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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30

여태까지 나만의 요코미조 세이시 순위

출간된 작품을 모두 읽은 것 같아 정리의 의미에서 포스팅합니다. "악마의 공놀이 노래"를 제외하면 초기작 점수가 높은 편이네요.

이 중 세 편을 꼽으라면 "옥문도", "악마의 공놀이 노래", "혼진 살인사건"이겠네요. "팔묘촌""여왕벌"은 절망스러울 정도로 형편없었던 TV 드라마를 먼저 접해서 그 반동으로 점수가 조금 높게 매겨진 것 같거든요.

1위 : 별점 4점

"옥문도"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의 특징적인 설정과 매력에 더하여 본격 추리적인 완성도도 빼어난 작품.

공동 2위 : 별점 3점

"팔묘촌"
긴다이치 코스케의 활약이 적은 모험소설로 유사한 설정의 작품들의 아버지격. 오리지널로서의 가치는 높으나 추리물로는 조금 부족한 것이 아쉽다.

"악마의 공놀이 노래"
추리적으로 아주 완벽하지는 않지만 정교한 드라마가 잘 갖춰진 작품. 동기와 전개 면에서 만화 김전일 시리즈와 가장 흡사한 느낌을 주는 친숙한 느낌이 좋다.

"여왕벌"
추리적으로는 시시하지만, 악의 없이 주변을 살육으로 몰고 가는 순진한 미녀에 대한 묘사 하나 때문에라도 볼 가치는 충분.

공동 5위 : 별점 2.5점

"이누가미 일족"
너무 전형적이었을 뿐 아니라 충격적이고 엽기적인 묘사가 과했던 작품. 거기에 더해 추리적으로도 별 볼 일 없다. 한마디로 명성에 비하면 실망스러웠다.

"밤산책"
추리물이라기보다는 괴담물이었다면 차라리 더 나았을지도.

7위 : 별점 2점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
동기와 트릭 모두 부실하며, 추리적으로도 별 볼 일 없는 평균 이하의 작품.

8위 : 별점 1.5점

"삼수탑"
"여왕벌"의 자가복제에 지나지 않는 통속 치정 모험극. 시류와 유행에 영합하려 한 전형적인 펄프픽션.

등외

"혼진 살인사건 / 나비부인 살인사건"
이전에 읽어서 순위에는 포함되지 않았음. 하지만 추리적인 측면과 역사적인 가치를 고려한다면 상위권은 충분할 듯.

2011/12/24

삼수탑 - 요코미조 세이시 / 정명원 : 별점 1.5점

삼수탑 - 4점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시공사

하기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 후, 이모댁에서 딸처럼 귀하게 자란 오토네 앞에 먼 친척이라는 겐지 노인이 무려 100억이라는 유산을 남긴다는 유언이 전해졌다. 조건은 다카토라는 정체불명의 남자와 결혼하는 것. 그러나 백부의 회갑연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고, 피해자가 정체불명의 정혼자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 뒤 변호사에 의해 유산은 오토네를 포함한 사타케 가문 사람들 모두가 나누는 것으로 결정되었지만, 가문 사람들이 차례로 살해되면서 오토네는 유력한 용의자로 몰리는데...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이지만 긴다이치의 비중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고, 오토네와 다카토의 모험담이 오토네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작품입니다.

일단, 사타케 가문 사람들이 100억이라는 거액을 둘러싸고 한 명씩 죽어나가는 꽤나 큰 스케일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영문도 모른 채 사건에 휩쓸리는 전형적인 피해자인 오토네의 시각으로만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니 추리적인 요소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나마 추리적인 요소라고 할 만한 것은 후루사카 시로의 부서진 트렁크와 삼수탑 사진의 존재 정도인데, 이는 유카리와 쇼이치의 무고함을 약간이나마 증명해 주는 증거이긴 하지만, 이 정도로는 너무 부족합니다. 결국 밝혀지는 범인의 정체는 황당하기가 그야말로 서울역에 그지없을 정도고요. 지금까지 읽어본 추리소설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어처구니없는 결말이었어요.

