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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2

Q.E.D. iff 4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5점

Q.E.D Iff 증명종료 4 - 6점
카토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Q.E.D. iff 3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1.5점 

전에 읽었던 2, 3권이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걱정했는데, 이번 권은 다행히 괜찮았습니다. 수록작 중 "아이디"는 망작이지만 "바다의 무녀"가 꽤 괜찮은 덕입니다. 간만에 힘을 내 주었기에 별점은 2.5점 주겠습니다. 

수록된 에피소드 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바다의 무녀"

이즈 제도 남쪽에 있는 작은 섬 아이가시마에서 리조트 찬성파와 반대파가 첨예한 대립을 벌이는 와중에 도쿄에서 온 측량사가 살해당했다. 무녀 유나 아오이가 측량사 시체가 묻힌 섬을 예언한 뒤, 경찰은 그녀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유나 가문은 섬의 수리권을 가지고 있고, 리조트에 물을 나누기 힘들어 건설을 반대하고 있던 터라 더욱 의심을 샀다.
유나가 섬을 나간 적이 없다고 확신하는 동생 시오미는 가나와 토마에게 사건 해결을 부탁했다. 토마와 가나가 섬을 방문한 뒤, 유나 가문의 수리권 고용한 변호사, 리조트 회사 직원마저 차례로 시체로 발견되는데...

이야기에 대단한 트릭은 없습니다. 시체가 있는 장소를 무녀가 알아낼 수 있던건 범인이 그녀에게 워드 프로세서로 만든 편지(뒤에 밝혀지지만 이것도 조작)를 보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인 하마치 변호사가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동굴에서 시체로 발견된 사건도 사람들이 잘 모르는 동굴을 이용한 것에 불과하여 공정한 트릭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발자국없는 모래밭 한 가운데에서 시체로 발견된 호시즈나 씨 사건은 나름 트릭으로 값어치가 있습니다. 땅에 묻힌 장대를 진동시켜 발자국을 없앴다는 방법이 꽤 현실적이었거든요. 나뭇가지가 부러진걸 트릭과 연결시킨 과정도 좋았고요. 무녀의 전설에 나오는 초능력 - 하늘을 날고 천리안으로 모든 걸 본다 - 을 범행과 연결시키는 전개도 돋보였어요. 세 건의 사건 모두 사람이 날지 않으면 범행이 불가능하다!고 여기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로트카, 볼테르 방정식이라는 수학 이론을 녹여낸 솜씨도 오랫만에 과거 Q.E.D의 향수를 느끼게 해 줍니다. 이야기와 이론이 잘 조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생태계에 있어 포식자와 피식자의 증감 속도 관계를 표현하여 '조화'를 나타낸 식인데, 조화는 '진동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즉 대화가 없어지면 싸움이 일어나고, 그게 싫어지면 대화로 돌아온다는 이 수학 이론은 무녀 유나 아오이의 의도를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녀는 싸움을 끝내는게 아니라 질릴 때 까지 끌고가는게 목적이었거든요. 물의 양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사람들이 더 이상 수리권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상황을 노렸던 겁니다. 심지어 그녀의 동생마저도 섬을 위해 나름의 역할을 다했다는 마지막 장면도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조금 설득력이 부족한 부분도 없지는 않지만 간만에 본 역작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아이디"

맷은 카지노 홈페이지를 해커의 공격으로부터 지켜내지만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된 후, 토마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스케일은 거대합니다. 미국, 일본, 러시아, 두바이, 벨기에를 오가니까요. 그러나 해커의 두목 크래시의 정체는 물론, 증거를 확보하는 과정 모두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가나의 변장을 전가의 보도처럼 쓰는게 영 와 닿지 않네요. 그리고 이전 작품에서 영어도 그리 잘 하지 못하는 걸로 묘사되지 않았었나요? 또 토마의 대학 동창 하산이 토마를 돕는 이유도 잘 모르겠고 말이죠.

그렇다면 Q.E.D 특유의 현학적인 재미라도 있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해킹을 소재로 한 것 치고는 디도스 공격이 메인이라 너무 흔해빠진 정보만 나오거든요. 해커들이 비트 코인도 아니고 현금을 가지고 거래한다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맷이 사랑하는 아슈라의 딸 클로에가 전설의 해커 위저드라는 것도 억지스럽고요.

도저히 점수를 줄 부분이 없는 망작으로 별점은 1점입니다.

2018/10/26

망내인 - 찬호께이 / 강초아 : 별점 2.5점

망내인 - 6점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열다섯 살 여중생이 인터넷 익명 게시판의 악의적인 소문과 신상 공개를 견디다 못해 아파트에서 투신했다. 경찰은 자살로 결론짓지만 언니 '아이'는 이 사건은 타살이며, 반드시 범인을 찾아 복수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수소문하여 찾아간 유명 탐정은 온라인 사건은 맡을 능력이 없다며 고사했고, 대신에 신비에 싸인 해커이자 '탐정들의 탐정'이라 불리는 '아녜'를 소개해 주었다. 처음에 '너무 쉽고 재미없는 사건'이라는 이유로 아이를 문전박대하던 아녜는 며칠 뒤 '예상 외로 재밌는 사건'이라며 의뢰를 받아들였다. 조사가 진행되고 용의자의 범위가 좁혀질수록 몰랐던 동생의 과거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데...

중국의 추리작가 찬호께이의 700페이지가 넘는 대장편입니다. 

아이의 동생 샤오원이 자살을 택하게 만든 인터넷 글을 올린 kidkit727을 찾는 전반부만큼은 철야책이라는 별명을 붙여도 좋을만큼 엄청난 흡입력을 자랑합니다. 설정부터가 굉장히 공감이 갑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신상 공개 때문에 무차별한 비난에 시달린 유치원 여교사가 자살한 사건처럼 현실적인 소재인 덕분입니다. 여러가지 방법으로 자신의 정체를 숨긴 kidkit727과 탐정 아녜의 현란한 두뇌 싸움도 굉장한 볼거리이며, 이를 친숙한 인터넷 및 각종 기술 용어 설명을 통해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것도 장점입니다. 그동안 용어, 명칭만 알아왔지 실제 기술적인 원리나 내용에 대해서 잘 몰랐던 여러가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최신 기술이 개인 정보 유출, 해킹에 사용되며, 저 역시 언제든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라서 더욱 관심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해킹이나 첨단 기술에 관련되지 않는 순수한 추리들도 볼만합니다. 아녜의 사회 공학 이론을 바탕으로 한 다채로운 화술과 용의자 분석들도 그럴듯하지만 아이가 아녜의 집을 청소하면서 주요 증거물을 따로 모아 놓는다던가, 모탐정을 보고 아녜에게 어떤 정보가 전달되었을지를 알아내는 장면들 모두 왠만한 정통 추리물 못지 않은 추리적인 즐거움을 가득 전해 줍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용의자가 좁혀진 다음부터는 재미가 한 풀 꺾입니다. 특히 샤오원의 주변 인물 중 iOS 핸드폰을 사용하는 인물이 범인이다! 이후부터요. 용의자도 적고, 그 다음부터는 전형적인 탐정의 탐문 수사에 불과한 활동이 거의 전부인 탓입니다. 이후 아녜가 이미 처음부터 범인을 알고 있었다는게 밝혀지는 장면에 이르면 이런 행동들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고요. 다른건 몰라도 샤오원의 유서를 위조하여 도서관 책에 숨기는 연극은 불필요했습니다. 해킹용 어플리케이션을 심을 수 있었기에 진작에 심어서 정보를 수집했더라면 그만이니까요. 변호사 사무실에서 수리리로 자칭한 여학생이 정보를 빼냈다는 증언을 입수했을 때 모탐정을 통해 사진 등으로 그게 누군지 알아냈더라도 게임은 끝나고요. 두쯔위가 증거를 인멸하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어 복수심을 끌어 올리기 위해? 그런것 치고는 너무 거창한 연극이었습니다.

