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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9

폭포의 밤 - 미치오 슈스케 / 김은모 : 별점 2.5점

폭포의 밤 - 6점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청미래

<<아래 리뷰에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치오 슈스케의 연작 단편집. "절벽의 밤"에 이은, '안 된다'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수록작들은 독립적인 단편이지만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게 가장 큰 특징입니다. 제 1장 "묘진 폭포에서 소원을 빌어서는 안 된다"에서 벌어진 여고생 히리카 실종 사건은 마지막 제 4장 "소원 비는 목소리를 연결해서는 안 된다"와 곧바로 이어집니다. 4장에서 히리카의 사체가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제 3장 "그 영상을 조사해서는 안 된다"의 진상이 밝혀집니다. 3장에서 지기는 자신을 학대하던 아들 다카시를 살해한 뒤, 사체를 요메가 숲에 묻은 것처럼 경찰을 속인 것으로 설명되었습니다. 사실은 자기 집 바닥에 사체를 숨겼지만요. 하지만 집 바닥에 사체를 묻으려다가 오히려 히리카의 사체를 발견했던겁니다. 다카시가 히리카를 살해하고 은닉했던 것이지요. 지기는 히리카의 사체를 요메가 숲에 암매장하였습니다. 다카시 사체를 요메가 숲에 묻은 척 했던 건 경찰을 속이려는게 아니라, 히리카의 사체를 찾게 만들어서 히리카 부모에게 진상을 알려주려던 마음이었고요. 

다만 2장 "머리 없는 남자를 구해서는 안 된다"는 독립적인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1장에서 살아난 것처럼 보였던 모모카가 살해당했다는게 밝혀지기는 하지만, 그 목적보다는 2장의 주인공인 초등학생 신을 4장에서 활약시켜 경찰에게 히리카 사건 진상을 알게 하도록 만든 목적이 더 큽니다. 전개에 필수적인 징검다리 역할인 셈이지요.
 
이렇게 사건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미고오리 시와 묘진 폭포, 가쿠레이 산과 등산로, 무쿠로 다리, 고코 강, 요메가 숲 등 시의 주요 장소들을 무대로 사건이 일어나고, 묘진 폭포에 소원을 비는 행위가 진상으로 이어지며, 서로 다른 사건들이지만 수사를 맡은건 모두 구마지마 형사라는 식으로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절벽의 밤"과 같은 시리즈답게 '사진'을 이용하여 진상을 드러내는 장치도 삽입되어 있으며, 추리적으로도 괜찮았습니다. 1장에서는 시점과 상황을 속이는 서술 트릭이 사용되었으며, 3장은 일부러 시간 제한이 있는 블랙박스 메모리를 남기는 아이디어가 괜찮았어요. 4장은 다카시의 폭주와 히리카 실종 시점의 일치, 히리카 핸드폰이 잠깐 켜졌던 이유 등에 대한 진상이 설득력있게 밝혀지고요.

각 단편별로 조금 더 내용과 의견을 덧붙이자면,
1장은 제일 처집니다. 모모카가 언니 히리카의 행방을 우연히 발견한 부계정 SNS를 통해 추리해내는건 볼만 합니다만 그 외 전개는 다소 식상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산장 관리인 오쓰키가 냉동고 안에 무언가를 숨기고 있고, 오쓰키 어머니는 실종된게 아니라 아버지가 살해했다는건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서 흥미를 반감시킵니다. 그렇다면 이를 눈치챈 모모카에게 위험이 닥치는 서스펜스라도 잘 표현했어야 하는데 이 역시 좋지 못합니다. 오쓰키 캐릭터를 잘 표현하지 못한 탓입니다. 아버지가 죽여 은닉한 모친의 사체를 모모카가 발견했다고 그녀를 바로 살해할만한 인물로 보이지는 않았어요. 그 외 단서들 - 오쓰키가 만든 눈인형, 모모카가 입고있던 옷 사진 - 도 평면적입니다. 무엇보다도 사진이 없으면 진상을 완전히 알아내기 어렵다는 단점이 큽니다. "절벽의 밤"에서도 마음에 들지 않았었던, 장난같이 여겨지는 장치라 영 마음에 들지 않네요. 오쓰키를 뻔하더라도 전형적인 단순한 '산장 살인마'로 그리고, 사진의 역할은 배제하는게 서스펜스 스릴러로는 더 나은 선택이었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2장은 신의 삼촌이 은둔형 외톨이가 된게 어린 시절 물놀이 사고에서 아버지를 죽게 만든 트라우마라는게 드러나는 일상계에 가까운 소품입니다. 다소 무서운 진상 - 삼촌이 자살하고 말았다는 - 을 사진으로 보여주어서 단점이라 할 수 있는데, 앞서 말했듯 주요 사건과는 관계가 없어서 다행입니다. 사진을 빼고 이야기를 마무리했더라면 더 완성도 높은 단편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3장은 지기 씨가 아들을 살해했다며 자수했지만 사체가 발견되지 않아 풀려나고, 이는 지기 씨 부부가 의도했던(?) 완전 범죄였다는 범죄물입니다. 경찰과 범죄자의 두뇌 배틀물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지기 씨가 '딱 한 가지 했다는 거짓말'을 형사 구마지마가 알아채고, 이를 통해 다카시의 사체를 찾아내려 하지만 이도 지기 씨의 계획이었다는 전개이니까요. 이야기는 흥미롭고 결말도 깔끔합니다. 다른 작품과의 연결없이 단독으로 읽어도 기승전결이 완벽하다는 점도 마음에 들고요. 다만 딱 한 가지, 정황 증거와 자백까지 있는데 시체가 없다고 용의자를 풀어주는건 가능해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감점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4장은 1장의 히리카 사건, 3장의 다카시 사건이 한데 이어져 대단원에 이르는 내용입니다.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앞에서 설명드린 그대로입니다. 특별한 추리없이 지기 씨의 아내 지에코의 회상으로만 진상이 밝혀져서, 흥미롭지만 추리적인 맛과 정교함이 부족한게 아쉬웠습니다. 신이 지에코를 구한 뒤, 히리카 사건의 핵심 열쇠가 되는 핸드폰을 가져다 주는 결말은 앞서의 복선 - 빌린 물건은 제대로 된 상태로 돌려줘야 한다 - 로 설명되는 등 정교한 느낌을 주기 위해 노력한건 좋아요. 하지만 신과 지에코가 엮이는 과정은 작위적이고, 목소리를 잃은 신이 할머니를 구하기 위해 다시 말문이 트였다는건 유치하기까지 합니다. 별로 고민한 느낌을 주지 못해요. 이런 무리수를 두는 것 보다는 구마지마 형사의 추리와 활약으로 해결하는게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등장인물들이 폭포에 빈 소원은 모두 이루어졌지만 그 대신 모모카, 히리카 자매가 모두 죽었다는 결말도 안타까왔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이렇게 해서 전체적인 평균 별점은 2.5점입니다. 평이하지만 "절벽의 밤"보다는 좋았어요. "절벽의 밤"은 '사진'을 사용한 실험이 지나쳤는데, 여기서는 이야기 자체에 중심을 두고 있는 덕분입니다. 시리즈 1작은 평균 이하, 2작은 평균 수준은 돼니 3작은 기대해보아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2025/11/16

고독한 용의자 - 찬호께이 / 허유영 : 별점 2.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년간 은둔형 외톨이로 살아오다가 자살한 셰바이천의 방 옷장 안에서 수십 개의 표본병에 토막난 채 담긴 두 구의 남녀 사체가 발견되었다. 쉬유이 경위는 수사를 진행하며 바이천의 이웃이자 친구 칸즈위안을 의심했지만, 칸즈위안은 바이천의 외삼촌 셰자오후가 진범이라 주장하며 경찰에 협력을 제안했다. 유명 추리소설가인 칸즈위안의 추리대로 셰자오후가 범인일 수 있다는 증거가 하나 둘 씩 드러나지만, 경찰 고위 층은 진범은 바이천이라며 사건을 마무리하라고 지시했다....

현대 중국을 대표하는 추리작가 찬호께이의 신작 장편 범죄 스릴러입니다. 밀리의 서재를 통해 감상했습니다.

"기억나지 않음, 형사"의 쉬유이가 주인공이지만, 전작과의 연결고리는 거의 없는 독립적인 작품으로 이번에도 작가 특유의 촘촘한 트릭과 복선, 마지막의 반전까지 추리소설 팬이라면 즐길거리가 많습니다. 특히 ‘은둔자 살인마’ 셰바이천이 실제 범인이 아니라는 가정 아래 수수께끼가 하나둘씩 풀려나가는 전개가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는 덕이 큽니다.

셰바이천은 은둔형 외톨이로 방 안에서만 생활하던 인물인데, 그의 방 옷장에서 다수의 표본병이 발견되면서 사건이 시작됩니다. 경찰은 당연히 셰바이천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지만, 칸즈위안이 셰자오후가 범인이라는 가능성을 제기하며 수사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이때부터 하나씩 드러나는 단서들과 그 단서들을 조합해 수수께끼를 풀고 진실을 밝혀나가는 과정이 이 작품의 묘미이지요.

첫 번째 수수께끼는 셰바이천이 방 안에만 머무르는 은둔자인데, 어떻게 셰자오후가 수십 개의 표본병을 셰바이천 몰래 옷장 안에 넣을 수 있었냐는 겁니다. 수사 결과, 그 날 어머니 메이펑은 외출했습니다. 식사권을 선물받고 친구와 저녁을 먹으러 나갔었지요. 그런데 이 식사권을 선물한 사람이 셰자오후였습니다. 그는 누나 메이펑이 나간 틈에 셰바이천의 저녁 식사에 수면제를 타 재운 뒤, 몰래 표본병을 옷장 안으로 옮겼습니다. 이후 평소처럼 그릇을 씻지 않고 그대로 방 문 앞에 내 놓았던 점이 증거입니다.
두 번째 수수께끼는, 셰바이천이 오랜 시간 동안 옷장 속의 사체를 왜 몰랐느냐는 것인데, 셰바이천은 은둔형 외톨이라 옷을 갈아입을 일이 거의 없었던 탓에 옷장을 열 일이 없었고요.

그리고 밝혀지는 셰자오후의 범행 동기도 놀랍습니다. 그는 과거부터 어린 궈쯔닝을 노려서, 먼저 궈타오안을 살해한 뒤 그의 아내 쑨수칭의 동거남이자 기둥서방이 됩니다. 이후 궈쯔닝을 장기간 성폭행했는데, 궈쯔닝이 집을 가출한 뒤 만나지 못하다가 우연히 다시 발견하여 살해했습니다. 증거는 궈쯔닝 사체에 남겨졌던 담배로 지진 흔적들입니다. 셰자오후가 운행하는 택시에도 혈흔과 머리카락 등의 증거가 남았고요.
이후 셰자오후는 궈타오안과 궈쯔닝 사체를 버리면 범행이 들통날까봐 두려워 작은 병에 담아 토막 보관했고, 살던 집에서 쫓겨나게 되자 새 거처인 레지던스로는 사체를 옮길 수 없어서 셰바이천의 방에 숨겼던게 진상입니다. 

이 과정에서 셰자오후가 범인이라는걸 밝혀내는 칸즈위안의 관찰력과 추리력도 볼거리입니다. 쑨수칭의 기둥서방일 때 찍혔던 사진 속 손목시계가 무엇인지 알아채고, 당시 상황을 추리해내는게 대표적입니다. 회사에서 범죄 혐의로 해고당하고 빚더미에 올랐던 셰자오후가 명품 시계를 차고 있었다는 건, 쑨수칭의 수입이 좋았다는걸 의미하며 쑨수칭이 셰자오후를 경제적으로 부양하고 있었다는 추리로 이어지며, 이는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중요한 실마리가 됩니다.

이 정도만으로도 훌륭한 스릴러지만, 작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셰자오후를 체포한 이후 충격적인, 진짜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반전이 펼쳐지거든요. 바로 옷장에서 발견된 사체가 셰바이천이었다!는 반전입니다. 바이천은 이미 20년 전 뇌종양으로 사망했고, 친구 칸즈위안이 사체를 숨기고 어머니 메이펑을 위해 살아 있는 것처럼 꾸며왔던 겁니다. 은둔형 외톨이였던 덕분에 외부와 접촉이 거의 없었고, 이를 이용해 오랫동안 존재를 숨길 수 있었지요.
그렇다면 자살한 남성은? 그는 칸즈위안의 동거인이자 또 다른 은둔자인 ‘더듬이’였습니다. 온라인 게임을 통해 궈쯔닝과 친구가 된 그는, 궈쯔닝이 자살한 뒤 그녀의 과거를 알게 되어 복수를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셰자오후를 덫에 빠뜨리기 위한 계획을 짠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셰자오후는 살인은 저질렀지만, 토막 살인의 진범은 아니었던 겁니다. 모든 것은 더듬이와 칸즈위안이 함께 짠 복수극이었습니다.
이 반전을 셰바이천과 더듬이 시점의 교묘한 전개로 독자를 속이고 있어서 일종의 서술 트릭물로 볼 수도 있고요.

이렇게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데, 아쉬움도 있습니다. 이야기의 분량이 지나치게 긴 편이고, 경찰의 수사가 비현실적으로 무능하게 묘사되는 탓입니다. 칸즈위안을 의심해 미행하는 장면이 대표적이에요. 누가 보아도 셰바이천이 범인임이 명백한데, 구태여 다른 사람에게 혐의를 둘 필요는 없습니다. 이는 경찰의 유치한 복수심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마지막 반전도 드라마틱한 힘에 비하면 이를 뒷받침하는 논리적 설계는 조금 약합니다. 어머니가 더듬이의 시신을 아들이라고 착각한다거나, 같은 아파트에 은둔자가 둘이나 살았는데 누구도 더듬이의 존재를 몰랐다는 설정 때문입니다. 20년 전 죽은 셰바이천의 사체가 보관 상태가 좋았음에도, 그 정체를 끝내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는 점도 설득력이 떨어지고요. 20년 동안 은둔자였다면, 20년 전의 사진이나 기록을 찾아보는게 당연합니다. 때문에 사체의 정체가 경찰 수사에서 드러나지 못한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인간 관계 부분의 작위적인 설정도 거슬립니다. 은둔형 외톨이 더듬이는 궈쯔닝과 온라인 게임 친구가 되었다가 그녀를 자기 방에서 돌봐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웃집이 궈쯔닝을 어린 시절 성폭행했던 셰자오후의 외조카 셰바이천의 집이었고, 조카집을 방문한 셰바이천을 목격한 궈쯔닝이 자신의 거처가 드러났다 여겨 자살했습니다. 아무리 홍콩이 좁아도 그렇지, 주요 인물들이 이렇게까지 밀접하게 엮인다는건 억지죠.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찬호께이 특유의 기획력과 구성력은 좋고 추리와 반전 모두 괜찮은 편입니다. 단점도 명확해서 감점도 약간 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평균 이상의 재미는 보장해 줍니다.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덧붙이자면, 표지 디자인은 정말 최악이네요. 최근 출간작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에요...

2026/03/01

그리고 문이 닫혔다(そして扉が閉ざされた) - 오카지마 후타리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키코의 죽음 이후, 사키코의 어머니 미타 마사요가 사건 당시 함께 있었던 일행 4명(유이치·아유미·타다시·치즈루)을 집으로 불러 수면제가 든 주스를 먹인 뒤 지하 셸터에 감금했다. 셸터 안 화장실에는 “너희가 죽였다”라는 문구와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이들은 사키코의 죽음이 “정말 사고였는지”를 두고 서로를 의심하며 탈출하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사고’로 보였던 사건의 퍼즐이 맞춰지면서, 사키코가 셸터 안에서 아이스픽에 찔려 죽었고, 그 뒤 누군가가 사고로 위장했다는 진상이 드러난다...

"클라인의 항아리"로 유명한 일본의 본격 추리 작가 오카지마 후타리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약 20년 동안의 일본 미스터리 베스트 100에 포함될 정도로요. 원서로 읽었습니다. 

특정 사건의 유력 용의자 네 명을 폐쇄 공간인 핵 셸터에 가둔 뒤, 그들끼리 생존 게임을 이어 가며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게 만든다는 내용으로, 1987년이라는 발표 시점을 감안한다면 이런 류의(예를 들어 이런 작품) 원조인 듯 합니다.

추리적으로도 본격 추리 작가의 작품답게 논리적으로, 발견되는 단서와 증언들에 의해 단계적으로 치밀하게 전개됩니다. 이 과정을 밟아 나가기 위한 단서의 제시도 공정하고요. 작품 속 추리 과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처음에는 사키코의 죽음을 모두 사고사라고 믿습니다.
  2. 사진 속 자동차 운전석 시트 위치를 근거로, 사키코가 혼자 운전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운전석 시트가 ‘추락 충격으로 움직였다고 보기 어려운 방향’이라서, 사키코보다 체격이 큰 누군가가 운전했을 가능성이 떠오르지요.
  3. 셸터 화장실 바닥에서 수건에 싸인 아이스픽이 발견됩니다. “왜 셸터 화장실 바닥에 있었는가?”라는 의문과 함께 사키코가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논의됩니다. 이후 네 사람은 서로의 알리바이를 교차하며 검증합니다.
  4. 곧이어 셸터에서 사키코의 귀걸이가 발견되면서, 셸터 자체가 살인 현장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5. 사키코의 알파로메오가 나갈 당시 치즈루와 아유미는 별장 2층에 있었고, 차가 나가기 30분 전 유이치는 디지에서 별장으로 전화를 걸었기 때문에 알리바이가 성립합니다. 따라서 알파로메오를 운전할 수 있는 인물은 타다시뿐이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타다시는 절벽에서 돌아올 때 탈 오토바이도 알파로메오에 싣고 갔던 겁니다.
  6. 그러나 이후 치즈루와 아유미가 절벽에서 알파로메오를 발견했을 때, 차 안에 사키코의 사체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차가 절벽에서 떨어진 시점은 그들이 차를 본 이후의 새벽이며, 당시 세 사람은 함께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차를 떨어뜨릴 수 있는 인물은 유이치뿐이라는 결론이 도출됩니다.
  7. 그러나 타다시가 사키코의 사체만 먼저 절벽 아래로 던진 뒤, 얼음을 쐐기처럼 가공해 장치하여 차가 새벽에 자동으로 떨어지도록 만든 것으로 밝혀집니다. 아이스박스 뚜껑이 열려 얼음이 물로 변해 있던 점 등이 그 증거로 제시됩니다.

