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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5

사이먼 싱의 암호의 과학 - 사이먼 싱 / 이원근 : 별점 5점

사이먼 싱의 암호의 과학 - 10점
사이먼 싱 지음, 이원근 옮김/영림카디널

이전에 읽었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의 저자가 쓴 암호의 역사와 원리에 대한 책입니다. "경성탐정록"의 자료로 쓸 까 하고 구입한 책이죠. 목차는 1. 메리 여왕과 엘리자베스 여왕의 암호 대결/ 2. 암호 - 그 신비의 바다 / 3. 보이지 않는 암호 전쟁 / 4. 사라진 언어 / 5.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암호 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 정말 물건입니다. 정말 재미있더군요. 암호도 수학이 근간이 된 과학이기에 딱딱하고 지루하게 쓰지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어요. 암호의 역사를 주요 이슈별로 나누어 생성 방법과 해독 과정, 역사에 미친 파장 등을 재미있게 써서 읽는 내내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재미 뿐만이 아니라 암호에 대하여 상세하게 잘 설명하고 있어서 이거 한권 읽으니 암호 전문가가 된 것 같아 뿌듯하기까지 하더라고요.^^

딱 하나 아쉬운 점은 유렵과 영미권이 이야기의 중심이라 암호 해독에 동참하지 못한다는 것인데 이건 뭐 어쩔 수 없는 점이겠죠. 상세한 내용 이외에도 풍부한 도판과 암호문의 여러가지 예문들, 다양한 부록도 실려 있기에 정말 별점 5점이 아깝지가 않습니다. 암호에 관심 있으시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적극 권해드립니다.

1장에서는 제목처럼 메리 여왕의 엘리자베스 여왕 암살 음모에 대한 암호문을 중심으로 암호의 기원부터 중세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주요 이슈인 메리 여왕 관련 이야기는 한편의 짤막한 역사 첩보 소설을 보는 것 만큼 흥미진진한 이야기였고 그 외의 다른 이야기들, 예를 들자면 고대 암호의 기원부터 스파르타와 로마의 암호 이야기 등도 재미있었습니다. 추리소설 트릭으로 써먹음직 했고 말이죠.
 
2장에서는 크게 두가지의 이슈, 즉 그 당시 해독이 불가능하게 여겨지던 "비즈네르 사이퍼" 와 아직도 그 수수께끼가 밝혀지지 않은 미국의 보물 관련 암호문 "빌 사이퍼" 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비즈네르 사이퍼의 아이디어와 그 해독방법도 흥미진진했지만 모험소설과 같은 분위기가 풍기는 "빌 사이퍼" 이야기는 그야말로 한편의 영화였습니다! 아직도 해독되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개인의 창작으로 날조된 문서로 보입니다만...

3장은 독일의 이른바 "이니그마" 시스템에 관련된 이슈가 중심입니다. 해독 불가능으로 여겨지던 이니그마 시스템의 원리를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물론, 그것을 해독하기 위한 폴란드와 영국의 암호해독팀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재미는 물론 그간 궁금했던 이니그마 시스템에 대해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소득이었습니다. 복잡한 기계이지만 명쾌한 도판과 상세한 설명으로 그간의 궁금증이 싹 가셨거든요.

4장은 영화 "윈드토커"로 잘 알려진 미국 나바호 인디언 암호병에서 시작해서 이와 유사하게 "다른 언어"를 이용한 암호문이라 할 수 있는 고대 언어 해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짐작대로 "로제타 스톤"과 고대 이집트 언어의 해독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익히 알고 있었던 이야기였지만 세부적인 디테일이 잘 표현되어 마음에 들었습니다. 몰랐는데 샹폴리옹 혼자서 이론을 만들고 해독한건 아니더군요.

5장은 현대 암호 시스템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이른바 "열쇠"를 중심으로 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암호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는데 사실 여기서부터는 원리는 수학이지만 컴퓨터를 이용한 작성과 해독의 영역에 들어갈 뿐더러 역사적인 사건과 맞물리는 것은 없어서 재미는 가장 떨어지는 편이었습니다. 그래도 "소수"를 이용한 열쇠 만들기에 대한 내용은 경성탐정록에 써먹어 봄직한 이야기라 개인적으로 횡재한 느낌이었어요.^^

2012/01/23

이니그마 - 로버트 해리스 / 조영학 : 별점 2.5점

이니그마 - 6점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이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약간 포함되어 있습니다.

톰 제리코는 선배 앨런 튜링의 소개로 블레츨리 파크의 암호 해독 부서에 배치된 후, 독일군 기기 중 가장 어려운, 4중 회전자를 채택한 이니그마 "샤크"를 해독해 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건강을 해친 톰은 요양을 떠났지만, 고작 3주 후 샤크의 체계가 바뀌어 다시 업무에 복귀했다. 업무 복귀와 동시에 옛 연인 클레어의 행방을 뒤쫓다가, 그녀의 방에서 훔쳐낸 암호문을 발견하는데...

역시나 물만두님의 리뷰집을 읽고 흥미가 생겨 읽게 된 작품입니다. "그들의 조국"으로 데뷔한 로버트 해리스의 두 번째 작품으로, 450페이지가 넘는 대장편입니다. 첫 작품은 가상 역사물이었지만, 이 작품은 2차대전 당시 영국 정보부 블레츨리 파크를 무대로 한 팩션입니다. 이전에 영화로 먼저 접했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영화와는 달리 디테일이 확실해서 좋았습니다. 영화에서는 이니그마와 블레츨리 파크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었는데, 소설은 이니그마에 대한 고증과 암호를 풀어내는 과정이 굉장히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거든요. 암호 해독에 관심이 있다면 자료 삼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잘 설명해 줍니다. 실제 이니그마 해독 과정이 중심이라 독자가 암호 해독에 참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만 제외하면, 완성도가 매우 뛰어납니다.

또한, 영화는 두 가지 이야기 축인 '이니그마 해독'과 '클레어 실종에 대한 미스터리' 중에서 클레어 실종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었는데, 소설은 두 가지 이야기를 균형 있게 전개하는 것도 좋았어요. 거대 수송 선단을 보호하기 위해 새로운 단서를 알아내야 하고, 그 단서가 되는 것이 수송 선단을 발견한 U보트의 통신 암호라는 아이러니한 상황과 그로 인한 서스펜스 (명확한 시간 제한이 생기므로)를 영화보다 훨씬 설득력 있고 박진감 있게 서술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러나 단점도 분명합니다. 가장 큰 단점은 이야기가 너무 길고 늘어진다는 점입니다. 특히 주인공 톰 제리코의 불안한 심리 묘사와 옛 연인 클레어와의 관계에 지나치게 많은 분량이 할애되어 있습니다. 클레어에 대한 비중이 커진 탓에, 진짜 여주인공인 헤스터의 존재가 묻혀버린 것도 문제입니다. 제리코가 클레어의 룸메이트 헤스터와 함께 클레어의 실종에 얽힌 진상과 중요한 단서를 포착하는 전개는, 영화에서 초반에 간결하게 처리한 것처럼 소설에서도 요약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밀도 있는 상세한 묘사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앞부분은 장황한데 반해, 중반 이후 결말까지는 너무 빠르게 전개되는 느낌이 있어 강약 조절이 실패했다는 인상을 줍니다. 확실하게 정리하며 마무리되기는 하지만, 마치 연재 종료를 갑작스럽게 통보받은 만화의 엔딩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또한, 폴란드인 푸코프스키가 가족을 위해 카틴 숲 학살 관련 암호문을 몰래 해독하려 했다는 동기는 이해할 수 있지만, 애초에 암호문 내용이 카틴 숲 사건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가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에필로그에서 클레어가 스파이로서 해당 메시지를 중개했다고 설명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작품 내에서 해당 암호문은 해독조차 시도되지 않았다고 묘사되며, 가장 뛰어난 암호 해독 전문가인 제리코조차도 해독이 기적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어려운 암호였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에필로그에서 클레어가 사실 위그램이 심어놓은 블레츨리 파크 감시용 스파이였다는 설정은 불필요하게 느껴집니다. 나름 반전 요소일 수는 있지만, 이야기의 흐름에 꼭 필요하지는 않으며 퍼그에게 의도를 가지고 암호를 전해주었다는 점도 현실성이 부족해 보입니다. 애초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퍼그의 배후를 찾기 위한 작전이었다면, 주객이 전도된 셈입니다. 이 암호 때문에 퍼그가 독일 쪽에 붙으려 한 것이라면, 차라리 단순한 미행이나 감시를 붙이는 것이 훨씬 나았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U보트를 뒤쫓는 암호 해독 요원들의 시간 제한이 있는 작전과, 또 다른 음모가 복합적으로 펼쳐지는 서스펜스와 재미는 상당히 뛰어났기 때문에, 알리스테어 맥클린 스타일 (짧고 임팩트 있게)로 쓰였다면 더욱 만족스러웠을 것 같아 아쉽습니다.

덧붙여, 영화와 소설 둘을 비교한다면 영화 쪽이 더 낫습니다. 일반 독자나 관객이 이해하기 어려운 암호 해독 장면보다는, 클레어의 실종과 그 비밀을 파헤치는게 더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보거든요. 결말 또한 영화 쪽이 깔끔하고요. 헐리우드식 해피엔딩이 시종일관 을씨년스럽고 어두운 분위기의 원작보다는 개인적으로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톰 제리코가 마지막 퍼그와의 추격전 이후 요양할 때 읽었다는 아가사 크리스티 소설 목록은 인상적이었습니다. "13인의 만찬", "명탐정 파커 파인", "세븐 다이얼스 미스터리", "목사관 살인사건" 등, 작중 주인공이 읽는 책들이 제 취향과도 묘하게 어울려서 더욱 반가웠습니다.

2003/12/15

ENIGMA - 마이클 앱티드

예전에 다운받아 놓고 잊어먹고 있었던 영화입니다. 오랫만에 CD를 정리하다가 발견하여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생각과는 사뭇 다른 영화더군요. 일단 2차대전을 배경으로 독일군의 전설적인 암호장치 "이니그마"를 해독하는 해독팀 ("블래처리파크" 라고 하더군요) 소속의 주인공이 등장하길래 2차대전물이구나 싶었는데 일종의 추리 스릴러물이더라고요.
주인공 제리코는 암호 전문가로 애인이었던 클레어와 사이가 틀어진것을 계기로 신경쇠약에 걸려 요양중이다가 독일이 갑자기 암호코드를 바꾸는 바람에 재투입된 요원입니다. 하지만 재투입 되자마자 클레어는 사라지고 제리코는 우연히 클레어의 방에서 사라진 암호비문을 입수, 클레어의 룸메이트 헤스터와 함께 클레어의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그러는 와중에도 독일군의 U-보트 대선단이 연합군 수송선단을 노리기 시작하여 제리코는 호위함을 내주고 코드를 입수하는 작전으로 암호해독을 하게 됩니다.... 라는 간략한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는 두개의 큰 흐름, 2차대전에서의 암호 해독과 사라진 애인의 비밀이라는 두가지의 큰 흐름을 가지고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후반부에 앞에 나왔던 복선들과 더불어 이 모든것이 하나로 합쳐지며 끝나게 되지요.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극장에서 보기에는 스케일이나 호흡이 조금 작고 지루한 면도 있지만 혼자 가만히 보기에는 괜찮은 영화였다 생각되네요. 추리물로서의 특징도 가지고 있으니만큼 의외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이니그마"라는 장치에 관련된, 암호해독에 관련된 내용은 그닥 비중이 있지는 않습니다. 원작소설이 있나본데 한번 구해 읽어보고 싶네요.

2006/01/14

러시아 홍차의 비밀 - 아리스가와 아리스 : 별점 2점

ロシア紅茶の謎 (講談社文庫) (文庫) - 4점
아리스가와 아리스/講談社

범죄 심리학 조교수이자, 실제 사건에서의 활약으로 "임상 범죄 학자"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천재 히무라 히데오와 추리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 컴비 시리즈 단편집. 아리스가와 아리스(저자)의 첫번째 단편집이기도 합니다. 그의 "국명 시리즈"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책에는 전부 6개의 단편과 작가 해설 등이 담겨있습니다.
일본 여행 가서 구입한 책으로 장편이 아니라 단편집이라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중간에 번역 한번 해 볼까 하고 삽질하느라 걸린 시간도 있어서 이래저래 거진 한달이 걸렸네요.... 2006년 들어서는 처음으로 완독한 책인 것 같습니다. (만화책은 수도없이 읽었지만서도)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기대 이하였습니다. '일본의 엘러리 퀸'이라고도 불리우는 신본격 작가라서 굉장히 기대했는데 말이지요. 이유는 작품 대부분이 "트릭을 위한" 이야기들이라 트릭에 매몰된 듯한 느낌인 탓입니다. 트릭도 만들기 쉬운 암호 미스테리가 많아서 별로였고요. 표제작이며 작가 스스로 마음에 든다는, 이른바 국명 시리즈인 "러시아 홍차의 비밀"이 제일 어처구니 없고 수준이하였다는 점도 당황스러웠습니다.
또한 탐정역의 히무라 히데오의 캐릭터가 너무 전형적이라는 것도 감점 요인입니다. 캐릭터를 돋보이게 하기에는 단편이라는 특성상 쉽지 않은 부분이 많았겠지만, 잘난척 하는 천재라는 고전적 스테레오 타입 그대로의 인물이라 새로운 면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도 신본격답게 문제-해결이 명확하고 이야기 하나하나가 깔끔하게 매듭지어지는 것은 좋았습니다. 용의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고 단서에 대한 범위를 좁혀줌으로써 이해를 돕는 추리만화 타입의 전개도 쉽게 읽는데 큰 도움을 주었고요.

결론내리자면 그냥저냥한 평작이랄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트릭 자체는 제법 괜찮은게 있고, 뛰어난 작품도 분명있기는 합니다. 위에 말한 단점은 장편을 보면 많이 상쇄될 것도 같고요. 다음번에는 장편에 한번 도전해 봐야 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한 3개월은 걸리겠지만....

개인적인 베스트는 "동물원의 암호"와 "팔각형의 함정" 입니다.

작품별 상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동물원의 암호 :
동물원 원숭이 우리에서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 사육사. 그는 죽기 직전 암호로 된 쪽지를 남긴다. 그 암호는 퍼즐광이었던 피해자가 공들여 만든 것으로 암호를 해독하면 범인을 알 수 있으리라는 판단 하에 주인공 컴비는 동물 이름으로 구성된 암호 해독에 도전하는데...
"동물 이름으로 구성된 암호" 자체가 무척 괜찮습니다. 기발하면서도 수긍이 가는 그런 암호거든요. 일본 거주자가 아니면 풀기 힘들다는 약점은 있지만 말이죠. 내용 전개도 명쾌하고 논리적이라 가장 마음에 드는 단편 중 하나였습니다.

2. 지붕 밑의 산보자 :
하숙집 주인이 살해되는데 경찰 조사로 발견한 그의 일기에서 그가 하숙집 지붕을 밤에 돌아다니는 변태적인 취미가 있었다는 사실과 하숙인들 중 인근 연쇄 강간마로 짐작되는 인물이 있다는 것도 밝혀진다. 그런데 하숙인들을 암호화된 이니셜로 표기하고 있어서 정체를 모르는 상태. 연쇄 강간마이자 하숙집 주인 살인 사건의 범인인 그 하숙인을 찾기 위해 두 컴비가 나선다.
역시 암호 트릭입니다. 이 작품은 암호 자체는 무척 간단한 편이라 정교한 맛은 좀 없더군요. 그래도 에도가와 란포의 동명 단편을 응용한 센스와 마지막의 살짝 등장하는 반전은 무척 좋았다 생각됩니다.