범행 동기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비롯된 사건이라는건 이해할 수 있지만, 그 이후의 연쇄살인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범인의 유도 실력에 대한 복선이 살짝 등장하긴 하지만, 실로 초인적인 운동 능력과 결국 연쇄살인 자체가 순전히 운에 기인한 결과라는건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뭔가 있어 보이던 "삼수탑"의 존재가 사실 별 의미 없고, 시로가 삼수탑에서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냈다면 이미 관련된 증거는 챙겼을 것이라는 점에서 결말의 설득력도 떨어지고요.

차라리 초반의 살인 하나만 범인이 저지르고, 유언장 발표 후에는 서로가 서로를 죽였으며, 마지막 삼수탑에서는 내분과 애정 싸움으로 모두가 목숨을 잃고, 범인은 오토네와 다카토의 관계를 알고 자살한다는 결말이 더 나았을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점은 결국 "여왕벌"의 자가복제에 불과하다는 작품의 근본적인 단점에 비하면 오히려 사소한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순진하지만 본의 아니게 사건을 일으키는 원흉인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미녀, 그리고 악인인지 선인인지 모호한 그녀를 중심으로 맴도는 남자라는 설정과 전형적인 사건 구도가 똑같거든요.

그래도 당대의 인기작답게 전혀 건질 것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각 단계별로 사건이 계속 일어나며, 다음 이야기를 빨리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전개는 연재물이라는 작품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서스펜스와 스릴이 전편에 걸쳐 강하게 느껴진다는 점은 과연 명불허전이라 할 만했습니다.

또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오토네와는 정반대로, 신출귀몰하며 변장에도 능하고 다양한 신분을 가진 다카토라는 안티 히어로적인 캐릭터가 비교적 중심을 잡아주는 것도 재미있는 요소였습니다. 비교적 현대적이고 생동감 있는 캐릭터라 이 작품 한 편으로 끝나기에는 아깝더군요.

아울러, 통속적인 면에서는 지금 보아도 완벽한 작품이라 생각될 정도로 잘 만들어진 점도 인상적입니다. 초반부터 펼쳐지는 찐한 애정 묘사, 사타케 가문 사람들이 모두 호색한 또는 호색녀이며 문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설정 등은 대표적인 예입니다. 사실 이러한 설정들은 작품의 전개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고 순전히 재미를 위한 장치라는 점에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최근까지도 이 작품이 계속해서 영상화되는 주요한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전형적인 통속성이라는 측면에서 참고할 만한 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추리소설이라 부르기에는 민망할 뿐 아니라 긴다이치마저도 별다른 역할이 없기에, 작가의 팬이라면 한 번 읽어볼 만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추천하기 어렵겠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지금까지 읽은 긴다이치 시리즈 중 최저점인데, 이후 작품들은 솔직히 별로 기대되지 않는군요.

물만두의 추리 책방 - 홍윤 (물만두)

물만두의 추리 책방 - 6점
홍윤(물만두) 지음/바다출판사

전설의 추리소설 리뷰어 물만두 홍윤님의 1838편의 리뷰 중 200편을 선정해 실어 놓은 리뷰집입니다. 추모의 의미를 담아 구입하여 읽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도 인터넷에서 고인의 리뷰를 자주 접했었지만, 책으로 읽으니 새로운 느낌이네요. 수록 리뷰 중 제가 읽은 작품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89편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리뷰를 올렸던 작품들은 비교해가며 읽어보았습니다. 확실히 리뷰의 수준이 차이가 나더군요. 많은 부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작품의 좋은 부분을 찾아내어 주목하는 리뷰가 많았다는 점과, 작품의 역사적인 의미, 전작 출판에 대한 강한 소망도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 진정한 추리 애호가였다 생각되고요.

리뷰들 중에서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내용이 많다는 것도 새삼스럽게 다가왔습니다. 한창 블로그를 방문하며 리뷰를 접했을 때에는 무심히 넘겼던 부분이었지만, 고인의 지병을 알고 나니 이러한 고민이 더욱 묵직하게 느껴졌습니다.

