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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05

명탐정 코난: 척안의 잔상 (2025) - 시게하라 카츠야 : 별점 2.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야마토 칸스케는 용의자를 추격하던 중 저격을 당해 왼쪽 눈의 시력과 당시 사건에 대한 기억 일부를 잃었다. 10개월 뒤, 모리 코고로의 옛 동료 사메타니가 저격당해 죽자, 모리 탐정은 경찰과 함께 사메타니가 찾았다는 나가노현으로 향했다. 

결국 여러가지 단서들로 범인은 사법 거래에 불만을 품고 정부를 협박하려 했던 나가노현 경찰 하야시였다는걸 밝혀냈다. 마지막 설산 추격전 끝에 하야시는 체포되고, 야마토 칸스케도 잃어버렸던 기억을 되찾으며 사건은 해결된다.

"명탐정 코난" 시리즈의 28번째 극장판입니다. 전작은 하코다테가 무대였는데 이번에는 나가노현이 무대입니다. 설산과 노베야마 전파망원경 시설이 주 배경으로 등장하지요.

가장 좋았던 점은 원작 만화나 TV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독립적인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모리 코고로가 오랜만에 사건 해결의 중심에서 활약하는 것도 반가웠습니다. 나름대로의 추리는 물론이고 뛰어난 사격 실력까지 선보이며 제 몫을 톡톡히 합니다.

등장인물이 많지만, 비중 배분도 훌륭합니다. 나가노현 경찰 3인방은 사건의 핵심 관계자인 만큼 당연하게 활약하고, 란은 범인과 맞서 가라데 액션을 보여 줍니다. 소년 탐정단은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내고, 하이바라는 마지막 추격전에서 과학자로서의 능력을 발휘하고요. 비중이 적은 사토와 타카기도 마지막 추격전에서는 나름 역할을 합니다. 아가사 박사의 퀴즈, 아무로 토오루의 냉정한 모습도 팬으로서 반가왔어요.

추리적으로도 볼만합니다. 범인이 사용한 총기를 주요 단서로 쓰는게 좋았어요. 겉으로는 권총이지만 실제로는 소총탄을 사용하는 개조 총기였는데 이는 앞서 여러 단서들로 밝혀지고, 결국 범인이 경찰 내부 인물이라는게 자연스럽게 드러나거든요. 피해자의 별명인 '와니' 역시 진범을 특정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나가노현 경찰 하야시가 연인의 죽음 탓에 사법 거래에 불만을 품고 정부를 협박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동기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설산과 전파망원경 시설을 활용한 액션들도 대체로 그럴듯하게 그려집니다. 최근 극장판에서 자주 보였던 어처구니없는 액션이 줄어든 점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주 무대인 나가노의 풍광도 수려하게 그려지고요.

반면 코난의 활약은 다소 아쉬웠습니다. 추리에서는 큰 존재감을 보여 주지 못했고, 마지막 평지에서 무한 동력으로 날아다니는 스노보드 추격 장면은 황당했습니다.

범인 하야시의 행동도 쉽게 납득되지는 않습니다. 사법 거래에 불만을 품고 정부를 협박하려 했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것을 우려해 사메타니를 살해한 것은 스스로 범행의 명분을 무너뜨린 행동이었습니다. 그런다고 해서 법안이 바뀔 이유도 없고요.

야마토 칸스케의 기억 상실 역시 아쉬웠습니다. 특정 기억만 사라졌다가 사건 해결에 필요한 순간 되살아나는 전개는 지나치게 편의적이고 작위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사메'와 '와니'의 연결도 많이 사용된 소재인데, 작중 등장인물들이 모두 모르고 있다는 것도 좀 와 닿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이야기 완성도가 떨어졌던 전작보다는 여러모로 낫습니다. 모리 코고로의 활약도 만족스러웠고요. 일부 설정은 아쉬웠지만 코난 팬이라면 충분히 추천할 만한 작품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20/03/08

질풍론도 - 히가시노 게이고 / 권남희 : 별점 2점

질풍론도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남희 옮김/박하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구즈하라는 탄저균을 활용한 생물병기 'K-55'를 비밀리에 개발했지만, 부당 해고당한 뒤 연구소장 도고에 대한 원한으로 K-55를 훔쳐내어 스키장으로 향했다. 코스 밖 너도밤나무 밑에 세균이 담긴 용기를 묻고, 장소를 알아낼 수 있는 표식으로 너도밤나무에 발신기가 넣어진 테디 베어를 걸어 둔 구즈하라는 설산과 테디 베어가 찍힌 사진 두 장과 함께 3억 엔을 요구하는 메일을 도고 소장에게 보냈다. 돈을 보내지 않으면 세균은 방치될테고, 이후 계절이 바뀌어 섭씨 10도 이상이 되면 보관 용기는 깨져서 탄저균에 의한 재앙이 시작될 것이라는 협박과 함께였다.
그러나 곧바로 구즈라하는 급작스러운 자동차 사고로 죽었고, 도고 소장은 K-55를 경찰에 알리지 않고 은밀히 찾아낼 것을 선임 연구원인 구리바야시 가즈유키에게 명령했다. 구리바야시는 스노보드 마니아인 중학생 아들 슈토와 함께 구즈하라의 사진으로 알아낸 유력 후보지인 사토자와 온천 스키장으로 향하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설산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입니다. 설산 3부작 시리즈답게 "백은의 잭"의 주인공 중 한 명이었던 네즈가 사토자와 온천 스키장의 패트롤로, 치아키는 슬럼프에 빠진 프로 선수로 등장하며, 스키, 스노보드와 스키장에 대해 깊은 이해가 동반된 묘사로 가득차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K-55 묻혀있는 스키장을 사진 하나로 찾아낸다던가, 스키장으로 이동하는 방법, 스키 종류에 대해 풀어놓는 부분들 처럼요. 특히 활주에 대한 매력을 풀어내는 장면은 실제로 그런 멋진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쓸 수 없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의도는 불순하더라도 구리바야시가 아들 슈토와 스키장에 온 후, 점차 부자 관계가 회복되어 가는 묘사도 뻔하지만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설득력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지요. 이는 전작의 이리에 부자 이야기와도 어느정도 겹쳐서, 역시 시리즈구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또 K-55가 묻혀있는 나무를 나타내는 테디 베어를 찾는 후반부 박진감도 괜찮습니다. 오리구치가 협박으로 병원균이 담긴 용기를 손에 넣지만, 치아키와의 추격전 끝에 네즈에게 빼앗기고, 그러나 카페에서 용기가 실수로 깨진 뒤 바꿔치기 되었다는 걸 깨닫고, 다시 세균을 가졌을 유키를 쫓고, 또 바꿔치기하고... 하는 과정이 결말까지 이어지는데 숨돌릴 틈이 없을 정도에요. 이런저런 등장인물들이 총 출동해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리는, '무슨무슨 대소동'같은 오래전 활극 느낌인데 저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울러 이 후반부가 제목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되네요. 질풍은 말 그대로 세게 부는 바람처럼 휘몰아치는 추격전을, A-B-A-C-A 처럼 어떤 주제로 넘어가더라도 다시 A로 돌아오는 형식의 악곡인 론도는 어떤 의외의 상황, 곁가지 이야기가 펼쳐져도 결국 '탄저균 용기'로 귀결되는 전개를 의미하는게 아닌가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모로 전작보다는 못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 작품은 정교한 맛을 찾아보기 힘든, 그냥 모험물에 불과한 탓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스키장을 찾아내는 정도만 약간의 추리가 있을 뿐, 테디베어를 찾는건 순전히 발품파는 것 밖에는 없으니까요. 별다른 단서도 없고, 그냥 열심히 찾다보면 발견할 수 있다는건 결국 어린아이들 소풍 중의 '보물 찾기'와 다를 바 없는 이야기인 셈이죠.

