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검색어 "크리피"에 대한 글을 날짜를 기준으로 정렬하여 표시합니다. 관련순 정렬 모든 글 표시
검색어 "크리피"에 대한 글을 날짜를 기준으로 정렬하여 표시합니다. 관련순 정렬 모든 글 표시

2019/11/01

진범의 얼굴 - 마에카와 유타카 / 김성미 : 별점 1.5점

진범의 얼굴 - 4점
마에카와 유타카 지음, 김성미 옮김/북플라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0여년 전, 2008년 하치오지 시 가와구치 초의 주택가에서 토다 하야토와 미도리 부부가 실종되었다. 여러가지 증언, 정황 증거로 떠오른 유력한 용의자는 토다 하야토의 형 타츠야였다. 그러나 타츠야는 기소 후 무죄 판결을 받았다. 토다 하야토의 사망을 명백히 증명할 수 없어서, 살인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스기야마 기자는 이 사건의 심층 탐사 보도를 나선 뒤, 타츠야가 진범이며 공범이 있을 거라는 확신을 품기 시작했다. 이는 불량 청소년 기무라와 도가시의 증언으로 진짜라는게 판명되었다. 하지만 기무라와 도가시 모두 시체로 발견되고 마는데...

"크리피" , "시체가 켜켜이 쌓인 밤" 이라는 두 편의 범죄 스릴러로 접해 보았던 작가 마에카와 유타카의 장편입니다. 전에 읽었던 두 편은 모두 주위 사람들을 일종의 세뇌 상태로 만들어 범죄로 끌어 들이고 조종하는 범죄자가 등장했는데, 이 작품은 탐사 보도 전문 기자가 화자로 등장하며 10여년 전인 2009년 벌어졌던 '가와구치 사건'의 진상을 파헤쳐 나간다는 내용으로 약간의 차이를 보입니다.

르포르타쥬 느낌의 전개와 비교적 현실적인 설정 덕분에 전작들보다 설득력은 높습니다. 그러나 재미는 오히려 부족합니다. 애초부터 스기야마는 타츠야가 진범일 것으로 생각하고, 실종된 동생 부부의 사체를 은닉할 시간이 없었던 이유를 공범이 존재했다고 추리하거든요. 이후 이야기는 이 추리를 뒷받침하는 과정에 불과하며, 결론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타츠야가 진범이라는건 곧바로 불량 청소년인 기무라와 도가시의 증언에 의해 밝혀지게 되니까요.
그 뒤 범죄를 일으킨 4인조의 우두머리 하야마에게 위협을 느낀 기무라는 범행 현장을 촬영한 동영상이 담긴 USB를 보험삼아 준비했다가 살해당하고, 도가시 역시 미심쩍은 사고로 죽습니다. 다행히 공개된 USB를 통해 범행 장소를 특정한 경찰은 하야마의 절 고엔지를 수색하지만, 시체를 발견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타츠야가 곧바로 진상을 스기야마에게 고백한 뒤 자살하기 때문에 여기서 가와구치 사건은 끝난거나 다름 없습니다. 즉, 드라마에서 별다른 긴장감을 느끼기 힘들어요.
무려 일곱명의 관계자가 병사와 사고사를 비롯하여 자살 등으로 사망한 대형 사건이지만, 타츠야 범인설이 거의 진짜였다는 진상이라는 점도 허무합니다. 진짜 흑막으로 하야마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 동기와 수법을 짐작하기 어려운 모호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나오지 않는게 나았고요. 

추리적으로도 특기할 만한 내용은 없습니다. 스기야마가 공범의 존재를 추리하는 것, 그리고 범죄 집단의 우두머리인 '베레모 남자'의 베레모는 짧은 헤어스타일도 가릴 수 있는 모자다, 그래서 베레모 남자의 머리는 짧을 것이며 이는 하야마를 가리킨다는 추리가 전부인데 사건 해결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이 추리가 없었어도 어차피 제 발로 찾아온 범인의 증언으로 진상은 밝혀졌을 테니까요.

