죠!"라고 한 방 날릴 수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이래서 공부를 해야 하나 봅니다.
참돔이 양식이 되는 탓에 양식이 안되는 감성돔이 고급 어종으로 부상했다는 등 좋아하고 즐겨 먹는 돔, 방어나 참치, 연어, 소라, 꼬막, 키조개 등 친숙한 해산물들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그리고 황폐화된 바다 자원을 재생하기 위한 노력 사례가 수록된 마지막 부분은 책의 화룡정점입니다. 남획 등으로 사막처럼 변한 마안도 재생을 위한 수중림 조성이 가장 돋보이는데, 우리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부디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저도 위도와 마안도 등은 한 번 돌아보고 싶어집니다.

이러한 저자의 전공 분야인 어패류 관련 지식 외의 각종 정보들의 수준도 높습니다. 특히 "어원"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인상적입니다. "스키다시"의 어원은 "붙이다"라는 뜻의 일본어 스케루에서 온 것으로 우리말로는 "곁들이", 즉 사이드 디시를 의미한다, 중국의 '남삼여포'라는 사자성어가 있는데 남자에게는 해삼, 여자에게는 전복이 좋다는 뜻이다, 멍게는 방언으로 원래 표준어는 "우렁쉥이" 였는데 방언이 더 널리 쓰이게 되어 표준어가 되었다, "진상"은 "진상품 부역"이 굉장히 고통스러웠던 과거에서 비롯된 말이다라는 것들입니다.
갯벌, 갯뻘, 개펄 중 뭐가 맞는 표현인지?에 대한 궁금증도 풀어줍니다. 개(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의 벌판이라는 뜻으로 "갯벌"이 맞으며 갯벌에 있는 흙이 "개펄" 이라고 하네요. 과학자도 글을 쓰려면 이 정도까지 공부하는구나 싶어서 많이 반성하게 됩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사료로 고증해 주는 우리 어패류에 관련 역사들도 아주 재미있습니다. 흔히 알고 있는 "도루묵" 이야기에 나오는 왕은 선조가 아니다!라는 주장이 가장 흥미로왔습니다. 도루묵은 주로 강원도, 함경도, 경상북도 동해 북쪽 바다에서 잡히는데 선조는 임진강, 평양, 의주로 피난을 갔기 때문에 도루묵을 먹었을 가능성이 아주 낮기 때문이랍니다. 고려시대 왕들도 동해안 쪽으로 피난 간 왕이 없다니 과연 "도루 묵이라 불러라"고 한 왕은 누구였을까요? 궁금합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조선의 전복 진주가 명산품으로 소개된다는 이야기도 새로왔고요.

이렇게 재미도 있고, 담겨있는 정보도 충실한 좋은 인문학 서적입니다. 전문성을 찾기에는 조금 가벼운 에세이 느낌이 강하다는건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는데 저에게는 장점이 더 많았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역시, 믿고보는 서해문집이네요.

2013/07/25

가족 기담 - 유광수 : 별점 2.5점

가족 기담 - 6점 유광수 지음/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옛이야기 속 감추어진 진실을 들춰내어 소개해주는 독특한 인문학서.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와 비슷한 컨셉인데,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는 점과 뭔가 교훈을 주려고 한다는 점이 차이점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자신의 아들을 죽여서라도 노모를 봉양하려 했다던 "손순매아"류의 이야기는 효자의 지극정성을 다룬 것이 아니라 사실은 아이가 짐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에 대한 정이 별로 없었을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장화홍련전"에서 정말로 나쁜 것은 아버지인 배좌수라는 것을 근친상간까지 살짝 들먹이면서 설명하고요. 또 "심청전"의 심봉사는 대책없는 패배자다. 그러나 맹인 잔치에 가기 위한 노력이 그의 눈을 뜨게 만들었다는 새로운 해석도 등장합니다.

이렇게 옛 이야기를 새로운 시각으로 설명하고 있기에 읽기는 쉽고 쭉쭉 넘어간다는 장점은 큰데, 이야기들의 해석 모두가 그럴듯하고 와 닿지는 않는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처첩 간의 시기와 질투, 서자에 대한 이야기들이 그러했어요. 원전이 되는 작품들도 잘 모를 뿐더러, 내용도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더라고요.

결론내리자면 모든 분들이 좋아하실 책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이런 류의 이야기, 일종의 "왜곡", "반전", "음모론"을 좋아하는 분들께는 추천드립니다.

