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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05

비밀의 문 - 김래성 : 별점 2.5점

비밀의 문
김래성 지음/명지사

정말 오랫만에 올리는 추리소설 리뷰네요. 그간 NDSL에 빠져 살다가 회사에 기계를 반납한 뒤 겨우 원래의 생활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무섭다 NDSL!)

"쌍무지개 뜨는 언덕"과 "실락원의 별", "청춘산맥"으로 유명하지만 원래 추리문학으로 등단한, 우리나라 추리소설의 효시라 할 수 있는 김래성 선생님의 단편집. 이전에 읽었었고 집에도 계속 있었지만 최근 "설홍주" 관련 이야기를 쓰다가 참고할까 해서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9편의 단편이 실려있는데 말미에는 김래성 선생의 추리문학소론이라는 30년대의 강연자료까지 수록되어 있어서 자료적 가치는 무척 높습니다. 작품들도 20~30년대 분위기가 가득하고요.
아울러 긴장감을 이끌어 내는 솜씨와 극적 반전, 공포 등은 시대가 훨~씬 지난 지금 읽어도 낡았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라 과연! 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선생님의 작가적 명성에 비하면 정통 추리 단편집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에도가와 란포"와 굉장히 유사한 변격물이 대부분으로 추리물다운 트릭이 등장하는 작품은 거의 없거든요. 그나마 정통 추리에 가까운 작품은 "비밀의 문"과 "벌처기", 그리고 국내 최초의 추리 소설이라 할 수 있는 "타원형 거울" 정도네요.
게다가 두 남자와 한 여자라는 상투적인 소재가 난무하고 등장인물들도 화가, 작가 등이 거의 대부분의 작품에 등장하고 있다는 점 등은 좀 쉽게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뻔했습니다. 지나친 통속성도 거슬리는 부분이었고요. 이러한 부분에서는 국내 후대 작가에게 안 좋은 쪽으로만 영향을 끼친 느낌이 물씬나더군요.

결론내리자면 자료 측면에서야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고 재평가받아 마땅한 작품들임에는 분명하나 추리문학의 효시라는 칭호에서 기대한 기대치에는 미치지 못했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 진정한 고전이 되기에는 2% 정도 모자라 보이네요.

저의 베스트는 "타원형 거울" 입니다. 변격물 취향이라면 "이단자의 사랑"과 "악마파"도 아주 괜찮은 발상의 작품이긴 한데 제 취향은 아니라서...
1. 비밀의 문 :
살인광선을 개발한 강박사에게 괴도 그림자로부터 그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훔쳐가겠다는 편지가 배달된다. 강박사는 예고 시간까지 조수들과 함께 광선 설계도를 철통같이 지키지만 그림자가 정작 훔쳐간 것은 박사의 외동딸 영채였다.
범죄 예고, 유괴라는 흥미진진한 소재가 등장하고 있으며 원래 방송극용 대본이었던 탓인지 김래성 선생 작품답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범죄(?) 이야기로 쓰여져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트릭은 별게 없지만 꽤 괜찮은 편이고요. 깔끔한 평작입니다.

2. 이단자의 사랑 :
병원 원장 김철하는 간호사로 일하던 애련과 결혼한 사이지만 애련의 전 애인인 시인 추강에게 그녀를 내어주고 대신 1년에 한번만 그녀를 볼 수 있게 해달라는 청을 하여 허락받게 된다.
전형적 변격물로 두 남자와 한 여자라는 이 단편집 전체를 관통하는 설정을 극단적으로까지 묘사한 작품입니다. 내용은 지루하고 뻔하지만 마지막의 반전인 "고래고기" 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저희 아버지도 약 40여년전에 이 작품을 읽었는데 반전을 아직도 기억하시고 계시더군요. 그만큼 당시에는 충격을 안겨다 준 획기적 발상이라 할 수 있겠죠. 물론 지금 읽기에는 좀 낡긴 했지만 당시 이런 생각을 했다는 점에서는 박수를 보내고 싶네요.

3. 악마파 :
내가 여동생 루리와 함께 동경에 유학하던 시절 만났던 두명의 미대생 노단과 백추 두명은 루리를 사랑하게 된다. 부자집 아들이며 건장한 체구의 노단과 가난뱅이에 불구자이지만 천재적 화가인 백추의 사이에서 갈등하던 중 백추가 "제전"에 그림이 입상한 기념 파티에서 벌어진 소동 이후에 행방을 감추게 되자 노단과 루리의 결혼을 허락한다.
역시 전형적 변격물로 화가로서의 창작 욕구를 위해 다른 것의 희생을 강요하는, 어디선가 본 듯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냥저냥한 드라마가 될 수 있는 소재인데 "악마파"라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화풍을 굉장히 잘 묘사하고 있어서 꽤나 실감나면서도 엽기스러운 이야기로 완성되었습니다. 김래성 소설의 전형이라고나 할까... 그런 작품입니다.

4. 백사도 :
백사도를 그린 동추라는 화가를 찾아온 나는 그에게서 그림을 그리게 된 처절한 과거사를 듣게 된다.
역시 화가가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일종의 밀실 살인 트릭이 등장하긴 하는데 트릭 자체가 주인공의 "꿈"에서 풀린다는 내용이라 추리물로 보기는 조금 힘들었습니다. 작품도 기본 이야기 뼈대는 좋은데 괴기함과 엽기성을 지나치게 강조해서 썩 마음에 들진 않네요.

5. 벌처기 :
나는 여류 화가로 행세하며 수많은 남자들과 어울리고 다니는 아내를 용서할 수 없어서 완전 범죄를 결심한다. 이미 한번 본 영화를 보러 간다고 속이고 집으로 되돌아간 나는 재빨리 아내를 살해하고 극장으로 돌아가지만 곧바로 경찰에 체포되는데...
도서 추리 소설로 볼 수 있는 특이한 작품입니다. 주인공의 고백에서 시작한 뒤, 변호사의 변론, 그리고 사건이 밝혀지게 된 결정적 증인의 증언이라는 세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도 특이하고요. 완전 범죄 계획 자체는 너무 조잡하고 유치하며 단서 역시 굉장히 뻔하지만 소설적인 구성이 기발하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잘 묘사된 당시 시대 풍경을 읽는 것 역시 재미있었고요.

6. 광상시인 :
나는 아내를 잃은 뒤 정처없이 방랑하다가 그림 그리기 적당한 풍경을 찾아 잠시 머물게 된다. 그런데 그곳에서 시인 추암과 그의 아내 나나를 만나게 된 뒤 둘의 광기 가득한 요구와 사랑에 휘말리게 되며 추암이 나나를 살해한 뒤 시체를 안고 춤을 추는 모습을 목격한 뒤 그곳을 떠난다. 그리고 3년뒤, 나는 서울역 대합실에서 추암과 재회하는데...
이 작품역시 전형적인 변격물인데 멜로적인 성향이 많이 가미되어 있다는 점이 특이하네요. 반전이 약간 충격적이긴 한데 전체적으로 좀 지루하고 심심해서 그냥저냥 평이한 수준으로 보입니다.

7. 타원형 거울 :
추리잡지 "괴인"의 발간인 백상몽은 잡지가 성공하게 되자 현상 공모를 하게 된다. 그것은 다름아닌 10년전 평양에서 벌어진 유명한 살인사건의 해결. 거금 300원의 상금을 내걸고 당시의 자세한 사건 현장과 개요를 잡지에 실은 뒤 독자들의 추리를 요청하는데, 10년전 사건의 용의자였던 유시영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자 추리를 써 내어 당당하게 당선한다. 그러나 유시영은 현상 공모 뒤에 숨겨진 또다른 무엇인가를 눈치채고 백상몽에게 서신을 보낸다.
김래성 선생님이 일본 유학 중 추리전문지에 발표한 국내 최초의 추리 소설. 이야기의 시작부터 상당히 독특해서 인상적이며, 트릭 역시 당시 기준으로 볼 때에는 독창적인 것으로 보여집니다.
하지만 유시영의 추리 이후 벌어지는 사건과 진범의 정체는 트릭이 공정하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보다 교묘하게 잘 꾸밀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도 자료적 가치는 충분하고 내용도 추리적 요소로만 놓고 본다면 괜찮은 작품입니다. 무엇보다도 재미보다는 의미를 찾아야 하는 작품이겠죠.

8. 복수귀 :
박도순과 이철수는 의학 박사와 간호사 숙채를 놓고 경쟁하는 사이. 이철수가 박도순의 논문을 훔친 뒤 도용하여 먼저 박사가 되고 숙채와 결혼하자 도순은 복수를 꿈꾼다.
역시나 남자 둘, 여자 한명이라는 지루한 설정의 반복. 또 여자의 심리 변화가 굉장히 급격하여 설득력이 많이 떨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반전이 기발하긴 한데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9. 무마 :
나는 정통파 추리 작품으로 이름이 알려진 추리 작가로 평소에 알고 지내던 한량 허군을 통해 라이벌이기도 한 변경 소설작가 백웅이 관련된 엽기적인 살인사건 이야기를 듣게 된다.
엽기적인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결말도 나름대로 깔끔합니다. 하지만 결말까지의 이야기 전개가 너무 쉽게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평이한 것이 단점이네요. 비교적 평이한 수준의 소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13/10/01

[소식] 절판본 미스터리 박스(와우북) - 공유드립니다.

[소식] 절판본 미스터리 박스(와우북)

장르문학 전문 출판사 북스피어다운 이벤트군요. 아이디어가 참 괜찮은 것 같아 공유드립니다.
이벤트에 포함된 절판도서 목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적색은 저도 소장한 작품들입니다)

정말 희귀한 작품도 있지만 고려원과 해문쪽 추리걸작선은 아직 구하려면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 증명 시리즈나 스카페타 시리즈같이 재간된 책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 <비밀일기>와 같이 전체 장르와 어울리지 않는 책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추첨에 참여해도 좋은 성과를 얻지 못할 확률이 더 높아보이기는 합니다.

그래도 제가 앞으로 출판사를 하게 된다면 꼭 따라해보고 싶은 이벤트네요. 저만의 절판본 리스트라도 만들어서 한번 관리해봐야겠습니다.

참고로 탐나는 작품은 아서 클라크의 "환상특급"과 P.D 제임스 시리즈이며 제가 읽은 책 중에서 고르라면 "챔피언 시저의 죽음"과 "레이디킬러"를 꼽겠습니다.

