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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14

명탐정 코난 - 은빛 날개의 마술사 : 별점 1.5점


모리탐정사무소에 연극배우 마키 쥬리(牧樹里)으로부터 의뢰가 들어온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스타사파이어 반지 '운명의 보석'을 훔쳐가겠다는 괴도 키드(キッド)의 범행 예고장이 도착했다는 것이다. 
공연에 초대된 코고로와 란(蘭), 코난(コナン), 그리고 소년탐정단 일행앞에 괴도 키드는 대담하게도 신이치(新一)로 변장하고 나타났다. 여러모로 복잡한 상황 하에 막이 오른 연극 <왕비 조세피나>. 코난은 신이치로 변장한 키드의 범행 증거를 잡기 위해 한시도 눈을 떼지 않는다. 마침내 정열적인 연극이 클라이맥스에 도달할 때 신이치가 사라지고, 급히 뒤를 쫓던 코난은 2명의 경비원 중 한 명이 키드라는 걸 알아채고 추격을 시작하지만 결국 놓친다.
하지만 무사히 스타사파이어를 지킨 코고로와 코난 일행은 쥬리로부터 감사 표시로 홋카이도(北海道) 하코다테(函館) 별장에 초대를 받는다. 코난 일행이 탄 대형 여객기가 예정대로 하코다테를 향해 이륙하자 곧 마키 쥬리가 살해당하는데....

이제 7번째 극장판인가요? 이 작품은 인기가 많은 서브 캐릭터 중 하나인 괴도 키드를 전면에 부각시킨 작품입니다.
하지만 내용은 허술하기 그지 없습니다. 극장판 시리즈는 점점 퀄리티와 내용의 수준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각본이 엉망이네요. 차라리 원작 만화에 있는 에피소드를 각색하는 편이 훨씬 나을 정도입니다.

일단 키드의 초반 범행 예고에서 시작해 키드와 코난의 추격전이 벌어지는 초반부, 비행기에서의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중반부, 비행기가 기장의 중독으로 조종 불능상태에 빠지는 후반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세 부분이 각자 따로 노는듯한 느낌을 줍니다. 키드와 코난의 라이벌전을 그리려는 초반부 의도와는 달리 그나마 추리극이라 할 수 있는 중반부의 살인사건에서 괴도 키드는 방관자로만 등장할 뿐입니다.
추리도 문제가 많습니다. 먼저 초반부에서 키드의 교묘한 도둑질을 기대한다면 실망만 할 뿐이에요. 암호 트릭 자체는 괜찮았지만 그다지 효과적으로 쓰이지도 않았고요. 무엇보다도 중반부의 살인사건은 트릭을 위해 다른 요소들이 전부 어거지로 짜맞춰졌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일단 용의자들의 동기가 굉장히 약하고, 다른 방법도 많이 있었을텐데 용의자가 한정되는 비행기안에서 범행한 범인의 의도도 이해되지 않아요. 그나마의 트릭도 우연으로 이루어진 측면이 있어서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고요. 설득력이 떨어진달까요?
게다가 6번째 극장판 "미궁에 십자로"에서 지나치게 남용한 3D를 역시 많이 사용해서 작화나 전체적인 연출의 느낌이 좋지 못합니다. 셀과 3D를 조화롭게 사용하기에는 아직 멀은 것 같고 작화도 기존 TV 시리즈 수준 정도로 극장판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네요.

물론 건질게 아주 없는건 아니라서 모리탐정의 개그, 키드가 신이치로 변장하고 나온다는 설정, 그리고 초반부의 추격전은 제법 재미있습니다. 마지막의 비행기 비상 착륙 장면은 흥미진진하고요. 

하지만 한마디로 말하자면 딱 방학특선 아동용 모험물 수준입니다. 추리라는 요소는 곁가지일 뿐이에요. 그래서 별점은 1.5점. 나이가 먹을대로 먹은 제가 점수를 줄 여지는 거의 없네요. 명탐정 코난의 팬으로서 다음 작품은 이런 아동용 모험활극 대신 좀 더 제대로 된 각본으로 만들어지길 바랍니다.

2025/03/01

명탐정 코난 : 100만 달러의 펜타그램 (2024) - 나가오카 치카 : 별점 2.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홋카이도의 하코다테에서, 괴도 키드가 히지카타 토시조에 썼다는 일본도를 훔치려 했다. 이 칼들을 모으면, 오노에 재벌 선대가 남긴 보물이 숨겨진 장소를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핫토리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키드는 칼을 훔쳐갔지만, 암호를 풀 수 없어서 코난 일행에게 돌려주었다.

이 때 오노에 가문 변호사가 살해되었고, 경찰은 모리 탐정, 핫토리와 함께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될 보물 찾기에 집중했다. 하지만 보물을 노리는 무기 상인 카도쿠라가 오노에 선대로부터 칼을 맡았던 전직 사범 후쿠시로를 납치했고, 괴도 키드를 쫓던 나카모리 경부도 카도쿠라에게 저격받아 중상을 입고 마는데...

"흑철의 어영"에 이은 명탐정 코난 극장판 시리즈의 27번째 작품입니다. 일본의 유명 관광지 하코다테를 배경으로 전설적인 보물과 연쇄 사건이 얽힌 미스터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선, 추리적으로는 꽤 흥미롭습니다. 숨겨진 보물을 찾기 위한 암호가 등장하는데, 전통 일본도의 구조와 히지카타 토시조가 남긴 시집, 하코다테의 오릉곽 등 실존하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허구가 아니라는 점에서 몰입감을 높이며, 사라진 성릉도 대신에 히지카타 토시조가 칼싸움 중 남겼다는 자국의 본을 떠서 코등이를 만드는 이야기는 팩션같은 재미도 줍니다. 덕분에 2차 대전 당시 숨겨진 무기라는 다소 비현실적인 설정도 그럴듯하게 포장됩니다.

주 무대인 오릉곽은 물론, 여러 하코다테의 실제 명소들이 등장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코다테 뿐 아니라 모미지가 좌충우돌하면서 다른 홋카이도의 명소를 보여주기까지 하고요. 덕분에 단순한 미스터리가 아니라 '여정 미스터리' 같은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엔딩에서는 실제 사진이 보여지는데, 꼭 한 번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극장판 코난 특유의 비현실적인 액션도 여전했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상대적으로 납득할 만한 수준이었습니다. 케이블카 선로를 따라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달리거나, 비행기 날개 위에서 검술 대결을 펼치는건 고속 열차가 탈선하거나, 거대한 건물이 무너지고 침몰하는 것에 비교하면 소소한 편이지요. 실제 명소들이 무대인 덕분이기도 할 텐데, 앞으로도 이러한 방향성이 유지된다면 좋겠습니다.

시리즈 팬으로는 핫토리 헤이지가 핵심 멤버로 활약한다는게 좋았습니다. 제 최애 캐릭터 중 한 명이거든요. 핫토리가 카즈하에게 고백하려고 전전긍긍하는 모습, 모미지의 훼방으로 고백에 실패하는 장면 등은 충분히 즐길만 했고요. 신이치와 괴도 키드가 닮은 이유(알고보니 사촌간!)가 밝혀지는 쿠키 영상도 호불호가 갈린다는데, 저는 재미있었습니다. 이렇게까지 괴도 키드 세계관과 엮을 필요는 없어 보이긴 했지만요.

그러나 단점도 없지 않습니다. 일단, 이야기가 너무 허술합니다. 초반에는 칼을 훔치려는 키드와 핫토리, 코난과의 대결이 펼쳐지고, 그 뒤에는 보물을 찾으려는 암호 해독이 진행됩니다. 이 이야기만 중심으로 전개해도 차고 넘쳤을 텐데, 경찰이 개입하게 하기 위해 변호사 살인 사건을 삽입한건 무리수였습니다. 애초에 범인이 저지를 이유가 없었던 사건이기도 했고요. 키드 역시 칼을 훔치려다가 돌려준 이후에는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이유가 없어서, 계속 등장하는건 억지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건의 동기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2차 대전 당시에는 전황을 바꿀 수 있을 만큼 강력했던 무기라 하더라도, 21세기에 경제적 가치를 가질리 없습니다. 이 당연한 이치를 무시하고, 악당들이 경찰에게 총질을 하고 일본 대도시에서 폭탄 테러를 하면서까지 이를 찾아다니는 전개는 현실성이 떨어집니다. 다른 이야기도 이 때문에 여러모로 이상하고요. 차라리 금괴가 보물이라는 설정을 밀어붙이는 것이 더 나았을 것입니다. 

추리적으로도 암호 풀이의 과정은 좋지만, 보물이 숨겨진 장소를 밝혀내는 마지막 장면은 많이 허술했습니다. 트릭은 성릉도의 코등이(?)의 모양이 오릉곽과 동일하다는 점을 이용한 것입니다. 먼저 기구를 띄운 뒤 칼을 바라보면서 오릉곽과 코등이의 형태가 일치하는 고도를 찾아냅니다. 기구 고도에 위치하는 장소는 하코다테 산 밖에 없으니, 하코다테 산의 이 고도 위치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건데, 실존하는 장소에 기반한 트릭이라는건 장점이지만 몇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선, 기구를 띄우는 위치를 정확하게 모르면 고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칼을 세우는 위치에 따라서도 오차가 생길 가능성이 크고요. 기구에서 산을 가리키는 정확한 방향을 모르면, 이 역시 오차가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이래서야 '하코다테 산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라는 말과 별다를게 없어서, 이렇게까지 고생해서 암호를 풀 필요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는데, 이 정도면 그래도 평작은 된다 싶네요. 킬링 타임용으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2010/08/12

명탐정 코난 67, 68 - 아오야마 고쇼 : 별점 2점

명탐정 코난 67 - 4점
아오야마 고쇼 지음/서울문화사(만화)

첫번째 에피소드는 전편에서 이어지는 고스로리 아가씨 살인 사건입니다. 소노코의 예리한 패션 감식안이 사건 해결에 도움을 준다는 보기 드문 묘사도 놀랍지만, 대단한 트릭 없이 일상 속에서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을 이용하여 완전 범죄를 꾸미려는 아이디어가 괜찮습니다. 흔하디 흔한 물컵 바꿔치기와 변장 트릭인데, 유치하지만 굉장히 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결말도 깔끔하고요. 경찰의 수사, 특히 옷가게에서의 조사가 대충이라 사건을 어렵게 만든 점은 공정하지 못하지만 그 외의 내용은 모두 좋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간만에 장타 하나 터졌네요.

