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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04

루드비히, 퍼즐로 푸는 진실 (2024) : 별점 4.5점

유명 퍼즐작가로 필명이 '루드비히'인 존 테일러에게 형수이자 소꼽친구 루시로부터 경찰인 쌍둥이 형 제임스가 실종되었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여러 정황은 제임스가 모종의 이유로 스스로 몸을 감추었다는걸 알려주었다. 루시는 존에게 제임스인척 경찰서로 출근해서 존 실종에 대한 단서를 찾아달라고 부탁했고, 출근한 존 앞에 여러 불가능 범죄가 잇달아 펼쳐지는데....

영국 BBC에서 제작한 총 6화 구성의 추리 드라마 첫 번째 시즌입니다. 

가장 큰 매력은 독특한 설정입니다. 퍼즐 천재인 '루드비히' 존을 주인공 탐정역으로, 범죄 속 트릭들을 퍼즐의 일종처럼 선보이거든요. 존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하나의 ‘퍼즐’로 인식하며 본격적으로 해결에 나서고요. 마술사 탐정까지는 봤었는데, 퍼즐 전문가 탐정은 처음 보네요.

등장인물들도 매력적입니다. 퍼즐 제작에만 몰두하며 사회성과 현실 감각이 부족한 존이 갑작스럽게 경찰 역할을 맡아 좌충우돌하는 모습이 코믹하면서도 묘하게 현실감 있게 그려집니다. 형수 루시와 조카 헨리도 제임스 실종이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요. 그러고보니 존과 제임스 형제에 아들 이름은 헨리라니, 가족 자체가 영국적이군요. 
카터를 비롯한 경찰 동료들, 다른 등장인물들도 진지한 상황 속에서 영국식 유머를 자연스럽게 섞어내어 극을 재미있게 만들어 줍니다. 가족과 동료애가 끝까지 이어지는 것도 요사이 보기드문 미덕이라 할 수 있고요.

추리적으로도 빼어납니다. 1화에서는 여러 용의자의 알리바이를 교차 분석해 논리적으로 범인일 수밖에 없는 인물을 드러냅니다. 시청자에게 모든 정보를 공유하지 않아서 추리에 직접 참여하기는 어렵지만, 퍼즐 전문가의 해법으로는 충분히 설득력 있게 느껴집니다.

2화에서는 일종의 ‘숨은 그림 찾기’ 퍼즐 트릭이 사용됩니다. 존은 사진을 통해 벽지가 미세하게 이동한 점을 알아채고, 벽지 뒤 벽을 뚫어 숨겨진 시체를 찾아낸 뒤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지요. 피해자 사기꾼에게 사기당한 일행들이 단체로 범행을 저지르고 은폐했던건데, 앞서 등장한 여러가지 단서들로 설득력있게 설명됩니다.

3화는 두 개의 전혀 무관해 보이는 사건이 하나로 연결되는 ‘병렬 퍼즐’이 등장합니다. 관광 가이드 살인은 갑작스럽게 행해진 것으로 추리하고, 그 이유를 관광 코스를 직접 도는 방법으로 발품을 팔아 증명해내는데 수사와 진상 모두 깔끔하게 이어집니다.

4화는 체스말을 움직이는 방식으로 진범은 장치 트릭을 활용한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다섯 명의 동료들 작업 위치가 순차적으로 바뀌도록 유도해서, 피해자가 원했던 위치에 가도록 만든 뒤 장치를 통해 추락사하게 만든거지요. 존은 이를 '역행 제스' 퍼즐로 풀어냅니다. 이 퍼즐 자체가 루드비히' 존이 처음 만들었다고 소개되는데, 현재의 체스판 상태를 보고 이전 수를 맞추는 퍼즐이에요. 즉, 이전 수를 맞춰가면서 최초에 수를 둔 사람을 알아내 범인을 밝혀냅니다. 
퍼즐을 활용한 추리도 깔끔하지만, 피해자를 발전기가 있는 위치로 이동시킨 뒤 쇼트가 나가도록 배선을 망치고, 발전기를 가동하면 피해자가 감전되어 추락사하게 만든 장치 트릭도 합리적입니다. 다른 동료들이 모두 범인이 원하는 흐름대로 움직였던 것도 이전부터 자주 그래왔다는 설정이라 설득력있고요.
마지막에 발전기에 물을 뿌려 놓은 탓에 범인의 DNA가 묻은 물통을 확보했지만, 범인이 “자기는 1층에서 버렸다”고 주장하자 5층 현장에서만 쓰레기 수거장 안으로 투입 가능하다는 점을 추리쇼처럼 밝혀내는 장면도 볼만합니다.
한마디로 추리적으로는 나무랄 데 없는 에피소드입니다.

5화는 '밀실 살인' 트릭이 등장하는데, 꽤 그럴듯합니다. 주말 내내 잠겨있던 교장실에서 교장이 살해된채 발견되는 사건인데, 존은 범인이 밀실 안에 계속 있었다!는 대담한 추리를 내 놓습니다. 이를 발견하는 단서가 교장실 쓰레기통에 있던 '변색되지 않은 사과 조각'이라는 디테일도 인상적입니다. 누군가 교장실에 최근까지 있었다는 증거인데, 영상물에 잘 어울리는 디테일이었습니다. 존의 학창 시절 과거, 그리고 노인이라도 쓸모없는게 아니라는 메시지도 좋았고요.

6화는 루시의 살인 누명을 벗기고 진범을 잡는 이야기인데, '루시가 집에서 가져간 칼로 사망한 피해자'라는 결정적 증거를 뒤집는 추리가 아주 인상적이에요. 범인이 막 피해자 폴라를 칼로 찔렀을 때 루시가 자기 칼을 들고 그 집에 들어섰습니다. 범인은 입구에서 보이지 않는 식탁 뒤로 숨었고, 루시가 쓰러진 폴라를 보고 자기 칼을 내려 놓은 뒤 그녀에게 다가가자 범인은 루시에게 보이지 않는 사각으로 빠져나가면서 칼을 바꿔치기 했던 겁니다.
정통 본격물로 보아도 무방하다 싶을 멋진 트릭이며, 증거도 확실하게 제시됩니다. 범인은 바꿔치기한 루시의 칼을 폴라 부엌 칼꽂이에 꽂아두었는데, 이 칼에서 루시나 존의 지문이 나오면 바꿔치기했다는 증거가 되니까요.

이러한 각각의 사건들과 함께 제임스 실종 사건에 대한 조사와 추리도 계속 이어집니다. 결국 존은 제임스가 남긴, 누구나 들으면 스스로 떠났다고 생각할 메시지에서 암호 해독 키를 찾아내어 암호를 풀어내어 단서를 확보하게 됩니다. 그리고 정체가 드러났지만 능력을 인정받아 경찰의 고문역으로 일하며 형을 계속 추적할 존의 모습으로 총 6화의 시즌 1은 마무리 됩니다. 

1화와 2화, 3화 사건은 경찰 수사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을 듯 싶고, 경찰이 너무 무능하게 그려진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제임스와 폴라, 싱클레어 등이 관련된 진짜 음모도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고요. 제임스가 암호로 창고 위치를 남긴 이유와 사라진 이유를 창고에 남기지 않은 이유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재미와 추리 모두 빼어난 좋은 드라마였습니다. '루드비히'라는 주인공 필명에 어울리는, 베토벤 음악의 적절한 활용과 촬영도 좋고요. 시즌 2가 빨리 나오면 좋겠습니다. 제 별점은 4.5점입니다.

2025/03/01

명탐정 코난 : 100만 달러의 펜타그램 (2024) - 나가오카 치카 : 별점 2.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홋카이도의 하코다테에서, 괴도 키드가 히지카타 토시조에 썼다는 일본도를 훔치려 했다. 이 칼들을 모으면, 오노에 재벌 선대가 남긴 보물이 숨겨진 장소를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핫토리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키드는 칼을 훔쳐갔지만, 암호를 풀 수 없어서 코난 일행에게 돌려주었다.

이 때 오노에 가문 변호사가 살해되었고, 경찰은 모리 탐정, 핫토리와 함께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될 보물 찾기에 집중했다. 하지만 보물을 노리는 무기 상인 카도쿠라가 오노에 선대로부터 칼을 맡았던 전직 사범 후쿠시로를 납치했고, 괴도 키드를 쫓던 나카모리 경부도 카도쿠라에게 저격받아 중상을 입고 마는데...

"흑철의 어영"에 이은 명탐정 코난 극장판 시리즈의 27번째 작품입니다. 일본의 유명 관광지 하코다테를 배경으로 전설적인 보물과 연쇄 사건이 얽힌 미스터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선, 추리적으로는 꽤 흥미롭습니다. 숨겨진 보물을 찾기 위한 암호가 등장하는데, 전통 일본도의 구조와 히지카타 토시조가 남긴 시집, 하코다테의 오릉곽 등 실존하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허구가 아니라는 점에서 몰입감을 높이며, 사라진 성릉도 대신에 히지카타 토시조가 칼싸움 중 남겼다는 자국의 본을 떠서 코등이를 만드는 이야기는 팩션같은 재미도 줍니다. 덕분에 2차 대전 당시 숨겨진 무기라는 다소 비현실적인 설정도 그럴듯하게 포장됩니다.

주 무대인 오릉곽은 물론, 여러 하코다테의 실제 명소들이 등장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코다테 뿐 아니라 모미지가 좌충우돌하면서 다른 홋카이도의 명소를 보여주기까지 하고요. 덕분에 단순한 미스터리가 아니라 '여정 미스터리' 같은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엔딩에서는 실제 사진이 보여지는데, 꼭 한 번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극장판 코난 특유의 비현실적인 액션도 여전했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상대적으로 납득할 만한 수준이었습니다. 케이블카 선로를 따라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달리거나, 비행기 날개 위에서 검술 대결을 펼치는건 고속 열차가 탈선하거나, 거대한 건물이 무너지고 침몰하는 것에 비교하면 소소한 편이지요. 실제 명소들이 무대인 덕분이기도 할 텐데, 앞으로도 이러한 방향성이 유지된다면 좋겠습니다.

시리즈 팬으로는 핫토리 헤이지가 핵심 멤버로 활약한다는게 좋았습니다. 제 최애 캐릭터 중 한 명이거든요. 핫토리가 카즈하에게 고백하려고 전전긍긍하는 모습, 모미지의 훼방으로 고백에 실패하는 장면 등은 충분히 즐길만 했고요. 신이치와 괴도 키드가 닮은 이유(알고보니 사촌간!)가 밝혀지는 쿠키 영상도 호불호가 갈린다는데, 저는 재미있었습니다. 이렇게까지 괴도 키드 세계관과 엮을 필요는 없어 보이긴 했지만요.

그러나 단점도 없지 않습니다. 일단, 이야기가 너무 허술합니다. 초반에는 칼을 훔치려는 키드와 핫토리, 코난과의 대결이 펼쳐지고, 그 뒤에는 보물을 찾으려는 암호 해독이 진행됩니다. 이 이야기만 중심으로 전개해도 차고 넘쳤을 텐데, 경찰이 개입하게 하기 위해 변호사 살인 사건을 삽입한건 무리수였습니다. 애초에 범인이 저지를 이유가 없었던 사건이기도 했고요. 키드 역시 칼을 훔치려다가 돌려준 이후에는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이유가 없어서, 계속 등장하는건 억지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건의 동기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2차 대전 당시에는 전황을 바꿀 수 있을 만큼 강력했던 무기라 하더라도, 21세기에 경제적 가치를 가질리 없습니다. 이 당연한 이치를 무시하고, 악당들이 경찰에게 총질을 하고 일본 대도시에서 폭탄 테러를 하면서까지 이를 찾아다니는 전개는 현실성이 떨어집니다. 다른 이야기도 이 때문에 여러모로 이상하고요. 차라리 금괴가 보물이라는 설정을 밀어붙이는 것이 더 나았을 것입니다. 

추리적으로도 암호 풀이의 과정은 좋지만, 보물이 숨겨진 장소를 밝혀내는 마지막 장면은 많이 허술했습니다. 트릭은 성릉도의 코등이(?)의 모양이 오릉곽과 동일하다는 점을 이용한 것입니다. 먼저 기구를 띄운 뒤 칼을 바라보면서 오릉곽과 코등이의 형태가 일치하는 고도를 찾아냅니다. 기구 고도에 위치하는 장소는 하코다테 산 밖에 없으니, 하코다테 산의 이 고도 위치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건데, 실존하는 장소에 기반한 트릭이라는건 장점이지만 몇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선, 기구를 띄우는 위치를 정확하게 모르면 고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칼을 세우는 위치에 따라서도 오차가 생길 가능성이 크고요. 기구에서 산을 가리키는 정확한 방향을 모르면, 이 역시 오차가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이래서야 '하코다테 산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라는 말과 별다를게 없어서, 이렇게까지 고생해서 암호를 풀 필요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는데, 이 정도면 그래도 평작은 된다 싶네요. 킬링 타임용으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2024/10/27

종이학 살인사건 - 치넨 미키토 / 권하영 : 별점 2점

종이학 살인사건 - 4점
치넨 미키토 지음, 권하영 옮김/북플라자
'아래 리뷰에는 범인 및 진상 등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준세이 의대 부속 병원 조직 검사실 병리의 치하야의 아버지 미노루가 지병으로 사망했다. 병리해부를 유언으로 남겨서 치하야는 동기이자 지도의 시오리의 보조로 해부에 참석했다. 그런데, 아버지 위에는 암호가 새겨져 있었다. 암호는 28년 전 어린 아이들을 노렸던 미제 연쇄살인극 '종이학 살인사건'의 마지막 피해자 진나이 양의 시신이 숨겨진 곳을 의미했다.
둘은 이를 몰래 알리려 한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28년 전 형사였던 아버지의 동료 사쿠라이 형사와 진범을 찾아내려 나섰다. 그와 함께 다시 연쇄 살인극이 일어났고, 현장에는 28년 전과 똑같이 '종이학 살인사건' 범인의 흔적이 남겨져 있었다.

"유리탑의 살인"으로 이름을 날린 치넨 미키토의 장편 소설. "유리탑의 살인"처럼 특수 설정 미스터리라 생각했는데, 전형적인 연쇄 살인마와의 대결을 그리고 있어서 의외였습니다.

그래도 아래와 같이 '위 속에 암호를 새겼다.'는 독특한 설정은 흥미로왔어요. 덕분에 이야기 중반까지 흥미를 잘 잡아줍니다. 
치하야, 시오리가 의사이며 특히 시오리가 병리해부를 맡은 병리의라는 설정도 잘 써먹고 있습니다. 미노루가 생전 유전병인 '구루병'을 앓고 있었다는걸 알아내는 식으로요.

뼈가 약해지는 구루병은 X염색체 변이가 원인으로 100% 딸에게 유전됩니다. 즉, 키도 크며 격투기 동아리 활동을 할 정도로 튼튼해서 구루병을 앓지 않는 치하야는 미노루의 친 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미노루의 친 딸은? 목이 부러진채 발견된, 28년 전의 피해자 진나이 양으로 알려진 시신의 진짜 주인공이었습니다. 구루병 탓에 급작스럽게 딸이 죽어 혼란에 빠졌던 미노루의 아내가 진나이 양을 유괴했고, 범인이었던 야기누마(타치바나) 와카코가 이 사건을 연쇄 살인극이 하나로 위장했던 겁니다. 알리바이를 통해 혐의를 벗기 위해서요. 마침 유괴 사건을 엮어 미노루를 협박하기도 해서 운 좋게 빠져나갈 수 있었지요. 범인을 놓아준 죄책감에 경찰을 그만 둔 미노루는 더 이상의 범행을 막기 위해 와카코를 계속 감시해왔고, 미노루가 죽자마자 와카코는 범행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죠.

하지만 여러모로 전작보다 못합니다. 일단 추리적으로 많이 부족해요. 범인을 추리할 만한 단서는 없다시피 하거든요. '미노루가 경찰을 그만둔 뒤,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무언가를 감시했다' 정도만 의미있는 단서입니다. 그 외의 단서들은 모두 쓸모가 없어요. 핵심 증거와 단서들은 모두 마지막에 범인이 치하야를 납치하며 스스로 정체를 드러낸 후 독자에게 공개됩니다. 시오리가 알아낸 아버지의 유전병이라는 단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독특했던 '위에 암호를 새긴다는 설정'도 이유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작품에서처럼 위궤양으로 암호가 지워질 수도 있는 등 변수도 많아요. 차라리 변호사에게 사쿠라이 형사에게 전해주라고 편지를 남겼으면 될 일입니다. 게다가 암호로 남길 이유도 없었고, 암호의 내용도 불합리합니다. 마지막 사건의 시신 위치를 알린다 한 들, 이는 진상과 연결되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냥 범인 이름을 써 놓지 않았을까요? 범인을 제대로 알리지 못한 탓에 피해자도 두 명이나 생겼는데 말이지요. 암호 해독도 특별한게 없고요.

