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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4

하드웨이 - 리 차일드 / 전미영 : 별점 2점

하드웨이 - 6점
리 차일드 지음, 전미영 옮김/오픈하우스

<<아래 리뷰에는 진상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뉴욕의 여름밤, 한가로이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던 리처에게 존 그레고리라는 남자가 다가온다. 영국 공수특전단(SAS) 출신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레고리는 전날 밤에도 리처가 그 카페에 있었던 걸 확인한 뒤, 전날 자정쯤 카페 앞에 주차되어 있던 벤츠를 타고 사라진 남자를 목격했는지 묻는다. 리처가 그렇다고 하자 그레고리는 자신의 상사이자 전직 특수부대원들을 모아 민간 용병 사업을 하는 에드워드 레인에게로 리처를 데려간다.
레인은 자신의 아내가 납치되었으며, 리처가 목격한 남자가 몸값 100만 달러가 실린 벤츠를 탈취한 납치범이라고 말한다. 레인은 아내를 되찾아 달라며 리처를 고용하고, 리처는 수사 과정에서 5년 전 레인의 첫 번째 아내였던 앤이 비슷한 방식으로 납치 후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두 사건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음을 본능적으로 직감한 리처는 전직 FBI 요원이자 사립탐정인 로런 폴링과 함께 사건의 내막을 파헤쳐 나간다.


잭 리처 시리즈 10번째 작품. 이번에는 유괴극입니다. 유괴극의 핵심인 몸값 전달에 대한 새로운 방법이 제시되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범인은 특정 차를 지정하여 차 안에 현금을 두고, 차 키를 다른 곳에 두라고 시킵니다. 그리고 레인의 부하들과 리처가 차 키가 있는 곳을 감시하는 동안, 미리 빼돌렸던 스페어 키를 이용해 유유히 차를 몰고 달아나는 것이지요. 최소한 한, 두 번 정도는 먹힐 수 있는 괜찮은 아이디어였어요.

레인의 의붓딸 제이드가 그린 그림, 그리고 아이 침실의 인형들을 통해 유괴가 아닌 자작극이라는걸 깨닫게 만드는 소소한 디테일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특히 '범인이 차를 열쇠로 열었다'는 것에 주목하는게 괜찮았어요. 무선 리모컨 키가 일반화된 시대에 잘 어울리는 착안점이었거든요. 군인처럼 시야 확보 등을 염두에 두고 범인의 은신처를 찾아내는 과정도 설득력 높았고요. 범인을 쫓으며 뉴욕의 지리를 상세하게 풀어내는 묘사도 좋았고, 레인이 아프리카에 버리고 왔던 부하 호바트 이야기도 그럴싸 했습니다.

그러나 그 외에는 대체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추리적으로 점수를 주기 힘든 탓이 큽니다. 리처와 용병들 모두 유괴 사건은 백화점에서 차가 잠깐 멈췄을 때 유괴범이 총을 들고 올라타 유괴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백화점 어디에서 차가 멈출지 범인은 알 수 없었다는게 문제였다는데, 이 점 하나만으로도 운전하던 테일러가 유력한 용의자입니다. 테일러가 아니면 피해자 케이트가 공범이었을테고요. 심지어 범인은 레인이 보유한 현금이 얼마인지, 레인에게 무슨 차가 있는지를 꿰뚫고 있는 등 내부자가 아니면 모를 정보를 많이 알고 있기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왜 모두들 테일러가 죽었다고 확신하며 그에게 혐의를 두지 않는지 알 수 없어요. 자동차나 현금 가방에 GPS 추적장치 하나 몰래 설치하지 않았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웠고요. 일반인이라면 구하기 힘들었을 수 있지만, 레인 일당은 용병 부대이니 이런 장치를 구하는건 어렵지 않았을겁니다.

레인을 포함한 레인의 부하들이 허무하게 최후를 맞는 마지막 클리이막스도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리처를 제외한 테일러 가족을 사로잡은 뒤, 성폭행과 낙태를 운운하며 잔인함을 부각시키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수수깡 인형과 별로 다를게 없어요. 반격다운 반격은 아예 하지 못하니까요. 전직 델타포스, SAS 등 엘리트 특수 부대원 출신들이라는 설정이지만, 하는 짓과 최후는 시리즈 다른 악당들보다도 못해서 허무하기만 할 따름입니다.

테일러가 일부러 단서를 조금씩 남겨 레인을 영국 시골 농장으로 유인했다는 것도 와 닿지 않았어요. 유능한 대원이라는 설명은 있었지만, 장기간 포위와 대치가 가능한 용병들인 레인 일당과의 전면전은 무리입니다. 이보다는 유괴극을 꾸미기 전에 레인을 먼저 살해하는게 더 현명한 선택이었을거에요. 케이트가 위자료 대신 레인이 가진 현금 절반을 몸값을 가장하여 챙겼다는데, 레인이 죽었다면 전부를 챙길 수도 있었을테고요.
레인의 남은 용병 버크, 크룸, 코왈스키가 미국으로 돌아가 레인의 남은 돈을 빼앗아 사라지지 않은 이유도 설명이 부족합니다. 죽은 보스의 돈에 손을 대지 않을 정도의 도덕군자들로는 보이지 않았거든요. 이미 소액은 착복하려는 시도도 했었는데 말이죠.

인물들도 매력적이지 못하고 평면적입니다. 레인과 그 일당은 악덕 용병 부대라면 누구나 떠올릴법한 인물들로 묘사됩니다. '기뉴 특전대'와도 별로 다르지 않더군요. 약하다는 점에서는 그보다도 못하고요.
잭 리처의 파트너인 전 FBI 수사관이자 현직 탐정 폴링 역시 시리즈 다른 작품 여주인공들과 다른 점을 찾아보기 힘들 뿐더러 등장하는 이유조차 알기 어렵습니다. 그녀가 사건 수사와 해결에 도움을 주는 요소는 거의 없거든요. 탐정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영국 내에서 몇가지 정보를 얻는 등의 활약을 보이기는 하지만, 이는 리처 혼자서도 알아낼 수 있었던 정보였습니다. FBI 출신이라는 설정이 무색하게 마지막 레인 일당과의 결전에서는 사로잡힌 공주님 역할 뿐이고요. 결론적으로, 그냥 리처의 스쳐지나가는 애인 중 한 명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한없이 1.5점에 가까운 2점입니다. 별로 권해드릴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2026/02/13

존재의 모든 것을 - 시오타 다케시 / 이현주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친했던 형사 나카자와의 유지를 받아, 다이니치 신문 지국장 몬덴 지로는 30년 전 유괴 사건에 대한 재조사에 착수했다. 나이토 료라는 아이가 유괴되고 2년 후 조부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직 범인은 체포하지 못했던 사건이었다.

조사를 통해 피해자 료가 사실화로 유명한 화가 기사라기 슈와 동일인물이며, 수사선상에 떠올랐던 용의자 노모토 마사히코의 남동생인 화가 노모토 다카유키와 같은 같은 화랑에 속해있다는게 드러났고, 몬덴은 노모토 다카유키의 행적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2023년 경, 여러 리스트에서 꽤 높은 순위를 기록했던 유괴 소재의 범죄 스럴러 드라마입니다.

초반의 아이가 유괴된 상황에서 경찰과 피해자 가족이 중심이 되는 몸값 전달 과정에 대한 묘사는 상세하면서도 긴장감을 불러일으킵니다. 특히 범인과의 전화 통화, 그리고 여러 장소를 거쳐 이동하며 피해 아동 료의 조부 기지마가 탈진하는 장면이 아주 박진감 넘칩니다. 또한 유괴범들이 경찰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본래 목적이었던 유괴에 앞서 다른 유괴를 벌인다는 설정, 그리고 유괴범들이 몸값을 받는 데 실패한 뒤 사라졌던 피해 소년 료가 2년 후 조부모의 곁으로 돌아왔다는 전개는 그 자체로 흥미로운 소재였습니다.
30년 뒤, 기자 몬덴이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는 구성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저자가 신문기자 출신으로, 그래서인지 몬덴 지로의 취재 과정에 대한 묘사가 아주 상세한 덕분입니다.

몬덴이 료를 보호했던 화가 노모토 다카히코 가족의 이동 경로를 따라 도쿄, 시가현 비와호, 홋카이도 등을 순례하듯 따라가는 장면에서는 여정 미스터리의 분위기도 엿볼 수 있었고, 지역의 풍광이나 명소들을 노모토의 ‘사실화’ 화풍과 연결 지어 서술하는 방식도 잘 어울렸습니다. 

사진과 다르게 모든 곳에 촛점이 맞고 추격해 오는 듯한 박력이 느껴진다는 사실화에 대한 설명도 발군입니다. 관심이 갈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말이지요. '하이퍼 리얼리즘' 장르와 같다고 생각되는데, 몇 작품 찾아보니 확실히 남다른 데가 있어 보입니다. 다만, 사진과는 다르게 생성형 AI로 추구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 아닌가 싶기는 하네요. 이건 화가들이 고민하고 극복해야 할 문제이겠지만요.

이렇게 묘사는 남다른 데가 있는데, 문제는 초반 유괴극의 묘사를 제외하면 범죄 스릴러라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화가로 성공한 현재의 료를 과거에 돌봤던 인물이 유력 용의자 노모토 마사히코의 동생인 사실화가 노모토 다카유키라는 사실이 너무 일찍 밝혀지는 탓이 큽니다. 이후 전개는 노모토 다카유키의 과거를 추적하는 흐름일 뿐이며, 그가 아내 유미와 함께 료를 정성껏 보살폈다는 점도 명백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이후 이야기는 스릴러보다는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범죄라는 행위가 없으니 당연하지요. 유괴극도 몸값을 받아내는데 별다른 아이디어가 없어서 맥이 빠지고요.

몬덴의 추적극도 그리 드라마틱하지 않습니다. 현장을 발로 뛰는 정성은 높이 평가할 수 있으나, 결정적인 단서를 얻는 과정들이 대부분 우연에 의존하기 때문에 몰입감이 떨어집니다. 게다가 노모토의 그림을 본 뒤 부터는 더 논할 가치가 없습니다. 노모토는 자신이 도주하며 머물렀던 곳을 사실화 그림으로 남겼기 때문입니다. 즉, 사진 속 장소만 찾아다니면 됩니다. 

그리고 료가 스스로 과거를 밝히면 충분한 이야기인데, 왜 이처럼 기자의 조사가 필요했는냐는 문제도 큽니다.  공소시효도 이미 지났고, 료는 명백한 피해자이기 때문에 몬덴에게 추적을 맡기고 사건을 숨길 이유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를 정성껏 길러준 노모토 부부를 위해서라도 진상을 밝히고 동정을 이끌어내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화가로서의 노모토를 위해서라도요.
몬덴 역시 왜 이 사건을 추적하는지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자문하지만, 기사화해서 화제를 일으키고 돈을 벌겠다는게 핵심일터라 별로 와 닿지 않습니다.

노모토 이야기를 통해 일본 화단계의 부조리를 드러내려는 시도도 별로입니다. 약간 사회파적인 느낌을 주기는 하는데, 노모토가 화단을 떠난 결정적 이유는 형의 유괴 사건에 우연히 연루되어 도주한 것이라서 이러한 고발과는 연결하기가 애매합니다. 작중 언급도 되듯이 작가가 마쓰모토 세이초의 팬인 듯 한데, 그냥 어설픈 흉내내기에 불과해 보였어요. 이렇게까지 큰 비중을 가질 내용도 아니었고요.
비중으로 친다면 료의 고등학교 동창인 리호의 등장은 더 큰 문제입니다. 그녀는 이야기 전개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리호는 그저 료의 천재성을 드러내기 위한, 그리고 약간의 화단과 백화점 관련 사회 고발 메시지를 언급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녀없이 몬덴의 추적극으로만 진행되었어도 충분했을 이야기에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유괴극을 다룬 범죄물로서는 초반을 제외하면 다른 유괴물 대비 장점을 찾기 어렵고, 이후의 전개도 추리나 스릴러의 측면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진상이 너무 일찍 밝혀지고, 이야기도 잘 짜여졌다는 인상을 주지 못하는 탓입니다. 별로 추천할 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2006/07/09

퀴즈 [QUIZ] (2000)

영어강사인 다카노 마이는 어느날 한통의 메일을 받는다.

제목: 퀴즈입니다.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
힌트: 이미 없어졌습니다.


그 순간 그녀가 떠올린 것은 초등학교 2학년생인 아들 쇼가 아직도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 학교나 친구들에게도 연락해보지만 아들의 행방은 묘연하기만 하고 그 후 또 한 통의, 정체불명의 메일이 도착한다.

‘아들을 데리고 있다. 경찰에게는 알려선 안 된다.
퀴즈: 경찰에게 알리면 아이는 어떻게 될까?
힌트: 도레미파솔라…시(시는 일본어로 죽음) 죽음?!!!


다카노 마이는 경찰에 신고하고 경시청의 유괴 전담반인 SIT의 키리코 카오루가 사건 수사 지휘본부에 투입된다. 수사 지휘자인 오자와 형사과장과 사사건건 충돌하면서도 범인의 감시카메라를 피해 다카노가에 잠입에 성공한 형사 시라스나와의 협력 수사로 범인의 퀴즈를 하나씩 해독해 나가며 사건의 진상에 접근하는데...


2000년에 방영되었던 일본 드라마입니다. 누군가의 추천으로 보게 되었는데 극의 흡입력 하나는 정말 대단하네요. 이틀만에 다 볼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유괴범이 "퀴즈"를 보내고 경찰과 두뇌게임을 펼친다는 전개는 비스무레한 작품이 많아서 그다지 신선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는 퀴즈 자체, 즉 일종의 퍼즐을 시청자가 몰입하면서 볼 수 있는 수준으로 제시하며 적절하게 사용한다는게 다른 복잡한 심리 스릴러 극과 차별화됩니다. 퍼즐 풀이의 재미로 상당한 몰입감도 전해주고요. 스토리도 단순한 유괴극으로 끝나지 않고 2중, 3중으로 포장되어 있으며, 이러한 요소를 설명하기 위한 복선 역시 많아서 정교한 느낌을 전해줍니다. 극의 긴박감도 일품이고요.
범인이 6억엔을 요구하여 도주하는 장면은 정말 머리를 많이 썼구나 싶을 정도로 잘 짜여진 트릭이었으며, 이 도주극에서 주인공 키리코 카오루의 또다른 함정 역시 상당한 수준이었습니다.

거기에 결말부분의 반전이 유명하던데 저도 놀랐습니다! 솔직히 상상도 하지 못했거든요. 물론 이 반전 역시 쌩뚱맞게 튀어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반전을 설명하기 위한 여러 장치가 드라마 전체적으로 잘 드러나 있거든요. 각본진의 노고가 느껴질 정도로 잘 짜여진 작품이라 할 수 있겠지요

또한 제작진이 "케이조쿠"의 제작진 그대로라고 하는데 케이조쿠에서 인상깊었던 몽환적인 화면이나 순간순간의 교묘한 이미지 편집, 절묘한 음악과 화면의 조화로 긴장감을 자아내는 여러 장면들, 그리고 드라마의 미술적 감각은 지금 보아도 전혀 유치하지가 않은 수준입니다. 이미지 과잉이라는 생각도 들기도 했지만 비쥬얼 적으로는 만족할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일본 드라마에서 제일 마음에 들지 않는 요소인 배우들의 오버가 이 작품에서는 심하지 않아서 더욱 좋았습니다. 주인공 키리코 카오루가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설정은 분명 만화적이고 심리가 극도로 불안하여 환영을 본다는 설정은 불필요하다 생각되지만, 자이젠 나오미라는 배우는 그 만화적인 설정을 커버해 줄 정도의 연기력은 충분히 보여주었고, 남자 주인공격인 시라스나가 굉장히 현실적인 형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마음에 드네요. 또한 트릭의 개그형사 야베역의 배우가 맡은 오자와 형사반장의 연기 역시 그간의 이미지를 완전히 깨 주는 멋진 연기와 설정이었습니다. 이러한 현실감 있는 연기와 더불어 심각한 극의 전개가 설정과 오버가 가득한 그간 일본 드라마의 편견을 많이 불식시켜 준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 외의 조연도 친숙한 얼굴들이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만화적인 설정, 즉 키리코 카오루라는 캐릭터의 설정은 너무나 불필요했기에 아쉬움이 남으며, 다카노가를 비롯한 주변 가족들의 일상 및 심리상태 묘사도 좀 오버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11부작에서 요런 부분을 줄였으면 한 6부작 정도로 충분히 끝낼 수 있었을텐데 말이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진범을 사주한 인물에 대한 설득력이 거의 제로에 가깝기에, 또 이 인물로 인해 반전의 충격이 많이 희석되는 것, 그리고 좀 억지에 가까운 해피엔딩은 각본진이 좀 몸을 사린 것 같았습니다. 지나치게 공포-충격요법을 전달하기 위해 군더더기 -클로즈업만 되면 눈알을 굴리는 연기를 하는 등- 가 좀 많았던 것도 불만스러웠고요. 아무래도 디테일에서 좀 작위적인 연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유괴당한 다카노 쇼 역의 아역배우의 연기는 솔직히 독서낭독회 수준이라서.... (뭐 7살짜리 아역한테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 잘못이겠지만요)

뭔가 후속편을 부르는 듯한 여운도 살짝 남기는데 후속편이 없는 것으로 보면 드라마의 인기는 별로였나 보네요. 그래도 몰입력 하나는 대단한, 그리고 여름에 보면 더더욱 좋을 것 같은 서늘한 맛을 잘 전해주는 재미있는 드라마였습니다. 비록 방영한지는 6년이 지났지만 지금 보아도 전혀 유치한 느낌을 주지 않는 내용과 비쥬얼로 포장되어 있으니 휴가철에 하루이틀 몰아서 보면 딱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제가인 "Toy Soldier"도 마티카의 원곡을 번안해서 부르는데 극의 내용(?) 이나 이미지와 잘 부합하고 있고 오랫만에 들으니 더욱 반가왔습니다. 

2013/12/30

미타라이 기요시의 인사 - 시마다 소지 / 한희선 : 별점 2점

미타라이 기요시의 인사 - 4점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검은숲

총 네 편의 중단편이 수록된 미타라이 기요시" 시리즈 초기 작품집.