이외에 건질만한 부분도 없다시피 합니다. 사회파스러운, 사회 고발과 같은 동기도 등장하지 않아요. 범인 일당이 미도리에게 품은 비정상적인 성욕에 의한 잔인한 범죄에 불과한 탓입니다. 살인을 저지르고 시체를 유기한건 치밀한 계획에 의한 것도 아니었고요. 또 이 과정에서 학교의 부교장이며 절의 주지인 인텔리 인격자 하야마가 비정상적인 성도착자로 살인집단의 리더였다는게 밝혀지는 부분은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별로 와 닿지 않습니다. 그가 딸 리하에게 품은 성욕과 소유욕은 솔직히 불쾌하기까지 했고요.

이후의 에필로그가 그나마 약간 사회 고발스럽기는 합니다. 스기야마가 10여년이 지난 지금, 스스로 취재한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책을 쓸 계획을 하야마에게 밝히자 하야마는 딸과 딸의 약혼자를 죽이고 자살합니다. 그리고 사건의 주요 관계자였던 타츠야의 변호사 하마나카가 스기야마에게 '너야말로 범인이다. 너의 집요한 추궁으로 하야마를 신경 쇠약으로 몰고갔기 때문이다. 가와구치 사건의 진범은 너다!"라고 비난하며 마무리되는데 여기서 '취재의 자유가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하는지' 를 생각하게 만드니까요.

그러나 그럴 의도였다면 책의 내용 모두가 타츠야가 진범이라고 생각해서 모든 취재 결과를 거기에 끼워맞춘 스기야마의 음모라는 식으로 풀어나갔어야 했습니다. 실제로 유력한 몇몇 증언, 타츠야가 본인이 진범 중 한 명이라며 범행의 진상을 고백한 증언과 하야마의 딸 리하와의 인터뷰 등은 모두 스기야마 혼자 입수한 정보로 얼마든지 가공이 가능했으니 충분히 그렇게 쓸 수 있었을거에요.
그러나 가장 유력한 증언이었던 초반부 기무라와 도가시의 증언은 편집자 스가이와 함께 들었고, 동영상이라는 증거가 있어서 이렇게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진범 일당 모두 죽어 마땅한, 잔인 무도한 범죄를 일으킨 놈들이고 취재로 자살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솔직히 전혀 문제는 없습니다. 인권은 사람에게나 있지 이런 짐승들한테 있는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추리적으로도 별볼일없고 범죄물, 그 외 사회 고발 등 다른 가치도 거의 없는 망작입니다. 찾아 읽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2017/06/02

시체가 켜켜이 쌓인 밤 - 마에카와 유타카 / 이선희 : 별점 2.5점

시체가 켜켜이 쌓인 밤 - 6점
마에카와 유타카 지음, 이선희 옮김/창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85년 여름, 한 남자가 여섯 여자와 집단 자살을 했다. 남자는 과거 도쿄대 조교수 출신의 기우라 겐조로 자살 전 무려 10명을 살해한 혐의로 쫓기고 있었다. 사건 당시 정보 누설이 알려져 자살한 이가라시 형사의 조카인 '나'는 이 사건을 추적하는 논픽션을 쓸 것을 결심하고, 여러가지 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사건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재구성해 나가는데...

마에카와 유타카의 2015년 작품입니다. 30년 전 벌어진 연쇄 살인, 집단 자살 사건을 현대의 르포 작가가 뒤쫓아 그 진상을 밝혀낸다는 내용으로, 과거 시점의 이야기와 현재 시점의 인터뷰가 교차되어 전개되는 구성입니다.

그런데 작가의 전작 "크리피"와의 유사성이 눈에 많이 뜨입니다. 가장 큰 유사점은 주위 사람들을 일종의 세뇌 상태로 만들어 범죄에 끌어들이거나 피해자로 만든다는 기우라 겐조의 독특한 능력입니다. "크리피"의 "위장 살인마" 야지마의 능력 - 한 가족에 침입하여 가장 행세를 하며 가족들을 한 명씩 차례로 죽이는 - 과 아주 흡사해요. 핵심이 공포, 협박, 좁은 (갇힌) 공간이라는 3가지 요소를 갖춘 마인드 콘트롤이라는 점도 같고요. 