  • 챔피언 시저의 죽음/ 렉스 스타우트/ 이춘열 옮김/ 시공사/ 1995.
  • 신들의 사회/ 로저 젤라즈니/ 김상훈 옮김/ 행복한책읽기/ 2004.
  • 낙원의 샘/ 아서 클라크/ 정영목 옮김/ 시공사/ 1999.
  • 순간의 적/ 로스 맥도널드/ 김연남 옮김/ 홍원/ 1994.
  • 코스믹 러브/ 로저 젤라즈니 외/ 박상준 엮음/ 사울창작/ 1994.
  • 열흘간의 불가사의/ 엘러리 퀸/ 유명우 옮김/ 1994.
  • 앰버 연대기(1, 2, 3, 4, 5)/ 로저 젤라즈니/ 김상훈 옮김/ 예문/ 1999.
  • 에드가상수상작품집Ⅱ/ 엘러리 퀸 외/ 정태원 옮김/ 명지사/ 1998.
  • 두동강이 난 남과여/ 히가시노 게이고 외/ 봉성기획/ 1999.
  • 세계 심령 미스터리 사이키/ 로버트 실버버그 외/ 박상준 역음/ 서울창작/ 1994.
  • 숏컷/ 레이먼드 카버/ 무라카미 하루키 해설/ 집사재/ 1996.
  • 일본 서스펜스 걸작선/ 하라 료 외/ 추리작가협회/ 고려원미디어/ 1993.
  • 환상특급/ 아서 클라크 외/ 박상준 엮음/ 서울창작/ 1994.
  • 디바/ 델라코르타/ 안선덕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1.
  • 스노우 크래쉬(1, 2) 닐 스티븐슨/ 김장환 옮김/ 새와물고기/1996.
  • 플레치/ 그레고리 맥도널드/ 정철호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2
  • 죽어서 지킨 약속/ 러브 크래프트 외/ 한경희 편역/ 문학사/ 1994.
  • 인형의 눈(상, 하)/ 베리 우드/ 정영목 옮김/ 동아출판사/ 1994.
  • 천재들의 게임/ F. 폴 윌슨/ 고영휘 옮김/ 십일월출판사/ 1994.
  • 히치콕 서스펜스 걸작선/ 엘리너 설리번 엮음/ 고려원미디어/ 1994.
  • 결혼해 주세요/ 존 업다이크/ 폴임 옮김/ 밝은세상/ 1993.
  • 죽음의 열립방정식/ 모리무라 세이치/ 정성호 옮김/ 모음사/ 1984.
  • 남아 있는 모든 것/ 패트리샤 콘웰/ 이정환 옮김/ 시공사/ 1994.
  • 두 얼굴의 여자/ 수 크라프튼/ 나채성 옮김/ 큰나무/ 1994.
  • 잔혹한 사랑/ 패트리샤 콘웰/ 정한솔 옮김/ 시공사/ 1993.
  • 검은 휘파람/ 로버트 러들럼/ 홍석연 옮김/ 문지사/ 1998.
  • 호텔 Q의 25시/ 모리무라 세이치/ 정태원 옮김/ 글사랑/ 1995.
  • 마성의 아이/ 오노 후유미/ 정성호 옮김/ 한겨레/ 2001.
  • 강철군화/ 잭 런던/ 차미례 옮김/ 1989.
  • 영원의 아이(상중하)/ 덴도 아라타/ 김난주 옮김/1999.
  • 샤바케/ 하타케나카 메구미/ 김소연 옮김/ 2005.
  • 인간 쓰레기/ 아이작 싱어/ 박원현 옮김/ 고려원/ 1992.
  • 인생을 훔친 여자/ 미야베 미유키/ 박영난 옮김/ 2000.
  • 재앙의 거리/ 엘러리 퀸/ 정태원 옮김/ 1994.
  • 호러 사일런스/ J. G. 발라드 외/ 김성화 옮김/ 1994.
  • 악마 다리/ 코난 도일/ 조용만 옮김/ 학원출판공사/ 1993.
  • 금요일 옷 벗는 도둑/ 마쓰모토 세이초 외/ 정태원 옮김/ 비전/ 1994.
  • 중국 오렌지의 비밀/ 엘러리 퀸/ 이원두 옮김/ 시공사/ 1994.
  • 야성의 증명/ 모리무라 세이치/ 김성재 옮김/ 책만드는집/ 1994.
  • 독 원숭이/ 오사와 아리마사/ 이원두 옮김/ 이성/ 1994.
  • 스나크 사냥/ 루이스 캐럴/ 최내현 옮김/북스피어/ 2007.
  • 두개골의 서/ 로버트 실버버그/ 최내현 옮김/북스피어/ 2006.
  • 비밀일기/ 스우 타운센드/ 배현나 옮김/ 김영사/ 1986.
  • 야수는 죽어야 한다/ 오오야부 하루히코/ 박영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1.
  • 비밀의 문/ 김내성/ 명지사/ 1994.
  • 트리스트란과 별공주 이베인/ 닐 게이먼/ 김명렬 옮김/ 2000.
  •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 마루야마 겐지/ 김춘미 옮김/ 하늘연못/ 2001.
  • 보안관과 도박사/ 엘모어 레오나드/ 이종인 옮김/ 고려원/ 1994.
  • 별을 쫓는 자/ 로저 젤라즈니/ 김상훈 옮김/ 북스피어/ 2008.
  • 유년기의 끝/ 아서 클라크/ 정영목 옮김/ 시공사/ 2001.
  • 유령의 집/ 헨리 제임스/ 이채윤 옮김/ 데미안/ 2003.
  •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 아서 클라크/ 김종원 옮김/ 한양출판/ 1994.
  •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로버트 하인라인/ 임창성 옮김/ 잎새/ 1992.
  • 울게 될 거야/ 야마모토 후미오/ 김수현 옮김/ 황금가지/ 2008.
  • 야수들의 밤/ 오시이 마모루/ 황상훈 옮김/ 황금가지/ 2002.
  • 어두컴컴한 물밑에서/ 스즈키 코지/ 윤덕주 옮김/ 씨엔씨미디어/ 1999.
  • 맥널리의 모험/ 로렌스 샌더스/ 이창식 옮김/ 고려원/ 1993.
  • 여름으로 가는 문/ 로버트 하인라인/ 이희재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2.
  • 리더스 다이제스트 걸작추리모음 3/ 존딕슨카 외/ 동아출판사/ 1993.
  • 사이코/ 딘 쿤츠/ 신영희 옮김/ 한뜻/ 1997.
  • 발렌타인의 유산/ 스탠리 엘린/ 고경재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6.
  • 태양의 유산(1, 2)/ 아사다 지로/ 한은미 옮김/ 시아/ 2000.
  • 언젠가 바다 깊은 곳으로(1, 2)/ 마루야마 겐지/ 박은주 옮김/ 책세상/ 2000.
  • A2Z/ 야마다 에이미/ 이유정 옮김/ 태동 출판사/ 2004.
  • 보이 A/ 조나단 트리겔/ 이주혜 옮김/ 이레/ 2009.
  • 프로페셔널 킬러/ 토마스 페리/ 최인석 옮김/ 모음사/ 1984.
  • 미드나이트 시즌/ 스티븐 킹/ 공경희 옮김/ 대산/ 1999.
  • 나를 기억하라/ 메리 히긴스 클라크/ 임지현 옮김/ 문학사상사/ 1995.`
  • 흔적/ 패트리샤 콘웰/ 조성은 옮김/ 시공사/ 1996.
  • 마지막 대본/ 미키 스필레인/ 정다빈 옮김/ 홍원/ 1993.
  • 빗살무늬토기의 추억/ 김훈/ 문학동네/ 1995.
  • 지푸라기 여자/ 카트린 아를레/ 홍은주 옮김/ 북하우드/ 2006.
  • 메두사/ 이노우에 유케히토/ 송영인 옮김/ 시공사/ 1998.
  •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백민석/ 문학동네/ 2001.
  • 플레이보이 SF걸작선[1]/ 필립 K. 딕 외/ 황금가지/ 2003.
  • 워터멜론 슈가에서/ 리차드 브라우티건/ 최승자 옮김/ 도서출판 민/ 1995.
  • 무서운 사람들/ 얼 스탠리 가드너/ 강성열 옮김/ 세진출판사/ 1991.
  • 파프리카/ 쓰쓰이 야스타카/ 최경희 옮김/ 영림카디털/ 1994.
  • 피의 책/ 클라이브 바커/ 정탄 옮김/ 끌림/ 2008.
  • 고독의 노랫소리/ 덴도 아라타/ 양억관 옮김/ 문학동네/ 2005.
  • 소돔의 성자/ 오사와 아리마사/ 이원두 옮김/ 이성/ 1993.
  • 아이스바운드/ 딘 쿤츠/ 안정희 옮김/ 한뜻/ 1996.
  • 불야성/ 하세 세이슈/ 김은아 옮김/ 대원/ 1999.
  • 사요나라 갱들이여/ 다카하시 겐이치로/ 이승진 옮김/ 향연/ 2004.
  • 아내가 마법을 쓴다/ 프리츠 라이버/ 송경아 옮김/ 웅진/ 2007.
  • 어둠(1, 2)/ 제임스 허버트/ 김석희 옮김/ 정신세계사/ 1995.
  • 아웃(1, 2, 3)/ 기리노 나쓰오/ 홍영의 옮김/ 다리미디어/ 1999.
  • 대망(1~10)/ 야마오카 소하치/ 박재희 옮김/ 동서문화사/ 1975.
  • 속삭이는 사람들/ 마가리트 밀러/ 현재훈 옮김/해문/1983.
  • 디미트리오스의 관/ 에릭 앰블러/ 이가형 옮김/ 해문/1986.
  • 판사와 형리/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차경아 옮김/ 문예출판사/ 1988.
  • 부머랭 살인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신용태 옮김/ 해문/ 1988.
  • 서재의 시체/ 애거서 크리스티/ 설영환 옮김/ 해문/ 1989.
  • 연성결(상,하)/ 김용/ 박영창 옮김/ 중원문화사/ 1989.
  • 갈색 옷을 입은 사나이/ 애거서 크리스티/ 김석환 옮김/ 해문/ 1989.
  • 중국 황금 살인 사건/ 로베르트 반 훌릭/ 이동진 옮김/ 삼신각/ 1990.
  • 내가 죽인 소녀/ 료 하라/ 박영 옮김/ 청림출판/ 1990.
  • 녹정기(1~11)/ 김용/ 박영창 옮김/중원문화사/1990.
  • 부자연스러운 주검/ P. D. 제임스/ 차근호 옮김/ 일신서적출판사/ 1991.
  • 피부 밑의 두개골(1,2)/ P. D. 제임스/ 이명성 옮김/ 일시서적출판사/ 1992.
  • 인간의 증명/ 모리무라 세이찌/ 이원두 옮김/ 한길사/ 1991.
  • 제3의 사나이/ 그레엄 그린/ 안흥규 옮김/ 문예출판사/ 1991.
  • 여자에게 맞지 않는 직업/ P. D. 제임스/ 박종원 옮김/ 일신서적출판사/ 1992.
  • 타인의 목/ 조르쥬 심농/ 김수연 옮김/ 일신서적출판사/ 1992.
  • 열쇠 없는 집/ 얼 비거스/ 유명우 옮김/ 한길사/ 1992.
  • 타이태닉 호의 음모/ 도널드 A. 스탠우드/ 이인복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2.
  • 죽은 자와의 결혼/ 윌리엄 아이리시/ 김석환 옮김/ 해문출판사/ 1992.
  • 미드나이트/ 딘 R. 쿤츠/ 조석진 옮김/ 고려원미디어/1992.
  • 벌거벗은 얼굴/ 시드니 셀던/ 한번웅 옮김/ 신원문화사/ 1993.
  • 컴퓨터의 몸값/ 미요시 도오루/ 권자인 옮김/ 수목출판사/ 1993.
  • 마지막 모험/ 엘모어 레오나드/ 김명렬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3.
  • 한국 서스펜스 걸작선/ 이상우 외/ 고려원미디어/ 1993.
  • 어스시의 마법사/ 어슐러 K. 르귄/ 윤소영 옮김/ 웅진출판/ 1993.
  • 여형사 K/ 수 그라프톤/ 정한솔 옮김/ 큰나무/ 1994.
  • 쇠못 세 개의 비밀/ 로베르트 반 훌릭/ 이희재 옮김/ 디자인하우스/ 1994.
  • 경마장의 비밀/ 딕 프랜시스/ 이종인 옮김/ 고려원미디어/1994.
  • 레이디 킬러/ 도가와 마사꼬/ 김갑수 옮김/ 추리문학사/ 1994.
  •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들의 미스터리 걸작선 추리특급/ 엘러리 퀸 엮음/ 정성호 옮김/ 제삼기획/ 1994.
  • 종소리를 삼킨 여자/ 로베르트 반 훌릭/ 이희재 옮김/ 디자인하우스/ 1995.
  • SF 시네피아/ 아서 클라크 외/ 박상준 엮음/ 서울창작/ 1995.
  • 죽음의 편지/ 보브 랜들/ 김훈 엮음/ 고려원미디어/ 1996.
  • 유니스의 비밀/ 루스 렌들/ 이희재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6.
  • 카인의 아들/ 패트리샤 콘웰/ 이창식 옮김/ 시공사/ 1996.
  • 시귀(1,2,3)/ 오노 후유미/ 임희선 옮김/ 들녘/ 1999.
  • 자본론 범죄/ 칼 마르크스/ 이승은 옮김/ 생각의나무/ 2004.
  • 월간 판타스틱 2008/08 Vol.18/ 페이퍼하우스/ 2008.
  • 만연원년의 풋볼/ 오에 겐자부로/ 박유하 옮김/ 고려원/ 2000.
  • 위대한 세월/ 오에 겐자부로/ 김난주 옮김/ 고려원/ 1995.
  • 핀치러너 조서/ 오에 겐자부로/ 허호 옮김/ 고려원/ 1996.
  • 펠리컨브리프/ 존 그리샴/ 정영목 옮김/ 시공사/ 1994.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정계춘 옮김/ 자유문학사/ 1993.
  • 마지막 파티/ 윌리엄 캐츠/ 정태원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6.
  • 복수법정/ 헨리 덴커/ 이상곤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2.
  •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 아이라 레빈/ 이일수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1.
  • 보안관과 도박사/ 엘모어 레오나드/ 이종인 옮김/ 고려원/ 1994.
  • 죽음의 세레나데/ 유우제/ 고려원미디어/ 1994.
  • 맨해턴 특급을 찾아라/ 클라이브 커슬러/ 이원두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2.
  • 독수리는 날아오르다/ 잭 히긴스/ 박주동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3.
  • 라마(6,7)/ 아서 클라크 & 젠트리 리/ 안정희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4.
  • 맥널리의 행운/ 로렌스 샌더스/ 이순주 옮김/ 고려원/ 1992.
  • 맥널리의 비밀/ 로렌스 샌더스/ 이일수 옮김/ 고려원/ 1992.
  • 어둠을 울리는 우울한 종소리/앤드루 박스/ 이창식 옮김/ 고려원미디어/1992.
  • 여름으로 가는 문/ 로버트 A. 하인라인/ 이희재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2.
  • 석양에 빛나는 감(1,2)/ 다카무라 가오루/ 홍영의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5.
  • 무죄추정/ 스코트 터로우/ 최승자 옮김/ 대흥/ 1991.
  • 내가 심판한다/ 미키 스필레인/ 황해선 옮김/ 해문/ 1990
  • 거짓 예언자/ 숀 플레네리/ 김갑수 옮김/ 남도/ 1989.
  • 가족사냥/ 텐도 아라타/ 양억관 옮김/ 문학동네/ 2003.
  • 야성의 증명/ 모리무라 세이치/ 김성재 옮김/ 책만드는집/ 1994.
  • 메인 스트리트/ 트리베니안/ 정태원 옮김/ 진음/ 1994.
  • 트럼프 살인사건/ 엘러리 퀸/ 이제중 옮김/ 시공사/ 1995.
  • 어둠의 목소리, 사나이의 목/ 이든 필포츠/ 조르주 심농/ 이가형 옮김/ 하서/ 1981.
  • 두 아내를 가진 남자/ 패트릭 퀜틴/ 심상곤 옮김/ 해문/ 1990.

2017/09/17

그 무렵 누군가 - 히가시노 게이고 / 이혁재 : 별점 1.5점

그 무렵 누군가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재인

주말을 보내기 위해 아무 생각없이 집어든 히가시노 게이고단편집입니다. 그간 읽어왔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은 그래도 무난한 수준들이었기에 이번에도 적당한 재미를 가져다 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후지 TV 드라마 "히가시노 게이고 미스터리즈"의 원작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고 한 책 뒤 소갯글에 낚이기도 했고요.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아주 별로였습니다. 폭탄 수준이라고 해도 무방해요. 모두 여덟 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기본적인 완성도를 갖춘건 "수수께끼가 가득", "레이코와 레이코", "재생 마술의 여인" 세 편 뿐이거든요. 다른 작품들은 너무할 정도로 수준이 낮거나 다른 여러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2011년 일본에서, 그리고 2014년 우리나라에서 발표되었다고는 믿을 수 없는 수준과 내용이기에 조금 조사해보니, 실제로는 20여년 전 일본 버블 경제 시기에 발표되었던 단편들이더라고요. 대 인기 작가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묻혀있다가 20여년 만에 발표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동안은 너무할 정도로 수준이 낮아서 책을 내 봤자 망할거라고 생각한게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은 작가 이름값이 높아진 덕분에 겨우 출간되었고요. 그 정도로 한심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작가의 수많은 책 중에서도 최 하급을 차치할 유력 후보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이시더라도 딱히 구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좋은 책들도 많으니까요.

수록 작품별 짤막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수수께끼가 가득" 

야요이의 애인 다카노리가 살해당한 후, 야요이는 다카노리의 친구라 자칭하는 기타자와라는 남자 등으로부터 사건에 대해 상세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다카노리가 거부 나카세 고지로 사장의 유언장을 훔쳐 은닉하였다는 것이었다...

페라리와 베엠베, 고층 고급 빌라, 회원제 스포츠 센터 등 버블 시대의 환영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버블에 대해 정색을 하며 비판하던 기요미가 진범이라는 결말은 독자를 허탈하게 만듭니다. 야요이를 비롯한 모든 등장인물이 돈만 쫓는 속물이라는 결말이니까요. 물론 어차피 진지한 버블 비판이 담긴 사 회파 작품은 아닌 만큼 단점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요.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문제가 많습니다. 작 중 등장하는 트릭은 두가지입니다. 한 가지는 "마법사의 손"이라는 기타자와의 대사, 다른 한 가지는 다이잉 메시지 "A"입니다. "마법사의 손"은 "선인장"을 암시하는 말인데, 이미 작중에서 기타자와가 온실에서 시간을 보낸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대단한 트릭이라 할 수 없습니다. 진작에 조사하지 않은게 오히려 이상하죠.
"A"라는 다이잉 메시지는 최악입니다. 범인을 나타내는 말도 아니고, 유언장의 트릭을 밝혀내는 키워드에 불과해서 죽기 직전에 쓸 말이라고는 도무지 생각되지 않는 탓입니다. 게다가 이를 가지고 기요미가 범인이라고 하는건 불가능합니다. "다이잉 메시지"라는 것 자체가 너무나 작위적인 설정이라 이를 활용한 작품이 좋은 작품이기는 힘든데,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네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TV에서 영상화되었다고 소개되는데, TV로 보는게 훨씬 낫겠습니다. 

"레이코와 레이코" 

변호사 요코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소녀 레이코를 거두어 돌봐주었다. 그러나 레이코는 마에무라라는 남자를 살해한 혐의로 수배된 상태인데...

"수수께끼가 가득" 처럼 버블의 환영이 가득하다는 것이 눈에 띕니다. 청색 메르세데스 벤츠를 타고다니는 젊은 여성 변호사, 아르마니 양복과 롤렉스 시계로 치장하고 현금은 20만엔 씩 들고 다니며, 차량은 6백만엔짜리 청색 세르시오라는 29살의 증권 회사 직원 등이 등장하니까요. 이 정도면 여고생 지갑이 구치인 것은 굉장히 소박해 보입니다.

그래도 트릭 한 가지는 꽤 괜찮습니다. 레이코가 사나에의 결혼 상대에게 살의를 품는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된 마에무라의 아내가 그녀를 살해에 이용한다는 일종의 원격 조종 트릭인데, 꽤 그럴싸하게 그려져 있거든요. 과거 성폭행을 당한 탓에 정신 이상이 생긴 레이코의 상태를 전편에 걸쳐 상세하게 묘사하는 것도 이 트릭에 설득력을 더해주고요.
또 레이코는 다중 인격자이며, 현재의 상냥한 레이코는 과거 살인을 저질렀던 흉폭한 레이코에 대해 모든 것을 잊은 기억 상실 상태라는 결말에서, 사실 이 모든 것은 흉폭한 레이코의 '연기'일 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반전도 아주 괜찮았습니다. 상당히 서늘하면서도 신선한 아이디어로 이렇게 소모되는게 아깝다 생각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다중 인격이라는 설정은 분명 진부한 설정이고, 너무 극단적인 이상 심리 상태에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 작위적이긴 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재생 마술의 여인" 

네기시 부부는 어렵게 아이를 입양했다. 아내를 먼저 돌려보낸 네기시 미네카즈에게 입양 센터의 책임자 나카오 아키요는 믿을 수 없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주는데... 

이야기는 재미있습니다. 평범한 일상에서 과거의 범죄, 그리고 현재의 충격적인 진상과 뒤이어 반전으로 끝나는 전개도 무척 좋고요.

그러나 핵심 설정, 즉 '이미 사망한 피해자의 몸 속에 남아 있던 정액을 보관했다가 이를 7년 후에 체외 수정하여 아이를 만든다'는 걸 미네카즈가 믿는다는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20여년 전 이야기라고 해도 설득력이 부족해요. 이 정도 기술력이 있다면 정액의 DNA를 분석하여 범인을 찾아내는게 훨씬 빨랐을테니까요. 네기시 미네카즈가 공부만 좀 했더라면 별 일 없이 끝났을겁니다. 혹 공부와 자기 개발을 게을리하지 말라는 작가의 큰 뜻이 담긴 것일까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재미는 있지만 핵심 설정이 말이 안되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아빠 안녕" 

"비밀"의 원전입니다. 그러나 단편에는 영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에요. 사고로 딸 가나에의 몸 속에 엄마 요코의 영혼이 들어오고, 곧바로 딸이 결혼하면서 끝나버리거든요. "비밀"에서처럼 여러모로 복잡 미묘한 부부, 부녀의 관계를 디테일하게 그리지 않아서 영 볼게 없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점입니다. 

여러모로 완성된 한 편의 이야기라고 보기에는 무리인데, "비밀"을 쓰기 전 편집자에게 건네준 요약본이 아닐까 싶네요.