"점성술 살인사건"은 일본에 추리문학의 새로운 바람을 불러온 걸작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미타라이라는 탐정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이후 작품들도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고요. 엘러리 퀸과 반 다인의 뒤를 잇는 잘난척 덩어리에다가, 뭐 하나 못하는 게 없는 잘난 인물로 묘사되니 마음에 들래야 들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나 "마신유희"에서는 그 정점을 찍었었죠.

다행히 이 책 수록작들은 위의 단점이 두드러지지는 않습니다. "점성술 살인사건" 바로 직후에 이어지는 초기작인 덕분이겠지요. 신본격 시대를 연 작가답게 고전적인 퍼즐 미스터리 스타일 정통 본격 추리물들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네 편의 이야기 모두 장르가 조금씩 다른 것도 재미를 더합니다. 첫 번째 작품은 전형적인 알리바이 깨트리기가 밀실 살인과 결합되어 있으며, 두 번째 작품은 일종의 순간 이동 트릭이 등장합니다. 세 번째는 붉은 머리 클럽이 연상되는 일종의 사기극을 그린 소품이고 네 번째는 유괴극이거든요.

또 두 번째, 세 번째 작품의 화자가 이시오카가 아니라는 것도 특이한 점이에요. 물론 두 번째 작품은 화자가 다르다고 해서 딱히 달라진건 없습니다. 미타라이의 경이적인 재즈기타 실력을 설명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고요. 반면 세 번째 작품은 사건이 워낙에 독특하고, 화자의 버릇이 사건의 핵심 중 하나라는 점에서 화자 변경이 꽤 효과적으로 사용된 편입니다.

결론내리자면, 작품마다 편차가 크고 불필요한 설정, 묘사가 많기 때문에 별점은 2점입니다만, 최악이라 할 수 있는 두 번째 작품 "질주하는 사자"만 빠졌어도 별점 0.5점은 더 줄 수 있습니다. 다른 작품들은 비교적 괜찮고, 무엇보다도 트릭만큼은 신본격의 장을 연 작가의 명성에 어울립니다. 본격 퍼즐 미스터리 애호가시라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장르소설의 명가 "검은숲"에서 출간된 책답게 장정과 디자인도 괜찮습니다.

덧붙여, 작가의 후기에서 미타라이 작품의 영상화를 반대하는 이유가 전형적인 일본인과는 정반대의 캐릭터를 구현하고 싶었다는 캐릭터론이 펼쳐지는데, 전형적인 일본인에 대한 설명은 수긍이 가지만 미타라이라는 캐릭터가 그것에 반하는 캐릭터라는 것에는 절대 수긍할 수 없었습니다. 경찰을 싫어하고, 높은 사람을 싫어하는 잘난척하는 독설가에다가 사람의 본성에 관심이 많으며, 음악 등 다방면에 조예가 깊다는 점에서 아무리 봐도 "셜록 홈즈"의 판박이에 불과하니까요.

수록작별 간단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숫자 자물쇠"

"점성술 살인사건"에 등장했던 다케코시 형사가 미타라이에게 미궁의 밀실 살인 사건의 해결을 부탁하는 내용으로, "점성술 살인사건" 바로 직후에 이어지는 초기작입니다.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한 순간 이동 트릭(정체되는 도로 위 트럭 짐칸에 있던 범인이 몰래 빠져나와 지하철로 이동하여 범행을 저지르고 다시 복귀!) 만큼은 아주 좋았습니다. 과연 짐칸을 향해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을지는 의심스럽지만, 습관처럼 계속된 출근 방법이라는 전제가 있으니 딱히 문제라 할 수 없겠지요. 미타라이가 의외의 자상한 면을 드러내는 것도 인상적이었고요.

그러나 밀실 트릭 자체는 별게 아니고, 초반 3단 숫자 자물쇠의 조합에 대한 경우의 수가 의도적으로 잘못 전달되기 때문에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총 3자리의 번호가 1부터 0까지로 조합된다면 누가 생각해도 10*10*10으로 경우의 수는 1,000개밖에 없잖아요.

아울러 범인이 왜 번호를 하나씩 시험해가며 문을 열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등장하지 않는 것도 이해불가예요. 어차피 죽일 생각이었고 딱히 미궁에 빠뜨리려는 의도로 보이지 않은 만큼 그냥 힘으로 뜯어도 됐을 텐데 말이죠. 동기 역시 설득력이 약해 아쉽더군요.

때문에 별점은 2점. 숫자 자물쇠 이야기를 빼고 좀 더 짧고 깔끔하게, 설득력 있는 동기로 전개하는 게 좋았을 겁니다.

"질주하는 사자"

재즈 동호인 모임에서 진주목걸이 도난 사건이 벌어졌다. 그리고 유력한 용의자 구도는 기차에 치인 시체로 발견되는데...

구도가 죽는 순간까지 도저히 기차에 치인 장소로 갈 수 없다는 불가사의를 다룬 작품.

앞선 리뷰에서 말씀드렸듯 수록작 중 최악입니다. 일단 트릭부터 설명하자면, 조잡한 장치 트릭입니다. 문제는 작품 내에서의 설명으로는 독자가 떠올리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T자형으로 이루어진 맨션에 대해 작품 내에서 계속 장황하게 설명하기 때문에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지만요.

범행의 동기도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예요. 몇 명 없는 모임에서 보석 도난 사건이 일어난다면 용의선상에 오를 건 분명한데 어떻게 빠져나갈지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는 것도 황당하지만,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 모임에서 목을 졸라 살해한다는 건 정말 말도 안 돼지요.

작품과는 무관한 미타라이의 세계급 재즈기타 실력 설정 역시 짜증나는 요소였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천재성의 묘사가 캐릭터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전혀 점수를 주고 싶지 않아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1점입니다. 점수를 준 부분은 진주목걸이 절도와 관련된 마술 트릭과 마지막 숫자 "7"에 대한 가벼운 농담 같은 반전뿐입니다.

"시덴카이 연구 보존회"

화자인 세키네가 부장에게 자기가 겪은 가장 희한한 일을 이야기하는데 옆에 있던 미타라이가 간단하게 그 진상을 풀어 알려주는 이야기.

핵심은 이른바 시덴카이 연구 보존회 회장이라는 젠키치 할아버지의 사기극인데, 미타라이의 추리는 비약이 심해 논리적으로 보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젠키치 할아버지의 웅대한 이상이 너무 맛깔나게 묘사되어 재미있게 읽을 수는 있었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추리와 트릭은 영 아니더라도 "시덴카이 연구 보존회"라는 발상에 점수를 줍니다. 희한한 일, 기이한 조직, 그리고 예상치 못한 범죄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붉은 머리 클럽"에 대한 오마주로 보이기도 하네요.

"그리스 개"

그리스의 일본인 해상왕 아들이 유괴된 사건을 다루는 전형적인 유괴극인데, 유괴극의 가장 큰 숙제인 몸값 전달에 대한 신선한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등장하는 암호 트릭도 꽤 기발했고요. 초반의 타코야키 가게 도난 사건까지 엮어 전개하는 짜임새도 괜찮았습니다.

범인이 누군지 피해자가 눈치챈 시점에서 이미 게임은 끝난 거 아닌가라는 문제, 그리고 "개"에 대해 지나치게 비중을 둔 전개는 약간 의아하지만 평작은 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14/10/13

사라진 테니스 스타 - 까뜨린느 아를레 : 별점 2점

사라진 테니스 스타 - 4점
까뜨린느 아를레 지음/추리문학사

테니스 세계랭킹 1위 이반 파첵이 자택 근처에서 조깅 도중 납치되었다. 테니스 협회는 납치범들이 요구한 100만 달러의 몸값을 거절했지만, 이반 파첵의 테니스 생명을 걱정한 세계랭킹 2위 데렉 빌더가 대신 몸값을 지불할 뜻을 밝혔다. 그러나 몸값 지불 장소였던 전미오픈 경기장에서, 데렉 빌더마저 헬기를 이용한 범인들에게 납치되고 마는데…

김성종 최신세계추리소설 시리즈로, "지푸라기 여자"로 유명한 카트린 아를레(까뜨린느 아를레)의 작품입니다. 제목 그대로 납치된 테니스 스타와 몸값 지불을 둘러싼 유괴극입니다. 인질이 세계 랭킹 1, 2위의 프로 테니스 선수라는 설정이 특징이지요. 

내용은 유괴극답게 몸값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촛점이 맞춰져 있는데, 범인들이 거의 성공에 이르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완전범죄극이었던 "지푸라기 여자"의 작가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저 납치했던 이반 파첵을 활용하여 더 큰 돈을 다시 벌어들인다는, 몸값 전달 방식에 대한 꽤나 치밀하게 구성된 트릭 덕분입니다. 프로 테니스와 유괴를 결합한 소재 자체도 독특했고요.

그러나 이 몸값 전달 작전을 제외하면, 추리적으로나 내용적으로 크게 특기할 만한 점은 없습니다. 오히려 작가의 명성에 비교하면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허술한 부분이 많습니다. 전미 랭킹 1위의 프로 선수가 경호도 없이 쉽게 납치된다는 도입부터 현실성이 부족한데, 데렉 빌더가 생중계 중인 테니스 경기장에서 헬기를 이용해 납치되는 장면은 정말이지 황당했습니다. 아무리 경찰이 무능하다 해도, 백주대낮에 납치극이 벌어지는데 수수방관한다는 건 말이 안 되지요. 모든 경찰력을 동원하면 헬기가 내리는 위치를 특정할 수 있었을 테고, 헬기가 영화 촬영에 쓰인 소품이라는 점만 확인했더라도 범인들의 위치를 추적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겁니다. 이쯤 되면 경찰이 공범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또 범죄의 흑막이 있었다는 식의 마무리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폴란드 민주화 운동을 위한 자금 확보라는 원래 범죄 의도만으로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기에, 이런 설정은 오히려 사족처럼 느껴졌어요. 후속작을 염두에 둔 복선이었을까요? 어차피 후속작을 볼 일은 없겠지만요.

이렇게 일부 아이디어 면에서는 장점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설득력이 부족해서 좋은 점수를 주긴 어렵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번역의 완성도도 떨어지니 굳이 찾아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절판되었으니 찾기도 힘들지만요.

2024/08/10

열린 어둠 - 렌조 미키히코 / 양윤옥 : 별점 2.5점

열린 어둠 - 6점
렌조 미키히코 저자, 양윤옥 역자/모모

"회귀천 정사"로 유명한 렌조 미키히코의 단편집. 원제는 "夜よ鼠たちのために (밤이여, 쥐들을 위해)". 모두 아홉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1983년에 출간된 나름 고전(?)으로 일본에서도 꽤 오래 절판 상태였었는데, "이 미스터리가 굉장해" 2014년 판에서 '복각(재출간) 희망! 환상의 명작 랭킹'에서 1위를 차지한 덕분에 2014년에 복간된 이력이 있습니다. 아야츠지 유키토가 아래와 같이 극찬하는 인터뷰와 글을 남겼을 정도로 좋아했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 미스터리의 재미 중 가장 큰 것은 무엇인가 하면, 역시 마지막의 반전, 결말의 의외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단편에서 그걸 내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단편집은 모든 작품이 놀라운 반전 구조를 그립니다. 생각할 수 있는 한, 최고의 전개를 실현한 작품들입니다. 마치 네거티브 필름이 포지티브로 바뀌는 것처럼, 결말에서 흑백이 뒤바뀝니다. 모든 작품에서 완전히 속아버릴 수 밖에 없어요. 전후 미스터리 단편집 중에서, 저는 이 책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인상 깊은 것은 표제작입니다. 미스터리라는 성격상, 스토리를 말하는 것은 스포일러가 되므로 삼가겠습니다만, 제가 만약 단편을 쓴다면 이렇게 쓰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an・an」 1990년 11월 23일호, 아야츠지 유키토 「나의, 한 권. 멋진 반전의 구조. 전후 최고의 미스터리 단편집」에서)
  • 아야츠지: 렌조 작품은, 일반적으로는 나오키상 수상작인 연애소설 『연문』이 유명합니다만, 충격적이었던 것은 역시 먼저, 『회귀천 정사』, 『은밀한 상복』 등의 초기 단편집입니다. 지금은 고분사 문고로 읽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밤이여, 쥐들을 위해』입니다. 지금은 구하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처음에는 실업지일본사에서 신서판으로 나왔고, 신초문고와 하루키 문고로 차례로 옮겨졌는데, 현재는 절판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 서술 트릭 계열 단편집의 최고봉인데......아깝네요. (「작가의 독서도 제150회: 아야츠지 유키토」에서)

읽어보니 이 정도 극찬을 받을만한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호평은 이해가 됩니다. 서정성과 트릭이 잘 결합되어 있던 작가 최전성기 시절("회귀천 정사" 시절)답게, 추리적으로 굉장히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트릭이 사용된 정통 본격 추리물에서 유괴극, 복수극, 서술 트릭 반전극, 느와르 등 수록작의 장르도 다양합니다. 과하게 느껴졌던 작가의 묘사도 다른 후기작에 비하면 절제되어 있어서 부담이 덜하고요.
모든 수록작이 다 괜찮은건 아니지만, 더운 여름, 한 번 읽어볼만하다 생각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가 가득하다는 점,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두 개의 얼굴"
화가 마사키 유스케는 아내 게이코가 신주쿠 호텔에서 살해당했다는 경찰의 연락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자택 침실에서 유스케가 살해해 뒷마당에 파묻었다. 호텔 사건의 여자가 게이코라면, 유스케가 집에서 죽인 여자는 누구인가? 돌이켜 생각해보니, 유스케는 죽인 여자의 얼굴을 그날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유스케는 호텔 사건에는 알리바이가 있었기 때문에, 호텔에서 발견된 여자를 게이코로 만들어 버리자고 마음먹었다...

진상은 유스케의 범행을 목격한 동생 신지가 자신을 협박하던 꽃뱀 여자를 함께 처치해 버렸던 겁니다. 마침 몸매가 비슷해서 속일 수 있었지요. 이 때 집 안에 전화가 두 대 있는 것을 이용해서 '순간 이동' 트릭을 선보입니다. 전화가 걸려와 안부를 물으면 당연히 외부에서 전화를 했을거라 생각하지만, 사실 같은 집 안에 있었다는 것이지요. 간단하면서도 현실적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유스케가 살해한 아내의 사체가 이동한 이유도 잘 설명되고 있으며, 사건에 대한 유스케의 심리묘사도 독자의 흥미를 더해주는 요소입니다. 서스펜스가 제법이었어요.
하지만 단편이라서 설명이 부족하며, 작위적으로 전개한 부분은 눈에 거슬립니다. 우선 신지가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건 너무 뻔했습니다. 신지를 협박하던 꽃뱀 여자가 유스케 집까지 찾아와 지문을 남긴건 억지스러웠고요, 마지막 신지의 장난도 이유를 알기 어럽습니다.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7인 1역"과 유사하다는 것도 감점 요소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과거에서 온 목소리"
'나'는 금수저 출신으로 형사일을 견디다 못해 2년만에 그만두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뒤, 그만 둔 이유에 대해 강 선배에게 편지를 썼다.
1년 전, 전일항공 부사장 야마후지 다케히코의 외아들 가즈히코 유괴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은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어 부인을 전화기에 붙잡아 놓은 상태에서, 담을 뛰어넘어 아이를 유괴했다. 경찰은 몸값을 확보하고 도주하던 범인을 미행하다 놓치고 말았다. 다행히 몸값을 받은 범인은 아이를 무사히 풀어주었고, 이후 공개 수사로 전환한 경찰에게 정체가 드러난 범인 오카다는 자동차 사고로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러나 유괴범에게 동정심을 느낀 '나'는 당시 일부러 범인이 도주하도록 수사를 방해했다. 유괴범 중 한 명이 강 선배라는걸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전화를 건 범인이 '내일'이 금요일인지 토요일인지 정하지 못했던 상황을 통해, 범인이 두 명이며 둘 사이 커뮤니케이션이 원할하지 않다는걸 추리해 내는건 아주 좋았습니다. 두 명 중 한 명이 아이를 유괴당한 탓에 어쩔 수 없이 부잣집 아들을 유괴해 몸값을 받아내려 했다는 발상도 재미있었어요. 실행범은 자기 아이를 유괴한 범인의 요구사항을 자기가 유괴한 사건 피해자에게 그대로 전달만하면 된다는 아이디어인데, 정말 획기적인 아이디어라 생각됩니다. 
강 선배가 오카다를 살해했을거라는 결말도 합리적입니다. 오카다가 체포되면 진상이 드러날 수 있으니, 경찰이 체포하기 전 정보를 흘려 유인한 뒤 살해했다는건 말이 되니까요.

그러나 유괴가 이렇게 겹쳐서 강 선배가 피해자이자 범인이 된다는건 다소 억지스럽다는 문제는 있습니다. '나'가 강 선배의 눈에서 이십 년 전 범인 눈빛을 떠올린 덕에 진상을 깨달았다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나'가 집 안에 있는 신이치가 사실은 유괴당한 가즈히코라는걸 눈치챈건 앞선 복선으로 설명되지만, 독자는 눈치채기 힘들다는 점에서 공정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유괴 피해자가 몸값 마련을 위해 유괴범이 된다는 아이디어는 아주 좋았던만큼, 이를 확장한 장편으로 묵직하게 썼다면 "킹의 몸값"과는 또 다른 딜레마를 안겨다주는 좋은 작품이 될 수도 있었을것 같은데 아쉽네요. 그래도 아이디어만으로 별점 3.5점은 충분합니다.

"화석의 열쇠"
하반신 마비 소녀 지즈가 목이 졸려 죽을 뻔 했다. 피해자 집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다. 창문은 모두 안에서 잠겨 있었고, 출입구는 현관문밖에 없는데 열쇠는 관리인 사와가 보관하고 있었다.

지즈가 엄마를 집에 들이기 위해 자물쇠 바꾸는 청년을 속여 헌 자물쇠를 달게 했고, 엄마와 아빠 모두 지즈가 부담되어 살해하려 했다는게 진상입니다.
이를 드러내기 위한 정보 제공은 공정합니다. 지즈가 자물쇠 바꾸는 청년에게 상황에 맞지 않는 초콜릿 부탁을 한 것, 관리인 사와가 엄청나게 청소를 열심히 한다는 등 상황에 대한 공유는 확실하니까요. '열쇠 화석'이라는 말도 단서로서는 좋았습니다. 사와가 이 모든걸 깨닫는 전개는 일상계스러워서 마음에 들었고요.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부모 둘이 동시에 딸을 살해할 생각을 한다는건 와 닿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런 생각을 했다면 자기가 빠져나갈 생각을 할까요? 신파적인 결말도 별로였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기묘한 의뢰"
신소에서 일하는 나에게 쓰치야 마사하루라는 의뢰인이 찾아왔다. 아내 동향 조사 의뢰를 위해서였다. 아내 사야코는 하릴없이 이곳 저곳에서 시간만 보냈다. 알고보니 그녀는 나의 미행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고, 나에게 오히려 남편 쓰치야의 행적 조사를 부탁했다. 알고보니 나를 이용해서 몰래 불륜 행각을 저지르기 위함이었다. 이 역시 쓰치야에게 들켜버렸고, 쓰치야는 자기 행적 조사를 거짓으로 전달하라고 했다. 전달하기 위한 쓰치야의 행적은 애인 유리의 맨션 주소와 연락처로 받으려 했는데, 그 뒤 유리가 살해되었다...