이는 작품 속 악역의 우두머리인 도고 소장이 무식하고 무능력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백은의 잭"의 신게쓰 고원 스키장 임원들은 악당이기는 했지만 나름 계획도 세우고, 음모를 꾸미는 정도의 두뇌는 갖췄던 것에 반해 도고 소장은 무리한 지시만 늘어놓는 재수없는 상사에 불과하거든요. 그래서 독자가 두뇌 게임을 즐길 여지와 정교한 맛 모두 전무합니다. 도고 소장에 비하면 차라리 죽은 구즈하라, 그리고 소장 뒤에서 암약한 악녀 오리구치 마나미가 더 낫기는 합니다. 특히 마나미는 '독수리는 발톱을 숨긴다'는 명제를 따라 몸을 숨기며 한 탕을 노리는 캐릭터인데 은밀한 흑막에 참 잘 어울린다 싶더라고요. 그녀가 학생일 때 '백 점을 맞을 수도 있지만, 그래봤자 질투를 받거나, 학급임원 일을 떠맡을 뿐'이라며 일부러 몇 개 틀린다는 에피소드가 특히 마음에 들었어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큰 돈은 한탕 승부를 걸 수 밖에 없다, 그 때가 올 때 까지는 느려터지고 둔해보이도록 위장하여 기회를 기다려야한다, 그리고 기회가 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면 안된다'는 생각도 그녀에게 정말 잘 어울렸고요. 인상적인 캐릭터에 비하면 활약과 결말에서의 퇴장도 미약한 편인데, 도고 소장보다는 차라리 마나미를 전면에 내세워 이야기를 끌고나가는게 어땠을까 싶네요. 도고 소장 옆에서 구리바야시를 도와주는 듯 했지만, 마지막에 구리바야시 뒷통수를 치는 식으로요.

또 은백색의 스키장에서 펼쳐지는 스키와 보드 활주가 너무 매력적으로 그려지고, 슈토의 풋사랑, 네즈와 치아키의 사랑과 고민에 대한 비중이 높은 탓에 위험한 생물병기 탄저균 K-55의 위험이 전혀 와 닿지 않는 전개도 단점입니다. 그냥 보물 찾기에 대한 청춘 모험물로 밖에는 보이지 않더라고요.

전작과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작위적인 전개도 거슬렸습니다. 테디 베어를 아무 상관도 없는 중학생들이 먼저 발견한다는 전개도 그렇고, 처음 네즈가 겨우 입수했던 K-55가 중학생 유키에 의해 후추로 바꿔치기 되었었는데, 결국 찾아낸 진짜 K-55마저도 구리바야시의 아들 슈토에 의해 소시지로 바꿔치기 당햔다는 결말은 좀 지나쳤어요. 이런 요소까지 오래전 '대소동' 류의 이야기를 따를 필요는 없었을텐데, 여러모로 아쉽네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쑥쑥 읽히는 맛은 있기는 한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이 아니시라면 꼭 구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소설로 읽기보다는 한바탕 신나는 액션이 신나게 펼쳐지는 코믹 액션 영화로 감상하는게 훨씬 나을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일본에서는 아베 히로시 주연의 코믹 액션 영화로 이미 발표되었던데, 사람들 생각은 다 똑같나 봅니다.

2020/06/21

연애의 행방 - 히가시노 게이고 / 양윤옥 : 별점 2.5점

연애의 행방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소미미디어

히가시노 게이고의 설산 시리즈 네 번째 작품인 단편집입니다. 시리즈 2편 부터의 무대였던 사토자와 온천 스키장이 주요 무대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단편집이라는 점 외에 다른 시리즈와는 전혀 다른 차이점이 있습니다. 추리, 모험, 범죄물이 아니라 일상 연애물이라는 점입니다! 모두 일곱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호텔리어 히다를 큰 축으로, 그의 직장 동료이자 친구인 미즈키와 아키나 커플, 쓰키무라와 마호 커플, 그리고 히다가 프로포즈를 하려 했으나 실패한 미유키와 고타 커플, 마지막으로 히다와 모모미 커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설산 시리즈답게 이들의 연애가 대부분 사토자와 온천 스키장에서 이루어지고요. 전작이었던 "눈보라 체이스"가 대학생의 청춘 연애 활극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아예 연애물에 집중한 건데 그 결과물은 꽤 괜찮은 편입니다. 

무엇보다도 추리 소설 작가답게 연애물이지만 약간이나마 미스터리 요소를 더하고 있다는게 마음에 듭니다. 고타가 모모미와 불륜을 꿈꾸다가 리프트에서 약혼녀 미유키를 마주한다는 첫 에피소드부터 그러합니다. 고글과 마스크 등으로 중무장해서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스키장의 특수 상항을 잘 이용하여 불륜남의 긴장감을 코믹하게 잘 그려내고 있거든요. 이 상황은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고타의 얄팍함이 드러나는 반전으로 연결되는 결말로도 이어지는데 역시 괜찮았습니다. 수미쌍관식 구조인 셈인데 이야기아 아주 잘 어울렸어요.
또 히다의 프로포즈 대작전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미즈키의 프로포즈를 위한 작전이었다는 에피소드도 반전의 묘미가 느껴졌으며, 히다의 진심을 알아내기 위해 모모미가 일부러 슈퍼볼 경기가 있는 날, 사찰 순례 여행을 제안하는 장면 역시 공정한 단서 제공을 통해 쌓아 올린 복선이 설득력있게 쓰여지는 좋은 장면이었습니다.

