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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2

광장(2025) - 최성은: 별점 2.5점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입니다. "김부장"을 챙겨봐서인지, 넷플릭스 추천으로 뜨길래 보게 되었네요. 

가장 큰 장점은 액션입니다. 남기준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압도적으로 강한 존재인지를 과장 없이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덕분입니다. 특히 초반 PC방에서 벌어지는 난투극과 구준모가 숨어 있던 별장에서의 액션은 현실감 있는 타격감과 묵직한 연출이 인상적입니다. 화려한 기술보다 그야말로 상대를 압도하는 힘과 타격을 중심으로 구성되어서 남기준이라는 캐릭터의 존재감을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단순한 복수극에서 끝나지 않고, 거대한 음모를 결합한 전개와 흑막은 이금손이었다는 반전도 괜찮습니다. 경찰이면서도 돈을 위해 폭력 조직과 결탁한 뒤, 조직을 자신의 손아귀에서 움직이는 핵심인물 차영도 설정도 설득력있게 그려내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구준모가 죽은 이후 이야기의 동력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남기준의 목표는 동생 남기석을 죽인 범인에게 복수하는 것이었는데, 구준모가 제거된 시점에서 그 목적은 사실상 달성되니까요.
이후 이금손과 차영도가 진짜 배후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새로운 복수의 대상이 생기지만, 구준모와 이금손, 차영도의 관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아서 다소 억지스럽습니다. 구준모가 남기석을 죽이라고 지시한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 이금손과 차영도가 그 선택을 어떻게 유도하고 설계했는지는 작품에서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는 탓입니다. 구준모가 두 사람의 계획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어야 합니다.

후반부 액션의 완성도 역시 초반만큼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PC방과 별장에서 보여준 묵직한 실전 액션과 달리, 끝판왕 격인 재일교포 킬러 카네야마와의 대결은 칼부림 중심으로 비현실적이고 이질적이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홍콩 액션 영화를 연상시킬 정도에요. 이어지는 차영도와 이금손과의 대결 역시 두 사람이 애초에 남기준과 대등하게 맞설 상대가 아니기 때문에 긴장감을 끌어내기는 힘들고요. 쓸데없이 잔인한 것도 영 별로였어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액션과 분위기만으로도 볼거리는 충분합니다. 후반부 이야기와 액션이 초반의 완성도를 끝까지 유지하지는 못하지만 킬링 타임용으로는 괜찮습니다.

2026/07/26

비키퍼(2024) - 데이비드 에이어 : 별점 2점

양봉꾼 애덤 클레이는 친절했던 이웃 엘로이즈가 보이스 피싱 조직에게 전재산을 잃고 자살하자 복수에 나섰다. 그는 원래 초법적인 해결사 집단 '비키퍼'의 에이전트였기에,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여 피싱 조직을 분쇄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피싱 조직의 우두머리 데릭 댄포스는 미국 대통령의 아들이었고, 데릭은 어머니의 경호 조직을 최대한 활용하여 숨어버리는데...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 제이슨 스타뎀이 주연을 맡은, 요새는 너무 흔해진 '은퇴한 중노년 전문 요원의 복수극'입니다. 

하지만 다른 유사 작품들과는 확연히 다른 액션을 선보이는게 차이점입니다. 제이슨 스타뎀이 50대 후반이기는 하지만, 중년을 넘어 이제는 노년에 가까운 키아누 리브스, 리암 리슨, 덴젤 워싱턴보다는 훨씬 쌩쌩한 덕분입니다. 

물론 전성기처럼 날아다니는 모습은 없지만 보스턴 나인스타 빌딩에서 FBI SWAT 팀이 지키고 있는 입구를 아무런 장비 없이 홀로 돌파하는 장면, 용병들을 엘리베이터 안으로 몰아넣은 뒤 한꺼번에 처치하는 장면처럼 지형 지물과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는 신선하면서도 시원한 액션을 선보입니다.

빌런인 댄포스가 개발했다는 자금 흐름 추적 알고리즘도 흥미로운 설정입니다. '유산을 상속할 대상이 없는 고인의 자금'을 빼돌린다는 아이디어는 한 편이 범죄 스릴러로 충분히 발전시킬 수 있어 보였습니다. 살짝 지나치기는 아쉬웠어요.

그러나 아무리 액션 중심 영화라 하더라도 이야기의 설득력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애덤 클레이가 복수에 나서는 계기는 서사가 충분하지 않아 공감할 수 없었고, 아무리 비키퍼가 법 위에서 움직이는 초법적 조직이라고 해도 대통령 별장에 암살을 목적으로 침입한 인물을 그대로 방관한다는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미국 대통령 별장에 쳐들어와서 경호원들을 학살하고 대통령 아들까지 죽인 인물을 그냥 놔 둘리가 있겠습니까?

마지막 절정부의 대통령 별장에서의 액션은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미국 대통령 경호 조직이 수수깡에 지나지 않는 탓입니다. 애덤이 아무리 초월적인 존재라 하더라도, 상황이 너무 비현실적이에요. 도가 지나쳤어요.

댄포스의 알고리즘과 그 뒤에 숨은 음모 역시 거창한 설정을 끝까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흐지부지 마무리되는데, 차라리 단순한 보이스피싱 조직의 배후 정도로 그리는게 더 깔끔했을 겁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완성도가 높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아무 생각 없이 1시간 30분 정도를 흘려보내기에는 나쁘지 않습니다. 이런 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한 번쯤 볼 만합니다.

2026/07/18

신입사원 강회장 (2026) : 별점 2점

얼마 전 종영된 최신작으로 재벌 회장 강회장과 신입사원 황준현의 몸이 뒤바뀌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에 살인 음모와 미스터리를 더한 드라마입니다. 티빙으로 감상했습니다. 

"재벌집 막내 아들" 원작가인 산경의 원작을 따르지만, 추리 요소를 크게 강화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강회장이 황준현의 몸에서 깨어난 뒤 회사를 노리는 자식들의 음모와 자신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추적하는게 핵심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강회장의 호적수인 나병모 회장의 딸이자 강회장의 며느리인 나은세가 강재경으로 변장해 병원에 잠입하고 강회장을 죽이려 했다는 진상도 인상적이에요. 동기와 근거가 설득력 있게 제시되는 덕분입니다. 제법 추리적으로도 볼만했어요

원작 대비 바뀐 설정들도 매력적입니다. 특히 황준현의 설정이 좋습니다. 평범한 신입사원이 아니라 유망한 축구 선수였지만 뺑소니 사고로 꿈을 접은 인물이라는 배경은 강회장이 그의 삶을 이해하고 반성하는 과정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니까요. 죽은 줄 알았던 강회장이 살아 돌아오는 반전과 황준현이 원래 몸을 되찾는 해피엔딩도 원작보다 만족스러웠고요.

그러나 사건의 가장 큰 원인이 자식들 교육을 방치하고 황준현을 무시했던 강회장 자신의 잘못인 만큼, 피해자로서 복수를 이어가는 전개는 완전히 공감하기 어려웠습니다. 

결말도 별로입니다. 강재경과 강재성 남매가 충분한 대가를 치른 것처럼 보이지 않고, 황준현과 강방글의 러브 라인이 이루어지는게 급작스러웠던 탓입니다. 마지막 에필로그의 또 다른 몸 바뀜 역시 유치하기만 했습니다. 차라리 없는게 더 좋았습니다.

그리고 "재벌집 막내아들"과 비교하면 황준현(강회장)의 능력이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 점도 약간 아쉬웠어요. 회장 시절 알고 있던 정보를 활용하는건 괜찮았지만, 그 외에는 눈에 띄는 활약이 적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재미있게 볼 수 있었으며, 킬링타임용으로는 충분히 추천할 만합니다. 최소한 원작보다는 훨씬 좋았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26/06/20

케이트 (2021) - 세드릭 니콜라스-트로얀 : 별점 1.5점

어린 시절부터 킬러로 키워진 케이트는 일본 야쿠자 두목 키지마 암살에 실패한 뒤, 치명적인 독을 먹었다. 딱 하루의 생명이 남은 상황에서, 케이트는 자신에게 독을 먹인 사람을 찾아 복수하기 위해 나섰다. 알고보니 이는 키지마의 자리를 노리는 렌지의 음모였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액션 영화입니다. 요새 운동할 때 액션 영화만 찾아 본 탓인지, 알고리즘에 의해 추천작으로 표시되었길래 보게 되었네요.

케이트가 키지마의 행방을 쫓는 초, 중반부에서 펼쳐지는 액션들은 볼 만합니다. 도쿄가 무대이기 때문인지 총기 액션보다는 몸과 몸이 부딪히고, 칼부림이 난무하는 날것 액션이 중심인데 여성 주연 액션물치고는 속도감과 타격감이 괜찮은 편입니다. 타격, 단검, 총기, 자동차 추격전 등 액션의 종류도 다양하고요. 이를 처절하게 펼쳐내는 케이트 역의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 캐스팅도 괜찮습니다. 비교적 큰 체구가 묵직함을 살려주거든요. 덕분에 중반부까지는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아 소녀를 데려다가 킬러로 키운 스승과 소녀 킬러라는 설정, 스승이 결국 제자를 배신했다는 전개, 냉혹한 킬러가 어린 소녀와 우정을 나누며 변한다는 흐름 등 의외성이라고 찾아보기 힘든 지극히 뻔한 설정 투성이인데다가 케이트와 애니의 교감은 진부하고 설득력도 부족합니다. 애니 입장에서 케이트는 처음부터 자신을 위협한 인물입니다. 그런 상대와 한두 시간 함께 있었다고 해서 깊은 감정의 교류가 생긴다?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애니가 케이트에게 동경심 정도를 품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영화가 보여주려는 감정적 유대감을 느끼는 단계까지 나아가기에는 과정이 너무 빈약합니다.

음모의 구조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베릭이 렌지와 손을 잡고 키지마를 제거하려 했다고 해도, 키지마 암살이 실패했다는 이유만으로 렌지가 케이트를 독살할 필요가 있었는지는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베릭 역시 렌지와 손을 잡고 무엇을 얻으려 했는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어린 시절부터 키운 귀한 킬러만 잃은 셈이에요. 만약 베릭이 렌지의 독살 계획을 알았다면 렌지를 제거하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고, 몰랐다면 케이트의 복수 대상이 베릭으로 향하는 것도 애매해집니다. 적어도 베릭이 직접 독살을 지시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이는 복수극에서 가장 중요한 복수의 대상을 불명확하게 만듭니다. 케이트가 렌지를 증오하는건 이해할 수 있지만, 베릭이 최종적으로 단죄해야 할 대상이라는건 설명이 빈약하니까요. 

제일 큰 문제는 절정부입니다. 키지마와 손을 잡고 렌지의 본거지로 쳐들어가는 후반부는 앞서 보여준 장점마저 제대로 이어받지 못합니다. 초중반의 화려하고 거친 액션은 찾아보기 어렵고, 긴장감도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키지마와 렌지의 검술 대결은 뜬금없고, 케이트와 베릭의 일기토 역시 기대에 비해 허무합니다. 특히 케이트에게 총 한 발 맞고 죽어버리는 베릭의 최후는 최악에 가깝습니다. 우디 해럴슨이라는 배우를 기용해 놓고 이렇게 소모한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액션 장면만 놓고 보면 어느 정도 볼거리는 있지만 한 편의 영화로 성립하는 이야기를 갖추지 못한 망작입니다. 굳이 본다면 액션 장면만 모아보는 쪽을 추천드립니다.

2026/06/13

아비무쌍 - 노경찬 / 이현석 : 별점 2점

무협 웹툰인데 초반에는 설정이 신선해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제목 그대로 주인공 노가장이 무림의 영웅이나 천하제일인이 아니라, 세 아이를 먹여 살려야 하는 홀아비 가장으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사별한 아내가 남긴 세 쌍둥이를 키우기 위해 그는 원래 하던 해결사 일을 접고, 안정적인 직장인 천룡회 무사로 취직합니다. 그리고 이후 10년 넘게 문지기로 일하며 아이들을 키운다는 설정이지요. 이 과정에서 추가 보수를 위해 위험한 임무를 맡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노가장은 문파의 원한, 가문의 복수, 천하제일을 향한 야망 같은 동기는 없습니다. 오로지 아이들을 굶기지 않고 무사히 키우는데 주력하지요. 무림의 명성보다 월급과 안정성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요. 이런 생활감 넘치는 설정은 그간 제가 읽었던 무협이라는 장르물에서는 정말이지 처음 봤습니다.

그리고 노가장이 상당한 실력자이면서도 스스로를 하수라고 생각한다는 점도 재미 요소입니다. 그는 자신의 무공을 무림인들에게 비하면 별것 아니라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 만났던 무림인이 무림 5존의 한 명인 관존이었기 때문에 묵사발이 났던 것 뿐이지요. 하지만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노가장은 어떤 임무를 맡던 살아남는걸 최 우선 과제로 삼아 해결사 일을 하며 쌓은 경험과 실전 감각으로 여러 위기를 돌파합니다. 

