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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9

여섯 명의 거짓말쟁이 대학생 - 아사쿠라 아키나리 / 남소현 : 별점 3.5점

여섯명의 거짓말쟁이 대학생 - 8점
아사쿠라 아키나리 지음, 남소현 옮김/북플라자

'아래 리뷰에서는 트릭과 진범이 누구인지가 모두 설명되고 있습니다.'

하타노, 시마, 쿠가, 하카마다, 야시로, 모리쿠보의 명문대 졸업을 앞둔 취준생 6명은 가장 잘 나가는 신생기업 스피라링크스 최종 전형까지 살아남았다. 한 달 동안 6명은 마지막 관문인 그룹 토론을 준비하여 모두 함께 합격하자며 친해졌는데, 그룹 토론은 그들 중 딱 한 명만 투표로 선발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말았다. 토론장에서 여섯 명은 각각이 수신인인 수상한 봉투를 발견했고, 그 안에 각자의 과거 치부가 증거와 함께 들어있다는게 밝혀졌다. 이를 통해 투표는 순식간에 요동쳐서 원래 앞서가던 쿠가 등이 봉투 속 내용물로 뒤쳐지고, 하타노가 1위로 부상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봉투를 가져다 놓은게 하타노라는게 드러나 결국 시마가 1위로 스피라링크스에 취업하게 되었다.

그리고 8년 후, 하타노는 지병으로 사망했고 시마는 유품을 건네받았다. 유품은 시마가 진범이라는 일종의 고발이었다. 범인이 아니었던 시마는 충격을 받고, 과거 그룹 토론 멤버들과 다시 연락하여 사건에 대해 재조사에 나섰다. 이는 하타노가 끝까지 숨겼던 자신의 치부가 담겨있던 봉투 속 내용물이 무엇인지 두려워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취업 준비생들의 극심한 경쟁을 사회파 범죄 스릴러로 풀어낸 작품. 신입사원 공채에 대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으니 사회파 소설로 보아도 무리가 없겠지요. 얼마전 올렸던 추리 소설 추천 리스트에 있었는데 번역되어 있는지 몰랐습니다.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기쁜 마음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장점이라면 일단 독자를 흡입시키는 전개가 아주 탁월하다는 점입니다.

1부는 화자 하타노의 시점에서 전개되는데, 그가 범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범인으로 몰려 추락하는 상황이 긴장감있게 그려집니다. 또 그룹 토론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매우 흥미로우며, 특히 입사가 어려워지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긴장감은 눈부십니다. 단순한 그룹 토론을 통해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낸 솜씨가 정말 놀랍습니다. 이와 함께, 치열한 입사 경쟁이라는 현실도 강하게 느끼게 해줍니다.

2부에서의 입사에 성공한 시마의 시점으로 그녀의 조사를 통해 하타노의 결백이 하나씩 드러나는 과정도 무척 흥미롭고요. 이러한 시점의 변화는 캐릭터의 진실을 탐구하는 재미를 더합니다. 

작품 속 여섯 명의 취준생 캐릭터들도 처음에는 능력있고 선한 사람들로만 보였지만 이후 그룹 토론과 시마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약점(?)이 하나, 둘 씩 독자에게 제공되면서 마지막에 복합적인 인물들로 거듭난다는 점에서 좋았어요. 그동안 보아왔던 평면적인 인물들과는 확연히 다른 생생함을 보여주었으니까요. 작 중 언급된대로 '달은 지구에서는 표면밖에 보이지 않지만, '뒷면'이 엄연히 존재한다.'는걸 잘 드러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누가 비밀을 폭로하는 봉투를 준비했나?'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이 공정하면서도 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본격 추리물처럼 단서를 제공하고 범인을 빵 터트리는건 아니지만, 결정적인 단서로 '하타노가 음주를 하던 사진에서 '스미노프 보드카'가 술이라는걸 알아채지 못한 사람이 범인이다'는걸 독자에게도 알려주고, 이를 통해 술을 못하는 쿠가가 범인이라는걸 드러내는건 본격 추리물 못지 않았습니다. 하타노가 유언처럼 남긴 파일의 '범인, 시마 이오리에게'라는 수신인이 '범인 시마 이오리에게'가 아니라 '범인과 시마 이오리에게'라는 뜻이었다는 착안도 괜찮았고요. 하타노가 파일에 걸어놓은 암호도 범인이 쿠가이므로 '페어'였었죠.

또 괜찮은 서술 트릭물이기도 합니다. 시마의 인터뷰와 하타노, 시마 1인칭 시점으로만 다른 인물들을 묘사하여 야시로가 선뜻 장애인 석에 앉았고, 쿠가가 장애인 주차장에 차를 세웠고, 하카마다가 야구를 하던 어린 아이들에게 폭언을 하며 혼을 냈다는걸 드러내며 그들을 선한 사람들이 아니라 악하고 얄팍한 인물로 보이게 만듭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야시로와 쿠가는 장애가 있는 시마를 배려했던거고 하카마다도 할머니가 공에 맞을 뻔 해서 아이들을 혼냈고 나중에는 잘 타일렀다는게 드러납니다. 이렇게 독자를 착각하게 만들었다가 마지막에 반전으로 진상을 드러내는건 전형적인 서술 트릭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저도 깜빡 속았네요.

취준생들이 겪는 압박과 고통, 힘든 취업 과정에 대한 묘사도 빼어납니다. 읽다가 얼마전 제가 근무하는 부서에 입사한 신입사원이 합격 소식을 듣고 사람 많은 지하철에서 기뻐서 펑펑 울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그만큼 절박한 취준생 들의 심정을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불합리한 신입 공채에 대해서도 사회파 추리 소설이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로 잘 밝히고 있습니다. 단지 사측 입장이 아니라 취준생들도 거짓말쟁이라는걸 밝히고 있어서 균형을 맞추는 것도 좋고요. 물론 사측 문제가 더 커 보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하타노가 급작스럽게 사망하면서 그의 유품으로 시마의 진상 추적이 시작되는 2부는 다소 문제가 있습니다. 쿠가가 신입 공채 시험의 정당성에 의심을 품고 일부러 사건을 일으켰다는 동기가 불공정한 탓이 큽니다. 쿠가의 뛰어난 친구가 스피라링크스 2차에서 떨어졌는데 쿠가 본인은 최종 전형까지 합격한게 불만이라는 동기는 처음에는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뛰어난 친구 이야기가 잠깐 나오기는 하지만, 동기를 뒷받침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동기 자체의 설득력도 없어요. 쿠가의 말 그대로 치기어린 행동에 불과합니다. 한마디로, 철없는 아이의 장난과 다를바 없는 사건이라 와이더닛 측면에서는 낙제점을 줄 수 밖에 없네요.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쿠가가 하타노를 범인으로 몰아붙인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는겁니다. 쿠가가 신입 공채를 망치고 싶었다면, 범인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가 최후의 1인이 되든 상관없이 그룹 토론이 엉망이었다는것만 스피라링크스 인사팀이 확인하면 되었으니까요. 각자의 치부를 담은 봉투 안에 작은 협박문을 넣어서 알리바이를 조작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어차피 모리쿠보가 범인으로 몰리게 된 상황에서, 사진이 이상하다는걸 들먹이면서 각자의 알리바이를 확인하여 하타노가 범인일 수 있다는 식으로 끌고간 까닭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이전 술자리에서 술을 못하는 시마에게 술을 강권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에? 쿠가가 시마에게 특별한 감정이 있지 않는 한, 그렇게까지 큰 잘못으로는 보기 어렵습니다. 그 자리에 하타노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요.

또 시마가 확인한 그룹 토론 당시 동영상을 통해 모리쿠보와 야시로가 협박당했다는게 밝혀졌습니다. 이 당시에는 모두 취직이 급했으니 비밀을 공개하겠다는 협박은 통했을겁니다. 그러나 8년이 지나 모두 사회인이 된 현재 시점에서 이 시절 협박당했다는걸 드러내지 않은건 말이 안됩니다. 게다가 이들은 모두 하타노의 알리바이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협박을 받았다고 거짓말을 하여 하타노가 범인으로 몰리는걸 방조한 잘못이 있기도 하고요. 모리쿠보는 시마를 의심했고, 쿠가는 진범이었으니 그렇다쳐도 최소한 야시로는 시마를 만났을 때 그 사실을 충분히 밝혔어야 했습니다. 이 점은 이들 모두 알고보면 착한 사람들이었다는 반전을 약하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아울러 '공개되지 않은 시마의 비밀은 무엇인가?'라는 수수께끼는 좀 작위적이어서 실망스러웠습니다. 시마의 장애가 1부에서 아예 설명되지 않은 것도 탐탁치 않고요. 약간은 노리고 속인 느낌이 드니까요.

신입 공채에 대한 비판도 다소 과장되어 있습니다. 스피라링크스의 인사부장이 말한건 현실적이지도 않고요. 서류 전형과 면접, 여러가지 시험 등을 통해 나름 공정하게 사원을 선발하는게 당연합니다. 6명의 최종 입사 대상자들을 대상으로 그룹 토론해서 1명을 뽑아라? 이건 말도 안되요. 갑자기 성장한 회사라 제대로 체계를 갖추지 않았다는 변명이 실제로 통할리 만무합니다. 작가가 직장 생활은 해 보지 않은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건 분명합니다.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신입 사원 공채를 소재로 이런 작품을 쓸 수 있다는데 감탄할 수 밖에 없네요. 별점은 3.5점입니다. 쿠가가 하타노를 범인으로 몰지만 않았어도 별점 4점 이상은 충분했습니다.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보통 추리소설 추천 리스트는 믿지 않는 편인데, オモコロ(Omocoro)bros 편집부 추천은 믿음이 생기네요. 다른 작품도 번역이 되었는지 찾아봐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당연하게도 영화화가 되었더군요. 곧 개봉이라는데, 서술 트릭 쪽을 어떻게 영상화했을지 궁금합니다. 



2022/01/23

글록 - 폴 배럿 / 오세영 : 별점 3점

글록 - 6점 폴 배럿 지음, 오세영 옮김, 강준환 감수/레드리버

오스트리아의 자영업자 가스통 글록이 국방부 납품을 위한 새로운 권총을 1년 만에 만들어 납품에 성공한 뒤, 전 세계 권총 신업 패자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관련되었던 다양한 인물들과 여러가지 사건들을 설명하고 있는 논픽션입니다.

권총 글록이 아니라, 회사 글록의 성공담인데 과정은 눈여겨 볼 만한 부분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저 역시 성공을 꿈꾸는(많이 늦었지만) 직장인인 탓이지요. 책에 따르면 독창적인 구조로 새롭게 발명되었던 총으로 사격과 관리가 용이했다는게 가장 큰 성공 요인으로 설명됩니다. 특히 총에는 문외한이었던 글록이 1년 만에 권총을 만들어 오스트리아 국방부 납품 경쟁에서 승리했던 비법은 "그는 처음 만들어 봤기 때문에 제대로 해냈다. 기존의 제조업체들은 NIH 증후군 때문에 새로운 디자인을 수용하지 못했다. 그들에겐 기존 권총을 변형하면 되는데 굳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하느냐는 고집이 있었다." (Not invented Here : 자체 개발한 것이 아닌 기술이나 제품을 배격하는 배타적인 조직문화)"백지에서 시작했다. 그는 고객인 군 전문가의 말을 경청했다. 그는 고객이 요청하는 대로 수정해서 독창적인 것을 만들어 냈다. 그것도 적시에 해냈다."라는 건데, UX 디자이너로서 새겨들을만한 내용이었습니다. 암요, 고객의 목소리가 가장 중요한 법이지요.

하지만 뛰어난 발명품이라도 반드시 성공하는건 아닙니다. 성능면에서 앞섰던 베타가 VHS에게 졌던 역사처럼요. 심지어 글록은 플라스틱 사출물 구성품이 많고, 디자인이 별로였다는 약점도 있었습니다. 정말 못생기기는 했으니까요.

여기서 마케팅의 귀재 발터가 글록에 합류한게 대박의 시작이었던 걸로 설명됩니다. 경찰이 무장한 범인에게 다수 사망한 1986년 마이애미 총격 사건 이후 미국 경찰 전체를 대상으로 권총 교체 바람이 불었는데, 발터의 활약으로 글록 채택이 급증하게 되었거든요. 외부 안전장치가 없는 리볼버와 동일한 시스템을 채용했다는 구조적인 장점도 있었지만, 발터가 사격 교관들을 채용하여 글록에 대한 좋은 소문을 널리 퍼트렸던 덕분이지요. 글록을 구입하면 회사가 현장으로 교관을 파견하여 훈련을 도와주고, 다양한 보상 판매 정책을 실행한 것 역시 주효했었고요. 

헐리우드 진출도 빼 놓을 수 없어요. TV 시리즈 <<이퀄라이저>>에 첫 등장했는데, 이퀄라이저는 발터 PPK를 쓰다가 글록으로 바꿨다는 설정이었다네요. 발터는 "더티해리"로 대박을 친 S&W와 같은 역사를 만들어 주기 위해(아니면 제임스 본드의 발터 PPK) 다른 경쟁 총기업체와 다르게 접근했습니다. 경쟁업체는 영화 관계자에게 정가를 청구했고, 악당이 사용하는걸 거부했지만 글록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처음 등장하게 된 영화가 "다이하드 2"입니다. 용병 테러리스트의 무기로 글록이 등장하지요. 여기서 브루스 윌리스가 내뱉는 대사 - "저놈들 내게 글록7을 쐈어요! 뭔지 모르죠? 독일에서 만든 세라믹 권총이라고요. 엑스레이 기계에 걸리지도 않고 당신 한 달 월급을 줘도 못 산다고요!" - 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뒤 총기 마니아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듯한 슈퍼 권총을 의미하는 저 대사 내용은 모두 엉터리였지만요. 이후 승승장구한 글록은 대중 문화 영역에서 독보적 입지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로우 앤 오더"는 장편 글록 광고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요. 우리나라에서도 원빈이 "아저씨"에서 사용했고요.

이후 글록은 권총을 언급할 때의 고유 명사처럼 사용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글록은 권총계의 구글로 현대의 권총을 처음으로 정의한 브랜드이며, 가스통 글록은 20세기의 콜트인 겁니다!

발터의 신박한(?) 마케팅은 끝이 없었습니다. 1989년, 미국 총기와 탄약 산업 주요 컨퍼런스 SHOT에서 신형 글록 20을 공개하면서, 스트리퍼 샤론 딜런이 직접 홍보하도록 만든 광고가 대표적입니다. 아래 사진이 바로 그 광고입니다. "10점 만점의 인기 절정 (이 번역이 맞나요? 이 도시에서 가장 핫한 10! 이 맞지 않나....) SHOT 쇼에서 글록의 신형 10mm를 만나보세요." 라는 건데, 권총과 섹스를 결합한 전략은 잘 먹혀들었다고 합니다. 단순 홍보 뿐 아니라 실제 구매 대상자를 상대로 한 접대에서도요.

물론 글록에도 위기가 있었습니다. 1992년, 빌 클린턴 당선 이후 정부가 NRA와 대립하며, 여러가지 총기 규제 법안들이 발효되었던게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규제 법안 발효 직전, 앞으로 총을 못 살 수도 있다는 공포 심리에 의했던 총기 수요 폭증 효과도 보았고, 규제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신제품 출시로 오히려 글록의 매출은 상승했습니다. 클린턴 행정부의 담당자 쿠오모와 총기 업체와의 협상에서 S&W는 굴복하고 말았지만, 버텼던 글록은 NRA의 S&W 불매 운동의 수혜를 보았고요. 쿠오모는 글록이 합의하지 않으면 정부기관 매출 30%를 잃게될거라 협박했지만 글록은 굴복하지 않았고, 심지어 쿠오모 부처 감찰관실 감찰관도 글록을 구입했다니 애초에 이기는 게임이었던 겁니다. 부시 정권으로 넘어가서는 이런 규제는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여러가지 주변 상황을 고려했던, 경영진의 현명했던 판단이 빛납니다. 여러가지 소송을 쏙쏙 빠져나갔던 기발한 아이디어들도 볼거리였고요.