또 이어지는 두쯔위에 대한 복수는 전개에 심각한 문제가 존재합니다. 아녜가 두쯔위의 와이파이, 스마트폰을 해킹하여 게시판을 위조하고 정보를 차단하는 작전은 상당히 설득력있게 묘사되어 읽는 재미는 충분하고, 인터넷 세계에서 무기명으로 무차별한 음해와 신상털기가 자행되며 누구나 피해자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주제 의식만큼은 빛나지만 두쯔위의 동기가 자신을 모함했던 샤오원에 대한 복수 때문이었다는게 밝혀지는 결말이 문제에요. 너무 작위적이었거든요. 이 진상을 아녜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설정도 당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헛수고 하지 말고 최소한 아이가 복수를 의뢰할 때 알려줬어야 합니다. 그나마 샤오원도 가해자였다는 진상 정도면 충분했을텐데, 언니 아이가 샤오원에게 무관심했었다는 부분은 명백한 사족입니다. 어머니와 언니 때문에 샤오원이 자살 결심을 굳혔다는건데 이런 쓸데없는 죄책감을 불러 일으킬 이유는 없어 보이네요. 이렇게 따지면 세상에 죄인 아닌 사람이 있을까요? 또 샤오원이 자살을 결심한 건 잔혹한 메일 탓이 크고, 메일을 보낸 두쯔위가 아예 잘못이 없다고 할 수는 없기에 포인트를 좀 잘못 잡은 느낌도 듭니다.

무엇보다도 분량으로는 1/3 수준인 진범 스중난 파트는 완벽한 사족이자 작위적인 전개의 결정판이라 도저히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스중난이 사건의 원인이 된 샤오원 성추행 사건의 진범이라는 것부터, 원조 교제를 통해 희생양을 물색하는 쓰레기라는 설정은 도무지 공감이 되지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누구나 가해자도 피해자도 될 수 있는 인터넷 세계의 무서움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면, 스중난이 동생 두쯔위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자신의 전문 기술을 활용하여 샤오원을 공격했다 정도가 현실적이고 괜찮았을겁니다. 괜히 절대악으로 포장해서 응징할 필요는 없었어요. 스중난의 파멸을 위한 과정에서 불거지는, 가쉽을 사고파는 사이트에 대한 아이디어는 처음에만 혹할 뿐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현실성없는 내용이었고, 이 사이트 투자를 미끼로 한 아녜의 작전도 별로 와 닿지 않았어요. 그냥 스중난의 정체를 밝힐 수 있는 동영상만 유포해도 끝날 일인데 쇼맨쉽이 지나칩니다.

그리고 700페이지가 넘는 장편임에도 캐릭터들이 입체적이지 못한 것도 단점입니다. 가난하지만 책을 좋아하고 빼어난 지성을 지닌 의뢰인이자 주인공 아이, 천재 해커 탐정으로 처음에는 비호감덩어리였지만 알고보니 정의의 화신이라는 아녜의 캐릭터 설정부터가 흔해 빠진 일본 추리 만화를 답습하여 식상하기 짝이 없습니다. 천재 탐정, 해결사가 첫 의뢰인과 컴비가 된 후 자기 집에 거주하게 하면서 자기 일을 돕게 하는 에필로그는 "시티 헌터" 를 떠오르게 만들고요. 무엇보다도 세계적인 투자자 그룹 SIQ의 2인자로 잘생기기까지 해서 아시아판 리처드 기어로 보인다는 스투웨이가 산발에 평균 이하로 보이는 아녜였다는 반전은 억지스럽고 작위적인 설정의 극치었습니다. 사채꾼 우시지마가 알고보니 정의의 억만장자 토니 스파크였다는 이야기인데 이게 말이나 됩니까. 차라리 은둔하고 있는 천재 이노우에가 아녜였다면 모를까... 이 반전만큼은 도저히 용서가 안되네요.

전체 700여 페이지 중 kidkit727의 정체가 두쯔위였음을 밝혀내는 약 절반 가량의 분량은 별점 3점을 줘도 좋을 만큼 재미있고 볼거리가 많습니다. 두쯔위에 대한 복수가 진행되는 150여 페이지는 앞서 말씀드렸던 작위적인 결말 때문에 진행 과정은 흥미진진함에도 별점은 2.5점 정도고요. 그러나 나머지 약 200여 페이지에 해당되는 스중난 파트는 총체적인 난국이기에 별점은 1.5점입니다. 그래서 전체 평균 별점은 2.5점입니다. 이야기를 절반 정도로 줄이고, 스중난은 아녜와 같이 조력자의 위치로 하여 마지막 두쯔위 자살 직전에 그녀를 구해주고 개과천선 (?) 한다는 내용이었다면 별점 3점도 충분했을텐데 아쉽네요.

노골적으로 에필로그에서 시리즈임을 어필하는데 앞으로 계속 읽어볼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2019/07/26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 시가 아키라 / 김성미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 6점
시가 아키라 지음, 김성미 옮김/북플라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미타는 택시 안에 스마트폰을 두고 내렸는데, 그것을 주운 남자가 폰 속 도미타의 여자친구 아사미에게 반하고 말았다. 남자는 전문 해커이자 연쇄 살인범으로, 자신의 능력을 총동원하여 아사미를 옭아매기 시작했다.
한 편, 인적이 뜸한 야산에서 신원 불명의 여성 변사체가 잇달아 발견되어 경찰은 수사에 나서는데...

제15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 최종 수상작입니다. 최근 상당히 화제가 된 듯 하여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스마트폰과 SNS는 누구나 쓰는 반면, 해킹에 취약점이 많아서 이를 소재로 한 작품은 많습니다. 휴대폰 위치 추적을 활용한 작품이 개중 많은 편이고요. 해킹에 촛점을 맞춘다면 찬호께이의 "망내인"이 정점을 찍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망내인"과는 다르게 이 작품은 살인이라는 실제 범죄까지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때문에 대단한 해킹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반대로 현실적입니다. 특히 살인 직전까지 페이스 북 등을 잘 활용하여 피해자를 옭아매는 과정은 설득력이 높아요. 비슷하게 페이스 북을 주로 활용했던 "리얼 라이즈"는 영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었는데 말이지요. 아마 이런 부분이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을 수상하게 된 요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방법을 간략하게 설명드리자면, 우선 범인은 습득한 도미타의 핸드폰의 비번을 풉니다. 도미타의 생일이 비밀번호였지요. 그런데 이를 알아낸 방식이 기발합니다. 마침 전화를 걸어 온 애인의 이름이 화면에 표시되었기 때문에, 이 이름의 페이스북 가입자를 조사한 뒤 바탕 화면 사진과 일치하는 가입자를 찾아냅니다. 이를 통해 도미타의 페이스북 계정을 알아내어 생일을 확인했던 겁니다.
다음으로는 도미타의 핸드폰에 해킹 프로그램을 심어 놓은 후 폰을 돌려줍니다. 페이스 북을 통해 알아낸 정보로 도미타, 아사미와 관련된 가짜 페이스북 친구들을 다수 만들어 연결하고요. 그리고 페이스북을 통해 아사미에 관련된 정보를 하나둘씩 입수하면서 도미타 폰에 고의로 랜섬웨어 감염을 일으킨 뒤, 친구 소개를 가장하여 보안 전문가로 직접 나타나 도미타와 아사미의 신임을 얻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사미에게도 개인 정보 유출과 해킹 등의 사건을 일으키고 해결해 준 뒤, 틈을 타 납치하는데 성공합니다.
페이스 북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건 약점이며, 도미타의 직장 동료로 가장한 고야나기의 질척거림 등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꽤 그럴싸한 현실 속 해킹 수법이라 생각됩니다. 도미타 핸드폰 속 사진의 GPS 정보를 분석하여 아사미의 집이 어디 근처인지를 알아낸다던가 하는 디테일들도 괜찮았으니까요.

여기에 더해 범인이 이미 살해하여 유기한 피해자들이 아직도 살아있다고 믿게 만드는 상황도 아주 인상적이에요. 피해자들의 스마트폰만 살려 놓은 뒤 가끔 문자 메시지 연락을 하는 정도인데 이게 아주 잘 먹히거든요. 가족, 친지와 멀어지고 모든 걸 온라인으로만 소통하는 현대 사회이기에 가능했던 속임수이지만, 실제로 아주 그럴듯해 보여서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아사미를 납치하여 살해하려는 실제 범행 쪽 이야기는 아쉽게도 설득력이 낮습니다. 우선 아사미에게 누드 사진을 보내는 행동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범인이 보안 전문가 우라노로 가장하여 신뢰를 쌓았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 수준의 범죄면 경찰에 바로 신고할 수도 있잖아요? 다케이와의 불륜을 암시하는 사진을 페이스북을 해킹하여 게시한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케이의 행동을 컨트롤하는건 불가능한데 다케이가 경찰에 신고했다면 어떻게 하려고 했는지 잘 모르겠네요. 이 범행을 통해 다케이를 아사미로부터 떼어 놓는다고 해도 범인이 얻을 수 있는 것도 없고요.
이보다는 작품 자체는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리얼 라이즈" 수준 정도의 페이스 북 조작이 더 현실적입니다. 조작한 나의 정보를 불특정 다수에게 퍼트려 내 개인의 평판을 망가트리는 정도요. 평판을 망치는 것 외에 페이스 북을 통해 상황을 제어하거나 조작하는건 아무래도 어려우니까요. 