3. 붉은 도처 (稻妻) :
한 여인이 투신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는데 히무라 히데오의 제자인 학생이 목격자로 나서 그 여자가 방에서 밀려 떨어졌다는 것을 증언한다. 그러나 그 여자의 방은 완벽한 밀실 상태.
밀실 트릭물입니다. 그러나 트릭의 정교함은 떨어지는 편이고 작품에 흥미를 느낄만한 요소가 너무 적어서 이상할 정도였어요.

4, 룬의 가르침 :
외국인 기자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요청받아 찾아간 히무라 히데오. 그는 피해자가 손에 쥐고 죽은 "룬 문자판" 4개의 수수께끼를 푸는데 주력한다.
이 책의 단편들 중에서 전개가 가장 이색적인 작품이었습니다. 히무라 히데오의 방에 놀러간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책상위에 놓여진 룬 문자판을 보게 되자 히무라 히데오가 그것에 관련된 사건을 들려주는 셜록 홈즈물 스타일의 전개로 이루어지거든요. 트릭은 역시나 일본 독자들만이 풀 수 있는 암호인데 평이하기도 하지만 좀 억지성이 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룬 문자"라는 요소가 왜 들어갔나 싶게 쌩뚱맞아서 의아했는데 책 뒤의 작가 후기를 보니 "고대문자"에 관련된 트릭 추리물을 써 달라는 의뢰의 결과물이더군요. 뭐 그냥저냥한 수준의 작품입니다. 

5. 러시아 홍차의 비밀 :
인기 작사가 독살 살인 사건에 참여한 컴비. 아무도 그의 찻잔에 독을 주입할 기회가 없었던 상황에서 사건의 해결에 도전한다.
표제작이자 국명 시리즈라는 작품입니다. 솔직히 저는 이 책에서 이 작품이 제일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트릭도 억지에다가 범인이 왜 그런 트릭을 썼는지에 대한 타당성 자체가 불분명 합니다. "아무도 죽일 수 없는 상황" 이라고 해서 자기 자신이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거든요. 어차피 제일 의심 받을 수 밖에 없는 인물이었는데.... 본격물의 정도를 벗어나 너무 트릭에만 집착한 씁쓸한 결과물로 보입니다.

6. 팔각형의 함정 :
아리스가와 아리스 원안의 추리극을 상연하는 연극 예행 연습에 초대된 두 컴비는 실제로 살인 사건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런게 실제로 있군요! 만화에서만 보던 "추리극" 공연과 관객이 함께 하는 범인 맞추기 이벤트라는 연극을 위해 아리스가와 아리스(작가)가 실제로 원안을 제공했던 연극 각본의 소설화 작품이라고 합니다. 작품도 본격물에 걸맞는 깔끔하고 완벽한 구성을 보여주는 모범적인 작품이었습니다. 트릭도 아주 약간을 제외한다면 수긍할 만 했고 범인이 왜 그렇게 트릭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설명 역시 합당하며 범인을 알게 되는 단서 역시 이치에 맞거든요. 일종의 문제편 격인 서술 뒤에 "독자에게의 도전장" 이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고요.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연극으로 본다면 더욱 재미있을 것 같아요.

2004/10/15

다빈치 코드 - 댄 브라운 : 별점 3.5점

다빈치 코드 1 - 8점
댄 브라운 지음, 안종설 옮김/문학수첩
다빈치 코드 2 - 8점
댄 브라운 지음, 안종설 옮김/문학수첩

루브르 박물관장 소니에르가 살해된다. 그가 남긴 다이잉 메시지로 인해 소니에르와 만날 약속을 했었던 기호학자 로버트 랭던은 살인 용의를 뒤집어 쓰지만, 프랑스 암호해독 요원이자 소니에르의 손녀인 소피 누뵈의 도움으로 경찰의 포위망에서 빠져나온다.
도주 중 소니에르가 죽기 직전 남긴 메시지를 해독한 둘은 소니에르가 스위스 은행 비밀 금고에 숨겨놓은 암호상자를 찾아내게 되며, 랭던의 친구이자 성배 전문가 티빙 경의 도움을 얻어 경찰과 정체 불명의 알비노의 사나이 등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수수께끼의 진상을 파헤쳐 나가는데...


올 여름을 강타한 베스트셀러입니다. 좀 늦게서야 읽게 되었네요. 읽기 전에는 "장미의 이름"류의 역사 추리물로 생각했었는데 과거의 유물에 대한 실마리를 현대의 주인공이 풀어나간다는 점에서 "디 에이트"와 좀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일단, 전개면에서 흠잡을데 없기는 하나 역사적인 비약도 심하고 각종 설에 대한 근거가 희박하다는 단점은 존재합니다.( 예를 들자면 제가 알기로는 초대 성당 기사단장 뷔용의 고드프리아는 본국에서 상속순위에서 밀려 자기가 지배할 영지가 없자 영지를 만들 목적으로 말도 안돼는 "성전"을 떠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리고 지나칠 정도의 서양과 카톨릭 중심의 세계관을 기본으로 했다는 것도 조금은 거슬리는 점이었습니다.
아울러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의 핵심인 "예수가 사실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하여 후손을 낳았다! 때문에 성배는 마리아 그 자체다!" 라는 어찌보면 해묵은, 그리고 우리와는 상관도 없는 논쟁과 그것을 풀어나가는 줄거리가 그렇게 와 닿지는 않았어요. 예전 마틴 스콜세즈의 "그리스도의 최후의 유혹"에서 이미 한번 본 적 있는 설이기도 하고 말이죠. 마지막에 등장하는 "스승"의 정체도 뻔해서 김이 좀 빠지는 편이에요.

오히려 이 소설에서 가장 재미있었고 주목했던 부분은 다빈치가 남겼다는 여러 성배에 관한 코드를 풀어내는 부분과 극 중에 등장하는 여러 암호 풀이 트릭입니다.
특히 암호 트릭은 정말 대단해요. 초반의 소니에르가 죽어가는 몇십분 (한 20분?) 동안 남긴 다이잉 메시지 (13-3-2-21-1-1-8-5 오, 드라코 같은 악마여(O, Draconian devil!) 오, 불구의 성인이여(Oh, lame saint!)’) 그리고 성배를 찾기 위한 단서가 들어있는 키워드 암호 2개, 마지막으로 성배가 있는 장소를 알리는 암호 1개, 전부 이렇게 4개가 등장하는데 그 수준이 정말 발군이거든요. 4개의 암호가 수열, 애나그램, 글자 치환 변환법같은 암호 해독법은 물론 다빈치와 각종 상징들, 성경, 성배, 성당 기사단 등 거의 모든 역사적 배경을 아우르며 종횡무진하고 있기 때문으로 그 완성도와 재미가 실로 대단합니다.
영어권 독자들에게 보다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트릭이라 그 진정한 재미를 조금은 놓치는 것 같아 아쉽긴 하지만 상당히 이면에 얽힌 내용이 복잡하면서도 맞아떨어지는 점이 절묘해서 보기드물게 참신하고 멋진 암호트릭이라 생각되네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5점. 단점은 있기에 감점했습니다만 재미 하나만큼은 분명한, 고급스러운 읽을거리로서 손색없었던 작품입니다. 딱 한가지 궁금한 점은 교황청이나 카톨릭 계의 반응이 궁금하더군요. 어찌보면 상당히 위험한(?) 발상인지라.... (오푸스데이의 공식 반응은 이미 발표되었다는데 아직 자세히 읽어보지는 못했네요)

PS : 책이 이왕 두권으로 분책해서 비싸게 팔려고 나온 것이라면 앞부분에 소설속에 등장하는 자료들에 대한 도판 정도는 서비스로 실어주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PS2 : 대체 인디애나가 찾은 성배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2023/12/03

하쿠바산장 살인사건 - 히가시노 게이고 / 민경욱 : 별점 2점

하쿠바산장 살인사건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아래 리뷰에는 진범,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대생 나오코는 친구 마코토와 함께 펜션 마더구스를 찾았다. 1년 전 마더구스의 밀실인 방에서 자삻했던 오빠 고이치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서였다. 펜션은 방마다 '마더 구스' 동요가 쓰여진 패널이 걸려져 있었는데, 이 동요들이 암호라는걸 눈치챈 둘은 암호 해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손님 중 한 명인 오오키가 추락사했고, 이는 교묘하게 계획된 살인이라는게 드러났다.
결국 암호를 풀어낸 둘은 오빠 죽음의 진상과 범인을 밝혀내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 "가면 산장 살인사건"의 또다른 번역본이라 생각했었는데, '마더 구스' 동요를 이용한 암호 트릭이 등장한다는 광고글을 보고 착각을 깨우친 뒤 읽게 되었습니다.

추리적으로 볼거리가 많다는게 장점으로 외딴 산장이라는 무대에서부터 시작해서, 밀실 살인, 원격 조종 살인이 등장하고 '마더 구스' 동요를 활용한 암호까지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중 가장 먼저 밝혀지는건 오오키를 살해한 원격 조종 트릭인데 '다리를 대신할 수 있는 판자를 썩은 것으로 바꿔치기해서 추락하게 만들었다'는 간단명료함도 좋았지만, 단순히 장치 트릭에 그치지않고 이를 범인이 특정될 수 있는 중요 단서로 활용하는게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원래 판자와 비슷하면서도, 사람이 올라가면 부서져 떨어질 판자를 고르는건 상당히 전문적인 안목이 필요하므로, 목재에 대한 전문가가 범인이다!는 논리인데 꽤 합리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오빠 고이치가 자살한 것으로 위장했던 밀실 살인 트릭은 '범인은 방에 숨어 있었다'는 단순한 것이지만, 공범을 활용한 변주가 괜찮았습니다. 먼저 구루미가 침실 창문과 문을 잠그고 다카세가 창문도 잠겼다는걸 확인하게 합니다, 그리고 구루미는 창문을 통해 탈출했고요. 에나미는 다카세에게 다시 고이치를 불러오라고 시킵니다. 이 때 문이 잠겼다는걸 다시금 다카세에게 확인시키고 마지막으로 에나미가 열려있던 창문으로 침입하여 창문을 잠근 뒤 방 안에 숨어서 밀실을 만들었던 겁니다. 에나미 혼자 실행도 가능한 트릭이지만,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우면 당연히 눈에 띄였겠지요. 구루미가 산장 펜션 종업원이었던 덕분에, 때맞춰 다카세를 피해자 방으로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도 있었고요. 이 때 구루미와 에나미가 포커가 아닌 백개먼을 했다는 등의 디테일도 좋았습니다. 단서와 정보 제공도 공정한 편이에요.

하지만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습니다. 우선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마더 구스 동요'를 활용한 암호 트릭이 별로였어요. 쉼표를 활용해서 문장을 이어 붙이는 것까지는 나름대로 말이 되지만, '말을 반대로 바꿔야 한다', 즉 '다리가 부서지는게 아니라 세워지는것' 이라는건 제대로 설명되지 못한 탓입니다. 분명 중간까지는 나름 논리적으로 풀리는데, 그 뒤는 완전 국문학적(?)으로 풀어내야 한다는건 억지스러워요. 마더 구스 동요에서 끝냈어야 하는데, 갑자기 휴게실의 마리아 - 알고보니 마녀 - 조각상이 필요했다는 것도 와닿지 않았습니다.
와닿지 않는건 암호 해독의 결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녁 노을이 질 때, 부서진 다리가 그림자 이어지는 곳'이라는 결과를 1년 전에 손에 넣었던 범인들이 왜 1년을 기다렸을까요? 여름이라도 그림자의 변경 추이만 관찰해도 겨울 철 그림자가 어디 위치하는지는 충분히 알아낼 수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구루미는 몰랐다쳐도 에나미는 이과계 연구원이라는 설정인데,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설령 에나미가 측정에 실패해서 겨울철 될 때까지 기다렸다고 치죠. 그래도 1년 중 아는 사람이 가장 많을 때 보물을 파내려고 시도할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정 그 날짜가 필요했다면, 장소만 사진을 찍어두던가 해서 표시하고 나중에 파내면 되었습니다.

오빠 고이치를 자살로 위장하여 살해한건 밀실 트릭만큼은 앞서 설명했듯 괜찮은 부분이 없지 않으나, 밀실을 만들어야 했을 이유는 불분명합니다. '밀실이라서 자살이다!'라기보다는, 원래 노이로제가 있었고 펜션 손님들과 아무런 접점이 없었다는 정황이 자살설의 핵심 근거였습니다. 즉, 밀실은 자살설에 무게를 더해주기는 했지만 절대적인건 아니었어요. 게다가 노이로제에 대해서는 범인을 비롯한 펜션 손님들은 아무도 몰랐었는데, 단지 밀실이라는 상황만으로 자살로 몰고가려 했던건 비현실적입니다. 에나미가 나오코와 마코토에게 '오빠는 살해당했다'며 접근한 행동도 납득이 가도록 설명되지 못하고요. 이는 나오코과 마코토가 에나미를 의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불필요했습니다.

그 외에도 구루미가 최초 보석상 가와사키를 살해한게 모든 사건의 시작이었다던가, 영국 여자가 아들을 죽게 만든 마스터에게 복수와 경고의 의미로 암호를 남겼다던가, 보석상의 혼외자가 다카세였다던가, 보석은 가짜였다던가 하는 등의 에필로그도 별로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손님 중 한 명인 가미조가 보석상 가족의 요청으로 이 사건을 3년이나 추적했던 탐정(?)이라는 설정도 과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명탐정 '가미즈 교스케'와 비슷한 이름을 가지고 있어서 나름 활약을 기대했는데, 하는거라곤 마지막에 구루미의 범행을 밝히는 것 뿐이라는 것도 좀 허무했어요. 일종의 맥거핀에 낚인 셈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초기작답게 여러가지 시도는 돋보이나 단점 또한 많아서 감점합니다. 구태여 찾아 읽어보실 필요는 없겠습니다.

2024/10/27

종이학 살인사건 - 치넨 미키토 / 권하영 : 별점 2점

종이학 살인사건 - 4점
치넨 미키토 지음, 권하영 옮김/북플라자
'아래 리뷰에는 범인 및 진상 등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준세이 의대 부속 병원 조직 검사실 병리의 치하야의 아버지 미노루가 지병으로 사망했다. 병리해부를 유언으로 남겨서 치하야는 동기이자 지도의 시오리의 보조로 해부에 참석했다. 그런데, 아버지 위에는 암호가 새겨져 있었다. 암호는 28년 전 어린 아이들을 노렸던 미제 연쇄살인극 '종이학 살인사건'의 마지막 피해자 진나이 양의 시신이 숨겨진 곳을 의미했다.
둘은 이를 몰래 알리려 한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28년 전 형사였던 아버지의 동료 사쿠라이 형사와 진범을 찾아내려 나섰다. 그와 함께 다시 연쇄 살인극이 일어났고, 현장에는 28년 전과 똑같이 '종이학 살인사건' 범인의 흔적이 남겨져 있었다.

"유리탑의 살인"으로 이름을 날린 치넨 미키토의 장편 소설. "유리탑의 살인"처럼 특수 설정 미스터리라 생각했는데, 전형적인 연쇄 살인마와의 대결을 그리고 있어서 의외였습니다.

그래도 아래와 같이 '위 속에 암호를 새겼다.'는 독특한 설정은 흥미로왔어요. 덕분에 이야기 중반까지 흥미를 잘 잡아줍니다. 
치하야, 시오리가 의사이며 특히 시오리가 병리해부를 맡은 병리의라는 설정도 잘 써먹고 있습니다. 미노루가 생전 유전병인 '구루병'을 앓고 있었다는걸 알아내는 식으로요.

