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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9

명탐정 코난: 비색의 탄환 (2021) - 나가오카 치카 : 별점 1점


티빙을 통해 딸아이와 함께 감상한 명탐정 코난 극장판. 오랫만이네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쓰레기였습니다. 사건을 저지른 동기와 전개 모두에 있어 설득력을 갖추는데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것으로 보였던 아버지의 원수를 값기 위해 당시 FBI 국장이었던 피해자를 노린다!까지는 비현실적이지만 그럴 수 있다고 쳐도, 그 뒤의 모든 전개는 어이를 상실케합니다.
우선, 오래전 있었던 범죄와 똑같이 관계자들을 납치했다가 고이 풀어준다? 이런걸 따라할 이유는 없습니다. 복수의 대상이 명확한데 다른 사람들을 납치하는 것도 말이 안되고요. 오히려 FBI가 사건에 투입되어 꼬리를 밟힐 위험만 늘어났을 뿐입니다. 그 뒤에 병원에서 MRI를 폭주시켜 사람들을 기절하게 만든다는 것도, 세라 마스미가 우연찮게 사건을 목격하고 범인을 뒤쫓는다는 것도 모두 설득력이 결여되어 있으며, 범인이 마지막에 초전도 리니어 열차의 별명이 '실버 불렛'이니 이 안에서 총으로 원수를 값겠다! 고 주장하는건 실소를 자아냈습니다. 그냥 아무데서나 죽였으면 복수는 진작에 끝났을겁니다.
추리의 근거도 전화가 고장났다는 것 (MRI를 폭주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이름의 애너그램 뿐이라는건 부족했어요. 제가 범인이라면 상식적으로, 다른 폰을 이용하여 MRI를 폭주시켰을겁니다. 하긴, 이런 수준낮은 이야기에 상식을 논하는 것 자체가 웃기네요.

액션이라도 화려하냐면 그것도 아닙니다. 슈이치와 세라의 짧은 격투씬 정도? 최고 속도 1,000km라는 열차를 향해 저격을 성공시킨다는건 황당하기 그지없고, FBI 요원들이 엔지니어 한 명을 쫓는 자동차 추격을 장기와 결합시킨건 뭐하는 짓인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1점. 열차가 폭주하는 등 스케일을 키우기위해 억지스러운 전개로 일관한 작품입니다. 아무리 아동용이라고 해도 이런 수준의 각본을 영화화한다는게 믿어지지가 않네요. 만화의 등장인물들인 세라 마스미와 아카이 슈이치 등을 핵심 주인공으로 나온다는 팬서비스 이상의 가치는 전무합니다,

2010/10/08

시체를 사는 남자 - 우타노 쇼고 / 김성기 : 별점 3점

시체를 사는 남자 - 6점
우타노 쇼고 지음, 김성기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몽환" 시리즈로 굴지의 명성을 얻었으나 더 이상 작품을 쓰지 못해 절필을 선언한 추리작가 호소미 다쓰토키는 잡지 "월간 신소설"에 연재된 작품 "백골귀"를 읽고 묘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백골귀"는 에도가와 란포를 주인공으로 하여, 란포가 말려든 시라하마 삼단벽에서의 괴이한 자살 사건을 친구 하기와라 사쿠타로와 함께 해결해 나가는 3부작 연재 소설이었다.

"백골귀"의 작가 니시자키 가즈야는 호소미 다쓰토키를 만난 뒤, 작품의 원전이 되는 사건을 경찰 출신 외할아버지의 유품을 통해 알게 되어 창작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이에 호소미 다쓰토키는 작품의 저작권을 자신에게 줄 것을 요청하는데...

"백골귀"라는 소설이 포함되어 전개되는, 이른바 액자 소설의 구성을 취한 작품입니다. 전형적인 에도가와 란포 풍의, 1930년대 분위기가 물씬 나는 "백골귀"의 잡지 한 회 연재 분량(총 3회) 사이에, 현 시점인 1990년에 그 소설을 접한 추리 소설 작가 호소미 다쓰토키의 이야기가 겹쳐지고, 두 이야기가 결국 하나의 완성된 결말로 향합니다. 그런데 "백골귀"의 비중이 상당히 큰 편인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액자 소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백골귀"는 앞선 줄거리에서 이야기했듯이 1930년대를 무대로, 에도가와 란포와 그의 친구로 알려진 시인 하기와라 사쿠타로가 등장하여 시라하마의 '삼단벽'에서 발생한 자살 사건의 진상을 추적한다는 내용이에요. 탐정 역할은 하기와라 사쿠타로가 맡고 있으며, 란포는 일본 추리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심약한 조력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특징이라면 1930년대 란포의 작품과 유사한 분위기를 조성하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는 점입니다. 시대적 배경을 충실히 살린 것은 물론, 대단치 않아 보이는 요소들을 '괴이'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묘사가 특히 그러합니다. 또한, 소제목을 란포의 작품에서 빌려오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란포의 작품을 인용하는 점도 인상적이었고요.

그러나 단순히 분위기와 캐릭터를 차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의 추리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도 높습니다. 사건 해결의 결정적 단서가 초반에 공정하게 제공되며, 다양한 복선이 깔려 있어서 반전도 효과적으로 작용하거든요.

다만, 살해 동기가 단순한 분노라는 점은 납득하기 어려웠고, 반전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설정이 '쌍둥이 형제'라는 다소 뻔한 장치라는건 아쉽습니다. 따라서 "백골귀"만 놓고 본다면 평균 이상의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액자소설의 형식을 빌려, 현재 시점에서의 호소미 다쓰토키 이야기가 삽입된 것으로 보입니다. "백골귀"라는 작품과 호소미 다쓰토키의 이야기가 맞물려 최종 결말로 이어지면서, 작품의 재미와 완성도가 함께 상승하는 것이죠. 이 과정에서는 앞서 언급한 동기와 다소 진부한 설정의 한계를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우타노 쇼고 특유의 설득력 있고 예상을 벗어나는 전개가 아주 돋보입니다. 독자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그야말로 뒤통수를 강타합니다.

결과적으로 액자소설의 새로운 형식을 보여준 점이 가장 인상적인 작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1930년대 분위기의 작품을 매우 좋아하는 만큼, 이 작품에서 끝내지 않고 에도가와 란포가 등장하는 후속 작품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생깁니다.

덧붙이자면, 역자의 해설에도 언급되었지만, 다 읽고 나서도 제목이 왜 "시체를 사는 남자"인지 명확하게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시체가 "백골귀"라는 작품을 은유하는 것인지, 아니면 역자의 애너그램 풀이처럼 과거를 그리워하는 의미가 내포된 것인지 다소 애매하네요.

2012/05/29

완전연애 - 마키 사쓰지 / 김선영 : 별점 2.5점

완전연애 - 6점
마키 사쓰지 지음, 김선영 옮김/문학동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작가 마키 사쓰지의 작품으로 (굉장히 낯선 작가인데 꽤나 평이 좋아서 읽게 되었네요. 프로필을 보니 오랜 경력을 지닌 작가라서 좀 놀랐습니다) 일본 서양화의 거장 나기라 다다스 화백, 본명 혼조 기와무를 주인공으로 하여 2차대전 직후, 쇼와 43년(1968), 쇼와 61년(1986) 세 건의 사건을 펼쳐 그리는 대하 장편 추리 연애 드라마입니다. 크게 연애물과 추리물, 두 가지로 읽힐 수 있는 작품이죠.

먼저 연애물 속성부터 살펴보지요. 사랑에 절대적으로 복종하여 사건을 저지르고, 복수한다는 설정의 작품은 널리고 널렸습니다. 그러나 혼조의 사랑은 약 칠십여 년에 걸친 그의 일생과 함께 다루어질 정도로 장대하기 때문에 스케일 면에서는 가히 독보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설득력 부분에서 별로 와닿지 않아서 좋다고만은 말할 수 없어도, 최소한 유사 작품들과 차별화는 됩니다. 그리고 제가 연애 소설을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딱 한 번의 관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또 다른 주변인의 존재 등은 "노르웨이의 숲" 느낌도 전해주는 등 연애물로서는 제법 괜찮은 수준이 아닌가 싶었어요.
마지막의 반전도 괜찮았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마스코가 등장할 것은 예상했지만 KIWAMU => MIWAKU라는 애너그램을 이용한 이름이라는 장치가 꽤 그럴싸했고, 혼조 임종 시의 마지막 말과 그에 얽힌 마스코의 상념은 사람을 울컥하게 만들거든요.