쓰치야는 유리의 다른 애인으로, '나'와 유리의 관계를 알고 유리를 살해했다는게 진상입니다. 조사를 맡긴건 유리와 나의 관계를 확실히 알아내기 위해서였고요.

나의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그리고 냉소적인 심리묘사가 대부분으로 추리적으로 딱히 눈에 뜨이는 부분은 없습니다. 오히려 이 묘사로 '나'의 별로인 모습만 드러나 작품에 몰입하기 힘들다는게 문제입니다. 쓰치야 부부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는 모습은 무능력했고, 유리의 죽음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느끼지 않는 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마지막에 자신이 쓰치야에게 농락당한 것에 불과하다는걸 알아 버렸지만, 그냥 그대로 끝나버리는 결말은 이게 뭔가 싶더군요. 이야기가 완결되었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어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밤이여, 쥐들을 위해"
어린 시절 불우했던 나는 교정을 받아 사회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내를 잃은 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복수를 결심했다. 
병원 원장 요코즈미 다다오는 '나'의 협박 전화를 받고 서둘러 집을 나선 뒤 살해당했다. 경찰은 백만엔이라는 돈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나'의 원한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추정했다. 이후 원장 사위이자 내과 부장 이시즈의 사체도 발견되었다.

'나'인 쓰무라의 아내는 불치병 뇌종양이었고, 병원의 과실로 죽은게 아닙니다. 그런데 왜 백만엔이라는 돈을 건네려고 했을까요? 이 수수께끼는 흥미롭습니다. 알고보니 이하라의 아내 후미요에 대한 오진을 숨기려고 원장과 내과 부장이 그녀가 백혈병에 걸리게 만들었다는게 진상입니다. 생각도 하지 못했네요. 쓰무라와 이하라의 정체가 독자가 알고 있던 것과 정 반대라는게 드러나는 반전도 좋았습니다. 잘 짜여진 서술 트릭물로, 독자를 완벽하게 속이는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단 둘의 흉터는 너무 노골적으로 속이겠다!는 의도가 보여 좀 별로였고, 어린 시절 쥐를 죽였던 원한으로 살인까지 저지른다는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하라는 누군가에게 죄를 뒤집어 씌울 수 밖에 없었으니 억지스럽더라도 죽일 수 밖에 없는 동기를 만들 수 밖에 없었던 작가의 고충은 이해가 되지만, 억지는 억지에요. 그래도 심리 묘사가 탁월한 덕분에 생각보다는 잘 설명되는 편이라 다행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이중생활"
마키코는 열 여섯살 많은 슈헤이에게 젊음을 바쳤지만, 자신을 버리려하는 슈헤이에게 증오를 느꼈다.

정부인줄 알았던 마키코가 진짜 아내이고, 반대로 나이많은 시즈코가 정부이자 불륜녀라는 반전이 인상적입니다. 이 반전을 결말 부분까지 잘 숨기면서 전개한다는 점에서는 서술 트릭물로 보아도 무방합니다. 
마키코가 남편 슈헤이와 불륜녀 시즈코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살해당한 것처럼 자살한다는 반전, 그리고 이를 위해 데쓰오와 시즈코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방법도 잘 짜여져 있어서 범죄물로도 우수한 수준이고요.

그런데 마키코가 정부 데쓰오를 범행에 끌어들인건 억지스럽습니다. 불륜을 저지르다가 살해당한 모양새이니, 마지막 순간치고는 영 폼이 나지 않으니까요. 데쓰오 없이도 현장 상황 - 슈헤이가 받아온 수면제가 들어있는, 슈헤이가 즐겨 마시던 와인 - 과 스토브 지문으로 슈헤이에게 누명을 씌우는건 가능했을것 같거든요. 시즈코마저 옭아매기 위해 데쓰오를 이용했다고보면 말은 돼지만, 이 역시 나이든 시즈코와 데쓰오가 불륜 관계라는 전제조건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작위적입니다. 조건이 갖춰진 뒤에야 실행 가능한 계획이라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도 힘들고요. 

단편이 아니라 장편이었다면 좀 더 설득력있는 인간 관계를 쌓아올리는게 가능했다는 측면에서, 조금 긴 호흡으로 풀어나가는게 좋았을 것 같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대역"
인기 배우 하세쿠라 슌은 아내 료코와의 이혼 조건을 만족하기 위해 자신과 꼭 닮은 남자 다카쓰 신야를 찾아냈다. 그러나 료코가 슌의 불륜을 알고 있었으며, 이혼할 생각도 없다는걸 알게된 뒤 료코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다카쓰 신야를 이용한 알리바이를 만들어서였다. 오사카에서 다카쓰를 자신인 척 연기시킨 뒤, 자신은 변장하고 도쿄로 가서 살해하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료코는 없었고, 오사카로 돌아간 뒤 자신의 방에 죽어있는 기누에를 발견했다. 이 모든건 료코와 다카쓰의 음모였었다.


하세쿠라 슌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완전 범죄물로는 볼만합니다. 도무지 빠져나갈 방법이 없는 완벽한 계획이었습니다. 하세큐라 슌의 대타가 다카쓰 신야가 아니라, 료코와 기누에 입장에서는 그 반대였다는 반전도 인상적이었어요.
 
하지만 이야기의 현실성이 많이 떨어집니다. 애초에 이렇게 닮은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 주위에 같은 여자들이 엮이게 된다는 것 부터가 말이 안되지요.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는 했는데, 말이 되는 이야기로 만드는 데에는 실패한 셈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베이 시티에서 죽다"
동거녀와 믿었던 아우에게 배신당한 조직원이 출소 후, 둘이 함께 도망친 항구 도시로 찾아가 모두 죽여버린다는 느와르.. 묘사도 멋있고 배신의 진상 - 없던 죄를 뒤집어 쓴게 아니라 원래 내가 지은 죄였다는 - 도 그럴듯하기는 하지만, 딱히 흥미롭지는 않았습니다. 추리적인 맛은 거의 없고, 내용도 신선함이 떨어지는 탓입니다. 그냥 서정적인 '사나이' 이야기를 한 편 쓰고 싶어 쓴 느낌이랄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열린 어둠"
불량 학생들만 다니는 사립 세이에이 고등학교 음악교사인 미즈키 마사는 '마더'라는 별명으로 학생들의 신임을 얻고 있었다. 어느날 퇴학당한 폭주족 블랙호크스 멤버 중 한 명인 노리코가 긴급한 도움 요청을 해 왔다. 리더 다카기가 살해당했다고 했다. 노리코와 함께 현장에 온 마사는 경찰에 신고하려 했지만, 노리코가 유력한 용의자라는걸 알고 한 시간만 더 고민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다카기의 죽음이 학교 체육 교사 아카자와 다케시 살해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아카자와는 동성애자였다.

불량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진 사건을, 학생과 얼마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열혈 신입 교사가 해결한다는 내용으로 70년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던 '청춘 미스터리'의 영향이 가득 느껴집니다. 동성애로 인한 삼각관계가 원인이라는 점은 발표 시기를 감안하면 신선한 편이고요. 요새 이런 설정이 유행이라는데, 나도 한 번 써볼까!라는 생각으로 쓴 듯한데 의외로 괜찮았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나쁘지 않습니다. 다카기가 폐소 공포증이라는게 핵심 단서인데 - 아카자와 선생의 차는 비가 오는데도 창문이 열려있었다 -, 이는 여러가지 단서로 독자에게도 공유됩니다. 노리코가 아침에 다카기의 방에서 쫓겨난 건 창문을 닫으려고 해서, 다카기가 초고층 맨션에서 뛰쳐나온건 엘리베이터를 탈 수가 없어서, 다카기가 폭주족이 된 건 차를 타기 싫어서였다는 식으로요. 
미즈키 마사가 학생들 앞에서 추리쇼를 펼쳐 진상을 밝히는 전개도 정통 본격 추리물 스타일입니다. 

그러나 다카기가 스즈타에게 아카자와 살인 혐의를 뒤집어 씌우려고 현장을 조작했기에, 스즈타는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는걸 증명하려고 다카기를 살해하고 노리코에게 혐의를 씌웠다는 동기는 설득력이 약합니다. 후더닛 물로는 괜찮았지만, 와이더닛 측면에서는 좋다고 하기 어렵네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2020/12/26

Q.E.D Iff 증명종료 12 - 카토 모토히로 : 별점 3점

Q.E.D Iff 증명종료 12 - 6점
카토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이번 권에는 두 개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유괴 교섭을 다룬 "좋은 사람"과 복잡한 트릭이 사용된 살인 사건이 등장하는 "재생의 시간" 입니다. "좋은 사람"은 평균 이하였지만, "재생의 시간"은 Q.E.D가 다른 추리 만화와 다른 점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편 평균한 별점은 3점입니다. 이야기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사람" 

이탈리아 저널리스트 아르젠트 (알) 로셀리니가 시리아 무장 단체에게 유괴되었다. 교섭인 시나 샌드는 토마의 옛 동창이어서 토마와 가나는 그녀를 돕기 시작했다. 그녀와 이탈리아 정부, 그리고 알의 백부 마이클까지 모두 3개의 창구가 존재하는 상황으로 교섭은 난항을 겪는데....

유괴 교섭에 대한 이야기. 그런데 단순 교섭보다는 복잡합니다. 세 개의 창구가 교섭에 나선 탓입니다.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이탈리아 정부와 마이클에게 범인 X의 요구액이 너무 높으니 일부분을 부담해달라는 부탁을 해 보라는 토마의 계획은 기발합니다. 만약 다른 두 창구가 범인과 교섭하고 있는게 아니었다면 동의할테고(인질 석방이 우선이니), 그들도 교섭 중이었다면 거절할거라는 이유입니다.
이탈리아 정부와 마이클의 거절로 범인이 세 개 창구 모두와 교섭하여 몸값을 받아낼 속셈이라는걸 알아낸 뒤, 모두의 몸값 전달 날짜가 다르다는걸 통해 각각 다른 사람들과 교섭하고 있다고 추리하게 됩니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두 개 창구가 교섭하는건 가짜인거지요. 

이러한 교섭 단체간 의견 조율과 교섭 이야기는 꽤 그럴싸 합니다. 또 중동 유괴범들이 어떻게 사업(?)을 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상세합니다. 투자자도 있고, 이자도 지급하는 등 여러모로 명백한 사업이더군요. 그래서 빠른 교섭이 필요하고요. 투자금 회수가 빨리 이루어지지 않으면, 손해가 커지기 때문에 몸값이 점점 올라갈 수 밖에 없거든요.
콘테이너를 이용하여 유럽으로 건너가려는 시리아 난민의 비참한 삶에 대한 묘사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난민 소년이 유괴범 일원이 되는 과정도 설득력이 있고요. 즉 유괴 교섭, 유괴 사업, 유괴범에 대한 드라마는 합격점을 줄 만 합니다.

그런데 알을 돌려받는 클라이막스는 영 아니었습니다. 그 자리에까지 토마와 가나가 나서서 위험에 휘말릴 이유는 전혀 없으니까요. 또 알과 가나가 절벽 아래에서 탈출하기 위해 숨겨둔 장치를 이용한 일종의 패러글라이딩을 이용한다는건 과정 자체는 그럴듯하지만 이 역시 현실성이 없습니다. 표적이 될 수 밖에 없어서 위험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 중요한 조사를 가나 한 명으로 돌려막기 하는 내용도 비현실적입니다. 가나 혼자 이탈리아에서 마이클을 만나 협상하고, 마이클 비서를 자칭하여 은행으로부터 몸값 전달 날짜를 알아낸다는 식인데, 일본이었다면 모를까 외국에서 외국인 대상으로 진행한건 지나쳤습니다. 이게 가능하다면 가나도 토마 못지 않은, 어학과 연기의 천재인거지요. 이 정도면 "엘프 사냥꾼"의 코미야마 아이리급이 아닐런지?

이야기도 짜임새가 부족합니다. 유괴 교섭인에 대한 이야기, 유괴된 인질의 탈출극 (?), 시리아 난민의 비참한 삶, 좋은 사람 알에 대한 이야기가 마구 뒤섞여 있거든요. 예전 "마스터 키튼" 속 에피소드처럼 '교섭' 하나에 집중하는게 훨씬 좋았을겁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재생의 시간" 

잡지 기자 크리스는 시의회의원 모카이에게 찾아가 17년전 스미야 코우사쿠 사망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며 협박하여 300만엔을 뜯어 내었다. 스미야 코우사쿠 사망 사건은,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사방이 벽으로 둘러쌓여 출입금지된 장소에서 목을 메고 죽은걸로 보이는 백골 사체가 발견된 사건이었다. 유류품으로 사체는 스미야 코우사쿠로 판명되었는데, 그는 이미 14년 전 실종된 상태였었다(현 시점에서는 17년 전).
경찰은 14년 전 스미야가 이 장소에서 목을 메고 자살했다고 결론내렸었다. 하지만 스미야는 함께 일하던 쇼우스케와 자주 다퉜으며, 쇼우스케가 큰 상처를 입고 기숙사로 돌아온 17년 전 어느날 돌아오지 않았었고, 쇼우스케도 곧바로 입원했던 병원에서 사라졌다.

이후 쇼우스케가 있는 마을로 찾아온 크리스는 시체로 발견되었고, 유력한 용의자는 쇼우스케의 아들 세이지였다. 아르바이트 중 피해자와 다퉜고, 아르바이트하던 술집 근처에서 피해자가 살해되었으며, 시체를 옮긴 보트는 그의 아버지 가게에서 분실된 것이라는 등의 불리한 정황 증거 때문이었다. 그러나 딱 한 가지, '범인이 술집에서 술을 먹는다는걸 알 수는 없었다'는 이유로 풀려났다. 피해자가 술집에 오는걸 알지 못했다면, 보트를 미리 준비해서 유기 장소로 옮기는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살해 현장 근처에는 보트를 숨길 곳도 없었다...

17년 전 과거와 현재, 두 개의 사건이 하나로 만나는 작품으로 두 개의 사건은 모두 수수께끼를 품고 있습니다. 17년 전 사건에서 쇼우스케는 범인일 수 없었습니다. 쇼우스케와 스미야가 다투는게 목격된 장소에서 사체 발견 현장까지는 왕복 1시간 이상 걸리는데, 쇼우스케가 다친채로 기숙사로 돌아온건 고작 30분 뒤였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누가 봐도 쇼우스케가 범인이니, 무언가 트릭이 사용된게 분명합니다. 현재의 사건에서는 술을 어디서 먹을지 모르는데 보트를 어떻게 미리 준비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고요.

토마는 두 사건은 모두 밤에 술 마시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습격당했다는 공통점에 착안하여, 술 마시러 가는 장소 모두에 미리 시체를 숨길 수 있도록 준비했다고 추리합니다. 스미야는 역 앞 라면집, 산기슭 정식집, 이자카야의 세 개 가게만 다녔기 때문에 준비가 그리 어렵지 않았던거지요.
산 기슭 정식집 근처에서 도난당했던 포크레인이 발견된게 증거입니다. 범인은 포크레인을 휘둘러 사체를 멀리 던져 버리고 알리바이를 만들 생각이었습니다. 이는 17년전 사건에 사용된 트릭과 같아요. 사체가 밀실에서 발견된건, 담벼락 넘어 공중에서 던져졌기 때문이었죠. 꽤 기발하고, 나름 현실적인 멋진 트릭이었어요.

범인이 사건을 저지른 동기도 잘 설명되고 있습니다. 사체로 발견된 스미야가 원래 쇼우스케였던 겁니다. 스미야가 쇼우스케를 죽이고 신분을 바꾼거지요. 모카이가 이를 도왔고요. 쇼우스케와 모카이는 고교시절 야구부 배터리로 절친이었고, 모카이는 쇼우스케가 야구부 매니저였던 교우카와 맺어지도록 도왔습니다. 그러나 야구를 그만두고 방탕한 삶을 보내던 쇼유스케가 음주운전으로 교우카에게 큰 상처를 입히고 도망간 탓에 원한을 품었다가, 스미야가 저지른 사건을 알고 그를 도와준 겁니다.

이후 바꿔치기한 스미야가 교우카와 만나 사랑에 빠지는 사랑 이야기도 나무랄데 없어요. 처음 봤을 때 부터 사랑했다는 부부의 말은 참 슬프네요. "마틴 기어의 귀향"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바꿔치기와 트릭을 눈치채고 크리스는 모카이를 협박했고, 스미야(현 쇼우스케)가 그를 죽인겁니다.
크리스가 17년전 사건은 살인 사건이 분명하다며 남긴, '기름게와 무당게의 다른 점'이 핵심이라는 말도 바꿔치기를 의미합니다. 같아 보이지만 다른건 이름 뿐이라는 뜻이지요. 이를 여러가지 단서복선으로 드러내는 전개도 일품입니다.

그런데 추리에는 조금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 현재의 크리스 살인 사건의 경우, 피해자와 이자카야에 동행했던 아오야마가 공범에 전화를 걸어 보트를 준비하도록 만들었다는 생각은 왜 하지 못할까요? 단독 범행이라고만 생각하는 이유를 통 모르겠어요.
17년 전 사건도 마찬가지에요. 30분 안에 사체를 어딘가 숨기고 돌아온 뒤, 퇴원 후 숨기러 가도 되니까요. 17년, 아니 14년 만에 백골로 발견되었다면 그 정도 차이를 눈치채는건 불가능했을텐데 말이지요. 아니면 어느정도 생활이 안정된 후, 현장을 뒤져 시체를 암매장하는 것도 방법이었고요. 살인사체 유기가 동시에 벌어졌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리고 쇼우스케가 스미야라는 증거가 있다면 모를까, 별다른 증거가 없는 말 뿐만인 추리라는 약점도 큽니다. 같은 이유로 크리스를 살해할 필요가 있었는지도 의문이고요. 설령 쇼우스케가 스미야라는게 밝혀진다 한 들, 살인을 저지르고 시체를 숨겼다는 증거는 없으니까요. 한 명 더 살해해서 위험을 늘리기보다는, 정면으로 반박하는게 더욱 타당했습니다. 