그러나 "크리피" 이후 발표된 덕인지, 마인드 콘트롤을 보다 상세하게 묘사하여 설득력을 높이고 있습니다. 기우라가 여관 하기노야를 손에 넣기 위해 하기노야의 주인 세이지 일가족을 극한으로 몰아가다가 한 명씩 살해하는 부분이 대표적입니다. 적나라하면서도 세밀한 묘사를 통해 굉장한 흡입력과 설득력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흡입력, 설득력은 실존했던 일본의 '스미다 미요코 사건'의 배역을 살짝 바꾸어 묘사한 덕으로 보이기도 하네요. 한 가족을 대상으로 이간질 후 범행에 끌어들여(고이치) 제일 약한 사람부터(세이지) 한 명 씩 죽게 만든다는 전개는 스미다 미요코 사건과 같으니까요.

추리적인 디테일도 나쁘지 않습니다. 히라가나로 쓰여진 고발 편지와 초밥에 비소를 넣은 사람이 우타라는게 밝혀지는 부분처럼요. 정보가 공정하게 제공되지 않고, 진범이 누구인지도 중요하지 않지만 나름 의표를 찌르는 맛은 있었습니다.
80년대가 무대인 작품답게 마지막을 야쿠시마루 히로코의 노래 "세일러복과 기관총"이 장식하는 것도 이채로왔고요.

하지만 "크리피"와 단점 역시 비슷합니다.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설명이 부족해요. 특히 기우라가 왜 이렇게 잔혹한, 무려 10명이나 살해하는 범행을 저질렀는지를 설명하지 않는 탓이 큽니다. 이성과 잔혹함, 정신병의 경계에 있다는 캐릭터 설정만으로 때울 수 없어요.
게다가 작중 묘사에 따르면 2가구 6명을 포함한 10명을 살해하면서 하기노야를 손에 넣지만, 정작 현금 수익은 세이지 가족의 적금 1,500만엔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래서야 수지가 전혀 맞지 않지요. 그 돈도 범행 계획에는 들어있지 않은 공돈이나 마찬가지고요. 물론 하기노야는 권리증이 없더라도 시간만 있었더라면 어떻게든 현금화는 할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돈 때문이라면 이렇게 사람을 죽일 필요는 없어요. 3천만엔을 빌려준 것 만큼은 명확한 사실이니 고이치를 사장으로 앉히는 것 만으로도 여관을 손에 넣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테니까요. 게다가 생각해보면 이렇게까지 여관을 손에 넣을 이유도 사실 없습니다. 단지 매춘업에 끌어들이기 위해서라면 이미 성공하기도 했고요.
마지막 자살 여행에서 여자들에게 현금을 나눠주는 묘사를 보면 대충 1억엔 이상은 현금으로 뿌립니다. 이 정도로 성공한 인물이 왜 이런 범행을 저지른 걸까요? 마지막 묘사 탓에 이유는 더욱 알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또 작가의 이상한 묘사로 캐릭터가 모호해져 버린 것도 문제입니다. 이지적인 모습이 보였다, 카리스마가 있는 리더일 뿐 손을 더럽히는 모습은 없었다는 식으로 묘사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마지막 집단 자살 묘사는 그 중에서도 최악이죠. 너무 꿈처럼 그려졌을 뿐더러 지나칠 정도로 신사적이라 모호한 상황을 더욱 극단적으로 만듭니다.
또 그가 누나와 근친상간을 통해 우타를 낳았다는건 이러한 극단적인 범행과 하등의 상관이 없습니다. 아내가 누나와 굉장히 닮았으며, 아내가 누나와의 관계를 눈치채어 살해했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고요. 완전히 사족에 불과했어요.
이렇게 모호하게 그릴 것이라면 차라리 '돈'이 목적이고 타고난 악인이었다고 설명하는 쪽이 훨씬 나았을 것입니다. 한가운데 직구를 넣었다면 깔끔하게 처리했을텐데 괜히 변화구, 변화구를 고집하다가 주자를 쌓아 놓고 한방 크게 얻어맞는 느낌이에요. "주자가 켜켜이 쌓인 9회말"이랄까... 좋은 공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아쉽네요.