전개도 어이가 없습니다. 둘이 암호를 곧바로 경찰에게 알리지 않은 이유, 시신 발굴 때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이유, 사쿠라이와 비밀 수사를 하는 이유 모두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경찰 수사도 많이 어설픕니다. 특히 가장 어이가 없었던건, 이전 수사 담당자 이노하라가 타치바나 사장의 자식이 마지막 사건에서만 알리바이가 없었다고 알려주는 장면이었어요. 모든 연쇄 살인이 단독범의 소행일리 없는데, 마지막 알리바이가 없다고 유력한 용의자를 그냥 풀어주는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무려 다섯 명의 아이가 살해된 사건인데, 경찰이 너무 안이한거 아닙니까? 범인이 유괴한 아이를 자기 아이로 키운다는 설정도 많이 접했던것이라 식상합니다. 이에 대한 정보도 많이 전해주고요.

이렇게 위에 새긴 암호, 병리의, 유전병 정도의 소재를 제외하면 연쇄 살인범과 형사의 대결을 그리는 전형적인 헐리우드 범죄 스릴러와 흡사합니다. 범인의 정체도 반전처럼 등장하지만 굉장히 뜬금없다는 점에서는 똑같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설정은 흥미롭지만 그 뒤의 이야기들은 모두 설득력낮고 억지스러우며, 뻔했다는 점에서 위에 암호를 새기는 상황을 떠올리고, 전체적인 얼개없이 재미있겠다 싶어서 이야기를 써 내려간게 아닌가 싶네요. 

2024/01/10

인페르노 (2016) - 론 하워드 : 별점 1.5점

"암호를 풀지 못하면 지옥의 문이 열린다!"
전세계 인구를 절반으로 줄일 것을 주장한 천재 생물학자 ‘조브리스트’의 갑작스러운 자살 이후 하버드대 기호학자 ‘로버트 랭던’은 기억을 잃은 채 피렌체의 한 병원에서 눈을 뜬다. 담당 의사 ‘시에나 브룩스’의 도움으로 병원을 탈출한 랭던은 사고 전 자신의 옷에서 의문의 실린더를 발견하고, 단테의 신곡 [지옥편]을 묘사한 보티첼리의 ‘지옥의 지도’가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원본과 달리 지옥의 지도에는 조작된 암호들이 새겨져 있고, 랭던은 이 모든 것이 전 인류를 위협할 거대한 계획과 얽혀져 있다는 것을 직감하게 되는데…

거대한 음모를 밝혀낼 유일한 단서
단테의 지옥은 소설이 아니라 예언이다!


연초에 볼거 없나 싶어 넷플릭스에 들어갔다가 충동적으로 보게 된 작품.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에 이은 로버트 랭던 시리즈 제 3탄으로 "천사와 악마"는 원작만 읽고 영화는 보지 않았는데, 이 작품은 원작을 읽지 않고 영화를 보게 되었네요.

로버트 랭던 교수가 기억을 잃은 채 여러 조직에게 쫓기면서 암호를 풀어나가는 중반부까지는 흥미로왔는데, 시에나가 조브리스트의 연인임을 밝힌 이후부터는 아쉬움 투성이입니다. 이야기의 개연성도 많이 부족했고요.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던건 왜 랭던 박사를 기억 상실처럼 속여서 암호를 해독하게 만들었냐는 것입니다. 바이러스를 없애려고 하는 WHO는 바이러스에 대해 아무런 단서가 없었어요. 조브리스트는 자살했으니 시에나가 랭던 박사를 속여서 암호를 풀게 하지 않았다면, 바이러스의 위치는 끝까지 드러나지 않았을겁니다. 바이러스 확산을 앞당기기 위해서 위치를 알아내야 했다고 설명되는데, 앞당겨야하는 합당한 이유는 정작 설명되지도 않고요.
조브리스트가 바이러스의 위치를 구태여 암호로 남긴 이유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작전을 성공시키려면, 위치도 영원히 숨겨놓는게 당연하잖아요? 단테의 신곡 속 지옥을 활용한 암호로 남긴 이유도 알 수 없으며, 해석도 억지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마지막에 바이러스를 둘러싼 짤막한 액션도 별로였습니다. 톰 행크스가 소화하기에는 어색했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많이 들어보인 탓이지요. 흐름상 바이러스가 유출되지 않을거라는 확신도 들어서 긴장감도 전혀 느낄 수 없었고요.

이탈리아 피렌체를 중심으로 유명 건물들과 작품들을 활용한 배경은 멋있었지만, 그 외에는 건질게 없네요. 단점만 가득한 작품으로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2023/12/03

하쿠바산장 살인사건 - 히가시노 게이고 / 민경욱 : 별점 2점

하쿠바산장 살인사건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아래 리뷰에는 진범,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대생 나오코는 친구 마코토와 함께 펜션 마더구스를 찾았다. 1년 전 마더구스의 밀실인 방에서 자삻했던 오빠 고이치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서였다. 펜션은 방마다 '마더 구스' 동요가 쓰여진 패널이 걸려져 있었는데, 이 동요들이 암호라는걸 눈치챈 둘은 암호 해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손님 중 한 명인 오오키가 추락사했고, 이는 교묘하게 계획된 살인이라는게 드러났다.
결국 암호를 풀어낸 둘은 오빠 죽음의 진상과 범인을 밝혀내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 "가면 산장 살인사건"의 또다른 번역본이라 생각했었는데, '마더 구스' 동요를 이용한 암호 트릭이 등장한다는 광고글을 보고 착각을 깨우친 뒤 읽게 되었습니다.

추리적으로 볼거리가 많다는게 장점으로 외딴 산장이라는 무대에서부터 시작해서, 밀실 살인, 원격 조종 살인이 등장하고 '마더 구스' 동요를 활용한 암호까지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중 가장 먼저 밝혀지는건 오오키를 살해한 원격 조종 트릭인데 '다리를 대신할 수 있는 판자를 썩은 것으로 바꿔치기해서 추락하게 만들었다'는 간단명료함도 좋았지만, 단순히 장치 트릭에 그치지않고 이를 범인이 특정될 수 있는 중요 단서로 활용하는게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원래 판자와 비슷하면서도, 사람이 올라가면 부서져 떨어질 판자를 고르는건 상당히 전문적인 안목이 필요하므로, 목재에 대한 전문가가 범인이다!는 논리인데 꽤 합리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오빠 고이치가 자살한 것으로 위장했던 밀실 살인 트릭은 '범인은 방에 숨어 있었다'는 단순한 것이지만, 공범을 활용한 변주가 괜찮았습니다. 먼저 구루미가 침실 창문과 문을 잠그고 다카세가 창문도 잠겼다는걸 확인하게 합니다, 그리고 구루미는 창문을 통해 탈출했고요. 에나미는 다카세에게 다시 고이치를 불러오라고 시킵니다. 이 때 문이 잠겼다는걸 다시금 다카세에게 확인시키고 마지막으로 에나미가 열려있던 창문으로 침입하여 창문을 잠근 뒤 방 안에 숨어서 밀실을 만들었던 겁니다. 에나미 혼자 실행도 가능한 트릭이지만,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우면 당연히 눈에 띄였겠지요. 구루미가 산장 펜션 종업원이었던 덕분에, 때맞춰 다카세를 피해자 방으로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도 있었고요. 이 때 구루미와 에나미가 포커가 아닌 백개먼을 했다는 등의 디테일도 좋았습니다. 단서와 정보 제공도 공정한 편이에요.

하지만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습니다. 우선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마더 구스 동요'를 활용한 암호 트릭이 별로였어요. 쉼표를 활용해서 문장을 이어 붙이는 것까지는 나름대로 말이 되지만, '말을 반대로 바꿔야 한다', 즉 '다리가 부서지는게 아니라 세워지는것' 이라는건 제대로 설명되지 못한 탓입니다. 분명 중간까지는 나름 논리적으로 풀리는데, 그 뒤는 완전 국문학적(?)으로 풀어내야 한다는건 억지스러워요. 마더 구스 동요에서 끝냈어야 하는데, 갑자기 휴게실의 마리아 - 알고보니 마녀 - 조각상이 필요했다는 것도 와닿지 않았습니다.
와닿지 않는건 암호 해독의 결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녁 노을이 질 때, 부서진 다리가 그림자 이어지는 곳'이라는 결과를 1년 전에 손에 넣었던 범인들이 왜 1년을 기다렸을까요? 여름이라도 그림자의 변경 추이만 관찰해도 겨울 철 그림자가 어디 위치하는지는 충분히 알아낼 수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구루미는 몰랐다쳐도 에나미는 이과계 연구원이라는 설정인데,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설령 에나미가 측정에 실패해서 겨울철 될 때까지 기다렸다고 치죠. 그래도 1년 중 아는 사람이 가장 많을 때 보물을 파내려고 시도할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정 그 날짜가 필요했다면, 장소만 사진을 찍어두던가 해서 표시하고 나중에 파내면 되었습니다.

오빠 고이치를 자살로 위장하여 살해한건 밀실 트릭만큼은 앞서 설명했듯 괜찮은 부분이 없지 않으나, 밀실을 만들어야 했을 이유는 불분명합니다. '밀실이라서 자살이다!'라기보다는, 원래 노이로제가 있었고 펜션 손님들과 아무런 접점이 없었다는 정황이 자살설의 핵심 근거였습니다. 즉, 밀실은 자살설에 무게를 더해주기는 했지만 절대적인건 아니었어요. 게다가 노이로제에 대해서는 범인을 비롯한 펜션 손님들은 아무도 몰랐었는데, 단지 밀실이라는 상황만으로 자살로 몰고가려 했던건 비현실적입니다. 에나미가 나오코와 마코토에게 '오빠는 살해당했다'며 접근한 행동도 납득이 가도록 설명되지 못하고요. 이는 나오코과 마코토가 에나미를 의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불필요했습니다.

그 외에도 구루미가 최초 보석상 가와사키를 살해한게 모든 사건의 시작이었다던가, 영국 여자가 아들을 죽게 만든 마스터에게 복수와 경고의 의미로 암호를 남겼다던가, 보석상의 혼외자가 다카세였다던가, 보석은 가짜였다던가 하는 등의 에필로그도 별로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손님 중 한 명인 가미조가 보석상 가족의 요청으로 이 사건을 3년이나 추적했던 탐정(?)이라는 설정도 과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명탐정 '가미즈 교스케'와 비슷한 이름을 가지고 있어서 나름 활약을 기대했는데, 하는거라곤 마지막에 구루미의 범행을 밝히는 것 뿐이라는 것도 좀 허무했어요. 일종의 맥거핀에 낚인 셈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초기작답게 여러가지 시도는 돋보이나 단점 또한 많아서 감점합니다. 구태여 찾아 읽어보실 필요는 없겠습니다.

2023/07/29

D의 살인사건, 실로 무서운 것은 - 우타노 쇼고 / 이연승 : 별점 2점

D의 살인사건, 실로 무서운 것은 - 4점
우타노 쇼고 지음, 이연승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우타노 쇼고에도가와 란포의 단편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결과물. 이런 류의 기획물은 그리 마음에 들었던 적이 없었는데, 역시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에도가와 란포의 원작을 이야기와 별 관계없이 무리하게 집어넣는 등 억지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에도가와 란포와 상관없는 독립된 작품으로 발표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의자? 인간!>>
인기작가 스즈카는 창작 동반자였던 아키히로를 차버리고 부유한 간부급 공무원 하라구치와 결혼했다. 아키히로에게서 사람을 써서 접근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아냈다.
그리고 5년 뒤, 아키히로가 문자를 보내왔다. 지난 5년간 그가 어떻게 복수를 계획하여 실행해 왔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는 스즈카의 소파 속에 들어가 있다고 말했고, 스즈카가 문자를 보내자 정말로 소파 안에서 진동이 울려왔다.....


<<인간 의자>>에서 따 온 이야기. 의자 안에 남자가 들어간다는 설정을 따왔고, 비현실적인 인간 의자 제작과 안에 들어가는 과정, 방법에 대한 디테일은 유사하지만 내용은 전혀 다릅니다. 원작에서 인간 의자가 변태의 집요함을 그리기 위한 수단이었다면, 여기서는 복수를 위한 장치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스즈카가 궁지에 몰리는 심리 묘사도 범인의 서간문으로만 이루어진 원작과의 차이점인데, 나쁘지 않았습니다. 결말로 이르는 빌드업 측면에서도 설득력이 충분했고요.

다만 진상, 그리고 결말은 별로였습니다. 아키히로는 의자에 여벌 휴대폰을 넣어놓고 전화를 걸면 진동이 오게 했을 뿐으로 실제로 안에 들어가 있던건 스즈카의 남편 하라구치였다, 그래서 아키히로가 의자 안에 있다고 굳게 믿은 가즈키가 의자를 난도질해서 하라구치는 죽고 말았다는건데 억지스럽고 뻔했기 때문입니다. 아키히로가 "나를 죽이세요"라는 메시지를 이렇게나 장황하게 보낼 이유가 없으니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
스마트 폰 속 여자와 여행하는 남자가 등장하는 괴담물 (?). 현대 문명의 이기로 외부와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스마트폰'을 일종의 다른 세계(사후 세계?)와의 연결고리로 활용하고 있는건 좋은 아이디어였습니다. 자신이 너무 사랑해서 죽여버린 아이돌 그룹 멤버의 인공지능을 만들고, 인공지능을 학습시킨다는 설정도 꽤 참신했습니다.

하지만 설정을 빼면 <<어느날 갑자기>> 등에 나오는 이야기와 다를게 없는 단순한 괴담에 불과합니다. 기승전결도 애매하고, 이야기에서 합리적인 설명도 이루어지지 않는 탓입니다. 남자마저도 사후 세계에 속한 인물이라는 결말도 어정쩡했고요. 보다 독특한 반전 정도는 나와주는게 좋았을거에요. 환상 소설에 가까운 원작에 현대적인 설정을 덧붙였을 뿐, 새로움을 느끼기는 힘들었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D의 살인 사건>>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이지만 주로 흥신소 의뢰로 먹고 사는)인 '나'는 도쿄 뒷골목 거리에서 살인 사건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다. 거리에서 친해진 초등학생 세이야와 함께였다. 피해자 노조미는 SM 플레이를 즐기다가 살해당한 것으로 보였는데, 밀실에 가까왔고 접근 가능했던 인물들도 제한적이어서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하지만 '나'는 세이야가 범인일 것이라 추리했다. 목격자 두명의 증언 - 범인이 입은 옷을 각각 주황색과 검은색이라고 다르게 말한 - 이 근거였다. 사건 당시 세이야가 입고있었던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티셔츠는 주황색과 검은색 양쪽 모두에 해당했기 때문이었다....


원작에서 다소 변태적인 성행위 도중 살해당한 피해자, 밀실에 가까운 현장, 범인의 옷을 서로 다르게 말하는 목격자라는 소재를 따 와서 현대적으로 재 구성한 작품.
'나'의 추리는 좋았습니다. 옆 건물과 좁게 붙어있던 창문으로 초등학생은 충분히 침입할 수 있다는 주장은 합리적이었고, 목격자의 증언이 달랐던 이유라며 제시하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티셔츠도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만으로 세이야를 범인이라고 지목하는건 솔직히 무리였습니다. 동기가 설명되지 못하니까요. '나'가 제시한, 성범죄를 저지르려다가 살인까지 저질렀다는건 너무 억지스러웠습니다.
진상은 더 억지에요. HR 기기 등 가상 현실을 활용하여 변태적인 성행위를 즐기다가 사망했다는건데, 가상으로 채찍질 같은 자극을 주는 기기가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 있다손 쳐도 사람이 죽을 정도의 충격을 줄 수는 없습니다. 안전 기준이라는게 있을테니까요. '비가시 광선' 때문에 옷이 두 가지 색깔로 보였다는 것도 요미우리 자이언츠 티셔츠만큼이나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 않았고요.
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이 들어오기 전에 장비를 해체하고 숨겼다는 마사코의 행동도 말이 안됩니다. 그래봤자 SM플레이를 즐긴 흔적을 숨길 수는 없었거든요. 변태적인 성행위를 즐기다 '실수로' 죽었다는 것 보다는, 차라리 '살해당했다'는게 낫다고 여겼을 수는 있겠지만.... 짧은 시간 동안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실행에 옮겼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고, 단순 변사가 살인 사건으로 확대되어 버린다는 문제가 생깁니다. 혹시라도 무고한 사람이 누명을 쓰게되면 어쩔 셈이었을까요?
게다가 세이야가 '나'에게 배신감을 느낀 나머지 '나'에게 아동 성 추행범이라는 누명을 씌운다는 마지막 결말은 최악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배신감을 느꼈다는걸 제대로 묘사하지 못한 탓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 뒤의 설득력없는 추리와 결말을 덧붙이지 말고, '나'의 추리로 이야기를 끝내는게 바람직했습니다. 동기만 좀 합리적으로 만들어서요. 이 인물 구도에서 합리적인 동기를 만드는건 불가능해보입니다만.