아울러 토마와 가나가 무리하게 사건에 뛰어들어 추리를 도와주는 이유도 석연치 않습니다. 용의자 세이지와 교제하는 마리나와 가나가 친구라는게 이유인데, 그렇다면 세이지가 혐의를 벗은 시점에서 더 도와줄 이유는 없어요. 오히려 토마가 입만 다물었어도 미제 사건으로 끝났을지도 모르는데, 토마가 웃는 얼굴로 추리쇼를 펼치며 사건을 해결해서 세이지 가족을 파괴해버리고 맙니다. 이래서야 정의의 집행자가 아니라 사랑을 방해하는 무자비한 악마, 냉정한 추리하는 기계일 뿐이지요. 한 마디로 토마의 비인간성이 부각된 에피소드입니다. 하긴, 이게 Q.E.D와 토마의 매력이긴 하지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5점입니다. 추리에서의 설득력이 조금만 갖추어졌더라면 걸작이 될 수 있던 좋은 이야기였습니다. 좀 긴 호흡의 소설로 발표하는게 훨씬 좋았을 것 같네요.

2009/07/10

비련의 화인 - 김성종 : 별점 3점

비련의 화인 - 6점
김성종/해난터

잘나가는 상사맨 홍상파와 아내 송묘임의 초등학교 1학년 딸 홍청미가 유괴된다. 형사 허걸과 조태가 전담반으로 편성되어 수사에 나서지만, 범인은 홍상파에게서 몸값 1억을 교묘하게 탈취하는데 성공하고 결국 청미는 시체로 발견된다. 허걸과 조태는 끈질긴 수사 끝에 유력한 용의자로 과거 송묘임의 연인이었던 장만두를 검거하지만 의외의 사실이 밝혀진 뒤 진범이 누구인지 알게 되는데....

80년대 한국 추리소설로 김성종 선생님의 대표작 중 하나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추리소설에 대한 저 자신의 내공이 너무 부족한 듯 싶던 차에 우연찮게 구하게 되어 읽은 작품입니다.

제목이 뜻하는 바를 잘 모르고 읽었는데, 작품은 상당한 "정통" 유괴극이어서 굉장히 의외였습니다. 당시 (80년대) 유명했던 몇몇 유괴사건 (영화 "그놈 목소리"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었죠?)를 의식한 듯한 설정인데, 전체적으로 상당히 탄탄하고 범인과 경찰과의 두뇌싸움도 치밀하게 그려져서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김성종 선생님의 막강한 필력으로 써내려간 유괴당한 아이 부모의 심리묘사도 작품에 몰입시키게 만들어 주고요. 몸값 1억원은 당시 금액으로는 어마어마한, 지금 가치로 한 10억은 되는 돈 같아서 더욱 흥미진진했습니다.

추리적으로도 괜찮습니다. 크게 두가지 트릭이 등장합니다. 가장 중요한 트릭은 유괴범이 돈가방을 바꿔치는 트릭인데 잘 고안되어 있더군요. 약간 어설퍼 보이지만 나중에 이유가 충분히 설명되며, 당시 시대상도 충실히 반영하고 있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알리바이 트릭도 좋았어요. 트릭 자체는 별거 아니긴 한데 트릭을 밝혀내는 과정이 참신했고 치밀하지 못해서 좀 순진해 보이는, 어설퍼 보이는 트릭이라는 것이 외려 관련된 캐릭터와 잘 어울리고 현실적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경찰의 수사 과정 등도 잘 묘사하고 있어서 "추리물"로 보기에 충분한 수준을 갖추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일본 사회파, 특히 모리무라 세이이치 작품 ("한낮의 유괴" 등) 분위기와 유사하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재미가 절반정도 분량이었다는 겁니다. 결국 청미가 시체로 발견되고 난 뒤부터는 이야기가 뜬금없이, 한마디로 막 나가기 시작해 버리거든요. 쓰면서 이거저거 이야기를 억지로 추가한 티가 팍팍납니다.
예를 들면 범인이 누구인가 하는 점과 범인의 동기에 대해서는 상당히 설득력있게 설명하고는 있지만, 가장 중요한 "동기"에 있어서 이야기 중반에나 등장하는 인물이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건 공정하지가 못하죠. 아무리 생각해도 페어플레이가 아니에요.
그리고 혈액형 관련 설명은 장황하기는 한데 지금 시점에는 상식이라 지루했으며, 진범의 행동이 "오버" 였다는 점은 쉽게 지나치기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그냥 이혼을 하면 깔끔했을 것을 왜 이런 거창한 연극을 하는지가 도저히 설명되지 않거든요.
무엇보다도 결국 경찰이 어떤 증거를 포착하지 못하고 잠복을 통해 검거한다는 결말은 너무 쉽게 간 느낌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범인들이 서로 만날 이유가 사실상 전무한데도 불구하고 설명없이 그냥 대충대충 넘어가고 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고요. 검거 후 결국은 범인의 "자백"을 통해서 사건이 해결되는 결말 역시 제가 가장 싫어하는 결말이기도 해서 당쵀 마음에 들지 않네요.
그 외에도 청미가 죽은 과정이 어처구니가 없고 불필요한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 등도 감점 요소였습니다. 조금만 더 치밀하게 전개했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전체적인 작품의 완성도 측면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군요.

국내 추리소설계의 거장이신 선생님의 작품이라 제가 이런 말을 드리는 것도 죄송스럽기는 하지만,
  1. 초반부터 장만두 캐릭터를 드러냈어야 함.
  2. 강치수의 다이잉메시지인 "243"에 대해서 좀 더 디테일하게 설명했어야 함.
  3. 2번과 연관하여 범인에 대한 실질적인 "증거"를 보여줬어야 함
  4. 송태하 같은 불필요한 캐릭터 (송묘임의 동생들)는 싸그리 정리했어야 함.
  5. 홍청미가 죽어야 하는 다른 결정적 이유를 제시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음.
으로 완성되었더라면 더욱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다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김성종 선생님의 인기와 명성이 허언이 아니라는 증명이 될 만한 작품이었으니까요. 별점은 3점입니다. 앞으로도 한국의 80년대 추리소설을 계속 찾아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덧붙이자면, 이 책에서 초등학생 1학년으로 나오는 피해자 홍청미양이 저보다 단지 2살이 어릴뿐이라는 것이 굉장히 신기했습니다. 지금은 한국 나이로 35살......^^

2020/09/01

익명의 전화 - 야쿠마루 가쿠 / 최재호 : 별점 1.5점

익명의 전화 - 4점
야쿠마루 가쿠 지음, 최재호 옮김/북플라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3년 전, 담당도 아니었던 아라이 사건을 수사하다가 누명을 쓰고 경찰에서 쫓겨난 아사쿠라는 그 뒤 가족과도 등을 돌렸다. 그러나 딸 아즈사가 유괴당한 뒤, 유괴범을 홀로 잡으려다가 유괴범들의 목적이 3년 전 사건의 진실이라는걸 알게 되는데...

흥미를 자아내는 설정, 몰입감을 주는 전개로 다수의 인기 작품을 발표한 작가 야쿠마루 가쿠의 작품입니다. 이 작품도 도입부만큼은 흥미롭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야기의 설득력이 낮은 탓입니다.
3년 전, 마약에 취해 사고를 일으켜 유치원생을 포함한 7명을 사망케 한 아라이 사건의 진실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라이 사건을 몰래 수사하다가 경찰 조직에 의해 인생을 망친 경찰이 있다는걸 알게 되었고요. 그렇다면 당연히 그 경찰을 만나서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다시 떳떳해지자고 설득하는게 순서일겁니다. 그런데 대뜸 유괴부터 한다? 대체 어디서 나온 생각인지 모르겠네요.
유괴범들이 나오미와 아사쿠라가 몸값을 들고 뺑뺑이 돌게 만들 이유도 없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몸값은 아라이 사건의 진상이라고 요구하면 되니까요. 경찰인 치하루가 유괴범 중 한 명이었으니, 뺑뺑이를 통해 경찰 신고 여부를 파악할 필요도 없어요. 오히려 이 과정에서 아사쿠라가 유괴범으로 몰리기 때문에 행동에 제약이 생겨서 조사만 불편해지고,1억이라는 돈을 낭비하기만 했을 뿐입니다. 심지어 1억은 마약상에게 준거라 동정의 여지도 없고요. 

뺑뺑이 과정도 복잡하게 서술하여 치밀해 보이지만 나오미가 범인이 준, 거는게 불가능한 핸드폰을 가지고 범인에게 휘둘리는 장면에서 메모를 적어 역무원이나 건물 경비원에게 줄 생각은 왜 못했는지 등의 단점만 눈에 띕니다. 유괴극이니 반드시 몸값 전달하는 장면이 등장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등장한 장면이 아닐까 생각되더군요. 아사쿠라가 이미 남과 같은 자신에게 처음 전화가 걸려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내 나오미가 경찰에 신고하려는걸 막는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건 마찬가지에요.

이후 아사쿠라가 아라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과정은 더 가관입니다. 현직 경찰 시절에 몇일에 걸쳐 조사해도 밝혀내지 못했던 진상을, 경찰에 쫓기는 수배자 신세로 하룻밤만에 알아낸다? 설득력이 없습니다. 사기꾼 범죄자 키시타니의 도움이 있기는 하지만, 현역 경찰 신분에서 발휘할 수 있는 수사력과는 비교하기 어렵지요.
조사 방법도 스스로를 미끼로 내걸어 경찰의 움직임을 떠 본다던가, 급작스럽게 카라키를 불러낸 뒤 먼 곳에서 쌍안경 관찰로 의중을 파악한다던가, 일부러 아라이의 공범이었던 이와키가 속한 조직에게 잡혀간다는 식으로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계획과는 무관한 즉흥적인 발상 투성이입니다. 이 모든 상황에서 대처하는 방법도 맞으면서 버티는 '몸빵' 밖에는 없고요.

진상을 알아낸 것도 아라이의 공범인 전직 경찰 이와키를 찾아내 이야기를 듣는게 전부인데, 역시 어처구니 없습니다. 사고는 도주하던 아라이가 경찰의 총에 맞아 일어났으며, 아라이는 유력 정치인 니시자와를 협박하던 범인이었기 때문이라는게 겁니다. 니시자와는 매춘부 아케미와 마약을 하다가 아케미가 죽게되자 아는 경찰을 통해 사건을 무마시키켰는데, 이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했던 거지요. 그래서 니시자와와 연결되었던 경찰이 무리해서 협박범을 잡으려다가 사고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니시자와의 관계 여부를 떠나서 일곱 명이나 죽은, 그것도 희생자 중에 어린 유치원생이 포함된 사건을 덮는다는게 21세기에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총소리를 들은 증인이 분명히 있었고, 당시 수사를 하던 아사쿠라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정도였는데 말이죠. 게다가 생존한 유치원 버스 운전사 미카미의 입을 막기 위해 그를 살해했다? 이 정도면 거의 국가에서 움직여 조작한 수준입니다. 주택가에서 차량 추격 중 총질을 한다는 헐리우드 영화스러운 발상도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또 이 진상은 마지막 클라이막스를 어색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사건 은폐에 앞장서던 카라키가 나오미에게 위증을 강요하는 대화는 다 녹음되었고, 카라키가 아사쿠라를 협박하는 영상까지 찍혀 완벽하게 외통수에 몰리게 되기는 하지만 , 7명이나 되는 사람이 죽은 사고를 덮었는데 고작 이 정도 사건을 덮지 못한다는건 설득력이 약한 탓입니다. 아사쿠라가 이와키로부터 확보한 증거도 빈약하기 짝이 없으니까요. 최소한 니시자와와 아케미가 함께 마약을 하고 정사를 나누던 비디오 테이프는 확보했어야 했습니다. 지문이 묻은 마약 봉투와 영수증 따위는 증거가 될 수 없어요. 봉투와 영수증의 지문이야 나중에라도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잖아요? 솔직히 증거로서의 효력은 없습니다.
설령 증거가 된다고 한 들, 니시자와가 마약을 했다는 증거이지 그가 아케미 사건, 그리고 아라이 사건에 관계되어 있다는 증거도 아닙니다. 사건 은폐에 앞장섰던 장인 마사타카가 아사쿠라의 호소에 개심해서 자수한다는 끝맺음은 최악 중 최악이고요.

그 외에도, 유괴 수사를 벌이는 와중에 유괴 아동의 어머니인 나오미가 태연하게 외출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돌아다니는 전개도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유괴와 상관없는 제3자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거든요. 조력자로 등장하는 토다의 존재도 불필요했습니다. 나오미가 아사쿠라의 진심을 알게되는 계기가 된 증언을 한 게 전부니까요. 이는 치하루가 해도 되는 역할입니다. 토다의 과거도 뻔하디 뻔하고요. 단순한 분량 늘리기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재미와 설득력, 현실성 등 뭐 하나 갖추지 못하고 흔해빠진 설정들로만 이루어진 졸작입니다. 찾아서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16/02/12

극비수사 (2015) - 곽경택 : 별점 1.5점

1978년 실제로 일어났던 '정효주양 유괴 사건'을 영상화한 작품입니다. 설 특선으로 TV에서 방영해주길래 감상했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실망이 컸습니다. 실화 바탕의 정통 수사극을 기대했는데, 수사물로는 기대 이하였던 탓입니다. 사건 해결부터가 수사보다 김중산 도사의 예지력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에요. 아무리 실화 기반이라도 그렇지, 너무 비현실적이라 와 닿지 않더군요. 그나마도 재미있게 풀어내지도 못했고요. 전체 내용에서 수사가 차지하는 비중도 한없이 낮습니다. 유괴 수사에 초점을 맞추면 됐는데, 필요도 없는 조직 내 더러운 거래에 많은 시간을 소모하기 때문입니다. 이게 수사물인지 풍자물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에요.
조직 내 암투에 비중을 둘 거였다면 실제 정효주 양이 두 번 유괴당했다는 드라마를 잘 활용하는 것이 나았을 겁니다. 공 형사의 공을 빼앗아 독식한 중부서 형사들이 두 번째 유괴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고 공 형사에게 석고대죄하다시피 사건 해결을 부탁한다는 식으로요. 두 번이나 유괴당하는 것도 굉장히 드라마틱한 일인데 왜 살리지 않았을까요?

또 주인공 공길용 형사(김윤석 분)의 캐릭터도 전형적이라 지루했습니다. 여러모로 그간의 김윤석 캐릭터, 그 외 형사물 주인공들과 상당 부분 겹쳐요. 현실적이었을지는 몰라도 전혀 도사 같지 않았던 김중산 캐릭터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2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흥행작다운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78년 당시를 충실히 구현한 화면은 상당한 볼거리였으며, 수사물로서도 몇몇 장면은 괜찮게 느껴지긴 했습니다. 극 초반 공길용 형사가 '극비 수사'를 주장하며 범인에게 경찰이 개입되었다는 것을 최대한 감추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여러모로 제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기에 별점은 1.5점입니다. 극장에서 보지 않은 게 다행이다 싶네요. 덧붙이자면, 담배 피는 장면에서 담배에 모자이크를 한 방송국의 행태도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거 좀 가린다고 뭔지 모를 것도 아닐 텐데,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2006/02/12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 민승남 : 별점 3점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 6점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민승남 옮김/민음사

"낯선 승객"과 "리플리" 시리즈로 유명한 추리계의 거장 중 한명인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여사의 단편집. (패트리샤라고 하지 않은 것도 좀 재미나네요)

순문학계열 출판물로 유명한 민음사에서 출간되어 의외라 생각했는데, 읽어보니 이해가 됩니다. 추리쪽 성향이 덜한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추리나 서늘한 맛을 기대했지만 의외로 순문학적인 작품들로 구성되었던 로얄드 달의 "당신을 닮은 사람"과 유사합니다.
하지만 로얄드 달의 단편집은 애초 생각과는 다르게, 정말로 순문학에 가까운 글들이 많았던 반면에 이 작품집은 기대한 만큼의 서늘함을 제공해 주는 작품이 많다는 차이가 큽니다. 대체로 "인간의 본성"을 극한으로 끌어내는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는데 몇몇 작품은 읽으면서 감정이입하다보면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치게 될 정도로 서늘하고 잔인한(?) 이야기들이더라고요. 
그 밖의 평범해 보이는 이야기들도 단순하지만은 않고, 여사만의 독특한 기묘함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도대체 다른 어떤 작가가 바구니짜기나 노인 입양같은 이야기로 이런 극한으로 치닫는 심리 묘사를 그려낼 수 있을까요?
일상 생활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사소한 사건과 살인과 같은 큰 사건 모두 시종일관 긴장감을 잃지 않고,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짧은 길이의 작품 안에 담는 솜씨는 정말 기가 막힙니다. "지적인 암살자(?)" 리플리의 창조주답네요.
이야기들의 배경과 설정이 모두 다르며 다양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건 여사의 다채로운 생활 환경을 반영한 것 같은데, 이러한 세부 디테일들도 재미있었습니다.

범죄나 추리에 가까운 이야기는 많지 않아 추리쪽 장르로 구분하긴 어렵지만, 여사의 작품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책입니다. 최소한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다른 단편집 3권도 빨리 구입해서 읽어보고 싶군요.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개인적인 추천작은 "검은 천사가 지켜보다"와 "노인 입양"입니다.

작품별 간략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1. 고양이가 물어온 것
한적한 시골에서의 한때를 보내던 허버트 부부와 손님들 앞에 키우던 고양이가 물어온 것은 사람의 손가락이었다...
우연찮게 발생한 사건에 휩쓸리게 되면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잘 그려낸 작품.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한 소품이지만 순간적인 분노와 폭발하는 심리묘사는 여사님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2.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뉴요커들 한 무리가 자신들의 친구지만 왠지 거리가 멀어지고 서먹해진 친구인 에드먼드에게 짖궂은 장난을 치는 음모를 꾸미는데,그 친구는 직장과 아내에 이어 목숨마저 잃게 된다...
한 집단의 이지메와 같은 행동을 통해, 무심코 저지른 행동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그린 작품. 일종의 집단 광기를 일상생활속에 녹여내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죽는다"라는 속담이 생각납니다. 
맨 뒤의 누군가가 죽은 다음에 찾아오는 일상에 대한 짤막한 묘사도 서늘합니다.

