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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1

亂れからくり 복잡한 기계장치 : 1 달그락달그락 새

亂れからくり (創元推理文庫) (文庫) - 8점 泡坂 妻夫/東京創元社
얼마전 읽었던 책입니다. 번역기 수준의 번역이지만 한 번 용기를 내어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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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달그락달그락 새

잔돈을 거슬러 받을 때, 동전 한 장이 길바닥에 떨어졌다. 동전은 작고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카츠 토시오는 빠르게 발을 움직여 굴러가는 동전을 주웠다. 그의 발놀림은 아직 무뎌지지 않았다. 그는 담배 한 갑을 들고 니시키 빌딩의 위치를 물었다. 니시키 빌딩은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그 건물 앞이라면 몇 번이나 지나쳤기 때문이다.

토시오는 담배를 주머니에 넣으려다 다시 반대편 주머니에 넣었다. 오른쪽 주머니는 이미 두 개의 담배로 부풀어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 회사들이 밀집해 있는 좁은 길. 인쇄기 굉음이 들리는 건물과 산속 오두막집 풍의 찻집 사이에 니시키 빌딩이 있었다.

갈색 모르타르에 그을음이 묻어 있는 길쭉한 건물로 빌딩이라고는 하지만 목조 4층 건물이었다. 토시오가 올려다보니 흐린 창틀에 빗방울이 길게 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1층 유리문에는 반쯤 벗겨진 금색 글씨로 '빵사진신문사'라고 적혀 있었다. 지금까지는 무심코 몇 번이나 지나쳤던 글씨였다. 그 옆에 열린 문이 있었고, 좁은 통로를 통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다. 문 위에는 검은색 나무 팻말이 여러 개 놓여 있었고, 여러 회사 이름이 흰색 에나멜로 빼곡히 적혀 있었다. 회사 이름은 스무 개 가까이나 되었다.

…… 정만 공업소, 연신사, 극화 에폭동인, 동양무역신문사, 공업문헌조사회, 도쿄 유니온 관광사, 일본 무라지주식회사, 산토모상사, 요시노 내화보드 제조주식회사, 사메문사 ...... 그 중 두번째 줄의 끝에 '우다이(宇内) 경제연구회'라는 회사명이 있었다.

토시오는 건물에 들어가 어두운 통로를 통해 계단을 오르려고 했다. 그때 위에서 사람이 내려왔기 때문에 몸을 옆으로 바짝 붙여야 했다. 계단은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그 남자는 토시오를 한 번 쳐다본 후 밖으로 나갔다. 풀빛 바랜 베레모를 쓰고 검은색 낡은 코트를 남루하게 걸치고 있는 젊은 남자였다.

토시오는 가파른 계단을 올라갔다. 토시오의 발밑에서 계단이 삐걱거렸다.

2층에는 두 개의 방이 있었다. 건물 뒤편에 있는 방의 유리문에는 연신사(研信社)라고 적혀 있었다. 토시오는 그 앞을 돌아 길 쪽을 향한 문 앞에 섰다. 같은 유리문이지만 이쪽에는 회사 이름이 없었다. 토시오는 문을 열었다.

네모난 방에 열 개 남짓한 책상이 놓여 있었는데, 일반적인 사무실의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책상 모양이 모두 불규칙했고, 서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것은 기껏해야 재떨이 정도였다. 안에서 네다섯 명이 글을 쓰거나 신문을 읽고 있었다.

창가에서 신문을 읽고 있던 남자가 문득 고개를 들어 토시오를 보았다. 도수가 높은 안경을 쓴, 둥근 얼굴에 입술이 두툼한 남자였다. 토시오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 남자는 곧 다시 신문에 눈을 돌렸다. '하북 매립공사, 주민과의 갈등 심화'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문 바로 앞에 전화기 두 대가 놓인 책상이 있었고, 젊은 남자가 전화를 걸고 있었다. 책상 위에 '접수'라고 적힌 팻말이 있는 것을 보고 토시오는 전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젊은 남자는 계속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옷깃이 달린 교복을 입고 어린아이 같은 얼굴이었지만, 전화 응대는 능숙했다.

수화기를 내려놓자 젊은 남자는 토시오를 바라보았다.

"저기, 우다이 경제연구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 이쪽입니다."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여성의 목소리였다.

신문을 읽고 있는 남자 앞 책상에서 아까부터 글을 쓰고 있던 사람이었다. 토시오는 목소리의 주인공과 접수대 남자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어서 오세요."

그렇게 말한 뒤 접수원 남자는 자신의 일에 몰두했다.

"이리 오세요."

여자가 또 말했다. 뚱뚱하고, 눈과 코가 크고, 밝은 느낌의 사람이다.

여자는 옆의 책상에서 의자를 꺼냈다. 토시오는 그녀 쪽으로 향해 앉았다.

"제가 우다이 경제연구회의 우다이 마이코입니다."

여자는 서류를 닫으며 말했다.

"주간지에 실린 구인광고를 보고…..."

다른 남자들이 토시오를 힐끗 쳐다보는 것 같았다.

"기다리고 있었어. 이력서는?"

토시오는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마이코에게 건넸다. 마이코는 안을 꺼내어 대충 훑어보았다. 하얀 손가락에 붉은 돌멩이가 반짝이고 있었다.

"......카츠 군, 첫 직장인가?"

"맞습니다."

토시오는 마이코를 바라보았다. 눈망울이 크고 인형 같은 얼굴이지만 나이는 이미 서른이 넘었을 것이다. 검은 윤기가 흐르는 풍성한 머리카락을 무심하게 뒤로 묶고 있다.

"학생운동?"

그 질문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토시오는 침묵을 지켰다. 마이코는 토시오의 얼굴을 보고 다시 이력서로 눈을 돌렸다.

"미안, 미안 학교를 중퇴했다고 적혀 있어서."

토시오는 주위의 시선이 다시 신경 쓰였다.

"그래서, 체육관은?"

"완전히 그만뒀습니다."

마이코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 등받이에 걸려 있던 화려한 주황색 코트를 입었다. 그리고 이력서와 커다란 가방을 집어 들었다,

"따라와."

그녀는 앞장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토시오는 마이코의 뒤를 쫓았다. 그녀는 사무실을 나와 계단을 내려갔다. 니시키 빌딩을 빠져나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옆의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아무렇게나 한 쪽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토시오가 앉을 때까지 기다리지도 않았다,

"커피 한 잔이요."

큰 소리로 커피를 주문하고 다시 한 번 토시오를 바라보았다.

오전이라 그런지 손님은 마이코와 둘뿐이었다. 벽에는 산을 한 가득 그린 그림이 걸려 있다. 나뭇결을 다듬은 테이블 위에는 작은 램프가 놓여 있다.

"플라이급이었어?"

마이코가 물었다.

"왜 그만두었지?"

"스물세 살이 될 때까지 프로에 진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와? 스물세 살은 안되나?"

"스물세 살이면 대학을 졸업할 나이, 나는 스물세 살에 프로가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만둔다. 권투선수를 지망할 때 그렇게 마음먹었어요."

이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모를 거라고 토시오는 생각했다. 자신은 처음의 결심을 굽히고 싶지 않았던 것 뿐이었다. 하지만 그걸 마이코가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마이코는 가방에서 담배갑을 꺼냈지만 비어 있었다. 마이코는 빈 갑을 접어 재떨이에 집어넣었다.

"괜찮으시다면.......제 것도 있어요."

토시오는 주머니에서 방금 산 담배를 꺼냈다.

"그거, 고맙네."

마이코는 토시오의 주머니가 여전히 부풀어 올라 있는걸 놓치지 않았다.

"카츠군은 항상 그렇게 많은 담배를 가지고 다니나?"

토시오는 또 다른 담배갑을 열었다,

"니시키 빌딩을 좀처럼 찾지 못했습니다"

"바보 같네."

마이코는 웃었다.

"길이라는 건 공짜로 물어보는거야. 그런 식으로는 담배를 몇갑 사서 피워도 못 찾겠어."

"앞으로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마이코는 가져온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힘차게 성냥으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약했지?"

"네?"

"그 상태라면 실력은 강했을지 몰라도 승부에는 약했겠지."

토시오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마지막 경기가 떠올랐다. 동일본 신인왕전 결승전이었다. 마지막 라운드, 절대적으로 토시오가 우세한 상황이었다. 상대를 쓰러뜨리고 프로에 입단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나 토시오는 상대가 쓰러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링 위에 주저앉아 버리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상대는 곧바로 강력한 펀치를 날렸다. 토시오는 공이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쓰러진 몸을 뒤집었다. 링을 떠날 때는 이상하게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쓰러진 덕분에 토시오는 처음 결심대로 복싱을 그만둘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음에 드네."

마이코는 큰 눈을 반쯤 뜨고 말했다.

"그래서, 당신은 어때?"

"당신은?"

"나는 당신이 마음에 들었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내 회사에서 일할 의향이 있는지."

예상했던 것보다 작은 회사 같았다. 하지만 사치를 부릴 수 없는 처지다. 집세도 밀리고 있다. 고향에서 학비도 더 이상 구걸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편, 말은 거칠지만 마이코라는 여자의 인간미에 뭔가 끌리는 부분이 있었다.

"일하게 해주세요."

토시오는 자세를 바로잡으며 말했다.

"어떤 일인지 아직 물어보지 않았잖아."

토시오의 성급함을 비난하는 듯한 말투였다.

"경제연구회라니, 경제를 연구하는 회사입니까?" 

"연구는 연구지만…. 그러니까 흥신소라는 곳이야."

"흥신소?"

"아무것도 모르는군"

또 다시 자신을 꿰뚫어보았다. 지금까지의 토시오는 복싱 외에는 아무것도 몰랐던게 사실이었다.