노가장의 세 쌍둥이 아들과 딸에 대한 이야기가 교차해서 진행되는 부분도 괜찮습니다. 무공을 배우고, 각자의 성향에 맞게 성장하며, 점점 자기 길을 찾아가는 과정은 전형적인 무협지 서사라서 재미가 없을 수 없으니까요. 아들들과 딸의 개성도 뚜렷하고요.

작화도 좋습니다. 그림체도 독특하지만 액션 장면에서 속도감과 무게감이 빼어납니다. 검과 주먹이 부딪치는 장면, 인물의 움직임, 타격의 순간 표현이 시원하며 절묘합니다.

그러나 이런 장점들은 비교적 초, 중반부이며 후반으로 가면 흐려져 버리고 맙니다. 노가장이 무협지 속 절정고수의 반열에 오르며 가장 매력적이며 특별했던 '홀아비 가장의 외벌이 육아 생존기'라는 신선했던 컨셉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다른 뻔한 무협지와 다를게 없어집니다. 

물론 십 여년이 지나, 노가장이 무시받는 수모와 천룡회 내부 암투에 휘말려 부하를 잃은 복수를 위해 스스로의 자리를 만들려는 움직임만큼은 흥미롭습니다. 이 과정에서 무림인을 정리하려는 관존의 음모와도 얽히는데, 이 역시 기존 무협지에서는 보기 힘든 설정이고요.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하려면 다른 쓸데없는 설정은 쳐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신교의 우두머리 천소소가 왜 등장하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행복이를 비롯한 여러 조연도 마찬가지고요. 게다가 비교적 비중이 높았던 천룡회 내부 암투가 순식간에 정리되는 전개도 솔직히 어이가 없었습니다.

핵심인 오문 설정이 지나치게 만화적이라는 문제도 큽니다. 오행의 성질을 따른다는 설정은 그렇다 쳐도, 사람이 불이나 흙처럼 변해 마인이 된다는 표현은 유치했습니다. 노가장이 신존이 되는 과정도 충분히 설득력 있게 그려졌다고 보기는 어렵고요. 사부가 어떻게 기운을 가져갔는지, 노가장의 변화가 어떤 원리로 이루어졌는지 등이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 탓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초반 설정만큼은 분명히 신선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작품 고유의 색깔이 약해지고, 평범한 강자 중심 무협물에 가까워지는 점은 아쉽습니다.

2026/06/06

리스타트 (Boss Level) (2021) - 조 캐너한 : 별점 2점

전직 특수부대원 로이는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정체불명의 암살자들에게 쫓기고, 죽은 뒤 다시 같은 날 아침으로 돌아오는 현상에 직면했다. 전처 젬마가 개발한 장치 때문이라는걸 알아낸 로이는, 젬마를 상관 벤터로부터 구하고 루프와 지구 파멸을 끝내기 위해 노력하는데...

하루가 반복된다는 루프물 영화는 많습니다. 얼마 전에도 "소스 코드"를 보았었지요. 

뻔한 설정이지만 이 영화만의 큰 특징은 있습니다. 반복되는 하루를 끊임없는 액션의 무대로 활용한다는 점입니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도 비슷하지만, 이 영화는 현재 시점을 무대로 복선과 음모는 거의 없이 시종일관 액션으로만 밀어붙인다는게 차이점이에요. 맨손 격투와 총격전은 물론이고, 맨몸 스턴트, 자동차 추격, 검술 액션까지 그야말로 생각할 수 있는 액션은 다  등장합니다. 주인공 로이가 자신을 노리는 암살자들과 악당들을 해치우기 위해 죽어가면서 공략법을 익히고 결국 그들을 극복해 나가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선보이는 프랭크 그릴로의 외모는 그야말로 완벽합니다. 촬영도 화끈하며 적절한 유머와 합도 좋고요.

일종의 게임같은 '공략' 세계관은 전체 전개에서도 일관되게 선보입니다. 루프가 계속되면 세계가 붕괴하기 때문에, 로이는 살아남거나 악당들을 없애는 대신 잠시 다른 선택을 합니다. 오랫동안 떨어져 지냈던 아들과 마지막 하루를 보내기로요. 그런데 로이는 아들과의 대화를 통해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자신이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던 전처 젬마가 그날 아침까지는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로이는 다시 하루를 공략하는데, 이번에는 단순히 적들을 처리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젬마를 최대한 빠르게 구해내야 한다는 조건이 붙거든요. 이렇게 단계별로 공략이 진행되며 단서와 조건이 추가된다는 점에서 원제 "Boss Level"은 그야말로 딱 들어맞습니다.

또 아예 복선과 음모가 없지도 않습니다. 로이가 암살자들에게 쉽게 추격당한 이유가 대표적입니다. 그는 전날 치위생사를 만났는데, 그때 치료받은 이빨에 추적 장치가 부착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대단히 놀라운 반전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액션 중심 영화에서 제법 흥미로운 요소로는 괜찮은 수준입니다. 

하지만 아주 잘 만든 영화라고 하기는 좀 부족합니다. 우선 앞서 액션으로 밀어붙인다고 했는데, 암살자들 개개인과의 대결이 대부분이라서 규모가 많이 작습니다. 루프물답게 반복되는 장면도 많고요. 

또 중반부에서 아들 조와의 관계를 드러내는 부분은 조금 거슬립니다. 영화 전체가 쉴 새 없이 액션을 몰아치다가 갑자기 멈추는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장면이 후반부 선택과 연결되기는 하지만, 화끈하게 달리던 액션 영화로서의 기세를 잡아먹는건 사실이에요.

배우들의 활용도 아쉽습니다. 프랭크 그릴로를 제외한 다른 배우들은 이름값에 비해 크게 인상적이지 않습니다. 특히 멜 깁슨은 악역으로 등장하지만 별다른 카리스마를 보여주지 못합니다. 왕년의 대배우가 이렇게 몰락했나 싶은 안타까운 마음만 들 정도였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설정의 신선함보다는 액션의 물량과 속도로 밀어붙이는 킬링타임용 루프물입니다. 저는 운동할 때 감상했는데 적당했어요.

2026/04/03

하에다마처럼 모시는 것 - 미쓰다 신조 / 신정명 : 별점 3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조 겐야는 편집자 시노, 오가키와 함께 고라 지방 도쿠유 촌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전해지는 네 가지 괴담을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일행이 '하에다마 님' 숭배 신앙이 남아있는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불가해한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네 가지 괴담의 상황과 장소가 일치하는 네 건의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도조 겐야가 나서는데...

미쓰다 신조도조 겐야 시리즈 최신 장편입니다(국내 기준).  
괴담과 본격 미스터리를 결합하는 시리즈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고라 지방에 전해지는 네 개의 괴담이 단순한 배경 설명이나 분위기 조성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벌어지는 네 개의 사건과 정확하게 대응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니까요. 게다가 네 개의 사건은 모두 일종의 밀실 살인 사건이라는 점에서 본격물적인 가치도 높고요. 특히 노조키 렌야 사건과 신관 사건은 아주 인상적입니다. 

노조키 렌야 사건은 멀쩡히 입구가 열려 있는 대숲 신사에서, 어디에도 결박된 흔적이 없는 노조키 렌야가 어째서 굶어 죽었는가라는 기묘한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언뜻 보면 스스로 빠져나오지 않은 이유를 설명할 수 없어 초자연적인 현상처럼 보였지요.
그러나 범인은 낡은 법의를 노조키 렌야에게 입힌 뒤 그 법의에 긴 대나무 장대를 꿰고, 천으로 양손을 결박해 양팔이 벌어진 상태로 몸을 고정해 두었던 겁니다. 그 결과 노조키 렌야는 빽빽한 대숲 사이를 통과할 수 없었습니다. 눈 앞의 출구도 어떻게 해도 걸려서 나갈 수 없었고요. 이는 현장에 남아 있던 대나무 장대와 사당을 부수려 했던 약한 타격 흔적, 대숲 입구에 남은 내려친 자국들로 증명됩니다.
닫힌 방이 아니라 열려 있는 공간을 빠져나갈 수 없는 밀실처럼 만든 점, 현장의 자연물 자체를 트릭의 일부로 끌어들였다는 점, 그리고 괴담과 동일한 '아사'라는 살해 방법을 택한 점 모두가 대단합니다. 별점 5점도 충분할 정도로요.

망루 오두막 전망널에서 가부좌를 틀고 명상하던 신관이 추락사했는데, 호리이 씨가 그 모습을 계속 보고 있었고 사바오도 곧바로 망루를 찾은 탓에 범인이 도망칠 수 있었을 리 없었다는 신관 사건의 트릭도 돋보입니다.
범인은 먼저 신관을 살해한 뒤 망루 안의 옷장 위치를 바꾼 뒤, 벽과 옷장 사이에 시체가 가부좌 상태로 고정되게 끼워 놓았습니다. 이후 사후 경직이 진행된 다음날 아침, 범인은 신관의 옷을 입고 신관인 척 망루로 올라가서 굳어 있는 시체에 다시 옷을 입혀 전망널로 밀어 놓고 사라집니다. 범인이 사라진 뒤 시간이 지나자 시체는 사후 경직이 풀려서 아래로 떨어졌던 겁니다.
전망널이라는 망루의 독특한 구조와 망루 내부의 기물들, 그리고 항상 명상하는 신관을 바라보는 목격자 호리이의 존재를 알리바이 조작에 활용한 멋진 시한장치 트릭입니다. 이 역시 별점 5점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정도에요.

도조 겐야와 소후에 시노의 티격태격, 도조 겐야의 아버지에 대한 언급 등의 요소도 팬으로서는 즐길거리였고 괴담도 미쓰다 신조라는 작가의 이름값에 걸맞게 충분히 섬뜩합니다. "하에다마 님"으로 짐작되는 존재를 노골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은근하게 공포를 끌어내는 솜씨가 일품인 덕분입니다. 괴담을 활용하여 현실의 사람들이 음모를 꾸몄다는 네 번째 괴담의 진상도 괜찮았고요. 

그러나 다른 도조 겐야 시리즈와 비교하면 괴담의 비중이 지나치게 크다는 문제는 있습니다. 500여 페이지 분량 중 무려 120여 페이지가 괴담에만 할애되어 있습니다. 그 탓에 도조 겐야가 마을 안에서 직접 움직이며 활약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주요 용의자 가운데 한 명인 가키누마 도루와 제대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을 정도로요. 

또한 몇몇 사건의 동기는 썩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신관이 오래전 마을의 범죄와 인신공양이라는 과거가 밝혀질까봐 노조키 렌야를 살해했다는건 영 와 닿지 않았습니다. 범죄자의 가족까지 오랫동안 낙인찍는 일본 특유의 정서로는 이해할 수 있는 동기일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인이 이해하기는 무리라 생각되네요. 이보다는 사랑하는 손녀 스즈카제를 탐내고 있었다던가, 보다 직접적인 협박을 받는다는 설정이 나았을 겁니다.
고라 지방 마을의 우두머리(?)인 5인방이 합병을 막기 위해 유리아게 촌에서 생활하는 닛쇼방적 사원을 위협했다는 이야기 역시, 목적과 동기가 다소 모호합니다. 사원 몇 명이 마을에 발길을 끊어봤자, 마을 합병이라는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을 것 같으니까요. 이 역시 보다 직접적인 위협이 필요했을거에요.

스즈카제 양이 다루마 동굴에서 기지를 살해한 사건도 설득력이 약합니다. 스즈카제가 동굴 내부를 완벽히 숙지하고 있었다는게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짧은 시간 안에 동굴 내 도구를 이용해 원거리 살인을 성공했다는건 여러모로 무리라고 생각되거든요. 기지가 공격을 받는 상황에서 무방비하게 있어야 성립한다는 점에서도 말이 안되고요. 작품의 완성도를 해칠 정도는 아니지만, 앞선 두 사건이 워낙 뛰어나서 오히려 이 약점이 더 도드라져 보입니다.

오래전 마을이 상선을 침몰시켜 약탈했고, 어린 여자아이를 인신공양했다는 등의 고라 마을에 얽힌 괴담의 진상도 이전에 읽었던 미쓰다 신조 작품과 별로 다르지 않아서 실망스러웠어요. 게다가 정말로 '하에다마 님' 같은 괴이가 실존한다는 결말은 영 아니었습니다. 괴담이 실존한다는 분위기가 도조 겐야 시리즈의 특징이기도 한데, 한 개 마을이 깡그리 사라진다는건 억지였어요. 

이러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장점이 워낙 분명해서 충분히 읽어볼 만 합니다. 괴담은 섬찟하고, 추리는 현실적이면서도 참신하며, 결정적인 순간에는 독자에게 공정하게 단서를 제공하는 본격 미스터리의 쾌감을 놓치지 않으니까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본격 추리물을 좋아하시는 독자분들, 특히 도조 겐야 시리즈 팬 분들께 적극 추천드립니다.