3. 바구니 짜기의 공포
광고 대행사에서 매채 담당자로 일하는 다이앤은 별장에서 한때를 보내던 중 우연히 자신에게 바구니 짜기의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서서히 광기로 빠져들게 되는데..
정말로 기묘한 작품입니다. 한 여성이 우연한 기회에 자신에게 바구니 짜기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그것 때문에 서서히 자신의 통제권을 잃는다는 내용이거든요. 흔히 접할 수 있는 이야기일 수 있는데, 소재가 너무 독특해서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결말은 의외로 현실적이라 조금 시시했어요.

4. 검은 천사가 지켜보다
시카고의 골동품업자 리 맨드빌은 자신의 어머니가 있는 양로원 비용때문에 고향집을 팔기 위해 몇년만에 고향에 찾아간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이미 몇년전에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종의 사기극이지만 피해자의 입장에서 그렸다는게 독특했습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을 흡사 피해자처럼 보이게 하는 전개도 기묘하면서도 색달랐고요. 여사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작품 중 하나가 아닐까 싶네요.

5. 네 삶을 경멸해
20살이 된 랠프는 록 밴드 생활을 하며 생활고를 겪어서 아버지에게 원조를 요청하지만 의절당한다.
우리나라에도 있을법한, 방탕한 자식과 아버지간의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짤막한 드라마인데 아들 랠프의 심리묘사가 재미난 작품이었습니다. 결말도 인상적이었고요.

6. 에마 C 호의 꿈
남자들만 있는 요트 에마 C 호에 한 미녀가 표류하다 구조된 뒤, 에마 C 호의 인간들 사이의 관계가 헝클어지기 시작한다...
한 작지만 공고한 집단 안에 찾아온 불청객으로 관계의 붕괴가 일어나는 작품. 기묘하면서도 이상할 정도로 환상적인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습니다.

7. 노인 입양
매킨타이어 부부는 자식도 없던 차에 우연하게 순수한 선의로 포스터 부부라는 노인 부부를 입양하여 돌보게 되는데...
순수한 선의로 진행한 일이 점차 자신들도 통제하지 못하는, 극단으로 치닫는 서늘한 전개에 박수를 보냅니다! 무엇보다도 결말이 대단한 반전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무척이나 참신하고 독특해서 인상적이네요.

8. 로마에서 생긴 일
고위 공무원의 아내인 이사벨라는 남편에 대한 반감과 무료함으로 자신을 쫓아다니는 스토커 우고에게 남편 유괴를 의뢰하는데...
이탈리아를 무대로 미모의 여성과 자작 유괴극이라는 설정이 왠지 "크리시"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인간 관계의 얄팍함을 다루고 있는데 묘사와 디테일은 좋았지만 결말이 시시한 편이라 좀 아쉽더군요.

9. 양손의 떡
잘나가는 뉴요커 해리는 결혼을 앞두고 두 미녀와의 양다리 관계를 즐기며 두명중 한명을 선택하기 위해 저울질 하던 중 즉흥적으로 두 여인을 모두 초대하게 되는데...
한 남성의 독특한 심리를 보여주는 작품. 전혀 이상하지가 않고 자연스러워 보이게끔 하는 묘사가 좋았습니다. 누구나 한번쯤 해봄직한 고민과 실수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그러한 이야기라 생각됩니다.

10. 연
폐렴으로 죽은 동생 엘지를 그리워하며 월터는 한번도 본적이 없는 거대한 연을 만들어 날리게 된다.
동생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너무 지나쳤고 그 때문에 비극이 발생한다는 내용.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한 소년의 환타지가 어른들에 개입에 의해 비극으로 끝나는 짤막한 동화라 생각됩니다. 소년 시절 환타지는 거의 다 비극이기 마련이지요..

11. 검은집
팀은 마을 술집에서 자주듣는 마을의 흉가 "검은집"의 정체를 밝히려는 시도를 벌이지만...
환상과 현실의 괴리감에 대한 이야기. 책 뒤에 해설에서 여러 정신분석 이론을 가지고 추가로 설명해 주는데 해설 쪽이 더욱 재미있었습니다.

2021/12/05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 수첩 2 - 오카자키 다쿠마 / 양윤옥 : 별점 2.5점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 수첩 2 - 6점
오카자키 다쿠마 지음, 양윤옥 옮김/㈜소미미디어

이번 권은 미호시의 여동생 미소라가 등장합니다. 그녀도 함께 이런저런 소소한 일상 속 수수께끼들을 풀어내지만, 미소라가 아버지를 찾으려다가 유괴당하는 대사건이 벌어지고 맙니다. 다행히 모든건 잘 수습되고, 아오야마와 미호시의 관계도 한 걸음 더 나아간 느낌을 주며 마무리되지요.

전편과 마찬가지로, 일상계 수수께끼들은 대체로 괜찮았는데,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는 별로였습니다. 유괴는 차원이 다른 중범죄라서 작품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되지도 않았고요. 전체 평균한 별점은 2.5점입니다. 하지만 확 땡기는 맛이 없어서, 후속권을 더 읽을 것 같지는 않네요.

수록 에피소드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제1장 안녕, 미래 님?" 

한 여성이 남자친구가 오사카까지 가는 차표를 사지 못했을 거라는 말을 듣고, 그 진상을 추리하는 내용입니다. 

남자친구가 오사카로 간 게 아니라, 교토에 머물렀을 거라는 미호시의 추리는 그럴듯합니다. 하지만 프로포즈를 했을거라는 추리는 비약이 심했습니다. 단순하게 오사카에 있던 직장을 교토로 옮겼을 수도 있으니까요. 프로포즈임을 확신하려면 다른 단서가 필요했습니다. '여자친구가 외로움을 심하게 타는 성격이다' 정도로는 영 부족했어요.

그래도 이 정도면 일상계로는 괜찮았습니다. 일상 속 수수께끼에 꼭 정답이 있어야 하는건 아니니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제2장 여우의 둔갑 바캉스" 

미호시의 동생 미소라가 교토로 찾아왔다. 그러나 그녀 혼자 오야마 순례를 다녀온 후, 보여 준 기념 사진은 기묘했다. 기념 사진에 함께 찍혀있던 중학생은 같은 시간에, 시내에서 식사 중이었던 미호시와 아오야마 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소라의 오야마 순례는 그날이 아니라 전날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스쳐지나간 중학생 얼굴을 그렇게 잘 기억할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외의 부분은 모두 좋았습니다. 단순한 진상 덕분에 이야기는 깔끔했고, '미소라 옷의 향기'라는 단서로 이를 드러내는 전개도 마음에 들었거든요. 더운 날, 순례 코스를 돌고 왔는데 땀 냄새가 나지 않았다는건, 그녀가 다른 곳에 갔다 왔다는 증거로 충분하지요. 함께 소개되는 미호시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 미호시와 아오야마가 이성 친구인지 아닌지 등의 이야기도 재미있었습니다. 미호시와는 정 반대인 미소라 캐릭터도 매력적이었고요. 오야마 순례, 긴가쿠지 등 교토 명승지 순례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여정 미스터리 느낌을 전해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뭔가 대단한 수수께끼인듯, 미소라와 누군가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가 마지막에 등장하는데, 여러모로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친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라는건 쉽게 짐작할 수 있었거든요. 이렇게 감질나게 등장시켜가며, 또 주인공을 숨겨가며 조금씩 드러낼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본편만큼은 교토의 매력과 적절한 수수께끼가 조합된, 좋은 일상계 추리물이었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제3장 유백색 하트를 망가뜨리다." 

미호시는 모카와 씨가 데려온, 라테아트를 배우고 싶다는 여고생 진바 하나양에게 1주일동안 라테아트를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열심히 연습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는 누군가 그녀가 만들었던 하트 라테아트를 망가뜨려서 조리부 발표회를 망쳤다며 울고 마는데...

하나 양이 사실은 악역이었기 때문에, 요코가 하트를 망치는 장면을 목격했던 다른 조리부 친구들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는 발상이 좋았던 작품입니다. 아울러 이를 통해 발표회를 촬영하던 카메라에 그 장면이 찍히지 않은 수수께기도 설명됩니다. 망칠 때 잠깐 녹화를 정지시킨 것도 마찬가지로 입을 다문 것이지요. 또 조리부 부원들을 무시하는 듯한 하나의 평사시 말투를 근거로, 겉모습과는 다르게 친구들의 반감을 사곤 했을거라는걸 추리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라테아트로 잎사귀 하트, 고양이를 그리려고 했던 건, 하나가 좋아하던 남학생 고야네와 사귀게 된 조리부 친구 요코를 비난하기 위해서였다는건 읽으면서 대충 짐작이 갔더군요. 이름에서 따온 단서들이니 일본인이었다면 훨씬 쉽게 진상을 눈치챌 수 있었을 거에요. 물론 쉬운 단서(?)가 큰 단점이 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야말로 일상계의 왕도다운 느낌이 마음에 드네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제4장 커피 탐정 레일라의 사건 수첩" 

미소라의 휴일, 아오야마와 미호시는 미소라가 두고 간 오래전 추리 소설 "커피 탐정 레일라의 사건 수첩"을 읽고 내용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그 뒤 미호시는 모카와 씨와 교토 카페에 대해 인터뷰를 진행하고 돌아가려는 프리라이터에게, 그가 "레일라의 사건 수첩"을 쓴 카지마 후미에일 거라고 말했다...

이야기 속에서 추리 소설 "커피 탐정 레일라의 사건 수첩" 이야기도 펼쳐지는, 일종의 액자 소설 형식을 갖춘 작품. "커피 탐정 레일라의 사건 수첩"은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커피통에 로스팅한 원두를 가득 담아 두었는데, 정작 판매하는 원두는 로스팅부터 새로 했다던가, 막 갈아낸 원두가루를 봉투에 넣고 밀봉해 버렸다는 것처럼 소설 속 커피점이 벌인 이상했던 행동들을 통해,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는걸 추리해내기 때문입니다. 로스팅 직후 원두가루는 탄산 가스를 방출하며, 가루는 표면적이 불어나 대량의 가스가 빠져나오므로 봉투를 밀봉하면 터질 위험이 있다는데, 이거야말로 제목에 부합하는, 커피 전문가만 알 수 있는 추리라 할 수 있지요! 커피통 속에 시체가 있었고, 커피 봉투에 구멍을 뚫는 송곳이 흉기로 사용되었다는 진상도 합리적이었고요.

본편 에피소드도 좋았습니다. 프리라이터가 카페에 대해 글을 쓰고 있던건 아니라는걸 '제즈베'라는 도구를 통해 확실히 밝혀내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미호시와 아오야마 등은 '제즈베'를 모두 터키식 커피를 우려내는 도구 이브라크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했지만, 프리라이터는 재즈 베이스로 착각했던 탓에 정체가 드러나게 되었지요. 미호시는 직전에 터키식 커피에 대해 취재했던 프리라이터라면 모를리가 없었을 거라고 말합니다. 이 장면은 약간 추리쇼같은 느낌도 주더라고요. 프리라이터의 이름인 후카미 에이지에서 그가 "커피 탐정" 시리즈 작가 카지마 후미에라는걸 드러내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아주 간단한 애너그램이지만, 본명과 필명을 오가기에 이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으니까요.

에피소드가 끝난 뒤, 그가 미소라의 친부일지도 모른다는 정보를 살짝 흘리며 2권 전체를 아우르는 큰 이야기 시작을 알리는 에피소드이기도 합니다. 이 부분은 작품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되기는 했지만 에피소드가 마무리 된 이후 등장하는 사족이었고, 본편은 물론 "커피 탐정" 이야기도 추리적으로는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기에, 무엇보다도 '커피'에 대한 여러가지 정보가 핵심 증거로 쓰였다는 점에서 이번 권의 베스트 에피소드로 꼽겠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제5장 (she Wanted To Be) WANTED" 

미소라의 밴드 후배 무라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사귀다 헤어졌던 여학생 만다 린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걱정 전화였다. 그녀는 예대 진학을 계기로 가족과도 멀어졌고, 생활고 탓에 별다른 친구도 없었다. 무라지와 함께 찾아간 그녀 자취방에서 자살 명소 도진보를 체크해 놓은 잡지를 발견한 둘은 서둘러 신칸센을 타고 도진보가 있는 야와로 온천 역으로 향했다...

미소라의 후배 린을 찾는 소동에서 있었던 수수께끼, 여행을 떠나며 자취방 문을 잠갔는데 미소라가 무라지와 함께 찾아갔을 때 문이 열려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풀어내는 에피소드. 유일한 여벌 열쇠는 고베에 살고 있는 린의 어머니만 가지고 있었다는 설정입니다. 무라지가 다른 여벌 열쇠로 미리 침입했던 거라는 아오야마의 추리는 무라지가 린의 행방을 전혀 몰랐고, 미소라와 함께 자취방을 찾을 때 까지 너무나 태평했었다는 이유로 부정당합니다. 무라지가 몇 만엔이나 되는 여행 비용을 마련할 길이 없어서 미소라 돈으로 비용을 마련하려고 꼼수를 썼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이미 린의 실종 사실을 알고 있었던만큼 그렇게 태평하게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요.

진상은 사이가 나빴다는 어머니가 고베에서 자가용으로 밤새 운전해서 린의 집을 찾았던 겁니다. 아무리 사이가 나빠도 부모는 부모라는 이야기거지요. 어머니가 자신을 찾기를 린이 원했다는 여러가지 단서들도 잘 배치되어 있는 편입니다. 책갈피 대신 책장 귀퉁이를 접어 놓는걸 개의 귀에 빗대서 '도그이어'라고 한다는 정보도 귀엽고 반가왔고요.

그러나 독립된 이야기라기 보다는, 부모 자식 관계에 대한 에피소드를 통해 2권 전체를 아우르는 소재인 자매의 아버지를 드러내는, 일종의 징검다리 역할 수행이 더 중요했던 소품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이야기보다도,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가 더 중요하거든요. 미소라가 '아버지'라고 생각했던 사람을 미호시와 만나게 하려다 위험에 빠지는 내용이 이어지니까요. 뭔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에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제6장 the Sky Occluded in the Sun" 

미소라를 납치한 누군가가 협박 전화를 걸어왔다. 경찰에 신고하지 말고 천만엔을 준비하라고 요구했지만, 미호시는 그가 작가 카지마 후미에라는걸 바로 알아채고, 아오야마에게 경찰 신고를 부탁했다. 그런데 아오야마의 폰에는 미소라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전송되어 있었다. 빨간색 태양 문자를 통해 레코딩, 녹음, '로쿠온'을 떠올린 둘은 미소라가 긴카쿠지 근처에 있다는걸 밝혀냈다. 처음 미소라를 만났을 때, 아오야마가 미소라에게 긴카쿠지의 정식 명칭이 '로쿠온지'라고 말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권의 핵심인 미소라 유괴 사건을 그리고 있는데, 앞서 말씀드렸지만 영 별로였습니다. 추리적으로 특히나 볼게 없어요. 우선 문자 메시지를 통한 약간의 암호 트릭은 억지스럽습니다. 태양에서 로쿠온까지 이어지는 과정이 그리 설득력 높다고 하기 어려운 탓입니다. 그냥 빨간색 동그라미를 보냈다는게 훨씬 설득력이 높았을겁니다. 

이 암호 트릭을 제외하면 전형적인 유괴극으로, 후카미가 몸값을 안전히 전달받고 탈주하려는 나름대로 공들인 계획이 중요하게 묘사되지만 이 부분의 설득력도 낮습니다. 달리는 차에서 돈가방을 던지게 한 뒤 회수하여 탈주한다는건 정교한 계획이라고 부르기 힘드니까요. 경찰에 신고했다면, 돈을 던진 장소 중심으로 차도만 봉쇄해도 교토 시내를 빠져나가는건 불가능했을테지요.

한마디로 스케일과 극적 요소에 비하면 그리 잘 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물에 빠져 죽었다는 자매 아버지의 죽음도 작위적으로 보여서 별로 와 닿지 않았어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제7장 별밤 하늘 밑에서 목숨을 잇다" 

자매 아버지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 자매 아버지 죽음의 계기가 되었던 물에 빠졌던 아이가 누구인지? 왜 미소라가 카지마를 아버지로 착각했는지? 그리고 미소라와 미호시가 쌍둥이였다는게 밝혀지는 약간의 서술 트릭스러운 사실이 밝혀지는 일종의 사건 후일담. 미호시가 아오야마와 미소라의 관계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은 귀여웠습니다만 독립된 에피소드라고 보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딱히 없습니다.

"에필로그 그녀는 카페오레 꿈을 꾼다" 

미소라가 고향으로 돌아가고, 체포된 후카미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되는 진짜진짜 에필로그. 6장, 7장과 결합되어 하나의 이야기로 보아야 하기 때문에 따로 별점을 주지는 않겠습니다.

2024/02/21

천재탐정 미타라이: 살인사건의 진실 (2016) - 이즈미 세이지 : 별점 2.5점


<<아래 리뷰에는 진범, 진상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잡지 편집자인 오가와가 미타라이를 찾아와 미해결 수수께끼 사건 해결을 요청했다. 미타라이는 고고섬에 변사체가 연달아 떠내려온 사건에 흥미를 갖고, 조사와 추리로 사체는 후쿠야마에서 해류를 타고 내려왔다는걸 알아냈다.
후쿠야마로 향한 미타라이는 다른 외국인 변사체와 함께, 류진 폭포 부근에서 눈과 입이 꿰메어진 부부와 그들의 죽은 아기가 발견된 사건과 마주쳤다. 그리고 사건에는 후쿠야마 굴지의 기업인 사이쿄 화학 공업과, 과거 '세이로'라고 불리우던 전국시대 병기가 관련되어 있다는걸 밝혀내는데....


작가가 허락하지 않아서 영상화가 늦어졌다는, 시마다 소지미타라이 시리즈 첫 번째 영화. 티빙에서 감상했습니다. 지난 연초에 감상했는데 리뷰가 늦었네요.