"예를 들어 어떤 회사에서 거래처의 영업 상태, 이익, 신용도 등을 알아야 할 때, 그것을 조사해 주는게 내 일이야. 경제 탐정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거야."

"저도 할 수 있을까요?"

"내가 가르쳐준 대로 하면 누구나 할 수 있어. 다만, 깨끗한 일은 아니야. 쉬운 일도 아니고."

"튼튼한 것만큼은 자신 있습니다."

"그렇겠지."

마이코는 웃었다. 잘 웃는 여자라고 토시오는 생각했다.

"월급은 구인광고에 나와 있는 대로, 휴일은 원칙적으로 쉬지만 일이 있을 때는 출근을 해야해. 괜찮나?"

"알겠습니다."

"그럼 결정. 내 주소를 알려 주지."

마이코는 가방에서 명함을 꺼내 토시오에게 건넸다. 명함에는 회사명과 마이코의 이름, 사무실 주소와 전화번호가 인쇄되어 있었다. 마이코는 명함 뒷면에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도록 했다. 토시오가 운전면허증 사이에 명함을 집어넣으려는 것을 "명함에는 받은 날짜를 적어두면 좋을 것"이라고 주의를 주었다.

마이코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 구석으로 가서 공중전화를 집어 들었다.

"......아, 구로사와 군? 우다이입니다. 오늘은 사무실로 복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겠지만, 누가 오면 채용은 이미 끝났다고 말해 주세요. 책상 위의 물건은 서랍에 넣어 주시고요. 그럼 부탁할게요."

마이코는 자리로 돌아와 남은 커피를 다 마셨다.

"회사 사람이신가요?"

토시오는 접수처에 있던 젊은 남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니."

마이코는 이상하다는 듯이 토시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럼?"

"우다이 경제연구회라는 것은 나와 당신 둘만의 회사야."

"그럼 그 사무실에 있었던 사람들은?"

"그건 다른 회사 사람들이야."

"그럼 그 방 안에는?"

"지금은 열두 개의 회사가 모여 있어."

토시오는 그 숫자에 조금 놀랐다.

"저기, 저 방은 책상 하나당 임대료가 지불되고 있어. 그러니까 책상 하나에 하나의 회사가 있다고 생각하면 돼. 대부분 사장 혼자서만 돌아다니는 회사들이지. 직원 한 명이라도 있으면 나은 편이야. 업무도 다 달라. 인쇄 브로커, 업계 신문사, 회계사, 화가, 기자, 사기꾼........"

"사기꾼도 있어요?"

"얼마 전 어린이 잡지에 경품을 내걸고, 모두에게 당첨 통지를 보내주고, 상품 배송비를 보내게 한 뒤 그것을 모아서 뜯어먹은 사람이 있었어."

그 사무실 책상 위에 물건이 없는 이유도 알 수 있었다.

"방에는 전화가 두 대가 있고, 구로사와 군이라는 아이가 지키고 있어. 사무실 내 회사 사람들은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구로사와 군은 전화가 걸려온 회사 직원인 척 하고 용건을 메모해 두지. 전화를 건 사람은 제대로 된 사무실이 있다고 생각하겠지? …… 카츠군은 회사는 모두 직원이나 사무원이 있는 줄 알았지?"

"그렇습니다."

"그래. 나도 처음엔 그랬어."

"사장님은..."

말하려는 순간, 토시오는 입을 다물었다. 경제연구회라면 회장일까.

"사장님......."

마이코는 잠시 생각했다.

"사장이면 안 될까요?"

"사장도 나쁘지 않지만, 뭐, 당분간은 우다이씨로 불러도 괜찮아. 우다이 씨라고 불러줘."

"......우다이 씨는 원래 이 일을 하고 계셨나요?"

"건물 입구에 있는 회사 이름을 봤겠지? 두번째 줄 맨 끝에 표시되어 있다는건, 가장 새로운 입주자라는 뜻이야."

"그 전에는?"

"너랑 똑같아. 뭐, 낙오자 중 하나였지. 나에 대해서는 언젠가 알게 될거야. 그보다 ......."

마이코는 가방에서 이번에는 한 뼘 정도 크기의 새 모양 장난감을 꺼냈다.

새는 연두색에 머리에 붉은 털을 달고 있다. 유리로 된 큰 눈에 애교가 있고, 부리는 길었다.

"무슨 새인 것 같아?"

실제 본 적은 없지만, 그 모양은 그림 등에서 본 적이 있다.

"딱따구리?"

"그래, 달그락달그락 새라는 상품명이 붙어있어."

"달그락달그락 새……"

"이 새는 그냥 가만히 보는 장난감이 아니야. 약간의 장치가 숨겨져 있지."

자세히 보니 새의 몸통은 스프링으로 작은 받침대와 연결되어 있고, 받침대는 흡판으로 되어 있었다. 마이코는 벽에 새의 흡판을 꾹꾹 눌러 붙였다. 새는 곧은 자세로 허리를 올려 세웠다. 그리고 리드미컬하게 벽을 쪼아대기 시작했다.

"어때?"

새의 움직임은 묘하게 사실적이었고, 애처로운 표정과 잘 어우러져 지루할 틈이 없었다.

잠시 후 새의 움직임이 멈췄다. 마이코는 흡판을 떼어낸 뒤, 이번에는 새를 거꾸로 세워 붙였다. 거꾸로 선 새는 거꾸로 선 채 나무를 쪼아대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동작을 보고 있자니, 이 새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전기 장치는 아닌 것 같네요."

"그래, 모터는 달려 있지도 않아. 이 장난감의 장점은 아주 간단한 장치라는 점이야."

마이코는 새를 벽에서 떼어내어 토시오에게 건넸다. 새는 움직이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장치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새와 흡판 받침대는 단지 하나의 스프링으로 연결되어 있을 뿐이었다.

"보기만 해서는 안 돼. 가볍게 흔들어 봐."

토시오는 마이코의 말대로 했다. 그러자 새의 몸통에서 '부스럭 부스럭'하는 소리가 들렸다.

"모래가 들어 있나요?"

"그래, 모래가 들어있어. 모래가 떨어지는 힘을 이용해 장난감을 움직이게 하는 방법은 옛날부터 있었다고 하더군. 지금은 책의 기록만 남아 있지만, 간사이(寛政) 시대에는 '투계(闘鶏)'라는 장난감이 있었어. 모래를 이용한 동력으로 닭이 움직이면서 투계하는 모습과 중국 부채를 든 동자가 진행하도록 만들었다는군. 마지막에는 바위 사이로 개가 튀어나와 닭과 동자가 함께 도망쳐 버리기까지 한다는데, 이 모든게 모래로 움직이게 만들었다는거야."

"정말인가요?"

"나도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만드는 방법을 제대로 설명한 책이 남아있으니 믿을 수 밖에. 이 새는 그에 비하면 단순해. 새를 벽에 세우면 몸통 안의 모래가 아래로 흘러내리는데, 이를 밸브의 조작으로 리드미컬하게 나무를 쪼아대는 동작으로 바꾸는 것 뿐이거든. 게다가 새의 몸통과 흡판을 연결하고 있는 스프링이 새의 움직임을 재미있게 만들어주지. 새의 움직임이 멈추면 거꾸로 뒤집어 주면 모래시계처럼 몸통 안의 모래가 다시 흘러나오게 되어 있고. 사실 인형의 몸과 받침대를 연결하는 스프링의 아이디어는 새로운 것이 아니야. 쌀을 먹는 쥐라는 장난감을 알고 있나?"

"모릅니다."

"언젠가 쥐띠해의 연하장 도안으로 사용된 적이 있는데…… 텐포(天保)시대부터 있었던 가나자와의 인형으로, 대나무 스프링으로 쥐와 받침대가 연결되어 있어. 받침대 위 작은 접시에 쌀이 들어 있고. 쥐의 몸통에 힘을 주면, 스프링 때문에 쥐가 쌀을 먹는 동작을 계속하는 거지."

자세히 설명해주니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장난감이었다.

"꼬리가 길고 빳빳하게 서 있는 쥐 아닌가요?"

"기억이 났나 보네. 그래, 이 달그락달그락 새는 모래로 움직이는 투계, 그리고 쌀을 먹는 쥐의 아이디어를 잘 연결한 장난감이야."

"우다이 씨는 여러 가지를 잘 알고 계시네요."

마이코는 살짝 웃었다.

"그냥 받아쓰기지. 지금 이야기는 전부 산토모 상사의 후쿠나가 씨에게 들은 이야기야."

"후쿠나가 씨?"

"사무실 내 앞 책상에서 신문을 읽고 있던 사람. 엄청나게 박학다식해. '대부분'에 대해서 백과사전보다 더 잘 알고 있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요?"

"몰라. 매일 그렇게 신문만 읽고 있어."

토시오는 감탄했다. 오늘은 감탄할 일이 많았다. 토시오는 새를 한바퀴 빙글빙글 돌린 후 마이코에게 돌려주었다.

"재미있는 장난감이었어요. 고마워요."

달그락달그락 새를 가방에 넣은 마이코가 눈을 크게 떴다.

"이봐. 나는 너 심심하지 말라고 이런 장난감을 보여 주는 게 아니야."

"네?"

"바보야, 이것도 일의 일부라고. 이 장난감을 만든 회사의 제작부장이 이번 일의 의뢰인이거든."

"제작부장이라고 한다면…. 개인적인 일이겠군요."

"오, 가끔은 날카로운 부분도 있군. 그래, 맞아.  개인적인 일이야. 해바라기 공예는 장난감 회사야. 기억해 둬."