뼈가 약해지는 구루병은 X염색체 변이가 원인으로 100% 딸에게 유전됩니다. 즉, 키도 크며 격투기 동아리 활동을 할 정도로 튼튼해서 구루병을 앓지 않는 치하야는 미노루의 친 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미노루의 친 딸은? 목이 부러진채 발견된, 28년 전의 피해자 진나이 양으로 알려진 시신의 진짜 주인공이었습니다. 구루병 탓에 급작스럽게 딸이 죽어 혼란에 빠졌던 미노루의 아내가 진나이 양을 유괴했고, 범인이었던 야기누마(타치바나) 와카코가 이 사건을 연쇄 살인극이 하나로 위장했던 겁니다. 알리바이를 통해 혐의를 벗기 위해서요. 마침 유괴 사건을 엮어 미노루를 협박하기도 해서 운 좋게 빠져나갈 수 있었지요. 범인을 놓아준 죄책감에 경찰을 그만 둔 미노루는 더 이상의 범행을 막기 위해 와카코를 계속 감시해왔고, 미노루가 죽자마자 와카코는 범행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죠.

하지만 여러모로 전작보다 못합니다. 일단 추리적으로 많이 부족해요. 범인을 추리할 만한 단서는 없다시피 하거든요. '미노루가 경찰을 그만둔 뒤,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무언가를 감시했다' 정도만 의미있는 단서입니다. 그 외의 단서들은 모두 쓸모가 없어요. 핵심 증거와 단서들은 모두 마지막에 범인이 치하야를 납치하며 스스로 정체를 드러낸 후 독자에게 공개됩니다. 시오리가 알아낸 아버지의 유전병이라는 단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독특했던 '위에 암호를 새긴다는 설정'도 이유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작품에서처럼 위궤양으로 암호가 지워질 수도 있는 등 변수도 많아요. 차라리 변호사에게 사쿠라이 형사에게 전해주라고 편지를 남겼으면 될 일입니다. 게다가 암호로 남길 이유도 없었고, 암호의 내용도 불합리합니다. 마지막 사건의 시신 위치를 알린다 한 들, 이는 진상과 연결되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냥 범인 이름을 써 놓지 않았을까요? 범인을 제대로 알리지 못한 탓에 피해자도 두 명이나 생겼는데 말이지요. 암호 해독도 특별한게 없고요.

전개도 어이가 없습니다. 둘이 암호를 곧바로 경찰에게 알리지 않은 이유, 시신 발굴 때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이유, 사쿠라이와 비밀 수사를 하는 이유 모두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경찰 수사도 많이 어설픕니다. 특히 가장 어이가 없었던건, 이전 수사 담당자 이노하라가 타치바나 사장의 자식이 마지막 사건에서만 알리바이가 없었다고 알려주는 장면이었어요. 모든 연쇄 살인이 단독범의 소행일리 없는데, 마지막 알리바이가 없다고 유력한 용의자를 그냥 풀어주는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무려 다섯 명의 아이가 살해된 사건인데, 경찰이 너무 안이한거 아닙니까? 범인이 유괴한 아이를 자기 아이로 키운다는 설정도 많이 접했던것이라 식상합니다. 이에 대한 정보도 많이 전해주고요.

이렇게 위에 새긴 암호, 병리의, 유전병 정도의 소재를 제외하면 연쇄 살인범과 형사의 대결을 그리는 전형적인 헐리우드 범죄 스릴러와 흡사합니다. 범인의 정체도 반전처럼 등장하지만 굉장히 뜬금없다는 점에서는 똑같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설정은 흥미롭지만 그 뒤의 이야기들은 모두 설득력낮고 억지스러우며, 뻔했다는 점에서 위에 암호를 새기는 상황을 떠올리고, 전체적인 얼개없이 재미있겠다 싶어서 이야기를 써 내려간게 아닌가 싶네요. 

2004/02/03

스파이의 역사 1 : 작전편 - 20세기를 배후 조종한 세기의 첩보전들 : 별점 4점

스파이의 역사 1 : 작전편 - 8점 어니스트 볼크먼 지음, 이창신 옮김/이마고
이 책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스파이들과 그 정보전을 다루고 있는 미시사 서적입니다. 워낙 소재가 독특하고 제 취향에 맞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간략하게 목차와 내용을 잠깐 소개해드리자면,
“제1부 기만작전: 사상 최대의 속임수”는 가공의 저항 자유 조직을 만들어 서방세계를 속인 소련과, 쿠바인을 스파이로 고용했던 CIA를 역이용하고 농락하는 쿠바와 같이 다른 한쪽을 완전히 속여 먹는 이야기입니다. 무적으로 느껴지는 CIA의 멍청하고 한심한 일면을 다루고 있어 상당히 통쾌하게(?) 읽었습니다.
“제2부 암호와 감청 전쟁: 보이지 않는 스파이들”은 주로 2차대전을 다루고 있는 편으로 에니그마와 일본 암호 해독 등 서로의 암호를 해독하여 전쟁에서 주도권을 장악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유명한 에니그마 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상당히 디테일하게 이야기를 다루고 있네요. (물론 “암호의 세계”라는 이 분야의 바이블 같은 책이 있습니다만…)
“제3부 반역작전: 내부의 적을 색출하라”는 제목 그대로 조직 내부의 스파이를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원자폭탄 관련 정보를 입수하게 되는 소련과 소련의 최 고위층 비밀 요원 “톱해트”의 이야기가 흥미롭네요. 흡사 영화 같습니다.
“제4부 두더지작전: 미로 속의 첩보 게임”은 역사속에 묻혀진, 그리고 역사의 희생양이 된 몇몇 스파이들이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스웨덴의 “발렌베리” 사건이 인상적입니다. 스웨덴의 명문 출신이자 인도주의자였던 외교관 발렌베리가 어떻게 누명을 쓰고 죽어갔는지에 대한 이야기인데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가슴 아프기도 하고요.
“제5부 실패한 작전: 첩보역사상의 대실수들”은 실패로 끝난 작전들이 나옵니다. 일본과 미국의 진주만을 둘러싼 암투라던가, 동유럽의 공산화 방지를 위해 노력했다가 실패하는 CIA이야기도 있고 태평양의 한 섬을 둘러싼 미-일 간의 첩보 공방전 이야기 등이 실려 있습니다.
“제6부 성공한 작전: 대규모 작전의 눈부신 성과들”은 성공한 유명한 스파이들의 이야기가 있는데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던 미국의 “배신자” 워커일가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잡혔을 때 리더스 다이제스트같은 곳에서 특집으로 낼 만큼 유명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네요. 그 외에도 영국의 엘리트 5인방 스파이 등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7부 무의미한 작전: 첩보역사상 최대의 코미디”는 제목 그대로 무의미 했던 정보전을 다루고 있습니다.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 뿌리기 위해 만든 반체제 우편물과 우표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지금은 그 우표 (반은 해골, 반은 히틀러)가 수집가들 사이에서 굉장히 고가에 거래된다는 이야기까지, 역사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재밌네요.
이렇게 역사적 정보전과 유명 스파이들을 다루고 있는데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어떤 부분은 역사책, 그 중에서도 2차대전 물인 것 같기도 하고, 또 다른 부분은 미스터리물 같다는 점도 흥미로왔고요. 읽고나니 스파이와 정보전의 중요성이 굉장히 크게 느껴지네요. 역사를 움직이는 “흑막”이라는 것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기도 하고 말이죠.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4점. 역사서적으로의 가치와 재미를 모두 갖춘 보기드문 책입니다. 우리나라 정보기관이나 유명한 (영화로도 나왔죠) “뻐꾸기 알” 이야기가 없는게 조금 의아하지만, 2편을 계속 읽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2006/06/26

극한추리 콜로세움 (極限推理コロシアム) - 스포일러 있습니다!

극한추리 콜로세움(極限推理コロシアム)

프리터 코마가타, 경찰 카가, 프로그래머 데부치, 백수 이다, 번역가 타키모토, OL 요시와라, 그리고 시노자키라는 일곱명의 사람들이 어느날 이상한 저택에 갖히게 된다. 이 저택은 "여름저택"이라고 불리우는 공간으로 영문을 모르던 그들앞에 그들을 이 저택에 가둔듯한 인물에게서 수수께끼의 메시지가 전송된다. 그들이 이제 차례로 죽어갈 것이며 그 범인을 밝혀내면 천만엔의 상금과 함께 저택에서 나갈 수 있다는 메시지. 문제는 그들 사이의 범인만이 아니라 또 다른 공간인 "겨울저택"에서의 범인까지 밝혀내야 한다는 것. 그날밤 OL 요시와라가 살해되어 연쇄살인이 시작되고 매일 아침 한번씩 있는 겨울저택과의 통신과 유일한 힌트로 주어진 "동상"이라는 단어를 놓고 코마가타는 범인이 누구인지 밝히기 위해 노력하는데...

일본의 추리소설상 중의 하나인 메피스토상을 수상한 소설이 원작인 TV 미니시리즈입니다.

기본 설정은 영화 "큐브"와 상당히 유사합니다. 전혀 접점이 없는 불특정 다수의 인물들이 특정 공간에 갖힌채로 빠져나가기 위한 노력을 벌인다는 설정이거든요. 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큐브와는 달리 이 특정 공간은 일종의 "게임"을 위한 공간이고 그 게임을 클리어 했을 때는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는 점이겠죠. 이 게임이 바로 추리 게임인 것이고요.

추리적으로 본다면 7명의 사람들밖에 없는 폐쇄된 공간에서의 밀실 트릭과 "힌트"로서 주어진 단어를 해독하기 위한 암호해독 트릭의 두가지 트릭이 메인 트릭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해결을 위한 정보는 시청자에게 비교적 공정하게 전달됩니다.

하지만 밀실 트릭의 경우는 맨 처음 겨울저택과의 통신을 통해 두개의 저택이 동일한 평면도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살인자의 침입 경로를 알아낸 시노자키의 증언을 통해서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두개의 저택이 다른 곳에 위치한 것 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건물에 다른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너무 뻔했어요. 더군다나 신발자국 등을 대조하는 부분은 사족인데다가 과잉 친절이라 보이고요.
암호 트릭은 일단 일본어를 잘 모르면 풀 수 없는 트릭인데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양쪽에 공평한 암호라 생각되지는 않는다는 문제가 도드라집니다. 일단 두 저택의 힌트를 모두 알아야 풀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좋았고 "동상"이라는 힌트에서 양쪽 저택에 있는 것이 "아르마딜로"와 "바다코끼리"라는 것도 재미난 설정이었어요. 그런데 겨울저택의 힌트는 "가장 젊은 사람의 이름"이라는 것이고 이것이 "키바"라는 젊은이라는 것인데, 이 두가지 정보만으로 범인을 특정한다는건 억지스러웠습니다. "키바", 즉 "어금니"의 갯수로 범인의 수를 표현하는 것이라면 "여름저택"의 동상은 아르마딜로가 아니라 어금니가 없는 그 어떤 동물이어도 상관없다는 이야기인데, 이렇게 한쪽에만 일방적으로 해당되는 암호가 과연 신빙성을 가질 수는 없을 것 같고요. 아르마딜로라는 특이한 동물의 동상이라는 것에 집중하게 해서 본질적인 의미를 흐리게 하려는 작가의 생각은 충분히 알겠지만, 이런 점에서 썩 잘 된 트릭으로 보이지는 않네요.

흔치않은 정통파 추리물로 기대하고 보기 시작했지만 생각보다는 빈약하고 얄팍한 부분이 많아서 실망스러웠습니다. 게다가 원래 설정이나 이야기전개가 너무 말도 안돼서 황당한데 결말 부분, 즉 살아남은 모두의 기억을 지운다는 등 하는 이야기는 그 정도가 너무 지나쳐서 실망스러웠고요.
나름대로 긴장감과 지적 흥분을 가져다 주는 부분은 있고 "겨울저택"과의 정보 공유가 오갈때의 두뇌싸움 등 볼만한 요소는 제법 있기 때문에 킬링타임용으로 잠깐 즐기는 수준이 딱 맞다고 생각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24/01/10

인페르노 (2016) - 론 하워드 : 별점 1.5점

"암호를 풀지 못하면 지옥의 문이 열린다!"
전세계 인구를 절반으로 줄일 것을 주장한 천재 생물학자 ‘조브리스트’의 갑작스러운 자살 이후 하버드대 기호학자 ‘로버트 랭던’은 기억을 잃은 채 피렌체의 한 병원에서 눈을 뜬다. 담당 의사 ‘시에나 브룩스’의 도움으로 병원을 탈출한 랭던은 사고 전 자신의 옷에서 의문의 실린더를 발견하고, 단테의 신곡 [지옥편]을 묘사한 보티첼리의 ‘지옥의 지도’가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원본과 달리 지옥의 지도에는 조작된 암호들이 새겨져 있고, 랭던은 이 모든 것이 전 인류를 위협할 거대한 계획과 얽혀져 있다는 것을 직감하게 되는데…

거대한 음모를 밝혀낼 유일한 단서
단테의 지옥은 소설이 아니라 예언이다!


연초에 볼거 없나 싶어 넷플릭스에 들어갔다가 충동적으로 보게 된 작품.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에 이은 로버트 랭던 시리즈 제 3탄으로 "천사와 악마"는 원작만 읽고 영화는 보지 않았는데, 이 작품은 원작을 읽지 않고 영화를 보게 되었네요.

로버트 랭던 교수가 기억을 잃은 채 여러 조직에게 쫓기면서 암호를 풀어나가는 중반부까지는 흥미로왔는데, 시에나가 조브리스트의 연인임을 밝힌 이후부터는 아쉬움 투성이입니다. 이야기의 개연성도 많이 부족했고요.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던건 왜 랭던 박사를 기억 상실처럼 속여서 암호를 해독하게 만들었냐는 것입니다. 바이러스를 없애려고 하는 WHO는 바이러스에 대해 아무런 단서가 없었어요. 조브리스트는 자살했으니 시에나가 랭던 박사를 속여서 암호를 풀게 하지 않았다면, 바이러스의 위치는 끝까지 드러나지 않았을겁니다. 바이러스 확산을 앞당기기 위해서 위치를 알아내야 했다고 설명되는데, 앞당겨야하는 합당한 이유는 정작 설명되지도 않고요.
조브리스트가 바이러스의 위치를 구태여 암호로 남긴 이유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작전을 성공시키려면, 위치도 영원히 숨겨놓는게 당연하잖아요? 단테의 신곡 속 지옥을 활용한 암호로 남긴 이유도 알 수 없으며, 해석도 억지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마지막에 바이러스를 둘러싼 짤막한 액션도 별로였습니다. 톰 행크스가 소화하기에는 어색했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많이 들어보인 탓이지요. 흐름상 바이러스가 유출되지 않을거라는 확신도 들어서 긴장감도 전혀 느낄 수 없었고요.

이탈리아 피렌체를 중심으로 유명 건물들과 작품들을 활용한 배경은 멋있었지만, 그 외에는 건질게 없네요. 단점만 가득한 작품으로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2025/03/01

명탐정 코난 : 100만 달러의 펜타그램 (2024) - 나가오카 치카 : 별점 2.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홋카이도의 하코다테에서, 괴도 키드가 히지카타 토시조에 썼다는 일본도를 훔치려 했다. 이 칼들을 모으면, 오노에 재벌 선대가 남긴 보물이 숨겨진 장소를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핫토리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키드는 칼을 훔쳐갔지만, 암호를 풀 수 없어서 코난 일행에게 돌려주었다.

이 때 오노에 가문 변호사가 살해되었고, 경찰은 모리 탐정, 핫토리와 함께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될 보물 찾기에 집중했다. 하지만 보물을 노리는 무기 상인 카도쿠라가 오노에 선대로부터 칼을 맡았던 전직 사범 후쿠시로를 납치했고, 괴도 키드를 쫓던 나카모리 경부도 카도쿠라에게 저격받아 중상을 입고 마는데...