그리고 기껏 손해를 보아가면서까지 도쿄대 출신임을 밀어 붙였다면 이렇게 무식한 야쿠자 스타일 협잡보다는 더 그럴듯한 무언가를 보여주었어야 했는데, 세이지 일가를 옭아매는 과정은 전형적인 감금, 협박과 다르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범행의 여러 과정에 걸쳐 허술한 관리로 수많은 위기를 만나게 되는 것을 보면 한숨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냥 즉흥적으로, 되는 대로 사람을 죽이는 묻지마 범죄와 다를게 없어 보일 정도에요. 중간에 수사 나온 형사를 설득하여 돌려보내는 장면 정도는 그럴싸하지만 기대에 값하는 수준은 아닙니다.

또한 범행 과정의 적나라한 묘사를 통한 생생함은 발군이나 들여다보면 구멍이 많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유키가 정상적인 사고를 거두고 매춘까지 끌려나가게 되는 과정처럼요. 제대로 설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부로가 급작스럽게 유키와 가까와진다는 것도 작위적이고요. 하기사 유키를 죽이지 않는 것 부터가 뾰족한 이유가 없네요. 상식적이라면 진작에, 아무리 늦어도 고이치 살해 시점에는 정리했을 것입니다. 더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하기노야를 손에 넣는 중후반부까지의 압도적인 묘사는 충분히 흥미롭습니다만 설득력이 부족한 설정 탓에 감점합니다. "크리피"보다는 낫지만 단점은 여전히 동일한데, 작가의 다음 작품을 읽어봐야 할지 살짝 고민되는군요.

덧붙이자면, 범행의 규모나 희생자 수를 본다면 현실의 '스미다 미요코 사건'이 더 큰 사건이니 그냥 '스미다 미요코 사건'의 논픽션을 쓰는게 더 나았을 것 같네요.

2016/09/03

크리피 - 마에카와 유타카 / 이선희 : 별점 2점

크리피 - 4점
마에카와 유타카 지음, 이선희 옮김/창해

외딴 주택가에 거주하며 가끔 TV에 출연하던 범죄심리학 교수 다카쿠라는 제자 린코와 플라토닉한 관계를 유지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형사인 고교 동창생 노가미가 연락해서 8년 전 일어났던 미제 사건인 혼다 일가 실종 사건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았다. 노가미는 다카쿠라의 집까지 직접 찾아올 정도로 열의를 보였지만, 실종된 후 다카쿠라 옆집 노모녀 화재 현장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 뒤 다카쿠라의 옆집 니시노 일가의 수상쩍은 가족 관계가 점차 불거졌고, 결국 니시노의 폭주가 일어나는데...

격조했습니다. 인륜지대사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중대사인 "이사"를 하느라 지난 한 주간 정말 정신없이 보냈네요.

어딘가의 멋드러진 소개글을 보고 읽게 된 작품입니다. 작가 마에카와 유타카의 출세작이지요. "검은 집"처럼 평범함 속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싸이코패스의 가공할 범죄를 그리고 있습니다. 약간의 미스터리가 가미되어 있다는 점도 비슷하고요.

초~중반부는 인상적입니다. 다카쿠라가 거주하는 주택 단지 구성이 8년 전 히노 시에서 일어난 일가족 행방불명 사건 현장과 유사하다는게 드러나고, 옆집 남자 니시노와 가족이 뭔가 수상한 분위기를 풍기다가 갑자기 그 집 딸이 "그 사람은 우리 아빠가 아니에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에요."라고 말하고, 그 뒤 급작스럽게 옆집 남자가 돌변하여 폭주하는 과정까지는 정말 대단합니다. 너무나 평범해 보였던 니시노가 식칼을 집어들고 광기를 보이는 장면은 그 중에서도 백미입니다.

알고 봤더니 옆집 남자 니시노가 모든 연쇄 살인의 범인인 "위장 살인마"이며, 그의 정체는 사건을 추적하다가 실종된 후 결국 사체로 발견된 형사 노가미의 형 야지마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전개도 괜찮았어요.

하지만 좋았던 중반부를 지나 노가미가 유서처럼 남긴 편지를 통해 야지마의 범행이 일목요연하게 밝혀진 후부터는 힘이 빠져버립니다. 370페이지라는 분량에서 240~50페이지 정도가 되면 진상이 밝혀지는데, 이후는 완전히 사족입니다. 너무 일찍 답을 정해놓고 이야기가 흘러가버리니 재미가 있을 리 없지요. 이렇게 쉽게 밝혀질 것을 뭐 이리 질질 끌었나 싶을 정도로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수사도 어설펐고요.

