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신예 작가의 본격 추리 단편집으로, 총 네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특수 설정 미스터리' 장르물이라는게 특징입니다. 표제작의 투명 인간과 "도청당한 살인"의 가공할 청력 설정이 대표적입니다. 다른 두 편도 아이돌 오타쿠들, 탈출 게임이라는 다소 특이한 설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요. 이런 특수 설정들은 단순 재미 요소가 아니라 추리와 트릭에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 다른 특징은 표제작은 "브라운 신부" 시리즈 중 한 편인 "보이지 않는 남자"에서 따온 등 기존 추리 명작들의 패러디, 인용이 많다는 점입니다. 작가의 추리 장르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설정이 과한 측면은 분명 있지만, 신선한 발상과 실험적인 구성에 본격 추리가 결합된 결과물은 썩 나쁘지 않습니다. 전체 평균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신선함을 추구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수록작별 간단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투명인간은 밀실에 숨는다"
일종의 병에 걸려 투명인간이 된 사람들이 존재하는 시대, 투명인간 아야코는 투명인간 치료제를 개발한다는 가와지 교수를 살해했다. 하지만 이를 안 탐정 자카제와 남편 나이토 등 관계자가 현장에 들이닥쳐 갇히고 말았다. 하지만 자카제의 치밀한 탐색에도 아야코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녀는 어디에 숨었나?
투명인간이라는 비현실적인 설정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트릭과 반전이 치밀하게 펼쳐지는 작품입니다.
우선 밀실에서 아야코가 숨은 트릭은, 아야코가 살해된 교수의 시체 위에 올라가 누워 있었다는 겁니다. 이는 시체를 난도질하고, 오른쪽 가슴에 꽂은 칼을 망치로 눌러 부러뜨린 상황같이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제공된 단서를 통해 밝혀집니다. 멀리서 보아도 '확실하게 죽은 사람'으로 보이게끔(그래서 구태여 시신을 잘 확인하지 않게끔) 과한 상처를 입히고, 누울 자리에 칼이 튀어나오지 않게 만들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이 트릭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실 아야코는 이미 누군가에게 살해되었고, 지금 투명한 상태로 움직이는 '아야코'는 이웃집 여성 와타베 요시코가 변장한 인물이었다는 반전으로 이어집니다. 이 반전 또한 이야기 중에 제시되는 여러 단서들 - 아야코(요시코)가 자택에서 오른쪽과 왼쪽을 혼동하는 묘사, ‘보름달을 반지로 만든다’는 이야기가 성립하려면 집의 구조가 반대여야 했다는 점 등 - 로 설득력을 갖추게 됩니다. 교수를 살해한 동기도 이 반전을 통해 설명되고요. 투명인간이 치료되면 정체가 탄로나게 되니까요. 투명인간은 메이크업으로 외형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요시코가 아야코로 변장할 수 있었다는 것도 특수 설정을 이야기에 잘 녹여낸 대표적인 예입니다. 탐정 자카제 역시 투명인간이었다는 결말도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투명인간이라는 만화적인 설정은 그렇다쳐도, 밀실에서 시체 위에 올라가 숨는 트릭은 지나치게 억지스럽다는 문제는 있습니다. 아무리 투명하다 해도 경찰이 출동하면 결국 들통날 수밖에 없고, 숨은 다음의 계획도 숨는 트릭에 비하면 허술한 탓입니다. 또한 투명인간 설정에 상세한 설명을 덧붙여 공을 들이고 있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근본적인 물리적 모순을 무시한 점도 조금 거슬렸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6명의 열광하는 일본인들"
큐티 걸스라는 여성 아이돌 그룹의 팬 두 명이 다투다 한 명이 사망한 사건에서, 여섯 명의 재판원과 판사들이 평의를 시작했다. 그런데 재판원 전원이 큐티 걸스의 팬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건은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결국 이들이 나누는 토론을 통해, 피고인이 범인이 아니며 큐티 걸스의 멤버 사키가 진범이라는게 밝혀지는데...
아이돌 팬들과 재판을 배경으로 한 코믹 미스터리입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트릭보다도 추리의 진행 방식입니다. 팬들만이 눈치챌 수 있는 단서들—응원봉의 컬러가 이상하다는 점, 울트라 오렌지 라이트 스틱이 현장에 과도하게 많이 남아 있었다는 점, 타다 남은 종잇조각 등—을 통해, 범인이 큐티 걸스의 멤버 사키였고 피고인은 우상을 대신해 죄를 뒤집어쓰기로 마음먹었다는 진상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꽤 그럴듯하게 진행되거든요. 시작은 "12인의 성난 사람들"이었지만, 전개와 결말은 "키사라기 미키짱"인 셈인데, 오타쿠 팬심과 진지한 법정 추리물을 결합한 방식이 신선했습니다. 코믹한 오타쿠들 대화 중심의 구성도 재미있는 요소였고요.
