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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0

버드 박스 - 조시 맬러먼 / 이경아 : 별점 2점

버드 박스 - 4점
조시 맬러먼 지음, 이경아 옮김/검은숲

4년 전, 갑자기 나타난 크리쳐를 목격한 사람들은 모두 발광하여 다른 사람들을 죽이고 자살했다. 생존을 위해 창문을 가리고 숨어 살던 임산부 멜로리는 언니 섀넌이 발광하여 자살해버린 뒤, 위험을 무릅쓰고 생존자들이 모여 사는 조지의 집으로 향했다. 조지는 죽었지만 리더 톰의 원만한 성품 덕분에 멜로리, 그리고 그 집에 있던 펠릭스, 줄스, 셰릴, 올림피아는 몇 개월 간 짧은 평화를 누렸다. 그러나 멜로리의 출산일에 그녀와 갓난 아기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죽어버리고 말았다. 비관주의자 돈이 다른 생존자 게리를 만난 뒤 세뇌되어, 집 창문을 가렸던 것들을 모두 치워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4년 후 멜로리는 4살된 두 아이와 함께 거주지를 떠났다. 4년 전, 톰의 전화로 연결된 생존자 '릭'의 거처로 향하기 위해서였다. 이 모험을 위해 그녀는 두 아이의 청각을 극도로 강화시키는 훈련을 해 왔다...

신예 작가의 SF 크리쳐물입니다. 

무언가를 본 뒤 발광한다는 소재로 평범한 사람들에게 닥친 위험과 공포, 그리고 극복 방법을 실감나게 그려낸 묘사는 좋습니다. 폐쇄 공간에서 빚어지는 여러 긴장감도 잘 살아있고요. 단순히 '물을 뜨러 가는 행위', '배설물을 버리러 가는 행위'에서 긴장감을 빚어내는 솜씨에는 감탄했습니다. 

생존자들이 모여 사는 집은 수력 발전으로 전기가 공급되며, 마당에 우물이 있고 일단은 몇 개월 버틸만한 식량을 갖추었다는 식으로 생존에 대한 설득력을 높여준 것, 그리고 "크리쳐를 보면 발광하기 때문에 집의 창문까지 모두 닫은 폐쇄 공간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설정을 "다른 매체, 예를 들어 비디오 카메라로 찍은 크리쳐를 보아도 발광한다.", "동물들도 크리쳐를 보면 발광한다."는 식으로 디테일을 보강한 것도 마음에 들어요. 비디오 카메라는 정말 생각도 못했었네요.

하지만 이외에는 볼 만한 부분이 별로 없습니다. 소재부터가 너무 진부합니다. 기묘한 상황 탓에 사람들에게 재난이 닥친다는 이야기는 너무나도 많으니까요. 예를 들어 특정 현상을 바라본 사람들이 모두 실명한다는 설정은 "걷는 식물 트리피드"에 등장했었지요. 운 좋게 재난을 피한 생존자들이 최대한 조심하면서 살지만 위기가 닥친다는 전개 역시 크리쳐물 대부분에서 뻔하게 반복되어 왔던 것이고요. 좀비물 거의 대부분이 이런 내용이잖아요? 

물론 보기만 해도 사람, 동물을 발광시키는 크리쳐의 특수한 능력만큼은 독특한 요소였고, 이를 작품 안에서 잘 부각시키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크리쳐에 대해 어떤 과학적인 근거나 설명은 없이 주인공 멜로리의 시점에서의 경험만 나열된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탓에 뒤로 가면 갈 수록 식상해지기만 할 뿐이니까요. 뭔가 살아남거나, 해결책은 없이 그냥 버티고 살아가는게 전부이니까요. 톰이 주도해서 활로를 모색하는 전개가 더 등장했더라면 좋았을텐데, 개 몇 마리를 데려오는게 전부라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또 전개의 클라이막스를 차지하는 돈의 폭주에서, 게리가 크리쳐를 보았음에도 어떻게 멀쩡했는지 설명되지 않는건 정말 답답했습니다. 설명이 부족해도 정도껏 했어야 하는데 말이지요.

멜로리와 올림피아가 임신했는데, 마침 그 둘이 출산할 때 돈이 폭주해서 모두가 죽는다는 작위적인 설정도 별로였고, 마지막에 멜로리가 안식을 찾게되는 피난처가 맹인 '릭'이 이끄는 맹인들 학교였다는 약간의 반전 역시 만족스럽지는 못했습니다. 읽으면서 "이렇게 두려워하면서 사느니 차라리 스스로 맹인이 되는게 낫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별로 다르지 않은 엔딩이니까요. 의외성이 전무한 셈입니다. 나름대로 해피 엔딩이라는 점 만큼은 나쁘지는 않았습니다만, 반전 요소를 갖추려면 개인적으로는 릭이 멜로리와 아이들 눈을 멀게 만든다는 결말이 더 나았을 것 같네요. 앞서 아이들에게 이런저런걸 보게 해 주고 싶다는 바람과 대조되면서 더 큰 울림을 가져다 즐 수 있었겠지요. 솔직히 현실적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소소한 일상계 크리쳐물 분위기는 괜찮았지만 진부한 소재를 뻔한 전개로 풀어냈고, 결말도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감점합니다. 딱히 권해드릴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넷플릭스에서 영화화한 모양인데, 영화에 더 잘 어울릴 것 같기는 하네요.

2015/08/05

알라딘 특별기획 한국 공포 문학의 밤 : 별점 2점

[알라딘 특별기획] 한국 공포 문학의 밤 - 4점 김종일.이종호.신진오.우명희.장은호.유재중.최경빈.백상준.황태환.김민수 지음/알라딘 이벤트

알라딘의 여름맞이 이벤트를 통해 무료 e-book으로 읽게 된 한국 공포문학 단편 앤솔러지. 총 10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종호, 신진오, 김종일 등 최근 한국 공포문학에서는 가장 유명하다 할 작가들이 포진되어 있어 제법 기대가 컸습니다.

그런데 여러모로 실망스럽기만 하네요. 별로 무섭지 않은 탓이 큽니다. 또 어디선가 본 설정이 많다는 것도 문제고요. 게다가 몇몇 작품은 호러, 공포문학도 아닐 뿐더러 작품 자체의 완성도도 그닥 높아 보이지 않았어요.

결론 내리자면, 전체 평균 별점은 2점입니다. 아직 한국 장르 문학의 갈 길이 참으로 멀구나...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드는군요.

얼마 전 읽었던 하드론의 "기지 살인사건"은 아주 좋았는데, 작가의 유명세에 기대지 말고 이런 언더그라운드 작품을 발굴하여 소개하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아내의 남자" - 이종호

한국 공포문학계에서는 슈퍼스타라 할 수 있는 이종호 작가의 작품으로, 한 남자가 아내의 불륜을 확신하고 아내를 살해하는 과정을 디테일하게 그립니다. 

그런데 기대에는 전혀 미치지 못했습니다. 일단 "다중인격", "해리성 인격 장애" 라는 설정이 너무 뻔합니다. 일종의 서술트릭 같은 효과를 노린 것인지는 모르지만, 다중인격을 숨기기 위한 작위적인 전개도 거슬렸고요. 특히나 이런 정신병자와 같이 사는 아내는 도저히 이해불가였습니다. 상식적으로는 정신병원에 보내는 게 당연할 텐데 말이죠.

이러한 이유로 좋은 점수는 주기 힘듭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압박" - 신진오

사지마비 환자가 어느 날 밤부터 굉음소리와 함께 방이 점점 좁아진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내용.

신진오 작가는 얼마 전 영화화된 "무녀굴"의 원작자죠. 작품은 읽어본 적이 없었지만 나름 기대가 컸습니다. 시작 부분은 제법 괜찮아서 기대에 값했고요. 무엇보다도 설정이 좋은데, "사지마비 환자"인 주인공의 상황이 이야기에 딱 맞아 떨어져 공포를 선사해 주기 때문입니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데 방이 좁아진다! 이거 참 두근두근한 설정이죠.

그러나 좋았던 것은 도입부 뿐이었습니다. 작품은 실망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뜬금없이 끝나는 결말은 그 중에서도 최악이고요. 사지마비 환자에게 마약 성분의 약을 먹여 환각을 유발시키고,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실험을 했다는건데, 왜 그러한 실험을 하는지에 대한 목적, 이유는 하나도 설명되지 않는 탓입니다. 차라리 방이 살아 있었다는 스티븐 킹의 "1408" 같은 크리쳐 호러가 낫지 않았을까 싶군요.

도입부 설정 외에는 건질 게 없는 작품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담쟁이 집" - 우명희

귀신들린 마을 외곽 담쟁이 집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기이한 일들과 공포를 여자아이 시점에서 그린 작품.

아이의 머리가 계단을 때리는 장면의 묘사라던가, "넌 내가 아직 네 엄마로 보이니"와 같은 오래된 괴담의 변주 등 볼거리가 없는 것은 아닌데 딱히 특출난 점은 없습니다. 딸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기 위해 또래 꼬마아이들을 살해한게 어디까지 현실이고, 어디까지 귀신의 행위인지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애매하게 끝난 것도 그닥 마음에 들지 않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 그냥저냥 읽을 만 했다 정도입니다.

"첫 출근" - 장은호

영문도 모른 채 전화로 걸려오는 지시만 전달하는 업무를 하는 주인공의 이야기.

일단, 이 작품은 절대로 호러, 공포문학은 아닙니다. 오히려 SF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거대 조직 사회의 톱니바퀴로 인간이 전락한다는 것과 이 조직 사회를 바꾸려 하거나 탈출하려 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쎄고 쎘는데, 그러한 유사 작품들 대비 단 하나라도 뛰어난 점이나 차이점을 찾기 어렵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주인공이 속한 사회가 어디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알려주지 않는 것도 불만이에요. 단지 자신이 하는 일에 의문을 가진 주인공에게 위기가 닥치는 내용이 전부일 뿐인데, 이래서야 남에게 보여줄 이야기라고 하기는 어렵죠. 독자에게 자신이 만든 세계관에 대해 설득시키고 공감하게 만드는 최소한의 노력이 아쉽습니다.

"놋쇠황소" - 김종일

오랫만에 만난 고교 동창에게 과거 그에게 당한 학대를 상기시키는 주인공의 이야기.

한국 공포문학계의 또다른 스타 김종일 작가의 작품. 왕따, 학대 피해자가 복수를 한다는 설정의 작품은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을 거에요. 어떻게 차별화해서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드는지가 관건인데, 유감스럽게도 그닥 성공한 것 같지 않군요. 복수의 이유가 공감가지 않고 복수 역시 어설픈 탓이지요.

특히나 주인공 병구가 자신의 첫사랑 희정이를 박규완에게 빼앗긴 건 본인이 "좃밥"이기 때문인데, 박규완에게 복수심을 품는 건 정말이지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강제로 성폭행 한 것도 아니고 엄연히 둘이 사귀다가 헤어진 것인데 그걸 가지고 제 3자가 뭘 어쩐다는 게 웃길 뿐이죠. 이러한 과거 이야기를 박규완의 가족에게 들려준다는 복수 역시 그다지 와 닿지 않았고요.

읽는 맛은 충분하나 딱히 무섭지도 않은 평이한 이야기라 별점은 2점입니다.

"돼지가면 놀이" - 유재중

유산을 물려준다는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6.25 직후 한 산골마을에서 벌어진 공포의 사건 이야기.

시골의 커뮤니티에 살게 된 외지인이 사실은 사악한 존재였다는 것은 역시나 뻔한 설정이죠. 그런데 "돼지가면 놀이"와 돼지가면을 쓴 인물의 카리스마, 사라진 형제가 손, 발이 잘려 인간 돼지가 되어있다는 등 ("바이올런스 잭"?) 디테일한 묘사가 압도적이라 충분한 공포를 선사해 줍니다. 마지막 결말도 서늘하고요.

단연코 "공포 문학" 이라는 측면에서는 이 앤솔러지 최고의 작품이에요. 별점은 4점입니다.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읽은 보람이 느껴집니다. 모든 분들께 강력 추천드립니다.

"10개월" - 최경빈

여자들이 급작스럽게 남자로 변하게 된 세상을 그린 작품.

공포문학도 아닐 뿐더러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의 변주에 불과한 설정에, 특별할 것도 없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아 지루했습니다. 인류가 멸망할 상황인데, 여자가 남자가 됨으로 벌어지는 성생활 문제에만 집중한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섬" - 백상준

좀비물. 한국이 무대이긴 한데 다른 흔한 좀비물과 비교해도 딱히 특별한 건 없었습니다. 게다가 주인공이 마지막에 폭주해서 아파트와 함께 자폭한다는 결말은 완전 뜬금없었어요. 몇몇 한국적 설정이 잔재미를 주기는 하지만 그냥저냥한 평작이랄까, 별점은 2점입니다.

그런데 항상 궁금했던 게 좀비는 대체 어떻게 성립하는 거죠? 사람을 잡아먹기 위해 습격한다면, 어느 정도 수가 된 좀비가 사람을 덮치면 남아나는 게 별로 없을 테네 좀비가 더 증가하지 않을 테고, 그러면 결국 자연도태될 텐데 말이죠. 참으로 궁금합니다.

"옥상으로 가는 길" - 황태환

좀비로 고립된 집단의 생명줄은 옥상으로 전달되는 보급품. 이것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은 왜소증 환자인 주인공뿐이라는 이야기.

왜소증 환자 주인공이 집단 내 다른 사람들과 갈등을 빚는 게 작품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주인공의 심리가 너무 변화무쌍해서 별로였어요. 어떨때는 착하고 순진한데, 어떨때는 굉장히 잔인해져서 캐릭터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느낌이 들거든요. 자신의 경쟁자가 된 초등학생을 처단한다는 결말은 나쁘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감정 변화가 너무 급작스럽다 싶었고 말이죠. 아울러 마지막 장면, 주인공이 좀비가 되어 버린다는 결말은 굉장히 안이하고 뻔했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엘리베이터 액션" - 김민수

식량을 찾기 위해 마트로 왔다가 좀비들에게 둘러싸인 주인공의 사투를 그린 작품.

설정과 내용은 뻔하지만 영화를 보는 듯한 묘사가 아주 생생한 작품. 불필요한 묘사는 전부 배제하고 화끈한 주인공의 생존을 위한 모험에 집중한 작가의 선택이 탁월했어요. 호러라기 보다는 모험 소설 같은 느낌으로 덕분에 읽는 내내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간간히 보이는 유머러스한 요소들도 볼거리였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21/09/25

좀비 연대기 - 로버트 E. 하워드 외 / 정진영 : 별점 2.5점

좀비 연대기 - 6점
로버트 E. 하워드 외 지음, 정진영 엮고 옮김/책세상

근대 시기 유명 장르 소설가의 좀비 관련 중단편을 모아 놓은 앤솔러지입니다. 작가들의 명성과 장르 문학치고는 고전급에 속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클래식 미스터리 걸작선"과 성격은 유사합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낡은 느낌이 강했던 "클래식 미스터리 걸작선"과는 다르게, "지옥에서 온 비둘기"라던가 "좀비 감염 지대"같은 시대 초월 명작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최초로 '좀비'라는 말을 만들고, 아이티 부두교 좀비 설정을 확립했다는 "마법의 섬"과 같은,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작품도 눈여겨 볼 만 하고요. 크리쳐 호러물 외에도 저주받은 저택, 호러 모험 액션, 판타지에 SF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장르 스펙트럼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열 두편의 수록작 중 수준 이하 졸작도 제법 됩니다. 발표된지 100여년이 다 되어가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요. 그리고 제목에서 기대했던, 우리가 지금 '좀비'라고 하면 떠올릴 몬스터가 등장하는 작품도 없습니다. 아이티 등 열대 섬나라에서 부두교 주술 등으로 죽은 사람을 되살려 노예처럼 부렸다는 초기 좀비 전설에 기반한 이야기가 대부분이거든요. 물론 이게 단점은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동일한 설정을 그대로 반복한 판박이같은 작품이 많다는거지요. "노예에게 소금은 금물",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 "사탕수수밭에서 일하는 시체들" 가 그러합니다.

그래서 전체 평균한 별점은 2.5점입니다. 단점이 없지는 않으나, 클래식이라는 명칭에 걸맞는 그런 앤솔러지였습니다. 좀비라는 크리쳐의 창작 초기 설정과 이야기들이 궁금하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다음과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지옥에서 온 비둘기" 

그리스웰과 존 브래너는 비둘기 떼가 날아가버린 폐가에서 하룻 밤을 보내게 되었다. 밤중에 공포스러운 휘파람 소리에 잠을 깬 그리스웰은 2층으로 올라간 뒤, 도끼에 맞아죽은 브래너가 자기를 죽이려고 해서 도망쳤다. 도망치던 그리스웰을 구해준 보안관 버크너는 흉가 블래슨빌 저택에 얽힌 수수께끼와 브래너 살인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고자 늙은 부두교 주술사를 찾아갔지만, 주술사도 뱀에 물려 죽었다. 사건을 매듭짓기 위해 버크너와 그리스웰은 흉가에서 하룻 밤을 보내지만, 그날 밤 그리스웰은 악령에게 홀려 2층으로 향하는데...

좀비물이라기 보다는, 저주받은 저택 장르물로 보는게 타당합니다. 죽은 브래너의 습격, 마찬가지로 사람을 습격해 죽이는 실비아 블래슨빌 모두 시체가 되살아난 것이기는 하지만, 이는 복수를 위해 부두교 주술로 저주한게 원인이고, 사람을 잡아먹지도 않으니, 저주물에 더 가깝고요.

저주받은 저택에서 하룻밤을 보내다가 악령에게 습격받는 초반부 묘사는 지금 읽기에는 다소 진부하고 심심했지만, 버크너 보안관 등장 이후부터는 아주 재미있었어요. 특히 버크너가 브래너의 시체를 발견한 뒤의 전개는 추리 소설을 떠올리게 해서 독특했습니다. 상황은 그리스웰이 범인일 수 밖에 없어요. 둘만 있던 흉가에서 한 명이 도끼에 머리를 맞아 죽었으니까요. 그러나 버크너는 그리스웰의 옷에 피가 전혀 튀지 않았던 점, 그리고 그리스웰이 범인이라면 죽은 버크너가 자기를 죽이려 했다는 주장을 했을리 없다는 이유로 추가 조사를 벌입니다. 그리고 핏자욱을 따라 2층의 사건 발생 현장으로 이동한 뒤, 무언가 이상한 존재가 얽혀있다는걸 알게 되지요. 단서를 통한 추리, 그리고 그를 뒷받침하는 수사가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비밀 방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3명의 가족이 목을 메고 죽어 있었다는, 흉가 블래슨빌 저택에 얽힌 진상도 오싹했습니다. 사람들을 습격해 죽였던 괴물 '주벰비'가 실비아 블래슨빌을 원망했던 혼혈 하녀 조안이 아니라, 실비아 블래슨빌이었다는 반전도 충격적이었고요. 조안은 주벰비가 되는 검은 술을 자기가 먹지 않고 주인에게 몰래 먹였던 겁니다. 이거야말로 진짜 복수네요.

믿음직하고 용감한 보안관 버크너와 겁 많은 애송이 그리스웰의 조합도 반 헬싱 교수와 조나단 하커 관계와 좀 비슷한데, 전형적이지만 이런 류의 이야기에 딱 맞는 조합이더군요. 무서움을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겁쟁이와 사건을 해결하고 악령을 응징하는 용감한 보안관이 조합되니, 두려움과 공포, 액션과 정의의 응징을 다 얻을 수 있잖아요!

그러나 딱 한 가지, 너무 옛스럽게 쓰여졌다는 건 좀 아쉽습니다. 공포를 효과적으로 묘사하기 여러모로 부족한 묘사가 특히 거슬렸어요. 오래된 폐가, 몰락한 가문, 뱀으로 상징되는 저주의 주술, 정체를 알 수 없는 악령, 도망쳤던 생존자가 남긴 일기 등 모든 면에서 미쓰다 신조의 "흉가"가 떠오르는데, 공포를 자아내는 묘사와 전개는 전혀 미치지 못했거든요. 미쓰다 신조가 같은 작품을 썼다면 훨씬 무섭게 쓸 수 있었을 겁니다. 아니면 차라리 지금 방식으로 영상화하면 훨씬 대단한 작품이 될 것이라 생각되네요. 

그래도 좋은 작품이라는 건 분명합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검은 카난" 

커비 버크너는 고향 카난에서의 긴급 호출을 받고 귀향하다가 혼혈인 마녀의 유혹을 받았다. 최면에 걸렸던 버크너는 운 좋게 정신을 차리고 습격한 거구의 흑인 세 명을 물리쳤다. 마을에 도착한 버크너는 마을 흑인들이 모두 도망갔다는 등의 이야기를 듣고, 조사를 통해 늪지대에 사는 괴인 솔 스타크가 배후에 있다는걸 알아냈다. 그러나 조사 중 버크너는 마녀의 최면에 걸려 솔 스타크의 본거지로 본의 아니게 끌려가게 되었고, 친구 브랙스턴이 그를 돕기 위해 따라가는데....