그러나 미즈키, 고타의 한 없는 가벼움은 영 별로였습니다. 30대의 진중한 연애를 그려주는게 더 좋았을텐데 말이죠. 무엇보다도 모모미가 고타의 얄팍함을 폭로하는 에피소드가 마지막이라는건 많이 아쉬웠습니다. 히다와 모모미 커플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는 확인하고 싶었거든요.

그래도 재미있게 읽히기는 합니다. 가볍게 읽기에 적당했던 소품들이에요. 누가 죽거나, 부서지거나 하는 것 보다 젊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더 설산에 어울리는 법이지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더운 여름, 시원하며 유쾌하며 가벼운 읽을거리를 찾으시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2020/02/28

백은의 잭 - 히가시노 게이고 / 한성례 : 별점 2.5점

백은의 잭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한성례 옮김/씨엘북스

아래 리뷰에는 트릭, 진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신게쓰 고원 스키장의 스키 시즌이 막 시작한 즈음, 익명의 메일이 도착했다. 스키장에 폭탄을 묻어두었다는 협박 메일이었다. 관리 책임자 쿠라타의 의견과는 다르게, 경영진은 돈을 주고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 어쩔 수 없이 협박범과의 거래를 위해 쿠라타는 스키장 패트롤 요원 네즈, 후지사키, 키리바야시의 도움을 얻는걸 허락받고, 3천만엔의 몸값을 건네 주었다. 그러나 몸값을 건네준 뒤에도 범인들의 협박은 계속되는데...

얼마전에 골프를 소재로 한 추리 소설을 읽었었죠. 이번에는 스키장을 무대로 스키어와 스노보더가 활약하는 작품입니다. 이른바 '설산 3부작'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지요. 

우선, 히가시노 게이고의 스노보드, 스키장 사랑은 물씬 느낄 수 있습니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스노보드에 빠진 경위를 설명하는 에세이를 전에 읽었었는데, 확실히 푹 빠졌구나 싶더라고요. 스키장과 스노보드, 스키 등 동계 스포츠에 대한 묘사가 아주 빼어나거든요.

그러나 단지 취미 생활을 소재로 한 소일거리 작품은 아닙니다. 범죄물로도 아주 괜찮아요. 스키장을 협박하는 범인들의 계획부터 그럴싸하니까요. 경영자 입장에서는 협박받은걸 경찰에 신고하여 영업을 그만두는게 더 큰 손실인건 당연하겠죠.
하지만 이건 그냥 양념에 불과합니다. 뒤에서 밝혀지는, 폭탄을 실제로 묻은건 현재 경영진이라는 진상은 더욱 놀랍습니다. 이유도 굉장히 설득력이 높아요. 스키장 매각을 용이하게 하려고 인기없는 호쿠게쓰 구역을 눈사태를 일으켜 없애버리려는 속셈이었던 겁니다. 일본의 법에 따르면, 스키장을 폐쇄하게 되면 그 지역의 자연을 원상태로 회복해야 하기 때문에, 그 돈을 투자하느니 아예 날려버리는게 낫기 때문입니다.
이는 범인들에게도 설득력을 부여합니다. 범인 중 한 명인 마스부치 히데나리는 인기없는 코스가 엮여 있는 마을 촌장 마스부치의 아들이거든요. 그는 스키장에 매수된 아버지의 비밀을 알고난 뒤, 계획을 저지하려고 스키장 협박을 시작하게 되었지요.
범인들이 여러 차례 돈을 요구하며 협박한 이유도 합리적으로 설명됩니다. 돈을 손에 넣을 때 마다 스키장 슬로프 일부만 안전하다고 정보를 흘리면서, 국제 스키대회인 크로스 대회를 호쿠게쓰 구역에서 개최하게끔 유도하려는 의도였습니다. 호쿠게쓰 구역만 일단 안전한게 밝혀지면, 스키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으리라 생각한거에요. 

그리고 세 번째 협박이 스키장 경영진의 역습이었다는 아이디어도 기발합니다. 협박을 자작한 뒤 폭탄을 터트리고, 범인들이 협박에 실패하여 벌인 짓이라고 할 속셈이었다는데 이 역시 충분히 말이 되니까요. 여러모로 버블 이후 스키장의 어려움, 그리고 일본의 법을 잘 활용한 멋진 아이디어였어요.

이러한 범인, 스키장이 얽히고 섥혀 서로가 목적을 위해 암투를 벌이는 복잡한 이야기를 경찰에게만은 절대로 알리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은밀히 네즈에게 범인을 쫓아보라고 말하는 경영진의 석연치않은 행동이라던가, 일부러 네즈가 추격전을 벌일 수 있도록 유도한 세 번째 협박장 등을 통해 잘 드러내는 전개도 빼어납니다. 범인들이 스노보드의 명인들이라서 슬로프에 놓인 돈을 쉽게 회수할 수 있었다는 것도 결말과 잘 연결되고요. 안전보다는 돈을 더 생각하는 스키장 경영진, 이에 반대하는 관리 책임자 쿠라타와 용기있는 패트롤 대원 네즈와 후지사키 캐릭터도 단순하지만 이해하기 쉬워 좋았습니다. 쿠라타와 후지사키의 로맨스, 말괄량이 스노보더 치아키의 발랄함과 활약도 읽는 재미를 더해 줍니다.

그러나 호쿠게쓰 구역에서 일어난 사고로 아내를 잃은 이리에 부자가 폭발에 의한 눈사태 때문에 위기에 처한다는 마지막 결말 부분은 억지스럽습니다. 이리에 타쓰키의 경우, 전날 그 장소에서 극심한 공포를 느꼈는데, 다음날 아침에 다시 그 곳에 가고싶다고 이야기한다? 이건 말도 안되죠. 설령 아버지에 끌려 갔다치더라도, 전날과 마찬가지로 패트롤의 도움을 받는게 당연하고요.
게다가 신게쓰 고원 스키장을 매입하려는 세이운코사의 회장 부부가 이들 부자와 정말로 우연히 엮여 함께 위기에 처하게 된다는건 지나쳐도 너무 지나칩니다. 히요시 씨가 죽다가 살아난 뒤, 그 코스에 더 애착을 느낀다는건 억지 전개와 결말의 화룡정점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런 작위적인 부분을 들어내고, 경영진의 음모와 이를 눈치챈 협박범 정도의 구도로 끌고가는게 더 좋았을겁니다. 꼭 필요했다면 우연은 범인들이 이리에 부인을 사망케 한 사고를 일으킨 스노보더였다는 정도로 끝내는게 좋았을거에요.