그리고 납치는 방심한채 술을 마시는 아사미를 만나 그녀의 술에 약을 타는 고전적인 방식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요. 이럴 생각이었다면 도미타, 다케이를 떼어버리고 차분히 보안 전문가 우라노를 신뢰하고 의지하게 만든 뒤 당당히 집에서 납치하는게 정답이었어요. 이미 연쇄 살인 및 사체 유기가 발각되어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범행을 서두를 이유는 없기 때문입니다. 바텐더가 분명 아사미와 함께 나가는 범인을 목격하기도 했으니 더더욱 그러합니다. 

무엇보다도 아사미를 납치한 뒤 그녀가 Siri로 도미타에게 전화를 걸어 구조된다는 결말이 가장 문제입니다. 해킹 전문가인 범인이 했다고 보기에는 너무 어처구니 없는 실수였어요. 폰이 아이폰이라는걸 명확히 알았는데도 이 기능을 간과한건 납득하기 어려우니까요. 전화를 받은 도미타가 이전 해킹 덕분에 아사미 폰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는 설정도 지나치게 작위적입니다. 해킹과 폰 위치 추적은 별 상관이 없잖아요? 백신을 설치했다면 모를까.

그리고 데뷰작이기 때문이겠지만 소설적인 완성도도 부족합니다. 캐릭터 설정부터 견고하지 못해요. 도미타가 가장 좋은 예입니다. 그는 거의 전편에 걸쳐 아사미에게 의지하는 무능력한 찐따입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아사미를 구해주고 그녀의 과거마저 모두 이해한다는 대인배로 급작스럽게 거듭납니다. 반면 왠지 모르게 계속 좋은 사람, 훈남으로만 묘사되는 다케이는 반대로 단 몇 줄의 묘사를 통해 불륜을 즐기는 인간 쓰레기로 돌변하여 리타이어해 버리고 말고요.
여기에 더해 아사미가 과거 AV 배우 야마모토 미나요였다는 설정은 왜 등장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야기와 별 상관도 없을 뿐 아니라 아사미로 가장한 미나요가 아사미의 대학 시절 잠깐의 연애 상대였던 다케이와 다시 만나는 행동은 비현실적입니다. 자신의 정체를 알아낼지도 모르는 사람을 만나 화를 불러올 이유는 없잖아요? 이 과정에서 그녀가 진짜 아사미인 것처럼 심리묘사를 해 가며 독자를 속일 이유 역시 없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톡톡 튀는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그닥 기대에 값하지는 않았습니다. 해킹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망내인"을 읽는게 훨씬 낫습니다.

2020/03/06

식스웨이크 - 무르 래퍼티 / 신해경 : 별점 2.5점

식스웨이크 - 6점
무르 래퍼티 지음, 신해경 옮김/아작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기 2493년, 4백 년 항해 예정의 항성 간 이민 우주선 승무원인 마리아 아레나는 마른 피로 얼룩진 클론 재생 탱크에서 깨어난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이런 상황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곧 마리아는 새로 깨어난 클론이 자기뿐만 아니라 여섯 명 승무원 전원임을 깨닫게 되고, 클론 재생실에는 칼에 찔려 죽은 승무원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다. 외로운 밀실 우주선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게다가 모든 승무원이 죽었다면 살인자는 누구란 말인가….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인용)

책 소갯글에 혹해서 읽게 된 SF 미스터리 장편입니다. 우주선에 탑승한 여섯 명의 승무원이 서로 죽고 죽여서 전멸한 뒤, 사건 당시의 기억을 잃어버린 채 클론으로 재생된다는 설정이 아주 매력적이라 읽게 되었습니다. 누가 살인자인지, 동기가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상황이 이보다 더 잘 맞아 떨어질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러나 기대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사건에 대한 추리적인 내용보다는, SF 소설로서의 비중이 훨씬 높거든요. 물론 나쁜건 아니에요. 아니, 오히려 SF 적인 부분은 아주 좋습니다. 무엇보다도 클론에 대한 세세한 설정이 아주 돋보입니다. 이 세계의 클론은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거쳐 철저한 법률에 근거하여 관리되고 있다는 것이 탄탄한 묘사를 통해 설득력있게 설명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클론의 존재에 대해 거대한 다툼과 많은 죽음이 발생한 후 이를 허용하는 법안이 통과됩니다. 이를 통해 복수의 클론은 금지되며, 복수의 클론이 적발될 경우 가장 나중에 복제된 클론 외에는 모두 폐기한다, 마인드맵을 저장한 뒤 클론에 그대로 이식하여 기억을 이어나갈 수 있지만 마인드맵을 수정하는 마인드해킹 행위는 엄금한다, 그리고 클론은 생식능력을 제거하며 재산은 그 자신에게 상속된다는 등의 세세한 법안이 제정됩니다.
이는 단지 설정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클론에 대한 설정은 승무원들의 과거와 직,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우주선 내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의 동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클론을 증오하는 엔지니어 폴이 모두를 살해한게 진상이니까요. 

또 이 사실이 밝혀지는 승무원들의 과거 이야기도 아주 흥미롭습니다. 특히 클론에게 영혼이 없다고 주장하던 오르만 신부가 반대파에게 납치된 후 클론으로 재생되었다는 이야기는 이 작품 속 등장인물의 과거 에피소드로만 놓기 아깝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과연 클론에게 영혼이 있을까? 부터가 흥미로울 뿐 아니라, 해커들이 마인드맵을 해킹하여 대상자의 성격을 비롯하여 모든걸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건, 영혼이 숫자로 치환되어 프로그래밍할 수 있다는 이야기와 다를게 없어서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클론에게 가족을 잃었다고 생각하여 복수심을 불태우는 엔지니어 폴이 복수를 완성한 뒤, 정작 그 자신이 클론으로 복제되어 재생되었다는 이야기도 아주 괜찮았어요.

이외에도 현재 시점에서 아직 선장은 죽지 않고 혼수상태로 발견되었기 때문에, 새로 만들어진 클론이 이전 선장을 폐기해야만 하는 딜레마, AI 이안은알고보니 원래 인간이었는데 마리야가 마인드맵을 해킹하여 만들어낸 인공지능으로 약간의 조작을 통해 다시 인간으로 클론 복제할 수 있었다라는 반전 등 재미난 디테일이 많습니다. 클론 복제를 음식을 만들어내는 음식 인쇄기를 통해 진행한다는 결말도 복선을 통해 잘 설명되고 있고요.
주인공들이 탄 우주선 도르미레 호의 설정도 그럴듯합니다. 도르미래호는 아르테미스라는 머나먼 별로 떠난 일종의 이민선입니다. 여섯명의 승무원들은 수천명의 냉동 클론을 무사히 아르테미스까지 운송하는 대신, 그들이 지은 중죄를 사면받는 조건으로 승선한 범죄자들이죠. 이렇게 범죄자들이 사면을 조건으로 거대 계획에 종사한다는 이야기는 굉장히 오래된 이야기이긴 하나, 이를 SF로 변주한 아이디어는 좋았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대로 추리적으로는 그다지 정교하지 못합니다.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지구의 실력자 샐리 미뇽이 거대 이민선을 비롯하여 승무원들, 심지어 인공 두뇌까지 관계자들을 투입한 이유부터가 제대로 설명되고 있지 않거든요 '복수' 때문이라고 설명되기는 하는데, 샐리 미뇽은 워낙에 실력자라서 구태여 이런 식으로 복수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일종의 악취미로 단지 승무원들이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붕괴하기를 바랬을 수는 있겠지만, 그들 사이에서 사건이 일어나는데 무려 2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으니 그리 효율적이라고 볼 수는 없고요.
아울러 협박과 고문 탓이지만 마리아가 볼프강, 히로를 해킹하여 엉망으로 만든건 사실입니다. 이는 충분히 살해 동기가 될 수 있어요. 그래서 볼프강과 히로가 마리아에게 살의를 품는건 말이 됩니다. 그러나 마리아를 원수로 알고 있는 폴이 마리아 외 다른 사람들도 모두 죽인다는 진상은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클론이라서 다 죽일거였다면 20년 동안 참을 이유도 없고요. 게다가 폴은 볼프강에게 대적할 수 없는 체형과 체력의 소유자라는게 이미 설명되기도 했거든요.
그 외에도 어차피 죽일거라면 마리아만 왜 독미나리로 중독시켰는지, 히로는 대체 왜 자살했는지도 그렇게 납득이 가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다중 인격이 된 히로가 폭주하는 이유도 마찬가지고요. 결론적으로 처음에 여섯 명 모두가 죽게된건 단지 우연이었을 뿐이며, 그들이 클론으로 되살아난 것 역시 즉사하지 않은 마리아가 재생 버튼을 눌렀을 뿐이라는 작위적인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마리아가 펼치는 추리쇼 형태 느낌의 마지막 클라이막스도 딱히 단서가 탄탄하게 뒷받침된게 아니라 여러모로 아쉬웠습니다. 복선을 좀 더 치밀하게 짜 두었더라면 좋았을텐데 말이죠. 폴이 작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작아서 공정하게 단서를 얻는것 자체가 힘들었던 것도 나쁜 추리물의 전형이고요. 이야기에 거의 등장하지도 않는 사람이 알고보니 범인! 이라니, 이건 좀 너무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흥미로운 도입부와 여러가지 설정 덕분에 몰입해서 읽을 수는 있지만, 추리적으로는 약간은 용두사미 느낌이라 아쉬웠습니다. SF로는 완벽하나 추리적으로는 더 탄탄한 구성이 필요했습니다. 그래도 재미만큼은 확실하니, 이런 류의 장르 문학을 좋아하시는 분들께서는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1/05/01