부두교 주술사가 카난이라는 마을을 장악하려 하지만, 마을 지도자 버크너가 이를 물리친다는 호러 액션 활극입니다. 마녀의 최면, 주술로 만든 물고기 인간같은 공포스러운 요소가 등장하지만, 무섭지는 않았습니다. 버크너 시점의 심리 묘사만 있는 탓이 큽니다. 버크너 캐릭터는 전형적인 서부 영화의 쾌남 영웅 스타일이라 공포를 크게 느끼지 않거든요. 공포에 사로잡힌 묘사도 잘 와 닿지 않더군요. 마녀와 괴물들이 총에 맞으면 죽는다는 것과, 최면술말고는 주인공을 크게 위협하지 못한다는 것도 작품이 무섭지 않은 이유이고요.

그래도 모험 활극으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나저나 주인공 버크너는 전작의 버크너 보안관의 선조, 혹은 동일인물이 아닐까 싶은데, 버크너 유니버스도 한 번 제대로 소개되면 좋겠네요.

"천 번의 죽음" 

물에 빠진 나를 구해준 건 아버지와 그 부하들이었다. 알고보니 아버지는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연구를 하고 있었고, 나도 물에 빠져 죽었었지만 아버지의 연구 덕분에 살아났던 것이었다. 아버지는 나를 여러가지 방법으로 죽이고 되살리는 식으로 연구를 계속하는데....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등장하는 SF 호러 범죄물을 잭 런던이 썼다는건 특이했지만, 내용은 평이합나다. 죽은 사람을 되살린다는건 "프랑켄슈타인" 에서부터 내려온 고전적인 설정이니까요.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섬에 틀어박혀 생체 실험을 한다는건 "닥터 모로의 섬"과 똑같고요. 물론 생체 실험의 대상이 화자이자 주인공인 '나'로, 그가 반복적인 죽음과 소생을 거듭한다는 설정으로 확실히 차별화되기는 합니다. '폭력에 의하지 않고, 신체 장기에 아무런 훼손이 없는 죽음은 단지 생명의 보류 상태'라며 죽음과 소생을 보다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점도 독특했어요.

하지만 차별화 요소를 잘 살렸다고 보기는 어렵네요. 독약, 질식 등으로 수차례 죽음을 맞는 고통이 잘 그려내지 못한 탓입입니다. 생체 실험의 고통을 극명하게 그려냈다면 호러물로 충분히 값했을텐데 말이지요. 과학적인 설명도 그럴듯해 보일 뿐, 실상 알맹이 없는 서술에 불과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주인공이 갖은 노력 끝에 물질을 원소 상태로 되돌리는 장치를 개발했고, 이를 이용하여 아버지와 그 부하들을 없애고 탈출한다는 결말은 최악이네요. 아버지의 흑인 부하들이 자기 방으로 한 명씩 차례로 들어올 때 마다 없애고, 마지막에는 방에 들어선 아버지를 없앴다는데, 이럴 바에야 그냥 방에 한 명씩 들어올 때마다 칼로 찌르는게 빨랐을겁니다. 특별한 장치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자유롭고, 피해자들도 한 명씩 들어와 사라질 정도로 감시가 느슨했는데 왜 진작에 탈출하지 않은건지도 이유를 모르겠고요. SF스럽게 만들기 위한 억지 장치에 불과해 보였습니다. 엄청난 매드 사이언티스트로 보였던 아버지의 최후라기에는 너무 허무했고요.

유사한 다른 작품들과는 차별화되는 요소가 있는건 분명합니다. 그러나 호러물로는 공포를 자극하는 요소가 부족했고, 결말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노예에게 소금은 금물"

나는 아이티 호텔에서 머물다가, 호텔에서 일하는 노파 마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녀는 지역 주민들과 호텔 직원들의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녀는 과거 아이티 독립 전쟁 당시 '소금을 먹지 마라'는 금기를 어겼다가 시체가 된 연인 트레생에 대해 말해 주는데...

뒤에 수록된 "좀비와 함께 걷다"를 읽어야 설정이 이해가 되는 작품입니다. "좀비와 함께 걷다"에 따르면, 좀비는 소금을 먹으면 자신이 죽었다는걸 깨닫고, 무덤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한다고 합니다. 이대로라면, 트래생은 물론 마리도 진작에 죽었던 좀비였다는 뜻이고요. 트래생이 흑인 해방 등의 의식을 가질 정도로 똑똑했던 이유는 설명되지 않지만 노예들을 이끄는 우두머리였다니, 다른 좀비들과는 뭔가 달라도 달랐다고 보면 되겠지요.

문제는 이 설정 외의 특별한 내용은 없다는 겁니다. 마리도 좀비였다는 결말은 너무 뻔했고요. 죽었다는걸 깨달은 좀비들이 무덤으로 폭주하는 장면 묘사 정도만 괜찮았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귀환자들의 마을" 

좀비 전설이 있는 열대 섬마을에 어느날 미모의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에게 유혹당한 파파는 절벽에서 떨어져 죽게 된다...

괴담 소설로 유명한 라프카디오 헌의 단편인데 굉장히 실망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아는 좀비와 다른, 열대 섬나라 좀비에 대한 설명과 파파가 관련된 이야기가 아예 별개로 진행되어 혼란스럽고, 별다른 내용도 없는 탓입니다. 섬마을의 여러 풍광에 대한 관능적이면서도 상세한 묘사를 걷어내고 '이야기'에만 집중하면 한, 두페이지로도 충분했을 이야기입니다. 수록작 중 최악으로 별점은 1점입니다.

"나트에서의 마법" 

조티크 대륙의 절반이 사막인 나라 지라의 왕자 아다르는 노예 상인 샤라그에게 납치된 약혼녀 달리리를 찾아 여러 왕국을 헤멨다. 그러다 그녀가 향했다는 요로스 왕국으로 가는 상선에 탑승했지만 항해 중 폭풍에 휘말렸고, 상선은 사악한 섬 나트로 표류하다가 침몰했다. 달릴리의 구조로 홀로 살아남은 아다르는 나트의 마법사 우두머리 바카른을 만나, 그녀는 바카른이 되살려낸 익사자라는 걸 알게 되는데....

"코난 더 바바리안"을 연상케 하는 작품. 존재하지 않는 고대 왕국을 무대로 마법사와 영웅이 등장해서 대결을 펼치는 고대 판타지라는 점에서요. 그런데 결말이 예상 외라 놀랐습니다. 영웅 포지션인 아다르가 권력과 재산을 차지하기 위한 바카른의 두 아들 음모에 가담하여 바카른을 죽이려다고 되려 찔려 죽고 말거든요. 그리고 바카른의 아들에 의해 되살아나 좀비가 된다는게 끝입니다. 달릴리와 뭔가 관계가 이루어진다던가, 정의가 이루어진다던가 하는 내용은 없습니다. 중간에 등장하던 족제비 괴물은 어떻게 되는지도 설명되지 않고요.

이런 이유로 방대한 설정으로 이루어진 긴 서사물의 일부만 수록된 느낌입니다. 최소한 아다르와 달릴리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려주었어야 했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 

아이티 공화국 헌법에 좀비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는 말에서 시작해서, 아이티에 진짜 좀비가 있다는 다양한 증언들이 이어지는 작품. 페이크 다큐멘터리 방식의 파운드 푸티지 영화같은, 페이크 논픽션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좀비는 소금을 먹지 않고, 좀비가 소금 맛을 보면 죽었다는걸 깨닫고 열일 제쳐놓고 죽을 자리를 찾기 위해 무덤으로 향한다는 설정에 기반한 경험담이 이어질 뿐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화이트 좀비" 

아프리카 엔스와지 지방의 행정관 제프리 에일럿은, 어느날부터 느껴지는 악취 탓에 겁에 질렸다. 안개 자욱한 어느날, 결국 에일럿은 쓰러지고 말았다. 그를 돌봐준 신부는 과거 에일럿과 함께 했던 전우 싱클레어의 미망인이 수상하다고 말했고, 에일럿은 탐문과 잠복 끝에 그녀가 부두교 주술로 시체들을 조종하는 현장을 목격하는데...

서인도 제도가 아니라 아프리카를 부대로 부두교 주술이 등장하는 이색작입니다. 서술은 장황하지만, 정작 내용은 에일럿이 잠복해서 부두교 좀비 축제? 현장을 목격하고, 거기서 싱클레어의 모습을 확인한 뒤 부두교 주술솨를 쏴 죽인다는게 전부입니다. 악취라던가 불길한 안개 등의 설정은 왜 나오는지 모르겠네요. 신부의 존재도 불필요했어요.

게다가 좀비 사건의 원인, 결과에 대한 설명도 부족합니다. 싱클레어 부인이 부두교 주술에 빠져 시체를 되살렸는지는 아프리카의 심장 운운하며 농장 관리 목적이었다고 소개되지만 명확하지는 않아요. 그렇다면 싱클레어를 되살릴 이유도 없었고요. 에일럿이 악취를 느낀 이유 역시 밝혀지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아프리카를 무대로 하고 있지만 딱히 아프리카일 이유를 찾기도 힘들었습니다. 묘사만으로 작 중 무대가 아프리카처럼 느껴지지도 못했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할로 맨" 

한 남자가 아프리카로부터 15년만에 영국으로 찾아왔다. 그는 부두 거리를 헤메다 모모의 식당으로 들어섰다. 

모모는 자신이 15년 전에 죽여 매장했던 고팍이 자기 식당으로 들어오는걸 보고 경악했다. 고팍은 표범 인간이 자신을 깨웠다며, 자기를 책임지라고 요구했다. 모모가 자신을 죽였기 때문이라면서. 식당에 고팍이 머문 뒤, 식당은 서서히 망해갔고, 딸 버블스마저 고팍에게 홀려 생기를 빼앗기자 모모는 고팍을 또 다시 한 번 죽일 결심을 하게 되는데....

죽은 자가 돌아왔다가, 다시 죽음과 함께 영원한 안식을 찾는다는 내용의 작품. 그렇게 인상적인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무서울 수 있는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무서운 포인트를 제대로 묘사하고 있지 못하는 탓입니다. 일단 모모 시점의 심리 묘사가 부족해요. 과거에 저지른 죄로, 손을 씻고 가족과 열심히, 단란하게 살아가던 소시민에게 지옥문이 열린 상황인데, 고팍의 존재를 너무나 쉽게 인정하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묘사에서는 절박함이나 어려움을 찾아볼 수 없었거든요. 내용도 불분명한 부분이 많습니다. 왜 표범 인간이 고팍을 되살렸는지, 고팍이 영국에는 어떻게 왔는지 등이 모두 드러나지 않아요. 버블스의 생기를 빼았는다는 것도 대충대충 넘어가고요. 결말도 허무합니다. 결국 고팍은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걸로 마무리되는데, 이럴 거였다면 왜 진작에 없애지 않았는지 의문이에요.

여러모로 오래된 작품이라는 티만 물씬 났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사탕수수밭에서 일하는 시체들" 

나는 농부 폴리니스로부터 아이티 지역에서 사람들을 괴롭히는 다양한 존재들에 대해 들었다. 다른건 유럽과 흡사했지만, 이 지역에만 있는 존재가 있었다. 그건 바로 좀비였다. 나는 좀비에 대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부탁했다

"좀비"라는 단어의 기원이 되었다는 작품으로 아이티에서 사람들이 단단한 대리석 무덤에 묻히고 싶어하고, 자기 집 마당에 묘를 만들고, 사람들 왕래가 많은 길가나 도로변에 무덤이 많은 이유로 좀비를 설명하는 등, 좀비를 실존하는 것 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여러 장치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지막에 아이티 형법을 증거로 내미는 장면도 그런 장치라고 할 수 있겠지요.

폴리니스가 해 준 늙은 추장 조제프가 데려온 좀비 이야기는 이 책에 앞서 수록되어 있는 다른 아이티 좀비 이야기들과 똑같습니다. 좀비가 소금기를 접한 뒤 다시 시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는 최후까지요. 좀비가 되었던 희생자들의 가족들이 조제프에게 복수를 했다는 결말 정도만 차이점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원조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발표 당시에는 굉장히 새롭고, 무서운 이야기였을 거라는 확신이 들 정도로 잘 짜여져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오히려 이 작품을 다른 유사 작품들보다 앞서 수록하지 않은 이 책의 문제가 너무 커 보입니다. 지금 책의 구성은, 후대의 아류작으로 원조의 가치가 퇴색되는 셈이거든요.

하여튼, 원조라는 역사적 가치를 더해 제 별점은 3점입니다.

"투셀의 창백한 신부" 

흑인 부자 마티외 투셀은 스무살은 어린 혼혈 아가씨 카미유와 결혼했다. 그리고 첫 번째 결혼 기념일에 투셀은 카미유를 시체와 함께 하는 파티에 초대했고, 카미유는 미쳐버리는데....

화자가 직접 들었다는 이야기를 쓴 글 형태로, 화자의 말대로 '흐지부지되었다'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작품입니다. 결말이 없거든요. 투셀이 도망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투셀이 파티가 연 의도가 무엇인지, 시체들은 누구였는지, 아내에게 1년간 비밀을 지키다가 갑자기 시체 파티에 초대한 이유는 무엇인지 전혀 밝혀지지 않아요. 그렇다고 딱히 무섭지도 않았고요.

완성된 이야기로 보기는 문제가 많았던 소품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점비" 

그랜빌리 씨는 1차 대전에서 폐를 다친 뒤, 서인도 제도 세인트크로이 섬에서 요양을 하게 되었다. 섬에서 친해진 제프리 다 실바와 럼주 칵테일을 함께 하던 어느날, 그랜빌리 씨는 '점비'에 대해 물었고 다 실바는 자기가 젊었을 때 목격했던 일을 이야기해 주기 시작했다.

신학교를 나온 집사 출신이라는 작가 이력이 특이했던 작품. 이런 이력이라면 좀비가 실제 있는 것 처럼 묘사되는 작품은 쓰면 안되는거 아닌가요?

그러나 작품은 작가 이력만큼 특이하지는 않습니다. 다 실바가 친구 이베르센이 죽은 날, 이베르센의 유령을 만나고, 밤길에서 공중에 떠 있는 점비를 목격하고, 이베르센 집에서 개 인간을 만났다는 체험담이 이어질 뿐으로, "내가 했던 무서운 체험" 류의 기승전결없는 괴담의 나열에 불과합니다. 당연히 '점비'나 개인간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도 없고요. 이래서야 좋은 점수를 줄 래야 줄 수가 없지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좀비 감염 지대" 

고든 파넘 박사는 아발론 섬에서 불사에 관련된 연구를 하다가, 죽은 시체를 되살리는 혈청을 개발했다. 마침 섬에 닥친 화산 폭발로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하자, 박사는 혈청을 이용하여 그들을 되살릴 생각을 하는데...

부두교 주술로 되살아난 시체가 아닌, 과학의 힘으로 되살린 좀비가 등장하는SF 호러물입니다. 앞서 잭 런던의 단편과 비슷한 소재이지만, 되살리는 과정을 나름 과학적으로 잘 설명해 주는게 큰 차이점이자 볼거리입니다. 특히 인체는 기계와 같다는 등의 고든 파넘 박사의 생명에 대한 이론이 아주 재미있고 풍성했어요. 이 이론과 박사가 여러 동물로 진행하는 실험으로 이야기 여러 개는 충분히 뽑아낼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요. 예를 들어 '불멸성을 부여받은 실험체들이 번식을 통해 불멸성 유전을 증명했지만, 태어난 실험체들이 태어난 상태를 유지할 뿐이었다'는 이야기는 별도의 단편으로 꾸며도 재미있겠더라고요.

시체가 되살아나지만, 영혼과 두뇌가 없이 본능만 남은 상태라 야수로 돌변한다는 발상도 아주 좋았어요. 이들이 죽지 않는 상태로 군대, 경찰을 휩쓸어버리고, 잘려진 손발이 꿈틀대며 잘린 조각들이 엉망으로 붙어 괴물이 되어버리는 묘사도 일품이었고요. 절대 죽지 않는 존재를 없애기 위해 화산 폭발을 이용하여 우주 공간으로 날려버린다는 아이디어도 신선합니다. 스케일이 정말 남달라요.

물론 화산 폭발을 사람이 제어한다는건 지금도 상상하기 힘들기에, 설득력이 높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죽지 않는 불멸의 존재가 등장하는 작품에서 이 정도 허풍은 충분히 허용범위 안쪽이라 생각됩니다. 오히려 시대를 앞서간, 아니 시대를 초월한 끔찍한 아비규환을 그려낸 SF 좀비물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네요. 영화로 나와도 아주 근사했을 것 같습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2023/01/15

한밤의 지하철 공포미스테리 걸작선 - 정태원 편역 : 별점 2점

<<밤에 걷다>>와 <<본인방 살인 사건>> 다음에 집어든 오래된 책입니다. 최근 오래전 책을 다시 뒤져보는 취미에 푹 빠졌거든요. 이 책도 출간된지 벌써 30년이나 되었네요.
정태원 님께서 편역한 앤솔러지입니다. 서두에서는 공포를 다룬 미스테리 작품을 모았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다 그런건 아닙니다. 공포 보다는 서늘한 느낌을 가져다주는 '기묘한 맛'에 더 가깝다거나, 아예 블랙 코미디스러운 작품들도 포함되어 있는 탓입니다. 질 드레'를 '지르도 레'처럼 번역한걸보면 일본어 판본을 번역한 듯 하며, 그런걸 보면 정식 허가를 받고 출간된 책은 아닐 것으로 여겨지네요.
그래도 유명한 추리 소설 전문가 정태원 님이 편역한 책 답게, 작품별 작가 소개와 작품들의 출처를 대체로 정확하게 밝혀주고 있다는건 좋았습니다. 미국과 유럽, 일본 작품들이 고루 포함된 점도 장점이고요. 수록작 13편 중 눈여겨 볼 만한 좋은 작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는 아내가 불륜 상대와 자살한 뒤, 홀로 남은 아들을 외국에서 키우다가 아들이 이미 미쳐버렸다는걸 깨닫는 <<길고 어두운 겨울>>입니다. 아들을 말도 통하지 않는 베이비시터에게 맡겨두고, 일본에서 가져온 똑같은 동화책만 계속 읽는걸 방관했는데, 알고보니 동화책은 잘못 제본된 책이었고 아들은 동화책을 읽는게 아니었다는게 - 그냥 멍하니 같은 자세로 있었던 것 - 드러나는 마지막 장면이 대단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이 장면을 위한 빌드업도 탄탄하고요. 별점은 3.5점입니다. 수록작 중에서는 최고였어요. 작가 소노 아야꼬는 경력을 보면 이런 장르물을 발표했을걸로 생각되지 않는 작가인데 다른 작품도 궁금해집니다.
아내가 낳은 딸을 없애기로 결심한 남자가 어두운 공간에서 마녀의 시체라며 토막난 무언가를 건네준다는 <<10월 게임>>도 등골 서늘한 결말이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레이 브래드버리 작품다왔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다소 뻔했지만 <<오리 대신에>>, <<비만클럽>>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오리 대신에>>는 짤막한 분량으로 깜짝 반전을 가져다 준다는 점에서, <<비만클럽>>은 살찌워진 남편이 사람들에게 먹힐 때 일종의 특권으로 조리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데 '산채로 먹힘'을 선택한다는 발상이 독특했기 때문입니다. 내용의 설득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단점은 있지만 '기묘한 맛' 쇼트쇼트로는 우수한 편입니다.
조숙하고 다소 정신나간 아이가 어른을 없앤다는 설정의 <<식용 거북이>>와 <<살인유전>>은 각각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빼어난 묘사력, 스탠리 엘린의 반전 구성 능력이 돋보였습니다. <<식용 거북이>>는 예상 가능했다는 점에서, <<살인유전>>은 서사를 쌓아나가는 과정에서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은 있으나 평균 수준은 됩니다.