<<오세이 등장을 읽은 남자>>
스무살 가까이 차이나는 어린 여성과 결혼 후 실직해 기둥서방처럼 얹혀사는 타로는 그 탓에 치매에 걸린 장인어른 고스케를 떠맡아 돌보게 되었다. 그게 끔찍하게 싫었던 타로는 란포의 소설 오세이 등장을 읽은 뒤, 고스케를 사고로 가장하여 살해할 음모를 꾸몄다. 소설처럼 고스케를 의류함에 넣고 질식사시킬 속셈이었다. 치매 탓에 유아 퇴행 현상을 일으키던 고스케가 했음직한 행동으로 의심을 살 이유는 없었다.
아내의 파리 출장에 맞춰 범행을 결의한 타로는 사전 조사차 직접 의류함 안에 들어갔다가 갇히고 말았다. 고스케가 별 생각없이 다른 물건들을 함 위에 올려놓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타로는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어서 아내와 통화할 수 있었다. 아내는 직접 구조를 요청하겠으니 기다리라고 말했다....


타로가 나이가 많은 탓에 평소에 스마트폰에 대해 무지했고, 잘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는 설정이 핵심입니다. 아내 유코가 원래 자기 것이었던 타로의 폰을 원격잠금하고, 회선도 정지시켜 통화를 못 하게 막아서 죽게 만든다는 트릭이 사용되었거든요.
이렇게 원작에 굉장히 충실한데다가, 나름의 트릭까지 사용된 점 만큼은 좋았습니다.

문제는 유코가 타로에게 품었던 살의가 제대로 묘사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유코가 진작부터 불륜을 저질러 왔다는 설명은 있는데, 이를 살의로 이어지게 만드는 설명은 좀 부족했어요.
치매 노인 탓에 의류함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늙은 치매 노인이 의류함 뚜껑 위에 무언가 덮어놓았다고 뚜껑을 열지 못한다? 저는 잘 와 닿지 않더라고요. 뭔가 다른 이유 - 자물쇠를 잠갔다던가 - 가 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말이지요. 치매 노인이 평소에 무언가를 잠그는 (?) 행동을 많이 했다는 식의 설명이 덧붙여졌다면 더욱 좋았을테고요. 여러모로 설명이 부족해서 잘 짜여진 이야기라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도 원작과도 유사하고, 현대적인 설정과 트릭을 효과적으로 사용한건 분명합니다. 수록작 중 베스트입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나저나, 치매 노인 관련된 복수극은 오가와라 히로시의 <<냉혹한 간병인>>이 아직까지는 최고네요.

<<붉은 방은 얼마나 바뀌었는가?>>
붉은 방에 모여 일탈을 즐기는 일곱 명의 남자들.
에도가와 란포의 붉은 방을 원작으로 한 연극이 상영되는 극장에서 실제로 사건이 일어났다. '죄를 물을 수 없는 살인'을 저질러온 T역의 배우가 공포탄이 아닌 실탄에 맞은 사건이었다. 관객 중에 경찰이 있어서 곧바로 수사가 시작되었고, 관객들은 모두 중요 참고인이 되었는데....


사건도 연극의 일부로 마지막 공연에서 선보인 특별 부록이었다는 이야기. 비교적 쉽게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경찰관 투입과 수사가 지나칠 정도로 빨랐고, 이후의 과정이 모두 작위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스포일러를 막을 수 없는 지금 상황에서 스포일러를 이용하여 관객들에게 더 충격을 주려고 했다는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흥분했던 관객이 무대로 난입하여 살인을 저지르는 결말은 영 아니었습니다. 역시나 연극으로 여긴 관객의 반응 등 볼만한 점이 없는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없는게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더 깔끔했을거에요. 이 결말 탓에 감점하여 별점은 2점입니다.

<<음울한 짐승의 환희>>
나는 어린 시절부터 여자의 육체만 생각하는 변태였지만, 스스로를 철저하게 통제하여 교육자로 잘 살아오고 있었다. 어느날 산책 중 이상형인 여자 유키를 알게되어, 그녀가 운영하는 북유럽풍 잡화점 락카우스의 단골이 되었다.
그리고 두달 쯤 뒤, 내가 란포에 대해 잘 알고있다는걸 알게 된 유키가 도움을 청해왔다. 오에 슌데이라는 발신자가 트위터 DM으로 그녀에게 버림받았었는데, 그녀를 다시 발견하여 복수한다는 글과 에도가와 란포의 귀한 초판본, 그리고 그녀를 스토킹하는 글을 연달아 보내왔기 때문이었다.
짐작가는 사람이 없냐는 질문에 유키는 20년 전 사귀었던 여자 후배 가야코 이야기를 꺼냈다....


'그'라는 3인칭에서 '나'로, 다시 '그' 전환되는 시점이 급작스럽고 미묘한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작가 의도인지, 번역 오류인지 헛갈리네요.
여튼 변태인 '그'가 카메라를 설치해 유키를 협박하는 한편, 착한 단골로 위장하여 조력자 위치에 올라가지만 유키에게 정체가 드러나버리는 일련의 과정은 꽤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나 유키의 펜던트가 카메라였고, 그 때문에 '그'의 범행이 발각되는 결말은 억지스러웠습니다. 카메라를 몸에 달고다닐 이유가 딱히 설명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키가 알고보니 트랜스젠더라서 살해했다는 일종의 반전도 신선하다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영화 <<크라잉 게임>>이 발표되었을 때 정도의 시기였다면 모르지만요. 지금은 그렇게 대단한 트릭이라고 보기는 힘들지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비인간적인 사랑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나는 마니와 가즈키를 유혹하다가 가즈키는 '시짱'이라는 피규어를 사랑한다는걸 알게 되었다. 분노가 폭발한 나는 가즈키를 속여 집에 침입한 뒤 시짱을 부숴버렸다. 그리고 가즈키가 자살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시신의 옷 주머니에 부서진 인형 머리가 들어 있었다고 했다.....
라는 증강현실 게임 엔딩을 접한 나는 다시 가즈키를 골라 게임을 시도했다. 그런 나를 방해한건 남편 가즈키였다. 게임에 빠진 나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가즈키와 다툼을 벌이다가 그를 살해하고 말았다.
출소 후 70세 노인과 혼인 관계를 맺고 조용히 살게 된 나는우연찮게 노인 스나무라 다케오에게 교도소 주문에 대해 털어놓았다. 노인은 혼자서 주문에 대해 조사한 뒤,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다. 주문에 등장하는 단어는 모두 1990년에 방영된 TV 프로그램이었고, 주문은 방송 채널 번호를 이용하는 암호문이었다. 암호문은 특정 지역을 의미했고, 노인은 그 곳에 무언가를 숨겼으며 그건 1990년에 일어났던 흉악한 강도사건의 절도품이라고 추리했다.
하지만 방문한 장소는 이미 신축 빌라가 들어서 있었다....


기괴한 사이버 애정극에서 시작해서 암호 해독으로 이어지고, 마지막은 짤막한 쇼트쇼트 블랙 코미디로 이어지는 독특한 작품. 수록작 중 유일하게 원작을 접하지 않은 작품입니다.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암호 해독은 재미있었습니다! 교도소에서 구전되는 '행운을 불러오는 주문'이 90년대 당시 TV 프로그램의 명칭이었다는 아이디어도 좋고, 이걸 어떻게 글자로 치환하는지?에 대한 연구와 노력이 잘 그려지고 있거든요. 노인은 시간이 남아돌기 때문에 끈기있게 도전하여 풀어낼 수 있었다는 설정도 좋고요. 암호문을 풀어낸 뒤, 암호문이 가리키는 장소에 무엇이 있을지?에 대한 추리역시 합리적이었습니다. 당시 신문 기사를 조사해서 밝혀내는데 아주 그럴싸하게 설명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야기가 따로 논다는 겁니다. 특히 화자인 유리나가 겪은 게임 속 사건이 그러합니다. 재미는 있는데, 암호 해독 이야기와 별로 관계는 없어요. 유리나가 감옥에 간 이유인 남편 살해 동기에 불과하거든요. 이렇게까지 펼칠 필요가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란포의 원작을 너무 의식한 것 같아요. '비인간적인 사랑'을 이렇게 무리하게 삽입할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지요. 차라리 두 개로 분리하는게 좋았을 겁니다. 그만큼 두 이야기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보물이라 생각했던 증권이 버블 지나면서 파산한 회사라 휴지 조각에 불과했다는 결말도 뜬금없었을 뿐더러, 어디서 많이 보아왔던 결말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다른 설정은 다 없애고, 나이 많은 노인과 함께 사는 손녀딸이 교도소 자원 봉사를 갔다가 주문을 들었다는 정도로 풀어나가는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이상한 설정과 앞과 뒤의 곁가지 이야기는 불필요했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마지막으로, 남편을 살해해서 복역 후 출소한 유리나가 오갈데 없어서 나이 많은 노인과 결혼했다는 설정은 의아했습니다. 아무리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이라도, 남편 살인범과 함께 살고 싶을까요? 젊은 여자가 필요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일본에서는 흔히 있는 상황인지 궁금해집니다.

2022/03/04

시크릿 스파이 - 헤더 베센트 외 / 박지영 : 별점 2점

시크릿 스파이 - 4점
헤더 베센트 외 지음, 박지영 옮김/시그마북스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첩보 활동의 역사를 정리해서 알려주는 책으로, 시대 순으로 유명 스파이와 첩보 활동, 주요 활약상 및 스파이들이 사용했던 장치, 암호 등을 소개해 줍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250여 페이지의 분량을 풀 컬러로 가득 채운, 화려한 도판입니다. 모든 주제를 한 장 안에 도판과 함께 담고 있어서 읽기 쉽다는 점도 장점이고요. 흥미로운 주제를 짤막하게 요약하여, 다양한 도판과 함께 담았다는 점에서 '카드 뉴스'를 연상케 합니다.

역사 속 유명 스파이, 첩보 활동 중 몰랐던 내용도 많았습니다. 남북전쟁 때, 노예해방론자들과 흑인 노예들은 남부 연합 안에서 정보원 활동을 했었고, 반대로 노예제를 지지했던 사교계 인사 로즈 오닐 그린하우는 북부에서 정보를 수집해 전달했다는 이야기처럼요.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소재네요. 영국이 인도 지형을 조사할 때 고용했던 현지인들 중 가장 유명했던 '1번' 나인 싱 라와트도 보다 상세하게 조사해 보고 싶어졌고요. 

1차 대전 시기부터는 친숙한, 고전적인 스파이 활동 이야기가 많아지기 시작합니다. 소설이나 영화 등으로 익히 알고 있는, 약간 낭만적이기까지도 한 그런 이야기들 말이지요. 외다리였던 몸을 이용하여 측량 기계를 의족을 숨긴 채 독일의 알프스 지역 요양원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캐고 다녔던 미국인 하워드 버넘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건강 악화로 죽을 때 유언마저도 '독일군은 알프스 산맥에 전선을 구축할 계획이 없다' 였다니, 죽음마저도 고전전이네요. 프랑스에서는 평범한 주부였던 루이즈드 베티니가 첩보망을 조직, 운영하였고, 벨기에에서는 '하얀 여인' 첩보방을 전화 기술자 발테르 드베가 운영했다는 등의 일반인 영웅들 이야기도 인상적입니다. 반면 미국에서는 부유한 사회 지도층 아마츄어들 - 백만장자 빈센트 에스터, 루스벨트 주니어 - 이 뭉쳐서 '더 룸' 이라는 명칭으로 첩보 활동을 했다니 확실히 미국적이다 싶군요. 당시 미국인이 머나먼 유럽 등을 정탐하기 위해서는 큰 돈이 필요했을테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또 러시아에서 활약했다는 영국의 에이스 스파이 시드니 라일리는 사실 별 활약 없이 1925년, 볼셰비키 타도를 목적으로 러시아에 재입국하다가 체포되어 총살되었다는 등의 팩트 체크도 볼거리였고, 치머만 전보의 암호 해독처럼 실제로 전쟁에 큰 역할을 했던 놀라운 성과들도 눈에 뜨였습니다.

2차 대전 때부터는 막강해진 국가별 정보 기관들과 고위층 스파이 '두더지' 들, 상대편 스파이들을 속여서 체포하고, 내부 스파이들을 솎아낸 뒤 처형하거나 변절자로 만드는 (더블 크로스 시스템) 등 현대적인 스파이 작전 이야기가 많아집니다. 이 중에서는 독일 해외방첩청 아프베어의 수장이었던 빌헬름 카나리스 이야기가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반나치 정책을 나름대로 펼친 끝에, 종전 직전 사형당했다는데 과연 살아있는채로 종전을 맞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조금 궁금합니다. 아무리 반나치 주의자였다 한들, 방첩조직의 우두머리였다면 처벌을 피할 수는 없었겠지요? 

그런데 미드웨이에서의 일본군 패배와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전사는 모두 정보가 미리 유출되었기 때문이며, 영국이 에니그마를 해독한게 승리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내용은 좀 과장된 것 같습니다. 연합군의 승리는 필연적인 것이었으니까요. 물론 독일 침공을 사전에 첩보원들이 파악하여 제보했지만, 이를 무시했던 스탈린의 사례를 볼 때, 첩보 활동 자체가 중요하다는건 의심의 여지가 없기는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스탈린이 이렇게 그를 위해 일했던 첩보원들을 전쟁 후 모두 강제 수용소로 보냈다는 후일담이 더 인상적이기는 했습니다만.... 

독일 최고의 스파이로 중립국 터키의 영국 대사 휴 내치불휴게슨의 부하였던 바즈나의 활약도 그냥 지나치기 힘듭니다. 그는 노르망디 상륙 작전 코드네임이 오버로드라는 등의 고급 정보를 넘기는 활약을 했지만, 독일은 그 정보의 진가를 몰라봤다지요. 심지어 그에게 준 30만 파운드의 거액도 작센하우젠 수용소에서 찍어내었던 위조지폐였다고 하고요. 기승전결이 완벽한, 한 편의 영화같은 일화였습니다.

냉전부터는 음모와 배신이 판치는 존 스마일리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로젠버그 부부 이야기 등 익히 잘 알려진 사건들이 많이 소개되는데, 이 중에서는 M16의 수장으로 KGB 스파이였던 킴 필비와 그의 동료들이었던 이른바 케임브리지 5인조와 이스라엘이 시리아 고위층에 침투시켰던 스파이 엘리 코헨의 흥망성쇠가 흥미로왔습니다. IBM과 히타치의 분쟁 등 산업 스파이 이야기도 빼 놓을 수 없는데, F1 레이스에도 산업 스파이가 개입했었다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자동차 디자인과 설계가 성공의 필수적인 요소이니까요. 페라리의 정비사 나이절 스테프니가 멕라렌에게 정보를 넘겼던 사건인데, 스테프니의 불행한 죽음으로 마무리되어버려 조금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사이언톨로지교가 자기들의 면세 지위를 회복하기 위해 '백설 공주 작전'이라는걸 벌였다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국세청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연방 검사 사무실까지 뒤졌다니 종교의 힘이 정말 대단합니다. 우리나라도 힘 있는 사이비 종교들이 최근 많아진 듯 한데, 항상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첩보 활동 외. 첩보 기술에 대한 설명들도 볼만했습니다. 동독의 '로미오 스파이' 작전처럼요. 25~35살 사이의 교육을 잘 받은, 잘 생기고 매너 좋은 남자들을 이용하여 서독 여성들을 포섭했다지요. 러시아의 여성 해외 정보 요원 '스패로'는 이와 반대로 남성을 유혹하기 위해 훈련받았다는데, "레드 스패로"라는 영화가 나올 정도로 흥미로운 소재인건 분명해 보입니다. 두 작전 중 어느 쪽이 더 효과가 좋았을지 조금 궁금하기는 합니다. 

카메라, 통신 장비, 암살 장비 등의 소개는 비밀 무기류에 사족을 못 쓰는 제 동심을 자극해 주었습니다. 독침 우산과 청산가리 가스총이 언급되는데, 이 둘을 합친 장비가 "마스터 키튼"에도 등장했었지요. 고양이 몸 속에 배터리, 안테나, 마이크를 장착하여 도청하려는 '어쿠스틱 키티' 계획도 황당하지만 멋졌고요. "쉬리"가 얼마나 좋은 아이디어였는지 새삼 감탄하게 만드네요. 1984년 미국 모스크바 대사관, 레닌그라드 영사관의 타자기에 설치되었다는 키 자동 기록기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결합한 기묘한 레트로함이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타자기 내부에 설치되어 활자 뭉치가 회전하며 일으키는 자기장 교란을 측정하여 입력되었을 법한 글자를 추측한 뒤, 전파를 터트려 도청자에게 수집한 정보를 보내는 장치였다는데, 당시 기술을 생각해보면 엄청난 하이테크 기기였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재미있고 새로왔던 이야기도 많지만, 아쉬운 점도 많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모든 주제를 한 장으로 요약한 탓에 깊이가 없으며, 스파이와 관련이 없는 이야기도 많다는 점입니다. 특히 고대 시대 이야기는 너무할 정도로 허술했습니다. 한니발의 패배가 스파이 덕분인 것 처럼 써 놓았을 정도로요. 실제 내용을 보면 스파이가 아니라, 단순히 사전 염탐을 한 것에 불과한데 말이지요.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의 패배 역시 정찰이 부족한 탓이었을 수 있겠지만, 이 역시 스파이 활동과는 별 관계가 없습니다. 이슬람교의 패권이 무함마드가 스파이 활동에 통달한 덕분이었다는 언급도 어처구니 없었고요. 