타다시의 사체 은닉 이후 밝혀지는 진상 또한 나름 설득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최초의 언쟁에서 유이치가 밀친 탓에 실수로 사키코가 죽었고, 유이치를 사랑하는 아유미가 이를 숨기려 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앞서 묘사된 유이치와 아유미의 통화를 통해 미리 암시되기에, 치밀하며 공정하다는 느낌도 전해줍니다.

아울러 네 명만 등장하는 폐쇄 공간 미스터리임에도 불구하고, 셸터의 묘사(아래의 ChatGPT 이미지 참고하세요)와 그곳을 탈출하려는 여러 시도들도 긴박감 넘칩니다. 소규모 무대극으로 각색해도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아직 영상화가 되지 않은게 의아할 정도입니다.

다만 단점도 분명합니다.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고 굳게 믿던 화자 유이치의 실수로 사키코가 죽었다는 진상은 다소 허무하게 느껴집니다. 또한 타다시의 사체 은닉 방식 역시 허술합니다. 사체를 단순히 바다에 던졌다면 언제든 발견될 수 있고, 그 경우 사고사가 아니라는 점이 곧바로 드러났을 것입니다. 사체가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아 사인이 밝혀지지 않은 것은 순전히 운이었습니다. 왜 사체에 돌을 묶는 등의 추가 조치를 하지 않았는지도 의문입니다.

그리고 사키코의 모친이 사고사를 의심해 당시 별장에 있던 네 명을 셸터에 가둔 이유, 그리고 유이치와 그리 오래 함께 하지 않았던(별장에서의 3일 정도 뿐) 아유미가 유이치를 위해서 사키코의 죽음을 은폐할 정도로 깊이 빠져 있었다는건 설명이 부족합니다.

추리적으로도 구멍이 있습니다. 유이치가 화자인 상황에서는, 유이치가 별장을 떠난 뒤 남아 있던 세 명이 사키코를 살해하고 차와 함께 절벽으로 떨어뜨렸다는게 가장 논리적인 추리이기 때문입니다. 사키코가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해 아이스픽을 챙겼다면, 그 대상은 연인을 빼앗아 간 아유미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유미가 반격해 사키코가 사망했고, 아유미의 약혼자 타다시가 사체 은닉을 도왔다고 보는 편이 오히려 자연스럽습니다. 애초에 타다시는 동기도 가장 부족하고,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인물로 그려지지 않으니까요. 그런데도 이런 가능성이 아예 제시되지 않는건 이상해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이런 폐쇄 공간 미스터리의 원조격이라는 의미 외 가치는 높지 않습니다. 구태여 번역까지 해 가며 읽을 필요는 없었습니다. 추천드릴 만한 작품은 아니네요.

2020/10/16

열게 되어 영광입니다 - 미나가와 히로코 / 김선영 : 별점 3점

열게 되어 영광입니다 - 6점
미나가와 히로코 지음, 김선영 옮김/문학동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8세기 런던, 해부학 교실을 운영하는 외과의사 대니얼 버턴의 연구실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시체 두 구가 발견되었다. 사지가 잘린 소년과 얼굴이 짓뭉개진 중년 남자였다. 맹인 치안판사 존 필딩은 부하들과 함께 사건 해결에 나섰다. 대니얼의 제자 에드워드와 나이절은 사체로 발견된 소년과 친분이 있었으며, 그를 위해 사체를 훼손했다고 자백했다. 그리고 소년과 중년 남자 해링턴을 죽인 범인으로 대니얼 버턴의 형인 로버트 버턴이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르는데...

"죽음의 샘"으로 잘 알려진 여류 작가 미나가와 히로코의 대장편입니다. 제 12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수상작이기도 합니다. "허구추리"와 공동 수상했다지요. 사실 이 상의 권위에 대해 개인적으로 의심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최소한 검증된 '본격 추리물' 임에는 분명할 거라는 기대를 품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18세기 영국 해부학 교실이 무대인 역사 추리 소설로 해부학 교실이라는 소재를 이야기 전개와 트릭에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제목부터 해부학 교실을 위해 몸을 열게 해 준 시체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고요.

무대가 이러하니 당연히 시체가 많이 등장하지만, 실제로 일어난 사건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해부학 교실에서 기묘한 사체 두 구가 발견된 사건입니다. 손과 발이 토막나 사라져 있던 첫 번째 사체는 가난한 소년 네이선, 얼굴이 뭉개져 있던 두 번째 사체는 퍼블릭 저널 사장이자 대중을 선동하는 선동가 해링턴으로 밝혀집니다. 범인이 누구인지 찾아내려는 치안판사 존 필딩에게 대니얼 버턴의 제자 에드워드와 나이절이 사체를 훼손했다고 고백합니다. 네이선이 자살한걸 발견한 뒤, 자살자는 구원을 받지 못할거라 여겨 상흔이 있던 손을 떼어냈다는 거지요. 손만 떼어내면 이상하니 발까지 떼어 은닉했던 겁니다.
해링턴 사체는 해부학 교실 제자들도 몰랐다고 하는데, 존 필딩은 백년도 더 전에 사용했던 '루퍼트 왕자의 난로' 구조를 이용하여 은닉한 상황을 보고 난로 구조를 알고 있는 사람이 범인이라고 추리하죠. 그래서 해부학 교실 관계자 외에 유일하게 난로 구조를 알고 있을 저택 주인 로버트 버턴이 용의자로 떠오릅니다. 

그리고 주식 중개인이자 사기꾼 가이 에번스가 치안판사 부하들 눈 앞 밀실에서 살해되는 두 번째 사건이 일어납니다. 에번스가 있는 방으로 로버트 버턴이 들어간게 목격되었지만, 그는 사라지고 에번스의 시체만 발견되었습니다. 로버트는 침대에 걸려있더 천을 이용하여 옆 방으로 탈출한 걸로 드러나고요. 그런데 에드워드가 이 사건은 자신이 저질렀다고 자백합니다. 네이선을 이용하고 괴롭힌 에번스에 대한 복수라면서요. 그러나 만난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네이선을 위해 에드워드가 살인까지 저지른다? 여러모로 석연치 않지요. 여러모로 로버트 버턴이 범인일 수 밖에 없습니다. 로버트는 에번스에게 사기를 당해 거액을 빚지고 있었고, 에번스가 계획한 사기를 돕기 위해 해링턴까지 살해했다는걸로 밝혀지니까요. 토마스 해링턴은 네이선이 가지고 있는 고문서 작성 능력을 알고 있어서 입막음을 위해 죽인겁니다.

뒤 이어 로버트 버턴이 에번스 자택에서 불에 타 죽은 채로 발견된 세 번째 사건으로 연쇄 살인 사건은 막을 내립니다. 에드워드가 자백한건, 궁지에 몰린 로버트에게 해부학 교실과 교실이 보유한 여러가지 표본, 즉 대니얼 버턴의 가진 재산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는 각서를 쓰게 만드려는 계획으로 밝혀집니다. 즉, 모든 사건은 로버트 버턴이 저질렀고 결국 채무 관련 문서를 불태우려다가 죽은 걸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진범은 에드워드와 나이절이었습니다. 대니얼 버턴이 발견한 내용, 표본 등을 자기 것으로 하고 있던 로버트 버턴의 행동에 불만을 품고 있다가, 가이 에번스에게서 네이선이 탈출해 찾아온걸 계기로 이 모든걸 꾸민겁니다.
둘은 우선 변장하여 가이 에번스를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그 곳으로 로버트 버턴을 불러 궁지에 몰리게 한 뒤, 탈출시켜 각서를 쓰게 만들고 살해합니다. 대담하게 치안판사 수사 중에 범행을 저지른 이유는, 당시 런던에서는 누군가가 고소하지 않으면 재판이 열리지 않았다는걸 이용했던 것입니다. 에드워드와 나이절은 이 두 사건, 즉 가이 에번스가 로버트 버턴의 살해에 대한 재판이 열리지 않을걸로 판단했거든요. 예상대로 에반스에게는 상속인이 없었고, 로버트는 저지른 범죄들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날 수 있는 탓에 미망인은 소송을 포기하지요. 

그러나 치안판사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도 두 사건에 대한 재판은 포기하지만, 네이선 어머니의 고발을 통해 네이선 사건 실행범으로 둘을 재판에 회부하는 데에는 성공하니까요. 네이선이 남긴 유서와 옷의 잉크 흔적이 일치하지 않는걸 단서로 둘이 궁극적으로 로버트를 살해하려고 네이선을 먼저 죽였다고 추리한 덕분입니다. 

그리고 재판정에서 네이선이 살아있다는게 밝혀지며 이야기는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달리 구입한 사체를 네이선으로 꾸몄던게 진상입니다.

이렇게 사건도 많고, 토막 시체와 밀실 살인 등 흥미를 자극하는 요소가 많으며, 진짜 네이선이 살아있있다는게 밝혀지는 마지막 반전까지 괜찮아서 추리적으로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본격 추리물답게 탐정 역인 치안판사 존 필딩과 독자에게 주어진 단서도 거의 공정합니다. 독자는 존 필딩과 판사와 같은 수중에서 추리를 전개할 수 있어요. 이 정도면 본격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도 납득이 가네요. 

아울러 디테일하게 그려낸 18세기 런던에 대한 묘사가 아주 빼어납니다. 여기에 더해 실존 인물이 등장하기까지 해서 설득력도 배가됩니다. 당시 재판 방식을 작품 속에 잘 녹여낸 부분도 인상적이고요. 일본 작가가 18세기 영국을 무대로 소설을 쓰면 당연히 엉망일거라고 생각한 제 선입견을 보기 좋게 깨 줍니다. 작가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죽음의 샘"보다 훨씬 낫더군요.

그러나 몇 가지 문제점도 눈에 뜨입니다. 범행 동기가 그 중 첫번째에요. 에드워드와 나이절은 네이선과 사귄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그를 위해 사람을 죽어가며 복수를 한다는건 앞서 말씀드렸듯 석연치 않지요.
게다가 로버트 버턴에 대해 복수심과 살의를 품고 범행을 저지른건 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로버트가 대니얼의 성과와 재산을 모두 자기 것으로 한다 한 들, 그건 두 형제의 문제이지 제자들의 문제는 아닙니다. 소중한 해부학 교실을 지키기 위해서? 그런 사명감이나 연대 의식이 작품 속에서 잘 드러나지 있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로버트가 대니얼의 재산을 포기하게 만들려면, 구태여 에번스를 죽일 필요도 없었어요. 일레인 양 사건과 토머스 해링턴 사건으로 협박만 하면 충분했을 테니까요. 

가이 에번스와 네이선이 얽힌 과거사 이야기는 함께 전개되어 독자가 그 인물들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해 주는 반면, 로버트에게 대한 묘사는 전무하다시피 한 것도 아쉬운 점입니다. 그가 에번스가 엮여 거액의 손해를 보고 해링턴은 죽이는 과정, 그리고 에번스 사건의 범인으로 몰린 뒤 에드워드 방 옷장 안에서 에드워드가 각서의 댓가로 범행을 고백하는걸 엿듣는 장면 정도는 로버트 시점에서 묘사해 주었어도 좋았을텐데 말이지요.
일레인 양을 임신시킨 뒤 살해한 사건도 곁가지로 나오기 보다는, 로버트를 악인으로 확실히 부각시킬 수 있도록 그 진상을 명확하게 설명해 주는게 훨씬 좋았을테고요. 

에드워드 본인의 복수심과 때문에 재판이 엉망이라는걸 대중 앞에 선보이려고 일부러 재판에 회부된다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이는 정말이지 작위적인, 그야말로 반전을 위한 전개일 뿐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에드워드와 나이절이 변장해서 밤문화(?)를 즐기는 인물이라는 설정은 설명도 부족하고, 등장하는 이유도 잘 모르겠더군요. 여장 후에는 그 바닥에서 요정 여왕(?) 이라고 불리우는 나이절이 자기 매력을 이용하여 치안판사의 부하인 데니스 애벗마저 유혹해 정보를 빼돌린다는 등 억지스럽기만 할 뿐이었어요. 안 나와도 됐을 듯 합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할 뿐, 재미 측면에서 나무랄데 없는 작품입니다.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한 번에 읽게 만드는 흡입력은 충분하니까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추리 애호가 분들 중에서도 역사 추리물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2024/09/14

가연물 - 요네자와 호노부 / 김선영 : 별점 2.5점

가연물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리드비

요네자와 호노부의 신작. 가쓰라 경부를 주인공으로 한 5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국내 최고의 추리 소설 동호회인 하우 미스터리 이벤트에 당첨되어 읽어 보게 되었습니다이 자리를 빌어 관계자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작가 최초의 경찰 수사 본격 추리물인데, 손대는 거의 대부분의 장르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를 뽑아냈던 요네자와 호노부 작품치고는 평이한 수준이었습니다. 경부 캐릭터도 진부한 스테레오 타입이고요. 
하지만 "목숨빚"만큼은 빼어납니다. 이 작품 하나만으로 읽을 가치는 충분합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낭떠러지 밑"
눈밭에서 조난당한 두 사람 중 한 명이 목을 무언가에 찔려 살해당했다. 또 다른 한 명은 심한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끝이 날카로운 말뚝 같은 걸로 목을 찔러 살해했다는 감식 결과를 보았을 때에는 흉기가 고드름일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고의가 아니었다면, 낭떠러지에서 고드름이 떨어져 운 나쁜 피해자 목에 꽂힌 사고일거라 여겼지요. 하지만 다행히 그렇게 뻔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피해자 목에 혈액이 응고되는 반응이 있었다는 감식 결과를 토대로, 이는 다른 사람의 혈액이 들어갔을 때 일어나는 반응이니 범인 미즈노의 혈액이 포함된(?) 흉기를 사용했을 것이다. 즉, 흉기는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때에 부상당해 튀어나온 미즈노의 팔 뼈였다는 추리로 이어집니다. 흉기는 신선한 편이고, 이에 이르는 추리와 단서 제공 모두 공정하고 합리적입니다.

그러나 '경찰 수사물'에 잘 어울리는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흉기가 뭐든 범인은 미즈노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기소에는 무리가 없어 보였기 - '고드름'이 흉기였다고 주장해도 될테지요 - 때문입니다. 수사가 아니라 '추리'에 방점을 둔 느낌입니다. 거장 반열에 오른 작가라도 처음 시도하는 경찰 시도물이라서 다소 혼선이 있었던게 아닌가 싶네요.
흉기 트릭도 신선하지만 현실적이라고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정말 엄청난 정신력이 아니면 실현 불가능했을 방법이니까요. 아울러 수사 기계같은 냉정한 가쓰라 경부의 묘사는 그리 매력적이지 못합니다. 다른 작품들 속 냉정한 수사 반장들 - 대표적으로는 "제 3의 시효" - 과 차별화되는 점이 없는 탓입니다. 이 작품을 위해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 시간이 부족했던 걸까요?

여러모로 평범했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졸음"
유력한 강도 치상 사건 용의자 다구마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이송되었다. 경찰은 다구마의 신병을 확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교차로에서 발생한 사고 원인이 다구마의 신호위반일 경우, 체포 영장을 청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마침 새벽 3시 일어난 다구마의 교통사고를 무려 네 명이나 목격했고, 그들은 모두 다구마가 신호를 위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쓰라 경부는 다구마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 즉 신호 위반을 하지 않았다고 확신하는데...

처음에는 다구마가 교통사고를 빙자하여, 상대방 미즈우라와 신분을 바꿔 도망쳤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런 황당하면서도 뻔한 이야기는 아니더군요.
'거짓 증언 부수기' 설정의 작품으로, 피해자나 가해자와 전혀 관계없는 목격자들이 우연히 똑같은 거짓 증언을 하게 된 과정의 설득력이 높다는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불성실한 근무 태도로 언제 해고될지 모를 교통 정리원과 편의점 직원이 하필 사고 시점에 졸고 있었기 때문에, 의기투합해서 졸았다는걸 숨기려고 거짓 증언했다는건 말이 되니까요.

그런데 전개 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는데, 바로 가쓰라 경부의 확신 - 네 명 모두 거짓 증언을 한 것이다! - 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점입니다. 누가 봐도 다구마는 바로 체포해도 되는 상황입니다. 아니, 경찰 수사를 위해서는 증언이 없었더라도 체포 영장을 청구하는게 당연합니다. 그런데 새벽에 일어난 사건의 목격 증인이 네 명이나 되고, 이들의 증언이 일치해서 불신을 품었다? 말도 안됩니다.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이지요.
또 응급실 의사와 게임 클랜의 리더인 대학생도 졸아서 위증에 동참했다는건 과했습니다. 이 둘은 빼고 교통 정리원 가마타와 편의점 직원 고가가 입을 맞추었다는 정도로 끝내는게 깔끔했을 거예요. 의사와 대학생은 사고를 보지 못했다고 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을 뿐더러, 거짓 증언에 똑같이 동참할만한 접점도 마땅치 않으니까요.

이런 단점으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목숨 빚"
유명 관광지에서 절단된 사람의 팔이 발견되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나머지 사체 부위들도 발견했다. 피해자의 신원은 노스에 하루요시로 밝혀졌다. 곧 피해자가 오래 전에 생명을 구해 주었다는 미아타무라가 범인이라는 증거가 발견되었고, 경찰은 미야타무라를 체포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미아타무라의 흉기에 대한 증언 등 여러 가지 부분에서 가쓰라 경부는 납득하지 못하는데...