하지만 실망스러운 작품들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앤솔러지 전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클라이브 바커의 작품들이 문제라 생각됩니다. '공포'를 다룬 장르물에 적합한건 사실입니다만, <<피의 책>>이라는 작가의 단편집에 이미 수록된 작품들을 그대로 수록해 놓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새로운 작품을 발견하는 기쁨은 전혀 느낄 수 없었어요.
최소한 여러 단편집에서 대표작만 엄선하여 수록했어야 했는데, <<피의 책>> 수록작 중에서 최고의 작품들인지도 솔직히 미심쩍었습니다. <<한밤의 지하철>>은 <<미드나이트 미트 트레인>>이라는 영화로 재탄생할 정도로 유명한 작품으로 기승전결은 확실하고 화끈하게 달려주는 괜찮은 작품이라 예외로 치더라도, 마을 사람들이 거인을 만들고 자멸한다는 <<언덕에 마을이>>와 암세포가 사악한 크리쳐로 변해 사람들을 습격한다는 <<영화관의 악령>>은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기괴한 상상력 외에는 건질게 없었으니까요. 결과물도 재미보다는 혐오쪽에 가까왔습니다. <<영화관의 악령>>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형과 사투를 잔혹한 묘사로 버무린게 전부라 더더욱 그러했습니다.
<<신 투명인간>>은 존 딕슨 카의 정통 추리물로 작품 수준을 떠나 왜 이 앤솔러지에 수록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호러물과는 전혀 궤를 달리하는 작품인데 말이지요. 추리적으로도 영 별로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이전에는 평균 이상이라 호평했었는데, 번역의 문제였을까요?
<<아내 살인 되돌리기>>, <<살고 싶어했던 여자>>는 양산형 심리 서스펜스 스릴러로 많이 흔해빠진 설정과 전개를 보여주는데다가 별로 무섭지 않은 등 감점 요소가 많았습니다. <<두 병의 소오스>>는 걸작이라는건 분명하나 이 앤솔러지에서는 빼는게 맞지 않았을까 싶네요. 워낙에 많은 이런저런 앤솔러지에 수록된만큼 신선함도 떨어질 뿐더러, 공포와는 좀 거리가 있는 '기묘한 맛'에 가까운 작품이니까요.

그래서 전체적인 별점은 2점입니다. 30년이 지나는 동안 정식 출간된 좋은 앤솔러지가 많아진만큼, 다른 책을 구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어차피 절판된지 오래라 구해보시기도 힘드실거에요. 알라딘에서는 책 검색조차 되지 않는군요.

2020/06/27

악몽과 몽상 1 - 스티븐 킹 / 이은선 : 별점 2.5점

악몽과 몽상 1 - 6점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엘릭시르

스티븐 킹의 단편집으로 어쩌다보니 2권부터 읽고, 뒤이어 읽게 되었네요. 2권과 마찬가지로 모두 열 두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지만, 모두 완성된 단편이라는 점에서는 차이를 보입니다. 순문학적 작품보다는 박진감넘치는 화끈한 계열이 많다는 점은 2권과 같고요.

하지만 다양한 장르물이 수록된 2권에 비하면, 장르적인 변주는 거의 없습니다. 크리쳐 호러, 범죄 액션 스릴러가 여섯 편이나 되거든요. 게다가 대체로 어딘가에서 보아왔던 설정이 많아서 2권보다는 실망스러웠습니다. 순문학을 추구한건 아니겠지만 도무지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작품도 세 편이나 수록되어 있고요. "돌런의 캐딜락"을 비롯해서, 화끈한 계열 작품들은 나쁘지 않았지만, 비슷한 설정과 분위기의 작품들이 연달아 이어져서 읽으면 읽을 수록 지루해진다는 문제도 큽니다. 강-강-강이 아니라 강-중-약으로 구성하는 편집의 묘가 아쉽더군요.

그래도 전체 평균한 별점은 2.5점입니다. 스티븐 킹 다운 작품들은 여전한 매력을 선사해주니까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세요.

"돌런의 캐딜락"

아내를 죽게 만든 갱단 보스 돌런을 향한 초등학교 교사의 집념의 복수극으로 약 80페이지 가량 되는 단편인데, 대부분이라 할 수 있는 거의 60페이지 분량이 복수의 '과정'입니다. 

복수의 방법이 굉장히 황당해서 인상적입니다. 돌런이 이용하는 라스베이거스 고속도로가 공사로 막혔을 때, 그 곳에 캐딜락이 완벽하게 파묻힐 수 있는 거대한 함정을 파는거지요. 그리고 돌런의 차가 지나갈 때 '전방에 우회도로' 표지판을 치우고 돌런의 캐딜락이 함정에 쳐박히게 만듭니다. "루니툰"에서 코요테가 로드러너를 잡기 위해 꾸미는 함정과 비슷한 발상이에요.

계획은 간단하지만, 작열하는 라스베이거스의 태양 아래에서 폭 1.5m, 길이 13미터에 15세제곱미터의 흙을 파내는 과정 묘사는 정말 엄청납니다. 굴착기의 도움을 빌리지만 여러 번 죽을 뻔 하고, 포기할 뻔 하는 모습이 스티븐 킹의 날 것 그대로의 묘사로 생생하게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정말 눈 앞에서 사람이 익어가면서 땅을 파는 모습과 그 열기가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묘사였어요.

하지만 돌란이 그 길을 지난다는 걸 알았다면 이런 생고생을 하지 않아도 다른 좋은 방법이 많지 않았을까 싶은데, 지나칠 정도로 공이 많이 드는 복수극이기는 하네요. 제가 본 복수극 중에서도 역대급으로 손에 꼽을 수준입니다. 돌런의 캐딜락이 방탄까지 완벽한 탱크같은 차이며, 항상 2명의 프로 보디가드와 함께 하기 때문에 직접 공격은 여러모로 위험하다는 이유를 드는데 그리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다이너마이트를 파 묻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요? 함정을 파는 계산처럼 속도와 시간을 계산해서 넓은 범위를 폭파시키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그래도 재미면에서는 나무랄데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확실한 권선징악이라는 점, 그리고 독특한 복수 방법과 완벽한 완전 범죄라는 점도 좋았고요.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별점은 4점입니다.

"난장판의 끝"

하워드의 동생인 천재 바비는 세계 평화를 꿈꾸다가 우연히 '라플라타'라는 마을이 범죄가 전혀 없는 평화로운 곳이라는걸 알게된 뒤, 그 곳의 물에 특별한 성분이 있다는걸 밝혀냈다. 바비는 그 물을 농축하여 화산 폭발을 통해 전 세계로 뿌리는데...

"살인 단백질 이야기""엘저넌에게 꽃을"을 결합한 이야기입니다. 물 안에 뇌와 비슷한 단백질 성분이 있는데, 이것이 치매와 비슷한 증상을 유발한다는건 "살인 단백질 이야기"이고, 천재가 백치가 되어 선한 의도를 가지고 죽는다는 이야기는 "앨저넌에게 꽃을"이니까요. 특히 1인칭 시점의 일기 형태이며, 글쓴이가 바보가 되었다는 결말은 판박이에요.
한 마디로 내용과 전개, 설정에 새로운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또 엄청난 천재라는 바비가 이 물의 성분이 무엇인지 정말로 알아내지 못하고 엄청난 재앙을 초래한다는 전개는 앞 뒤가 맞지 않아서 실망스러웠어요.

스티븐 킹의 흥미진진한 묘사 덕분에 몰입할 수 있기는 합니다만, 스티븐 킹 만의 무언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어린 아이들을 허락하라" 

소갯글은 '옥수수밭의 사악한 아이들이 돌아온다!'입니다만, 내용은 많이 다릅니다. 아이들이 초자연적인 무언가로 변했다고 믿는 노처녀 교사 시들리 부인이 결국 아이들을 죽이다가 체포된 뒤 자살한다는 이야기거든요. 그래도 초자연적인 존재에게 밀리면서 점차 궁지에 몰리는 시들리 부인에 대한 묘사는 아주 흥미진진합니다. 시들리 부인이 폭주해서 아이들을 살해하는 것 역시 예상대로지만 긴장감넘치게 풀어내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들리 부인이 진짜 미친건지, 아니면 아이들이 정말로 무언가에 점령당해버려 초자연적인 존재가 된 건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편이 나았을 겁니다. 결말에서 은근슬쩍 후자일 거라는 여운을 남기는데, 모호한 채로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결말이 답답하기는 해도 작품과는 더 잘 어울렸을 것 같네요. 지금의 결말은, A급 심리 스릴러가 B급 싸구려 호러물로 끝난 느낌이라 별로였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나이트 플라이어" 

타블로이드 업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민완기자 디스는 경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공항에서 살인을 저지르는 흡혈귀 '나이트 플라이어'를 쫓아 위험천만한 비행에 나섰다. 그리고 노스캐롤라이나 월밍턴에서 드디어 '나이트 플라이어'와 조우하는데...

영화화도 된 유명한 작품이지요. 디스가 공항에 착륙하다가 폭풍우와 벼락 등으로 위기에 처하는 장면 묘사는 박진감이 넘치다 못해 터져나갈 정도이고, 월밍턴 공항에서 살육당한 시체를 보고 화장실 세면대에 토악질을 하다가 거울로 흡혈귀 드와이트 렌필드가 소변보는 모습을 확인하는 부분은 그야말로 압권입니다. 흡혈귀는 거울에 비치지 않기 때문에 피에 물든 소변 줄기만 보인다는건데, 정말 기가 막혀요.

그러나 내용은 별게 없습니다. 흡혈귀 드와이트 렌필드의 기원이나 흡혈과 살인의 목적, 동기, 이유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결말 역시 경찰이 디스를 체포하는 듯한 묘사가 전부라 어정쩡한 느낌이 들거든요. 디스가 기사를 썼는지 안 썼는지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요. 영화 쪽을 확인해보니 흡혈귀에 대한 설명이 없는건 마찬가지지만,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 영화쪽 결말만큼은 소설보다 더 괜찮아 보였습니다. 디스가 살인마이고, 흡혈귀는 그의 상상일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사회 비판적인 의미도 담고 있는 그럴듯한 반전이었다 생각되네요.

동기와 결말이 어쨌건 간에, 흥미로운 전개와 묘사만으로도 읽는 재미는 충분했던 작품. 하긴, 흡혈귀가 피를 빨아 먹고 사람을 죽이는게 무슨 이유가 중요하겠습니까. 그냥 괴물이니까 그런거지. 별점은 2.5점입니다.

"팝시"

처음에는 유괴물로 생각되었습니다. 유괴범 셰리던이 아동 유괴를 시작하게 된 계기, 그로부터 유괴 행각이 이어지는 전개가 흥미롭게 펼쳐지거든요. 그러나 "나이트플라이어"와 마찬가지로 흡혈귀가 나오는 크리쳐 고어물입니다. 크리쳐는 바로 제목이기도 한 '팝시'고요. 팝시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어디에 있어도 유괴된 이이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괴범 셰리던의 자동차를 찾아내어 습격하는게 작품의 클라이막스인데, 역시나 킹 다운 박진감넘치는 묘사가 일품입니다.
유괴된 아이가 팝시의 손자로 이른바 크리쳐 혈족이라는 살짝의 반전도 나쁘지 않으며,도 아동 유괴범 셰리던에게 처절한 응징을 가하는게 또 다른 악인 흡혈귀라는 설정이 재미있었습니다. 권선징악 측면에서도 마음에 드네요.

스티븐 킹의 장점이 20페이지 안쪽의 분량에 전부 담긴, 공포 소설가 스티븐 킹을 대변할만한 단편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익숙해질거야"

캐슬록의 노인들이 잡화점에 모여 폐허가 된 뉴올 저택에 대해서 이런저런 추억을 이야기한다는 내용의 작품.

솔직히 뭘 이야기하려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코라 뉴올이 게리 폴슨에게 왜 추잡한 짓을 했는지. 노인들의 기억이 진짜인지, 허구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이야기가 완성된건지 아닌지도 헛갈리고요. 뉴올 저택을 다시 짓는 것도 당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 수가 없더군요.

스티븐 킹이 뭔가 있어보이는 이야기를 하려는거 같기는 합니다만, 저는 기승전결 확실한 괴물 나오는 이야기가 더 좋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움직이는 틀니"

잡화점에서 우연히 손에 넣은 거대한 움직이는 틀니 장난감이 악당을 물리친다는 내용의 작품. 간단한 설정만 보아도 무척 황당해 보이죠? 하지만 이를 박진감 넘치게, 설득력있게 풀어내는 묘사는 정말이지 장난이 아닙니다. 특히나 호건과 브라이언의 사투, 이어지는 브라이언과 틀니의 사투는 그야말로 명불허전이에요. 모래바람과 태풍이 불어오는 와중에 갇힌 차 안에서 두 명의 등장인물만으로 풀어가는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몰입감 넘치게 선사한다는건 정말이지 타고난 재능이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물론 움직이는 틀니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없고, 이야기의 개연성은 전무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악마의 소도구였다던가, 누군가의 저주였다던가하는 최소한의 설명마저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류의 이야기에서 그런걸 기대하면 안되겠죠? 그런 점에서는 "나이트 플라이어"와 비슷하지만, 정의가 악을 물리친다는 이 쪽이 더 제 취향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헌사"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잘 모르겠다 2. 

흑인 하우스키퍼 마서 로즈월이 자신의 아들이 내 놓은 첫 소설책에 대해 친구 다시와 술을 마시면서 하는 이야기인데, 내용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친부는 강도짓을 하다가 죽은 조니인게 명확하지만, 흑인 마녀 마마 들로름에 의해서 그 아이의 아버지는 유명한 백인 소설가 피터 제프리스가 되어 아이가 그 능력(?)을 이어받았다는 내용인가 싶기는 한데... 분명하지는 않네요. 설령 그렇다 치더라도, 기승전결로 완결되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모르는 내용에, 완성된 이야기로 보이지도 않아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움직이는 손가락" 

세면대에서 기어나오는 손가락을 없애려고 고군부눝하는 하워드 미틀라의 이야기. 스티븐 킹 특유의 고어 크리쳐물과 궁지에 몰린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결합된 작품. 킹이 잠결에 화장실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아이디어를 떠올려 쓴 작품일거라 생각되네요. 변기 속에 손가락을 가두기는 했지만, 쾅쾅거리는 소리에 뚜껑을 열기 직전 이야기는 마무리 되며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결말이 인상적입니다.

설정 면에서 치밀한 맛은 없고, 개연성도 많이 부족하지만 킹이 크리쳐 물의 대가라는걸 새삼 느끼게 해 주는 작품이었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운동화"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3. 

결국 존 텔은 유령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듣기는 합니다. 하지만 유령은 존 텔 주변 인물에 대해서만 몇 가지 이야기하고 말 뿐이에요. 폴 재닝스가 범인으로 삼만 달러를 넘게 챙겼다고 해도... 그게 존 텔 앞에 나타난 이유가 될 수는 없지요. 그렇다고 존 텔의 성장기로 보기에도 여러모로 애매했고요.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라는 점에서 다른 알 수 없는 이야기들보다 낫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좋은 점수를 줄 만한 여지가 있지는 않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밴드가 엄청 많더군"

여행객이 길을 잃은 뒤 이상한 마을에 방문하여 위험에 처한다는 내용의 작품은 굉장히 많습니다. 제가 리뷰로 소개했던 작품만 해도 러브크래프트의 "인스머스 (인스마우스)의 그림자"라던가 "히치콕 미스터리 매거진 걸작선" 수록작인 "역사적 오류" 등이 그러합니다. "웰컴 투 동막골"도 위험에 처하지 않다 뿐이지 기본 발상은 마찬가지라 할 수 있을테고요. 그 외에도 수많은 작품에서 사용된 설정이지요.

보통 이런 류의 이야기에서 마을이 숨기고 있는 비밀은 은밀한 의식과 관련이 있는게 보통입니다. 여행객들은 산 제물로 쓰이고요. 그런데 이 작품은 '은밀한 의식'에서 한 발, 아니 두 세 발자욱 더 나아갑니다. '은밀한 의식'이 아니라 난리법석의 로큰롤 공연을 추구하는 마을이었던거지요. 여행객들은 공연에 관객이 없어서 필요했던 것입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시장으로 나오는 등 설정이 워낙에 황당해서 우습기까지 한데, 이런 내용을 스티븐 킹의 묘사로 읽으니 공포가 따로 없다는게 재미있는 점이었습니다. 마을에서 탈출하기 위해 벌이는 자동차 추격신은 여전한 박력을 자랑하고요. 로큰롤 공연을 몇 일 동안 계속 보면 미쳐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공포스럽기도 하네요. 작중에 나오는대로 로큰롤 '헤븐'이 아니라 '로큰롤 헬'인 셈입니다.

딱히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지는 않지만 그 어떤 설정과 이야기라도 약간의 변주를 통해 박진감넘치는 호러 소설로 만드는 스티븐 킹의 필력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가정 분만" 

좀비가 창궐하는 세상에서, 외딴 섬 마을에서 아이를 낳으려는 매디의 이야기.

일단, 기둥이 되는 이야기는 아버지가 중심인 가정에서 살다가, 아버지의 사후 중심축을 잃고 흔들리던 매디에게 성실하고 충직한 남편 잭이 나타나 청혼하는 이야기입니다. 좀비 창궐로 시체가 되어 돌아온 잭을 매디가 도끼로 처단한 뒤, 가정 분만을 결심하는게 결말이고요. 이 이야기에 매디가 사는 섬마을 사람들이 자경단을 조직하여 마을에 하나 있는 공동묘지를 지키며 깨어나는 시체들을 토악질을 해 가며 해치우는 내용이 곁들여져 있습니다.

그런데 두 이야기가 난잡하게 흩어져 잘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에요. 한 개의 이야기를 하다가, 전혀 상관없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지요. 또 매디가 가정 분만을 결심하는게 딱히 대단해 보이지도 않아서 이게 기둥 이야기가 될 수 있나 싶었습니다. 전 세계에 좀비가 창궐했다면 어차피 다른 대안도 없잖아요? 기승전결로 보더라도, 완전한 '결'로 끝맺지 못한 느낌이라 조금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차라리 섬 마을 주민들이 힘을 합쳐 좀비를 격퇴하고 섬을 지켜내는 이야기로 끌고가는게 더 나았을겁니다. 마을 공동 묘지에서 되살아난 가족들과 싸우는 이야기는 충분히 드라마가 될 수 있으니까요.

2020/05/02

악몽과 몽상 2 - 스티븐 킹 / 이은선 : 별점 2.5점

악몽과 몽상 2 - 6점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엘릭시르

어쩌다보니 1을 읽지않고 2부터 읽게 된 스티븐 킹중단편집입니다. 12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보너스격인 논픽션 "고개를 숙여"와 시 "브루클린의 팔월", 우화인 "거지와 다이아몬드"를 제외하면 수록작은 9편입니다.

그간 순문학적인 부분으로 흘러가던 중, 단편집들과 비교해볼 때, 좀 더 화끈한 작품이 많다는게 특징이에요. 과거의 스티븐 킹 스타일을 보여주는 작품이 많기 때문입니다. 거장과 과거에 대한 오마쥬 형식의 작품들도 신선했고요. 전통적인 크리쳐 호러인 "장마", 기발한 호러 액션 모험물인 "10" 등이 과거 킹의 스타일을 보여준다면, "다섯 번째 4분의 1"은 화끈한 마쵸 하드보일드 액션, "크라우치앤드"는 러브크래프트크툴루 신화 오마쥬, "의사가 해결한 사건"은 셜록 홈스 파스티쉬로 모두 나름 매력있는 작품들이었습니다. "클라이드 엄니의 마지막 사건"도 하드보일드 탐정물에 변주를 가한 독특함이 좋았고요. "10"을 제외하면 대체로 클리셰로 가득한 친숙한 이야기들이지만, 워낙에 필력이 원숙하고 묘사가 대단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누구나 만들 수 있는걸 특별하게 만드는, 이런게 바로 장인의 솜씨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할아버지의 충고가 전부인 "내 귀염둥이 조랑말", 일종의 타임 슬립물인 "죄송합니다, 맞는 번호입니다", 기묘한 가족 드라마 SF인 "메이플 스트리트의 그 집"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화끈함이 부족했던 탓입니다. 부록격인 논픽션과 시, 우화는 딱히 점수를 주기 애매하고요.

그래도 12편 중 6편, 제대로 된 수록작만 치면 9편 중 6편이 평균 이상의 재미를 선사하니 전반적으로 괜찮은 작품집에는 분명합니다. 아주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어도 이 정도면 본전치기는 하는 셈이지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장마"

시골 마을 윌로에서 여름을 보내기 위해 찾아온 젊은 부부에게 마을 사람들이 그날 하루만 다른 곳에서 보낼걸 요구했다. 이유는 그날이 칠 년에 한 번 찾아오는 '두꺼비 장마'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존과 앨리스 부부는 객기를 부려 윌로에서 머무는데, 오래지않아 비처럼 내리는 무시무시한 식인 두꺼비 떼와 조우하게 된다.

그야말로 스티븐 킹! 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크리쳐 호러물입니다. 무언가 꿍꿍이를 숨기고 있는 마을 사람들, 비가 곧 오기 직전인 축축한 공기에 대한 묘사로 가득찬 도입부에서, 식인 두꺼비가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져 부부를 습격하는 중, 후반부까지의 전개 모두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눈을 떼기 힘들 정도였어요. 정말로 두꺼비가 장마처럼 쏟아진다니, 상상도 못했습니다... 두꺼비들이 모두 다음날 햇볕과 함께 녹아서 사라지는 이유가 젊은 부부를 장마 직전인 7년에 한 번씩 인신공양한 덕분일 거라는 결말도 꽤 참신했어요. 보통 이런 크리쳐 호러물의 경우, 원인이 무엇인지, 해결책은 무엇인지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게 대부분인데 최소한의 설명 정도는 덧붙인 셈이니까요.