스텝 - 찬호께이, 미스터 펫 / 강초아 : 별점 2.5점

스텝 - 6점
찬호께이.미스터 펫 지음, 강초아 옮김/알마

'사보타주'라고 불리우는, 범죄자 형량을 인공지능 분석을 통해 결정하는 시스템을 주제로 한 4편의 중편이 모여 하나의 큰 이야기를 이루는 연작 소설집입니다. "13.76"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중국 추리작가 찬호께이가 타이완의 추리 작가인 미스터 펫과 함께 쓴 작품이지요. 

그런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공저' 방식은 아닙니다. 기둥 줄거리와 기본 설정은 함께 생각했을테지만, 미국을 무대로 한 첫 번째, 세 번째 이야기를 찬호께이가, 일본을 무대로 한 두 번째, 네 번째 이야기를 미스터 펫이 써서 합쳤거든요. 

그래서 각각의 이야기는 분위기와 전개가 사뭇 다른데, 찬호께이가 쓴 작품들은 정교한 구성, 반전 모두 어느 정도 기대에 값합니다. 하지만 미스터 펫의 작품은 별로였습니다. 작위적인 부분이 많은 탓입니다. 왜 일본을 무대로 했는지도 모르겠고요. 특히 마지막 네 번째 이야기는 그 수준이 가히 처참한 수준입니다. 미스터 펫이 맡았던 이야기들은 작 중에서 인공 지능의 시뮬레이션 시나리오라고 설명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처지는 완성도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어요. 찬호께이가 맡았던 첫 번째 이야기 속 매슈 프레드 범죄극도 마찬가지로 시뮬레이션이지만 범죄물로는 차고 넘치는 좋은 작품이었으니까요. 추리물, 범죄물이 아닌 SF 측면으로도 사보타주 시스템 등 상세 설정도 찬호께이 이야기에서 더 잘 설명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찬호께이 부분은 별점 3.5점, 미스터펫 부분은 별점 1.5점인데 찬호께이가 이야기 전부를 썼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P.1 SA.BO.TA.GE. /찬호께이 : 

미국을 무대로 매슈 프레드라는 범죄자가 저지르는 여러가지 범죄를 그려낸 작품. 이 중 마지막 범죄는 꽤 완성도가 높아요. 술집에서 만난 E와 의기투합해 그의 전처를 응징한다는건데, 아내나 불륜남이 아니라 E를 죽이고 아내에게 살인 누명을 씌운다는 반전이 괜찮았거든요. 매슈 프레드가 저지른 모든 범죄는 사보타주가 시뮬레이션한 내용이라는 큰 반전도 나쁘지 않았고요. 

E의 아내와 불륜을 저지른 정비공에게 시세보다 훨씬 큰 돈을 주고 자동차 정비를 맡기는 등 약간의 헛점은 있지만, 이 모든게 시뮬레이션이라면 어느정도 납득할 만 합니다.

EP.2 T&E /미스터 펫 : 

탐정 메이구가 정부 의뢰로 사보타주 시스템을 일본에 이식한 '선인장' 시스템을 해킹한 범인을 찾아낸다는, 일본을 무대로 한 독특한 SF 추리물입니다. 

수사는 미행, 도청, 해킹이 전부라 추리의 여지는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메이구가 가진 특수 능력이 무엇인지가 수수께끼의 핵심입니다. 사건 수사를 여러가지로 시도하면서, 실패할 때 마다 사건을 의뢰받은 시점으로 기억과 함께 돌아오는 능력이지요. 실패하지 않아도, 5일이 지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고요. 이 능력 덕분에 메이구는 의뢰받은 사건을 5일 안에 밝혀낼 수 있었던 겁니다. 

이야기는 중간에 의뢰인이 사망하는 등의 깜짝 전개를 거쳐, 특수 능력이 밝혀지고 범인이 타케우치라는게 드러나며 타케우치와 메이구의 격투로 끝맺습니다. 지금 전개되는 현실은 메이구가 만들어낸 가상 현실로, 이 가상 현실의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일종의 열린 결말입니다.

이렇게 일반적인 타임 리프물, 타임 슬립물과는 다른 설정에 더해, 메이구가 리셋할 때마다 료코의 1인칭, 3인칭으로 시점이 변하는 묘사도 독특했습니다. 처음 읽을 때에는 일종의 서술 트릭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생각과는 사뭇 달라서 신선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하려면 료코 뿐만이 아니라 메이구로의 시점 전환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긴 합니다. 료코만의 시점 변화는 진짜가 아닌 가상 현실이라는걸 보여주기위한 장치로는 조금 부족하게 느껴졌거든요.

EP.3 E PLURIBUS UNUM /찬호께이 : 

석방된 범죄자가 살인을 저지르는, 최악의 시뮬레이션 결과를 본 법무부의 사보타주 시스템 총 책임자인 앤드루 키팅이 범죄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한다는 내용의 작품입니다.

범인이 누구인줄 알지만, 시스템 비밀을 밝히기 어려워 전전긍긍하는 담당자의 고뇌가 잘 그려져 있습니다. 마지막 범죄 현장에서 마주치는 클라이막스 까지의 전개도 긴장감이 넘치고요, 마지막에 키팅이 읽은건 단순한 시뮬레이션 결과일 뿐, 실제 예측이 아니었다는 반전도 설득력있게 묘사됩니다. 

문제는 전개와 결과가 예상가능했고, 운과 우연에 지나치게 의지한다는 점입니다. 시뮬레이션과 비슷하게 애덤스가 현장에 나타나서 희생된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사보타주 시스템의 문제를 드러내는데 너무 치중한 결과물이었어요. 키팅이 범인 애덤스를 죽이고 그냥 잡혀갈 생각을 했다는 것도 석연치 않았고요.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밝혀지는 두 번째 이야기 속 기묘한 설정만큼은 아주 흥미로왔습니다. 키팅은 범죄를 막기 위한 방편으로, 인공지능이 시뮬레이션 도중 일정 조건이 만족되면 자동으로 특정 시점으로 되돌아가 변수를 변화시켜 시뮬레이션을 계속하는 '가젯'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시점을 되돌리는 방식을 인공지능이 학습해 버려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어 버렸고 가젯이 유출되어 해커가 사용할 수 있게 되는 등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키게 되지요. 이렇게 가상 세계 속에서 시간 회귀, 변수 수정, 데이터 기록의 능력을 갖게 되는 '머니퓰레이터' 를 잡기 위해 프로그래머 프랭크는 '에스코트'라는 존재를 만들었습니다. 에스코트는 머니퓰레이터를 확인하면, 소멸시키는 역할을 수행하지요. 즉, 두 번째 이야기에서 머니퓰레이터가 메이구, 에스코트는 다케우치였던 겁니다. 이런 점에서 다케우치가 악역으로 등장하는 설정이 신선하게 다가오네요. 시스템만 놓고 보면 다케우치는 백혈구와 같은, 정의로운 존재인데 말이지요. 