그러나 문제는 결국 진상이 혼조 혼자만의 착각으로 한 여자만 바라본 것이라는 허무한 결말입니다. 이거 참... 무려 세 건의 범죄가 얽힌 한 대화백의 일대기가 고작 장대한 짝사랑 이야기라니 뭐라 할 말이  없네요. 도모네의 밀당에 넘어간 희생자로 보이기도 하는데 과연 여자가 제일 무서운 것 같습니다.

또 낡아 보이는 여러 장치들이 좀 거슬리더군요. 평생 단 한 번 가진 하룻밤 관계로 아이가 덜컥 생겼다는 설정이 대표적이겠죠. 무슨 정자왕도 아니고.... 그 외에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케 하는 관계 설정도 진부했고요.

추리적 속성도 첫 번째 사건은 혼조 기와무의 시선이라서 사건과 동시에 진상이 밝혀지지만, 이후 두 건은 혼조의 제자 미와쿠의 시선이라 마지막 부분에서 진상이 밝혀지는 독특한 전개 방식은 매력적입니다. 첫 번째 사건의 경우, 식칼로 첫 번째 상처를 위장한다는 트릭과 대나무 조릿대 등의 디테일한 소품 및 미 군정 당시 시대 상황, 피해자의 도착증적인 성벽에 대한 증언과 같은 여러 가지 요소가 잘 맞물리는게 굉장히 좋았고요. 이 사건 하나만큼은 별 네 개가 충분하다 생각될 정도로 말이죠. 

그러나 극한의 밀실이라는 두 번째 사건, 순간이동 알리바이 트릭이 사용된 세 번째 사건은 솔직히 기대 이하였습니다. 두 번째 사건은 진상을 너무 쉽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제가 추리 애호가로 쌓아온 나름의 덕력도 있겠지만, 트릭이 너무 쉽고 의외성이 별로 없어요. 시공을 초월한 단도에 의한 살인과 발자국 하나 없는 밀실이라는 만화 같은 상황 자체가 자살을 반증하는 요소잖아요? 솔직히 경찰 수사를 통해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게 더 의외입니다. 별명에 대한 진상 등 디테일한 부분의 장치가 몇 개 눈에 뜨이기는 하나 딱히 특출난 수준도 아니고요.

세 번째 사건은 범인의 오랜 고민과 노력이 투입된 나름 거대한 장치가 사용되었고, 해결에는 여러 관계자 - 미와쿠, 오세키에다가 탐정 마키 사쓰지까지 - 머리를 맞대는 노력이 필요했다는 점에서 가장 공을 들인 트릭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동기부터 문제입니다. 외도로 아이를 낳았는데, 그 사실을 진짜 남편이 깨달았다고 살의를 품는다는 게 말이 되나요?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게다가 트릭을 만들기 위한 억지도 지나쳤습니다. 용의가 갈 수 없는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모습을 드러내어 피해자를 유인한다는 발상, 알리바이 트릭을 위해 샴쌍둥이까지 등장시킨 설정은 어이를 상실케 했거든요. "쌍둥이를 등장시키면 안 된다"라는 녹스의 규칙을 딱히 예로 들지 않더라도, 집 가정부에게 증언을 시키기 위한 트릭에 들인 공치고는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공정성도 떨어져서, 어렸을 적 자는 모습에 대한 술회라든가 가슴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는 독자가 정보를 얻어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장치였어요. 게다가 3억 엔 사건까지 녹여내려 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수였습니다.

그래도 혼조라는 인물의 일편단심, 변치 않는 애정을 그리는 장대한 드라마가 당시 일본의 사회상과 얽혀 현실적으로, 그리고 지루하지 않게 그려져 사백여 페이지가 넘어가는 대장편임에도 쉽게 읽히는건 분명합니다. 여러 호평에는 수긍이 가네요. "회귀천 정사"처럼 첫 번째 사건까지만 잘 정리된 중편이었다면 훨씬 좋았겠지만, 현재의 모습으로도 드라마와 추리 모두 평작 수준은 충분히 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어딘가 긴 여행을 떠나실 때 적절한 선택이 될 것 같습니다.

2018/11/23

맥파이 살인 사건 - 앤서니 호로비츠 / 이은선 : 별점 3점

맥파이 살인 사건 - 6점
앤서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열린책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별고 없는 조용한 마을 색스비온에이번에서 대저택 파이 홀의 가정부 메리 블래키스턴의 장례식이 치뤄졌다. 추도식을 맡은 목사, 음흉한 앤티크 숍 주인, 고인과 갈등을 겪은 아들, 시신을 발견한 관리인 등 등장인물들의 미심쩍은 행동과 죽음을 둘러싼 소문들이 밀도 있게 흘렀고, 이후 파이 홀의 주인인 매그너스 파이마저 기이한 죽음을 맞았다. 소식을 접한 탐정 아티쿠스 퓐트는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하는데... 라는 내용의 인기 추리 소설 시리즈 아티쿠스 퓐트 시리즈 최신작 "맥파이 살인 사건" 원고를 읽던 담당 편집자 수전 라일랜드는 소설의 결말이 누락된 것을 알아챘다.
원고를 전해 준 출판사 사장 찰스로부터 작가 앨런 콘웨이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은 수전은, 사라진 원고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앨런의 자택과 주변 인물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점차 앨런 콘웨이 죽음이 자살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데...

작 중 최고의 인기 추리 소설 시리즈 중 하나인 아티쿠스 퓐트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인 "맥파이 살인 사건"과, 이 책의 출판을 담당하는 클로버리프 북스의 소설팀 팀장 수전 라일랜드가 저자인 앨런 콘웨이 사망 사건에 얽힌 진상을 추적하는 두 개의 소설이 함께 수록된 작품입니다.
본 이야기 속에 하나 이상의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는 일반적인 액자 소설이라기보다는 "맥파이 살인 사건"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완성된 추리 소설로 수전 라일랜드 이야기의 동기로 사용된다는 점이 특이했습니다. 보통 액자 소설은 본편 주인공에게 소설 내용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데, 이 작품에서의 "맥파이 살인 사건"은 강력한 동기 외에는 딱히 다른 역할을 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인기 시리즈로 베스트셀러가 확실한 작품인데다가 수전 라일랜드부터가 굉장한 추리소설 매니아라서 안 찾고는 못 배겼을 거라는, 굉장히 확실한 동기라는 측면에서는 설득력은 높습니다. 

문제는 "맥파이 살인 사건"이 앨런 콘웨이 사건에서 큰 단서가 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앨런 콘웨이가 추리 소설을 싫어하고 증오했는지를 설명해 주는 도구로만 사용될 뿐입니다. 딱히 대단한 단서나 트릭이 숨겨져 있지는 않습니다. 그런 도구로의 사용도 대부분 앨런 콘웨이의 장난에 불과해서 크게 와 닿지 않고요. 오히려 "맥파이 살인 사건" 이라는 추리 소설 자체만으로의 완성도가 높은 수준이라 이렇게 사용되는게 아깝게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1955년을 무대로 하고 있는데 크리스티 여사님으로 대표되는 당대 본격 추리물과 비교해도 뒤쳐지지 않을 정도였거든요. 단서의 제공도 공정하며 모든 등장 인물들이 동기가 있고 수상하다는 전개도 본격물스러우며, 범인을 추리하는 과정도 무척이나 합리적이며 범인의 동기도 확실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수전 라일랜드의 활약을 그린 본 편도 흥미롭습니다. 추리 소설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딱히 대단한 능력은 없는 출판사 직원이 보여줄 수 있는 한계의 최대치를 뽑아내는 전개도 좋으며 ,본격물답게 엄청나게 많은 용의자가 엄청나게 많은 수상한 점을 드러내지만 이 모든게 마지막에 제대로 밝혀지는 결말까지는 아주 완벽했어요.