이런 류의 과장은 뒤에도 계속됩니다. 나폴레옹이 아우스테를리츠에서 러시아, 오스트리아 연합군을 격파할 수 있었던게 스파이 카를 슐마이스터가 거짓 정보를 뿌려 오스트리아 군이 속았기 때문이라는건 억지스러웠습니다. 남북 전쟁 당시, 영국에 사무소를 두고 남부 목화 판매 댓가로 전쟁 물자를 구입했던 제임스 불럭을 스파이라고 부르는 것도 억지였고요. 이건 단순한 통상 업무에 지나지 않잖아요? 암살과 테러범들 이야기를 스파이라고 소개하는 것도 별로 와 닿지는 않았어요. 심지어 고급 창부였던 '크리스틴 킬러' 마저도 한 챕터를 차지한다는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또 암호에 대한 소개가 적지 않은데, 9세기 학자 야쿱 이븐 이스하크 알 킨디가 암호학을 발전시켰고, 그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어떤 글자가 다른 글자보다 많이 사용된다는 원리인 빈도의 원리를 발전시킨 것이라는 등 볼거리가 없지는 않습니다. 관련된 도판도 충실했고요. 그러나 이런 류의 책은 이미 "암호의 과학" 등에서 많이 보아와서 별로 새롭지 않았고, 책의 정체성과는 거리가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재미가 없지는 않으나, 가격에 비하면 별로 깊이가 없어서 감점합니다. 이 책 보다는 특정 스파이 활동과 작전, 혹은 암호 등에 촛점을 맞춘 다른 전문 서적을 읽어보는게 훨씬 낫겠습니다.

2020/12/10

묵시록의 여름 - 가사이 기요시 / 송태욱 : 별점 3점

묵시록의 여름 - 6점
가사이 기요시 지음, 송태욱 옮김/현대문학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중세 이단 카타리파에 대해 연구하던 야부키 가케루는 나디아와 함께 카타리파 최후의 전장이었던 몽세귀르로 향했다. 툴루즈 기업왕 로슈포르 가문이 카타리파 유적 발굴을 원조하고 있는데, 발굴을 맡은 샤를 실뱅 교수를 돕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로슈포르 가문의 산장 에스클라르몽드에 도착하자마자 일행은 기묘한 살인 사건을 목격했다. 독일인 발터 페스트가 에스클라르몽드 산장 자료실에서 살해된 사건이었다.
뒤이어 유력한 용의자였던 장 노디에가 성곽도시 카르카손 성벽 탑 안 밀실에서 살해당했고, 로슈포르의 아내 니콜 로슈포르와 로슈포르마저도 몽세귀르 절벽에서 추락사했다. 이 모든 사건에는 '요한 묵시록'의 계시처럼 여러가지 상징과 말의 죽음이 함께 펼쳐져 있었다.
로슈포르 가문의 외동딸 지젤의 연인 줄리앙은 탐정 역을 맡아 사건 해결에 뛰어들고, 야부키 가케루는 이를 바라보는데...

"사건을 어디까지나 현상으로, 즉 의미와 의미가 뒤얽힌 유기체적 전체로 보고, 거기에서 전체의 지렛대에 해당하는 것을 발견하는 거야." - 야부키 가케루 

"뭔가를 표현하는 것으로서의 상징은 뭔가를 은폐하기 위한 암호가 되는 거죠." - 줄리앙

가사이 기요시의 '현상학 탐정' 야부키 가케루 시리즈 두 번째 작품입니다. "썸머 아포칼립스"라는 제목으로 알려졌던 고전 명작으로 '문예춘추 선정 미스터리 100선' 에는 36위로 선정되어 있습니다. '일본 본격 미스터리 100선'에서는 무려 4위고요. 하지만 개정된 '주간문춘 선정 동서 미스터리 100'의 상위 50권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리뷰를 하면서 따로 설명드리겠습니다.
솔직히 번역되었는지 모르고 있다가, 무려 5년이 지난 얼마 전에야 우연히 작품의 존재를 알게 되어 읽게 되었습니다. 추리 소설 애호가로서 부끄럽네요. 구태여 변명하자면 제목이 제목이 한국어로 번역된 탓입니다. 전작 "바이바이 엔젤"은 원제 그대로 출간되었는데 말이죠.

하여튼, 작품은 명성답게 본격물로서는 완벽합니다. 트릭의 수준도 높고, 추리도 합리적이에요. 고전 본격물다운 불가능 범죄, 기묘한 상황이 펼쳐지는데 이를 절묘하게 수습하고 있거든요. 특히 첫 번째, 두 번째 사건이 그러합니다.

첫 번째 사건 피해자 발터 페스트는 머리 앞 부분을 둔기에 맞아 살해당했습니다. 피해자가 창을 통해 들어온, 두 손으로 들어야 하는 흉기를 든 침입자를 봤을텐데 저항없이 죽음을 맞이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 자료실 창문은 이미 열려있었는데 범인은 왜 창문을 깼을까요?
그리고 흉기인 석구에는 요한이 부조되어 있었는데 이는 요한 묵시록 제 6장과 관계가 있다는게 밝혀집니다. 흰말 한 필 위에 사람이 활을 들고 있었다는 묵시록 내용에 따라 시체는 화살을 맞았으며 마굿간에 있는 흰 말도 죽은채 발견되지요. 범인이 이렇게 묵시록처럼 현장을 꾸민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런 수수께끼에 더해 사건 관계자들 모두 알리바이가 명확해서 사건은 미궁에 빠집니다. 

두 번째 사건은 더 기괴합니다. 장 노디에는 잠긴 탑이라는 밀실 안에서 목을 맨 시체로 발견됩니다. 자살로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 상황으로요. 그런데 묵시록처럼 현장에는 큰 칼이 놓여 있었고 탑 밖에는 밤색 말이 죽어 있었습니다. 장 노디에가 자살했다면, 그가 자신의 자살 현장을 묵시록처럼 꾸밀 이유가 있었을까요?

세 번째 사건에서는 로슈포르의 아내 니콜이 절벽에서 추락하고, 현장에서 묵시록대로 죽은 검은말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실뱅 교수가 도주한게 목격되었기 때문에 그가 범인일거라 여겨지게 됩니다. 야부키 가케루와 나디아의 조사로 실뱅 교수는 동기가 있다는게 밝혀지기도 했거든요. 그 외에 현장에 모인 관계자들 알리바이는 모두 확실했고요.

그러나 마지막 네 번째, 로슈포르 추락사 이후 줄리앙에 의해 진상은 드러납니다. 여기서 묵시록 효과를 위해 이런저런 잡동사니를 뿌렸지만, '말'에 주목해야 한다는 추리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 묵시록에 다른 연쇄 살인은 다른 작품들("장미의 이름", "사쿠라 신부의 사건 노트 - 고도관 살인 사건")에서도 써먹었던 식상한 소재인데, 묵시록은 본질을 흐리기 위한 연출일 뿐이었다는 아이디어는 신선했기 때문입니다. 말은 그냥 마굿간에서 죽여도 되는데, 두 번째, 세 번째 사건에서는 현장 근처에서 말이 죽은 채 발견되었죠. 줄리앙과 가케루는 말이 범행에 이용되었기 때문이라고 추리합니다. 두 번째 사건에서는 말의 힘을, 세 번째 사건에서는 속도를 이용한 거지요.

두 번째 사건에서 말의 힘은 밀실 안 피해자의 목을 밧줄로 걸어 밖에서 잡아 당기기 위해 필요했습니다. 사람은 빠져나갈 수는 없지만 창문은 있었거든요. 밖에서 피해자 노디에의 이름을 부르고, 피해자가 내다보기 위해 깊은 창에 머리를 내밀었을 때 창 주위에 바늘로 고정하여 둘러친 밧줄 올가미를 단번에 조여 살해한 겁니다.
이는 추리 애호가라면 친숙하실 유명한 장치 트릭입니다. "소년 탐정 김전일 26. 마신 유적 살인 사건"에서도 비슷한 트릭이 사용되었지요. 밖에서 이름을 부른건 아니고, 밀폐 공간에서 가스 냄새가 나도록 해서 피해자가 창 밖으로 머리를 내밀게 만들있다는 차이는 있지만요.
"명탐정 코난. 25 거미의 집"에서도 창 틀 테두리에 줄을 올가미처럼 장치하고 창에 소리가 나도록 해서 (BB탄 총을 이용) 피해자가 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게 한 뒤, 밖에서 강한 힘으로 낚아채는 트릭이 사용되었는데 거의 모든 면에서 똑같아요. 시대에 걸맞게 '말'이 아니라 '자동차'를 이용하여 밧줄을 당겼고, 거미님 전설을 이야기에 녹여내었다는 사소한 차이만 있을 뿐이지요. 이렇게 후대에서도 모방한다는건 그만큼 잘 고안된 트릭이라는 뜻이겠지요.

세 번째 사건에서는 말의 속도를 이용했습니다. 범인 로슈포르가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현장으로 빠르게 이동할 때 타고 갔던 겁니다. 이렇게 두 번째, 세 번째 범행에서는 말이 현장에 있을 수 밖에 없어서 그 자리에서 죽게 되었고요. 아주 그럴듯해요.

첫 번째 사건도 묵시록 효과를 빼고 사건 현장에만 주목하여 범인의 트릭을 풀어낸다는 추리를 통해 해결됩니다. 범행에 '투석기'가 사용되었다는 건데, 아주 기발했어요. 사건 현장 건너편 건물에서 동그랗고 무거운 석구를 이용하여 살인을 저지르는데 이만큼 적합한 흉기는 찾아보기 힘드니까요. 피해자가 멍하니 머리 앞 쪽에 석구를 맞은 이유도 설명되고요.
실제로 머리에 제대로 맞는다고 장담할 수 없어서 투석은 유리창을 깨기 위함이고, 진짜 흉기는 쇠뇌로 쏜 화살이라는 아이디어도 좋았습니다. 투석에 사용한 석구가 요한 묵시록을 암시하는 조각품이고, 쇠뇌와 활 역시 그러해서 묵시록처럼 현장을 꾸민 발상도 기가 막힙니다. 카타리파의 복수, 혹은 페스트에게 원한이 있는 실뱅 교수에게 혐의를 돌리기에 딱 맞는 연출이었어요.

사건과 함께 진행되는 카타리파의 숨겨진 보물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첫 번째 사건에서 없어진 문서는 13세기 알비주아 십자군의 지휘자로 카타리파를 잔혹하게 살육했던 생조르주가 교황 인노켄티우스 4세에게 보냈던, 카타리파의 숨겨진 보물에 대한 서한일 거라고 설명됩니다. 생조르주는 서한을 보내기 직전 일어난 카르카손 폭동으로 도주하다가 암살당했고, 품 속의 서한은 생조르주가 암살당한 성당인 베네딕트회의 수도사가 은닉했었죠. 베네딕트회는 생조르주가 속했던 도미니크회와 대립했던 탓으로, 이후 책임 추궁이 두려워 이를 영원히 생세르낭 성당에 묻었던 겁니다. 콜베르가 편찬했던 도아트 문서에 생략된 부분은 이 생조르주 서한인게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도아트 문서에는 기록되었던 걸까요? 콜베르는 실용주의자로 보물을 재정문제로 치부했었습니다. 그래서 잃어버린 생조르주 서한을 찾아 나섰죠. 결국 생세르낭 성당에서 서한을 발견하는데, 상황이 변했습니다. 처음 서한을 찾아나섰던 8년 전에는 콜베르는 푸케와 경쟁하던 상황이라 왕에게 보물을 바치고 싶었지만, 8년 뒤 콜베르가 왕궁에서 차지한 지위는 확고부동하게 되기에 그는 왕에게 보물을 바치지 않고, 자신이 위기에 처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무기로 감췄습니다. 그럴듯하죠?
그러나 콜베르 사후, 이 내용은 왕에게 누설되어 도아트 문서는 헌상되었고, 그 때 생조르주 서한 부분이 삭제되었던 겁니다. 그리고 2차 대전 중 우연찮게 발굴된 생세르낭 문서, 그리고 생조르주의 서한을 향토 사학자 투르뉘가 손에 넣었지만, 그는 나치 독일군에게 체포되었고 문서는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그 나치 독일 군인이 발터 페스트였고, 투르뉘의 유복자는 샤를 실뱅이었다는 관계도 여기서 드러나게 됩니다.

하지만 숨겨진 보물의 위치가 기록된 서한을 13세기 십자군을 대표하는 도미니크 수도회, 17세기 부르봉 왕조의 절대주의를 대표하는 콜베르가, 20세기 유럽의 최고 권력이었던 나치 친위대 모두 손에 넣었는데 모두 암호를 해독하지 못해 발굴에 실패했다는건 말이 안되기는 합니다. 작품에서는 이들 중 독일군이 결국 매장된 보물을 발굴하는데 성공했다고 설명해 주는데, 보물은 카타리파의 상징인 거대한 황금 태양 십자가라고 합니다. 종전 후 미군이 입수한 뒤 사라져 버렸다고 하네요. "레이더스"와 동일한 결말입니다만, 시기적으로는 이 작품이 더 빠르니 원조격이라고 보아도 무방할거에요. 이 역시 나름대로 시대를 앞서간 아이디어인 셈이죠.
줄리앙이 투석기 잔해를 버리는 행동, 절벽을 등산 장비를 이용하여 수직으로 타고 내려와 알리바이를 만든 것 등 세세한 부분도 잘 짜여져 있어서 만족스러웠어요.

카타리파 보물이 사건의 중요 소재로 사용되고 있는 덕분에 관련된 설명도 상세합니다. 묵시록도 마찬가지고요. 개인적으로는 묵시록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아주 좋았어요. 소네 신부를 통해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잘 설명되고 있거든요. 원래 유대인들, 그리스도교들 모두 묵시록을 열심히 믿었지만, 로마 제국이 그리스도교를 공인하자 그리스도교는 더 믿을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박해하던 로마가 멸망하고 신의 왕국이 오기를 고대하며 믿었는데, 로마 제국이 자기 나라가 되어버렸으니 그 멸망을 고대할 이유가 없어진거지요. 그러나 유대인들은 민족 종교로 유대인들만의 왕국을 기다렸기에 그리스도교와 다른 길을 갔고요. 그래서 묵시록을 그대로 믿는 사람들은 이단이 된 겁니다.

그리고 남프랑스 일대 풍광이 소개되는 여정 미스터리 느낌도 나쁘지 않았어요. 파리에서 출발하여 피레네 산들에 둘러 싸여 있는 마을 몽세귀르와 몽세귀르 절벽에 위치한 카타리파 유적, 카타리파 최후의 전장인 성곽도시 카르카손, 항구 도시 마르세유를 거쳐 몽펠리에 옆 작은 도시 세트까지의 여정이 손에 잡힐듯 생생하게 펼쳐지거든요. 심지어 실존하는 카르카손 성곽도시의 탑 안에서 시체가 발견되기까지 하니 여정 미스터리로 보아도 손색없을 수준입니다.

여기까지 정리된 내용만 보면 본격물로 완벽하고, 보물 찾기 이야기도 잘 결합된 걸작으로 보이지요? 하지만 발표 이후 여러가지 리스트에 포함되었다가 지속적으로 순위가 하락한 이유도 분명합니다. 추리적으로 큰 헛점이 있을 뿐더러, 그 외의 단점도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추리적인 큰 헛점은 여러가지 있는데, 첫 번째는 로슈포르가 범행을 저지른 동기입니다. 노디에가 자신을 협박하고 심지어 죽이려고 한 들, 남프랑스 재계의 지배자가 눈 하나 깜빡할 이유가 있을까요? 게다가 니콜이 실뱅과 불륜을 저지른다고 한 들, 이는 니콜의 잘못입니다. 로슈포르가 니콜의 아버지 피에르를 강하게 압박할 수 있는 요소이지 피에르와의 동맹이 깨질 위험 요소는 아니에요. 설령 위협을 느꼈다 한 들, 재계의 제왕이 직접 복잡한 살인을 저지른다는건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두 번째는 범행의 순서입니다. 발터 페스트 살해는 이어지는 진짜 살인 목적을 흐리기 위함이라는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를 살해함으로써 생조르주 서한이 노디에의 손에 들어간건 순전히 우연입니다. 게다가 노디에를 살해한 두 번째 살인은 공들여 만든 밀실 트릭으로 경찰도 자살로 생각했을 정도인데 세 번째, 네 번째 사건을 계속 일으킨다면 밀실을 만들 이유가 없습니다. 순서상으로는 생조르주 서한을 어떻게든 노디에게 전해주고 페스트를 죽인 뒤, 니콜을 죽이고 노디에를 밀실에서 죽여서 자살로 위장했어야 합니다. 지금의 이야기는 트릭을 위한 범행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아요. 마지막에 로슈포르가 줄리앙과 격투를 벌이다가 절벽에서 떨어진다는 결말도 시시했고요.