그리고 머니퓰레이터로 시뮬레이션을 반복하는 방법은 인공지능 딥 러닝 학습법의 하나인 GAN 모델이 연상되어 더욱 그럴듯하게 여겨졌습니다. GAN 모델은 학습이 필요한 인공 지능을 Discriminator라고 부르며, 여기에 가짜 데이터를 만드는 Generator가 생성한 결과물을 입력하는 방식입니다. Generator의 위조가 정교해 질 수록, 이를 판별하는 Discriminator의 능력도 올라가는 방식이지요. 이 이야기로 따지면 메이구가 이런저런 가상 시나리오를 시도하는 Generator이고, 사보타주 시스템 속 인공 지능이 Discriminator인 셈입니다.

EP.4 PROCESS SYNCHRONIZATION /미스터 펫 : 

두 번째 이야기가 비롯된 원인인, 선인장 시스템에 침입하여 해킹 프로그램을 설치한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혀내면서, 실제 현실의 메이구에 대한 비밀이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렸듯, 완성도가 절망스러운 수준입니다. 완벽한 보안 상태를 유지하고 있던 중앙 처리실에 두 시간 이상 머물려 해킹 프로그램을 설치한 방법에 대한 트릭부터 억지입니다. 뭔가 엄청난 시스템인 것 처럼 설명하고 있지만, 그냥 데이터 조작과 별로 다르지 않거든요. 

과거 일본에서 실행되었던, 기억을 조작하는 수술인 HIMIKO 프로젝트도 뜬금없었습니다. 수술을 받았던 메이구가 수술에 대한 비밀 서류를 손에 넣고, 관계자들의 정체를 밝히는 전개는 유치하고 작위적이고요. 아무리 이야기가 모두 시뮬레이션 결과에 불과했다고는 해도, 앞서의 다른 시뮬레이션들보다 현격히 낮은 완성도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에필로그 : 

사보타주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인권을 무시하는 부분이 있어서, 결국 형법 제도가 옛날 방식으로 돌아갔다는 내용인데 솔직히 사족에 불과합니다. 개인적으로 범죄자가 수형 시설에서 교정, 교화가 될 수 있다는걸 믿지 않습니다. 때문에 제대로 반성하지 않으면, 절대로 풀어주지 않겠다!는 정서가 깔린 사보타주 시스템의 형량 결정 시스템이 지금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됩니다.

2024/07/12

교도관의 눈 - 요코야마 히데오 / 허하나 : 별점 2.5점

교도관의 눈 - 6점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허하나 옮김/폭스코너

요코야마 히데오의 단편집. 6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제목만 봤을 때는 교도관이 주인공인 범죄 추리물이라 생각했습니다. "종신검시관"처럼요.
그러나 교도관이 등장하는 작품은 한 편 뿐이며, 추리물보다는 일상계 범죄물이나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살인이라는 강력 범죄가 많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등장인물의 심리가 사건보다 더 중요하기도 하고요.

그래도 요코야마 히데오 작품답게 기본적인 완성도와 재미는 갖추고 있습니다. 전체 평균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교도관의 눈"
야마테초에서 주부 구타니 에미코를 살해하고 시신을 없앤 혐의로 불륜남 야마노이 가즈마가 체포되었다. 그러나 정황 증거 뿐 물증을 찾지 못해 석방되었다. 그 순간 에미코의 남편 구타니 이치로가 가즈마를 살해하려고 덮쳤지만, 반대로 그가 죽고 말았다. 검찰청은 가즈마를 정당방위로 불기소 처분할 수 밖에 없었다.
교도관 곤도는 가즈마가 수상하다는걸 느끼고 조사에 나섰고, 현경 기관지 편집자 에쓰코는 곤도를 만나러왔다가 우연찮게 사건에 휘말리는데...

사람을 죽인 범인은 이글대다가도 씻겨 사라지지만, 곤도가 본 야마노이 가즈마는 날이 갈수록 이글거렸습니다. 이를 통해 곤도는 가즈마가 아무도 안 죽였지만, 유치장을 나가서 사람을 죽일 생각이었던걸로 추리했습니다. 에미코는 공범으로, 에미코는 살해된게 아니라 스스로 몸을 감췄고요. 그리고 가즈마는 에미코를 폭행하던 남편 이치로를 정당방위로 위장하여 살해했던 겁니다. 가즈마가 날이면 날마다 체력 단련에 열중했던 것도 이 추리를 뒷받침해 줍니다.
비록 이치로가 '식칼'을 들고 덤빌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었던건 - 그리고 그랬다해도 죽일 수 있었으리라 보장할 수 없었던건 - 단점이지만, 추리는 꽤 기발했습니다. 이를 은퇴를 앞둔 교도관이 꿰뚫어 보았다는 설정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앞서의 단점으로 이치로를 죽이는데 실패했더라도, 최소한 에미코는 사라질 수 있었으므로 나름 성공한 계획인건 분명하고요.
결국 진상은 드러나지 않고 여운을 남기는, 그리고 이를 젊은 여성인 에미코 시선으로 해석하여 설명해주는 결말도 좋았습니다.

다만 캐릭터 묘사는 다소 아쉽습니다. 젊은 편집자 에미코와 붙임성없는 나이든 꼰대 곤도 묘사는 전형적이라 식상했기 때문입니다. 에미코에 대한 이런저런 설정도 불필요하다 싶었고요.

그래도 이 정도면 만족스럽습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자서전"
팔리지 않는 방송작가 다다노는 운 좋게 '효도전기'의 회장 효도 고자부로의 자서전 대필을 맡게 되었다. 무려 300만엔짜리 일이었다. 그런데 효도는 자신이 젊었을 때 살인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다다노는 효도가 불륜 관계였던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했다 여기고 효도를 협박하는데...

알고보니 어머니를 살해한건 아버지였다는 결말입니다.
그런데 효도가 다다노를 챙겨줄까?라고 생각하고 과거의 단편을 살짝 알려준 이유가 불분명합니다. 자신 탓에 연인이 죽고 자식이 불행에 빠졌다면, 자식에게는 나중에 금전적 보상을 해 주면 됩니다. 이렇게 사람을 가지고 놀 이유는 없어요.
'원망의 말은 합격, 협박은 불합격'이라는 기준도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다다노가 자신이 알아낸 사실을 진실이라 여기고 협박(?)하려 했던건 상식적입니다.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효도는 어머니를 살해한 범인이니까요. 복수를 하지 않으면 뭐라도 얻어내는게 당연합니다. 그런데 협박했다고 아웃이다?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말버릇"
가정법원 가사조정위원으로 일하는 세키네 유키에는 이번 이혼 조정 신청 당사자인 기쿠타 요시미가 과거 고등학교 시절, 딸 나쓰코의 등교 거부 원인이었던 동급생이었다는걸 알아챘다. 유키에는 과거 우연히 마주쳤을 때의 요시미의 경멸하던 눈빛, 그리고 나쓰코가 소중히 모았던 저금통이 사라졌던 기억을 떠올리며 요시미를 까칠하게 대했다. 그러나 유키에의 말버릇으로 그녀가 누군지 알아챈 요시미에게서 충격적인 진상을 듣게 되었다...

'악의'가 내포된 드라마적 요소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특히 여성 내면 심리와 일상 속에서의 복잡한 관계를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가쿠다 미쓰요나 고이케 마리코의 작품이 떠오르지만, 요코야마 히데오 특유의 명확한 반전이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됩니다.
요시미와 이혼 조정 중인 남편 기쿠타는 고등학교 때부터 커플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쓰코가 기쿠타를 유혹해서 잠자리를 가졌었고, 그 탓에 임신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임신한 나쓰코는 모든 돈을 긁어모아 중절 수술을 했고, 그 뒤 등교를 거부했었던 것이지요.
예상치 못한 반전이지만, 앞서 단서를 모두 제공해주고 있어서 잘 짜여진 느낌을 전해줍니다. 이혼 조정 과정에 대한 묘사도 흥미로왔고요. 질투와 분노가 뒤섞여 있는 심리 묘사도 돋보입니다.