2026/02/22

이쿠사가미, 전쟁의 신 : 시즌 1 (2025) - 후지이 미치히토 외 : 별점 2점

전쟁 후 PTSD에 걸려 낙향한 무사 사가 슈지로는 극심한 생활고로 딸이 콜레라에 걸려 죽어가지만 약 한 첩 쓰지 못했다. 아내마저 병환이 깊어지자, 사가는 무려 10만엔을 준다는 무사 모집 공고에 응해 교토 텐류지로 향했다. 다량의 총으로 무장한 주최측은, 그 곳에 모인 수백명의 전 무사들에게 상대를 죽이며 도쿄까지 오면 10만엔을 주겠다고 하는데...

넷플릭스를 통해 감상한 시대극 액션 드라마입니다. 메이지 유신 직후를 배경으로 무사 계급을 둘러싼 거대한 음모와 살육 게임을 그리고 있습니다.

특징이라면, 인기있을 만한 설정은 다 가지고 왔다는 점입니다. 이 작품의 중심 설정 ‘고독(고도쿠)’가 대표적이에요. 수백 명의 무사들을 한 자리에 모아 서로 죽고 죽이는 생존 경쟁을 벌이게 하고, 최후의 생존자만을 뽑는다는 건데, 이건 "오징어 게임"과 다를게 없지요. 고도쿠 배후에 재벌 세력과 경시국이 손을 잡은 거대한 흑막이 존재한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참가자들이 저마다 특기와 무기를 가지고 싸운다는건 "닌자인법첩"같은 일본 시대극 액션물 설정을 그대로 따 왔고요. 그 외에도 어디서 본 듯한 설정이 많아서 흥미롭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만화같은 설정을 보신 전쟁이라던가 폐도령 이후 무사 계급의 몰락과 같은 실제 역사, 그리고 오쿠보 도시미치와 카와지 대경시, 4대 재벌 등 실존 인물들을 결합시켜 그럴듯하게 묘사한 것도 괜찮았습니다. 덕분에 고도쿠를 통해 무사 계급을 말살하려 한다는 카와지 대경시의 목적도 설득력있게 다가옵니다.

이런 설정도 재미있지만,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장점은 검술 액션입니다. 실사 시대극으로서는 최상급에 가까운 촬영과 합이 좋은 덕분입니다. 특히 슈지로가 PTSD를 극복하고 총을 든 경비대를 모조리 베어버리며 각성하는 장면은 압권이었어요. 이 순간을 위해 주인공 사가 슈지로에 대한 서사도 초반부터 잘 쌓아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길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은 듭니다. 살인귀 칸지야 부코츠야 일종의 중간 보스쯤 되는 악역이니 그렇다 쳐도, 키구오미 우쿄같은 스쳐지나가는 인물들까지 개별 서사를 풀어낼 필요는 없었습니다. 오쿠보 도시미치와 비서 신페이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고요. 짐짝에 가까운 후타바의 동행이나 이로하의 등장과 과거 사부와의 악연도 이야기의 밀도를 높이기보다는 분산시키는 쪽에 가깝습니다. 사가 슈지로가 어떻게든 난관을 돌파하고 도쿄에 도착할게 뻔한만큼, 이런 이야기는 시간과 분량 낭비에 불과했어요. 이보다는 닌자 쓰게 쿄진의 목적을 좀 더 집중적으로 풀어냈어야 합니다.

검술 액션도 중반 이후에는 힘을 잃습니다. 파워 밸런스가 이상한 탓입니다. 사가 슈지로는 각성 전에도 칸지야 부코츠를 압도했었는데, 시즌 1의 마지막 화에서는 슈지로가 압도적으로 이기지 못하고 고전한다는건 납득하기 어려워요. 시원하거나 통쾌한 맛도 없고요.

또한 무사 계급을 이 기회에 몰살시키겠다는 카와지 대경시의 계획도 조금만 생각해보면 비현실적입니다. 모든 무사들이 고도쿠에 참가한다는 보장이 없으니까요. 오히려 칸지야 부코츠의 살인 행각을 사실상 방치하면서 민중에게 혼란만 가중시키는 것에 불과해 어설프기 짝이 없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이 작품만의 독특한 무언가는 부족하지만 볼거리가 없지는 않습니다. 킬링타임용으로는 적절합니다. 

2026/01/16

더럽혀진 성지 순례에 대하여 - 세스지 / 전선영 : 별점 2점

영화까지 발표되었던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의 작가 세스지의 신작입니다.

전작은 여러 형식의 기록들을 이어붙인 모큐멘터리 형식으로 괴이 현상의 실감을 높였는데, 이번에는 전형적인 소설의 형식을 따릅니다. 때문에 형식은 유사하지만 별로 실감나지는 않았어요. 여러 기록들도 작중에서는 모두 심령 현상이 일어난 해당 장소와 관련된 괴담을 '날조'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기도 하고요.

괴이한 심령 현상들도 복수라고 볼 수 있는, 일종의 '윤회'라는 식으로 풀어가는데 깔끔한 느낌을 주지는 못합니다. 등장인물들의 개별 서사도 이야기에 충분히 녹아들지 않고, 주어진 떡밥들 역시 모두 깔끔하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여러모로 작가의 욕심이 지나쳐 보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섬찟한 부분도 있지만, 여러모로 전작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상세한 괴담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습니다.

변태 오두막

유튜버 이케다와 팬북을 출간을 진행 중이던 고바야시는 재생 횟수가 많았던 동영상에 그럴싸한 괴담을 날조해서 꾸며 넣기로 했다. 출판사가 혹하게 만들이 위해서였다. 첫 번째 대상은 '변태 오두막' 촬영 영상으로, 산 속의 이른바 '변태 오두막'은 누군가 도촬한 듯한 사진이 널려있는 기묘한 곳이었다.
날조에도 리얼리티가 필요하다는 고바야시의 주장으로, 이케다는 '변태 오두막'처럼 '인형'을 버린 폐가를 취재했던 유튜버와의 인터뷰를, 고바야시는 '변태 오두막' 속에서 발견된 사진에 대한 추가 취재를 진행하는데..

괴담 내용은 상당히 흥미진진합니다. 변태 오두막은 누군가를 저주하려는 사람들이 저주의 대상 사진을 집어 넣는 곳이었습니다. 유키에는 불륜 상대의 아내 료코가 이혼해 주지 않아서 그녀를 저주하려고 오두막에 사진을 집어 넣었고, 이후 료코는 자살했습니다. 자살 후 유키에의 딸 유카에게 료코가 윤회하여 빙의해 버렸기 때문이지요. 료코 사진이 '정화' 의식 때에는 부풀어 올라 있었다는 묘사는 확실히 섬찟했고요.

그러나 등장인물들이 찾아낸 정보라고 설명되기 때문에, 현실감이 부족해서 아쉽습니다. 인터뷰, 신문 기사 등을 통해 드러내는건 전작과 비슷했지만 전작보다는 더 소설 느낌이 강했던 탓입니다.

무엇보다도 마지막 진상을 유키에의 독백으로 마무리한건 문제입니다. 유카가 마지막에 말한건 맥락 상 "용서 못해"일텐데, 이를 표현하지 않은 이유도 모르겠네요. 이 진상은 맥락적으로도 이상해요. 변태 오두막의 저주가 통해 료코가 죽었다면, 료코의 영혼 역시 저주로 죽는게 맞지 않을까요?

유키에의 독백말고 그냥 그녀가 딸을 방치하여 죽였고, 이후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는 후일담 기사 정도로 마무리하는게 좋았을 겁니다.

천국 병원

유령을 볼 수 있다는 괴담 작가 호조가 '천국 병원'에 대한 괴담을 찾아냈다. 폐암으로 연명 치료 중이던 할머니가 그만 편해지기를 바랬다는 한 소설가의 고교 시절 추억담으로, 이후 소설가는 자살했다...

앞부분 소설가의 회고는 괴담이라고 보기 어려운 담담한 이야기로 실망스럽지만, 뒤이은 청년들이 병원에서 벌인 담력 시험 체험기는 오싹합니다. 천국 병원의 막혀있던 병동에서 '괴이'를 마주쳤다가 쫓기는 과정의 서스펜스, 그리고 일행을 쫓던 머리가 커지던 괴이가 들고 있던 친구 휴대전화 번호로 아직도 전화가 걸려 온다는 후일담까지 완벽했던 덕분입니다.
마지막에 소설가의 회고를 틀어서 진상, 즉 소설가는 할머니가 미워했던 양녀였고, 소설가는 사신과 거래하여 할머니를 죽게 만들었다는 진상도 재미있었습니다.

아울러 병원이 '제로 자기장'에 위치해서 괴현상이 많이 발생한다는 설명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합리적이거나 설득력이 높지는 않지만, 단순 괴담에 그치지 않으려는 노력은 높이 평가할 만 하니까요.

그러나 소설가가 할머니를 저주로 죽게 만든게 그리 나쁜 짓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건 문제입니다. 할머니는 나쁜 사람으로 그려진 탓에, 그냥 보면 정의구현으로 보이거든요. 그래서 소설가가 저주의 역풍을 맞은 듯한 현실은 별로 와 닿지 않네요.

어리석은 세 사람

등장인물들의 과거 - 이케다는 과거에 호감을 품었던 유코를 저주로 죽게 만들어서 유령을 쫓는 유튜버를 하게 되었다, 호조가 유령을 볼 수 있어서 중학교 때 왕따를 당하다가 교생을 자살하게 만들었다 등 -가 펼쳐집니다. 책 전체로 보면 징검다리 역할이라고 할 수 있어요. 뒤에 이 과거가 중요하게 작용하게 되거든요.

하지만 그냥 이 부분만 놓고 보면 딱히 점수를 줄 부분이 없는, 지나가는 이야기입니다.

윤회 러브 호텔

러브 호텔에 그려진 괴상한 벽화와 여러 소문에 대해 논의하는게 대부분인데, 대체로 굉장히 합리적으로 설명하며 마무리하는게 인상적입니다.

그런데 뒤에 이어지는, 스토커 피해로 정신착란을 일으켜 죽은 여성 이야기는 어떻게 이어지는건지 잘 모르겠네요. 이 여성은 순수한 피해자에 불과한데, 스스로 스토커 게이이치에게 뭔가 잘못했다고 여기는 묘사는 불쾌하기까지 했습니다. 뒤로 가면 갈 수록 이야기가 이상해지는 느낌이에요.

불확실한 괴이

앞서 날조를 위해 만들었던 이야기들 모두 고바야시의 음모였다는게 드러납니다. 유령을 믿지 않는 이케다가 유령에 홀리게 만드는게 목적이었지요. 이케다에게 뭔가 괴이 현상이 일어나지 않으면 책을 낼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세사람"처럼 각자의 사정과 과거가 펼쳐지는 징검다리 이야기입니다.

한낱 패밀리 레스토랑

이케다에게 달력 일정에 유코의 기일이 기입되었고, 기분 나쁜 장난 전화가 걸려왔고, 움직일리 없는 유튜브 동영상 속에 괴이한 여성의 움직임이 나타났고, 자주 보던 버튜버의 화면이 기이하게 바뀌는 등의 괴이 현상이 일어났다...

이케다의 괴이 체험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앞서 선택되었던 괴담들 모두가 일종의 '윤회'를 다룬, 괴이가 다시 태어난다는 괴담이었다는게 설명되기 때문에, 책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부분이지요.

한낱 옛날 이야기

세 명 모두 누군가를 죽였었다, 그리고 죽였던 여자들이 유령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그들은 무엇을 얻었는가?

유령에 홀렸던 이케다가 신관인 호조 아버지의 도움으로 벗어나고, 책은 출간이 결정된다는 결말입니다. 앞서 그들이 각자 보았던 괴이들은 각자가 죽였던 피해자들이었다는게 밝혀지고요.

윤회에 관련된 로쿠부 살해 괴담을 이방인의 피가 필요했다로 연결하는 아이디어만큼은 참신했는데 회수가 안 된 떡밥이 너무 많고 - 이케다는 유코를 죽이지 않았는데 무엇에 홀린건가? 호조의 교생 선생은 어떻게 죽었는가? 윤회는 모든 저주의 대상에 해당하는가? 등 -, 등장인물들의 일이 모두 잘 풀린다는 결말은 허무합니다. 최소한 고바야시는 이케다를 괴이에 홀리게 만들려는 악의가 있었던게 분명하니, 이 작자만큼은 벌을 받으면 했는데 말이지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2026/01/04

루드비히, 퍼즐로 푸는 진실 (2024) : 별점 4.5점

유명 퍼즐작가로 필명이 '루드비히'인 존 테일러에게 형수이자 소꼽친구 루시로부터 경찰인 쌍둥이 형 제임스가 실종되었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여러 정황은 제임스가 모종의 이유로 스스로 몸을 감추었다는걸 알려주었다. 루시는 존에게 제임스인척 경찰서로 출근해서 존 실종에 대한 단서를 찾아달라고 부탁했고, 출근한 존 앞에 여러 불가능 범죄가 잇달아 펼쳐지는데....