달릴 때 확실히 달려주는 킹의 맛이 잘 살아 있는, 읽는 재미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그나저나, 마을 사람들의 권유대로 부부가 장마날 다른 곳에서 하룻밤을 보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조금 궁금한데, 소설의 결말처럼 결국 벌어질 일은 벌어졌겠죠?

"내 귀염둥이 조랑말"

할아버지가 "어른이 되면, 이상하게 시간이 빨리 갈 때가 있다"는 충고를 손자에게 해 주는게 전부입니다. 시골 마을에 대한 묘사도 좋고, 시간이 빨리가는 상황 설명도 흥미롭지만, 한 편의 이야기로 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별다른 드라마도 없는데다가, 엄마는 알콜 중독에, 누나는 외모에 대한 자격지심으로 뭉쳐있다는 등의 불필요한 묘사가 많아서 읽기도 지루했고요.
아니나 다를까, 책 뒤 해설을 보니 손자 클라이브 배닝이 살인 청부업자가 된 이야기를 그린 오래전 '리처드 바크만' 필명으로 착수했던 동명 장편에서 뽑아낸 회상 장면이라는군요.

순문학적인 소양이 엿보이기는 하나, 구태여 찾아 읽어볼 필요는 없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죄송합니다, 맞는 번호입니다"

작가 빌 위더먼이 아내, 세 명의 자식과 함께 살고 있는 집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끔찍하고 처절한 목소리로 "제발 데려가..."는 말을 남기고 끊어진 전화를 받은 아내 케이티는, 그 목소리가 자기 가족이 확실하다고 느끼고 기숙사의 딸, 어머니 등의 안부를 확인했다. 그리고 동생이 연락이 되지 않자 남편과 함께 그 집으로 찾아가는데....

시나리오로 쓰여진 작품입니다. 덕분에 시각적인 상상과 여러가지 배경 음악들을 머릿 속에 떠올리기 좋았습니다. 전화를 걸어온게 다름아닌 '미래의 케이티' 였다는 진상도 그럴듯했고요. 목소리를 듣자마자 가족임을 확신했다는데 그게 바로 자기였다니! 이런거야말로 발상의 전환이 아닐까 싶네요. 시공을 초월하여 메시지를 나누는 작품은 많지만, 연인이나 가족이 아니라 본인 자신이었다는 작품은 처음 봤습니다.

그러나 "제발 데려가.."는 그날 바로 심장발작을 일으킨 빌 위더먼을 병원으로 데려가라는 뜻이었다는건 좀 허무합니다. 전화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면, 걸 때에 보다 명확하게 메시지를 남기는게 당연하잖아요? 빌 위더먼이 처제의 집을 찾아가며 느끼는 서스펜스는 나쁘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작가에게서 기대해 봄 직한 공포나 스릴, 서스펜스도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고요.

소품에 가까운 작품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이대로 영상화되었다는데, 영상물로 보는게 훨 낫지 싶네요.

"10"

출근 후 잠깐 담배를 피우러 나온 브랜든 피어슨은 '박쥐 인간'을 보고 충격에 휩싸였다. 비명을 지르려던 그를 진정시킨건 같은 회사 프로그래머 듀크였다. 듀크는 '박쥐 인간'은 흡연자들에게만 보인다며 브랜든을 '박쥐 인간'을 본 사람들 모임에 초대했다. 그러나 모임은 리더 델레이의 배신으로 박쥐 인간의 습격을 받게 되고, 브랜든은 모임에서 처음 만난 캐머런, 모이라와 함께 탈출하는데....

아, 세상에 이런 작품이 있다니! 출근 후 10시, 지정된 흡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끼리 일종의 유대 관계가 생길 수 있다는 건 저 역시 과거 흡연자라서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소수의 흡연자들만 그들을 지배하는 사악한 '박쥐 인간'을 꿰뚫어보는 능력을 갖게 된다는 생각은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죠. 금연 열풍, 담배 혐오가 널리 퍼지고 있는 현대 사회에 대한 작가의 역습이자 발버둥같은 작품이에요. 물론 흡연자들에게는 경전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테고요. 스티븐 킹이 흡연자일 거라는 확신이 듭니다.

그러나 좋았던 아이디어에 비하면 전개는 그냥 그렇습니다. 일단 박쥐 인간과의 혈투가 시시합니다. 끔찍하게 생겼을 뿐, 별다른 능력이 있지도 않고 물리적 공격에 바로 격퇴되기 때문입니다. 어찌어찌해서 겨우 오마하로 탈출한 뒤, 브랜든 일행이 다시 '10시의 사람들'을 규합하여 박쥐 처단에 나선다는 한 페이지짜리 후일담으로 끝낼 이야기도 아니었고요. 서둘러 대충 끝낸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좀 아쉬웠어요. 아울러 '10시의 사람들'은 그냥 흡연자가 아니라 '담배를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라는 디테일도 사족이었다 생각되네요.

하지만 그 어떤 단점에도 워낙에 아이디어가 압도적이라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이런 생각과 발상은 정말이지 본받고 싶네요. 아직도 담배를 피우는 제 주변 흡연자들에게 권해주고 싶습니다.

"크라우치 엔드"

남편이 실종되었다며 미국인 로니 프리먼이 경찰에 신고했다. 그녀는 극심한 공포에 사로잡힌 채, 경찰 베터와 로버트 파넘 순경에게 부부가 방문했던 런던 근교 '크라우치엔드'에서 겪었던 기묘한 경험을 상세하게 이야기하는데...

크라우치엔드가 크툴루를 위한 '크라우치엔드 토운'으로 이어지고, 그곳에서 부부가 크툴루를 만난다는 이야기입니다. 러브크래프트를 위한 오마쥬로 러브크래프트와 크툴루 신화의 팬이라면 제법 즐길만한 작품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특별한 드라마는 없습니다. 부부가 겪는 공포스러운 상황만 이어질 뿐 크라우치엔드가 왜 크라우치엔드 토운으로 이어지는지, 어떻게 그 거리로 빠져들어 희생되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고요.물론 이런게 러브크래프트 작품이라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한 마디로 요악하자면, "지나치게 잘 쓴 팬픽"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메이플 스트리트의 그 집"

장남 트렌트, 여동생 리사와 로리, 막내 브라이언은 의붓 아버지 루와 함께 사는 집에서 기묘한 금속 생명체가 자라난다는걸 알게 되었다. 트렌트는 엄마가 루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로 기절까지 하자, 금속 생명체를 이용하여 루를 없앨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기는데...

집 안에서 기묘한 금속 생명체가 자라나고, 이윽고 그 생명체가 만든 시한장치에 의해 지하실에서 알 수 없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된걸 트렌트가 알아채는 부분까지는 꽤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카운트다운은 '미국에 사는 남자아이라면, 시계가 0을 가리키면 폭발하든지, 이륙하든지 둘 중 하나라는걸 알고 있다'는 설정에 따른 결말은 좀 안이했습니다. 아이의 생각 그대로, 단지 카운트다운에 의해 나중에 '이륙해 버린다'는건 너무 단순한 발상이었으니까요. 또 이 기계 생명체가 무엇인지, 왜 성장한 끝에 이륙했는지 등 설명이 전무해서 답답했습니다. 어차피 가상의 이야기라 하더라도, 설득력을 조금이나마 보충해 줄 만한 최소한의 설명은 필요했는데 말이지요.
그리고 아무리 엄마가 힘들었다 하더라도, 새 아빠에 집까지 없어져버리면 엄마가 네 아이를 데리고 잘 살 수 있었을까? 라고 질문하면 그리 희망적인 답을 할 수는 없을거에요. 실제로 엄마가 루를 엄청나게 사랑했을 수도 있고요. 한마디로 무책임한 결말입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잔인함은 전혀 찾아보기 힘든, 가족 드라마스러운 내용은 이색적이나 아이디어를 전개와 결말이 잘 받쳐주지 못했습니다.

"다섯 번째 4분의 1"

바니의 친구 제리는, 키넌에 의해 죽어가는 바니에게 들은 정보로 키넌과 병장을 습격했다. 이유는 바니에 대한 복수와 그들 4명이 나눠가진, 현금이 묻힌 4장의 지도 조각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부제는 "레이먼드 챈들러가 "4"을 쓴다면?" 인데, 내용도 그에 걸맞는 충실한 하드보일드 액션물입니다. 보물 지도 때문에 사람들을 서로 죽이는 고전적인 설정에 더해, 4인 중 마지막인 재거와 벌이는 죽음의 사투가 인상적이에요.

'다섯 번째 4분의 1'이라는 제목은 이미 죽은 바니와 주인공 제리, 그리고 키넌과 병장, 재거라는 등장인물 5명을 의미합니다. 등장인물은 5명 뿐이고 (심지어 한 명은 이미 죽었고), 장소도 키넌의 집과 병장의 집이 전부이며 분량도 굉장히 짧지만 화끈한 액션이 휘몰아쳐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레이먼드 챈들러라기 보다는 미키 스필레인에 가깝지 않나 싶더군요. 그만큼 파괴적이고 화끈했거든요.

한마디로 고전적이고 화끈한 마초 하드보일드 액션물로는 최고에요. 달릴 때 확실히 달려준, 그런 작품인 셈이죠. 딱히 드라마가 돋보이지는 않지만, 그런건 애초에 불필요해요. "터미네이터"에게서 내면 연기를 기대할 필요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의사가 해결한 사건"

홈스에게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찾아왔다. 헐 경이 밀실에서 살해되었는데, 방이 완벽한 밀실이었기 때문이었다. 헐 경은 가족들에게 가혹하게 대했던 터라, 아내와 아들들 모두 동기가 있던 상태였는데, 함께 방을 조사하던 왓슨이 사건의 진상을 꿰뚫는다.

와, 이제는 이런 작품까지 등장하네요. 스티븐 킹의 셜록 홈스 파스티쉬이자, 트릭이 사용된 본격물을 쓰다니! 정말이지 상상도 못했습니다. 작품도 놀라운 점이 많습니다. 홈스가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어서 제대로 현장 검증을 하지 못할 때, 왓슨이 진상을 꿰뚫고 추리 쇼를 벌이는 탐정 역을 맡는다는 과감한 설정, 피해자인 헐 경이 가족의 마음을 가지고 논 인간 말종이라 진범과 진상 모두를 알았지만 홈스, 왓슨, 레스트레이드 모두 진상을 덮고 단순 강도 사건으로 위장한다는 결말까지 모두 특이하거든요.

밀실 트릭의 정체는 화가인 둘째 아들 조리 헐이 엄청난 하이퍼 리얼리즘 기법으로 그려낸 배경 그림을 테이블 다리 사이에 설치하고, 그 뒤에 숨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특수 효과나 마술에서 쓰임직한 방법이죠. 주로 거울을 쓰는데, 하이퍼 리얼리즘, 극사실주의라는 미술 기법을 활용했다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개인적으로 비슷한 트릭을 예전 "경성탐정록" 창작 시절 써 먹어 볼까 고민했던 적이 있어서 그런지 무척 반갑기도 했고요.
또 이 트릭 하나 뿐만이 아니라, 헐 경은 통풍으로 걸을 때 앞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조리가 아버지를 지나쳐 서재로 먼저 들어갈 수 있었다던가, 조리가 방에 들어가 있던건 모든 가족이 알고 있어서 그들 모두가 공범이라는 등 추리적으로 볼 만한 부분이 많다는게 놀라왔어요.

물론 본격물 치고는 허술한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헐의 아내와 아들들이 모두 공모해서 헐을 죽일 생각이었다면 구태여 이런 복잡한 장치를 설치해가며 밀실을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요. 다 모여있는 응접실에서 범행을 저지른 뒤, 함께 현장을 조작하는게 더 현실적이잖아요? 하인 스탠리의 증언? 정 필요하면 스탠리까지 죽이면 됐을테고요...
트릭도 비록 헐 경이 비명을 질렀다는 변수가 있다손 치더라도, 애초에 너무 거창한 장치가 필요한 트릭이었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그림자까지 가짜로 만들어야 해서 공이 지나치게 많이 들고, 날씨에 따른 변수도 있었다는 점에서도 영 별로죠.
아울러 파스티쉬인데 캐릭터에 대해 지나치게 창조적인 해석이 들어간 것도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부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불호 쪽입니다. 왓슨의 성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게 특히나 이질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여러모로 독특하며, 제가 읽은 최초의 스티븐 킹 본격물이자 셜록 홈스 파스티쉬라는 가치는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셜록 홈스 팬이시라면 놓치기 마시길 바랍니다.

"클라이드 엄니의 마지막 사건"

유능한 사립탐정 클라이드 엄니는 어느날, 자신을 둘러싼 모든게 이상해졌다는걸 깨닫는다. 매일 시끄럽게 만드는 이웃 데믹 부부가 조용하고, 매일 아침 신문을 사는 신문팔이 피오리아가 복권에 담청되고, 단골인 식당 블론디스는 문을 닫고, 사무실이 있는 건물 엘리베이터 안내원 버넌이 은퇴한다고 하는 등 익숙치 않은 일들이 연이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클라이드 엄니 앞에 새뮤얼 D.랜드리라는 인물이 나타나, 그를 둘러싼 모든건 모두 소설 속 설정이며 자신이 그 모든걸 창조한 창조주, 작가라고 이야기하는데...

소설이나 영화 속 캐릭터와 현실의 작가, 또는 현실 세계가 만나서 사건이 벌어지는 작품은 많습니다. 특정 컨텐츠로 현실 인물이 빠져들어 벌이는 모험담이야 쌔고 쌨고, 현실과 픽션이 결합하여 벌어지는 일종의 패러독스를 다룬 작품도 있지요. 오래전 "라스트 액션 히어로"처럼요.

이 작품은 구태여 이야기하자면 후자 쪽에 가까운데, 특징이라면 픽션으로 빠져드는 현실 속 인물이 주인공이 아니라, 픽션 속 캐릭터의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자신의 세계를 멋대로 비집고 들어와, 그 세계를 엉망으로 만들고 심지어 나 자신을 지워버리는 멋대로인 창조주의 희생양이라는 포지션이에요. 마른 하늘에 날벼락 제대로 맞는 캐릭터인데, 이런 비현실적으로 암담한 상황 묘사야 말로 킹의 특기 중 하나이지요.

또 클라이드 엄니는 더쉴 해밋 등 정통파 하드보일드 작가의 영향을 짙게 받은 캐릭터이기 때문에 작 중에서 상황에 휘둘리면서도 추리하거나, 또는 상황 반전을 위해 노력하는 여러가지 행동들이 그야말로 클리셰대로라는 것도 재미있던 점입니다. 상대방에게 이야기를 계속 하도록 유도하는게 대표적이에요. 당연히 실패하지만요.

결국 새뮤얼 랜드리에게 자신의 세계를 빼앗긴 클라이드 엄니가 현실의 새뮤얼 랜드리가 된다는 결말도 독특합니다. 일종의 바꿔치기가 일어난건데, 클라이드 엄니는 하드보일드 탐정답게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소설을 창작하여 자신의 세계를 되찾을 결심을 한다는 마지막 장면도 인상적이에요. 그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죽어도 포기하지 않는게 탐정이니까요. 과연 클라이드 엄니가 새뮤얼 랜드리에 의해 붕괴한 자신의 소설 속 세계를 재 구성하여 되 찾을 수 있을지,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뻔한 설정이지만 약간의 변화로 새로움을 안겨다 준다는 점, 특별한 액션 없이 둘의 대화가 거의 대부분이지만, 긴장감도 넘친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좋은 작품이었어요. 별점은 3점입니다.

"고개를 숙여"

스티븐 킹의 아들 오언 킹이 뛰는 리틀 야구팀 뱅고어 웨스트가 지구 우승을 차지한 시즌에 대해 기록한 논픽션입니다. 리틀 야구이기는 하지만 마지막 회에 역전 홈런을 쏘아 올리는 등 상당히 드라마틱한 경기 묘사가 이어져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하지만, 별점을 주기에는 좀 애매한 결과물이에요. 제가 원한건 스티븐 킹의 논픽션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이 작품을 비롯하여 나머지 부록들에 대한 별점은 따로 없습니다. 참고하시길.

2021/09/03

리처드 매시슨 - 리처드 매시슨 / 최필원 : 별점 3점

리처드 매시슨 - 6점
리처드 매시슨 지음, 최필원 옮김/현대문학

호러, 장르 문학의 거장인 리처드 매시슨의 걸작선. 이전 '리처드 매드슨'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던 단편집은 거의 모두 읽어볼 정도로 좋아하는 작가라 기쁜 마음으로 구입해서 읽어보았습니다.

수록작들 대부분이 좋은 작품들이라 만족스러웠습니다. 무려 33편이나 되는 볼륨도 풍성하고요. SF, 호러, 범죄물, 드라마, 서스펜스 스릴러, 심지어 서부극까지 아우르는 장르적인 스펙트럼도 엄청나게 넓습니다. 전부 걸작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별점 5점, 4.5점, 4점의 걸작과 수작도 포함되어 있기에 전체 평균한 별점은 3점입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으시기 전 참고하세요.

그나저나 무슨 기준으로 선정된 작품들인지는 궁금하네요. 작가가 직접 선정한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지요. 이전에 읽었던 작품 중 분명 걸작이라고 생각했던 작품이 빠져있기도 하거든요.

"남자와 여자에게서 태어나다" 

흉칙한 무언가가 부모님에 의해 지하실에 쇠사슬에 묶여 갇혀 산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2021년에 읽기에는 많이 뻔합니다. 괴물이 다음 번에는 지하실에서 탈출해서 사람들을 덮친다는 여운을 남기지만, 명확한 결말이 더 낫지않나 생각되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사냥감" 

아멜리아는 애인에게 줄 선물로 기묘한 인형을 샀다. 인형을 구속한다는 금줄이 풀리자, 인형은 아멜리아를 죽이기 위한 공격을 시작하는데...

예전에 읽었던 작품입니다. 일종의 크리쳐물로 20cm밖에 안되는 나무 인형과 사투를 벌이는 묘사가 압권이에요. 시대가 흘렀어도 여전히 멋집니다. 

하지만 결말과 담고 있는 주제가 제 기억과 사뭇 달라서 의외였습니다. 아멜리아가 처참하게 희생된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아멜리아가 인형을 처단한 뒤, 스스로 사냥꾼이 되어 어머니를 죽이게 된다는 결말이더라고요. 착각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기억과 달라서 더 재미있게 읽은 것 같아요.

예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었던 사회적인 메시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미 장성해서 독립한 자녀를 구속하는게 살의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시사적이면서도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넘어가던 시기였을 발표 시점에는 충분히 공포스러웠을 시의적절한 메시지였다 생각되네요. 이런 메시지를 돌직구로, 매력적으로 한 가운데 꽂아넣는 작가의 솜씨도 대단하고요.

단, 결말에서 어머니를 죽일 결심을 한 아멜리아가 문의 빗장을 쉽게 연 건 좀 안일했습니다. 인형에게서 도망칠 때에는 여러번 실패했던 걸로 묘사되니까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사회파' 크리쳐 호러라는 신경지를 장르 문학 초창기에 개척한 명작입니다.

"마녀 전쟁"

군에서 키우는 일곱 마녀가 쳐들어오는 적군을 마법으로 물리친다는 이야기로, 마녀들이 각자 특기로 소환한 불과 물, 거대한 암석, 사자 등으로 적을 잔혹하게 몰살시키는 묘사가 내용의 전부입니다. 단지 이런 파괴적인 묘사를 쓰고 싶었던게 아닌가 싶어요. 이외에는 기승전결이 있지도 않으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그래도 파괴 묘사만큼은 확실히 볼 만 합니다. 예전에 읽었던 판본보다 번역이 훨씬 좋은 덕분이지요. 약간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 느낌도 드는데, 이런 설정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군요.

"깔끔한 집" 

소설가인 나는 아내 루시와 함께 굉장히 저렴한 아파트로 이사왔다. 하지만 얼마 뒤, 아내는 아파트 지하실에 거대한 엔진이 있고, 관리인은 뒷통수에 눈이 달려있다는 말을 하면서 공포에 사로잡혔다. 나는 처음에는 아내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관리인을 미행하여 이 모든게 사실이라는걸 알게 되었다. 친한 이웃 필, 마지 부부에게 이 사실을 알린 뒤 함께 아파트가 이륙을 준비할 때 탈출에 성공하는데....