"명탐정의 퇴장" 

본격 고전 퍼즐 미스터리를 패러디하는, "명탐정의 규칙"의 원전격 되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패러디 외에는 별다른 트릭이 등장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만화적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패러디가 이어지더라도 결국 트릭과 진상이 존재하는, 그런 작품이었다면 훨씬 좋았을 겁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여자도 호랑이도" 

호시 신이치의 '쇼트쇼트'를 연상케하는 초단편으로 사형수가 문을 세 개 열 수 있는데, 한 개는 여자, 또 한 개는 굶주린 호랑이, 마지막 한 개는 뭔지 모른다는 설정은 재미있었어요. 결국 또 다른 한 개는 여자이자 굶주린 호랑이었다는 결말도 괜찮았고요. 

그러나 이 여자가 '여자의 문' 속 여자인지, '제 3의 문' 속 무언가였는지 밝혀지지 않는 것은 좀 답답했습니다. 이게 핵심이라서 조금 더 정교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자고 싶어, 죽고 싶지 않아" 

동경하던 야마사키 유카리와 데이트한 직후, 정신이 든 '나'는 끔찍한 상황에 처했다는 것을 알아채고 그 이유를 추리하는데...

'나'가 이 상황에 처한 이유를 처음부터 되짚어 하나씩 밝혀내는 전개는 괜찮습니다. 야마사키 유카리의 완전 범죄 계획도 그럴듯하고요. 여러가지 상황에서의 목격자 증언을 활용한다는 것과, 간단한 바꿔치기 트릭이 핵심인데 간단한만큼 설득력도 높습니다.

그러나 과학 수사 시대에 맞는 트릭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나'가 탄 것으로 추정된 택시의 지문 조사만 해도 경찰이 상황은 쉽게 파악할 수 있을테니까요. 택시에 대한 상세한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나'와 유카리의 남자가 동일 인물이 아닌 것이 증명될 방법은 많고요. 

수사적으로 부족한 부분이야 20년 전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이야기가 기승전결이 확실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문제도 큽니다. '나'가 진상을 깨닫고, 자신이 수면제를 먹고 손이 묶인 채 목을 메달기 직전이라는 상황에 처했다는 것이 밝혀지는 마지막 장면 탓입니다. 다른 장편이라면 도입부에 불과한 내용으로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진 느낌이거든요. 여기서 어떤 식으로든 살아남아 복수를 하던가 해야 하는데, 그냥 이렇게 마무리 되니까 많이 당황스러웠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재미가 없지는 않지만 이야기가 완성되지 못한 느낌이 강한데, 이어지는 속편이나 후속 이야기가 없다면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20" 

결혼해서도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남편 데루히코에게 무언가 비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아내 아사코는 그를 미행하는데...

수록작 중에서는 가장 히가시노 게이고스러웠던 작품입니다. 평범한 가정 주부 아사코가 남편 데루히코가 지닌 비밀이 무엇일까?를 파헤치는 과정이 설득력있게,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덕분입니다. 평범한 대학생 등이 주인공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스탠드 얼론 작품들과 유사하지요.

하지만 데루히코의 비밀이 너무 별게 아니라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어린 시절 유괴되어 살해된 니시노 하루미와 나비를 잡으러 가기로 하고 가지 않은 탓에 그녀가 죽었다는 자책을 안고 살아간다는건데, 이 사건과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결심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이 진상 자체를 이미 시미즈 부부가 알고 있던지 오래되었다는 허무한 결말은 영 별로였어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좀 더 충격적이고 설득력 있는 과거 사건이 드러났더라면 아주 괜찮았겠지만 이대로는 아닙니다. 하기사, 그랬더라면 여기 수록된 단편 수준으로 끝나지는 않았겠죠.

2025/04/11

거짓과 정전 - 오가와 사토시 / 권영주 : 별점 4점

거짓과 정전 - 8점
오가와 사토시 지음, 권영주 옮김/비채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본 SF 대상을 수상했던 떠오르는 작가 오가와 사토시의 단편집입니다. 표제작인 "거짓과 정전" 외에도 "마술사", "시간의 문", "한 줄기 빛", "무지카 문다나", "마지막 불량배" 등 현실과 환상, 과학과 감성이 절묘하게 섞인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가장 큰 장점은 작가만의 독특한 세계관이 SF적 설정과 기발한 아이디어와 만나 매우 신선한 재미를 준다는 점입니다. 시간 여행을 마술 무대와 연결한 "마술사"부터 그러합니다. 마술에 대해 현실적이며 설득력있게 묘사하다가, 시간을 넘나드는 마술을 '타임머신'과 결합시켜 의외의 결말로 이끄는 솜씨가 정말 탁월합니다.

유행이 사라진 세상에서 유행의 의미를 되짚는 "마지막 불량배", 과거로 정보를 보내 세계를 조정하는 냉전 시대의 첩보극 "거짓과 정전"도 모두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품고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불량배"는 유행과 취향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어, 디지털 시대의 콘텐츠 소비에 대해 많은걸 생각하게 해 줍니다. 예전처럼 하나의 앨범도 신중하게 고민하고 구입한 뒤, 그 앨범을 반복해 들으며 취향을 만들던 시대를 지나, 지금은 그런 고민없이 모든걸 쉽게 소비하는 세상이 되어 '취향'이라는게 사라지는 세상이 되었다는걸 뼈저리게 느끼게 해 주거든요. 지금의 취향은 내가 아니라 인터넷이 만들어주는 것에 불과하니까요.

SF 외에도, 일상 속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들도 돋보입니다. "한 줄기 빛"은 아버지가 남긴 경주마의 계보를 따라가며 자아를 발견하는 성장물인데, “서러브레드가 죽을힘을 다해 달리는 이유는 생명의 위기를 감지했기 때문”이라는 문장은 오래도록 여운을 남깁니다. 조금 상황은 다르지만 안도현 시인의 시 -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가 떠오르기도 했고요.

"무지카 문다나"에서는 음악이 화폐인 섬을 배경으로,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득했던 아버지를 이해하고 화해하게 되는 과정을 감성적으로 풀어냅니다. 다이가의 아버지는 훌륭한 음악(다이가)을 듣기 위해 자신의 최고 걸작을 남겼지만, 다이가를 들은 뒤에는 음악을 포기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다이가는, 스스로 '다이가'를 듣기 위해 포기했던 음악을 다시 시작할걸 결심하고요. 음악을 포기한 다이가에게 이 비밀을 알려주면 음악을 다시 시작하리라 여겼던 아버지의 배려(?), 그리고 미워했던 아버지의 속셈을 알면서도 속는 다이가의 모습이 짠합니다. 이처럼 판타지를 배경으로 하지만 인간의 감정을 밀도 높게 다루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이야기 자체의 재미도 뛰어납니다. "마술사"에서 시간여행은 실제로 일어났는지, "한 줄기 빛"에서 아버지의 꿈은 이루어졌는지, 템페스트, 레티시아는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는지 등을 따라가면서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약간의 추리적인 요소도 흥미롭습니다. "시간의 문"에서 오펜하임이 1932년 7월 31일, 나치당에 투표했을지?를 물어보는 부분이 대표적입니다. 전날밤 오펜하임은 남반구에서만 볼 수 있는 켄타우루스 자리를 보았습니다. 때문에 그는 독일 본토로 돌아가 투표할 수 없었다는 것이지요.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건 교묘한 전개 능력도 한 몫 단단히 합니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야기들이 결합되어 의외의 결론으로 향하는 "거짓과 정전" 처럼요. 작품은 엥겔스의 재판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바로 다음에 80년대 CIA 모스크바 지국 정보원들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결국 두 이야기가 결합되며 마무리되는데 기발하고 교묘하게 잘 짜여져 있습니다.

그러나 수록된 모든 작품이 동일한 수준은 아닙니다. "시간의 문"은 우화에 가까운 작품으로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지만, 전개나 반전이 평이해 다소 뻔하다는 인상을 줍니다. 또한 SF적 설정으로 보자면, "거짓과 정전"을 제외하면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거나 단지 상징적인 장치로 사용된 경우가 많습니다. "시간의 문"에서의 기억 조작은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우화적 도구에 가까우며, 인물의 존재가 사라지는 설정도 설득력 있는 논리로 뒷받침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몇몇 명쾌하지 않은 결말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마술사"에서 정말 타임머신을 만들었는지, 시간여행의 모순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거든요. "거짓과 정전"의 '정전의 수호자'들이 역사 수정을 방지한다는 진상도 방법적으로는 잘 모르겠고, 설정도 과거 "타임캅"류의 타임 패러독스 방지물과 별다르지 않아서 시시했어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SF적인 상상력과 서정적 감성이 잘 결합된 작품들입니다. 일부 아쉬운 단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몰입감 있고, 인상적인 독서 경험을 선사합니다. 아직 읽어보시지 않은 분들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09/05/08

Fantastique 판타스틱 2009.봄 - Vol.20 : 별점 4점

Fantastique 판타스틱 2009.봄 - 8점
판타스틱 편집부 엮음/페이퍼하우스

한국 최초의 추리소설가이신 김내성 선생님의 탄생 100주년 기념 특집호입니다.

월간일때 몇번 뒤적이긴 했지만 이전에는 쟝르문학 전문이라도 SF 성향이 좀 강해서 별로 눈길이 가지는 않았는데 이번호는 구입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잘 기획된 특집호더군요. 추리소설 애호가로 그냥 지나치기 힘들어서 반드시 구입할 예정이였지만 형이 먼저 구입했길래 낼름 빌려다 하루만에 다 읽어버렸습니다.

김내성 선생님 특집은 총 4편의 단편 및 라디오 방송 대본, 그리고 김내성 선생님의 아들인 카이스트 교수 김세헌의 짤막한 추모담, 김내성 선생님의 일생을 총 망라한 연표, 재일한국인 리켄지의 김내성 선생님의 데뷰 당시 및 해방 후 한국 문단의 분위기를 통해 선생님의 장르문학에 대한 입장을 밝혀주는 역사성 짙은 에세이인 "데뷰시절의 김내성", 마지막으로 전봉관의 경성 스케치 시리즈라 할 수 있는 특집 에세이 "마인 속 경성과 경성문화" 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만큼만 해도 팬으로서 굉장히 충실한 기분이 들 정도의 많은 분량 (220여 페이지) 이니 정말 대단하죠. 페이지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계간지의 위력일까요?

그러나 선생님 작품의 수준에 대해서는 항상 느껴왔던 아쉬움이 남네요. 아울러 추리물도 좋지만 한편 정도는 "비밀의 문" 에 실려있는 류의 변격물 취향 작품을 실어주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실려있는 작품을 보다 자세히 이야기해 보자면, 제일 앞에 실려있는 "탐정소설가의 살인"은 일단 국내에 처음 번역 소개된다는 점에서 가치는 충분합니다. 실제 연극인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사건을 탐정소설가 "유불란"이 직접 극본을 쓴 뒤, 사건 주요 인물들을 주연으로 연극으로 상영하여 진상을 폭로한다는 설정도 충분히 재미있고요. 그러나 공들인 설정에 비해서 트릭이 조잡하고 결말이 너무나 유치할 뿐 아니라 유불란 탐정이 한마디로 ㅂㅅ으로 등장하기에 도저히 좋은 평을 해 줄 수가 없더군요.
두번째 작품인 "타원형의 거울"은 너무 많이 소개된 작품이라 좀 식상하죠. 물론 선생님의 기념비적인 데뷰작이자 대표작이라 빼긴 좀 어려웠겠지만 지도를 새로 그린 것 이외에는 새로운 점이 전혀 없어 지루했습니다.
네번째로 실려있는 "히틀러의 비밀"은 셜록 홈즈 시리즈 "여섯개의 나폴레옹 흉상"을 라디오극으로 번안한 작품인데 창작의 여지는 거의 없이 번안에 머물고 있어 평가하기가 난감하더군요. 약간의 창작이 들어간 범인과 피해자의 관계 등의 요소는 추리물로 보기 힘들정도로 설득력도 떨어지고요. 한마디로 완성도가 낮습니다.
그나마 세번째 작품인 "연문기담"이 올드미스의 결혼을 위한 독특한 연애-사기담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지니고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연애편지의 진위에 대한 추리적 요소가 살짝 삽입된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트릭이라 하기에는 어렵지만 경쾌한 작품에 양념역할은 톡톡히 해 주거든요. 오헨리 필도 살짝 나는 것이 그간 알고 있던 김내성 선생님 작품과 분위기가 달라 무척이나 즐겁게 읽었답니다.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작품의 수준이야 익히 알고 있었던 작품이고, 사실 이번 특집은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합격점을 줄 수 있습니다. 방대한 내용 만큼이나 실속있는 내용이 가득하고, 추리소설과 추리소설가를 핵심으로 하는 당대 경성에 대한 자료들이라 경성을 무대로 한 추리소설을 창작하는 입장에서는 반드시 읽어야 할 특집임에 분명하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전봉관의 "마인 속 경성과 경성문화" 가 제일 좋았던 것 같지만, 그 외의 글들 모두가 유익했다 생각되네요.

이번호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 김내성 선생님 특집을 제외한 나머지 글들 중에서 눈여겨 본 것을 꼽아보자면, 먼저 코넬 울리치의 단편 "세시 정각"이 있습니다. 바람난 아내를 징벌하기 위해 아내가 잠깐 집을 비운 틈에 시한폭탄을 장치하는 남자의 이야기인데 서스펜스의 대가 다운 긴박한 상황의 연출이 일품이었습니다. 그러나 결말부분이 너무 진부한 편이라 평작 수준에 머물고 말았네요. 이런 류의 단편은 워낙에 많이 있기도 하죠.
문영의 단편 무협소설인 "혈도"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무적도인 "혈도"에 대한 강호의 소문과 그 소문의 원인을 다룬 짤막한 단편인데 의외의 요소가 잘 살아있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소문을 이용하여 돈을 번다는 시장논리가 처음으로 도입된 무협지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고요. 주인공 캐릭터가 너무 스테레오 타입 -술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절망과 고독밖에 없는 무림 최고의 살수 - 이 아닌가 싶긴 한데, 셜록 홈즈 스타일 추리소설 창작가로서 할 말은 아니겠죠..^^;;
그 외에는 원사운드의 만화가 괜찮더군요. 신간소개 위주의 짤막한 만화로 그야말로 쉽게쉽게 막 그린거 같은데도 요점을 잘 짚고 있어서 빠져드는 맛이 있는 것 같아요. "인체모형의 밤"은 덕분에 구입 예정입니다.

결론적으로, 별 4점은 충분히 줄만한 가치가 있는 특집호였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절반 정도는 눈이 잘 가지 않는 연재물이나 기획물로 이루어져 있어서 과연 다음호를 사게될지는 모르겠네요.

그나저나 그나마 잘 나가는 듯 했던 판타스틱이 계간지 전환되었다니 (그리고 지금 보니 절판상태...;;)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추리 문학 전문 잡지의 꿈 역시 저~ 멀리 사라져 가는것 같네요. 1935년 김내성 선생님의 "타원형 거울"에 등장하는 추리잡지 "괴인"이 1만부가 팔리는데, 70여년 뒤의 대한민국은 1만부는 커녕 3천부도 소화하기 힘든 수준의 시장이 되어버렸으니 선생님께 죄송할 뿐입니다.

2022/01/07

샘 호손 박사의 두번째 불가능 사건집 - 에드워드 D. 호크 / 김예진 : 별점 2점

샘 호손 박사의 두 번째 불가능 사건집 - 4점
에드워드 D. 호크 지음, 김예진 옮김/GCBooks(GC북스)

안녕하세요. 2022년 첫 리뷰네요. 먼저 새해 인사 드립니다. 2022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 작품은 노스몬트에서 일하는 시골 의사 샘 호손이 명탐정으로 등장해서, 온갖 불가능 사건을 해결하는 고전 스타일의 정통파 본격 추리 단편 시리즈입니다. 1권에 이어 2권도 읽게 되었네요. 

수록작은 무려 열 다섯 편이며, 샘 호손이 범인으로 몰린다던가, 대도시 보스턴에서 사건을 해결한다던가, 렌즈 보안관이 혼자서 사건을 해결한다던가 하는 다채로운 이야기가 펼쳐져서 팬들을 즐겁게 해 줍니다.

하지만 전편보다는 별로입니다. 모두 일종의 밀실 상황에서 일어난 불가능 범죄를 다루고 있는데, 알고보니 밀실이 아닌 상황이 많은 탓입니다. 대략 네 작품은 명백하게 밀실이 아니었어요. 트릭도 무려 여섯 작품에서 변장이 사용되고 있고요. 그리고 절반이 넘는 무려 여덟 작품에서 불가능 범죄를 만들 이유가 없는데에도 불구하고 만들어버리는 억지를 보여주는데 굉장히 실망스럽습니다. 범행 동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체로 설득력이 없어서 와 닿지 않았습니다.