앞서와 마찬가지로 범인이 명확한 상황에서 가쓰라 경부가 의문을 품는 과정의 설득력은 약합니다. 특히 '사체를 절단하는 커다란 수고에 비하면 사소한, 치아를 뽑거나 부숴서 신원을 알아내지 못하게 하지 않은 것이 수상하다'고 하는건 억지스러웠어요. 사체 전달은 옮기기 편해서라는 이유가 더 클 테니까요. 유명 관광지에 사체를 흩뿌린게 이상하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급했다거나, 길을 잘 몰라 실수하는 등 이유는 여러가지 있습니다. 범인이 확실하다면 수상하다고 생각할 까닭이 없어요.

하지만 더 이상 빚과 노모의 간병을 감당할 수 없었던 하루요시가 자살한 뒤, 이를 살인으로 위장하면 보험금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여긴 미야타무라가 현장을 조작했다는게 충격적인 진상이 모든 문제를 덮어줍니다. 우리도 직면한 문제인 '부양하기 힘든 고령 인구의 증가, 중년의 노후 보장 없는 은퇴, 취직도 못하는 삼포세대 젊은이'라는 3대에 걸친 사회 현상을 정면으로, 그것도 제대로 된 추리물로 다루고 있는 덕분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사회파 본격 추리 수사물이라고 해도 좋겠지요.

그리고 앞서 억지스럽다고는 했지만, 가쓰라 경부가 수상하다고 여긴 상황들이 진상에 딱 들어맞는건 추리물다와서 좋았어요. 우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관광지의 사체를 버린 이유는 빨리 발견되기를 바랬기 때문입니다. 사망이 확인되어야 보험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사체의 정체를 숨기려고 노력하지 않은 것, 흉기에 대한 거짓말도 같은 이유입니다. 미야타무라는 '노스에 하루요시를 살해했다'는게 진실로 여겨지기를 바랬으니 이렇게 주장할 수 밖에요.
사체를 토막낸 이유가 하루요시의 사체에서 '목을 맨 자국'이 드러나지 않게 숨기기 위해서였다는 트릭도 아주 괜찮았습니다. 다만, 독자에게 하루요시 사체 중 목의 중간부 일부가 사라졌다라는걸 정확하게 알려 주지 않은건 조금 아쉬웠지만요.

그래도 여러모로 볼만했던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가연물"
월요일 심야부터 방화로 의심되는 화재가 잇달아 발생하여 수사본부가 설치되었다. 잠복수사 결과 몇 명의 용의자가 떠올랐지만, 잠복근무 시작 후 방화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자 잠복 중인 형사가 범인에게 들킨 거 아니냐고 상관이 가쓰라 경부를 질책했다. 그러나 가쓰라 경부는 범인이 이미 목적을 달성했을지도 모른다는 의견를 내놓았고, 어떤 목적으로 방화를 저질렀는지 동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유력한 용의자 중 한 명인 오노하라가 버린 쓰레기에서 착화에 쓰인 잡지가 발견되는데...


후더닛보다는 와이더닛 물인데, 왜 표제작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수록작 중 가장 처지거든요. 범인의 동기가 하찮을 뿐더러, 납득하기도 어려운 탓입니다. 화재에 대한 나쁜 기억 때문에 돌발적인 화제를 막으려고 안전한 방화를 저질렀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더라고요. 범인은 그냥 수사를 통해 체포하기 때문에 추리의 여지도 거의 없고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진짜인가"
이제사키 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권총을 가진 범인이 농성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가게 점장 아오토와 아르바이트 생 유노가 아직 남아 있었지만, 가쓰라 경부는 아오토와의 통화로 유노가 범인에게 살해당했다는걸 알게 되었다.
범인 시다는 아들에게 생일 선물로 파르페를 사주려고 가게를 찾았는데,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는 아들에게 견과류가 들어 있는 파르페가 서비스되어 화가 난 뒤 다툼이 시작된걸로 보였다. 유노는 파르페에 대해 시다에게 설명하지 않은 직원이었다.

비교적 독특한 사건이 등장하는 작품.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인질을 븥잡고 농성을 벌이는 사건은 웬만한 작품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지요. "스완"이 약간 비슷하지만, 결은 전혀 다르고요. 또 이런 작품에서 중요한 '인질범과의 협상'이 등장하지 않는 것도 독특했습니다. 오로지 가쓰라 경부의 추리에 의한 의외의 진상이 밝혀지는 구조가 돋보였고, 여러 명의 증언을 모아 진상을 추리해내는 전개, 가게 안 장난감 가게에서 타는 물총이 시다가 들고 있는 권총과 비슷하다는 단서 등 여러 가지 정보와 단서들 모두 독자에게 공정하게 제공되는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진상도 재미있었습니다. 사건은 아오토 점장의 자작극이었습니다. 치정 문제로 유노를 살해한 직후, 시다가 사무실로 들이닥쳐 범행이 들키자 시다의 아들을 인질로 삼아 시다가 범인이고 자신은 피해자인 척 농성하는 연극을 시켰던 것이지요. 나중에 구출 직전 시다와 아들은 살해할 생각으로요.

그런데 조리 담당으로부터 사건 당시 오징어 먹물 파스타가 조리되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를 추리해냈다는건 와 닿지 않았어요. 오징어 먹물 파스타 조리 시간을 감안하여, 시다가 항의차 점장을 찾은 뒤, 한참(약 10분?) 지나서 도망치라는 큰 소리가 나왔다는건 그리 큰 단서나 증거로 볼 수 없습니다. 짜증이 쌓여 한참 있다가 폭발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살해 현장을 무마하기 위해 농성이라는 연극을 벌인 것도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추리적으로 억지가 많아 감점합니다. 

2020/07/17

젤리피시는 얼어붙지 않는다 - 이치카와 유토 / 김은모 : 별점 1.5점

젤리피시는 얼어붙지 않는다 - 4점 이치카와 유토 지음, 김은모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U국에서 개발한 소형 신예 기낭식 비행정 젤리피시의 보급이 확대되던 어느날, 젤리 피시 개발 주역인 UFA사의 기술개발부 멤버 6명 전원이 탑승한 신규 시험용 기체가 추락하여 불타버렸다. 기술 개발부 멤버도 모두 불에 탄 사체로 발견되었는데, 그들 모두 불에 타기 전 살해당했다는 검시 결과가 드러났다. 독으로 죽은 두 명은 누군가 시체를 단정하게 놓았으며, 총에 맞은 사체는 남은 흔적이 근거리에서 맞은게 아니었다. 칼에 찔려 죽은 사체는 칼이 뽑혀 있었고 뒷통수를 둔기로 타격당해 죽은 사체는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이었다. 그리고마지막 사체는 머리 등이 토막나 있는 상태였다..

형사 마리아와 렌 컴비는 신규 젤리 피시 개발을 의뢰한 공군과 함께 범인을 쫓기 시작하는데....

세상에는 참 많은 상이 있습니다. 추리 문학계도 예외는 아니죠. 신인 작가를 발굴하는 상도 많습니다. 아유카와 데쓰야 상은 많은 신인상 중 하나입니다. 신인상 중에서는 최초로 본격 미스터리에 중점을 두었다고 합니다. 1989년 시작되어 2020년 30회 째 수상작이 발표되었는데, 역대 수상작 중 제가 읽어본건 가노 도모코"일곱가지 이야기", 곤도 후미에"얼어붙은 섬", 아오사키 유고"체육관의 살인", 이마무라 마사히로의 "시인장의 살인"입니다. 작품들 면면을 보면 추리적으로는 볼만한 작품들입니다. 본격 미스터리에 중점을 두었다는게 허언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그래서 26회 (2016년) 수상작인 이 작품 역시 본격 추리물 애호가로서 큰 기대를 품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기대대로 추리적으로는 눈여겨 볼 만한 부분이 있습니다. '악천후로 접근, 탈출이 어려운 등산로도 없는 설산 구석에 6명의 승무원이 탑승한 젤리피시가 추락하였는데, 6명 모두 타살 사체로 발견되었다. 범인은 누구이며 어떻게 탈출했나?'가 핵심 수수께끼인데, 이를 '젤리피시는 원래 2대였다!'라는 대담하고 스케일이 큰 아이디어로 풀어내고 있는 덕분입니다. 멤버들은 공군의 요청 사항을 검증하기 위한 비교 대조 실험을 핑계로 3명씩 나누어 젤리 피시에 탑승했으며, 범인이 모두를 죽이고 한 척을 불태운 뒤, 남은 한 척을 타고 탈출했던 것이지요.

사고가 일어나고, 한 명씩 살해되는 과정과 함께 사건 발생 이후 현재의 수사 과정이 병렬로 배치되어 있는데, 사고 당시 승무원들 시점의 묘사가 이루어짐에도 이들이 함께 한 배에 타고 있는게 아니라 나누어 타고 있다는걸 교묘하게 숨기는 전개도 제법입니다. 서로 만나는 경우는 정박지에 한하고, 운항 중에는 같은 젤리 피시에 탑승한 사람들끼리만 마주치며, 통신은 무전기로 하고 있는 식으로 독자가 트릭을 쉽게 눈치채지 못하게 서술하고 있거든요. 이러한 전개는 일종의 서술 트릭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여섯 명의 탑승자 중 마지막 인물이 줄곧 이야기에 등장하던 에드워드 멕도웰이 아니라 다른 기술개발부 멤버인 사이먼 애트우드라는게 밝혀지는 마지막 장면도 역시 서술 트릭에 가깝습니다. 범인인 에드워드가 미리 토막낸 사이먼의 시체를 집에 넣어 몰래 숨긴 뒤, 자신은 탈출하고 시체를 남겨놓은 건데, 마지막까지 이를 잘 숨겨서 충격을 배가시키는 솜씨는 일품이에요. "십각관의 살인"에서 모리스의 정체가 드러나는 장면과 비슷한데, 그만큼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젤리피시 제조에 쓰이는 화학식을 이용한, 13년 전 리베카 자살 위장 사건 트릭도 괜찮습니다. 문을 틀어막은 플라스틱 조각은 밖에서 넣을 수 없었다는 상황을, 밖에서 부드러운 상태로 밀어넣은 뒤 화학 반응을 일으켜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건데 이야기와 잘 어울리는 좋은 아이디어였어요. 이렇게 여러가지 트릭들이 등장하고, 잘 설명되고 있어서 추리적으로는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소설로서의 완성도는 다른 수상작들과 비교했을 때, 현저히 낮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만화적인 인물들로 만화적으로 가볍게 써내려간 탓입니다. 주인공이자 탐정역인 마리아와 렌 컴비가 대표적입니다. 거유의 몸매 좋고, 어딘가 칠칠맞은 마리아와 딱 부러지고 냉정침착한 렌의 조합부터 지극히 만화적이고 평면적이에요. 수사 과정에서 빚는 갈등, 티격태격도 모두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나지 않고요. 갓 대학에 입학한 리베카가 천재라서 젤리피시를 만드는 공식을 완성했다는 설정도 만화적이기는 마찬가지이며 젤리 피시 내에서의 연쇄 살인 사건 묘사도 캐릭터들이 평면적이라 천편일률적이고 지루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 이 작품 속 캐릭터 중 자신만의 매력을 갖춘 캐릭터는 전무합니다. 80년대, 비행선이 날아다는 가상의 세계를 무대로 하고 있는건 괜찮아요. 젤리 피시의 제조 방법과 그 존재가 트릭의 핵심이니만큼, 이런 기계가 떠다니는 무대가 필요했을테니까요. 하지만 이를 표현하는 묘사도 모두 유치합니다.

추리적으로도, 비행정이 2대였다는 핵심 트릭은 좋지만 범행 자체의 설득력은 낮습니다. 모두 악당이기는 하지만, 자살로 보이는 사체를 옮겨 완벽한 자살로 위장하고, 연구 성과를 독차지한게 과연 죽어 마땅한 범죄일까요? 연구 성과가 그들의 것이 아니라는걸 리베카의 노트로 밝혀낼 수 있다면 더더욱 죽일 이유는 없습니다. 살아서 사회적인 매장을 지켜보는게 더 큰 복수일테니까요. 최소한 복수를 한다 해도 사회적으로 매장시켜 그들의 영향력이 바닥에 떨어진 뒤 하는게 더 현실적일겁니다.
그리고 6명 중 유일하게 죽어 마땅한건 리베카를 능욕하고 살해한 윌리엄 뿐입니다만, 에드워드는 그 사실을 모르고 일단 멤버들을 죽이고 시작하니 이래서야 누가 악당인지도 모를 지경이에요. 목숨을 걸고 6명이나 살해한 이유가, 13년 전 몇 번 말을 나눈 뒤 사랑에 빠져서 그랬다는 동기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묘사가 유치해서 에드워드의 마음이 전혀 와 닿지도 않았고요.

트릭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헛점 투성이입니다. 사건에 사용된 젤리피시는 새로 만든 것과 첫 개발자 (로 알려진) 교수가 소유하고 있던 영호기를 개조한 것 두 대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젤리피시는 거의 백만 달러에 이르는 상당히 비싼 물건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경찰과 주변 인물들이 그 존재를 아예 모른다는건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거의 집 한채 크기의 비행정이 2대가 비행하는데 사람들이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도 석연치는 않고요. 시간차를 두고 비행했더라도, 분명 눈에 띄었을텐데 말이지요.

증거도 빈약합니다. 마리아가 증거라고 이야기한, 젤리피시의 잔해가 눈보라를 조금이라도 더 견딜 수 있는 암벽 밑이 아닌 남쪽에 치우쳐져 발견되었다는게 대표적입니다. 이건 증거가 될 수 없어요. 사고 후 눈사태가 일어났다는 설명도 있고, 크고 무거운 기체가 비상 착륙했다면 그게 어디건 착륙 위치에 머물러야지 암벽 밑에 옮기지 못하는건 당연하니까요.

사이먼의 시체와 5명이 비행한게 아니라, 비행정에는 6명이 탑승했다는 증거가 정박한 체크포인트 다섯군데에서 일용품을 산 행위라는 것도 어설픕니다. 물건을 산 사람이 전부 다른 사람이라는게 과학적으로 엄밀하게 증명되지도 않았고 교수가 물건을 사러 내리지 않았다는 것도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또 설령 술에 절어 있는 교수를 제외한 서로 다른 5명이 번갈아 물건을 샀다고 한 들, 그들 중 한 명이 사이먼 애트우드가 아니라 에드워드 맥도웰이라는게 증명되는 것도 아니고요.

죽은 여섯 명이 모두 살해당했다는걸 곧이 곧대로 믿는 것도 억지스럽습니다. 먼 거리에서 총이 발사되도록 한다던가, 뒷통수를 둔기로 맞게 만든다던가, 죽은 뒤 칼이 뽑히던가 하는 식의 트릭은 많잖아요? 현장이 불에 탔다면 이런 트릭을 위한 흔적을 지우는 것도 어렵지 않았을겁니다. 솔직히 말해 범인 에드워드가 누군가가 다 죽이고 자살한 것처럼 현장을 조작하지 않아서 사건을 미궁에 빠트린 이유도 잘 모르겠습니다. 5명이나 (정확하게는 4명) 죽인 살인범이 사건을 일부러 미궁에 빠트릴 이유는 없어요.

범행을 위한 전개도 엉망입니다. 비교대조 실험을 핑계로 2척이 비행에 나서지 않았다면, 그리고 사이먼이 비행에 빠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네빌이 사이먼을 살해하지 않았다면 어쩔 셈이었을까요? 에드워드의 계획이 성공하려면 이 모든 준비가 갖추어져야 했는데 말이죠. 에드워드가 정말로 살인을 계획했다면 직접 사이먼을 살해하고 그가 도주한 것처럼 꾸민 뒤, 핵심 멤버로 비교대조 실험을 내걸어 2대의 운항을 끌어내는 게 타당했습니다. 사이먼을 죽인 뒤 진정한 복수귀로 거듭났다는 식으로 진행되는 식으로 말이지요.

살인 계획도 스케일은 크지만 운에 의지하는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젤리 피시 2척의 자동 항행 프로그램등을 건드려 악천후 속에서 설산에 착륙하게 만든다는 계획부터 그러합니다. '천운'이 따른 덕분에 두 척 모두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다고 범인이 직접 이야기할 정도거든요. 네빌을 독살시킨, 컵에 독을 넣는 방법도 운에 의지한건 마찬가지고요. 크리스가 몰래 가지고 온 총의 존재를 몰라 위기를 맞는다는 돌발 상황이야 있을 수 있다 쳐도, 위기를 넘기는 것도 순전히 운이고.... 마지막 생존자인 윌리엄에게 칼과 총이라는 무기를 모두 넘겨주고 습격한다는 마지막 살인도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최소한 총은 넘겨줄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장점보다 단점이 많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폐쇄된 공간에서 한 명의 응징자에게 여러명이 차례로 살해된다는 이야기를 보시려먼 차라리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나 "십각관의 살인"을 추천드립니다. 같은 아유카와 데쓰야 상 수상작이라도 "얼어붙은 섬"이나 "시인장의 살인"역시 폐쇄된 공간에서 연쇄 살인이 일어난다는 클로즈드 서클 계열인데 이 작품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이 작품은 지나칠정도로 만화적이니만큼, 만화화되면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덧붙이자면, 만화적이라는 점에서는 아유카와 데쓰야 상이 아니라, 메피스토 상 수상작이었다면 차라리 납득이 되었을 듯 합니다. 메피스토 상은 '엔터테인먼트'를 추구하는 만화적이고 가벼운 설정의 작품에 수여되곤 했으니까요.