아파트가 로켓이라는 기상천외한 발상, 그리고 마지가 미치지 않았을까?라는 분위기를 풍기다가 그녀가 말했던게 모두 사실이라는게 드러나는 전개가 아주 일품이었던 SF 단편입니다. 서스펜스가 뭔지 제대로 보여줍니다. 아파트가 아니라 사실은 블록 전체가 우주선이라서 탈출이 불가능했다는 반전도 인상적이었고요. 외계인들이 지구인을 침략하는게 아니라 "빼앗는다"는 점에서는 "보디스내쳐"가 연상되기도 하네요.

독특한 설정, 아이디어와 함께 전개에서 긴장감과 흥미를 동시에 불러 일으키는, 작가의 장점이 잘 드러난 걸작입니다. 별점은 5점입니다.

"피의 아들" 

기묘한 아이 쥴스는 드라큘라가 되고 싶다는 망상에 빠졌다. 쥴스는 학교도 그만두고 배회하다가 동물원에서 흡혈 박쥐를 훔쳐내는데...

꽁트에 가까운 짤막한 단편으로, 분량과 흡혈 박쥐가 진짜 드라큘라였다는 반전으로 전형적인 '쇼트쇼트' 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반전은 뜬금없었고, 리처드 매시슨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묘사는 찾아보기 힘든 탓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이야기에 대한 설명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현재 이야기는 쥴스가 정신병자인지, 진짜 흡혈귀와 관련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뜻이 있는 곳에" 

나는 잠에서 깬 뒤, 관에 갖혀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이게 적들의 수작이라고 믿은 나는, 관을 탈출하기 위한 갖은 노력 끝에 결국 관 뚜껑을 부수고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주유소에서 아내에게 전화를 거는데...

'나'가 관에서 탈출하기 위한 노력이 작가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묘사로 잘 그려져 있을 뿐 아니라, '나'는 이미 7개월 전 죽었고, 거울로 본 '나'는 썩은 시체였다는 반전이 굉장히 좋았던 작품입니다. "환상특급" 등의 원작으로도 잘 어울릴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1인칭에서 3인칭으로 시점 전환되는, 그래서 거울 속 모습에 좀비가 보이는 식의 카메라 워크가 곁들여지면 아주 멋지지 않았을까요?

재미와 충격 외에는 설명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나 사소합니다. 얼마 전 읽었었던 좀비물 앤솔러지에 수록되었던, 흔해빠지고 수준 이하였던 작품들 보다는 몇 배 뛰어난 작품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사막 카페"

밥과 진 부부는 여행 중 우연히 사막에 위치한 카페에 들렸다. 진이 잠깐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밥이 사라져 버리고 마는데...

외딴 마을에서 맞이한, 남편 밥의 실종과 그에 따른 위기 의식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서스펜스 스릴러입니다. 

여행하던 외지인이 외딴 마을에서 겪는 위기를 그린 작품은 많습니다. 저도 많이 읽어보았고요. 이전 스티븐 킹의 "밴드가 엄청 많더군" 리뷰에서 언급했던 적도 있는데, 보통은 외딴 마을의 기묘한 집단 광기를 그리곤 하지요.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한 범죄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정통 범죄물로, 궁지에 몰린 피해자 진의 심리 묘사를 통해 순수한 공포, 서스펜스를 극대화한다는 점이 차이점입니다.

희생자를 화장실에서 납치하는 것에 불과한 단순한 범죄인데다가, 보안관 등장 후 별다른 위기없이 깔끔하게 해결된다는 건 조금 아쉽지만 단점은 사소할 뿐입니다. 장르물이 주어야 할 요소가 무엇인지를 꿰뚫고 제대로 달려주는 수작이기에 별점은 4점입니다.

"위조지폐"

생계에 지쳐 일탈을 꿈꾸던 윌리엄 O. 쿡씨는 복제인간을 만드는 장치를 개발합니다. 복제인간에게 온갖 귀찮은 일을 시키고 자신은 놀 생각으로요. 그러나 쿡씨의 복제인간답게, 복제인간도 놀고 싶어해서 결국 복제인간이 급증하게 된다는 블랙 코미디 콩트입니다. 전형적인 쇼트쇼트 물이기도 하고요. 설정은 재미있는데 기계가 폭발하고 복제인간이 그냥 사라져 버렸다는 결말은 시시했습니다. 뭔가 반전이 있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싶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유령선" 

로스 선장과 메이슨, 미키는 외계 행성에 착륙했다. 우연히 목격한 인공물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들이 추락한 우주선으로 밝혀진 인공물 속에서 발견한 건, 그들 세 명의 시체였다...

일행들이 자기들의 시체를 목격하고 느끼는 공포와 현재 상황에 대해 어떻게든 합리적으로 설명하려는 노력이 잘 그려진 SF 단편입니다. 

그러나 자기 시체를 발견한 사람이, 자기는 이미 죽었고 시체를 바라보는 자신은 유령이라는 걸 깨닫는다는 결말은, 발표 당시였다면 모를까 지금 읽기에는 다소 낡은 설정입니다. 제목부터가 스포일러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시체의 춤" 

대학 신입생 페기는 나쁜 선배들에게 이끌려 법적으로 금지된 루피 춤을 보러 갔다가 충격에 기절하고 마는데...

세기말 감성이 살아있는 독특한 SF. 예전에 읽었던 작품인데, 그 때와 평가는 거의 동일합니다. 페기 시점으로 묘사된 광란의 루피 춤 공연 묘사는 아주 좋습니다. 순진한 신입생이 거부하고 싶은 방탕과 쾌락도 끔찍하게, 그러면서도 잘 그려내고 있고요. 일종의 좀비인 루피 바이러스 희생자의 발작을 '춤'이라고 이름 붙여 공연한다는 끔찍한 아이디어도 돋보였습니다.

그러나 페기도 잘 노는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방탕함에 빠져버린다는 듯한 결말은 별로였습니다. 이 결말이 루피 춤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페기가 루피 바이러스 희생자가 되었다던가, 같은 반전이 필요했습니다. 지금의 결과물만 놓고 보면, '호기심으로 좀비를 보러 갔다 왔다. 무서웠다." 정도의 이야기일 뿐이니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몽둥이를 든 남자" 

타임스퀘어에 온 몸이 털로 덮이고 몽둥이를 든 원시인 같은 남자가 나타났다. 출동한 경찰이 총을 쏴서 겨우 원시인을 제압했다.

조금 무식하고 무례한 젊은 마초 양아치 1인칭 대화체로 진행되는 이야기인데 화자 설정도 진부했고, 결말도 뻔했습니다. 핵심은 원시인이 온 곳이 '미래'였을 수도 있다는 건데, 미래에 문명이 퇴화할 거라는 설정의 이야기는 고전 "타임머신"을 비롯해서 너무 많으니까요. 조금 지적인 노인네를 '빨갱이'라고 지칭하는 부분에서 시대가 느껴지기는 했지만 다른 부분은 딱히 건질게 없더군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버튼, 버튼" 

영화까지 나왔던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로 '부부 사이도 서로 모른다'는 걸 드러내는 작품입니다. 기묘한 설정에 더해 서늘하고 섬찟한 느낌과 반전이 있는, '기묘한 맛'류의 쇼트쇼트입니다. 예전에 읽었을 때에는 박한 평을 했었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기묘한 맛' 류로는 손에 꼽을 만한 좋은 작품이네요. 왜 나쁜 평가를 했었을까요? 별점은 4.5점입니다.

"결투" 

스티븐 스필버그의 극영화 데뷰작의 원작으로도 잘 알려진 작품. 격렬한 카 체이스를 어떻게 글로 묘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있다면, 모범 답안이라고 해도 좋을 작품입니다. 주인공이 트럭에 쫓기면서 느끼는 공포와 긴장감 등이 아주 잘 드러나 있으니까요.

그러나 트럭 운전사의 분노가 잘 이해되지는 않고, 마지막 트럭의 최후가 너무 뜬금없다는게 아쉽습니다. 확실한 급커브였다던가 등 속도를 반드시 줄여야 했다는걸 설명해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심판의 날" 

루크는 심부름을 왔다가 목이 잘린 과부 블랙웰의 시체를 발견했다. 그녀의 아들 짐은 시체를 본 뒤, 극심한 공포로 광란 상태였다. 루크의 아버지 샘은 현장 조사를 통해 과부가 아들을 의도적으로 미치게 만들었다는 증거를 찾아냈다. 그녀는 남편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남편을 죽게 만든 (물에 빠진 아들을 구하려다가 죽었음) 아들을 증오했었다....

과부 블랙웰이 증오심 때문에 의도적으로 아들 짐이 자신이 없으면 미쳐버리도록 차근차근 준비한 뒤,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결말이 놀라운 작품입니다. 미스터리와 서스펜스, 끔찍한 공포가 짧은 분량 안에 모두 포함되어 선명하게 드러나는 걸작이에요. 블랙웰 부인이 목을 멘 칼이 어디 갔을지?에 대한 부분이 설명되지 않은건 약간 아쉽지만, 단점은 미미한 수준입니다. 별점은 5점입니다. 이 단편 하나를 읽은 것 만으로도 돈이 아깝지가 않네요.

덧붙이자면, 엄청난 의지로 저지른 자살이라는 설정은 크리스티 여사님의 걸작 심령 서스펜스 호러물인 "네번째 남자"가 살짝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 작품도 시대를 앞서간 걸작이었지요.

"죄수" 

1944년, 비밀 연구소에서 핵분열을 연구하던 핵물리학자 필립 존슨은 폭발 사고 후 눈을 뜨자, 자신이 2시간 뒤 사형당할 1954년의 사형수 존 라일리 몸 속에 들어와 있다는걸 알게 되는데...

핵폭발이 시공을 초월할 수 있다는 SF적인 발상을 담은 심리 서스펜스 스릴러입니다. 과연 필립 존슨이 자신이 사형수 존 라일리가 아니라는걸 2시간 안에 증명할 수 있을까?가 서스펜스의 핵심이고요.

그러나 필립 존슨의 노력은 신부를 한참 설득하다가 아내 전화번호를 주는 것 뿥입니다. 그 외에는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요. 덕분에 긴장감이 급격하게 떨어집니다... 신부가 그의 아내가 실존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며 마무리되는 결말도 애매했습니다. 진짜 필립 존슨의 아내가 없었는지, 아니면 신부가 귀찮아서 거짓말을 한 건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필립 존슨이 모든걸 체념하는 마지막 장면은 영 별로였습니다. 곧 죽을 상황인데, 어떻게든 발버둥 쳐 봤어야죠..

아이디어, 설정은 좋았지만 끌고가는 힘이 부족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하얀 웨딩 드레스" 

세상을 떠난 엄마 드레스에 푹 빠진 아이가 친구에게 몰래 엄마 방과 드레스를 보여주다가 폭주한다는 내용의, 미치광이 1인칭 시점으로 그려낸 혼란스러운 심리극입니다.

그런데 익히 보아왔던 설정과 내용이라 진부합니다. 더 큰 문제는 여백이 많아서 완성된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고요. 엄마는 못생겼고 드레스도 피투성이에 총 구멍이 나 있었다는게 살짝 드러나기는 하지만, 아이가 친구를 죽였는지, 엄마 사인은 무엇인지, 아이는 지금 어디 갇혀서 어떻게 된건지 설명되지 않는게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이발"

더운 여름날, 조는 기묘한 손님을 맞아 이발을 해 주었다. 손님은 손톱이 계속 자란다는 등 혼잣말을 읆조리고, 역한 냄새가 났다...

손님이 죽은 사람이었다는건 에상 가능했던 결말이었습니다. 지금 읽기에는 너무 낡은 설정이네요. 주머니에서 손을 꺼냈을 때 흙이 떨어진게 아니라, 손은 뼈 밖에 없었다고 하는게 좋지 않았을까요? 신선하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았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2만 피트 상공의 악몽" 

윌슨은 출장을 위해 탑승한 비행기 창문을 통해, 괴물이 비행기 날개 위에 앉아 있는걸 발견했다. 괴물은 다른 사람이 나타나면 숨어버려서 윌슨 눈에만 보였다. 비행기 엔진을 부수려고 시도하는 괴물을 막기 위해서, 윌슨은 비행 중인 비행기 문을 여는데...

영화판 "환상특급" 에피소드로도 잘 알려져 있는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로, 비행기를 타는 것에 대한 공포심, 신경증을 '날아가는 비행기 날개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는 괴물'로 형상화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윌슨이 커튼을 열고, 비행기 창문을 통해 자기를 노려보는 괴물을 처음 보는 장면 묘사는 정말이지 압권이에요. 비행기 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총을 가지고 비행기를 탈 수 있었던 등의 묘사에서는 시대를 느낄 수 있고요.

괴물에게 결국 총을 쏜 윌슨이 승객들에게 제압 당한 뒤 비행기 착륙 후 옮겨지는 결말은 다소 시시하지만, 아이디어와 묘사력이 발군이기에 추천하지 않을 수 없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장례식" 

클루니스 장례식장 장의사 모튼 실크라인에게 루트비히 아스페르가 찾아와서 최고급 장례식 준비를 요청했다. 그는 고인이 자신이라고 말했고, 장례식 날에는 하인인 곱추 이고르, 마녀, 늑대인간과 다른 흡혈귀들이 찾아 오는데...

드라큘라를 연상케하는 뱀파이어 루트비히 아스페르가 스스로의 장례식을 치룬다는 블랙 코미디로, 마지막에 다른 괴물 손님이 찾아온다는 반전도 좋아서 '쇼트쇼트'로는 더할나위 없었던 작품입니다. 장례식에서의 소동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것도 좋았고요. 작가의 다른 작품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데, 코미디의 정체성이 잘 살아있어서 놀랐습니다. 거장은 뭘 써도 거장인 법이겠지요? 오래 전에 읽기는 했었는데, 역시나 그 때도 좋은 평가를 했었네요. 제 별점은 4점입니다.

"태양에서 세번째" 

우주 비행사가 세계 멸망을 앞두고, 다른 행성으로 처자식과 이웃 사람들까지 우주선에 몰래 태우고 출발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태양에서 세 번째 행성이었다...

화자인 우주 비행사와 그 가족들이 다른 행성으로 떠나기 전 겪는 마음 속 불안과 혼란을 그리다가, 마지막에 그들이 있던 곳이 지구가 아니라 향한 곳이 지구라는 반전이 등장하는 짤막한 쇼트쇼트. 일종의 서술 트릭물이라고 해도 되겠네요. 쇼트쇼트로서는 우수한 수작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최후의 날" 

최후의 날을 맞아 음주, 난교, 광기어린 파괴 행위 등을 즐기던 리처드는, 가족의 소중함을 께닫고 마지막 순간을 어머니와 함께 보내려 한다.

리처드가 어머니와 함께 최후의 순간을 맞으며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걸 깨닫는다는 드라마. 여동생 가족이 죽음을 택하기 위해 약을 먹는 장면은 찡하면서도 괜찮았지만, 그 외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평이했습니다. 소설보다는 "환상특급"과 같이 영상물에 더 잘 어울렸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런 이야기도 나쁘지 않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장거리 전화" 

몸이 불편한 미스 킨에게 어느날 한 밤중, 폭풍우가 불어올 때 전화가 걸려왔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 뒤에도 전화는 계속 걸려왔고, 속삭임과 단조로운 흥얼거림에 이어 상대방으로부터 '여보세요'라는 목소리까지 들려오게 되었다. 전화 회사의 조사 결과 이 전화는 묘지에서 걸려온걸로 밝혀지는데...

정체 모를 전화가 계속 걸려온다는건 충분히 공포스러운 일이지요. 이런 설정의 이야기는 많이 있는데, 아쉽게도 이 작품은 다른 이야기만큼 공포스러운 상황을 잘 살리지 못했습니다. 일단 미스 킨의 불안부터가 설득력있게 다가오지 않았어요. 간호사의 말대로 전화를 그냥 끊던가, 수화기를 내려 놓던가, 전화선을 뽑아 놓을 수도 있었으니까요.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찾아온다는 걸 "제가 댁으로 갈게요." 라는 마지막 전화 목소리로 알려주는 결말은 괜찮았습니다만, 묘지에서 걸려왔다는게 드러났을 때 이미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설득력 낮은 진부한 이야기라 별점은 2점입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행복한 가정의 아빠인 회계사 로버트 카터는 어느날 면도를 하다가 깊숙하게 베였다. 그리고 상처 속 전선과 기계 장치를 보고, 자기가 로봇이라는 걸 깨달았다. 충격에 거리를 배회하던 카터는 도시가 로봇들로 가득차 있었고, 음식들도 모두 기름이었다는 걸 알아 채는데...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통상적인 의미, 즉 이야기를 모두 해결해 버리는 전능한 존재로서가 아니라 사전적 의미인 "기계 장치의 신"에서 가져온 이야기라는게 독특하네요. 내가 내가 아니라 다른 존재일 수 있다는 흔한 설정을 독보적인 로버트 카터의 심리 묘사로 차별화시킨 솜씨도 거장다왔으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전개도 괜찮았던 작품입니다.

그러나 로버트 카터가 진짜 로봇인지, 아니면 죽은 뒤 환상을 보는 건 지 알 수 없는 애매한 열린 결말은 좀 아쉬웠습니다. 보다 명확한 설명이 뒤따르고 반전도 있는 결말을 기대했거든요. 물론 로버트 카터가 쓰러지면서 떠올리는 성경 구절 - "하느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의 사람을 만들고..." - 은 그가 기계라는걸 연상케 합니다만, 명확하게 증명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기계라고 한다면, 그들을 만든 '하느님'이 누구인지도 설명이 필요해 보였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자신이 기계라고 믿는 주인공 이름이 '로버트'라는게 의미심장하네요. 우리나라로 변주한다면 '노보두 씨' 정도로 부르면 되겠지요?

"기록적인 사건" 

가방끈 짧은 쉰 아홉살의 대학교 건물 관리인 프레드는 어느날 아침 잠에서 깬 뒤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대학교 건물 청소 및 수리를 하면서 대학의 모든 지식을 머릿 속에 넣게 되는데....

갑자기 모든 지식을 머릿 속에 넣게 된다는 독특한 설정과 그 이유가 인상적이었던 소품. 외계인들이 지구의 지식을 손에 쉽게 넣고자 프레드 머릿 속에 대학교 지식을 집어 넣은 뒤 그걸 한 방에 빼 먹은 것이지요. 한마디로 프레드를 일종의 외장 하드로 사용한 셈입니다. 좋은 쇼트쇼트 작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안에서 죽다" 

돈과 베티 부부에게 '돈 타일러'를 찾는 전화가 걸려왔다. 돈은 자기는 돈 마틴이라고 주장히먀 화를 냈지만, 전화를 건 사람은 돈을 죽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날 밤, 누군가 부부의 집에 침임했고, 돈을 제압한 침입자는 돈이 저질렀던 과거 범죄와 배신에 대해 추궁하는데....

과거 저질렀던 범죄에서 발을 빼고,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아온지 10년 만에 위기가 찾아온다는 서스펜스 범죄물. 돈이 침입자인 심슨과 사투를 벌인 끝에 그를 죽이고, 모든걸 알게 된 아내 베티가 경찰에 빈집털이가 들어와 싸우다 사고가 났다고 신고하는 결말까지 깔끔했던 작품입니다.

그러나 긴장감은 약한 편입니다. 악당 심슨이 침입한 뒤 하는게 없는 탓이에요. 총으로 부부를 위협하고, 과거 이야기를 떠벌이는게 전부거든요. 서스펜스를 끌어올릴 한 방이 필요했습니다. 코넬 울리치가 썼더라면 훨씬 멋진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정복자" 

1871년, 그랜트빌 잡화상 주인인 나는 남북전쟁 때 죽은 아들 루와 닮은 젊은 청년과 역마차를 함께 타게 되었다. 알고보니 그는 그랜트빌 최고의 총잡이와 싸울 목적이었다. 라이커라는 청년은 그랜트빌의 총잡이 바스 셀커크를 깔끔하게 사살했지만, 습격해 온 셀커크의 부하들에게 난사당해 허무하게 죽고 말았다...

"용서받지 못한 자" 느낌이 드는 현실적이면서도 허무한 서부극입니다. 라이커 캐릭터가 아주 인상적이에요. 서부극 총잡이들이 영웅이 아니라 허깨비라는걸 잘 보여주거든요. 어릴 때 부터 총잡이를 동경하여 연습을 거듭한 끝에 빠른 속사와 사격술을 익혔지만, 정신적으로는 애와 다름없는 철부지로, 1대 1 결투에서는 이겼지만 여섯 명의 악당이 습격하자 울며 애원하다가 총에 맞아서 꼴사납게 죽기 때문이지요. 풍자적이면서도 현실 비판적인 느낌이 좋았던 작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홀리데이 맨" 

데이비드는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내키지 않는 출근길에 나선다...