두번째 에피소드는 지나가던 할아버지에 대한 일상계 추리물입니다. 내일에 관심없는 할아버지의 자살기도를 밝혀내고 구해준다는 내용인데, 자살을 앞둔 사람이 동네 꼬마들에게 과연 신경이나 쓸까요? 그 외에도 억지가 너무 많아 좋은 점수는 못 주겠어요. 심지어는 결말까지 억지더군요. 짧다는 장점 이외에는 건질게 없기에 별점은 1.5점입니다.

세번째 에피소드는 백화점에 갇혀 폭탄마에게 협박당하는 상황에 처한 모리 탐정과 코난, 란이 사건을 해결한다는 이야기입니다. FBI수사관과 죽은줄 알은 아카이 슈이치, 그리고 검은 코트 일당들이 한데 모여 법석을 떠는 내용이 겹쳐집니다. 그래서인지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라기보다는, 코난과 검은 코트 일당과의 대립을 이어나가는 다리 역할이자 슈이치의 생환을 암시하는 떡밥성 에피소드라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추리적으로도 썩 와닿지 않았고요. 그나마 조디 수사관을 비롯한 여러 고정 캐릭터들이 등장해준다는 거 하나만 괜찮았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여기까지가 67권의 주요 에피소드입니다. 뒤에 실린 에피소드는 68권으로 이어지니 68권에서 설명하는게 맞겠죠. 3개의 에피소드가 전체 6.5점이니 평점은 2.1점... 2점으로 하죠. 그냥저냥한 수준의 평범한 내용들로 가득한 평작이라 생각됩니다.

명탐정 코난 68 - 4점
아오야마 고쇼 지음/서울문화사(만화)

첫 번째 에피소드는 전권에서 이어집니다. 시라토리 경부와 코난의 담임 선생님 코바야시 선생님의 애정 행각 와중에 벌어지는 살인 사건을 다룹니다. 추리적으로는 목격자 코바야시 선생의 착각에서 비롯된 사건이고, 만화적인 트릭(인물묘사)이 중심이라 별로 특별한건 없습니다. 딱히 흠잡기는 어려운 평범한 수준이었어요. 추리적인 재미보다는 시라토리와 코바야시 선생간의 알콩달콩한 줄다리기, 사토 경부와 다카기 등 고정 경찰 캐릭터들이 전해주는 소소한 재미가 많아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코난 시리즈의 팬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작품이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다음 이야기는 모리 탐정과 별거중인 에리 변호사가 생일을 계기로 만났는데 살인 사건이 벌어져 에리 변호사가 주요 용의자가 된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트릭이 너무나 같잖아서 실소를 자아냅니다. 그야말로 트릭을 위한 트릭이었거든요. 미니카라니! 차라리 롤러 블레이드가 취미라고 하던가.... 작품의 기본 구성 역시 이전의 모리 탐정과 에리 변호사가 엮이는 에피소드들과 유사했기에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간만에 등장한 모리 코고로의 활약과 약간의 개그 요소 빼고는 건질게 없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에피소드는 괴도 키드와 스즈키 지로키치의 대결입니다. 그런데 추리적으로나 이야기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별로였어요. 추리적으로는 키치에몬이 만든 금고를 어떻게 열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가 핵심인데 설득력이 제로에 가깝거든요. 꼬마들이 등을 순서대로 기댄 것은 우연에 불과했으니까요. 지로키치와의 대결도 많이 반복된 탓에 지루해서 진절머리가 날 정도고여. 괴도 키드가 인기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고 이전의 괴도 키드 관련 에피소드들은 제법 그럴듯한것도 많았지만 이제 이 대결 구도는 자제 좀 해 줬으면 좋겠어요. 별점은 1점. 뭐 하나 건질게 없는, 근간 본 에피소드 중 최악이라 이야기할 수 있는 졸작이었습니다.

마지막 이야기는 축제에서 벌어진 소매치기 - 상해 사건의 범인을 찾는 이야기로 합리적인 전개와 일상계스러운 소박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비교적 괜찮은 범인 - 피해자의 관계 역전 트릭이 등장해서 추리적으로도 괜찮은 수준이었고요. 그리고 이야기의 한 축인 란의 귀여운 심리묘사도 좋았습니다. 그러나 범인을 쫓는 단서가 되는 메시지에 대한 설명이 부실한 것은 아쉽네요. 그래도 모든 면에서 기본은 하는 에피소드였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이렇게 4개 에피소드 총점이 8점 – 평균해서 전체 별점은 2점 되겠습니다. 괴도 키드 이야기가 너무 별로라 점수를 다 깎아먹은 탓이 크네요. 캐릭터에 기대어 추리 만화로의 본분을 잊어가는 듯 한데, 비교적 좋았던 가벼운 일상계 분위기로 당분간 끌고가는게 좋아 보입니다.

2011/02/23

명탐정 코난 70 - 아오야마 고쇼 : 별점 1.5점

명탐정 코난 70 - 4점
아오야마 고쇼 지음/서울문화사(만화)

이번 권에는 총 세 편의 에피소드가 실려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전권에서 이어지는 '한밤중에 울리는 피아노 사건'의 진상, 두 번째는 괴도 키드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은 "이누가미 일족"과 "바스커빌가의 개"에서 모티브를 따온 연쇄살인 사건입니다.

차례대로 살펴보자면, 피아노 사건은 솔직히 실망스럽습니다. 왜 피아노를 몰래 연주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 모든 단서가 우연에 기인하는 등 추리적으로 언급할 가치가 없습니다. 별점은 0.5점입니다.

두 번째는 소재가 고갈될 때 쯤 항상 등장하는 괴도 키드 이야기입니다. 68권에 등장한 지 2권 만에 또 등장했는데, 스즈키 지로키치와의 대결 구도나 소노코의 팬심 어린 행동 패턴은 이제 지겹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훔치지 않고 훔친 물건을 돌려놓는다'라는 발상의 전환이 있었고, 작년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사카모토 료마'를 소재로 활용한 점이 신선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굳이 이렇게 복잡한 방식을 택할 필요가 있었는지는 의문입니다. 진위 여부를 감정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텐데, 사건을 위해 억지로 사건을 만든 느낌이 강합니다. 게다가 '팬텀 레이디'라는 존재까지 은근슬쩍 끼워넣어 키드라는 캐릭터를 계속 활용하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볼 만은 했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이누부시' 가문 8명의 양자들에게 닥친 '마견의 저주'를 다루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설정 자체는 "이누가미 일족"과 "바스커빌가의 개"를 적절히 조합한 느낌이며, 내용과 단서는 "사토미 팔견전"에서 많은 부분을 차용했습니다. 하지만 굳이 다양한 요소를 조합해서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나 싶습니다. 차라리 하나의 설정만 활용했어도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이야기 자체는 나름 볼 만했고, 연쇄 살인 사건답게 2건의 살인 사건(실제 사망자는 4명)이 벌어지는 등 내용도 풍성합니다. 초반부의 '쿠도 신이치' 살인 트릭은 제법 흥미로웠고, 오랜만에 등장한 핫토리 - 카즈하 콤비 역시 반가웠습니다. 후반부에는 모리 탐정이 예상외로 똑똑한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트릭인 '마견 트릭'이 너무 허술하다는 문제가 너무 크네요. 트릭도 조악할 뿐만 아니라, '라이터 불을 이용한 발자국' 같은 설정은 도저히 가능해 보이지 않았거든요. 더군다나, 누군가와 한 번이라도 접촉하면 바로 밝혀질 정도로 허술한 트릭이라 현실성이 너무 떨어졌습니다. 이 때문에 별점은 2점입니다. 주요 트릭의 완성도만 높았더라도 오랜만에 괜찮은 에피소드가 나올 뻔했는데, 아쉽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번 권의 전체 평점은 1.5점입니다. 점수가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것이 이제 정도를 넘은 것 같습니다. 관성으로 계속 보고 있기는 하지만, 그마저도 한계에 다다른 느낌입니다. 다음 권도 평점이 2점 이하라면 더 이상 찾아보지 않을 생각입니다.

2023/10/25

명탐정 코난: 하이바라 아이 이야기 ~흑철의 미스터리 트레인~ (2023) - 이시하라 슌스케 : 별점 2.5점

<<아래 리뷰에는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코난과 친구들은 출발 후 추리 게임이 진행되는 '미스터리 트레인'에 탑승했다. 코난과 소년 탐정단에게 추리 게임 미션을 알려주는 봉투가 전달되었고, 란과 소노코 일행의 다른 미션으로 우왕좌왕하던 중 밀실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하이바라 아이가 도주 중인 '셰리'라는걸 알아챈 검은 조직의 베르무트도 열차에 탑승해 아이를 노리는 상황에서, 코난은 밀실 살인 사건을 해결하고 아이를 구하기 위해 모든 인맥과 방법을 총 동원하는데....


