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혹성 탈출 - ![]() 피에르 불 지음, 이원복 옮김/(주)태일소담출판사 |
베텔게우스 계로 우주여행을 떠난 기자 윌리스 메루 일행은 지구와 거의 흡사한 환경의 "소로르"라는 행성에 착륙하여 그곳의 인류와 만났다. 그러나 소로르의 인류는 지성은 없는 원시 상태였고, 윌리스 일행은 고릴라가 인류를 사냥하는 충격적인 상황에 직면했다. 곧이어 윌리스도 고릴라들에게 포로로 잡혀가게 되는데...
70년대를 풍미했고 2000년대를 거쳐 얼마 전 프리퀄(또는 리부트) 신작이 나와 히트한 바로 그 영화의 원작 소설. 저야말로 이 영화의 직접적인 영향권(?) 안에 있는 세대입니다. 영화는 어렸을 때 TV에서 전편을 소개해 줄 때 감상하였고, 팀 버튼의 괴작도 극장에서 감상했거든요. 이렇게 워낙 많이 접하다 보니 원작 소설도 영화 올드 버전 1편의 내용과 거의 동일할 것이라 생각해서 썩 관심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읽어보니 의외의 요소가 많더군요.
일단 제일 놀라웠던 것은 정통 SF라는 점이었습니다.
영화에서와 같은 모험물적인 속성은 거의 없는 작품으로, SF적인 디테일도 괜찮더군요.
항성 간 우주여행 등의 설정이 잘 묘사되어 있는 덕분입니다.
문명의 진보에 대한 이론은 솔깃하기까지 했고요.
게다가 SF 세계관 속에 인류의 무기력한 미래에 대한 풍자를 녹여낸 솜씨는 지금 읽어도 대단했습니다.
블랙코미디가 아닌가 생각되는 부분 ("넌 너무 못생겼어!")도 기가 막혔고요.
전혀 낡아 보이지도, 유치해 보이지도 않는, 시대를 초월한 부분이 분명히 있는 작품이었어요.
그러나 전개 면에서 조금 아쉬웠던 것이 몇 가지 있기는 합니다. 가장 거슬렸던건 인류가 급격하게 몰락한 이유를 구태여 드러내려 한 부분이에요.
"뇌 수술"을 통한 일종의 "빙의 현상"이라는 수단부터가 작가가 너무 쉽게 간 느낌이라 별로인데,
이유 자체도 단순한 무기력이라는 것이라서 와닿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독자의 상상에 맡기고 설명하지 않는 게 훨씬 좋았을 텐데 말이죠.
두 번째는 앙텔 교수의 정신 붕괴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혼자 떨어져 몇 달 지냈다고 이 소설에서처럼 급격한 정신적인 퇴행이 이루어진다는건 말이 안 됩니다.
이 부분만큼은 영화에서처럼 뇌 수술 쪽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그 외에 윌리스 메루의 이름부터 패러디의 의미가 있다는 등의 (이름은 율리시즈이지만 성은 물고기?) 원어 한정 풍자를 제대로 느낄 수 없는 것도 조금은 안타까웠고요.
그래서 별점은 3점. 5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통할 만한 아이디어와 재미를 갖춘 작품임은 분명합니다. 이 바닥의 클래식으로, 장르 문학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려요. 너무 늦게 출간된 것은 안타깝지만, 지금이라도 읽을 수 있게 된 것에는 감사해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