게다가 마지막 반전 — 야지마가 죽인 줄 알았던 노가미는 사실 전처 소노코가 죽였다, 야지마는 뒷처리를 도와준 것일 뿐이다, 편지 역시 소노코가 쓴 것이다 — 는 그 중에서도 최악입니다. 정의감을 불태운 줄 알았던 노가미가 형 야지마 못지않은 쓰레기일 뿐이었다는건 독자를 우롱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진상을 밝히는 다카쿠라의 추리도 근거가 너무 빈약하다는 문제도 크고요. 소노코의 양녀 유가 사실은 실종된 여고생 미오였고, 야지마는 이미 소노코에 의해 살해된 뒤였다는 나름의 해피엔딩(?)을 그리기 위한 억지 전개에 불과합니다.

이외에도 야지마가 구태여 오와다 옆집에 살면서 정보를 캐내 스토커 짓을 한 것도 설득력이 떨어지고, 뭔가 있는 것으로 보였던 주인공 다카쿠라와 여대생 린코의 플라토닉한 사랑 이야기는 야지마와의 최종 대결에서 오와다가 죽게 만드는 결과를 불러온 것 이외의 가치가 없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린코는 비중에 비하면 하는 것이 너무 없거든요. 비중을 볼 때 다카쿠라의 불륜 상대가 아니라면 최소한 범죄 심리학 전문가로서 뭔가 보여줬어야 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위장 살인마"라는 별명을 붙일 정도로 한 가족에 침입하여 가장 행세를 하며 가족들을 한 명씩 차례로 죽이는 악의 천재 야지마의 능력이 전혀 부각되지 않는 점입니다. 작품의 설득력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야지마가 어떻게 가족들을 지배했는지를 보다 자세하게 서술했어야 합니다. 작중 묘사된 정도로는 설득력이 너무 약해요. 다카쿠라가 잠깐 설명한 대로 공포와 협박, 좁은 공간의 3가지가 갖춰져 마인드 콘트롤이 용이했다 하더라도, 외부 활동을 했음이 분명한 아들과 딸이 잠자코 오랜 기간 그의 말을 따랐다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현실적이지가 않는 탓입니다. 비슷하게 싸이코패스의 치밀한 범죄가 그려지는 작품들 — 앞서 말씀드린 "검은 집"을 비롯해서 — 은 동기는 물론 범행 과정에 있어서도 범행의 현실성을 높게 그리고 있는데 말이지요. 확연히 비교되는 단점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역대급 초반부를 지녔지만 중반부부터 힘이 빠지기 시작해서 결말은 최악이었습니다. 좋은 리뷰로 존경해 마지않는 정윤성님의 리뷰에 100% 동의하는 바입니다.

조금 조사해보니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으로 영화가 발표되었다고 하는데, 불필요한 요소 (린코, 반전 등)를 다 쳐내고 범죄 심리학자 다카쿠라와 형사 노가미 (그리고 그의 유지를 이어받은 다니모토)가 악의 천재 야지마와 대결하는 구도를 보다 선명하게 그려낸다면, 즉 선–악 구도를 명확하게 각색한다면 소설보다는 훨씬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2010/11/16

셜록 홈스의 과학 - E.J 와그너 / 이한음 : 별점 4점

셜록 홈스의 과학 - 8점
E. J. 와그너 지음, 이한음 옮김/한승

제목만 보면 셜록 홈즈가 등장해 다양한 과학 상식을 설명하는 교양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셜록 홈즈 시리즈의 일부를 인용하며 당시 과학 수사—즉, 법과학의 역사를 설명하는 책입니다. 한마디로 법과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미시사 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은 총 13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주 자세한 내용까지 다루지는 않지만 과학 수사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또한, 다양한 사건 사례가 풍부하게 실려 있어 자료적 가치와 재미를 모두 충족시키는 보기 드문 책이었습니다. 특히, 모든 내용을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 등장했던 에피소드나 대사를 인용하며 설명하는 방식이 홈즈 팬들에게는 더욱 반가운 요소였습니다.