뭐 그래도 시원한 범죄 오락 소설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한 번에 몰입해서 읽게 만드니까요. 스토리텔러로서의 히가시노 게이고의 능력이 잘 발휘된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인기 작가의 괜찮은 오락 소설이니 영상화된건 당연한데, 조사해보니 TV 스페셜 드라마로 2014년에 방영되었더군요. 그런데 쿠라타 역은 와타나베 켄, 후지사키 리오 역은 히로스에 료코, 네즈 역은 오카다 마사키라는 나름 화려한 캐스팅에 놀랐습니다. 캐스팅 때문인지 네즈보다 쿠라타의 비중이 엄청나게 커 보이네요. 뭐 이런 각색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겠지만, 설산에서의 박력있는 활강은 전혀 그려내지 못한 듯 싶어 제대로 볼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2020/07/17

젤리피시는 얼어붙지 않는다 - 이치카와 유토 / 김은모 : 별점 1.5점

젤리피시는 얼어붙지 않는다 - 4점 이치카와 유토 지음, 김은모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U국에서 개발한 소형 신예 기낭식 비행정 젤리피시의 보급이 확대되던 어느날, 젤리 피시 개발 주역인 UFA사의 기술개발부 멤버 6명 전원이 탑승한 신규 시험용 기체가 추락하여 불타버렸다. 기술 개발부 멤버도 모두 불에 탄 사체로 발견되었는데, 그들 모두 불에 타기 전 살해당했다는 검시 결과가 드러났다. 독으로 죽은 두 명은 누군가 시체를 단정하게 놓았으며, 총에 맞은 사체는 남은 흔적이 근거리에서 맞은게 아니었다. 칼에 찔려 죽은 사체는 칼이 뽑혀 있었고 뒷통수를 둔기로 타격당해 죽은 사체는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이었다. 그리고마지막 사체는 머리 등이 토막나 있는 상태였다..

형사 마리아와 렌 컴비는 신규 젤리 피시 개발을 의뢰한 공군과 함께 범인을 쫓기 시작하는데....

세상에는 참 많은 상이 있습니다. 추리 문학계도 예외는 아니죠. 신인 작가를 발굴하는 상도 많습니다. 아유카와 데쓰야 상은 많은 신인상 중 하나입니다. 신인상 중에서는 최초로 본격 미스터리에 중점을 두었다고 합니다. 1989년 시작되어 2020년 30회 째 수상작이 발표되었는데, 역대 수상작 중 제가 읽어본건 가노 도모코의 "일곱가지 이야기", 곤도 후미에의 "얼어붙은 섬", 아오사키 유고의 "체육관의 살인", 이마무라 마사히로의 "시인장의 살인"입니다. 작품들 면면을 보면 추리적으로는 볼만한 작품들입니다. 본격 미스터리에 중점을 두었다는게 허언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그래서 26회 (2016년) 수상작인 이 작품 역시 본격 추리물 애호가로서 큰 기대를 품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기대대로 추리적으로는 눈여겨 볼 만한 부분이 있습니다. '악천후로 접근, 탈출이 어려운 등산로도 없는 설산 구석에 6명의 승무원이 탑승한 젤리피시가 추락하였는데, 6명 모두 타살 사체로 발견되었다. 범인은 누구이며 어떻게 탈출했나?'가 핵심 수수께끼인데, 이를 '젤리피시는 원래 2대였다!'라는 대담하고 스케일이 큰 아이디어로 풀어내고 있는 덕분입니다. 멤버들은 공군의 요청 사항을 검증하기 위한 비교 대조 실험을 핑계로 3명씩 나누어 젤리 피시에 탑승했으며, 범인이 모두를 죽이고 한 척을 불태운 뒤, 남은 한 척을 타고 탈출했던 것이지요.

사고가 일어나고, 한 명씩 살해되는 과정과 함께 사건 발생 이후 현재의 수사 과정이 병렬로 배치되어 있는데, 사고 당시 승무원들 시점의 묘사가 이루어짐에도 이들이 함께 한 배에 타고 있는게 아니라 나누어 타고 있다는걸 교묘하게 숨기는 전개도 제법입니다. 서로 만나는 경우는 정박지에 한하고, 운항 중에는 같은 젤리 피시에 탑승한 사람들끼리만 마주치며, 통신은 무전기로 하고 있는 식으로 독자가 트릭을 쉽게 눈치채지 못하게 서술하고 있거든요. 이러한 전개는 일종의 서술 트릭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여섯 명의 탑승자 중 마지막 인물이 줄곧 이야기에 등장하던 에드워드 멕도웰이 아니라 다른 기술개발부 멤버인 사이먼 애트우드라는게 밝혀지는 마지막 장면도 역시 서술 트릭에 가깝습니다. 범인인 에드워드가 미리 토막낸 사이먼의 시체를 집에 넣어 몰래 숨긴 뒤, 자신은 탈출하고 시체를 남겨놓은 건데, 마지막까지 이를 잘 숨겨서 충격을 배가시키는 솜씨는 일품이에요. "십각관의 살인"에서 모리스의 정체가 드러나는 장면과 비슷한데, 그만큼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젤리피시 제조에 쓰이는 화학식을 이용한, 13년 전 리베카 자살 위장 사건 트릭도 괜찮습니다. 문을 틀어막은 플라스틱 조각은 밖에서 넣을 수 없었다는 상황을, 밖에서 부드러운 상태로 밀어넣은 뒤 화학 반응을 일으켜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건데 이야기와 잘 어울리는 좋은 아이디어였어요. 이렇게 여러가지 트릭들이 등장하고, 잘 설명되고 있어서 추리적으로는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소설로서의 완성도는 다른 수상작들과 비교했을 때, 현저히 낮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만화적인 인물들로 만화적으로 가볍게 써내려간 탓입니다. 주인공이자 탐정역인 마리아와 렌 컴비가 대표적입니다. 거유의 몸매 좋고, 어딘가 칠칠맞은 마리아와 딱 부러지고 냉정침착한 렌의 조합부터 지극히 만화적이고 평면적이에요. 수사 과정에서 빚는 갈등, 티격태격도 모두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나지 않고요. 갓 대학에 입학한 리베카가 천재라서 젤리피시를 만드는 공식을 완성했다는 설정도 만화적이기는 마찬가지이며 젤리 피시 내에서의 연쇄 살인 사건 묘사도 캐릭터들이 평면적이라 천편일률적이고 지루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 이 작품 속 캐릭터 중 자신만의 매력을 갖춘 캐릭터는 전무합니다. 80년대, 비행선이 날아다는 가상의 세계를 무대로 하고 있는건 괜찮아요. 젤리 피시의 제조 방법과 그 존재가 트릭의 핵심이니만큼, 이런 기계가 떠다니는 무대가 필요했을테니까요. 하지만 이를 표현하는 묘사도 모두 유치합니다.