이런 추리적인 문제에 더해, 개인적으로 더 큰 문제라 생각하는건 쓸데없는 철학적, 종교적 이야기와 함께 테러 조직 '붉은 죽음'과 러시아인 니콜라이 일리치의 존재가 이야기에 깊숙히 개입해 있다는 점입니다. 탐정이라 생각했던 줄리앙이 사실은 붉은 죽음의 조직원으로 로슈포르 가문의 재력을 이용하여 원자력 제국을 만드려고 한다는게 진상이었다는건 솔직히 헛웃음만 나오더라고요.

시몬이라던가 야부키 가케루 입을 통해서 이야기되는 종교적, 철학적 담론도 지루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탐정 역할도 줄리앙이 담당하고 있어서 야부키 가케루는 이런 쓰잘데 없는 이야기를 위해 존재하는 느낌이 강하고요. 읽다보면 두 번째 사건에서 야부키 가케루는 진상을 파악한걸로 묘사되는데, 희생자가 더 나올 때까지 손도 쓰지 않습니다. 줄리앙이야 로슈포르 부부가 죽어야 유산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현실적인 이유라도 있지, 야부키 가케루가 사건을 그냥 지켜만 볼 이유는 없어요.
이렇게 무의미하게 분량을 잡아먹느니 줄리앙을 정의의 명탐정 주인공으로 해서 이야기를 400페이지 정도로 줄이는게 훨씬 나았을겁니다. 이래서야 야부키 가케루 시리즈라고 부르기 창피할 정도에요.

그래서 제 별점은 3점입니다. 트릭은 멋집니다. 역사적 소재를 작품에 잘 끌고 들어왔다는 점도 높이 평가하고요. 그런데 지금 읽기에는 좀 애매하고, 지루하며 단점도 명확한 편입니다. 책 뒤 해설을 보니 역자분께서 시리즈 최고작이라는 "철학자의 밀실"이 출간될 수 있도록 잘 팔렸으면 좋겠다는 소회를 적고 계신데, 시리즈 출간이 더 이어지지는 않은 듯 싶군요. 약간은 아쉽지만 당연한 결과에요. 발표된지 거의 40여년이 지난 지금 읽기에는 한계가 명확했던 시리즈였습니다, 저와 같은 고전 본격물 팬이 아니라면 실망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2020/10/04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1 : 살인자 외 - 어니스트 헤밍웨이 외 / 신예용 : 별점 2점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1 : 살인자 외 - 4점
어니스트 헤밍웨이 외 지음, 신예용 옮김, 박광규 기획.해설/코너스톤

1890년대 후반에서부터 1940년대 까지, 추리소설의 여명기와 황금기까지의 시기에 발표된 여러가지 단편들을 모아 놓은 앤솔러지입니다. 이런 류의 앤솔러지는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을 비롯하여 그동안 많이 접해보았지만, 국내에 비교적 소개되지 않았던 유명 시리즈 작품들 위주라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절반 정도는 '퀸의 정원 ("탐정, 범죄, 미스터리의 간략한 역사")'을 통해 선정된 작품들이기도 하고요. 최소한 역사적 가치는 확실히 있다는 의미지요.

그러나 역사적 가치 외의 다른 가치를 느끼기는 함들었습니다. 너무 오래 전 작품인 탓입니다. 여러모로 설득력도 떨어졌고요. 전체 평균한 별점은 2점입니다. 

하지만 저와 같은 고전 본격 추리 애호가에게는 선물과도 같은 책이라는건 분명합니다. 초창기 추리 소설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쯤 읽어보셔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저같은 사람이 많이 없는지 재정가로 가격이 3000원 수준으로 떨어져서 가격도 착하거든요.

수록작 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스터들리 농장의 공포" 

의사인 나에게 스터들리 부인이 찾아와 자기 남편의 병을 치료해줄 것을 부탁했다. 나는 스터들리 농장으로 찾아가 준남작과 만났는데, 준남작은 자신이 밤마다 유령을 보는 탓에 공포로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준남작과 방을 바꾸어 유령의 정체를 밝혀내려 하는데...

코난 도일이 "마지막 문제"를 발표하며 '스트랜드 매거진'에 셜록 홈즈 단편 연재를 중단했을 때, '스트랜드 매거진'이 구멍을 메꾸고자 투입한게 바로 이 작품이 포함된 '어느 의사의 일기 시리즈' 였다고 합니다. 제목 그대로 '어느 의사'인 핼리팩스 박사가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시리즈로 '퀸의 정원' 에서는 최초의 '의학 미스터리' 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퀸의 정원'에서 매긴 가치는 '역사적 중요성'과 '희소 가치'고요. 아쉽게도 '퀄리티' 점수는 받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작품 발표 계기, 그리고 연재 시점을 보면 정통 본격물의 시조 중 하나로 보아도 무방하겠지만, 추리 소설의 여명기 작품이기 때문인지 완성도가 영 기대에 미치지 못한 탓입니다. 

스터들리 준남작과 부인의 방은 옷장의 비밀 문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폐결핵으로 죽어가던 부인이 저승길 동행을 위해 준남작에게 밤마다 유령쇼를 펼쳤다는게 진상인데, '나' (핼리팩스 박사)가 침실을 바꾸고 유령을 목격한 뒤, 유령이 나타난 옷장을 수색한 것 외에는 별다른 추리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셜록 홈즈가 변장만 하고 추리를 펼치지 않는다면, 이를 정통 본격 추리물로 보기는 어렵잖아요?

스터들리 부인이 '나'를 부르지 않았다면 계획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았다는 점에서 이야기 전개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부인은 '나'가 준남작에게 두뇌 질환으로 환영을 보는 걸로 이야기해줄걸 기대했다는데, 과학을 신봉하는 의사가 유령 이야기를 곧이 곧대로 믿을거라 생각한건 영 납득이 가지 않네요. 아무리 시대를 감안한다고 해도 말이지요. 아울러 '의학 미스터리'라고 볼 수 있는 부분도 전무해서 아쉬웠습니다.

본격 추리 소설 초창기 단편 중 한 편을 만나 보았다는 기쁨, 그리고 오스틴 프리먼손다이크 박사 이전에 '과학을 신봉하는' 의사 탐정이 있었다는 사료적 가치, 마지막으로 스터들리 부인이 유령을 만들어낸 장치가 배터리에 연결된 전등이라는 상당한 하이테크 제품이라는 점 등 눈길을 끄는 요소가 없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금고실의 다이아몬드" 

헤드와 친구 두프라이어는 둘의 세계적인 악녀 마담 콜루치가 다이아몬드 상인 칼튼의 파티에 초대된 걸 알고 파티 초대를 받아들였다. 마담 콜루치는 칼튼 부인의 전남편이 살아있다며 그녀를 협박하는 것과 동시에, 칼튼 부인을 시켜 빼돌린 로체빌 다이아몬드를 칼튼의 철벽 그곳에서 훔쳐낼 계획이었다....

L.T. 미드와 로버트 유스터스가 합작하여 1890년대 후반 발표되었던 연작 단편집 "일곱왕 연맹" 수록작이라고 합니다. 희대의 악녀로 비밀 범죄 조직 '일곱 왕 연맹'의 총수인 마담 콜루치와 과학자이자 탐정 노먼 헤드의 대결을 그리고 있는 시리즈라고 하네요. '퀸의 정원'에서 매긴 가치는 '역사적 중요성'과 '희소 가치'고요.

역시 '퀄리티' 점수는 받지 못했는데, 이해가 갑니다. 특히 이 단편은 그 수준이 아주 미흡해요. 내용부터 딱히 건질게 없거든요. 헤드와 마담 콜루치와의 대결이 등장하지 않는 탓이 가장 큽니다. 헤드의 활약이라고는 고작해야 칼튼 부인을 설득해서 전 남편에 대한 사실을 고백하라고 이야기하는게 전부거든요. 그나마도 실패하고요. 게다가 다이아몬드도 놓쳐버리기 때문에 이래서야 명탐정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합니다.

못하는게 없는 희대의 악녀인 마담 콜루치 캐릭터는 분명 시대를 앞서갔다고 생각됩니다. 또 열쇠를 돌리면 비상벨이 울리는데, 울리지 않은 이유에 대한 트릭도 괜찮았습니다. 칼튼의 열쇠를 조작해서 열쇠의 머리 부분만 헛돌게 만든 거지요. 즉, 열쇠를 돌려도 잠기지 않은거고, 당연히 다시 열어도 벨이 울리지 않은 것입니다. 열쇠를 돌릴 때의 저항감, 소리, 마지막으로 금고가 정말 잠겼는지 확인을 왜 안했는지 등 딴지를 걸자면 끝도 없지만, 열쇠 하나의 조작으로 모든걸 일이루어 낸, 대담한 발상의 트릭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연작 단편을 이어서 다 읽는다면 모를까, 이 작품 하나만 읽고 점수를 주기에는 부족한 점이 더욱 많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탐정 스페이드" 

맥스 블리스가 협박 받고 있다는 전화를 스페이드에게 남긴 뒤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샘 스페이드는 아는 형사 던디 등이 수사하는 와중에 끼어들어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낸다.

대실 해밋이 쓴 샘 스페이드 단편입니다. 묵직하고 거친 사나이 매력을 담뿍 풍기는 이야기이며, 피해자의 딸이 몰래 만나던 불륜남, 광신도이면서 못생긴 가정부 에피 부인이 묘하게 엮여서 사건이 복잡해 지는 전개는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소설과 다를게 없는데 정통 추리물이기도 하다는게 놀랍습니다. 유력한 용의자인 피해자의 동생 시어도어가 알리바이를 조작하고, 증거를 인멸하여 살인을 저지른 것이며, 시체에 놓여져 있던 '새 넥타이' 가 중요한 단서가 된다는 점 등은 본격 추리물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거든요. 피해자는 옷을 벗던 중 살해된 것 처럼 보이지만, 그럴 경우 매고 있던 넥타이가 아니라 새 넥타이가 놓여져 있는건 이상하다는 이유입니다. 이를 발견한 스페이드의 눈썰미도 대단하지요. 

샘 스페이드는 피해자로부터 전화를 4시 5분전 쯤 받았는데, 시어도어는 4시에 법정에서 결혼을 했다는 철벽의 알리바이에 대한 트릭도 간단하고 깔끔합니다. 시어도어는 3시 30분 쯤 피해자를 죽이고 법원으로 가서, 그 곳에 있는 전화로 자신이 피해자인 척 하고 전화를 걸은 겁니다.

물론 스페이드가 한 추리의 증거가 범인 시어도어 손에 난 상처 뿐이라는건 빈약합니다. 상처가 났다고 범인이라는 증거는 될 수 없으니까요. 가정부 에피 부인도 손에 상처가 있었다는 점에서, 그렇게 특이한 상처도 아니고요. 손의 상처보다는, 법원에서 전화를 건 기록을 찾아서 시간을 대입해 보는 식으로 풀어갔더라면 더 깔끔했을 겁니다. 아울러 피해자가 시어도어에게 협박?의 댓가로 지불한 돈은 2만 5천불일텐데 2'억'으로 기입된 오타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하드보일드와 본격 추리와의 결합에 성공한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퀸의 정원'에 소개된 "샘 스페이드의 모험" 수록작으로 이 책은 역사적 중요성, 희소성은 물론 퀄리티까지 인정받고 있네요. 당연합니다.

"의사와 그의 아내 그리고 시계"

80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의 여성 탐정 바이올렛 스트레인지 시리즈로 "Mystr 럭키팩 8 - 탐정 소설 : Mystr 컬렉션" 수록작과 동일합니다. 

당시에는 혹평했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꽤 괜찮은 점도 많았습니다. 자브라스키 박사가 순간적인 충동으로 살인을 저지른 과정이 훨씬 설득력있게 다가온 덕분입니다. 흥분한 자브라스키 박사가 '층을 착각해서' 살인을 저질렀다는 우연도 그렇게 어색하지 않았고요. 번역의 차이 때문이었을지 궁금하네요. 

물론 우연에 의한 작위적인 범죄라는 한계를 벗어나진 못했고, 전체적으로 지나치게 오래된 작품이라는 티는 물씬 납니다. 그래도 예전처럼 별점 1.5점을 줄 작품은 아니에요. 다시 매긴 별점은 2.5점입니다.

"두 번째 총알" 

여성 탐정 바이올렛 스트레인지 시리즈 두 번째 작품으로 '사장'에게 고용되어 돈 하나만 바라보고 일하는 사립 탐정 바이올렛과, 부유하고 젊은 사교계의 꽃 바이올렛이라는 설정이 재미나게 묘사된 작품입니다.

맨해튼의 한 아파트에서 해먼드 씨가 자신의 아기와 함께 죽은 시체로 발견됩니다. 그는 총을 들고 있었고 가슴에 총을 맞았으며, 아기는 죽은 해먼드 씨의 손에 눌려 질식사했지요. 해먼드 씨 가슴의 총알은 그의 총에서 발사된 것으로 밝혀집니다. 그러나 근접 거리에서 손 총격은 아니었고, 해먼드 부인인 열린 창문을 통해 누군가 해먼드 씨를 쏘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게 사실이라면, 해먼드 씨 몸 속 총알과 함께 해먼드 씨가 쏜 총알도 발견되었어야 했습니다. 바이올렛이 이 두 번째 총알이 어디있는지 추리해내는게 주요 내용입니다.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문제가 많습니다. 해먼드 씨 몸속 총알은 해먼드 씨의 총에서 발사된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법과학의 수준은 많이 부족했겠지만, 아무리 그렇다 한들 앞서 거의 단언하다시피한 정황을 손바닥 뒤집듯 쉽게 뒤집는다는 점에서 제대로 된 본격 추리물로는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두 번째 총알을 아기가 삼켰고, 그것 때문에 질식한 것이었다는 진상은 괜찮았습니다. 해먼드 씨가 아니라 총알이 후두를 막은게 질식사의 원인이 된 거지요. 어디론가 사라진 총알의 행방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 손 꼽을만한 이야기라 생각되네요. 이 진상 덕분에 별점은 1.5점입니다.

참고로, '퀸의 정원'에서는 A.K 그린 (애나 캐서린 그린)의 "미스터리의 걸작들" 이라는 단편집을 '역사적 중요성'과 '희소성'에만 가치를 부여하고 소개하고 있는데, 바이올렛 스트레인지 시리즈는 아닌 듯 하네요. 가치가 크게 다를거라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급행열차 안의 수수께끼" 

급행열차 안 객실에서 르웰린 부부가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권총이 사라진 탓에 자살은 아니었는데, 객실 문은 1인치 정도 열린 채 쐐기로 고정되어 도저히 열 수 없었다. 남아 있던 승무원과 승객의 신분도 모두 확실했으며, 그들이 범인일리 없었다. 그렇다면 범인은 살인을 저지르고 열차를 떠났을 텐데, 객차의 앞 쪽 침대칸은 승객과 승무원 모두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다고 증언했으며, 뒷 쪽 3등칸에는 아이가 울어 달래러 나온 부부가 있었다. 객실 문 옆 승객이 바라보고 있었다. 범인은 열차를 어떻게 떠났을까?

고전 본격물의 걸작 "통"과 '프렌치 경감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 F.W. 크로포츠의 단편입니다. 

굉장히 복잡한 장치 트릭이 사용되고 있는데, 별로 와 닿지 않습니다. 절반 가까운 내용을 F.W. 크로포츠 본인이 오랜 철도업 종사자라 쓸 수 있었을 상세한 기차 구조 설명에 할애하고 있지만, 열차의 구조와 얼마나 불가능한 범행이었는지를 이해하기는 어려웠던 탓입니다. 이런 기차 여행이 흔했던 발표 당시라면 모를까, 기차를 별로 타지도 않는 지금 독자들이 이해하기는 더욱이 역부족이었어요. 차라리 만화라던가, 최소한 삽화 등으로 트릭을 설명해 주어야 했습니다.

게다가 범행이 밝혀지는건 추리의 결과가 아니라 범인의 고백이라는 점에서도 추리물로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범인이 친구 르웰린에게 연인을 빼앗기자 복수심에 저지른 치정 범죄라 트릭은 알 수 없어도 동기만 확인되면 범인은 충분히 체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경찰은 도대체 뭘 한 건지 잘 모르겠네요.

한마디로 추리물로 보기도 어렵고, 지금 시점에서는 이해조차 하기 어려웠던 작품이기에 별점은 1점입니다. '퀸의 정원'에도 소개되지 않았을 정도니 지금 와서 읽을 가치는 별로 없겠지요. "통"이나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살인자" 

서밋 이라는 도시에 찾아온 맥스와 알은 식당에서 식사를 시킨 뒤, 사장 조지와 요리사, 그리고 손님 닉을 협박하며 그들의 목적을 말해 주었다. 그들은 올레 앤더슨을 죽이기 위해 온 것이었다. 올레 앤더슨은 식당 단골로, 킬러들은 그를 기다리는데...