2020/12/26

Q.E.D Iff 증명종료 12 - 카토 모토히로 : 별점 3점

Q.E.D Iff 증명종료 12 - 6점
카토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이번 권에는 두 개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유괴 교섭을 다룬 "좋은 사람"과 복잡한 트릭이 사용된 살인 사건이 등장하는 "재생의 시간" 입니다. "좋은 사람"은 평균 이하였지만, "재생의 시간"은 Q.E.D가 다른 추리 만화와 다른 점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편 평균한 별점은 3점입니다. 이야기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사람" 

이탈리아 저널리스트 아르젠트 (알) 로셀리니가 시리아 무장 단체에게 유괴되었다. 교섭인 시나 샌드는 토마의 옛 동창이어서 토마와 가나는 그녀를 돕기 시작했다. 그녀와 이탈리아 정부, 그리고 알의 백부 마이클까지 모두 3개의 창구가 존재하는 상황으로 교섭은 난항을 겪는데....

유괴 교섭에 대한 이야기. 그런데 단순 교섭보다는 복잡합니다. 세 개의 창구가 교섭에 나선 탓입니다.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이탈리아 정부와 마이클에게 범인 X의 요구액이 너무 높으니 일부분을 부담해달라는 부탁을 해 보라는 토마의 계획은 기발합니다. 만약 다른 두 창구가 범인과 교섭하고 있는게 아니었다면 동의할테고(인질 석방이 우선이니), 그들도 교섭 중이었다면 거절할거라는 이유입니다.
이탈리아 정부와 마이클의 거절로 범인이 세 개 창구 모두와 교섭하여 몸값을 받아낼 속셈이라는걸 알아낸 뒤, 모두의 몸값 전달 날짜가 다르다는걸 통해 각각 다른 사람들과 교섭하고 있다고 추리하게 됩니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두 개 창구가 교섭하는건 가짜인거지요. 

이러한 교섭 단체간 의견 조율과 교섭 이야기는 꽤 그럴싸 합니다. 또 중동 유괴범들이 어떻게 사업(?)을 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상세합니다. 투자자도 있고, 이자도 지급하는 등 여러모로 명백한 사업이더군요. 그래서 빠른 교섭이 필요하고요. 투자금 회수가 빨리 이루어지지 않으면, 손해가 커지기 때문에 몸값이 점점 올라갈 수 밖에 없거든요.
콘테이너를 이용하여 유럽으로 건너가려는 시리아 난민의 비참한 삶에 대한 묘사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난민 소년이 유괴범 일원이 되는 과정도 설득력이 있고요. 즉 유괴 교섭, 유괴 사업, 유괴범에 대한 드라마는 합격점을 줄 만 합니다.

그런데 알을 돌려받는 클라이막스는 영 아니었습니다. 그 자리에까지 토마와 가나가 나서서 위험에 휘말릴 이유는 전혀 없으니까요. 또 알과 가나가 절벽 아래에서 탈출하기 위해 숨겨둔 장치를 이용한 일종의 패러글라이딩을 이용한다는건 과정 자체는 그럴듯하지만 이 역시 현실성이 없습니다. 표적이 될 수 밖에 없어서 위험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 중요한 조사를 가나 한 명으로 돌려막기 하는 내용도 비현실적입니다. 가나 혼자 이탈리아에서 마이클을 만나 협상하고, 마이클 비서를 자칭하여 은행으로부터 몸값 전달 날짜를 알아낸다는 식인데, 일본이었다면 모를까 외국에서 외국인 대상으로 진행한건 지나쳤습니다. 이게 가능하다면 가나도 토마 못지 않은, 어학과 연기의 천재인거지요. 이 정도면 "엘프 사냥꾼"의 코미야마 아이리급이 아닐런지?

이야기도 짜임새가 부족합니다. 유괴 교섭인에 대한 이야기, 유괴된 인질의 탈출극 (?), 시리아 난민의 비참한 삶, 좋은 사람 알에 대한 이야기가 마구 뒤섞여 있거든요. 예전 "마스터 키튼" 속 에피소드처럼 '교섭' 하나에 집중하는게 훨씬 좋았을겁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재생의 시간" 

잡지 기자 크리스는 시의회의원 모카이에게 찾아가 17년전 스미야 코우사쿠 사망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며 협박하여 300만엔을 뜯어 내었다. 스미야 코우사쿠 사망 사건은,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사방이 벽으로 둘러쌓여 출입금지된 장소에서 목을 메고 죽은걸로 보이는 백골 사체가 발견된 사건이었다. 유류품으로 사체는 스미야 코우사쿠로 판명되었는데, 그는 이미 14년 전 실종된 상태였었다(현 시점에서는 17년 전).
경찰은 14년 전 스미야가 이 장소에서 목을 메고 자살했다고 결론내렸었다. 하지만 스미야는 함께 일하던 쇼우스케와 자주 다퉜으며, 쇼우스케가 큰 상처를 입고 기숙사로 돌아온 17년 전 어느날 돌아오지 않았었고, 쇼우스케도 곧바로 입원했던 병원에서 사라졌다.

이후 쇼우스케가 있는 마을로 찾아온 크리스는 시체로 발견되었고, 유력한 용의자는 쇼우스케의 아들 세이지였다. 아르바이트 중 피해자와 다퉜고, 아르바이트하던 술집 근처에서 피해자가 살해되었으며, 시체를 옮긴 보트는 그의 아버지 가게에서 분실된 것이라는 등의 불리한 정황 증거 때문이었다. 그러나 딱 한 가지, '범인이 술집에서 술을 먹는다는걸 알 수는 없었다'는 이유로 풀려났다. 피해자가 술집에 오는걸 알지 못했다면, 보트를 미리 준비해서 유기 장소로 옮기는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살해 현장 근처에는 보트를 숨길 곳도 없었다...

17년 전 과거와 현재, 두 개의 사건이 하나로 만나는 작품으로 두 개의 사건은 모두 수수께끼를 품고 있습니다. 17년 전 사건에서 쇼우스케는 범인일 수 없었습니다. 쇼우스케와 스미야가 다투는게 목격된 장소에서 사체 발견 현장까지는 왕복 1시간 이상 걸리는데, 쇼우스케가 다친채로 기숙사로 돌아온건 고작 30분 뒤였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누가 봐도 쇼우스케가 범인이니, 무언가 트릭이 사용된게 분명합니다. 현재의 사건에서는 술을 어디서 먹을지 모르는데 보트를 어떻게 미리 준비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고요.

토마는 두 사건은 모두 밤에 술 마시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습격당했다는 공통점에 착안하여, 술 마시러 가는 장소 모두에 미리 시체를 숨길 수 있도록 준비했다고 추리합니다. 스미야는 역 앞 라면집, 산기슭 정식집, 이자카야의 세 개 가게만 다녔기 때문에 준비가 그리 어렵지 않았던거지요.
산 기슭 정식집 근처에서 도난당했던 포크레인이 발견된게 증거입니다. 범인은 포크레인을 휘둘러 사체를 멀리 던져 버리고 알리바이를 만들 생각이었습니다. 이는 17년전 사건에 사용된 트릭과 같아요. 사체가 밀실에서 발견된건, 담벼락 넘어 공중에서 던져졌기 때문이었죠. 꽤 기발하고, 나름 현실적인 멋진 트릭이었어요.

범인이 사건을 저지른 동기도 잘 설명되고 있습니다. 사체로 발견된 스미야가 원래 쇼우스케였던 겁니다. 스미야가 쇼우스케를 죽이고 신분을 바꾼거지요. 모카이가 이를 도왔고요. 쇼우스케와 모카이는 고교시절 야구부 배터리로 절친이었고, 모카이는 쇼우스케가 야구부 매니저였던 교우카와 맺어지도록 도왔습니다. 그러나 야구를 그만두고 방탕한 삶을 보내던 쇼유스케가 음주운전으로 교우카에게 큰 상처를 입히고 도망간 탓에 원한을 품었다가, 스미야가 저지른 사건을 알고 그를 도와준 겁니다.

이후 바꿔치기한 스미야가 교우카와 만나 사랑에 빠지는 사랑 이야기도 나무랄데 없어요. 처음 봤을 때 부터 사랑했다는 부부의 말은 참 슬프네요. "마틴 기어의 귀향"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바꿔치기와 트릭을 눈치채고 크리스는 모카이를 협박했고, 스미야(현 쇼우스케)가 그를 죽인겁니다.
크리스가 17년전 사건은 살인 사건이 분명하다며 남긴, '기름게와 무당게의 다른 점'이 핵심이라는 말도 바꿔치기를 의미합니다. 같아 보이지만 다른건 이름 뿐이라는 뜻이지요. 이를 여러가지 단서복선으로 드러내는 전개도 일품입니다.

그런데 추리에는 조금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 현재의 크리스 살인 사건의 경우, 피해자와 이자카야에 동행했던 아오야마가 공범에 전화를 걸어 보트를 준비하도록 만들었다는 생각은 왜 하지 못할까요? 단독 범행이라고만 생각하는 이유를 통 모르겠어요.
17년 전 사건도 마찬가지에요. 30분 안에 사체를 어딘가 숨기고 돌아온 뒤, 퇴원 후 숨기러 가도 되니까요. 17년, 아니 14년 만에 백골로 발견되었다면 그 정도 차이를 눈치채는건 불가능했을텐데 말이지요. 아니면 어느정도 생활이 안정된 후, 현장을 뒤져 시체를 암매장하는 것도 방법이었고요. 살인사체 유기가 동시에 벌어졌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리고 쇼우스케가 스미야라는 증거가 있다면 모를까, 별다른 증거가 없는 말 뿐만인 추리라는 약점도 큽니다. 같은 이유로 크리스를 살해할 필요가 있었는지도 의문이고요. 설령 쇼우스케가 스미야라는게 밝혀진다 한 들, 살인을 저지르고 시체를 숨겼다는 증거는 없으니까요. 한 명 더 살해해서 위험을 늘리기보다는, 정면으로 반박하는게 더욱 타당했습니다. 

아울러 토마와 가나가 무리하게 사건에 뛰어들어 추리를 도와주는 이유도 석연치 않습니다. 용의자 세이지와 교제하는 마리나와 가나가 친구라는게 이유인데, 그렇다면 세이지가 혐의를 벗은 시점에서 더 도와줄 이유는 없어요. 오히려 토마가 입만 다물었어도 미제 사건으로 끝났을지도 모르는데, 토마가 웃는 얼굴로 추리쇼를 펼치며 사건을 해결해서 세이지 가족을 파괴해버리고 맙니다. 이래서야 정의의 집행자가 아니라 사랑을 방해하는 무자비한 악마, 냉정한 추리하는 기계일 뿐이지요. 한 마디로 토마의 비인간성이 부각된 에피소드입니다. 하긴, 이게 Q.E.D와 토마의 매력이긴 하지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5점입니다. 추리에서의 설득력이 조금만 갖추어졌더라면 걸작이 될 수 있던 좋은 이야기였습니다. 좀 긴 호흡의 소설로 발표하는게 훨씬 좋았을 것 같네요.

2020/08/08

Q.E.D Iff 증명종료 10 - 카토 모토히로 : 별점 2점

Q.E.D Iff 증명종료 10 - 4점
카토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Q.E.D 시즌 2도 대망의 10권째입니다. 그러나 수록작 두 편 모두 수준 미달이라 아쉽네요. 기본적인 재미, 추리의 완성도 모두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11권부터는 예전의 명성을 회복해 주면 좋겠네요.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한 법이니까요.

이야기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 부탁드립니다.

"아웃로스"

떠다니는 카지노인 호화 유람선 킹 마이다스 호에서 '더 아웃로스 쇼'가 개최되었다. 배의 소유주 리치 부어만이 직접 선택한 아웃로 6개팀이 참가하는 게임이었다. 룰은 다음과 같다.

  1. 팀은 각자 한 개 씩 열쇠를 받는다. 6개를 모두 모아야 보검이 있는 금고를 열 수 있다.
  2. 시간 제한은 3시간으로 1시간마다 열쇠를 가지고 있는지 검사하고, 열쇠가 없으면 바로 실격한다.
  3. 마지막 시간 종료 때 까지 열쇠 6개를 모아 보검을 손에 넣지 못하면, 남은 팀 중 열쇠를 많이 가진 팀이 이긴다. 

상금은 1억달러! 과연 어느 팀이 승리할 것인가?

아웃로스가 뭔가 했더니 Outlaws더군요. 토마는 무법자는 아니고, 주최자 부어만의 부탁으로 게임에 참가합니다. 부어만은 딸 케이트가 라스베가스에서 사기 도박을 벌이는걸 고칠 목적으로 도박의 무서움을 몸소 체험하게 하게 할 생각이었지요. 

게임의 규칙은 위의 지극히 간단합니다. 변수라면 여섯 팀은 각자 변장, 3D 프린팅, 소매치기 등의 특기가 있다는 설정인데 정작 과정은 실망스럽습니다. 간단한 규칙이지만 온갖 변수를 만들어내어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카이지"와 같은 박진감은 찾아볼 수 없는 탓입니다. 참가자들이 열쇠를 너무 쉽게 빼앗기기 때문이에요. 약간의 변장, 소매치기 등에 의해 열쇠를 빼앗겨버리니, 이래서야 세계적인 아웃로 어쩌구 하면서 모아 놓은 참가자로는 실격입니다. 특히나 열쇠를 그냥 방에 놔 두었다가 빼앗긴다는 게 제일 황당했어요. 무려 1억불이 걸려있는 열쇠인데,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게 당연하지 않을까요? 아무리 객실에 완벽한 보안 장치가 가동 중이라더라도요.
또 토마가 객실 열쇠를 훔쳐내는 과정도 억지스럽습니다. 금고털이인 맥거폰 부부의 계획을 눈치채고, 그들이 전기를 차단할걸 예측했다는건데, 주어진 단서라고는 게임 시작 전 물어본 질문밖에 없었으며,  이 질문에서 끄집어 낼 수 있는 추리는 절대 아니었습니다.

게임의 결말도 당황스럽습니다. 마지막 남은 두 팀 중 케이트가 가진 열쇠는 2개이고 토마, 가나 팀은 4개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케이트가 3백만 달러를 줄테니 열쇠를 전부 걸고 포커를 하자는데, 상식적으로는 이를 받아들일 이유는 없습니다. 상금이 1억불인데, 3%밖에 안되는 돈에 혹해서 확실한 승리를 내팽개칠 이유는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이를 수락하고 포커 승부를 펼친 토마에게 필승의 비법이 있다는건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예상대로 흘러갑니다. 다른 동료가 있어도 되는 규칙인데, 딜러가 토마와 한 패였던 거지요. 결국 딜러는 리치 부어만의 변장으로 밝혀지고 딸 케이트와 눈물의 정을 나눈다!는 흔해빠진 신파로 마무리되... 는 줄 알았는데 뜬금없는 반전이 이어집니다. 리치 부어만은 알고보니 게임을 관전하기 위해 참가한 수많은 부자와 스타들의 폰을 해킹하여 정보를 빼돌리려는 사기꾼이었다는 거지요. 폰에서 게임에 배팅하기 위해 접속하는 상황을 이용했다나요?

그런데 그럴거면 구태여 유람선에서 게임을 벌일 이유는 없었습니다. 또 토마를 끌어들일 이유도 없고요. 리치 패거리를 체포하기 위해 경찰이 잠수함을 타고 나타나는 마지막 장면은 황당함의 정점입니다.아울러 Q.E.D스럽게 수학 이론인 '부동점정리'가 등장하는데, 설명은 이해하기 어려웠고 이 이론이 '나비 효과'와 연결되는 것도 잘 설명되지 못합니다. 무엇보다도 '절대 변하지 않는 부동점' 이 항상 있다는건 게임과 아무 관련도 없어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입니다. 게임이면 게임, 사기면 사기, 어느 한 쪽에 집중하는게 훨씬 좋았을텐데 괜시리 스케일만 크면서 이야기의 설득력은 전무하고, 재미도 없는 어정쩡한 이야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유일하게 건질건 플레이어 중 한 명인 에멧이 가나로 변장하여 토마를 유혹하듯 다가와 뺨에 키스하는 장면 뿐인 망작이에요.

"다이잉 메시지"

80년대 개발되던 남쪽 섬의 리조트는 버블 붕괴 후 회사가 도산하고 관계자가 도망쳐 30년 넘게 방치되어 '유령 호텔'로 불리고 있었다. 그런데 호텔을 철거하기 위해 내부 기둥을 해체하던 중 기둥 속에서 백골 사체가 발견되었다. 유령 호텔 건설 당시, 리조트용 토지를 불법적 수단으로 빼앗긴 피해자들을 대신해 개발 회사를 고소했던 변호사 치아키 실종 사건이 있었고, 30년 전 일이라 유전자 감식은 불가능했지만 경찰은 사체가 그녀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호텔 건설 당시 어둠의 보스라고 불리었던, 호텔 부지 소유와 관련이 있는 원 총무부 부장 스에요시 분지는 건설에 대해서는 당시 건설 책임자 유하마 메이에게 물어보라고만 말했는데, 그녀 역시 30년 전에 모습을 감춘 상태였다. 메이가 치아키를 살해하고 사체를 호텔 기둥 속에 집어 넣은 것일까? 

조사하던 중 유령 호텔은 내진 기준을 만족하지 못했지만 여러가지 도움과 돈의 힘으로 개업 허가를 받았다는게 밝혀졌다. 그리고 부동산 업자의 의뢰로 사건을 조사하던 사립 탐정 나카노사토가 중상을 입은 채 유령 호텔 방 안에서 발견되었는데, 방의 입구는 안쪽에 냉장고를 놓아 막아 놓고 창문은 합판을 못박아 놓은 상태의 밀실이었다...

수수께끼는 두 가지입니다. 30년 전 백골 사체 사건의 진상과 현재의 나카노사토 탐정이 발견된 밀실에 대한 것입니다. 