추석 연휴를 맞아 딸아이와 함께 티빙으로 감상한 "명탐정 코난" 최신작. TV 시리즈의 총집편이라고 하네요. 리뷰가 좀 늦었습니다. 
시리즈를 제대로 안 본지는 꽤 오래 되었기에, 아이의 정체가 조직에게 들통난 까닭을 몰라 이야기의 흐름을 온전히 쫓아가기는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본편 사건만큼은 정통 본격 추리물에 가까운 이야기라 재미있게 감상했습니다. 그동안의 코난 극장판은 아동용 모험물이나 팬 서비스 성격이 강했다면, 이 작품은 추리물로도 평균 수준은 되더라고요. 특히 걸쇠의 연결 고리를 추가하여 밀실을 만들었다는 트릭이 현실적이라서 좋았습니다. 코난이 시야각 - 사건이 일어난 방에서만 반대편 의자가 보였다 - 을 통해 이를 알아낸다는 전개도 마음에 들었던 부분입니다.
다만 범인이 문에 거울을 붙이는 방법으로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사라졌다는건 다소 억지스러웠습니다. 설치와 제거에 시간도 오래 걸릴테고, 차장이 거울을 보고 있다는걸 눈치챌 수도 있는 등 여러가지 문제가 있거든요. 그래도 이는 걸쇠 연결고리와 함께 범인이 피해자 무로바시의 객실을 바꾼 이유를 설명해 주기는 합니다. 중간 위치여야 차장을 속일 수 있고, 낚싯줄을 설치해 문을 열고 닫으려면 범인은 피해자 객실 옆방이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화재 사건의 피해자일 승객이 태연하게 담배를 피우는걸 보고 수상하다는걸 간파하는 등의 디테일도 좋았고요. 

제목 그대로 하이바라 아이의 팬 입장에서의 볼거리도 많습니다. 대표적인건 언제나의 앞부분 코난의 소개 부분을 하이바라 아이가 대신한다는 겁니다. "불가능을 모르는 명탐정!"을 "미라클 큐티 사이언티스트!"라고 바꾼건 귀여웠어요. 총집편답게 하이바라 아이의 과거를 간략하게나마 과거 영상을 사용하여 짚어주기도 하고요. 분량도 적고 작화도 옛날 것이기는 하지만 옛날 에피소드를 전혀 알지 못하는 딸이 아이의 과거를 알기에는 충분했습니다. 
검은 조직 일당들과 아무로 토오루, 세라 마스미에다가 괴도 키드까지 등장인물도 많고 베르무트와 쿠도 유키코의 대결도 흥미로왔어. 사건에 개입하면 짜증만 불러일으키는 소년 탐정단 녀석들의 등장이 극히 미미하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갑자기 괴도 키드가 튀어나온 이유라던가 하이바라는 대체 어디 숨어있었는지, 그리고 베르무트가 하이바라의 생존을 알았지만 함구한 이유 등이 설명되지 않는건 좀 답답했습니다만 추리물로의 코난을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충분히 좋은 선물이었다 생각되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조금 찾아보니 원작에 있는 이야기인 듯 한데, 아직 코난 원작은 본격 추리물 장르 역할은 하고 있나 보군요. 안심했습니다. 원작도 좀 챙겨봐야겠군요.

2006/09/25

명탐정 코난 Movie 10 - 탐정들의 진혼가 : 별점 2.5점

모리 탐정과 란, 코난과 소년 탐정단은 새로 생긴 "미라클랜드"에 초대되었다. 일행은 관광에 나섰지만, 모리 탐정과 코난은 의뢰를 진행했다. 의뢰는, 의뢰가 되는 수수께끼를 먼저 알아내야 한다는 것과 한마디 암호, 더불어 그들의 ID는 폭탄이기 때문에 그날 저녁 10시까지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TAKA 3-5라는 암호에서 주소를 알아낸 뒤, 그곳에서 4월 4일에 있었던 여러가지 사건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 그리고 우연찮게 똑같은 이유로 사건에 휘말린 핫토리와 만나 공동 작전에 들어갔다. 그들에게 남은 마지막 단서는 "YOU CRY"라는 암호에서 유추해낸, 한 동호회의 인물들이 연관된 사건이었다...

철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코난 극장판 제 10기입니다. 그간 워낙 많이 실망해서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이 10기는 꽤 재미있더군요.

일단 모든 주요 등장인물들이 다 나오는 올스타 캐스팅이라는 것이 마음에 듭니다. 모리탐정과 란, 코난과 소년 탐정단이라는 고정 멤버에 핫토리와 카츠하, 소노코, 괴도 키드와 하쿠바 사구루, 모리 부인, 핫토리의 아버지 헤이조와 오사카 경찰 여러분, 거기에 더해 거의 모든 경찰들 - 경부와 시라토리, 사토, 다카기, 요코미조 형사 - 까지 등장해서 코난 팬에게 확실한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거든요. 또한 단순 등장이 아니라 모리 탐정이나 소노코 등도 각각 나름의 활약을 한다는 것 역시 팬으로써 즐거운 점이겠죠. 개인적으로는 핫토리의 아버지 헤이조와 소노코의 등장 장면, 사토와 다카기의 데이트 장면 등은 캐릭터를 정말 잘 파악하고 만들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잘 구현해 놓았습니다.

또, 단순히 캐릭터만 나열하지 않습니다. 사실 캐릭터보다는 내용이 더욱 중요한데, 이 작품의 경우 이야기도 그간의 허술했던 다른 극장판과는 달리 나름 잘 짜여져 있습니다. 사건의 주 설정인 시간 제한이 있는 미션은 하도 많이 등장해서 식상했지만, 여러가지 장치와 상황을 곁들여 진부함을 어느정도 피해가면서 재미와 긴박감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정도는 추리물의 탈(?)을 쓰고 나온 작품답게 추리적인 부분, 특히 트릭도 이번에는 꽤 그럴싸합니다. 그 중에서도 시간차 살인 트릭 같은 경우에는 아주 제법이었어요. 단서도 공정하게, 관객에게 충실하게 전달해 주고 있거든요. 아울러 괴도 키드와 하쿠바 사구루의 관계, 마지막 남은 ID 패스의 수수께끼 같이 어느정도 관객이 생각해야 하는 장치는 그간 코난 애니메이션에서 보지 못했었던 부분인데, 이 여개 상당히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제공되는 단서가 너무 비약이 심했고(YOU CRY는 솔직히 억지에 가까왔습니다), 생뚱맞은 중간 전개, 즉 진범이 탐정들의 생명을 노리는 부분의 설득력은 부족합니다. 스나이퍼의 실력을 갖춘 살인범과 용병같은 해결사들, 총기를 어떻게 구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전무하다는 약점도 있고요. 이런 점에서는 제대로 된 추리물로 보기는 부족해 보였습니다. 아무래도 아동용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겠지요? 
무엇보다도 시간 제한 막판에 이르러 마지막 폭탄 해제를 위한 시스템 암호를 맞추는 부분은 굉장히 작위적이었어요. 시간도 시간이지만 복선이 굉장히 어설프더라고요.

그래도 그간 모든 면에서 형편없었던 아동용 모험극 수준의 코난 극장판에 비한다면 작화의 수준도 괜찮으면서 충분한 재미와 즐거움을 주는 수작입니다. 최고의 수준은 아니지만 즐기면서 보기에는 적당한 수준이었기에 기회가 되시면 한 번쯤 보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물론 코난 팬이라는 전제가 있지만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06/07/15

쭉쭉빵빵 꽃미녀 탐정단 (전 18권) - 키타자키 타쿠 : 별점 2점

스피드 걸이라는 만화로 조금 알려진 키타자키 타쿠의 정통(?) 추리 만화입니다. 

일단 간단하게 추리만화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보자면, 추리 만화는 그동안 많이 있었고, 특히 추리강국 일본에서야 데즈카 오사무가 초기부터 쟝르물을 시도했을 정도로 그 저변이 깊고 넓습니다. 하지만 요새와 같이 하나의 "쟝르"로서 정의되고 다양한 작품이 쏟아져 나온건 아무래도 "긴다이치 소년의 사건부 (소년탐정 김전일)" 대박의 영향이 크지 않나 싶어요. 이후에 나온 이른바 "시리즈" 작품만 해도 한두개가 아니며 그 중에서도 "긴다이치 하지메" 처럼 누구누구의 후손이 활약한다는 이야기만 해도 제가 본 것만 두, 세개는 넘으니까요. 

하지만 이러한 시리즈는 유행에 편승했을 뿐 성공한 작품이 거의 없습니다. 이유는 캐릭터나 추리적인 분위기만 유사하게 잡았을 뿐, 추리물의 기본 - 잘 짜여진 단서들, 정교한 트릭 등 - 에 대한 고려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긴다이치 소년이 추리만화 쟝르의 시발점이 되었지만, 다른 유행에 편승한 작품들이 인기에 있어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을 때 혜성처럼 나타나 쟝르가 활성화 되는데 공헌한 건 "명탐정 코난"입니다. 조금 낮은 연령 취향의 설정을 가지고는 있지만, 나름대로 정교한 트릭을 선보이며 정통 추리물로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하며 긴다이치 소년과 추리만화의 양대산맥을 이루었지요. 긴다이치와 코난의 성공과 "학원 추리물"이라는 쟝르물로서의 확고한 자리매김으로 이후에 등장하는 작품들도 정해진 공식을 잘 따라 추리와 트릭만 뒷받침 된다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쟝르로 인정받게 된 것 같습니다. 이후의 작품들로 준척급 이상의 성과를 거둔 작품은 "미스터리 민속탐정 야쿠모"나 "탐정학원 Q", "Q.E.D" 등이 있겠네요.

서론이 좀 길어졌는데 지금 소개할 이 "쭉쭉빵빵 꽃미녀 탐정단"도 이러한 "추리물"과 "시리즈물"이라는 정해진 공식에 충실합니다. 그 중에서도, 시리즈를 끌고가는 탐정 캐릭터의 독특함이라는 점에서는 충분히 합격점을 줄 만 합니다.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은 여성 3인조 아이돌 그룹 "TriColore"의 멤버인 시라세 아키라거든요. 여자라는 점과 아이돌이라는 신분이 타 추리물 탐정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정도로 독특하죠. 