"아픈 사람, 호전될 가능성이 제로라고 선고받은 사람도 희망을 가질 때가 있다. 이것은 그 상황에 처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알 수 없는 감정일 것이다. 살아있는 한 희망이 있음을 믿고 싶다." - 제프리 디버 "곤충소년"

"산다는 건 어쩌면 죽는 것보다 더 힘든 고행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살아야 하는 이유는 누군가는 남아서 죽은 이를 추억해야 하기 때문이다." - 미치오 슈스케 "섀도우"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곁에 있다고 잘 보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곁에 없다고 못 보내는 것도 아니다. 죽은 이를 애도하는 마음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는 한 그는 영원히 존재하는 사람이 된다. 죽음을 아름답게 기억하는 건 아름답게 살라는 뜻이다." - 텐도 아라타 "애도하는 사람"

"살아만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는 말은 사실이다. 죽으면 그저 묻히는 것뿐이다. 산다는 건 고행과 같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럼에도 살아가고 있는 건 불행은 작아 보이게 만들려 애쓰며 극복해 나아가고, 행복은 더 크게 만끽하며 오래도록 간직하고 추억하기 때문이다." - 텐도 아라타 "영원의 아이"

이와 같은 글들이 다시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누군가 그토록 살고 싶어 한 내일이다."라는 경구가 떠오르기도 했고요. 추리소설과 장르문학 리뷰어를 자처하는 저에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실감하게 했고, 보다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해 준 책이었습니다. 일단, 고인이 강력 추천한 작품 중 아직 읽지 못한 것부터 읽어봐야겠습니다.

"전설은 아니더라도, 어떤 것에서든 최고는 아니더라도 내 시대가 끝날 때 나 혼자만이라도 만족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 사쿠라바 가즈키 "아카쿠치바 전설"

하지만 이미 전설이었고, 최고였습니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제가 알라딘 블로그를 거의 이용하지 않아 고인과의 접점이 많지 않았다는 점이 너무나 아쉽습니다. 제 알라딘 블로그 방명록에 남겨진 한 줄 글이 유일한 인연이라니... 생전에 댓글로라도 의견을 나누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경성탐정록"에 대한 좋은 리뷰에 제대로 감사 인사를 전하지 못한 것도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고인이 강력 추천한 작품 목록

  • 코넬 울리치 (윌리엄 아이리쉬)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 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
  • 수키 김 통역사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동물 애호가를 위한 잔혹한 책
  • 할런 코벤 단 한 번의 시선
  • 조너선 캐럴 웃음의 나라
  • 토머스 해리스 이니그마
  • 존 카첸바크 어느 미친 사내의 고백
  • 프레더릭 포사이스 어벤져
  • 츠지무라 미즈키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
  • 모리 히로시 조금 특이한 아이 있습니다
  • 심포 유이치 화이트아웃
  • 히가시노 게이고 둘 중 누군가가 그녀를 죽였다
  • 텐도 아라타 영원의 아이
  • 히가시노 게이고 다잉아이
  • J.M. 에르 개를 돌봐줘
  • 막심 샤탕 악의 심연
  • 프레드 바르가스 4의 비밀
  • 박미경 괴상한 해초
  • 류성희 나는 사랑을 죽였다
  • 이은 수상한 미술관

2011/12/18

아버지의 백드롭 - 나카지마 라모 / 한희선 : 별점 2.5점

아버지의 백 드롭 - 6점
나카지마 라모 지음, 한희선 옮김/북스피어

사고뭉치 아빠들의 좌충우돌 소동극으로, 훈훈하고 유쾌한 결말로 끝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나카지마 라모의 꽁트 네 편을 모아놓은 소품집. 추천을 받아 읽어보았습니다. 

호러 단편집 "인체모형의 방"과 오컬트 모험물 "가다라의 돼지"라는 두 편의 장르물로 먼저 접했던 작가라서 이러한 일상계 소품은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읽다 보니 네 편 모두 그다지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장르물과 유사하더군요. 작가 특유의 블랙 코미디 성향이 잘 드러나 있는 것도 역시나 싶고요.

그러나 일상계 소품에서 기이한 비현실감이 느껴진다는 것은 단점이긴 합니다. 모든 것이 과장된 만화 같으니까요. 예를 들어 기본 설정부터가 그렇습니다. 친구의 아버지가 거구의 프로레슬러였다는 점은 아다치 미츠루의 "슬로우 스텝"이 바로 연상되고, 진기한 애완동물을 아들들에게 건네주어 자존심 싸움을 하게 만든다는 설정은 "도라에몽"의 한 에피소드 같았습니다.