추리적으로도, 비행정이 2대였다는 핵심 트릭은 좋지만 범행 자체의 설득력은 낮습니다. 모두 악당이기는 하지만, 자살로 보이는 사체를 옮겨 완벽한 자살로 위장하고, 연구 성과를 독차지한게 과연 죽어 마땅한 범죄일까요? 연구 성과가 그들의 것이 아니라는걸 리베카의 노트로 밝혀낼 수 있다면 더더욱 죽일 이유는 없습니다. 살아서 사회적인 매장을 지켜보는게 더 큰 복수일테니까요. 최소한 복수를 한다 해도 사회적으로 매장시켜 그들의 영향력이 바닥에 떨어진 뒤 하는게 더 현실적일겁니다.
그리고 6명 중 유일하게 죽어 마땅한건 리베카를 능욕하고 살해한 윌리엄 뿐입니다만, 에드워드는 그 사실을 모르고 일단 멤버들을 죽이고 시작하니 이래서야 누가 악당인지도 모를 지경이에요. 목숨을 걸고 6명이나 살해한 이유가, 13년 전 몇 번 말을 나눈 뒤 사랑에 빠져서 그랬다는 동기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묘사가 유치해서 에드워드의 마음이 전혀 와 닿지도 않았고요.

트릭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헛점 투성이입니다. 사건에 사용된 젤리피시는 새로 만든 것과 첫 개발자 (로 알려진) 교수가 소유하고 있던 영호기를 개조한 것 두 대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젤리피시는 거의 백만 달러에 이르는 상당히 비싼 물건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경찰과 주변 인물들이 그 존재를 아예 모른다는건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거의 집 한채 크기의 비행정이 2대가 비행하는데 사람들이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도 석연치는 않고요. 시간차를 두고 비행했더라도, 분명 눈에 띄었을텐데 말이지요.

증거도 빈약합니다. 마리아가 증거라고 이야기한, 젤리피시의 잔해가 눈보라를 조금이라도 더 견딜 수 있는 암벽 밑이 아닌 남쪽에 치우쳐져 발견되었다는게 대표적입니다. 이건 증거가 될 수 없어요. 사고 후 눈사태가 일어났다는 설명도 있고, 크고 무거운 기체가 비상 착륙했다면 그게 어디건 착륙 위치에 머물러야지 암벽 밑에 옮기지 못하는건 당연하니까요.

사이먼의 시체와 5명이 비행한게 아니라, 비행정에는 6명이 탑승했다는 증거가 정박한 체크포인트 다섯군데에서 일용품을 산 행위라는 것도 어설픕니다. 물건을 산 사람이 전부 다른 사람이라는게 과학적으로 엄밀하게 증명되지도 않았고 교수가 물건을 사러 내리지 않았다는 것도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또 설령 술에 절어 있는 교수를 제외한 서로 다른 5명이 번갈아 물건을 샀다고 한 들, 그들 중 한 명이 사이먼 애트우드가 아니라 에드워드 맥도웰이라는게 증명되는 것도 아니고요.

죽은 여섯 명이 모두 살해당했다는걸 곧이 곧대로 믿는 것도 억지스럽습니다. 먼 거리에서 총이 발사되도록 한다던가, 뒷통수를 둔기로 맞게 만든다던가, 죽은 뒤 칼이 뽑히던가 하는 식의 트릭은 많잖아요? 현장이 불에 탔다면 이런 트릭을 위한 흔적을 지우는 것도 어렵지 않았을겁니다. 솔직히 말해 범인 에드워드가 누군가가 다 죽이고 자살한 것처럼 현장을 조작하지 않아서 사건을 미궁에 빠트린 이유도 잘 모르겠습니다. 5명이나 (정확하게는 4명) 죽인 살인범이 사건을 일부러 미궁에 빠트릴 이유는 없어요.

범행을 위한 전개도 엉망입니다. 비교대조 실험을 핑계로 2척이 비행에 나서지 않았다면, 그리고 사이먼이 비행에 빠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네빌이 사이먼을 살해하지 않았다면 어쩔 셈이었을까요? 에드워드의 계획이 성공하려면 이 모든 준비가 갖추어져야 했는데 말이죠. 에드워드가 정말로 살인을 계획했다면 직접 사이먼을 살해하고 그가 도주한 것처럼 꾸민 뒤, 핵심 멤버로 비교대조 실험을 내걸어 2대의 운항을 끌어내는 게 타당했습니다. 사이먼을 죽인 뒤 진정한 복수귀로 거듭났다는 식으로 진행되는 식으로 말이지요.

살인 계획도 스케일은 크지만 운에 의지하는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젤리 피시 2척의 자동 항행 프로그램등을 건드려 악천후 속에서 설산에 착륙하게 만든다는 계획부터 그러합니다. '천운'이 따른 덕분에 두 척 모두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다고 범인이 직접 이야기할 정도거든요. 네빌을 독살시킨, 컵에 독을 넣는 방법도 운에 의지한건 마찬가지고요. 크리스가 몰래 가지고 온 총의 존재를 몰라 위기를 맞는다는 돌발 상황이야 있을 수 있다 쳐도, 위기를 넘기는 것도 순전히 운이고.... 마지막 생존자인 윌리엄에게 칼과 총이라는 무기를 모두 넘겨주고 습격한다는 마지막 살인도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최소한 총은 넘겨줄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장점보다 단점이 많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폐쇄된 공간에서 한 명의 응징자에게 여러명이 차례로 살해된다는 이야기를 보시려먼 차라리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나 "십각관의 살인"을 추천드립니다. 같은 아유카와 데쓰야 상 수상작이라도 "얼어붙은 섬"이나 "시인장의 살인"역시 폐쇄된 공간에서 연쇄 살인이 일어난다는 클로즈드 서클 계열인데 이 작품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이 작품은 지나칠정도로 만화적이니만큼, 만화화되면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덧붙이자면, 만화적이라는 점에서는 아유카와 데쓰야 상이 아니라, 메피스토 상 수상작이었다면 차라리 납득이 되었을 듯 합니다. 메피스토 상은 '엔터테인먼트'를 추구하는 만화적이고 가벼운 설정의 작품에 수여되곤 했으니까요.