이렇게 마케팅과 경영진의 협상과 판단에 따른 위기 탈출 등은 전형적인 기업 성공담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NRA라는, 주요 소비자가 정치적 이익 단체이기도 한 비교적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기는 하지만요. 제가 어렸을 때 유행했었던, 도요타 등 일본 회사의 성공담을 그렸던 반쯤은 논픽션에 가까왔던 소설들과 비슷한 느낌이에요. 그러나 뒤이어 이런저런 막장 드라마가 불거지며, 글록의 성공담은 "시마 과장"으로 돌변해 버립니다. 대표적인게 1999년, 가스통 글록의 암살 미수 사건입니다. 70세라는 나이 치고는 건장했던 글록이 암살범을 제압해서 위기에서 벗어났으며, 이는 글록이 세금 탈루를 위해 고용했던 에베르트의 청부였다는게 밝혀지고, 이런저런 복잡한 돈의 흐름이 얽혀있는 영화같은 사건이었지요. 결국 글록은 구속된 에베르트는 물론이고, 글록의 성공을 위해 함께 했던 모든 직원들을 버리게 됩니다. 마케팅 귀재였던 발터는 진작에 회사를 떠났고, 미 정부의 규제에 맞서 현명한 판단을 했던 야누초 등 핵심 임원들 모두를요. 이 때의 동료들은 모두 말로가 좋지 못했다네요. 허나 가스통 글록은 82세 때 31살의 여성과 재혼했고, 여전히 거액의 재산을 누리며 잘 살았다고 합니다. 가스통 글록은 20세기의 콜트가 아니라, 현실 버젼의 시마 과장인 셈입니다. 시마 코사쿠보다 더 비열하고,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인간입니다만.

글록의 성공담도 볼 만 했지만, "시마 과장" 스러웠던 막장 이야기들도 모두 흥미로왔습니다. 한 편의 소설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재미있었어요. 문제는 '글록'이 이야기의 핵심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관련된 도판이나 설명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글록의 시대별 변천 과정과 히트 모델, 경쟁사 모델 등을 도판으로 소개해 주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겁니다. 이해도 쉬웠을테고요. 그래서 약간 감점하여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재미만큼은 확실하니, 총기에 대해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2008/07/12

파라노이아 - 조셉 핀더 / 박찬원 : 별점 2점

파라노이아 - 4점
조셉 핀더 지음, 박찬원 옮김/로크미디어

애덤 캐시디는 대기업 와이엇의 하급 직원으로 해고된 직장 동료를 위해 시스템을 조작해 거액을 융통했다가 들통난다. 그런 그에게 사장인 와이엇은 경쟁사 트리온 시스템에 입사하여 고급 정보를 빼내올 것을 명령하며 그 명령을 거부할 경우 애덤은 곧바로 감옥에 갈 상황에 처해 어쩔 수 없이 그 제안을 수락한다.

와이엇은 그에게 엘리트 사원으로 보이게끔 다양한 스파이 훈련을 시키고 갖가지 내부 정보를 알려 주고 그 덕에 애덤은 트리온에서 승승장구하며 트리온 사장 고더드의 신임을 받고 점차 진정한 인격자 고더드의 인품에 매료되어 와이엇을 배반할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드디어 추리 / 호러 관련 카테고리의 300번째 포스트입니다. 리뷰만을 다루므로 300권째 관련 카테고리 리뷰가 되겠네요. 6년여만에 300권째 포스팅이니 1년에 50여권씩 읽었다고 할 수 있는데 참 감개무량합니다^^  리뷰에 앞서, 일단 이 책도 역시 국내 굴지의 추리 사이트 "하우미스테리"의 이벤트를 통해 얻게 된 책입니다.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또한 하기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으니 참고하세요.

어쨌건, 닥치고 리뷰부터 하자면 이 책은 줄거리만 보셔도 아시겠지만 "산업 스파이물" 입니다. 산업 스파이로 선택된 주인공의 이력이 좀 특이하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이야기이죠. 그런데 읽으면서 많이 실망스러웠습니다. 치밀한 부분보다는 예상된 수순에서의 전개와 결말을 이끌어 내기 위해 무리수를 많이 둔 느낌이 강하거든요. 또한 와이엇과 트리온이라는 두 회사를 절대악과 절대선에 비유하여, 주인공이 절대선 앞에서 고뇌하는 전개 역시 많이 뻔하고요. 킬러가 암살 대상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와 별로 다를 것도 없었거든요. 애덤의 승승장구하는 과정 역시 현실에 기반하지 못한 만화같은 느낌이 물씬 묻어났습니다.

무엇보다도 마지막 반전의 허탈함이 가장 문제로 보입니다. 절대선이 사실은 절대악을 능가하는 절대악이었다는 것은 아무리 봐도 설득력이 떨어졌거든요. 작중에서 꽤 산전수전 다 겪은 여우로 나오는 와이엇이 고더드의 가식 뒤에 숨겨진 진짜 모습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이정도 업력이면 이미 업계에 소문이 나도 엄청나게 퍼진 것이 당연할텐데 말이죠. 이러한 세세한 부분에서 작중 계속 보여주는 고더드의 연기(?)를 효과적으로 설명하고 있지 못하기에 반전 자체의 충격은 잠시 있지만 그것이 유지되지 못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이 정도로 독자를 설득시키려 하는 건 무리죠. 무협지에서 뜬금없이 죽은 아버지의 원수가 사부였다! 라는 정도 수준이랄까요.

물론 무리수를 두긴 했지만 결말의 반전 덕분에 스토리가 명쾌하게 정리되고 주제의식을 드러내긴 합니다. 그러나 반전 직후 작가가 주인공 애덤의 시각을 빌어 말하는 기업과 직원과의 관계, 즉 직원은 기업에 속한 소유물이 아니라는 생각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직원은 어떻게 보면 월급을 주는 회사의 소유물이 맞기 때문이죠. 그게 싫다면 회사를 다니지 말고 평생 자유인으로 가난하게 살아가던가... 때문에 이야기 자체는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지만 직장생활을 10년이상 한 저에게는 환타지 소설과 같이 현실성 없는 이야기일 뿐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시마과장"이 산업 스파이로 나오는 기업 환타지랄까요... 아니, 차라리 시마과장 쪽이 더 현실감 있어 보일 정도에요.

한마디로 전형적인 헐리우드 스릴러로 별점은 2점입니다. 제가 직장인이기에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결코 공짜로 읽었다고 생각보다 높은 점수를 주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책 뒷커버를 보면 영화화가 진행중이라고 선전하고 있으며 영화화한다면 나름 2시간 동안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작품이긴 한데 정작 imdb에는 관련 정보가 뜨지 않는군요. 판권만 팔린 것 같은데 이런건 과장 광고가 아닌가요?

2012/10/27

샤프를 창조한 사나이 - 히라노 다카아키 / 박영진 : 별점 1점

샤프를 창조한 사나이 - 2점
히라노 다카아키 지음, 박영진 옮김/굿모닝북스

일본 샤프의 창업자이자 "샤프 펜슬"을 발명한 하야카와 도쿠지의 일대기.

빈민촌 혼죠 후카가와에서 자라며 가혹한 새어머니의 학대에 시달린 유년 시절, 소학교 중퇴 후 시작한 도제생활, 스승의 사업 실패 후 야시장 장사까지 해 가며 보은, 독립의 시작이 된 특허 상품 벨트 버클 도쿠비죠 개발,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친가족과 재회, 최초의 샤프 펜슬 탄생, 성공의 와중에 닥친 관동대지진으로 전 가족을 잃은 일, 이후 라디오로 재기 성공.... 등의 이야기가 담담하게 펼쳐집니다.

그러나 흔해 빠진 용비어천가식 미담에 불과합니다. 당대 인물들 중 고생 안 해본 사람은 없을 터라 고생담이 딱히 와닿지도 않지만, 뛰어난 장인으로 기술에 특화된 인물이라는 점도 특별함을 느끼기 힘들었습니다. 당시 일본 기업가들 대부분이 마찬가지였을테니까요. 이야기 중 친구이자 라이벌이라고 소개된 마쓰시타 고노스케 역시 마찬가지잖아요? 소니의 이부키 마사루도 그렇고.

지진으로 모든 가족을 잃은 상처가 있다길래 순애보 같은 개인사를 기대하기도 했는데, 내연의 처와 평생을 함께 했으며 정작 하나 뿐인 딸은 또 다른 애인이 낳았다는 시마 과장스러운 가족사도 역시나 싶더군요.

그나마 조금 특이한 것은 바보스러울 만큼 착했다는 점인데, 기업가로서의 성공에는 발목을 잡을 뻔한 일이 많은 만큼 본받을 일은 전혀 아니더라고요. 뭐, 이러한 일화도 굉장히 과장되었을 것이라 생각되긴 하지만요.

어쨌거나 샤프 자체가 무너져버린 지금 읽기에 적합한 책은 아니며, 딱히 남는 것도 없는 전형적인 1세대 기업가 성공담이었습니다. 회사에 굴러다니기에 읽었지만, 이런 케케묵은 성공담보다는 차라리 "소니 침몰"처럼 샤프의 몰락을 다룬 책이 더 재미있고 유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2025/09/05

전원 범인, 하지만 피해자, 게다가 탐정 - 시모무라 아쓰시 / 남소현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카가와에서 만든 전기 자전거의 결함으로 사람이 죽은 뒤, 회사에는 비난이 폭주했다. 그 때문인지 시카가와 사장이 목을 매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사장과 관계가 있는 일곱 명의 남녀가 한 폐쇄 공간에 갇혔다. 그들을 가둔 '게임 마스터'는 그들 중 시카가와 사장을 죽인 범인만 살려주겠다며 48시간을 주었다. 사고를 기사화하며 시카가와를 비난했던 기자 카미사와, 피해자 대표 유메코, 사장의 아내 카나에, 시카가와의 부장 린도와 과장 이시와다, 사장의 운전사 쿠라모치와 청소부 하야시의 일곱 명은 서로 자신이 범인이라며 지은 죄를 고백하기 시작했다.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가 시모무라 아쓰시의 장편입니다. 

닫힌 공간, 클로즈드 써클에서 범인을 찾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는건  "방주"와 비슷한데, 이 작품은 "전원 범인, 하지만 피해자, 게다가 탐정"이라는 제목의 상황을 잘 구현했다는 차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줄거리의 상황에 놓인 탓에, 일곱 명의 시카가와 사장 관계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각자 자신이 범인이라며 자백을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보도, 증거 날조, 거짓 증언 등으로 '심리적인 압박'을 주어서 사장을 자살하게 만들었다고 했지만, 자연스럽게 사장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 자신이 살해했다는 자백으로 이어지지요. 즉 모두가 '범인'입니다. 그러나 자백한 사람 외의 다른 사람들은 그 자백에 허점이 있다고 지적하며 자백을 격파하여, 자연스럽게 탐정 역할을 분담하게 됩니다. 즉, 모두가 '탐정'인 거지요. 마지막에는 한 명만 살아남고 전부 죽음으로써 모두 피해자가 됩니다. 

이 과정에서 펼쳐지는 추리적인 부분도 흥미를 자아냅니다. 시카가와 사장의 사망은 그의 사무실에서 발생했고, 이 사무실은 항상 CCTV로 감시되고 있었기에 자살이라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등장인물들이 범인이 되기 위해서는 밀실 살인을 일으켰어야 했기 때문에, 이 밀실 살인의 트릭을 파헤쳐나가게 됩니다. 처음에 CCTV를 피해 사무실에 들어간 트릭에서 시작해서, 어떻게 사장을 살해했고, 어떻게 나왔는지를 다른 사람의 자백을 들은 뒤 문제점을 지적하고, 자신은 더 정교한 트릭을 구성해서 '내가 진짜 범인이다'라고 주장하는 방식으로요. 여러 명의 추리가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독 초콜릿 사건"도 떠오르네요.
진범이 사용했다고 여겨지는 트릭도 단순하면서 실현 가능성이 높아 만족스럽습니다. 사장실 문을 열면 CCTV가 가려져 사각지대가 생기고, 탈출할 때는 녹화를 약 30초간 멈춘 뒤 재개되도록 설정(여러 시간 동안 동일한 장면만 촬영한터라, 조사하는 사람도 배속 재생해서 보기 때문에 30초는 눈치채기 어렵다)해서 그 사이에 탈출했다는 트릭입니다. 두 개 모두 기술적으로 과하지 않으면서도 실제로 가능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외의 자백에서도 유메코가 주장한 '냉장고에 숨어 있었다'는 트릭은 기발했습니다.

아울러 유일하게 실질적인 죄를 짓지 않은 카미사와(과장되게 비난했고, 정보 제공자 쿠라모치에게 금품을 건넨 실수는 했지만 보도가 잘못된 것은 아니므로)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죽어 마땅한 죄를 지어서 죽었다는 결말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스러웠다는 점에서 고전 추리 소설에 대한 오마쥬 느낌도 전해줍니다. 작가의 전작도 다른 작품의 영향이 짙게 느껴졌는데, 이런 스타일의 작법을 즐겨 하나 보네요.

하지만 이야기의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지나치게 작위적인 탓입니다. 일곱 명이나 되는 성인들이 선뜻 폐쇄 공간에 모여 무려 이틀 동안이나 목숨을 건 추리 게임을 펼친다는게 과연 현대 사회에서 가능할지 의문이에요. 핸드폰 전파 신호가 닿지 않는다는 것 부터가 억지니까요.
그뿐만 아니라 중간에 등장하는 어린아이의 난입, 현재 진행 중인 게임이 알고보니 경찰이 탐정들을 고용해 만든 '연극 무대'라는 설정도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고 불필요했습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가상가족놀이"와 흡사한 설정인데 그만큼의 동기나 반전이 있지도 않습니다. 연극이라는 장치는 빼고 진짜 게임으로 밀고 가는게 훨씬 더 긴장감 넘쳤을 겁니다.
게다가 연극 속에서 등장한 카미시마가 사실 진짜 사장이었고, 사망한 인물은 사장의 쌍둥이 동생이었다는 결말은 억지의 화룡점정입니다. 경찰 수사를 너무 우습게 보는거 아닌가요? 카미시마가 다른 피해자들을 단검으로 살해해서 살아남았는데, 이를 린도에게 뒤집어 씌웠다는 진상도 불필요한건 마찬가지고요.  

설명도 부족합니다. 일곱 명이 시카가와 사장이 무고하게 비난받게 된 원흉이라는걸 시카가와 사장이 알아낸 이유가 설명되지 않습니다. 아내의 불륜, 회사 과장 이시와다의 거짓 증언, 운전사 쿠라모치의 증거 조작은 알 수 있었다고 해도, 하야시의 경우는 실제로 크게 드러난 잘못을 하지 않았습니다. 피해자 대표 유메코의 아버지가 실제로는 자전거 결함으로 죽은게 아니었다는 것, 카나에의 불륜 상대가 린도였다는 것 역시 알아내기 어렵고요.
작 중에서는 그들을 가둔 건물을 사장실 구조로 만든게 아니라, 그 건물 구조로 사장실을 리모델링했다고 설명되는데 그렇게 오랜 기간을 들여 몰래 이런 계획을 구체화했다는 것도 말이 안됩니다. 한참 회사가 비난받고 있는 와중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트릭의 구조나 설정은 흥미롭지만, 전체적인 전개가 지나치게 작위적이며, 결말은 억지스러운 반전이 도드라집니다. 흥미는 있지만 추천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작가 작품은 다시 볼 일은 없을 듯 합니다.

2005/04/12

헬로 네즈미 - 히로카네 켄시 : 별점 2.5점

헬로 네즈미 28 - 6점 켄시 히로카네/대원씨아이(만화)

아카츠카 탐정 사무소라는 탐정사에서 근무하는 일명 "고슴도치"인 고로와 그의 동료인 전 도박사 출신 큐사쿠, 통칭 "구레"를 중심으로 한 사무소의 멤버들이 펼치는 옴니버스 드라마입니다.