마이코는 물을 주문하고 한번에 다 마셨다. 카페 문이 열리고 서너 명의 손님이 들어왔다. 마이코는 손님들에게 등을 돌리고 다시 앉아서 가방에서 하얀 봉투를 꺼냈다. 마이코가 봉투에서 꺼낸 것은 사진 한 장이었다. 서비스 사이즈의 평범한 스냅 사진이었다. 무광택 컬러로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두 남녀의 상반신이 나란히 찍혀 있었다. 계절은 여름일 것이다. 하늘이 새파랗고 빛과 그림자의 대비가 강했다. 필요 이상으로 하늘이 차지하는 부분이 많다. 자동 셔터로 찍은 사진일 것이다.

토시오는 여성의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바람을 타고 움직이는 푸른 잎사귀처럼 엷은 미소를 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메라는 한 쌍의 긴 쌍꺼풀이 움직이는 순간을 포착했는데, 여성의 표정에 기품이 느껴지는 것은 다소 넓은 이마와 얕게 휘어진 눈썹에 있는 것 같았다. 입술 모양에서 토시오는 상쾌한 목소리를 상상했다.

"남자는 마와리 토모히로"

마이코가 말했다.

토시오는 또다시 마이코가 자신의 마음을 본 것 같아서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해바라기 (히마와리)?"

"해바라기가 아니야. 말을 쪼갠다는 글자를 써서 마와리(馬割)야. 토모히로는 달을 늘어놓은 토모(友)자와 말할 호(浩), 토모히로(朋浩). 마와리 토모히로야."

토시오는 그 말을 듣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하얀색, 하얀 얼굴에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머리는 대머리이고, 눈꺼풀이 부풀어 오른 눈꺼풀과 극도로 작아 보이는 입이 이 남자의 특징이었다.

"이 사람이 바로 이번 일의 의뢰인이지. 해바라기 공예의 제작부장 마와리 토모히로."

토시오는 사진 속 두 사람을 비교했다. 하지만 토시오의 시선은 금세 여성에게 쏠렸다.

붉은색에 가까운 감색 민소매. 어깨는 둥글고, 가슴은 살짝 솟아오른 모습이다. 사진으로는 작아 보였다. 옆의 남자가 뚱뚱해서 그런 것일까?

"여자는 마와리 토모히로의 아내, 마사오."

마이코가 알려주었다.

"마사오?"

"응, 남자 같은 이름이지만. 진실의 진(眞)자에 배의 장(棹)자를 써서 마사오. 일은 오늘 하루 마사오의 동태를 파악하는 것."

토시오는 마이코의 말에 불쾌함을 느꼈다.

"하지만 의뢰인은 이 사람의 남편일 텐데요."

"그래."

"두 사람은 부부 아닌가요?"

"남편이 아내의 행동을 감시하면 안 되나?"

마이코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토시오를 바라보았다.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싫다고 말하는 건가. 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일도 있는 법이지."

"바람을 피울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는데요."

"바람은 얼굴로 피우는 게 아니야. 게다가 누가 바람을 피운다고 했어?"

"이런 일도 많습니까?"

마이코는 잠시 토시오를 쳐다보다가 사진을 가방에 집어넣고 큰 소리로 입을 다물었다.

"뭐, 처음이야. 하지만 돈 벌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든 해야지."

마이코는 전표를 들고 일어섰다.

노천 주차장까지 가려면 오백 미터는 족히 걸어야 했다. 나란히 걷다 보니 마이코가 꽤 큰 체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화장기 없는 피부였지만, 어깨를 나란히 하고 보니 희미하게 향수 냄새가 났다.

마이코의 차는 투도어 실용차, 둥근 차체 모양 때문에 '에그'라는 애칭이 붙은 차종이었다. 주차장 한 구석에서 크림색 에그는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마이코가 차 앞에 서자, "운전에 자신 있어?" 라고 물었다. 토시오가 있다고 대답하자 그녀는 가방에서 열쇠를 꺼내 토시오에게 건네주었다.

토시오가 시동을 걸자 마이코는 숨을 크게 한 번 들이마신 후, 토시오의 옆으로 큰 몸을 밀어 넣었다,

"시나가와로"

라고만 말했다.


2016/09/15

명품 가구의 비밀 - 조 스즈키 / 전선영 : 별점 3점

명품 가구의 비밀 - 6점 조 스즈키 지음, 전선영 옮김/디자인하우스

가구 역사상 길이 남을 디자인의 의자와 테이블, 조명을 엄선하여 그에 관련된 일화를 소개해 주는 책입니다. 목차는 "전설적 명작의 비밀", "현대 디자인의 비밀", "디자인 신세대의 비밀", "경영자의 비밀"이라는 4개의 챕터로 나뉘어져 있고요. 이 중 디자인 회사 경영자 중심인 마지막 챕터를 제외하고, 총 3개 챕터에서 26개의 작품이 연대 순으로 소개됩니다.

20세기 초반부터의 가구 중에서 미적, 역사적 가치를 통틀어 엄선했기 때문에 그냥 보기만 해도 멋질 뿐더러, 작품별로 관련된 일화도 흥미로와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아일린 그레이와 르 코르뷔지에에 얽힌 일화입니다. 아일린 그레이는 귀족 출신 여성으로, 독학으로 익힌 건축으로 유명해졌다고 합니다. 르 코르뷔지에와의 친분도 생겼고요. 그러나 르 코르뷔지에가 그녀의 집인 E1027의 새하얀 벽에 원색적인 벽화를 그린 후 관계는 틀어지고, 그 뒤부터 르 코르뷔지에는 그녀를 매장시키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것도 정도가 있지, 참 어이가 없네요. 아일린 사후에 명예가 회복된건 다행이지만, 르 코르뷔지에를 다시 보게 되었네요. 거장이 전에 인간부터 되어야지요.

새롭게 알게 된 것도 많습니다. 현대 디자인의 아버지라는 윌리엄 모리스의 말인 "쓸모없는 것, 아름답지 않은 것은 집에 두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이 좋은 예입니다. 그동안은 부르주아가 부를 과시하기 위한, 일종의 속물 마인드에서 태어난 말이라 생각해 왔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자본가에 의해 조악한 품질의 대량 생산품이 보급되는 상황에서 이를 막고자 "미술 공예 운동"을 제창했던, 행동하는 디자이너의 명언이었더라고요.

1925년에 발표된 PH 램프가 로그 나선과 황금비를 활용한 제품이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된 사실입니다. 딱히 별다를 게 없는 디자인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나 이론적인 바탕이 뒷받침되었다는데 놀랐습니다. 그러니 시대를 초월해서 아직도 사랑받겠지요. 여담이지만 아내가 이사를 위해 식탁 등으로 비슷한 램프를 샀는데, 원작을 보고 나니 확실히 뭔가 품격이 달라 보이네요.

조명 "글로볼"도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디자이너 모리슨의 기본 자세인 "평범함은 특별함을 능가한다"는 것이 잘 표현된 멋진 작품으로, '보통의 디자인'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해 줍니다.

마지막에 수록된 "경영자의 비밀"은 디자인 회사에 대한 이야기로, 인터뷰 중심이라 다른 챕터와는 조금 다르지만 이 역시 꼭 한 번 볼 만합니다. 특히 독일 가구 회사 발터 크놀이 유명 디자이너가 아닌 무명 디자이너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며,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최우선으로 꼽았다는게 가장 와닿았습니다. 확실히 잘 나가는 회사는 다르구나 싶어요. 커뮤니케이션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을 저 역시 이 바닥 생활 20년 동안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입니다.

책의 특성상 반드시 뛰어나야 할 도판 역시 기대에 값하기에, 참 좋은 독서였습니다. 16,000원이라는 가격과 디자인 전문 서적다운 "여백의 미"가 과하기에 조금 감점합니다만, 디자인에 관심 있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이런 류의 책이야말로 가까운 미래에 3D 이미지가 포함된 디지털 콘텐츠로 진화하기 용이하리라 생각됩니다. 다양한 각도, 환경에서 가구를 확인하고 필요하면 3D로도 출력해서 소장하고... 와, 멋질 것 같아요!

2023/03/18

이글루스 서비스 종료

공지. 이글루스 서비스 종료 안내

서비스 종료에 대한 소식은 알고는 있었지만 포스팅이 늦었네요.

2003년 12월 7일에 개설하였던 이 블로그의 수명도 이제 몇 개월 남지 않았군요. 그나마 다행인건 어느정도 이사가 완료된 상태라는 점입니다. 이미 2010년에 관리자 권한이 다른 사람에게 부여되는 권한 오류 사고 때 의구심을 가졌었고, 2013년 SK에서 서비스가 독립한 이후 발생한 여러가지 문제들을 토로할 때 고민하면서 블로그 글을 조금씩 옮겨왔거든요. 현재 약 90% 넘게 글을 옮겨 놓은 것 같습니다. 새 거처는 구글의 블로그스팟이며, 주소는 아래와 같습니다. 

글 내부 deep link를 수정하지 못하는 점, 기존 댓글과 트랙백 등을 가지고 오지 못하는 점 등 문제가 많지만 그래도 원본 글이나마 살려 놓았습니다. 앞으로 제 글은 이글루스 폭파 시점까지 이곳과 블로그스팟 두 군데 모두 올릴 예정이에요. 100% 이사가 완료될 때까지는 정리 등으로 새로 글을 올리기는 힘들겠지만요.

사실 이글루스의 서비스 종료도 그리 놀랍지는 않습니다. 위의 글들은 물론이고, 작년에 이런 글을 썼었지만, 아무런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걸 보고 거의 확신했어요. 오래가지 못할거라는걸요. 오히려 제 생각보다는 서비스가 오래 버틴 편입니다.

물론 끝을 예감하고는 있었다고 해도, 섭섭하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죠. 7천일이 넘는 기간 동안 3천 7백개가 넘는 글을 올린 이 블로그는 그야말로 제 인생의 한 축이나 다음이 없었으니까요. 