주인공의 라이벌로 "괴도 리스트"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것 역시 공식에 충실한데 김전일의 괴도신사나 코난의 괴도 키드와 동일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거기에 시리즈 중반 이후에 등장하기는 하지만, 작품 전체를 꽤뚫는 악역인 - 김전일의 요이치나 코난의 검은 코트의 사나이들에 대응하는 - 연쇄살인마 "산타클로스"의 존재마저도 공식대로입니다. 

또한 옴니버스 시리즈물로 구성되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TriColore"가 연예계에서 성공하기 위한 큰 기둥 줄거리를 가지고 이야기가 전개됨으로서 단편물로서만이 아니라 긴 호흡의 이야기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며, 그 외에도 고교생인 아키라의 학교 생활이나 청춘물 같은 사랑 이야기, 협력자 격인 경찰, 여러 다양한 친구들 등 친숙한 설정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본 공식에 충실하다고 다 좋은 추리만화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이러한 공식보다는 추리, 그리고 트릭이 추리만화라는 쟝르의 가장 중요한 점인데 이 만화는 유감스럽게도! 정통 추리물에 걸맞는 멋진 추리적 요소는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이야기의 동기나 배경 설명 등은 꽤 그럴싸하지만 본격적인 추리 부분에 들어가면 이야기가 맥이 빠질 정도로 어이가 없거든요. 다이잉 메시지, 과학적 트릭, 공간이동 트릭, 밀실 살인 트릭 등 거의 모든 추리적 트릭이 등장하고 있지만 문제가 없는 트릭은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간단한 사건들의 소박한 트릭이 더욱 와 닿는 것은 정말이지 안타깝기만 하네요. 작가가 굉장한 트릭을 구상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는 장면이 눈에 선하긴 한데 원체 트릭들이 한심한지라....

또 트릭이 별볼일 없는 데 비해 이야기가 너무 장황한 것은 작가 스스로도 그러한 약점을 잘 알고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방법이겠지만 외려 이야기의 흐름을 지루하게 만들 뿐입니다. 예를 들자면 시라세 아키라의 아버지가 고고학자라는 설정, 다른 멤버인 리나, 카나코의 가족 이야기들은 군더더기라고 밖에는 보이지 않거든요. 시라세 아키라가 학교에서는 정체(?)를 숨기고 히유가 아키라라는 본명으로 안경하나 끼고 다니면서 정체를 숨긴다는 슈퍼맨같은 변장 설정 역시 사족에 불과하고요. 그 외에도 후반부로 가면 그림쪽은 확실히 좋아지긴 하지만 전작에 비해 뭔가 무뎌진 듯한 뎃셍 등 그림에서의 문제도 눈에 많이 띄는 것, 노출이나 므흣(?)한 장면들로 승부수를 던지는 것도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든 부분이었습니다.

물론 추리할 때에는 찬물을 머리에 끼얹고 추리하는 아이돌 시라세 아키라라는 존재만으로도 인기 시리즈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하긴 했습니다. 추리물을 제외한 부분은 여러 인물들의 애정 관계나 인물 설정, 그리고 아이돌에 관한 여러 디테일 등으로 비록 뻔하지만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던 부분이었고요. 개인적으로는 주요 멤버인 카나코가 개인 사정으로 탈퇴하는 것으로 하여 그룹의 멤버 체인지를 한다던가,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주인공들의 헤어 스타일이 바뀐다던가 하는 디테일이 마음에 들더군요. 이러한 재미때문에 18여권에 이르는 꽤 긴 시리즈로 연재된 것 같지만 위에서 설명한 추리만화로서 가지고 있는 결정적 약점, 즉 트릭이 후지다!는 것 때문에 성공하지 못한 것 같아서 조금 아쉽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인기가 없는 것을 떠나 다른 어디서도 관련 글을 찾아볼 수 없는 철저한 마이너 만화이지만 추리 매니아로서 의무감을 가지고 얼마전 완결편까지 전권 구입에 성공한 기념으로 리뷰를 남깁니다. 차라리 절판된다면 책의 가치가 본의 아니게 올라갈지도 모르겠군요.

2024/06/12

명탐정 코난 : 흑철의 어영 (2023) - 타치카와 유즈루 : 별점 3점

전 세계 경찰의 CCTV를 연결하여 감시 및 확인이 가능한 시스템 '퍼시픽 부이'가 도쿄 하지조지마 근해 바다 속에 건설되었다. 여기에 도입된 신기술 '생장 인식 프로그램'은 어떤 인물의 특정 시기 사진을 입력하면, AI로 현재의 모습을 알아내어 전 세계 카메라를 이용해 그 인물이 어디 있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시스템을 노린 검은 조직에게 엔지니어 나오미가 납치되었고, 그녀가 가지고 있던 생장인식 프로그램 데이터로 하이바라가 셰리라는게 드러났다. 검은 조직은 하이바라마저 납치했고, 이를 막으려던 코난 일행을 피해 잠수함으로 도주했다. 한편 퍼시픽 부이에서는 검은 조직의 내통자를 추궁하던 직원 레온하르트가 살해당하는데....


명탐정 코난의 26번째 극장판. 지난 주말에 딸아이와 함께 티빙을 통해 감상했습니다. 
사실 이전에 감상했던 최근 극장판들(대표적으로 "비색의 탄환")은 영 기대에 미치지 못했었습니다. 추리와 액션 모두에서 재미를 주는데 실패했고, 황당하게 스케일을 키우는 바람에 탈선한 기차가 날아올라 도시를 덮친다는 등, 아무리 만화라도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 가득했던 탓입니다. 극장판이란 강박관념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이 작품은 재미있더군요! 우선 설정이 돋보였어요. "명탐정 코난"의 핵심인 '몸은 작아졌어도 두뇌는 그대로!'를 활용한 '생장 인식 프로그램'은 하이바라가 납치당하는 상황의 설득력을 높여줄 뿐더러, 주인공들에게 또 위기가 닥칠지 모른다는 긴장감을 불어넣는 좋은 장치였습니다. 전세계 CCTV를 실시간 감시하고 언제든 데이터 확인이 가능한 '퍼시픽 부이'의 설정도 괜찮았고요. 검은 조직이 자신들이 기록된 영상을 조작하기 위해 퍼시픽 부이 시스템을 노린다는건 충분히 말이 되지요.
하이바라가 셰리일지 모른다 여긴 검은 조직이 하이바라를 납치하는 사건 중심의 스토리도 깔끔하며 액션도 좋았습니다. 검은 조직 요원 핑가와 란의 격투, 워커의 차를 쫓는 카체이스는 최근 보기 힘들었던 몰입감을 선사해 주었으니까요. 해상 시설물 퍼시픽 부이를 검은 조직의 잠수함이 공격하는 장면도 나쁘지 않았고요. 말도 안되게 스케일을 키웠다기보다는, 비교적 상식적인 수준으로 그려진 덕분입니다. (악의 조직이 잠수함까지 갖추고 있다는건 좀 그렇지만... '백팔용'인가?)
검은 조직의 레귤러에 아무로와 아카이, 경시청의 메구레 경부와 시라토리 등 괴도 키드와 하츠토리를 제외한 거의 모든 주요 인물들이 거의 등장하여 각자의 역할을 선보이는 것도 팬으로서는 감사했던 부분입니다. 

그러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일단 추리적으로는 그닥이에요. 추리할만한 사건은 퍼시픽 부이에 잠입한 검은 조직 요원 핑가의 정체를 밝히는 것 뿐인데, 손동작이라는 단서는 제공해주지만 용의자가 워낙 적은 탓에 추리의 여지가 별로 없는 탓이지요.
핑가가 코난 일행을 상대하기에는 확연히 처지는 모습만 보여준 것도 - 란에게 발차기를 얻어맞고, 코난에게 도주 경로가 드러나 범행이 탄로나는 등 - 별로였습니다. 이렇게 약하다면 먼가 사연이라도 있어야 했는데, 진에 대한 쓸데없는 라이벌 의식만 불태우는 잔챙이로 보여 실망스러웠어요. 
검은 조직이 퍼시픽 부이를 파괴한 것도 다소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백도어 등으로 외부 조작이 가능했으니 그냥 놔 두는게 훨씬 유용했을텐데 말이지요. 하긴, 한 명이 잠입한 것만으로 동영상 데이터 조작과 백도어 삽입을 이렇게나 쉽게 할 수 있다면 또 다른 시스템을 장악하는게 더 나았을까요?
무엇보다도 베르무트가 직접 변장을 하여 조직이 '생장 인식 시스템'은 오류 투성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는지 밝혀지지 않는건 답답했습니다. 그녀도 이 시스템이 활성화되면 정체가 탄로날 수 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다음 이야기에서 밝혀지면 좋겠네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명탐정 코난" 팬 입장에서, 그리고 '하이바라 아이'의 팬으로서 두말할 나위 없이 재미있게 즐겼던 작품이에요. 일본에서의 대박 흥행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한 흥행을 거두었다는데,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20/09/05

가족의 탄생 - 도진기 : 별점 2.5점

가족의 탄생 - 6점 도진기 지음/시공사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종의 해결사로 활동하며 먹고 사는 김진구에게 여자친구 혜미를 통해 의뢰가 들어왔다. 얼마 전 사고로 아내를 잃은 일식 요리사 이교준의 의뢰였다. 그는 아내의 사고에 두 처형이 관련되어 있다며, 갓난 자신의 딸 아름이 100억대인 장인의 유산을 독식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진구는 젊은 새어머니의 유산까지 아름의 것으로 해 줄것을 약조하며, 이교준 명의의 3억짜리 집을 담보로 잡았다.

그러나 두 처형도 동생의 죽음에 관련이 있다며 이교준을 의심한 나머지, 이런 류의 범죄에 해박하다는 '어둠의 변호사' 고진을 고용하고, 김진구와 고진의 두뇌 게임이 시작되는데...