작가의 대표작인 "시마과장"은 이래저래 욕도 많이 먹고 문제도 많은 작품이긴 하지만 작품 자체를 끝까지 읽게 하는 통속적인 재미 하나는 대단하지요. 이 작품 역시 그러한 재미만큼은 상당한 수준입니다. 
그러나 작가의 스타일이라고는 해도, 감수성에 치우친 드라마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더군요. 눈물이 너무 많고 사랑도 너무 많은 순정파적인 전개라, 2000년대에 보기에는 짜증날 정도였거든요. 거기에 그림체 역시 전통 극화체에 가까운 탓에 뎃생력과 구성력은 나무랄데 없다 하더라도, 역시나 요즘 독자들에게 어필하기는 좀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대로 내용 자체는 재미있습니다. 눈물 쏙 빼놓는 에피소드들 뿐만 아니라 웃기는 이야기에서 대하 액션, 거기에 괴담과 사극, SF까지 통통 튀는 전개는 옴니버스 캐릭터 극의 장점을 잘 살린 이야기로 보여지며, 어느정도 성공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추리물도 포함해서요. 물론 "인간 교차점" 스타일의 드라마들은 좀 지루한 맛도 없지 않습니다만....

추리적으로 본다면 탐정 사무소의 탐정이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의뢰들어오는 사건은 단순한 조사나 사람 찾기 같은 일(이게 물론 현실적인 것이라는 것은 인정합니다)이 비중있게 다루어지는 탓에 관련 에피소드가 많지는 않습니다. 전 29권 분량 중에서 진정 "추리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부분은 별로 없어요. 하지만 소수 정예인지 나름대로는 제법 재미있는 이야기가 몇 개 있습니다. 특히 감금장소나 스토커 잠복 장소를 알아내는 실질적인 조사 방식은 개인적으로는 높이 평가합니다. 꽤 현실적이면서도 나름 추리적 요소가 괜찮거든요.

그러나 중반이후에는 소재고갈인지 너무 이야기가 비약해 버려 실망스러운 에피소드가 많습니다. "심령퇴마물", "흡혈귀", "UFO" 에피소드들은 사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에요. 또 일상적인 이야기와 단순 범죄 사건에서 상당한 스케일의 범국가적 스파이 액션까지 다루므로 이야기의 고저가 심해서 적응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그래도 일단은 평균정도의 재미는 가져다 주는 만화입니다. 별점은 2.5점. 지금은 구하기가 쉽지 않고 일본에서도 대표적인 보수 우익 취향의 만화가로 알려진 히로카네 켄시의 작품이라 앞으로도 구해 볼 생각도 없지만 그냥저냥 지나다가다 눈길한번 줄 만 합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추리물"로 보기에는 문제가 있을 듯 하군요.

PS : "아"로 시작하는 탐정 사무소 이름때문에 전화번호부에서 찾아보고 제일 위에 있어서 의뢰한다는 고객들 에피소드가 꽤 많더군요. 가가 탐정 사무소도 실패한 전략은 아닌 듯....

에피소드 중 추리물을 뽑아본다면

5~6권 - 고로의 애인인 란코의 아버지가 관련되어 있던 비리에 대한 에피소드 :
이 에피소드는 일종의 정경유착에 따른 거대한 음모를 다루고 있는데 킬러까지 등장하며 과격한 액션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로 정경유착에 관한 디테일이 굉장히 좋습니다. 추리적으로는 다이잉 메시지 해독이 등장하는데 꽤 괜찮습니다. 좀 더 소규모의 음모였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오버하는 경향이 있어서 약간 아쉽지만 재미있는 에피소드였습니다.

7권 - 기억상실중에 벌어진 살인사건을 다룬 "공백의 격류" :
십수년전에 살인을 저지르고 사고로 당시의 기억을 잃어버린 의뢰인의 과거를 조사하는 에피소드로 만화에 딱 어울리는 단서들과 내용전개가 독특하며 마지막 반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8~9권 - "유괴" 에피소드 :
한 대기업의 데릴사위 사장이 내연의 아내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유괴당해 탐정 사무소에 도움을 요청하는 에피소드입니다. 돈을 주고 풀려나기는 하지만 사회적 응징을 위해 유괴범을 조사하여 소재를 파악하는 과정이 현실적이면서도 흥미진진합니다.

14권 - 연쇄 살인마 이야기인 "빨간색의 혼란" :
싸이코 연쇄 살인범 이야기인데 내용 전개는 뻔하지만 꽤 재미있더군요.

14권 - 정체모를 인물이 가입한 보험금을 타게되는 한 주부의 에피소드인 "정체불명의 사례" :
어느날 아무 생각 없이 베푼 선행으로 보험금을 받게되는 한 주부, 그리고 그 보험금에 얽힌 진상을 파헤치는 이야기로 정통 추리적 요소가 많으면서도 내용 전개도 깔끔하며 반전도 상당히 괜찮은 에피소드입니다.

16~17권 - 의학교수와 브로커가 관련된 스캔들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진상을 다룬 에피소드 :
범행 장소와 공개된 장소 양쪽에서 동일 시간대에 존재하는 알리바이 트릭을 파헤치는 에피소드로 트릭은 생각외로 시시하지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과정이 꽤 재미있습니다.

19~20권 - 한 여인의 완벽한 복수극을 다룬 "의문의 편지" :
자신이 살해될 것을 예상한 한 정치인의 정부가 펼치는 완벽한 복수극인데 시한 장치를 이용한 편지 발송 트릭이 등장합니다.

20권 - 모닝콜을 통한 알리바이를 파헤치는 "모닝콜" :
아침에 모닝콜을 받았다는 용의자가 그 시간에 절도를 행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내는 것인데 사실 굉장히 간단하긴 하지만 일상적으로 쓰이는 소재를 트릭에 이용하는 발상을 높이 평가하고 싶네요.

24권 - 일본 전통 이야기에 대한 숨은 진상을 파헤치는 "사랑밖에 난 몰라" :
일종의 번외편으로 에도시대에 있었던 방화사건에 관련된 진상을 풀어내는 이야기입니다. 이 원전격 이야기를 잘 몰라서 몰입은 쉽지 않았지만 역사 추리물 적인 요소가 강하고 트릭과 전개도 재미납니다.

26권 - 한 여인의 밀실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긴머리의 여인" :
시체 이동을 통해 자살로 위장된 한 여인의 살인 사건을 다루는 이야기로 전편을 통해 가장 독특한 트릭이 등장합니다. 현실감은 왠지 많이 떨어지는 트릭이지만 발상이 무척 기발하며, 사건의 발단이 되는 단 하나의 단서를 쫓아 현장 조사 등을 통해 범인을 밝히는 과정이 좋습니다.

29권 - 도쿠가와의 매장금을 찾는 "보물 찾기" :
암호 트릭이 등장합니다. 암호 자체의 수준은 평이하고 일본어를 좀 알아야 해독할 수 있어서 아쉽지만 너무 어렵지도 않고 나름의 바탕이 있어야 풀 수 있어서 꽤 재미있는 암호로 보입니다.

2010/12/07

007 Gold Finger (1964) - 가이 해밀턴 : 별점 2점

M의 지시로 본드는 CIA 친구 펠릭스와 함께 오릭 골드핑거를 감시한다. 그러나 본드 때문에 사기 카드게임을 망친 골드핑거는 본드의 유혹으로 자신을 배신한 질 매스터슨을 온몸에 금박을 칠해 살해했다. 골드핑거의 금 밀수 방법을 알아내라는 지시에 더해 개인적인 복수심으로 무장한 본드는 골드핑거를 쫓아 스위스로 향했다. 
결국 사로잡혔지만 본드는 기지를 발휘하여 골드핑거가 계획하는 "그랜드슬램 작전"의 전모를 파악해 내는데...

역시나 "007 제임스 본드의 과학" 때문에 연달아 달리게 된 숀 코넬리 주연의 007영화입니다. 007 영화 중에서도 흥행이나 재미면에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작품이기도 하죠. 원래는 시리즈 두번째 작품 "from with Russia Love"를 볼 까 했는데, "골드핑거"의 평이 워낙 좋아서 먼저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많이 당황스러웠어요. 007이 너무나 하는게 없거든요. 007은 여자를 사로잡는 마성 이외의 능력은 전무한, 시마 과장 같은 캐릭터로 묘사됩니다. 같이 있는 여자들 하나 지키지 못하고 죽게 만들 뿐 아니라, 특수 장비가 부착된 본드카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평범한 차로 쫓아오는 악당들에게 사로잡힐 정도로 무능해요. 마지막 위기도 마성으로 사로잡은 본드걸 푸시의 배신과 더불어 순전히 운으로 극복할 뿐이고요. 이래서야 이게 특수요원인지, 동네 날라리 형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네요. 뭐 이러한 마성이 능력이라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게다가 그랜드슬램 작전으로 죽은줄 알았던 군인들이 깨어나는 장면은 그야말로 한편의 코미디 그 자체였습니다. 한 마디로 너무 허술합니다! 뭐라 더 할 말이 없어요.

건질거라고는 황금칠하여 죽은 미녀와 한국인 캐릭터 오드좁의 색다른 매력 밖에는 없습니다. 이 영화 탓에 "피부에 황금칠을 하면 피부 호흡이 중단되어 질식사 한다""비행기 안에서 구멍이 생길경우 압력차로 밖으로 빨려나가게 된다"는 도시전설이 널리 퍼졌다는데, 이것도 건졌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 두개의 도시전설에 대해서는 "007의 과학"에서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높은 평가의 이유는 악당인 오릭 골드핑거의 색다른 매력, 그리고 세계 금 시장을 붕괴시킨다는 남다른 음모 덕이 큰 듯 합니다. 자기 자신의 재산 증식을 위한 악의 음모라는 내용은 지금 보아도 현실적이긴 하니까요. 단 자동차를 이용한 금 밀수로 이미 몇 배 남겨 짭짤하게 벌어먹는 그가 대관절 왜 이러한 큰 범죄를 벌이려는지도 모르겠고, 핵도 있고 비행기로 독약도 살포할 수 있는데 핵폭탄을 투하할 생각은 왜 하지 못했는지는 영원히 의문으로 남지만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 1점을 주어도 마땅하나 흘러간 시간을 고려하여 별점을 조금 더 줍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왜 이렇게 높은 평가를 받는지가 영원히 미스터리로 남을 것 같습니다.

PS : 영화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007리포트(3) : "골드핑거">를 참고하세요.

2013/05/28

냉장고에 사랑을 담아 - 아토다 다카시 / 유은경 : 별점 2.5점

냉장고에 사랑을 담아 - 6점
아토다 다카시 지음, 유은경 옮김/행복한책읽기

단편의 명수 아토다 다카시의 단편집. 책 소갯글을 보니 첫 단편집이라고 하네요. 좋아하는 작가인데 그간 놓치고 있다가 뒤늦게 읽게 되었습니다.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냉장고에 사랑을 담아
취미를 가진 여자
가장파티
해초
기묘한 나무
행복통신
미지의 여행
나는 먹는 사람
밤의 진주조개
에너지 법칙
노래를 잊어버리지 않는 앵무새
진실은 강하다
내기에 미친 부인
마음의 여로
유령과 만나는 기술
홈 스위트 홈
최후의 배달인
공포의 연구

460페이지 분량의, 그렇게 두껍지 않은 책임에도 수록작은 18편이나 됩니다. 작품들의 밀도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겠죠? 가장 짧은 작품은 4페이지에 불과합니다. 

일단은 기대만큼 유머러스하면서도 서늘함을 안겨다주는 반전을 지닌 작품이 많아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역시나 "단편의 명수"이자 "기묘한 맛"의 대표 작가다웠어요.

또 다른 특징으로는 70년대 작품답게 확실히 옛스럽다는 것으로 예를 들어 "마음의 여로"는 "유니버셜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에 실린 단편 "Ω의 성찬"과 동일한 소재이지만, "Ω의 성찬"의 적나라한 묘사와 자극적인 느낌은 전무하고 여백 가득한 묘사로 그려집니다. 때문에 시종일관 전개와 반전에서 상상력을 동원할 필요가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직접적인 돌직구 스타일 현대물보다 이러한 고전적인 분위기가 훨씬 좋았습니다.

그러나 이 작가의 단편집 모두가 그렇듯 수록 작품들의 편차가 존재한다는 것은 단점입니다. 모든 작품이 아주 뛰어나지는 않아요. 또, 지금 읽기에는 반전들도 조금 낡기는 했습니다. 예를 들어 "기묘한 나무"의 핵심 반전인 성형수술, "나는 먹는 사람"과 "마음의 여로"의 식인 행위, "에너지 법칙"에서 주인공이 쥐의 먹이가 될 것이라는 결말 등은 솔직히 뻔했습니다. 아울러 "나폴레옹 광"이나 "방문자" 같은 작가의 대표작이 실려 있지 않다는 점도 감점 요인이고요.

그래도 지금 읽어도 여전한 힘을 지니는 작품도 많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작품을 들자면 "가장파티", "행복통신", "유령과 만나는 기술"의 세 편입니다.

"가장파티"는 아내의 사망 후 내리막길을 걷는 샐러리맨이 아내와 꼭 닮은 술집 여자를 만나 회사 가장파티에 데려간다는 내용입니다. 마지막 딱 몇 줄로 정리되어 폭로되는, 사실 아내는 사장의 정부였다는 냉혹한 현실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시마 과장"의 곤도가 떠오르는 이야기였어요.

"행복통신"은 구조조정을 앞둔 주인공에게 기이한 투자 관련 전화가 온다는 이야기인데, 전화를 건 이유를 수학적으로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솜씨가 좋았고요.

"유령과 만나는 기술"은 기원전 15세기의 크레타를 무대로, 뫼비우스의 띠를 이용하여 죽은 자와 통신한다는 내용을 진짜처럼 천연덕스럽게 묘사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합니다. 작가의 폭이 상당히 넓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어요. 하긴... 역사 소설도 많이 쓰긴 했죠.

그 외에도 "기묘한 맛"의 원조 격인 스텐리 엘린, 로얼드 달 스타일 가득한 "해초"라던가 "노래를 잊어버리지 않는 앵무새"도 서늘한 맛만큼은 충분했습니다.

덧붙이자면 기이할 정도로 먹는 것에 집중한 작품이 많다는 것도 독특한 점이었습니다. 먹는 것 자체가 주제인 "나는 먹는 사람"이 대표적인데 식인 행위를 다루고 있음에도 너무나 맛깔스럽게 묘사해서 입에 군침이 돌 정도였어요. "나폴레옹 광"도 오징어포에 대한 묘사가 남다른데 작가가 음식을 정말 좋아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작가의 대표작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기묘한 맛" 팬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2010/08/07

50년 세계 전자 시장을 지배한 Sony 4인의 CEO - 존 네이던 : 별점 3점


창업부터 20세기 끝자락까지 약 50여년간 소니에 재직했던, 그리고 재직 중인 4인의 CEO - 창업자이기도 한 이부카 마사루와 모리타 아키오, 그리고 모리타의 후계자 오가 노리오, 4대째인 이데이 노부유키 - 에 대해서 방대한 인터뷰와 자료 조사를 통해 서술한 일종의 평전. 
아날로그 시대의 전문 기술자였던 이부카 마사루와 이 책이 쓰여졌을 당시 CEO로서의 입지를 다지는 단계였던 이데이 노부유키보다는, 소니를 진정한 국제 회사로 만든 모리타 아키오와 소니를 세계적 회사로 키워낸 오가 노리오에 대한 이야기가 많더군요. 저자가 미국인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소니 미국 법인 이야기의 비중도 상당하고요.