다만, 과학 수사 초창기에서 셜록 홈즈의 전성기, 즉 20세기 초반까지의 내용을 주로 다루고 있어 그 이후의 발전상을 심도 있게 알기는 어렵다는 점, 그리고 참고도서로 보기에는 도판이 다소 부족하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그래도 별점은 4점. 과학 수사의 역사에 대해 이만한 책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과학 수사에 관심 있으시거나 다양한 사건 사례를 접하고 싶으신 분들께 꼭 추천드립니다.

"사자와의 대화"

시체를 분석해 범죄를 해결하는 법과학의 역사를 다룹니다. 사망 시간의 추정, 부검 및 해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포함되어 있죠.

특히 인상적이었던 사례는 19세기 후반 헝가리에서 발생한 사건이었습니다. 어린 하녀가 실종된 후 유대인들이 범인으로 지목되어 박해받던 중, 익사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되었으나 시간이 오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깨끗하게 보존되어 실종된 하녀가 아닐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이후 세밀한 부검을 통해 뼈의 성숙도로 나이를 판정한 결과, 시신이 깨끗했던 이유가 피부의 진피층이 떨어져 나간 것과 강물이 차가워 시신이 3개월 동안 잘 보존되었기 때문임이 밝혀졌습니다. 결국 유대인들은 누명을 벗을 수 있었던 사건이었습니다.

"야수 이야기와 검은 개"

"바스커빌가의 개"를 토대로, 당시 유럽을 지배했던 고대 민담과 전설에서 비롯된 수상한 사건들을 설명합니다.

이야기 자체는 평이했지만, 마지막에 소개된 사례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느 사건에서 주인이 살해된 현장에서 죽은 채 발견된 앵무새의 부리에서 살인자의 피를 채취해 범인을 잡았다는 내용이었는데, 용감한 앵무새가 범인을 공격한 덕분이었습니다!

"옥에 티"

곤충과 범죄 수사의 연관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목이 왜 "옥에 티"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 분야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파리가 잡은 범인"을 함께 읽어보시면 더욱 흥미로울 것입니다.

"독살의 증거"

제목 그대로 독살 사건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례를 소개합니다. 또한, 시체에서 독을 검출하는 방법, 특히 비소 검출 기법 등에 대해서도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얼룩끈"에서 뱀의 이빨 자국을 통해 해결한 사건을 예로 들며, 피하 주사 흔적을 발견해 독살 사건을 해결한 사례를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셜록 홈즈 시리즈의 단서를 실제 사건과 연결해 설명해 주니 더욱 흥미로웠거든요.

"변장과 수사관"

비도크를 중심으로 변장과 관련된 실제 사례를 소개합니다. 비도크의 활약도 대단하지만, "가짜 경감 듀"로 유명한 크리픈 사건(정부를 아들로 변장시켜 도주했던 사건)도 다루고 있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재미있었던 내용은 심하게 절뚝이는 범인을 잡기 위해 그의 변장을 간파하고, 범인이 특수 구두를 신었을 것이라고 추리한 사립탐정 헨리 고다드의 활약이었습니다.

"범죄자의 초상"

범죄자의 신원 파악을 위한 방법의 발전 과정을 소개합니다. 초기에는 문신이나 흉터를 기록하는 수준에서 시작하여, 이후 사진술, 베르티용 측정법을 거쳐 지문 감식으로 발전하는 과정이 설명됩니다.

마지막에 소개된 사건이 인상적이었어요. 1920년대 리옹에서 대낮에 열린 창문을 통해 여러 물건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현장에서 발견된 지문이 매우 독특했습니다. 이랑이 모두 수직으로 뻗어 있었기 때문이었죠. 범인은? 놀랍게도 원숭이였습니다! 한 편의 추리 소설 같은 이야기였네요.