영국 BBC에서 제작한 총 6화 구성의 추리 드라마 첫 번째 시즌입니다. 

가장 큰 매력은 독특한 설정입니다. 퍼즐 천재인 '루드비히' 존을 주인공 탐정역으로, 범죄 속 트릭들을 퍼즐의 일종처럼 선보이거든요. 존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하나의 ‘퍼즐’로 인식하며 본격적으로 해결에 나서고요. 마술사 탐정까지는 봤었는데, 퍼즐 전문가 탐정은 처음 보네요.

등장인물들도 매력적입니다. 퍼즐 제작에만 몰두하며 사회성과 현실 감각이 부족한 존이 갑작스럽게 경찰 역할을 맡아 좌충우돌하는 모습이 코믹하면서도 묘하게 현실감 있게 그려집니다. 형수 루시와 조카 헨리도 제임스 실종이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요. 그러고보니 존과 제임스 형제에 아들 이름은 헨리라니, 가족 자체가 영국적이군요. 
카터를 비롯한 경찰 동료들, 다른 등장인물들도 진지한 상황 속에서 영국식 유머를 자연스럽게 섞어내어 극을 재미있게 만들어 줍니다. 가족과 동료애가 끝까지 이어지는 것도 요사이 보기드문 미덕이라 할 수 있고요.

추리적으로도 빼어납니다. 1화에서는 여러 용의자의 알리바이를 교차 분석해 논리적으로 범인일 수밖에 없는 인물을 드러냅니다. 시청자에게 모든 정보를 공유하지 않아서 추리에 직접 참여하기는 어렵지만, 퍼즐 전문가의 해법으로는 충분히 설득력 있게 느껴집니다.

2화에서는 일종의 ‘숨은 그림 찾기’ 퍼즐 트릭이 사용됩니다. 존은 사진을 통해 벽지가 미세하게 이동한 점을 알아채고, 벽지 뒤 벽을 뚫어 숨겨진 시체를 찾아낸 뒤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지요. 피해자 사기꾼에게 사기당한 일행들이 단체로 범행을 저지르고 은폐했던건데, 앞서 등장한 여러가지 단서들로 설득력있게 설명됩니다.

3화는 두 개의 전혀 무관해 보이는 사건이 하나로 연결되는 ‘병렬 퍼즐’이 등장합니다. 관광 가이드 살인은 갑작스럽게 행해진 것으로 추리하고, 그 이유를 관광 코스를 직접 도는 방법으로 발품을 팔아 증명해내는데 수사와 진상 모두 깔끔하게 이어집니다.

4화는 체스말을 움직이는 방식으로 진범은 장치 트릭을 활용한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다섯 명의 동료들 작업 위치가 순차적으로 바뀌도록 유도해서, 피해자가 원했던 위치에 가도록 만든 뒤 장치를 통해 추락사하게 만든거지요. 존은 이를 '역행 제스' 퍼즐로 풀어냅니다. 이 퍼즐 자체가 루드비히' 존이 처음 만들었다고 소개되는데, 현재의 체스판 상태를 보고 이전 수를 맞추는 퍼즐이에요. 즉, 이전 수를 맞춰가면서 최초에 수를 둔 사람을 알아내 범인을 밝혀냅니다. 
퍼즐을 활용한 추리도 깔끔하지만, 피해자를 발전기가 있는 위치로 이동시킨 뒤 쇼트가 나가도록 배선을 망치고, 발전기를 가동하면 피해자가 감전되어 추락사하게 만든 장치 트릭도 합리적입니다. 다른 동료들이 모두 범인이 원하는 흐름대로 움직였던 것도 이전부터 자주 그래왔다는 설정이라 설득력있고요.
마지막에 발전기에 물을 뿌려 놓은 탓에 범인의 DNA가 묻은 물통을 확보했지만, 범인이 “자기는 1층에서 버렸다”고 주장하자 5층 현장에서만 쓰레기 수거장 안으로 투입 가능하다는 점을 추리쇼처럼 밝혀내는 장면도 볼만합니다.
한마디로 추리적으로는 나무랄 데 없는 에피소드입니다.

5화는 '밀실 살인' 트릭이 등장하는데, 꽤 그럴듯합니다. 주말 내내 잠겨있던 교장실에서 교장이 살해된채 발견되는 사건인데, 존은 범인이 밀실 안에 계속 있었다!는 대담한 추리를 내 놓습니다. 이를 발견하는 단서가 교장실 쓰레기통에 있던 '변색되지 않은 사과 조각'이라는 디테일도 인상적입니다. 누군가 교장실에 최근까지 있었다는 증거인데, 영상물에 잘 어울리는 디테일이었습니다. 존의 학창 시절 과거, 그리고 노인이라도 쓸모없는게 아니라는 메시지도 좋았고요.

6화는 루시의 살인 누명을 벗기고 진범을 잡는 이야기인데, '루시가 집에서 가져간 칼로 사망한 피해자'라는 결정적 증거를 뒤집는 추리가 아주 인상적이에요. 범인이 막 피해자 폴라를 칼로 찔렀을 때 루시가 자기 칼을 들고 그 집에 들어섰습니다. 범인은 입구에서 보이지 않는 식탁 뒤로 숨었고, 루시가 쓰러진 폴라를 보고 자기 칼을 내려 놓은 뒤 그녀에게 다가가자 범인은 루시에게 보이지 않는 사각으로 빠져나가면서 칼을 바꿔치기 했던 겁니다.
정통 본격물로 보아도 무방하다 싶을 멋진 트릭이며, 증거도 확실하게 제시됩니다. 범인은 바꿔치기한 루시의 칼을 폴라 부엌 칼꽂이에 꽂아두었는데, 이 칼에서 루시나 존의 지문이 나오면 바꿔치기했다는 증거가 되니까요.

이러한 각각의 사건들과 함께 제임스 실종 사건에 대한 조사와 추리도 계속 이어집니다. 결국 존은 제임스가 남긴, 누구나 들으면 스스로 떠났다고 생각할 메시지에서 암호 해독 키를 찾아내어 암호를 풀어내어 단서를 확보하게 됩니다. 그리고 정체가 드러났지만 능력을 인정받아 경찰의 고문역으로 일하며 형을 계속 추적할 존의 모습으로 총 6화의 시즌 1은 마무리 됩니다. 

1화와 2화, 3화 사건은 경찰 수사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을 듯 싶고, 경찰이 너무 무능하게 그려진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제임스와 폴라, 싱클레어 등이 관련된 진짜 음모도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고요. 제임스가 암호로 창고 위치를 남긴 이유와 사라진 이유를 창고에 남기지 않은 이유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재미와 추리 모두 빼어난 좋은 드라마였습니다. '루드비히'라는 주인공 필명에 어울리는, 베토벤 음악의 적절한 활용과 촬영도 좋고요. 시즌 2가 빨리 나오면 좋겠습니다. 제 별점은 4.5점입니다.

2025/12/26

자백의 대가 1~12 (2025) - 이정효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근 꽤 인기를 끈 넷플릭스 드라마입니다.
남편 이기대 살인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구속된 안윤수에게, 유명한 살인마 모윤이 “내가 대신 죄를 뒤집어쓸 테니 부탁 하나를 들어 달라”는 거래를 제안하는 초반부만큼은 확실히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안윤수가 돌봐야 할 어린 딸이 있는 상황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점에서 설득력도 높고요.
남편을 죽이지 않았지만 모윤과의 거래 조건으로 풀려난 대신 진짜 살인을 저질러야 하는 딜레마에 처한 안윤수의 모습도 흥미롭습니다. 진짜 이기대 살인범에 대한 조사, 수상한 인물의 등장, 모윤과의 밀땅 등 이후 전개도 재미있어요. 

범죄물답게 추리적인 요소도 가미되어 있는데, 이 중 가장 눈길을 끈 건 진범이 최수연이라는걸 증명하는 단서입니다. 이기대가 남긴 판화에 찍힌 최수연의 지문이지요. 이는 판화가인 이기대라는 직업과 자연스럽게 맞물리면서도, 원판과 유일한 프린트를 진영인·최수연이 훼손했지만 테스트 프린트가 남아 있었다는 반전까지 깔끔하게 이어집니다.

김고은의 연기도 돋보입니다. 화장기 없는 얼굴과 짧게 깎은 머리로 복수심에 사로잡힌 서늘한 악녀를 설득력 있게 그려 냈습니다. 전도연의 연기도 안정적이에요. 50세가 넘었는데도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동안도 놀랍고요. 그리고 존댓말을 쓰는 싸이코패스 살인마 커플인 진영인·최수연의 연기도 섬찟합니다. 

하지만 범죄극으로서의 치밀함은 크게 부족합니다. 우선 진영인·최수연 부부가 안윤수 남편 이기대를 살해한 후, 범행 은폐가 성공해 안윤수가 죄를 뒤집어쓰는 과정이 지나치게 대충입니다. 계획적인 살인이 아니었는데도 이렇게 잘 풀렸다는게 잘 납득이 되지 않아요.

이후 모윤이 지시한 고세훈 사건은 더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안윤수는 살해한 척 사진만 찍었지만 이후 진영인이 실제로 고세훈을 살해한 것이 진상인데, 왜 굳이 죽였는지 이유가 불명확합니다. 고세훈이 살아 있다면 모윤이 거래를 철회하고, 다시 안윤수가 이기대를 죽인 진범으로 재판받게 될 겁니다. 이미 백동훈 검사도 모윤과 안윤수의 거래를 눈치채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즉, 어차피 안윤수는 이기대 살인범으로 구속될테니 진영인·최수연은 고세훈을 죽이는 위험을 무릅쓸 까닭이 전혀 없습니다. 고세훈을 죽인 누명까지 안윤수에게 뒤집어 씌우는건 아무런 의미가 없잖아요?

이야기 전개와 설정도 억지 투성이입니다. 모윤 주변에 사건 관련 인물들이 모이는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하필 모윤(강소해)와 같은 감방에 동생 자살의 원인을 제공했던 P양이 함께 수감되어 있고, 또 하필 P양의 남자친구가 고세훈의 지인으로 고세훈 살해 당시 CCTV 동영상 데이터를 보관하고 있다는건 비현실적입니다.
피해자 이기대의 통화 목록에서 진영인과의 연결고리를 검찰과 경찰이 찾아내지 못하고, 안윤수가 전자발찌 훼손 후 장기간 도주하는데 이를 허용하며, 모윤은 병원에서 이탈했다가 칼에 찔려 죽을 뻔 했고 나중에는 탈옥까지 저지르지만 이런걸 미연에 막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검찰과 경찰을 아무리 우습게 봤어도 그렇지, 이건 선을 넘었어요.

그 외에도 납득이 되지 않는 설정은 많습니다. 진영인이 사건을 은폐하려고 모윤의 변호를 자처했다는 설정처럼요. 모윤이 안윤수 범행을 대신 자백한 뒤 기존 변호사가 변호를 포기했기 때문에 변호사 자격을 얻게 되었는데, 이는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 애초에 변호를 맡지 못했을 때는 어떻게 수습할 생각이었는지 의문입니다. 안윤수 딸의 잦은 유괴, 모윤의 기이할 정도로 충실한 조력자 네트워크, 안윤수와 진영인이 만나던 순간의 미술관 CCTV를 진영인이 지웠다는 설명들도 개연성을 깎아 먹는 요소들이고요.
모윤(강소해)의 동기인 성폭행에 따른 동생 자살은 이제는 식상하다는 표현도 부족할 정도로 뻔하며, 범인 진영인의 자백 비슷한 행각으로 마무리 되는 결말도 유치했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문제들은, 본래라면 변호사가 등장하는 드라마의 에피소드 한두 편 분량으로 정리될 이야기를 12화로 길게 늘렸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불필요한 음모와 억지 설정이 과하게 붙고 말았어요. 모윤이 이기대를 죽였다고 자백한 시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해서, 백동훈 검사가 둘의 거래를 쫓고 안윤수는 모윤에게 압박받으면서도 남편 살인범을 찾아내려 노력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갔다면 훨씬 좋았을겁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인 백동훈 검사와 장정구 변호사의 연기는 별로입니다. 백동훈 검사는 '안윤수가 진범이 아닐 수도 있다'는 딜레마 표현을 실패했고, 장정구는 반대로 '안윤수가 진범일 수 있다'는 딜레마를 그려내지 못했거든요. 백동훈 검사는 그냥 항상 화가 난 표정으로만, 그리고 장정구 변호사는 소박하지만 한없이 선한 인물로만 등장하는 탓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지금보다 훨씬 짧은 분량으로 압축되었다면 모를까, 흥미로운 설정에만 기댈 뿐 범죄 스릴러로서의 완성도는 부족합니다. 추천할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덧붙이자면, "자백의 대가"라는 제목만 봤을 때에는 티에리 크루벨리에의 논픽션을 생각하고 그냥 자백을 잘 끌어내는 사람이 주인공인줄 알았는데 좀 의외였습니다. 이런 경우 "자백의 댓가"라고 표기하는게 맞을는 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2025/11/01

백 인 액션 (2025) - 세스 고든 : 별점 1.5점

넷플릭스 제작 액션 코미디 영화입니다. 전직 비밀 요원 부부가 아이들을 낳고 평범한 삶을 살다가, 정체가 들통나면서 다시 거대한 음모에 휘말린다는 이야기입니다.