블로그를 운영하는 동안, 4개의 회사를 차례로 옮겼고, 결혼도 했고, 소중한 딸 아이도 만났으며, 형과 합작했던 추리소설 "경성탐정록"의 발표와 출간이 있었고, 제 이름으로 된 첫 책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을 펴냈으며, 추리 소설 리뷰도 1,000편을 달성하는 등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이글루스의 빅 웨이브였던 이글루땅 열풍 참여처럼 온라인 상으로 나눈 수많은 분들과의 이야기와 함께했던 경험도 소중한 추억입니다. 이전에 썼던 글처럼, 서비스를 보다 안정적으로 유지해준다면 유료화에도 참여할 생각이 컸는데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이미 서비스 종료는 결정된 사항이니 어쩔 수 없지만요(솔직히 일부 지저분한 정치 글을 밸리에서 더 안봐도 된다는 건 좋네요).

이글루스에 둥지를 트셨던 모든 분들께서 모쪼록 이사 잘 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EST님이 보내주셨던, 제 이글루스를 대표하는 이글루땅 홈즈 버젼을 올리며 글을 마칩니다.

2016/05/20

책장의 정석 - 나루케 마코토 / 최미혜 : 별점 2.5점

책장의 정석 - 6점
나루케 마코토 지음, 최미혜 옮김/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애플북스)

일본 유명 독서가 나루케 마코토의 책장 관리법을 설명해 주는 책입니다. 4개의 단락 - 책장에 대한 정의, 그리고 저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책장과 책 관리법, 저자가 생각하는 책 선택법과 독서법, 그리고 마지막 부록으로 웹에서 호평받는 서평 쓰는 법 - 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책을 쓴 저자 나루케 마코토는 저자는 1955년 생으로 1991년 일본 마이크로 소프트 법인 사장으로 취임하여 2000년까지 역임했으며, 이후 투자 컨설팅 회사를 설립한 비즈니스 맨입니다. "honz"라는 서평 사이트의 개설자로 마음에 드는 책을 무조건 사고, 1년에 200권도 넘는 책을 읽는다는 독서가이기도 하고요. '시마 사장'이 떠오르는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인데 독서가답게 글도 잘 쓰고 나름의 철학도 분명히 있는 사람이더군요. 무엇보다도 자신만의 독서관이 명확하다는 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런 저자의 책장 관리법을 간략하게 설명드리자면, '보기 편할 것', '20퍼센트의 여백이 있을 것'과 '승부수가 될 책만 둘 것', '다양성은 갖되 위화감을 없앨 것', '언제나 변화할 것' 입니다. 보기 편한 것과 여백은 그렇다 치고, 승부수가 될 책만 둔다는게 독특했습니다. 소설이나 만화는 일절 꽂지 않고 오로지 논픽션 중심으로만 책장을 관리한다는 의미로, 소설과 만화는 이미 완성되어 있어서 정보의 업데이트가 필요 없어서 책장에 계속 남아있게 되기 때문에 결국 공간을 차지하게 되어 나중에는 버리게 되는 탓이라고 합니다.
다양성은 테마를 정해 두는 것입니다. 저자의 테마는 '남들이 읽지 않는 재미있는 책' 이며, 테마는 약 5년 정도? 주기로 바꾸면 좋다는군요.
그리고 마지막 '언제나 변화하는 책장'이 바로 책장 관리의 핵심입니다. 우선 앞으로 읽을 책,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두는 공간인 "신선한 책장" (장소는 집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며 편안한 곳에, 책을 눕힌 채로 놓고 책등의 제목이 보이게 쌓는, 즉 서점의 '평대' 느낌)이 있습니다. "신선한 책장"에서 다 읽은 책은 "메인 책장"으로 옮깁니다. "메인 책장"에 넣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자의 기준은 '1. 재미있는가 2. 새로운가 3. 정보가 많은가'이고요. 그리고 앞서 말한 20퍼센트의 여백과 같은 공간 관리에 신경쓰며 주, 혹은 한 달에 한 번 "메인 책장"을 정리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책장이 꽉 차면 결국 책을 처분해야 하지만 나름 선별한 것이라 버리기 어려우면, 시간을 두고 고민할 수 있게 따로 공간을 만들어 관리한다고 하네요.

그런데 이렇게 관리하면 역사 관련 서적은 어떻게 하는지 좀 궁금해집니다. 역사는 정보가 새롭게 바뀔 여지가 아무래도 적잖아요? 이미 정해진 과학, 수학 쪽 논픽션도 마찬가지일테고요. 또 정말로 '소장하고' 싶은 책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물어보고 싶네요. 1년에 1~2권만 건진다고 해도 수십년이면 엄청 많아질텐데 말이죠.

이러한 책장 관리법 외에 저자가 추천하는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것 같아 딱히 언급할 건 없습니다. 하지만 독서법에서 포스트 잇을 유용하게 활용한다는 것은 괜찮더군요. 요건 바로 따라해봐야 겠어요.

마지막 서평 쓰는 법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좋은 책만 서평을 쓴다는 점에서 저와 차이는 있지만 같이 서평, 독서 감상문을 쓰는 사람 입장에서 참고될만한 내용이 많았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작법 측면에서 '1) 책 제목은 반드시 겹화살괄호로 쓸 것 2) 어미는 통일 할 것 3) 수식어와 피수식어를 너무 떨어뜨리지 말 것 4) 같은 표현을 반복하지 말 것'을 강조하는데 2번과 4번은 저도 항상 쓰면서 고민하는 부분이라 확실히 이해가 되더군요. 참고로, 1번도 따라해보려고 했는데 html 태그 오류가 잦아서 결국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글의 구성에 대한 설명도 참고가 많이 되었습니다. '총괄 1,2 - 에피소드 1,2 - 감상 - 저자 - 일러스트나 장정 - 대상 독자 - 정리의 순으로 적는다'는게 핵심입니다.
우선 총괄 1에서 그 책이 어떤 식으로 재미있는지를 분명하게 소개하고(이것만 따로 잘라 내도 서평으로 구성될 수 있는 참신한 핵심 내용), 총괄 2는 총괄 1에서 다 말하지 못한 재미를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합니다. 1이 '재미있다'라면 2는 '정말로 재미있다'라고 재 확인하는 것이지요. 에피소드 1에서는 재미를 구체적으로 쓰고, 2에서는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쓰고요, 감상은 에피소드들이 어떻게 재미있었는지를, 다음은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소개하고 일러스트와 장정 등 글 이외의 요소 언급하며 예상되는 독자층에 대해 쓰고 마지막으로 정리합니다.
정리와 총괄의 차이는 서평을 읽은 사람에게 책에 대해 결단을 내리게 만드는 것이라는 것인데 확실히 예비 독자들에게 꽤 유용하겠다 싶네요. 실제로 이렇게 쓴 서평 예문도 괜찮았으니까요. 지금 쓰고 있는 이 서평도 이러한 이론에 기초해서 쓴 것인데, 앞으로도 많이 써먹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앞서 말씀드렸듯 책장 정리에 대한 욕심이 솟구치게 만드는 책입니다. 확실히 고수의 책장 관리와 독서법은 남다른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별거 아닌 거 같은데 확실한 자신만의 철학으로 관리한다는 것은 놀랍기도 했고요. 자신이 독서가라고 생각되신다면, 그리고 집에 쌓이는 책 정리에 고심하고 계시다면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저 역시 이사가게 되면 책장에 여유를 좀 두고 자주 정리해서 안 읽게 된 책은 정리해야 겠습니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마지막으로 저자가 추천하는 책 중 국내에 소개된 책들만 따로 모아보면, 아래와 같습니다(2016.05 기준).

  • 만지트 쿠마르, 이덕환 "양자혁명 : 양자물리학 100년사" 까치 글방
  • 크리스틴 바넷, 이경아 "제이콥, 안녕? 자폐증 천재 아들의 꿈을 되찾아 준 엄마의 희망 수업" 알에이치코리아
  • 다니엘 T 맥스, 강병철 "살인단백질 이야기 : 식인풍습과 광우병, 영원히 잠들지 못하는 저주받은 가족" 김영사
  • 오코우치 나오히코, 윤혜원 "얼음의 나이 : 자연의 온도계에서 찾아낸 기후 변화의 메커니즘" 계단
  • 구메 구니타케, 정애영 "특명전권대사 미구회람실기 1~5" 소명출판
  • 궁리출판편집부 "세계만물 그림사전" 궁리
  • 마크 레빈슨, 김동미 "더 박스 : 컨테이너 역사를 통해 본 세계 경제학" 21세기 북스
  • 빌 로스, 이지민 "철도, 역사를 바꾸다" 예경

2022/04/29

Q.E.D Iff 증명종료 17 - 카토 모토히로 : 별점 2점

Q.E.D Iff 증명종료 17 - 4점
카토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Q.E.D도 오랫만이네요. 이번에는 나름대로(?) 강력 사건 한 편과 일상계(?) 한 편이 수록되어 있는 전통의 구성입니다. 그러나 두 편 모두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포플러 장의 살인 게임" 

포플러 장에 토마와 가나를 포함해서, 댄서와 마술사, 용병 등 다채로운 직업의 사람 열 명이 모였다. 48시간 안에 저택에서 일어날 무언가에 대해 풀어내는 게임 참가 때문이었다. 상품은 엄청난 가치가 있는 푸른 나비 브로치였다. 게임을 하는 동안 포플러 장은 봉쇄되며, 참가자의 안전은 보장되지 않는 조건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참가자 중 코가모와 하토야가 살해당했다. 그런데 그들이 살해당한 방은 밀실이었고, 모든 사람들은 알리바이가 있었다.