눈에 뜨일 때 마다 집어들고 읽게 되는 도진기 작가의 장편입니다. 작가의 시리즈 캐릭터인 해결사 김진구와 어둠의 변호사 고진이 함께 등장한다는게 특징이고요. 그러나 공동 주연 작품은 아닙니다. 각자의 의뢰인이 적대하는 관계라서, 의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로 맞붙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명탐정 코난과 괴도 키드' 라기 보다는 '소년 탐정 김전일 대 지옥의 광대 타카토 요이치'에 좀 더 가까운 셈이지요.
이 중 주인공은 김진구입니다. 고진은 남고운, 남문영 자매로 부터 받은 '제부의 유산 상속을 막아달라' 라는 의뢰만 해결하고 빠지는 반면, 나머지 사건과 유산 상속 정리는 김진구가 해결해버리고, 작 중 비중도 두 배 가량 될 정도로 높으니까요.

그래도 남유정 사망 사건 해결은 나름 둘이 함께 힘을 합치기는 합니다. 이 사건에서 유산 상속 문제가 비롯된건 물론, 추리적으로 작품의 핵심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사건은 처음에는 단순 교통 사고로 생각되었습니다. 이교준이 동승하여 남유정이 운전하던 미니가 김순옥의 모하비와 추돌했고, 조수석에 탔던 이교준은 생명을 건졌지만 남유정은 안전벨트를 하지 않았던 탓에 사망했으니까요. 그러나 이 사건은 이교준이 일으킨 살인 사건으로, 진구의 말에 따르면 '3중 방어막'이 쳐진 교묘한 계획이었습니다. 

첫 번째 방어막은 원래 알려진 바와 같이 살인 혐의를 찾아보기 힘든, 단순 교통사고로 보이도록 꾸민 겁니다. 그러나 이교준이 김순옥과 불륜 관계라는게 밝혀져 첫 번째 방어막은 뚫리게 됩니다. 누가 봐도 의심스러우니까요.
여기서 등장하는 두 번째 방어막은 '고의적인 충돌 사고는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불륜을 목격한 남유정이 과속하여 추격하다가 모하비에 추돌하여 일어난 불행한 사고라는 주장이에요. 불륜을 저지르기는 했지만 남유정이 고의적으로 추돌하게 만들었다는건 증명할 수 없어서 단순 사고로 처리될 수 밖에 없게 되지요.
그러나 남유정의 목에 교살 흔적이 남아 있어서 살인이라는게 밝혀진 뒤 마지막 방어막인 '정황의 방어막'이 등장합니다. 이교준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김순옥의 모하비에 타고 있어서 범행을 저지르는게 불가능했다는게 정황입니다. 하지만 진구는 남유정 목의 교살 흔적은 왼손잡이의 흔적인데, 가족 중 왼손잡이는 이교준밖에 없다는 사실, 그리고 CCTV에 찍힌 모하비는 추돌 부위가 이미 부숴져 있었다는 사실을 토대로 진상을 추리해냅니다. 모하비와의 추돌은 조작된 것이고, 이교준이 아내 남유정을 목 졸라 죽인 뒤, 자기 무릎에 시체를 앉히고 전봇대에 추돌하여 사고를 위장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3중 방어막이라는 말만 그럴듯하지, 그다지 완성도 높은 이야기는 아닙니다. 애초에 실제 자동차 추돌 여부를 조사하지 않은 점, 사인을 정확하게 규명하지 않은 점, 꽤 장기간 불륜 관계였던 김순옥과 이교준의 관계를 밝혀내지 못한 점 등 사고 발생 시 수사에 나섰던 경찰의 무능이 확실한 탓입니다. 진구의 말 대로 조금만 파고들면 지나치게 많은 우연이 결합된 수상한 사건이라는걸 금방 알 수 있었을 테니까요. 최소한 명확한 사인은 검증했어야 합니다.

추리도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습니다. 고진과 진구가 사고 전 CCTV를 입수하여 이를 단서로 이교준의 공작을 증명하는게 거의 전부입니다. 그런데 미니가 한 쪽으로 쏠린걸 과학 수사까지 이용하여 검증한 디테일은 좋지만, 이게 이교준의 범행을 증명하지는 못한다는 문제는 큽니다. 진구가 이교준이 범인이라며 쏘아붙이는 것들 - 범인은 남유정을 목졸라 죽이고는 미니에 싣고 달리다가 사고를 냈다, 이 살인자는 왼손잡이인데 가족 중 이교준만 왼손잡이다. 미니는 남유정 남편인 이교준의 불륜녀가 운전하는 모하비와 부딪혀 사고가 난다, 그 모하비는 CCTV를 통해 보니 사고 전에 이미 충돌 부위가 부서져 있었다 등등등 - 은 모두 정황 증거 뿐이에요. 왼손잡이라는게 그렇게 대단한 증거도 아니고요. 제 생각에 이교준이 유죄 판결을 받기는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이렇게 사건에 대한 추리 부분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유산 상속 이야기는 아주 흥미로왔습니다. 법조인 출신 작가라 그런지, 현행법에 기초하여 설득력있는 이야기를 잘 풀어낸 덕입니다. 고진과 진구의 활약도 대단하고요.

우선 고진이 의뢰에 따라 이교준의 친권을 박탈하여 아름이 몫의 상속분을 빼앗습니다. 이교준의 딸 아름이가 사실은 남유정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 아니라, 불륜녀 김순옥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라는걸 밝혀냈기 때문입니다. 아름이의 친부임을 주장한 남유정의 불륜남 원경호 소동에서 유전자 감식이 진행되었는데, 이 때 증거를 확보한 거지요.
또 진구와의 조사 결과 공유를 통해, 이교준이 아내 남유정 사망 후 남유정 - 원경호의 딸인 진짜 아름이를 자신과 김순옥 사이의 딸로 바꿔치고, 아름이를 입양 기관에 보냈다는 걸 알아냅니다. 아내가 죽은 뒤, 가사 도우미를 해고해서 아름이가 바뀐걸 아무도 알 수 없었지요. 할아버지는 장님이고, 다른 친척들은 아름이에게 관심도 없었으니까요. 이는 진구가 이교준의 집을 방문하는 제일 첫 장면에서, 부부의 사진은 있지만 아이 사진이 없는 복선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고진의 말에 따르면 친부가 아니더라도, 아름이는 부부 사이의 딸이므로 이교준이 친권자인건 맞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자기 친딸과 바꿔치기하고 입양 기관에 보낸 사람에게는 친권 자격이 있을리가 없으니 친권 상실 청구를 하면 이교준은 아름이 몫을 못 받게 됩니다. 그래도 여전히 남유정 몫의 대습 상속은 유지되는데, 이 역시도 진구가 남유정을 살해한건 이교준이라는걸 밝혀내어 상속 자격을 상실하고 맙니다. 앞선 순위나 동순위 상속인을 살해하면 상속권을 잃는 법 때문입니다. 결국 이교준은 빈털터리 신세가 됩니다!

여기까지는 생각대로의 전개인데, 그 뒤 다른 상속인들 모두의 상속권이 날아가버리는 전개는 예상치 못했네요. 새어머니 유재연이 낙태를 한게 발단입니다. 그녀는 불륜을 저질러 아이를 갖지만 이런저런 부담감으로 낙태를 선택합니다. 이 낙태에 그녀를 미워하던 두 의붓딸 남고운, 남문영 자매가 진구의 권유로 모처럼 동행했고요. 그러나 유재연이 가진 아이가 남현호 할아버지의 아이가 아니더라도, 법률상으로는 엄연히 부부간의 아이이고 적법한 상속인입니다. 즉, 상속인을 살해한건 마찬가지라 그녀도 상속권을 잃고, 낙태에 동행했던 두 딸도 낙태를 도운 공범으로 상속 자격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즉, 남유정의 딸 아름이가 유일한 상속인이 되는 거지요.
이렇게 낙태가 상속을 막는다는건 정말이지 처음 접해보았는데, 완전 대박이네요. 법률에 대해 잘 아는 작가라 쓸 수 있던 이야기라 생각됩니다. 의뢰대로 상속을 막은 진구가 의뢰인 이교준에게 당신이 살인범이라는걸 밝혀낸건 의뢰와 관계 없었으니 보수를 챙기겠다며 쿨하게 마무리하는 장면도 마음에 들어요. 가족이 모두 파멸하는 결말인데, 워낙 많은 분량에 걸쳐 비호감을 끌어온터라 속 시원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또 자신만의 가족을 꿈꾸었던 이교준, 그리고 가족이지만 각자 자기 생각만 했던 남씨 일가족이 무너진다는건 "가족의 탄생"이라는 제목과 묘하게 잘 어울리더라고요.

그러나 이 유산 상속 과정가 전부 잘 짜여져 있는건 아닙니다. 콩가루 집안이 모두 몰락한다는건 지나치게 전형적인데다가, 남고운, 남문영 자매는 악인도 아니기에 결말이 썩 개운하지 않거든요. 막내 동생을 제부가 죽였다고 의심하여 제부에게 유산이 가는걸 막으려고 노력하는데, 의심이 사실로 밝혀졌으니 그녀들은 잘못한게 없습니다. 오히려 새어머니 유재연의 낙태를 도와준건 순전한 선의였기에, 유산 상속을 막으려는 악당 김진구에게 농락당한 것에 불과합니다.