인상적이었던 것이 몇 가지 있었는데,  첫번째는 소니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맨 주먹으로 맨 땅에 헤딩하면서 만든 회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창업 당시부터 일본 정계의 실력자였던 이부카의 장인과 양조 회사로 큰 돈을 번 모리타의 아버지 등에게서 돈을 포함한 여러가지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죠. 이부카의 기술력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현실은 다 이런가 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소니가 생각보다도 더욱 지저분한 인간관계, 흡사 "시마 과장"에 등장할 법한 전형적인 일본식 파벌과 조직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모리타의 동생과 아들이 소니에서 한자리 차지하는 것은 물론, 오가 노리오는 모리타가 전략적으로 키워 후계자로 삼은 인물이었고 이데이가 후계자가 되는 과정도 파벌이 큰 역할을 차지한다는 점 등이 그러합니다. 모리타의 아내가 모리타 사후에도 '레이디'라 불리우며 실력을 행사한다는 내용도 마찬가지고요. 짤막하게 언급되는 이부카의 불륜이나 모리타의 호색 행각도 어디서 많이 본 듯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데이의 미래 비젼입니다. 생각보다 그럴싸해서 놀랐습니다. 90년대 후반에 이미 '네트워크'가 미래의 중심이 될 것을 예측하고 사업을 재편하는 것으로 그려지거든요. 미래 비젼대로 소니가 CBS - 콜롬비아로 확보한 콘텐츠와 기존의 디바이스 기술력을 네트워크와 결합시켰다면, 현재 모바일 디바이스는 물론 웬만한 홈 씨어터 제품군까지 소니가 석권했을겁니다. 그런데 도대체 중간에 무슨 삽질을 했는지 모르겠군요. 전에 읽었던 "소니침몰"에서 소니 침몰의 큰 원인 중 하나로 리더인 이데이 노부유키의 잘못된 판단을 들고 있는데,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보다, 제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는걸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벤처 중소기업이긴 하지만 IT 단말회사에서 일하는 탓에 많은걸 느낄 수 있었거든요. 그야말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내용이 그만큼 많았습니다. 요약하자면
1. 사장이 기술자인 회사에는 가지 마라.
(기술자 출신인 것은 좋지만 사장의 입장에서는 '경영'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2. 사장에게 너무 많은 권한이 집중된 회사에는 가지 마라.
3. 비젼을 보여주지 못하고 일만 시키는 회사에는 가지 마라.
4. 그래도 이런 회사에 다닌다면, 줄을 잘 서라.
입니다. 진작 읽었어야 하는건데...혹 이쪽 바닥에서 근무하시거나 근무하실 생각이 있으신 분들은 꼭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많은 걸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22/12/25

엔진의 시대 - 폴 인그래시아 / 정병선 : 별점 3점

엔진의 시대 - 6점
폴 인그래시아 지음, 정병선 옮김/사이언스북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자동차들에 대해 시기별로 소개해주는 책.
그 자동차를 만든 주역이 누구인지와 함께 자동차가 출시되었던 당시 상황, 사회적 분위기를 엮어서 성공했다면 왜 성공했는지, 실패했다면 왜 실패했는지와 그 외 어떤 후폭풍(?)을 불러 왔는지 등 관련된 이야기를 무려 47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15편의 이야기를 통해 상세하게 설명해 줍니다.
당대를 대표했고, 큰 인기를 끌었던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읽다보니 시대와 트렌드, 유행이라는 것에 대해 식견을 넓힐 수 있었었어요. 자동차야말로 소비재의 끝판왕 격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요. 미국 중심의 이야기라는 한계가 있고, 소개되는 도판과 책의 편집이 그닥이라는 점은 아쉽지만 여러모로 독서였습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15편의 소개 중 인상적이었언 몇 편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짤막하게 소개드리며 리뷰를 마치겠습니다.

<<모델 T대 라살>>
자동차를 일반인도 소유할 수 있게 한 포드의 모델 T의 등장, 그리고 곧 돈이 있는 사람들은 고급진 무언가를 찾게 되었지만 모델 T의 디자인 개선을 등한시했던 포드가 시장을 잃는 과정이 소개됩니다. 모델 T의 개발 과정도 상세하지만, 무엇보다도 헨리 포드에 대한 보다 깊이있는 접근이 돋보였습니다. 자존감이 높은 독재자로 그가 벌였던 여러 행각이 가감없이 소개되며, 차를 개발했던 인물 중심으로 서술되는 책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려줍니다. 조금 놀랐던건 모델 T는 완벽해서 더 개량할게 없다고 포드는 믿었다는데, 소개되는 내용을 보니 실제로도 그러했다는 점입니다. 보기에는 아름다웠던 라살이 지금은 거의 잊혀진 차라는 것도 그 사실을 증명하지요.

<<쉐보레 콜벳>>
제네럴 모터스가 업계 최초로 자동차 디자인을 강화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얼의 등장, 매년 디자인을 바꿔 차를 출시하고, 양산하지 않는 프로토타입 개발 등의 혁신적인 조치로 자동차 업계를 리드하는 과정과 콜벳의 아버지 아르쿠스-둔토프와 콜벳의 성공적인 역사를 알려줍니다. 얼은 독재자였지만 확실히 시대를 읽는 눈은 있었나봐요.
"학교를 지나치는데 아이들이 휘파람을 불며 환호하지 않으면 다시 제도판으로 돌아가야 한다."
는 말은 새겨들을 명언입니다.

<<1959년식 캐딜락>>
쉐보레의 업계 선두 지위를 빼앗아 온 크라이슬러의 '테일핀' 전성 시대에 대한 이야기가 그려집니다. 쉐보레가 따라할 수 밖에 없었던 테일핀의 탄생과 그 유행에 대한 이야기인데, 정말로 암 런 맥락이 없더군요. 쓸데없지만 멋있다고 생각되어 유행한 경우인데, 아무래도 2차 대전 후 고도 성장기를 맞아 풍요와 화려함을 상징하는 무언가가 필요했던게 아닌가 싶네요. 그걸 대표하는게 바로 엘비스의 핑크 캐딜락이기도 하니까요.

<<폭스바겐 비틀과 마이크로 버스>>
테일핀과 같은 화려함과 속물 느낌의 감성과 반대되는, 그래서 지식인들의 아이콘이 된 폭스바겐의 비틀과 마이크로 버스의 탄생과 2차 대전 후 하인츠 노르트호프가 회사를 이끌며 살아남아서, 결국 미국 시장까지 진출 후 성공하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전후 폐허 상태에서 복구하는 폭스바겐의 분투도 볼만했지만, 무엇보다도 미국에서의 성공적인 광고 프로모션이 기억에 남습니다.

<<쉐보레 콜베어 : 소비자의 반란>>
에드워드 콜이 주도했던, 미국인을 위한 비틀이었던 콜베어의 탄생에서 시작하여 콜베어의 오버스티어링 문제 (뒷바퀴 미끌림)로 변호사 찰스 네이더의 주도로 고발과 조사가 시작되어 결국 미국의 소비자 운동이 출범하게 된 콜베어의 사건을 설명해줍니다. 미국에서의 소비자 보호법 - 징벌적 손해배상 등 - 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계기인, 쉐보레 콜베어의 코너 조향 문제가 설명됩니다. 결국 쉐보레가 후기 모델에서 개선 방안을 도입했기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결말은 다소 씁쓸했습니다.

<<포드 머스탱 : 아이아코카와 신세대 미국인>>
자동차 세대 교체의 아이콘이었던 머스탱과 함께 그 성공 비결을 알려 줍니다. 1960년대 ~ 70년대 초반의 전후 베이비 붐 세대가 자동차 소비 전면에 나서며 "누구나 원하는 자동차"로 멋진 디자인, 저렴한 가격, 다양한 옵션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네요. 현대차의 이른바 '옵션질'은 역사가 증명하는 탁월한 마케팅 기법인 셈이지요. 제가 어렸을 때 자서전으로 일세를 풍미했던 리 아이아코카의 활약도 잘 그려지고 있습니다. 당시는 자서전의 시대였었는데, 저도 아이아코카 자서전과 척 예거 (최초로 음속을 돌파했던 비행사) 자서전 두 권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재미있었어요.

<<폰티액의 GTO : 들로리안의 염소>>
두 가지 이야기가 중심입니다. 하나는 머스탱과 전혀 다른 '상남자'를을 노린 들로리안의 머슬카 폰티액의 전성기, 다른 하나는 폰티액의 아버지로 '들로리안 모터스'를 만들었던 업계의 풍운아 들로리안의 흥망성쇠이지요. <<백 투더 퓨처>>의 타임머신으로도 유명한 들로리안의 DMC-12는 청설모의 카툰을 통해 그 탄생과 멸망(?) 과정을 잡해 보았었는데, 훨씬 자세하고 깊이있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혼다 어코드 : 오하이오 고자이마스>>
전통적인 미국 차와 달랐고, 디트로이트 문화와도 전혀 달랐던 일본차 어코드와 혼다가 어떻게 미국 땅에 성공적으로 정착했고, 미국내 양산에 성공했는지에 대한 이야기.
어코드의 성공 이면에는 독재자같았던 혼다 소이치로를 제어할 수 있었던 2인자 후지사와 다케오가 있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흥미로왔습니다. 후지사와 다케오 덕분에 문제가 있었던 공랭식 엔진이 아닌 수냉식 엔진을 탑재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 때 후지사와 다케오가 혼다 소이치로와 독대하며 했던 말이 대박이네요.
“혼다, 어떤길을 갈 건가? 자네는 회장인가, 아니면 엔지니어인가?”
인데, 기업 회장이면 엔지니어로서의 자존심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었지요.
참고로 이때 개발된 엔진이 CVCC 엔진으로 별다른 장치 추가 없이 미국에 새로 제정된 배출가스 기준을 만족하는 유일한 엔진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혼다의 성공담을 이 책에서는 "애플 컴퓨터"의 첫 등장과 비슷하다고 언급하는데, 실제로도 그런 느낌이에요.
또 그간 읽었던 일본 회사의 성공담은 판타지 <<시마 과장>>은 제껴두더라도 도요타 자동차 성공담처럼 세일즈맨이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판매와 마케팅 위주로 이야기가 흘러갔었는데, 일본인 관리자가 미국인 직원을 채용하여 그간 디트로이트의 관행을 깨는 수평적 조직을 만들어 미국 내 생산 기지를 만드는데 성공하는 과정이 상세하게 설명되고 있어서 신선했습니다.

<<크라이슬러 미니밴>>
앞서 말씀드렸던 리 아이아코카의 또다른 히트작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래전 읽었었던 자서전에서도 언급되었던 기억이 나네요.
베이비 부머 세대인 '사커맘' 들이 아이들 여럿을 나르듯 가족이 함께 이동하는데 필요한, 외장이 작으면서도 내부가 큰 그런 차가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을 그리는데, 상품기획자라면 관심있게 볼 내용이라 생각됩니다. 새로운 소비자를 대상으로,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에 걸맞는 기존에 없었던 제품을 내 놓는 과정을 설명해 주고 있으니까요.

<<BMW3 시리즈>>
마케터, 상품기획자라면 흥미롭게 볼 수 있을 내용. BMW 3 시리즈가 '보보스'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건 그들의 기호에 부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주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보보들은 화려하지만 저속한 것들은 가지려 하지 않는다. 사치와 낭비를 일삼는다고 동네방네 떠드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남의 이목에 신경을 쓴다는 인상도 줄 수 있는데, 당연히 싫다. 그들은 희소성을 추구한다. 대중이 몰라야 하고, 디자인이 탁월해 삶이 더 편하고 특별해지는 물건이라면 금상첨화다.……… 그들 중에 저녁식사를 하면서 다이아몬드 목걸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정찬의 주최자가 사용하는 샐러드 분배용 포크에 아프리카적 감수성이 담겨 있음을 발견하고 화제로 삼는 행위라면 정말이지 멋지다."
라는데, 지금 말로 따지면 '홍대병' 에 걸린 사람들을 위한 차라는 뜻이겠지요? 우리말로 '하차감'이 중요한 사람들을 위한 차라는 뜻도 될 테고요. 이들을 위한 차는 독일차 BMW 3였다는게 결론인데, 여러모로 의미심장합니다. 결국 자동차는 특정 계층 이상에서는 어느 정도 허영의 산물일 수 밖에 없다는 의미도 되니까요.

2009/05/29

명탐정 키요시로 사건노트 1~7 - 하야미네 카오루 / 에누에 케이

제목 그대로 "명탐정" 인 교수 유메미즈 키요시로가 옆집 이와사키 가(家)의 세쌍둥이 자매 아이, 마이, 미이와 함께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전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짤막하고 일상에 가까운 이야기로 시작해서, 본편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전개로 한권이 이루어진 옴니버스 시리즈 만화입니다. 예전에 봤었지만 취향이 아니라서 보다가 접었었는데 형이 7권까지 구입했길래 빌려서 읽게 되었네요.

일단 장점부터 소개하자면 :
1. 추리만화이지만 대상 연령대가 낮은 덕분에 눈높이를 맞춘 티가 역력할 정도로 굉장히 사건들과 이야기들이 유쾌하고 밝은 편입니다. 살인과 같은 강력사건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발랄한 이야기들이라 추리소설 초보자들에게 적합한 작품이 아닐까 싶네요. 특히 아동들....

하지만 단점도 확실해서 :
  1. 장점이기도 하지만 대상 연령대가 지나치게 낮습니다! 한마디로 유치하달까요? 전개와 대사 모두 어이상실입니다.....
  2. 만화 자체가 한마디로 후집니다. 순정만화 스타일의 그림인데 전혀 제 취향도 아니었을 뿐더러 이야기 전개도 낙제점에 가깝습니다. 또한 주인공 캐릭터도 너무나 과장되어 있고 웃기지도 않는 개그컷의 남발은 짜증만 불러 일으키더군요. 좀 깔끔하게 정리라도 해서 그렸더라면 좋았을 것을.
  3. 추리적으로도 재미에 치중한 탓에 설득력이 떨어지는 작품이 많더군요.
팬들분에게는 죄송하지만 제게는 단점이 너무 명확한 수준 이하의 작품이라는 것이 제 감상평입니다. 아동용으로는 정평이 나 있는 시리즈이니 만큼 제 나이가 너무 많은 탓도 있겠지만, 일단은 만화 자체의 수준이 함량미달이라 생각되네요. 어쨌건 별점은2점. 이번처럼 형이나 주위 누군가가 구입하지 않는다면 개인적으로 다시 찾아볼 것 같지는 않습니다.

덧붙이자면, 같은 원작으로 잡지 "파우스트"에 연재된 작품 쪽이 "만화" 측면에서 그림과 전개 모두 7만배는 낫더군요. 파우스트 연재작이 단행본으로 나와준다면 구입 의향 있습니다!

* 현재의 만화판(위)과 파우스트 만화판(아래) 비교

명탐정 키요시로 사건노트 1 - 4점
하야미네 카오루 지음, 에누에 케이 그림/대원씨아이(만화)

Vol 0 : 명탐정 유메미즈 키요시로 등장 - 이와사키 가(家) 옆집에 새로 이사온 사람은 뭔가 수상쩍은 키큰 아저씨! 그 아저씨는 스스로 교수이자 명탐정이라고 칭하지만 뭔가 어벙하고 덜 떨어져 보인다. 하지만 곧바로 명탐정의 솜씨를 발휘해서 세자매의 수수께끼를 곧바로 풀어낸다.
- 주인공의 등장과 주요 등장인물을 소개하면서 일상계 수수께끼를 잘 풀어낸 소품. 하지만... 지나치게 소품이기에 평가할게 별로 없네요.
Vol 1 : 그리고 5명이 사라지다 - 오무라 판타지 파크에 세자매를 데리고 놀러온 교수. 그러나 마술쇼 도중에 한 소녀가 사라지고 곧바로 "백작"이라 자칭하는 범인이 곧바로 다른 소년, 소녀를 유괴할 것이라고 예고한다. 키요시로는 경시총감과의 연줄을 이용해서 사건 해결에 뛰어드는데!
- 범행 트릭이 너무나 유치하고 동기와 전개 모두 설득력 빵점인 아동용 추리물. 유치찬란 그 자체.