30년 전 백골 사체 사건의 경우, 시체는 기둥 속에서 발견되었는데, 그러려면 건물 완성 전에 기둥 안에 시체를 넣어야 하고 유하마 메이는 건물 낙성식에 참석했으니 시체는 치아키일거라는게 경찰과 가나 들의 추리입니다. 그러나 토마의 추리는 한 발 더 나아갑니다. 호텔이 내진 검사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증언을 통해, 낙성식 당시 기둥은 '껍데기만 있는 가짜'였을거라는 거지요.

그리고 현재 유령 호텔의 이상한 기둥 배치를 통해 원래 껍데기만 있는 가짜 기둥에 콘크리트를 담아 굳혀 진짜 기둥을 만들었다고 추리합니다. 이 때 기둥 하나에 시체를 넣고 굳혔던 것이지요. 이 방법을 사용하면 피해자도 치아키가 아니라 유하마 메이가 될 수 있습니다. 낙성식까지는 가짜 기둥이었다는 이야기니까요. 

추리는 대담하고 재미있습니다만 문제는 증거가 전무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가짜 기둥은 껍데기만 있었다라는게 핵심인데, 이건 도저히 증명할 수 없어요.
또 미와코로 변장하여 나타난 치아키의 행동도 영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치아키가 호텔 부지를 매입하여 개발에 나선 것 까지는 말은 됩니다. 리조트를 없애고 해안을 원상복구 시키는건 30년 전의 목적이기도 했으니까요. 호텔 해체 작업 시 사체가 발견되고, 옷을 갈아입힌 덕분에 피해자가 치아키로 오인되면 유력한 용의자가 스에요시 분지가 될 거라고 예상한 것 역시 큰 문제는 없고요.
그러나 사체 발견 시 살인 사건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한 이유는 석연치 않습니다. 또 탐정이 사건 조사를 시작한건 미와코가 살인 사건 해결없이는 부지 매입을 하지 않겠다고 주장해서, 부동산에서 어쩔 수 없이 고용한게 발단입니다. 나카노사토 탐정에 의해 미와코가 치아키이며 그녀가 범인이라는걸 알아낸 탓에 계획에 차질이 생겨버렸으니, 한 마디로 긁어 부스럼을 만든거지요. 

아울러 탐정이 진상을 알아냈다 한 들, 스에요시를 옭아매는 계획만 실패할 뿐입니다. 그녀 자신의 범행은 30년 전의 사건이라 공소시효도 이미 끝났을테니까요. 이 진상 때문에 탐정을 습격한다는건 더욱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그것도 나이로 보면 상당히 버거울, 빨래 운반 통로를 수직으로 기어올라 탈출하면서까지 밀실을 만들 이유는 더더욱 없습니다. 

또 이 두 번째 수수께끼인 밀실 트릭은 추리라고 부르기도 힘든 민망한 내용이에요. 수사를 통해 빨래 운반 통로가 발견되지 않은 것 부터가 이상합니다. 사람이 충분히 지나다닐 수 있는 통로가 있다면 밀실은 아닌데 말이지요. 그리고 치아키가 어떻게든 스에요시 분지를 엮어 범인을 만들 생각이었다면 탐정을 살해했어야 합니다. 단순히 중상을 입힌걸로는 부족했어요. 어차피 탐정이 깨어나면 증언을 통해 모든게 밝혀질테니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도 없고요.

마지막으로 미와코가 호텔에 결함이 있다는걸 알고 있었다고 말한게 앞선 대담한 추리 - 사체는 유하마 메이이며 기둥은 원래 가짜였다! - 의 단서가 되었다는 것 역시 설득력이 전무합니다. 토마는 호텔의 결함은 범인만 알고 있을거라 단언하는데, 그 전제부터가 잘못된 겁니다. 근거도 없고요. 게다가 곰곰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됩니다. 호텔이 내진 검사를 통과하지 못할 정도의 부실 건물이라는걸, 건설 반대파를 대표하는 변호사 치아키가 알고 있었다? 고발 등 모든 조치를 동원하여 개업을 방해하는게 당연하잖아요. 즉, 치아키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어야 하는게 정상입니다. 설령 범행 때 알게 되었다 한들, 유하마 메이를 죽인 뒤 시멘트를 붓는 등의 공작을 혼자서 했다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이런 작업을 혼자서 하는건 절대로 불가능했을겁니다.

이렇게 여러모로 억지스러운 부분이 많아서 별점은 2점입니다. 추리적으로는 볼 만한 부분이 있습니다만. 완성도는 영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2023/08/26

명탐정의 제물 - 시라이 도모유키 / 구수영 : 별점 2.5점

명탐정의 제물 - 6점
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내친구의서재

<<아래 리뷰에는 트릭, 진상 그리고 진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명탐정 오토야 다카시의 조수 리리코는 민박집에서 일어났던 밀실 사건을 멋지게 해결한 뒤, 학회에 참석해야 한다며 사무실을 떠났다. 귀국 예정일이 지나도 리리코가 돌아오지 않자, 그녀를 구하기 위해 오토야는 가이아나의 조든 타운으로 향했다. 알고보니 리리코는 짐 조든이 이끄는 종교의 광신도들이 모여 만들어진 마을 조든 타운을 조사하기 위해 찰스 클라크가 조직한 조사단의 일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도착 직후 오토야와 동행했던 저널리스트 노기가 타운의 보안군에게 총살당했고, 뒤이어 클라크 조사단원들이 한 명씩 차례대로 불가능 상황에서 살해된채 발견되었다. 리리코는 오토야와 함께 조사를 펼친 끝에 미국 하원의원 라일랜드가 조든 타운을 방문한 날, 모든 사람들 앞에서 사건들은 모두 사고였고 불가능 상황이 된 건 신도들의 의지였다는 추리를 밝혔다.
그러나 라일랜드 일행을 타운 보안군이 사살하고 리리코마저 살해당한 날, 오토야는 대규모 자살쇼를 앞둔 조든과 신도들 앞에서 숨겨져 있었던 진상을 폭로하기 시작하는데....

최근 추리 애호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어 있는 일본 본격 추리물. 2023년 '본격 미스터리 대상' 수상을 비롯하여 '고노미스',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등 유명 미스터리 어워드 상위권을 휩쓴 작품이지요.

유치해보이는 표지와 부제 탓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화려한 수상 이력이 증명하듯 '본격 추리물'로의 가치가 높다는게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조든 타운에서 벌어진 무려 4건의 불가능 범죄를 비롯하여, 도입부의 요코야부 요스케 밀실 살인 사건 등 사건도 풍성하고, 사건에 관련되어 있는 단서가 독자들에게 공정하게 제공되며, 오토야와 리리코를 통해 각 사건마다 여러가지 추리가 펼쳐지는 덕분입니다. 리리코가 왜 오토야에게 가짜 서명이 되어 있는 <<탐정 교과서>>를 가져왔었는지 등 사소하지만 디테일한 추리들도 잘 짜여져 있고요.
특히 핵심이 되는 조든 타운에서 벌어진 불가능 범죄에 대한 트릭과 추리가 기발해서 만족도가 높습니다. 사건만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은데요.
  1. 전 FBI 조사관으로 인민교회 간부로 위장한 알프레드 덴트가 밀실인 자기 방에서 칼에 찔려 죽음.
  2. 조든 타운 요리반 멤버들과 티 타임을 갖던 사이비 과학 탐정 조디 랜디가 청산가리 중독으로 죽었는데, 차는 함께 했던 요리반 멤버들 모두가 같이 마셨음.
  3. 한국인 이하준이 상, 하반신이 토막난 사체로 발견되었는데, 이하준은 가방에 갇혀서 오토야와 리리코의 눈을 피해 빠져나갈 수 없었음.
  4. 묘지에서 리리코를 살해한건 아이였는데, 묘지 관리인 크리스티나는 아이는 누구도 묘지에 절대 들어오지 않았다고 단언함.
여기서 진상은 '조든 타운의 광신도들은 스스로 아무도 질병이나 몸의 이상이 없으며, 사람들을 이상이 없는 완전한 모습으로 바라보지만 외부인들은 그들의 모습을 현재 그대로 바라본다'는, 오토야의 표현을 빌자면 '외부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추리를 통해 밝혀지게 됩니다.
첫 번째 사건에서, 덴트는 이미 칼에 수차례 찔린 채로 방에 들어간 뒤 문을 닫고 밀실을 만든 뒤 죽었습니다. 그러나 방에 가던 덴트를 목격했던 Q는 덴트의 치명상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조든 타운의 신도가 몸에 상처가 있을리 없기에, 기억에 왜곡을 일으켰던 겁니다.
두 번째 사건에서 조디 랜디는 오른 손으로 차를 마시는 사람의 입이 닿는 부분에 묻혀진 독을 먹고 죽었습니다. 함께 했던 요리반 멤버 중 크리스티나는 오른 손이 없었고, 블랑카는 왼손잡이였으며 레이첼은 오른 손가락이 골절되어 오른 손을 쓰지 못했기 때문에 혼자서 오른 손으로 차를 마셨기 때문이지요. 이를 위해 범인은 사전에 레이첼의 오른 손가락을 부러뜨렸지만, 레이첼은 아픔을 느끼지 못했고 주위 사람들도 레이첼이 다쳤다는걸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세 번째 사건에서 범인은 감방에서 이하준을 살해한 뒤, 상하체를 토막내어 각각을 간수 프랭클린을 이용해 밖으로 옮겼습니다. 프랭클린은 자신의 다리가 있다고 믿었기에, 휠체어 하반신 쪽에 설치(?)된 사체 토막의 존재를 몰랐습니다. 시체를 옮길 때 마다 범인에 의해 기절했던 것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고요. 
네 번째의 리리코 사건은 범인 레이 모튼이 어른이지만 하이랜더 증후군을 앓던 탓에 아이같은 외모를 가졌던게 이유였습니다. 오토야는 실제 그대로 어린아이를 목격했지만, 묘지 관리인 크리스티나의 눈에 레이 모튼은 정상적인 성인이었기에 상반된 증언에 의한 불가능 상황이 발생했던 것이지요.

이렇게 광신자 집단의 잘못된 믿음같은 일종의 대규모 집단 최면은 다른 작품에서도 등장하기는 했었습니다. 제가 읽었던 작품 중에서는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신의 로직, 인간의 매직>>이 대표적이지요. 특정 집단 전체에 걸려있는 일종의 최면으로 정보 자체가 왜곡된다는건 동일합니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밀실 대도감>>에서 소개된 <<다카마가하라의 범죄>>는 '현인신은 신이라서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 무녀가 조서를 들고 2층에서 내려왔기 때문에 신과 같은 존재가 되어 보초 눈에 보이지 않았다'라는, 종교 단체의 신앙으로 비롯된 현실 왜곡이 사용되었다는 점에서는 아예 똑같은 발상일테고요. 
하지만 이 작품은 이런 비현실적인 상황과 트릭을 꽤 현실적으로, 설득력있게 만드는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이는 실제로 있었던, 정신병자 교주가 주도하여 신도들이 집단 자살했던 가이아나 존스 타운 사건 (인민 사원 사건)을 사건의 바탕으로 삼고있는 덕분입니다. 실제 사건을 본격물로 풀어내어 다채로운 트릭을 선보인 것도 높이 평가하고 싶네요. 다소 팩션같은 느낌을 전해주는게 좋더라고요.

하지만 이 '외부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추리 외의 추리들은 설득력이 약하다는 문제는 큽니다. 리리코의 추리부터 살펴보자면, 그녀는 사건들은 모두 사고였다고 - 덴트는 밀실에서 실수로 칼에 찔려 죽었고, 조디 랜디는 지병인 협심증으로 사망했으며, 이하준은 간수 프랭클린으로 변장하여 휠체어를 타고 급경사에서 고속으로 도주하다가 와이어에 걸려 토막이 났다 - 생각했습니다. 이를 발견한 조든 타운의 신도들이 '질병도 없고, 사고도 없는 조든 타운'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현장을 조작했다고 추리했고요. 
그런데 협심증이야 그렇다쳐도, 밀실에서 칼이 튀어 등에 찔려 죽었다? 고속 휠체어 이동으로 몸이 토막났다? 솔직히 어이없는 발상입니다. 이런 추리에 수긍하고 넘어가는 사람들이 이상해 보였습니다.

물론 이는 사건을 대충 수습해서 무마하기 위해 억지로 풀어낸 추리였다는 전제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뒤 오토야의 '신앙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추리는 더 한심했습니다.
오토야는 덴트의 방을 밀실로 착각하게 만든 열쇠와 조디 랜디에게 다과회 시점에 녹아내리도록 독이 든 캡슐을 낮은 온도에서 녹는 저융점 합금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저융점 합금은 별다른 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조든 타운에서도 어떻게든 가공할 수 있는 소재였을 수는 있어요. 문제는 이 합금이 그렇게 흔하지도 않았을테고, 원하는 모양으로 딱 맞춰 만들기도 쉽지 않았을 뿐더러, 때 맞춰 녹아내리도록 한다는건 더 말도 안된다는 겁니다. 이건 그야말로 만화에서나 사용될 수준의 트릭이었어요. 그나마 3일 전 사망했던 오토야의 지인 노기의 사체를 토막내어 이하준 사체로 위장한 뒤 발견되도록 만든 다음에 이하준을 살해했다는 추리 정도만 괜찮았습니다. 이후 이하준 사체를 토막내서 공동묘지 관리 오두막의 노기 사체와 바꿔치기 했다는 것이죠.
'신앙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추리의 끝이 짐 조든이 범인이라는건 설득력이 더욱 약했습니다. 저융점 합금을 사용할 수 있고, 이하준의 사체를 빼돌리기 위해 1감옥에 갇혀 있던 오토야와 리리코를 석방시킬 수 있었던건 짐 조든 밖에 없었다는게 근거인데, 애초에 저융점 합금을 사용했다는게 말도 안될 뿐더러, 짐 조든은 앞서 맹인에 가까울 정도로 시력이 낮다는게 이미 언급되기에 일고의 가치도 없습니다. 조든이 카리스마와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신의 천벌같은 불가능 범죄를 저질렀을거라는 동기도 미흡하기 짝이 없고요. 설령 조든이 그런 생각을 했다 한들, 직접 범행을 저지를 이유는 더더욱 없습니다. 수족같은 간부나 광신자를 이용하겠지요. 맨슨 패밀리의 찰스 맨슨이나, 오움 진리교의 이시하라 쇼코가 직접 살인을 저지르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애초에 '명탐정' 들이 다수 등장하는 설정부터가 별로에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괴사건 해결 전문 명탐정을 실체 있었던 사건과 결합하여 풀어나가니 괴리감만 크게 느껴집니다. 오토야와 리리코를 사이비 종교 전문가로 설정해서 조든 타운으로 향하게 만드는게 훨씬 좋았을거에요.
정보도 공정하게 제공되기는 하나, 너무 과해서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느낌도 들게 만듭니다. 대표적인게 덴트 방 옷장의 혈흔입니다. 등에 칼을 찔렸다고 혈흔이 저렇게나 튄다는건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문이 어떻게 열리든 그게 별로 중요해 보이지도 않았고요.

도입부의 밀실 살인 사건도 그닥입니다. 밀실 안에서 죽은 사람은 유명탐정 요코야부 유스케였고 사체에 남겨진 탄환 감식 결과, 그를 쏜 건 10여년 전 권총을 훔친 뒤 11명을 사살했던 108호 사건의 범인이었다는 사건이지요. 오토야는 추운 날씨인데도 요코야부가 얆은 옷에 난방도 켜지 않았다는 것에 주목합니다. 이는 범인이 요코야부의 겉옷을 벗겨갔으며, 그 이유는 겉옷에 총을 쏜 흔적을 숨기기 위해서였고, 따라서 요코야부는 자살했다, 이유는 요코야부가 108호였기 때문으로, 실수로 권총이 오발된 뒤 정체를 숨기기 위해 창 밖 바다에 총과 겉옷을 버렸고, 그 때 그걸 목격한 거리의 떠돌이 소년을 쏴 죽였으며, 문만 열어두면 침입한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고 여겨졌겠지만 힘이 다해 문을 열기 전에 죽고 말았다는 추리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리리코는 요코야부의 겉옷을 벗겨간 건 자기보다 큰 재킷을 입고 있었던 거리의 떠돌이 소년이며, 그가 바로 108호였다는 추리를 내 놓습니다. 요코야부에게 원한을 품은 108호는 요코야부에게 총을 쏜 뒤 오토야의 추리처럼 그를 108호로 몰기 위해 총을 객실에 두고 나왔는데, 기력이 남아있던 요코야부가 창 밖의 108호를 쏴 죽인 뒤 108호로 오인받지 않으려고 권총을 던져버렸다면서요. 108호는 10년 전에도 10대 중반의 소년이었는데 지금도 어린 소년으로 보이는 이유는, 성인이 되지 못하는 선천성 질환인 하이랜더 증후군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리하는데, 이는 경찰 조사 결과 사실로 밝혀지게 됩니다.
오토야와 리리코의 추리는 괜찮습니다. 추운 날씨인데도 켜지 않는 나방과 입지 않은 외투, 안에서 보기에 열릴 것 처럼 보이지 않는 바다로 향한 창, 다른 객실 투숙객이 들은 물 튀기는 소리 등 단서도 잘 제공되고 있거든요. 
하지만 총을 훔쳐 11명이나 죽였던 범인이 알고보니 성장하지 못하는 병을 앓고 있었다는게 너무 억지스러워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며, 무엇보다도 이 사건이 오토야가 조든 타운 신도들을 모두 독살한 진범이었다는 마지막 진상으로 이어진다는건 해도 너무했습니다. 명탐정 리리코가 고작 세 명을 살해한 잡범에게 살해당했다는걸 인정할 수 없어서 - 요코야부는 11명을 죽인 108호에게 죽었는데! - 수백명을 참살하도록 만들었다는데, 정말 가관이었어요. 일본식 명탐정 허세의 극을 달리는, 정신줄 놓게 만드는 황당한 동기였습니다. "탐정은 때로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며 탐정의 역할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도 옥의 티이고요. <<유리탑의 살인>>도 그렇고, 왜 이렇게 명탐정이라는 존재에 목숨을 거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동기야 어쨌건 오토야가 독을 탔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루이스의 유서는 이 사실을 증명하기에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어요. 신도 중 생존자였던 Q가 루이스가 이상했지만, 당시 조든 타운 신도였기에 이를 몰랐다는 주장을 펴는 것 역시 입증할 증거는 전무하고요. 오토야가 범행을 순순히 인정하고 체포되어 수감될 이유가 도저히 보이지 않네요.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 실제 있었던 끔찍한 사건을 추리와 결합해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낸 솜씨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만화같은 불필요한 설정, 그리고 추리에 사족이 많았기에 감점합니다. 그래도 본격 추리물로는 충분한 재미를 선사하는건 분명하니, 추리 애호가분들이시라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2025/08/29

네버 라이 - 프리다 맥파든 / 이민희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트리샤와 남편 이선은 둘러보기 위해 방문했던 교외의 외딴 저택에 고립되었다. 눈보라 탓이었다. 저택은 원래 2년 전 실종된 유명 정신과 의사 에이드리언 헤일의 소유였다. 머무는 동안 트리샤는 누군가 숨어 있다고 의심했지만 정체를 확인하지 못했고, 대신 에이드리언이 환자 상담을 몰래 녹음해 보관한 비밀방을 발견했다. 테이프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던 트리샤는 또 다른 숨겨진 지하실을 찾아냈는데, 그 안에 부패한 사체가 놓여 있었다... 