하지만 범인이 드러난 직후부터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아요. 일단 범인이 찰스였다는 진상은 놀랍습니다. 그러나 이게 밝혀지는 이유가 잠깐 스쳐지나간 해고된 비서와의 대화에서 비롯된다는건 우연에 기댄 작위적인 전개일 뿐 아니라, 찰스의 행동이 너무나 허술해서 황당할 정도에요. 앨런 콘웨이을 사전에 만났고, 이미 완성된 원고를 전달받았다는걸 수전이 아는 순간 모든게 끝나 버리잖아요? 마지막에 수전을 죽일 생각이 들었다면 비서부터 죽였어야지요.
동기에 대한 설득력도 낮습니다. 앨런 콘웨이가 아티쿠스 퓐트 시리즈를 완벽한 조롱거리로 끝장내기로 작정했다 하더라도, 그의 계획과 인터뷰는 책을 화제로 만들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작품 자체의 수준도 높은 만큼, 판매에 지장이 있으리라 생각되지는 않아요. TV 시리즈야 물 건너 갈 수도 있겠지만 판매량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증명한다면 영상화 판권을 소유한 업체가 쉽게 포기할 것으로 보이지도 않고요. 즉, 수전 라일랜드가 처음에 찰스를 의심하다가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일 리 없다'고 생각을 접은게 타당한 추리입니다. 수전만큼의 추리 소설에 대한 애정을 찰스가 보였다면 그나마 조금 나았을지도 모르지만 이래서야 현실성이 없죠.
아울러 앨런 콘웨이가 시리즈 제목을 활용하여 '애너그램' 이라는 말을 만들어 안배한게 고작 '아티쿠스 퓐트의 이름을 풀어서 해석하면 욕이다'라는 핵심 동기는 물론, 앨런이 추리 소설을 우습게 보았다는 각종 설정(예를 들어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지하철 역 이름이나 만년필 회사 등으로 대충 지은 것)도 딱히 이상하다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를 우습게 보고 그것을 조롱하고자 했더라면 좀 더 거대한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수전을 죽이려고 시도한 후 경찰에 체포되어 출판계 동료들이 수전을 배신자라 생각하여 등을 돌렸다는 후일담도 와닿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앨런 콘웨이는 모든 사람들이 싫어해서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했더라도, 수전을 죽이려고 시도한 것은 엄연한 범죄인데 배신자는 무슨 배신자입니까... 마지막 수전이 그리스로 옮겨가는 에필로그는 솔직히 완전한 사족이었고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두 편의 완성도 높은 추리 소설을 한 권으로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은 굉장하지만 위의 단점으로 감점합니다. 욕심이 좀 지나쳤달까요? 차라리 "맥파이 살인 사건" 만으로 출간되었더라면 더 나았을 겁니다. 그래도 추리적으로는 볼만한 부분이 많고, 현대에 전통 본격물을 제대로 복원한 공 만큼은 인정합니다. 추리 장르 애호가시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1/01/30

가면병동 - 치넨 미키토 / 김은모 : 별점 1.5점

가면병동 - 4점
치넨 미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arte(아르테)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느 날 밤, 보호자 없는 환자를 수용하여 치료하는 요양형 병원인 다도코로 병원에 갑자기 피에로 가면을 뒤집어 쓴 강도가 침입했다. 피에로는 추격하는 경찰을 피하기 위함이라며, 아침에는 사라질 거라며 1층을 장악했다. 원장 다도코로, 간호사 2명, 그리고 강도가 납치하여 데려온 가와사키 마나미라는 여대생과 함께 윗층에 갇히게 된 임시 당직의 하야미즈 슈고는 경찰 신고를 만류하는 원장과 간호사들에게 위화감을 느끼며, 마나미와 함께 탈출 및 신고를 시도하다가 다도코로 병원이 환자들 장기를 허락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식하는 불법 행위를 저질러왔다는걸 알아냈다. 그러나 간호사 중 한명인 사사키가 살해되고, 전화선 등이 모두 끊긴 상황에서 누군가 신고하여 출동한 경찰이 병원을 포위하게 되는데....

몰랐던 작가의 몰랐던 작품. 흥미로운 제목과 적당한 분량이 마음에 들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에서는 무려 50만부나 판매되었다는 실적도 눈길을 끌었고요.

그러나 여러모로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내용이 뻔한 탓입니다. 특히 다도코로 병원이 장기 적출을 하여 판매하는 병원이라는건 초반에 이미 알 수 있었습니다. 초반부에 드러난 단서들 - 강도가 습격한걸 경찰에는 절대로 알리지 않고 싶어하는 원장과 간호사들의 행태, 병원과 걸맞지 않은 좋은 시설이 갖추어진 수술실, 보호자 없는 환자 여러명에게 한밤중에 장폐색이 일어나 집도된 전신마취가 필요한 대수술, 수술을 집도한건 원장 다도코로와 간호사 히가시노와 사사키 뿐 - 만으로도 쉽게 떠올릴 수 있거든요. 피에로 가면을 쓴 남자가 단순한 강도가 아니라 이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잠입했고, 피해자로 보였던 미나미도 한패일 거라는 것도 역시나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요.
이렇게 모든 독자가 다 알 만한 진상을 주인공 슈고만 모른다는 전개도 문제에요. 중반 이후, 슈고가 신장을 이식받은 환자를 발견하고 나서야 겨우 다도코로 병원의 추악한 행위를 알아챈다는건 답답함의 극치였습니다. 

전개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닙니다. 억지스러운 부분도 많아요. 다도코로 원장이 피에로가 돈을 받으면 나간다는 말을 하자 곧바로 개인 돈이라며 3천만엔을 주는 장면이 대표적이지요. 돈만 받으면 얌전히 사라져 주겠다!는 강도의 말을 그렇게 쉽게 믿는다? 납득이 되나요? 그 말을 믿었다면, 애초에 돈을 안줘도 아침에 사라지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몇 시간만 참으면 되었겠지요. 

슈고가 마나미와 1층 잠긴 문을 열고 수술실로 가서 전화하려고 시도하는 장면도 황당합니다. 마나미에게 도망가라고 하고 자기는 전화를 건다는데, 같이 도망가서 신고하면 되잖아요? 왜 어줍잖은 영웅 흉내를 내는걸까요? 

경찰과 대치하다가 피에로가 진짜 목적을 드러내는 클라이막스에서 피에로가 다도코로 원장의 메스에 쓰러지는 장면도 어이를 상실케 했습니다. 이런 억지들에 비하면 실소를 자아냈던 하야미즈 슈고와 마나미가 순간적으로 불꽃이 튀는 묘사는 차라리 선녀라 할 수 있어요. 마나미가 슈고를 마음대로 조종하기 위해 일부로 유혹했다면, 말은 되니까요... 

캐릭터들도 뻔하기는 마찬가지로, 처음 본 여대생을 위해 목숨을 거는 정의의 순정남 슈고를 비롯하여 자기 신변 안위를 지키기에만 급급한 다도코로 원장, 악당 피에로 가면 캐릭터도 예외없이 뻔하기 그지없는 스테레오 타입입니다. 의외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마나미가 진짜 흑막으로 피에로를 조종해 범행을 저질렀으며 모든 관계자들을 사살하고 도주했다는게 진상이자 결말만큼은 제법 볼 만 했습니다. 핵심은 피에로가 원장과 간호사를 사살하고 자살했으며, 슈고가 이야기한 마나미라는 환자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고, 모든건 2 번이나 기절했던 슈고의 착각이라고 생각하게 만든 마나미의 트릭입니다. 그녀가 원래 다도코로 병원에 입원했던 환자였기 때문에, 사건 후 경찰이 환자들을 조사했을 때에도 정체가 드러나지 않았던 겁니다! 이를 통해 드러나는, 그녀가 장기 이식을 위해 신장을 빼앗긴 피해자로 복수를 위해 모든걸 꾸몄다는 동기도 합리적입니다.
"사랑 애" 자에 아름다울 미 자를 써서 '마나미'" 라고 한다는 이름도 진료차트 속 신장 이식 피해자 중 한명인 '가와사키 13'에서 따온 - 13 -> I3 -> I 는 '아이 (愛)'로 일본어 발음 '마나', 3은 일본어로 '미'- 일종의 애너그램 비슷한 암호였다는 디테일도 괜찮았고요. 

그리고 작가가 실제로 의사라는데, 그래서인지 병원에 대한 설명과 여러가지 수술과 치료 방법 등에 대한 설명은 깔끔하면서 설득력 높습니다. 이는 분명한 장점이지요.

하지만 결말 이전 전개가 뻔하고 한심한 탓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장기 이식에 대해 길게 풀어가지 말고, 비밀을 진작에 눈치챈 슈고가 원장과 피에로 가면 양쪽에게서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꾸미는게 좋았을 것 같습니다. 이 과정에서 함께 했던 마나미가 진범이었다면 좋은 반전이 극대화될 수 있지 않았을까요?