명탐정 키요시로 사건노트 2 - 4점
하야미네 카오루 지음, 에누에 케이 그림/대원씨아이(만화)

프롤로그 : 설혼전설 - 판타지 파크 사건으로 유명세를 탄 키요시로에게 잡지 "세.시마"의 편집부원 이토 마리가 찾아온다. 명탐정이 여행하면서 그 지방 전설에 대한 수수께끼를 푸는 이른바 "명탐정 유메미즈 키요시로의 수수께끼 풀이 기행!!" 기획을 위해서. 첫번째 여행 코스는 N현 A고원으로, 이 지방에서는 눈보라 치는 밤이 지난 아침에는 "설혼의 숲"이라 불리우는 대나무 숲에 눈의 영혼인 "설혼"이 어린 아이를 데리러 나온다는 전설이 있다. 실제로 3살짜리 아이가 행방불명된 20년 전의 사건은, 아이의 발자국이 집에서 설혼의 숲까지 일직선으로 나 있다가 숲 직전 20미터 정도에서 뚝 끊겨 있던 것.
- 이 "설혼전설"에 관한 트릭이 상당히 그럴듯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작품 자체는 쓰잘데 없는 곁가지 이야기가 대부분에다가 스키 자국에 관련된 말도 안돼는 트릭이 들어가는 등 괜찮은 트릭을 다 망쳐버리는 전개를 보여줘서 높은 점수를 주기가 힘듭니다.

Vol 2 : 마녀가 숨어있는 마을 - "세.시마"의 기획 두번째 코스는 "쇼우노사토"라는 벚꽃의 명소. "쇼우노사토"의 숲에는 마녀가 있다라는 전설이 있는데, 이토 마리와 교수, 그리고 세 자매 일행이 도착한 뒤부터 숙소인 여관 "로우란 장"을 무대로 한 정체불명 게임의 막이 오른다.
- 이 시리즈 치고는 이질적인 무겁고 심각한 이야기. 15년전 한 일가족이 사라진 사건에 비롯된 현재의 비극이라는 점은 "김전일"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대형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나 무겁고 진중한 전개라서 이 시리즈와는 따로 노는 느낌에다가 트릭도 거의 실현불가능해 보이는 (어떻게 리프트를 혼자서 조작하는지라던가 하는 세세한 부분의 설명은 전무!) 낙제점에 가까운 작품

명탐정 키요시로 사건노트 3 - 4점
하야미네 카오루 지음, 에누에 케이 그림/대원씨아이(만화)

Vol 3 : 망령은 밤을 떠돈다 - 세 자매가 다니는 학원의 학원제 기간에 학교에 전해져 내려오는 4가지 전설을 소재로 한 사건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한다. 과거 4가지 전설을 창작한 것으로 알려진 여학생은 죽은 것으로 밝혀지는데....
- "김전일"의 "방과후의 마술사" 같은 설정이죠? 그러나 무거운 설정과는 반대로 학원제를 배경으로 한 밝은 분위기의 작품이라 설정과 미묘한 부조화를 이루는 것이 이색적인 작품입니다. 트릭은 여러개가 등장하는 풍성함을 보여주는데 모든 트릭이 만화에 가까운 것들이라 추리적인 가치는 거의 없습니다..... 아무리봐도 실현이 가능할 것 같지가 않아요.

명탐정 키요시로 사건노트 4 - 4점
하야미네 카오루 지음, 에누에 케이 그림/대원씨아이(만화)

그랜드오프닝 : 탐정영화 - 교수와 세자매는 추리 영화를 보러간다. 완벽한 밀실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계단식 논 사이에 있는 오두막에서 태풍이 분 다음날 시체가 발견된다. 오두막은 전기도, 수도도 없고 구멍하나 없는 완벽한 밀실. 흐트러진 방 안에서 발견된 칼에 찔려 죽은 시체! 그러나 영화가 끝나기 전 사고로 인해 일행은 결말을 보지 못하고, 교수는 자신의 추리를 자매들에게 들려준다.
- 가상의 영화를 소재로 추리하는 독특한 작품. 솔직히 트릭은 현실성이 너무 없어보이긴 하지만 아이디어는 괜찮은 편.

Vol 4 : 사라지는 소세이섬 - 세 자매는 영화 캐스팅 제의를 받고 거대재벌 반노재단이 제작하는 영화 로케 현장으로 교수와 함께 떠난다. 그러나 촬영현장인 소세이섬에 도착하자마자 유일한 교통수단인 크루즈가 폭발하고, 기이한 사건이 발생하다가 마지막에는 섬의 하나뿐인 가장 높은 "산"이 아예 없어져 버리는 기상천외한 사건에 맞부닥치게 되는데!
- 거대한 스케일의 농담같은 트릭이 등장하는데 너무 황당해서 말이 나오지 않을 지경. 이러한 특정 "장소"의 소실에 대한 고전인 엘러리 퀸의 "신의 등불" 정도는 아니더라도 흉내는 내 줬어야지!

명탐정 키요시로 사건노트 5 - 4점
하야미네 카오루 지음, 에누에 케이 그림/대원씨아이(만화)

Vol 5 : 춤추는 야광괴인 - 일본 최초의 연금술사인 사이토 소우후가 남긴 금불상의 위치를 알려주는 암호가 마을 절에서 발견되고, 한편으로 마을 공원에서 춤추고 머리가 분리되는 "야광괴인"이 나타나는 사건이 일어난다. 보물의 위치를 알려주는 키워드인 "코우다요이사루"는 무엇? 야광괴인의 정체는 무엇? 절에서 발견된 암호문의 해독 방법은 무엇?
- 암호문은 국내 독자는 풀기가 불가능한 일본어 암호 트릭이라 패스. 하지만 암호문의 "종이" 의 사이즈를 토대로 한 "키"의 도출이라는 방식은 참신했습니다. 문제는.... 정말 명탐정이라면 몇글자 치환해 보면 이러한 "키" 없이도 암호를 충분히 풀 수 있는 간단한 암호라는 점이겠죠.

명탐정 키요시로 사건노트 6 - 4점
하야미네 카오루 지음, 에누에 케이 그림/대원씨아이(만화)

Vol 6 : 유리항아리의 비밀 - 에도말기를 무대로 한 번외편! 나가사키의 데시마의 창고에서 유리 항아리 "피카이치"가 도난당한다. 자물쇠로 잠긴 창고는 완벽한 밀실상태에다가 남아 있는 발자국은 도저히 생물의 것으로 보이지 않는 수수께끼의 사건. 마을에 흘러들어온 정체불명의 인물인 유메미즈 키요시로자에몬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나선다.
- 번외편 형식으로 막말의 일본을 무대로 한 이야기들. 첫번째 "피카이치" 도난 사건은 전개와 복선, 동기와 결말 모두 납득할 만 하며 재치있게 꾸며진 이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작품. 두번째 보살 이야기는 돌 보살상을 일종의 "추"로 썼다는 일상계 소품인데, 작중 묘사된 보살상의 크기를 볼 때 완전 억지였습니다. 나무를 몇톤씩 하는 것도 아닐테고 말이죠. 마지막 에도에 등장하는 요괴의 정체에 대한 이야기는 완전 어이상실의 이야기였고.... 초반 분위기를 끌어주었더라면 별 세개는 줬을텐데 아쉽네요.

명탐정 키요시로 사건노트 7 - 4점
하야미네 카오루 지음, 에누에 케이 그림/대원씨아이(만화)

프롤로그 : 한여름밤의 괴담 - 교수와 세자매 및 기타 등장인물들이 모여 "괴담회"를 벌인다.
- 아하하하. 아주아주 유쾌한 인상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소품인데 "괴담"을 추리해서 그 진상을 밝힌다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네요. "피에 젖은 책상" 같은 조금은 유치한 괴담인데 추리를 끼워맞추는 것이 놀랍습니다!

Vol 7 : 트랩하우스의 숫자노래 - 유명 만화가의 저택인 "트랩하우스"에 초대받은 교수와 세자매는 파티 도중 만화가가 밀실 안에서 비명과 함께 실종되는 사건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연쇄살인!
- 굉장히 심각하고 진지한 전개라 낯설었던 작품입니다. 만화안의 만화안의 만화라는 액자 구성은 독특했고 중요 범인을 드러내는 트릭 - 왜 범인은 옥상으로 도주할때 엘리베이터 3층 버튼을 누르고 3층에서 내려 옥상까지 뛰어올라갔을까? - 도 괜찮은 편이지만 이야기가 따로 노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또한 무대 설정같은 것도 지극히 만화적이라 현실성이 떨어지는데 너무 복잡하고 작위적인 구성을 취함으로서 더더욱 전개가 산으로 간 것이 아닌가 싶네요. 그냥저냥한 수준이었습니다....

2010/12/10

위풍당당 명탐정 외젠 발몽 - 로버트 바 / 이은선 : 별점 3점

위풍당당 명탐정 외젠 발몽 - 6점
로버트 바 지음, 이은선 옮김/시공사

프랑스 총경 출신으로 영국에서 탐정으로 활약하는 외젠 발몽이 주인공인 단편집으로, 1907년에 발표된 작품입니다. 이 시리즈는 예전에 하서출판사의 "세계추리명작단편선"을 통해 접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서, 이번 국내 출간이 반가웠고, 기대만큼 즐겁게 읽었습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유쾌한 분위기입니다. 마치 마크 트웨인이 추리 소설을 쓴다면 이런 느낌일 것 같다고 할까요? 특히 프랑스인 탐정 발몽이 영국 사회에 대해 냉소적으로 비판하는 태도와 유머가 돋보입니다. 그의 허영심과 자의식 과잉이 만들어내는 코믹한 요소도 재미를 더하죠. 이러한 자뻑 탐정의 전형적인 예로는 '에르퀼 포와로'를 들 수 있겠습니다. 물론 발몽은 여성에게 약하다는 점에서 포와로와 차이가 있긴 하지만요.

추리적인 요소도 상당한 수준입니다. 살인 사건보다는 도난과 사기 사건이 중심이 되는데, 단순한 해결 과정뿐만 아니라 범죄 계획 자체가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또한, 20세기 초반 셜록 홈즈의 라이벌 탐정들이 활약하던 시기에 발표된 작품임에도, 기존 정통 단편 추리 소설의 전형에서 벗어나 있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탐정이 사건 해결에 실패하는 이야기나 '추리'보다는 '모험'에 집중한 단편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그렇죠. 그래서인지 전체적으로 현대적인 느낌이 강하고, 지금 읽어도 별로 낡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추리 소설에서 중요한 요소인 '공정한 정보 제공'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고, 본격 추리로서의 완성도도 다소 아쉬웠습니다. 또한, 이야기마다 수준 차이가 큽니다. 마지막에 실린 셜록 홈즈 패러디 단편들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요. 특히 "셜로 콤즈의 모험"은 최초의 셜록 홈즈 패러디 단편이라는 자료적 가치는 높지만, 내용 자체는 가벼운 장난에 불과해 보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유쾌하면서도 독특한 매력을 가진 작품이지만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단편집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고전 추리 단편을 좋아하시거나 유머러스한 추리소설을 원하신다면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이 책이 잘 팔려서 더 많은 고전 추리 걸작들이 출간되면 좋겠네요.

수록작별 간단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1. 500개의 다이아몬드에 얽힌 수수께끼

외젠 발몽이 프랑스 총경으로 근무할 때의 이야기.

백만달러짜리 마리 앙투아네트 목걸이의 경매와 경매이후 벌어진 목걸이 행방을 뒤쫓는 추격전을 다루고 있습니다. '유능한' 발몽이 무능한 부하와 생각못한 방해로 작전에 실패하는 과정이 드라마틱하게 벌어지죠. 간단하지만 효과적이었던 범인의 다이아몬드 운송 계획도 볼거리지만 무엇보다도 '일반인'에게 주인공 명탐정이 패배하는 생각지도 못한 결말이 등장해서 의외였습니다. 뤼뺑 시리즈 제 1작이 뤼뺑이 체포되는 이야기였던 충격과 버금가더군요.

이 시리즈의 특징, 자뻑 외젠 발몽과 그의 떠벌임, 자의식과잉 묘사와 유머러스한 분위기의 반전까지 모두 등장하는 작품으로 별점은 3.5점입니다.

2. 두 얼굴의 폭탄 테러범

발몽이 영국으로 온 이후 이중신분으로 무정부주의자 조직에서 정보를 캐 내다가 폭탄투척에 대한 정보를 얻고 그것을 막으려 활약하는 모험담.

이 이야기는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첩보 - 모험물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당시 영국에 대한 발몽의 비판적인 시각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기도 하죠. 쉽게 읽히고 재미도 있으며 발몽의 옛 부하 아돌프 시마르가 등장하는 등 시리즈 팬으로 즐길거리가 많기는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점수를 줄 부분이 별로 없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3. 은숟가락에 담긴 단서

벤섬 기브스가 발몽을 찾아와 사건해결을 의뢰한다. 사건은 그와 친구들이 함께 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사라진 백파운드를 찾아달라는 것.

라이오넬 데이커라는 유력한 용의자를 등장시키고 그와의 대화를 통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 독특한 소품입니다. 두명의 대화도 맛깔나고 은숟가락을 이용한 마술이라는 단서도 꽤나 유용한 등 소품이지만 풍성한 느낌이 좋았어요. 그러나 가장 중요한 '라이오넬 데이커가 어떻게 빚을 갚았나?' 에 대해서 설명되지 않는 것은 좀 아쉽더군요. 별점은 3점입니다.

4. 치젤리그 경의 사라진 재산

치젤리그 경이 숨겨둔 막대한 재산을 찾는 이야기.

이 단편집에서 가장 정통 추리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몇가지 단서와 치젤리그 경의 유언을 토대로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이 합리적으로 그려져 있거든요. 어떻게보면 좀 단순한 발상이기는 하나 다른 곳에서 찾아보긴 힘든 트릭이 사용되었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별점은 4점입니다.

5. 건망증 클럽

예전 하서출판사의 <세계추리명작단편선>을 통해 접했던 단편. 다시 읽어도 재미있었습니다. 두가지 사건 - 은화 위조와 사기사건 - 이 묘하게 겹쳐져서 하나로 이어지는 전개도 좋았지만 발몽의 런던 경시청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활약이 이어지다가 마지막에 사기꾼에게 한방 맞는 결말도 여러모로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가장 높이 평가할 부분은 너무나도 기발한 사기꾼의 계획이겠죠. 지금 보기에는 허술하기도 하고 약간 설득력이 처지는 부분도 있긴 하나 아이디어만큼은 정말 대단하거든요. 별점은 4점입니다.

6. 기형 발 유령

랜트림리 경의 저택에 출몰한다는 기형 발 유령의 발소리에 얽힌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 영국 경찰에 대한 발몽의 떠벌임같은 유쾌함은 잘 살아있긴 하지만 초반에 저택에 대한 묘사가 상세하지 않아 독자의 상상력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추리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며 내용도 지나치게 과장이 심한 듯 싶어서 여러모로 조금은 아쉬운 이야기였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7. 와이오밍 에드의 석방

와이오밍 에드로 불리우는 미국 무기징역수의 탈옥을 돕는 발몽이 탈옥에 감추어진 진상을 밝혀내는 이야기.

두가지 사건, 즉 와이오밍 에드의 탈옥과 탈옥에 관련된 사기사건이 등장하는데 탈옥은 구체적으로 묘사되지도 않고 가볍게 넘어가기 때문에 '사기사건' 으로 보는게 적당하겠죠.