"흑철의 어영"에 이은 명탐정 코난 극장판 시리즈의 27번째 작품입니다. 일본의 유명 관광지 하코다테를 배경으로 전설적인 보물과 연쇄 사건이 얽힌 미스터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선, 추리적으로는 꽤 흥미롭습니다. 숨겨진 보물을 찾기 위한 암호가 등장하는데, 전통 일본도의 구조와 히지카타 토시조가 남긴 시집, 하코다테의 오릉곽 등 실존하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허구가 아니라는 점에서 몰입감을 높이며, 사라진 성릉도 대신에 히지카타 토시조가 칼싸움 중 남겼다는 자국의 본을 떠서 코등이를 만드는 이야기는 팩션같은 재미도 줍니다. 덕분에 2차 대전 당시 숨겨진 무기라는 다소 비현실적인 설정도 그럴듯하게 포장됩니다.

주 무대인 오릉곽은 물론, 여러 하코다테의 실제 명소들이 등장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코다테 뿐 아니라 모미지가 좌충우돌하면서 다른 홋카이도의 명소를 보여주기까지 하고요. 덕분에 단순한 미스터리가 아니라 '여정 미스터리' 같은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엔딩에서는 실제 사진이 보여지는데, 꼭 한 번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극장판 코난 특유의 비현실적인 액션도 여전했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상대적으로 납득할 만한 수준이었습니다. 케이블카 선로를 따라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달리거나, 비행기 날개 위에서 검술 대결을 펼치는건 고속 열차가 탈선하거나, 거대한 건물이 무너지고 침몰하는 것에 비교하면 소소한 편이지요. 실제 명소들이 무대인 덕분이기도 할 텐데, 앞으로도 이러한 방향성이 유지된다면 좋겠습니다.

시리즈 팬으로는 핫토리 헤이지가 핵심 멤버로 활약한다는게 좋았습니다. 제 최애 캐릭터 중 한 명이거든요. 핫토리가 카즈하에게 고백하려고 전전긍긍하는 모습, 모미지의 훼방으로 고백에 실패하는 장면 등은 충분히 즐길만 했고요. 신이치와 괴도 키드가 닮은 이유(알고보니 사촌간!)가 밝혀지는 쿠키 영상도 호불호가 갈린다는데, 저는 재미있었습니다. 이렇게까지 괴도 키드 세계관과 엮을 필요는 없어 보이긴 했지만요.

그러나 단점도 없지 않습니다. 일단, 이야기가 너무 허술합니다. 초반에는 칼을 훔치려는 키드와 핫토리, 코난과의 대결이 펼쳐지고, 그 뒤에는 보물을 찾으려는 암호 해독이 진행됩니다. 이 이야기만 중심으로 전개해도 차고 넘쳤을 텐데, 경찰이 개입하게 하기 위해 변호사 살인 사건을 삽입한건 무리수였습니다. 애초에 범인이 저지를 이유가 없었던 사건이기도 했고요. 키드 역시 칼을 훔치려다가 돌려준 이후에는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이유가 없어서, 계속 등장하는건 억지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건의 동기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2차 대전 당시에는 전황을 바꿀 수 있을 만큼 강력했던 무기라 하더라도, 21세기에 경제적 가치를 가질리 없습니다. 이 당연한 이치를 무시하고, 악당들이 경찰에게 총질을 하고 일본 대도시에서 폭탄 테러를 하면서까지 이를 찾아다니는 전개는 현실성이 떨어집니다. 다른 이야기도 이 때문에 여러모로 이상하고요. 차라리 금괴가 보물이라는 설정을 밀어붙이는 것이 더 나았을 것입니다. 

추리적으로도 암호 풀이의 과정은 좋지만, 보물이 숨겨진 장소를 밝혀내는 마지막 장면은 많이 허술했습니다. 트릭은 성릉도의 코등이(?)의 모양이 오릉곽과 동일하다는 점을 이용한 것입니다. 먼저 기구를 띄운 뒤 칼을 바라보면서 오릉곽과 코등이의 형태가 일치하는 고도를 찾아냅니다. 기구 고도에 위치하는 장소는 하코다테 산 밖에 없으니, 하코다테 산의 이 고도 위치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건데, 실존하는 장소에 기반한 트릭이라는건 장점이지만 몇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선, 기구를 띄우는 위치를 정확하게 모르면 고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칼을 세우는 위치에 따라서도 오차가 생길 가능성이 크고요. 기구에서 산을 가리키는 정확한 방향을 모르면, 이 역시 오차가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이래서야 '하코다테 산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라는 말과 별다를게 없어서, 이렇게까지 고생해서 암호를 풀 필요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는데, 이 정도면 그래도 평작은 된다 싶네요. 킬링 타임용으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2023/07/29

D의 살인사건, 실로 무서운 것은 - 우타노 쇼고 / 이연승 : 별점 2점

D의 살인사건, 실로 무서운 것은 - 4점
우타노 쇼고 지음, 이연승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우타노 쇼고에도가와 란포의 단편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결과물. 이런 류의 기획물은 그리 마음에 들었던 적이 없었는데, 역시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에도가와 란포의 원작을 이야기와 별 관계없이 무리하게 집어넣는 등 억지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에도가와 란포와 상관없는 독립된 작품으로 발표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의자? 인간!>>
인기작가 스즈카는 창작 동반자였던 아키히로를 차버리고 부유한 간부급 공무원 하라구치와 결혼했다. 아키히로에게서 사람을 써서 접근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아냈다.
그리고 5년 뒤, 아키히로가 문자를 보내왔다. 지난 5년간 그가 어떻게 복수를 계획하여 실행해 왔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는 스즈카의 소파 속에 들어가 있다고 말했고, 스즈카가 문자를 보내자 정말로 소파 안에서 진동이 울려왔다.....


<<인간 의자>>에서 따 온 이야기. 의자 안에 남자가 들어간다는 설정을 따왔고, 비현실적인 인간 의자 제작과 안에 들어가는 과정, 방법에 대한 디테일은 유사하지만 내용은 전혀 다릅니다. 원작에서 인간 의자가 변태의 집요함을 그리기 위한 수단이었다면, 여기서는 복수를 위한 장치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스즈카가 궁지에 몰리는 심리 묘사도 범인의 서간문으로만 이루어진 원작과의 차이점인데, 나쁘지 않았습니다. 결말로 이르는 빌드업 측면에서도 설득력이 충분했고요.

다만 진상, 그리고 결말은 별로였습니다. 아키히로는 의자에 여벌 휴대폰을 넣어놓고 전화를 걸면 진동이 오게 했을 뿐으로 실제로 안에 들어가 있던건 스즈카의 남편 하라구치였다, 그래서 아키히로가 의자 안에 있다고 굳게 믿은 가즈키가 의자를 난도질해서 하라구치는 죽고 말았다는건데 억지스럽고 뻔했기 때문입니다. 아키히로가 "나를 죽이세요"라는 메시지를 이렇게나 장황하게 보낼 이유가 없으니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
스마트 폰 속 여자와 여행하는 남자가 등장하는 괴담물 (?). 현대 문명의 이기로 외부와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스마트폰'을 일종의 다른 세계(사후 세계?)와의 연결고리로 활용하고 있는건 좋은 아이디어였습니다. 자신이 너무 사랑해서 죽여버린 아이돌 그룹 멤버의 인공지능을 만들고, 인공지능을 학습시킨다는 설정도 꽤 참신했습니다.

하지만 설정을 빼면 <<어느날 갑자기>> 등에 나오는 이야기와 다를게 없는 단순한 괴담에 불과합니다. 기승전결도 애매하고, 이야기에서 합리적인 설명도 이루어지지 않는 탓입니다. 남자마저도 사후 세계에 속한 인물이라는 결말도 어정쩡했고요. 보다 독특한 반전 정도는 나와주는게 좋았을거에요. 환상 소설에 가까운 원작에 현대적인 설정을 덧붙였을 뿐, 새로움을 느끼기는 힘들었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D의 살인 사건>>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이지만 주로 흥신소 의뢰로 먹고 사는)인 '나'는 도쿄 뒷골목 거리에서 살인 사건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다. 거리에서 친해진 초등학생 세이야와 함께였다. 피해자 노조미는 SM 플레이를 즐기다가 살해당한 것으로 보였는데, 밀실에 가까왔고 접근 가능했던 인물들도 제한적이어서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하지만 '나'는 세이야가 범인일 것이라 추리했다. 목격자 두명의 증언 - 범인이 입은 옷을 각각 주황색과 검은색이라고 다르게 말한 - 이 근거였다. 사건 당시 세이야가 입고있었던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티셔츠는 주황색과 검은색 양쪽 모두에 해당했기 때문이었다....


원작에서 다소 변태적인 성행위 도중 살해당한 피해자, 밀실에 가까운 현장, 범인의 옷을 서로 다르게 말하는 목격자라는 소재를 따 와서 현대적으로 재 구성한 작품.
'나'의 추리는 좋았습니다. 옆 건물과 좁게 붙어있던 창문으로 초등학생은 충분히 침입할 수 있다는 주장은 합리적이었고, 목격자의 증언이 달랐던 이유라며 제시하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티셔츠도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만으로 세이야를 범인이라고 지목하는건 솔직히 무리였습니다. 동기가 설명되지 못하니까요. '나'가 제시한, 성범죄를 저지르려다가 살인까지 저질렀다는건 너무 억지스러웠습니다.
진상은 더 억지에요. HR 기기 등 가상 현실을 활용하여 변태적인 성행위를 즐기다가 사망했다는건데, 가상으로 채찍질 같은 자극을 주는 기기가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 있다손 쳐도 사람이 죽을 정도의 충격을 줄 수는 없습니다. 안전 기준이라는게 있을테니까요. '비가시 광선' 때문에 옷이 두 가지 색깔로 보였다는 것도 요미우리 자이언츠 티셔츠만큼이나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 않았고요.
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이 들어오기 전에 장비를 해체하고 숨겼다는 마사코의 행동도 말이 안됩니다. 그래봤자 SM플레이를 즐긴 흔적을 숨길 수는 없었거든요. 변태적인 성행위를 즐기다 '실수로' 죽었다는 것 보다는, 차라리 '살해당했다'는게 낫다고 여겼을 수는 있겠지만.... 짧은 시간 동안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실행에 옮겼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고, 단순 변사가 살인 사건으로 확대되어 버린다는 문제가 생깁니다. 혹시라도 무고한 사람이 누명을 쓰게되면 어쩔 셈이었을까요?
게다가 세이야가 '나'에게 배신감을 느낀 나머지 '나'에게 아동 성 추행범이라는 누명을 씌운다는 마지막 결말은 최악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배신감을 느꼈다는걸 제대로 묘사하지 못한 탓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 뒤의 설득력없는 추리와 결말을 덧붙이지 말고, '나'의 추리로 이야기를 끝내는게 바람직했습니다. 동기만 좀 합리적으로 만들어서요. 이 인물 구도에서 합리적인 동기를 만드는건 불가능해보입니다만.

<<오세이 등장을 읽은 남자>>
스무살 가까이 차이나는 어린 여성과 결혼 후 실직해 기둥서방처럼 얹혀사는 타로는 그 탓에 치매에 걸린 장인어른 고스케를 떠맡아 돌보게 되었다. 그게 끔찍하게 싫었던 타로는 란포의 소설 오세이 등장을 읽은 뒤, 고스케를 사고로 가장하여 살해할 음모를 꾸몄다. 소설처럼 고스케를 의류함에 넣고 질식사시킬 속셈이었다. 치매 탓에 유아 퇴행 현상을 일으키던 고스케가 했음직한 행동으로 의심을 살 이유는 없었다.
아내의 파리 출장에 맞춰 범행을 결의한 타로는 사전 조사차 직접 의류함 안에 들어갔다가 갇히고 말았다. 고스케가 별 생각없이 다른 물건들을 함 위에 올려놓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타로는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어서 아내와 통화할 수 있었다. 아내는 직접 구조를 요청하겠으니 기다리라고 말했다....


타로가 나이가 많은 탓에 평소에 스마트폰에 대해 무지했고, 잘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는 설정이 핵심입니다. 아내 유코가 원래 자기 것이었던 타로의 폰을 원격잠금하고, 회선도 정지시켜 통화를 못 하게 막아서 죽게 만든다는 트릭이 사용되었거든요.
이렇게 원작에 굉장히 충실한데다가, 나름의 트릭까지 사용된 점 만큼은 좋았습니다.

문제는 유코가 타로에게 품었던 살의가 제대로 묘사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유코가 진작부터 불륜을 저질러 왔다는 설명은 있는데, 이를 살의로 이어지게 만드는 설명은 좀 부족했어요.
치매 노인 탓에 의류함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늙은 치매 노인이 의류함 뚜껑 위에 무언가 덮어놓았다고 뚜껑을 열지 못한다? 저는 잘 와 닿지 않더라고요. 뭔가 다른 이유 - 자물쇠를 잠갔다던가 - 가 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말이지요. 치매 노인이 평소에 무언가를 잠그는 (?) 행동을 많이 했다는 식의 설명이 덧붙여졌다면 더욱 좋았을테고요. 여러모로 설명이 부족해서 잘 짜여진 이야기라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도 원작과도 유사하고, 현대적인 설정과 트릭을 효과적으로 사용한건 분명합니다. 수록작 중 베스트입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나저나, 치매 노인 관련된 복수극은 오가와라 히로시의 <<냉혹한 간병인>>이 아직까지는 최고네요.

<<붉은 방은 얼마나 바뀌었는가?>>
붉은 방에 모여 일탈을 즐기는 일곱 명의 남자들.
에도가와 란포의 붉은 방을 원작으로 한 연극이 상영되는 극장에서 실제로 사건이 일어났다. '죄를 물을 수 없는 살인'을 저질러온 T역의 배우가 공포탄이 아닌 실탄에 맞은 사건이었다. 관객 중에 경찰이 있어서 곧바로 수사가 시작되었고, 관객들은 모두 중요 참고인이 되었는데....


사건도 연극의 일부로 마지막 공연에서 선보인 특별 부록이었다는 이야기. 비교적 쉽게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경찰관 투입과 수사가 지나칠 정도로 빨랐고, 이후의 과정이 모두 작위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스포일러를 막을 수 없는 지금 상황에서 스포일러를 이용하여 관객들에게 더 충격을 주려고 했다는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흥분했던 관객이 무대로 난입하여 살인을 저지르는 결말은 영 아니었습니다. 역시나 연극으로 여긴 관객의 반응 등 볼만한 점이 없는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없는게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더 깔끔했을거에요. 이 결말 탓에 감점하여 별점은 2점입니다.

<<음울한 짐승의 환희>>
나는 어린 시절부터 여자의 육체만 생각하는 변태였지만, 스스로를 철저하게 통제하여 교육자로 잘 살아오고 있었다. 어느날 산책 중 이상형인 여자 유키를 알게되어, 그녀가 운영하는 북유럽풍 잡화점 락카우스의 단골이 되었다.
그리고 두달 쯤 뒤, 내가 란포에 대해 잘 알고있다는걸 알게 된 유키가 도움을 청해왔다. 오에 슌데이라는 발신자가 트위터 DM으로 그녀에게 버림받았었는데, 그녀를 다시 발견하여 복수한다는 글과 에도가와 란포의 귀한 초판본, 그리고 그녀를 스토킹하는 글을 연달아 보내왔기 때문이었다.
짐작가는 사람이 없냐는 질문에 유키는 20년 전 사귀었던 여자 후배 가야코 이야기를 꺼냈다....