2021/12/05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 수첩 2 - 오카자키 다쿠마 / 양윤옥 : 별점 2.5점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 수첩 2 - 6점
오카자키 다쿠마 지음, 양윤옥 옮김/㈜소미미디어

이번 권은 미호시의 여동생 미소라가 등장합니다. 그녀도 함께 이런저런 소소한 일상 속 수수께끼들을 풀어내지만, 미소라가 아버지를 찾으려다가 유괴당하는 대사건이 벌어지고 맙니다. 다행히 모든건 잘 수습되고, 아오야마와 미호시의 관계도 한 걸음 더 나아간 느낌을 주며 마무리되지요.

전편과 마찬가지로, 일상계 수수께끼들은 대체로 괜찮았는데,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는 별로였습니다. 유괴는 차원이 다른 중범죄라서 작품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되지도 않았고요. 전체 평균한 별점은 2.5점입니다. 하지만 확 땡기는 맛이 없어서, 후속권을 더 읽을 것 같지는 않네요.

수록 에피소드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제1장 안녕, 미래 님?" 

한 여성이 남자친구가 오사카까지 가는 차표를 사지 못했을 거라는 말을 듣고, 그 진상을 추리하는 내용입니다. 

남자친구가 오사카로 간 게 아니라, 교토에 머물렀을 거라는 미호시의 추리는 그럴듯합니다. 하지만 프로포즈를 했을거라는 추리는 비약이 심했습니다. 단순하게 오사카에 있던 직장을 교토로 옮겼을 수도 있으니까요. 프로포즈임을 확신하려면 다른 단서가 필요했습니다. '여자친구가 외로움을 심하게 타는 성격이다' 정도로는 영 부족했어요.

그래도 이 정도면 일상계로는 괜찮았습니다. 일상 속 수수께끼에 꼭 정답이 있어야 하는건 아니니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제2장 여우의 둔갑 바캉스" 

미호시의 동생 미소라가 교토로 찾아왔다. 그러나 그녀 혼자 오야마 순례를 다녀온 후, 보여 준 기념 사진은 기묘했다. 기념 사진에 함께 찍혀있던 중학생은 같은 시간에, 시내에서 식사 중이었던 미호시와 아오야마 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소라의 오야마 순례는 그날이 아니라 전날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스쳐지나간 중학생 얼굴을 그렇게 잘 기억할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외의 부분은 모두 좋았습니다. 단순한 진상 덕분에 이야기는 깔끔했고, '미소라 옷의 향기'라는 단서로 이를 드러내는 전개도 마음에 들었거든요. 더운 날, 순례 코스를 돌고 왔는데 땀 냄새가 나지 않았다는건, 그녀가 다른 곳에 갔다 왔다는 증거로 충분하지요. 함께 소개되는 미호시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 미호시와 아오야마가 이성 친구인지 아닌지 등의 이야기도 재미있었습니다. 미호시와는 정 반대인 미소라 캐릭터도 매력적이었고요. 오야마 순례, 긴가쿠지 등 교토 명승지 순례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여정 미스터리 느낌을 전해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뭔가 대단한 수수께끼인듯, 미소라와 누군가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가 마지막에 등장하는데, 여러모로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친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라는건 쉽게 짐작할 수 있었거든요. 이렇게 감질나게 등장시켜가며, 또 주인공을 숨겨가며 조금씩 드러낼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본편만큼은 교토의 매력과 적절한 수수께끼가 조합된, 좋은 일상계 추리물이었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제3장 유백색 하트를 망가뜨리다." 

미호시는 모카와 씨가 데려온, 라테아트를 배우고 싶다는 여고생 진바 하나양에게 1주일동안 라테아트를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열심히 연습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는 누군가 그녀가 만들었던 하트 라테아트를 망가뜨려서 조리부 발표회를 망쳤다며 울고 마는데...

하나 양이 사실은 악역이었기 때문에, 요코가 하트를 망치는 장면을 목격했던 다른 조리부 친구들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는 발상이 좋았던 작품입니다. 아울러 이를 통해 발표회를 촬영하던 카메라에 그 장면이 찍히지 않은 수수께기도 설명됩니다. 망칠 때 잠깐 녹화를 정지시킨 것도 마찬가지로 입을 다문 것이지요. 또 조리부 부원들을 무시하는 듯한 하나의 평사시 말투를 근거로, 겉모습과는 다르게 친구들의 반감을 사곤 했을거라는걸 추리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라테아트로 잎사귀 하트, 고양이를 그리려고 했던 건, 하나가 좋아하던 남학생 고야네와 사귀게 된 조리부 친구 요코를 비난하기 위해서였다는건 읽으면서 대충 짐작이 갔더군요. 이름에서 따온 단서들이니 일본인이었다면 훨씬 쉽게 진상을 눈치챌 수 있었을 거에요. 물론 쉬운 단서(?)가 큰 단점이 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야말로 일상계의 왕도다운 느낌이 마음에 드네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제4장 커피 탐정 레일라의 사건 수첩" 

미소라의 휴일, 아오야마와 미호시는 미소라가 두고 간 오래전 추리 소설 "커피 탐정 레일라의 사건 수첩"을 읽고 내용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그 뒤 미호시는 모카와 씨와 교토 카페에 대해 인터뷰를 진행하고 돌아가려는 프리라이터에게, 그가 "레일라의 사건 수첩"을 쓴 카지마 후미에일 거라고 말했다...

이야기 속에서 추리 소설 "커피 탐정 레일라의 사건 수첩" 이야기도 펼쳐지는, 일종의 액자 소설 형식을 갖춘 작품. "커피 탐정 레일라의 사건 수첩"은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커피통에 로스팅한 원두를 가득 담아 두었는데, 정작 판매하는 원두는 로스팅부터 새로 했다던가, 막 갈아낸 원두가루를 봉투에 넣고 밀봉해 버렸다는 것처럼 소설 속 커피점이 벌인 이상했던 행동들을 통해,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는걸 추리해내기 때문입니다. 로스팅 직후 원두가루는 탄산 가스를 방출하며, 가루는 표면적이 불어나 대량의 가스가 빠져나오므로 봉투를 밀봉하면 터질 위험이 있다는데, 이거야말로 제목에 부합하는, 커피 전문가만 알 수 있는 추리라 할 수 있지요! 커피통 속에 시체가 있었고, 커피 봉투에 구멍을 뚫는 송곳이 흉기로 사용되었다는 진상도 합리적이었고요.

본편 에피소드도 좋았습니다. 프리라이터가 카페에 대해 글을 쓰고 있던건 아니라는걸 '제즈베'라는 도구를 통해 확실히 밝혀내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미호시와 아오야마 등은 '제즈베'를 모두 터키식 커피를 우려내는 도구 이브라크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했지만, 프리라이터는 재즈 베이스로 착각했던 탓에 정체가 드러나게 되었지요. 미호시는 직전에 터키식 커피에 대해 취재했던 프리라이터라면 모를리가 없었을 거라고 말합니다. 이 장면은 약간 추리쇼같은 느낌도 주더라고요. 프리라이터의 이름인 후카미 에이지에서 그가 "커피 탐정" 시리즈 작가 카지마 후미에라는걸 드러내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아주 간단한 애너그램이지만, 본명과 필명을 오가기에 이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으니까요.

에피소드가 끝난 뒤, 그가 미소라의 친부일지도 모른다는 정보를 살짝 흘리며 2권 전체를 아우르는 큰 이야기 시작을 알리는 에피소드이기도 합니다. 이 부분은 작품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되기는 했지만 에피소드가 마무리 된 이후 등장하는 사족이었고, 본편은 물론 "커피 탐정" 이야기도 추리적으로는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기에, 무엇보다도 '커피'에 대한 여러가지 정보가 핵심 증거로 쓰였다는 점에서 이번 권의 베스트 에피소드로 꼽겠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제5장 (she Wanted To Be) WANTED" 

미소라의 밴드 후배 무라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사귀다 헤어졌던 여학생 만다 린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걱정 전화였다. 그녀는 예대 진학을 계기로 가족과도 멀어졌고, 생활고 탓에 별다른 친구도 없었다. 무라지와 함께 찾아간 그녀 자취방에서 자살 명소 도진보를 체크해 놓은 잡지를 발견한 둘은 서둘러 신칸센을 타고 도진보가 있는 야와로 온천 역으로 향했다...