몇몇 작품은 나쁘지 않았지만, 상술한 이유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전체 평균 별점은 2점입니다. 팬이 아니시라면 딱히 권해드리지 않습니다.

수록작 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트릭과 범인을 모두 알려주는, 스포일러 가득한 리뷰입니다.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나저나, 무려 열 다섯 편의 리뷰를 상세하게 올리니 시간이 엄청 걸리네요. 다음부터는 인상적이었던 단편들만 추려서 올리는걸 고려해야 겠습니다.

"치유하는 천막의 수수께끼" 

샘 호손은 어린 아들을 치료사로 내세워 시골 환자들 대상으로 사기를 치고 다니는 사기꾼 조지 예스터의 공연을 찾아갔다가 그와 싸움을 벌이고 말았다. 자기 환자에게 큰 좌절감을 안겨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샘이 그에게 주먹을 날린 뒤 나가려고 잠깐 뒤를 돈 순간, 조지 예스터가 가슴을 칼로 깊게 찔려 살해당했다. 천막 안에는 예스터와 샘 호손밖에 없었고, 잠깐 사이에 샘 호손의 눈을 피해 현장에서 빠져나가는건 불가능했다...

짧은 순간에 범인이 사라져 버리는 인간 소실 트릭이 사용된 작품인데, 범인인 매지가 동상으로 변장하고 있었다는게 트릭이라서 굉장히 허무했습니다. 동상과 사람이 몸에 페인트 칠을 한 건 명백히 달랐을 텐데 이걸 눈치채지 못했다는건 이해하기 힘드니까요.

물론 어느 정도는 정말 동상처럼 보이게끔 하는건 가능할 수 있습니다. 동상이 그녀를 모델로 만든거라는 일종의 복선도 제공되기는 하고요. 때문에 짧은 시간, 제한된 조건에서라면 먹혔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매지 혼자 거대한 동상을 천막 밖으로 잠깐 치워 놓았다가 다시 원래 위치로 가져다 놓는다는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등신대 금속 조각상이라면 무게가 아무리 적어도 백 킬로그램은 되었을테니까요. 

게다가 이렇게 동상으로 변장해 범행을 저지를 이유도 설명되지 않습니다. 샘 호손(아니면 누군가)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기 위해 이 트릭을 사용했다? 말도 안됩니다. 샘 호손,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그날 조지밖에 없는 천막으로 찾아와 다툴 거라는걸 미리 알고 있었어야 하는데, 이걸 예상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설령 다툼을 예상했더라도, 천막 안이 아니라 천막 밖에서 다퉜을 수도 있고요. 

즉, 살해하려면 그냥 천막에 숨어있다가 죽이는게 훨씬 나은 선택이었어요. 무엇보다도 이 동상의 존재를 은근슬쩍 묻고 지나가는 전개가 별로 공정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독자와의 두뇌 싸움을 펼치는게 아니라, 어떻게든 속여넘기려는 것에 불과해 보였어요.

또 트릭을 떠올릴 수도 있는 대학 시절 사진을 훔쳐내기 위해 매클로플린 교수를 습격했다는 것도 억지스러웠습니다. 예스터의 공연에 찾아가기로 한 건 매지가 샘 호손과 함께 있었을 때 나온 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때 사진을 회수했으면 됩니다. 추가적인 범행을 저지를 필요 없이요. 매지가 토비 예스터의 엄마였었다는 동기도 억지스러웠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샘 호손이 범인으로 몰린다는 상황 말고는 건질게 없었던 졸작이었습니다.

"속삭이는 집의 수수께끼" 

샘 호손은 유령사냥꾼 태디어스 슬론과 함께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고, 한 번 들어가면 다시는 못 나오는 비밀의 방이 있다는 소문이 있는 브라이어 가문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둘은 한 밤중에 당장 나가라는 누군가의 말소리를 들은 뒤, 누군가 저택에 들어와 비밀의 방으로 들어가는걸 목격했다. 그리고 30여 분이 지나도 남자가 나오지 않아서 둘은 비밀문을 열어보는데, 남자는 죽어 있었고 방 안에는 다른 사람, 다른 출구도 없었다. 샘 호손은 피해자가 최소 15시간 전에 살해당했다는걸 알아챘는데, 수사를 이어가던 샘 호손의 차가 누군가가 설치한 조잡한 폭탄에 의해 불타버리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람들이 비밀 방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는건, 그 방에 다른 비밀 출구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숨겨진 출구만 찾으면 될 일이라, 이걸 불가능 범죄물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유력한 용의자도 너무 뻔합니다. 상황을 아는건 초반에 샘의 치료를 받는 빌리밖에는 없으니까요. 빌리는 어린 시절 유령 집에서 자주 놀았으며 치료를 받을 때 샘과 슬론이 그 집으로 간다는 이야기까지 들었고, 시체가 들고 있던 총은 발사된 흔적이 있었는데 빌리가 샘 호손의 치료를 받은 이유는 쇠스랑에 발을 관통당했다는 것이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리고 이상한 불가능 상황으로 만드는 이유도 제대로 설명되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아무도 모르는 비밀 방이었다면, 그 안에 시체를 숨겨놓고 가만히 있었으면 될 일이잖아요? 구태여 샘과 슬론 앞에 모습을 드러내서 사건을 키울 이유는 하나도 없어요. 사건을 기획한 빌리의 모친이 사후경직을 통한 사망시각 추정이 가능하다는걸 몰라서 벌인 것이었다는 설명이 덧붙여지기는 했지만, 여러모로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절대로 좋은 점수를 줄 만한 작품은 아니기에 별점은 1.5점입니다. 그나마 샘 호손의 애차 피어스 랜스 어바웃이 7년만에 불에 타 버리고, 새로운 차를 구입한다는 이야기만 기억에 남네요.

"보스턴 공원의 수수께끼" 

샘 호손이 의학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보스턴애 도착한 날, 보스턴 공원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쿠라레 독화살이 흉기로 사용되었으며, 이전에도 3명이나 같은 수법으로 살해당했었다. 하지만 공원은 숨어서 총을 쏘거나, 대롱을 부는게 불가능했다. 심지어 세 번째 사건 때부터는 공원에 형사가 가득했고, 네 번째 피해자는 죽을 때 까지 경찰이 예의 주시하며 미행행하기까지 했었다. 범인은 어떻게 독이 묻은 화살을 피해자들에게 쏠 수 있었을까?

"사건 현장에 있었지만, 아무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존재"에 의해 사건이 벌어진다는 일종의 '투명 인간 트릭'이 사용된 작품입니다. 범인이 기차 차장이나 레스토랑 웨이터 등이었다는 류의 트릭으로 이 작품에서는 호텔 도어맨이 범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호텔 도어맨이라 눈에 뜨이지 않았다는 억지를 부리지 않는건 마음에 듭니다. 핵심은 샘 호손이 쿠라레에 대해 조사하여 밝혀낸대로, 공원 안이 아니라 공원 입구, 즉 호텔 근처에서 화살에 맞았다는 겁니다. 쿠라레는 즉효성이지만 맞고도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어서 피해자들은 공원 안에 들어가서 이동하다가 죽었던 거지요. 도어맨은 호루라기를 부는게 이상하지 않은 직업이라서 호루라기를 부는 척 하고 불특정 다수인 공원 이용자에게 독화살을 쏘았고요. 

노스몬트가 이닌 대도시 보스턴을 무대로 하고 있는 것도 처음에는 그냥 재미 요소라 생각했는데, 트릭이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오가는 큰 공원, 그리고 공원 바로 앞에 위치한 큰 호텔이 필요했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아무래도 시골 소도시 노스몬트보다는 큰, 보스턴같은 대도시를 무대로 할 수 밖에 없었던 거지요.

범인의 동기가 애매했으며, 20세기 초 미국을 무대로 한 작품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독화살이 흉기로 사용된 건 작위적이기는 했습니다. 샘 호손이 스스로 미끼기 되는 장면도 억지스러웠고요. 그래도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작품으로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잡화점의 수수께끼" 

노스몬트에 미모의 중년 여성 매기 머피가 이사와서 맥스 하크너 잡화점 옆에 부동산을 열었다. 그녀는 자주 잡화점에서 여성 인권에 대해 열변을 토했기에 마을 남자들이 싫어했지만, 워낙 미인이라 내색은 크게 하지 않았다. 존 클레이 노인이 심장마비로 사망한 날, 맥스의 잡화점에서 일했던 프랭크가 샘 호손을 찾아와 자신이 맥스의 아내 어밀리아와 불륜 관계였다는걸 털어 놓았고, 그 직후 맥스가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잡화점 안에는 시체와 함께 기절했다는 매기 머피밖에 없었는데, 잡화점 문과 창문은 안쪽에서 모두 잠겨 있었다...

밀실물처럼 소개되지만 환풍기 날개 사이로 총을 집어넣어 쏘았다는게 진상이라서, 이게 밀실물인지도 잘 모르겠네요. 현장에서 발견된 맥스의 총은 더블 배럴이라 환풍기 날개 사이로 넣을 수 없었지만, 밖에 있었던 존 클레인 노인의 총은 싱글 배럴이라 날개 사이로 넣을 수 있었다는데 이건 트릭도 뭐도 아니고요. 부실한 현장 조사에 더해 흉기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아서 생겨난 실수일 뿐입니다.존 클레이 노인의 범행 동기도 제대로 설명되지 못하고, 범인이 살인 때문에 놀라서 죽었다는 등 내용도 전반적으로 억지스럽습니다. 

복잡하고 억지스러운 장치 트릭보다야 현실적인 발상입니다만, 도저히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법원 가고일의 수수께끼" 

샘 호손은 조스트로 살인 사건의 배심원을 맡게 되었다. 피고 애런 플레이버는 조스트로의 고용인으로, 그는 실수로 총이 발사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조스트로 부인과 불륜 관계라는 소문이 있어서 상당히 불리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그런데 재판 도중, 베일리 판사가 마시던 물 잔 속 청산가리에 의해 독살당했다. 판사가 죽기 전 '가고일'이라는 말을 남겨서 범원 가고일 상을 조사해보니, 베일리 판사가 메이틀랜드 판사와 함께 밀주 밀매점에 투자했다는 문서가 들어있었다. 샘 호손은 이런 저런 단서들을 확인한 뒤, 사건 현장을 재현해서 추리쇼를 펼쳐보이는데...

애런 플레이버가 자살하려고 조스트로 부인에게서 건네받은 청산가리를 잔에 부어 놓았는데, 판사가 착각해서 먹고 죽은 거라는 진상부터가 말도 안됩니다. 자살할 생각이었다면 직접 입에 털어 넣었어야죠. 

독약을 애런이 손에 넣은 방법에 대한 설명도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재판 중에 조스트로 부인이 껌을 계속 씹고 있었다는 증언을 통해, 그녀가 껌으로 독약병을 증인석에 붙여 놓았다고 추리하는건 일견 그럴싸했지만 이 역시 조금만 생각해보면 납득할 수 없는 추리에요. 아무리 20세기 초반이라고 해도, 재판을 받는 피고가 흉기를 손쉽게 손에 넣을 정도로 보안이 허술했을리가 없잖아요. 가능했다해도 총이나 칼을 손에 넣는게 나았을거에요. 

억지스러운 설정, 부실한 설명으로 이루어진 최악의 졸작으로 별점은 1점입니다. 수록장 중 최악입니다.

"청교도 풍차의 수수께끼" 

'청교도 풍차'라 불리우는 네덜란드 풍차가 보존되어 있던 부지에 청교도 기념 병원이 신설되었다. 노스몬트 최초의 흑인 의사 링컨의 근무로 이런저런 구설수가 나오고 있었던 중, 부지를 병원에 기증했던 랜디 콜린스가 풍차에서 몸에 불이 붙어 온 몸에 화상을 입고 말았다. 그는 사건 당시 "루시퍼"라는 말을 겨우 남겼었고, 의식을 회복하여 풍차 안에 악마의 불덩이가 떠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샘 호손은 주유소를 운영하는 아이작 밴 도런이 풍차 안으로 걸어 들어간 뒤, 풍차와 함께 불에 타 죽는 끔찍한 광경을 목격했다. 링컨 존스는 검시 결과 밴 도런의 다리가 심하게 골절되어 있었다고 알려주었다.

첫 사건은 백인 우월주의자 랜디 콜린스가 풍선을 이용하여 풍차 날개 4개에 불을 붙일 생각이었는데, 실수로 풍선이 터져 화상을 입었던 것이었습니다. "루시퍼"는 성냥을 부르는 명칭으로, 나중에 의식을 회복하고 악마 어쩌구로 말을 바꾼거지요. 

두 번째 사건은 랜디에게 휘발유를 팔았던 주유소 주인 밴 도런이 진상을 눈치채고 협박해서, 랜디가 그에게 풍차 윗쪽에 보물을 숨겨두었다고 알려주었던 겁니다. 성냥이나 촛불로 확인해보라면서요. 그리고 이 말을 따른 밴 도런은 풍차 윗 쪽으로 날려보냈던 휘발유에 불이 붙어버린 탓에 처참하게 죽었고요. 다리는 위에서 떨어질 때 부러졌던 것이었지요. 

랜디의 동기는 인종차별을 하기 위했던 것으로, 인종차별이 뒤의 범죄들과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매끄럽습니다. 사회파 느낌도 살짝 나서 괜찮았고요. 첫 번째 사건은 일종의 실수라 특별할 건 없지만, 두 번째 사건에 사용된 일종의 원격 조종 트릭은 나름대로 설득력도 높았습니다.

하지만 소소한 부분들은 문제가 많아요. 제일 먼저, 풍차를 십자가 형태로 불태우기 위해 풍선을 이용하려 했다는 발상이 억지스러웠어요. 이게 사건의 핵심인 탓에 이야기 전개도 다소 헐거운 편입니다. 성냥이나 촛불로 풍차 윗쪽을 확인한다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지죠. 손전등도 있는 시대인데다가, 이렇게 한다고 불이 그렇게 쉽게 붙었을지도 의문이며, 설령 불이 붙었다 해도 밴 도런이 죽을 거라는 보장도 없으니까요. 아울러 랜디가 인종차별주의자라는걸 보다 적극적으로 밝히지 않은건 공정해 보이지 않았어요. 단서가 없지는 않았지만 의도적으로 숨긴 티가 물씬 나서 별로였거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트릭은 나쁘지 않았는데 관련된 상황에 대한 설득력이 낮아서 감점합니다. 체스터튼 소설같은 사건이라며 한껏 분위기를 띄우는데, 그 정도 수준의 작품은 절대로 아닙니다.

"생강빵 하우스보트의 수수께끼" 

노스몬트 근처 체스터 호수는 마을 주민들의 여름 휴양지였다. 샘 호손은 여름 휴가를 왔던 미란다 그레이와 사랑에 빠졌다. 미란다의 삼촌인 제이슨, 기티 그레이 부부와 그 이웃 별장의 레이, 그레텔 하우저 부부와도 친해졌는데 어느날, 샘과 미란다 눈 앞에서 하우저 부부의 화려한 하우스 보트를 타고 놀던 두 부부 모두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메리 셀레스트호 괴담 이야기를 하면서 분위기를 끌어 올리지만, 특별한 수수께끼는 없습니다. 보트에는 레이 하우저와 키티 그레이만 타고 있었고, 그레텔 하우저와 제이슨 그레이는 이미 살해당해서 별장 안에 숨겨져 있었던 겁니다. 레이와 키티는 보트를 출발시킨 후, 별장에서 안 보이는 쪽으로 헤엄쳐 나왔고, 보트는 폭파시키려고 다이너마이트를 셋팅했는데 그게 불발했던거지요. 보트를 조사해서 다이너마이트를 찾아내면, 배 주인인 레이 하우저가 범인이라는게 뻔하니 후더닛 물로 볼 수도 없고요. 

설령 레이 하우저의 계획대로 폭파되었더라도 문제에요. 그는 배가 폭파된 후 그레텔과 제이슨의 시체를 떠내려 보낼 생각이었는데, 그들이 익사하지 않았다는건 부검으로 밝혀졌을테니까요. 함께 배를 타고 있던 네 명 중 두 명이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익사가 아니라면, 다른 두 명이 범인이라는건 당연하잖아요? 

아울러 이렇게 무거운 강력 범죄 이야기로 끌고가지 않고, 두 부부가 장난으로 이 일을 벌였다는 일상계 물이었다 한 들 추리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단지 샘 호손과 미란다 눈에 보이지 않게 배 반대쪽으로 뛰어내려 헤엄쳐 나간게 전부인 탓입니다. 즉, 이건 애초부터 불가능 범죄가 아니었어요. 차라리 장난에 가깝죠.