그러나 요시미가 이미 다른 남자와 불륜 관계인 듯 보이는데 이렇게 당당한건 이해하기 어렵고, 내용 상 나쓰코의 시점에서의 묘사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도 좋은 작품으로 수록작 중에서 최고로 꼽을 수 있습니다.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오전 다섯 시의 침입자"
정보관리과 경부 다치하라가 관리하던 S현 경찰 홈페이지가 해킹당했다. 다치하라는 서둘러 페이지를 내리고 복구한 뒤, 방문했던 사람들을 직접 만나 입막음을 하러 나섰다. 해고당할지 모르는 상황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자리 보존을 위해 사건을 없던 것으로 덮으려했지만, 경찰관의 본분과 자신이 지켜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새롭게 깨닫는다는 작품. 해킹 사건 자체에 대해서는 상세히 다루지 않아 범죄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해커가 올려놓았던 프랑스어 문장을 통해 범인을 알아내는 부분은 추리물 요소를 갖추고 있지만, 한국인 독자가 알아채기에는 어려운 단서여서 애매합니다.
결국 이 작품은 범죄 수사 과정보다는 주인공의 내면 변화와 성찰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라 할 수 있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조용한 집"
현민신보의 기자 출신 편집자 다카나시는 오보를 사과하기 위해 사진작가 스가이를 찾아갔다. 그러나 만나지 못해 연락처만 남겼는데, 그날 저녁에 스가이는 전화를 걸어와 정정 기사를 내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열흘 뒤, 스가이의 사체가 발견되었고 다카나시도 주요 참고인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다카나시는 그날 자신에게 전화를 건게 스가이가 맞는지 생각해 보는데...

편집부에서 벌어지는 다카나시의 좌충우돌을 중심으로 그려지는 신문사 내의 긴장감 넘치는 상황은 흥미롭습니다. 여러모로 잔혹한 신문의 세계가 인상적이었어요.
추리물로도 트릭이 사용되었다는 점은 좋았습니다. 문제는 트릭이 많이 허술해 보인다는 겁니다. 스가이의 불륜 상대 남편이 그를 살해한 뒤, 집을 찾아온 다카나시가 남겼던 명함으로 스가이인척 전화를 걸어 알리바이를 만들었다는 것인데, 열흘 전 사건이라면 사망시간을 정확하게 추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확실한 알리바이라고 하기는 무리입니다. 경찰이 범인을 특정하기도 별로 어렵지 않았을 것이고요.

그래도 복선과 단서의 배치는 나쁘지 않고, 완성도도 준수한 편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비서과의 남자"
지사의 신임을 받는 비서과장 구라우치는 지사의 신뢰가 갑자기 떨어진걸 느꼈다. 새롭게 발탁된 젊은 피 가쓰라기의 수작이라 생각했다. 구라우치는 자신에게 돈을 빌리러 온 뒤 자살했던 무카이의 아내를 만나, 무카이의 동생이 무카이와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을 부풀려 투서를 했다는걸 알아냈다.

질투로 인해 비롯된 일상 속 악의와 인간의 내면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앞서의 "말버릇"과 비슷합니다. 차이라면 중년 남성이 주인공이며, 현재를 인정하며 긍정적인 결말로 마무리된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런 결말이 훨씬 좋네요.
구라우치에 대한 투서를 올린게 하스네였다는 진상도 괜찮았습니다. 질투와 악의를 그려내는데 이만한 진상도 또 없을 듯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건의 핵심인 무카이와 구라우치의 관계입니다. 구라우치 입장으로는 무카이는 잠깐의 대화밖에는 없는 사이입니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찾아와 돈을 빌려달라고 했을 때, '20만엔'을 빌려주겠다고 한 것은 분명 선행입니다. 무카이 죽음의 원인이 될 수 없고, 이를 다른 사람이 비하할 수도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때문에 지사가 '사람을 잘못봤다'며 구라우치를 내치려 한다는 설정은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투서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탓이 큽니다.
이런 점에서 약간 부족함이 느껴져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1/12/26

대실 해밋 - 대실 해밋 / 변용란 : 별점 2.5점

대실 해밋 - 6점
대실 해밋 지음, 변용란 옮김/현대문학

하드보일드의 거장 대실 해밋이 쓴, 아홉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단편집입니다. 작가 인생 초기작들로 유명한 컨티넨털 탐정사 탐정이 등장합니다. 

대체로 액션 모험 활극에 가까우며, 추리의 여지가 별로 없다는 점에서 과도기적인 느낌을 전해줍니다. 몇몇 작품은 영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전체 평균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배신의 거미줄" 

외과의사 에스텝 박사가 죽고 부인이 살인 혐의로 체포되었다. 박사가 숨겨왔던 첫 번째 부인이 찾아온 직후 사건이 일어났던 탓이었다. 변호사 리치먼드의 의뢰로 탐정은 의사가 죽기 전 보냈다는 편지를 찾아 나섰다. 첫 번째 부인을 미행한 끝에 탐정은 사건 배후에 사기꾼 제이콥 레드위치가 있다는 것, 그리고 제이콥을 미행하는 또 다른 인물의 존재를 알아챘는데...

"의심이 든다면 미행해라"라는 말 처럼 미행을 통한 단서 찾기와 그 외 탐정 사무소를 통한 조사 및 다른 탐정들과의 분담과 협력 등 탐정의 진짜 업무가 어떠한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실제로 탐정으로 일했던 대실 해밋의 생생한 경험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미행 과정을 통해 당대 샌프란시스코의 여러 거리와 풍경들을 보여주는 장면들도 좋았고요. 이 때부터 중국인들이 샌프란시스코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는건 처음 알았네요.

추리적으로도 볼 만한 부분이 있습니다. 일종의 "바꿔치기"트릭이 사용된 덕분입니다. 에스텝 박사는 가짜로, 진짜 에스텝 박사의 의사 면허를 제이콥에게서 구입하여 의사 행세를 해 왔던 겁니다. 첫 번째 부인이라며 나타났던건 진짜 에스텝 박사의 부인이었고요. 제이콥은 에스텝 박사를 수십년 동안 뜯어먹다가, 크게 한 탕 저지를 생각으로 사건을 꾸몄던겁니다. 

제이콥의 계획도 괜찮았어요. 그는 거액을 요구하면, 박사가 자살할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첫 번째 부인을 확보하고 있었기에, 그는 유산을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의도는 아니었지만, 현 부인이 남편을 살해했다고 인정된다면 유산 전부를요!

그러나 계획을 밝혀내는데 있어서는 추리의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탐정이 제이콥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단서를 잡은 뒤, 협박해서 그의 입으로부터 진상을 듣는게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미행과 감시로 진상을 드러낸다는 점에서는 현실적이기는 합니다. 허나 제이콥이 탐정에게 진상을 술술 이야기할 이유는 없었다는게 문제에요. 증거품인 에스텝 박사의 자살하겠다는 편지를 순순히 내 준 것도 납득하기 어렵고요. 탐정과 제이콥 모두 살인 혐의를 입증하기 힘들다는걸 알고 있는 상황에서 제이콥이 이렇게까지 설설 길 이유는 없잖아요? 도주하던 제이콥이 오가르 경위에게 사살당한다는 마지막 장면도 허무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불탄 얼굴"

탐정은 밴브룩의 두 딸 가출 사건 조사 중 잠깐 만났던 코렐 부인이 자살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둘째딸 루스 밴브룩마저 시체로 발견되었고 탐정은 사건들이 다른 사건들과 연관되어 있을거라 확신했다. 탐정과 팻 형사의 조사 결과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유사했던 여성들이 자살했던 사건들이 여러 건 있었고, 모두 레이먼드 엘우드가 관련되어 있다는걸 알아내는데....

실종되고, 자살했던 여성들 사건을 독립적으로 보지 않고, 관계된 사건을 모두 조사해 보겠다는 수사 방침에 대한 아이디어는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그 외 부분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하드보일드라기 보다는, 액션 모험 활극에 가까운 탓입니다. 탐정과 팻 형사가 레이먼드 엘우드가 자주 방문했던 저택에 침입한 이후부터가 특히 그러했습니다. 

저택에서 사이비 종교와 마약에 빠진 여자들이 난교 파티를 벌이던 사진을 찍어서 협박해 왔다는 진상도 허무하며, 탐정이 팻을 설득해서 주요 증거물인 사진을 모두 소각한다는 결말도 낭만적인 모험 활극과 다를게 없습니다. 팻의 백만장자 아내도 사진에 찍혀있었다는 약간의 반전도 충분히 예상 가능했기 때문에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중국 여인들의 죽음"

릴리언 샨은 하녀 한 명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가 취소하고 급작스럽게 귀가했던 날, 낯선 중국인 청년에게 습격당했다. 릴리언은 겨우 살아남았지만 하녀는 죽고 말았고, 신고를 받고 출동했던 경찰은 지하실에서 요리사 완란의 시체도 발견하였다. 탐정은 사건을 의뢰받은 뒤 정보를 캐내다가 사건 배후에 어빙턴 호텔 소유주 코니어스와 차아니타운의 실력자 창리칭이 관계되어 있다는걸 알게 되는데...