초반 비행기 액션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잘 설계되어 있고, 비행기 내에서의 사투와 추락, 이후 탈출까지의 과정이 설득력있게 묘사된 덕분입니다. 정체가 들통난 가족의 집을 습격한 악당들과의 자동차 추격씬도 볼만합니다. 변변한 무기가 없던 부부가 머리를 짜내 악당들을 상대하는 장면이 펼쳐지기 때문으로, 그 중에서도 멘토스를 넣은 콜라를 악당들 차로 던져넣어서 사고를 유도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에요.
사춘기 딸과 부모가 펼치는 티키타카도 재미있고, 왕년의 명배우 글렌 클로즈가 노익장을 과시하며 등장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고요. 전 동료 척이 흑막이라는 반전도 잘 짜여진 편입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볼 때에는 망작에 보다 가깝습니다. 우선, 영화는 전직 요원이 신분을 숨기고 살다 복귀한다는 진부하고 수없이 반복된 구조를 답습합니다. 새로운 점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워요. 사춘기 딸과의 갈등도 "트루 라이즈"의 복사판일 뿐입니다.

그나마도 가족이 영국으로 향한 이후는 각본과 액션 모두 엉망이 되어 버립니다. 척이 사이버 키를 손에 넣고도 가족을 죽이지 않는 상황부터 납득이 어렵습니다. 이미 목적을 달성했다면, 후환을 없애는게 당연합니다. 구태여 부부를 살려두고 아이들을 납치할 이유가 없어요. 척의 정체가 드러나서 MI6 요원 배런이 같은 편임을 알고난 뒤에도, 배런에게 연락하여 같이 행동하지 않을 이유 역시 없고요.
액션의 밀도 역시 한없이 떨어집니다. 총이 있는데도 맨몸으로 싸우는 장면이 반복되는 탓이 큽니다. 맨몸 액션도 최근의 실전 액션 영화들에 비하면 타격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요. 

한 마디로, 중반 이후는 모든게 비논리적인 망작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부부의 정체가 드러나기 전까지는 그런대로 버틸 만하지만, 이후는 도저히 점수를 줄 부분이 없습니다. 후속편을 암시하며 끝나지만 기대감은 전무합니다. 추천하기도 어렵네요.

2025/08/30

아르테미스 - 앤디 위어 / 남명성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재즈 바샤라는 월면 도시 아르테미스 빈민가에서 밀수까지 행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으던 중, 거래상대 트론으로부터 거액을 줄테니 암석 수확기를 고장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트론이 알루미늄 공장을 손에 넣기 위함이었다. 거액에 넘어간 재즈는 여러가지 장비를 준비해 수확기 파괴에 나섰지만 들통나서 계획은 실패했다. 죽을 뻔한 위기도 넘기고 겨우 아르테미스로 돌아온 재즈는 트론이 살해당했고, 자신도 표적이라는걸 알게 되었다. 살아남기 위해 조사에 나선 재즈는 ZAFO라는 이름의 혁신적 광섬유 생산을 노린 음모가 배후에 있다는걸 밝혀내는데...

"마션"으로 유명한 앤디 위어가 2017년에 발표한 장편 SF 소설입니다. 가장 큰 장점은 과학적인 이론에 기반을 둔 치밀한 설정입니다. 월면 도시 설정이야 새로울 것도 없지만, '아르테미스는 기압이 지구의 20%라 순수산소를 사용하고, 물은 61도에서 끓어서 커피가 맛이 없다, 경찰과 병원이 없고 보안부가 범죄자를 직접 처벌하며 심각한 범죄에는 추방을 적용한다, 법과 도덕 기준은 느슨하고, 낮은 중력 덕분에 관광객들이 색다른 경험을 위해 매춘을 찾는 경우도 있다. 산소는 알루미늄 제련 과정에서 남아돌아서 알루미늄 제련 공장은 이를 공급하는 대가로 전기료를 면제받는 계약을 맺고 있다, 화재는 가장 위험한 사고로 꼽히며, 모든 시설이 이를 피하기 위해 설계되어 있다...' 처럼 바탕이 되는 세세한 세계관 묘사는 실로 대단한 수준입니다.

이 설정들은 사건 전개에도 적극 활용됩니다. '고가의 소재 ZAFO는 중력이 낮은 곳에서만 만들 수 있다, 아르테미스의 통화인 슬러그는 규제를 받지 않고 추적도 불가능하다'는게 핵심이거든요. 즉, 마피아는 슬러그를 이용해 돈 세탁을 하려고 별로 이익도 나지 않는 알루미늄 공장을 월면에서 운영하고 있었는데, 트론은 ZAFO 생산을 위해 원료가 되는 유리, 규석을 만들 수 있는 이 공장이 필요해졌습니다. 그래서 수확기 파괴를 지시한 것이지요. 수확기가 파괴되어 공장 가동이 멈추면, 공장과 아르테미스 간 산소와 전기를 교환하는 계약이 끝날테고, 그 때 자신이 몰래 확보한 산소를 공급해서 그 자리를 차지할 속셈이었습니다.
이렇게 트론이 마피아 소유인걸 알면서도 알루미늄 회사를 노린 이유를 재즈가 추적하여 진상을 밝히는 과정은 작가의 전작과 다르게 잘 짜여진 범죄 스릴러 느낌도 전해주는데, 설득력 높은 이유 덕분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용광로 폭발로 대량의 산소와 메탄이 반응해 클로로폼이 생성 및 아르테미스로 유입되어 주민들이 기절하는 위기도 과학적 설정을 이야기에 잘 녹여 놓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르테미스에는 차량이 없어 큰 사고는 없었고, 낮은 중력 덕분에 갑자기 쓰러져도 부상자가 적었다는 결과도 월면 도시 설정을 잘 활용한 것이고요. 

작가 특유의 모험물적인 분위기도 잘 살아 있습니다. 재즈가 수확기 파괴에 나섰다가 들통나서 실패한 뒤 길드로부터 도주해 다시 아르테미스에 잠입하는 과정, 범죄 조직의 추격을 피해 도주하면서도 진상을 알아내는 과정, 결국 도시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공기를 순환시키려는 과정이 속도감 있고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이 과정이 여러가지 과학적인 설정과 함께라는 점도 큰 장점이에요.  

하지만 이야기는 허술한 부분이 많습니다. 우선, 공장 용광로를 파괴한 후 트론의 딸 레네가 공장을 차지하게 만든다는 마지막 계획은 무리가 있어요. ZAFO가 그렇게 막대한 돈을 벌어들일 신소재라면, 전기를 공짜로 공급받지 않아도 공장을 유지하는게 당연히 유리하니까요. 마피아 조직이 선선히 공장을 넘겨주고 손을 뗄 이유가 없습니다. 거대한 폭발 후 공장이 멀쩡할 가능성도 낮고요.
용광로 옆의 대량의 산소와 메탄이 있다는걸 미리 알고도 무시하는 전개, 재즈가 아버지 작업장을 날려버린 일을 속죄하기 위해 돈을 벌었다는 결말도 별로 와 닿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결말은 정말 영 아니었어요. 재즈가 평범한 밀수꾼이아니라 실은 아르테미스의 밀수품을 전부 관리하는 우두머리였다는 건데 어처구니가 없었거든요. 한 도시 밀수 조직의 우두머리가 돈 몇 푼 벌려고 아둥바둥한다는 앞 부분 설정은 대관절 뭔지 모르겠어요. 경쟁자를 어떻게 제거했는지도 설명이 없고요. 밀수품을 잘 관리하겠다는걸 약속하여 행정관과 거래해 추방을 면한다는 것 역시 현실성이 없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묘사와 모험적인 전개 덕분에 읽는 재미는 충분하지만, 완성도는 전작에 비해 떨어집니다. 심심할 때 가볍게 읽기에는 무난하지만, 작가의 다른 작품만큼은 아닙니다.

2025/08/24

스펜서 컨피덴셜 (2020) - 피터 버그 : 별점 1점

경찰 스펜서는 부패한 상관 보일런을 폭행했다가 5년 동안 수감되고 말았다. 스펜서의 출소 직후 보일런은 누군가에게 살해당했고, 선량한 경찰 테렌스가 누명을 썼다는걸 알게 된 스펜서는 룸메이트 호크와 함께 잔상 조사에 나섰다. 그리고 부패한 경찰들이 범죄 조직과 함께 대량의 마약을 유통한 자금으로 카지노 '원더랜드'를 개장하려는 음모를 꾸민다는걸 알아내는데...

로버트 B. 파커가 창조한 보스턴 사립탐정 ‘스펜서’ 시리즈 중 하나인 에이스 앳킨스(로버트 B.파커 사후 원작을 이어서 쓰고 있는 작가)의 "원더랜드"를 원작으로 하는 넷플릭스 장편 범죄 스릴러 영화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한 액션물로 범죄 스릴러, 액션, 버디 코미디의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으나, 어느 쪽에서도 두드러지 못합니다.

특히 기대했던 범죄 스릴러, 수사물로는 최악에 가깝습니다. 일단,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수사는 전개상 거의 의미를 가지지 못합니다. 결정적인 단서들은 스펜서가 찾아낸 것이 아니라 주변 인물들이 우연히 제공해 주니까요. 예를 들어,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되는 도청 파일을 피해자 테렌스의 아내가 스펜서에게 직접 전해주는 식으로요.
스펜서의 옛 파트너 드리스콜이 악당이라는 사실도 너무 쉽게 밝혀집니다. 초반 살해 현장에서 발견된 이쑤시개 조각이라는 단서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추측이 가능한 수준이라 긴장감 있는 반전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부패한 옛 파트너, 마약 조직, 조직 내부의 은폐 구조 등 설정들도 지나치게 전형적이고요.

전개 또한 뻔하고 치밀함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중간 보스급인 벤트우드에게 쳐들어가서 물고문을 통해 마약 운송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는게 대표적입니다. 이럴 거라면 은밀한 수사 따위는 필요하지도 않았지요. 게다가 정보를 털어놓았다면 악당들도 운송 시간을 바꾸는건 당연한데, 예정대로 운송하다가 마약 트럭을 스펜서에게 탈취당하는건 대체 이게 뭔가 싶더군요.

스펜서 캐릭터도 원작 붕괴 수준입니다. 원작에서는 문학에 조예가 깊어서 시니컬한 말투, 심리 묘사 측면에서 복잡한 면을 보여주는데, 영화에서는 그냥 말빨(?)좋은 전형적인 마초 헐리우드 경찰, 형사 캐릭터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액션에서라도 화끈했어야 했는데, 작중 대부분 장면에서는 적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하는 장면만 반복될 뿐입니다. 이럴거라면 권투에 일가견이 있다는 설정은 왜 덧붙였는지 모르겠어요. 마크 월버그도 그리 잘 어울리는 캐스팅이 아니고요.

액션은 다른 부분에서도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격투 장면들 모두 속도감이나 위력이 느껴지지 않는 탓에 맨손 액션의 쾌감을 기대하기 어려운 탓입니다. 호크가 덩치를 활용해 마지막에 잠깐 활약하긴 하지만, 이 역시 일방적인 구타에 가까워 액션적 재미는 떨어집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야기의 절정부입니다. 부패 경찰과 범죄 조직이 결탁한 악의 무리와 대단한 결전을 벌여야 할텐데, 스펜서가 트럭을 몰고 악당 본거지에 돌진한 뒤 호크가 몇 명을 때려눕히는 걸로 결전은 대체로 마무리됩니다. 스펜서와 드리스콜의 1:1 맞짱은 너무 작위적이라 어이가 없더군요. 부패 경찰들 때문에 보도도 못하고 사건이 은폐되었었는데, 스펜서와 호크의 활약 이후 사건이 대대적으로 폭로된다는 결말도 이해가 안되고요.

그래도 너무 바보같아서 아무 생각없이 볼 수 있다는건 오히려 장점이기는 하네요. 몇몇 유머 코드는 피식 웃게 해 주기는 하고요. 거인 호크, 조력자 헨리 캐릭터는 캐스팅이 좋습니다. 완전한 권선징악 마무리도 후련했고요.