추리는 얼마든지 반론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본격 추리로 보기엔 무리가 있으나, 부담 없이 읽히는 소품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도청당한 살인"
청력이 비상한 미미카는 오노 탐정에게서 살인사건의 진상을 조사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피해자의 집에 설치되어 있던 도청기에는 사건 당시의 소리가 그대로 녹음되어 있었고, 미미카는 이를 분석했다. 그녀는 녹음된 소리를 듣다가 이상한 불협화음을 느꼈다...
핵심 단서는 불협 화음이 아니라 발소리가 일정하게 들린다는 것이었습니다. 도청기는 인형 속에 감춰져 있었고 고정된 위치에서 놓여 녹음되었기 때문에,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발소리는 멀어지거나 가까워지는 식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그런데 일정하게 들렸다는 건 누군가가 인형을 들고 이동했다는 뜻입니다. 불협화음의 원인인 녹음된 팩스음이 매우 희미하게 들리는 것도 도청기의 위치가 바뀌었음을 뒷받침하고요. 이를 통해 도청기의 존재와 위치를 알고 있는 탐정사무소 조사원 후카자와가 범인이라는게 드러나게 됩니다.
이렇게 주어진 단서만으로 범인을 추리해 낼 수 있는 완벽한 후더닛물로, 정통 본격 추리소설의 매력을 잘 보여줍니다. 미미카의 가공할 청력과 논리적 추론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좋은 특수 설정 미스터리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미미카의 비상한 청력이 일반 추리의 범주를 넘는 일종의 초능력처럼 느껴져, 약간은 추리 만화나 퀴즈물처럼 보인다는건 단점입니다. 사실 녹음된 소리를 듣고 분석하는 것이라면 이런 특수 설정을 이야기에 도입할 필요도 없었어요. 현실적으로는 음량 조절이나 소리 추출 장비를 활용하는 쪽이 더 설득력 있었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리적 재미와 퍼즐의 완성도 면에서는 추리 팬으로서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는 수작입니다. 오노 탐정과 미미카 컴비의 티키타카도 재미있었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13호 선실에서의 탈출"
고등학생 가이토는 유명 추리작가 미도리카와 시로의 인기 시리즈를 모티브로 한 탈출 게임에 초청받았다. 그 곳에서 게임 후원사 사장의 아들인 마사루와 마사루의 동생 스구루를 만났는데, 가이토와 스구루는 갑작스럽게 납치되고 말았다. 알고 보니 납치범들의 본래 목표는 마사루 형제였고, 가이토는 마사루로 오인받아 함께 납치되었던 것이었다. ..
탈출 게임이 핵심 설정으로 등장하는 작품으로, 게임에 등장하는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사건의 시각을 알려주는 시계에 대한 문제에서 시작해서, 목격 증언의 모순점을 밝히는 문제, 원고지에 남겨진 메시지를 해독하는 문제로 이어지는데 이 모든 문제들은 그냥도 풀 수 있지만, 마지막 수수께끼를 통해 중요한건 '거울'이며 앞서의 수수께끼와 거울을 조합하여 진짜 범인이 ‘사쿠라기’라는 사실이 밝혀지도록 잘 짜여져 있습니다.
또한 ‘재교부’라는 게임 규칙—같은 문제에 정답을 두 번 낼 수 있다는 룰—자체도 하나의 트릭으로 작용합니다. 초반부 수수께끼의 해답이 두 가지였음을 이 룰을 통해 암시되기 때문입니다. 실제 작중 게임의 구성과 배우들의 연기, 설정 모두 현실적으로 잘 설명되고 있고요.
하지만 납치극 설정은 과했습니다. 가이토와 스구루를 납치한 흑막이 사실 마사루였다는 진상, 그리고 동생 스구루가 처음부터 형의 음모와 게임의 정답을 모두 간파하고 있었다는 설정은 지나치게 억지스럽고 작위적입니다. 치밀한 퍼즐 추리에 비하면 완성도만 떨어트리는 느낌이에요.
그래도 추리 게임이 잘 연출되어 읽는 재미는 충분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