솔직히 탈옥도 좀 자세하게 묘사되지 않을까 읽으면서 기대가 컸었는데 좀 실망스럽긴 했습니다. 그러나 범인의 사기 계획이 나름 치밀하고 설득력이 있기에 적당한 수준으로 마무리 되지 않았나 싶네요. 물론 마지막 '변장쇼'는 좀 오버라 생각되지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8. 레이디 알리시아의 에메랄드

도난당한 블레어 에메랄드를 되찾고 레이디 알리시아를 만족시키겠다는 발몽의 일념이 빛나는 이야기. 그러나 도난사건 자체가 일종의 장난같고 두 연인의 치기어린 쇼로밖에 보이지 않아서 추리적으로는 빵점에 가까운 작품이었습니다. 여성에게 약한 발몽의 일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점은 즐거웠지만 전체적으로 평균 이하였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셜록 홈즈 패러디

1. 셜로 콤즈의 모험

셜로 콤즈가 페그럼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이야기. 스코틀랜드에 대한 조롱과 더불어 패러디로서 즐길거리는 많으나 결국 셜로 콤즈의 추리와 수사는 치기어린 과대망상이었고 결국 운이 좋아서 단서를 찾았을 뿐이라는 결말은 추리 소설 애독자로서 씁쓸한 뒷맛을 느끼게 하더군요. 재미도 있고 자료적 가치도 높지만 개인적으로는 씁쓸함이 더 큽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 두 번째 돈주머니의 모험

코난 도일에게 홈즈가 원고료를 요구하러 찾아오지만 도일에 의해 살해당한다는 나름 충격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내용에 알맹이도 없고, 패러디도 아닌 이상한 작품이에요. 저자 로버트 바가 코난 도일의 절친한 친구라는데 친구에게 거는 가벼운 장난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저자들 사이의 개인적인 친분이라는 의미 이외의 것을 찾기는 어렵더군요. 별점은 1.5점입니다.

2025/04/26

엘리펀트 헤드 - 시라이 도모유키 / 구수영 : 별점2점

엘리펀트 헤드 - 4점
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내친구의서재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가조 의과대학 부속 병원 정신과 의사 기사야마는 배우인 아내 기키, 대학생이자 가수인 큰 딸 마후유, 고등학생 둘째 딸 아야카와 행복한 나날을 보내지만, 가족의 행복이 쉽게 깨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마술사였던 아버지의 학대로 인한 아픈 기억 탓이었다. 그래서 기사야마는 가족의 행복을 망치려는 원흉을 사전에 제거해 왔고, 최근에는 딸을 취재 목적으로 스토킹하던 방송인 이즈미를 살해했다. 그러나 마후유가 애인 하루를 가족에게 소개시켜 주는 날, 하루가 기사야마에게 돈을 받고 관계를 가졌다는걸 폭로해서 가족은 붕괴되고 말았다. 자포자기한 기사야마는 마약상 에덴으로부터 건네받은 '시스마'를 주사했다. 그런데 시스마가 이상한 효과를 일으켜 시간을 역행한 기사야마는, 하루를 습격해서 입을 막고 가족을 지키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는 단순 시간 역행이 아니라 시간 분기였다. 결국 두 개의 시스마를 사용해 사태를 해결한 행운아, 한 번 실패해서 시간 역행 효과만 확인한 복원자와 공격받아 입원한 산송장, 모두 실패한 도망자라는 다중 시간축이 생겨났다. 기사야마들은 어느 시간 축에서라도 사람이 죽으면(기사야마가 살해하면), 모든 시간 축 사람이 죽는다는걸 알아내고 나름대로 규칙을 세워 살인을 막으려 했지만, 마후유와 기키, 아야카가 차례대로 끔찍하게 살해되고 마는데....

신예 작가 중 '추리' 장르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내는 시라이 도모유키의 최신작.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사건을 여러 시점에서 추리하는 구성이 특징인데, 이번에는 각기 다른 시간축(멀티버스)에 존재하는 동일 인물이 사건을 파헤친다는 점이 새롭습니다. 이처럼 다중 시간축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 그리고 시간축이 달라도 죽음의 순간은 동일하게 일어난다는 설정에서 일종의 ‘특수 설정 미스터리’이기도 합니다.

탐정역을 소화하는 기사야마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는 점도 큰 특징입니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는 방해물로 생각되는 모든 것들을 죽이고 파괴하는 소시오패스거든요. 아내의 스토커를 잡아다가 능욕하고, 딸 스토커는 살해하는 초반부 단계를 지나 후반부로 갈 수록 걷잡을 수 없이 폭주하는데 그 수준이 정말 어마무시합니다. 

그러나 참신함, 독특함은 설정에 국한될 뿐, 정작 추리의 완성도는 아쉬움이 큽니다. 여러 명의 기사야마가 가족의 죽음을 놓고 펼치는 대부분의 추리는 결국 ‘추리를 위한 추리’에 불과해 억지스럽고 설득력이 떨어지는 탓입니다. 아야카가 폭발한 이유가 알약에 숨겨진 소형 폭탄 때문이라는 추리가 대표적입니다. 사람이 산산조각이 나고, 신체 조각이 날아갈 정도라면 알약 크기 폭탄으로는 어림도 없으니까요. 다중 시간축에 있던 복수의 가족들이 동시에 죽었는데, 죽은 상태가 서로 극과 극이라 사망한 원인의 차이를 없애기 위해 저절로 폭발했다는 추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추리 자체는 그럴싸한데, 상황이 너무 말도 안돼요. 추운 차를 운전하다가 동사하고, 두꺼운 탈을 쓰고 공연하다가 열사병에 걸려 죽는다는게 말이나 됩니까. 여러 명이 추리를 펼쳐봤자 다 억지스럽고 말이 안된다면, 이건 그냥 분량 낭비일 뿐입니다. 이런 류의 대표 걸작 "독 초콜릿 사건"처럼, 모든 추리는 말이 되어야 합니다.

진상 또한 억지스럽습니다. 기사야마들은 가족들이 죽는 순간의 기억을 공유할 수 있어서, 범인 기사야마는 피해자가 죽는 순간에는 손을 대지 않는 '시한 장치 트릭' 더하기 '원격 조종 트릭'을 사용했는데, 상황을 극단적으로 정교하게 맞춰야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마후유는 '행운아'가 죽였습니다. '행운아'는 마후유가 하루와 자동차 여행을 떠난다는걸 알게된 뒤, '산송장'의 손을 빌어 하루를 죽게 만듭니다. '산송장'의 시간축에서 하루가 죽자, '행운아'의 시간축 하루도 죽는데 마침 운전 중이라 교통사고가 일어나게 되고요. 사고로 차밖으로 튕겨나간 마후유는 공교롭게 지나가던 차량에 머리가 으깨져 죽습니다. 즉, 이 모든건 말 그대로 ‘기적의 타이밍’에 의존하고 있을 뿐입니다. 안전벨트를 하고 있던 마후유가 왜 튕겨나갔는지도 모르겠네요.

아야카 폭사에 대한 진상은 불쾌하기까지 합니다. '도망자' 기사야마가 그녀를 성폭행해 임신시킨 뒤 태아를 불법으로 적출해 폭사시키고, 임신을 유지하던 '두더지' 시간대의 아야카의 뱃 속 아기가 폭발하자 다른 시간축의 아야카들 모두 폭사했다는건데, 이건 추리의 수준을 떠나 인간적으로 거부감이 듭니다. 이렇게 반인륜적인 이야기를 트릭으로 포장한건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합리적으로 설명되어야 할 동기가 불분명하다는 단점도 추리물로는 치명적입니다. 행운아는 마후유를 죽일 이유가 없습니다. 행운아의 시간축에서는 마후유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니까요. 소시오패스라서, 자신에게도 문제가 생길까봐 두려워서 죽였다? 정신병자의 과대망상이 동기인 작품이 추리물로서의 가치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네요. 또 이게 동기라면, 행운아가 마후유를 살해했다는걸 숨길 이유는 없어요. 약속대로 다른 시간 축의 기사야마들이 가족을 죽이면, 손 안대고 위험요소를 모두 제거할 수 있으니까요. 

설정도 편의적이고 작위적입니다. 죽음만 동일하게 적용될 뿐, 상처 등은 시간축에서 공유되지 않는다는게 대표적이에요. 상식적으로는 상처도 동기화되어야지요. 산송장이 중상을 입었을 때, 다른 시간축의 기사야마들도 모두 동일한 상처를 입고 쓰러졌어야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두더지가 도망자를 죽이려고 배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에필로그도 납득하기 어려워요. 도망자를 죽이려면 그냥 자살하면 됩니다. 시간축에 있는 모든 기사야마가 동일한 운명을 맞을테니까요. 또 에필로그에서처럼 한 시간축에서 터진 폭탄이 다른 모든 시간축에 영향을 미친다면, 앞서의 현란하고 복잡했던 시한 장치 및 원격 조종 트릭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네요. 그냥 하루와 마후유가 탔던 차에 폭탄을 설치하면 되잖아요?

기사야마에 대한 묘사도 이상해요. 기사야마들은 시간축만 다를 뿐 모두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시간축마다 별개의 인격을 가진듯 보이는건 잘못되었습니다. 심지어 아야카 폭사 때 두더지는 도망자의 부탁을 받아 아야카의 아이를 살려주기까지 하는데, 이건 전혀 와 닿지 않았어요.

시스마를 잔뜩 맞은 탓에 시간축을 오가는 절대자가 된 우라시마도 사건 진상을 추리하기 위한 탐정역이 필요해서, 기사야마를 뛰어넘는 절대자가 필요해서 등장시킨 듯 한데, 인물 설정이나 등장 과정, 묘사 모두가 과장되고 억지스러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상적인 점이 전혀 없지는 않았습니다. 시스마를 맞은 복원자가 첫 번째 시스마 이전 시점으로 돌아가 시간축을 한 번 더 분기시켜 ‘두더지’가 생겨났다는 설정은 참신했습니다. 이즈미 사키와 페페코 등 단순한 희생양으로 보였던 인물들을 활용하여 독자에게 시간 이동을 착각하게 만든 디테일도 눈에 띄었고요. 여러 시간축의 기사야마들이 추리를 펼칠 때, 사이렌 소리와 기키와의 과거사 등을 근거로 산송장이 사실은 아파서 누워있는 척 했다는 추리도 괜찮았습니다.

그래도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참신한 설정과 캐릭터 구도는 흥미로웠지만, 지나치게 억지스럽고 비윤리적인 트릭과 없다시피한 동기, 개연성 부족의 삼박자는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게 만듭니다. 이전에 보았던 한 추천 리스트에서 언급했듯, 재미는 있지만 최악이에요. 모든 분들께 권해드리기는 좀 어렵습니다.

2020/08/01

현란한 유리 (絢爛たる流離) - 마쓰모토 세이초 / 이규원 : 별점 2점

현란한 유리 - 4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규원 옮김/북스피어

3캐럿 다이아몬드 반지의 소유자들이 온갖 범죄에 휘말린다는 내용의 마쓰모토 세이초의 연작 소설입니다. 1963년에 연재된 작품을 모아서 출간했다니 비교적 초기작이지요. 그래서인지 대담한 시도와 아이디어들이 눈에 띕니다. '연작'이라는 구성과 12편 중 8편의 작품이 두 편 씩 이어지는 구조라는 점, '트릭'이 괜찮은 이야기가 있다는 점이 그러합니다.

시대별로 상세한 배경 설정과 묘사도 돋보였습니다. 고물이 돈이 되는 상황에서 불량품 철사 때문에 사건이 일어나는 "티켓" 에서는 시대 상황이 범죄의 이유가 되기까지 합니다. 작가의 조선 주둔군 시절을 바탕으로 한 "백제의 풀"과 "도망"은 경험없이는 쓸 수 없는 묘사들로 가득차 있고요.

그러나 이야기 하나하나의 완성도는 아쉽습니다. 구태여 연작으로 엮을 필요가 없었던 이야기들도 많았기에, 12편의 이야기 수를 좀 더 줄이고, 다이아몬드 반지에 얽매이지 않았다면 더 좋있을 겁니다.

단편들 전체를 평균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작가의 다른 단편집들과 비교하면 많이 처집니다. 이 보다는 저도 몇 편 소개해드렸던 작가의 다른 단편집들을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무려 12편이나 되니 리뷰도 큰일이네요. 읽다 지치실듯.

"토속 인형" 

기타큐슈의 광산 재벌인 야쓰오 광업의 데릴사위 다다오와 딸 다에코 부부는 별거 상태로 지내다가, 불황으로 야쓰오 광업이 무너진 뒤 다다오는 취미인 토속 인형 수집품과 함께 도쿄의 다에코 집에 얹혀살게 되었다. 다에코에게는 아버지의 유산이 많이 님아 있었던 덕분에 화려한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다에코가 취미로 배우는 '노' 관련된 사범들이 집에 드나들면서 다에코와 어울리는걸 아무 말 없이 지켜만 보던 다다오가 병으로 사망한 얼마 뒤, 다에코는 살인 혐의로 재판정에 섰다. 다다오 유골에서 다량의 비소가 검출되었기 때문이지만, 다행히 변호사 기타야마의 활약으로 그녀는 무죄 판결을 받는다...

쇼와 초기 기타 큐슈 광산 재벌에 대한 묘사도 상세하지만, 정말 남의 눈과 입을 빌어 이야기하는 듯한 완벽한 3인칭 묘사로 진행되는 부부의 관계 묘사가 재미있습니다.

추리적으로도 괜찮습니다. 대단한 트릭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변호인의 변론이 아주 기가 막히거든요. 토속 인형 수집품에 독살스러울 정도로 도드라지는 빨간색 인형들이 있었는데 이 빨간색은 비소가 함유되어야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변호사는 인형 수집품을 다다오와 함께 화장해서 비소가 검출되었다고 주장합니다. 현대의 과학 수사로는 비소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다다오의 유해인지, 인형 때문인지) 충분히 구분할 수 있겠지만, 1930년에는 불가능했을테니 무죄 판결을 받은건 당연해 보입니다. 어차피 형식적인 부부였는데, 금융적인 부분도 다에코가 전권을 쥐고 있고 다다오의 죽음으로 별로 얻어서 다에코가 살의를 품을 이유도 없었으니까요. 이를 법정에서 밝혀 무죄 판결을 끌어내기 때문에 괜찮은 법정물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그러나 다다오 살해가 급작스럽게, 뜬금없이 일어난다는 점, 특별한 살해 동기가 없다는건 분명한 약점입니다. 오랜 시간동안 살의를 품고 비소를 먹였는데, 그 이유가 불분명하니 답답하더군요. 때문에 별점은 2.5점입니다.

"부인의 쓰즈미" 

1편에서 활약한 기타야마 변호사가 다에코의 집에서 살해당했다. 유력한 용의자는 다에코의 노 사범 중 한명인 쓰즈미 사범 오쿠라 고헤이였다. 그는 현장에서 도주했다가 발각되어 체포되었으며, 흉기인 비수에 강습용 쓰즈미의 끈이 감겨 있었기 때문에 범인으로 몰렸다...

비수가 여자 힘으로는 불가능할 정도로 깊게 꽂혀 있었고, 다에코는 흰 기모노를 입고 있었지만 혈흔이 전혀 묻어있지 않아서 용의선상에서 빠져나갑니다. 그러나 결국 다에코가 범인이었다는게 밝혀진다는 이야기지요.

트릭은 간단합니다. 빨래용 대나무 장대 끝에 비수를 묶은 뒤 먼 곳에서 찌른거에요. 지렛대 효과로 더욱 강한 힘이 가해져 깊숙이 찔렀고, 먼 거리라서 흰 기모노에 피가 튀지 않았지요. 트릭의 밑밥을 깔기 위해 다에코가 몇일 전부터 이웃집에 '노' 강습을 권하러 갔다던가, 그날따라 계절과는 맞지 않는 흰 기모노를 입었다던가 하는 사전 준비도 설득력있게 묘사되며, 쓰즈미 사범 오쿠라 고헤이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는 간단한 조작 - 단도에 쓰즈미 끈을 감아 둔 - 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제 범행이 작품에서처럼 성공했을지는 솔직히 의문입니다. 뼈 등이 있어서 한 방에 가슴을 찌르는건 먼 곳에서는 쉽지 않았을테니까요. 또 다에코가 범행을 자백한다는 결말도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버려진 빨래용 대나무 장대에 경찰이 주목한 정도일 뿐, 아무런 증거도 없으니까요.
무엇보다도 살해 동기, 즉 남편을 살해한건 다에코가 맞으며 기타야마는 이를 가지고 다에코를 협박했기에 살해했다는 동기는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일사부재리 원칙 때문에 다에코가 다시 처벌 받을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일사부재리에 대해서는 기타야마가 다에코에게 직접 이야기해 주기까지 했으니 말 다했지요.