'그'라는 3인칭에서 '나'로, 다시 '그' 전환되는 시점이 급작스럽고 미묘한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작가 의도인지, 번역 오류인지 헛갈리네요.
여튼 변태인 '그'가 카메라를 설치해 유키를 협박하는 한편, 착한 단골로 위장하여 조력자 위치에 올라가지만 유키에게 정체가 드러나버리는 일련의 과정은 꽤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나 유키의 펜던트가 카메라였고, 그 때문에 '그'의 범행이 발각되는 결말은 억지스러웠습니다. 카메라를 몸에 달고다닐 이유가 딱히 설명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키가 알고보니 트랜스젠더라서 살해했다는 일종의 반전도 신선하다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영화 <<크라잉 게임>>이 발표되었을 때 정도의 시기였다면 모르지만요. 지금은 그렇게 대단한 트릭이라고 보기는 힘들지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비인간적인 사랑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나는 마니와 가즈키를 유혹하다가 가즈키는 '시짱'이라는 피규어를 사랑한다는걸 알게 되었다. 분노가 폭발한 나는 가즈키를 속여 집에 침입한 뒤 시짱을 부숴버렸다. 그리고 가즈키가 자살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시신의 옷 주머니에 부서진 인형 머리가 들어 있었다고 했다.....
라는 증강현실 게임 엔딩을 접한 나는 다시 가즈키를 골라 게임을 시도했다. 그런 나를 방해한건 남편 가즈키였다. 게임에 빠진 나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가즈키와 다툼을 벌이다가 그를 살해하고 말았다.
출소 후 70세 노인과 혼인 관계를 맺고 조용히 살게 된 나는우연찮게 노인 스나무라 다케오에게 교도소 주문에 대해 털어놓았다. 노인은 혼자서 주문에 대해 조사한 뒤,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다. 주문에 등장하는 단어는 모두 1990년에 방영된 TV 프로그램이었고, 주문은 방송 채널 번호를 이용하는 암호문이었다. 암호문은 특정 지역을 의미했고, 노인은 그 곳에 무언가를 숨겼으며 그건 1990년에 일어났던 흉악한 강도사건의 절도품이라고 추리했다.
하지만 방문한 장소는 이미 신축 빌라가 들어서 있었다....


기괴한 사이버 애정극에서 시작해서 암호 해독으로 이어지고, 마지막은 짤막한 쇼트쇼트 블랙 코미디로 이어지는 독특한 작품. 수록작 중 유일하게 원작을 접하지 않은 작품입니다.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암호 해독은 재미있었습니다! 교도소에서 구전되는 '행운을 불러오는 주문'이 90년대 당시 TV 프로그램의 명칭이었다는 아이디어도 좋고, 이걸 어떻게 글자로 치환하는지?에 대한 연구와 노력이 잘 그려지고 있거든요. 노인은 시간이 남아돌기 때문에 끈기있게 도전하여 풀어낼 수 있었다는 설정도 좋고요. 암호문을 풀어낸 뒤, 암호문이 가리키는 장소에 무엇이 있을지?에 대한 추리역시 합리적이었습니다. 당시 신문 기사를 조사해서 밝혀내는데 아주 그럴싸하게 설명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야기가 따로 논다는 겁니다. 특히 화자인 유리나가 겪은 게임 속 사건이 그러합니다. 재미는 있는데, 암호 해독 이야기와 별로 관계는 없어요. 유리나가 감옥에 간 이유인 남편 살해 동기에 불과하거든요. 이렇게까지 펼칠 필요가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란포의 원작을 너무 의식한 것 같아요. '비인간적인 사랑'을 이렇게 무리하게 삽입할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지요. 차라리 두 개로 분리하는게 좋았을 겁니다. 그만큼 두 이야기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보물이라 생각했던 증권이 버블 지나면서 파산한 회사라 휴지 조각에 불과했다는 결말도 뜬금없었을 뿐더러, 어디서 많이 보아왔던 결말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다른 설정은 다 없애고, 나이 많은 노인과 함께 사는 손녀딸이 교도소 자원 봉사를 갔다가 주문을 들었다는 정도로 풀어나가는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이상한 설정과 앞과 뒤의 곁가지 이야기는 불필요했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마지막으로, 남편을 살해해서 복역 후 출소한 유리나가 오갈데 없어서 나이 많은 노인과 결혼했다는 설정은 의아했습니다. 아무리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이라도, 남편 살인범과 함께 살고 싶을까요? 젊은 여자가 필요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일본에서는 흔히 있는 상황인지 궁금해집니다.

2022/03/04

시크릿 스파이 - 헤더 베센트 외 / 박지영 : 별점 2점

시크릿 스파이 - 4점
헤더 베센트 외 지음, 박지영 옮김/시그마북스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첩보 활동의 역사를 정리해서 알려주는 책으로, 시대 순으로 유명 스파이와 첩보 활동, 주요 활약상 및 스파이들이 사용했던 장치, 암호 등을 소개해 줍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250여 페이지의 분량을 풀 컬러로 가득 채운, 화려한 도판입니다. 모든 주제를 한 장 안에 도판과 함께 담고 있어서 읽기 쉽다는 점도 장점이고요. 흥미로운 주제를 짤막하게 요약하여, 다양한 도판과 함께 담았다는 점에서 '카드 뉴스'를 연상케 합니다.

역사 속 유명 스파이, 첩보 활동 중 몰랐던 내용도 많았습니다. 남북전쟁 때, 노예해방론자들과 흑인 노예들은 남부 연합 안에서 정보원 활동을 했었고, 반대로 노예제를 지지했던 사교계 인사 로즈 오닐 그린하우는 북부에서 정보를 수집해 전달했다는 이야기처럼요.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소재네요. 영국이 인도 지형을 조사할 때 고용했던 현지인들 중 가장 유명했던 '1번' 나인 싱 라와트도 보다 상세하게 조사해 보고 싶어졌고요. 

1차 대전 시기부터는 친숙한, 고전적인 스파이 활동 이야기가 많아지기 시작합니다. 소설이나 영화 등으로 익히 알고 있는, 약간 낭만적이기까지도 한 그런 이야기들 말이지요. 외다리였던 몸을 이용하여 측량 기계를 의족을 숨긴 채 독일의 알프스 지역 요양원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캐고 다녔던 미국인 하워드 버넘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건강 악화로 죽을 때 유언마저도 '독일군은 알프스 산맥에 전선을 구축할 계획이 없다' 였다니, 죽음마저도 고전전이네요. 프랑스에서는 평범한 주부였던 루이즈드 베티니가 첩보망을 조직, 운영하였고, 벨기에에서는 '하얀 여인' 첩보방을 전화 기술자 발테르 드베가 운영했다는 등의 일반인 영웅들 이야기도 인상적입니다. 반면 미국에서는 부유한 사회 지도층 아마츄어들 - 백만장자 빈센트 에스터, 루스벨트 주니어 - 이 뭉쳐서 '더 룸' 이라는 명칭으로 첩보 활동을 했다니 확실히 미국적이다 싶군요. 당시 미국인이 머나먼 유럽 등을 정탐하기 위해서는 큰 돈이 필요했을테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또 러시아에서 활약했다는 영국의 에이스 스파이 시드니 라일리는 사실 별 활약 없이 1925년, 볼셰비키 타도를 목적으로 러시아에 재입국하다가 체포되어 총살되었다는 등의 팩트 체크도 볼거리였고, 치머만 전보의 암호 해독처럼 실제로 전쟁에 큰 역할을 했던 놀라운 성과들도 눈에 뜨였습니다.

2차 대전 때부터는 막강해진 국가별 정보 기관들과 고위층 스파이 '두더지' 들, 상대편 스파이들을 속여서 체포하고, 내부 스파이들을 솎아낸 뒤 처형하거나 변절자로 만드는 (더블 크로스 시스템) 등 현대적인 스파이 작전 이야기가 많아집니다. 이 중에서는 독일 해외방첩청 아프베어의 수장이었던 빌헬름 카나리스 이야기가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반나치 정책을 나름대로 펼친 끝에, 종전 직전 사형당했다는데 과연 살아있는채로 종전을 맞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조금 궁금합니다. 아무리 반나치 주의자였다 한들, 방첩조직의 우두머리였다면 처벌을 피할 수는 없었겠지요? 

그런데 미드웨이에서의 일본군 패배와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전사는 모두 정보가 미리 유출되었기 때문이며, 영국이 에니그마를 해독한게 승리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내용은 좀 과장된 것 같습니다. 연합군의 승리는 필연적인 것이었으니까요. 물론 독일 침공을 사전에 첩보원들이 파악하여 제보했지만, 이를 무시했던 스탈린의 사례를 볼 때, 첩보 활동 자체가 중요하다는건 의심의 여지가 없기는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스탈린이 이렇게 그를 위해 일했던 첩보원들을 전쟁 후 모두 강제 수용소로 보냈다는 후일담이 더 인상적이기는 했습니다만.... 

독일 최고의 스파이로 중립국 터키의 영국 대사 휴 내치불휴게슨의 부하였던 바즈나의 활약도 그냥 지나치기 힘듭니다. 그는 노르망디 상륙 작전 코드네임이 오버로드라는 등의 고급 정보를 넘기는 활약을 했지만, 독일은 그 정보의 진가를 몰라봤다지요. 심지어 그에게 준 30만 파운드의 거액도 작센하우젠 수용소에서 찍어내었던 위조지폐였다고 하고요. 기승전결이 완벽한, 한 편의 영화같은 일화였습니다.

냉전부터는 음모와 배신이 판치는 존 스마일리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로젠버그 부부 이야기 등 익히 잘 알려진 사건들이 많이 소개되는데, 이 중에서는 M16의 수장으로 KGB 스파이였던 킴 필비와 그의 동료들이었던 이른바 케임브리지 5인조와 이스라엘이 시리아 고위층에 침투시켰던 스파이 엘리 코헨의 흥망성쇠가 흥미로왔습니다. IBM과 히타치의 분쟁 등 산업 스파이 이야기도 빼 놓을 수 없는데, F1 레이스에도 산업 스파이가 개입했었다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자동차 디자인과 설계가 성공의 필수적인 요소이니까요. 페라리의 정비사 나이절 스테프니가 멕라렌에게 정보를 넘겼던 사건인데, 스테프니의 불행한 죽음으로 마무리되어버려 조금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사이언톨로지교가 자기들의 면세 지위를 회복하기 위해 '백설 공주 작전'이라는걸 벌였다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국세청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연방 검사 사무실까지 뒤졌다니 종교의 힘이 정말 대단합니다. 우리나라도 힘 있는 사이비 종교들이 최근 많아진 듯 한데, 항상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첩보 활동 외. 첩보 기술에 대한 설명들도 볼만했습니다. 동독의 '로미오 스파이' 작전처럼요. 25~35살 사이의 교육을 잘 받은, 잘 생기고 매너 좋은 남자들을 이용하여 서독 여성들을 포섭했다지요. 러시아의 여성 해외 정보 요원 '스패로'는 이와 반대로 남성을 유혹하기 위해 훈련받았다는데, "레드 스패로"라는 영화가 나올 정도로 흥미로운 소재인건 분명해 보입니다. 두 작전 중 어느 쪽이 더 효과가 좋았을지 조금 궁금하기는 합니다. 

카메라, 통신 장비, 암살 장비 등의 소개는 비밀 무기류에 사족을 못 쓰는 제 동심을 자극해 주었습니다. 독침 우산과 청산가리 가스총이 언급되는데, 이 둘을 합친 장비가 "마스터 키튼"에도 등장했었지요. 고양이 몸 속에 배터리, 안테나, 마이크를 장착하여 도청하려는 '어쿠스틱 키티' 계획도 황당하지만 멋졌고요. "쉬리"가 얼마나 좋은 아이디어였는지 새삼 감탄하게 만드네요. 1984년 미국 모스크바 대사관, 레닌그라드 영사관의 타자기에 설치되었다는 키 자동 기록기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결합한 기묘한 레트로함이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타자기 내부에 설치되어 활자 뭉치가 회전하며 일으키는 자기장 교란을 측정하여 입력되었을 법한 글자를 추측한 뒤, 전파를 터트려 도청자에게 수집한 정보를 보내는 장치였다는데, 당시 기술을 생각해보면 엄청난 하이테크 기기였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재미있고 새로왔던 이야기도 많지만, 아쉬운 점도 많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모든 주제를 한 장으로 요약한 탓에 깊이가 없으며, 스파이와 관련이 없는 이야기도 많다는 점입니다. 특히 고대 시대 이야기는 너무할 정도로 허술했습니다. 한니발의 패배가 스파이 덕분인 것 처럼 써 놓았을 정도로요. 실제 내용을 보면 스파이가 아니라, 단순히 사전 염탐을 한 것에 불과한데 말이지요.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의 패배 역시 정찰이 부족한 탓이었을 수 있겠지만, 이 역시 스파이 활동과는 별 관계가 없습니다. 이슬람교의 패권이 무함마드가 스파이 활동에 통달한 덕분이었다는 언급도 어처구니 없었고요. 

이런 류의 과장은 뒤에도 계속됩니다. 나폴레옹이 아우스테를리츠에서 러시아, 오스트리아 연합군을 격파할 수 있었던게 스파이 카를 슐마이스터가 거짓 정보를 뿌려 오스트리아 군이 속았기 때문이라는건 억지스러웠습니다. 남북 전쟁 당시, 영국에 사무소를 두고 남부 목화 판매 댓가로 전쟁 물자를 구입했던 제임스 불럭을 스파이라고 부르는 것도 억지였고요. 이건 단순한 통상 업무에 지나지 않잖아요? 암살과 테러범들 이야기를 스파이라고 소개하는 것도 별로 와 닿지는 않았어요. 심지어 고급 창부였던 '크리스틴 킬러' 마저도 한 챕터를 차지한다는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또 암호에 대한 소개가 적지 않은데, 9세기 학자 야쿱 이븐 이스하크 알 킨디가 암호학을 발전시켰고, 그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어떤 글자가 다른 글자보다 많이 사용된다는 원리인 빈도의 원리를 발전시킨 것이라는 등 볼거리가 없지는 않습니다. 관련된 도판도 충실했고요. 그러나 이런 류의 책은 이미 "암호의 과학" 등에서 많이 보아와서 별로 새롭지 않았고, 책의 정체성과는 거리가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재미가 없지는 않으나, 가격에 비하면 별로 깊이가 없어서 감점합니다. 이 책 보다는 특정 스파이 활동과 작전, 혹은 암호 등에 촛점을 맞춘 다른 전문 서적을 읽어보는게 훨씬 낫겠습니다.

2005/08/14

핑거포스트 1663 - 이언 피어스 / 김석희 : 별점 3.5점

핑거포스트, 1663 - 보급판 세트 - 8점
이언 피어스 지음, 김석희 옮김/서해문집

1663년, 크롬웰의 철권 통치가 무너지고 왕당파가 다시 세력을 잡아 찰스 2세가 왕위에 오른 직후, 옥스퍼드에 다 콜라라는 부유한 상인의 아들이자 의학 교육을 받은 이탈리아인이 방문했다. 그는 당대의 저명한 학자인 보일을 비롯하여, 의사 로어, 사학자 우드 등 여러 분야 학계의 사람들과 친분을 쌓으며 사교 활동을 활발히 벌이는데, 그러던 와중 대학의 교수인 그로브 박사가 독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결국 여러 증거를 통해 스스로 죄를 인정한 그로브 박사의 전 하녀였던 사라 블런디가 교수형을 당하는데 20년 뒤 다 콜라의 수기가 발표되자, 이를 반박하는 프레스콧의 수기, 월리스 박사의 수기, 그리고 제임스 우드의 수기가 계속 이어지며 서서히 20년전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다.... 