부실 수사와 부실한 계획이 합쳐진 망작입니다. 샘 호손의 사랑 이야기가 등장하는게 독특했을 뿐입니다. 제 별점은 1점입니다.

"분홍색 우체국의 수수께끼" 

샘 호손은 간호사 에이프릴과 노스몬트 우체국을 방문했다. 개장 첫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우체국장 베라는 우체국을 분홍색으로 칠해놓았다. 분홍색 페인트가 값이 쌌던 덕분으로, 한 쪽 벽에 마저 페인트를 칠하기 위해 흄 백스터를 불렀다. 흄이 페인트를 칠하기 시작했을 때, 은행장 앤슨 워터스가 주식 대공황을 알리며 1만 달러어치 무기명 채권의 특별 배송을 부탁했다. 그러나 잠시 뒤 그 봉투가 사라지고 마는데....

샘 호손이 미란다와 파국을 맞지만, 렌즈 보안관이 베라에게 호감을 드러내는 등 주요 등장인물들의 애정 전선이 크게 움직이는 에피소드. 추리적으로도 괜찮았어요. 샘 호손이 봉투 행방에 대해 우체국 현장에서 펼쳐보이는 여러가지 추리들도 그럴싸했지만, 우연히 바닥에 떨어진 봉투를 흄 백스터가 주워서, 벽에 붙인채 페인트 칠을 해 버렸다는 진상도 합리적이었거든요. 페인트가 마르면 바로 들통날테니 그날 밤 봉투를 회수하러 올 것이라는 마무리 추리까지 깔끔했고요.

물론 당장 봉투를 찾지 못했더라도, 수사를 통해 충분히 밝혀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렌즈 보안관의 무능이 드러나기는 합니다. 제일 수상한건 흄 백스터인게 사실이니까요. 그래도 이 정도면 그런대로 괜찮은 단편이었습니다. 다른 작품들 수준이 워낙에 별로라 이 정도면 충분히 선녀급이지요. 별점은 3점입니다.

"팔각형 방의 수수께끼" 

렌즈 보안관은 베라와 에덴 하우스의 팔각형 방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팔각형 방은 거대한 서재로, 네 귀퉁이에 바닥에서 천장까지 닿는 거울이 달린 수납장을 설치하여 만든 곳이었다. 그런데 결혼식 당일, 방문이 열리지 않아서 잠긴 문을 부수자 시체가 발견되었다. 눈에 뜨이는 건 문 손잡이에 묶여 있던 끈 한 줄이었다. 끈으로 빗장을 잠글 수 있는지 고민해 보았지만 끈은 너무 짧았고, 방문은 끈 한 올 통과할 틈이 없었다.

문 손잡이에 끈이 묶여 있었으니 이를 밀실물로 보기는 애매합니다. 이 끈으로 밀실을 만든게 당연하니까요. 진상도 예상 그대로입니다. 범인은 문 바로 맞은편 창문 걸쇠에 끈을 묶고, 이걸 빗장에도 묶은 뒤 창으로 탈출했던 겁니다. 문을 부술 때 끈이 당겨져 창문 걸쇠가 잠긴 것이지요. 

이렇게해서 창문이 잘 잠겼을지는 둘째치고서라도, 끈 조각이 남은 탓에 딱히 대단한 트릭이 될 수 없었습니다. 애초에 제대로 잠긴걸 확인하지 않아서 밀실로 착각했을 뿐, 실제로는 밀실이 아니었다는 문제도 크고요. 범인이 밀실을 만든 이유도 이해하기 힘들어요. 이렇게 복잡한 장치를 만드느니, 문을 열어두고 한 패에게 살해당했다는 식으로 꾸미는게 상식적입니다.

물론 범인인 조시의 아내 엘렌이 창문을 부수는걸 반대했던 장면같은 복선이라던가, 언제나 이야기를 듣는 화자가 아니라 범인이었던 엘렌이 찾아와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거라는 나름의 반전은 괜찮았습니다. 그녀가 남편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지만, 결국 그 때문에 모든걸 잃었다는 결말도 나쁘지 않았고요.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부실했고, 상황의 설득력이 낮아서 좋은 점수는 주기 힘드네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집시 야영지의 수수께끼" 

청교도 기념 병원을 찾은 샘 호손이 병원 경영의 전권을 맡은 에이블 프레이터 의사와 잠깐 이야기를 나눌 때, 집시 에도 몬타나가 들어와 저주를 받았다고 말한 뒤 곧바로 심장마비로 죽어버렸다. 집시들은 무리의 지도자 루돌프의 저주 탓이라 여겼지만, 부검 결과 몬타나는 심장에 총을 맞았다는게 밝혀졌다. 그러나 몬타나의 가슴과 등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렌즈 보안관은 저주의 원인이 된 몬타나의 부인 테레즈를 구금하려 했지만 집시 스티브의 공격으로 실패했고, 철저한 수사를 위해 집시 무리를 하룻밤 동안 감시했는데 집시들은 스무 대의 마차, 말과 함께 깜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두 개의 불가능 범죄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첫 번째 범죄는 실망스러웠습니다. 가슴과 등에 상처가 없었다면 누군가 가슴을 연 뒤 심장에 총을 쏜 것이고, 부검 자리에는 샘 호손과 에이블 프레이터밖에 없었으니 범인은 에이블인게 당연하지요. 집시들이 머물던 해스킨스 농장의 상속 문제라는 동기도 이야기에서 거의 곧바로 드러나고요. 애초에 왜 가슴을 열기 전에 총을 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네요. 구태여 기묘한 상황을 만들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지요. 

집시들이 하룻밤 새 사라져버린 두 번째 트릭은 그래도 조금 낫습니다. 말과 마차모양 판지를 세워놓아 눈을 속인 뒤, 판지를 태우고 사람들만 몰래 빠져나갔다는건데, 보안관이 멀리서 감시하고 있었다면 충분히 속아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저 판지들을 모조리 태울 수 있었을지 의문인 등 세세한 점에서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밀주업자 자동차의 수수께끼" 

샘 호손은 밀주업자 래리 스피어스의 동료들에게 납치되었다. 총에 맞았다는 래리의 치료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래리는 중상이 아니었다. 동료 중 배신자를 찾아내기 위해서라며 아픈 척 연기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래리는 토니 배럴과의 거래 완료 때까지는 샘 호손을 풀어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거래가 끝났을 때, 실수로 총격전이 벌어졌고, 차에 탔던 토니 배럴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진상은 래리 스피어스가 다친 척 위장해서 토니 배럴을 집 안으로 끌어들인 뒤 살해했던 겁니다. 집 밖으로 나가 차에 탔던 건 래리가 매수한 토니의 부하 스쿠프였고요. 스쿠프는 래리가 뚱보로 변장할 때 썼던 완충재를 몸에 두르고, 수염을 붙인 뒤 웅얼거리며 토니인 척 나가서 차에 탔습니다. 그리고 변장을 풀고 바로 운전석으로 넘어가 차를 몰고 떠나려고 했던 거지요. 잘 됐더라면 완전 범죄가 됐을텐데, 하필이면 총격전이 벌어진 탓에 스쿠프가 운전석에서 내리자 불가해한 실종 사건이 생겨났던 겁니다. 이렇게 불가능 범죄가 일어난 이유를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합리적으로 설명되는게 좋았습니다. 래리가 술통 값을 낼 수 없는데 술통이 필요했다는 동기도 설득력 있었고, 토니 배럴의 차가 밖에서 안이 잘 보이지 않았다던가 (방탄을 위해서), 스쿠프가 헐렁한 옷을 입고 있었다는 등의 복선도 잘 사용되고 있습니다. 갱들과 목숨을 걸고 담판을 지으며 사건을 해결하는 샘 호손의 모습도 독특했고요.

이렇게 이야기 완성도만큼은 나쁘지 않아요. 문제는 트릭의 설득력이지요. 과연 저 정도의 변장으로 다른 사람들이 다 속아넘어갔을까?는 잘 설명되지 못하거든요. 이번 권은 변장을 전가의 보도로 쓰고 있는 트릭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가장 설득력이 낮았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깡통 거위의 수수께끼" 

잠겨져 있던 비행기 조종석에 있던 조종사가 칼에 찔려 살해된 사건을 그린 작품입니다. 핵심은 조종석 안에 범인이 숨어 있었다는 겁니다! 샘 호손의 눈을 피해 숨어있다가 몰래 문 밖으로 나갔던 거지요. 밀실이라고 볼 수는 없는 셈입니다. 왜 이런 기묘한 상황에서 범행을 저질렀는지도 잘 설명되지 못하고요. 

그래도 범인이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 다른 비행기 곡예단 동료를 자기처럼 변장시켜 공연을 했다는 트릭만큼은 괜찮았습니다. 이 정도면 아슬아슬하게 평작 수준은 될 듯 싶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사냥꾼 오두막의 수수께끼" 

샘의 아버지 해리 호손이 아내와 함께 노스몬트에 방문했다. 그는 편지 왕래로 친해진 대지주 라이더 색스턴으로부터 사냥 초대를 받고, 샘도 함께 사냥에 참가하게 되었다. 다음날, 사슴 사냥을 하던 중 혼자 사냥꾼 오두막에 있었던 라이더 색스턴이 시체로 발견되었다. 오두막으로 들어온 발자욱은 색스턴 것 뿐이었고, 흉기는 저택 안의 무기 컬렉션에 있던 곤봉이었다. 현장에서 발견된건 오래된 깃털 뿐이었다. 범인은 어떻게 발자욱없이 곤봉을 가지고 들어와 색스턴을 죽였을까?

범인은 사냥꾼 오두막 물탱크에 물을 채우기 위한 호스 자국 위로 이동하여 발자욱을 남기지 않았던 겁니다. 호스의 폭은 3cm에 불과했지만, 이 위를 '자전거'로 지나갔던 거지요. 상황을 잘 이용한 괜찮은 트릭이라는건 분명합니다. 색스턴이 오두막으로 물을 끌어 올리기 위해 호스를 연결했다가 떼는 장면이 상당히 오래 묘사되고 있어서, 작가가 독자와 공정한 게임을 하고 있다는 느낌도 잘 전해주고요. 자전거를 닭장 안에 두었었기 때문에 현장에 닭털을 흘렸고, 이 탓에 트릭이 들통나는 과정도 괜찮았어요.

왜 불가능 상황을 연출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건 아쉽지만, 트릭만큼은 정말 괜찮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건초 더미 속 시체의 수수께끼" 

샘 호손은 수의사 밥 위더스가 농부 펠릭스 베넷의 아내 세라와 불륜을 저지르는걸 목격한 후, 펠릭스의 권유로 함께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 때 가석방 중 펠릭스의 신세를 지다가 사고를 쳐서 펠릭스가 다시 교도소로 돌려 보냈던 로슨이 만기 출소했다며 나타나 펠릭스를 협박했다. 

그리고 그날 밤, 곰 사냥을 위해 렌즈 보안관을 비롯한 여러 명이 농장에 잠복하고 있었는데 펠릭스가 샘 호손에게 전화 한 통화를 남기고 사라졌다. 나중에 그는 방수포로 덮은 건초 더미 안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러나 보안관은 펠릭스가 건초 더미를 쌓고 방수포를 치는걸 자기가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면서, 방수포 안에 시체를 넣는건 불가능했다고 말하는데...

렌즈 보안관이 혼자서 해결했다는 사건. 범인은 펠릭스 농장의 소작농 핼 패리였습니다. 그는 펠릭스의 상징과도 같은 큰 밀짚모자를 쓰고 건초 더미 뒤에 있던 펠릭스를 죽인 뒤, 자기가 펠릭스인 척 시체를 건초 더미에 넣고 그 위에 방수포를 쳤던 겁니다.

이번 시리즈에서 지겹도록 반복되는 변장 트릭이 사용되어서 좋은 인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이 작품만 독립적으로 놓고 보면 괜찮은 본격 추리물인건 분명합니다. 일단 다른 작품들보다는 변장의 설득력이 높거든요. 밀짚 모자에 대해서, 그리고 펠릭스와 핼 패리의 키가 비슷했고 같은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는 정보가 공정하게 제공되는 덕분이지요. 유력한 용의자 로슨의 콧수염에 대한 언급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몰래 시체를 숲에다 가져다 버릴 생각이었는데, 곰이 나타나는 바람에 기묘한 불가능 범죄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도 합리적이었어요.

곰이 시체를 뒤지는 전개는 작위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노스몬트라는 시골 마을이라는 무대 특성 상 그렇게 억지스럽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산타의 등대 수수께끼" 

여행을 떠난 샘 호손은 '산타의 등대'를 우연히 방문하여 해리와 리사 남매와 친해졌다. 그러나 그날 밤 등대 꼭대기 전망대에 있던 해리가 칼에 찔려 떨어져 죽고 말았다. 마침 리사와 함께 있던 샘 호손 바로 앞에 시체가 떨어졌는데, 둘을 지나치지 않고 범인은 빠져나갈 수 없었다. 샘은 사건 해결을 위해 수감 중인 남매의 아버지 로널드를 찾아갔다. 로널드는 등대에서 밀주 밀수를 했으며, 해산물 레스토랑 주인인 폴 레인과 거래를 해 왔다는 사실을 털어 놓았다....

샘 호손은 처음에는 산타의 등대를 관광차 방문했던 아이들 중 한 명이 범인이었다고 추리했습니다. 난쟁이 킬러가 아이로 변장했다면서요.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너무나 헛점이 많은 추리였어요. 가족 요금이 더 싼데 아이들만 등대에 들여보낸게 이치에 맞지 않다는 이유부터가 근거로는 터무니없이 빈약했으니까요. 아이들끼리 친하고 잘 노는데다가, 아이들을 돌봐줄 해리와 리사가 있는데 부모가 뭐하러 함께 들어간단 말입니까? 게다가 아이들이 떨어질 지도 모르는 위험천만한 시설인데 아이들이 몇 명 들어가서 몇 명 나왔는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도 말이 안되죠. 수십명도 아니고, 고작 4~5명을 확인하지 못했을리가 없잖아요. 이 정도면 아이들 이름까지 외울 수 있었을 겁니다.

결국 리사가 범인으로, 그녀는 오빠를 죽인 뒤 등대 전망대에 낚싯줄로 묶어 고정했던 거라는 진상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하지만 이 역시 난쟁이 킬러보다야 나을 뿐, 말이 안되는건 마찬가지에요. 딱히 좋아보이는 트릭도 아닐 뿐더러, 샘 호손이 있을 때 시체를 떨어트린건 납득하기 어려웠거든요. 자기의 알리바이가 있었다 한 들, 살인범이 등대로 들어갈 수 없는 불가능한 상황은 딱히 유리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오빠를 일어서 떨어트리고 사고로 위장하는게 더 나았을 겁니다. 아버지를 감옥에 보낸게 오빠라서 죽였다는 동기도 그렇게 와 닿지는 않았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대미를 장식하기는 하지만, 더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게 만드는 수준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2025/10/10

밀실 황금 시대의 살인 (눈의 저택과 여섯 개의 트릭) - 가모사키 단로 / 김예진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실 황금 시대의 살인"은 제목과 '여섯 개의 트릭'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여섯 개의 밀실 수수께끼를 전면에 내세운 장편입니다. 수수께끼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설백관 밀실사건(간자키 살인 재현)
— 수수께끼: 잠긴 방문, 유일한 열쇠는 시체 옆 닫힌 플라스틱 뚜껑 달린 병 안에 있었고 창문은 열려 있으나 촘촘한 창살 때문에 방 안으로 병을 던져 넣을 수 없었다. 
— 해답: 고무줄-추-식칼을 연동한 장치 트릭. 고무줄을 병 뚜껑 고리에 꿴 뒤 방 안에서 창살을 통과시켜 투입 → 추를 창밖 고무줄 끝에 달아 장력 형성 → 사체에 꽂힌 식칼 주위를 통과하도록 병을 잡아 당겨 문을 나선다 → 문을 잠근 뒤 열쇠를 병에 넣고 병을 문 아래 카펫 속에 은닉 → 강제 개방하면 장력으로 병이 실내로 튕기고, 식칼에 의해 고무줄은 절단된다. 추에 의해 고무줄은 창밖으로 떨어진다.

시하이 씨 식당 살인
— 수수께끼: 사망 추정 시각에 누구도 식당동 출입 없음. 피해자는 모조 핼버드에 반복 찔림.
— 해답: 리모컨 슬라이드 식기장을 이용했다. 식기장이 비밀 통로의 숨은 출입구 겸 레일 구조 → 핼버드를 고정한 채, 외부에서 리모컨으로 식기장을 왕복 이동시켜 살해 → 핼버드는 액체 질소로 고정되어 시간이 지나자 녹아 떨어졌다.