여러 사건이 등장해서 추리적으로 풍성하다는게 장점입니다. 아래 순서로 사건이 일어납니다.
  1. 고고 섬으로 6구의 변사체가 떠내려온다. 한편 후쿠야마 바다에서는 '수룡'을 목격한 사람들이 나타났다.
  2. 류진 폭포 부근에서 눈과 입이 꿰메어진 이비 부부와 그들의 죽은 아기가 발견되었다.
  3. 후쿠야마에서 외국인 여성 변사체가 발견되었고, 경찰은 사체를 옮기려던 외국인 무리를 검거했다.
  4. 역사 연구가 타키자와가 전국시대 병기 '세이로'의 존재를 알아냈다.
  5. 타키자와가 수상한 외국인과 부딪혔는데, 그는 이상한 알약을 떨어트렸다. 그 뒤 타키자와를 외국인 무리가 습격하려다 그녀의 저항으로 되려 추락사했다.
여기서 '외국인'들이 관련되어 있는 고고 섬 변사체, 후쿠야마 여성 변사체, 타키자와 습격 사건은 한 묶음입니다. 위험 약물을 제조 판매하던 외국인 무리가 관련자들 사체를 바다에 버렸고, 타키자와가 비밀을 눈치챘다 여기고 죽이려 했던 겁니다. 

이 사건들을 빼면 핵심 사건은 이비 부부 사건과 수룡의 정체, 두 가지로 중반 이후에는 두 사건, 그 중에서도 정통 추리물이라 할 수 있는 이비 부부 사건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이 사건은 아기 보모 타츠미가 실수로 아이가 추락사한걸 감추려고 유괴극을 꾸몄으며, 복수를 위해 이비 씨 가족을 감시하던 마키타 사장이 이를 눈치채고 부부마저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는게 진상인데 여러가지 단서, 복선을 나름 공정하게 보여주면서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마키타 사장이 협박 편지를 남긴게 아니라서, 이비 씨에게 편지 내용을 읽어보라고 시켰고(내용 파악을 위해), 몸값 약속 시간도 선뜻 바꾸어 주었다는 등의 추리도 합리적이었어요.
'세이로'가 수룡이며, 이는 알고보니 잠수함이었다는건 역사 추리물 형태인데, 역사 속 기록과 연결하여 팩션처럼 전개하는게 재미있었습니다. 전국시대 병기가 흑선에 대항할 비밀무기로 기능한다는건 말도 안되지만, 잠수해서 흑선의 '외륜'만 노린다면 혹시?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설득력도 있었고요.

영화 만듦새도 좋습니다. 특히 촬영이 아주 인상적이에요. 요새 영화에서 보는 선명한 조명이 아니라, 자연광을 쓴 듯 자연스럽고 다소 낮은 채도의 약간 오래 전 영화같은 화면을 보여주는데 굉장히 좋았어요. 작위적일 수 밖에 없는 추리물이지만 이런 자연스러운 화면이 그래도 생생함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촬영 덕분에 후쿠야마, 세토 내해 일대를 배경으로 삼는, 일종의 '여정 미스터리'로서의 가치도 높습니다.
주연 타마키 코지의 미타라이 연기는 본격물 탐정으로서의 모습에 충실해서 나쁘지 않았어요. 전형적이지만 이런 작품 속 탐정들이 뭐 대부분 그러하니까요. 만약 미타라이가 실제로 있다면 이렇게 생겼을 것 같다!는 이미지는 잘 전해줍니다.
하지만 추리면에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이비 부부 사건은 마키타 사정의 동기, 그리고 경찰 수사 부분에서 아쉽거든요. 단순 복수로 이런 엽기적인 범행을 벌인다? 설득력이 낮습니다. 아기가 이미 죽었다면 그 자체만으로 충분한 앙값음이 되었을텐데 말이지요. 외국인 수하들을 시켜 진작에 복수할 수도 있었는데 이런 기묘한 범행을 구태여 저지른 이유도 설명되지 못합니다. 이비 씨 가족을 꾸준히 감시해왔다는 설정, 성공한 사업자가 자기 공장에서 불법 의약품을 제조한 이유도 작품 내에서 조금 설명해주는게 좋았을 겁니다.
그리고 경찰은 이비 씨가 과거 과격한 환경 단체 시위를 했고, 그 시위 탓에 사이쿄 화학공업 관계자가 자살했다는걸 알아냈습니다. 그렇다면 자살자의 가족을 찾아 나섰다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을거에요. 영화에서처럼 '하나 뿐인 아들의 행방은 지금 알 수 없다'며 대충 흘려보낸다는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마지막에 잠수함 세이로를 마키타 사장이 타고 도주하던 화물선에 충돌시켜 멈추는 장면은 뭔가 했습니다. 이유도 알 수 없고, 당황스럽기만 했거든요. 이렇게까지 해서 화물선을 멈춰야할 이유도 없었으니까요.

이렇게 단점이 없지는 않으나, 미타라이 시리즈 팬이라면 즐길만한 작품인건 분명합니다. 2시간 남짓한 상영시간동안 저는 충분히 즐거웠어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06/12/05

추리특급 - 엘러리 퀸 엮음 / 정성호 : 별점 2점

추리특급
앨러리 퀸 엮음, 정성호 옮김/제삼기획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들의 단편 중 추리적 요소가 강한 것들만 모아서 엮은 앤솔러지입니다. 

기획의도는 좋습니다. 순문학가들이 미스터리 단편을 발표 했다는 것도 나름 의의가 있는 일이고 그러한 풍토는 사실 부러운 일이기도 하니까요. 작품들도 나름 재미있고 괜찮은 수준들이고, 작가들도 시대별로 다양하게 포진되어 있으며, 작품들마다 새로운 요소들이 많아 신선한 느낌도 많이 전해 줍니다.

그러나 제목 만큼의 "추리" 요소가 있는 작품은 딱 한편뿐 이라는 것 뿐이라는 문제는 큽니다
추리의 범주는 전형적인 고전적 트릭물에서부터 "범죄"에 관련된 묘사가 등장하는 것까지 굉장히 그 폭이 넓습니다.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요. 그렇기에 이 작품들이 추리소설이다 아니다를 논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이긴 합니다. 그러나 엘러리 퀸이 선정했다고 해서 "광의"의 미스터리보다는 "협의"의 미스터리, 즉 정통 추리 매니아들이 좋아할 만한 작품들이 실려있으리라 기대했는데 기대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솔직히 다른 작가들이 썼다면 너무 겉멋만 부린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묘사에만 집착하고, 애매한 상황 설정으로 끝나는 작품들이 대부분일 뿐더러 거진 다 소품 성격이 강해서 영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윌리엄 포크너의 "칵테일의 비밀"은 정통 추리물이라고 할만 하더군요. 이 작품이 이 앤솔러지의 베스트라 할 수 있고, 싱클레어 루이스의 "완전한 변신"도 나름 추리적 성향이 강해서 추천할 만 합니다. 그 외에는 추리적인 요소를 조금이라도 기대하고 본다면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작품들입니다. 그냥 이런 저런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군을 한번쯤 스쳐지나간 것으로 위안 삼아야겠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완전한 변신 - 싱클레어 루이스
뛰어난 배우이자 유능한 은행원인 제스퍼 홀트는 1년간 은둔자 쌍동이 형 존으로 위장한 이중생활을 계속하며 은행에서 돈을 빼돌리고 자기 자신을 지워버릴 계획을 세운다.
초중반까지는 아주 흥미진진합니다. 어떤 사람이 한몫 단단히 잡은 뒤 자기 자신을 지워버리고 다른 사람으로 위장하여 살아간다는 이야기는 흔하지만 이 작품은 그 과정이 굉장히 디테일하게, 그리고 설득력있게 표현되어 있거든요. 하지만 막판에 심리적으로 주인공이 붕괴한다는 이야기는 굉장히 허무해서 결말이 그다지 명쾌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수록작 중에서는 추리물 성향이 가장 짙은 작품 중 하나이긴 합니다.

칵테일의 비밀 - 윌리엄 포크너
떠돌이 조엘 플린트는 마을의 은둔자같은 프리첼 영감의 외동딸과 결혼하여 마을에 정착하지만 2년 뒤 자신이 아내를 죽였다고 자수한다. 그러나 그가 곧바로 탈옥하여 종적을 감추고 프리첼 영감은 광기가 더 심해져 마을 사람들을 거부한채 지내다 결국 농장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주할 결심을 하게 되는데...
이 앤솔러지 유일의 정통 추리물입니다. 중간중간 묘사가 장황하고 캐릭터를 심리 분석, 묘사하는 것이 지나치긴 하지만 범죄의 과정과 동기, 결말까지 매끄러운 작품입니다. 범인의 한순간의 실수로 사건이 들통나는 것은 정통 추리물로 보기에는 약간 문제가 있지만 이 정도 사소한 문제는 덮어줄 수 있을 정도로 극 전개가 명쾌한 정통파 추리 단편입니다. 배경 설정과 등장인물이 약간 엉클 애브너 스타일이라는 것도 재미를 주는 요소였고요. 포크너라는 작가가 이런 작품을 썼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네요.

몸값 - 펄 벅
켄트는 아내 알린, 딸 베티와 아들 브루스와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미고 살아간다. 그러나 딸이 유괴되고 몸값을 요구하는 메모가 발견되면서 그는 악몽과도 같은 며칠을 보내게 된다.
유괴에 대한 이야기로 유괴된 아이의 가족, 특히 아버지에 대한 디테일하고 감수성이 넘치는 묘사로 이루어진 작품입니다. 때문에 지옥과도 같은 상황에 대한 설득력은 강하지만 범죄 그 자체에 대해서는 그다지, 거의 보여주는 것이 없습니다. 사건의 해결 역시 추리적인 요소와는 거리가 멀고요. 범죄물에 가까운 소품이라 생각됩니다.

기적적인 복수 - 버나드 쇼
가족 사이에서 광인으로 취급받는 제노는 추기경으로 있는 아저씨의 부탁으로 한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기적 사건에 대해 조사해 줄 것을 요청받는다. 기적은 그 마을의 소문난 무신론자인 브림스턴 빌리가 마을 묘지에 매장당한 날 밤에 다른 모든 무덤이 강 건너편으로 옮겨간 사건. 즉 그와 같은 무신론자와 같은 땅에 누워있는 것을 거부한 묘지의 의지라는 것이었다.
버나드 쇼의 유머가 넘치는 소품입니다. 주인공 캐릭터의 성격이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작품에서 표현된 것 처럼 광인에 가까운 인물이기에 더더욱 작품에 활기가 넘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주인공이 문제의 원인이기도 해서 약간 반칙같기도 하지만 마지막의 반전도 기가 막히네요. 단, 기적에 대한 묘사가 전혀 설득력이 없다는 것은 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유머와 재치 면에서 탁월한 작품이었습니다.

불과 그림자의 저주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음.. 줄거리를 요약할 필요도 없는 너무나 짧은 꽁트로 청교도 병사들이 카톨릭 사제단을 학살한 날 밤에 벌어진 괴이한 복수극입니다. 뭐나 논하기 어려운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너무 짧지 않았나 생각되네요.

코르시카 섬의 악몽 - 버트란드 러셀
N교수의 친구인 나는 교수의 비서인 X양이 코르시카 섬에 여행갔다온 이후 그녀가 뭔가 깊은 고민에 휩싸인 것을 알고 N교수를 대신해서 코르시카 유력자들을 찾아다니며 그녀의 고민을 해결해 주기 위해 노력한다.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장난스러운 작품입니다. 솔직히 버트란드 러셀의 작품이 아니었다면 이 앤솔러지에 실리지도 못할 치졸한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사건은 장황하고 허황되며 결말은 어처구니 없고 맥이 빠지는 그런 단편으로 작가 이름만 뺀다면 그냥 습작 수준이 아닐까 여겨질 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작품이었다고 보여집니다.

유령의 숨결 - 루디야드 키플링
인도 제국에서 근무하는 임레이가 어느날 불가사의하게 실종된 이후 그의 방갈로에 스트릭랜드가 이사온다. 화자인 "나" 역시 사업차 방문했다가 그 방갈로에 같이 기거하게 되며 그 이후 방갈로에 나타나는 유령때문에 그곳을 떠날 결심을 하는데...
키플링의 전형적인 인도 제국을 무대로 한 작품으로 사건의 동기가 기발하긴 하지만 나머지는 그냥저냥인 작품이었습니다. 유령이 나타나 자기에게 일어난 범죄를 고발한다는 설정도 지금 읽기에는 좀 고리타분하기도 하고요.

이웃 - 존 갤스워디
이 작품도 굉장히 짧아서 줄거리를 요약하지는 않겠습니다. 한 사람이 살인을 저지른 순간의 격정을 기록한 소품입니다.

살인 - 존 스타인벡
짐 무어는 유고슬라비아 여자인 젤카와 결혼한다. 그녀는 완벽한 주부이지만 짐은 뭔가 부족함을 느끼고 수시로 바람을 피우러 다닌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농장에 도둑이 들었다는 것을 듣게 되는데...
존 스타인벡은 사실 굉장한 작가죠. 그러한 작가가 이런 작품을 썼다는 것이 의외일 정도로 마초적이고 유머러스한, 이색적인 작품입니다. 작가의 사상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초적인 요소가 너무 심하게 드러났다 생각되어 굉장히 재미나게 읽긴 했지만 뭔가 뒷맛이 조금 씁쓸하기도 합니다.

2022/02/04

금요일의 괴담회 - 전건우 : 별점 1.5점

금요일의 괴담회 - 4점
전건우 지음/북오션

한국 작가의 괴담 모음집입니다. 금요일에 리뷰 올리기 좋은 제목이네요. 모두 열 일곱 편의 괴담이 수록되어 있는데, 수록작 대부분은 괴담답게 기승전결보다는 괴이현상, 섬찟함 등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수록작 중에서 "여우고개", "열세 번째 계단"의 두 편은 아주 좋습니다. 뻔한 이야기를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범죄, 사건과 결합하여 독특하게 풀어내고 있는 덕분입니다.

그러나 그 외에는 모두 평균, 수준 이하입니다. 괴담치고는 별로 무섭지 않았던 탓이 가장 큽니다. 지나치게 짧다는 것도 단점이고요. 설명도 부족할 뿐더러, 설정 등에서 아무런 밀도를 느낄 수 없습니다. 미쓰다 신조 만큼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이야기가 성립할 수 있도록 기본 바탕은 깔아주었어야 했어요. 그리고 너무 뻔한 이야기가 많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대체로 어디선가 접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답습할 뿐입니다. 최소한의 반전, 아니면 최소한의 새로움이라도 더해 주었다면 나름대로 가치가 있었겠지만, 예상을 벗어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그래서 좋은 이야기를 살리지 못한 측면도 없지 않아요.

그래서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여러모로 그리 권할만한 책은 아닙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조용한 집" 

새로 이사온 집에서 불길한 기운을 느끼다 독감에 걸려버린 규선에게 그 집에 살다가 요양원에서 죽은 노인의 가족이 찾아와 노제를 하고 떠났다. 그래도 이상한 꿈을 꾸는 등 괴현상이 계속되자, 규선은 빈 집을 찍울 수 있도록 핸드폰을 셋팅하고 외출했다. 나중에 확인한 핸드폰 영상에는 소리를 지르는 시커먼 형체가 찍혀 있었다... 

노망에 걸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노인의 원혼이 집에 깃들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하나의 이야기로 보기에는 완성도가 낮습니다. 일단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노인이 왜 집에 집착하는지 설명되지 않습니다. 규선이 저주를 받을 이유도 딱히 없고요. 또 노인의 원혼을 달래기 위한 노제를 했다면 원혼이 사라졌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게 아니라면 구태여 노제는 전개에 들어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원혼이 규선을 덮치는 결말도 예상 가능했고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여우고개" 

할머니는 어린 시절, 색연필을 훔쳤던 자기를 쫓아온 여우 '매구'를 매실의 힘을 이용하여 자기 대신 친구를 잡아가게 만들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무에 걸려있던 빨간 카디건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카디건이 사라지자, 할머니는 다른 동료 할머니 3명이 카디건을 숨겼다고 오해하고 그들에게 농약 사이다를 먹이고 마는데... 

가끔 뉴스에 나오곤 했던 '농약 사이다' 사건을 '매구'라는 요물 여우가 배후에 있다는 괴담 형태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작품 속 매구는 특정 물건에 집착하는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여 다른 사람을 해치고 죽게 만든다는 설정인데, 이를 정신이 나간듯한 할머니 시점의 끔찍한 묘사들과 잘 섞어서 설득력있게 그려낸 솜씨가 일품이에요. 한국식 사회파 호러물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매구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는걸 명확하게 하는게 훨씬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어린 시절 할머니 친구가 실종된게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이 역시 할머니가 죽였다는 진상이 드러나는 식이었다면 말이 됐을테니까요. 지금처럼 매구가 있는지 없는지, 카디건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호한 상태로 끝나버리면 할머니가 나쁜게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인데, 이런 마무리는 호러물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싶거든요. 깔끔한 느낌도 들지 않고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그 여름의 흉가" 

여름 한 철, 나는 호러 가이드로 일하면서 어머니처럼 자살 충동에 시달렸다. 그리고 강원도 흉가 체험을 한 어느날, 열정적으로 살라는 투어 멤버의 조언을 듣는데... 

손님을 가장하여 투어에 참가한 어머니의 영혼을 만나 정신차리고 열심히 살게 된다는, 성장물에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한 명 더 있던 손님, 죽은 어머니의 영혼과 사진의 존재 등 전형적인 괴담 클리셰를 모아서 만든 이야기로 뻔한 내용에 주인공이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이유도 설명되지 않는 등, 여러모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자살하는 캐릭터" 

신작 게임 블라인드 테스트 중, 이상한 NPC가 발견되었다. 그 NPC를 참혹하게 죽여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었다. 알고보니 개발팀에서 폭언을 듣고 자살한 신입 개발자 은정이가 NPC가 되었던 것이었다. 그 뒤 개발팀 멤버들이 하나, 둘씩 은정이가 게임에서 죽은 방식대로 죽어갔다... 

저주를 게임의 NPC를 통해 풀어낸건 참신했지만, 그 외에는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작품입니다. NPC 목을 베어 죽였던 주인공 목에 금이 간다는 결말까지 뻔했습니다. 저주를 푸는 방법이라던가, 저주의 실체에 대해 보다 심도깊게 파고들었다면 아주 흥미로운 작품이 되었을텐데 아쉽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한밤의 엘리베이터" 

여자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배달원과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와 함께 갇히고 말았다. 엘리베이터는 곧 정상 가동되었지만, 찜찜함을 느낀 여자는 중간에 내려 계단으로 향했다... 