미소라의 후배 린을 찾는 소동에서 있었던 수수께끼, 여행을 떠나며 자취방 문을 잠갔는데 미소라가 무라지와 함께 찾아갔을 때 문이 열려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풀어내는 에피소드. 유일한 여벌 열쇠는 고베에 살고 있는 린의 어머니만 가지고 있었다는 설정입니다. 무라지가 다른 여벌 열쇠로 미리 침입했던 거라는 아오야마의 추리는 무라지가 린의 행방을 전혀 몰랐고, 미소라와 함께 자취방을 찾을 때 까지 너무나 태평했었다는 이유로 부정당합니다. 무라지가 몇 만엔이나 되는 여행 비용을 마련할 길이 없어서 미소라 돈으로 비용을 마련하려고 꼼수를 썼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이미 린의 실종 사실을 알고 있었던만큼 그렇게 태평하게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요.

진상은 사이가 나빴다는 어머니가 고베에서 자가용으로 밤새 운전해서 린의 집을 찾았던 겁니다. 아무리 사이가 나빠도 부모는 부모라는 이야기거지요. 어머니가 자신을 찾기를 린이 원했다는 여러가지 단서들도 잘 배치되어 있는 편입니다. 책갈피 대신 책장 귀퉁이를 접어 놓는걸 개의 귀에 빗대서 '도그이어'라고 한다는 정보도 귀엽고 반가왔고요.

그러나 독립된 이야기라기 보다는, 부모 자식 관계에 대한 에피소드를 통해 2권 전체를 아우르는 소재인 자매의 아버지를 드러내는, 일종의 징검다리 역할 수행이 더 중요했던 소품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이야기보다도,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가 더 중요하거든요. 미소라가 '아버지'라고 생각했던 사람을 미호시와 만나게 하려다 위험에 빠지는 내용이 이어지니까요. 뭔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에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제6장 the Sky Occluded in the Sun" 

미소라를 납치한 누군가가 협박 전화를 걸어왔다. 경찰에 신고하지 말고 천만엔을 준비하라고 요구했지만, 미호시는 그가 작가 카지마 후미에라는걸 바로 알아채고, 아오야마에게 경찰 신고를 부탁했다. 그런데 아오야마의 폰에는 미소라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전송되어 있었다. 빨간색 태양 문자를 통해 레코딩, 녹음, '로쿠온'을 떠올린 둘은 미소라가 긴카쿠지 근처에 있다는걸 밝혀냈다. 처음 미소라를 만났을 때, 아오야마가 미소라에게 긴카쿠지의 정식 명칭이 '로쿠온지'라고 말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권의 핵심인 미소라 유괴 사건을 그리고 있는데, 앞서 말씀드렸지만 영 별로였습니다. 추리적으로 특히나 볼게 없어요. 우선 문자 메시지를 통한 약간의 암호 트릭은 억지스럽습니다. 태양에서 로쿠온까지 이어지는 과정이 그리 설득력 높다고 하기 어려운 탓입니다. 그냥 빨간색 동그라미를 보냈다는게 훨씬 설득력이 높았을겁니다. 

이 암호 트릭을 제외하면 전형적인 유괴극으로, 후카미가 몸값을 안전히 전달받고 탈주하려는 나름대로 공들인 계획이 중요하게 묘사되지만 이 부분의 설득력도 낮습니다. 달리는 차에서 돈가방을 던지게 한 뒤 회수하여 탈주한다는건 정교한 계획이라고 부르기 힘드니까요. 경찰에 신고했다면, 돈을 던진 장소 중심으로 차도만 봉쇄해도 교토 시내를 빠져나가는건 불가능했을테지요.

한마디로 스케일과 극적 요소에 비하면 그리 잘 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물에 빠져 죽었다는 자매 아버지의 죽음도 작위적으로 보여서 별로 와 닿지 않았어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제7장 별밤 하늘 밑에서 목숨을 잇다" 

자매 아버지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 자매 아버지 죽음의 계기가 되었던 물에 빠졌던 아이가 누구인지? 왜 미소라가 카지마를 아버지로 착각했는지? 그리고 미소라와 미호시가 쌍둥이였다는게 밝혀지는 약간의 서술 트릭스러운 사실이 밝혀지는 일종의 사건 후일담. 미호시가 아오야마와 미소라의 관계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은 귀여웠습니다만 독립된 에피소드라고 보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딱히 없습니다.

"에필로그 그녀는 카페오레 꿈을 꾼다" 

미소라가 고향으로 돌아가고, 체포된 후카미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되는 진짜진짜 에필로그. 6장, 7장과 결합되어 하나의 이야기로 보아야 하기 때문에 따로 별점을 주지는 않겠습니다.

2023/06/23

까마귀의 엄지 - 미치오 슈스케 / 유은정 : 별점 2.5점

까마귀의 엄지 - 6점
미치오 슈스케 지음, 유은정 옮김/문학동네

<<아래 리뷰에는 진상,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케자와는 실수로 직장 동료 빚을 떠앉은 뒤 사채를 끌어쓰다가 몰락하고 사채업자 밑에서 일하게 되었다. 채무자의 남은 돈을 쥐어짜는 일이었다. 그러다 한 편모 가정의 어머니가 자살한 뒤 다카자와는 충격을 받고 조직의 비밀 서류를 빼돌려 경찰에 신고했다. 조직은 괴멸되고 두목 히구치는 체포되었지만, 다케자와는 보복을 당해 열두살 딸 사요를 잃고 말았다.
7년이 흘러 다케자와는 똑같이 사채로 아내를 잃은 데쓰와 팀을 이루어 자잘한 사기를 저지르며 먹고 살았다. 다케자와 때문에 자살한 여자의 딸들 - 마히로, 야히로 - 과 그 남자친구 -간타로 - 와 우연찮게 동거하던 중, 다케자와를 노리는 누군가가 나타났다. 히구치의 복수임을 직감한 다케자와는 도망치려 했지만, 데쓰와 마히로, 야히로, 간타로의 조언과 도움으로 반격을 결심했다.
도청 장치를 설치한 선불폰을 이용하여 사채 조직의 계좌 정보를 빼낸 뒤, 도청 탐지 업체를 위장하여 조직에 잠입하여 금고 속 현금을 털 계획을 세웠고, 5명 모두가 역할을 맡고 실행에 나서는데....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은 여태까지 모두 일곱 권 읽어보았습니다.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은 좋았지만, 그 외는 대체로 그냥저냥이었어요. 서술 트릭과 무리한 설정에 기대는 경우가 많았던 탓입니다. 그래도 이 작품은 이런저런 랭킹에서 추천했고, 아베 히로시 주연의 영화로도 개봉된 적이 있는 대표작이기에 관심이 가던 차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작품은 크게 심각한 사채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전반부, 유쾌한 범죄를 그리는 후반부로 나뉩니다. 전반부에서 묘사되는 다케자와와 데쓰의 과거는 사채가 원흉이 된 가족의 파멸이라는 점에서 <<화차>>를 떠오르게 만드는데, 중반 이후 분위기는 돌변합니다. 다양한 인물들이 개성을 뽐내며, 비교적 유쾌하게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외눈박이 원숭이>>와 비슷하게요. 또 다케자와 일당이 히구치 조직의 돈을 빼돌리려고 한탕 작전의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과정은 <<스팅>>이나 <<뉴욕을 털어라>>와 같은 케이퍼 소설 - 범죄자가 주인공으로 범죄를 유쾌하고 가볍게 다룬 소설 - 이라고 보아도 무방하고요.