데이비드가 출근을 하기 싫어했던 이유는 그의 직업이 끔찍했던 탓입니다. 그는 사람들의 죽음을 미리 지켜보고, 사망자 수를 예측하는 일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가장 중요한 데이비드의 심리 묘사가 그닥이었고, 업무의 끔찍함도 잘 드러나지 않는게 단점입니다. 이 업무가 아무리 끔찍해도 누군가 해야 한다는 당위성도 느끼기 어려웠고요. 전개가 밋밋하고 반전도 그닥이었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분명 예전에 읽었었는데, 기억에 남아있지 않은걸 보면 예전에도 별로 인상에 남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뱀파이어란건 없다" 

루마니아에 있는 작은 마을 솔타에 사는 게리아 부인은 어느날 밤, 누군가의 습격으로 목을 물어 뜯겨 피를 빨린채 발견되었다. 게리아 박사는 다음날부터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부인을 지켰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결국 게리아 박사는 후배 미카엘 바레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크리쳐 호러물로 시작해서 깔끔한 범죄물로 마무리되는 작품입니다. 왜 범죄물이냐 하면, 뱀파이어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게리아 박사가 커피에 아편을 타서 아내를 재운 뒤, 목에서 피를 뽑아냈던 거지요. 이유는 그녀가 후배 바레스와 불륜을 저질렀기 때문이었고요. 마지막은 바레스가 뱀파이어인 것 처럼 꾸민 뒤, 그 심장에 말뚝을 박아 넣을 거라며 마무리됩니다. 

기발한 소재와 불륜에 대한 복수라는 동기, 의외의 반전, 내용은 모두 합리적으로 설명되며 비교적 짤막한 분량이라는 점 등 전형적인 미국식 쇼트쇼트의 특징을 모두 갖춘 작품입니다. 트릭도 조금 유치했지만, 뱀파이어 전설이 살아있는 루마니아라는 설정이라서 나름 설득력있고요. 너무 전형적이라서 작가 특유의 긴장감은 찾아보기 힘들다는게 조금 아쉬웠지만, 좋은 작품이었어요. 별점은 3점입니다.

"깜짝 선물"

늙은 호킨스 씨는 집 앞을 지나는 어린 소년들을 부르곤 했다. 소년들에게 "땅을 파면 깜짝 선물을 찾을 수 있다는" 주문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어느날, 어니에게는 주문이 아니라 정확하게 어디를 파야 하는지를 알려주었다. 깜짝 선물이 금괴라고 확신한 어니와 친구들은 그 곳을 파기 시작했다...

당연히 선물이 뭔가 나쁜거라는 짐작은 되지요? 어니가 찾은건 일종의 관이었고, 그 안에서 호킨스 씨가 튀쳐 나온다는게 결말입니다. 그러나 결말의 반전은 약했으며 설득력도 없고, 동기도 불분명한 등 설명까지 부족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어니가 땅을 파게 만드는데 까지의 전개는 좋았는데 아쉽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산타클로스를 만나다" 

켄은 산타클로스를 만나고 싶다고 떼를 쓰는 아들 리처드와 함께 다시 백화점으로 향했다. 아내 헬렌은 차에 남겨둔 채였다. 사실 켄은 이 기회를 빌어 헬렌을 죽일 생각으로 살인청부업자에게는 돈을 지급했었다. 그러나 산타클로스를 만나러 가는 동안, 그는 죄책감, 양심 등으로 심하게 갈등하는데...

아내를 죽이려고 하지만, 실제로 실행하는 순간이 되자, 켄이 겪는 극심한 마음 속 갈등과 혼란이 핵심인 심리 스릴러. 심리 묘사가 아주 빼어나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긴장감을 느끼게 만드는 심리 묘사야 말로 작가의 특기 중 특기지요. 살인과 극명히 대비되는 크리스마스, 산타클로스라는 소재를 적절히 사용하고 있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로, 특히 '착한 일을 해야 선물을 받는다'는 산타클로스와의 약속을 결말에서 제대로 써 먹고 있습니다.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켄의 삶이 조금 더 비참해 졌다는 결말이니까요. 켄은 선물 (아내의 죽음)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뜻으로 읽히는데, 현실적이기도 해서 마음에 듭니다. 별점 4점은 충분한 수작입니다.

그런데 아주 오래전, 강남길 씨가 아내를 죽이려고 노력하던 TV 단막극이 떠올랐습니다. 특히 켄과 리처드가 많이 걷지 않아도 되도록 차를 옮겨 놓겠다는 아내의 말에 켄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장면에서요. 하지만 강남길 씨 이야기는 해피엔딩이었지만, 켄에게는 지옥이 열릴 거라는 결말은 천지차이이기는 합니다만, 이런게 미국과 한국의 감성 차이인지도 모르겠네요.

"춤추는 손가락"

장거리 버스 여행 중 내 앞에 앉은 여성은 장애인이었다. 그녀는 옆에 앉은 돌보미 여성에게 끊임없이 수화로 이야기를 건넸다. 그러다가 장애인 여성이 내 자리를 빼앗았고, 어쩔 수 없이 원래 그녀 자리에 앉은 나에게, 옆자리 돌보미 여성이 해준 이야기는 자신과 장애인 여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수화로 수다를 떨 수 있다는 발상에서 시작해서, 장애인 여성의 수화 수다로 돌보미 여성이 그녀를 벗어나고 싶어했고, 돌보미를 놓아주기 싫었던 장애인 여성이 괜찮은 남자를 물색해서 노리개로 던져준다는, 일종의 '남자 사냥' 으로 이어가는 전개가 자연스럽고 좋았던 작품. 아이디어 발상에서부터 시작해서,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되기까지의 전 과정을 체험한 느낌이 드는 독특한 작품이었어요.

하지만 마지막에 남자를 유혹하던 여성이 갑자기 식어버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원래대로 돌아간다는 결말이 너무 허무하네요. 남자 사냥은 돌보미를 바꾸기 위함이었다던가, 아니면 최소한 남자를 잡아 먹기라도 했어야지요. 지금은 기승전까지는 흥미롭고 재미있는데, 결이 너무 급작스럽고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벙어리 소년" 

시골 마을에 살던 닐젠 부부가 화재로 죽고, 부부의 아들 팔은 보안관 해리와 코라 부부에게 위탁되었다. 학교도 다니지 않고 말도 못했던 팔을 코라는 사랑으로 돌보고, 죽은 자기 아들 대신으로 여겼다. 그래서 코라는 남편이 시도했던 닐젠 부부 지인에게의 연락을 훼방놓았다. 그래서 닐젠 부부가 죽은 뒤 한참 뒤에야 부부의 지인 베르너 교수가 팔을 찾아 왔다. 그러나 그 사이, 학교를 다녔던 팔은 그가 가졌던 독특한 텔레파시 능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팔은 벙어리가 아니라 부모의 텔레파시 교육을 받았던 텔레파시 능력자였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말을 할 필요가 없었고, 부모는 텔레파시 능력이 훼손될까봐 특정한 이미지, 단어로 설명되는, '말'을 익히는 학교에 보내지 않았던 겁니다. 단어로 이루어지는 교육이 한계가 있다는 발상은 꽤나 시대를 앞서간 느낌이에요.

그러나 이야기 자체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요. 닐젠 부부의 사고, 코라가 팔을 양자로 들이고 학교에 보낸 것, 베르너 교수의 방문 등 여러가지 사건이 두서없이 펼쳐지는 탓이 큽니다. 닐젠 부부가 죽은 화재 사고의 원인도 결국 밝혀지지 않고요. 또 팔을 학교에 보내지 않은건 엄연한 아동 학대입니다. 팔이 가진 능력이 대단하고 아름답다고 포장할 이유도 없어요. 실상 대단한 능력이 아니라 그냥 말 없이 생각으로 의미를 전달하는게 전부인데, 이러느니 말로 하는게 더 낫잖아요? 근거리에서만 가능한 듯 싶으니 결국 신문이나 방송을 접하려면 글을 익혀야 하는건 당연하고요. 왜 이렇게까지 팔을 옭아맸어야 했는지 잘 모르겠네요. 마찬가지 이유로 현실 학교 교육이 팔의 정신을 좀먹는다는 묘사도 불필요했습니다. 

팔이 말을 하기 시작해서 텔레파시 능력이 사라졌다는 결말도 맥빠집니다. 어차피 대단한 능력이 아니었으니, 그렇게 아쉬운 일로 느껴지지 않으니까요. 팔에게는 코라의 사랑이 더욱 필요했으니, 앞으로는 행복해질 일만 남아 있을테고요.

차라리 '사랑은 말이 없어도 알 수 있는 감정이다'는 이야기 속에 숨어있는 멋진 설정을 더 부각시키는 쪽으로 갔더라면 어땠을까 싶네요. 팔이 능력의 편린을 유지한채 성인이 되어 여자 마음을 잘 아는 능력자가 된다는 식으로요. 지금은 설정, 이야기가 따로 노는 느낌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충격파" 

교체를 앞둔 교회 오르간이 폭주해서 교회를 파괴한다는 내용의 작품.

늙고 낡아버려서, 사랑했고 필요로 했던 것으로부터 배척당하고 교체되는 것에 대한 공포를 그렸다고 봐도 되겠지요? 그런데 딱히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공포를 자아내는 맛이 부족한 탓이 큽니다. 파이프 오르간의 폭주는 상식적인 선에 그쳐서 크리쳐물로 보기도, 재난물로 보기도 어려운 애매한 작품이 되어버렸어요. 예전에 읽기는 했었는데, 기억에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18/05/18

악몽을 파는 가게 1 - 스티븐 킹 / 이은선 : 별점 2점

악몽을 파는 가게 1 - 4점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황금가지

스티븐 킹의 최신작 단편집입니다. 원초적인 공포보다는 순문학 쪽으로 이동하는 느낌을 물씬 풍겼던 최근 작풍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래전 분실한 초고를 다시 썼다는 "130"만 옛 작품을 연상케하는 자극과 속도감을 보여주며, 이외에는 대체로 자극이 부족합니다. 옛날 작품들이 불량 식품 같았다면, 이 책의 수록작들은 녹즙같은 느낌이랄까요.

물론 "모래 언덕", "못된 꼬맹이"와 같이 기발한 발상과 섬찟함을 겸비한 작품이 없는건 아닙니다. 순문학스러운 느낌이더라도 "죽음" 은 이런 류의 단편에서는 손에 꼽을만한 걸작임에는 분명하고요. 거장다운 깊은 연륜도 작품마다 가득합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좀 얌전하고 재미도 별로 없어서 아쉽네요. 최소한의 의외성은 가져갔어야 하지만 좀 쉽게 쓴 느낌으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작품 별로 조금 더 상세하게 소개해 드리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언제나 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30"

버려진 휴게소에 사람을 잡아먹는 자동차가 나타나 여러 사람들을 해치웠다. 그렇지만 몰래 숨어든 용감한 소년이 돋보기로 불을 붙여 괴물을 퇴치한다!

오래전 분실한 초고를 다시 썼다고 하는데, 그 덕분인지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차의 등장과 묘사는 킹의 초기 크리쳐 단편 느낌 그대로입니다. 사람을 빠져들게 만드는 생생한 묘사 만큼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에요. 처음 버려진 휴게소로 탐험을 떠난 소년의 묘사, 그리고 뒤이어 등장하는 사람 잡아먹는 자동차와 희생자들에 대한 묘사로 이어지는 속도감도 대단하고요. 끝까지 눈을 떼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운운하며 희생된 첫 번째 희생자를 비롯한 죽은 사람들 모두가 "선의" 때문에 죽었다는 약간의 풍자도 젊은 시절 킹 작품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안이한 결말로 이런 장점 모두가 희석됩니다. 10살밖에 되지 않은 꼬마 소년이 불 좀 붙였다고 사라져 버리다니! 죽어나간 여러 명의 어른들은 대체 뭔가 싶더군요. 그래서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원래 결말도 이러했다면 아무리 마약 중독 등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킹이 이 작품을 분실한 건 별로 아까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최소한 다시 썼다면 결말 정도는 고쳤어야 해요. 이렇게 대충 마무리 지을 내용은 절대로 아니었으니까요. 예를 들자면 흑인은 잡아먹지 않는다던가, 여자는 잡아먹지 않는다던가 하는 식으로 뭔가 차별이나 혐오에 대한 이야기처럼 포장하는 등의 설정과 반전처럼 말이죠. 흑인은 잡아먹지 않아서 흑인 한 명이 살아남지만, 도착한 경찰들에 의해 사살된다! 는 "새벽의 저주" 스러운 이야기였다면 걸작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프리미엄 하모니" 

부부는 조카 선물을 사러 마트에 들렸는데, 남편은 아내가 갑자기 쓰러져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다른 작품들과는 다른 조금 덤덤하고 건조한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소개에서 킹이 "레이먼드 카버"의 책을 읽고, 그의 스타일로 썼다고 말하는데, 레이먼드 카버 작품은 읽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엄청나게 더운 날, 아내가 죽은 후 주차장으로 돌아오자 애견마저 차 안에서 쪄 죽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는 결말까지 소소하게 읽을만 했습니다.

문제는 너무 순문학스럽고 의외성이 없다는 점입니다. 죽은 게 애견이 아니라 다른 것이었다면 조금 나았을지 모르겠네요. 상상하기는 싫지만, 그게 뭐든요.

하여튼 저는 킹의 작품을 읽고 싶지 킹이 쓴 카버 스타일 카피를 읽고 싶지는 않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배트맨과 로빈, 격론을 벌이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함께 주말마다 식사를 하는 60세 노인이 우연히 일으킨 차 사고로 트럭 운전사에게 구타당하다가, 아버지가 운전사를 칼로 찔러 살아난다는 이야기입니다. 치매에 걸렸건, 나이가 들었건 아버지는 영원히 아들 앞에서는 슈퍼 히어로라는 주제 만큼은 정말 마음에 드네요. 저도 끝까지 딸 아이를 지켜주는 아버지가 되고 싶으니까요.

그러나 아쉽게도 좋은 작품은 아니에요. 무언가 복잡한 과거가 있는 듯 변죽을 울리다가, 갑작스러운 사고와 함께 이야기가 바로 절정으로 치닫고 끝나버려 내용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껏 고급차를 쓸고 닦아 광 내어 어렵게 시동을 걸지만 도착한 장소는 집 앞 편의점이랄까요? 그냥저냥한 평범 이하 소품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모래 언덕"

아흔살이 넘은 하비 비처 판사는 유언장을 작성하기 위해 변호사 앤서니 웨이런드를 불렀다. 그리고 유언장에 적혀 있는, 한 섬을 영구 야생지로 공표하는 사항을 두고 그 섬에 얽힌 오랜 비밀을 이야기 해 주는데...

짧은 분량, 섬뜩한 느낌, 여기에 반전까지 삼위일체를 이룬 '기묘한 맛', '쇼트쇼트' 계열의 작품입니다.

우선 아주 짧다는 점에서 '짧은 분량' 조건은 충족합니다. 그리고 섬의 모래 사장에 곧 죽을 사람 이름이 쓰여진다는 아이디어에서, 특히 비행기 추락 사고 때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쓰여져 있었다는 묘사의 섬뜩함이 대단해서 두 번째 조건 역시 충족하고요. 마지막 조건도 유언장 작성을 서두른 이유에 대한 반전 때문에 완벽하게 충족합니다. 특히 결말은 아주 좋은 수준으로 킹 역시나 결말이 마음에 든다고 자찬할 정도에요.

별점은 4점입니다. '기묘한 맛', '쇼트쇼트' 류 장르의 걸작만 모아 놓은 앤솔러지가 있다면 충분히 목록을 장식할만 한 교과서같은 작품입니다.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어느 못된 꼬맹이"

사형수 헬러스가 국선 변호인이었던 브래들리와의 마지막 면회에서 그가 아이에게 총알 여섯발을 쏜 이유를 설명해 주는데...

장난꾸러기 어린 아이가 상황에 따라서는 공포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이색적인 설정에 더해, 이러한 공포가 직접 닥쳤을 때 벌어지는 무간지옥의 묘사가 압권인 작품입니다. 읽는 내내 끔찍했고, 손에서 떼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또 인생을 파멸시키기 위해 악마가 누군가에게 나타난다는 뻔한 설정을 악마가 아이의 모습으로 위장했다는 약간의 변주만으로 차원이 다른 몰입감을 선사해주는건 역시나 거장다웠습니다. 저 역시 악마같은 아이들을 몇 번 본 적이 있어서 굉징히 와 닿은 아이디어이기도 해요.

그런데 헬러스에게 이 악마가 나타난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는다는 점은 좀 문제입니다. 그냥 아픈 것, 자연 현상과 마찬가지라고 하면서 대충 넘어가는데, 그건 그렇다 쳐도 브래들리에게 이 꼬마가 나타날 이유는 또 없잖아요? 최소한의 설득력을 보장할 약간의 양념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재미는 있지만 잘 나가다가 결말을 만들기 위해 지나치게 무리수를 둔 느낌이라 감점합니다.

"죽음"

동네 바보 트러스데일은 한 소녀를 죽이고 은화를 빼앗은 죄로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보안관 바클레이는 그의 무죄를 확신하나 형은 집행되고, 이후 유일한 증거인 은화가 교수형당한 트러스데일의 분비물에서 발견되었다...

일종의 '딜레마' 를 다룬 심리 드라마인데 한마디로 걸작입니다. 동네 바보 트러스데일이 무죄일 수도 있다는 분위기로 끌고 가다가 마지막에 반짝이는 은화가 분비물 속에서 발견되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네요. 수감되어 있는 한 달 동안 발견되지 않은 이유는? 똥으로 나올 때마다 다시 삼킨 거라는 진상도 기발하고 말이죠. 무엇보다도 바클레이의 딜레마를 그리는 심리 묘사와 무엇보다도 어차피 교수형 당할거, 왜 자백을 하지 않았냐는 묵직함이 독자를 사로잡는 좋은 단편이에요.

그래서 제 별점은 5점. 수록작 중 최고로 치고 싶네요. 덧붙이자면, 트러스데일 시점의 번외편이 나와주어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납골당"

정글 속 납골당으로 떠난 일행이 하나씩 죽어가는 과정을 술 먹은 사람의 독백으로 들려주는 특이한 작품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과정의 묘사는 킹 답습니다.

그런데 그 외에는 솔직히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죽은 사람들이 되살아나 행진하는 죽음의 윤회 이야기인지? 아니면 술 주정뱅이의 주정에 불과한지? 킹 본인은 산문적 해설을 제거한 형식만 보았을 때 훌륭하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지금 보다는 훨씬 더 해설이 필요한 이야기였어요. 말하고 있는 술주정뱅이도 무슨 벌어졌는지는 모르는 듯 하고, 이게 더 현실적이기야 하겠지만 여러모로 일반 독자에게 잘 와 닿을 것 같지는 않네요.

한마디로 소갯글처럼 학교 작문 시간에 발표했음직한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습작에 불과합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도덕성"

가난한 부부에게 아내 노라가 간병하는 부유한 신부 위니로부터 이십만 달러의 유혹이 다가왔다. 죄를 짓는 장면을 촬영해서 보여달라는 유혹에 굴복한 채드와 노라 부부는, 노라가 변장하여 어린아이를 때리는걸 채드가 촬영하여 돈을 받고 말았다. 이후 채드의 작가로서의 미래, 그리고 부부의 결혼생활은 끝장나 버리는데...

일단 재미도 없고 여러가지 문제가 많아 점수를 줄 부분이 많지 않네요. 일단 설득력 없는 등장인물들의 고민이 아쉽습니다. 얼척없는 도덕심보다는 돈이 더 이유를 가진다는 건 당연한 현실인데 이를 뭐 이렇게 진지하게 고민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아이를 때린 정도로 평생 죄책감을 느낄 것 같지도 않고 말이죠. 덕분에 위니를 통해 종교적인 시점에서 나쁜 짓, 회개에 대해 한번 쯤 생각해 보게 만든다는 발상은 좋지만 이를 풀어나가는 데에는 그다지 성공하고 있지 못합니다.

소싯적 피를 팔고 리포트를 대신 써 주는 밥벌이를 했었는데 그 당시 자신을 매춘부라고 생각했다는 창작 비화가 더 인상적이었던 작품입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아이를 유괴하는 등 더 강력하고 심각한 딜레마를 초래하는 범행으로 묘사하는게 훨씬 나았을 것 같네요.

"사후세계"

대장암으로 죽은 빌은 기묘한 공간에서 해리스라는 남자를 만났다. 그는 과거 공장 문을 잠갔다가 화재로 146명의 여직원을 죽게 한 죄로 끝나지 않는 상담이라는 연옥에 갇힌 인물로, 빌에게 환생과 사라짐을 선택할 수 있지만, 다시 태어나도 변하는 것은 없을 거라 말해 주었다. 그가 이곳에 온 게 다섯번 째이며 언제나 똑같은 말을 했다면서. 그러나 빌은 동생의 손가락을 잘랐던 실수 , 어렸을 때의 시계 절도, 성폭행 등의 실수 중 하나라도 막기를 바라며 환생을 선택한다.