예전의 "옥스퍼드의 4증인"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을 때 부터 무척이나 읽고 싶었던 작품. 재간되었기에 잽싸게 구입하여 읽게 되었습니다. 

무려 1,000페이지가 넘는 장편이지만 전부 4편의 수기로 각각의 수기는 하나의 작품으로 독립되어 있어서 흡사 4편의 연작들을 읽는 느낌을 줍니다. 덕분에 생각보다는 읽기가 편했고요. 

순서대로 본다면 첫번째 "다 콜라"의 증언은 이야기의 첫 시작 답게 중요 등장인물과 20년 전 옥스퍼드에서 발생한 사건을 기술하는 소갯글로서의 역할을 합니다. 이야기만 놓고 보면 콜라의 "수혈법"에 대한 내용의 비중이 큰 편이고요. 때문에 살인사건에 대한 정보도 표면적으로만 훝고 지나갈 뿐이라 사라 블런디의 범행인지 아닌지에 대한 입증조차 해 주지 않습니다. 첫 번째 수기만 읽는다면 독자는 영국의 암울한 날씨와 문화, 요리에 대한 편견만 강하게 가질 것 같아요. 외국인 시각에서 많은 것을 보고 있으니까요. 

두 번째 "프레스콧"의 증언 수기에서부터 먼저 첫 번째 수기의 거짓을 많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특히 콜라라는 인물이 스스로 묘사한 것과 다른 점이 많았다는걸 밝히는 부분이 그러합니다. 그리고 살인 사건보다는 프레스콧의 아버지 제임스 프레스콧 경이 관련되어 있던 왕당파와 의회파간의 음모, 배신 행위를 비중있게 다룬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프레스콧이 명예를 되찾기 위해 자신의 아버지가 배신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데 수기의 포커스가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음모론적인 이야기가 많이 가미되면서 점차 흥미진진해지는데, 특히 프레스콧의 아버지가 보냈던 "암호 편지"의 중요성이 처음으로 대두됩니다. 

 물론 모든 수기와 사건의 계기가 되는 그로브 박사 살인 사건의 정황에 대한 프레스콧 시각에서의 자세한 묘사도 들어 있습니다. 요약한다면, 지나친 광기에 시달리던 프레스콧은 성직록을 노리던 자신의 친구 켄이 그로브 박사를 독살했다고 믿지만 스스로의 광기가 사라 블런디의 주술 때문이라 생각하고 그녀를 사형시키기 위한 조작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지요. 

세 번째의 "월리스 박사"의 증언 부터는 앞서 나왔던 두 증언의 오류를 파헤치고 스스로 그것에 살을 입혀가는 단계입니다. 암호 해독 전문가로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서 광범위한 정보 조직을 구성한 월리스 박사라는 인물에 맞게끔 왕당파와 의회파에 대한 음모론에 살을 붙여 나가는 과정이 인상적입니다. 특히 콜라라는 인물의 정체에 주목하여 이야기를 진행해 나갑니다. 

또한 이러한 음모론적인 내용에 맞춰 여러 귀족들간의 역학관계와 과거의 역사까지 들춰내어 결국 첫 번째와 두 번째 수기에서는 크게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은 사라 블런디에 대한 사형 선고의 실질적 배경, 즉 필연적 선고였다... 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마지막 "제임스 우드"의 증언은 실질적인 마지막 증언으로 앞서 세 개의 수기를 모두 읽은 후 본인 스스로 조사한 진상을 첨가하여 발표한 진실입니다. 여기서 충격적인 몇가지 사실이 밝혀지며 나름의 반전도 꽤나 있는 추리소설로 따진다면 일종의 "해답편" 격인 내용인데, 여러 사실들을 종합하고 앞부분에서 빠져있던 여러 내용들이 보충되며 앞부분 수기에서 대두된 몇 가지 의문에 대한 해답, 즉

  1. "그로브 박사를 살해한 사람은 누구인가?"
  2. "마르코 다 콜라의 정체는 무엇인가?"
  3. "사라 블런디의 그날밤 행동의 진상과 그녀의 역할은 무엇이었는가?"
  4. "암호편지는 어디에 있는가? 또 그 내용은 무엇인가?"
  5. "왕당파의 제임스 프레스콧 경 배신사건의 진상은 무엇인가?"
에 대한 답을 독자에게 전해주는 완벽한 증언으로 마무리됩니다.

이렇게 알려진 시대에 대해 음모론적인 이야기를 넣어가며 스토리를 구상하는 것이 보통 작업은 아니라 생각되는데 이 작품은 상당히 성공한 편이며, 무엇보다 4명의 증언이라는 독특한 구성을 통해 독자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면서도 선별적으로 판별하게끔 하는 트릭을 보여주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뛰어난 점입니다. 등장인물들의 관계도 잘 짜여져 있어서 탄탄한 전개를 보여주는 것도 인상적이고, 탄탄한 고증에 기초한 17세기 영국의 문화를 바로 옆에서 느끼는 듯한 묘사도 압권입니다다. 

영국인이었다면 실존인물들과 역사적 배경까지도 100% 이해하고 즐길 수 있었겠지만 저는 그정도 수준까지는 아니기에 조금 복잡하고 지루한 부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영국인이 아니더라도 지적인 흥분과 더불어 읽는 재미까지 느낄 수 있는 보기 드문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 모든 증언과 수기의 발단이 된 마르코 다 콜라의 첫번째 수기의 작성 이유가 납득이 되지 않더군요. 콜라는 이 모든 것을 묻어 버렸어야 하는 입장이었을 텐데 괜히 발표해서 영국에 있는 관계자들의 반박글만 잔뜩 만들게 했잖아요? 이 점은 다 읽고 난 이후에도 그다지 석연치가 않습니다. 때문에 약간 감점하여 별점은 3.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읽고 나니 이상하게 영화 "메멘토"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결과를 먼저 알고 그 진행되는 상세한 내용을 나중에 알게되는 구조가 유사하기 때문일까요? 그런 시각에서 본다면 4번 수기는 제일 나중에 읽어야 하지만 나머지 수기들은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색다른 재미를 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충분한 재미를 느낀 만큼, 작가의 다른 작품도 구입해 보아야 할 것 같군요.

그리고 또 한가지 지적한다면 1,2권으로 나뉘어 있는데 1권 후반에 작품 전체에 대한 역자 후기격의 글이 들어있는데 일종의 스포일러를 제공함으로써 김을 약간 빼 놓더군요. 당연히 2권 후반에 들어가는게 맞지 않았을까요? 번역도 좋은 편이고 장정도 예뻐 마음에 들지만 이런 사소한 부분에 조금 더 신경을 써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기는 합니다. 

PS : 이제 이런 류의 작품 소개에 "움베르토 에코....장미의 이름..." 어쩌구 하는 말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하네요. 이 작품은 핑거 포스트일 뿐이지 장미의 이름과는 하등의 관계도 없는 작품이니까요.

2026/01/04

루드비히, 퍼즐로 푸는 진실 (2024) : 별점 4.5점

유명 퍼즐작가로 필명이 '루드비히'인 존 테일러에게 형수이자 소꼽친구 루시로부터 경찰인 쌍둥이 형 제임스가 실종되었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여러 정황은 제임스가 모종의 이유로 스스로 몸을 감추었다는걸 알려주었다. 루시는 존에게 제임스인척 경찰서로 출근해서 존 실종에 대한 단서를 찾아달라고 부탁했고, 출근한 존 앞에 여러 불가능 범죄가 잇달아 펼쳐지는데....

영국 BBC에서 제작한 총 6화 구성의 추리 드라마 첫 번째 시즌입니다. 

가장 큰 매력은 독특한 설정입니다. 퍼즐 천재인 '루드비히' 존을 주인공 탐정역으로, 범죄 속 트릭들을 퍼즐의 일종처럼 선보이거든요. 존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하나의 ‘퍼즐’로 인식하며 본격적으로 해결에 나서고요. 마술사 탐정까지는 봤었는데, 퍼즐 전문가 탐정은 처음 보네요.

등장인물들도 매력적입니다. 퍼즐 제작에만 몰두하며 사회성과 현실 감각이 부족한 존이 갑작스럽게 경찰 역할을 맡아 좌충우돌하는 모습이 코믹하면서도 묘하게 현실감 있게 그려집니다. 형수 루시와 조카 헨리도 제임스 실종이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요. 그러고보니 존과 제임스 형제에 아들 이름은 헨리라니, 가족 자체가 영국적이군요. 
카터를 비롯한 경찰 동료들, 다른 등장인물들도 진지한 상황 속에서 영국식 유머를 자연스럽게 섞어내어 극을 재미있게 만들어 줍니다. 가족과 동료애가 끝까지 이어지는 것도 요사이 보기드문 미덕이라 할 수 있고요.

추리적으로도 빼어납니다. 1화에서는 여러 용의자의 알리바이를 교차 분석해 논리적으로 범인일 수밖에 없는 인물을 드러냅니다. 시청자에게 모든 정보를 공유하지 않아서 추리에 직접 참여하기는 어렵지만, 퍼즐 전문가의 해법으로는 충분히 설득력 있게 느껴집니다.

2화에서는 일종의 ‘숨은 그림 찾기’ 퍼즐 트릭이 사용됩니다. 존은 사진을 통해 벽지가 미세하게 이동한 점을 알아채고, 벽지 뒤 벽을 뚫어 숨겨진 시체를 찾아낸 뒤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지요. 피해자 사기꾼에게 사기당한 일행들이 단체로 범행을 저지르고 은폐했던건데, 앞서 등장한 여러가지 단서들로 설득력있게 설명됩니다.

3화는 두 개의 전혀 무관해 보이는 사건이 하나로 연결되는 ‘병렬 퍼즐’이 등장합니다. 관광 가이드 살인은 갑작스럽게 행해진 것으로 추리하고, 그 이유를 관광 코스를 직접 도는 방법으로 발품을 팔아 증명해내는데 수사와 진상 모두 깔끔하게 이어집니다.

4화는 체스말을 움직이는 방식으로 진범은 장치 트릭을 활용한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다섯 명의 동료들 작업 위치가 순차적으로 바뀌도록 유도해서, 피해자가 원했던 위치에 가도록 만든 뒤 장치를 통해 추락사하게 만든거지요. 존은 이를 '역행 제스' 퍼즐로 풀어냅니다. 이 퍼즐 자체가 루드비히' 존이 처음 만들었다고 소개되는데, 현재의 체스판 상태를 보고 이전 수를 맞추는 퍼즐이에요. 즉, 이전 수를 맞춰가면서 최초에 수를 둔 사람을 알아내 범인을 밝혀냅니다. 
퍼즐을 활용한 추리도 깔끔하지만, 피해자를 발전기가 있는 위치로 이동시킨 뒤 쇼트가 나가도록 배선을 망치고, 발전기를 가동하면 피해자가 감전되어 추락사하게 만든 장치 트릭도 합리적입니다. 다른 동료들이 모두 범인이 원하는 흐름대로 움직였던 것도 이전부터 자주 그래왔다는 설정이라 설득력있고요.
마지막에 발전기에 물을 뿌려 놓은 탓에 범인의 DNA가 묻은 물통을 확보했지만, 범인이 “자기는 1층에서 버렸다”고 주장하자 5층 현장에서만 쓰레기 수거장 안으로 투입 가능하다는 점을 추리쇼처럼 밝혀내는 장면도 볼만합니다.
한마디로 추리적으로는 나무랄 데 없는 에피소드입니다.

5화는 '밀실 살인' 트릭이 등장하는데, 꽤 그럴듯합니다. 주말 내내 잠겨있던 교장실에서 교장이 살해된채 발견되는 사건인데, 존은 범인이 밀실 안에 계속 있었다!는 대담한 추리를 내 놓습니다. 이를 발견하는 단서가 교장실 쓰레기통에 있던 '변색되지 않은 사과 조각'이라는 디테일도 인상적입니다. 누군가 교장실에 최근까지 있었다는 증거인데, 영상물에 잘 어울리는 디테일이었습니다. 존의 학창 시절 과거, 그리고 노인이라도 쓸모없는게 아니라는 메시지도 좋았고요.

6화는 루시의 살인 누명을 벗기고 진범을 잡는 이야기인데, '루시가 집에서 가져간 칼로 사망한 피해자'라는 결정적 증거를 뒤집는 추리가 아주 인상적이에요. 범인이 막 피해자 폴라를 칼로 찔렀을 때 루시가 자기 칼을 들고 그 집에 들어섰습니다. 범인은 입구에서 보이지 않는 식탁 뒤로 숨었고, 루시가 쓰러진 폴라를 보고 자기 칼을 내려 놓은 뒤 그녀에게 다가가자 범인은 루시에게 보이지 않는 사각으로 빠져나가면서 칼을 바꿔치기 했던 겁니다.
정통 본격물로 보아도 무방하다 싶을 멋진 트릭이며, 증거도 확실하게 제시됩니다. 범인은 바꿔치기한 루시의 칼을 폴라 부엌 칼꽂이에 꽂아두었는데, 이 칼에서 루시나 존의 지문이 나오면 바꿔치기했다는 증거가 되니까요.

이러한 각각의 사건들과 함께 제임스 실종 사건에 대한 조사와 추리도 계속 이어집니다. 결국 존은 제임스가 남긴, 누구나 들으면 스스로 떠났다고 생각할 메시지에서 암호 해독 키를 찾아내어 암호를 풀어내어 단서를 확보하게 됩니다. 그리고 정체가 드러났지만 능력을 인정받아 경찰의 고문역으로 일하며 형을 계속 추적할 존의 모습으로 총 6화의 시즌 1은 마무리 됩니다. 

1화와 2화, 3화 사건은 경찰 수사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을 듯 싶고, 경찰이 너무 무능하게 그려진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제임스와 폴라, 싱클레어 등이 관련된 진짜 음모도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고요. 제임스가 암호로 창고 위치를 남긴 이유와 사라진 이유를 창고에 남기지 않은 이유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재미와 추리 모두 빼어난 좋은 드라마였습니다. '루드비히'라는 주인공 필명에 어울리는, 베토벤 음악의 적절한 활용과 촬영도 좋고요. 시즌 2가 빨리 나오면 좋겠습니다. 제 별점은 4.5점입니다.

2008/10/21

프렌치 경감 최대사건 - 프리먼 윌스 크로포츠 / 김민영 : 별점 4점

프렌치 경감 최대사건 - 8점
프리먼 윌스 크로프츠 지음, 김민영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보석상 듀크 앤 피보디 상회의 지배인 게싱 노인이 살해되고, 금고에 보관 중이던 다이아몬드가 사라졌다. 2개의 금고 열쇠 중 하나는 은행에 또 하나는 사장 듀크씨가 늘 몸에 지니고 다니기 때문에 여벌열쇠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했다. 사건을 담당하게 된 프렌치 경감은 수사를 통해 하나씩 단서를 모아 범인을 추적하는데...

거장 F.W 크로포츠의 황금기 시절 걸작이자, 명탐정 프렌치 경감의 데뷰작이기도 한 고전 명작입니다. 엄밀하게 이야기한다면 명탐정이라기 보다는 명수사관이지만요. 어쨌건 알리바이 파헤치기의 명수로 유명한 프렌치 경감의 활약을 감상하는 것이 포인트인 작품입니다. 명성 만큼이나 꼼꼼하고 치밀한 수사가 펼쳐집니다. 추리와 직감보다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많은 인물의 협조를 얻어 정말로 발로 뛰며 수사하는 "일반인" 프렌치 경감의 모습은 천재형 명탐정이 대세였던 당시 황금기에 정말로 독특한 존재로 부각되었을 것 같더군요. 지금 읽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정말로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는 전개를 보여줍니다.