미국 현대 문학 거장인 헤밍웨이의 작품인데 추리 소설은 아닙니다. 하드보일드 느낌이 나는 드라마거든요. 킬러가 등장해서 식당 관계자들을 협박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살인 이 일어나지는 않으니까요. 그래서 추리 애호가에게 어필할 수 있는 내용은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불운과 죽음을 의인화하여 드라마로 풀어낸 짤막한 꽁트라 생각됩니다. 2인조 킬러는 식당 관계자에게는 급작스러운 소나기와 다를게 없는 불운, 올레 앤더슨에게는 필연적으로 찾아올 죽음과 같은 존재로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닉은 불운과 죽음 모두를 맛 본 뒤, 서밋이라는 도시를 떠날 생각을 하는걸 보면 운명에 순응하지 않는 일종의 이단자인 셈이지요.

짤막하지만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바닥없는 우물" 

전쟁 영웅인 노장 헤이스팅스 경이 고대 아랍 전설이 얽혀있는 오래된 바닥없는 우물 옆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함께 있었던 보일 대위가 유력한 용의자로, 그는 헤이스팅스 부인과 불륜 관계였었다.

브라운 신부 시리즈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어서 놀랐던 체스터튼의 단편입니다. '너무 많이 아는 사나이'라는 단편집에 수록된 연작 단편 중 한 편으로, 시리즈 제목 그대로인 '너무 많이 아는 남자' 혼 피셔가 주인공입니다. 중동 어딘가에 있는 영국 식민지 공무원이지요.

눈여겨 볼 부분이 많았던 작품인데, 그 중에서도 영국 제국 주의를 비판하는 시각, 영국 정부가 국가와 국민이 아니라 자본에 의해 움직이고,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는 시각이 강하게 드러나 있다는게 인상적입니다. 브라운 신부가 아니라 식민지 공무원을 주인공으로 삼아 이야기를 쓴 이유가 명확해 보였어요. 신부님이야 아무래도 용서와 화해를 권했을테니, 이런 류의 독설에는 적합하지 않았을테지요.

추리적으로도 작가의 명성에 값합니다. 누가 보아도 보일 대위가 범인으로 여겨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는게 진상인데, 그 이유와 방법이 설득력있게 설명되기 때문이에요. 특히 헤이스팅스 경이 먼저 보일 대위에게 끝이 보이지 않는 우물가로 산책을 제의했다는게 결정적 단서가 된다는게 좋았어요. 보일이 죽으면 시체를 우물로 던져넣을 생각이었던 거지요. 보일은 범인이 아니기에 시체 앞에서 멍하니 있을 수 밖에 없었고요.
범인이 독을 마신건 순전히 회전식 책꽂이 때문에 찻잔이 뒤바뀌어 일어난 사고라는 점도 재미있었습니다 . 물론 충동적인 범행에 우연에 의해 벌어진 사고라는건 합리적인 본격 추리물로 보기에는 단점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를 설득력있게 포장한 솜씨는 과연 거장의 그것이었어요.
'너무 많이 아는 남자' 시리즈를 더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시카고의 여성 상속인" 

롬니 프링글은 대영 박물관 열람실에서 이상한 남자가 공들여 편지를 쓰는 광경을 본 뒤, 그의 편지 압지를 빼돌렸다. 암호와 같은 압지 문구 해독을 통해 '실링하머'라 자칭하는 남자가 런디 후작을 협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는데...

'손다이크 박사'로 잘 알려진, R.A. 오스틴 프리먼의 롬니 프링글 시리즈 단편입니다. '퀸의 정원' 분류에 따르면 엄청난 희귀본이라고 하네요. 롬니 프링글은 도둑이자 사기꾼인 안티 히어로인데, 이 작품에서는 협박자 실링하머의 돈을 빼돌리는 과정이 차분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링하머가 후작을 협박하는게 모두 이미 발표되었던 신문 기사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게 무슨 범죄가 되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당연히 런디 후작이 형들과 아버지를 살해하고 작위를 물려받았을 줄 알았는데, 단지 그들이 '자살'했다는 진상도 협박거리가 될 걸로 보이지 않았고요.

롬니 프링글의 작전 역시 별다른게 없어서 실망스럽습니다. 그가 실링하머에게서 범죄의 냄새를 맡은건 순전히 우연이었고, 마지막에 경찰을 자칭하여 그를 잡아서 돈 지갑을 빼앗는 것도 여러모로 어설퍼보였거든요. 압지의 글귀 해독도 논리가 뒷받침 되어있는 암호 해독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고요.
경찰을 자칭하고 후작을 찾아가, 협박자에게는 현금을 주는게 낫겠다는 조언을 하는 장면만 조금 그럴듯 했을 뿐입니다. 

'퀸의 정원'에서 '역서적 가치', '희소성'에 '퀄리티' 가치까지 부여받은 3관왕인데, 동의하기 어렵네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2015/11/30

화과자의 안 - 사카키 쓰카사 / 김난주 : 별점 3점

화과자의 안 - 6점 사카키 쓰카사 지음, 김난주 옮김/블루엘리펀트

모두 5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가벼운 일상계 단편집입니다. '키 150cm, 체중 57kg'의 주인공 우메모토 교코가 고등학교 졸업 후 도쿄 백화점 지하에 있는 화과자점 "미쓰야"에서 일하게 된 뒤 만나는 소소한 사건들을 다룹니다.

잘 모르는 작가의 작품으로 충동적으로 읽게 되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꽤 괜찮았습니다. 쉽게 읽히는 재미는 물론 추리적으로도 제법이며 잘 몰랐던 화과자에 대한 현학적인 매력도 넘친 덕분입니다.

캐릭터들의 매력과 배분도 아주 적절합니다. 사건 해결은 괴인 츠바키 점장이 맡고, 이야기는 우메모토 교코가 빠른 눈치와 추진력으로 템포 있게 유지시키며, 화과자에 대한 지식은 게이 성향이 있는 화과자 장인 지망 베테랑 아르바이트생 다치바나가 덧붙여 주는 식으로 황금 분할이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연산 - 파워 - DB의 3위 일체네요.

허나 화과자에 대해 알고 있어야만 추리를 따라갈 수 있기에 평범한 일반인, 그것도 한국인 독자가 추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일상계이지만 전문가적 지식이 발휘되는 작품이라는 측면에서는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나 "명탐정 홈즈걸"과 같은 스타일이지요.
물론 현학적인 재미로 보상해 주는 만큼 단점이라고만 보기 어렵습니다. 저 역시 아주 좋아하는 장르입니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갤러리 페이크"가 될 테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전문가 일상계 추리물의 교과서 같은 작품으로 추리소설에 입문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리고 싶네요. 이야기도 소소하니 따뜻하고 즐거우며 맛있기까지 하니 더 바랄 게 뭐가 있겠습니까.

각 단편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화과자의 안"

회사원 아가씨가 생과자 "오토시부미" 1개에 "투구" 9개를 사간 이유에 대한 추리가 펼쳐지는 작품.

츠바키 점장은 오토시부미를 특정 인물 1명 앞에 내어 놓을 필요가 있었으며, 그 이유는 "오토시부미"의 사전적 의미 — '공공연하게 말할 수 없는 내용을 쓴 무기명의 문서' — 에 따라 그 과자를 받는 사람은 뭔가 부정이 있다!라고 다도에 박식한 상관에게 넌지시 고하기 위함이라고 추리합니다.
그리고 다음에 회사원 아가씨가 과자를 사러 왔을 때에는 사건이 해결된 것을 알아차리고 '액막이용 과자'인 "물의 달"을 바로 내어주었지요.

화과자에 대해 잘 모르면 추리에 동참할 수 없다는 단점은 있지만 시리즈의 시작으로 캐릭터들의 소개와 더불어 이 작품이 화과자에 대한 일상계 추리물이구나! 라는 것은 충분히 알려줍니다. 현학적인 재미도 넘쳤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1년에 한 번 하는 데이트"

견우와 직녀가 만난 뒤의 칠석 과자 "까치"를 사러 온 여대생은 대만에 있는 남자친구와 원거리 연애 중으로 비행기를 타야 했고, 단골인 스기야마 할머니가 사 가는 과자는 사실 불단에 올릴 목적이었다는 내용입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와 동일한 문제가 여전합니다. 일반인이 추리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그나마 여대생의 원거리 연애 에피소드는 독자도 추리할 만한 여지가 있긴 했습니다만, 스기야마 할머니 이야기는 정말 무리예요. 특히 할머니의 독특한 복장이 사실은 화과자의 "상제" 색 조합과 관련이 있었다는 것은 일반인의 영역은 아니니까요.

그래도 전문가적 지식을 토대로 한 일상계 추리물의 교과서적인 전개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캐릭터들이 나름 성장하기도 하고, 츠바키 점장의 개인사도 살짝 엿보이는 등 읽는 재미도 충분했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에서는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싸리와 모란"

야쿠자가 와서 시비를 거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다치바나의 사부가 가게의 전문성을 시험하느라 이런저런 전문 용어를 사용한 것이라는 이야기.

요약된 줄거리 그대로 추리의 여지는 거의 없습니다. 그냥 화과자에 대한 정보 전달이 주인 탓에 일상계 추리물이라기보다는 "갤러리 페이크"에 더 가까워요.

허나 워낙 재미있는 내용들이라 지루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아주 재미있었어요. 화투에 멧돼지와 싸리가 반드시 같이 그려져 있는 이유가 멧돼지 = 보탄(모란) → 모란떡은 오하기 → 하기는 싸리, 그래서 같이 그린다라는 언어유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인데, 다른 작품에서 접하기 힘들 뿐 아니라 지루할 수 있는 이야기를 야쿠자스러운 말투와 엮어 재미나게 풀어내는 솜씨가 탁월해서 감탄할 정도였습니다.
신 캐릭터인 다치바나의 사부도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이긴 하지만 그런대로 작품과 잘 어울렸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스위트 홈"

백화점 내 양과자집 "황금사과"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가쓰라자와가 팔다 남은 케이크를 "오빠"에게 가져가는 이유는?

"오빠에게 가져간다"는건 착각이었고 케이크를 "오빠", 즉 나이가 많은, 전날 팔다 남은 케이크라고 이야기했다는 내용인데 실제 자료 조사가 토대가 된 듯한 일종의 언어유희가 돋보였습니다. 화과자에 대해 몰라도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도 큰 장점이지요.
곁들여 주류 코너에서 일하는 구스다 씨가 떨이 도시락을 사재기한 이유가 함께 밝혀지는 구성도 참 좋았습니다.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였으니까요.

아울러 양과자와 화과자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양과자와는 다르게 화과자는 이 나라에서 나는 재료를 사용해 이 나라의 기후와 습도에 맞게 만들어 관혼상제를 채색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는 것인데 정말 공감됐습니다. 한천은 여름에도 녹지 않는다는 일종의 화과자 부심(?)도 귀여웠고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쓰지우라의 향방"

미쓰야에서 판매한 새해맞이 과자 "쓰지우라" 안에서 이상한 암호문이 나와 그것을 해독한다는 내용으로 암호 해독이 중심인 작품입니다.

종이는 누군가 바꿔치기한 것에 불과하고, 암호문은 일본어로만 풀어낼 수 있는 것이라 추리의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화과자가 중요하게 사용되지도 않아서 시리즈와 연계성도 조금 떨어지고요.

점장이 기다리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2화에 언급된) 설명되어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주기는 하지만, 점장의 연인이었던 과자틀 장인 "형풍"이 죽기 전 남긴 과자틀 반쪽을 안짱이 골동품 벼룩시장에서 건진다는건 우연이라도 너무 심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추리도 별로고 작위적이라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여러모로 마무리가 약한 느낌입니다.

2014/06/23

지구 속 여행 - 쥘 베른 / 김석희 : 별점 2점

지구 속 여행 - 4점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열림원

리덴브로크 교수는 조카 악셀과 지구 속까지 뚫여 있다는 아이슬란드 화산으로 향했다. 우연히 발견한 연금술사 사쿠누셈이 남긴 룬 문자 암호를 해독한 덕분이었다. 현지에서 채용한 길안내인 한스까지 포함한 세 사람은 분화구에서 입구를 발견하고 지구 속으로의 여행을 시작하는데...

이 작품은 쥘 베른의 대표작 중 하나이며, 열림원의 "쥘 베른 컬렉션" 시리즈 제1권이기도 합니다. 오래전에 읽었던 기억이 있지만, 제대로 된 번역본으로는 처음 접해보았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초반, 즉 전체 분량의 1/3 정도는 아이슬란드까지의 여정에 집중되어 있고, 지구 속에 들어간 이후에도 지층과 광물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모험 소설로의 정체성이 부족하게 느껴졌던 탓입니다. 책 뒤 해설에 따르면 본작은 청소년들을 위한 교양 학습과 오락을 결합한 기획물이었다고 합니다. 실제 연재되었던 잡지명이 "교육과 오락"이었다니, 이런 내용이 된 게 어느정도 수긍은 갑니다.

또한 지나치게 오락가락하는 악셀의 심리 묘사가 반복되는 점도 불만스럽습니다. 실제 모험의 주인공은 오히려 묵묵히 헌신하는 한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교수나 악셀은 정작 결정적인 행동을 보여주지도 않으니까요.
책의 완성도도 흠잡을 데 없지만, 삽입된 발표 당시의 판화 삽화는 감흥을 크게 일으키지는 못합니다. 시드니 파젯의 셜록 홈즈 삽화와 비교하면 말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전부 아쉬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중간에 길을 잃은 악셀과 교수가 목소리의 전달 시간을 이용해 서로의 위치를 파악하는 장면처럼 과학적 요소가 이야기와 잘 결합된 장면은 꽤 깊은 인상을 심어줍니다. 지구 중심부가 뜨겁지 않다는 가설, 아이슬란드에서 출발해 스트롬볼리 화산을 통해 탈출하게 되는 모험의 루트 또한 꽤 그럴듯하게 짜여져 있고요.

모험소설적인 재미도 실제로 묘사될 때는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길을 잘못 들어 탈진 직전까지 갔던 일행이 지하수, 이른바 "한스천"을 발견하고 생존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지저의 바다 근처에서 마주치는 기묘한 동식물들에 대한 묘사도 흥미로왔고 초반에 등장하는 암호문 역시 무척 반가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크게 다가왔고, 전체적으로는 기대에 못 미치는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어릴 적 읽었던 학습만화 중, 재미도 애매하고 교육적 가치도 크지 않았던 이른바 "뚱딴지"류 학습 만화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학습성을 배제하고 "잃어버린 세계"처럼 정통 모험소설로 구성되었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네요. 지금의 결과물은 아무래도 여러모로 애매하게 느껴집니다. 

2013/03/17

매스커레이드 호텔 - 히가시노 게이고 / 양윤옥 : 별점 2.5점

매스커레이드 호텔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현대문학

도쿄에서 의문의 살인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피해자는 30세 전후의 회사원, 43세의 주부, 53세의 고등학교 교사였고, 사건 현장에는 수수께끼의 숫자가 남겨져 있었다.

45.761871, 143.803944
45.648055, 149.850829
45.678738, 157.788585

경찰은 이 숫자를 해독해내는 데 성공했다. 숫자는 다음 범행장소를 예고하는 메시지였다. 메시지에 의해 다음 범행장소로 예고된 곳은 최고급 호텔 코르테시아도쿄 호텔이었다.

경찰은 네 번째 살인을 막기 위해 호텔에 수사관들을 대거 급파하고 벨보이, 하우스키퍼, 투숙객 등으로 위장한 형사들이 잠복근무에 돌입했다. 닛타 형사도 호텔의 간판 부서인 프런트 직원으로 위장해 잠입 수사를 시작했다. 진짜 호텔리어처럼 보이기 위해 베테랑 호텔리어인 야마기시 나오미의 지도를 받으며, 둘은 사건 해결을 위해 함께 협력하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비교적 최신 장편. 기둥 줄거리는 연쇄살인사건이라는 강력 사건이지만, 가운 절도, 장님인 척하는 할머니, 스토커에게 쫓기고 있다는 미인, 끊임없이 어이없는 클레임을 거는 손님이라는 일상계 사건이 연달아 벌어진다는 구성이 독특합니다.

또한 이 일상계 사건들이 모두 나름대로의 트릭이 존재하고, 이 트릭들에서 힌트를 얻어 범행의 진상에 접근해 나가는 전개는 가가 형사 시리즈 "신참자"를 연상케 합니다. 단편 연작물 느낌을 주면서도 기둥 줄거리와 잘 엮어나가는건 판박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상계물에 비하면, 본편 이야기인 연쇄살인사건 이야기는 많이 별로입니다. 일단 상관없는 살인들을 연쇄살인사건으로 위장하여 진상을 흐리게 만든다는 설정부터가 "ABC 살인사건" 등 다양한 작품에서 이미 사용되었기에 뭔가 다른 아이디어가 필요했을 텐데, 그런 게 전혀 없다는 문제가 너무 큽니다. "호그 연속살인" 정도의 임팩트는 줬어야 했을 텐데 말이지요.

그리고 암호도 억지스럽습니다. 연쇄살인처럼 보이게 하려면 "살인범 X" 같은 이니셜로도 충분했을 테고, 모방 범죄가 우려된다면 특별한 폰트와 사이즈 정도만 써도 충분했을 텐데 괜히 어렵게 꼬아놓기만 했으니까요. 호텔을 콕 집어 범행 장소로 지정할 이유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경찰의 주목을 끌어서 유리한 점이 뭐가 있을까요?