그래서 별점은 2점. 동기 없이도 가까운 남자들을 죽이고 파멸시키는 다에코라는 악녀의 최후를 그렸다는 것에 의미가 있을 뿐, 추리적으로나 내용면으로나 특별히 건질건 없습니다.

"백제의 풀"

일제 강점기 막판, 전라북도 금읍에서 일하던 일본인 이하라는 아내를 두고 군에 소집되었다. 부대는 집과 가까왔지만 이등병 신분으로 외출은 불가능했다. 그런데 부대의 고급 참모 야나기하라 소좌가 자신의 사택에 하숙한다는걸 알고 난 뒤, 이하라는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리고 어느 날, 모악산 기슭 금산사 경내에서 야나기하라 고급참모가 단도같은 흉기로 난도질당한 시체로 발견되는데....

조선이 무대라서 반가왔습니다. 주요 등장인물들이 모두 조선 주둔군 소속 일본군인들이며, 살인 사건이 벌어진 현장이 백제 고찰 금산사거든요. 죽은 야나기하라가 오른손으로 풀 한 줌을 꽉 쥐고 있었기 때문에 제목도 "백제의 풀"이지요. 전쟁 말기 조선 정읍이라는 지방에 대한 여러가지 상세한 묘사도 돋보였는데 작가가 전쟁 말기, 조선 정읍에서 주둔했던 경험을 토대로 쓴 티가 물씬 납니다. 내지보다 조선이 안전하다, 미국도 조선은 독립시켜 장차 우방으로 확보해 두고 싶을테니 폭격하지 않을거라는 이하라의 식견이라던가, 불령선인이 범인일 수 있다는 등 디테일들도 좋았고요.

추리적으로도 군인으로 위장한다면 만사형통이었을거라는 아이디어, 그리고 이를 위한 간단한 변장 트릭과 이 트릭이 결국 단서가 된다는 전개 모두 괜찮았습니다.
조금 자세히 설명하자면, 야나기하라 소좌는 사건 당일 누군가 다른 군인과 함께 걸어서 어딘가(금산사) 로 이동하는게 목격되었습니다. 그래서 범인은 정체 불명의 군인이라 여겨졌고요. 그러나 유이치와 친분이 있던 보급 담당자 다카스기의 추리는 달랐습니다. 유이치가 새 군복을 부탁해서 몰래 새 군복 한 벌을 주었지만, 유이치가 새 군복을 결국 입지 않았던걸 단서였어요. 유이치는 새 군복을 어디에 썼을까? 정답은 유이치는 새 군복을 아내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밤에 몰래 부대를 나가, 군복을 입고 군인으로 위장한 아내와 밀회를 즐겼는데, 그만 야나기하라에게 발각되어 버린거죠. 그래서 아내가 이를 가지고 협박하던 야나기하라를 살해했다는 겁니다. 이 추리가 정답이었는지, 결국 유이치는 사지 오키나와로 전속되어 버린다는게 이야기의 결말이고요. 이 범행을 알아챈 윗 선의 누군가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이하라 부인이 군인으로 변장해서 금산사까지 이동해 밀회를 즐길 이유가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집 근처 어딘가, 혹은 부대 근처 어딘가에서 밀회를 하는게 당연한 발상 아닐까요? 이하라의 장인은 결혼 선물로 3캐럿 다이아몬드 반지를 줄 정도의 재력이 있는 인물인데, 이 정도 인물의 후광으로도 근처에 있는 아내를 보러가는게 과연 불가능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밀회를 알아낸 뒤, 야나기하라 역시 부인을 절로 꾀어내어 즐기려다가 살해당했을거라는 추리도 이상합니다. 야나기하라는 이하라 부인 집에 하숙하고 있었는데 구태여 밤에 외출할 필요는 없잖아요.

무엇보다도 전시에 그나마 편한 조선에 있으면서 아내와 밀회를 즐기려고 몰래 부대를 빠져나간 병사는 솔직히 죽어도 싸다고 생각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도망" 

전라북도 금읍에 위치한 남조선 연안 방비 사단에 새로 부임한 시노하라 겐사쿠 경리 대위는 사택 부인들과 안면을 텄다. 그리고 고고학 전공자라서 휴일에 금산사 경내를 산책하던 중, 사택 부인 중 한 명인 히사코를 만나 일종의 연정을 품게 되었다. 그래서 금산사를 더 자주 찾다가 하숙집 주인인 야마다 기사장, 금읍 최고의 부자 일본인인 속물 오이시 등만 차례로 만난 뒤, 이들이 왜 절에 왔는지 의문을 품게 되는데...

전편에 이어지는, 조선 주둔 일본군의 최후를 그린 작품입니다. 수수께끼는 야마다 기사장과 오이시가 왜 금산사를 찾는지? 인데, 이는 추리가 아닌 시노하라 대위의 미행을 통해 드러납니다. 야마다 기사장은 절에 초단파 수신기를 숨겨두고 몰래 전황을 들어왔던 겁니다. 기사장은 일본이 망하면 조선인이 봉기할테니 빼돌린 금을 가지고 바로 달아날 생각이었거든요. 오이시 역시 같은 목적이었고요.

여기까지는 꽤 흥미롭지만, 진상이 밝혀지는건 미행에 따른 결과라 추리물로 보기는 힘듭니다. 게다가 이후 전개는 상상을 아득히 초월합니다. 착하고 순진해보였던 역사학도 출신 군인 시노하라 대위가 일본 패망을 알고 군비를 빼돌리고 오이시와 야마다를 꼬드겨 일본으로 탈출하다가 둘 다 살해한다는 막장 이야기로 흘러가기 때문이에요. 심지어 이하라 부인마저 살해하고 반지를 빼앗는다는 암시마저 등장하니 말 다했지요.

일장기에 색을 칠해 태극기를 만들고 봉기한다는 등 당시 조선에 있지 않았다면 몰랐을 디테일은 여전히 놀라운 수준이고, 일본인들이 자기 하나 살자고 조강지처까지 버리면서 발악하다가 모두 끔찍한 최후를 맞는다는 점에서는 마음에 들어요. 허나 앞서 설명드렸듯이 추리적으로나 전개 면으로나 그다지 점수를 줄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비와 2층" 

전쟁 때 군대에서 운전사로 일하던 하타노는 물자를 빼돌린 뒤 전후 암시장을 통해 한 몫 단단히 잡았다. 레이코와 바람이 난 하타노는 아내 아키에와 이혼하고 싶어지지만 위자료가 아까와 죽일 생각을 하게 되는데...

하타노가 아키에를 살해하는데 사용된 기상천외한 트릭이 눈길을 끕니다. 아키에에게 큰 장화를 뒤집어 씌운 뒤, 곧바로 외출하면서 아랫층 관리인에게 부인이 히스테리를 부리니 윗층에는 올라가지 말라고 지시했던 겁니다. 피해자는 살아있는 동안 어떻게든 장화를 벗으려 발버둥 쳤지만, 관리인은 히스테리를 부린다고 생각해서 올라가지 않았고요. 이후 아키에는 질식해서 죽음에 이르지만 이 때까지는 살아있었으니 범인 하타노의 알리바이도 완벽하게 성립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일종의 시한장치 트릭인거지요. 

트릭도 트릭이지만 흉기인 고무 장화는 하타노가 취급하는 물자로 현장에 널려있었다는 점, 또 시체를 발견한 뒤 곧바로 장화를 벗기고 자신이 신어서 증거를 인멸한 마지막 행동이야말로 진짜 탁월한 아이디어였습니다. 하타노가 1년 뒤 암시장에서 총에 맞아 죽는다는 허무함도 전후 일본의 상황과 잘 어울렸고요.

범인 하타노가 대단한 완력을 지녔다는 등의 디테일이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그건 조금 아쉽네요. 그래도 추리적으로는 나무랄데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석양에 물든 성" 

스미코는 아버지의 지인인, 국회의원이었다는 아와시마에게 속아 시골 명문가의 미치광이 외동아들에게 시집간다. 행복했던 나날은 잠깐 뿐, 남편의 광증을 알게 된 스미코는 이혼한 뒤 본가로 돌아온다. 그런데 뻔뻔한 아와시마는 되려 그녀를 농락하고, 살의를 품은 스미코는 아와시마를 사고로 위장하여 살해한다.

시골 명문가의 미치광이 외동아들, 후계자라는 뻔한 소재가 등장하기는 하는데 그 존재는 사건과는 무관하다는게 특이했던 작품입니다. 솔직히 왜 등장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그 외에는 딱히 인상적인 부분도 없어요. 스미코가 아와시마에게 농락당한다는 전개도 지금 보면 영 이해가 되지 않았고요. 스미코가 러브 호텔에 투숙한 아와시마에게 수면제를 탄 맥주를 먹이고, 욕실에서 익사시킨다는 범행의 설득력은 높지만 추리적으로는 그닥입니다. 결국 사고사로 처리될 뿐 범행은 드러나지도 않고, 추리의 여지도 없으니까요.

한마디로 신세 망친 처녀의 복수를 그린 드라마인데 전형적이고 뻔해서 점수를 줄 부분이 없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전등" 

아버지의 골동상에서 일하던 스미코에게 혼담이 들어오지만 계속 거절하던 어느 날, 그녀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 유력한 용의자는 혼담을 가져오던 가나이와 그녀에게 호감을 갖고 추파를 던지던 무라타였다. 둘 중 누가 범인인가?

전편의 주인공 스미코가 이번에는 피해자로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스미코가 살해된 시간과 그녀의 방에 침입한 수법 등 범행 관련 정보를 초반부에 상세히 알러줍니다. 이 과정에서 '왜 범인은 살해 후 도주하면서 전등을 켜 놓았는지?'라는 수수께끼도 드러나고요. 전등만 꺼 놓았다면 시체가 보다 늦게 발견될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 수수께끼가 앞서의 범행 시간, 범행 방법과 조합되어 뭔가 대단한 트릭이 나오겠구나! 싶은 기대를 품게 만듭니다.

그런데 진상은 생뚱맞습니다. 불을 끄지 않은 이유는 범인이 도주할 때 지진이 일어나서 지진을 무서워한 범인이 경황없이 도주했기 때문이라는 건데, 앞서의 복선이나 단서를 통해 밝혀지는게 아니거든요. 이를 경찰이 밝혀낸건 가나이가 연행된 상태에서 지진이 일어난 덕분입니다. 운과 우연이 조합된 결과인거지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착상은 재미났지만, 정교함이 아쉽습니다.

"티켓"

고물상 다이치는 골동상의 첩 스가를 통해 철공소의 폐품 철사를 얻어 팔게 된다. 철사의 수요가 폭증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폐품 철사를 풀어서 파는데 큰 인건비가 들게 되어 고민 끝에, 고물업자 사카이의 요청 - 철사 푸는 기계를 만들테니 자금을 지원해 달라 - 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스가까지 끌어들여 큰 돈을 투자한 기계는 실패했고, 스가의 독촉에 시달린 나머지 다이치는 사카이와 함께 스가를 살해하고 그녀가 가진 돈을 가로챌 계획을 세우는데...

다이치와 사카이가 스가를 살해할 계획을 세우고, 그녀를 범행 현장까지 끌고가 죽이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도서 추리물같은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범인의 완벽한 계획을 파헤치는 수사가 이어서 펼쳐지지는 않고, 사카이가 다이치까지 죽이려다가 자신이 죽고만다는 다소 허무한 결말이라서 도서 '추리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아니, 추리물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어려워요. 사카이가 다이치를 죽일 이유가 없다는 점 때문입니다. 이왕 한 명을 죽였다면, 한 명 더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죽이려면 인적없던 스가 살해 현장에서 바로 죽이는게 당연합니다. 스가가 가지고 있던 돈을 반으로 나누지 않아도 되니까요. 멀고 먼 시골 촌구석인 현장에서 기껏 도망쳐 나온 뒤, 시체에 유력한 증거인 '기차표'를 남겨두었다는 말로 다시 다이치를 현장으로 보낼 이유는 없어요.

전후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돈에 매달리는 인간 군상에 대한 디테일은 좋습니다. 범죄에 빠져드는 과정, 범행이 일어나기까지의 긴장감도 잘 그려내고 있고요. 그러나 정작 중요한 범행 동기가 여러모로 납득이 되지 않아서 아쉽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대필"

쓰치다 사부로의 집에 하숙하는 양공주 나쓰코는 대필을 업으로 하는 도쿠라와 사귀게 되었다. 그녀는 빅터라는 중사의 '키푸' (병사 한 명에게만 전속된 아가씨)였는데, 종종 빅터에게 폭행을 당해 멍이 들고 화상을 입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나쓰코는 도쿠라와 밀회를 위해 준비했던 집에서 죽었다. 사인은 질식사였는데, 그녀의 몸 어디에도 아무런 흔적이 남아있지 않고 가스 중독이나 약물에 의한 죽음도 아니어서 사건은 미궁에 빠지는데...

범인이 나쓰코를 어떻게 살해했는지?가 이야기의 핵심인 본격물입니다. 허나 후더닛물은 아니에요. 범인은 도쿠라일 가능성이 가장 높거든요. 가장 처음 시체를 발견했을 뿐더러, 유력한 용의자는 빅터와 도쿠라밖에 없는데 빅터는 나쓰코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상태였으니까요. 그래서 범행 방법만 알아내면 되는, 구태여 표현하자면 하우더닛물인 셈이지요.

등장하는 흉기는 전기입니다. 변압기를 연결하여 가정용 100볼드를 승압하여 감전사 시킨 것으로, 도쿠라는 간다에 있는 전기 학교를 졸업했다는 부연 설명도 있고, 나쓰코 시체에 땀을 많이 흘렸다는 단서도 제공하는 등 나름 공정한 정보 제공에도 신경 쓴 티가 납니다.

그러나 전기 감전사의 경우 몸에 흔적이 남기 마련입니다. 도쿠라가 나쓰코 화상 자리에 전선을 가져다 대었다 한들 그 흔적이 완벽하게 감추어졌으리라고 기대하기는 힘들어요. 또 앞서 말했듯 유력한 용의자는 도쿠라밖에 없기에, 경찰이 조금만 더 파고들었다면 범행 방법은 몰라도 범인을 밝혀내는건 그리 어렵지 않았으리라 생각되고요. 무엇보다도 도쿠라의 동기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양공주와 관련된 사건이라는 점에서 작가의 대표작인 "제로의 초점"이 떠오르네요.

"안전율"

도아 철강 회장 가구 류헤이에게 좌익 학생운동 단체인 총학련 재정부 부장의 전화가 걸려왔다. 흥미를 느낀 가구는 후쿠시마 준이치와 만나 그들의 사상을 들은 뒤, 2만엔을 기부했다. 그 뒤, 가구는 자신과 내연 관계에 있는 스탠드바 '코스타리카'의 마담 사호코가 바텐더 기미지마로부터 협박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총학련 시위를 이용해 기미지마를 살해할 계획을 세우는데...

적군파로 대표되는 60년대 급부상했던 좌익 학생 운동이 등장하는게 이채로왔던 작품. 사회적 이슈를 고발하는 작품을 써 왔던 사회파 작가답습니다. 좌익 운동의 지도부는 대학생 애송이들이지만 당시 사회 지배층들이 상당한 위기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묘사도 신기했고요. 또 프락치를 멤버들이 구분하여 린치하기 위해 특별한 표식을 한다는 설정도 그럴듯 했습니다.

그러나 좌익 운동은 그냥 신기한 소재 이상의 역할을 하지는 못합니다. 이를 범행에 사용할 의도였다면 목적, 방법이 명확했어야 하는데 , 단지 등 뒤에 마크를 하는 정도로는 많이 부족해요. 기미지마가 연적이라 할 수 있는 가구의 초대로 선뜻 학생 운동 현장에 나타났다는 내용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 시위가 격해지기 전에 귀가해 버렸을 수도 있는 등 헛점도 많습니다. 차라리 마크는 경찰을 속이기 위함이며, 가구 회장이 직접 살인을 저질렀다는 식의 전개가 나았을거에요. 여러모로 너무 대충 넘긴 느낌입니다. 이 한 편만으로는 완성된 이야기로 보기 어렵네요.