그런데 전반부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다케자와가 빚을 진 이유는 본인 실수입니다. 무고한 소시민이 사채의 늪에 빠져든게 아니라요. 일종의 사기를 당한거긴 하지만, 누구 탓을 할 건 못됩니다. 빚을 졌으면 갚아야죠.
게다가 딸마저 잃고 좌절한 다케자와가 '사기'로 먹고 살게 되었다는건 최악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등쳐먹는 사기꾼이야말로 사채업자보다 더 나쁜, 최악의 인물 아닌가요?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던들, 현재의 사기 행위에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자잘한 범죄를 통해 기획력, 행동력을 선보이며 마지막 큰 '한탕'을 계획할만한 인물이라는걸 설명하기 위한 어쩔 수 없던 설정이라 생각되는데, 감정이입하기는 힘들었습니다. 사기꾼 주인공이 나올 수는 있어요. 다만 그럴거라면, <<스팅>> 처럼 대놓고 범죄물로 그리는게 나았을겁니다. 괜히 사채업자의 피해자라는 설정을 덧붙일 필요는 없었습니다. 이야기와 별 관계도 없고요.
자잘한 사기 행각 - 은행에서 출금한 손님의 현금을 빼돌리는 사기, 데쓰와 다케자와가 처음 만날 때 데쓰가 저질렀던 자물쇠 교체 사기, 전당포를 이용한 사기 등 - 도 재미는 있었지만 치밀하고 잘 짜여진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아울러 <<외눈박이 원숭이>>가 떠오르는 다소 과장된 인물 설정도 감정이입을 방해합니다. 다케자와와 데쓰 외에는 비현실적인 인물들인 탓입니다. 화룡정점은 마술사 간타로입니다. 말투와 행동 묘사 모두가 도저히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같지 않았어요.

그래도 후반부 한탕 작전은 꽤 재미있었습니다. 아래와 같이 그럴싸한 단계를 거치면서 상당한 설득력을 보여주는 덕분이지요. 흥미진진하기도 하고요.
  1. 일당은 싼 가격으로 유혹하여 히구치의 사채 조직이 도청 장치를 심어놓은 선불폰을 구입하게 만들었다.
  2. 도청으로 사채 조직의 계좌 번호를 빼 낸 뒤, 이를 알리는 편지를 보내어 계좌 속 현금을 사무실에 보관하게 만든다.
  3. 도청 감지 업체를 위장하여 사무실에 잠입한 뒤, 금고 속에 도청 장치가 있다고 속여 금고를 열게 만든다.
  4. 장난감 총을 진짜처럼 보이도록 속여 돈을 강탈한다.
  5. 달아나던 마히로가 건물에서 떨어져 죽은 것 처럼 위장하고 돈을 빼돌린다. (돈이 들었던 봉투를 바꿔치기 함)
알고보니 작전은 히구치가 이미 알고 있었으며 히구치가 모든걸 용서하고 끝낸다는 마무리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는 다들 과거를 잊고 각자의 인생을 사는 완벽한 해피 엔딩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일당이 저지른 행위는 엄연히 범죄이니만큼 이 정도로 마무리되는게 현실적이었겠지요.

하지만 문제가 없지는 않습니다. 특히 가짜 총까지 동원해서 돈을 훔치려고 했다는건 억지스러웠습니다. 일당 중에 마술사가 있었으니, 자연스럽게 봉투를 바꿔치기하는게 더 현실적이었을거에요. 계획대로 히구치 조직이 연극에 속아넘어갔다 하더라도, 금고에 돈을 돌려 놓을 때 봉투가 바뀐걸 알아챘을테니까요. 저 연극이 그렇게 시간을 많이 벌어주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불법 추심 사채업체라 하더라도, 돈을 훔쳐 달아나던 사람이 떨어져 죽었다고 그냥 돈만 회수하고 물러난다는 것도 애매했습니다. 돈을 어떻게 모았건 간에, 모은 돈을 도둑맞았으니 엄연히 피해자입니다. 구태여 몸을 사릴 필요는 없어요.

다행히 마지막 반전이 이 단점들을 한 방에 해결해 줍니다. 다케자와 일당이 모든걸 걸었던 한탕 작전은 데쓰가 꾸민 연극이었다는 반전입니다.
데쓰는 마히로, 야히로 자매의 아버지로 자기가 집을 떠난 뒤 아내가 자살한 것에 대한 복수, 다케자와에 대한 연민 등이 겹쳐 남은 사람들이 모든걸 털고 새롭게 일어날 수 있도록 이런 일을 벌였던 겁니다. 그는 굉장한 경력과 실력의 사기꾼으로 연극에 사용한 거액의 돈은 진짜 히구치에게 사기쳐서 확보했고요. 그래서 다소 어설퍼보였던 작전, 그리고 이상할정도로 낭만적이었던 결과 - 히구치가 모든걸 용서하고 놓아주는 - 가 설명됩니다. 다케자와가 '사기꾼'이라서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전반부도, 사기는 나쁘다는걸 확실하게 알려주며 마무리되어서 납득할 수 있게 만들고요.
데쓰가 모든걸 꾸몄다는걸 교묘하게 이야기 속에 숨겨서 진행한 것 역시 감탄스러웠습니다. 초반, 데쓰가 애너그램에 능하다는 것에서 시작해서 다케자와가 데쓰의 사기를 눈치챌 때부터 모든 부분에 관련된 단서를 교묘하게 삽입하고 있으며, 이를 마지막에 드러내는 솜씨는 절묘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그냥 케이퍼 범죄물로 끌고가는게 훨씬 좋았을거라는 생각은 들지만, 한 번 읽어볼만한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영화가 궁금하네요.

2022/07/02

미스터리를 읽은 남자 - 윌리엄 브리튼 / 배지은 : 별점 3점

미스터리를 읽은 남자 - 6점
윌리엄 브리튼 지음, 배지은 옮김/현대문학
인기 탐정이 등장하는 시리즈를 답습하는 작품은 많습니다. 탐정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셜록 홈즈의 경우는 작가 사후에도 다른 작가들에 의한 시리즈가 계속되었고, 에놀라 홈즈와 같은 가족이 등장하는 스핀 오프에 각종 패러디와 파스티슈 물까지 합치면 그 수는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저 역시 <<경성 탐정록>>이라는 파스티슈 물로 숟가락을 얹었었지요.
문제는 누구나 다 아는 탐정이 등장하기에 별다른 변주를 하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셜록 홈즈가 21세기에 환생을 하든, 이세계로 전생을 하든간에 그는 셜록 홈즈이니까요.

하지만 이 단편 시리즈는 이런 문제점을 획기적으로 해결한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그 탐정이 등장하는 시리즈 작품을 읽은 누군가가, 자기가 흠모하는 탐정을 따라해서 사건을 해결하기 때문에 시대와 탐정역에 얼마든지 변주가 가능하거든요. 등장하는 탐정들 모두가 고전 정통 본격물 탐정들이라서, 모든 이야기들이 고전 정통 본격물에 어울리는 추리물이라는 것 역시 마음에 든 점이었고요. 작가 취향이 저와 비슷한게 확실해 보입니다.

물론 몇몇 작품들은 원래 탐정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논쟁의 여지가 있기는 합니다만, 고전 정통 본격물 애호가의 마음에 불을 지르는 좋은 시리즈라는건 분명합니다. 뒤이은 수록된, 저자의 다른 시리즈인 스트랭 씨 시리즈 역시 고전 정통 본격물로서 나쁘지 않은 수준을 보여주기에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덕분에 오랫동안 겪고 있었던 고전 정통 본격물 금단 현상이 조금이나마 해소된 듯 합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11편이나 되는 "~를 읽은 남자" 리뷰를 쓰다보니 힘이 빠져서, 스트렝 씨 시리즈는 제일 괜찮았던 한 편만 소개드립니다.

<<존 딕슨 카를 읽은 남자>>
에드거는 존 딕슨 카 소설에 나오는 것같은 밀실을 만들어 삼촌을 살해할 계획을 세웠다. 계획의 핵심은 벽난로였다. 삼촌을 살해하고, 깨끗하게 청소한 벽난로 굴뚝으로 빠져나온 뒤 난로에 불을 붙여 밀실로 만들 셈이었다...

아주 오래 전 읽었었던 작품. 존 딕슨 카하면 떠오를 '밀실'을 소재로 만든 작가의 처녀작입니다.
범인이 범행 계획을 앞 부분에 상세하게 설명해준다는 점에서 '도서 추리물' 형식을 띄고 있기는 하지만, 본격 추리물은 아닙니다. 오히려 블랙 코미디에 가깝지요. 그래도 재미만큼은 나무랄데 없네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엘러리 퀸을 읽은 남자>>
엘러리 퀸의 광팬 아서 민디가 머무는 양로원에서 위책 노인이 애지중지하던 10달러 금화가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유일한 용의자 데니슨이 그들 앞에서 옷을 벗기까지 했지만, 금화는 찾을 수 없었다...