사후 세계에 대한 독특한 묘사와 설정, 그리고 동양적인 일종의 "윤회" 사상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인상적인 소품입니다. 단, 묘사와 설정에 비하면 결말은 좀 평이한 편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우르"

구식 영문학과 교수 웨슬리는 농구팀 감독인 애인 엘런과 헤어진 후 반쯤은 복수심에 킨들을 구입했다. 그런데 그가 구입한 킨들은 시판되지 않는 핑크빛 제품으로, '우르' 라는 일종의 평행우주로 접속하여 작품을 찾아 제공하는 능력이 있는 기기였다. 웨슬리 스미스는 헤밍웨이의 미발표작 등을 검색하는데...

아마존 킨들을 위해 집필했다는 소설인데, 한마디로 말해 광고를 위해 쓰여진 수준 이하의 졸작입니다.

이유는 명확해요. 소설을 쓰지 못하는 영문학과 교수가 핑크빛 킨들을 통해 다른 평행 세계에서 유명 작가들이 발표한, 이쪽 세계에서는 발표되지 않은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절반 이상까지 장황하게 펼쳐나가기 때문에 독자는 유명세를 위한 표절같은 이야기를 상상하게 되는데, 정작 이야기는 급작스럽게 "내일 뉴스" 와 같은 이야기로 빠지기 때문입니다. 전혀 다른 설정을 하나로 묶어놓은 느낌이라 영 별로입니다.
"내일 뉴스" 이야기라도 재미있었더라면 모르겠지만 뉴스를 어떤 식으로든 미리 알고, 그렇게 알게 된 사고를 막기 위해 노력한다는 쎄고 쎈 유사 작품 대비 특별한 부분도 없는 탓에 별다른 흥분과 재미를 불러 일으키지도 못합니다.

킹 작품에서는 보기 드문 지극히 극단적인 해피 엔딩이라는 결말은 특이하지만 그 외에는 건질게 거의 없는, 킨들 광고에 불과한 평균 이하의 범작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2016/11/20

별도 없는 한밤에 - 스티븐 킹 / 장성주 : 별점 3점

별도 없는 한밤에 - 6점
스티븐 킹 지음, 장성주 옮김/황금가지

호러의 제왕 스티븐 킹의 중단편집입니다. "사계"처럼 4편의 중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작품들 모두 어디선가 봤던 설정들이 대부분인 탓에 아이디어는 대단치 않습니다. 대단한 복선이나 극적인 반전이 있지도 않고요. 그러나 독자를 몰입시키는 능력은 정말이지 극에 달해 있습니다. 읽으면서 정말이지 손에서 떼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600쪽 가까운 분량을 하루에 읽을 정도로 말이죠.

한마디로 왜 제왕이 제왕인지를 다시금 느낄 수 있게 하는 단편집입니다. 스티븐 킹과 장르 소설 애호가분들 모두에게 추천드립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합니다.

1922

1922년, 네브래스카 주 헤밍퍼드홈에 사는 윌프리드 릴런드 제임스는 아들 행크와 함께 아내 알렛을 살해했다. 이유는 그녀가 땅을 팔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뒤, 그의 삶은 지옥으로 변해갔다. 시체를 은닉하던 중, 쥐떼에 뜯어먹히던 처참한 아내의 시체를 목격한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서서히 정신적으로 붕괴되어 가던 아들 행크는 이웃집 딸 섀넌을 임신시켰지만, 섀넌의 아버지가 둘을 갈라놓자 가출했다. 그리고 섀넌을 되찾기 위해 강도가 되고 말았다. 결국 섀넌을 만나 도주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연인 강도단'으로 연이어 강도 행각을 벌이다가 둘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쥐에 물린 상처로 사경을 헤매이던 중, 아내의 유령과 함께 행크의 최후를 실시간으로 바라본 제임스는 이후 팔 하나와 그렇게까지 지키려 했던 땅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끝까지 가기 싫어했던 오마하로 가 홀로 8년을 버티다가 자살했다....

"자살한 사람과 살인자는 지옥에 떨어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길을 못 찾아서 헤멜 일은 없을 것이다. 지난 8년간 나는 그곳에서 살았으니까."

아들과 함께 아내를 죽인 뒤, 파멸해 가는 남자를 1인칭으로 그린 작품입니다. 내용은 별게 없습니다. 아내를 죽인 뒤 죄책감과 공포로 인해 서서히 붕괴해가는 주인공, 마찬가지로 비정상이 되어가는 아들 행크, 그리고 그 둘의 삶에 휩쓸려 무너져가는 이웃들을 그려내는 적나라한 묘사가 전부입니다. 이렇게 범죄, 살인 이후 무너져가는 인물을 그린 작품이야 "죄와 벌"을 비롯해서 차고 넘칠 정도로 많지요.

그러나 이런 뻔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제왕의 필력이 너무나 압도적인 덕분에 읽는 내내 손에서 떼기 힘듭니다. 그야말로 생지옥이 펼쳐지거든요. 220여 페이지에 달하는 중편인데 거의 모든 페이지에 공포와 혐오, 증오가 가득차 있습니다.

단순히 죄책감에서 비롯된 심리 묘사뿐 아니라 제왕다운 고어한 묘사도 대단합니다. 그 중에서도 누구나 혐오스러워하는 '쥐'를 매개체로 한 일련의 묘사는 정말 최고에요. 아내의 시체는 물론 자살한 아들 시체까지 쥐에게 파먹히고, 본인 스스로는 환각을 보고 자기 자신을 씹어먹어 죽는다는 결말에 이르는 과정까지의 묘사는 흡사 크리쳐물을 읽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어요.

그리고 생지옥에 대한 고어스러운 묘사만 반복적으로 펼쳐졌다면 조금은 둔감해질 수도 있었을텐데, 순수했던 아들 행크가 변해가는 과정과 천사와 다름없었던 희생자 섀넌과 같은 피해자들에 대한 묘사로 극적인 효과를 배가시킵니다.

무엇보다도 아이러니라면 알렛이 한 말대로 했더라면, 이 가족은 최소한 지옥을 겪지 않았으리라는 점입니다. 특히나 만취한 알렛의 주정을 통해 행크가 어머니 살해를 결심하게 만든 "임신은 시키지 마. 원 없이 훑어도 좋아, 네 물건이 만족해서 토할 때까지. 하지만 안에다 토하면 절대 안 돼. 그랬다간 엄마랑 아빠처럼 평생 한 집에 갇혀 살게 될 테니까"라는 말은 정말로 진실이었어요. 최소한 행크가 임신만이라도 시키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역시 어른들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네요.

물론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상황부터가 문제이긴 해요. 아무리 아내를 'bitch'로 묘사했더라도 아내를 살해하는데 아들을 끌어들인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죄인지라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누가 보아도 인간 이하의 범죄니까요.

또 흔한 설정만큼 캐릭터들도 진부합니다. 책을 좋아하며 소들에게 여신들 이름을 붙여주는 주인공 제임스도 기시감이 많이 들지만, 행크와 섀넌이 강도가 되어 극으로 달리는 부분은 '보니 앤 클라이드' 그 자체입니다. 여기서 보니와 클라이드는 범죄에 중독된 것이라 하더라도, 행크가 섀넌을 만난 이후 강도행각을 계속한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건 문제에요. 아울러 장점이라고는 했지만 행크와 섀넌을 다룬 부분은 약간 신파 멜로물같을 정도로 지나치게 감성적이라 호불호가 조금은 갈리지 않을까 생각되고요. 주인공이 결국 땅을 잃는 과정도 뻔하고 작위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류의 작품 초심자는 견디기 힘들 정도의 섬찟한 작품이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뭐 이 책을 읽으시려는 분들께는 당연히 칭찬이겠죠?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5점. 장점, 단점이 명확한데 읽는 내내 눈길을 떼기 힘든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빅 드라이버

'뜨개질 클럽 시리즈'라는 코지 미스터리 시리즈를 쓰는 추리작가 테스는 강연회에서 돌아오는 길에 한 남자를 만나 강간당해 버려졌다. 시체가 쌓여있던 현장에서 겨우 도망쳐 나온 후, 그녀는 스스로 복수할 것을 결심하고 단서를 찾아 나서는데...

전작과 마찬가지로 설정은 뻔합니다. 성폭행 피해자가 스스로 범인을 단죄한다는 복수극은 널리고 널렸죠. 영화 쪽으로는 "네 무덤에 피를 뱉어라"라던가, 본 작에서도 언급된 "왼편 마지막 집" 등등이 떠오르네요.

하지만 독자를 사로잡는 매력은 전편 못지 않습니다. 특히 한편의 범죄 스릴러로 손색 없는 디테일이 아주 좋아요. 테스가 강간범의 모습을 떠올리고, 범행의 강연회를 주선한 라모나 노빌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 그녀의 주변을 캐고 범인이 어디 사는 누구인지 확인하여 복수를 위해 벌이는 과정이 생생하며 설득력이 높은 덕분입니다.

복수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돌발상황, 예를 들어 라모나 노빌이 진짜 사건에 연루된 것이 맞는지?에 대한 고민, 라모나에게 총을 빼앗기는 상황, 그리고 처음 죽인 남자가 범인인 동생이 아니라 큰 형 빅 드라이버였다 등의 상황이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것도 읽는 내내 흥미를 더해 주고요.

아울러 코지 미스터리 작가인 주인공 테스도 마음에 듭니다. 성격적으로 아주 개성이 넘친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코지 미스터리 작가가 하드보일드스러운 응징을 계획하고 수행한다는 이질적인 매력에 더해 애완동물이나 네비게이션 등과 대화하면서 디테일을 잡아나간다는 묘사, 작품을 위해 권총을 사고 사격 연습을 받았다는 식으로 그녀의 작가적 능력 몇 가지가 이야기에 도움을 준다는 아이디어가 괜찮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경찰에 신고하기 전, 자신에게 닥칠 상황을 상상하고 신고 대신 복수를 선택하는 장면도 아주 인상적입니다. 피해자가 또다른 피해를 우려하여 신고를 포기한다는 이야기는 참 여러모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네요.

하지만 "1922"에 비해서 완성도가 높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앞서 범죄물로서 괜찮은 연결고리를 갖추었다고는 했지만, 라모나 노빌 - 레스터 스트렐키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너무 뚜렷해서 딱히 추리의 여지가 없는 탓이 큽니다. 대놓고 '내가 범인입니다' 라는 식인데 그런 것 치고는 연쇄 강간-살인이 너무 오래 지속된 거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테스가 실종되었다면 마지막 강연 의뢰인인 라모나에게 경찰 수사가 미쳤으리라는 것은 불보듯 뻔한데, 테스의 귀걸이를 라모나가 가지고 있다는 것도 석연치 않았습니다. 팔기도 뭐하고, 잘못 들통나기라도 하면 명백한 증거가 될 텐데 너무 부자연스러워요.

마지막으로 빅 드라이버를 죽인 후 자살을 기도하던 테스의 죄책감이 사라질 만큼 빅 드라이버 역시 사건에 깊숙이 개입한 인물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과정, 유일한 증인이 될 수 있는 벳시 닐이 마찬가지로 성폭행 피해자로 범행을 눈감아 준다는 결말은 지나칠 정도로 작위적입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딸자식 가진 부모로서 분노를 가지고 몰입해서 읽기는 했지만 명확한 단점으로 감점합니다.

덧붙이자면, 2014년 TV용 영화로 영상화가 되었더군요. 그런데 예고편을 보니 작중 애완동물, 네비게이션과 1:1로 나누는 대화 부분을 테스의 인기 시리즈 '뜨개질 클럽' 주인공 할머니가 가상으로 등장하는 것으로 살짝 각색이 된 듯 했습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 중 하난데 이렇게 각색을 하다니... 여러모로 딱히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네요.

공정한 거래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던 스트리터는 우연히 만난 노점상 엘비드와 거래했다. 그의 수명을 늘리려면 누군가에게 그것을 옮겨야 했고, 스트리터는 불알친구 톰을 미워한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 씨발놈이 내 여자를 뺏어 갔다고요!"

악마와 거래한다는 내용의 작품 역시 쎄고 쎘죠. 굳이 예를 들자면 졸문 "계약은 충실하게"가 있고요.

그래도 노점상이 악마라는 것에서 시작하여, 시한부 인생 대신 15년 이상의 수명을 약속하고 이후 받게 될 수익의 15%를 요구한다는 등의 디테일은 독특했습니다.
또 거래 후 톰에게 닥치는 불행의 연쇄반응 역시 스티븐 킹답더군요. 과정이 정말 끔찍하기 그지 없거든요. 1인칭으로 그리면 1922가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죠. 아울러 스트리터와 톰의 행복 - 불행의 지수가 한쪽에 쏠리는 일종의 '행복 질량 보존 법칙' 같은, 흡사 동양의 윤회 사상 비스무레한 전개도 볼 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수록작 중에서는 가장 처지긴 합니다. 악마와의 거래 후에는 일방적인 행복 - 불행의 과정만 나열될 뿐 딱히 반전도 없고 결말도 애매한 탓입니다. 스트리터가 톰이 가졌던 행운까지 차지하고 만다는 결말은 영 와 닿지 않았어요. 악마와의 거래가 이렇게 해피 엔딩으로 끝날 리가 없는데 말이지요.

하긴, 애초에 스트리터가 톰을 팔아넘긴 것도 딱히 설득력이 없습니다. 여자를 빼앗긴 남자는 그게 수십 년이 지나더라도 복수한다는 교훈을 주려고 했던 걸까요? 저는 솔직히 스트리터가 가공할 정도로 찌질하고 속이 좁다는 느낌밖에는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다른 악마와의 거래 소재 작품에 비하면 딱히 쳐줄 부분이 없는 소품입니다. 딱히 찾아 읽어볼 필요는 없습니다.

행복한 결혼 생활

다아시는 1982년에 만난 회계사 밥 앤더슨과 결혼하여 27년간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오던 중, 우연히 밥이 유명한 연쇄살인마 '비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밥이 출장간 어느 날 리모컨 건전지를 찾기 위해 차고를 뒤지다가 밥의 비밀 창고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뭐 이 역시 소재는 뻔합니다. 아내, 혹은 남편에게 자신의 정체를 비밀로 한 배우자, 혹은 다른 가족을 다룬 작품은 널리고 널렸으니까요. 수많은 슈퍼 히어로물이 대체로 그러하고, "트루 라이즈" 같은 작품 역시 마찬가지겠죠. 이 작품처럼 배우자가 범죄자라는 설정 역시 많고요.

이런 류의 작품은 보통 배우자의 정체를 눈치챈 순간부터 극적 긴장감이 생기는데,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결말 두 가지, 즉 '배우자의 은밀한 생활에 동참하거나', '그만두게 하거나' 중 '그만두게 하는' 쪽으로 흘러가는 것 역시 예상대로에요. 보통의 드라마가 부부 동반으로 비밀 정보원이 되거나 슈퍼 히어로가 된다면, 살인마 이야기는 함께 하는 쪽보다는 그만두게 하는게 정상이니 당연하지요. 결국 다아시가 밥을 죽인다는 결말도 솔직히 너무 뻔했어요.

하지만 거장의 솜씨가 작품을 살립니다. 우선은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묘사가 대박입니다. 다아시가 밥의 비밀 창고를 발견하는 과정과 정체를 알아가는 과정의 묘사, 이후 자신의 정체를 아내가 알았다는 것을 눈치챈 밥이 다아시에게 찾아가 이야기하는 장면 묘사 등에서 서늘함과 긴장감이 잘 살아 있는 덕분입니다. 아들과 딸을 생각하여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는 다아시의 딜레마 역시 설득력 있어서 뻔한 전개에 충분한 긴장감을 불어넣어 줍니다.

결말도 뻔하지만 노형사 홀트가 등장하여 깔끔하게 마무리하는건 마음에 들었습니다. 밥의 잔인한 범행을 경찰 입으로 밝혀주면서 응징의 정당성을 높여주면서, 결국 다아시가 밥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체포되었을 것이라는 말로 다아시의 죄책감을 줄이는 좋은 선택이었다 생각되거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뻔한 소재로도 볼만한 이야기를 뽑아내는 거장의 솜씨를 볼 수 있었던 작품입니다. 이래저래 많은 공부가 되었어요. 과연 비슷한 소재로 쓸 때 저라면 어떻게 쓸지, 한번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2019/03/10

보기왕이 온다 - 사와무라 이치 / 이선희 : 별점 2.5점

보기왕이 온다 - 6점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arte(아르테)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부
다하라는 어린 시절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와 집을 볼 때 정체불명의 회색 덩어리 그림자를 응대했다. '치가쓰리'라는 기묘한 말을 하며 집에 들어오려는 '그것'을 할아버지가 모처럼 맑은 정신으로 소리쳐 퇴치했다. 그리고 몇 년 뒤, 할머니로부터 사람을 끌고가는 요괴 '보기왕'을 집에 들이거나 대꾸를 하면 안된다고 들었다.
세월이 흘러 직장을 얻고 결혼한 다하라에게 수수께끼의 전화가 걸려왔고, 수상쩍은 인물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회사 후배 다카니시가 큰 상처를 입고 아내와 딸 치사마저 위험에 처하자 다하라는 고교 동창인 민속학 교수 가라쿠사를 통해 오컬트 작가 노자키와 퇴마사 마코토를 만났다. 그러나 퇴마사 마코토가 알려준 대책이라고는 "부인과 아이에게 다정하게 대해주라'는게 전부였다. 다행히 노자키와 마코토는 다하라의 집에 정기적으로 찾아와 아내 가나와 아이에게 힘이 되어 주었고, 다하라도 그들에게 마음을 열지만 '보기왕'이 집에 찾아와 부적을 찢고 난동을 부렸다. 겨우 침입을 저지한 마코토는 자신의 힘이 미력하다며 언니를 불러냈다. 언니는 당장은 시간이 없다며 지인들을 부르나 고명한 스님을 비롯한 지인들 모두 겁을 먹고 거절했고 딱 한 명, 부탁을 수락한 영매사 세쓰코마저 한 팔을 잃는 큰 부상을 입고 죽고 말았다. 다하라는 마코토의 언니 도움으로 결계를 치려 하지만 그것 역시 언니를 위장한 '그것'의 음모였다. 결국 '그것'에게 다하라는 죽었다.

2부
아내 가나는 다하라의 죽음이 기뻤다. 다하라는 자신만의 가치관에 따라 아내와 딸을 심리적으로 학대했기 때문이었다. 노자키와 마코토의 도움으로 가나와 치사 모녀는 어느정도 안정을 찾아가나 다시 '그것'의 습격이 시작되었다. 마코토가 목숨을 걸고 저지하지만 실패했고, 도망치던 모녀를 덥친 '그것'은 치사와 함께 사라졌다. 그 뒤 미쳐버린 가나는 병원에서 깨어났다.

3부
가나와 치사를 습격한 '그것'으로부터 치사를 지키다가 중상을 입은 마코토를 병원으로 옮긴 노자키는 드디어 마코토의 언니 고토코를 만났다. 그녀는 자신이 직접 치사를 구하겠다며 중상을 입은 마코토에게 휴식을, 노자키에게 협조를 부탁했다. 다하라의 본가에 찾아간 둘은 다하라 가족의 숨겨진 끔찍한 과거를 알아냈다. 오래전 할아버지 긴지의 가혹한 폭행으로 다하라의 외삼촌, 외숙모가 죽었고, '그것'은 할머니가 복수와 원망으로 할아버지를 저주했기 때문에 찾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둘은 치사를 구하고 보기왕을 퇴치하기 위해 최후의 결전에 나선다...

제22회 일본 호러소설대상 대상 수상작으로 작가의 데뷰작입니다. '보기왕' 이라 불리우는 크리쳐와 맞서 싸운다는 정통파 크리처 호러물이죠. 그렇지만 이유없이 괴물이 튀어나와 사람을 도륙하는 흔해빠진 고어 크리처물과는 다릅니다. '보기왕' 이라는 크리처의 정체와 그것이 나타난 이유를 설득력있게 포장하고 있다는 차이점 덕분입니다.