추리적으로도 완벽합니다. 등장하는 사건은 딱 하나라서 쉽게 풀릴 것 같은데, 가지치기 되면서 트릭이 다양하게 등장합니다. 덕분에 단순하지 않고, 읽으면 읽을 수록 큰 재미를 안겨다 줍니다. 알리바이 위장 트릭과 인간 소실 트릭, 누명 덮어씌우기에 바꿔치기 트릭, 거기에 암호 해독까지 등장하기 때문에 다채로운 트릭의 맛을 한껏 느낄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트릭은 인간 소실 및 바꿔치기 트릭인데 지금 읽으면 약간 진부하지만 굉장히 효과적으로 쓰였기에 지루하다는 느낌은 전혀 받을 수 없습니다. 암호트릭도 공들여 만들었을 뿐 아니라 독자에게 공정하게 단서를 제공해 주기 때문에 충분히 합격점을 줄 수 있는 수준이고요.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단서가 제공되는건 황금기 작품답게 아주 공평한데 그 때문인지 범인을 특정하기는 중반 이후에는 쉬워지기는 합니다. 그때부터는 범인이 누구인가? 보다는 범인의 추적에 이야기가 집중되며, 다른 트릭들이 연이어 등장하기에 별 문제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마지막 반전(?)의 맛이 좀 약해진 것과 약간의 우연으로 사건이 진전되는 부분은 아주 조금 아쉽긴 한데 어차피 경찰 수사망에 걸렸을 부분이라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고 말이죠.

전체적으로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묻어나는 것 역시 마음에 듭니다. 잔인한 강도 살인 사건을 다루는 작품치고는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넉넉한 편입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여정 미스터리로 보일만큼 당대 유럽의 명승지를 기차로, 배로 여행하며 수사하는 프렌치 경감의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한몫하고 있는 것 같네요. 끈질긴 추적자인 프렌치 경감의 모습 뒤에 왠지 모를 작가의 여유로움이 한껏 묻어나거든요. 프렌치 경감의 부인이 전해주는 단서 역시 재치가 넘치고 말이죠.

딱 한가지, "변장" 을 너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한 점이 감점 요소이긴 하지만 그에 관련된 배경 설명도 자세히 묘사하고 있어서 나름 납득되는 수준입니다.

황금기 고전의 향취를 한껏 느낄 수 있는 정통 추리물이면서도 부드럽고 온화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기에 추리소설 입문자에게 추천할 만한 좋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5점을 줄 수도 있는 작품이지만 세월이 너무 많이 흐른 탓인지 약간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

2015/11/30

화과자의 안 - 사카키 쓰카사 / 김난주 : 별점 3점

화과자의 안 - 6점 사카키 쓰카사 지음, 김난주 옮김/블루엘리펀트

모두 5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가벼운 일상계 단편집입니다. '키 150cm, 체중 57kg'의 주인공 우메모토 교코가 고등학교 졸업 후 도쿄 백화점 지하에 있는 화과자점 "미쓰야"에서 일하게 된 뒤 만나는 소소한 사건들을 다룹니다.

잘 모르는 작가의 작품으로 충동적으로 읽게 되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꽤 괜찮았습니다. 쉽게 읽히는 재미는 물론 추리적으로도 제법이며 잘 몰랐던 화과자에 대한 현학적인 매력도 넘친 덕분입니다.

캐릭터들의 매력과 배분도 아주 적절합니다. 사건 해결은 괴인 츠바키 점장이 맡고, 이야기는 우메모토 교코가 빠른 눈치와 추진력으로 템포 있게 유지시키며, 화과자에 대한 지식은 게이 성향이 있는 화과자 장인 지망 베테랑 아르바이트생 다치바나가 덧붙여 주는 식으로 황금 분할이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연산 - 파워 - DB의 3위 일체네요.

허나 화과자에 대해 알고 있어야만 추리를 따라갈 수 있기에 평범한 일반인, 그것도 한국인 독자가 추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일상계이지만 전문가적 지식이 발휘되는 작품이라는 측면에서는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나 "명탐정 홈즈걸"과 같은 스타일이지요.
물론 현학적인 재미로 보상해 주는 만큼 단점이라고만 보기 어렵습니다. 저 역시 아주 좋아하는 장르입니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갤러리 페이크"가 될 테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전문가 일상계 추리물의 교과서 같은 작품으로 추리소설에 입문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리고 싶네요. 이야기도 소소하니 따뜻하고 즐거우며 맛있기까지 하니 더 바랄 게 뭐가 있겠습니까.

각 단편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화과자의 안"

회사원 아가씨가 생과자 "오토시부미" 1개에 "투구" 9개를 사간 이유에 대한 추리가 펼쳐지는 작품.

츠바키 점장은 오토시부미를 특정 인물 1명 앞에 내어 놓을 필요가 있었으며, 그 이유는 "오토시부미"의 사전적 의미 — '공공연하게 말할 수 없는 내용을 쓴 무기명의 문서' — 에 따라 그 과자를 받는 사람은 뭔가 부정이 있다!라고 다도에 박식한 상관에게 넌지시 고하기 위함이라고 추리합니다.
그리고 다음에 회사원 아가씨가 과자를 사러 왔을 때에는 사건이 해결된 것을 알아차리고 '액막이용 과자'인 "물의 달"을 바로 내어주었지요.

화과자에 대해 잘 모르면 추리에 동참할 수 없다는 단점은 있지만 시리즈의 시작으로 캐릭터들의 소개와 더불어 이 작품이 화과자에 대한 일상계 추리물이구나! 라는 것은 충분히 알려줍니다. 현학적인 재미도 넘쳤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1년에 한 번 하는 데이트"

견우와 직녀가 만난 뒤의 칠석 과자 "까치"를 사러 온 여대생은 대만에 있는 남자친구와 원거리 연애 중으로 비행기를 타야 했고, 단골인 스기야마 할머니가 사 가는 과자는 사실 불단에 올릴 목적이었다는 내용입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와 동일한 문제가 여전합니다. 일반인이 추리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그나마 여대생의 원거리 연애 에피소드는 독자도 추리할 만한 여지가 있긴 했습니다만, 스기야마 할머니 이야기는 정말 무리예요. 특히 할머니의 독특한 복장이 사실은 화과자의 "상제" 색 조합과 관련이 있었다는 것은 일반인의 영역은 아니니까요.

그래도 전문가적 지식을 토대로 한 일상계 추리물의 교과서적인 전개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캐릭터들이 나름 성장하기도 하고, 츠바키 점장의 개인사도 살짝 엿보이는 등 읽는 재미도 충분했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에서는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싸리와 모란"

야쿠자가 와서 시비를 거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다치바나의 사부가 가게의 전문성을 시험하느라 이런저런 전문 용어를 사용한 것이라는 이야기.

요약된 줄거리 그대로 추리의 여지는 거의 없습니다. 그냥 화과자에 대한 정보 전달이 주인 탓에 일상계 추리물이라기보다는 "갤러리 페이크"에 더 가까워요.

허나 워낙 재미있는 내용들이라 지루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아주 재미있었어요. 화투에 멧돼지와 싸리가 반드시 같이 그려져 있는 이유가 멧돼지 = 보탄(모란) → 모란떡은 오하기 → 하기는 싸리, 그래서 같이 그린다라는 언어유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인데, 다른 작품에서 접하기 힘들 뿐 아니라 지루할 수 있는 이야기를 야쿠자스러운 말투와 엮어 재미나게 풀어내는 솜씨가 탁월해서 감탄할 정도였습니다.
신 캐릭터인 다치바나의 사부도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이긴 하지만 그런대로 작품과 잘 어울렸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스위트 홈"

백화점 내 양과자집 "황금사과"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가쓰라자와가 팔다 남은 케이크를 "오빠"에게 가져가는 이유는?

"오빠에게 가져간다"는건 착각이었고 케이크를 "오빠", 즉 나이가 많은, 전날 팔다 남은 케이크라고 이야기했다는 내용인데 실제 자료 조사가 토대가 된 듯한 일종의 언어유희가 돋보였습니다. 화과자에 대해 몰라도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도 큰 장점이지요.
곁들여 주류 코너에서 일하는 구스다 씨가 떨이 도시락을 사재기한 이유가 함께 밝혀지는 구성도 참 좋았습니다.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였으니까요.

아울러 양과자와 화과자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양과자와는 다르게 화과자는 이 나라에서 나는 재료를 사용해 이 나라의 기후와 습도에 맞게 만들어 관혼상제를 채색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는 것인데 정말 공감됐습니다. 한천은 여름에도 녹지 않는다는 일종의 화과자 부심(?)도 귀여웠고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쓰지우라의 향방"

미쓰야에서 판매한 새해맞이 과자 "쓰지우라" 안에서 이상한 암호문이 나와 그것을 해독한다는 내용으로 암호 해독이 중심인 작품입니다.

종이는 누군가 바꿔치기한 것에 불과하고, 암호문은 일본어로만 풀어낼 수 있는 것이라 추리의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화과자가 중요하게 사용되지도 않아서 시리즈와 연계성도 조금 떨어지고요.

점장이 기다리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2화에 언급된) 설명되어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주기는 하지만, 점장의 연인이었던 과자틀 장인 "형풍"이 죽기 전 남긴 과자틀 반쪽을 안짱이 골동품 벼룩시장에서 건진다는건 우연이라도 너무 심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추리도 별로고 작위적이라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여러모로 마무리가 약한 느낌입니다.

2005/04/12

헬로 네즈미 - 히로카네 켄시 : 별점 2.5점

헬로 네즈미 28 - 6점 켄시 히로카네/대원씨아이(만화)

아카츠카 탐정 사무소라는 탐정사에서 근무하는 일명 "고슴도치"인 고로와 그의 동료인 전 도박사 출신 큐사쿠, 통칭 "구레"를 중심으로 한 사무소의 멤버들이 펼치는 옴니버스 드라마입니다.

작가의 대표작인 "시마과장"은 이래저래 욕도 많이 먹고 문제도 많은 작품이긴 하지만 작품 자체를 끝까지 읽게 하는 통속적인 재미 하나는 대단하지요. 이 작품 역시 그러한 재미만큼은 상당한 수준입니다. 
그러나 작가의 스타일이라고는 해도, 감수성에 치우친 드라마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더군요. 눈물이 너무 많고 사랑도 너무 많은 순정파적인 전개라, 2000년대에 보기에는 짜증날 정도였거든요. 거기에 그림체 역시 전통 극화체에 가까운 탓에 뎃생력과 구성력은 나무랄데 없다 하더라도, 역시나 요즘 독자들에게 어필하기는 좀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대로 내용 자체는 재미있습니다. 눈물 쏙 빼놓는 에피소드들 뿐만 아니라 웃기는 이야기에서 대하 액션, 거기에 괴담과 사극, SF까지 통통 튀는 전개는 옴니버스 캐릭터 극의 장점을 잘 살린 이야기로 보여지며, 어느정도 성공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추리물도 포함해서요. 물론 "인간 교차점" 스타일의 드라마들은 좀 지루한 맛도 없지 않습니다만....

추리적으로 본다면 탐정 사무소의 탐정이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의뢰들어오는 사건은 단순한 조사나 사람 찾기 같은 일(이게 물론 현실적인 것이라는 것은 인정합니다)이 비중있게 다루어지는 탓에 관련 에피소드가 많지는 않습니다. 전 29권 분량 중에서 진정 "추리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부분은 별로 없어요. 하지만 소수 정예인지 나름대로는 제법 재미있는 이야기가 몇 개 있습니다. 특히 감금장소나 스토커 잠복 장소를 알아내는 실질적인 조사 방식은 개인적으로는 높이 평가합니다. 꽤 현실적이면서도 나름 추리적 요소가 괜찮거든요.

그러나 중반이후에는 소재고갈인지 너무 이야기가 비약해 버려 실망스러운 에피소드가 많습니다. "심령퇴마물", "흡혈귀", "UFO" 에피소드들은 사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에요. 또 일상적인 이야기와 단순 범죄 사건에서 상당한 스케일의 범국가적 스파이 액션까지 다루므로 이야기의 고저가 심해서 적응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그래도 일단은 평균정도의 재미는 가져다 주는 만화입니다. 별점은 2.5점. 지금은 구하기가 쉽지 않고 일본에서도 대표적인 보수 우익 취향의 만화가로 알려진 히로카네 켄시의 작품이라 앞으로도 구해 볼 생각도 없지만 그냥저냥 지나다가다 눈길한번 줄 만 합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추리물"로 보기에는 문제가 있을 듯 하군요.

PS : "아"로 시작하는 탐정 사무소 이름때문에 전화번호부에서 찾아보고 제일 위에 있어서 의뢰한다는 고객들 에피소드가 꽤 많더군요. 가가 탐정 사무소도 실패한 전략은 아닌 듯....

에피소드 중 추리물을 뽑아본다면

5~6권 - 고로의 애인인 란코의 아버지가 관련되어 있던 비리에 대한 에피소드 :
이 에피소드는 일종의 정경유착에 따른 거대한 음모를 다루고 있는데 킬러까지 등장하며 과격한 액션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로 정경유착에 관한 디테일이 굉장히 좋습니다. 추리적으로는 다이잉 메시지 해독이 등장하는데 꽤 괜찮습니다. 좀 더 소규모의 음모였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오버하는 경향이 있어서 약간 아쉽지만 재미있는 에피소드였습니다.

7권 - 기억상실중에 벌어진 살인사건을 다룬 "공백의 격류" :
십수년전에 살인을 저지르고 사고로 당시의 기억을 잃어버린 의뢰인의 과거를 조사하는 에피소드로 만화에 딱 어울리는 단서들과 내용전개가 독특하며 마지막 반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8~9권 - "유괴" 에피소드 :
한 대기업의 데릴사위 사장이 내연의 아내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유괴당해 탐정 사무소에 도움을 요청하는 에피소드입니다. 돈을 주고 풀려나기는 하지만 사회적 응징을 위해 유괴범을 조사하여 소재를 파악하는 과정이 현실적이면서도 흥미진진합니다.

14권 - 연쇄 살인마 이야기인 "빨간색의 혼란" :
싸이코 연쇄 살인범 이야기인데 내용 전개는 뻔하지만 꽤 재미있더군요.

14권 - 정체모를 인물이 가입한 보험금을 타게되는 한 주부의 에피소드인 "정체불명의 사례" :
어느날 아무 생각 없이 베푼 선행으로 보험금을 받게되는 한 주부, 그리고 그 보험금에 얽힌 진상을 파헤치는 이야기로 정통 추리적 요소가 많으면서도 내용 전개도 깔끔하며 반전도 상당히 괜찮은 에피소드입니다.

16~17권 - 의학교수와 브로커가 관련된 스캔들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진상을 다룬 에피소드 :
범행 장소와 공개된 장소 양쪽에서 동일 시간대에 존재하는 알리바이 트릭을 파헤치는 에피소드로 트릭은 생각외로 시시하지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과정이 꽤 재미있습니다.

19~20권 - 한 여인의 완벽한 복수극을 다룬 "의문의 편지" :
자신이 살해될 것을 예상한 한 정치인의 정부가 펼치는 완벽한 복수극인데 시한 장치를 이용한 편지 발송 트릭이 등장합니다.

20권 - 모닝콜을 통한 알리바이를 파헤치는 "모닝콜" :
아침에 모닝콜을 받았다는 용의자가 그 시간에 절도를 행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내는 것인데 사실 굉장히 간단하긴 하지만 일상적으로 쓰이는 소재를 트릭에 이용하는 발상을 높이 평가하고 싶네요.