엘러리 퀸 광팬이 <<퀸 수사국>> 속 <<마약 부서 검은 장부>>라는 작품을 인용해가며 추리를 펼친다는건 시리즈 설정에 딱 맞아 떨어지는데, 사실 아서 민디는 별로 엘러리 퀸같지는 않았습니다. <<검은 장부>>에서의 트릭과도 아무 관련이 없고요.
오히려 원전보다 추리적인 부분은 훨씬 낫습니다. 아서 민디는 데니슨의 뺨 상처가 벌어진 이유, 계단을 끔찍히 싫어하면서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긴 이유를 추리하여 진상을 밝혀내는데, 설득력 높은 완벽한 추리였기 때문입니다.

정통파 본격 추리 단편의 교과서같은 작품으로, 제 별점은 5점입니다. Hall of Fame!

<<읽지 않은 남자>>
몬티는 친구 포드에게 벽돌을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다. 암실용 방을 새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포드는 몬티의 아내 헬렌이 죽은 교통사고를 일으켰지만, 몬티는 그건 사고였다며 포드를 달랬다. 두 남자는 곧바로 벽을 쌓기 시작했고, 몬티는 포드에게 그가 좋아하는 위스키 코노서스 초이스 반 병을 건넸다...

포드는 헬렌이 갑자기 도로 한 복판으로 뛰어나와 사고가 났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몬티는 집 앞 우편함에 포드 차 페인트가 묻었다는 것, 그리고 현장 근처에서 버려진 위스키 병을 찾아낸 뒤, 포드가 차에서 술을 마시다가 헬렌을 덮쳤다고 추리합니다. 그래서 복수를 위해 포드를 불러 벽을 쌓는 척 하고 암실 안에 가둬 버리고 말지요.

그런데 차 안에서 술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고 당시 포드가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판단한 수사 결과는 별로 와 닿지 않았습니다. 분명 사고를 일으킨게 분명한 포드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몬티를 당당하게 찾아온 경위, 그리고 제 발로 갇힌 방을 만드는데 참여한 것에 대한 설득력도 부족했고요. 몬티는 포드가 에드거 앨런 포의 <<아몬티야도 술통>>을 읽지 않아서 이 함정에 빠졌다고 말하지만, 이건 책을 읽고 안 읽고의 문제는 아닌 듯 합니다. 애초에 위험한 상황에 제 발로 들어간게 문제거든요.

읽지 않은 남자라는 변주는 좋은 발상이었는데, 결과물은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렉스 스타우트를 읽은 여자>>
카니발에서 "뚱뚱녀" 역할을 맡은 거트루드는 연기를 위해 렉스 스타우트 작품을 탐독하다가 빠져들게 되었다. 쇼 단원 중 거트루드가 딸같이 아끼던 뱀 조련사 릴리가 살해된채 발견되자, 거트루드는 직접 사건을 해결하려 나서는데...

렉스 스타우트의 네로 울프와 뚱뚱하다는 점, 그리고 아치와 같은 조수(?)가 있다는 연결 고리는 가지고 있지만, 내용 자체는 렉스 스타우트, 그리고 네로 울프와 별 관계는 없습니다. 평범한 추리물이에요.
그러나 정통파 본격물로 보기에는 애매했습니다. 핵심 단서인 사건 현장에서 발견되었던, 반쪽짜리 메달에 적힌 BY-BY라는 글귀에 대한 단서 제공이 전무한 탓입니다. '비실이'라는 별명을 들으면 불같이 화낸다는 설정도 너무 후반부에서나 드러나서, 전개 면에서도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었고요. 그냥저냥한 작품으로제 별점은 2점입니다.

<<애거사 크리스티를 읽은 소년>>
시골 마을 라킨스코너에 벨기에 교환학생인 열 살짜리 천재 자크 뒤몽드가 찾아왔다. 자크는 마을 경찰 맥스 코리와 친구가 되는데, 어느날 라킨스코너에 수 명의 대학생들이 찾아와 기묘한 장난을 벌이는 사건이 일어났다...

대학생들이 노린건 희귀 우표였는데, 이걸 사다가 혹시 발각될까봐 다른 기묘한 사건을 벌였다게 진상입니다.
그런데 진상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도무지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마을을 들 쑤실 필요는 없었습니다. 여러 명이 서로 모르는 사람인 척, 차례대로 원하는 우표가 나올 때 까지 우표를 그냥 사면 아무 문제 없이 끝났을테니까요. 독자가 뭔가 희귀 우표 관련된 사건이라고 쉽게 짐작 할 수 있다는 점도 감점 요소였습니다.
아울러 탐정역인 자크가 벨기에인으로 대화하다가 프랑스어를 섞으며, 심지어 10살 짜리가 있지도 않은 콧수염을 만지는 시늉을 한다는 식으로 포와로를 따라한다는 묘사는 심하게 억지스러웠습니다. 학생들이 노리던 우표는 인쇄 오류로 '콧수염'이 생긴 것 처럼 인쇄되었다는 것도 이러한 억지 포와로 따라하기의 화룡정점이라 할 수 있고요. 추리도 별 볼일 없었습니다. 시리즈 최악의 작품으로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아서 코난 도일을 읽은 남자>>
테리 왓슨에게 대학 후배 대니얼 블래싱검이 편지를 보내왔다. 그러나 전혀 알지 못하던 사이인데다가, 뚱딴지같은 내용이어서 이유를 알기 위해 왓슨은 편지 속에서 언급된 다른 인물에게 전화를 건 뒤, 워싱턴으로 호출되었다. 알고보니 블래싱검은 타국 대사관에서 암약하는 스파이로, 중요한 목록이 담긴 상자의 비밀 번호를 편지 속에 숨겨 보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왜 테리 왓슨에게 편지를 보냈는지는 모른채 시간은 흘러만 가는데...

왓슨에게 보내진 엉뚱한 편지에 암호가 감추어져 있다는 설정은 흥미로왔습니다. 세개의 이어진 영어 알파벳이라는 암호도 단순해서 좋았고요. 무엇보다도 이 암호 때문에 테리 왓슨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결말이 아주 유쾌했어요. 암호는 "LMN"으로 이는 셜록 홈즈의 유명한 대사 - '엘레멘터리 왓슨 - 그건 기본이야 왓슨' - 를 떠올리면 풀 수 있기 때문입니다. ""LMN 테리 왓슨" 이 되니까요.
말장난이기는 해도,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를 읽었어야만 풀 수 있는 암호라는 점에서 시리즈 취지에도 잘 부합하기에,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체스터턴을 읽은 남자>>
브라운 신부 시리즈의 애독자 케니 신부는 추찹한 사진을 밀매하다가 자살했다는 교구민 팀 해링턴의 장례 미사 문제로 주임 시부 고거티 신부와 언쟁을 벌였다. 그 뒤 고거티 신부는 팀 해링턴이 자살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아내 보라며 케니 신부에게 하룻 동안의 유예를 주었다. 그리고 케니 신부는 사건 담당인 깐깐한 언셀 형사와 함께 방문한 사건 현장에서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는데....

브라운 신부 스타일의 탐정물이라기 보다는, 브라운 신부가 가치 있는 작품이라는걸 증명하는 작품에 가깝습니다.
그래도 추리적으로도 괜찮습니다. 특히 팀 해링턴이 자살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드러나는 장면은 꽤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차에 반사되는 햇살을 보고, 추잡한 사진을 슬라이드로 보려면 '커튼'을 쳤어야 했는데 현장이 그렇지 않은걸 눈치채는게 아주 자연스러웠거든요. 깐깐한 언셀 형사가 설득당한게 일리가 있다고 생각될 만큼 좋은 추리였습니다. 사진 배달부의 실수가 살인으로 이어졌다는 동기도 짧은 분량에 잘 드러나있고요.
여러가지 철학적이고 현학적인 대사를 장황하게 펼치며 쉬운 말도 한번 더 꼬아서 말하는 브라운 신부와는 전혀 다른 신세대(?) 신부지만, 애정하는 브라운 신부를 위해 발벗고 나서는 케니 신부 캐릭터도 마음에 드네요. 스타일은 전혀 다르지만, 그 작품에 푹 빠졌다는 건 "~를 읽은 남자" 시리즈에 속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지요.