포플러 장은 유명 게임에서 반사회조직을 찾아내기 위해 회사가 만든 영역이었고, 푸른 나비 브로치는 게임에 사용되는 아이템이었다는 일종의 서술 트릭이 사용된 작품입니다.

비현실적인 상황을 그럴듯하게 그려낸 전개와 묘사, 그리고 이와는 어울리지 않는 등장인물들의 기묘한 직업이 가장 큰 단서가 된다는 건 꽤 괜찮은 아이디어였습니다. 밀실 트릭도 게임이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고요. 피해자 두 명 중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칼로 찔러 죽인 뒤, 창을 잠그고 자살했던 겁니다. 그 캐릭터는 이번에 새로 만들었다는 설정이고요. 

추리적으로도 깔끔합니다. 병 간호를 핑계로 불참했던 저녁 식사 때 게임 참가자들이 했던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는 걸 단서로 토마는 주시마츠가 여러 캐릭터를 이용한다는걸 알아냈거든요. 두 명이 아니라 세 명의 캐릭터를 사용했다는 아이디어도 좋아요. 주시마츠는 다른 두 캐릭터를 이용하며 밀실 살인을 저지르고, 아이템이 담긴 가방을 훔쳤습니다. 그래서 세 명이 동시에 보이는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았던 것이지요. 

사건은 형사임을 자처했던 카리카네가 이 사실을 알아낸 뒤, 주시마츠를 협박해서 실제 주소를 알아냈다는 결말로 이어집니다. 카리카네 역시 가방이 범행 동기라는걸 알고 있었던 등 범인밖에 모르는 정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정체가 드러나게 됩니다.

하지만 진상이 너무 극단적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애초에 게임 회사는 계정 주인의 신상 정보를 알고 있으니, 이런 복잡한 게임을 따로 벌이지 않아도 수상한 사람의 조사를 경찰에 의뢰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설득력도 약하고요. 

게임도 어디까지 자유도가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평범한 게임이라면 직업별로 스킬이 있는게 당연하니, 밀실 트릭이 의미가 있는 상황이 아니잖아요. 추리물로 기능하려면, 보다 정교한 설정이 필요했습니다.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한 사람이 두 개의 캐릭터가 아니라 세 개를 만든 것이었다!도 아이디어도 새롭다고 하기는 힘듭니다. 예를 들어 "명탐정 키요시로 사건 노트"에서도 두 쌍동이가 아니라 세 쌍동이었다!는 트릭이 등장하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메타버스 등 새로운 기술을 녹여낸 시도는 좋았지만, 설득력을 갖추는 데에는 실패했고 추리적으로도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아서 감점합니다.

"트롤리 딜레마" 

토마와 가나가 휴식을 즐기던 바닷가 야키소바집 아르바이드생 이시카리 아유가 열사병으로 쓰러졌다. 그녀는 편모 가정 자녀로 아버지 쿠치무츠 고로 씨는 부자였지만 1년 전 캐나다에서 타고있던 선박 좌초 사고 이후 실종되었으며, 양육비 지원도 끊겼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이었다. 토마는 고로 씨가 특별실종선고를 받게 되면, 사망한 것과 같이 처리되니 유산 분할을 요청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쿠치무츠 집안에서는 아유가 쿠치무츠 씨의 딸이 아니라며 유산 분할 및 DNA 제공도 거부했다. 심지어 쿠치무츠 가문에서 머리카락을 봉납해 왔었던 신사에 누군가 침입하여 쿠치무츠씨의 머리카락을 불에 태워버리고 마는데....

이전에 등장했던 변호사 키리시마 치도리가 재등장합니다.

제목의 트롤리 딜레마는 한 선로는 1명이, 다른 선로에는 5명이 일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선로로 폭주하는 기차를 유도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런 저런 딜레마, 특히 사람 생명의 경중을 다루는 상황에서 많이 언급되는 문제이지요. 그러나 작 중에서 이 문제는 수 페이지를 할애해가며 설명하는 것 치고는, 내용과는 별 상관은 없습니다. 쿠치무츠 가문 4명의 자식과 아유 한 명의 대결 구도가 아닌 탓입니다. 아유에게 돈을 준다고 다른 4명의 자식들이 다 망하는 것도 아니고요.

이야기도 별로입니다. 쿠치무츠씨가 살아있었고, 화상 통화로 변호사와 가족이 참석한 회의에 화상 통화로 참여하여 장남에게 아유가 자기 딸이라며, 뒷 일을 부탁하는 걸로 마무리됩니다. 하지만 알고보니 쿠치무츠씨는 이미 죽었으며, 유산 상속 분쟁은 모두 쇼였다는게 진상이었습니다. 상속세를 줄이기 위해 화상 통화를 조작해서 살아있던 것 처럼 꾸몄던 겁니다. 암으로 죽음을 예상하여 꾸준히 자식들에게 재산을 증여해왔는데, 죽은 시점이 너무 이르면 이미 증여한 재산에도 상속세가 부과되기 때문이지요. 여기까지만 보면 그럴듯하죠? 

허나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납득하기 힘듭니다. 이런 조작극을 가족들과 변호사만 있는 장소에서 벌이는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세금 징수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가족들이 쿠치무츠 씨가 살아있다고 우겨도 믿어줄리가 만무하니까요. 그리고 이 화상 통화 조작극을 위해 유산 분쟁에 대해 쇼를 벌인 이유도 모르겠습니다. 이럴거면 그냥 변호사들과 가족들이 함께하는 자리만 만들면 그만이었으니까요.

한마디로 설득력없는 이야기를 위해 이런저런 설정을 가져다붙이기는 했지만, 그리 성공적인 결과물은 아니었어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2010/11/18

명탐정 코난 69 - 아오야마 고쇼 : 별점 2점

명탐정 코난 69 - 4점
아오야마 고쇼 지음/서울문화사(만화)

총 네 개의 에피소드가 실려있습니다. 이 중 세 개가 완결됩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시골 온천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그립니다. 11년 전에 익사했던 초등학생의 아버지인 온천 여관 주인이 살해당했는데, 범인은 '갓파'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지요.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군마현의 맹한 경찰 야마무라 경위가 등장하는 것 이외에는 건질게 전혀 없습니다. 트릭, 동기 등 추리적 요소가 모두 별로인 탓입니다. 트릭은 피해자를 익사하게 만든 '물'을 어디에 숨겼는지가 핵심인데, 용의자 소지품만 철저하게 검사하면 끝날 사건이었습니다. 용의자가 단 2명으로 압축되는 상황에 이르면, 범인이 빠져나갈 방법도 없었고요. 동기도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모리 탐정을 구태여 범행 현장에 부른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등, 도저히 점수를 주기 어려운 졸작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온천으로 여행을 떠난 코난과 아가사 박사, 소년 탐정단 일행이 온천 안 밀실에서 작가가 살해당한 사건을 해결한다는 내용입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 비하면 동기는 그런대로 합리적입니다. 트릭도 나름대로 설득력있고요. 그러나 예전 걸작 에피소드에 비하면 한참 처집니다. 범인이 범행 이후에 했던 행동 때문입니다. 특히 '반지'라는 단서를 처리하지 않은건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왜 경찰이 주요 용의자의 신체 검사를 꼼꼼히 행하지 않았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그래도 워낙에 별로였던 최근 코난 에피소드 중에서는 그나마 괜찮았다는 점, 그리고 소년 탐정단의 유쾌한 모습이 재미를 주기 때문에 별점은 2.5점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에피소드는 모리 탐정이 CF에 출연한 인연으로 참석한 과자 회사 창립 파티에서 벌어진 회사 사장의 독살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트릭이 보잘것 없고 억지스러워서 역시나 실망스러웠어요. 미각을 이용한 트릭인데 놀라울 정도로 설득력이 없었거든요. 동기도 작위적이고요. '화이트데이'라는 이벤트에 대한 소소한 잔재미 이외에는 다 별로였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이렇게 세 개의 에피소드가 전체 5.5점이니 평점은 1.8점... 반올림하면 2점이기는 한데 권해드릴만한 수준은 아닙니다. 아이디어가 없다면 이쯤에서 슬슬 관두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별로였습니다. 다음 권에서는 조금이라도 만회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2018/05/04

흐리거나 비 아니면 호우 2 - 반시연 : 별점 3점

흐리거나 비 아니면 호우 2 - 6점
반시연 지음, 김경환 그림/영상출판미디어(주)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반시연 작가의 라이트 노벨 미스터리 두 번째 권입니다. 이전 권은 재미있게 읽었지만 걱정 반, 기대 반이라 읽어야 되나 망설였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읽기 잘 했네요. 우려했던 만화적인 설정은 캐릭터 설명이 필요했던 이전 권에 비하면 그렇게 도드라지지 않는 편이며, 보다 현실 밀착형의 일상계 추리물로서 기본은 해 주고 있는 덕분입니다. 만화 속 해결사를 떠올리게 만드는 셔터 시절의 이야기는 호우가 셔터가 되는, 아동 성폭행범을 찾아 나서는 토막토막난 일부 전개와 셔터를(아마도) 그만 둔 계기가 된 동생 백설과의 트러블 정도만 등장할 뿐이고요.

이야기는 크게 4개의 단락으로 구분되는데 각각 완결되는 이야기들이 구유 시인과 시집 "밤벚꽃" 에 대해 다루는 긴 호흡의 이야기로 묶여 있습니다. "호접 "Bad Guy"" 는 과거 호우가 셔터로 인정받기 위한 퀘스트인 아동 성폭행범을 찾는 추론, 그리고 현재 시점에서 사야가 응모하려는 추리 게임 이벤트에 대한 추론이 중심인 이야기입니다. 구유 시인과 시집 "밤 벚꽃" 도 구유 본인이 "해브닝" 에 나타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추리적으로는 과거 셔터 시절 추론은 단편적이라 평가하기 어렵지만 추리 게임 이벤트는 상당히 그럴싸했습니다. 추론 및 이벤트에 대한 견해 모두 말이죠. 서두를 장식할 만 이야기에요.