"오물"

범죄 현장에서 발견되는 먼지와 오물에 대한 법과학적 분석을 다룹니다. 1904년 독일에서 벌어진 재봉사 살인 사건에서는 범인의 손톱 밑 찌꺼기를 긁어내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했다고 하네요. 이렇게 관련된 다양한 사례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중 놀라운 사건은 자신을 흡혈귀라 주장한 영국의 존 조지 헤이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피해자를 황산에 녹여 증거를 없앴다고 확신했지만, 현장에서 발견된 작은 조약돌이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습니다. 사실 그 조약돌은 피해자의 담석이었고, 담석은 황산에 녹지 않았던 것이죠. 이런 기막힌 반전이야말로 현실이 소설보다 놀랍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습니다.

"신화, 의학, 살인"

19세기 범죄 수사에 영향을 미친 여러 기상천외한 이론들이 등장합니다.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도 언급된 '골상학'이나 '범죄 유전 이론'을 비롯해, 자위행위가 해롭다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등장한 황당한 치료법들, 흡혈귀에 대한 미신, 살해당한 사람의 망막에 마지막으로 본 장면이 보존된다는 믿음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2010/02/03

하우미스터리선정, 2009년 올해의 추리소설!

http://www.howmystery.com/zeroboard/zboard.php?id=news&no=215

국내 최고의 추리소설 사이트인 하우미에서 총 36명의 사이트 방문자를 대상으로 선정한 2009년 올해의 추리소설 리스트입니다. 표본수가 적긴 하지만 나름 의미있는 자료라 생각되네요. 1, 2위를 모두 읽지 않았는데 더 늦기 전에 챙겨봐야겠군요. 어쨌건 <경성탐정록>이 쟁쟁한 작품들을 뒤로하고 당당 4위에 랭크되었다는 것이 제일 기쁩니다!
상세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집계기간 : 2009년 12월 08일 - 2010년 1월 31일
참여자 수 : 36
방식 : 1인 3권 추천


1위 총 15표 <차일드44>, 톰 롭 스미스, 노블마인

2위 총 9표 <심플 플랜>, 스콧 스미스, 도서출판 비채

3위 총 8표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야마구치 마사야, 시공사

공동 4위 총 6표
<고백>, 미나토 가나에, 도서출판 비채
<경성탐정록>, 한동진, 북홀릭

공동 6위 총 5표
<내가 죽인 소녀>, 하라 료, 도서출판 비채
* 제가 읽은 건 구판입니다.
<마인>, 김내성

공동 8위 총 4표
<녹색은 위험>, 크리스티아나 M. 브랜드, 시작
<구부러진 경첩>, 존 딕슨 카, 고려원북스

공동 11위 3표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윌리엄 아이리시, 자음과 모음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상)>, 마쓰모토 세이초, 북스피어

공동 13위 총 2표
<파일로 밴스의 정의>, S.S.반 다인, 북스피어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 시마다 소지, 시공사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 데니스 루헤인, 황금가지
<은폐수사>, 곤노 빈, 시작
<블러드 워크>, 마이클 코넬리, 랜덤하우스코리아
<시인>, 마이클 코넬리, 랜덤하우스코리아

이하 1표 획득작
<경관의 피>(상하), 사사키 조
<검은 화집>(상중하), 마쓰모토 세이초
<다이도지 케이의 사건 수첩>, 와카타케 나나미
<두 번째 총성>, 안소니 버클리
<명탐정 홈즈걸의 책장>, 오사키 고즈에
<천사의 나이프>, 야쿠마루 가쿠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2, 에도가와 란포
<벨벳의 악마>, 존 딕슨 카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히가시노 게이고
<무덤으로 향하다>, 로렌스 블록
<새크리파이스>, 곤도 후미에
<신주쿠 상어>, 오사와 아리마사
<유대인 경찰 연합>(2권), 마이클 셰이본
<이니시에이션 러브>, 이누이 구루미
<루피너스 탐정단 시리즈 - 우수, 당혹>(2권), 쓰하라 야스미
<목소리>,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어제의 세계>, 온다 리쿠
<레전드>, 로버트 리텔
<46번째 밀실>, 아리스가와 아리스
<방해자>(3권), 오쿠다 히데오
<밤의 의미>, 마이클 콕스
<위철리 가의 여인>, 로스 맥도널드
<악몽의 관람차>, 기노시타 한타
<주석 달린 셜록 홈즈> 2권, 아서 코난 도일-레슬리 S. 클링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