아울러 김진구가 작중에서 벌인 활약과 행동은 모두 이교준의 범행을 밝혀내기 위함입니다. 이교준의 의뢰를 위한 행동이라고 보기는 어려워요. 의뢰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건 예상치 못했던 급작스러운 유재연의 임신과 낙태, 그리고 진구의 권유를 받은 남씨 자매가 낙태 수술에 동행했기 때문으로, 진구의 활약 여부와는 전혀 상관없는 우연에 불과합니다. 이런걸 보면 그다지 정교하게 잘 짜인 이야기라고 보기는 힘들어요. 부부가 모두 불륜을 저질러 같은 시기에 혼외자를 낳는다는 설정 역시 작위적이었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추리적으로 대단하지는 않고, 우연과 작위적인 설정이 많이 결합된 전개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낙태를 통해 기존 알고 있던 유산 상속의 상식을 깨 버린 아이디어 만큼은 높게 평가할 만 한데, 이 설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더라면 진짜 걸작이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덧붙이자면, 서두와 에필로그에 "정신자살"의 '이탁오 박사'를 등장시켜 다음 작품과 연결시키는 구성을 갖추고 있는데 꽤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것 같아 기대가 큽니다.

2013/06/17

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 - 클레이튼 로슨 / 장경현 : 별점 2.5점

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 - 6점
클레이튼 로슨 지음, 장경현 옮김/피니스아프리카에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컬트 신봉자 세자르 사바트 박사가 완벽한 밀실에서 교살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를 찾아온 사람들 등 유력한 용의자들은 모두 마술사였다. 개비건 경감은 사건의 특수성 때문에 마술사 그레이트 멀리니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말로만 들었던 클레이튼 로슨의 마술사 멀리니 시리즈 대표작. 출간은 작년에 되었는데 이제서야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멀리니가 영 별로였습니다. '괴도 키드'와 같은 후배들의 원조답게 굉장히 개성적일 것으로 기대했는데, 직업만 특이할 뿐 고전 황금기 시대의 다른 명탐정들과 딱히 구분되는 점이 없는 스테레오 타입의 뻔한 캐릭터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스테레오 타입 형태도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말 많은 천재형’이며, 그중에서도 최악인,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기 위한 쓸데없는 말만 많고 정작 중요한 것은 잘 알려주지 않는 타입(초기의 엘러리 퀸이나 파일로 밴스 타입)이라 더 화가 나더라고요. 범인이 누군지 알면 증거나 단서를 잡기 전에 행동부터 좀 하란 말이죠! 하여간 말이 많아도 너무 많아서 개비건 경감이 어떻게 참고 있는지가 궁금할 정도였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트릭입니다. 나쁘지는 않은데, ‘걸작’이라는 말을 듣기에는 부족해 보였습니다. 특히 범인이 마술사라는 점에 너무 많이 의지한다는게 문제에요. 예를 들자면, 첫 번째 사건에서의 손수건 바꿔치기, 두 번째 사건에서의 최면술 같은 건데, 이 정도 능력이면 거의 초능력 수준이라 일반적인 상황과 상식에서는 구현할 수도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웠어요. 마술에 의지한다는 점 때문에 독자와의 두뇌게임 역시 공정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문제고요. 최면술 같은 것을 사전에 단서로 공유해주는 것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세 번째 이유는 멀리니도 말하듯 증거가 너무 없다는 겁니다. 게다가 이렇게 완벽하게 살인계획을 짤 생각이었다면 단순한 밀실 살인이 아니라, 범인으로 옭아맬 희생양도 필요했을 텐데 그냥 불가능 범죄를 연출했을 뿐이라는건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범인 입장에서는 들인 공에 비하면 별로 얻은 게 없는 상황이니까요. 이럴거라면 애초에 왜 밀실을 만들었을까요? "너버스 브레이크다운"의 안도가 말했지만, 가장 완벽한 밀실 살인은 자살이어야 합니다. 그게 살인으로 밝혀지면 범인에게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마지막 이유는 경찰력의 무능함을 극대화시킨 전개입니다. 중간에 등장하는 5만 달러나 되는 큰돈이라는 유력한 동기를 간과하고 멀리니에게만 기댄다? 직무유기에 가깝습니다. 이 부분에 주목해서 경찰 수사가 이루어졌더라면 범인을 잡아낼 수도 있었을 겁니다.

고전 황금기 시대 이름을 날린 작품다운 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마술의 미스디렉션을 살인의 기법과 연결시키는 발상 하나만큼은 높이 쳐주고 싶고, 초반의 타로가 사라지는 간단한 마술 트릭이라든가 첫 번째 사건에서의 바꿔치기 트릭 하나만큼은 치밀하게 짜여져 있어서 ‘과연 추리 소설사에 이름을 남길 만하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딕슨 카의 밀실 추리 이론 등 다양한 작품과 이론에 대한 소개 역시 볼거리이고요.

그러나 저의 컸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함이 더 컸다 생각되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번역 출간 자체는 반갑지만, 저 같은 고전 본격물 애호가가 아니시라면 권하기 어려울 정도로 애매한 작품이었어요. 멀리니의 장광설만 좀 줄이고, 두 번째 사건에서의 최면술 트릭 하나만 보완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텐데 안타깝네요. 멀리니가 등장하는 단편집이 소개되기를 기대해봅니다.

2021/06/11

범죄 캘린더 - 엘러리 퀸 / 배지은 : 별점 1.5점

범죄 캘린더 - 4점
엘러리 퀸 지음, 배지은 옮김/검은숲

엘러리 퀸 단편집으로 비교적 후기작입니다. 엘러리 퀸이 주인공인 라디오 드라마를 책으로 엮은 결과물이라고 합니다.

읽다보니 확실히 라디오 드라마구나 싶었습니다. 설득력있는 동기, 복선으로 뒷받침되는 탄탄한 이야기 구조보다는 극적인 상황을 쉽게 전달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트릭도 정교하기 보다는 말로 전달하기 쉬운 트릭들이고요. 

그런데 문제는 책으로 읽을만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겁니다. 트릭들은 추리 퀴즈 수준이고, 이야기 구조가 단순한 탓에 동기와 사건이 벌어진 상황에 대한 설득력도 낮은 탓입니다. "~ 모험" 이라는 제목 때문에 걸작 단편집이었던 "엘러리 퀸의 모험" 수록작 수준이라고 생각했는데, 여러모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또 '캘린더'라는 제목답게 1월부터 12월까지 매월 한 편씩의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는데, 해당 월에 이야기가 진행될 필요가 있었던 작품은 많지 않습니다. 3월의 소득세 신고, 5월의 전몰 장병 기념일 정도만 특정 날짜와 사건이 연결되어 있을 뿐이에요. 10월의 할로윈과 12월 크리스마스에 사건이 벌어지는 두 작품은, 날짜를 사건과 무리하게 연결해서 오히려 거부감이 드는 망작이었고요.

그래서 전체 평균한 별점은 1.5점입니다. 라디오라면 모를까 책으로는 점수를 줄 부분이 믾지 않고, 권해드리기도 어렵습니다. 엘러리 퀸의 이름만 믿고 읽으시면 실망하실 거에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내부자 모임의 모험" 

이스턴 대학교의 유서깊은 야누스 클럽의 멤버 빌 업다이크가 엘러리 퀸을 찾아왔다. 야누스 클럽은 13학번들로 이루어진 모임으로, 현재 생존자는 7명 뿐이었는데 그 중 3명이 최근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업다이크는 야누스 클럽 안에 5명으로 이루어진 내부자 모임이 20만달러라는 돈을 공유하고 있었으며, 자신과 또 다른 멤버 중 생존자가 모든 걸 갖게 될 것이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48시간 뒤, 빌 업다이크는 살해되고 말았다.

1월의 야누스 클럽 정기 모임 날짜에 맞춰 벌어지는 이야기로 야누스 클럽이니, 내부자 모임이니 뭔가 있어보이는 설정을 장황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핵심은 암호 트릭입니다. 피해자 업다이크가 내부자 모임 멤버들 이름에 공통점이 있다는 말을 남겼었고, 그 말이 유일한 증거가 되기 때문이지요. 

이 트릭은 미국인이 아니면 풀 수 없는, 하지만 미국인이라면 쉽게 풀었음직한 트릭입니다. 우리나라 식으로 멤버들 이름을 변주하자면, 황연세, 한국민, 양홍익, 김아주, 서인하인 식이지요. 업다이크의 경우는 부부의 이름을 합쳐 윌러임 앤 메리 칼리지라는 약간의 변주가 들어가기는 하지만, 이 역시 우리나라식으로 박성균, 최관이라는 식이니 딱히 정교한 장치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한 마디로 라디오에 적합한, 추리 퀴즈에 가까운 아이디어였습니다. 전개도 정교하지 못하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3명의 회원이 우연찮게 자연사한 뒤, 살의를 품었다는 동기를 잘 풀어내는게 더 나았을 겁니다.

"대통령의 5센트 은화 모험" 

미모의 아가씨 마사 클라크는 전보로 엘러리 퀸과 죠지 워싱턴 관련 골동품 수집가 패치, 희귀 주화 수집가 체크 남작부인, 희귀 서적 수집가 쇼 교수를 불러모았다. 죠지 워싱턴이 남긴 칼과 은화를 찾기 위함이었다. 이는 오래 전 죠지 워싱턴이 마사의 조상 시미언 클라크를 만났을 때 농장에 묻었던 물건들이었다.

2월 죠지 워싱턴 생일에 맞춰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추리적으로는 눈여겨 볼 부분이 전무합니다. 시미언 클라크가 남긴 일기에 따르면, 워싱턴이 당시 심었던 나무 중 하나 아래에 칼과 은화를 묻었다고 쓰여 있거든요. 이건 암호도 아닙니다. 당연히 별다른 트릭도 없어서 추리의 여지도 없고요.

이 말에 따라 마사 클라크 가족이 워싱턴이 심었다는 나무 12그루 밑을 모두 파 보았지만, 칼과 은화를 발견하지 못했던 이유는 더 황당합니다. 원래 13그루를 심었는데, 한 그루가 죽어 버린 탓이라는데 정삼각형 모양으로 간격까지 정확하게 심은 12그루의 나무는 멀쩡하고, 삼각형 한 가운데 심은 나무만 죽었다는건 지나치게 작위적입니다. 