배달원이 여자를 쫓고 있었다는 결말인데, 너무 뜬금없을 뿐더러 흔해빠진 이야기라 반전의 묘사도 느낄 수 없습니다. 수십년 전에 보았던 영화 "캠퍼스 레전드" 도입부가 바로 떠올랐거든요. 한 여자가 주유소였나? 어딘가에 잠깐 들렀는데, 굉장히 수상해보이는 주인이 갑자기 쫓아오기 시작해서 부리나케 도망을 칩니다. 그러자 주인은 뒤에서 "차 뒷 자리에 누군가 숨어있단 말이야!"라고 소리친다는건데, 거의 똑같지요? 

게다가 이야기의 완성도만 놓고 보면 "캠퍼스 레전드"쪽이 훨씬 낫습니다. 이 이야기에서는 양복입은 남자의 존재가 제도로 설명되지 않는 등 단점이 더 많은 탓입니다. 이래서야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지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인형 뽑기" 

회식에서도 팀장에게 시달리던 세호는 우연히 인형 뽑기 기계를 마주쳤다. 기계에는 인형에 눈, 코, 입을 그려 넣고 이름을 붙이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세호는 뽑은 인형에 팀장의 이름을 붙인 뒤 눈, 코, 입을 그리고 인형을 패대기쳤다. 다음날, 세호는 팀장이 사고로 인형과 똑같은 부분에 큰 부상을 입고 당분간 회사를 쉬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세호가 인형을 뽑아 자기를 괴롭히던 상사들에게 복수하지만, 세호도 부하 직원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내용입니다. 기승전결이 명확한 하나의 이야기라는건 장점이지만 그 외는 그닥입니다. 진부하기 짝이 없으니까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저주받은 숲" 

미스터리 사이트에 무서운 숲 사진을 올리고, 그 곳에서 캠핑을 하겠다는 글이 올라왔다. 누군가가 회색 숲은 음기가 강하고 귀신이 많으니 도망치라는 글을 올렸지만 처음 글쓴이는 캠핑을 감행했고, 뒤이어 이상한 현상에 대한 글을 계속 올리기 시작하는데... 

미스터리 사이트 게시판에 올라온 글과 댓글들로 전개되는 작품입니다. 파운드 푸티지라는, 한 시대를 풍미했고 지금도 선보이고 있는 호러 영화 장르물을 글로 옮기면 이런 형태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하지만 저는 이 장르를 싫어합니다. '현실감'을 주는데 치중해서,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로는 볼 수 없는 작품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블레어 위치"가 대표적이지요. 이야기 결말도 보통 주인공이 사라지는 형태로 애매모호하게 끝나곤 했었지요. 이 작품 역시 완성된 이야기가 아니고, 처음에 글쓴이, 구해주러 갔던 직업 군인, 숲에 대해 썰을 풀어놓는 박수무당 등 주요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는 점 등에서 똑같습니다. 

이렇게 제가 싫어하는 점을 답습했을 뿐더러, 새로운 아이디어도 딱히 찾아보기 힘들어서 좋은 점수는 줄 수 없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화분" 

선미는 시장에서 빨간 색 꽃이 핀 화분을 사 왔다. 그리고 꽃에게 자기 소원을 이야기한 다음날, 소원이 이루어져 연적인 이 대리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걸 알게 되었다... 

선미가 생기, 젊음을 댓가로 김 대리와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이상한 꽃에게 소원을 빌지만, 마지막에 소원을 빈 목적이었던 김 대리마저 죽게 만든 뒤, 자기에게 꽃을 팔았던 할머니처럼 선미도 시장에서 화분을 팔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소원을 들어주는 저주받은 물건'에 대한 이야기는 하늘의 별만큼 많습니다. 그 중에서 변별력을 가질 만큼의 새로운 이야기로 생각되지는 않네요. 김 대리가 죽고 만다는 결말은 괜찮았지만, 그 외는 평이했습니다. 소원은 이루어졌지만, 본인도 불행에 빠진다는 전형적인 결말도 뻔했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열세 번째 계단" 

한 계단 씩 올라갈 때마다 피를 한 방울 흘리면, 열세 번째 계단까지 올라가서 뒤를 돌아볼 때 서 있을 여자 아이에게 소원을 말해주면 뭐든지 들어줄 것이다. 

전교 1등을 죽이면 자기가 전교 1등이 될 거라는 괴담의 파생형입니다. 여기에 성적 때문에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 이야기가 결합되어 있고요. 

짧은 분량 안에서 할 이야기는 다 하고 있고, 깔끔하게 마무리되는건 좋습니다. 1등 원석이가 계단에 소원을 빈 게 아니라, 노는 척 하면서 죽을만큼 공부했다는 진상이 특히 와 닿네요. 괴담을 현실로 만드는데 정말로 적절한 소재였다 생각되거든요. 부모를 죽이고, 원석이의 장난까지 알아버리자 완전히 미쳐버려 계단에서 여자 아이를 보게 된 주인공의 시점 변화도 탁월했고요.

주인공의 부모의 비정상적인 집착이 좀 더 묘사되었더라면, 그리고 부모를 죽인 주인공이 부모로부터 피를 받아 왔을텐데, 그 이야기를 더 무섭게 푸는게 좋지 않았을까 싶기는 합니다. 부모 머리를 잘라왔다는 식이었다면 더 충격적이지 않았을까요? 좀 은근하게, 지나치게 흉칙하지 않게 묘사하는게 이 책 수록작들의 특징이기는 한데, 이 이야기만큼은 보다 엽기적인 묘사를 하는게 좋지 않았을까 싶어요. 어차피 범죄 자체가 극단적인 패륜 범죄이니까요.

그래도 완성도 높은 작품이었습니다. 약간 사회파 느낌을 전해 주는 것도 마음에 들었어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가위" 

주인공 혜미가 가위에 눌린 이야기가 전부인 소품. 무섭지도, 재미있지도 않았습니다. 괴담으로 보기에도 너무 알멩이가 없고요. 별점은 1점입니다.

"외로운 아이 부르기" 

중학교 2학년 친구들 세 명이 몰래 학교에 숨어들었다. '외로운 아이 불러내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제목은 좀 있어보였지만, 알고보니 '외로운 아이 불러내기'는 '분신사바'와 거의 똑같더군요. 불러낸 외로운 아이가 질문을 잘못한 탓에 화가 나서 아이 하나를 데리고 가는게 전부인 이야기는 무섭지도 않고, 의외성도 없고요. 별점은 1점입니다.

"자유로 귀신" 

헌팅한 여자가 파주로 가자는 말에 남자는 차를 몰고 자유로를 탔다. 여자는 '자유로 귀신' 이야기를 꺼냈다. 

뭔가 했더니, 음주 운전 차량에 희생된 여자가 원혼이 되어 자유로를 음주 운전으로 지나가는 운전자들을 응징한다는 내용이더군요. 그렇게 완성도 높은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어요. 별로 무섭지도 않고요. 함께 수록된 사진이 더 무서웠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음주 운전자는 죽어도 싸다고 평소에 생각하고 있어서, 그 부분에 약간의 점수를 더합니다. 모든 음주 운전자가 이런 귀신을 만나서 천벌을 받기를 바랍니다.

"유괴" 

지수는 아영을 데리고 놀이 공원에 갔다. 그런데 한 할머니가 자기가 미래를 볼 줄 안다면서, 아이 앞날이 어둡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지수는 유괴범이었고, 아영이를 놀이 공원에 데리고 온 건 몸값을 받으러 왔던 거라는 진상이 반전으로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현실적인 범죄가 등장하는 범죄물로 유괴범 시점으로 바라본 유괴극이라는 아이디어는 꽤 독특합니다. 그러나 이상한 할머니의 존재는 도무지 뭔지 모르겠어요. 할머니가 지수의 정체가 유괴범이라는걸 알아낸 방법이 무엇이었는지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건 미래를 본다는 능력과 별 상관도 없잖아요? 또 할머니가 아영이를 지수 몰래 데리고 가려고 했다는 것도 억지스러웠습니다. 경찰에 신고하는게 당연하니까요. 

별로 무섭지도 않았고, 제목 자체가 스포일러라는 점도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든 요소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더블"

진수는 자기와 똑같이 생긴 남자를 두 번째 본 뒤, 옛 군대 선임인 박수무당 영우를 찾아갔다. 영우는 산 사람한테 붙어 영혼을 빨아먹는 악랄한 홉혼귀라며 부적을 한 장 써 주었다. 한 번 더 홉혼귀를 보면 죽는다는 말과 함께. 그러나 세 번째로 홉혼귀를 마주치자, 영우는 분노에 휩싸여 그를 죽이고 마는데... 

자기와 똑같은 사람에게 분노를 품고 죽였는데, 죽이고나니 하나도 안 닮았더라... 는 이야기. 홉혼귀다, 도플갱어다 하면서 뭔가 설정을 깔기는 하는데 그런게 무슨 상관인지 잘 모르겠을 정도로 허무한 결말이었어요. 진수를 홉혼귀가 쫓아다니는 이유도 설명되지 않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1킬로미터" 

한수는 이상한 문자 메시지를 따라가 어플을 하나 깔았다. 깔고나니 일종의 매칭 어플이었다. 한수는 어플에서 이상형인 박수희를 발견해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는데... 

어플을 통해 젊은 남자를 납치한 뒤 고깃배에 태우는 범죄 조직이 등장하는데, 너무 비현실적이라서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어요. 대한민국에서 백주대낮에 건장한 남자를 폭행 후 납치한다는게 말이나 될까요? 어림반푼어치도 없지요. 마지막에 GPS로 위치를 확인하여 한수의 집까지 침입한다는 결말은 어이를 상실케 했고요. 별점은 1점입니다.

"화장실" 

데이트 중에 갑자기 배가 아파 화장실을 찾았는데, 옆 칸에서 누군가 노크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화장실 안에 붙어있는 장기 매매 스티커 번호를 물어보았다... 

장기가 적출되는건 나였고, 이건 여자 친구의 음모였다는 이야기. 

누구나 잘 알고 있는 화장실 장기 매매 스티커를 이야기 전개에 활용한건 좋은 아이디어였는데, 그 외 모든 내용과 과정은 뻔하고 억지스러웠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그 목소리" 

윤미 일행은 도심 근교 펜션으로 여행을 떠났다. 우울증 약을 건너 뛴 윤미는 남자친구 동민과 친구 영화가 윤미를 몽키 스패너로 처리할거라는 음모를 엿들었다... 

우울증 약을 먹지 않아서 정신착란을 일으킨 윤미가 남자친구, 자기 친구와 그 남자친구까지 모조리 죽인다는 이야기입니다. 

피해자로 보였던 여주인공이 알고보니 가해자였다는건 많이 보아왔던 설정입니다. 그러나 이 설정이 효과적으로 사용되지는 못했습니다. 윤미에게 우울증이 있다는게 밝혀지자마자 곧바로 살인으로 이어져버리니까요. 이런 급발진 전개 덕분에 아무런 복선이나 반전도 없어서 시시했습니다. 이야기의 설득력도 낮고요. 별점은 1점입니다.

2005/04/12

헬로 네즈미 - 히로카네 켄시 : 별점 2.5점

헬로 네즈미 28 - 6점 켄시 히로카네/대원씨아이(만화)

아카츠카 탐정 사무소라는 탐정사에서 근무하는 일명 "고슴도치"인 고로와 그의 동료인 전 도박사 출신 큐사쿠, 통칭 "구레"를 중심으로 한 사무소의 멤버들이 펼치는 옴니버스 드라마입니다.

작가의 대표작인 "시마과장"은 이래저래 욕도 많이 먹고 문제도 많은 작품이긴 하지만 작품 자체를 끝까지 읽게 하는 통속적인 재미 하나는 대단하지요. 이 작품 역시 그러한 재미만큼은 상당한 수준입니다. 
그러나 작가의 스타일이라고는 해도, 감수성에 치우친 드라마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더군요. 눈물이 너무 많고 사랑도 너무 많은 순정파적인 전개라, 2000년대에 보기에는 짜증날 정도였거든요. 거기에 그림체 역시 전통 극화체에 가까운 탓에 뎃생력과 구성력은 나무랄데 없다 하더라도, 역시나 요즘 독자들에게 어필하기는 좀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대로 내용 자체는 재미있습니다. 눈물 쏙 빼놓는 에피소드들 뿐만 아니라 웃기는 이야기에서 대하 액션, 거기에 괴담과 사극, SF까지 통통 튀는 전개는 옴니버스 캐릭터 극의 장점을 잘 살린 이야기로 보여지며, 어느정도 성공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추리물도 포함해서요. 물론 "인간 교차점" 스타일의 드라마들은 좀 지루한 맛도 없지 않습니다만....

추리적으로 본다면 탐정 사무소의 탐정이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의뢰들어오는 사건은 단순한 조사나 사람 찾기 같은 일(이게 물론 현실적인 것이라는 것은 인정합니다)이 비중있게 다루어지는 탓에 관련 에피소드가 많지는 않습니다. 전 29권 분량 중에서 진정 "추리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부분은 별로 없어요. 하지만 소수 정예인지 나름대로는 제법 재미있는 이야기가 몇 개 있습니다. 특히 감금장소나 스토커 잠복 장소를 알아내는 실질적인 조사 방식은 개인적으로는 높이 평가합니다. 꽤 현실적이면서도 나름 추리적 요소가 괜찮거든요.

그러나 중반이후에는 소재고갈인지 너무 이야기가 비약해 버려 실망스러운 에피소드가 많습니다. "심령퇴마물", "흡혈귀", "UFO" 에피소드들은 사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에요. 또 일상적인 이야기와 단순 범죄 사건에서 상당한 스케일의 범국가적 스파이 액션까지 다루므로 이야기의 고저가 심해서 적응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그래도 일단은 평균정도의 재미는 가져다 주는 만화입니다. 별점은 2.5점. 지금은 구하기가 쉽지 않고 일본에서도 대표적인 보수 우익 취향의 만화가로 알려진 히로카네 켄시의 작품이라 앞으로도 구해 볼 생각도 없지만 그냥저냥 지나다가다 눈길한번 줄 만 합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추리물"로 보기에는 문제가 있을 듯 하군요.

PS : "아"로 시작하는 탐정 사무소 이름때문에 전화번호부에서 찾아보고 제일 위에 있어서 의뢰한다는 고객들 에피소드가 꽤 많더군요. 가가 탐정 사무소도 실패한 전략은 아닌 듯....

에피소드 중 추리물을 뽑아본다면

5~6권 - 고로의 애인인 란코의 아버지가 관련되어 있던 비리에 대한 에피소드 :
이 에피소드는 일종의 정경유착에 따른 거대한 음모를 다루고 있는데 킬러까지 등장하며 과격한 액션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로 정경유착에 관한 디테일이 굉장히 좋습니다. 추리적으로는 다이잉 메시지 해독이 등장하는데 꽤 괜찮습니다. 좀 더 소규모의 음모였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오버하는 경향이 있어서 약간 아쉽지만 재미있는 에피소드였습니다.

7권 - 기억상실중에 벌어진 살인사건을 다룬 "공백의 격류" :
십수년전에 살인을 저지르고 사고로 당시의 기억을 잃어버린 의뢰인의 과거를 조사하는 에피소드로 만화에 딱 어울리는 단서들과 내용전개가 독특하며 마지막 반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8~9권 - "유괴" 에피소드 :
한 대기업의 데릴사위 사장이 내연의 아내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유괴당해 탐정 사무소에 도움을 요청하는 에피소드입니다. 돈을 주고 풀려나기는 하지만 사회적 응징을 위해 유괴범을 조사하여 소재를 파악하는 과정이 현실적이면서도 흥미진진합니다.

14권 - 연쇄 살인마 이야기인 "빨간색의 혼란" :
싸이코 연쇄 살인범 이야기인데 내용 전개는 뻔하지만 꽤 재미있더군요.

14권 - 정체모를 인물이 가입한 보험금을 타게되는 한 주부의 에피소드인 "정체불명의 사례" :
어느날 아무 생각 없이 베푼 선행으로 보험금을 받게되는 한 주부, 그리고 그 보험금에 얽힌 진상을 파헤치는 이야기로 정통 추리적 요소가 많으면서도 내용 전개도 깔끔하며 반전도 상당히 괜찮은 에피소드입니다.

16~17권 - 의학교수와 브로커가 관련된 스캔들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진상을 다룬 에피소드 :
범행 장소와 공개된 장소 양쪽에서 동일 시간대에 존재하는 알리바이 트릭을 파헤치는 에피소드로 트릭은 생각외로 시시하지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과정이 꽤 재미있습니다.

19~20권 - 한 여인의 완벽한 복수극을 다룬 "의문의 편지" :
자신이 살해될 것을 예상한 한 정치인의 정부가 펼치는 완벽한 복수극인데 시한 장치를 이용한 편지 발송 트릭이 등장합니다.

20권 - 모닝콜을 통한 알리바이를 파헤치는 "모닝콜" :
아침에 모닝콜을 받았다는 용의자가 그 시간에 절도를 행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내는 것인데 사실 굉장히 간단하긴 하지만 일상적으로 쓰이는 소재를 트릭에 이용하는 발상을 높이 평가하고 싶네요.

24권 - 일본 전통 이야기에 대한 숨은 진상을 파헤치는 "사랑밖에 난 몰라" :
일종의 번외편으로 에도시대에 있었던 방화사건에 관련된 진상을 풀어내는 이야기입니다. 이 원전격 이야기를 잘 몰라서 몰입은 쉽지 않았지만 역사 추리물 적인 요소가 강하고 트릭과 전개도 재미납니다.

26권 - 한 여인의 밀실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긴머리의 여인" :
시체 이동을 통해 자살로 위장된 한 여인의 살인 사건을 다루는 이야기로 전편을 통해 가장 독특한 트릭이 등장합니다. 현실감은 왠지 많이 떨어지는 트릭이지만 발상이 무척 기발하며, 사건의 발단이 되는 단 하나의 단서를 쫓아 현장 조사 등을 통해 범인을 밝히는 과정이 좋습니다.

29권 - 도쿠가와의 매장금을 찾는 "보물 찾기" :
암호 트릭이 등장합니다. 암호 자체의 수준은 평이하고 일본어를 좀 알아야 해독할 수 있어서 아쉽지만 너무 어렵지도 않고 나름의 바탕이 있어야 풀 수 있어서 꽤 재미있는 암호로 보입니다.