사구리오카 방 내 사망
— 수수께끼: 내부 잠금 상태에서, 피해자는 머리에 총상을 입고 죽었다.
— 해답: 시한 폭발 탄환 장치에 의한 것. 침대 밑에 놓였던 장치를 발견한 피해자가 장치 확인을 위해 수면등 아래로 옮기다가 폭발해 사망했다.

마네이 도미노 밀실 사건
— 수수께끼: 피해자 주변을 감싼 채 문까지 잇는 도미노 띠가 놓여 있었고, 문은 잠김. 열쇠는 시체 옆에 놓여 있었다.
— 해답: 액체질소 얼음 고정틀 + 데드볼트 임시 고정을 사용. 문에 얼음틀로 고정한 도미노를 붙임  → 데드볼트 일부를 잘라냄  → 도어 레버를 소폭만 돌린 상태에서 얼음으로 고정 → 문을 닫으면 도미노 얼음틀은 시체 주위와 문을 잇게 됨  → 도어 레버 얼음이 녹으면 도어락 자동 잠김  → 얼음틀 소멸로 도미노만 남음.

야시로 씨 도서실 밀실 사건
— 수수께끼: 문 잠김, 도서실의 유일한 열쇠인 동쪽 동 마스터 키는 시체 옆 꽉 닫힌 잼병 안에서 발견됨, 문 내부 레버엔 가샤폰 돔 커버가 덮여 있었음.
— 해답: 문짝 바꿔치기. 시신을 도서실로 옮김  → 마스터 키를 잼병에 넣고 시체 옆에 놓음  →  자신의 방 문짝과 도서실 문짝을 교환 → 안쪽 레버에 가샤폰 돔 커버 설치  → 문을 닫고 나가서 자기 방 열쇠로 문을 잠금.

미쓰무라의 과거 완전 밀실
— 수수께끼: 완전하게 잠긴 방문과 고정식 창으로 완전 밀폐된 현장, 스페어 키 없는 유일한 방 열쇠는 시체 옆 서랍 속(서랍은 시체 주머니 열쇠로 잠김).
— 해답: 문짝 바꿔치기 + 다른 방 스페어 키를 이용. 현장 외 다른 방에는 스페어 키가 있었음. 범행 후 현장과 다른 방의 문짝 교환 → 다른 방 열쇠를 현장에 남기고 스페어 키로 외부에서 잠금 것.


이렇게 여섯 개의 사건과 트릭이 펼쳐지는데, 이 중 고전적인 장치형 트릭의 맛을 잘 살린 몇몇 사건들은 볼 만 합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첫 번째 설백관 밀실사건과 다섯 번째 야시로 씨 도서실 사건이었습니다. 설백관 사건은 고전적인 장치형 트릭을 현대적으로 변형한 사례로, 사용된 도구는 물론 현장 상황까지가 모두 실제로 범행에 필요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높습니다. 특히 녹음기나 불 꺼진 방 같은 설정이 단순한 분위기 조성이 아닌 트릭의 일부라는 것도 대단했어요. 비교적 간단한 장치로 복잡하지 않으면서 정교한 느낌을 주며, 독자가 충분히 추리 가능하도록 공정하게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고요.

도서실 사건 트릭은 정말 완성도가 높습니다. 무엇보다도 범인의 방 문짝과 도서실 문짝을 교체하는 트릭은 앞서 구즈시로의 대사를 통해 힌트를 제공함으로써 독자에게도 충분히 추리할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단서 제공 역시 철저하게 이루어지며, 도서실만이 마스터 키로만 열 수 있다는 설정도 좋았습니다. 같은 방식을 사용하더라도 현장이 다른 방이었다면 문 안에 두 개의 열쇠(마스터 키, 방 열쇠)를 남기게 되고, 그 때 방 열쇠로 문을 열 수 없게 되니까요.

하지만 여섯 개의 트릭 모두 완성도 높게 제공하는 건 어려웠던 듯 합니다. 특히 시하이 씨 사건의 핼버드 트릭과 사구리오카 사건은 유치하고 황당한 수준이었어요. 사구리오카 사건에서 탄환을 발사한 시한 장치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액체질소를 만능 도구처럼 쓴 트릭들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게 마네이 사건의 도미노 트릭입니다. 너무 억지스러워서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도미노 설치를 위한 얼음판을 만들려면, AI의 확인 결과 약 7.3리터의 물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이 정도의 얼음이 녹아 흐른다면 흔적이 남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닥재가 물이 스며드는 소재였다는 정도로 대충 넘어가는건 무리에요. 몰래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테고요. 데드볼트 잠금만으로도 충분히 효과적으로 밀실을 만들 수 있어서 도미노까지 이용한 이중 밀실을 구현할 이유도 없습니다.

미쓰무라 과거 사건에서 사건 현장 외 다른 방의 열쇠는 스페어가 있었다는 중요한 정보를 서술 트릭처럼 숨긴건 반칙처럼 느껴집니다. 이런걸 경찰이 알아채지 못했다는건 설득력이 떨어지고요.

밀실 트릭 외의 추리적인 부분도 한심한 수준입니다. 트릭을 풀어낸 뒤, 이걸 저지를 수 있는건 ooo뿐이야!는건 워낙에 용의자가 적은 탓에 별다른 감흥이 없고, 동기도 설득력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꽤나 장황하게 설명하는 트럼프 연쇄 살인과 ‘녹스의 십계’, 그리고 단순한 십계 설정은 억지스럽기 짝이 없고요. 이를 통해 어떻게든 살인의 타당성을 보여주려 애쓰지만, 희생자들이 죽을 만큼 잘못한 것도 아니고 범인을 특정할 수 있는 단서도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결과에 과정을 꿰어 맞추는 느낌이라서 거슬리기만 했습니다. 

설정의 완성도는 더 문제입니다. 밀실을 풀 수 없으면 무죄 판결을 받는다는 핵심 세계관 설정부터가 성립하기 힘든 탓입니다. 마스터 키나 스페어 키가 존재하지 않음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지 설명도 없으며, 21세기에 열쇠 복제가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요. 작품의 세계관에 동의할 수 없으니, 재미를 느끼고 몰입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합니다. 

주요 인물들 역시 만화적이고 비현실적입니다. 완벽한 밀실 살인으로 무죄를 받은 미소녀 미쓰무라 시쓰리, 아이돌이자 밀실 제조사로 범행을 저지르는 리리아, 살인 현장을 숭배한다는 종교단체 ‘새벽의 탑’과 17세 소녀 주교 펜릴 앨리스해저드 등은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이들의 언행은 독자의 몰입을 방해하는 수준입니다. '빙해' 어쩌구하는 대사는 제가 다 창피해지더라고요.

그래서 별점은 한없이 1.5점에 가까운 2점입니다. 몇몇 밀실 트릭은 고전 본격물의 정수를 잘 살려 볼 만합니다. 하지만 억지 설정과 조악한 추리 요소, 몰입을 방해하는 세계관과 캐릭터는 치명적인 탓에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솔직히 이 리뷰를 쓰는데 걸린 시간이 아까울 정도의 망작이에요. 밀실 트릭물의 광팬이 아니라면 추천하지 않습니다. "이 미스터리가 굉장해" 대상작이라는데, 이 정도까지 수준이 떨어졌는지 몰랐네요.

2019/11/08

살인의 문 1, 2 - 히가시노 게이고 / 이혁재 : 별점 2점

살인의 문 1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재인
살인의 문 2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재인

다지마 가즈유키는 치과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유복하게 보냈다. 그러나 할머니의 죽음 뒤 들불처럼 번진 소문 탓에 부모가 이혼한 뒤 아버지가 꽃뱀에게 걸려 집안이 파산하고 말았다. 겨우 취직한 다지마는 어린 시절 친구 구라모치 때문에 이런저런 사기 행각에 발을 들이게 되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2003년 발표 장편입니다. 제목은 주인공 다지마가 마지막에 구라모치를 죽이려다 망설인 순간, 구라모치가 습격당해 식물인간이 된 사건에서 형사가 한 말에서 따 왔습니다. 어떤 계기가 주어짐으로써 살인이라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다지마에게는 그 계기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계기가 있어야 살인자가 되는 문을 통과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하지만 작품은 제목만큼 거창한 사건이 벌어지는 추리물이나 범죄물은 아닙니다. 불행의 별 아래에서 태어난 듯한 주인공 다지마가 초등학교 동창이자 친구 구라모치와 악연으로 엮여 보낸 평생을 그리는 대하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평생이라고 해도 30대 정도에 불과하지만....
하여튼, 작가의 다른 작품인 "백야행"이나 "비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도 장기간에 걸친 등장 인물들의 드라마를 그리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환상적인 요소도 없고, 범죄물이나 추리물도 아닌 드라마로 접근하고 있다는게 차이점입니다.

물론 다지마를 정신적으로 옭아매는 구라모치의 사기 행위와 직접적인 살인을 비롯하여 수 차례의 살인 미수, 혼인 빙자 사기와 결혼 사기 등 온갖 범죄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범죄물로 볼 여지도 있습니다. 특히 사기 행위의 디테일, 그 중에서도 두 번째 사기인 금 예탁 사기의 디테일은 상당한 수준입니다.
다지마가 자신을 함정에 빠트린게 아내 미하루라는걸 밝혀내는 과정도 아주 그럴싸 합니다. 뻔한 트릭이고, 증거도 스토커 행위로 얻기는 하지만 그래서 더 설득력이 높게 느껴졌어요. 

그러나 이러한 범죄는 모두 다지마가 구라모치 때문에 평생 짊어지고 가게 된 불운의 한 종류일 뿐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범죄 소설 전문가라서 범죄가 소재로 사용되었던 것에 불과하지요. 그래서 아무리 봐도 보조적인 장치일 수 밖에 없습니다. 야구 이야기였다면 에이스였지만 어깨가 망가져서 선수 생명이 끝나고, 연인은 타 팀 4번 타자와 결혼한다는 "공포의 외인구단" 서두와 다름없는 셈이에요. 오혜성에게는 손 감독이라는 스승이자 멘토, 그리고 엄지라는 목숨을 건 집념의 대상이 있었지만 다지마에게는 불운만 가져다주는 악우 구라모치만 있었다는 정도만 다릅니다.

이렇게 범죄물, 추리물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기대와 살짝 다르지만 흡입력 만큼은 정말 대단합니다. 유복한 가정에서 부모님의 이혼, 아버지의 파산에 이은 몰락과 전학 등으로 겪게 되는 이지메, 첫사랑 소녀는 구라모치와 사귄 뒤 자살하고 그 뒤 구라모치와 엮여 이런저런 사기 행각에 가담하다가 조금 삶이 나아지나 싶을 때 만난 여자 탓에 비참한 결혼 생활을 거쳐 이혼하는 등 행복이라는 걸 거의 느끼지 못하는 어마무시한 삶이 정말로 파란만장하기 때문입니다. 불행의 수준만 놓고 보면 기리노 나쓰오의 주인공들과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에요.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에서 이렇게 불행한 등장 인물은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파란만장하기는 한데, 조금만 깊게 들여다보면 딱히 알맹이가 없다는 문제는 큽니다. 일단 지나치게 작위적이에요. 다지마의 선택이 항상 안 좋은 결과를 낳는게 너무 뻔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사람이라면 이렇게까지 실수를 했을까 싶을 정도라 설득력이 떨어지고 답답합니다.

게다가 중요한 실수는 모두 다지마 본인의 실수라서 딱히 구라모치 탓을 할 이유도 없어요. 첫 직장에서 다단계 판매 회사의 사기스러운 아르바이트에 대해 잠깐 만나던 가나에에게 말한 것도 다지마 본인의 실수이고, 미하루와 결혼을 결심한 것도 다지마 본인이니까요. 미하루와의 결혼은 구라모치의 음모가 있었다 하더라도 결혼하라고 등을 떠민건 아니니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결혼한 뒤 삶이 팍팍했다 하더라도 불륜을 저지른 것도 명백한 본인 잘못이고요.

첫사랑 요코의 자살도 구라모치에게 책임을 묻기는 어려워요. 정황 상 요코의 아이가 구라모치의 아이라는건 증명할 수 없거든요. 결국 진상은 밝혀지지도 않잖아요?
그 외에도 보석을 파는 다단계 회사 사기, 동서 상사의 금 예탁 사기, 마지막의 찬스 메이크 주식 사기 모두 본인이 돈 때문에 구라모치와 협력한건 사실입니다. 양심의 가책 어쩌구 해도 무려 3번이나 유사한 범죄에 발을 담근 주제에 정의로운 척을 하는건 어림 반푼어치도 없지요. 아무리 바보라도 이 쯤 되면 구라모치를 멀리하는게 당연할텐데, 그런 부분에서의 설득력도 약합니다.

아울러 다지마가 불행에 빠지게 된 계기인 부모님의 이혼은 구라모치가 퍼트린 소문에서 시작되었다는 마지막의 반전도 문제에요. 구라모치가 금수저 다지마에게 열등감을 가진 나머지 그만큼 성공하지 못하면 내 수준으로 떨어트리겠다! 고 결심했다는 설정은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맥락을 보면 다지마의 어머니가 시어머니에게 살의를 품었던건 분명한 사실이에요. 시도도 있었고요. 즉, 구라모치가 소문을 낸 건 잘못이라 하더라도 그 소문은 진짜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운이 좋아 범행이 밝혀지지 않았을 뿐, 소문을 내지 않았어도 동일한 결과가 빚어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 모든 원인을 구라모치에게 돌리는 건 무리입니다.
그리고 다지마의 집안이 몰락한 결정적인 이유는 아버지가 꽃뱀에 걸려든 탓입니다. 이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꽃뱀을 만나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가정일 뿐이지요. 아버지는 결혼 중에도 가정부 아주머니와 불륜을 저지른 호색한이니 별 차이가 없었을 것 같아요.

구라모치가 다지마에게 집착했던 이유로 구라모치의 성공 철학 - 성공하려면 내버릴 돌이 필요하니 버리기에 만만한 인재를 항상 곁에 두어야 하고, 그 인재는 믿을 수 있어야 하는 상대여야 한다 - 이 소개되는데 이 역시 합리적이지 못해요. 구라모치가 다지마를 사기 사업에서 내버린 적은 없으니까요. 오히려 다지마는 월급 한 번 밀리지 않고 잘 빠져나간 편입니다. 특히 마지막 사건인 찬스 메이크 주식 사기에서는 구라모치가 마음만 먹으면 다지마를 사기의 책임자, 총책으로 둔갑시키기 어렵지 않았던 점에서 볼 때 더더욱 그러합니다.
수차례 등장하는 다지마의 살해 계획도 반복되어 지루한건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청산가리 등 기껏 구했던 독극물은 다 어쨌는지 제대로 설명되지도 않고요.

캐릭터도 분량에 비하면 별로입니다. 특히나 다지마는 묘사된 양에 비하면 알맹이가 너무 없어요. 대표적인게 어린 시절 독에 탐닉했다는 묘사입니다. 덕분에 이지메에서 벗어날 수는 있었지만 딱히 어울리는 결과를 빚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지마가 반했던 유키도 사기꾼에 대항하던 강단있는 아가씨에서 어느새 구라모치에게 푹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나약한 여성으로 전락하고요. 언변좋은 사기꾼 구라모치만 그나마 볼 만 했습니다.
그런데 구라모치의 행각을 보면 다지마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었건 간에 액면가만 놓고 보면 평균 이상의 친구가 맞아요. 금전적인 면에서는 확실히 그러합니다. 이전 사기 행각에서의 소소한 도움은 둘째치고라도 마지막에 찬스 메이크 주식 사기에서는 거액의 돈을 댓가없이 빌려주고, 회사에서 고액의 연봉을 지급하며 임원 대우로 데리고 있었을 정도니까요.

이렇게 재미는 있지만 설득력없고, 흥미위주의 이야기가 반복된다는 점에서는 무협지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문제는 무협지는 주인공이 성장이라도 하지, 다지마는 끝까지 제자리 걸음이라는 점이지요. 즉, 무협지보다도 못합니다. 흡입력은 대단해서 킬링 타임용으로는 아주 빼어나나 작가의 최고작으로 보기에는 무리네요. 팬이 아니시라면 구태여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2018/03/10

유령탑 - 에도가와 란포 / 민경욱 : 별점 1점

유령탑 - 2점
에도가와 란포 지음, 미야자키 하야오 그림, 민경욱 옮김/북홀릭(bookholic)

'아케치 코고로'나 '괴인 20면상', '소년 탐정단' 시리즈가 아닌 에도가와 란포의 스탠드 얼론 장편으로 쇼와 12년, 즉 1937년 첫 연재가 시작되었던 초기작입니다. 쿠로이와 루이코의 번역서를 에도가와 란포가 다시 재가공하였으며, 원작은 앨리스 M 윌리엄슨의 "회색빛 여인" 이라고 하네요.