게다가 13그루 나무를 심었다는 엘러리 퀸의 주장도 설득력이 낮습니다. "미국 건국은 13개 주였기에 나무는 13그루를 심었어야 한다!"라는게 근거의 전부인 탓입니다.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는 아무 것도 없어요. 또 애초에 농장을 잃을 위기였다면, 나무 밑이 아니라 나무 근처 땅을 모두 파 보는게 정상 아니었을까요? 전개도 이상합니다. 이야기 처음에 패치 등 관계자들을 불러 모을 필요는 없었어요.

이런 문제 투성이의 본편 이야기보다는, 엘러리가 대통령을 만났는데 그게 누구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도입부가 추리적으로 더 볼만했습니다. 돈이 많지만 자동차를 소유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는 이야기인데, 꽤 그럴듯했거든요. 엘러리의 비서 니키가 미인인 마사 클라크를 질투하는 묘사도 재미있었고요. 하지만 그 외에는 건질게 거의 없네요. 추리물이라고 할 수도 없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마이클 마군의 3월 15일 모험" 

퀸 경감의 옛 동료였던 사립탐정 마이클 마군이 엘러리를 찾아왔다. 3월 15일 소득세 신고를 앞두고 관련 서류를 도난당했기 때문이었다. 서류 도난 당시, 사무실에서 갑자기 화재가 발생한게 이상하다고 생각한 엘러리 일행은 다시 사무실에 방문하지만 그곳에서 사무실을 관리하는 카슨 부인이 참혹하게 살해된걸 발견하는데...

이야기 초, 중반부까지는 "왜 도둑은 소득세 신고와 관련된 서류를 훔쳐갔을까?"가 핵심입니다. 이는 마군의 서류 중에 사교계 지배자 벤돔 부인의 딸이 도벽이 있다는 증거가 있기 때문으로 밝혀지고요. 이렇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기묘한 사건이 특별한 강력 범죄와 연결되는 전개는 재미있었습니다. 소득세 신고일이 3월 15일이고, 소득세 신고용 자료가 협박의 근거가 된다는 식으로 3월이라는 날짜와 이야기를 엮은 방식도 마음에 들었고요.

그러나 마군이 화재 소동을 일으킨 뒤 서류가 도난당한걸로 위장했고, 이를 카슨 부인이 눈치채 죽였다는 진상은 여러모로 불합리합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엘러리를 찾아와 서류가 도난당했다고 하소연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앨러리를 찾아가지 않았다면 그냥 강도가 살해한걸로 무마할 수도 있었을테니까요. 엘러리 말대로 벤돔 부인을 협박할 생각을 버리고 카슨 부인을 죽인거라면, 더더욱 서류가 도난당했다는걸 드러낼 필요는 없었어요. 협박할 생각을 버렸다면, 카슨 부인에게 불을 지른 이유를 둘러대는게 살인보다는 훨씬 나은 해결책이었을겁니다. 살인을 저지르고 누명을 뒤집어 씌우려고 했던게 오피스를 쉐어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안일한 발상도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 모두 알리바이가 확실했다면 어쩔 생각이었을까요?

마군이 서류가 도난당했다고 주장한 시점보다 나중인 신문지가 들어있었던 증거는 명확했지만, 이러한 이유들로 아주 잘 만든 이야기로 보이지는 않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황제의 주사위 모험" 

퀸 경감은 엘러리, 니크와 함께 오랜 친구 짐 해거드의 가족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역으로 마중나온 짐의 아들 마크 해거드는 아버지 짐이 살해당했다며 10년 전 사건 이야기를 꺼냈다. 해거드 가족은 아버지를 쏜 건 가족 중 한 명이라며 지난 10년간 지옥처럼 살아왔다고 말했다. 엘러리는 짐이 죽었을 때 손에 쥐고 있던 '황제의 주사위'에 주목해서 범인을 알아내는데...

짐이 쥐고 있던 주사위는 일종의 다이잉 메시지였습니다. 두 개 중 한개가 항상 6만 표시한다는 의미로, 6번 피스톨에 의해 살해당했다는걸 의미했던 거지요. 그런데 이 뒤는 가관이에요. 6번 피스톨은 왼손잡이가 잡기에 용이해서, 가족 중 유일한 왼손잡이인 딸이 범인이라는 추리가 펼쳐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됩니다. 총을 쏘는 것도 아니고, 꺼내는데 왼손잡이냐 아니냐가 뭐가 중요할까요? 중요했다 한 들 이 정도로 딸이 범인이라고 주장하는건 불가능합니다. 최소한 그 총은 '왼손잡이만 잡을 수 있었다'는걸 명확하게 알려주었어야 했는데 그런 설명은 전혀 등장하지 않거든요. 칼리굴라와 주사위 속임수에 대해 이런저런 소개도 이야기에는 하등 상관이 없는 쓸데없는 잡지식에 불과했고요.

무엇보다도, 3월 마지막 날에 수수께끼를 풀어내며 이 모든게 퀸 경감과 니키, 해거드 가족이 함께 4월 1일 만우절에 엘러리 퀸을 속이기 위함이었다는 반전은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40년 전 결혼식과 10년 전 40번째 결혼 기념일에 선물을 드렸다는 모순은 말장난이면서도, 너무 명확하게 드러나서 속임수같지도 않았고요.

그래서 별점은 1점입니다. 점수를 주기 어려운 망작입니다.

"게티즈버그 나팔의 모험" 

엘러리가 니키와 함께 한 충동적인 게티즈버그 여행 중에 자동차가 고장나버렸다. 그 때 잭스버그 군수 스트롱이 그들을 도와준 뒤, 마을에서 진행하는 남북전쟁 전몰장병 추모일 행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날 남북전쟁 생존자가 게티즈버그 나팔을 부는게 전통이었는데, 작년에 생존자 중 가장 고령이었던 케일럽이 나팔을 불다가 사망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고령이었지만 건강했고, 다른 생존자 2명과 남북 전쟁 중 찾았던 보물에 대한 비밀을 공유하고 있었기에 군수는 수상쩍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전몰장병 기념일 아침에 또 다른 생존자 애브너 체이스가 뇌졸증으로 사망하고, 기념일에서는 나팔을 불던 마지막 생존자 잭 비글로마저 나팔에 묻힌 독으로 죽고 마는데...

어디선가 읽었던 작품. 4월 전몰장병 기념일에 맞춘 이야기는 깔끔합니다. 노인들이 이야기하던 거액의 보물은 휴지조각과 같은 남부 정부가 발행했던 지폐라는 설정도 좋았고, 애브너 체이스의 손녀 시시가 진범이라는 반전도 그럴듯했거든요. 이를 드러내기 위한 엘러리의 추리도 감탄을 자아냅니다. 잭 비글로가 마지막 생존자로 남게된건 애브너 체이스가 급작스럽게 사망한 우연 덕분이었다는게 핵심이지요.

하지만 이 추리로는 시시가 진범인지, 잭 비글로의 손자 앤디가 진범인지는 드러낼 수 없습니다. 앤디가 할아버지가 남긴 돈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기에, 그 돈을 보다 빨리 갖고 싶어서 할아버지를 죽였을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즉, 엘러리는 그냥 용의자를 한 명 추가한거에 불과합니다. 이래서야 법정에서도 유죄 판결을 내리기는 쉽지 않았을 거에요.

그래도 본격 추리물로는 완벽한 얼개를 갖추고 있고, 이야기도 재미있게 전개되는 수작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약 손가락의 모험" 

트로이는 딸 헬렌 결혼식에 엘러리를 초대했다. 헬렌을 흠모했던 루즈 때문이었다. 그는 헬렌이 헨리 예이츠와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살의를 드러내다가, 이후 갑자기 변심해서 사죄하고 신랑 들러리로 결혼식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심한 불안감을 느낀 트로이의 부탁으로 엘러리는 벨리 경사와 결혼식에 참석해서 루즈를 철저하게 감시했다. 그러나 식 직후 헬렌은 결혼 반지 속 독침에 의해 살해되고 마는데...

이 작품의 특이한 점은 엘러리가 범행을 막지도 못했고, 경찰보다 범인을 찾아내는데 늦어버린 완벽한 실패담이라는겁니다. 엘러리는 루즈가 아닌 신랑 헨리 예이츠를 범인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근거는 결혼만 하면 헬렌의 유산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는 것이고요. 하지만 결혼 반지는 왼손에 끼고, 압력을 가해 독침이 튀어나오게 하려면 왼손으로 악수를 해야 했기 때문에 왼손잡이가 범인이다! 라는 논리로 루즈가 범인이라는게 드러납니다. 이 사실은 흉기인 반지 조사로 경찰이 밝혀내고요. 이렇게 엘러리는 체면만 구긴 셈이며, 사건은 경찰 수사를 통해 종료되기 때문에 추리물로는 볼 여지가 많지 않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점. 추리적으로 별볼일 없고, 이렇게 길게 풀어낼 필요도 없는 졸작입니다.

"추락한 천사의 모험" 

센터 저택에는 기괴한 키마이라 조각이 튀어나와 있었다. 현재 센터 제약 사장인 마일스의 아내 도로시는 니키의 친구로, 그녀가 니키에게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는걸 고백한 뒤 마일스가 저택 지붕에서 떨어진 키마이라 조각상에 깔려 죽을뻔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 조각상은 마일스의 동생 데이비드의 아틀리에 지붕 쪽에 위치했었다. 데이비드를 의심한 마일스는 엘러리 퀸에게 관련된 조사를 의뢰했고, 데이비드 아틀리에를 조사하기 위해 엘러리가 방문한 날 마일스는 총상을 입은 채 발견되었다. 데이비드는 실종되었고, 도로시가 범행을 자백하는데...