다만 이 정도 장점은 이 영화의 전반적인 완성도를 보완해주기엔 턱도 없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범죄물로서도, 수사극으로서도, 액션 영화로서도 건질게 없는 졸작입니다. 원작인 탐정 스펜서에 대한 모독이라 할 수 있는 쓰레기로 에필로그에서 후속작, 시리즈의 여운을 남기는데 어림도 없지요. 소리없이 망한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2025/08/16

스턴트맨 (2024) - 데이빗 리치 : 별점 3점

슈퍼스타 톰 라이더 대역 전문 스턴트맨 콜트 시버스는 촬영 중 크게 다친 뒤 자신감을 잃고 은둔했다. 하지만 영화 제작자 게일의 전화를 받고 옛 연인 조디가 첫 감독을 맡은 작품 "메가스톰" 촬영장으로 향했다. 조디가 그를 찾는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건 게일의 거짓말이었다. 게일은 콜트에게 실종된 톰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콜트는 톰을 찾다가 톰의 새로운 대역 스턴트맨의 시체를 발견했고, 모든건 톰이 살인을 저지른걸 그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음모였다는걸 알아채는데... 

"데드풀 2", "불릿 트레인"의 데이빗 리치 감독 작품으로 액션과 로맨틱 코미디를 결합한 영화입니다. 생각없이 볼 수 있는 단순한 영화지만 장점이 많습니다. 우선, 전개가 매끄럽고 안정적이라 편하게 볼 수 있어요. 웃길 때 확실히 웃기고, 화끈하게 달려줄 때에는 화끈합니다. 영화 속 영화 "스페이스 카우보이"의 인물 관계를 본편과 교차시키는 솜씨도 좋습니다. 마지막에 '혹시 콜트가 주인공을?'이라는 기대를 깨부수는 제이슨 모모아의 깜짝 출연장면은 정말 빵 터졌어요.

음악도 아주 훌륭합니다. 거의 주제곡이라고 해도 무방할 KISS의 "I Was Made for Lovin' You"는 물론, 테일러 스위프트의 "All Too Well"과 필 콜린스의 "Against All Odds (Take a Look at Me Now)"의 가사와 멜로디 모두 장면 분위기와 잘 어울립니다.

액션 볼거리도 충분합니다. 자동차 추격, 보트 추격, 폭발 장면이 시원합니다. 스턴트맨이 제목이자 주인공답게 크레딧에서 실제 스턴트 촬영을 보여주는 구성도 좋았습니다. 전성기 성룡 영화가 떠오르더군요.

그러나 격투 액션씬은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굼뜨고 느린 탓입니다. 특히 쓰레기차 안에서의 격투는 지루했습니다. 오래 전, "FX"라는 영화에서는 특수효과맨이 자신의 기술을 활용해서 악당들을 공격했었는데, 스턴트맨다운 전문 기술을 활용하는 장면이 많았더라면 좋았을겁니다. 톰의 집에서 습격한 악당들과 싸우다가 미리 옮겨둔 쇼파 위로 떨어지는 장면처럼요,

그리고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결말은 확실히 좀 허무했어요. 딥 페이크라고는 하지만 실제 살해 장면 영상까지 공개된 상황에서 톰 라이더의 녹음이 그렇게 큰 증거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거든요.

그래도 킬링타임용으로는 두말할 나위 없는 영화입니다. 재미있게 감상했습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25/07/27

투명인간은 밀실에 숨는다 - 아쓰카와 다쓰미 /이재원 : 별점 2.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본 신예 작가의 본격 추리 단편집으로, 총 네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특수 설정 미스터리' 장르물이라는게 특징입니다. 표제작의 투명 인간과 "도청당한 살인"의 가공할 청력 설정이 대표적입니다. 다른 두 편도 아이돌 오타쿠들, 탈출 게임이라는 다소 특이한 설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요. 이런 특수 설정들은 단순 재미 요소가 아니라 추리와 트릭에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 다른 특징은 표제작은 "브라운 신부" 시리즈 중 한 편인 "보이지 않는 남자"에서 따온 등 기존 추리 명작들의 패러디, 인용이 많다는 점입니다. 작가의 추리 장르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설정이 과한 측면은 분명 있지만, 신선한 발상과 실험적인 구성에 본격 추리가 결합된 결과물은 썩 나쁘지 않습니다. 전체 평균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신선함을 추구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수록작별 간단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투명인간은 밀실에 숨는다"

일종의 병에 걸려 투명인간이 된 사람들이 존재하는 시대, 투명인간 아야코는 투명인간 치료제를 개발한다는 가와지 교수를 살해했다. 하지만 이를 안 탐정 자카제와 남편 나이토 등 관계자가 현장에 들이닥쳐 갇히고 말았다. 하지만 자카제의 치밀한 탐색에도 아야코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녀는 어디에 숨었나? 

투명인간이라는 비현실적인 설정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트릭과 반전이 치밀하게 펼쳐지는 작품입니다. 

우선 밀실에서 아야코가 숨은 트릭은, 아야코가 살해된 교수의 시체 위에 올라가 누워 있었다는 겁니다. 이는 시체를 난도질하고, 오른쪽 가슴에 꽂은 칼을 망치로 눌러 부러뜨린 상황같이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제공된 단서를 통해 밝혀집니다. 멀리서 보아도 '확실하게 죽은 사람'으로 보이게끔(그래서 구태여 시신을 잘 확인하지 않게끔) 과한 상처를 입히고, 누울 자리에 칼이 튀어나오지 않게 만들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이 트릭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실 아야코는 이미 누군가에게 살해되었고, 지금 투명한 상태로 움직이는 '아야코'는 이웃집 여성 와타베 요시코가 변장한 인물이었다는 반전으로 이어집니다. 이 반전 또한 이야기 중에 제시되는 여러 단서들 - 아야코(요시코)가 자택에서 오른쪽과 왼쪽을 혼동하는 묘사, ‘보름달을 반지로 만든다’는 이야기가 성립하려면 집의 구조가 반대여야 했다는 점 등 - 로 설득력을 갖추게 됩니다. 교수를 살해한 동기도 이 반전을 통해 설명되고요. 투명인간이 치료되면 정체가 탄로나게 되니까요. 투명인간은 메이크업으로 외형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요시코가 아야코로 변장할 수 있었다는 것도 특수 설정을 이야기에 잘 녹여낸 대표적인 예입니다. 탐정 자카제 역시 투명인간이었다는 결말도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투명인간이라는 만화적인 설정은 그렇다쳐도, 밀실에서 시체 위에 올라가 숨는 트릭은 지나치게 억지스럽다는 문제는 있습니다. 아무리 투명하다 해도 경찰이 출동하면 결국 들통날 수밖에 없고, 숨은 다음의 계획도 숨는 트릭에 비하면 허술한 탓입니다. 또한 투명인간 설정에 상세한 설명을 덧붙여 공을 들이고 있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근본적인 물리적 모순을 무시한 점도 조금 거슬렸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6명의 열광하는 일본인들"

큐티 걸스라는 여성 아이돌 그룹의 팬 두 명이 다투다 한 명이 사망한 사건에서, 여섯 명의 재판원과 판사들이 평의를 시작했다. 그런데 재판원 전원이 큐티 걸스의 팬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건은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결국 이들이 나누는 토론을 통해, 피고인이 범인이 아니며 큐티 걸스의 멤버 사키가 진범이라는게 밝혀지는데...

아이돌 팬들과 재판을 배경으로 한 코믹 미스터리입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트릭보다도 추리의 진행 방식입니다. 팬들만이 눈치챌 수 있는 단서들—응원봉의 컬러가 이상하다는 점, 울트라 오렌지 라이트 스틱이 현장에 과도하게 많이 남아 있었다는 점, 타다 남은 종잇조각 등—을 통해, 범인이 큐티 걸스의 멤버 사키였고 피고인은 우상을 대신해 죄를 뒤집어쓰기로 마음먹었다는 진상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꽤 그럴듯하게 진행되거든요. 시작은 "12인의 성난 사람들"이었지만, 전개와 결말은 "키사라기 미키짱"인 셈인데, 오타쿠 팬심과 진지한 법정 추리물을 결합한 방식이 신선했습니다. 코믹한 오타쿠들 대화 중심의 구성도 재미있는 요소였고요. 

추리는 얼마든지 반론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본격 추리로 보기엔 무리가 있으나, 부담 없이 읽히는 소품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도청당한 살인"

청력이 비상한 미미카는 오노 탐정에게서 살인사건의 진상을 조사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피해자의 집에 설치되어 있던 도청기에는 사건 당시의 소리가 그대로 녹음되어 있었고, 미미카는 이를 분석했다. 그녀는 녹음된 소리를 듣다가 이상한 불협화음을 느꼈다... 

핵심 단서는 불협 화음이 아니라 발소리가 일정하게 들린다는 것이었습니다. 도청기는 인형 속에 감춰져 있었고 고정된 위치에서 놓여 녹음되었기 때문에,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발소리는 멀어지거나 가까워지는 식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그런데 일정하게 들렸다는 건 누군가가 인형을 들고 이동했다는 뜻입니다. 불협화음의 원인인 녹음된 팩스음이 매우 희미하게 들리는 것도 도청기의 위치가 바뀌었음을 뒷받침하고요. 이를 통해 도청기의 존재와 위치를 알고 있는 탐정사무소 조사원 후카자와가 범인이라는게 드러나게 됩니다.
이렇게 주어진 단서만으로 범인을 추리해 낼 수 있는 완벽한 후더닛물로, 정통 본격 추리소설의 매력을 잘 보여줍니다. 미미카의 가공할 청력과 논리적 추론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좋은 특수 설정 미스터리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미미카의 비상한 청력이 일반 추리의 범주를 넘는 일종의 초능력처럼 느껴져, 약간은 추리 만화나 퀴즈물처럼 보인다는건 단점입니다. 사실 녹음된 소리를 듣고 분석하는 것이라면 이런 특수 설정을 이야기에 도입할 필요도 없었어요. 현실적으로는 음량 조절이나 소리 추출 장비를 활용하는 쪽이 더 설득력 있었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리적 재미와 퍼즐의 완성도 면에서는 추리 팬으로서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는 수작입니다. 오노 탐정과 미미카 컴비의 티키타카도 재미있었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13호 선실에서의 탈출"

고등학생 가이토는 유명 추리작가 미도리카와 시로의 인기 시리즈를 모티브로 한 탈출 게임에 초청받았다. 그 곳에서 게임 후원사 사장의 아들인 마사루와 마사루의 동생 스구루를 만났는데, 가이토와 스구루는 갑작스럽게 납치되고 말았다. 알고 보니 납치범들의 본래 목표는 마사루 형제였고, 가이토는 마사루로 오인받아 함께 납치되었던 것이었다. ..

탈출 게임이 핵심 설정으로 등장하는 작품으로, 게임에 등장하는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사건의 시각을 알려주는 시계에 대한 문제에서 시작해서, 목격 증언의 모순점을 밝히는 문제, 원고지에 남겨진 메시지를 해독하는 문제로 이어지는데 이 모든 문제들은 그냥도 풀 수 있지만, 마지막 수수께끼를 통해 중요한건 '거울'이며 앞서의 수수께끼와 거울을 조합하여 진짜 범인이 ‘사쿠라기’라는 사실이 밝혀지도록 잘 짜여져 있습니다.
또한 ‘재교부’라는 게임 규칙—같은 문제에 정답을 두 번 낼 수 있다는 룰—자체도 하나의 트릭으로 작용합니다. 초반부 수수께끼의 해답이 두 가지였음을 이 룰을 통해 암시되기 때문입니다. 실제 작중 게임의 구성과 배우들의 연기, 설정 모두 현실적으로 잘 설명되고 있고요.

하지만 납치극 설정은 과했습니다. 가이토와 스구루를 납치한 흑막이 사실 마사루였다는 진상, 그리고 동생 스구루가 처음부터 형의 음모와 게임의 정답을 모두 간파하고 있었다는 설정은 지나치게 억지스럽고 작위적입니다. 치밀한 퍼즐 추리에 비하면 완성도만 떨어트리는 느낌이에요.

그래도 추리 게임이 잘 연출되어 읽는 재미는 충분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25/07/19

이상한 집 2 - 우케쓰 / 김은모 : 별점 2.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상한 집 2"는 기묘한 평면도를 가지고 기상천외한 추리를 펼쳤던 전작에 이은 우케쓰의 시리즈 두 번째 작품입니다. 전작과는 다르게 연작 단편집으로, 11편의 개별 단편들은 제각기 다른 사건과 인물을 다루지만 이야기 말미에 하나의 결말로 수렴되는 구조를 가집니다. 대부분의 수록작 모두에 기묘한 평면도를 가진 집이 등장하며, 이들 사이에 공통된 무언가가 있다는게 조금씩 드러나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인상적이었던 것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우선, “갈 곳 없는 복도”는 어머니로부터 과보호와 냉대를 동시에 받으며 자란 네기시 씨의 이야기입니다. 그녀가 살던 집에는 막힌 복도가 있었는데, 네기시 씨는 태어날 당시 자신의 쌍둥이 자매가 죽은 탓에 자매 방이 철거되었다는 추리를 제시합니다. 하지만 진상은, 건설 당시 사고로 아이가 사망한 장소가 원래 현관이었던 탓에 현관 위치를 바꿨고 그로 인해 복도가 막혔다는 것으로 드러나지요.