2008/10/13

소년탐정 김전일 2부 설령전설 살인사건 - 아마기 세이마루 / 사토 후미야 : 별점 2점

소년탐정 김전일 2부 6 - 4점
아마기 세이마루 지음, 사토 후미야 그림/서울문화사(만화)

자전거 여행때 도와준 거부의 산악인으로부터 1억의 유산을 상속받게 되어 설산 산장으로 여행을 떠난 김전일과 미유키, 그리고 켄모치 반장은 아니나 다를까 고립된 산장에서 연쇄 살인 사건에 직면하게 되는데...

작년에 산거 같은데 포스팅이 1년이나 늦었네요. 늦었지만 다시 겨울이 다가오는 만큼 포스팅 해 봅니다^^ (사실은 깜빡했다가 어제 책을 다시 찾아서리...)

일단 이 작품은 추리적으로는 상당히 괜찮은 작품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밀실트릭에 있어서 참신함이 돋보였고 무엇보다도 "바꿔치기" 트릭이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되었었거든요. 단서도 공정하게 제공되는 편이기도 하고요. 독자의 맹점을 찌르는 날카로운 부분이 확실히 있긴 있습니다.

그러나 트릭 이외에는 이야기 전개는 빵점입니다. 애시당초 김전일이 왜 그 산장에 가야 했는지에 대한 당위성이 없는데다가, 피해자 중 한명인 쌍동이가 2인 1역을 수행한 이유에 대해 설명이 전무했기 때문입니다. 이 2인 1역 트릭이 사건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기도 해서 보다 효과적으로 설명했어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또 간략한 줄거리에서만 보아도 알 수 있듯, 구닥다리 설정의 찬란한 향연입니다. 김전일 소년과 눈덮인 산장은 이미 "태롯 카드 산장"에서 써먹은 소재일 뿐더러, 이미 수많은 고전 클로즈드 써클 미스테리에서 지겹도록 등장한 설정입니다. 불가능한 밀실 살인사건 역시 수차례 반복된 아주아주 식상한 소재고요. 더군다나 과거의 범죄에서 비롯된 가슴아픈 사연까지! 이건 이미 전작에서 수도없이 반복되었던 스스로의 복제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그야말로 "아니나 다를까"의 연속이죠.


때문에 추리만화로서의 완성도는 괜찮은 편이지만 과연 "만화"라는 것으로 재미있느냐 하면 그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오네요. 지루함 그 자체인 원사이드한 포맷을 버려서 무리하게 이야기를 늘리지 말고 단편 위주로 전개하는 것이 좋을텐데 너무 장편만 고집하는 것 같아 조금 안타깝기도 합니다. 이미 나올만한 캐릭터와 배경 설정은 다 나온 만큼 짤막한 사건 위주의 단편 옴니버스 시리즈 물로 나아가면 훨씬 재미있을것 같거든요. 작품 말미에 수록된 간만의 하야미 레이카가 나오는 단편이 아주 괜찮기도 했고 말이죠.

이런저런 단점들 때문에 개인적인 별점은 2점입니다. 사실 1점을 줘도 시원치 않지만 하야미 레이카 단편 덕분에 2점 줍니다. 새 작품은 아직 발간되지 않았는데 제 바램대로의 짤막한 옴니버스 단편집이기를 바랍니다.

2006/10/02

최근 읽은 추리만화 짧은 평가 (2)

명탐정 키요시로 사건노트 1- 하야미네 카오루 / 에누에 케이

제목부터 뭔가 정통 추리 만화다운 포스가 풍기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아동용일 뿐더러 그림마저 제 취향이 아니더군요. 명탐정이라는 키요시로라는 주인공 역시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고요. 추리적으로는 정통스러운 맛은 약간 있지만 트릭도 전부 작위적이고 어설픕니다. 그나마 마음에 드는 것은 소박한 사건과 해피엔딩이라는 점? 4권까지 나왔지만 개인적으로 계속 보게 될 것 같지는 않네요. 아무리 추리만화팬이라도 연령대가 안 맞으면 사절입니다....


도시전설 탐정파일 1 - 에스노 사카에
제목은 그럴싸하지만 아니나다를까 추리만화라기 보다는 괴담+액션에 가까운 작품이었습니다. 도시전설이라 불리우는 (Urban Legend) 괴담을 소재로 한 단편 옴니버스 물인데 영화 "캠퍼스 레전드"와 유사한 설정이죠. 그래도 딸꾹질과 화장실의 하나코를 엮어 만든 탐정 캐릭터는 꽤 마음에 들었고 1권 제일 마지막 이야기인 "인면어" 이야기는 제법 수작이라 생각합니다. 나름 짜여진 복선과 이야기 전개, 반전까지 마음에 들었거든요. 이건 계속 볼까 해요. 어차피 4권 완결이니...

명탐정 코난 54 - 아오야마 고쇼
나온지도 읽은지도 좀 됐지만 쓰는 김에 씁니다. 뭐 여전히 추리적으로나 캐릭터적인 재미로나 평균 이상은 해 줍니다. 설산의 눈사람 트릭은 제법 괜찮았다고 생각되고요. 하지만 뒷부분의 "탐정 고시엔" 이야기는 너무 막가는 설정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간만에 등장하는 하쿠바 사구루나 하츠토리는 좋았지만, 뭐 팬 서비스 차원이라 생각해야죠.

검은사기 1~9 - 쿠로마루
추리만화는 아니지만 넓은 범위로 보면 추리쪽 쟝르에 속하는 범죄물이니 아주 다른 쟝르물은 아니겠죠? 사기꾼 (여기서는 "백로"라고 하죠)만 대상으로 사기치는 "흑로"라는 사기꾼 쿠로사키를 주인공으로 한 단편 옴니버스물입니다. 사기에 대한 나름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어서 사기라는 것이 너무 쉽게쉽게 진행되는 감은 있지만 이야기가 꽤 설득력 있는 것이 장점입니다.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의 배경이야기를 놓고 큰 줄기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도 괜찮고요. 전문가가 등장하는 만화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탓도 있지만 작품 자체가 꽤 재미있었던 만큼 앞으로도 흥미를 가지고 지켜보고 싶네요.