"추억 "04:59"" 는 호우의 몸에 이상이 생겨 혹시나 금단증상이 아닐까 싶어 찾아간 금연 클리닉 선생님에 대한 추론, 그리고 기묘한 레미제라블을 사러 온 손님 예지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핵심은 스트레스로 정신병에 걸린 예지에 대한 이야기로 탄탄한 묘사 덕분에 설득력도 높고 재미있었어요. 예지의 집 구조와 예지가 이야기한 회사 자리에 대한 설명이 일치하는 장면은 그 중 백미였고요. 호우의 추론이 아니더라도 드러난 단서만으로 예지가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건 쉽게 알 수 있다는 문제는 있지만, 좋은 에피소드임에는 분명합니다.

"버디 무비 "Bright lights"" 는 고지의 부탁으로 호우와 고지가 하루를 함께 하는, 말 그대로 버디 무비같은 이야기로 캐릭터를 드러내기 위한 묘사가 대부분입니다. 브로맨스를 굉장히 강조하는게 눈에 띕니다. 호우가 있어야 할 장소에 대해 고민하자 분노하는 고지의 모습처럼요. 반면 추리적으로는 부족합니다. 고지의 단골 목욕탕 수아탕에 대한 추론과 상가 거리 여관집 아들 영조의 여자친구 소미가 들었던 노래가 무엇인지에 대한 추론 정도만이 짤막하게 등장할 뿐입니다. 하지만 일상계 추리물로는 평균 이상 수준의 재미를 선사해주며, 목욕탕에서 만난 만물박사의 시집 관련 묘사도 구유 시인 이야기의 중요 복선이기 때문에 빼 놓을 수 없는 에피소드에요.

"미싱 링크 "Someone to love you"" 는 여고생 가영과 혜윤이 가져온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호우가 동네 해결사로 나서는 설정도 이질적이고 내용도 딱히 특별할 건 없습니다. 진상인 '노는 척 하는 건 연기일 뿐이다' 는 이십여년 전 "시험의 제왕" 에 이미 등장했던 소재라 식상하고요. 무엇보다도 가영이 혜윤에게 진실을 이야기했더라면 모든 게 해결되었을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한마디로 이번 권의 워스트, 구유 시인 관련 묘사를 제외하면 구태여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반대로 마지막 수록작 "데드맨 워킹 "Break the Wall"" 은 아주 괜찮았습니다. 앞선 이야기에서 하나 둘 씩 선보인 여러가지 단서들을 통해 여관 주인 만조, 구유 시인과 상점가 만물박사에 얽힌 진상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데, 설득력도 높고 만물박사를 응징하는 호우의 모습은 권선징악의 표본과도 같은 모습으로 상당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거든요.

이렇게 수록작들 대부분 재미도 있고 가치도 있지만 단점이 없는건 아닙니다. 가장 큰 단점은 전편을 관통하는 주요 등장 인물인 구유 시인에 대한 설정입니다. 절망의 시집 "밤벚꽃" 을 희망 가득한 찬가로 광고한 출판사와 편집자에게 실망하여 절필 선언, 잠적에 이어 자살까지 결심한다는 건 여러모로 납득하기 힘들었어요. 본인 스스로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명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베스트셀러 시인이 그 정도의 자기 표현도 하지 못한다는 건 여러모로 설득력이 떨어지죠.
게다가 만물박사 홍기욱 설정은 더 별로에요. 그가 허세 가득한 거짓말장이라는 것 외에는 여러모로 '최종 보스' 로 보기에는 허술한 탓입니다. 그가 주변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피해를 주었으며, 특히 구유 시인이 그 때문에 자살을 기도했다는 건 그다지 설득력있게 묘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구유 시인과 만물박사 모두 이야기를 길게 끌고 나갈만한 캐릭터와 설정은 아니었어요. 이렇게 구유 시인의 "밤 벚꽃" 이라는 시집에 관련된 긴 이야기를 축으로 연작 형태로 구성하기 보다는 그냥 주인공 일행과 '해브닝' 손님들 사이에서 일어난 소소한 추론만으로 끌고 가는게 훨씬 낫지 않았을까 싶어요. 아니면 긴 연작이 아니라 하나의 단편 에피소드로 처리하던가요.

불필요한 묘사도 많습니다. 호우 시점에서의 독백, 완결되지 않는 과거사, 또 호우가 금단 현상인지 다른 병인지는 모르겠지만 시름시름 앓다가 갑자기 쓰러지기는 등의 묘사가 대표적입니다. 전후 일본 추리 소설에 봄직한 구태의연하면서도 불필요한 묘사들이었습니다. 아울러 호우가 넘버원 셔터와 해브닝의 셔터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설정과 묘사도 캐릭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은 사족이었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비교적 읽을만한 추리물이라는데 이견은 없습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조금 독특한, 그리고 읽기 편한 가벼운 일상계 추리물을 찾으시는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단, 앞서 말씀드린대로 묘사와 설정은 상당히 취향을 탈 수 있다는 점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022/09/04

당신이 찾는 서체가 없네요 - 사이먼 가필드 / 송성재 외 : 별점 4점

당신이 찾는 서체가 없네요 - 8점
사이먼 가필드 지음, 송성재 외 옮김/안그라픽스

정말 오랫만에 디자인 전공 관련 책을 읽어보았네요. 여러가지 서체를 통해 서체의 역사와 디자인 속성들, 그리고 쓰임새 등에 대해 안내해 줍니다.

제가 이십년도 더 전,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할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내용이 많았습니다. 헬베티카가 왜 그렇게 많이 사용되는지?에 대한 저자의 해설처럼요. 헬베티카는 불편부당, 중립성, 신선함 등 스위스적 특성을 잘 드러내는 기하학적 인상과 함께 근면하고 정직하다는 느낌을 전해주어 기업의 CI에서조차 친근하고 검소한 인상을 유지하는 장점이 있다고 합니다. 애초 헬베티카는 간결하고 범용적인 알파벳, 그리고 가장 분명한 방식으로 중요한 정보를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지요. 

제가 현역 시절 가장 많이 사용했던 유니버스는 프루티거가 디자인한 서체로 스위스의 완벽함과 프랑스의 우아함, 영국의 고귀함을 종합했지만 조금 엄격하고 융통성이 없는 반면, 프루티거는 좀 더 인간적인 느낌이 담겼다라는 이야기도 좋았습니다. 프루티거를 더 많이 쓸걸 그랬네요. 여튼, 프루티거가 했다는 말, "점심식사 때 사용한 스푼의 모양을 기억한다면, 분명 그 모양은 잘못된 것입니다. 스푼과 글자는 도구입니다. 하나는 그릇에서 음식을 푸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페이지에서 정보를 꺼내는 것입니다.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아름다운 글자여서 독자들이 편안하게 느끼는 것, 그것이 좋은 디자인입니다".는 모든 디자이너들이 새겨들어야 하는 말이라 생각됩니다. 평범하지만 아름답고 편안한 것, 그게 궁극의 디자인이라는 건데 정말 공감이 많이 되었어요. 

메타 폰트 등을 디자인한 전설적인 독일 폰트 디자이너 슈피커만이 한 말도 마찬가지에요. "이코노미스트"의 리디자인 작업을 할 때 한 말이라는데, "나는 결코 누군가가 그 서체를 꼭 집어서 '멋진 서체군요.'라고 말하는 것을 원치 않아요. '정말 멋진 기사네요.'라고 말해주기를 바라죠. 나는 소리를 디자인해요. 그 소리는 읽기 쉬워야 하죠". 거장은 역시, 달리 거장이 아닙니다.

이외에도 푸투라, 고담, 타임스뉴로만, 배스커빌, 길산스, 리버풀, 벵돔 등 다양한 폰트의 탄생기와 사용기 등과 서체를 만들 때 어떤 식으로 만들어 나가는지, 어떤 서체가 가독성이 좋은지, 어떤 문구가 서체를 표시하기에 적당한지, 어떤 서체가 어떤 상황에 적합한지와 같은 디자인 방법론, 그리고 헬베티카를 표절한 에이리얼과 같은 표절 및 폰트 저작권이 무시되고 사용되는 행태 등 전문가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여러가지 디테일한 정보가 가득합니다. 과연 '헬베티카' 폰트가 없는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지? 와 같은 재미난 이슈들도 포함하고 있고요. 

이 중 기억에 남는건 특정 상황에서 어떤 서체가 어울리는지?에 대한 연구 결과입니다. 감사편지는 자신 있는 분위기와 분명하고 진실한 태도를 보여줘야 하니 제네바가 제격, 사직서의 경우는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즐거웠다면 뉴욕이나 버다나 같이 인간적인 면이 묻어나는 서체를, 일하던 시간이 지옥같았다면 냉정해 보이는 에이리얼이 적절하다고 합니다. 연애편지에 잘 어울리는 폰트는 이상적으로는 O가 큰 폰트가 사랑스러운 느낌을 줄 수 있지만, 조금 고풍스러운 글씨 느낌이 나거나 글을 읽는 사람에게 말을 걸려는 듯 부드럽고 서정적인 이미지를 남기려면 이탤릭체인 휴머나 세리프라이트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하고요. 절교 편지에는 불쾌함을 주지 않으면서 분명하게 의사를 전달하려면 평범하고 오래된 타임스레귤러, 혹은 살짝 내려놓는 느낌의 이탤릭 폰트도 나쁘지 않다네요. 