사실 큰 관심은 없었습니다. 발표 시기나 발표된 형태(번역서의 재가공)를 볼 때 구릴 것이다! 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집어든 이유는 딱 한 가지, 미야자키 하야오가 직접 그리고 해설한 서두 몇 페이지의 일러스트와 콘티가 마음에 들었던 덕분입니다. 지브리 미술관에서 "유령탑에 어서 오세요 전시 - 통속 문화의 왕도" 라는 기획전을 개최할 때 전시되었던 자료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본 편은 역시나, 생각만큼 구립니다. 별로에요. 설정은 작위적이기 짝이 없으며 모든 내용은 우연에 의지하고 있는 탓입니다. 키타가와 미츠오와 노즈에 아키코가 폐허가 된 유령탑에서 처음 만나는 장면부터 작위적이며, 뒤로 가면 갈 수록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이 망가집니다. 저택에서 열린 파티에 곡마단에서 탈출한 호랑이가 난입하고, 협박범을 미행하면서 탄 열차가 탈선 사고를 일으켜 협박범의 집에 잠입하게 되는 식의 어처구니 없는 설정과 전개는 슬랩스틱 개그물을 방불케 하거든요. 게다가 이를 공포스럽게 묘사하는 에도가와 란포 특유의 과장된 문체는 정말 가관입니다. "아아!" 라는 감탄사가 대표적이에요. 뭔 일만 일어나면 "아아...!" 거리니 이거 참 뭐라고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네요.

작위적이라도 이야기 전개가 탄탄하고 결말에 이르는 과정이 설득력있고 합리적이라면 참아줄만 했을겁니다. 그러나 역시나, 그럴리가 없죠. 짜임새가 헐거워서 극적인 재미를 느끼기 힘듭니다. 이야기는 초반부의 "유령탑에 얽힌 비밀"을 풀어내어 보물을 찾는 이야기에서, 중반부터의 노즈에 아키코의 정체가 무엇인지? 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갑니다. 유령탑에 얽힌 비밀은 고딕 호러에 모험물이 섞인 느낌이고, 노즈에 아키코의 정체는 전형적인 추리 서사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두 이야기 모두 짜임새가 헐거워 완성도가 낮습니다 .

보물을 찾는 과정은 고딕 호러같은 유래에 아주 약간의 암호 트릭이 결합된 전형적인 모험물인데, 결론적으로 보면 너무 쉬워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초록색 문(?)이 열린다는건 비밀이라고 할 수도 없어요. 그냥 시계탑에서 쳐다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미로로 들어간 뒤에는 아키코의 발자욱을 따라 걸어갈 뿐이라 극적 긴장감을 느끼기는 힘듭니다. 아키코가 어떻게 미로의 비밀을 풀어냈는지 설명도 되지 않고요. 단지 연구로 미로의 비밀을 풀어냈다는건 너무 유치한 발상이잖아요? 최소한의 암호 트릭이나 비슷한 무언가는 독자에게 전해주었어야 했습니다.
노즈에 아키코의 정체 관련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가 과거 양어머니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 징역을 선고받았던 죄수 와다 긴코였다! 까지는 뭐 그럴 듯 합니다. 하지만 노즈에 아키코, 즉 와다 긴코가 유령탑의 보물을 찾고 진범을 찾으려고 하는 사명이 있다는 설정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어요. 복수를 위해 진범을 찾고자 하는건 알겠지만, 보물을 찾는게 왜 사명이 될까요? 그리고 애초에 유령탑에 살 때에는 왜 찾을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걸까요? 또 변호사 쿠로카와를 제외한 잔챙이 악당들의 협박에 휘둘리는 것도 설명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번역작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라니르' 라는 독약을 이용하여 와다 긴코를 탈옥시킨 작전은 "몽테크리스토 백작" 과 너무나 똑같습니다. 지금 시점으로 본다면 표절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에요. 아울러 처음에 아키코의 정체는 살해된 노파의 하녀 아카이 도키코가 아닐까? 라고 의문을 던지지만 아키코가 항상 손목을 감추고 있다는 묘사로 그녀가 와다 긴코라는건 처음부터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이는 분량 낭비일 뿐입니다.

주인공의 모험도 앞서 말씀드렸듯 우연이 이어지는 전개이며, 차례로 수수께끼에 대해 증언이 이어지는 식이라 추리가 개입될 여지는 전무합니다. 무엇보다도 진범이 나카다 초조로 밝혀지는 장면도 어처구니 없습니다. 열 두 시 종소리에 공포를 느낀게 증거라니? 그리고 공포를 느껴 죽은게 천벌이라니? 20세기 초기의 사고 방식으로 밖에는 설명되지 않는 말도 안되는 주장입니다. 당시 나카다 초조에게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어서 혐의를 벗었다는데, 그 알리바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는 것도 황당합니다.

딱 한가지 건질만 했던 부분은 죽은 와다 긴코가 어떻게 다르게 생긴 노즈에 아키코로 돌아왔는지? 에 대한 수수께끼입니다. 현재로서는 별거 아닌 미용 성형을 무슨 대단한 과학 기술인양 포장하여 묘사한건 우습게 느껴지지만 쓰여진 시기를 감안하면 참아줄 만 합니다.

하지만 괜찮은 부분은 전체 분량의 1/10도 안되는 느낌이에요. 우리나라로 따지면 근대 직전의 신소설 느낌이 날 정도로 낡은 작품입니다. 그 어떤 가치도 찾기 힘들기에 제 별점은 1점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름에 낚이지 마시길 바랍니다. 차라리 미야자키 하야오의 해설 부분만 떼어내어 1/10 가격으로 파는게 더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2008/10/08

인사이트 밀 (incite Mill) - 요네자와 호노부 / 최고은 : 별점 3점

The Incite mill 인사이트 밀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학산문화사(단행본)

여자친구를 만들기 위해 차를 구입하려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잡지를 뒤적이고 있던 평범한 대학생 유키 리쿠히코. 그런 그에게 갑자기 등 뒤에서 한 미녀가 말을 걸어왔다. 그 여자와 함께 들여다본 잡지 귀퉁이에 실려 있던 광고에는 시급 112,000엔, 엄청난 고액의, 엄청나게 수상한 아르바이트가 실려 있었다.
'연령과 성별 불문. 일주일 기간의 단기 아르바이트. 어느 인문과학적 실험의 피험자. 하루의 구속 시간은 24시간. 인권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24시간 피험자를 관찰한다.' 수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엄청난 시급에 눈이 멀어 망설임을 이기고 연락을 넣은 유키는 지정된 장소 ‘암귀관’을 향한다. 참가자는 열두 명. 그리고, 등 뒤로 육중한 문이 닫힌 순간, 열두 명의 운명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밤'을 향해 치닫는다.


2008년 “이 미스터리가 굉장해!”에서 10위를 차지한 요네자와 호노부의 장편 소설입니다.

정말 재미있게 읽은 소설로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몰입하여 하루만에 읽어버리게 만드는 흡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추리소설 매니아를 두근거리게 만드는 작중의 설정 및 트릭도 굉장히 매력적이었고요. 또한 일상계 추리소설을 발표해 왔던 요네자와 호노부의 전작과 유사하게 등장하는 인물들 대부분이 일상인, 소시민들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여자친구를 사귀기 위해 중고차를 사려고 아르바이트에 응모하는 주인공이라니.. 정말 생동감이 넘칩니다.

하지만 분명 단점도 존재합니다. 제일 큰 단점은 모든 상황과 설정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이겠죠. 애당초 비밀의 조직에서 거액의 돈으로 아르바이트를 모집한 뒤 잘 기획된 폐쇄된 공간에 일단의 무리를 집어넣는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만화적이잖아요. 법과 돈을 초월한 의문의 조직, 잘 짜여진 룰과 상황에 어울리는 최적의 무대, 이건 완벽하게 만화 “라이어 게임” 판박이죠. 게다가 이 비밀의 조직이 행하는 실험(?)의 이유조차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아르바이트 잡지에 광고를 실었다는 결정적 증거가 있는 이상 관련한 수사가 진행된다면 분명히 꼬리가 잡혔을 텐데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되지 않는 점은 작가 스스로 쓰고싶은 부분만을 위해 억지로 가져다 붙인 설정이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앞서 말한 생동감 있는 소시민 캐릭터도 "스와나"라는 초슈퍼 엘리트 냉혈 미인 때문에 빛을 잃는 면도 없잖아 있고요. 인터넷 지인이신 decca 님의 말에 따르면 이러한 작위성이 매력이라고 하시던데 작위적인것도 정도껏 해야죠.... 제게는 만화를 소설로 억지로 각색한 느낌이 더 컸습니다.

또한 이 폐쇄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의 과정 역시 합리적인 이야기 진행과는 거리가 멉니다. 일단 한명 죽이면 몇배, 범인을 밝히면 몇배 식으로 배율을 정해놓고 살인 게임을 유도한다고 하는데, 사실 제일 힘이 센 인물이 한명만 동료로 끌어들여 연쇄살인을 뚝딱 저지른다면 곧바로 게임이 끝나고 엄청난 거액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거든요. 물론 양심에 호소하며 그러한 상황을 방지코자 하는 애매한 묘사가 나오긴 하지만 설득력은 떨어지죠. 작중에서도 결국 범인은 “2명”을 살해하는 상황인데 “2명”과 “10명”의 차이가 과연 존재할 지 의문이기도 하고요. 아울러 한 4~5명 살해하고 감옥에 갇히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니었을까요? 가장 안전한 곳은 감옥이니 만큼 살해에 따른 보너스 수입과 안전을 손에 넣는다면 괜찮은 방법이었을 텐데 말이죠.

그리고 사건이 너무 “트릭”을 위해 작위적으로 짜여진 것도 껄끄럽더군요. 이 소설에서 진정한 이유를 가진 살인(?)은 첫번째 살인밖에 없으며, 이후 벌어진 살인은 전부 우발적이고 우연에 의한 것입니다. 물론 중간에 있는 두건의 살인은 확실한 동기가 나중에 밝혀지기는 하지만 살인이 벌어지는 상황이 우연과 우연이 결합된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작위적이었고, 극적인 결말을 위해 가져다 붙인 티가 많이 납니다. 우연과 우연이 결합되는 상황 역시 중간에 등장하는 “어디에 가나 3인 이상 이동” 이라는 그럴듯한 설정에 발목을 잡힌 듯 무리수를 둔 느낌까지 들고요.

이렇듯 단점이 좀 많고 아쉬운 부분도 많은 작품이라 비록 굉장히 재미있긴 하지만 자신있게 추천하기는 좀 애매한 작품입니다. 야구에 비유하자면 2사 1,2루 찬스에서 타점없이 진루만 가능한 짧은 안타를 친 격이랄까요. (번트안타?) 그래도 저는 손에 한번 잡으면 놓기 힘들 정도의 재미를 갖췄기에 별 3개 주겠습니다. 아무리 단점이 많고 만화같은 설정이라도 재미가 가장 중요한 법이니까요. 뭔가 속편을 암시하는 결말인데 속편이 나온다면 재미는 유지한채 보다 정교하고 철저한 설정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2014/09/02

탐정 취미 - 유재신, 이현진, 박선양 : 별점 1점

탐정 취미 - 2점
유재진.이현진.박선양 옮김/문

"일본의 탐정소설"에 이어지는, 식민지 조선에서 발표되었던 추리 문학을 발굴하여 소개하는 책입니다. 자료로서 꽤 괜찮았던 전작에 기대가 컸고, 기획 의도도 마음에 들어 구입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실망스러웠습니다. 식민지 조선에서 창작되었던 추리 소설의 수준이 높지 않았으리라는 건 이미 짐작했었지만, 최소한의 기대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수준 이하였던 탓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1929년 11월에 연재가 시작된 김삼규의 "말뚝에 선 메스"입니다. "김내성""타원형 거울"보다 먼저 발표된 '한국 최초의 탐정 소설'이라서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다는건 분명하지만 완성도가 심하게 떨어져 한 편의 소설로 보기 어려웠거든요. 의문의 카드, 엽기적인 연쇄살인 등 이야깃거리는 많지만, 전개는 복선도 단서도 없이 생각나는 대로 써내려간 느낌을 주니까요.

조선의 일본인들이 합작 형태로 발표한 "여자 스파이의 죽음"은 진범과 진상이 너무 황당했고, 세 구슬의 비밀"은 러시아 가문의 암투극이라는 설정이 무리였습니다. 그나마 "여자 스파이의 죽음"에서 ‘누드화와 열쇠구멍을 직선으로 연결해 총을 쏘았다’는 독특한 트릭이 흥미로웠고, "세 구슬의 비밀"은 앞선 복선과 인물들로 연결되는 결말만큼은 괜찮았지만 완성도에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그 외에 조선에 소개되었던 셜록 홈즈 번안물 두 편, "명마의 행방"과 "의문의 죽음(얼룩끈)"이 실려 있는데, 원작 대비 특별한 점은 없었습니다. "명마의 행방"은 등장인물과 지명, 설정을 일본식으로 바꿔 놓은게 인상적이긴한데 "진주탑"처럼 시대적 상황을 잘 녹여낸 번안은 아니었고, 단순히 이름만 바꾼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물론 당대 조선의 문인들이 창작하고 발표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는 분명 있습니다. 예컨대 당시에 수면제가 널리 쓰였다는 점, 러시아계 여인들이 카페 등에서 일한 것이 그다지 이색적이지 않았다는 사회상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여자 스파이의 죽음"에서의 공산주의자 조직, "세 구슬의 비밀"에 등장하는 종로의 실존 장소들(우미관, 미쓰코시 백화점 등), ‘천 원은 일본인 사무원의 일 년치 연봉’이라는 묘사도 좋았고요. 특히 일본인들이 ‘아파트’에 거주한다고 묘사된 부분이 의외였는데, 조사해 보니 실제로 식민지 조선에 "아파트로 불렸던 건물"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이번 독서의 가장 큰 수확이었습니다.

하지만 자료적 가치를 제외하면 작품성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14,000원이라는 가격에 비해 책의 완성도도 심하게 낮고요. 번역이 어려운 단어는 ‘XXXXX’로 처리하는 무성의한 편집도 거슬렸고, 두 장의 페이지가 빠진 채 출간되어 내용 이해에 방해가 되는 점도 감점 요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점입니다. 저처럼 식민지 시기의 조선 문학이나 추리소설 문화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 아니라면 굳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관심이 있으시더라도 "조선의 탐정을 탐정하다" 한 권이면 충분합니다.

2008/10/04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3 기괴환상 - 에도가와 란포 / 김은희 : 별점 3점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3 - 6점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은희 옮김/두드림

이 책은 국내 굴지의 추리 동호인 커뮤니티인 하우미스테리의 이벤트에 응모해 당첨된 책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하우미스테리 운영진여러분과 도서출판 두드림 관계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전에 구입해서 읽었던 전단편집 1편인 본격추리 1과 동일한 포맷과 기획의, 초기 에도가와 란포의 단편을 모아놓은 단편집으로, 제목 그대로 기괴환상이라는 주제에 맞는 단편만 골라 모아놓은 책입니다. 전부 22편의 작품이 실려 있습니다.
하지만 미완성 작품인 "공기사나이"와 "악령" 2편이 거의 100여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으로 실려있는 것은 이 기획이 에도가와 란포의 단편 모두를 소개하자는 취지라고는 하더라도 솔직히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었으며, "붉은 방"과 "인간의자", 그리고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 3편은 에도가와 란포가 후기에서도 직접 언급하듯이 "여태까지 이야기는 사실은 거짓말이었다며 빠져나가는" 류의 작품으로 설정이나 전개는 좋았지만 결말의 완성도가 아주 높다고 보기는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그 이외의 작품들은 역시 명불허전이랄까, 거장 에도가와 란포의 상상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좋은 작품들이라 생각됩니다. 그 중에서도 개인적인 베스트는 기괴하고 음울한 상상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최고 걸작 "고구마벌레" 를 꼽고 싶네요. 전쟁 직후의 참혹한 상황과 인간의 잔인함을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감각을 마음껏 펼쳐 묘사한 작품이거든요.
시대를 앞서간 비쥬얼적 감각을 보여주는 "백일몽"과 "화성의 운하", "거울지옥" 도 좋은 작품으로 광기어린 상상을 표현하는 묘사가 굉장히 디테일하면서도 적나라한 것이 란포 월드 그 자체였습니다. 한국 추리소설가 김래성씨의 단편집 "비밀의 문"에 엄청난 영향을 준 것이 확실하다는 생각 역시 갖게 되었고요.
추리적 성향이 가득 묻어나는 "쌍생아", "메라 박사"와 "벌레"도 추리소설가로서의 에도가와 란포의 내공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메라박사"의 기발한 원격조종트릭은 다소 환상적인 성향에 기대고 있지만 "쌍생아"의 지문 트릭은 그럴듯 해서 정통 추리로 보아도 손색없는 작품으로 보이네요.