한 마디로 말하자면, 재미도 있고 추리적으로도 괜찮은 좋은 단편 추리물로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대실 해밋을 읽은 남자>>
정년 퇴직 후 도서관에서 책 정리하는 잡무를 하게 된 프리처드는 어느날 도서관장 디컨 씨의 부름을 받았다. 추리소설 애호가 패러것이 도서관 이사회 회장 앤드루 킹과 건 내기 때문이었다. 패러것이 도서관 어딘가에 감추어 둔 책을 찾으면 그가 추리소설 초판본 컬렉션을 도서관에 기증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추리소설 매니아 프리처드가 앤드루 킹을 도와 패러것이 준 간단한 단서로 한 시간 안에 책을 찾기 위해 애쓰게 되는데....

아르바이트하는 추리소설 매니아가 자신의 취미를 이용해서 도서관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낸다는, 추리소설 애호가들에게는 꿈 같은 이야기. 추리 소설 매니아 프리처드 씨에게도 행운이 닥치는 결말까지도 아주 환상적이네요.

이야기의 핵심인 보물찾기 게임도 꽤 그럴듯하고, 합리적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한국인 독자는 풀이 과정에 동참하기 어렵다는겁니다. "3.14"가 적힌 봉투 안에 "더블 더즌", 그리고 "몰타의 매"라고 적힌 카드가 한 장씩 들어있는게 힌트였는데, "3.14" -> 파이는 "Pie"로 바꿀 수 있고, "더블 더즌"은 24, "몰타의 매"는 "매"가 소문자라서 말 그대로의 새를 의미하므로 "검은 새"가 되고, 이게 "파이 안에서 구워지는 스물 네 마리 검은 새"라는 동요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한국 독자에게는 쉽지 않은, 거의 불가능한 추리인 탓입니다.

그래도 재미도 있고, 추리적으로도 깔끔한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조르주 심농을 읽은 남자>>
친구 해럴드와 함께 고가의 화물을 나르는 바니는 조르주 심몽의 메그레 시리즈를 탐독해왔다. 그들은 대저택에서 '라이트풋' 래리 쇼필드라는 고용인 앞에서 싣고 온 화물을 내려놓았다. 그는 별명 그대로 알록달록 화려한 가죽 부츠를 신고 있었다. 그러나 바니는 메그레 경감의 활약을 떠올리며, 래리 쇼필드가 가짜라고 확신하는데...

메그레 경감은 사실 대단한 추리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은 아닙니다. 좀 우직하고, 인간 내면을 성찰하는 부분이 많은 편이죠. 그러나 성실하고 꼼꼼한데다가 관찰력이 뛰어난데, 이 작품 속 바니 역시 관찰을 통해 래리 쇼필드가 가짜라는걸 알아내게 됩니다. 그는 래리 쇼필드가 절대로 다리를 꼬지 않고, 발바닥을 계속 땅에 대고 있는걸 눈치채거든요. 부츠를 갈아신었는데, 새것이라는게 들통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요.

하지만 단지 부츠가 새 것이라는게 그가 가짜라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물론 래리 쇼필드가 자기 입으로 흙길을 걸어 왔다고 말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부츠는 얼마든지 갈아 신을 수 있잖아요?
바니가 오지랖을 떨어서 쇼필드의 정체를 폭로한 이유도 불분명합니다. 설령 눈치를 챘더라도, 현장을 벗어나 경찰에 신고하는게 당연했습니다. 현장에서 총을 든 상대방을 위협해가며 추리쇼를 펼칠게 아니라요.

이렇게 단점이 더 눈에 많이 뜨이며, 메그레 경감의 특징을 잘 살린 것도 아니라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존 크리시를 읽은 소녀>>
에밀 프랫은 오랫만에 겨우 집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담당하고 있는 도킨스 사건 때문이었다. 영국인 도킨스는 미국으로 여행을 왔었는데, 칼에 찔려 살해당했다. 도박으로 땄던 3천 달러 정도를 노린 범행이었다. 그는 죽기 전 경찰에게 "올드 피싱.."과 비슷한 말을 남겼다. 에밀 프랫의 딸 메릴리는 최근에 읽고 있는 존 크리시의 기디온 경정 시리즈에 나온 영국 코크니 말투가 해결의 실마리라는걸 아빠에게 알려준다....

기디온 경정의 활약보다는, 작품에 등장했던 영국 런던 토박이 코크니들의 은어가 단서가 된다는건 독특했습니다.
그러나 다이잉 메시지라는 억지스러운 설정에 더해 죽어가면서 은어를 써서 단서를 남길 이유가 설명되고 있지 않은 등, 이야기의 설득력이 낮다는건 아쉬웠어요. 당연히 한국인 독자로서는 추리하기도 힘든 내용이었고요. 그냥저냥한 작품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아이작 아시모프를 읽은 남자들>>
역사 교사 폴 해스킬, 전화선 보수 기술자 재스퍼 지머먼, 대장장이 가브리엘 둔, 은행장 시드니 워윅과 메리 팅커 술집 주인 핀들레이의 다섯 명은 모두 아이작 아시모프 박사의 팬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메리 팅커 술집에 모여 "흑거미 클럽" 처럼 수수께끼 풀이 놀이를 하곤 했었다. 그러나 진짜 작은 마을 홀컴밀스에서는 별다른 사건이 없어서 놀이 속 수수께끼는 공상에 불과했다. 그런 그들에게 기자 에드거 바시가 진짜 수수께끼를 가져왔다. 마을 최대의 백화점 '밸류 투데이'의 사장인 마케팅 귀재 데이비 로터스가 천 달러가 들어있는 금고를 전시장에 공개하고, 금고를 열면 누구나 돈을 가져갈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비밀번호가 무엇인지에 대한 수수께끼였다. 아시모프 팬들은 각자 자신만의 추리를 들려주는데...

아이작 아시모프의 '흑거미 클럽'에 대한 일종의 파스티슈 작품. 참석자들이 각자 내 놓는 추리들이 눈길을 끕니다. 감히 '흑거미 클럽'을 운운할 수 없는, 여러모로 부족한 추리들이었지만 각자의 직업과 전문 분야에 바탕을 두고 있어서 잘 와 닿기는 했습니다. 마지막에 집사 헨리의 포지션인 술집 주인 핀들레이가 정답을 맞추고 천 달러를 얻는 결말도 좋았어요.
무엇보다도 밸류 투데이는 데이비 로터스의 철자를 가지고 만든 애너그램으로, 이를 이용하면 금고 번호를 알아낼 수 있다는 진상에 대한 정보도 공정하게 제공한다는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런게 바로 정통 본격 고전 추리물이라 할 수 있겠지요. 한국인 독자에게는 쉽게 추리할 수 없는 내용이기는 했지만요.

여러모로 아시모프의 원전인 걸작을 잘 이해하고 쓴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 2부 스트랭 씨 이야기 -
<<스트랭 씨 여행가다>>

스트랭 씨는 단체 버스 투어로 캐나다 여행을 떠났다. 그의 옆 자리에 앉게 된 건 제리 수녀였다. 그리고 여행 도중 제리는 가판대에서 나무로 된 십자가를 구입했는데, 그 십자가가 사라져 버린 사건이 일어났다.
스트랭 씨는 귀국 직전 십자가 사건과 퀘벡에서 일어났던 은행강도 사건의 연관성을 추리해 내고, 버스에서 추리쇼를 벌이게 되는데...


작가의 또 다른 시리즈인 고교 과학 교사 스트랭 씨 시리즈의 수록작 중 마지막 작품이자 가장 마음에 든 작품입니다. 십자가를 '길포일' 이라는 여행객으로 변장한 은행강도 르클레어가 훔쳤던 이유는, 십자가를 포장했던 신문지 때문이었다는 추리가 특히 좋았습니다. 신문에 르클레어 사진이 실려 있었다는 이유는 십자가를 훔칠 충분한 이유가 되니까요. 비록 프랑스어이기는 하지만, 이에 대한 정보도 제공하고 있고요. '알맹이보다 포장지가 중요하다'는 기상천외한 발상은 왠지 "브라운 신부" 시리즈가 떠오르기도 해서, "~를 읽은 남자" 시리즈로 썼어도 좋았을 것 같네요.
은행강도가 도주를 위해 미국인 단체 여행객으로 변장한다는 아이디어도 국경에서 어떻게 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당히 설득력있게 들렸습니다.

이렇듯 추리물로서 상당한 수작이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이 시리즈가 더 이어지지 못했고, 국내 소개도 이 단편집에 수록된 4편만으로 끝난게 못내 아쉽기만 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