그리고 항상 궁금해했던, '왜 아직도 새로운 서체가 디자인되는가?'에 대한 답을 명확하게 알려준다는게 참 좋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세상이 바뀌고 그 세상의 콘텐츠가 바뀌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항상 새로운 방법으로 새로운 것을 표현하고 싶어하니까요. 음악 앨범, 책 디자인을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는 몇 개의 마스터 페이지로 돌려막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이렇게 재미와 가치,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좋은 책인데, 내용에 약간 두서는 없으며 편집 자체가 좋지 않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언급되는 폰트를 따로 찾아서 확인해보기가 어렵게 만들어져 있거든요. 좋은 서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 좋은 디자인을 보여주지 못하니 조금 당황스러웠어요. 당연하겠지만 영문 서체만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도 한국의 디자이너들에게는 조금 괴리감을 전해주고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제가 젊었을 때, 폰트 디자인을 막 배우기 시작했던 학생 시절이나 아니면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할 때 읽지 못했던게 아쉽기만 하네요. 왜 이 서체가 이렇게 디자인되었는지?를 명확하게 알고 디자인을 했어야 했는데, 단순히 글자 몇 개의 디자인 형태에 매몰되어 대충 아웃라인만 따서 변형하여 작업했던 그 시절이 참으로 부끄러워집니다. 지금이라도 심기일전하여, 좀 더 좋은 디자인을 해 봐야 겠습니다.

2024/10/20

히트의 탄생 - 유승재 : 별점 4점

히트의 탄생 - 8점
유승재 지음/위즈덤하우스

100년 가까이 된 우리나라 장수 제품과 브랜드에 대해 알려주는 책. 미시사 서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단순히 제품과 브랜드의 역사 뿐 아니라 그걸 만든 사람들, 장수하게 된 이유, 광고 및 관련된 다양한 정보들을 폭넓게 알려줍니다. 무려 25개의 항목이나 되어서 양도 풍성하고요.

덕분에 새롭게 알게된 정보들이 많은데, 몇 가지 소개해드립니다.

샘표 간장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장수 브랜드로 위치를 굳건히 하고 있는 '몽고 간장' 이름의 유래입니다. 몽골에서 전래된건 아니나, 전혀 무관한 것도 아니더군요. 마산에 고려 충렬왕 시절, 몽골이 일본을 정벌하겠다며 여몽 연합군을 주둔시켰던 곳에 군사들 식수공급을 위해 건설한 우물 '몽고정'이 있습니다. 이 몽고정을 수원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몽고간장이라는 브랜드를 사용한 겁니다.

'메리야스'는 일본말이 아니라 스페인어 '메디아스Medias' 혹은 포르투갈어 '메이아스Meias'가 일본을 통해 전해지면서 일본식 발음이 더해진 말로 원래는 상의나 내의가 아닌 '양말' 또는 '스타킹'에 가까운 뜻입니다. 오늘날 백양을 있게 만든 대표 상품은 흰색의 민소매 러닝셔츠인데 백양이 1958년 아염산소다를 활용한 표백기술을 국내 최초로 개발한 후 나온 상품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현재 입는 속옷의 사이즈 구분은 백양이 처음 만든 것이라고 하네요.

1960~70년대 백양, 쌍방울과 함께 내의업계 트로이카 체제를 구축했던 '독립문'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독립운동가로 활약한 김향복 선생이 창업한 회사로, 그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며 보던 독립문을 떠올리며 정한 브랜드입니다. 1947년 '대성섬유공업사'로 시작한 사업이 확장해가면서 1953년 '평안섬유공업사'로 이름을 바꾸었고, 이듬해 1954년 5월 독립문을 상표등록했습다. 김향복 선생이 평안도 출신이라 회사 이름에 평안이 들어갔는데, 1971년에 평안섬유공업의 영어 이름을 따서 피에이티PAT(Pyong An Textile)를 새롭게 출시, 내의에서 성인 캐주얼 브랜드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습나다. 지금도 건재한 코뿔소 브랜드인 PAT인데, 독립 운동가가 만든 브랜드라니 앞으로 관심을 더 가져야 겠습니다.

항상 궁금했던, "박카스를 마시면 피로가 풀릴까?"에 대한 답도 알려줍니다. 박카스는 비타민B의 일종인 니코틴산아미드와 카페인 등을 함유하고 있어서 각성 효과와 일시적으로 에너지를 생성해준다네요. 지속 효과는 극히 짧아서 그야말로 반짝 하고 느낄 뿐이라지만요.

마몽드는 광고 캠페인의 영향력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어서 흥미로왔습니다. 이영애의 "산소 같은 여자' 시리즈가 마몽드를 국내 최고의 브랜드로 만든 일등공신이라고 하네요. 프랑스어로 '나의 세상'을 의미하는 브랜드 이름처럼,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인식이 변화하는 트렌드에 맞춰 "나의 삶은 나의 것", "성취는 남자의 것만이 아니다" 등 여성의 심리적 욕구를 자극하는 카피도 강력한 위상을 구축하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하고요. 마몽드가 매출 1천억 원을 넘었던 해에 출시한 라네즈는 마몽드보다 더 빠르게 1천억 원 매출 벽을 넘어섰는데, 이 역시 유명한 "영화처럼 사는 여자' 캠페인이 주효했던 덕분입니다. 태평양은 1970년대부터 광고마케팅에 많은 비용을 투입했고 많은 히트 캠페인을 남겼지만, "산소 같은 여자"와 "영화처럼 사는 여자"는 태평양 뿐 아니라 우리나라 화장품 산업, 나아가 광고업계 전체를 통틀어도 몇 손가락 안에 꼽을 법한 명작 캠페인이라고 합니다. 타깃 고객인 여성들의 심리와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적절히 반영했을 뿐 아니라 강력한 콘셉트를 바탕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면서, 장기간 지속하며 브랜드 자산을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했기 때문입니다. 제 기억에도 아직 생생할 정도니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몇몇 브랜드, 제품명의 유래도 재미있었습니다. '트리오'는 그릇 외에도 야채와 과일까지 세 가지를 모두 씻을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는군요. 처음부터 설거지 외에도 농산물을 씻어 먹을 수 있는 세제로 고안되었기 때문입니다.

크라운을 대표하는 '죠리퐁'은 뻥튀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다양한 곡물을 가지고 실험한 끝에 1972년 출시한 과자로, 처음에는 먹어서 즐겁다는 의미의 '조이 Joy'와 뻥튀기를 의미하는 '퐁'을 합성하여 '조이퐁'이라 했지만, 동일상표가 등록되어 있어 같은 의미를 지닌 '졸리Jolly'로 대체해 '죠리퐁'이 된 것이있고요.

모나미의 '사인펜'과 '매직'도 사인하는데 편리하다는 뜻의 사인펜, 신기하게 어떤 표면이라도 쓸 수 있다고 해서 매직펜으로 이름을 붙였던건데, 이제는 보통명사로 굳어져서 국어사전에까지 올라가 있다고 하네요.

이 외에도 여러가지 재미있는 정보가 가득하고, 브랜드의 성공과 실패에 대해 잘 알 수 있어서 유익했는데 딱 한 가지, 너무 많은 제품들이 소개되는 탓에 다른 책이나 자료에서 접했던 제품들 - 호빵, 활명수, 박가분, 삼양라면 등 - 이 많고, 최근까지 위상이 살아있는 제품들은 인터넷 검색으로도 비슷한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그래도 브랜딩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볼만한 좋은 책이라는건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4점입니다.

2006/01/16

우치다 공포만화 컬렉션 - 우치다 야스오 원작 : 전체 평균 별점은 1.5점


프리랜서 라이터 아사미 미츠히코를 탐정으로 내세운, "여정 미스터리"라는 분야에서 유명한 우치다 야스오의 여러 작품들을 만화화하여 출판한 기획물. 현재 1권에서 11권까지 나와 있으며, 아사미 미츠히코 만이 아닌 다른 명탐정들, 이른바 우치다 야스오의 3대 명탐정이라는 시나노의 콜롬보 다케무라 이와오, 경시청의 오카베 경부 등을 망라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 작가의 작품을 만화 시리즈화해서 출간하는 기획의 시도는 높이 살 만 하고, 국내에 많이 소개되지 않은 작가인 탓에 만화로라도 번역된 것 역시 고마와 해야 할 일이겠죠. 그런데 문제는 작품의 수준만 본다면 오히려 돈이 아까운 것도 많다는 것입니다. 계속 사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이것 참 고민되네요.

이유로는, 일단 권마다 다른 작가들을 쓰고 있는데 기획한 곳이 순정만화 전문지인지 대체로 작화가 순정체입니다. 순정체라는게 문제가 될 수는 없겠지만 수준 자체가 낮은 작품이 많아요. 솔직히 작품과 잘 어울리지도 않고요.
또 우치다 야스오 소설은 한권밖에는 읽어보지 않았지만 "추리" 보다는 이색적인 풍광에 왠지 더 치우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이 만화 시리즈도 역시나 추리적인 요소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든 작품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한권 분량으로 페이지수가 제한된 탓에 축약이 너무 심한 것도 문제에요. 쉽게 읽히기는 하지만 이해하기는 어려운 작품이 있을 정도니까요.

결론적으로, 만화화 자체에는 실패한 듯한 느낌입니다. 내용도 좀 낡고 고리타분한 것이 많아 21세기에 읽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구식이 아닌가 싶은 작품이 많은 것도 감점 요인이고요.
만화 쪽으로 실력을 인정받는 탄탄한 작가 혼자서 전체를 맡아 작업했더라면 더욱 좋은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싶어서 아쉽네요. 원작 작품 선정에서부터 만화적인 구성 모두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는 것을 볼 때, 좋은 기획을 살릴 수 있는 좋은 편집자를 구하지 못한 티도 많이 나서 더더욱 아쉽습니다.