차이나타운을 무대로 하는데 단지 이국적인 배경에 그치는 건 아닙니다. 중국을 배신하고 한 몫 단단히 잡은 이민자의 딸이 주인공 중 한명이며, 일본에 대항하기 위한 중국인 독립운동가의 무기 밀수에 편승해서 악당들이 한 몫 잡으려고 했었다는 이야기의 핵심 설정과 전개 모두가 설득력있게 활용되고 있는 덕분입니다. 릴리언의 저택은 해변과 맞닿아 있었는데, 밀수를 위해서는 해변과 맞닿아 있는 저택이 필요했다는 진상도 그럴듯했고요.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별 볼일 없었습니다. 탐정이 정말로 하는게 별로 없고 전개는 우연과 억지에 의한게 많은 탓입니다. 탐정이 조사원 중 한명이었던 마약중독자 얼이 수상하다는걸 깨닫는 장면이 대표적이에요.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걸 알아챈건 순전히 넘겨 짚은 것에 불과하니까요. 동공? 눈빛? 모두 설득력이 약합니다. 

주요 등장인물들을 필요할 때마다 만나서, 필요한 증언을 얻는다는 전개도 지나치게 작위적입니다. 휘슬러가 일본군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고 조작했던 사진을 결정적 순간에 주머니에서 꺼내는 장면처럼요. 탐정이 이 사진을 가지고 다닐 이유는 없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의뢰인인 릴리언을 무사히 사건에서 빼내고 휘슬러를 포함한 악당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결말은 전혀 하드보일드스럽지 않더군요. 릴리언은 선량했고 선의에 가득찬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위기에 빠진 공주님을 구해주는 기사가 활약하는 영웅담이자 낭만적인 모험물에 더욱 가깝습니다. 아울러 당시 중국인들에 대해 가지고 있던 판타지를 반영한 듯한 창리칭 저택의 복잡한 구조와 기묘한 보디가드들, 은밀하면서도 잔혹한 공격과 미모의 노예 소녀 슈슈에 대한 묘사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책을 계속 읽어야 할지 망설이게 만드는 지루했던 졸작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쿠피냘 섬의 약탈" 

탐정은 결혼 선물을 지키는 임무를 맡고, 쿠피냘 섬에서 열린 헨드릭슨 가문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그날 밤, 폭풍우와 함께 강도단이 섬의 은행과 보석상을 습격했다. 결혼식 하객 중 한명이었던 러시아 공주로부터 이 사건 소식을 들은 탐정은, 선물을 지키는 임무를 헨드릭슨 저택 집사와 운전수에게 맡기고 현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강도단의 도주를 막는데는 실패했고, 헨드릭슨 저택으 복귀 후에 집사와 운전사가 살해당했으며, 결혼 선물은 도난당했다는게 밝혀지는데....

오래 전에 읽었었던 작품인데 내용 자체를 잊어버려서 처음 읽는 기분으로 읽었습니다.

초, 중반부까지는 기관총과 수류탄으로 완전 무장한 강도단과 맞서 싸우는 탐정의 활약을 그린 영웅담으로 보였는데, 실제로는 정통파 추리물과 하드보일드가 잘 결합되어 있어서 놀랐습니다. 그것도 상당한 수준으로 말이지요. 

특히 합리적인 추리가 볼만합니다. 탐정은 강도들이 외부에서 왔다면 일당과 무기 운반을 위해 자동차나 배가 필요했을텐데, 섬 주민의 자동차와 배를 탈취했던 상황에 주목합니다. 그 외의 여러가지 단서를 조합하여 러시아 장군과 공주 일행이 강도라는걸 알아내고 맙니다. 러시아 혁명으로 망명한 후, 현실의 벽에 부딪혀 범행을 저지르고 말았다는 공주 일당의 범행 동기도 시대를 감안해보면 충분히 그럴듯했고요. 이런 추리를 일종의 추리쇼를 통해 선보이는 장면은 정통파 고전 본격 추리물을 떠오르게 만듭니다. 

리고 추리쇼에서 이어지는, 돈 보다 범죄를 해결하는게 더 재미있다며 뱀 같은 공주의 유혹은 무시하고, 심지어 여자를 쏘지 않을거라 믿으며 도망가려는 공주 다리를 쏘아 맞추는 탐정의 모습은 고전 본격 추리물을 넘어선, 하드보일드 장르의 도래를 알리는 명장면이었다 생각됩니다. "난 장애인한테서도 목발을 훔쳤던 사람 아닌가?"라는 말도 희대의 명대사였고요. 구 시대의 화려했던 부르주아들은 모두 현실에 몰락해 버렸고, 이들을 악전고투끝에 살아남은 플로레탈리아가 짓밟는 구성은 시대가 변했음을 잘 느끼게 해 주네요. 마지막에 우연히 사건에 휘말렸던 잔챙이 범죄자 플리포를 탐정과 공주가 서로 자기 편으로 만들려 설득하는 클라이막스도 재미있었습니다. 작위적이라는건 부인하기 어렵지만요.

물론 공주가 탐정을 살려둔 이유가 불분명하다는 큰 문제가 있기는 합니다. 가장 위협이 될 인물이라는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듯 한데 말이지요. 그래도 이 정도면 하드보일드 여명기, 장르의 초석을 다졌을 좋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크게 한탕"

탐정은 어느날 밤 술집에 패디 더 맥스, 블루포인트 밴스, 해피 짐 해커, 빅 버드 레드 오리어리 등 유명한 범죄자들이 모여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시맨스 은행이 습격당할거라는 정보를 전해 준 정보원 비노가 살해당한 다음날 아침, 시맨스 내셔널 은행과 골든게이트 신탁회사가 약탈당했다. 무려 150여명의 프로 범죄자들이 도로를 봉쇄하고 20분도 안 되는 시간동안 현금 수백만달러를 훔쳤고, 경찰 포함 30명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했던 대참사였다. 그런데 강도 일당 수십 명의 시신이 차례로 발견되기 시작했고, 현장에서 죽은 강도 중 한 명이 '빅 플로라'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생존자 레드 오리어리를 찾아내 뒤쫓던 탐정은 밴스를 비롯한 다른 강도들의 습격에서 그를 데리고 겨우 탈출했다. 부상당했던 레드 오리어리가 탐정을 이끈 곳은 빅 플로라가 몸을 숨기고 있는 은신처였다....

백명이 넘는 강도단, 수백만 달러의 강탈, 수십명의 죽음 등 어처구니없는 스케일을 보여주는 범죄물. 은신처에 있던 연약해 보였던 노인이 사건의 흑막 파파도풀로스였으며, 경찰에게 은신처가 포위되었기에 무사 탈출을 위해 탐정을 이용했다는 반전은 괜찮았습니다. 탐정사무소 소장인 '영감'이 사건 배후에는 굉장히 머리 좋은 인물이 있을거라고 말했었고, 빅 플로라가 탐정을 죽이지 않았던 이유 등 이런저런 복선이 잘 배치되어 있던 덕분입니다.

하지만 설정에 비하면 내용은 비교적 수수한 편입니다. 탐정도 레드 오리어리를 찾아내 뒤를 쫓는 것 말고는 하는게 없어요. 빅 플로라의 은신처에서 벌이는 목숨을 건 연극도 유치했고요. 빅 플로라가 노인을 하인 대하듯 하는 장면같은 억지도 눈에 거슬렸습니다. 빅 플로라가 우두머리이며 노인은 거의 노예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심어주어, 유능한 탐정마저도 속아넘어간 것에 대해 변명거리를 만들 속셈이었을텐데, 속이 너무 빤히 들여다보였어요. 이런 점에서 하드보일드 추리물로 건질만했던건 별로 없었던 작품입니다. 단순 화끈한 마쵸 모험 액션물에 가까운 이야기였어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덧붙이자면 거액을 강탈한 뒤, 공모자들을 죽이고 독차지하려고 했던 계획을 망쳐버린 사랑꾼 빅 레드 오리어리를 징벌하지 않은 이유를 잘 모르겠네요. 파파도풀로스 입장에서는 찢어죽여도 시원치 않았을텐데 말이지요.

"피 묻은 포상금 106,000달러" 

탐정에게 패디 더 멕스의 동생 톰-톰 캐리가 찾아와 파파도풀로스에게 걸려있는 거액의 현상금에 대해 물어보았다. 몇 건의 살인과 습격이 이어진 끝에, 탐정들과 캐리는 백만장자 뉴홀 저택에 은신하고 있던 파파도풀로스를 잡는데 성공하는데...