2020/03/18

동토의 여행자 - 다니구치 지로 / 홍구희 : 별점 3점

동토의 여행자 - 6점
다니구치 지로 지음, 홍구희 옮김/샘터사

다니구치 지로의 단편집입니다. "송화루"를 제외하고는, 대자연을 다룬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는게 특징입니다. 그 중에서도 "동토의 여행자"와 "하얀 황야", "산으로"의 세 편은 추운 설산을 배경으로 한 남자들의 생존기이자 모험물이고요. 이야기는 비교적 평범하지만 다니구치 지로의 압도적인 화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네요. 대체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수록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동토의 여행자"

북아메리카 사금 채취자인 잭 런던과 프레드 톰슨은 식량 마련을 위한 사냥 중 눈 속에 고립되고 말았다. 그들을 구해준 건 원주민 카르나트 족 노인 징 하였다. 그는 순록 사냥을 떠난 동족들 뒤에 남아 홀로 수호신 '북녘의 신령'(하얀 말코손바닥 사슴)을 찾는 중이었다. 그의 모습을 보고 감화받은 잭은 금 채취를 그만두고 홀로 캘리포니아에 돌아온다.

실제로 있었음직한, 잭 런던의 미발표 유고라는 설정을 바탕으로 그려진 작품입니다. 자연을 거스리지 않고 숭배해야 한다는 자연에 대한 외경심이 잘 드러난 수작입니다. 

딱 한가지, 극한의 추위에서 처절하게 생존하는 과정에 대한 묘사가 조금 약하다는게 조금 아쉽네요. 다니구치 지로의 그림으로 "테러호의 악몽" 느낌의 생존기를 그렸더라면 굉장했을텐데 말이죠. 그래도 충분히 좋은 작품이에요. 별점은 3점입니다.

"하얀 황야"

헨리와 빌은 알프레드 경의 시체를 고향으로 운구하기 위해 여섯마리 개가 끄는 썰매로 동토를 가로지르는 중이었다. 그러나 이리떼가 덮쳐 개가 한 마리씩 사라져 갔고, 결국 빌 마저 잡아 먹히는데... 

잭 런던의 "하얀 이빨"을 재구성했다는 단편으로 혹한 속에서 습격해오는 이리떼와 인간의 처절한 승부를 그립니다. 도망친 암캐를 이용하여 썰매개를 꾀어내는 이리 때의 전략 등, 사람을 능가하는 모습은 흡사 크리쳐 물을 연상케 하더군요. 잠도 자지 못하고 끝까지 맞서 싸우는 헨리의 처절한 사투도 잘 표현되어 있고요. 

비교적 단순한 이야기 구조, 그리고 마지막 헨리가 살아남은 건 순전히 구원군이 운 좋게 도착했을 뿐이라는 결말은 조금 시시하지만 전체적으로 박진감이 넘치는 좋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산으로"

마타기 (사냥꾼) 군파치는 아들 도키조오와 영양 사냥을 나섰다가 거대한 곰에게 아들을 잃고 사냥을 그만두었다. 그러나 그 곰이 다시 나타나자, 군파치는 복수를 위해 홀로 사냥을 다시 떠나는데...

"골든 카무이"의 초반부가 떠오르는, 일본인 사냥꾼의 곰 사냥 이야기입니다. 진한 액션, 모험물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거친 자연과의 한판 승부라는 점은 이전 단편들과 같지만, 인간이 이긴다는 차이가 두드러지네요. 그래도 길들인 사냥개 시로의 도움으로 이긴다는 결말은, 자연과 먼저 친해져야 이길 수 있다는 뜻이라 생각됩니다.
뻔하긴 하지만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가이요세 섬"

1958년 8월, 부모님의 이혼으로 큰 외삼촌이 사는 상잉 마을에 맡겨진 초등학교 3학년 다카시는 큰 외삼촌이 돌보는 아예 누나와 함께 자멱질에 나섰다가 조난당해 가이요세 섬으로 난파하는데... 

어린 시절, 극적이면서도 두근거리는 여름 방학 체험담. 모험물인줄 알았는데 로맨스물이었고, 심지어 해피 엔딩이라는게 의외였던 소품입니다.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긴 한데, 어린 시절의 모험이라는게 지금 돌이켜보면 다 그런 셈이겠지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송화루"

'송화루'라는, 오래 전에는 유곽이었던 싸구려 아파트에 머무는 '나' 는 문득문득, 송화루가 얼마나 기묘한지 새삼 느끼게 되는데... 

다니구치 지로 본인이 모델인듯한 자전적인 이야기로 기묘한 숙소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나갑니다. 기묘하다는 것도 유령이 나온다던가 하는게 아니에요. 참을 수 없는 외로움이 느껴진다던가, 천장에 난 창을 통해 누군가 쳐다보는 듯한 공포감이 든다던가 하는 정도라 일상계에 가깝습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이기는 한데, 다 주인공의 상상일 뿐이라 딱히 특별한 이야기가 없다는건 단점입니다. 차라리 친동야(거리에서 선전, 광고하는 사람), 호스티스 등 역시나 독특한 마을 주민들이 등장하는 부분이 더 재미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클로로포름"이라는 다니구치 지로의 미발표 단편은 정말로 궁금하네요. 과연 어떤 작품이었을지... 별점은 2.5점입니다.

"바다로 돌아가다"

고래학자인 '나'는 이누이트의 전설에 따라 늙은 흑고래 올드 딕의 최후를 추적한다. 고래의 무덤이 실존하는지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서. 

자연에 대한 외경심을 드러내는 또 다른 작품. 짤막하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좋은 이야기였습니다. 별점은 2.5점.