또한, 유쾌하기는 하지만 기승전결이 쉽게쉽게 이루어지는 점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백드롭"에서 도저히 이길 방법이 없어 보였던 우시노스케가 별다른 복선도 아니었던 복근의 수비력으로 승리한다든가, 연예인 밧타의 뜬금없는 방송국 신인상 수상이라든가 하는 식으로, 설득력 없는 이유로 극적인 드라마가 성립되는 것은 다소 생각이 없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뭐, 피식하며 즐기라는 취지의 작품이니만큼 깊게 생각하며 읽을 필요는 없겠지요. 작가의 창작 의도도 그저 마음 편하게 즐기자는 것일 테고요,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은 소품으로는 제격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11/12/12

밀리터리 실패열전 - 홍희범 : 별점 2.5점

밀리터리 실패열전 - 6점
홍희범 지음/멀티매니아호비스트

호비스트에서 출간했던 월간지 플래툰에 연재되었던 칼럼들을 책으로 엮은 것. 작전편에서 시작해 해상, 항공, 지상, 총기 파트로 크게 나뉘어 있습니다. 상세한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ㆍ작전편
1. 무능한 대장이 부하를 잡는다 - 임팔 작전
2. 미국의 오판 - 피그만 침공
3. 구출 아닌 구출 작전? 마야게즈호 사건
4. 병력은 단순한 소모품? 솜므 대공세
5. 첩보전 최악의 실패: 독일의 대영 첩보전

ㆍ해상편
1. 훈련 중의 대형 사고 연속 발생
2. 이라크 미사일, 미군 함정 피격
3. 이지스의 비극 - 이란 여객기 오인 격추
4. 군과 민간 사이에서 망한 여객선
5. 소련-러시아 원자력 잠수함의 사고 연발
6. '위스키 온 더 락', 구형 잠수함도...
7. 미국 원자력 잠수함의 사고 2연타
8. 미 항모 최대의 적은...?
9. 너무 요동치는 미드웨이
10. 결국 못다 한 꿈 - 나치 독일의 항모

ㆍ항공편
1. '막 떨어지는' 전투기? 과부 제조기 F-104
2. 아군기를 쏘면 안 되지...! 항공 오사
3. 위대한 꿈, 충돌로 끝장 - B-70 발키리
4. 너무 앞선 무인 헬기 - DASH(QH-50D)
5. 성공과 실패는 종이 한 장 차이 - B-17
6. 자국산 전투기 개발의 꿈과 나치 독일
7. 항공기 자폭 테러의 원조는 테러도 아니다?
8. 미 해병대, 스키 리프트 격추?
9. 소련 VSTOL기의 우울
10. F-20 '타이거 샤크'의 실패

ㆍ지상편
1. 여러모로 패착: 2차 대전의 일본 전차들
2. 폼만 나면 좋나? 소련의 다포탑 전차
3. 욕심이 지나쳐도... 미국의 MBT-70
4. 세계 최대의 '실패한 쥐', 마우스
5. 너무 무거운 경전차, 1호 F형
6. 궁합 맞는 짝이 없다? 17파운드포 탑재 작전
7. 뭔가 안 맞는... 연합군의 중전차들

ㆍ총기편
1. 좌충우돌 - 미국의 경기관총 프로젝트
2. 이래 가지고 전차를 어떻게 지켜? M73
3. 또 다른 전차용 기관총의 실패: M85
4. 절약이 능사는 아니다 - 일본 11년식 경기관총
5. 무고장 소총의 꿈... 꿈은 꿈일 뿐? LMR
6. 나치 독일 최후의 발악: 국민 돌격병기
7. 사공이 많으면... GEW88
8. '일석이조'의 실패
9. 대영제국의 SA80, 이름값 못 하다
10. '곡사총'의 꿈

각 소주제별 제목만 보아도 흥미진진하지요? 인상적인 이야기를 꼽아보자면 "에어리어 88"에서 주인공의 기체로 높이 평가했던 (비싼 값을 주고 산 거야!) 타이거 샤크의 실패에 대한 이야기와, 위대한 꿈이었던 초초음속 전폭기 발키리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발키리는 영화 "파이어폭스"가 바로 떠오르더군요. 멋진 실루엣의 디자인도 충분히 감동적이지만, 실제 시제품이 존재해 비행까지 성공했다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소련 VSTOL기의 우울"에서 등장하는 수직 이착륙기 이야기도 "하야미 라센진의 육해공 대작전"에서 잠깐 접했던 것이라 반가웠고요.