시원치않았던 전편에서 이어지는 후편인데, 이 작품은 아주 좋았습니다. 탐정의 냉혈한스러운 면모가 빛나거든요. 탐정은 신참 탐정 잭이 파파도풀로스의 꼬임에 넘어가 한 패가 되었다는걸 진작에 눈치챘습니다. 아마도 그리스인 거주지 습격 사건 때 눈치챘겠지요. 그래서 마지막 습격 때 잭을 일부러 대동한 뒤, 모든 진상을 까발려서 잭은 캐리의 손에 의해, 캐리는 다른 탐정이 사살하게 만들었습니다. 자기 손에는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배신자를 징벌하고 탐정 사무소의 평판을 지켜내는 놀라운 솜씨를 보여준 거지요. 이 와중에 탐정 사무소 다른 탐정들을 동원하고, 잭에게 뒤통수를 맞지 않기 위해 이런저런 안배를 하는 꼼꼼함도 볼만했고요. 

잭이 배신하게 된 계기가 빅 레드 오리어리의 연인 낸시가 사실 백만장자 뉴홀의 딸이었다는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반전도 상당한 놀라움을 가져다 준 좋은 설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끝판왕격인 파파도풀로스의 허무했던 최후는 다소 아쉬웠습니다. 탐정이 잭의 배신을 언제 눈치챘는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은 것도 설명이 더 있었더라면 좋았을거에요. 낸시의 이상했던 시선, 잭의 이상했던 눈빛은 증거가 될 수 없었는데 말이지요. 잭이 별다른 증거도 없는데 스스로 자포자기해서 자백을 한 것도 다소 편의적인 전개라 생각되었습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했습니다.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정교함과 냉혹함이 잘 살아있는 하드보일드 여명기를 대표할만한 수작이라 생각되네요.

"메인의 죽음" 

메인이 출장을 다녀온 날 새벽, 2인조 강도가 습격하여 그를 죽이고 지갑 안의 2만 달러를 강탈해 사라졌다. 현장 근처에서는 흉기인 권총과, 여성 손수건이 들어있는 지갑이 발견되었다. 메인의 보스 군겐에게 고용된 탐정은 손수건이 군겐의 젊은 아내 것이며, 아내의 하녀가 범죄자와 어울린다는걸 알아낸 뒤, 아내로부터 사건 진상을 고백받았다. 그녀와 메인은 불륜 관계였으며, 2만 달러는 불륜을 저지르던 당일 오후에 강탈당했던 것이었다. 범인은 하녀의 애인이었다.

젊은 아내를 옭아맬 속셈으로 사건 수사를 의뢰한 군겐,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보스의 아내까지 건드리다 파멸한 메인, 불륜을 저지르면서도 당당한 젊은 아내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의 묘사는 재미있었습니다. 이들이 얽히고 섥혀 사건을 복잡하게 만든 건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스타일로 마음에 들었고요. 불륜 남녀가 돈을 빼앗긴걸 쉽게 털어놓지 못할거라고 생각했던 범인들의 잔꾀도 괜찮은 아이디어였어요.

하지만 범인 일당의 부주의한 행동이 미행으로 이어지고, 이를 통해 진상을 고백받은 형태로 제공된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탐정 수사' 물인데, 미행으로 진범이 누구인지 바로 밝혀내는건 너무 쉬운 전개였습니다. 메인이 좌절한 나머지 자살했고, 보험금 때문에 메인의 아내가 이를 강도 사건으로 꾸몄다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죽는 것 보다는 차라리 보스에게 사실대로 고백하는게 훨씬 낫다는 점에서, 전혀 현실적이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메인을 죽이고 강도 살해 당한 것 처럼 꾸몄다는게 더 타당해 보이는데, 왜 이렇게 마무리하지 않았는지 의문입니다. 메인의 아내를 비롯, 군겐의 아내까지 사건에 관련 여성에게는 큰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일종의 기사도 정신을 발휘했던걸까요? 여튼, 작품에는 잘 어울리지 않았어요.

그래도 수사물로는 괜찮았던 깔끔한 소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국왕 놀음" 

탐정은 미국인 청년 라이오넬 그랜덤을 찾아 유럽의 소국 모리비아로 향했다. 성인이 되자마자 어머니의 과보호로부터 탈출한 그는, 유럽에서 무려 3백만달러나 되는 돈을 현금화했다. 탐정은 라이오넬이 군대를 장악한 실력자 에이나르손 대령과 함께, 모리비아에 혁명을 일으키고 스스로 왕이 될 생각이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3백만 달러는 혁명을 위한 군자금이었다.

유럽 소국 모리비아를 무대로 한 일종의 군웅물이랄까, 여튼 왕이 되려는 사람들의 활약을 그리고 있는 작품. 설정은 기발했고, 왕위를 놓고 여러 세력이 벌이는 암투가 짤막한 분량안에서 잘 그려져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도 많았어요. 일단 에이나르손 대령이 왜 미국인을 끌어들였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네요. 군대를 장악했고, 인기도 많았다면 스스로 혁명을 일으켜서 왕이 되면 그만이었을텐데 말이지요. 3백만 달러는 분명 거액이지만, 일국의 왕이 된다면 그 정도 돈이 문제가 될까요? 

대통령 비서 마흐무드가 에이나르손 대령과 함께 혁명을 모의했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현 대통령의 통치를 못마땅하는 국민들이 많았다 한들, 절대 권력을 가진 대통령 비서가 이를 쉽게 포기하고 혁명에 바로 몸을 맡기고 급작스럽게 에이나르손을 암살하려고 한다는건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에이나르손이 군대를 장악하여 기껏 혁명을 성공시켰지만, 탐정의 총에 굴복해서 순순히 라이오넬의 대관식을 치룬 것도 그의 야망과 노력을 생각하면 많이 허무합니다. 최후도 허무하기는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 낭만적인 중세 시대 모험 활극이라면 모를까, 20세기를 무대로 한 이야기에는 여러모로 설득력이 떨어지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파리잡는 끈끈이" 

뉴욕의 명문가 햄블턴 가문의 막내딸 수는 범죄자와 도망친 후 소식이 끊겼다. 그리고 1년 후, 돈 1,000달러를 요구하는 전보가 날라왔고 탐정은 돈을 가지고 지정된 장소로 향했다. 하지만 이는 사기꾼 홀리 조의 계획으로 수는 가짜였었다. 

홀리 조로부터 캐낸 수와 베이브의 거처를 찾은 탐정은 그곳에서 수의 시체를 발견했다. 부검 결과 수는 만성 비소 중독으로 죽었다는게 밝혀졌다. 비소는 파리잡는 끈끈이에서 추출한 것이었다. 다시 협잡꾼 홀리 조를 심문해서, 그가 수와 도주할 계획이었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갑자기 나타난 베이브가 홀리 조를 사살하고 달아나는데....

부잣집 철부지 딸의 비참한 죽음, 얽히고 섥혀 서로를 죽이고 마는 애증 관계가 그려진 정통 하드보일드 작품입니다. 

그런데 탐정이 베이브를 추격해서 사로잡는 부분은 액션 활극 느낌도 강하지만, "누가 수를 죽였나?"라는 후더닛 측면에서도 볼만한 추리물입니다. 일단 홀리 조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마찬가지인 수를 죽일리 없었어요. 수와 도망칠 계획이었으니까요. 베이브도 오랫동안 비소를 수에게 먹여 죽일만한 인물은 아니었고요. 그렇다고 수가 자살했다고 하기에는, 만성 비소 중독은 여러모로 이치에 맞지 않지요. 그렇다면 진상은? 수는 비소를 오랫동안 조금씩 먹어 내성을 키운 뒤, 한번에 많은 양의 비소를 함께 먹어 베이브를 해치울 생각이었던겁니다. "맹독"에도 나오는 트릭이지요. 콘티넨털 탐정 사무소 소장 영감이 이건 체질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비웃는 장면, 그리고 파리잡는 끈끈이가 숨겨져 있던 "몽테크리스토 백작"에 이 방법이 나와 있었다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전개가 아주 매끄럽지는 않아요. 베이브가 마침 탐정이 심문하던 도중에 나타나 홀리 조를 사살했다는 것도 부자연스러웠고, 애초에 수와 조가 베이브를 죽일 생각이었으면 깔끔하게 사살하는게 나았을겁니다. 비소 내성을 키워 독살하려 한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이렇게 범행을 저지른다고 살인죄가 덮이는 것도 아닐텐데 말이지요

그래도 추리적인 부분에서 볼만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합니다. 이전 리뷰에서도 그 부분을 좋게 언급했었지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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