2023/05/13

신의 기록 - 에드워드 돌닉 / 이재황 : 별점 4.5점

신의 기록 - 10점
에드워드 돌닉 지음, 이재황 옮김/책과함께

이집트 상형문자의 해독 과정을 시작부터 완결까지 꼼꼼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미시사, 인문학 서적.
시작이 된 나폴레옹 프랑스 원정대의 로제타석 발굴에서 시작하여, 샹폴리옹이 해독을 성공하고, 샹폴리옹 해독이 옳았다는게 검증된 카노포스석 발굴로 마무리되는데 핵심은 이집트 성체자 해독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에 대한 설명은 제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자세합니다.
우선, 성체자 해독이 어려웠던 이유는 사례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글자가 어떤걸 나타내는지를 알려면 사례가 많아야 했거든요. 하지만 로제타석 조차도 성체자 부분은 깨져버린 탓에 14줄만 남아있어서 턱없이 부족했지요. 그래서 처음에 학자들은 두 번째 부분인 속체자에 주목했습니다. 속체자는 그림문자인 성체자에 비하면 비교적 정상적인 문자로 보였고, 정상적인 문자는 일반적으로 자모 기반이라서 속체자의 자모를 알아내려고 했거든요. 로제타석의 그리스어 부분에서 자주 반복되었던 '프톨레마이오스'라는 이름을 속체자 부분에서 찾아내어 이 둘의 문자열을 짝짓고, 그래서 자모를 알아내려고 했던 시도가 초반에 이루어졌었지요. 이는 비교적 - 반쯤은 우연으로 -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는데, 문제는 이 탓에 속체자는 자모로 이루어져 있다는 오류가 강화된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속체자는 성체자를 바탕으로 간략히 써서 빨리 쓸 수 있도록 만든 일종의 간체자여기에, 결국 이 시도는 실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뒤 영국의 토머스 영, 프랑스의 샹폴리옹이라는 두 천재가 등장합니다. 먼저 나선건 다양한 분야에서 천재성을 발휘했던 토머스 영이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다른 학자들처럼 속체자와 그리스어를 비교 분석하여 패턴을 찾아내려 했죠. 이는 앞서 말했듯 실패가 예정된 방법이었습니다. 실패 후 영은 '중국어'를 통해 해독으로 한 걸음 나아갑니다. 바로 우리는 익히 잘 알고 있는 중국어 - 한자 - 의 외래어 발음법에서 착안한 방법이었지요. 한자는 모든 단어를 가지고 있지만, 외국어를 발음하려면 그 발음에 맞는 문자를 붙여서 써야 합니다. 뜻과 상관없이요. 불란서, 이태리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영은 로제타석의 비이집트계 이름 - 프톨레마이오스 - 를 어떻게 성체자로 적었는지 찾아내면, 최소한 그걸 읽는 방법은 알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타원체 - 카르투슈 - 가 둘러싸고 있는 성체자를 주목했습니다.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고, 음독하라는 지시를 담고 있을 것이라 여겼거든요. 그래서 '프톨레마이오스'라는 이름을 찾아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가는데는 실패했습니다. 카르투슈 안 성체자만 소리와 상응한다고 생각했고, 그 외의 성체자는 부호에 뭔가 의미가 담겨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탓입니다. 마야 문자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처럼요. 그 때도 마야 문자는 그림으로 관념을 나타내는 부호라는 주장이 널리 퍼졌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음을 나타내는 전형적인 문자 체계였다는게 드러났지요.

영의 발견은 샹폴리옹이 이어받아서, 그는 여러 카르투슈 속 이름을 해독했고, 로제타석 성체자 숫자도 헤아려 봅니다. 그 결과 일반적인 개념대로 성체자 하나하나가 한 단어나 개념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너무 적다는걸 알아냅니다. 그리고 역시 중국 한자식 발상으로, 평범한 이집트 단어에도 성체자를 소리 문자로 사용했다고 생각하지요.
아부심벨 신전에서 베껴낸 비문을 받은 샹폴리옹은 파라오 '람세스', '토트메스'의 이름을 해독했고, 여기서 '콥트어' 전문가라는 능력이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파라오들 이름이 '탄생'을 뜻하는 콥트어 단어 '미세'가 관련되어 있다는걸 깨달았거든요! "라가 탄생시킨 아들', "토트가 탄생시킨 아들"이라는 뜻으로요! 그래서 카르투슈 밖 성체자에서 이렇게 '탄생'을 의미하는 성체자가 있는지를 조사하고, 그게 그리스어 부분으로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찾아보았니다. 그 결과 '탄생일' 이라는 단어를 알아내죠. 성체자가 하나하나가 의미를 가지게 아니라 자모를 가진 문자라는게 드러난겁니다. 이게 샹폴리옹이 그 유명한, 형에게 "내가 해냈어!"를 외치고 기절했다는 바로 그 순간입니다.
읽는 방법을 알아낸 샹폴리옹은 콥트어 규칙을 적용해서 성체자 분석을 진행합니다. 성체자에 가장 많은 물결무늬는 콥트어에 가장 많이 나오는 "N"이라고 판단했지요. 


콥트어에서 N은 of의 의미였습니다. P는 정관사 the로 사용되었는데 '프톨레마이오스' 해독으로 p 발음은 무슨 그림인지 알아냈고요. 이를 통해 TheXXXXXofXXXXXX 같은 문장을 끌어낸 뒤, 단어들을 채워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가장 큰 진전은 '결정자'의 발견이었습니다. 단어 끝에 붙어있어서, 없어도 되는 글자로 보였던 글자였는데 알고보니 명확하게 단어임을 알려주는 부호였던 겁니다. '고양이'라는 글자 뒤에 고양이 그림을 붙여놓는 식으로요. 결정자는 단어 뒤에 붙기 때문에, 해독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래가 성체자 '고양이'인데, 정말 고양이 그림이 붙어있네요.