그 외에도 각 사건별로도 어설픈 점이 많아요. 예를 들면 오카베의 알리바이는 억지스럽습니다. 그때 옛 애인이 전화를 했으리라는 보장도 없을 뿐 아니라, 경찰에서 통화 내역을 조사했더라면 금방 진상을 알아낼 수 있었을 겁니다. 혼자만 PC를 사용하게 만들었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요.

진상도 어딘가에서 본 듯한 내용이며 - "낯선 승객"이 생각나네요 -, 범인의 동기 역시 설득력이 떨어져서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물론 닛타와 야마기시 나오미의 밀당도 재미나고 소소한 일상계 트릭들은 충분히 즐길 만했습니다. 호텔이라는 장소에서 일하는 여러 전문가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점도 좋았고요.  제 별점은 2.5 점입니다. 차라리 호텔을 무대로 한 일상계 추리물이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 무리하게 장편을 만든 느낌이에요.

2012/01/23

이니그마 - 로버트 해리스 / 조영학 : 별점 2.5점

이니그마 - 6점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이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약간 포함되어 있습니다.

톰 제리코는 선배 앨런 튜링의 소개로 블레츨리 파크의 암호 해독 부서에 배치된 후, 독일군 기기 중 가장 어려운, 4중 회전자를 채택한 이니그마 "샤크"를 해독해 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건강을 해친 톰은 요양을 떠났지만, 고작 3주 후 샤크의 체계가 바뀌어 다시 업무에 복귀했다. 업무 복귀와 동시에 옛 연인 클레어의 행방을 뒤쫓다가, 그녀의 방에서 훔쳐낸 암호문을 발견하는데...

역시나 물만두님의 리뷰집을 읽고 흥미가 생겨 읽게 된 작품입니다. "그들의 조국"으로 데뷔한 로버트 해리스의 두 번째 작품으로, 450페이지가 넘는 대장편입니다. 첫 작품은 가상 역사물이었지만, 이 작품은 2차대전 당시 영국 정보부 블레츨리 파크를 무대로 한 팩션입니다. 이전에 영화로 먼저 접했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영화와는 달리 디테일이 확실해서 좋았습니다. 영화에서는 이니그마와 블레츨리 파크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었는데, 소설은 이니그마에 대한 고증과 암호를 풀어내는 과정이 굉장히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거든요. 암호 해독에 관심이 있다면 자료 삼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잘 설명해 줍니다. 실제 이니그마 해독 과정이 중심이라 독자가 암호 해독에 참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만 제외하면, 완성도가 매우 뛰어납니다.

또한, 영화는 두 가지 이야기 축인 '이니그마 해독'과 '클레어 실종에 대한 미스터리' 중에서 클레어 실종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었는데, 소설은 두 가지 이야기를 균형 있게 전개하는 것도 좋았어요. 거대 수송 선단을 보호하기 위해 새로운 단서를 알아내야 하고, 그 단서가 되는 것이 수송 선단을 발견한 U보트의 통신 암호라는 아이러니한 상황과 그로 인한 서스펜스 (명확한 시간 제한이 생기므로)를 영화보다 훨씬 설득력 있고 박진감 있게 서술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러나 단점도 분명합니다. 가장 큰 단점은 이야기가 너무 길고 늘어진다는 점입니다. 특히 주인공 톰 제리코의 불안한 심리 묘사와 옛 연인 클레어와의 관계에 지나치게 많은 분량이 할애되어 있습니다. 클레어에 대한 비중이 커진 탓에, 진짜 여주인공인 헤스터의 존재가 묻혀버린 것도 문제입니다. 제리코가 클레어의 룸메이트 헤스터와 함께 클레어의 실종에 얽힌 진상과 중요한 단서를 포착하는 전개는, 영화에서 초반에 간결하게 처리한 것처럼 소설에서도 요약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밀도 있는 상세한 묘사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앞부분은 장황한데 반해, 중반 이후 결말까지는 너무 빠르게 전개되는 느낌이 있어 강약 조절이 실패했다는 인상을 줍니다. 확실하게 정리하며 마무리되기는 하지만, 마치 연재 종료를 갑작스럽게 통보받은 만화의 엔딩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또한, 폴란드인 푸코프스키가 가족을 위해 카틴 숲 학살 관련 암호문을 몰래 해독하려 했다는 동기는 이해할 수 있지만, 애초에 암호문 내용이 카틴 숲 사건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가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에필로그에서 클레어가 스파이로서 해당 메시지를 중개했다고 설명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작품 내에서 해당 암호문은 해독조차 시도되지 않았다고 묘사되며, 가장 뛰어난 암호 해독 전문가인 제리코조차도 해독이 기적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어려운 암호였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에필로그에서 클레어가 사실 위그램이 심어놓은 블레츨리 파크 감시용 스파이였다는 설정은 불필요하게 느껴집니다. 나름 반전 요소일 수는 있지만, 이야기의 흐름에 꼭 필요하지는 않으며 퍼그에게 의도를 가지고 암호를 전해주었다는 점도 현실성이 부족해 보입니다. 애초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퍼그의 배후를 찾기 위한 작전이었다면, 주객이 전도된 셈입니다. 이 암호 때문에 퍼그가 독일 쪽에 붙으려 한 것이라면, 차라리 단순한 미행이나 감시를 붙이는 것이 훨씬 나았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U보트를 뒤쫓는 암호 해독 요원들의 시간 제한이 있는 작전과, 또 다른 음모가 복합적으로 펼쳐지는 서스펜스와 재미는 상당히 뛰어났기 때문에, 알리스테어 맥클린 스타일 (짧고 임팩트 있게)로 쓰였다면 더욱 만족스러웠을 것 같아 아쉽습니다.

덧붙여, 영화와 소설 둘을 비교한다면 영화 쪽이 더 낫습니다. 일반 독자나 관객이 이해하기 어려운 암호 해독 장면보다는, 클레어의 실종과 그 비밀을 파헤치는게 더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보거든요. 결말 또한 영화 쪽이 깔끔하고요. 헐리우드식 해피엔딩이 시종일관 을씨년스럽고 어두운 분위기의 원작보다는 개인적으로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톰 제리코가 마지막 퍼그와의 추격전 이후 요양할 때 읽었다는 아가사 크리스티 소설 목록은 인상적이었습니다. "13인의 만찬", "명탐정 파커 파인", "세븐 다이얼스 미스터리", "목사관 살인사건" 등, 작중 주인공이 읽는 책들이 제 취향과도 묘하게 어울려서 더욱 반가웠습니다.

2009/05/29

명탐정 키요시로 사건노트 1~7 - 하야미네 카오루 / 에누에 케이

제목 그대로 "명탐정" 인 교수 유메미즈 키요시로가 옆집 이와사키 가(家)의 세쌍둥이 자매 아이, 마이, 미이와 함께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전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짤막하고 일상에 가까운 이야기로 시작해서, 본편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전개로 한권이 이루어진 옴니버스 시리즈 만화입니다. 예전에 봤었지만 취향이 아니라서 보다가 접었었는데 형이 7권까지 구입했길래 빌려서 읽게 되었네요.

일단 장점부터 소개하자면 :
1. 추리만화이지만 대상 연령대가 낮은 덕분에 눈높이를 맞춘 티가 역력할 정도로 굉장히 사건들과 이야기들이 유쾌하고 밝은 편입니다. 살인과 같은 강력사건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발랄한 이야기들이라 추리소설 초보자들에게 적합한 작품이 아닐까 싶네요. 특히 아동들....

하지만 단점도 확실해서 :
  1. 장점이기도 하지만 대상 연령대가 지나치게 낮습니다! 한마디로 유치하달까요? 전개와 대사 모두 어이상실입니다.....
  2. 만화 자체가 한마디로 후집니다. 순정만화 스타일의 그림인데 전혀 제 취향도 아니었을 뿐더러 이야기 전개도 낙제점에 가깝습니다. 또한 주인공 캐릭터도 너무나 과장되어 있고 웃기지도 않는 개그컷의 남발은 짜증만 불러 일으키더군요. 좀 깔끔하게 정리라도 해서 그렸더라면 좋았을 것을.
  3. 추리적으로도 재미에 치중한 탓에 설득력이 떨어지는 작품이 많더군요.
팬들분에게는 죄송하지만 제게는 단점이 너무 명확한 수준 이하의 작품이라는 것이 제 감상평입니다. 아동용으로는 정평이 나 있는 시리즈이니 만큼 제 나이가 너무 많은 탓도 있겠지만, 일단은 만화 자체의 수준이 함량미달이라 생각되네요. 어쨌건 별점은2점. 이번처럼 형이나 주위 누군가가 구입하지 않는다면 개인적으로 다시 찾아볼 것 같지는 않습니다.

덧붙이자면, 같은 원작으로 잡지 "파우스트"에 연재된 작품 쪽이 "만화" 측면에서 그림과 전개 모두 7만배는 낫더군요. 파우스트 연재작이 단행본으로 나와준다면 구입 의향 있습니다!

* 현재의 만화판(위)과 파우스트 만화판(아래) 비교

명탐정 키요시로 사건노트 1 - 4점
하야미네 카오루 지음, 에누에 케이 그림/대원씨아이(만화)

Vol 0 : 명탐정 유메미즈 키요시로 등장 - 이와사키 가(家) 옆집에 새로 이사온 사람은 뭔가 수상쩍은 키큰 아저씨! 그 아저씨는 스스로 교수이자 명탐정이라고 칭하지만 뭔가 어벙하고 덜 떨어져 보인다. 하지만 곧바로 명탐정의 솜씨를 발휘해서 세자매의 수수께끼를 곧바로 풀어낸다.
- 주인공의 등장과 주요 등장인물을 소개하면서 일상계 수수께끼를 잘 풀어낸 소품. 하지만... 지나치게 소품이기에 평가할게 별로 없네요.
Vol 1 : 그리고 5명이 사라지다 - 오무라 판타지 파크에 세자매를 데리고 놀러온 교수. 그러나 마술쇼 도중에 한 소녀가 사라지고 곧바로 "백작"이라 자칭하는 범인이 곧바로 다른 소년, 소녀를 유괴할 것이라고 예고한다. 키요시로는 경시총감과의 연줄을 이용해서 사건 해결에 뛰어드는데!
- 범행 트릭이 너무나 유치하고 동기와 전개 모두 설득력 빵점인 아동용 추리물. 유치찬란 그 자체.

명탐정 키요시로 사건노트 2 - 4점
하야미네 카오루 지음, 에누에 케이 그림/대원씨아이(만화)

프롤로그 : 설혼전설 - 판타지 파크 사건으로 유명세를 탄 키요시로에게 잡지 "세.시마"의 편집부원 이토 마리가 찾아온다. 명탐정이 여행하면서 그 지방 전설에 대한 수수께끼를 푸는 이른바 "명탐정 유메미즈 키요시로의 수수께끼 풀이 기행!!" 기획을 위해서. 첫번째 여행 코스는 N현 A고원으로, 이 지방에서는 눈보라 치는 밤이 지난 아침에는 "설혼의 숲"이라 불리우는 대나무 숲에 눈의 영혼인 "설혼"이 어린 아이를 데리러 나온다는 전설이 있다. 실제로 3살짜리 아이가 행방불명된 20년 전의 사건은, 아이의 발자국이 집에서 설혼의 숲까지 일직선으로 나 있다가 숲 직전 20미터 정도에서 뚝 끊겨 있던 것.
- 이 "설혼전설"에 관한 트릭이 상당히 그럴듯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작품 자체는 쓰잘데 없는 곁가지 이야기가 대부분에다가 스키 자국에 관련된 말도 안돼는 트릭이 들어가는 등 괜찮은 트릭을 다 망쳐버리는 전개를 보여줘서 높은 점수를 주기가 힘듭니다.

Vol 2 : 마녀가 숨어있는 마을 - "세.시마"의 기획 두번째 코스는 "쇼우노사토"라는 벚꽃의 명소. "쇼우노사토"의 숲에는 마녀가 있다라는 전설이 있는데, 이토 마리와 교수, 그리고 세 자매 일행이 도착한 뒤부터 숙소인 여관 "로우란 장"을 무대로 한 정체불명 게임의 막이 오른다.
- 이 시리즈 치고는 이질적인 무겁고 심각한 이야기. 15년전 한 일가족이 사라진 사건에 비롯된 현재의 비극이라는 점은 "김전일"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대형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나 무겁고 진중한 전개라서 이 시리즈와는 따로 노는 느낌에다가 트릭도 거의 실현불가능해 보이는 (어떻게 리프트를 혼자서 조작하는지라던가 하는 세세한 부분의 설명은 전무!) 낙제점에 가까운 작품

명탐정 키요시로 사건노트 3 - 4점
하야미네 카오루 지음, 에누에 케이 그림/대원씨아이(만화)

Vol 3 : 망령은 밤을 떠돈다 - 세 자매가 다니는 학원의 학원제 기간에 학교에 전해져 내려오는 4가지 전설을 소재로 한 사건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한다. 과거 4가지 전설을 창작한 것으로 알려진 여학생은 죽은 것으로 밝혀지는데....
- "김전일"의 "방과후의 마술사" 같은 설정이죠? 그러나 무거운 설정과는 반대로 학원제를 배경으로 한 밝은 분위기의 작품이라 설정과 미묘한 부조화를 이루는 것이 이색적인 작품입니다. 트릭은 여러개가 등장하는 풍성함을 보여주는데 모든 트릭이 만화에 가까운 것들이라 추리적인 가치는 거의 없습니다..... 아무리봐도 실현이 가능할 것 같지가 않아요.

명탐정 키요시로 사건노트 4 - 4점
하야미네 카오루 지음, 에누에 케이 그림/대원씨아이(만화)

그랜드오프닝 : 탐정영화 - 교수와 세자매는 추리 영화를 보러간다. 완벽한 밀실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계단식 논 사이에 있는 오두막에서 태풍이 분 다음날 시체가 발견된다. 오두막은 전기도, 수도도 없고 구멍하나 없는 완벽한 밀실. 흐트러진 방 안에서 발견된 칼에 찔려 죽은 시체! 그러나 영화가 끝나기 전 사고로 인해 일행은 결말을 보지 못하고, 교수는 자신의 추리를 자매들에게 들려준다.
- 가상의 영화를 소재로 추리하는 독특한 작품. 솔직히 트릭은 현실성이 너무 없어보이긴 하지만 아이디어는 괜찮은 편.

Vol 4 : 사라지는 소세이섬 - 세 자매는 영화 캐스팅 제의를 받고 거대재벌 반노재단이 제작하는 영화 로케 현장으로 교수와 함께 떠난다. 그러나 촬영현장인 소세이섬에 도착하자마자 유일한 교통수단인 크루즈가 폭발하고, 기이한 사건이 발생하다가 마지막에는 섬의 하나뿐인 가장 높은 "산"이 아예 없어져 버리는 기상천외한 사건에 맞부닥치게 되는데!
- 거대한 스케일의 농담같은 트릭이 등장하는데 너무 황당해서 말이 나오지 않을 지경. 이러한 특정 "장소"의 소실에 대한 고전인 엘러리 퀸의 "신의 등불" 정도는 아니더라도 흉내는 내 줬어야지!

명탐정 키요시로 사건노트 5 - 4점
하야미네 카오루 지음, 에누에 케이 그림/대원씨아이(만화)

Vol 5 : 춤추는 야광괴인 - 일본 최초의 연금술사인 사이토 소우후가 남긴 금불상의 위치를 알려주는 암호가 마을 절에서 발견되고, 한편으로 마을 공원에서 춤추고 머리가 분리되는 "야광괴인"이 나타나는 사건이 일어난다. 보물의 위치를 알려주는 키워드인 "코우다요이사루"는 무엇? 야광괴인의 정체는 무엇? 절에서 발견된 암호문의 해독 방법은 무엇?
- 암호문은 국내 독자는 풀기가 불가능한 일본어 암호 트릭이라 패스. 하지만 암호문의 "종이" 의 사이즈를 토대로 한 "키"의 도출이라는 방식은 참신했습니다. 문제는.... 정말 명탐정이라면 몇글자 치환해 보면 이러한 "키" 없이도 암호를 충분히 풀 수 있는 간단한 암호라는 점이겠죠.

명탐정 키요시로 사건노트 6 - 4점
하야미네 카오루 지음, 에누에 케이 그림/대원씨아이(만화)

Vol 6 : 유리항아리의 비밀 - 에도말기를 무대로 한 번외편! 나가사키의 데시마의 창고에서 유리 항아리 "피카이치"가 도난당한다. 자물쇠로 잠긴 창고는 완벽한 밀실상태에다가 남아 있는 발자국은 도저히 생물의 것으로 보이지 않는 수수께끼의 사건. 마을에 흘러들어온 정체불명의 인물인 유메미즈 키요시로자에몬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나선다.
- 번외편 형식으로 막말의 일본을 무대로 한 이야기들. 첫번째 "피카이치" 도난 사건은 전개와 복선, 동기와 결말 모두 납득할 만 하며 재치있게 꾸며진 이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작품. 두번째 보살 이야기는 돌 보살상을 일종의 "추"로 썼다는 일상계 소품인데, 작중 묘사된 보살상의 크기를 볼 때 완전 억지였습니다. 나무를 몇톤씩 하는 것도 아닐테고 말이죠. 마지막 에도에 등장하는 요괴의 정체에 대한 이야기는 완전 어이상실의 이야기였고.... 초반 분위기를 끌어주었더라면 별 세개는 줬을텐데 아쉽네요.