“어둠을 키우는 집”은 가족 살인 사건을 다룹니다. 쓰하라라는 소년이 가족을 살해한 사건인데, 그 원인이 엉터리로 설계된 집 구조 때문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평면도를 통해 그 집이 생활에 적합하지 않고, 쓰하라 소년의 고립을 유발하는 구조였는걸 조목조목 드러내며 공간이 범죄를 유발했을 수도 있다고 추리하는데 아주 그럴듯했어요.

“재생의 성역”은 컬트 종교단체 ‘재생회’의 수행 공간인 '성역'에 잠입한 기자의 리포트입니다. 성역은 나가노 현에 있는데, 수행은 신도들에게 숙면을 취하게 하는 기묘한 것이었습니다. 기자는 신자들이 신성시하는 성모가 왼팔과 오른다리가 없는 신체를 가졌다고 했는데, 나는 그 장소의 평면도를 조합해 ‘재생의 성역’ 건물 자체가 그 성모의 육체를 본뜬 구조임을 밝혀냅니다. 이렇게 평면도를 조합하는건 작가의 전작 "이상한 그림"도 연상되는데, 상당히 충격적이었어요. 이 리포트는 전편만 발표되었고, 세뇌 방식이나 수행의 실체가 담긴 후편은 결국 발표되지 못했다며 수수께끼를 남기는 결말도 좋았고요.

“방을 잇는 실 전화기”는 어린 시절 실 전화기로 아버지와 대화하던 기억을 가진 가사하라 지에의 이야기입니다. 이웃 마쓰에 집 화재 사건 이후 아버지가 떠난 뒤, 지에는 실 전화기의 줄 길이가 이상하게 길고, 실 끝은 아버지 침실이 아니라 예전에 옆집 마쓰에 부인이 분신 자살했던 방으로 이어진다는걸 알게 됩니다. 지에는 그날 밤 아버지가 횡설수설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아버지가 마쓰에 부인을 살해했을지도 모른다고 추리합니다. 실 전화기 길이로 이어지는 추리가 무척 흥미롭습니다.

“달아날 수 없는 연립주택”은 과거 사채 때문에 어린 아들과 함께 조직의 감시 아래 연립주택 ‘오키토’에서 매춘을 강요당했던 아케미 씨의 기억을 담고 있습니다. 그녀는 같은 처지였던 옆 방의 왼팔이 없는 야에코 씨와 친해졌는데, 야에코는 아케미의 아들 미쓰루를 구하려다 교통사고로 오른다리마저 잃고 말았지요.
여기서는 평면도나 주택 구조는 그리 특이할건 없습니다. 그러나 아케미는 당시 한 번의 매춘에 십만 엔을 받았다고 회상했는데, 그 금액은 터무니없는 고액입니다. 2층에 고작 네 명만 거주했고, 1층은 감시조였다는 구조도 부유층을 대상으로 하기에는 지나치게 비효율적인 시스템이었고요. 여기에는 놀라운 반전이 숨어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11편의 이야기 모두 컬트 종교단체 ‘재생회’와 그 본거지인 ‘재생의 성역’을 중심으로 벌어졌다는게 밝혀집니다. 우선 재생회의 기묘한 수행은 성역 구조와 관계가 있습니다. 성모의 몸을 딴 성역에서 신자들은 자궁 위치에서 숙면을 취합니다. 이는 성모의 몸속에 있는 태아와, 출산을 은유한 과정으로 신자들은 모두 성모의 자식이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각 이야기에 등장하는 기이한 집 구조들도 모두 재생회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성역'과 똑같이 개축되었기 때문입니다. 재생회의 주 수익원도 성역처럼 집을 개축하는 공사였습니다. 이를 가능하게 한 인물은 히쿠라 하우스의 사장이었습니다. 그는 재생회의 간부이기도 했으니까요. 대표적인건 “딱 한 번 나타난 방”에서 드러난 이루마의 집 구조입니다. 이루마의 부모는 이루마의 죄를 씻기 위해 집을 성역처럼 만든 것입니다. 

이런 흐름은 다른 사건들도 마찬가지에요. 지에의 아버지는 마쓰에 부인과 불륜 관계였습니다. 실 전화기 길이와 방해물이 없어야 하는 특징을 생각하면, 그는 발화 현장이 아니라 부인 침실에서 전화를 했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진상은, 지에 아버지는 그날 부인을 살해한게 아니라 사체를 발견했던 겁니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는 유서를 읽는 소리였고요. 부인이 자살했던 이유는 불륜으로 인한 임신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미쓰에 씨 남편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기 때문에 불륜을 감추기 위해 아내 시신을 벽장 안에 넣고 태웠는데, 이 때 불이 번져 죽고 말았던 것이지요. 지에의 아버지는 이후 죄책감으로 재생회에 들어간 뒤, 또 다른 불륜으로 태어난 미쓰루를 위해 집을 개축까지 했지만, 결국 미쓰루가 학대로 죽자 재생회의 사상에 반대하는 의미에서 심장 위치 방문을 잠그고 자살했습니다. '성모'의 죽음을 실제로 행동을 보여주었던 것이지요.

이처럼 재생회 신자들은 대부분 ‘죄를 물려받은 아이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이 드러납니다. 즉, 불륜으로 아이를 낳은 부모들이었습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네기시 씨 어머니의 냉대와 집 개축 이유도 이해가 됩니다. 네기시 씨는 어머니의 불륜으로 태어났고, 미숙아였기 때문에 출산 당시 혈액형 검사를 받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혹시 수혈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해 혈액형이 드러날까 봐, 딸이 사고를 당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과보호하면서도 동시에 냉정했던 것이고, 집을 성역에 가깝게 개조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방의 배치를 보면, 어머니가 딸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다는걸로 보이는데 이 역시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아울러, ‘물레방앗간’은 기요치카가 딸 오키누를 낳기 위한 장소로 만든 공간이었습니다. 그 안의 움푹 팬 부분은 아이를 숨겨두기 위한 임시 대피소였고, 그 딸이 바로 야에코였습니다. 오랜 시간 그 안에 숨어 있다가 팔이 끼어 괴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나중에 미쓰코가 음모로 죽게 만든 인물 역시 야에코였습니다. 야에코가 숨기고 있었던 건 다름 아닌 의족이었지요.

또한 ‘오키토’의 이야기에서 남겨진 수수께끼를 통해, 실제로 매춘을 했던 사람들은 어머니들이 아니라 그들의 아이들이었다는게 밝혀집니다. 히쿠라 하우스 사장은 야에코의 딸을 매춘 상대로 삼았다가 결국 결혼까지 했던 겁니다. 

결국 이 모든건 야에코의 딸이 어린 시절 자신을 매춘에 내몬 어머니를 증오했으며, 그 복수로 어머니의 신체 결함을 본떠 전국에 같은 구조의 집들을 퍼뜨리기 위해서 벌어진 일이었다는 진상으로 마무리됩니다. 히쿠라 하우스 사장은 죄책감 탓에 아내의 요구에 따라 야에코를 ‘성모’로 삼고 재생회를 만들었고, 이후 신도들의 집을 성역처럼 개축하는 등의 행위에도 군말없이 따랐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딸을 조종해 야에코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고요

이렇게 각각의 에피소드가 이어지며 결말로 이어지는 과정이 무척 흥미롭고 쉽게 읽힙니다. 무엇보다 집의 평면도를 소재로 이런 서사를 만들어 냈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특징적인 여성의 몸을 가진 집의 평면도'를 구상한 뒤, 이 설정과 진상에서부터 역순으로 이야기를 쓰지 않았을까 싶은데 창작 과정이 궁금해 집니다.

단편 하나하나도 추리물로서 수준이 높은 이야기가 제법 되고요. 각 단편마다 추리적으로도 인상적인 요소들이 많습니다.
“어둠을 키우는 집”에서는 쓰하라 소년이 범죄를 저지른 이유가 엉망으로 설계된 집 구조 때문이라는 설정이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평면도만 보고 그런 추리를 이끌어낸 전개도 흥미로웠고, 진상에 대한 제 나름의 해석—소년이 범행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할머니를 해치려는 걸 막으려다 우발적인 사고가 벌어졌다는 점—도 설득력 있게 느껴졌습니다. 소년 혼자 칼에 상처를 입었던 점, 할머니가 어머니의 비명 소리에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 등 다양한 단서를 조합하며 추리의 실마리를 만들어낸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숲 속의 물레방앗간”에서는 물레방아가 돌아가면 내벽이 움직이는 구조에 대한 미즈나시 우키의 추리가 기억에 남습니다. 오른쪽 방의 벽에 있던 움푹 팬 공간 쪽으로 벽을 조이게 하여, 안에 있는 사람이 무릎을 끌어안고 얼굴을 묻는 자세가 되도록 만든 구조였는데, 이는 마치 죄인이 참회하는 자세와 닮아 있었습니다. 실제 그 방향에 사당이 있었다는 점도 설득력을 높였습니다.
“딱 한 번 나타난 방”에서는 비밀방을 찾아가는 과정이 흥미로웠습니다. 네 가지 단서—① 갑작스러운 현기증 이후 문이 보였다는 점, ② 문을 열자 작은 방이 나왔다는 점, ③ 그 방의 바닥이 다다미 반 장 크기의 정사각형이었다는 점, ④ 상자 안에 무언가 무서운 것이 있었다는 점—와 함께 이루마 씨 아버지의 직업, 2004년의 지진, 미닫이문의 구조 같은 현실적인 단서들이 함께 제시되면서, 평면도를 기반으로 직접 추리하는 재미가 잘 살아 있었습니다.

다만 11편의 단편들은 전체적인 완성도에서 편차가 있습니다. 일부 이야기는 독립된 단편으로서 완결되지 않고, 결말에서 쓰일 단서 제공에 그치기 때문에 연작 ‘단편집’이라 보기엔 다소 애매한 구성이 됩니다. 물론 결말에서 이 단점이 일정 부분 해소되기는 하지만, 전편이 모두 설득력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어 “쥐덫의 집”에서는 히쿠라 하우스 사장의 딸 미쓰코가 하야사카와 억지로 친구가 되어, 할머니 야에코를 죽음으로 이끈 음모가 전개됩니다. 하지만 미쓰코와 만화 취향이 전혀 맞지 않았고, 책장이 잠겨 있었다는 점 등을 근거로 한 추리는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게다가 하야사카를 굳이 끌어들일 이유도 명확하지 않으며, 건설회사 사장의 어머니가 자사 설계로 인해 사고사했다면 그 자체로 큰 스캔들일 텐데도 이런 위험성 큰 일을 벌인다는게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거기 있었던 사고 물건”에서는 물레방앗간에서 발견된 ‘백로’가 사실은 오키누의 시신이었다는 추리가 제시되지만, 이를 뒷받침할 근거가 없습니다. 아무리 오래전 일이라고 해도 시체 발견이라는 큰 사건이 지역 신문 기사나 사람들의 기억에도 남지 않았다는 설정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아저씨의 집”은 학대받다 굶어 죽은 소년의 일기라는 설정인데, 그 일기가 죽기 직전까지 어떻게 쓰였고 어떻게 세상에 나와 발표까지 되었는지 설명이 없습니다. “살인 현장으로 향하는 발소리”에서 아내 사체를 불태운 마쓰이 씨가 왜 미처 도망치지 못했는지도 납득이 어렵고요.

또한 몇몇 단편은 전체 흐름상 불필요하게 느껴집니다. “아저씨의 집”은 “딱 한 번 나타난 방”에서 신도들이 집을 개축하고 감축했다는 정보가 이미 충분히 제시되기 때문에 굳이 추가로 설명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거기 있었던 사고 물건” 역시 “숲 속의 물레방앗간”에 정보를 보완하는 정도로 대체할 수 있었고, “살인 현장으로 향하는 발소리”도 전편인 “방을 잇는 실 전화기”의 내용을 시점만 바꿔 반복한 것에 가까워 정보의 추가는 거의 없었습니다. 단지 마쓰이 씨에게 30분의 여유가 있었다는 점 외에는 새로운 내용이 없거든요.

몇몇 이야기는 설정이 지나치게 과합니다. "숲 속의 물레방앗간"이 대표적입니다. 지역 유지였던 아즈마 키요치카가 불륜으로 낳은 아이를 숨기기 위해 만들었다는데, 무언가를 숨기기 위해 이런 거대하고 수상한 건물을 만든다는건 말도 안되니까요. 야에코가 팔을 잃은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장치로도 너무 억지스러웠어요. 재생회 신도들이 불륜을 저지른 사람들이라는 설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나친 억지였습니다.