그 외에도 나치 독일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전투기 국산화를 꿈꾸었던 아르헨티나의 풀퀴 2와 인도의 마루트, 그리고 아랍권의 HA-300 전투기 이야기도 신선했습니다. HA-300은 빌리 메서슈미트 박사의 설계였다는 점에서 더욱 아쉬움이 느껴졌습니다. 이집트가 산유국이었다면 지금쯤 하늘을 날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마지막으로,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무식한 전차들의 역사도 재미있게 (그리고 어이없게) 읽은 내용입니다. 섬이나 정글 등의 야전이 많았던 전장 특성상 개발이 더뎠다고는 하지만, 황당할 뿐이죠. 이 이야기도 "하야미 라센진의 육해공 대작전"에 실려 있던 중전차 치하 이야기가 떠올라 더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부분이 현재는 나무위키 등의 사이트에서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들이라는 점은 아쉽습니다. 그리고 호비스트 출판 도서 전체의 문제이기도 한데, 전문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이 다소 부족하고 가벼워 보인다는 점, 그리고 책의 만듦새와 완성도에 비해 생각보다 비싼 가격 (13,000원)도 단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프트한 밀리터리 애호가에게는 제법 괜찮은 즐길거리임에는 분명합니다. 또한, 이런 류의 책 중에서는 대안을 찾기 어려운 군계일학적인 측면도 확실히 있는 만큼, 지금은 절판 상태이지만 주위에서 구할 수 있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11/12/09

일상생활 속에 숨어있는 수학 - 사쿠라이 스스무 / 전선영 : 별점 2점

일상생활 속에 숨어있는 수학 - 4점
사쿠라이 스스무 지음, 전선영 옮김/살림Math

일상생활 속에서 무심히 지나가는 것들에서 수학적인 요소를 끄집어내어 소개한다는 취지의 교양서. 중고등학교 때 누구나 한 번쯤 궁금해했을 법한, 즉 "이걸 배워서 어디다 쓰지?"라는 질문에 대해 좋은 답이 될 수 있는 책입니다. 특히 앞부분의 삼각함수, 지수와 로그를 설명하는 부분이 그렇습니다. 사람의 감각 크기가 자극의 로그에 비례한다는 베버-페히너의 법칙 같은 새로운 이야기도 꽤 흥미로웠습니다.

또한, 다소 식상하긴 했지만 컴퓨터 관련 설명에 등장했던 2진법 전환에 대한 새로운 공식이나 컴퓨터 작동의 기본 원리는 상당히 잘 설명되어 있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공식을 조금만 더 빨리 알았더라면, 최근 모 작품 때문에 벌였던 삽질을 조금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뒤의 이야기들은 영 별로였습니다.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GPS 이야기는 그냥 그랬고, 컴퓨터의 2진법 관련 이론과 암호에 대한 내용도 다른 곳에서 많이 접했기 때문입니다. 황금비는 말할 필요도 없고요. 그나마 황금비 이야기와 함께 소개된 일본 특유의 백은비에 대한 이야기는 괜찮았지만, 이어지는 단위, 움직임과 미적분 항목도 그냥저냥이었으며, 맨 마지막의 "일상생활 속에 숨어있는 수학"이라는 주제는 초등학생을 상대로 숫자의 기원을 설명해주는 동화에 불과해서 화가 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이쪽 분야의 다른 책을 너무 많이 읽은 탓도 있겠지만, 재미와 지적 호기심 양쪽 측면에서 모두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중고등학생에게 더 적합한 책이라 생각되네요.