2년 전, 유명 정신과의사 에이드리언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차량 타이어를 훼손했었다. 그런데 그 장면을 찍은 환자 EJ의 협박이 시작됐고, 그녀는 연인인 컴퓨터 전문가 루크의 도움으로 영상을 삭제하려 했지만 EJ는 이 장면마저 촬영해 협박 수위를 높였다. 결국 에이드리언은 EJ 살해를 결심하는데...

프리다 맥파든이 쓴 심리 서스펜스 스릴러 장편 소설입니다. 최근 너무 일본 작품만 읽은 듯 하여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편식은 좋지 않으니까요.

이 작품은 2년 전 정신과 의사 에이드리언 헤일의 시점과 2년 후 현재 트리샤의 시점이 번갈아 전개되다가 결국 두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전개 방식 자체는 특별히 독창적이지 않지만, 이 과정을 통해 트리샤가 에이드리언의 환자 PL과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반전은 인상적입니다. PL이라는 이름은 패트리샤에서 비롯된 것이고, 트리샤는 (패)트리샤였던 겁니다.

PL은 원래 약혼자와 친구들과 캠핑을 갔다가 의문의 연쇄살인마에게 습격당해 혼자 살아남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약혼자와 친구의 불륜을 알게 된 뒤 두 사람을 살해하고, 이후 살인마에게 습격당한 것처럼 꾸며온 것이 진상이었습니다. 에이드리언은 외상 후 스트레스 치료를 위해 찾아온 PL과의 상담 과정에서 이 사실을 간파했고, 자신을 협박하던 EJ를 제거하기 위해 트리샤를 이용했습니다. 그러나 진실이 드러날까 두려워진 트리샤는 오히려 에이드리언을 살해하고 시체를 감췄지요. 

한편, 에이드리언의 집 지하실에서 발견된 시체는 에이드리언이 아니라 EJ였는데, 이는 에이드리언이 EJ를 감금해서 살해했기 때문입니다. 루크가 지하실에서 발견한 사체를 보고도 에이드리언이 아니라고 확신한 이유 역시 흥미로웠습니다. 시체가 청바지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여성의 것이라고 판단했는데, 이런 디테일은 확실히 여성 작가스러워서 좋았습니다.

그러나 이 진상, 반전에 이르는 과정은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습니다. 트리샤는 에이드리언을 살해한 범인인데, 마지막 반전이 드러날 때 까지 트리샤 시점 전개에서 그 사실을 철저히 숨기고 심약한 임산부로만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3인칭도 아니고 1인칭 시점이며, 다중인격도 아닌데요. 이건 반칙입니다.

억지스럽고 작위적인 설정과 묘사도 많습니다. 트리샤가 굳이 비밀리에 테이프를 듣는게 대표적입니다. 트리샤는 EJ를 죽인건 에이드리언이고 루크가 범인이 아니라는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그 둘의 상담 테이프를 들을 이유는 없어요.
트리샤가 이선이 어머니를 살해했다는걸 알고, 그런 그에게 자기 범행을 고백한 뒤 부부가 함께 입을 막기 위해 루크를 살해하고 사체를 파묻는다는 결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선의 범행은 지금 와서는 제대로 증명할 수도 없고, 그나마 증거라는 테이프도 태워버렸습니다. 그러나 트리샤의 범행은 잔혹함과 규모에서 이선의 범행과는 수준이 달라요. 아무리 부창부수라지만 이선이 선뜻 트리샤의 손을 잡는다는건 와 닿지 않았습니다. 

여러모로 설명도 부족합니다. 트리샤가 에이드리언을 왜 살해했을까요? 트리샤는 EJ를 납치하는 자기가 CCTV같은데 찍혔을지도 모른다며 에이드리언을 살해했는데, 전혀 와 닿지 않습니다. 에이드리언을 죽인다고 CCTV 데이터가 사라지는게 아니니까요. 스스로 EJ의 사체를 없애기 위해서라는 목적도 억지입니다. 사체가 발견되면 가장 문제가 될 건 에이드리언이니, 그녀가 알아서 잘 숨겼다고 믿는게 당연합니다. 되려 시체만 하나 더 늘렸고, 유명인사 에이드리언의 실종을 초래하여 경찰이 수사에 나서게 만들었을 뿐입니다. 수사 당시 경찰이 저택 비밀 공간들을 제대로 찾아내지 못한건 순전히 운이었고요. 
저택에 누군가 침입한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이선이 지나치게 태평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 루크가 저택에 침입한 이유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결말도 별로입니다. 환자를 돈으로만 대했고, 특별히 좋은 치료를 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환자를 살해하기 까지 한 에이드리언 헤일은 죽어도 쌉니다. 트리샤, 이선 급으로 나쁜 악당이니까요. 그러나 엄청나게 순수했고, 진심으로 에이드리언을 사랑했을 뿐인 루크를 마지막에 부부에게 개죽음당하게 만든 결말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부부의 행복한 생활과 트리샤가 이선마저 죽일 수 있다는 에필로그보다는 루크의 죽음이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드러날거라는 식으로 그리는게 훨씬 좋았을겁니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처럼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반전은 흥미롭지만 반전을 반들기 위한 의도적인 가짜 서술 트릭물이라서 감점합니다. 억지와 작위적인 전개도 거슬렸고요. 그다지 추천할 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2020/05/05

C.M.B. 박물관 사건목록(씨엠비) 36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3.5점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36 - 8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산의 의사" 

티벳 불교 색채가 진하게 남아있는 인도 라다크 지방에 방문한 신라는, 전통 의료인 '아무치' 얀단의 부탁으로 보물 찾기에 나섰다. 서양 의학도 배우고 싶어하는 얀단을 돕기 위해 스승 챤단이 귀한 약재를 팔아 학비를 대 주기로 했지만, 급작스러운 사고로 죽은 탓에 약재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C.M.B 스러운 현학적인 즐거움이 가득했던 작품입니다. 등장인물의 직업인 티벳 전통 의료인과 이야기의 무대인 히말라야 산, 보물을 노리는 마을 사람들을 현혹하는 속임수로 쓰이는 산 산호 등에 대해서도 특유의 만화적이면서도 친절한 설명으로 쉽게 전해주는 덕분입니다. 특히 티벳 불교에 대한 여러가지 정보가 많은데, 만다라와 전통 사원의 스투파, 챠크라와 같은 해당 정보가 보물을 감춘 장소와 연결된다는 점이 아주 돋보어요. 만다라와 사원 바닥의 챠크라라는 단서를 눈치챈 뒤, 챠크라는 '문을 밖으로 여는 것' 인데 사원의 문은 안으로 밀어 열기 때문에, 밖으로 밀면 숨겨진 장소가 나온다는 추리가 꽤 그럴듯했거든요. 사원의 문을 밖으로 미는 장면은 가슴이 두근거릴만큼 멋졌고요.

딱히 범죄라는게 등장하지도 않고, 보물이 숨겨진 장소에 대해 여러가지 알아낼 방법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 일단 벽이 비 정상적으로 두껍잖아요? - 추리보다 지식 전달 측면에서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지만, 완성도는 충분합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루바이야트 이야기"

오마르 하이얌의 4행 시집인 '루바이야트'를 둘러싼 살인극을 다룬 작품입니다. C.M.B로는 이례적으로 2화 분량을 사용해가며 조금 긴 호흡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11세기 사마르칸트에서의 이스마일파 하산과 그의 친구 오마르의 이야기와, 현대에서 벌어진 살인과 루바이야트를 둘러싼 음모를 모두 다루기에는 어느 정도의 분량이 필요했기 때문이지요.

핵심 소재인 '루바이야트'라는 시집의 존재에 대한 정보는 기대에 값합니다. 상세할 뿐 아니라, 그 유래와 현재까지도 알기 쉽게 설명해 주고 있으니까요. 이를 이스마일파의 하산, 아사신, '산의 노인'과 연결시키는 과감한 아이디어 역시 돋보였고요. 

추리적으로도 나쁘지 않습니다. 트릭이 꽤 괜찮은 덕분입니다. 첫 번째 밀실 트릭, 즉 완벽하게 잠겨진 공간에서 칼에 찔려 살해된 상황은 '창'을 이용한 것인데 꽤 현실적이라 설득력이 높습니다. 높은 탑에서 사람을 밀어서 추락사시킨 트릭은, 탑 아래에서 발판이 되는 판자를 들어 올린 것으로 이 역시 그럴듯했어요. 사람이 민 것처럼 꾸미기 위해 윗 옷에 손자욱을 남겨 따로 유기한 작전도 나쁘지 않았고요. 사소한 말 실수가 범인을 드러내는 결정적 단서가 된다는 이야기는 다른 에피소드들에서도 많이 등장했었죠. 그러나 다른 에피소드의 경우, 억지스러운 말 실수도 많았는데 이 작품에서는 합리적입니다. 범인의 말 실수는 가짜 루바이야트를 담고 있던 물건을 가방도 아니고, 상자도 아닌 일본식 '보자기'로 표현했던 것인데, 이는 물건을 담아 온 피해자가 일본인이었던 덕분으로 서양인은 알기 어려운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첫 번째 사건 현장의 나이프가 흉기가 아니라는걸 경찰이 눈치채지 못했다는건 아무리 이국 경찰의 부실 수사로 치부하더라도 문제가 있는건 사실입니다. "미스터리 민속 탐정 야쿠모"에서 더 멋진 방법으로 같은 트릭이 사용되기도 했지요.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두 번째 트릭이 사용된 사건입니다. 트릭을 이용해 '사고 현장인 탑에 올라간 사람은 없다'는 상황을 만드는게 범인에게 딱히 도움이 되는게 없거든요. 추락사한 플럼과 범인 로즈의 대립이 살짝 있기는 했지만, 로즈의 목적인 루바이야트 발굴은 이미 시작된거나 다름 없으니 그녀가 이런 범행을 저지를 이유도 없어요. 차라리 트릭을 사용하지 않고 '자살'로 꾸몄다면 억지스러워도 말은 되는데, 가공의 범인을 꾸며낼 이유 역시 없습니다. 첫 번째 사건에서 밀실이 된 건 범인의 의도가 아니라 피해자가 들고있던 나이프가 흉기로 오해된 까닭으로, 여기에 맛들인 범인이 불필요한 단서를 추가했다는게 이유라고 설명되는데, 사고사나 자살을 구태여 살인으로 위장할 필요는? 당연히 없습니다.

즉, 트릭은 좋았지만 실제 범행에 사용될 당위성을 설명하는데 실패한 셈입니다. 트릭이 아깝네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카스미장 사건"

경시청 형사 타나바다는 부랑자로부터 '카스미장'이라는 아파트 관리인이 최근 보이지 않는다는 정보를 들었다. 조사를 나선 그녀와 동료는 관리인의 아들을 만났고, 들어간 카스미 장에서 혈흔 등의 범죄 흔적을 발견했다. 그리고 아들은 카스미 장의 위치가 좋다는 이유로 수상한 부동산 업자가 아파트를 팔 것을 강요했다고 말했고, 부동산 회사에서는 무언가를 파묻은 도구를 보게 되었다. 이를 사건화하기 위해 사체를 찾아내야 하는 타나바다는 부동산 회사에서 가져온 흙을 신라에게 전달하여 사체 은닉 장소를 알아내려 하는데...

이전 작품에서 등장했던 신참 형사 타나바다가 등장하는 사기극입니다. 카스미장 아파트 관리인은 자기 발로 사라진 것이며, 아들은 아들을 자칭한 사기꾼으로 사체 발견 뒤 경찰에 의해 아들임이 공인되어 당당하게 아파트를 매매하려 했다는 진상은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좋았습니다.
그리고 타나바다 등이 발견한 관리인의 사체 일부는 사기꾼의 아버지 손목이었습니다. 사기꾼이 진작에 자연사하여 매장되었던 자신의 아버지 사체의 손목만 관리인의 시체처럼 위장하여 암매장한거죠. DNA 검사를 통해 사기꾼 자신이 시신의 혈육으로 당당하게 인정받기 위함으로, 이를 위해 카스미 장과 꾸며낸 가짜 부동산 회사 등에 여러가지 조작한 단서를 남겨 놓은 것이었습니다. 타나바다 등은 이에 홀랑 속아 넘어갔고요.

또 조작에 말려들어 사기꾼의 계획대로 행동하던 타나바다가, 마지막에 '형사의 감'은 무엇이 진짜인지 의심해 봐야 한다는 선배 형사의 충고를 토대로 진상을 풀어낸다는 결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형사의 감'이 대관절 무엇인지?에 대해 조금이나마 해답이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본인 스스로 정답이라고 생각할 때까지 생각해 본 결과로, 단순한 '감'은 아닌 것이죠.

그러나 이야기를 무리하게 C.M.B 스럽게 만들기 위한 억지는 조금 거슬렸습니다. 대표적인게 부동산에 약간의 흙더미를 남겨 놓은 걸로 경찰이 사체(로 위장한 손목) 를 찾게 한다는 조작입니다. 이 흙더미에서 신라가 특정 지역에서만 서식하는 곤충을 발견하여 암매장한 장소를 알아낸다는건데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되요. 우리나라로 따지면 "강원도 산간 일대에 서식하는 곤충이다" 정도의 정보로 달랑 형사 2 명이 암매장한 손목을 발견한다?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보다 많은, 다른 정보가 필요했어요. 예를 들면 부동산 회사 차량이 어느 국도를 이용했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지요.

본 편 이야기는 좋았는데, 무리한 시리즈화로 오히려 감점 요인이 생겼다는 점에서 무척 안타까왔던 작품입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차라리 신라가 등장하지 않고 우직한 경찰의 수사로 암매장 장소를 발견했다고 하면 별점 4점 이상은 충분했을겁니다.

그래도 3편 모두 평균한 별점은 3.5점. 간만에 재미와 정보 제공, 추리 요소 모두 만족스러웠습니다. 다음 권에서도 이 분위기 쭉 이어가 주었으면 합니다.

2016/08/09

사쿠라코 씨의 발밑에는 시체가 묻혀 있다 1 - 오타 시오리 / 박춘상 : 별점 1.5점

사쿠라코 씨의 발밑에는 시체가 묻혀 있다 1 - 4점
오타 시오리 지음, 박춘상 옮김/디앤씨북스(D&CBooks)

소설 리뷰를 하면서 별점을 주는 데에는 나름의 기준이 있습니다. 캐릭터가 얼마나 매력이 있는지, 이야기는 재미가 있는지, 묘사를 비롯한 전체적인 완성도와 설득력, 독특한 아이디어가 있는지, 그 외의 다른 가치가 있는지 등을 놓고 검토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기준으로 볼 때 이 작품은 점수를 줄 부분이 거의 없습니다.

전통적인 양갓집 아가씨로 엄청난 미인이지만 별난 성격에 "뼈"에 집착한다는 설정의 탐정역인 사쿠라코 씨 캐릭터부터 별로입니다.
양갓집 미인 아가씨라는 것은 진부함의 극치, 그리고 별난 성격은 도가 지나쳐 거북합니다. 누구를 대하더라도 반말조에, 상대방을 위한 배려 등 최소한의 예절도 갖추지 않아서 호감을 갖기 어려운 탓입니다. 만화에서 봄직한, 외계에서 와서 지구 습관을 잘 모르는 미녀 외계인 캐릭터 같은데 만화라면 모를까 현실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어요. 왜 이런 성격이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전무하고요.
탐정이 건방진건 문제가 아닙니다. 고전 본격물 황금기의 명탐정들은 대체로 잘난 척 대마왕들이기도 했으니까요. 허나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실력, 지위, 실적이 그들의 건방짐을 뒷받침했고, 아무에게나 무례하게 대하지는 않았습니다. 실력, 지위, 실적 중 그 무엇도 갖추지 못하고 그냥 건방지기만 한 사쿠라코 씨는 인간 말종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아서 혐오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사건에 엮이는 원인이 되는 "뼈"에 대한 집착도 문제입니다. 진부함을 타개하기 위한 작가의 노력은 눈물겹지만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이야기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도 못하고요. 왜 이렇게까지 독특함에 집착했는지 알 수 없지만, 차라리 진부하더라도 뼈와 연관이 있는 전문 직종을 엮는 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이렇듯 캐릭터 문제가 너무 심각해서 이야기가 대단히 재미있지 않다면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든데, 재미 역시 합격점을 주기 어렵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별볼일 없고요. 세 편 모두 정교함이나 트릭이 돋보이지도 않고 억지가 너무 심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특이한 점이라면 북일본 아사히카와라는 독특한 지역을 무대로 그곳의 지형이라던가 명소, 특산물 등에 대한 묘사가 이루어진다는 정도인데, 딱히 중요한 부분은 아닙니다. 그냥 지엽적인 묘사에 그칠 뿐이거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라이트*캐릭터*미스터리*읽는 재미'라는 취지로 디앤씨북스에서 나온 시리즈 중 하나인데, 이 중 라이트(가볍게 읽을 만하다는 정도?) 외에는 해당되는 게 없네요. 사쿠라코 씨 신상에 뭔가 변화가 있을 것 같은 암시를 주는 등 노골적으로 시리즈임을 드러내지만, 후속작을 읽을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추리물을 좋아하시는 애호가라면 근처에도 가지 마시고, 제 덕분에 지뢰 하나 피했다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수록작별 상세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합니다. 제 리뷰를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이 책을 읽으시리라 생각은 되지 않지만요.

