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에 사랑을 담아 - 아토다 다카시 지음, 유은경 옮김/행복한책읽기 |
단편의 명수 아토다 다카시의 단편집. 책 소갯글을 보니 첫 단편집이라고 하네요. 좋아하는 작가인데 그간 놓치고 있다가 뒤늦게 읽게 되었습니다.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냉장고에 사랑을 담아
취미를 가진 여자
가장파티
해초
기묘한 나무
행복통신
미지의 여행
나는 먹는 사람
밤의 진주조개
에너지 법칙
노래를 잊어버리지 않는 앵무새
진실은 강하다
내기에 미친 부인
마음의 여로
유령과 만나는 기술
홈 스위트 홈
최후의 배달인
공포의 연구
460페이지 분량의, 그렇게 두껍지 않은 책임에도 수록작은 18편이나 됩니다. 작품들의 밀도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겠죠? 가장 짧은 작품은 4페이지에 불과합니다.
일단은 기대만큼 유머러스하면서도 서늘함을 안겨다주는 반전을 지닌 작품이 많아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역시나 "단편의 명수"이자 "기묘한 맛"의 대표 작가다웠어요.
또 다른 특징으로는 70년대 작품답게 확실히 옛스럽다는 것으로 예를 들어 "마음의 여로"는 "유니버셜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에 실린 단편 "Ω의 성찬"과 동일한 소재이지만, "Ω의 성찬"의 적나라한 묘사와 자극적인 느낌은 전무하고 여백 가득한 묘사로 그려집니다. 때문에 시종일관 전개와 반전에서 상상력을 동원할 필요가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직접적인 돌직구 스타일 현대물보다 이러한 고전적인 분위기가 훨씬 좋았습니다.
그러나 이 작가의 단편집 모두가 그렇듯 수록 작품들의 편차가 존재한다는 것은 단점입니다. 모든 작품이 아주 뛰어나지는 않아요. 또, 지금 읽기에는 반전들도 조금 낡기는 했습니다. 예를 들어 "기묘한 나무"의 핵심 반전인 성형수술, "나는 먹는 사람"과 "마음의 여로"의 식인 행위, "에너지 법칙"에서 주인공이 쥐의 먹이가 될 것이라는 결말 등은 솔직히 뻔했습니다. 아울러 "나폴레옹 광"이나 "방문자" 같은 작가의 대표작이 실려 있지 않다는 점도 감점 요인이고요.
그래도 지금 읽어도 여전한 힘을 지니는 작품도 많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작품을 들자면 "가장파티", "행복통신", "유령과 만나는 기술"의 세 편입니다.
"가장파티"는 아내의 사망 후 내리막길을 걷는 샐러리맨이 아내와 꼭 닮은 술집 여자를 만나 회사 가장파티에 데려간다는 내용입니다. 마지막 딱 몇 줄로 정리되어 폭로되는, 사실 아내는 사장의 정부였다는 냉혹한 현실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시마 과장"의 곤도가 떠오르는 이야기였어요.
"행복통신"은 구조조정을 앞둔 주인공에게 기이한 투자 관련 전화가 온다는 이야기인데, 전화를 건 이유를 수학적으로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솜씨가 좋았고요.
"유령과 만나는 기술"은 기원전 15세기의 크레타를 무대로, 뫼비우스의 띠를 이용하여 죽은 자와 통신한다는 내용을 진짜처럼 천연덕스럽게 묘사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합니다. 작가의 폭이 상당히 넓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어요. 하긴... 역사 소설도 많이 쓰긴 했죠.
그 외에도 "기묘한 맛"의 원조 격인 스텐리 엘린, 로얼드 달 스타일 가득한 "해초"라던가 "노래를 잊어버리지 않는 앵무새"도 서늘한 맛만큼은 충분했습니다.
덧붙이자면 기이할 정도로 먹는 것에 집중한 작품이 많다는 것도 독특한 점이었습니다. 먹는 것 자체가 주제인 "나는 먹는 사람"이 대표적인데 식인 행위를 다루고 있음에도 너무나 맛깔스럽게 묘사해서 입에 군침이 돌 정도였어요. "나폴레옹 광"도 오징어포에 대한 묘사가 남다른데 작가가 음식을 정말 좋아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작가의 대표작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기묘한 맛" 팬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