2011/12/05

Q.E.D - 38 / 39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3점 / 2점

Q.E.D 큐이디 38 - 6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허몽

영화 제작자 쿠세 살인사건에 언제나 그렇듯 우연찮게 발을 들여놓게 된 토마와 가나 커플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이야기.

추리적으로는 그다지 인상적인 작품은 아닙니다. 영사기를 이용한 트릭이 사용되지만, 작중에서 언급되는 대로 돈 한 푼 투자할 가치가 없을 정도로 신선하지도 않을 뿐더러, 현실적이지 못한 탓입니다. 영사기를 이용하여 영상을 창문에 투영하는 것, 그리고 조명에 의한 일종의 거울 현상을 이용한다는 것 모두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세세한 부분에서 설명을 좀 더 해 주었더라면(예를 들면 창문에 시트지를 발라놓았다던가 하는 식으로) 좋았을 텐데 말이죠.

하지만 토마가 용의자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각자 처한 현실에서 동기를 추리해 범인을 알아낸다는 착상은 괜찮았고, 망한 영화에 돈을 투자하는 것에 대한 심리 묘사가 그럴듯했다는 점에서는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17

일본 수학인 "화산"을 다루고 있는 일종의 가상 역사 수학물입니다. 18세기 초 일본 에도의 아이사라는 소녀가 일본에서 가우스, 갈루아보다 먼저 대수에 대한 이론을 알아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로, 현재 시점에서 토마는 아이사가 남긴 사당의 수수께끼를 풀어냅니다. 당연하겠지만 진실은 결국 밝혀지지 않습니다. 다만 "알아냈을지도 모른다"로 훈훈하게 마무리되지요.

재미는 있고, 특히 앞부분의 수학(화산) 문제도 퍼즐을 푸는 기분으로 즐겁게 읽을 수 있지만, 정작 핵심 내용은 100% 이해되지는 않는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물론 이 부분은 제가 수학에 약한 탓입니다.

수학 쪽에 많이 치우쳐 있는 이야기라 평가하기가 좀 난감한데, 별점은 3점입니다. 가상 역사물, 수학 학습물, 추리물 어느 쪽으로 보아도 평균 이상은 되는 수준이라 생각됩니다. 현학적인 측면에서도 우수하고요.


Q.E.D 큐이디 39 - 4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어번힐즈 6호실 사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낡고 별 볼 일 없는 맨션 어번힐즈의 관리인이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경찰은 사인을 자살이라고 단정 짓습니다. 이후 관리인의 손녀와 친구인 가나가 토마를 끌어들여 진상을 밝혀낸다는 내용입니다.

애초에 시체가 발견된 6호실이 밀실도 아니고, 맨션 안을 돌아다닌 것은 토치키밖에 없는 정황이라 범인이 너무 뻔합니다. 그런데 예상 가능한 전개를 뒤집어 희한한 일상계 미스터리로 탈바꿈시킨 작가의 능력이 돋보였습니다. 동기와 진상의 의외성이 확실히 존재하는 기발함이 좋았어요.

다만, 왜 주위에 더 싼 집을 물어볼 때 6호실을 이야기해 주지 않았는지, 구태여 6호실을 통해 시체를 끌어올려 자살로 위장할 필요가 있었는지는 설명되지 않는 점이 문제입니다. 웬만한 경우에는 자살이 아니라 단순히 시체만 발견되어도 집값은 떨어질 텐데 말이죠.

때문에 별점은 2점입니다. 조금 더 설득력 있는 단서를 보강했더라면 정말 괜찮은 일상계 미스터리 수작이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다소 아쉽습니다.

그랜드 투어

NASA에서 보이저호를 개발했던 핵심 멤버 중 한 명인 이오 교수가 은퇴 기념 파티를 열고 제자였던 토마와 로키 일행을 초대한 뒤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작품. 굉장히 묵직한 내용으로, 보이저호 발사에 필요했던 "그랜드 투어"와 "스윙바이 항법"이 전개의 핵심으로 등장하는 Q.E.D 특유의 학습 + 본격 추리물입니다.

35년 전 이오 교수 아내의 죽음을 파헤치는 것이 핵심인 추리적인 부분은 당시 인물들의 증언에만 의존하는 안락의자 탐정물 스타일인데 제법 설득력 있게 전개됩니다. 비약이 심한 점이 있지만, 큰 흠은 아니에요.