아울러 "시마 과장" 등을 보아도 알 수 있지만, 당시 일본 고위 인사가 내연의 처가 있는게 별로 문제가 되었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문제가 되었더라도, 회장이 직접 살인에 나선다는건 현실적이지 않지요. 별점은 1.5점입니다.

"그림자"

전 편에서 기미지마가 좌익 학생 운동 단체에게 살해된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사호코가 살해했다는게 밝혀지는 이야기입니다. 전 편이 완성된 작품이 아닌 느낌이 든 건 당연합니다. 이번 이야기에서 기미지마 살해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니까요. 사호코 마담이 기미지마를 바에서 찔러 죽인 것이라고요. 그 뒤 그녀는 가구를 위해서 죄를 지었기에 그를 떠난다는 내용입니다.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사랑 이야기죠? 그런데 와 닿지 않기는 전편과 마찬가지입니다. 전 편은 이야기의 구멍이 많은게 문제였다면, 이번에는 범행 방식이 문제입니다. 다이아몬드 반지를 이용해 유리를 잘라 흉기로 사용했다는게 특히 억지스러워요. 바에 흉기가 한두개가 아닐텐데 왜 흉기를 만들어가면서까지 범행을 저질렀을까요? 그것도 끼고 있던 다이아몬드로 유리를 잘라가면서까지? 그냥 유리를 깨도 뾰족한 조각은 쉽게 얻을수 있었을텐데? 게다가 마지막에 다이아몬드에 난 상처가 큰 증거인 것 처럼 묘사되는데, 이는 절대로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그걸로 유리를 잘랐다는건 증명하기도 불가능하고요.

경찰 수사망에 반지가 걸리는 것도 우연에 불과한 등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이 없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소멸" 

N시 호텔 공사 현장에서 일하게 된 17세 소년 지로는 휴일에 우연히 별장촌 주민 도요코를 만났다. 그녀는 지로가 성실하고 공부도 열심히 한다는걸 알고 여러가지 선의를 베풀었고, 지로는 그만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도요코는 결혼하여 별장촌을 떠난다고 지로에게 말했고, 지로는 도요코의 약혼자를 살해한 뒤 약혼 반지를 빼앗지만 이후 주박처럼 반지에 얽메이는데....

계급간 격차로 인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살의를 불러온다는 통속적인 내용의 작품. 그래도 밑바닥 노동자와 부잣집 딸이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보다는 현실적이기는 합니다. 계급 격차를 빼면 '질투심'으로 살인을 저지른다는 이야기이니까요.

그러나 도요코가 경찰에게 지로의 존재를 숨길 필요가 무엇인지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별장에 초대해서 식사까지 대접해서 별장 고용인들도 아는 사실인데 왜 함구시켰을까요? 그녀 역시 나름대로 지로에 대한 애정이 있었던걸까요? 하지만 그에 대한 묘사는 전무합니다. 

게다가 마무리는 최악입니다. 지로가 증거인 다이아몬드 반지를 두려움 때문에 항상 소지하고 다녔다는 설정도 설득력이 낮지만, 급작스럽게 반지를 공사현장 철근에 용접한 뒤 철근이 떨어져 이상한 흔적이 들통난다는 결말은 우연치고도 그 정도가 너무 심했습니다. 심지어 공사장 옆을 지나가던 행인이 떨어진 철근 자재에 맞아서 중상을 입고, 그래서 경찰이 함께 현장을 조사하던 중 철근에 백금이 달라붙은걸 알게 된다? 이 정도면 지로가 반지를 낀 채로 사건 담당 형사 앞에 떨어진다 수준의 우연일 겁니다.

고도 성장이 시작되는 상황에서의 빈부 격차, 사회 문제를 통속적이고 다룬 진부한 이야기로 추리적으로도 눈여겨 볼 부분은 없습니다. 반지를 이야기에 억지로 엮다가 마지막에 없애기 위해 만든 이야기로밖에는 보이지 않는군요. 별점은 1.5점입니다.

2022/01/16

작가 형사 부스지마 - 나카야마 시치리 / 김윤수 : 별점 2점

작가 형사 부스지마 - 4점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김윤수 옮김/북로드

제목처럼 전직 형사이지만 은퇴 후 작가로 데뷰해 인기를 얻으면서, 형사 지도원으로 복귀한 부스지마가 신참 형사 아스카와 함께 작가들이 관련된 여러 사건들을 해결한다는 내용의 단편 모음집입니다. 이런 저런 작품들로 많이 접해 보았었던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이지요.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지극히 만화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잘 나가는 작가로 문학계에 정통하며 온갖 냉소와 비난을 사정없이 날리는 작가 형사 부스지마의 설정부터가 만화적이니까요. "부호 형사"와 별다를게 없는 과장된 설정입니다. 등장하는 편집자와 작가들에 대한 설정들도 억지가 느껴질만큼 과장되어 있다는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사회파에 가까운, 묵직한 작품들을 선보였던 작가답게 마냥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출판계, 특히 작가들에 대해서 부스지마의 입을 빌어 통렬한 비판을 가하는건 나름 메시지를 전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좀 부족했고, 이야기 구성이 대체로 한가지 패턴이라는 단점은 큽니다. 전체 평균한 별점은 (간당간당한) 2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트릭과 진상, 범인을 모두 까발리는 스포일러 가득한 리뷰'라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워너비의 심리 테스트" 소설 스메라기 신인상 1차 심사위원이었던 도메키가 자루없는 날카로운 알루미늄 송곳에 꿰뚫려 살해당했다. 용의자는 도메키가 심사평을 험하게 썼던 신인상 출품 작가들 3명 - 다다노 구스오, 오우미 히데오, 아이카와 시오리 - 이었다. 그러나 작가들의 심문에 넌더리가 났던 아소 반장과 이누카이 형사는 신참 아스카에게 형사 지도원 부스지마의 도움을 받아 수사를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사건 설명을 들은 부스지마는 3명을 각각 만나, 그들 면전에서 더욱 신랄한 비판을 가하는데....

주요 설정과 등장인물들이 소개되는 시리즈 제 1작. 이 시리즈가 어떤 작품인지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부스지마가 얼척도 없이 자기 작품에 대해 자신감만 가득차 있는 신인 작가들을 통렬하게 깨부시는 장면이 가장 핵심이라는 점에서 말이죠.

추리적으로 빈약하다는 특징도 두드러집니다. "자루가 없는 알루미늄 송곳"이 화살인건 너무 명백하니까요. 이를 초반에 알아채서 이야기하지 않는게 더 이상했습니다. 부스지마가 용의자들을 도발해서 재차 범행을 시도하도록 만드는데, 범인이 이에 넘어가 부스지마를 죽이려 한다는 전개도 다소 유치했고요. 오우미 히데오가 기계 공작 회사를 다니다가 정년 퇴직했다는 정보를 이용하여 흉기를 추리해 낸 뒤, 가택 수사로 증거를 잡는게 더 추리물다왔을겁니다. 부스지마가 직접 표적이 되어 현장에서 범인을 체포한다는 과장된 추리쇼는 불필요했을 뿐더러, 억지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아무리 방탄복을 입었다고 한 들, 화살을 머리에 맞을 수도 있었으니까요.

신인 작가들에 대한 비난도 나름 새겨들을 부분은 있지만, 대상자인 3인이 안 좋은 신인 작가의 단점만 극대화하여 합쳐놓은 인물들이라는 것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비현실적인 설정으로 일관한다는 점에서, 만화적인 느낌을 부각시킬 뿐이었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편집자(編集者)는 편집자(偏執者)" 

편집자 마다라메 아키라에게 신인 작가들이 연이어 찾아왔다. 하고로모 사야는 데뷰 전 동인 작품의 출간을 막고자, 그리고 그녀 원고 속 트릭 아이디어를 반강제로 중견 작가에게 넘긴걸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덴도 구이치로 역시 항의가 목적이었다. 데뷰작에서 사용하라고 마다라메가 전해 준 트릭과 반전이 인기작가 아야메 작품을 베낀 것이어서, 덴도는 표절 작가로 낙인찍혀 작가 인생을 망쳤기 때문이었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출판, 문학계를 통렬히 비판합니다. 신인 작가들 약점을 쥐고, 자기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폭언을 내뱉는 악덕 편집자 마다라메, 그리고 제대로 된 작가도 아니면서 자기 작품과 소설가라는 직업에 헛된 신념을 품은 신인 작가를 통해서요. 문단에서 라이트노벨 작가는 일회용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는 등의 업계인스러운 이야기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나카야마 시치리 시선을 보자면, 편집자보다는 작가 문제가 훨씬 큰 것으로 그려져 이채롭더군요. 편집자가 작가와 이인삼각으로 작품을 완성해 나가면 좋지만, 수익을 중시하는 편집자도 당연히 필요하다는게 나카야마 시치리의 논리거든요. 출판도 시장이니까요. 마다라메도 문제는 있지만,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 주었다는 측면으로는 우수한 직원이었다고 설명합니다. 

반면 작가들은 일반인의 상식도 갖추지 못한, 자의식에만 쩌든 괴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특히 덴도 구이치로는 아예 동정도 가지 않을 정도에요. 소설가라는 놈이 편집자가 제공한 트릭과 반전으로 글을 썼다면, 이건 작가가 아니라 그냥 대필 기계일 뿐이니까요. 이런 주제에 자기가 창작자다 뭐다 운운하며 뭔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인 것 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욕을 먹어도 쌉니다. 조금 낫기는 하지만 하고로모 사야도 마찬가지에요. 또 이런 작가들이 단순한 비지니스 파트너에 불과한 편집자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모습도 통렬하게 꼬집습니다.

다행히 이 작품은 비판 외에도 추리물로도 볼 만했습니다. 사용된 알리바이 트릭이 꽤 괜찮았거든요. 우선 하고로모가 흉기를 준비하고, 범행 현장인 호텔 지하 주차장까지 마다라메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범행 시각에는 너무나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듭니다. 그리고 호텔 바에서 술을 마시던 덴도가 화장실을 가는 척 잠깐 자리를 비운 뒤,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 트렁크 안에 가두었던 마다라메를 찔러 죽이고 바로 돌아온 겁니다. 나중에 하고로모가 차를 회수하면서, 시체도 유기했고요. 꽤 그럴듯했어요. 

그러나 문제는 호텔은 CCTV가 완벽하게 존재하는 곳이라는 거지요. 지하로 향하는 모든 입구, 엘리베이터와 주차장 CCTV만 조사해도 트릭이 드러나는건 순식간이었을 겁니다. 덴도가 호텔 바에 있었다는걸 검증하기 위해 경찰이 철저하게 수사했을테니 빠져나가기는 힘들었을테고요. 그런 점에서 정교한 계획이라고 보기는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이는 수사의 문제일 뿐, 트릭을 폄하하기는 힘들고 독자가 추리하기 위한 정보도 공정하게 제공되고 있는 만큼 별점은 2.5점 주겠습니다.

"상을 받긴 했지만" 

신인상 수상작가들에게 쓴 소리를 하던 노 작가가 살해된 사건이 등장합니다. 당연히 쓴 소리를 들은 작가들은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자의식 과잉으로 주제 파악을 하지 못한 애송이들에 불과하고요. 부스지마가 풋내기들 정신 교육을 시킨다는 전개도 앞서 이야기들과 똑같습니다. 한마디로 원 패턴으로 일관하는 자기 복제에 지나지 않습니다. 

추리적으로도 최악이에요. 트릭이나 단서, 증거같은건 등장하지도 않거든요. 부스지마의 정신 공격(?)에 무너진 범인이 스스로 범행을 자백하는게 전부니까요. 작가들을 쓴 소리로 비판하면서, 본인은 이런 작품을 버젓이 발표하는건 무슨 정신머리인지 모르겠네요. 최악 중 최악으로 별점은 1점입니다.

"애독자" 

작가 다카모리 교헤이 토크쇼 간담회에 3명의 독자가 참석했다. 한 명은 인터넷에 혹독한 비판만 올리며 즐거워하는 일종의 악플러인 구와에 도모미. 한 명은 다카모리 교헤이에게 강하게 연심을 품은 정신병자 스토커 마키시마 히나코. 마지막 한 명은 다카모리 교헤이에게 어떻게든 자기 작품을 보여주려고 발악하는 작가 지망생 가노 이쿠였다. 그리고 간담회 직후 다카모리 교헤이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는데...

여러모로 앞서의 시리즈 다른 작품들과는 차이점을 보여줍니다. 첫 번째는 작가가 아니라 작가에게 비틀린 애정을 품은 독자들이 주요 용의자라는 점입니다. 두 번째는 부스지마가 이 독자들에게는 독설을 날리지 않는다는 점이고요. 마지막 세 번째는, 범인이 따로 있었다는 점입니다! 다카모리 교헤이는 여자 관계가 복잡해서, 아내가 그를 살해했던게 진상이었습니다. 최신간 속지 부분을 뜯어내어 현장에 두었던건, 사인을 받았을 팬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고 했던 것이고요. 이 페이지만 뜯어진 채 시체 밑에 책이 놓여져 있던 것, 사인이 번지는걸 막기 위함인 간지가 현장에 없었던 것, 그리고 현장에 있던 책은 2쇄본이었는데, 2쇄본이 작가 서재에 없었던 걸로 보아 서재에서 꺼내온 책이라는 결정적 증거 등으로 진상을 추리해내는 과정도 합리적이었습니다. 이 중 간지가 현장에 없었던게 증거가 되기는 힘들어 보이기는 했지만, 그 외 내용은 아주 괜찮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원 패턴이었던 전개를 탈피했다는데 점수를 주고 싶네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스포일러 가득한 악담을 리뷰랍시고 올리는 구와에 도모미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등장하는데, 살짝 찔리더군요. 저도 거의 모든 리뷰에 스포일러를 가득 담고 있으니까요. 앞으로는 리뷰 내용에 스포일러가 있다는걸 더 잘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원작과 드라마 사이에는 깊고 어두운 강이 있다" 

부스지마의 트리콜로 시리즈의 드라마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프로듀서 소네는 원작의 인지도만 원했기에, 주인공도 여자로 바꾸고 없던 러브라인, 해피엔딩을 추가했으며 핵심인 보험금 살인도 스폰서 눈치를 보느라 치정 살인으로 바꾸고 말았다. 결국 부스지마와 편집자 신보는 방송사 관계자와 담판을 짓는 자리를 갖고, 부스지마는 언제나의 말투로 이 모든걸 소설이나 기사 형태로 폭로하겠다며 관계자들을 비웃었다. 그리고 그날 밤, 소네는 살해당했고 부스지마도 용의자로 떠올랐다.

작가 지망생들보다는 TV 드라마 관계자들을 비웃고 비난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비판할 악당의 악행을 먼저 묘사해서 독자들의 공분을 불러 일으킨 뒤, 부스지마가 면전에서 한 방 먹이는 방식은 전작들과 거의 같습니다. 한마디로 원 패턴이라 식상했어요. 

추리적으로도 건질게 별로 없습니다. 부스지마가 시나리오 작가 후세가 소네를 공격한 방법을 과거 드라마에서 찾아내는 등의 활약은 하지만, 후세와 신보의 발자욱을 현장에서 입수했기 때문에 추리로 범인을 밝혀낼 여지는 전무하니까요. 후세는 단순 폭행이었고, 실제로 질식사하게 만든건 편집자 신보였다는 추리도 설득력이 낮습니다. 무엇보다도 신보가 자백하지 않았다면, 범행을 증명하기 쉽지 않았을겁니다. 기절한 사람을 돌려 놓으면 질식사 할 수 있다는 책을 함께 작업했다는 것 정도가 증거가 될 수는 없을테니까요.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 2인 3각으로 작품을 만든 신보를 직접 고발하는 부스지마가 자기는 작가 이전에 형사였다는 멋진 말을 한 직후, 이를 소재로 작품 하나를 쓸 수 있겠다고 하는 장면은 부스지마 캐릭터가 어떤 인물인지를 잘 드러내기는 합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작위적으로 느껴져서 별로 자연스럽게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여러모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