2020/03/15

눈보라 체이스 - 히가시노 게이고 / 양윤옥 : 별점 2점

눈보라 체이스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소미미디어

스노보드 마니아 다쓰미는 취업 전 마지막 겨울을 원없이 불태우려 니가타의 스키장으로 향했다. 출입 금지 구역에서의 짜릿한 스노보딩도 잠시, 도쿄로 돌아오니 갑자기 살인 용의자가 되어 경찰이 집을 에워싸고 있다. 다쓰미는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기지만, 법학도 친구 나미카와는 상황의 법리적 심각성을 알리며 당장 무죄를 입증할 증거를 찾아야 한다고 재촉한다. 다쓰미는 자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해줄 유일한 사람은 살인사건 발생일 새벽, 스키장에서 우연히 만난 미인 스노보더 한 명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두 사람은 다른 동아리 부원의 차를 빌려, 그녀가 '홈그라운드'라고 언급한 전국 최대 사토자와 온천 스키장으로 무작정 떠난다.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인용"

히가시노 게이고의 '설산 시리즈' 3부작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시리즈물답게 네즈와 치아키 등 전편의 주요 인물들, 그리고 주요 무대였던 산게쓰 고원 스키장과 사토자와 온천 스키장이 다시 등장합니다. 다카노 세이야가 가이드로 등장하고, 세이야 부모님이 운영하는 전편의 주요 무대였던 카페 "뻐꾸기"와 세이야의 동생 유키의 재등장도 반가왔습니다. '뻐꾸기' 명물 프랑크푸르트 소세지도 빼 놓을 수 없겠지요.

그러나 전작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가장 큰 차이는 주인공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패트롤 네즈가 아니라 대학생 다쓰미와 친구 나미카와가 주인공으로, 둘이 함께 결백을 증명해 줄 증인인 '여신'을 찾아 경찰을 피해가며 스키장을 누비는게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덕분에 전작들과 같은 거대한 위협에 맞서는 모험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작과 다르기에 이 작품만이 가지는 장점도 분명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다쓰미와 나미카와를 추격하는 고스기 형사가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부하의 요청과 반론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무리한 명령만 남발하는 무능력한 관리자의 표상인 난바라 계장과 와와다 형사과장의 등쌀에 치이는 전형적인 소심남으로 보이지만, 뒤로 가면 갈 수록 멋지고 중후한 인물로 거듭나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계기는 오랫만에 스키를 타면서 열정이 되살아났기 때문으로 묘사되는데, 이 부분도 시리즈 핵심 소재와 일맥상통하는 맛이 있어서 좋았어요. 스키장의 실력자 유키코와의 장년의 로맨스도 잘 그려져 있습니다. 묵직하면서도 은근하고, 또 스키를 타면서 느껴지는 활기도 넘치고, 여러모로 마음에 드네요.
또 사토자와 온천 스키장이라는 무대를 전작인 "질풍론도"보다 더 잘 활용하고 있다는 점도 돋보입니다. 이는 드넓은 스키장에서 '여신'을 찾기 위한 다쓰미와 나미카와의 고민과 행동에서 잘 드러납니다. 그냥은 도저히 찾을 수 없으니, 이런저런 핑계를 대서 스키장 패트롤 대장 네즈, 백컨트리 투어 가이드 다카노 등의 도움으로 그녀가 나타날만한 이런저런 포인트를 짚어 조사하고 기다리는 과정이 나름 합리적이며, 정말로 스키장에 대해 엄청나게 많이 조사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상세합니다.

대단한 추리가 등장하는건 아니고, 추격 모험 활극에 가깝기는 하지만, 추리적으로 눈여겨 볼 만한 부분이 있다는 점도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돋보이는 점입니다. 대표적인건 현장의 기묘한 상황을 눈치채고 진범이 누군지를 추리해 내는 과정입니다. 주인공 일행은 피해자 후쿠마루씨가 섹시 탤런트 DVD를 보는게 취미였는데, 그걸 볼 때마다 죽은 아내에게 미안해서 불단을 닫았지만 범행 현장 사진의 불단은 열려 있었다는 것을 알아냅니다. 이를 통해 현장에서 DVD를 재생시킨건 후쿠마루 씨가 아니며, 범인은 DVD를 바꾸어 재생해야 했고 이유는 원래 DVD가 범인에게 불리한 것이었다고 추리하게 되지요. 추리를 통해 결국 범인을 체포하는데 성공하고요.
원래 보던 DVD가 무엇이었는지 알아내기는 쉽지 않았을테고, 사전에 이런 정보를 독자에게 제대로 제공해 주지 않은건 공정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지만 추리 자체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나름 정통 추리물 느낌도 전해줄 정도거든요.
비교적 초반에 다쓰미에게 증인을 찾아 나설것을 조언하는 법대생 나미카와의 조언, 그리고 다쓰미의 알리바이가 나름 밝혀진 뒤 나미카와마저도 공범으로 몰리는 전개 역시 추리물 느낌을 가득 전해 줍니다. 다쓰미의 알리바이를 나미카와가 조작해 주었다는 논리인데 둘의 도주와 맞물러 설득력이 높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애써 찾은 증인인 '여신'이 임신 탓에 스노보드를 마음껏 탈 수 없다는 설정도 괜찮았어요. 둘이서 백방으로 노력해도 찾기 힘들었던 이유로 설득력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이 임신 설정을 마지막 결혼식 연출과 네즈와 치아키 커플이 연결되는 결말로 이어가는 전개도 나쁘지 않았고요.

그러나 아주 좋은 작품이다라고 이야기하기는 아쉽게도 무리입니다. 일단 독자는 다쓰미가 범인이 아니라는걸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스키장을 배경으로 청춘들의 사랑과 고민이 함께 그려지는 탓에 서스펜스를 느끼기 어려운 탓이 큽니다. 사형 선고를 받은 절박한 상황에서 증인을 찾아 나선다는 "환상의 여인" 만큼의 절박함이 보였어야 하는데, 두 대학생은 그런 마음이 별로 없어 보이거든요. 어떻게 보면 추리물, 스릴러라기 보다는 청춘 로맨스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전개 면에서 편의적인 부분이 많다는 점도 단점입니다. 네즈도 그렇고, 스키장의 유력자 유키코도 그렇고, 심지어 고스기 형사마저도 다쓰미가 결백하다고 생각한다는건 특히나 터무니 없어요. 아무리 관상이 좋고, 말주변이 좋아도 그렇지 경찰이 유력 참고인의 말을 믿고 시간을 준다는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죠. 증인을 찾기 어렵게 꼬아놓은 캐릭터 설정도 오버스러웠고요. 네즈에다가 경찰까지 도움을 준다면, 차라리 방송이라도 하는게 낫잖아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취미 생활처럼 힘을 빼고 가볍게 쓴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아주 뛰어나지는 않지만, 킬링 타임용 읽을거리로는 나쁘지 않은 수준입니다. 읽으실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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