그러나 드라마 부분은 문제입니다. 교수 아내의 불륜은 가정을 돌보지 않은 교수에게도 책임이 있고, 교수의 자살 소동과 복수를 다루는 전개도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쇼를 벌이는 이유 자체가 설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태여 토마 일행을 불러모은 이유도 합리적이지 않고요. "자살"을 증명해 줄 수 있기 때문에? 토마 일행이 없더라도 친구들과 목격자 증언만으로 충분히 자살로 성립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부분을 감점하여 별점은 2점입니다. 시작에 비해 마무리가 확실히 약했던 에피소드인데, 후속작에서는 좀 더 힘을 내 주었으면 합니다.

2011/12/03

붕어빵에도 족보가 있다 : 한국인이 즐겨먹는 거리음식의 역사 - 윤덕노 : 별점 2점

제목과 책 소개만 보면 우리나라의 분식이나 거리 음식들에 대한 역사적 고찰 및 소개를 하는 책으로 생각되지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빵과 과자는 물론 해산물과 주식까지 망라하는 포괄적인 음식 칼럼이었습니다.

물론 주제가 많고 방대한게 단점은 아닙니다. 그러나 부제에 명백하게 '한국인이 즐겨먹는 거리 음식의 역사'라고 적어 놓고, 정작 내용에는 땅콩버터, 오징어 먹물이나 빠에야, 리조또, 꾸스꾸스, 타타르 스테이크 등을 소개하는건 명백하게 독자를 기만한 것이지요. 또한, 각 주제별로 다루는 내용도 딱히 깊이가 없고 단지 유래만 다루거나, 몇 가지 재미있는 일화만 곁들여 소개하는 수준이라 얄팍합니다. 단팥빵이나 카스텔라, 단무지, 오뎅처럼 간단하게 인터넷을 검색해도 훨씬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들을 구태여 소개하는 것도 페이지 낭비고요. 이럴 바에야 그냥 우리나라 거리 음식에만 초점을 맞추고 그 음식과 관련된 사회적인 분위기와 현상까지 포괄적으로 묶어서 깊이 있게 정리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돈가스의 탄생"이 좋은 예가 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워낙에 방대하고 저자의 아시아 쪽 자료 조사 하나만큼은 확실하기에 생각과는 다르게 건질 만한 자료도 다수 있기는 합니다. 붕어빵의 원조는 1909년 도쿄 아사부의 나니와가 제과점의 도미빵 (다이야끼)이고, 도미빵의 꼬리에 팥을 넣는 것이 좋은지 아닌 것이 좋은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져 1953년 요미우리 신문에서 지상 중계까지 했다는 일화(결론은 꼬리에는 팥을 넣지 말자는 쪽이었다고 합니다. 손가락으로 집어먹기에 좋도록, 또 입가심하기에 좋도록) 등은 흥미로왔습니다. 또한, 소보로빵과 메론빵이 사실 같은 것이며, 메론빵은 1932년 일본 특허청에 실용신안이 등록된 아이디어 상품이었다는 점도 재미있었어요.

엿을 소개하면서 조선에 엿장수가 굉장히 많았었다는 점, 그리고 정조 21년 황해도 황주에서 신착실이라는 사람이 술에 취해 엿장수 박형대의 엿을 빼앗아 먹고, 엿장수가 엿값으로 두 푼을 달라고 하자 엿장수를 땅에 밀어 넘어뜨렸는데, 하필이면 지게의 뾰족한 부분에 넘어지면서 항문에 지게가 꽂혀 사망한 사건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는 점도 기억에 남네요.