24권 - 일본 전통 이야기에 대한 숨은 진상을 파헤치는 "사랑밖에 난 몰라" :
일종의 번외편으로 에도시대에 있었던 방화사건에 관련된 진상을 풀어내는 이야기입니다. 이 원전격 이야기를 잘 몰라서 몰입은 쉽지 않았지만 역사 추리물 적인 요소가 강하고 트릭과 전개도 재미납니다.

26권 - 한 여인의 밀실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긴머리의 여인" :
시체 이동을 통해 자살로 위장된 한 여인의 살인 사건을 다루는 이야기로 전편을 통해 가장 독특한 트릭이 등장합니다. 현실감은 왠지 많이 떨어지는 트릭이지만 발상이 무척 기발하며, 사건의 발단이 되는 단 하나의 단서를 쫓아 현장 조사 등을 통해 범인을 밝히는 과정이 좋습니다.

29권 - 도쿠가와의 매장금을 찾는 "보물 찾기" :
암호 트릭이 등장합니다. 암호 자체의 수준은 평이하고 일본어를 좀 알아야 해독할 수 있어서 아쉽지만 너무 어렵지도 않고 나름의 바탕이 있어야 풀 수 있어서 꽤 재미있는 암호로 보입니다.

2005/03/27

책방출 리스트 : 공짜입니다! - 마감했습니다.

이사 관계로 눈물을 머금고 다시 책을 방출합니다.

버리느니 필요하신 분들을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포스트를 남깁니다. 단 제가 시간이 거의 없으므로 방법은 무조건 일요일 오후, 2호선 문래역까지 오시는 분에게만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시간은 나중에 협의를...) 원하시는 분은 책 제목을 주인장에게만 보이는 비공개 덧글로 글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연락처 포함해서요)

책 상태는 책마다 다르지만 다 읽을 만 합니다. 새책도 있고요. 예약이 끝난 책은 체크하겠습니다. 대단한 책은 없지만 필요하신 분들에게 잘 갔으면 하네요. 4월달 안으로만 정리하고 이후에는 버리는 수 밖에는....

추리소설 :
호메로스 살인사건 - 츠치야 다카오(예약)
백색살인 - 로스 토마스(예약)
건축무한 육면각체의 비밀 - 장용민 / 김성범(예약)
죽음의 편지 - 보브 렌들 (예약)
스티븐 킹, 미스터리 환상특급 1 (예약)
소환장 - 존 그리샴
황새 -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예약)
마지막 칸타타 - 필립 돌레리스 : 바흐의 푸가곡 속의 암호 해독 미스터리 (예약)

기타 서적
시간을 지배한 사나이(에약)
심심풀이로 읽는 화학 (예약)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외계인 백과사전 (예약)

만화 :
춤추는 세무관 1 ~ 9 (예약)
피스전기만물상 1~22 (예약)
Joker 1~6 (예약)
여검시관 히카루 1, 5 (예약)
신암행어사 1~4
가가탐정사무소 1~2 (예약)
만화 셜록 홈즈 전집 1~2 (예약)
성 하이퍼 경비대 1~9
쵸비츠 1~5 (예약)
두더지 1~2
돌연변이 파워걸즈 1~4 (예약)
하이퍼 레스토랑 1~2 (예약)
캄브레이커 1~6
귀참십장 1
의천도룡기 1~18
은하군웅전 라이 1~13 (옛 해적판본)

2009/05/29

명탐정 키요시로 사건노트 1~7 - 하야미네 카오루 / 에누에 케이

제목 그대로 "명탐정" 인 교수 유메미즈 키요시로가 옆집 이와사키 가(家)의 세쌍둥이 자매 아이, 마이, 미이와 함께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전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짤막하고 일상에 가까운 이야기로 시작해서, 본편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전개로 한권이 이루어진 옴니버스 시리즈 만화입니다. 예전에 봤었지만 취향이 아니라서 보다가 접었었는데 형이 7권까지 구입했길래 빌려서 읽게 되었네요.

일단 장점부터 소개하자면 :
1. 추리만화이지만 대상 연령대가 낮은 덕분에 눈높이를 맞춘 티가 역력할 정도로 굉장히 사건들과 이야기들이 유쾌하고 밝은 편입니다. 살인과 같은 강력사건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발랄한 이야기들이라 추리소설 초보자들에게 적합한 작품이 아닐까 싶네요. 특히 아동들....

하지만 단점도 확실해서 :
  1. 장점이기도 하지만 대상 연령대가 지나치게 낮습니다! 한마디로 유치하달까요? 전개와 대사 모두 어이상실입니다.....
  2. 만화 자체가 한마디로 후집니다. 순정만화 스타일의 그림인데 전혀 제 취향도 아니었을 뿐더러 이야기 전개도 낙제점에 가깝습니다. 또한 주인공 캐릭터도 너무나 과장되어 있고 웃기지도 않는 개그컷의 남발은 짜증만 불러 일으키더군요. 좀 깔끔하게 정리라도 해서 그렸더라면 좋았을 것을.
  3. 추리적으로도 재미에 치중한 탓에 설득력이 떨어지는 작품이 많더군요.
팬들분에게는 죄송하지만 제게는 단점이 너무 명확한 수준 이하의 작품이라는 것이 제 감상평입니다. 아동용으로는 정평이 나 있는 시리즈이니 만큼 제 나이가 너무 많은 탓도 있겠지만, 일단은 만화 자체의 수준이 함량미달이라 생각되네요. 어쨌건 별점은2점. 이번처럼 형이나 주위 누군가가 구입하지 않는다면 개인적으로 다시 찾아볼 것 같지는 않습니다.

덧붙이자면, 같은 원작으로 잡지 "파우스트"에 연재된 작품 쪽이 "만화" 측면에서 그림과 전개 모두 7만배는 낫더군요. 파우스트 연재작이 단행본으로 나와준다면 구입 의향 있습니다!

* 현재의 만화판(위)과 파우스트 만화판(아래) 비교

명탐정 키요시로 사건노트 1 - 4점
하야미네 카오루 지음, 에누에 케이 그림/대원씨아이(만화)

Vol 0 : 명탐정 유메미즈 키요시로 등장 - 이와사키 가(家) 옆집에 새로 이사온 사람은 뭔가 수상쩍은 키큰 아저씨! 그 아저씨는 스스로 교수이자 명탐정이라고 칭하지만 뭔가 어벙하고 덜 떨어져 보인다. 하지만 곧바로 명탐정의 솜씨를 발휘해서 세자매의 수수께끼를 곧바로 풀어낸다.
- 주인공의 등장과 주요 등장인물을 소개하면서 일상계 수수께끼를 잘 풀어낸 소품. 하지만... 지나치게 소품이기에 평가할게 별로 없네요.
Vol 1 : 그리고 5명이 사라지다 - 오무라 판타지 파크에 세자매를 데리고 놀러온 교수. 그러나 마술쇼 도중에 한 소녀가 사라지고 곧바로 "백작"이라 자칭하는 범인이 곧바로 다른 소년, 소녀를 유괴할 것이라고 예고한다. 키요시로는 경시총감과의 연줄을 이용해서 사건 해결에 뛰어드는데!
- 범행 트릭이 너무나 유치하고 동기와 전개 모두 설득력 빵점인 아동용 추리물. 유치찬란 그 자체.

명탐정 키요시로 사건노트 2 - 4점
하야미네 카오루 지음, 에누에 케이 그림/대원씨아이(만화)

프롤로그 : 설혼전설 - 판타지 파크 사건으로 유명세를 탄 키요시로에게 잡지 "세.시마"의 편집부원 이토 마리가 찾아온다. 명탐정이 여행하면서 그 지방 전설에 대한 수수께끼를 푸는 이른바 "명탐정 유메미즈 키요시로의 수수께끼 풀이 기행!!" 기획을 위해서. 첫번째 여행 코스는 N현 A고원으로, 이 지방에서는 눈보라 치는 밤이 지난 아침에는 "설혼의 숲"이라 불리우는 대나무 숲에 눈의 영혼인 "설혼"이 어린 아이를 데리러 나온다는 전설이 있다. 실제로 3살짜리 아이가 행방불명된 20년 전의 사건은, 아이의 발자국이 집에서 설혼의 숲까지 일직선으로 나 있다가 숲 직전 20미터 정도에서 뚝 끊겨 있던 것.
- 이 "설혼전설"에 관한 트릭이 상당히 그럴듯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작품 자체는 쓰잘데 없는 곁가지 이야기가 대부분에다가 스키 자국에 관련된 말도 안돼는 트릭이 들어가는 등 괜찮은 트릭을 다 망쳐버리는 전개를 보여줘서 높은 점수를 주기가 힘듭니다.

Vol 2 : 마녀가 숨어있는 마을 - "세.시마"의 기획 두번째 코스는 "쇼우노사토"라는 벚꽃의 명소. "쇼우노사토"의 숲에는 마녀가 있다라는 전설이 있는데, 이토 마리와 교수, 그리고 세 자매 일행이 도착한 뒤부터 숙소인 여관 "로우란 장"을 무대로 한 정체불명 게임의 막이 오른다.
- 이 시리즈 치고는 이질적인 무겁고 심각한 이야기. 15년전 한 일가족이 사라진 사건에 비롯된 현재의 비극이라는 점은 "김전일"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대형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나 무겁고 진중한 전개라서 이 시리즈와는 따로 노는 느낌에다가 트릭도 거의 실현불가능해 보이는 (어떻게 리프트를 혼자서 조작하는지라던가 하는 세세한 부분의 설명은 전무!) 낙제점에 가까운 작품

명탐정 키요시로 사건노트 3 - 4점
하야미네 카오루 지음, 에누에 케이 그림/대원씨아이(만화)

Vol 3 : 망령은 밤을 떠돈다 - 세 자매가 다니는 학원의 학원제 기간에 학교에 전해져 내려오는 4가지 전설을 소재로 한 사건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한다. 과거 4가지 전설을 창작한 것으로 알려진 여학생은 죽은 것으로 밝혀지는데....
- "김전일"의 "방과후의 마술사" 같은 설정이죠? 그러나 무거운 설정과는 반대로 학원제를 배경으로 한 밝은 분위기의 작품이라 설정과 미묘한 부조화를 이루는 것이 이색적인 작품입니다. 트릭은 여러개가 등장하는 풍성함을 보여주는데 모든 트릭이 만화에 가까운 것들이라 추리적인 가치는 거의 없습니다..... 아무리봐도 실현이 가능할 것 같지가 않아요.

명탐정 키요시로 사건노트 4 - 4점
하야미네 카오루 지음, 에누에 케이 그림/대원씨아이(만화)

그랜드오프닝 : 탐정영화 - 교수와 세자매는 추리 영화를 보러간다. 완벽한 밀실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계단식 논 사이에 있는 오두막에서 태풍이 분 다음날 시체가 발견된다. 오두막은 전기도, 수도도 없고 구멍하나 없는 완벽한 밀실. 흐트러진 방 안에서 발견된 칼에 찔려 죽은 시체! 그러나 영화가 끝나기 전 사고로 인해 일행은 결말을 보지 못하고, 교수는 자신의 추리를 자매들에게 들려준다.
- 가상의 영화를 소재로 추리하는 독특한 작품. 솔직히 트릭은 현실성이 너무 없어보이긴 하지만 아이디어는 괜찮은 편.

Vol 4 : 사라지는 소세이섬 - 세 자매는 영화 캐스팅 제의를 받고 거대재벌 반노재단이 제작하는 영화 로케 현장으로 교수와 함께 떠난다. 그러나 촬영현장인 소세이섬에 도착하자마자 유일한 교통수단인 크루즈가 폭발하고, 기이한 사건이 발생하다가 마지막에는 섬의 하나뿐인 가장 높은 "산"이 아예 없어져 버리는 기상천외한 사건에 맞부닥치게 되는데!
- 거대한 스케일의 농담같은 트릭이 등장하는데 너무 황당해서 말이 나오지 않을 지경. 이러한 특정 "장소"의 소실에 대한 고전인 엘러리 퀸의 "신의 등불" 정도는 아니더라도 흉내는 내 줬어야지!

명탐정 키요시로 사건노트 5 - 4점
하야미네 카오루 지음, 에누에 케이 그림/대원씨아이(만화)

Vol 5 : 춤추는 야광괴인 - 일본 최초의 연금술사인 사이토 소우후가 남긴 금불상의 위치를 알려주는 암호가 마을 절에서 발견되고, 한편으로 마을 공원에서 춤추고 머리가 분리되는 "야광괴인"이 나타나는 사건이 일어난다. 보물의 위치를 알려주는 키워드인 "코우다요이사루"는 무엇? 야광괴인의 정체는 무엇? 절에서 발견된 암호문의 해독 방법은 무엇?
- 암호문은 국내 독자는 풀기가 불가능한 일본어 암호 트릭이라 패스. 하지만 암호문의 "종이" 의 사이즈를 토대로 한 "키"의 도출이라는 방식은 참신했습니다. 문제는.... 정말 명탐정이라면 몇글자 치환해 보면 이러한 "키" 없이도 암호를 충분히 풀 수 있는 간단한 암호라는 점이겠죠.

명탐정 키요시로 사건노트 6 - 4점
하야미네 카오루 지음, 에누에 케이 그림/대원씨아이(만화)

Vol 6 : 유리항아리의 비밀 - 에도말기를 무대로 한 번외편! 나가사키의 데시마의 창고에서 유리 항아리 "피카이치"가 도난당한다. 자물쇠로 잠긴 창고는 완벽한 밀실상태에다가 남아 있는 발자국은 도저히 생물의 것으로 보이지 않는 수수께끼의 사건. 마을에 흘러들어온 정체불명의 인물인 유메미즈 키요시로자에몬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나선다.
- 번외편 형식으로 막말의 일본을 무대로 한 이야기들. 첫번째 "피카이치" 도난 사건은 전개와 복선, 동기와 결말 모두 납득할 만 하며 재치있게 꾸며진 이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작품. 두번째 보살 이야기는 돌 보살상을 일종의 "추"로 썼다는 일상계 소품인데, 작중 묘사된 보살상의 크기를 볼 때 완전 억지였습니다. 나무를 몇톤씩 하는 것도 아닐테고 말이죠. 마지막 에도에 등장하는 요괴의 정체에 대한 이야기는 완전 어이상실의 이야기였고.... 초반 분위기를 끌어주었더라면 별 세개는 줬을텐데 아쉽네요.

명탐정 키요시로 사건노트 7 - 4점
하야미네 카오루 지음, 에누에 케이 그림/대원씨아이(만화)

프롤로그 : 한여름밤의 괴담 - 교수와 세자매 및 기타 등장인물들이 모여 "괴담회"를 벌인다.
- 아하하하. 아주아주 유쾌한 인상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소품인데 "괴담"을 추리해서 그 진상을 밝힌다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네요. "피에 젖은 책상" 같은 조금은 유치한 괴담인데 추리를 끼워맞추는 것이 놀랍습니다!

Vol 7 : 트랩하우스의 숫자노래 - 유명 만화가의 저택인 "트랩하우스"에 초대받은 교수와 세자매는 파티 도중 만화가가 밀실 안에서 비명과 함께 실종되는 사건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연쇄살인!
- 굉장히 심각하고 진지한 전개라 낯설었던 작품입니다. 만화안의 만화안의 만화라는 액자 구성은 독특했고 중요 범인을 드러내는 트릭 - 왜 범인은 옥상으로 도주할때 엘리베이터 3층 버튼을 누르고 3층에서 내려 옥상까지 뛰어올라갔을까? - 도 괜찮은 편이지만 이야기가 따로 노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또한 무대 설정같은 것도 지극히 만화적이라 현실성이 떨어지는데 너무 복잡하고 작위적인 구성을 취함으로서 더더욱 전개가 산으로 간 것이 아닌가 싶네요. 그냥저냥한 수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