도로시의 불륜 상대가 밝혀지기 전 까지, 범인은 데이비드 아니면 마일스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데이비드는 마일스만 없으면 센터 제약과 그 아내까지 손에 넣을 수 있었고, 마일스는 아내의 불륜에 대한 복수심으로 데이비드를 실종으로 위장해서 죽이고, 다친걸로 위장했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진상은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 비서 하트가 폭죽으로 알리바이를 만든 뒤 살해했다는 겁니다. 즉, 도로시가 사랑에 빠진게 마일스의 동생 데이비드가 아니라 비서 하트였다는 반전이 이야기의 핵심인데, 상식을 깨는 맛은 괜찮았습니다. 7월 4일 독립 기념일과 '폭죽'을 연결한 아이디어도 좋았고요. 캘린더라는 주제에도 잘 맞을 뿐더러, 간단한 트릭이지만 효과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진상을 드러내는 핵심 증거 중 하나가 '떨어진 키마이라 조각상'이라는 전개도 마음에 들고요.

물론 편의적인 전개를 위해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는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마일스가 총에 맞았을 때, 누가 쐈는지 보지 못했다는게 대표적이지요. 여기서 그가 죽지 않은 것도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것에 불과하다는 것도 작위적이고요. 차라리 죽는게 전개면에서는 더 깔끔했을거에요. 또 45Kg이나 되는 조각상에 데이비드를 죽인 뒤 매달아 물에 빠트리는게 혼자서 어떻게 아무한테도 들키지 않고 가능했을 일인지도 잘 모르겠네요. 도로시가 자기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한 이유가, 하트가 총을 쏘는걸 목격했기 때문이었다는 설명도 잘 이해는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정통 본격 추리 단편으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면 평작은 충분히 되는, 군더더기가 별로 없는 잘 짜여진 단편이었으니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바늘 귀의 모험" 

유명 탐험가 에릭슨은 결혼한 조카딸 잉가의 남편과 그 아버지에 대한 조사를 엘러리 퀸에게 의뢰했다. 잉가의 남편 홉스-왓킨스 부자가 에릭슨이 거주하는 섬에서 잉가와 자기를 살해하지 않을까 의심했기 때문이었다. 그 섬에는 캡틴 키드가 보물을 숨겨 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고, 엘러리는 보물 찾기 핑계를 대고 섬으로 향하는데..

엘러리는 키드가 남겼다는 일종의 암호를 간단히 풀어내고 보물을 찾아내지만 그 보물은 키드가 묻은게 아니었다는 반전이 인상적이었던 작품. 그 증거가 보물 상자 속 '백금' 이라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였어요. 백금은 1900년대 이후 보석 셋팅에 이용되었기 때문으로, 박학다식한 엘러리에게 잘 어울리는 이야기였습니다. 보물은 홉스-왓킨스 부자가 훔친 장물로, 장물을 공식적으로 유통하기 위해 키드 전설을 이용했다는 앨러리의 추리도 감탄을 자아냅니다.

그러나 에릭슨이 죽기 전 쏜 총알이 발견되지 않은 이유는 롱 존의 의족에 박혔기 때문이라는건 많이 뻔했습니다. 그리고 롱 존이 홉스-왓킨스 부자와 공모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그가 에릭슨을 단순한 탐욕으로 죽였다고 보는게 타당할 수도 있어요. 보물을 묻은게 부자라는게 증명될 수는 있어도, 그들이 에릭슨을 살해할 의도가 있었다는건 증명이 불가능했습니다. 롱 존이 자백한다 한들, 증거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롱 존을 이용해서 에릭슨을 죽이는 전개만 빠졌으면 훨씬 좋았을텐데 좀 아쉽네요.

"세 개의 R의 모험" 발로 대학 학장 발로 박사는 엘러리 퀸에게 편지를 보냈다. 미국 문학을 가르치는 칩 교수의 실종 때문이었다. 니키와 함께 미주리 주에 있는 발로 대학을 찾은 엘러리는 칩 교수 방의 핏자국, 그리고 도서관에서 대출 된 책을 통해 교수가 6월 30일 밤에 살해당했다고 추리했다. 그리고 칩 교수가 여름을 보낸다고 알려진 아칸소 주 통나무집에서 칩 교수의 백골화된 사체와 그가 쓰던 추리 소설인 "세 개의 R의 모험" 원고를 발견하는데...

칩 교수가 쓴 추리 소설대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는게 핵심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건 연극이어고, 엘러리 퀸은 발견된 시체가 백골이었다는걸 토대로 진상을 추리해냅니다. 고작 10여주 동안 사체가 백골화될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동기는 칩 교수가 쓴 추리 소설 홍보를 위해서였지요. 유명 탐정이 헛다리를 짚은 이야기를 기사화할 생각이었다고 설명되고 있습니다. 추리적으로 깔끔하고, 주어진 단서도 공정한 괜찮은 본격물이에요.

하지만 교수들이 꾸민 계획은 여러모로 부실했어요. 핏자국을 발견한 시점에 경찰을 부르지 않은 이유부터가 설명되지 않으니까요. 제가 탐정이라면 먼저 경찰에 신고하라고 조언했을 겁니다. 또 백골 사체가 이상하다는 근거도 빈약합니다. 사체를 백골로 만드는 무슨 방법을 썼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설득력이 부족했기에 감점합니다.

"죽은 고양이의 모험" 

니키 포터 양은 저주받은 검정 고양이 모임 회합에 엘러리 퀸과 함께 참석했다. 10월 31일의 챈슬러 호텔에서의 비밀 회합은 니키의 친구가 개최한 할로윈 파티였었다. 파티 중 추리 게임을 하다가 참석자 중 한 명인 크롬비가 살해당했고, 동기는 그의 무분별한 여자 관계 때문으로 드러나는데...

핼로윈 파티에 대한 장황한 묘사를 빼면, 핵심은 한 가지입니다. 파티를 위해 복잡하게 꾸며놓은 호텔 방을, 불이 꺼져 있었던 추리 게임 당시 문제없이 지나갈 수 있었던 사람은 누구냐는 것이지요. 엘러리 퀸의 추리는 이 방을 꾸민 루시 트렌트가 범인이라는 것이었고요. 

하지만 방을 꾸몄다고해도 과연 어두운 상황에서 문제없이 지나갈 수 있었을까요? 또 파티가 시작하고 한참 뒤에 추리 게임이 시작되었다면, 다른 사람들도 외울 수 있지 않았을까요? 루시 트렌트 범인설은 이렇게 설득력이 약합니다. 복잡한 여자 관계가 동기인데, 정작 당사자가 아니라 그 동생이 복수했다는 설정도 영 와 닿지 않았고요. 

무엇보다도 이런 범행을, 세계 최고의 명탐정을 초대해서 추리 게임을 하는 동안 저지를 이유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용의자가 될 만한 사람도 몇 명 없는데 말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1점입니다. 추리 게임이라는 작 중 소재처럼, 추리 퀴즈 수준의 졸작으로 점수를 줄 여지는 전무합니다.

"비밀을 폭로하는 병의 모험" 

추수감사절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선물을 배달하던 엘러리 퀸과 니키는 우연히 방문한 프랑스 레스토랑이 마약을 밀매하고 있다는걸 알아냈다. 그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캐리가 마약 밀매 혐의로 구속되었는데, 그가 누명을 썼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경찰이 체포하기 전에 마약을 건넨 웨이터가 살해되는데...

우연히 방문한 레스토랑에서, 우연히 "샤토 디켐"을 주문하니 마약이 나오고, 우연히 탄 택시에서 그 이야기를 했는데 택시 운전사가 흑막이라서 그가 레스토랑 웨이터를 살해했다는 내용의 작품. 우연으로 점철된 전개로 실소를 자아내는 졸작입니다. 작품이 아니라 입문자용 추리 퀴즈라고 하는게 더 낫지 않을까 싶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황태자 인형의 모험" 

입슨 양이 30년을 쏟아 부어 만든 인형 컬렉션인 '돌렉션'문제로 변호사 본들링이 퀸 부자를 방문했다. 컬렉션 중 가장 가치가 큰, 49캐럿 다이아몬드가 박혀있는 황태자 인형을 유명한 예술품 도둑 코머스가 훔치겠다고 예고했기 때문이었다. 입슨 양 유언으로 돌렉션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백화점 전시가 예정되어 있었고, 퀸 부자는 직접 경찰과 함께 철통같은 방어망을 구축했지만, 인형은 결국 가짜로 바꿔치기 당하는데...

크리스마스를 무대로, 예고장을 보내는 전설적인 괴도가 등장한다는 만화같은 설정의 작품입니다. 

진상은 간단합니다. 변호사 본들링이 도둑 코머스였던 것입니다. 그가 마지막에 인형을 직접 바꿔치기 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본들링이 예고장을 보내면서까지 사건을 키울 필요는 없습니다. 과거 꾸준히 예고장을 보내왔다면 모를까, 예고장을 보낸건 이번이 처음이라고도 하니 더더욱 불필요한 행동이었어요. 다른 사람들을 변장시켜 경찰의 시선을 끈 행동 역시, 대역들이 체포되면 금방 드러날 유치한 작전이었고요. 그냥 다이아몬드가 사라진다면 본들링이 무조건 혐의를 받을 테니 그 혐의를 돌리기 위해서였다는 것도 말이 안됩니다. 본들링이 범인이라는 엘러리의 추리는 너무 당연해서, 그의 정체는 어쨌건 드러날 가능성이 높았으니까요. 이런 위험을 짊어질 이유가 있었을까요?

산타클로스로 변장해서 인형을 지켰던 벨리 경사의 우스꽝스러운 모습, 크리스마스를 무대로 한 작품다운 왠지모를 유쾌함과 활기는 좋았지만, 추리 퀴즈 수준밖에 안 되는 작품이에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중반에 잠깐 라디오 극본을 그대로 옮긴 듯한 부분이 있는데, 의도인지 잘 모르겠지만 작품과 잘 어울리지는 않았습니다. 원래 라디오 극본이라는걸 알려주기 위한 의도였다면, 극본 전체를 부록처럼 수록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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