또한, 문어는 중국 북쪽 지방에서는 잘 먹지 않았는데, 임진왜란으로 어려움에 처한 조선에 파병 온 이여송을 접대하기 위해 정성껏 문어국을 내어놓았다가 명나라 장수들이 먹지 않아서 낭패를 보았고, 반대로 선조에게 명나라 장수가 "계두"를 바쳐서 선조가 당황했다는 고사도 소개됩니다. (계두는 계수나무속에서 자라는 벌레로, 한나라 역사서인 한서 남월전을 보면 남월의 왕이 중국에 공물을 바치면서 비취 40쌍, 공작새 두 쌍을 보낼 때 계두는 한 그릇만 바칠 정도로 귀한 음식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다양한 음식에 대한 잡학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괜찮을 듯합니다. 저는 제목과 책 소개에서 좀 더 깊이 있는 자료를 접하리라 기대가 컸고, 제 기준으로 이러한 책에 반드시 소개되어야 할 거리 음식 – 닭꼬치, 번데기, 튀김 – 도 빠져 있기에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겠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2011/12/02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 - 맥스 브룩스 / 장성주 : 별점 3점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 - 6점
맥스 브룩스 지음, 장성주 옮김/황금가지

가상의 존재인 좀비에 대해 상세한 설정을 부여한 뒤 좀비가 창궐하였을 때의 대처법을 설명하는 독특한 책.

따지고 보면 대체역사 소설과 비슷한 장르물이긴 하지만 "교본"이라는 형태로 구성하여 현실감을 높이고 독자로 하여금 디테일한 설정에 빠져들게 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정말이지 아이디어의 승리에요. 어렸을 때 좋아했었던 일본 괴수, 애니메이션 대백과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터무니없는 설정을 진짜처럼 포장해서 풀어나가는 점 때문입니다.

실려 있는 내용도 꽤 상세합니다. 좀비에 대한 설명에서 시작하여 무기와 전투 기술, 방어요령, 피난요령, 공격요령, 좀비 천지에서 살아남기에 이어 기록에 남은 좀비 공격 사례라는 가상 역사로 마무리하고 있는데, 모든 내용이 가짜라는걸 알아도 읽고 나면 뿌듯해질 정도로 그럴듯합니다. 거의 전 지구를 포괄하는 가상 역사도 흥미진진하고요.

또 그동안 좀비물의 상식을 깨는 이론도 돋보였습니다. 예를 들면 쇼핑몰이 좀비 방어에는 최악의 장소라든가, 버스는 탈출 수단으로는 젬병이라는 것 등입니다. 전통적인 좀비 영화나 만화의 설정을 전면으로 부정하는 것들인데, 워낙에 합리적으로 설명해 주어서 감탄했습니다.

책을 읽고 나니 혹시 모르니 필수 상비품인 "배척 (빠루)"는 바로 구입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셰티"도 한 자루 챙겨 놔야겠고요. "월아산"을 어떻게 구해 놓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창의 안정성과 일본도의 살상력 겸비)

하지만 내용 대부분을 글로 떼우고 있다는 점에서 최고점을 주기에는 부족합니다. 좀 더 치밀한 도판과 자료 사진으로 도감 형태를 갖추었어야 합니다. 이 정도로는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가이드로는 부족해요. 그 밖에 농사짓는 법이라든가 피난처를 짓는 방법도 조금 더 자세하게 소개되었어야 합니다. 수박 겉핥기 식으로 슬쩍 짚고 넘어가는 수준이라서, 정작 위급한 상황에서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런 소재로 이만큼이나 진지하게 접근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하고, 취미와 실용 (?)을 만족시키는 보기 드문 작품으로 장르물 애호가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 같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좀비물 팬이라면 놓치지 마시길.

이어지는 시리즈로 "북두신권 세상에서 살아남기"라든가 "연쇄살인극에서 살아남기" 등으로 시리즈가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연쇄살인극에서 살아남기"는 직접 써 봐야겠네요!

그런데, 좀비가 왜 이렇게 사랑받는 몬스터가 됐을까요? 제가 어릴 적에는 3대 몬스터 - 드라큘라, 프랑켄슈타인, 늑대인간 - 에 끼지도 못하는, 미이라보다 못한 마이너 몬스터였는데 말이죠(대관절 프랑켄슈타인이 저기 왜 끼어 있는지는 미스터리지만). 80년대 이후 피로 전염되는 AIDS라는 병에 대한 경각심 때문일까요? 어쨌든 80년대 이후, 기존의 귀족적인 스타일에 더하여 핸섬한 게이 혹은 엄친아로 진화한 흡혈귀에 비한다면야 몬스터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뚝심 하나만큼은 높이 사고 싶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