"아름다운 사람"

화자인 나는 사쿠라코 씨의 호출로 그녀를 찾았다. 그녀가 가자미 뼈를 선물하는 와중에 화자 어머니의 전화가 걸려왔다. 여러 채의 임대 주택을 운영하는 어머니가 연락이 두절된 입주자 방문을 여는데, 입회해 달라는 부탁 전화였다. 내용을 전해들은 사쿠라코 씨는 자신이 사체 전문가라며 동행을 요구했고, 일행은 입주자 미즈시마 키요미의 방문을 열어 그녀의 사체를 발견했다. 그런데 방은 완벽하게 밀폐된 상태였다...

사쿠라코 씨와 주인공 소개와 함께 이야기가 펼쳐지는 시리즈 첫 작품입니다. 

밀실을 만드는 것은 제삼자가 개입했다는 사실을 지우기 위해서로, 얼핏 보아도 살인 사건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밀실을 꾸며야 할 이유는 없다는 사쿠라코 씨의 이론만큼은 그럴싸합니다. 

그러나 이 이론은 20여 년 전 "nervous breakdown"에서 이미 접했던 것이라 신선하지는 않습니다. 그 외의 추리적인 내용은 거의 모두 억지스러웠고요. 우선 피해자의 동생 요시미와 피해자의 약혼자 하시구치가 불륜 관계였다는 것을 밝히는 추리부터 억지입니다. 언니의 죽음을 접하고 예비 형부에게 안겨 우는 것이 뭐 그리 이상한 일일까요? 요시미의 스타일을 언급하는 것도 불필요했고요.
또 피해자가 독초 열매를 따먹고 죽은 것이라는 진상은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약사가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식물원까지 가서 열매를 몰래 따는 수고를 감행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극심한 고통도 예상되고, 사후 동공 확장 등으로 아트로핀 과다 섭취가 충분히 의심될 수 있어서 진상을 숨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고통 때문에 방이 어질러졌다는 상황을 만들기 위함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작위적이며 설득력이 낮아요.

때문에 별점은 1.5점입니다. 캐릭터, 내용, 추리 모두 수준 이하로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이 없네요.

"머리"

사쿠라코 씨의 "뼈 줍기"에 동행한 나는 마시케 초로 향했다. 해변에서 사람 두개골의 일부를 발견한 나는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 야마지 씨로부터 동반 자살 시체가 발견되었다는걸 들은 사쿠라코 씨는 잠깐만 사체를 보게 해 줄 것을 부탁했고, 잠깐의 관찰로 사건의 진상을 알려주는데...

오른손잡이가 오른손을 묶은 이유, 보우라인 매듭이라는 독특한 매듭을 사용한 것과 매듭의 위치 정도의 단서로 자살이 아니라 타살임을 주장한다는 내용입니다.

추리만 놓고 보면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연히 발견된 변사체에 대한 추리를 펼치는 것이기에 사건성이 있다기보다는 그냥 '여흥'에 불과하다는게 아쉽네요. 매듭을 묶은 손, 매듭의 위치 등 매듭 관련 추리는 이전의 많은 작품에서 반복된 것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주지도 못하고요.

이 추리보다는 차라리 우연히 발견한 반려동물의 사체를 주인에게 가져다 주며 펼치는 추리가 더 괜찮습니다. 왜 사체가 정류장 지붕 위에 있었는지, 사인이 무엇인지 등을 담담하게 설명하는데 설득력이 아주 높아요. 이 이야기만 가지고 일상계처럼 푸는 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이렇게 본편 이야기보다는 곁다리 이야기, 그리고 마시케 초의 먹거리(단새우 등)에 대한 소개가 더욱 돋보였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그나마 수록작 중에서는 베스트네요.

"장미 나무 아래"

나와 사쿠라코 씨는 사쿠라코 씨의 지인인 장미원 운영자 쇼코 씨의 저택으로 향했다. 병문안을 위한 장미꽃을 얻기 위해서였다. 쇼코 씨의 부탁으로 저택에서 진행되는 강령회에 참석한 둘은, 강령회에서 영매를 통해 쇼코 씨의 죽은 남편 아키히토 씨가 사실은 살해당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아... 뭐라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총체적 난국인 작품입니다. '강령회'라는 주요 설정부터가 그러합니다. 이게 현대 일본에서 가당키나 한 것일까요? 게다가 강령회를 이용하여 사기극을 벌인 이유가 사실은 피해자와 동성애 관계였다, 그것을 찍은 은밀한 비디오가 있었다는 진상은 어이를 상실케 만듭니다. 잘나가는 기업가, 정치가, 신부 등이 엮인 단체 동성애 그룹이라니 이거 참 소라넷을 능가하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 아닌가 싶네요. 그 외 영매를 가장한 요크 신부의 몇 가지 사기극은 너무나 유치했고요.

현실적이지도 않고, 설득력도 없고, 추리적으로도 뭐 하나 내세울 게 없는 이야기로 별점은 0.5점입니다. 이 시리즈를 다시 볼 이유가 없게 만들었다는 것이 유일한 가치라 할 수 있습니다.

2021/03/06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 권일용, 고나무 : 별점 3점을 읽는 자들 - 권일용, 고나무 : 별점 3점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 6점
권일용.고나무 지음/알마

권일용은 국내 최초의 프로파일러입니다. 경찰 학교를 졸업하고 일선 형사로 근무하다가 발탁되었지요. 감식 업무에서 재능을 발휘했던걸 눈여겨 보았던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장 윤외출의 덕이었습니다. 그 뒤 여러 수사에서 능력을 발휘하여 프로파일러로서의 입지를 굳혔고요. 

이 책은 권일용이 프로파일러로서 수사에 참여했던 6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국내 수사 기관에서 프로파일링이 어떻게 시작되어 성장했는지를 설명해주는 논픽션입니다.

첫 번째 사건은 2001년 조현길이 저질렀던 여아 살인 사건입니다. 가장 중요한 단서는 피해 여아 사체를 냉동실에 보관해서 사체 등 부분에 생겨난 일정한 간격의 가늘고 긴 눌린 흔적으로 냉장고 모델을 찾아낸 겁니다. 해당 냉장고는 업소용 중대형이었고, 이를 비롯한 여러가지 직접 확인한 단서를 토대로 권일용은 한국 범죄 사건 수사 역사상 처음으로 프로파일링 보고서를 제출하게 됩니다. 그의 보고서가 수사에 기여한 바가 있고, 보고서 속 범인상이 진범 조현길과 대체로 일치했던 덕분에 이후 국내 범죄 수사에서도 프로파일링이 활용되게 되었고요. 국내 프로파일링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뒤이어 권일용이 투입되었던 2003년 유영철 사건에서는 연쇄 살인을 알아채지 못하는 실패를 겪게 됩니다. 매스미디어를 통해 유영철이 경찰 수사 방향을 인지했기 때문입니다. 유영철은 범행 수법을 바꾸었고, 그 탓에 권일용은 이전 사건과 이후 사건을 연결짓는데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정통 수사기법의 한계도 잘 설명되고 있습니다. 수사팀은 대낮에 범행을 저지르고 피가 묻은 상태에서 도망을 갔는데도 목격자가 없다는 점에 착안하여 차량을 이용한 범죄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습니다. 그리고 차량 수색에 집중했지요. 하지만 권일용은 시대가 바뀌어서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집중하지 않는걸 깨닫고, 차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들어맞았습니다.
최초 노인 살인 사건 현장 근처에 교회가 있었던게 나름 의미가 있었다는 것도 권일용의 생각대로였습니다. 유영철은 '교회가 옆에 있지만 바로 앞에 사는 이 사람도 무참히 죽는다’라는 걸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고 합니다.
물론 사체 매장 현장에 표식을 한건 완전히 헛다리를 짚기는 했습니다. 권일용은 범인이 자신의 살인 행위를 반추하고 되돌아볼 것이라는 낭만적인 추정을 했는데, 유영철은 그냥 '사체를 묻은 데를 또 파면 귀찮아서' 표시를 한 것 뿐이었으니까요. 이렇게 단순한 실패보다는 나름 성과가 있었던 유영철 사건이 있었던 덕분에 권일용은 더욱 성장했고, 경찰 내에도 프로파일링 팀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뒤이은 정남규 사건에서는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단순 강도 상해범으로 체포되었던 정남규가 서울 서남부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임이 드러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된 자백을 권일용이 이끌어내게 되거든요.

2009년 강호순 사건에서도 권일용 팀의 분석이 그대로 들어맞았습니다. 범인은 '호의동승'으로 피해자들을 유인했고, 이를 위해 고급차를 탔을 것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인물일거라는 분석이었는데 실제로 강호순은 에쿠스를 탔으며, 범행 당시 깔끔한 양복을 입기도 했고, 차 대쉬보드 위에 개와 함께 있는 사진을 장식해 놓는 등 치밀하게 본인을 위장했다고 밝혀졌으니까요. 주변 사람들 평가도 굉장히 좋았다고 하지요

강호순 사건 중간에 맡았던 2007년 제주에서 발생했던 아동 성범죄자 성유철 사건은, 프로파일링의 활용보다는 아동 성범죄에 대한 특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2007년에 벌어졌던 고정민 (가명) 양 실종 사건에서는 사람의 자백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실제 범행을 저지르지 않은 사람이 거짓 자백에 이르는 과정과 거짓 자백 후 범행의 줄거리를 지어내는 모습 모두 교과서적으로 드러난 사건이더라고요. 흔히 이야기하는, 성폭행 피해자들이 확 물어버리고 소리를 지르는걸 왜 못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실체를 제대로 설명하기는 힘든 '공포심' 때문이라는데 굉장히 와 닿았어요.

또 끔찍한 연쇄 살인 사건을 통해 1960~1970년대에는 살인이 이해할 수 있는 범죄였는데, 왜 그 양상이 달라졌는지에 대한 분석도 상세합니다. 자본주의로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사회가 일부 구성원들을 스트레스로 압착할 때 일부 반사회적인 범죄자들이 복수심으로 무차별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살인자의 반사회성은 후천적 영향일 가능성이 높고요. 서구 사회에서는 반사회성에 유전적 요인이 있다고 여기지만, 단일 민족인 한국에서 유전적 이유로 누구는 괴물이 된다는 건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인데 그럴듯합니다. 복수심, 사회에 대한 분노로 가득차 있었던 유영철, 정남규와는 다르게 진짜 서구적인 쾌락 연쇄 살인을 저지른 강호순과의 차이도 잘 드러나고요. 하지만 저는, 과거에도 잔혹 범죄는 존재했던 만큼 연쇄 살인이 양극화로 더 증가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경찰 수사력의 발달로 과거 사건화되지 않았던 사건들도 밝혀지고, 이게 과거보다 발달한 매스컴을 통해 널리 알려진 탓에 증가한걸로 보이는게 아닌가 싶거든요. 이런 부분에 있어 깊게 연구된 자료가 있으면 좋겠네요.

그 외 단순히 당시 벌어졌던 범죄와 그 수사, 해결 과정 뿐 아니라 수사에 참여했던 프로파일러들의 생각과 행동도 자세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프로파일러가 무슨 마법사나 천재가 아니라, 수사를 돕는 역할이라는게 잘 드러나지요. 수사 현장에서 쓰이는 전문적인 은어 등 디테일도 좋습니다. 그리고 피해자 가족들의 가슴 아픈 현실도 충분히 설명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사형 제도에 대해 다시 한 번 곱씹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 잠깐 스쳐지나가듯 등장하기는 하지만, 권일용도 사형 집행에 찬성하는 입장이더군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교도소에서 교정, 교화가 가능하다고 쳐도, 사형을 선고받을 정도의 중죄를 저지른 범인을 교정, 교화시켜 사회에 복귀시킬 이유는 없습니다.

이렇게 여러모로 읽어 볼 만한 논픽션인건 분명한데, 건조한 르포르타쥬 문체가 아니라 권일용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적인 구성과 문체로 쓰여진건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호불호가 갈릴 것 같은데, 저는 확실히 불호 쪽이에요. 분명 실화인데 뭔가 각색되어서 왜곡되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한국 프로파일링의 역사를 담기 위한 취지 탓이었겠지만, 익히 알려진 사건에서 누구나 다 아는 정보를 빼곡하게 채워 놓은 부분들도 조금은 아쉬웠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3점입니다. 한국 범죄사, 프로파일링 역사에 대해 알고싶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2/07/17

지상아 - 문국진 : 별점 3점

지상아 - 6점
문국진/청림출판

국내 법의학자 1호라 할 수 있는 문국진 교수의 에세이집. 모 사보에 연재되었던 글을 모아놓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문국진 교수가 맡았었거나 알게 된 기이한 사건들 이야기가 많아서 논픽션 성격도 지니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런 류의 책으로는 국내에서는 독보적인 높은 판매고와 인지도를 지닌 책이 아닐까 싶은데, 워낙 오래전에 발표되었기에 지금 읽기에는 조금 낡았을지는 모르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은 확실합니다. 외국의 사건집 못지않네요.

많은 사건이 실려 있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받은 중년 여성의 사체가 발견된 사건입니다. 처음에는 등에 생긴 큰 자창 탓에 살인사건으로 의심하나, 자창을 분석한 뒤 사후에 배의 스크류에 의해 생긴 것이라는 것을 밝혀내고 이후 사체의 짧은 음모 길이를 통해 자궁 수술을 받은 시기를 추리해내어 지병 때문에 비관자살한 것으로 결론 내립니다. 이게 바로 CSI! 재미와 과학적 분석이 결합된 놀라운 사례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외에도 얼마 전 읽었던 인터뷰집 "법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뻔했다"에도 소개된 일본의 강간 살해 위장 사건, 청산염을 복용한 사체의 시반은 선홍색인데 냉동보관된 사체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된다는 것, 자살을 하기 위한 목 조르기와 타살의 차이점 등 추리소설에 사용해 봄 직한 소재가 다양하게 실려 있어서 아주 만족스러웠어요.

다만, 생활 속 단상이나 신변잡기를 기록한 짧은 에세이 부분은 몰입도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기는 합니다. 그래도 국내 법의학 여명기를 증명하는 좋은 책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저는 과거 절판본으로 읽었는데, 관심 있으신 분들은 최근 복간되었다니 꼭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복간본에는 "새튼이"라는 책이 합본으로 되어 있는데,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새튼이"는 저도 아직 읽어보지 못했거든요.


지상아와 새튼이 - 6점
문국진 지음/알마

2018/03/18

범죄 과학, 그날의 진실을 밝혀라 - 브리짓 허스 / 조윤경 : 별점 4.5점

범죄 과학, 그날의 진실을 밝혀라 - 8점
브리짓 허스 지음, 조윤경 옮김/동아엠앤비

법의학의 역사를 쉽게 설명해주는 일종의 미시사, 과학사 서적입니다. 통사처럼 '법의학'의 흐름을 일람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책의 시작은 별다른 과학적인 수사가 존재하지 않던 시대로, 비소가 특별한 검사법이 없어서 널리 쓰이던 1751년에 영국 여성이 아버지 독살 혐의로 기소되면서 과학 수사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 사건 소개입니다. 비소는 가열하면 마늘 향을 내뿜는데 용의자 메리의 약갑 속 물질을 가열하니 마늘 냄새가 났다는, 지금 보면 어처구니 없지만 당시에는 획기적인, 그야말로 과학 수사의 한 걸음을 내딛은 방법이 등장합니다. 이 증거로 메리는 교수형을 당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1806년 로제 교수가 '로제 검사법' 이라는 비소 검출법을 고안해 냅니다.

그리고 의사가 검시관이 되는 과정, 그 중에서도 프랑스의 알렉상드르 라까사뉴가 1881년 리옹에 '법의학 연구소'에 합류하여 부검에 참여하고 여러 제자를 양성하여 많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 자세히 그려집니다. 특히 유명한 '크리펜 사건' 은 대중에게 라까사뉴와 같은 법의 병리학자의 존재 및 그 유용함을 널리 알리게 됩니다. 병리학자 스필스베리가 크리펜 자택 지하실에서 발견한 사체가 크리펜의 실종된 아내라고 판단한게 사형 선고의 결정적 요인이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참고로, 최근 조사 결과로는 이 사체는 '남자의 사체' 였다고 합니다. 스필스베리의 추리대로 독살이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총으로 쏘고 사체를 절단하여 유기하는 건 일반적인 독살범 행태와는 다르기 때문에 잘못된 판단이었고요. 하지만 코라 크리펜은 결국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았으니... 크리펜의 범행은 성공했지만 우연에 의해 정의의 철퇴를 맞았다고 생각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네요.
여튼 이러한 최근 조사로 스필스베리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긴 했지만, 또 다른 유명 연쇄 살인 사건인 '욕조 속의 신부들' 사건 당시 어떻게 범행을 저질렀는지 조사하여 증언한 내용도 인상적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만삭 의사 부인 사망사건' 이라는 유사 사건이 있어서인지 더 기억에 남네요. 의사인 주제에 100년전 사기꾼보다도 유치하게 현장을 조작하다니, 사형 선고를 받지 않을걸 다행이라 여겨야 할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결국 1925년 노먼 쏜 재판에서의 논란으로 스필스베리의 완벽함에 균열이 가고, 대중도 병리학자의 결점과 오류 가능성에 대해 알게 됩니다.