무엇보다, 이야기 전체를 이끄는 핵심 인물인 야에코의 딸이 끝까지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그녀의 증오가 이야기의 중심 동기인데도, 구체적인 내면 묘사나 행동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아 독자가 감정적으로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야에코가 자신의 장애를 숨기려 했던 인물인데, 그런 야에코의 몸을 본떠 건물을 전국에 짓게 만들었다는 것도 그리 와 닿지는 않습니다. 복수가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건물 외형만 보고는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탓입니다. 치부를 아무도 모르게 전국에 설치했다!는게 과연 복수가 될까요? 잘 모르겠네요.

이렇게 단점이 없는 작품은 아니지만, 이야기 하나하나가 흥미롭게 이어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있었습니다. 평면도를 바탕으로 한 개별 단편의 아이디어와 추리는 충분히 인상적이니까요. 몇몇 이야기는 제법 서늘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추천드립니다.

2025/07/12

올드 가드 2 (2025) - 빅토리아 마호니 : 별점 1.5점

앤디 일행은 무기를 밀매하는 조작을 소탕했지만, 흑막이 여전하다는 사실에 고민했다. 하지만 이전에 추방했던 부커를 통해, 500년 전 앤디의 동료였던 '꾸인'이 돌아왔고 이 모든건 최초의 불사자 '디스코드'의 음모라는걸 알게 되었다.

원자력 발전소를 점거한 디스코드와 꾸인을 막기위해 일행은 출동했고, 불사의 해제 조건을 알게 된 부커에 의해 앤디는 불사의 능력을 회복했다. 하지만 디스코드의 목표는 테러가 아니라 일행의 납치였고 앤디를 제외한 모든 일행은 납치되고 말았다. 

전편에 이어서 곧바로 본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입니다. 

이번 편은 1편에서 제시된 ‘불사의 끝’이라는 설정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1편에서 나일이 앤디와 격투 중 칼로 찌른 장면이 있었는데, 나일이 상처를 입힌 불사자는 그 힘을 잃는다는 설정이지요. 뒤이어 이를 알게된 부커가 의도적으로 나일에게 상처를 입고, 자신의 불사의 시간을 끝내며 앤디에게 불사의 힘을 돌려주는 전개로 무리 없이 이어지고요. 최초의 불사자인 디스코드가 힘을 되찾기 위해 나일을 이용하려 한다는 음모 역시 이 설정을 바탕으로 흥미롭게 전개됩니다.

아무래도 불사자인 디스코드와 꾸인, 그리고 앤디 일행의 대결이라 전편보다는 "아인"스럽게 불사자들을 사로잡을 계획이 펼쳐지는 점도 볼거리입니다. 디스코드는 액체질소를 이용한 냉각 후 진공 포장시키는 방법을 사용하더군요. 

하지만 이외에 건질건 없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영화가 독립된 이야기로 완결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후반부는 다음 편을 예고하는 형태로 마무리되는 탓입니다. 하나의 작품으로서 완성도는 부족합니다.

설정의 일관성도 떨어집니다. 1편에서는 나일에게 찔린 앤디의 상처는 회복되었고, 불사의 힘을 잃은 시점은 그보다 훨씬 나중이었습니다. 반면 2편에서는 부커와 꾸인이 나일에게 찔리자마자 곧바로 힘을 잃습니다. 같은 조건임에도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는데 이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 디스코드가 나일을 이용해 힘을 되찾으려는 계획도 논리적 연결이 부족합니다. 불사의 힘을 잃게되는 당사자가 자발적으로 수락해야 이전된다는 설정인데, 앤디 일행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으니까요.

인물 간 감정선도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꾸인의 분노와 앤디와의 관계 회복은 배우들의 연기에 의존할 뿐, 이야기 내에서 납득할 수 있는 근거를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부커가 죽음을 택하는 장면도 개연성이 약하고, 극적인 효과 외에는 큰 의미를 남기지 못합니다. 솔직히 개죽음이었습니다.

액션의 완성도도 낮은 편입니다. 여성들간 격투가 주로 벌어지는데, 아무래도 속도감과 임팩트가 부족합니다. 특히 꾸인과 앤디의 격투는 많이 실망스러웠어요. 여러모로 장르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합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설정을 이어가는 몇몇 장치는 흥미로웠지만, 전체적으로 완결된 이야기로 보기 어렵고, 후속편을 위한 연결에 그친 영화였습니다. 온전히 이 영화만으로 평가하는건 무리입니다. 3편은 어쩔 수 없이 보기야 보겠지만 영 기분이 좋지 않네요. 샤를리즈 테론의 경력이 아깝습니다. 

2025/05/30

판사 이한영 - 이해날, 문성호 / 전돌돌 : 별점 2점


드라마도 제작될 정도로 인기있는 웹 소설의 웹툰화 작품입니다. 기본 설정은 뻔한 회귀물+복수극이지만, 주인공 직업이 '판사'라는 특이한 차별화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법정 배경 작품 중에서 검사나 변호사가 아니라 판사가 주인공인건 처음 접해 보네요. 그 덕분에 법정물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한영이 회귀 후, 과거 판결 결과와 사건 진상을 기억하고 있어서 올바른 판결을 내리면서 승승장구한다는 전개거든요.

그래서 다양한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펼쳐지는데, 이게 꽤 재미있습니다. 예를 들어, 김선희는 전 연인 박혁준에게 스토킹당하다가 사망했는데 마침 박혁준이 보험금 수령자이기도 해서 유력한 용의자로 부상하지요. 하지만 이한영은 박혁준과 불륜 관계였던 피해자의 사촌 김가영이 진범이라는걸 여러가지 주변 증거를 통해 밝혀냅니다. 살인 미수 누명을 쓴 서민훈 사건은, 서민훈의 땅을 차지하기 위한 유성그룹의 음모라는걸 택시의 블랙박스 영상 등으로 증명하고요. 이처럼 추리물에 가까운 구성과 연출이 돋보이는 사건들이 제법 많아서 단순한 법정극 이상의 재미를 줍니다. 이한영의 판결은 대기업 회장이나 강신진 판사같은 빌런에게 무려 '사형선고'를 내릴 정도로  '사이다' 판결이라서 카타르시스도 느낄 수 있고요.

아울러 판사가 재판을 통해 얼마나 판결에 개입할 수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부분은, 최근 국내에서도 논란이 되는 ‘접대 판사’ 문제와 맞물려 있어서 더 흥미로왔습니다.

이한영의 복수 서사도 나쁘지 않습니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강신진과 장태진을 무너뜨리기 위한 치밀한 계획과  박철우 검사, 로펌 에스로펌 소속의 유세희, 기자 송나연 등 각각의 역할이 분명한 조력자들의 도움이 잘 그려진 덕분입니다.

하지만 복수가 구체화되어 갈 수록 긴장감과 개연성은 퇴색되어 버립니다. 대부분 사건들이 녹화나 녹취 파일 한두 개나 주요 인물의 배신으로 쉽게, 뻔하게 증명되는 탓이 큽니다. 압도적인 권력을 가진 인물들이 이런 증거와 증언 한, 두개에 무너진다는건 현실적이지도 않고요. 또한 강신진과 장태진 같은 인물들이 직접 범죄에 가담하고, 치명적인 증거를 남긴다는 전개도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애초에 검사, 경찰도 아닌 판사가 드러난 증거 외의 것에 간섭한다는 설정부터가 말도 안되지요.
이한영이 에스로펌의 후계 구도에 간섭하고, 장유린 판사와 손을 잡는 등의 불필요한 서사도 거슬렸습니다. 에스로펌을 몰락시키겠다는 의도와 후계 구도에 간섭해서 유세희를 밀어주는 행동은 아무리 봐도 앞 뒤가 안 맞더라고요.
만화적인 과장도 지나칩니다. 법정 장면은 과장되고 고증이 부족하며, 석정호나 박철우 검사의 전투력 묘사는 어이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등장인물들도 두서없습니다. 강력한 빌런이자 라이벌로 보였던 김윤혁은 일관되게 찌질함만 보여주다가 별다른 활약없이 퇴장해 버리고, 에스로펌의 유선철은 조력자로 나설 듯 하다가 갑자기 흑화하는데 결말도 허무하기 그지 없습니다. 러브라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한영과 유세희, 송나영, 윤슬혜 간 관계는 제대로 정리되지 못하고, 김진아 검사는 뜬금없이 박철우와 엮이는 식이니까요. 이런 점에서 깊이 생각하고 이야기를 전개하지 못한 티가 많이 납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초반부의 구성력과 법정 내외의 갈등 구조, 개성 있는 캐릭터들은 분명 매력적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현실성과 논리 전개가 약화되면서 아쉬움을 남깁니다. 앞부분에 여러 가지 사건을 배치해서 흥미를 자아내지만,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흥미를 잃게 만드는 흔한  법정 드라마와 비슷했어요.

2025/05/17

Q.E.D Iff 증명종료 28 - 카토 모토히로 : 별점 2.5점

Q.E.D Iff 증명종료 28 - 6점
카토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통의 시리즈 28권입니다. 이번에는 "행운", "논점 정리" 두 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두 편 모두 평균 수준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작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행운"

요식업 경영자 쿠마노 츠요시가 살해당했다. 유력한 용의자는 돈과 애인을 쿠마노에게 빼앗긴 다테 슈지였다. 그러나 다테 슈지에게는 시간 안에 범행 현장까지 도착할 수 없다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었는데...

전통적인 알리바이 깨기 트릭물입니다. 다테 슈지는 마지막으로 목격된 장소에서 범행 현장까지 30분 안에 도착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차를 이용하거나, 오토바이를 이용하거나, 똑같이 생긴 피자 배달 오토바이를 곳곳에 배치해두고 오토바이가 있는 장소까지 건물 내부를 뛰어서 이동하더라도 30분 안에 이동은 불가능했다는게 경찰 조사 결과였지요.

여기서 목격자의 '전파 시계' 시간을 조작하여 이동 시간을 확보했다는 토마의 추리가 등장합니다. 이를 통해 자동으로 시간을 조정하는 '전파 시계'의 특성을 이용하려면 전파가 멈추는 '정파 시간'에 범행을 저지를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방범 카메라에 찍히기 쉬운 대낮에 범행을 저질렀다는 이유까지 깔끔하게 설명되지요. 그 날, 그 시간에 목격자의 전파 시계는 배달을 갔던 슈지만 조작할 수 있었고요.

Q.E.D.의 전통이라 할 수 있는 수학적 이론 소개는 없지만, 주로 묘사되는 미즈하라 경부와 가나 사이의 애틋한 관계도 인상 깊었어요.

물론, 어차피 방범 카메라로 이동 경로를 특정하면 알리바이 자체가 의미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은 듭니다. 방범 카메라로 시간을 특정하면 되니까요. 목격자가 전파 시계의 시간이 갑자기 바뀌는 걸 눈치채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도 남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면 본격, 정통파적인 알리바이 깨기 트릭물로는 평균 이상은 된다고 생각됩니다. 정파 시간이라는건 처음 알게 된 정보이기도 하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논점 정리"

가나의 동급생 어머니인 타니시 마키가 회사 공금을 횡령했다는 누명을 쓰고 해고 위기에 처했다. 마키가 도움을 요청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가나는 우연히 사건 해결을 돕게 되었고, 사건 배후에 회사의 경리부장 후지츠보 토시야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하지만 후지츠보가 모든 걸 꾸몄다는 증거를 찾지 못해 궁지에 몰리는데...

도입부에서 토막 사체를 등장시키는 강렬한 연출이 나오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은 후지츠보가 공금 횡령 사실을 마키에게 덮어씌우기 위해 꾸민 음모였다는 이야기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제목 그대로 ‘논점 정리’를 하며 사건을 바라본다는 점입니다. 처음 변호사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 핵심 논점은 마키가 실제로 횡령했는지가 아니라, '회사가 횡령의 증거를 갖고 있는지' 여부였습니다. 증거가 없다면 회사와 강하게 맞설 수 있었지요. 그러나 마키는 토막 사체를 보았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정황 증거에, 횡령 증거를 스스로 찾으려다 오히려 불리한 상황에 놓이고 맙니다.
이때 토마는 다시 논점을 정리합니다. 마키는 함정에 빠졌다고요. 이 지점에서부터 후지츠보가 횡령의 진범이라는 사실을 밝혀 나가는 전개는 깔끔합니다.

이렇게 ‘논점 정리’라는 개념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구성과 장난같지만 현실적이었던 토막 살인 연출 트릭이 괜찮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아래와 같이 토마와 가나의 관계가 명확히 진전된 듯한 느낌을 준게 오랜 팬으로서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이 정도면 다음 권 정도에서는 본격적으로 고백하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생기네요.

하지만 후지츠보가 조카의 취업 청탁을 굳이 연출할 필요는 없었다는 단점은 큽니다. 그냥 가만히 있었더라면 마키가 스스로 자멸했을 텐데, 괜히 자신에게도 동기가 있는 듯한 연출을 하며 사람들에게 알릴 이유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 연출 방식도 유치해서 금방 들통났는데 왜 이런걸까요? 아울러 추리적인 면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점은 없어서 감점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