또 샹폴리옹은 그리기 어려운 단어를 같은 발음인 그리기 쉬운 단어로 바꾸어 전달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아냈어요. 이집트어에서 '아들'과 발음이 같은 것은 '오리'였습는데, 이 역시 콥트어에서도 두 단어 모두 '사'라는 같은 발음이었던 것에서 떠올린 것이지요. '독수리'도 '어머니'와 발음이 같았고요.
참고로, 이렇게 동음이의어가 쓰기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건 오래된 사실이라네요. 아담과 이브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과'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원래 기독교 성경에서는 선악과가 어떤 종류의 과일인지 특정하지 않았는데, 히에로니무스가 라틴어 성경을 만들면서 라틴어 단어 말룸 (malum)이 '사과'와 '악'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데 착안해 집어넣었다고 하니까요.
이렇게 성체자의 비밀을 푼 샹폴리옹이 이집트를 방문하여, 그 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여왕 - 핫셉수트 -'에 대한 글을 읽어내는 것으로 성체자 해독에 대한 글은 완료됩니다.

정리하기도 힘들 정도로 어렵고 복잡한 내용이지만, 쉽게 설명하고 있으며 관련된 자료도 굉장히 상세합니다. 도판은 물론, 여러 등장인물들의 일대기 소개까지 이루어지고 있는 덕분입니다. 영국의 부자 윌리엄 뱅크스의 일대기가 대표적입니다. 직접 이집트로부터 오벨리스크를 운반해 자기 저택에 세울 정도로 부자였는데, 여기서 '클레오파트라'라는 카르투슈가 발견되어서 성체자 해독에 기여했지요. 동성애자로 밝혀져 몰락하고 말았다고 하고요.
관련된 역사 소개도 빠지지 않습니다. 시작이 된 나폴레옹 프랑스 원정대의 로제타석 발굴이 대표적입니다. 발굴 뿐 아니라 나폴레옹 이집트 원정의 시작과 끝을 모두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집트 역사 서술도 많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집트가 그렇게 대단한 고대 문명 국가가 아니었다는 서술은 흥미롭습니다.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 기술을 바탕으로 건설된 문화로이며, 근본은 인간의 육체적 노력에 두고 있었다고요. 의학은 초보 수준이었고, 과학적 법칙이라는 관념이 없었으며 세계는 주술과 마법에 의해 지배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글쓰기의 탄생에 대한 언급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왜 글쓰기는 그렇게 오래 걸렸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동굴 벽화는 2만년 전의 것인데, 가장 이른 문자도 5천년 밖에 되지 않았지요. 저자는 도시가 발달되어 교역이 복잡해 진 탓에 기록이 생겨나게 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글쓰기의 초기 단계로 밝혀진게 이라크 고대도시에서 기원전 8000년 ~ 3500년 무렵 사용되었던 점토덩이들이었으며, 이를 통해 점토 덩어리가 점토에 누른 자국, 점토에 그린 그림, 점토판 위에 쓴 부호로 추상성이 증가하며 결국 쓰기로 이어지는 과정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됩니다.
라파누이섬에서만 발견되었던 '롱고롱고' 문자, 선형문자 B의 해독, 마야 문자 등 다른 문자들 소개도 빠지지 않고요.

하지만 조금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카르투슈 안의 파라오 이름을 읽어내는 과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는데, 그 뒤 단어 분석은 좀 대충 넘어가는 부분이 그러했어요. The, Of가 무엇인지 알아냈다 하더라도 그 사이에 들어오는 단어를 채워 넣기 위한 자료는 너무나 부족했습니다. 로제타석의 성체자는 몇 줄 남아있지 않았으니까요. 성체자로 로제타석의 그리스어 부분 단어가 무엇인지 다 알아낸다 한 들, 어휘로 따지면 턱업이 부족했을겁니다. 이를 전체 성체자로 어떻게 확대해 나갔을까요?
또 콥트어 전문가였기 때문에 그리기 어려운 단어를 쉬운 단어로 교체했다는걸 알아냈다는 것도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교체한건지, 원래 그 의미로 썼는지를 어떻게 알아냈는지에 대해서 알려줬어야 했는데 말이지요.

그래도 그동안 궁금했었던 이집트 상형문자 - 성체자 - 의 비밀에 대해 어느정도 알 수 있었던 좋은 독서였습니다. 이전에 읽었던 입문용 서적과는 수준 자체가 다르네요. 다소 아쉬운 점은 있었지만 사소합니다. 별점은 4.5점입니다. 이집트 문자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셨던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그나저나, 상형문자가 한자와 비슷한 원리였다면, 동양인 학자가 분석에 나섰다면 어땠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