미국에서는 유럽보다 늦은 1918년 법의관 제도가 시작되는데 법의관들의 활약으로 여러 건의 사건이 해결됩니다. 부검이 아니라 정말 탐정 뺨치는 추리로 범인을 밝혀낸 사건도 있습니다. 하숙집에서 노부인이 시체로 발견되어 자연사인줄 알았는데, 현장에 도착한 법의관이 '가정부가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면 문은 안에서 잠겨있었다는 뜻인데, 그럼 열쇠는 어디 있는걸까?'라는 의문을 품었습니다. 그래서 수사를 이어간 끝에 열쇠를 소지한 범인을 잡는다는 결말인데, 당장 추리 소설에 응용해도 좋은 멋진 추리였어요.

이러한 법의관 제도의 역사와 함께 발전해 온 과학적인 수사 방법도 상세합니다. 지금은 일반 상식이 된 범죄 현장의 증거를 토대로 한 수사는 1세대 법과학자 에드몽 로카르가 셜록 홈즈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을 정도로 홈즈의 영향이 컸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에드몽 로카르를 비롯, 오스트리아의 한스 그로스, 프랑스의 빅토르 발타자르, 미국의 벤자민 모건 밴스 등 여러 선구자들의 활약으로 해결된 사건이 연대별로 흥미롭게 소개됩니다. 여기에 더해서 과거에는 분석하지 못했고, 알지 못했던 정보로 현대에는 어떻게 사건이 해결되었는지를 병렬로 설명하고 있어서 이해를 돕고요.

뒤이어 각종 분석 방법들을 한 챕터씩 할애하여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챕터별 구성은 대동소이합니다. 해당 분석법의 역사와 주요 인물, 그리고 해당 분석법이 활용된 주요 사건이 소개되는 식이죠. '지문'의 경우, 뎁퍼드가 살인 사건을 비롯한 거의 모든 내용은 이전에 읽었던 "지문"에서 더욱 상세하게 설명되고 있어서 딱히 언급할 부분은 없습니다. 그래도 샤를리즈 테론의 "몬스터"로 잘 알려진 에일린 워노스 사건 소개는 기억에 남네요. 그리고 '다른 사람의 지문'을 숨겨야 했던 사건도 재미있습니다. 시체를 자신이 죽은걸로 위장하려고 기도한 사건인데 황당한건 시신의 신원만 위장했지 정작 범인 자신의 신원은 위장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후 다른 사건 사례를 통해 지문의 결함이 있다는 점도 알려주며 마무리됩니다.
이와 함께 베르틸롱(베르티용) 측정법도 함께 실려 있는데, "지문"에서 언급되지 않았던 베르틸롱 측정법의 심각한 문제인 "쌍둥이는 구분할 수 없다"의 실제 사례는 흥미로왔습니다.

총기 분석에서는 유명한 '사코와 반체티 사건' 에서 최근 분석 결과 사코는 진범이었을 수 있다는 결론. 그리고 알 카포네의 '발렌타인 데이의 학살' 관련 수사가 재미있었어요.

혈흔 분석 챕터에서는 "도망자"의 모델 샘 셰퍼드 의사 부인 살인 사건이 가장 흥미로왔습니다. 혈흔 분석을 통해 재판 결과가 뒤바뀌는 과정도 재미있지만, 무엇보다도 최근의 조사 결과와 결론을 내리기 위한 다양한 시도, 그리고 결론이 아주 새롭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는 '피해자학(희생자가 살해될 요소가 무엇인지? 를 분석하여 동기, 용의자를 알아내는 기법)'을 토대로 메릴린이 희생자가 될 확률은 오로지 불안정한 결혼 생활 뿐이었다고 단언합니다. 현장이 조작된 증거도 상세하게 실려 있고요.

시신 분석 사건에서는 '아이스맨'이라는 별명의 살인 청부업자가 피해자의 시신을 수 년간 냉동한 후 유기한 사건이 등장합니다. 실제 범행은 수년 전이지만 3~4 주 전에 살해된 것으로 오인하게 만들기 위해서였지요. 하지만 여러가지 증거를 토대로 진상을 밝혀내고 범인을 체포하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하는 내용은 흡사 미드 "CSI"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유골 분석은 다른 챕터에 비하면 사례의 재미가 조금 덜한 편입니다. '아나스타샤 사건'으로 법의인류학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는 정도만 괜찮았어요.

마지막은 프로파일링과 DNA 분석이라는 최신 수사 기법으로 마무리됩니다. 프로파일링은 익히 수많은 책을 통해 접했던 내용의 요약이지만, FBI 행동 과학부의 수사관들이 활약한 사건들은 흥미진진합니다. 사건에서 프로파일링 기법의 활용도 잘 설명되고 있고요.
DNA 분석은 이를 통해 해결한 사건보다도 증거가 왜곡된 사건들이 더 기억에 남습니다. DNA가 악수 등으로 쉽게 옮겨질 수 있기 때문으로 이를 통해 잘못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례는 물론, '바이트 마크' 와 같이 오류가 있는 증거가 채택되어 발생한 문제 등이 함께 소개되는데 참 무섭더군요. 요새도 증거 조작이나 오인식, 각종 오류로 피해를 보는 사례가 가끔 보도되는데, 항상 조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법의학, 법과학에 대한 통사적인 이해는 물론, 실제 사건과 연계하여 한 편의 추리 소설을 보는 듯한 재미도 전해주는 좋은 책입니다. 내용도 이해하기 쉽게 쓰여져 있으며, 도판들도 적절한 수준으로 삽입되어 있는 등 전체적인 책의 완성도도 빼어납니다. 한마디로 재미와 가치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보기드문 좋은 책이에요.
분량 상 개략적으로 설명한 부분이 많으며, 이미 각 분야별로 상세하게 설명한 다른 책들을 통해 제가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 제법 된다는 점은 아쉽지만 큰 문제는 아닙니다. 별점은 4.5점입니다. 이쪽 분야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2010/08/14

스몰 플레인스의 성녀 - 낸시 피커드 / 한정은 : 별점 2.5점

스몰 플레인스의 성녀 - 6점
낸시 피커드 지음, 한정은 옮김/영림카디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 있습니다!

1987년 1월 23일, 미국 캔자스 주의 작은 시골 마을 스몰 플레인스에서 보안관 네이슨과 그의 아들 렉스, 패트릭이 얼어죽은 10대 소녀의 사체를 발견했다. 네이슨은 절친이자 의사인 쿠엔틴 레이놀즈에게 사체를 가져갔지만, 쿠엔틴은 신원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사체를 훼손했다. 우연히 이 장면을 목격한 판사 톰의 아들 미치 뉴퀴스트가 이 사실을 아버지에게 알리자, 오히려 그는 부모에 의해 쫓기듯 다른 지역으로 떠나게 되었다.

결국 마을 공동묘지에 묻힌 신원불명의 여자 사체는 어느새 소원을 성취시켜주는 ‘기적의 동정녀’로 추앙받았는데,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2004년. 미치가 마을로 돌아와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고 자신의 잃어버린 과거를 되찾기 위해 행동을 개시한다....

애거서상과 매커비티상을 동시에 수상한 여성 추리작가 낸시 피커드의 장편 추리소설입니다. 에드가상만 아깝게 놓쳤다고 하네요. 이러한 상을 탄 작품은 보통 기본은 해 주기에 기대하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유명한 상을 수상한 작품답게 작품 자체의 흡입력은 대단해서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한번에 읽게 만드는 힘은 있습니다. 마지막에 밝혀지는 제프 뉴퀴스트의 정체와 같은 반전도 꽤 효과적이었고요. 미국 정통 장편 추리소설의 큰 뿌리 중 하나인, '소도시의 인간관계에서 촉발되는 사건'이라는 테마를 잘 살렸다는 것도 매력적입니다. 물론 이 작품은 협소한 인간 관계에 많은 부분을 기대고 있는 탓에, 반칙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많았다는 문제가 있긴 합니다만... 

그러나 아주 좋은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사건의 동기와 전개에서의 합리성이 부족한 탓입니다.
우선 사건의 원인이 되는 17년 전 사건에서는 판사의 아내 나딘이 새러를 눈보라치는 밖으로 내보내어 죽게 만든 것부터 문제입니다. 죽인 다음에 파 묻던가, 자신들 방공호?속에 감추던가 했으면 후환이 없었을 겁니다. 괜히 밖으로 내쫓아서 보안관 네이슨이 시체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래서 사건이 커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지요. 네이슨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시체를 발견했다면 어떻게 하려 했는지도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고요. 

의도하지 않게 알아서 긴 친구들의 행동 역시 합리적이지 못한건 마찬가집니다.게다가 아무리 연고없는 처녀라고 해도 온 마을 사람들이 다 아는 아가씨가 사라졌는데 아무도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네요. 이렇게 작은 마을에서 유야무야 넘길 일은 아니었을겁니다. 한마디로 운이 좋아서 사건이 미궁에 빠진 것이라서 추리적으로 잘 짜여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판사의 변태 성욕에 대한 묘사가 막판까지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것도 반칙이고요.

그 이후, 17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의 전개 역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어차피 미치가 돌아와서 사건을 들쑤시게 되면 진상은 밝혀졌을 겁니다. 미치가 본 증거가 너무나 확실하고, 그 상황에서 의사 쿠엔틴이 사건을 계속 은폐해 줄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니까요.
판사 톰이 의사와 보안관을 다 쏴버렸다면 모를까, 관계자가 모두 생존해 있고 유력한 증인이 살아있는 상황에서 당당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며 살아왔다는 것 역시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그 외에도 죽은 새러가 '성녀'로 추앙받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이라던가 갑작스러운 토네이도의 습격같은 작품과 무관한 부분이 너무나 많으며, 뜬금없는 판사의 폭주에 의한 마무리와 할리퀸 로맨스같은 결말도 너무 황당하고 오버스러웠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과거의 범죄와 현재의 살인 사건이 있기는 하지만, 추리보다는 시골 마을의 사람 사는 이야기 느낌이 더 강합니다. 추리 소설이라기보다는 범죄 스릴러가 가미된 드라마에 가까와요. 때문에 추리 소설 애호가분께 추천드리기는 어렵습니다.

2022/09/25

살인자의 사랑법 - 마이크 오머 / 김지선 : 별점 2점

살인자의 사랑법 - 4점
마이크 오머 지음, 김지선 옮김/북로드

<<아래 리뷰에는 진상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조이는 20년 전, 자기 동네에서 벌어졌던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이 이웃 글로버라는걸 알았지만 그가 도망가는걸 속수무책으로 바라만보았던 과거 탓에 프로파일러가 되었다. 그러나 글로버는 그녀 주위를 끊임없이 맴돌며 회색 타이를 보내는 방식으로 자기의 존재를 계속 어필해 왔다.
그리고 현재, 시카고에서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을 돕기 위해 조이는 FBI요원 테이텀과 함께 수사팀에 합류했다. 언론에서 '목조르는 장의사'라 부르는 살인범은 살해한 여자들을 방부처리하여 시내에 유기하고 있었다. 조이는 프로파일링과 수사를 진행하면서, 사건의 범인이 20년 전 사건의 범인 글로버일 것이라 생각하는데....


시체를 가지고 장난치는 연쇄 살인마와 프로파일러, FBI 요원 컴비의 대결을 그리고 있는 작품. <<살인자의 기억법>>과 비슷한 제목 때문에 영 손이 가지 않았던 작품인데, 읽어보니 생각보다는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추리적으로 꽤 괜찮았던 부분이 많았던 덕분이지요.
우선 연쇄 살인마인 '목조르는 장의사'의 정체를 밝혀내는 과정이 흥미롭게 그려집니다. 초반에 방부처리된 사체를 보고 가짜 프로파일러가 범인은 전문 장의사일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체의 발목 부분이 부패했다는걸 조이가 간파하고 범인은 이러한 사체 처리에 익숙하지 않은 초짜라는걸 밝혀내는 첫 장면부터 그럴듯했어요.
연쇄 살인의 패턴을 파악하여 범인의 정체를 추리하는 과정도 여타 연쇄 살인물과 비슷하지만 추리의 여지는 많은 편입니다. 예를 들어 피해자들의 키가 전부 달랐는데, 딱 맞는 옷을 입고 있었던 이유가 대표적입니다. 범인은 살해 전에 피해자들에게 옷을 사 입혔던 겁니다! 첫 희생자 집 배관이 자주 역류했다던가, 납치되었던 피해자가 범인에 대해 재갈이 물린채 했던 말 등을 통해 범인이 배관공이라는걸 드러내는 식으로 단서 제공도 비교적 공정한 편이고요.

범인이 여성들을 방부처리한 이유와 유기한 시체들이 전부 우는 듯한 표정이었던 이유를 범인이 오랫동안 함께 한 '연인'을 꿈꿨고, 그녀와 헤어지게 되자 사체들이 슬퍼하는 것 처럼 연출했다는 황당무계한 추리도 나름대로 설득력있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런 류의 작품에서는 그냥 범인의 광기 묘사에 집증하는 경우가 많은데, 비교적 객관적인 서술이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광기어리고 비참했던 유년 시절의 끔찍했던 학대가 원인이었다는건 다소 뻔했습니다만, 도화선이 된 사건은 동기로서는 충분하다 생각될 정도로 잘 그려져 있거든요.
아직 살아있는 피해자 목에 칼을 대고 협박하던 범인을 체포하기 위해, 조이가 범인의 판타지를 활용하여 방심하게 만들기 위해 범인 앞에서 옷을 벗으며, 팬티에 감춘 권총을 테이텀이 잡게 만드는 마지막 클라이막스도 영화화하면 괜찮았겠다 싶더라고요.
현재의 사건과 병행 진행되는 20년 전 과거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글로버가 진범이란걸 확신한 뒤, 그의 집에 몰래 잠입해서 증거를 뒤지다가 글로버와 마주치는 장면, 글로버가 조이의 집에 쳐들어와서 자매를 협박하는 장면은 굉장한 서스펜스를 안겨줍니다. 21세기 작품다운 속도감있는 전개 역시 좋았어요

그러나 워낙 뻔한 설정이라 비슷한 작품과의 큰 차이를 느끼기는 어려웠고, 캐릭터가 진부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프로파일러 조이 캐릭터가 대표적입니다. 어린 시절 겪었던 공포스러운 기억, 그에 따른 불면증, 감정적이면서 도전적인 말투와 행동 등 어디서 많이 보아왔던 여성 수사관 캐릭터와 별다를게 없거든요. <<양들의 침묵>>의 클라리스가 바로 떠오를 정도었어요. 그나마 조이에게는 여동생 안드레아, 그레이에게는 여든 살 넘은 할아버지 마빈이라는 가족이 굳건한 유대를 보여준다는건 좋았지만 , 이야기와 크게 관련이 있는 부분은 아니었습니다.

편의에 따라 작위적으로 쓰여진 부분도 눈에 뜨입니다. 20년 전 사건 관련 내용에 특히 그러합니다. 우선 12살 중학생의 고발이라 하더라도 이를 무시해버린 처사는 쉬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심지어 고발 직후 소녀들 집에 침입해서 협박하다가 도주까지 했는데 말이지요.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범인으로 몰려 자살했던 용의자 매니 앤더슨의 부모가 가만히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또 1996년이라는 시기는 그리 옛날도 아닙니다. 어느정도 법의학이 정립되어 있었을터라 분명 단서도 남아있었을텐데, 경찰이 매니 앤더슨에게만 촛점을 맞춘건 말이 안됩니다. 글로버의 철벽같았던 알리바이가 알고보니 매니 앤더슨을 옭아매기 위해 검시 보고서가 조작된 탓에 불과했다는건 솔직히 어이가 없더군요. 글로버는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이야기니까요. 이를 테이텀이 짧은 시간 동안 밝혀냈다는 것도 당황스러웠어요.
또 현재의 시카고 사건에 갑작스럽게 글로버가 끼어드는건 전혀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글로버가 등장하는 속편을 강하게 암시하는 결말은 정말 최악이었습니다. 설득력도 없어요. 조이가 동생 안드레아의 심층 트라우마를 일깨울까봐 글로버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안드레아가 글로버를 알아보지 못하고 납치될 수도 있다는건데, 조이가 스토킹을 당했다면 안드레아도 글로버의 먹잇감이 될 수 있는건 당연합니다. 진작에 최대한 상세히 정보를 제공해 주었어야 했어요.
덜 떨어진 것 처럼 보였던 글로버가 20여년 동안 FBI의 자문역도 맡고 있는 전문가를 거리낌없이 스토킹하며, 나중에는 덮치는데 성공한다는 것도 설득력이 없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과거의 알리바이도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인 충동적 범죄자에 불과하니까요. 게다가 조이가 습격당한건 대낮이었습니다. 미국의 치안이 이 정도로 엉망일까요?
납치되었던 피해자 전화를 통해 위치를 파악하려는 시도 외에는 범인을 잡아낼 방법이 없어 보인다는 것도 별로 와 닿지 않더군요. 범인이 범행을 저질렀던 거리까지 알아냈는데도 불구하고 범행 장소도 결국 특정하지 못하는 등, 시카고 경찰의 무능만 작품 전체에 걸쳐 도드라지고, 범인을 잡은건 오로지 조이의 프로파일링 덕분인데 이는 현실적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 장점이 없지는 않지만 아주 매력적이라고 보기는 힘드네요. 킬링타임용으로 적합한 작품입니다. 구태여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