명탐정 키요시로 사건노트 7 - 4점
하야미네 카오루 지음, 에누에 케이 그림/대원씨아이(만화)

프롤로그 : 한여름밤의 괴담 - 교수와 세자매 및 기타 등장인물들이 모여 "괴담회"를 벌인다.
- 아하하하. 아주아주 유쾌한 인상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소품인데 "괴담"을 추리해서 그 진상을 밝힌다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네요. "피에 젖은 책상" 같은 조금은 유치한 괴담인데 추리를 끼워맞추는 것이 놀랍습니다!

Vol 7 : 트랩하우스의 숫자노래 - 유명 만화가의 저택인 "트랩하우스"에 초대받은 교수와 세자매는 파티 도중 만화가가 밀실 안에서 비명과 함께 실종되는 사건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연쇄살인!
- 굉장히 심각하고 진지한 전개라 낯설었던 작품입니다. 만화안의 만화안의 만화라는 액자 구성은 독특했고 중요 범인을 드러내는 트릭 - 왜 범인은 옥상으로 도주할때 엘리베이터 3층 버튼을 누르고 3층에서 내려 옥상까지 뛰어올라갔을까? - 도 괜찮은 편이지만 이야기가 따로 노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또한 무대 설정같은 것도 지극히 만화적이라 현실성이 떨어지는데 너무 복잡하고 작위적인 구성을 취함으로서 더더욱 전개가 산으로 간 것이 아닌가 싶네요. 그냥저냥한 수준이었습니다....

2008/10/21

프렌치 경감 최대사건 - 프리먼 윌스 크로포츠 / 김민영 : 별점 4점

프렌치 경감 최대사건 - 8점
프리먼 윌스 크로프츠 지음, 김민영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보석상 듀크 앤 피보디 상회의 지배인 게싱 노인이 살해되고, 금고에 보관 중이던 다이아몬드가 사라졌다. 2개의 금고 열쇠 중 하나는 은행에 또 하나는 사장 듀크씨가 늘 몸에 지니고 다니기 때문에 여벌열쇠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했다. 사건을 담당하게 된 프렌치 경감은 수사를 통해 하나씩 단서를 모아 범인을 추적하는데...

거장 F.W 크로포츠의 황금기 시절 걸작이자, 명탐정 프렌치 경감의 데뷰작이기도 한 고전 명작입니다. 엄밀하게 이야기한다면 명탐정이라기 보다는 명수사관이지만요. 어쨌건 알리바이 파헤치기의 명수로 유명한 프렌치 경감의 활약을 감상하는 것이 포인트인 작품입니다. 명성 만큼이나 꼼꼼하고 치밀한 수사가 펼쳐집니다. 추리와 직감보다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많은 인물의 협조를 얻어 정말로 발로 뛰며 수사하는 "일반인" 프렌치 경감의 모습은 천재형 명탐정이 대세였던 당시 황금기에 정말로 독특한 존재로 부각되었을 것 같더군요. 지금 읽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정말로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는 전개를 보여줍니다.

추리적으로도 완벽합니다. 등장하는 사건은 딱 하나라서 쉽게 풀릴 것 같은데, 가지치기 되면서 트릭이 다양하게 등장합니다. 덕분에 단순하지 않고, 읽으면 읽을 수록 큰 재미를 안겨다 줍니다. 알리바이 위장 트릭과 인간 소실 트릭, 누명 덮어씌우기에 바꿔치기 트릭, 거기에 암호 해독까지 등장하기 때문에 다채로운 트릭의 맛을 한껏 느낄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트릭은 인간 소실 및 바꿔치기 트릭인데 지금 읽으면 약간 진부하지만 굉장히 효과적으로 쓰였기에 지루하다는 느낌은 전혀 받을 수 없습니다. 암호트릭도 공들여 만들었을 뿐 아니라 독자에게 공정하게 단서를 제공해 주기 때문에 충분히 합격점을 줄 수 있는 수준이고요.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단서가 제공되는건 황금기 작품답게 아주 공평한데 그 때문인지 범인을 특정하기는 중반 이후에는 쉬워지기는 합니다. 그때부터는 범인이 누구인가? 보다는 범인의 추적에 이야기가 집중되며, 다른 트릭들이 연이어 등장하기에 별 문제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마지막 반전(?)의 맛이 좀 약해진 것과 약간의 우연으로 사건이 진전되는 부분은 아주 조금 아쉽긴 한데 어차피 경찰 수사망에 걸렸을 부분이라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고 말이죠.

전체적으로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묻어나는 것 역시 마음에 듭니다. 잔인한 강도 살인 사건을 다루는 작품치고는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넉넉한 편입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여정 미스터리로 보일만큼 당대 유럽의 명승지를 기차로, 배로 여행하며 수사하는 프렌치 경감의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한몫하고 있는 것 같네요. 끈질긴 추적자인 프렌치 경감의 모습 뒤에 왠지 모를 작가의 여유로움이 한껏 묻어나거든요. 프렌치 경감의 부인이 전해주는 단서 역시 재치가 넘치고 말이죠.

딱 한가지, "변장" 을 너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한 점이 감점 요소이긴 하지만 그에 관련된 배경 설명도 자세히 묘사하고 있어서 나름 납득되는 수준입니다.

황금기 고전의 향취를 한껏 느낄 수 있는 정통 추리물이면서도 부드럽고 온화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기에 추리소설 입문자에게 추천할 만한 좋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5점을 줄 수도 있는 작품이지만 세월이 너무 많이 흐른 탓인지 약간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

2008/10/15

사이먼 싱의 암호의 과학 - 사이먼 싱 / 이원근 : 별점 5점

사이먼 싱의 암호의 과학 - 10점
사이먼 싱 지음, 이원근 옮김/영림카디널

이전에 읽었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의 저자가 쓴 암호의 역사와 원리에 대한 책입니다. "경성탐정록"의 자료로 쓸 까 하고 구입한 책이죠. 목차는 1. 메리 여왕과 엘리자베스 여왕의 암호 대결/ 2. 암호 - 그 신비의 바다 / 3. 보이지 않는 암호 전쟁 / 4. 사라진 언어 / 5.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암호 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 정말 물건입니다. 정말 재미있더군요. 암호도 수학이 근간이 된 과학이기에 딱딱하고 지루하게 쓰지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어요. 암호의 역사를 주요 이슈별로 나누어 생성 방법과 해독 과정, 역사에 미친 파장 등을 재미있게 써서 읽는 내내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재미 뿐만이 아니라 암호에 대하여 상세하게 잘 설명하고 있어서 이거 한권 읽으니 암호 전문가가 된 것 같아 뿌듯하기까지 하더라고요.^^

딱 하나 아쉬운 점은 유렵과 영미권이 이야기의 중심이라 암호 해독에 동참하지 못한다는 것인데 이건 뭐 어쩔 수 없는 점이겠죠. 상세한 내용 이외에도 풍부한 도판과 암호문의 여러가지 예문들, 다양한 부록도 실려 있기에 정말 별점 5점이 아깝지가 않습니다. 암호에 관심 있으시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적극 권해드립니다.

1장에서는 제목처럼 메리 여왕의 엘리자베스 여왕 암살 음모에 대한 암호문을 중심으로 암호의 기원부터 중세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주요 이슈인 메리 여왕 관련 이야기는 한편의 짤막한 역사 첩보 소설을 보는 것 만큼 흥미진진한 이야기였고 그 외의 다른 이야기들, 예를 들자면 고대 암호의 기원부터 스파르타와 로마의 암호 이야기 등도 재미있었습니다. 추리소설 트릭으로 써먹음직 했고 말이죠.
 
2장에서는 크게 두가지의 이슈, 즉 그 당시 해독이 불가능하게 여겨지던 "비즈네르 사이퍼" 와 아직도 그 수수께끼가 밝혀지지 않은 미국의 보물 관련 암호문 "빌 사이퍼" 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비즈네르 사이퍼의 아이디어와 그 해독방법도 흥미진진했지만 모험소설과 같은 분위기가 풍기는 "빌 사이퍼" 이야기는 그야말로 한편의 영화였습니다! 아직도 해독되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개인의 창작으로 날조된 문서로 보입니다만...

3장은 독일의 이른바 "이니그마" 시스템에 관련된 이슈가 중심입니다. 해독 불가능으로 여겨지던 이니그마 시스템의 원리를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물론, 그것을 해독하기 위한 폴란드와 영국의 암호해독팀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재미는 물론 그간 궁금했던 이니그마 시스템에 대해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소득이었습니다. 복잡한 기계이지만 명쾌한 도판과 상세한 설명으로 그간의 궁금증이 싹 가셨거든요.

4장은 영화 "윈드토커"로 잘 알려진 미국 나바호 인디언 암호병에서 시작해서 이와 유사하게 "다른 언어"를 이용한 암호문이라 할 수 있는 고대 언어 해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짐작대로 "로제타 스톤"과 고대 이집트 언어의 해독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익히 알고 있었던 이야기였지만 세부적인 디테일이 잘 표현되어 마음에 들었습니다. 몰랐는데 샹폴리옹 혼자서 이론을 만들고 해독한건 아니더군요.

5장은 현대 암호 시스템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이른바 "열쇠"를 중심으로 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암호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는데 사실 여기서부터는 원리는 수학이지만 컴퓨터를 이용한 작성과 해독의 영역에 들어갈 뿐더러 역사적인 사건과 맞물리는 것은 없어서 재미는 가장 떨어지는 편이었습니다. 그래도 "소수"를 이용한 열쇠 만들기에 대한 내용은 경성탐정록에 써먹어 봄직한 이야기라 개인적으로 횡재한 느낌이었어요.^^

2007/06/30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 와카타케 나나미 : 별점 3점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북폴리오

간만에 구입해서 읽은 추리 단편집입니다. 중간중간 괴담이나 호러도 섞여 있다는 점에서 정통 본격물이라고 하기는 힘들겠지만 전체적으로 추리물이라고 보기에는 무리없는 단편집이죠. 원래는 제가 자주 찾는 추리 동호인 사이트인 "하우미스터리"에서 이 단편집의 제일 첫 단편을 어떤 분이 번역하셔서 올린 것을 읽고 호감을 가지고 있다가 정식으로 출간되었기에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설정이 좀 독특한데, 중견 기업 회사 사보의 편집자로 일하게 된 시오타케 나나미 (저자)가 아는 선배를 통해 의뢰한 추리작가의 단편을 1년동안 사보에 싣는다는 설정으로, 이 단편들은 전부 작가의 실제 경험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과 매월 해당 월에 맞는 주제를 가지고 이루어지고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사실 거의 마지막 작품까지는 앞서 말했듯 괴담 등 다양한 작품이 섞여 있을 뿐 아니라 정통 추리물로 보기에는 좀 부족한, 설득력이 약한 작품들이 많아 그냥 저냥한 단편집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이야기에서 이야기 전체를 아우르는 복선과 트릭이 밝혀지는 전개로 구성되는, 독자를 깜짝 놀라게 하는 장치가 있더군요. 조금은 변칙적이고 일본에 너무 많이 특화된 트릭이기에 순수하게 해독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작가의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는 정말이지 높이 사고 싶네요. 제가 좋아하는 일상의 소박한 사건들이 중심을 이룬다는 점도 무척 마음에 들었고요. QED 일상 버젼의 소설판 같다고나 할까요? 아울러 번역 역시 완벽한 수준이었습니다. 번역 후기까지 아주 깔끔하거든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소박하고 경쾌한 이야기이니 만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작품이기에 추리소설 애호가가 아닌 보다 많은 분들이 읽어 주셨으면 좋겠네요. 그래서 추리소설의 매력에 빠지는 팬들이 많이 생겼으면 합니다.

각 단편별로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한다면

첫 단편 "벛꽃이 싫어"
제목 그대로 벛꽃에 관련된 사건이 등장하는 단편으로 주인공의 경험에 근거한 이야기라는 것, 세세한 사물의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주인공의 추리법이 제대로 보여진다는 것, 그리고 일상 생활 속에서의 소박한 사건이 바탕이라는 시리즈의 특징을 전부 갖추고 있는 작품입니다.

두번째 단편 "귀신" :
제대로 된 사건이라기보다는 주인공의 상상속에서 과거의 사건을 재구성하는 작품으로 기발함이 돋보입니다. 약간 호러틱하기도 하고요. 소박한 공포가 느껴졌어요

세번째 단편 "눈 깜짝할 새에" :
상점가 야구팀 경기에서의 야구 사인을 둘러싼 암호 트릭으로 설정이 아주 돋보였습니다. 트릭은 일본적인 트릭이라 전혀 해독할 수 없었지만 아이디어는 인상적이었어요. 특유의 소박함과 기발함이 매력적인 작품이었습니다.

네번째 단편 "상자 속의 벌레"
주인공의 사촌여동생에게서 듣는 기묘한 이야기. 여고생들의 시끌벅적한 분위기와 벌레에 관련된 묘사가 묘하게 궁합이 잘 맞는 소품입니다. 추리적으로는 일종의 소실 트릭인데 트릭 자체는 소박하지만 장치와 설정면에서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솜씨가 괜찮았어요.

다섯번째 단편 "사라져가는 희망"
심리 묘사 위주로 구성된 전형적 호러 스릴러라고 할 수 있는 특이한 단편입니다. 이야기의 완성도나 전개는 솔직히 기대 이하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 단편집에서 가장 중요한 단편입니다. 이유는 맨 뒤 "조금 긴 듯한 편집 후기"라는 단편에서 밝혀지니 한번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여섯번째 단편 "길상과의 꿈"
역시 호러에 가까운 단편. 일종의 꿈 이야기 같기도 하네요. 별로 언급할 부분은 없지만 전체 단편집에서의 장치적 요소로서 나름대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일곱번째 단편 "래빗 댄스 인 오텀"
이름 맞추기 게임에 관련된 단편으로 소박한 일상의 느낌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일본인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라 재미가 좀 반감되더군요. 그래도 즐길거리가 많은 작품이었습니다.

여덟번째 단편 "판화 속 풍경"
선배를 위기에서 구해내는 주인공의 추리가 등장하는 작품인데, 개인적으로는 무리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여러가지로 설득력이 많이 떨어지거든요. 사건 해결의 중요한 요소가 "후각" 이라는 점은 특기할 만 하나 그 외에는 별로 건질게 없는 범작입니다.

아홉번째 단편 "소심한 크리스마스 케이크"
과거의 사건을 듣고 추리하는 아주아주 전형적인 안락의자형 탐정물. 조금은 공포스럽고 무서운 과거사의 재발견처럼 서술되다가 막판 깜짝 반전이 있는 점이 독특했습니다. 조금 반칙에 가까운 서술트릭이지만 깔끔하게 잘 풀어낸 점이 좋더군요.

열번째 단편 "정월 탐정"
자신이 정신병에 걸린 것 같다는 친구의 부탁으로 해결에 나선 주인공이 의외의 진실을 밝혀낸다는 작품. 맨 마지막 해설편을 제외하고는 가장 정통 추리물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트릭도 명쾌하고 결말 역시 깔끔하더군요. 좀 미국적인 스케일이 느껴지는 트릭으로 왠지 친숙하기도 했습니다.

열한번째 단편 "밸런타인 밸런타인, 봄의 제비점"
시끌벅적한 분위기의 수다로 진행되는 독특한 서술방법을 지닌 단편으로 밸런타인 데이라는 이벤트에서 하나의 추리물을 이끌어내는 작가의 기발함이 돋보였습니다. 트릭은 좀 시시하고 설득력이 약간 떨어지는 편이지만 유쾌하고 재미있다는 점에서 마음에 드네요. 또 막판에 살짝 깜짝 반전(?)이 있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열두번째, 마지막 단편 "봄의 제비점"
"제비점" 이라는 일본적 소재로 이끌어 내는 작품인데 그닥 설득력은 없었습니다. 너무 장치를 많이 마련한 느낌이 들었어요. 인쇄소 이야기는 빼는게 어땠을까 싶은데... 소재와 복선에서 결말까지 이끌어내는 전개는 좋았지만 약간 아쉬움도 남네요.

마지막 : 조금 긴 듯한 편집후기
드디어 1년에 걸친 연재가 끝나고 나나미가 작가와 상봉하여 단편에 얽힌 수수께끼와 복선을 추리하여 작가에게 밝히는 내용인데 앞부분에서 간과하고 지나갔던 수많은 복선과 단서들, 그리고 그 결론에 대한 것이 워낙 신선할 뿐 아니라 이러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아이디어 자체가 워낙 기발하여 이 단편집의 가치를 몇배는 높여주는 작품이었습니다.
저는 좀 이야기를 대충대충 넘어가는 편인데 마지막 단편을 읽고 정말 무릎을 칠 수 밖에 없더군요. 이렇게 작품을 구성한 작가의 아이디어에는 정말이지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