'보기왕'이라는 이름의 유래부터 그러합니다. 일찍이 일본에 진출했던 유럽인들에게서 비롯된 명칭이라고 설명하고 있거든요. "부기맨"이 변형된 말이라는데 그럴듯하죠? 또 노자키가 "기이잡설" 등의 이런저런 자료와 고문헌을 뒤지다가 밝혀낸 정체도 꽤 괜찮습니다. 오래전, 먹고 살기 위해서 K시에서는 산에 사는 요괴에게 노인과 아이를 일부러 바쳤다는게 그 유래가 된 것입니다! 실제로 요괴가 있건 없건 간에 사람을 납치하는 요괴와 입을 줄이기 위한 마을의 이해관계가 일치했다는 이야기로 굉장히 설득력이 높아요. '고려장' 이야기와 별 다를 것도 없으니까요. 이렇게 크리쳐물인데도 일본 역사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은 "요괴헌터"가 떠오릅니다. 대단한 이론적 배경이 있는건 아니지만 몇몇 디테일 들이 괜찮다는 점도 비슷하네요.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저주하여 마도부를 통해 불러내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섬찟합니다. 할아버지 긴지의 가혹함과 외삼촌의 죽음 등 앞부분에서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던 복선을 통해 이를 뒷받침하는 전개도 일품이고요. 데뷰작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의 솜씨입니다.
이러한 전개는 1, 2, 3부로 나뉜 구성에서도 돋보입니다. 1부는 다하라, 2부는 가나, 3부는 노자키가 주인공인데 각각의 이야기의 구멍을 메워나가며 새 주인공의 시각에서 새로운 사실을 드러내기 때문에 독자를 몰입하게 만듭니다. 1부에서 다하라가 굉장히 가족에게 지극 정성을 다하는 아빠로 '괴물, 혼령은 대부분 빈틈으로 들어온다. 이는 가족 간에 생기는 마음의 빈틈인 '골'을 의미한다.'는게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2부의 가나 시점 묘사를 통해 다하라가 사실은 나쁜 아빠였다는게 밝혀지는 과정이 좋은 예입니다.
'알고보니 나쁜 놈' 인 다하라와 소극적으로 상황에 끌려만 다니는 가나가 아닌 진 주인공 노자키와 마코토, 고토코가 전면으로 부상하여 힘을 합쳐 괴물을 퇴치하는 왕도적인 결말도 나쁘지 않아요. 정의롭고 착한 주인공이 악을 물리친다는 이야기는 너무 전형적일 수 있지만 이 작품에는 정말 딱 어울립니다. J호러 특유의 찝찝한 결말이었다면 더 마음에 들지 않았을거에요.

크리처물 다운 섬찟한 묘사도 볼거입니다. 일종의 영적 덩어리로 입과 이빨만 강조되는 보기왕에 대한 묘사는 별 거 없지만 '그것'이 고토코를 가장하여 다하라를 농락하는 장면이라던가 '그것'은 뒷문으로부터 들어오는게 진짜 공포라는 앞 부분의 복선이 이어져서, 가나가 화장실 입구에 결계를 치지만 뒷문이 있다며 변기로부터 '그것'이 기어나오는 장면이 특히 압권입니다. 얼마전 일본에서 영화화되어 개봉되기도 했는데 예고편을 보니 화장실 장면은 제대로 등장하는 듯 해서 기대가 됩니다. 소설에서도 아주아주 무서웠으니 영화로 보면 효과는 그 이상일거라 확신이 드네요.

이렇게 대상을 받을만한 좋은 점도 많지만 단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앞서 칭찬한 전개에서 딱 한 가지, 가라쿠사가 다하라를 저주했고, 다하라의 남은 가족까지 저주했다는 설정은 과합니다. 술 자리에서 쓸데없는 이야기 좀 들었다고 돈과 노력을 더해 '마도부' 까지 선물한다? 그것도 정작 원망의 대상은 죽은 다음인데? 이래서야 설득력이 너무 떨어져서 등장하지 않는 것만 못해요. 또 마코토는 그럭저럭이지만 그녀의 언니 고토코 캐릭터는 지나치게 만화적입니다. 뛰어난 능력으로 괴물들 사이에서도 이름이 높고, 경찰 최고위층도 움직일 수 있는 어둠의 실력자라는 설정인데, 식신만 나오지 않을 뿐 "마법사의 딸" 에 나오는 일본 최고의 음양사 스노즈키 무잔과 판박이니까요. 만화였다면 모를까 소설에 등장하기에는 비현실적입니다. '보기왕' 처럼 설득력있게 그 존재에 대해 설명해 주었더라면 조금 나았겠지만 그런 설명도 전무하고요. 이런 점에서 보면 "요괴 헌터"의 한 에피소드로 그려지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소설 보다는 영화나 만화 쪽이 더 잘 어울렸을 것 같아서 조금 감점합니다만, 재미도 있고 흡입력도 괜찮아서 킬링 타임용으로는 적당한 작품입니다. 호러물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1/07/17

THE 좀비스 - 중 - 스티븐 킹 외, 존 조지프 애덤스 / 최필원 : 별점 2점

THE 좀비스 - 중 - 4점
스티븐 킹 외 33인 지음, 존 조지프 애덤스 엮음, 최필원 옮김/북로드

THE 좀비스 - 상 - 스티븐 킹 외, 존 조지프 애덤스 / 최필원 : 별점 2점 

좀비가 핵심인 단편들을 모아놓은 앤설러지 두 번째 권인데, 전에 읽었던 상권보다 별로입니다. 어디선가 보았던 이야기에 좀비를 끼워넣었거나, 좀비가 왜 등장하는지도 모를 이야기가 많은 탓입니다. 뭔가 있어 보이게끔 노력했지만, 의도가 뻔히 들여다보이고 알맹이 없는 이야기들도 많고요. 여러모로 실망스러웠어요. 차라리 정통 좀비 아포칼립스물이라면 평작은 될 텐데 아쉽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한 권 남았는데, 다음 권은 읽어볼 것 같지 않군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스톡홀름 증후군"

좀비 떼로 둘러쌓인 집에 갖힌 나는 아들과 닮아서 '빌리'라고 이름지은 좀비 관찰에 재미를 붙였다. 빌리는 이웃집 침입을 위해 판자를 뜯어내는 일에 골몰하는데...

제목 그대로 가해자인 좀비와 동질화되어, 좀비가 사람을 죽이는걸 보아도 아무렇지도 않을 정도로 감정을 잃어버린 주인공을 통해, '살아있는 것과 사는 건 다르다'는 걸 알려주는 작품. 그냥 버티기만 할 뿐, 이렇게 살아가는건 좀비와 다를게 없다는 거지요. 동질화된다는 측면에서는 전권의 "나처럼 죽어봐"와 조금 비슷한데, 이 작품에서는 절박함이나 처절함은 다소 부족한 반면, 조금 더 설득력이 높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웃집을 좀비떼가 습격하는 장면 묘사도 괜찮았고요.

하지만 주인공 사고 방식에는 동의하기 힘들었더군요. 일반적으로는 총알이 딱 한 발 남을 때 까지 살아남아서,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면 차라리 거리로 뛰어들어 좀비가 되어 버리던가.... 이런 저런 사람들이 있고, 이런 저런 상황들이 있는 법이기는 하지만, 이런 사고 방식과 행동은 별로 와 닿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난극" 

페스트로부터 구해진 오버라머가우 마을 전통의, 10년에 한 번 진행되는 예수 수난극 공연이 시작되었다. 이번 공연에서는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리는 장면을 위해, 좀비를 분장시켜 정말로 십자가에 못 박을 생각이었다. 마이어 신부는 이를 막으려고 노력하다가 실패했고, 결국 마지막에 신의 저주와 함께 파국이 찾아오고 만다.

마이어 신부는 좀비도 영혼이 있어서, 인간이 그들을 잔혹하게 이용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좀비에게 영혼은 있을리 없습니다. 이미 죽었으니까요. 종교적으로 논쟁거리가 될 여지도 없어요. 좀비를 연극 소품으로 잔혹하게 대하는 행동은 조금 거슬렸지만, 좀비들은 그동안 더 잔혹한 행동을 보여 왔으니 딱히 큰 문제로 보이지도 않았고요. 이게 문제라면 가축 도살이 더 큰 문제아닐까요? 이러한 점들 때문에, 마이어 신부의 행동은 도무지 공감할 수도,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마지막에 좀비를 구해주려는 신부의 행동에 분노한 관객들이 신의 저주로 좀비가 된다는 결말은 너무 뻔했습니다.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페스트 유행 당시를 배경으로 했던 영화가 떠오릅니다. 페스트에서 안전했던 성에서 난민 유입을 막기 위해 잔혹한 행동을 보이지만, 결국 성주에게 페스트가 전염된다는 결말이었는데, 페스트가 좀비로 바뀌었을 뿐 똑같은 맥락이지요. 아니, 그보다도 못해요. 페스트는 어쨌건 공기로도 전염될 수 있지만, 좀비 바이러스가 급작스럽게 사람들에게 퍼진다는건 아무런 설명이 없으니까요.

이렇게 종교를 끌어들인 전개는 무리수였을 뿐더러 새로움도 없고, 잔혹함도 덜합니다. 무섭지도 않고요. 점수를 줄 여지가 별로 없어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아름다운 것" 

테러로 희생된 러스티는 시체 소생 기술로 되살아났다. 정치인이 그의 희생을 선거에 이용할 목적이었다. 하지만 연설 당일, 러스티는 정치인 요구와는 다르게 죽음은 아프니, 삶을 즐기라는 마음 속 이야기를 털어놓는데....

죽은 사람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정치인의 행태는 우리도 익히, 그리고 지금도 계속 보고 있습니다. 이를 죽은 사람이 되살아난 좀비로 비판한다는건 아주 좋은 아이디어였어요. 이렇게 되살아난 테러범과 희생자 모두가 정치인 생각과 전혀 다른 진심을 털어 놓는다는 것도 나쁘지 않았고요.

그러나 그들의 진심이 "죽기 전에 즐겨라!" 라니? 황당했습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와 별로 다르지도 않지요. 좀비들이 이런저런 소품들에 환장한다는 설정도 기발했지만, 이 황당한 메시지 전달에 활용될 뿐이고요. 또 딱히 좀비가 등장할 필요도 없었어요. 유령이라던가, 빙의한 영혼이라던가, 뭐든 좋을 그런 이야기거든요. 진짜 아이디어가 아까왔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섹스, 죽음, 그리고 별빛" 

좀비들이 연극을 한다는 이야기로 공포 문학의 거장 클라이브 바커의 작품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좀비물에서 기대할만한 내용은 하나도 없는, 기묘한 이야기였어요. 좀비들이 나름 지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은 특이했지만, 그들은 연극 외에 다른 목적이 없거든요. 식인 따위는 원하지도 않고요. 죽은 여배우가 섹스를 요구하는 장면이라던가, 사악한 제작자를 죽이는 장면 정도가 조금 섬찟했습니다만,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좀비들이 벌이는 연극으로 현재의 연극계를 풍자하는 블랙코미디로 보는게 맞을 것 같은데, 문제는 그렇다면 더 웃기기라도 했어야 한다는 거지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무섭지도 않고 의외성도 없으니 점수를 줄 부분이 없네요.

"시체의 길" 

신으로부터 이 땅에서 악을 몰아내라고 명 받은 총잡이 목사 제비디아는 보안관보가 체포한 악당 빌을 호송하기 위한 여정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중간에 괴물이 나온다는 '시체의 길'을 지나가기 때문이었다. 그 곳을 지나가던 일행은 괴물이 된 양봉업자 기멧의 습격을 받게 되는데...

기멧이 괴물이 된 이유는? 저주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납치했던 소녀가 죽은 뒤, 소녀 어머니가 저주한 것이지요. 그런데 저주로 죽기는 했지만, 기멧이 이내 벌통이 가슴 속에 위치한 괴물로 되살아났다는건 좀 이상하더군요. 이게 저주가 맞나요? 어차피 악당이었으니, 무적의 괴물이 되면 더 좋은거 아닌가 싶은데 말이지요. 

또 괴물의 설정도 죽은 자가 돌아온 것이지만, 벌 떼와 함께 이동하며, 초인적인 힘과 빠르기를 갖추고 있어서 일반적인 좀비와는 전혀 다릅니다. 식인이 목적도 아니고요. 그래서 좀비물이 아니라 그냥 일반적인 크리쳐물에 가깝습니다. 악을 없애기 위해 악을 접하면 불타는 성서, 악에게 해를 입힐 수 있는 은총알 등의 설정이 곁들여진 것도 크리처물 설정일테고요. 이야기 전개도 고생 끝에 괴물을 처치하는 크리처물 그대로라 특별한건 없습니다.

그래도 제비디아 목사의 활약은 화끈합니다. 괴물의 잔혹함도 잘 묘사되고 있고요. 덕분에 머리를 비우고 단순하게 읽는 킬링 타임 물로는 나름 적당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서부 개척 시대를 무대로 악을 멸하는 총잡이 신부가 등장하는 크리쳐물이라는 점에서는 "프리스트"가 연상되더군요. "프리스트"는 헐리우드에서 영화화도 되었던 만큼, 나름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바비 콘로이, 살아 오다" 

바비 콘로이는 배우로서 실패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가 고향에서 맡은건 조지 로메로라는 감독의 "시체들의 새벽"이라는 영화의 좀비역이었다. 톰 새비니가 해 준 좀비 분장을 한 바비는, 촬영장에서 고등학교 시절 첫사랑 해리엇과 재회했다. 그녀는 결혼해서 아들과 함께 분장하고 영화에 참여 중이었다...

좀비가 주제이기는 한데 방향이 굉장히 독특했던 작품입니다. 좀비가 아니라, 기념비적인 좀비 영화 "시체들의 새벽"에서 좀비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이야기거든요. 아 이런 발상, 아주 마음에 들어요. 좀비를 주제로 단편을 써와! 라고 했는데, 아슬아슬하게 가이드에 맞춰서 첫사랑과 현재에 대한 달달하면서도 아련한 이야기를 써 온 셈이니까요.

하지만 행복한 해리엇 가족에게 바비가 나타나서 훼방을 놓는 결말이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바비는 해리엇 가족, 특히 그 아들에게는 좀비보다 더한 괴물이 되는, 좀비물보다 더 무서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지금 이야기는 발상에 비해 평이하고, 조금 뻔한 그런 이야기라 아쉽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용서를 구하는 자들" 

칼라는 메레디스를 찾아와 심장마비로 죽은 남편 아서의 소생을 부탁했다. 그녀가 바람피운걸 사과하고자 하기 위해서였다지만, 되살려보니 아서는 칼라가 쏜 총에 머리를 맞고 죽었던 것이었다. 살해된 좀비는 살인범을 죽이는게 본능으로, 칼라는 죄책감때문에 자살할 생각이었다...

작가의 인기 캐릭터라는 시체 소생 전문가 메레디스가 등장하는 작품. 살인자가 죄책감으로 피해자에게 죽기를 원한다는 설정과 시체 소생에 대한 이런저런 디테일은 좋았습니다.

그러나 아서가 총에 맞아 죽었다는걸 알고 난 후, 칼라가 죽는 결말까지는 좀 시시합니다. 예상대로의 이야기였거든요. 뭔가 좀 의외성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아쉽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별점은 2.5점은 충분합니다.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 

농학자 닥 프리먼은 좀비 떼를 피해 콜로니를 만들고 생존자들의 공동체를 성공적으로 수립했다. 콜로니는 안전했지만, 생산과 성장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출산은 금지되어 있었다. 아이가 생긴 톰 부부는 낙태를 지시받고, 콜로니 외부 클리닉으로 수술을 위한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좀비 때문에 격리된 폐쇄 공간은 생산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조직적으로 출산까지 관리한다는 설정은 꽤 설득력있었습니다. 낙태를 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외부 수술실로 향하는 아이러니도 기발했고요. 무엇보다도 낙태한 태아가 살아돌아오지 않는 걸로 보아, 그들은 생명이 아니라는 시각은 아주 독특하게 다가왔습니다. 여기에 좀비가 된 낙태 반대주의자를 날려버리는 결말을 더하니, 저자가 낙태를 찬성한다는건 잘 알겠더라고요. 

내용도 신선했고, 여러가지 볼 거리가 많았던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서두에 소개된 저자가 주제를 찾은 방법도 인상적이었어요. 그동안의 좀비 주체 작품이 극단적 섹스 장면을 등장시키는 경향이 강하다며, 지금까지 한 번도 다루어진 적이 없는 터부를 고민해보다가 정치에서 그 답을 찾았다고 하네요. 가장 논쟁거리가 되는 정치 이슈가 '낙태' 였다면서요. 우리나라도 따지면 '부동산'을 주제로 좀비물을 쓴 격이겠지요? 아 이거 재미있겠네요.

"죽은 아이" 

동네 깡패 루크 브래들리의 무리에 가입하고 싶었던 나에게 브래들리는 조건을 내걸었다. 살아있는 아이 시체와 하룻밤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주인공 소년이 희생양인 좀비 아이를 악으로부터 구해주고 구원받는다는 내용의 작품.

주인공 설정과 분위기 등은 모두 스티븐 킹"그것"이나 "스탠 바이 미"를 연상케합니다. 특히나 시골 마을에서 또래 깡패와 맞서 싸우는 아이의 성장기이며, 아이 시체가 중요한 소재라는건 "스탠 바이 미"의 그대로입니다.

문제는 아류작이면서도 "스탠 바이 미" 보다 훨씬 못하다는 겁니다. 주인공과 동생 앨버트는 좀비 시체를 상자에서 꺼내준 정도 밖에 한 게 없고, 이들의 여정도 하룻밤 나들이에 불과했기 때문이에요. 뭔가 성장을 기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과정이지요. 이 과정도 환상 소설처럼 모호하게 처리해서 고생스러움도 전혀 느낄 수 없었고요. 단편 분량이라서 어쩔 수 없었다는건 변명에 불과합니다. 최소한 브래들리의 패악질만큼의 설명은 해 주었어야 해요. 루크 브래들리의 깡패짓 말고는 드라마라고 부를 내용도 없고요. 게다가 아이 시체가 좀비일 이유도 전혀 없습니다. 그냥 시체여도 무방한, 그런 이야기거든요.

좀비 소재 단편을 의뢰받고 "스탠 바이 미"에 좀비를 우겨넣은 만들어낸, 졸속 창작물에 지나지 않는 졸작. 별점은 1점입니다.

"좀비들과 함께라면" 

중 2병에 걸린 소녀의 성장기랄까요. 서정적인 1인칭 묘사는 괜찮았고, 좀비보다 현실이 더 무섭다, 현실은 가혹하다는 메시지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40대 후반의, 직장 생활도 20년차가 넘은 아저씨에게는 별로 와 닿는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가혹하더라도 받아들여야만 하는게 현실이니까요. 그리고 현실은 최소한 좀비보다는 낫습니다. 아울러 아무리 봐도 좀비물로 보기는 힘드네요. 작품에서 좀비가 진짜 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거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좀비만도 못한"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방탕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이. 어느날 마약과 술에 취한 채로 이상한 클럽을 찾았다. 좀비를 학대하고 죽이는 스너프 필름을 상영하는 곳이었다. 클럽에서 시간을 보낸 뒤, 그들은 일행이었던 제인을 죽이고 마는데...

변호사인 저자가 쓴, 브렛 이스턴 앨리스 소설의 패러디라는 작품. 원작을 모르니 뭘 어떻게 패러디했는지 모르겠는데, 내용도 잘 모르겠어요. 젊은이들의 타락과 방황을 묘사한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게 좀비물인가? 하는 의문도 생깁니다. 주인공과 친구들이 좀비인건가요? 설령 그들이 좀비라 해도 그게 작품에서 그렇게 중요하게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괜히 뭔가 있어보이게끔 한 묘사들도, 결국은 별다른 알맹이는 없고요. 뭘 이야기하려고 하는지, 내용이 뭔지 이해할 수 없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미트하우스 맨" 

시체 취급자들이 시체를 조종해서 온갖 일을 하는 시대. 유능한 시체 취급자 트래거는 사랑을 찾아 이런 저런 곳을 전전하게 되는데...

"왕좌의 게임"의 작가 조지 R.R 마틴의 작품. 사랑없는, 자극만이 넘쳐나는 미래 세계에서 사랑을 찾아 떠도는 트래거의 모습은 "쿄시로 2030"의 쿄시로가 살짝 연상되더군요. 순정으로 접근하던 트래거가 여자에게 배신당한 뒤, 뒷골목 깡패나 하는 시체 검투 경기에 참여하게 되는건 곽철용의 명대사 "니가 이런 식으로 내 순정을 짓밟으면은, 마 그때는 깡패가 되는 거야!"가 떠올라서 좀 웃겼고요. 

하지만 완성도가 높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어디서 본 듯한 이야기들이 반복되며, 별다른 드라마도 없는 탓입니다. 요약하면 "사랑을 믿었던 트래거가 배신당한 뒤, 돈과 향락을 택했다"는 지극히 뻔하고 뻔한 이야기가 전부에요. 작가가 쓸 때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다고 하는데, 이유를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왠만한 단편보다는 긴 분량을 갖춘만큼, 소개되는 방대한 설정만큼은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특히 제목의 '미트하우스' 관련 설정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시체를 살아있는 것 처럼 조종해서 성욕을 채워주는 곳인데, 시체 취급자가 아니라 피드백 회로를 통해 조종되고 있다는 등 이런저런 디테일이 빼어나거든요. 시체 취급자 (스트레커)와 관련된 설정들도 괜찮았고요. 하지만 이야기가 별로라면, 좋은 설정도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겠지요. 별점은 2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