저같은 매니아라면 구입하셔도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3만원이 넘는 재앙이 되리라 생각되니 빌려서 보시는 것이 보다 나은 선택이 될 것 같네요. 그나마 볼만한 책은 4권 "밀실 살인 사건", 7권 "트럼프 책의 비밀", 9권 "시인의 망령", 10권 "여섯개의 숫자" 정도입니다. 전체 평균 별점은 1.5점정도?
권별 상세 리뷰는 아래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제목이 왜 "우치다 공포만화 컬렉션" 인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습니다....

1권 바람의 레퀴엠 - 책이 어디있는지 모르는 관계로... 추후 추가하겠습니다.

2권 북쪽에서 온 남자 : 그림 히다카 료
가수 지망생 쇼코의 신변에서 일어난 두개의 살인사건. 두 사건을 연결하는 "북쪽에서 온 남자" 란 과연 누구인가?
아오모리현 시모키타 반도를 부대로 무녀의 예언을 등장시켜 이색적인 분위기를 전해주는 작품.. 이지만 결정적인 추리 부분에서 문제가 많습니다. 왜 두명을 죽였는지에 대한 당위성 자체가 없고 예언과 우연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고 있으며 만화로 구성된 전개 자체도 마음에 들지 않는 별볼일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3권 장미의 살인 : 그림 토바 쇼코
여고생 유괴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먼 친척 동생 오가타 사토시가 의심받게 되자 아사미 미츠히코가 직접 진상을 밝히기 위해 사건에 뛰어든다.
여정보다는 "다카라즈카"라는 극단을 주요 소재로 삼은 작품입니다. 이외에도 유명 연예인이 등장하는 등 예능계를 무대로 했다는 점에서는 다른 아사미 미츠히코 시리즈와는 사뭇 다른 느낌과 재미를 전해 주더군요. 추리 부분에서도 맥락이나 단서를 하나씩 쫓아나가는 전개도 좋았고요.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결말이 너무 시시해서 결과적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4권 밀실 살인 사건 : 그림 에구치 유
우에노 역사 재개발을 둘러싸고 상인회의 갈등이 팽배해 있던 중 개발 회사의 중역인 와다 후미오의 살인 용의로 궁지에 몰려 있던 테라야마 코지 마저 자살한 시체로 발견된다. 자살 전 테라야마의 사건 의뢰 편지를 받은 아사미 미츠히코가 사건 해결을 위해 나선다.
우에노 역이라는 꽤 친숙한 소재를 등장시킨 아사미 미츠히코 시리즈 중 한편입니다. 밀실 살인 사건이라는 제목에 걸맞는 그다지 기발한 트릭은 등장하지 않지만 추리와 동기, 전개가 납득할 만 하고 결말까지 확실한 작품이었습니다.

5권 백화점 연쇄 살인 사건 : 그림 시토 료코
하카타의 백화점 경쟁 관계를 둘러 싼 기업간의 전쟁이 극심한 상황에서 우연히 사적 발굴현장에 참석한 아사미 미츠히코는 백골이 된 사체를 발견하고 사체의 정체가 밝혀진 후 자신의 옛 연인과 친구가 사건에 관련된 사실을 알게된 형이 직접 아사미 미츠히코에게 사건을 의뢰하는데...
일단 그림, 만화적인 수준에서 제일 처지는 작품이었습니다. 컷의 배열이나 전개가 도대체 알아먹기 힘들 정도의 수준이라 화가 날 정도더군요. 추리와 단서 등도 맥락에 맞는 것이 거의 없었지만 일단 내용 이해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거의 쓰레기에 가까운 수준의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요...

6권 나비부인의 눈물 : 그림 타마이 마키코
나가사키에서 악덕 카스테라 업자 야마오카 쇼지가 살해되고 전통 카스테라 업자 마츠나미가 용의자로 몰린다. 마츠나미의 딸인 하루카는 추리작가 우치다의 소개로 아사미 미츠히코를 알게 되고 그를 초청하게 된다. 이후 저명 유명인사가 2명이나 연쇄적으로 살해되는 사건으로 발전하는데...
나가사키를 무대로 한 본격 여정 미스테리로 우치다 선생이라는 추리작가가 등장하는 것이 재미나네요. 그림도 꽤 마음에 들고 만화적으로는 나무랄데 없는 구성이라 읽기에는 편했습니다. 단지 "공원 나비부인 동상에 걸어놓은 펜던트"같이 정통파 미스테리 비스무리하게 거창하게 벌려놓은, 그것도 여러명이 죽어나가는 사건의 무게에 비해서 추리의 전개가 얄팍해서 아쉬울 뿐입니다.

7권 트럼프 책의 비밀 : 그림 츠키시마 츠구미
시오리는 살해당한 아버지가 최후로 남긴 단서인 "트럼프의 책"이라는 단어를 두고 고민하던 중 탐정이라는 아사미 미츠히코라는 인물을 알게 된다. 그가 사건 해결을 위해 도와주면서 동분 서주 하던 중 아버지의 부하직원도 살해당하는 등 사건은 계속 커져만 가는데...
쿠슈 야나가와를 주로 하여 펼쳐지는 진정한 본격 여정 미스테리입니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쿠슈 야나가와"라는 지역 자체가 이야기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구조로 진정한 여정 미스테리라 볼 수 있는 작품인 것 같습니다. 다른 작품은 여정이라는 것이 사실 이색적 풍광을 보여주는 것 이외의 추리적 의미는 거의 없었거든요. 다이잉 메시지 해독 트릭이 주 트릭인데 괜찮은 수준이었고 무엇보다도 반전이 인상적인 작품이라 높이 살 만 합니다. 만화로서도 그림은 그다지 잘 그린 건 아니지만 만화적으로 전개해 나가는 솜씨가 좋아서 마음에 들었고요.

8권 침묵의 돌 : 그림 히다카 료
신주쿠와 쿠라시키에서 일어난 두개의 살인사건을 연결하는 단서는 무엇인가? 명수사관 오카베 경위의 추리로 사건의 실마리가 서서히 풀리기 시작하는데...
경시청의 천재 오카베 경위 시리즈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히카리라는 여대생이라 전개 방식이 상당히 독특한 느낌을 가져다 주더군요. 두개의 살인사건이 벌어진 당위성 자체가 상당히 설득력 있고 주인공 히카리의 전문 지식을 이용한 결정적 단서 제공 같은 재미가 살아 있어서 결정적인 추리와 동기 부분에 비록 문제는 약간 있지만 저는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뒤에 실린 단편 "잠자는 불꽃"도 치정극으로 보이는 전개속에 은근한 재미를 주는 작품이라 좋았고요.

9권 시인의 망령 : 그림 사토미 유
사쿠타로라는 작가의 시와 똑같이 구현된 살인 사건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오카베 경위가 사건을 맡은 후 스가이 쿠니오라는 은퇴한 전직 형사의 도움을 받으며 점차 용의자에게 접근하던 중 스가이마저 살해당하게 되는데...
역시 오카베 경위 시리즈로 "시를 따라한 연쇄 살인"이라는 착상이 일단 좋았습니다. 이 시리즈 중에서는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림도 괜찮은 편이었고 스토리 전개를 만화적으로 잘 구현해 내기도 했고요.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ABC 살인사건" 과 유사한 전개로 참신함보다는 의외성에 기대는 느낌이 강했으며 동기와 과정 역시지 설득력이 떨어지더군요. 한마디로 어렵고 복잡하게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래도 재미는 있는, 나름대로 흥미진진한 작품이었습니다. 뒤에 단편 "거울 속의 여인" 이 실려있는데 이 단편도 추천작입니다.

10권 여섯개의 숫자 : 그림 츠키시마 츠쿠미
동경 타마호반에서 의문의 사체가 발견되는데 그가 남긴 것은 6개의 숫자가 적힌 종이 쪽지 뿐. 오카베 경위는 피해자의 딸 치아키에게서 피해자가 마지막으로 한 "침없는 벌"이라는 의문의 단서를 접한다. 한편 치아키와 은퇴를 앞둔 베테랑 형사 카와 반장의 컴비가 오카베 경위의 적극적 지원으로 점차 사건의 진상에 접근해 나간다...
오카베 경위 시리즈이긴 한데 실제 탐정역은 치아키라는 소녀라 이색적이더군요. 치아키와 베테랑 형사 카와 반장이라는 컴비가 꽤 재미난 설정이라 좋았습니다. 여섯개의 숫자와 "침없는 벌"이라는 단서로 점차 사건의 진상에 접근해 나가는 과정의 묘사 역시 합리적인, 이치에 맞는 깔끔한 전개를 보여주고요. 책 뒤의 해설을 보니 영상화도 두번이나 된 인기 작품으로 여기서 결성된 (?) 이 컴비 주연의 단편 시리즈도 있다고 하는데 그 작품들도 기대되더군요. 어쨌거나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11권 여신의 저주 : 그림 나가오 후미코
귀신 모미지 전설의 마을 토가쿠시에서 전설을 모방한 연쇄 살인사건이 일어나는데... 수사를 지휘하는 다케무라 경위는 사건의 그림자에 숨겨진 비참한 사연을 밝혀내게 된다.
나가노현 경찰 본부 수사1과 경위 다케무라 이와오 (시나노의 콜롬보) 시리즈입니다. 하지만 내용만 놓고 본다면 "미스터리 민속탐정 야쿠모"와 비슷한 전통 무속과 살인 사건의 조합이라는 전개라 그다지 신선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추리적으로 문제가 많은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옛날이라면 모를까 21세기에 읽기에는 너무나 고리타분하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전통 신앙에 많은 것을 기대는 설정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고 내용 역시 그냥 뻔한 복수극일 뿐이었습니다. 새로운 탐정을 만나는 재미 이외에 특기할 만한 점은 없는 작품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