2023/01/23

사키 - 사키 / 김석희 : 별점 2.5점

사키 - 6점 사키 지음, 김석희 옮김/현대문학

국내 첫 출간된 영국의 쇼트쇼트 대가 사키 단편선. 무려 71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발표작 중 절반에 가까울 정도에요. 몇몇 작품은 이런저런 경로로 읽었었는데, 꽤 인상적이었기에 큰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나쁘지 않았습니다. 시대를 앞서는 빛나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들도 많고, 기묘한 맛 스타일로 서늘한 느낌을 담뿍 전해주는 반전물, 피식거리게 만드는 웃음 가득한 작품들도 다수 수록되어 있거든요. 몇몇 작품은 걸작이라 부를 수 있고, 번역도 좋습니다. '께느른하다' 같은 단어까지 사용한건 놀라왔어요. 열심히 사는 농부가 화가인 이복형을 보고 느끼는 감정인데, 몸을 잘 안 음직이고 게을러 보이는 상태를 잘 표현한 말이라 생각되네요.
하지만 아주 좋았다! 라고 말하기도 애매합니다. 대부분의 작품들 등장인물과 소재가 비슷하고 자가복제한 작품이 많은 탓입니다. 적당한 신분의 어떤 인물이 속물이거나 허영심 가득해서, 혹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한 탓에 낭패를 겪는다던가, 부르주아적인 습성으로 타인을 대하다가 예기치못한 상황에 처한다던가하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입니다.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한 거짓말로 문제가 발생한다던가, '소악마' 캐릭터의 원조격인 악동들이 어른들을 골탕먹이는 내용도 많아서 읽다보면 지루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지나칠 정도로 짜증나는 인물들 묘사, 지나친걸 넘어서는 과한 장난들은 거북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키우던 고양이가 아무리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고 해도, 고양이를 죽인 이웃집 아이를 돼지 먹이로 주려고 한다는 <<참회>>가 대표적입니다. 지나치다 못해 끔찍했어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정말 엄선된 몇몇 작품만 읽는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습니다. 몇몇 기억에 남는 작품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깜빡 잊은 지명>>
길에 버려진 시체로 자신을 위장하려 한 남자가 살해당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은 뒤 털어 놓은 고백.
기상천외한 발상과 온갖 기묘한 상황이 펼쳐지는 전개는 흥미롭습니다. 주인공이 당장 체포되지 않는 이유가 그레이하운드들이 그를 쫓고 있고, 누가 먼저 잡는지에 대해 큰 내기가 걸려있었다는 묘사가 등장할 정도니까요.
하지만 화자가 자기가 사실은 죽은 것으로 알려진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다는 결론은 좀 억지스러웠습니다. 지명을 잊어버린 것은 사소한 문제일 뿐, 생김새 등 모든 면에서 이미 가짜라고 드러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사냥 자루>>
사냥 클럽을 이끄는 펠러비 소령은 후핑텅 부인의 숲에서 오랫만에 사냥을 이끌 계획이다. 그러나 후핑턴 부인의 조카딸 엘리자베스가 데려온 러시아 청년 블라디미르가 여우를 먼저 사냥해 버리고 마는데...
블라디미르의 사냥 자루가 눈 앞에 대롱대롱 매달러 있는 상황을 통해 긴장감과 서스펜스를 가져 오는 전형적인 작품. 굉장히 영국 부르주아스럽고 전형적이지만 긴장감만큼은 최고였습니다.
아쉬운 건 블라디미르가 잡은 건 사실 여우가 아니었다는 반전인데... 마지막에 슬며시 드러내는 것 보다는 조금 드라마틱하게 가져가는게 어땠을까 싶네요. 발표 당시에는 먹혔음직 하나 지금은 좀 낡은 방식이었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생쥐>>
몸 속에 들어간 생쥐 때문에 시어도릭은 모르는 여자 앞에서 옷을 벗어야 하는 위기에 처하는데....
지금 보아도 괜찮은 반전이 돋보였던 작품. 앞에 앉은 여자가 장님이었다는 암시, 복선을 제공해 주었더라면, 그리고 긴장감을 조금만 더 높여주었다면 쇼트쇼트 역사에 길이 남는 희대의 걸작 중 한 편이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별점은 4점입니다.

<<토버모리>>
한 시골마을 저택에서 열린 파티에서, 참석자 중 한 명인 코넬리우스 에핀은 저택에서 키우는 고양이 토버모리에게 사람의 말을 가르치는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이는 곧바로 사실로 밝혀지지만, 토버모리가 그동안 보고 들은 사람들의 말을 폭로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당황해했고, 결국 코넬리우스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토버모리를 죽이는데 동의한다.
영국 부르주아들의 가식을 비웃는 풍자물. 뒷담화, 불륜 등 온갖 더러운 짓은 다 하면서 서로 만났을 때에는 고상한 척을 하는 가증스러운 상태를 말하는 고양이라는 소재로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입니다. 참신한 아이디어와 유머러스한 전개도 돋보이고요. 코넬리우스가 코끼리에게 말을 가르치려다가 밟혀 죽었다는 결말도 깔끔했습니다.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토버모리의 폭로가 기대만큼 화끈하게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점인데, 발표된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이 정도가 한계였겠지요. 별점은 4.5점. 풍자 블랙 코미디계의 H.O.F (Hall of Fame)에 입성하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브로그>>
마을 최악의 말 브로그를 소유한 멀렛 가족은 수년간의 노력으로 새로 이사온 펜리카드 씨에게 드디어 말을 팔아치웠다. 그러나 펜리카드 씨는 멀렛 가족의 딸 제시에게 호감을 드러냈고, 가족은 브로그가 사고를 쳐서 그 호감을 없애버릴까 노심초사하게 되는데....
내용은 자기 자신 (그리고 자기 가족)만 생각하는 가족의 이야기로 이 책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내용으로 그리 높은 평가를 할 만한 작품은 아니지만, 아래의 딱 한마디만큼은 기억에 남기에 소개해드립니다.
“펜리카드가 그 말을 타고 밖에 나가도록 내버려 두면 안 되는 건 분명합니다.” 클로비스가 말했다. “적어도 제시가 그 사람과 결혼해서 남편한테 싫증이 날 때까지는 안 돼요. "

<<허황된 이야기꾼들>>
잔돈푼을 구걸하려는 사람을 거창하면서 허황된 이야기로 단념시킨다는 이야기. 이야기는 뻔했지만 신사답게 구걸하는게 어떤 것인지 조금 알 수 있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샤르츠 메테르클루메 교수법>>
기차를 놓친 귀부인 칼로타가 자기를 가정교사로 착각한 부인을 따라가 그 집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는다는 이야기.
끔찍할 정도로 지나친 장난을 그리고 있는 소품으로 개그 콘서트에 어울릴법한 이야기였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리치는 방법이라며 허풍을 떤 제목의 교수법 아이디어만큼은 괜찮았어요. 로마 고대사의 사비니족 여인 납치를 실제로 실연하는 식으로 아이들을 가리지거든요. 다른 방식으로 녹여내었더라면 더 괜찮은 작품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맹점>>
에그버트는 삼촌 롤워스 경에게 대고모 할머니가 요리사 세바스티앙에게 살해당했다는 증거를 입수했다. 하지만 롤워스 경은 증거인 편지를 벽난로에 태워버렸다. “요리사로는 아주 비범하기 때문." 이라며...
살인 사건이 등장하는 범죄물로 흥미롭게 전개되다가 마지막 한 마디로 극적 반전이 이루어지는 초단편 (쇼트쇼트)의 교과서 같은 작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별점은 5점입니다.
참고로, 롤워스 경의 심정은 어느정도 이해가 됩니다. 대고모가 살해당한건 먼저 세바스티앙을 자극했기 때문이거든요. 그렇다고 살인이 정당화될 수야 없겠지만 컵에 든 커피를 얼굴에 끼얹은건 솔직히 심했습니다.

<<평화 장난감>>
전쟁 놀이에만 열중하는 아이들 교육을 위해 의회와 역사적 인물들 인형을 선물했지만, 아이들은 그 장난감을 가지고 또다른 전쟁놀이를 시작한다는 이야기. 다른건 모르겠지만, '평화 장난감'이라는 발상이 기발했습니다. 전쟁이나 파괴에 대한 장난감이 대세인 지금에도 먹힐만한 아이디어에요. 별점은 3점입니다.

<<크리스피나 엄벌리 부인의 실종>>
집안의 독재자였던 엄벌리 부인이 사라진 뒤, 남편은 매년 2천 파운드의 돈을 은밀하게 요구받았다. 부인을 돌려보내지 않는 조건이었다...
마크 트웨인의 <<붉은 추장의 몸값>>과 비슷한, 기발한 발상의 유괴극. 별점은 3점입니다.
그런데 부인이 사라졌는데 경찰이 나서지 않은 이유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던건 조금 아쉽네요. 이런 상황이라면 엄벌리씨가 부인을 죽여서 마당 어딘가에 묻어버렸어도 무방했을 거에요. 차라리 그런 인상을 주면서 마무리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엉뚱한 침입자들>>
평생을 원수로 지낸 울리히와 게오르그는 함께 나무에 깔린 뒤, 해묵은 원한을 청산하고 친구가 되기로 하는데...
숲을 둘러싼 오래된 원한이 살의에까지 이르른 원수 두 명이 산중에 고립된 뒤 친구가 되기로 합니다. 그러나 둘은 구조대가 아니라 배고픈 늑대 떼들에게 둘러싸이고 만다는 반전이 인상적인 걸작 쇼트쇼트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메추라기 먹이>>
인기없는 상점에 손님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주인은 연극을 펼치는데...
인기없는 마을 상점에 손님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상점에 정체불명의 손님이 방문한 뒤 무언가 드라마가 벌어지는 것처럼 꾸민다는 이야기. 전략은 성공해서 마을 주부들의 호기심을 가게에 집중시키게 됩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SNS 를 활용한 페이크 다큐성 타겟 광고라고나 할까요? 시대를 앞서간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임시 정원>>
정원 자랑하기 좋아하는 밉살스러운 이웃이 찾아올 때를 대비해 임시로 멋진 정원을 꾸며주는 서비스 업체가 등장하는 이야기.
결말은 다소 답답했지만, 역시나 독특한 아이디어가 좋았습니다. 브루주아들의 허영심 비판에 딱 맞는 아이디어이기도 했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달력>>
클로비스는 예언을 적은 달력을 18펜스에 팔 생각을 했다. 예언은 모두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애매한 것들이었지만, 조슬린이 사냥터에서 화를 당할거라는 예언은 성공하기 힘들어졌다. 조슬린이 절대로 말을 타지 않고 사냥터로 이동했기 때문이었다.
이 작품에서도 상당히 시대를 앞서간 상품 아이디어가 등장합니다. 애매모호하고 두루뭉실하게 이야기를 해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사이비 점쟁이의 뻔한 수법을 특정 시기와 결합된 달력이라는 제품에 도입해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거든요. 실제로 만들어 팔았어도 괜찮았겠다 싶을 정도로 좋은 아이디어였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불가피한 희생>>
천 파운드가 넘는 돈을 잃은 딸이 그 댓가로 홀어머니를 채권자 도박꾼과 결혼시킨다는 이야기.
다른 무엇보다 체면을 중요시하는 부르주아 풍자를 잘 그려낸 소품으로 대단히 신선하거나 재밌다기 보다는, 주인공 딸이 이 책에 등장하는 속물 부르주아 중에서도 뻔뻔하기로는 첫 손가락에 꼽을만해서 기억에 남습니다. 별점은 2.5점.

<<네모난 달걀>>
1차대전 참호에서의 참혹한 전투를 겪는 병사들의 위안은 술집가 카페가 합쳐진 공간 '에스타미네'에서의 한 때였다. 그곳에서 나는 자칭 양계업자를 만났다. 그는 품종 계랑을 통해 자기 양계장 닭이 네모난 달걀을 낳게 하는데 성공해서 거액을 벌었지만, 전쟁에 끌려온 뒤 양계장을 운영하는 고모가 돈을 내놓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소송 비용으로 수십 프랑을 요구하는데....
'나'의 마지막 말이 깨는 반전의 맛을 가져다 주는 작품. 그는 휴가를 얻으면 '양계업자'의 고향에 가서 네모난 달걀 산업 현황을 확인하고 돈을 빌려주겠다고 말하지요. 그러자 '양계업자'는 자기 말이 사실이라면 어쩔 셈이냐고 되묻습니다. 그리고 '나'는 대답하죠. "당신 고모님과 결혼하겠소" 별점은 3.5점입니다.
아울러 시키는 1차대전에 참전하여 전사했다는데, 그런 경력답게 굉장히 탁월한 참호 묘사도 눈여겨 볼 만 했습니다.

2025/12/26

자백의 대가 1~12 (2025) - 이정효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근 꽤 인기를 끈 넷플릭스 드라마입니다.
남편 이기대 살인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구속된 안윤수에게, 유명한 살인마 모윤이 “내가 대신 죄를 뒤집어쓸 테니 부탁 하나를 들어 달라”는 거래를 제안하는 초반부만큼은 확실히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안윤수가 돌봐야 할 어린 딸이 있는 상황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점에서 설득력도 높고요.
남편을 죽이지 않았지만 모윤과의 거래 조건으로 풀려난 대신 진짜 살인을 저질러야 하는 딜레마에 처한 안윤수의 모습도 흥미롭습니다. 진짜 이기대 살인범에 대한 조사, 수상한 인물의 등장, 모윤과의 밀땅 등 이후 전개도 재미있어요. 

범죄물답게 추리적인 요소도 가미되어 있는데, 이 중 가장 눈길을 끈 건 진범이 최수연이라는걸 증명하는 단서입니다. 이기대가 남긴 판화에 찍힌 최수연의 지문이지요. 이는 판화가인 이기대라는 직업과 자연스럽게 맞물리면서도, 원판과 유일한 프린트를 진영인·최수연이 훼손했지만 테스트 프린트가 남아 있었다는 반전까지 깔끔하게 이어집니다.

김고은의 연기도 돋보입니다. 화장기 없는 얼굴과 짧게 깎은 머리로 복수심에 사로잡힌 서늘한 악녀를 설득력 있게 그려 냈습니다. 전도연의 연기도 안정적이에요. 50세가 넘었는데도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동안도 놀랍고요. 그리고 존댓말을 쓰는 싸이코패스 살인마 커플인 진영인·최수연의 연기도 섬찟합니다. 

하지만 범죄극으로서의 치밀함은 크게 부족합니다. 우선 진영인·최수연 부부가 안윤수 남편 이기대를 살해한 후, 범행 은폐가 성공해 안윤수가 죄를 뒤집어쓰는 과정이 지나치게 대충입니다. 계획적인 살인이 아니었는데도 이렇게 잘 풀렸다는게 잘 납득이 되지 않아요.

이후 모윤이 지시한 고세훈 사건은 더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안윤수는 살해한 척 사진만 찍었지만 이후 진영인이 실제로 고세훈을 살해한 것이 진상인데, 왜 굳이 죽였는지 이유가 불명확합니다. 고세훈이 살아 있다면 모윤이 거래를 철회하고, 다시 안윤수가 이기대를 죽인 진범으로 재판받게 될 겁니다. 이미 백동훈 검사도 모윤과 안윤수의 거래를 눈치채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즉, 어차피 안윤수는 이기대 살인범으로 구속될테니 진영인·최수연은 고세훈을 죽이는 위험을 무릅쓸 까닭이 전혀 없습니다. 고세훈을 죽인 누명까지 안윤수에게 뒤집어 씌우는건 아무런 의미가 없잖아요?

이야기 전개와 설정도 억지 투성이입니다. 모윤 주변에 사건 관련 인물들이 모이는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하필 모윤(강소해)와 같은 감방에 동생 자살의 원인을 제공했던 P양이 함께 수감되어 있고, 또 하필 P양의 남자친구가 고세훈의 지인으로 고세훈 살해 당시 CCTV 동영상 데이터를 보관하고 있다는건 비현실적입니다.
피해자 이기대의 통화 목록에서 진영인과의 연결고리를 검찰과 경찰이 찾아내지 못하고, 안윤수가 전자발찌 훼손 후 장기간 도주하는데 이를 허용하며, 모윤은 병원에서 이탈했다가 칼에 찔려 죽을 뻔 했고 나중에는 탈옥까지 저지르지만 이런걸 미연에 막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검찰과 경찰을 아무리 우습게 봤어도 그렇지, 이건 선을 넘었어요.

그 외에도 납득이 되지 않는 설정은 많습니다. 진영인이 사건을 은폐하려고 모윤의 변호를 자처했다는 설정처럼요. 모윤이 안윤수 범행을 대신 자백한 뒤 기존 변호사가 변호를 포기했기 때문에 변호사 자격을 얻게 되었는데, 이는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 애초에 변호를 맡지 못했을 때는 어떻게 수습할 생각이었는지 의문입니다. 안윤수 딸의 잦은 유괴, 모윤의 기이할 정도로 충실한 조력자 네트워크, 안윤수와 진영인이 만나던 순간의 미술관 CCTV를 진영인이 지웠다는 설명들도 개연성을 깎아 먹는 요소들이고요.
모윤(강소해)의 동기인 성폭행에 따른 동생 자살은 이제는 식상하다는 표현도 부족할 정도로 뻔하며, 범인 진영인의 자백 비슷한 행각으로 마무리 되는 결말도 유치했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문제들은, 본래라면 변호사가 등장하는 드라마의 에피소드 한두 편 분량으로 정리될 이야기를 12화로 길게 늘렸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불필요한 음모와 억지 설정이 과하게 붙고 말았어요. 모윤이 이기대를 죽였다고 자백한 시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해서, 백동훈 검사가 둘의 거래를 쫓고 안윤수는 모윤에게 압박받으면서도 남편 살인범을 찾아내려 노력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갔다면 훨씬 좋았을겁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인 백동훈 검사와 장정구 변호사의 연기는 별로입니다. 백동훈 검사는 '안윤수가 진범이 아닐 수도 있다'는 딜레마 표현을 실패했고, 장정구는 반대로 '안윤수가 진범일 수 있다'는 딜레마를 그려내지 못했거든요. 백동훈 검사는 그냥 항상 화가 난 표정으로만, 그리고 장정구 변호사는 소박하지만 한없이 선한 인물로만 등장하는 탓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지금보다 훨씬 짧은 분량으로 압축되었다면 모를까, 흥미로운 설정에만 기댈 뿐 범죄 스릴러로서의 완성도는 부족합니다. 추천할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덧붙이자면, "자백의 대가"라는 제목만 봤을 때에는 티에리 크루벨리에의 논픽션을 생각하고 그냥 자백을 잘 끌어내는 사람이 주인공인줄 알았는데 좀 의외였습니다. 이런 경우 "자백의 댓가"라고 표기하는게 맞을는 줄 알았는데 아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