좀 섬뜩하고 기괴한 이러한 작품군이 취향은 아니었으며 지금 읽기에는 좀 낡아보이는 감도 없잖아 있지만, 에도가와 란포의 명성에 걸맞는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주는 작품이 많아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에도가와 란포의 후기도 자료적 가치가 충분하고요. 약간의 단점과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별점 3점은 충분한 고전이라 생각됩니다.

덧붙이자면, "고구마벌레"와 "화성의 운하", "거울지옥", "벌레"라는 기괴한 상상력의 극단을 달리는 4작품을 모아 "란포지옥"이라는 영화가 제작된 모양인데 영화에 정말 어울리는 상상력이라 생각되는 만큼 영화도 기대가 됩니다. 

2023/04/16

亂れからくり 복잡한 기계장치 : 6. 비스크 인형

亂れからくり (創元推理文庫) (文庫) - 8점 泡坂 妻夫/東京創元社

6. 비스크 인형
어두운 마을에서 마와리 가의 한 귀퉁이만 희미한 빛에 둘러싸여 있었다. 담벼락에 세워진 몇 개의 화환이 희미한 흰 그림자처럼 보였다. 가만히 움직이지 않는 몇 대의 차들.
문이 열리고, 검은 옷을 입은 일행이 역으로 향하는 길로 사라졌다. 토시오는 문 앞에 잠시 멈춰 섰다. 손에는 마사오의 긴 가방을 들고 있었다.
현관문은 열려 있었고, 양쪽에 하얀 연등이 노란 빛을 어렴풋이 비추고 있었다. 정면에 흰 나무 제단이 놓여 있고, 검은색 액자 속에는 토모히로의 얼굴이 있었다. 어제 마이코가 보여줬던 사진과는 느낌이 달랐다. 웃지 않는 토모히로는 흑백이라서 그런지 훨씬 더 우울해 보였다.
흰 천이 걸린 관 앞에서 스님이 경을 읽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뒷모습은 야위었지만, 목소리는 힘찼다.
"안녕하세요, 또 뵙게 되었군요."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돌아보니 검은색 옷을 입은 남자가 마이코의 어깨를 두드리고 있었다. 옅은 색의 안경을 쓴 소우지였다. 마이코는 깜짝 놀란 듯이 소우지를 바라보았다.
"....당신, 누구죠?"
마이코는 생각하는 척했다.
"싫은데요. 벌써 잊어버리셨나요. 어제 만나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잖아요."
소우지는 마이코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낮고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어제…….?"
소우지는 안경 너머로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보세요, 샹보르관 앞에서 나를 지나쳤잖아요."
마이코는 눈을 가늘게 떴다.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했다. 소우지는 토시오를 살짝 쳐다보았다,
"당신은 젊은 남자와 함께 있었어요. 하지만 그 사람이 이 사람인지 아닌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하지만 당신의 얼굴은 한 번 본다면 절대 잊을 수 없습니다. 주모우의 비스크 인형과 꼬 닮았으니까."
"주모우의 비스크 인형?"
어제 마이코를 본 소우지가 같은 말을 했던 것이 생각났다.
"실례지만, 당신의 얼굴은 내가 좋아하는 인형과 꼭 닮았어요. 그런 말 들어본 적 없나요?"
"아니요, 하지만 주모우라는 이름이라면 들어본 적이 있어요. 인형이라고 하니까 기억이 났어요. 프랑스의 인형 제조사였던 것으로 기억해요."
"이거 참 반갑네요. 내가 만난 여성 중 주모우를 알고 있는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에요"
"그런데 비스크 인형이 뭐지요?"
"19세기에는 고급 패션 인형이 활발하게 만들어졌어요. 비스크 인형은 주모우 사가 1840년대에 개발한 인형이에요. 인형의 목이 아름다운 도자기로 만들어졌지요. 라틴어로 비스는 두 번이라는 뜻이고, 큐이는 구운다는 뜻입니다. 즉, 두 번 구웠다는 뜻이죠. 고온으로 구운 초벌구이 목에 색을 입히고 다시 저온으로 구우면 지금까지 없던 아름다운 피부색이 만들어져요. 피에르 주모우의 인형은 모두 당신과 같은 매력적인 얼굴로 만들어졌어요."
"고마워요. 비스크 인형이군요. 기억해 두겠습니다."
"피에르의 아들인 에밀 주모우는 인형의 기능적인 면에서도 재능을 발휘했습니다. 용수철 장치로 인형이 움직여 바이올린을 연주하거나 마술을 부리기도 하죠. 오르골이 달린 것도 있고, 소리 내어 말하는 인형도 만들어졌어요. 저도 몇 점 가지고 있는데, 당신에게 보여드리고 싶군요."
"꼭 보고 싶네요."
"당시는 고체, 슈미트, 스테넬 등 인형 제작자들의 군웅할거 시대라 할 수 있는데, 나는 왜인지 주모우의 비스크 인형에 가장 마음이 끌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여자의 마음도 빼앗으려는 거겠지요."
소우지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당신은 토모히로와 아는 사이인가요?"
"아니요."
마이코는 토시오가 들고 있는 가방을 가리켰다.
"저거 마사오 씨의 가방 아닌가요?"
"네, 어제 마사오 씨를 차에 태워 드렸어요. 그 때 가방을 잊어버리셔서 가져다 드리러 왔어요."
소우지는 안경 너머로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럼 당신들이 마사오 씨의 생명의 은인이었군요."
"그런 거창한 일은 아닙니다."
"토모히로는 안타깝만, 마사오 씨가 경미한 부상으로 끝난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이제 독경도 끝났을 테니 나중에 옆방으로 오세요."
"하지만 마사오 씨와는 어제 만났을 뿐입니다."
"사양하지 마세요. 방금 전에 회사 사람들이 방문했던 탓에 완전히 지쳐버린 상태라, 마사오 씨도 분명 기뻐하실 거예요."
소우지는 토시오에게서 가방을 받아 들고 방으로 올라가 두 사람을 초대했다.
국화 생화 한 가운데에 마사오가 앉아 있었다. 원래의 하얀 얼굴은 상복의 검은색에 싸여서 거의 보이지도 않았다. 가느다란 어깨는 그대로 슬픔의 선이었다.
마사오 옆에 작게 쭈그리고 앉아 있는 사람은 마사오의 어머니로 생각되었다. 눈빛이 마사오를 닮았다. 어제 대문 앞에 서서 마사오와 토모히로를 배웅하던 노파였다. 작은 무릎 위에는 낯익은 소년이 앉아 있었다. 도망치려 하는 아이를 노파는 계속 달래고 있었다.
마사오 앞에는 대머리 노인이 앉아 있었다. 토모히로와 어딘지 모르게 닮은 점이 있었다. 토시오는 마와리 데츠바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독수리 같은 눈빛과 한 줄로 굳게 다문 입이 굳은 성격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데츠바는 쪼그리고 앉아서 몸을 앞으로 숙이고 있다. 뚱뚱한 몸을 구겨 앉는 것이 힘들었을 것이다.
데츠바 옆에는 젊은 여성이 있었다. 토시오는 이 여성의 존재가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마이코의 입에서 단 한 번도 이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이는 스물다섯, 여섯 살, 빨간 머리, 입술에 짙은 화장을 하고 있다. 밝은 느낌의 미인이지만 검은색 옷은 어울리지 않았다.
마사오는 토시오의 얼굴을 보고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입이 움직이며 무언가를 말하는 것 같았다. 마사오의 목소리는 토시오의 귀에 닿기도 전에 경을 읽는 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마이코는 두 손을 모아 염주를 쥐고 있었다. 토시오는 마이코를 옆에서 바라보며 향에 불을 붙였다.
소우지가 나와서 두 사람을 옆방으로 안내했다. 해바라기 공예 직원으로 보이는 여성이 두 사람에게 차를 끓여주었다.
잠시 후 경을 읽는 소리가 끊겼다. 스님이 다른 방으로 간 것 같았다.
"잠깐만요, 마사오 씨"
소우지가 불렀다. 마사오가 방으로 들어오자 소우지는 가방을 내밀었다.
"이분들이 전해주셨어요. 고맙다는 말을 해야지."
마사오는 깜짝 놀라며 가방을 쳐다보았다.
"없어진 줄로만 알았어요. 이게 어떻게 된 거죠?"
토시오는 마사오의 눈빛이 눈부시게 느껴졌다.
"팔에서 떨어지지 않아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아서 제가 떼어낸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랬군요."
마사오는 가방을 소중히 받았다.
"내용물을 확인해보는게 좋겠어."
소우지가 입을 열었다.
"설마... 그런 무례한 짓을..."
마사오는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토시오는 무거운 공기로부터 벗어난 것 같았다.
"상처는? 아프지 않습니까?"
마사오는 고개를 돌려 반대편 뺨을 바라보았다. 뺨에는 검붉은 흉터가 남아있었다. 토시오는 상처의 흔적보다 구부러진 하얀 목덜미에 시선이 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다리는?"
"많이 좋아진 것 같습니다. 걱정 끼쳐 드렸네요."
데츠바가 와서 앉자 소우지가 두 사람을 소개했다. 데츠바는 말없이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이, 주모우.......실례지만, 아직 이름을 듣지 못했군요."
마이코는 명함을 꺼냈다. 소우지는 마이코의 명함을 보고 혼자서 고개를 끄덕이며 주머니에 넣었다.
데츠바 옆에 앉아있던 처음 보는 젊은 여성은 소우지의 여동생이었다. 소지는 마사오를 구해줬을 때의 토시오의 행동을 보고 온 듯이 말했다.
"정말 대단하네요."
그녀는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카오리(香尾里)였다.
"카오리, 너도 그렇게 영웅에게 구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쥰키치가 알게 된다면 화내지 않을까?"
소우지가 말했다.
"오빠,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세요."
카오리는 정말 화가 난 것 같았다.
"카오리는 쥰키치와 내년에 결혼을 하기로 했습니다. 이시마키 쥰키치 군은 해바라기 공예의 유능한 개발부원이랍니다."
카오리는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는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소우지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이는 카오리의 손을 뿌리치고 테이블을 가로질러 걸어가더니 갑자기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과자를 집어 입에 넣었다.
"토우이치군, 엄마한테 혼날 거야. 또 이빨이 상할지도 몰라."
카오리가 말했다.
"정말 단 것을 좋아한다니까."
마사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소우지는 두 사람을 비교하며 말했다,
"아빠가 너무 엄격했던 것 같아. 본인이 단 것을 싫어했으니까. 아이는 금지하면 더 많이 먹고 싶어하는 법인데 말이지."
소우지의 비판적인 말투에 카오리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아빠는 토우이치를 정말 귀여워 해 주었어요. 치과에 데리고 간 적도 있었죠."
마사오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보니 양손 사이에는 하얀 손수건이 비벼져 있었다. 토우이치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어머니의 슬픔을 감지한 듯 마사오를 꼭 껴안고 있었다. 그때 한 할머니가 봉제 곰 인형을 들고 왔다.
"자, 토우짱, 이제 자러 가자. 곰 인형을 들고 ......"
"엄마, 부탁해요"
마사오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토우이치를 맡기려 했다. 토우이치는 봉제 곰 인형을 내던졌다.
"오, 오랜만인데."
소우지는 곰을 집어 들었다.
"토우이치는 곰 인형을 가지고 자나요?"
"그게 없으면 잠을 잘 못 자요."
마사오가 말했다.
소우지가 계속 곰 인형을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이상하네. 안 움직여."
곰의 목에 달린 스위치를 움직이면서 말했다.
"움직이는 장난감이에요?"
마사오가 들여다보았다.
"마사오 씨는 장난감에 대해 잘 모르시나 봐요. 배터리가 들어가게 되어 있어요. 배터리가 있다면 제대로 걸을 수 있을 텐데........"
소우지는 곰 인형의 등을 열어 보았다.
"야, 배터리가 없구나. 다음에 건전지를 사서 아저씨가 움직여 주도록 하지. 이 장난감은 누가 사 준거죠?"
"토모히로요."
소우지는 나쁜 말을 들은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토우이치는 소우지의 손에서 곰 인형을 빼앗았다. 마사오의 어머니는 그제서야 토우이치를 안고 방을 나갔다.
"항상 혼자 자요?" 
소우지가 물었다.
"네,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마사오는 토우이치의 흐트러진 옷깃을 고쳐주고 있었다.
"대단하네요. 좋은 습관이네."
"토모히로가 그렇게 가르쳤어요."
소우지는 입을 다물었다. 마사오는 일부러 계속 토모히로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 같았다.
마침 옷을 갈아입은 스님이 검은색 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남색 도포 차림의 스님은 바쁜 정치인 느낌으로, 말도 많았다. 어느새 자신이 젊은 시절 유학했던 유럽의 풍속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형이 일찍 죽어서 가업을 잇지만 않았어도 지금쯤 서양미술로 가문을 일으켰을 텐데 말이죠."
그는 물 한 잔을 마시며 말했다.
마사오가 부드럽게 토시오와 마이코의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토모히로가 부탁한 것이 있었군요."
마이코 일행이 토모히로의 차를 뒤쫓고 있는 것을 택시 기사가 눈치챘던 모양이다.
"그래, 하지만 이제 끝났습니다."
마이코도 주변을 피하듯 말했다.
"비밀이었나요?"
"글쎄요......"
"저는 토모히로의 아내입니다. 그 조사 내용을 알려주시겠어요?"
마이코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새로 거래할 회사의 신용조사였어요. 해바라기 공예에는 비밀로 해달라는 조건으로요."
"새로운 거래 ....... 그 조사는 끝났나요?"
"이제 보고서 작성만 남았어요."
"그 보고서를 저한테 전달해 주시겠습니까?"
"당신에게? 읽고 어떻게 하실 건가요?"
"......토모히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알고 싶어요"
"남편이 당신한테 숨기고 있는 것이라도 있나요?"
"어제 러더퍼드 데이비스 씨에게 연락을 취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토모히로와 만나기로 한 약속이 전혀 없었다고 하더군요."
토시오는 토모히로의 격렬한 명령을 떠올렸다. 토모히로가 왜 있지도 않은 약속을 위해 마사오를 이용하려 했던 것일까?
"나는 최근 들어 토모히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되었어요. 나는 토모히로의…."
마사오는 말끝을 흐렸다. 스님이 돌아갈 준비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약간의 오해가 있었던 것 같았다. 소우지가 부탁한 택시가 아직 오지 않았다. 소우지는 택시 회사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마이코는 자신의 차로 데려다 주겠다고 제안했다. 소우지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미녀에게 호송을 받다니, 고마운 일이군."
스님이 말했다.
"그 대신에, 승차감이 좋지 않습니다."

"그 사고 현장에 있었던게 당신들이었나요?"
마이코와 스님이 나란히 뒷좌석에 앉았다.
절이 있는 곳은 데츠바의 집과 같은 오노와였다. 토시오는 처음 가는 오노와라는 곳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맞습니다. 순간적으로 폭발이 일어난 게 아닌가 싶었어요. 그게 설마 운석일 줄은 몰랐네요."
"구약성경에 있잖아요.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돌을 내려 원수를 죽였다는 말이요. 이 큰 돌이라는 것은 운석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아니면 운석비였다고 볼 수도 있을테고."
"운석비? 비처럼 운석이 떨어지는 게 있나요?"
"거대하고 부서지기 쉬운 성질의 운석은 지구 대기에 뛰어들면 산산조각이 날 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운석비죠."
"거의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요?"
"아니, 얼마 전에도 보도된 적이 있었어요. 1976년 중국 동북부 길림성 지역에 떨어진 운석비는 그 범위가 무려 오백 평방킬로미터에 이르렀다고 하더군요. 수집된 운석은 백 개 이상, 최대 1,770Km의 운석이 떨어진 자리에는 직경 2m의 분화구가 생겼다고 합니다."
"도시에라도 떨어지면 대재앙을 피할 수 없었겠군요"
"떨어진 곳이 어디냐에 따라 다르겠죠. 하여튼, 토모히로 씨도 불운한 일을 당했어요."
"데츠바 씨도 낙담했을 것 같네요."
"글쎄요, 고집센 녀석답게 별로 티는 내지 않더군요. 물론 마음속으로는 그렇지야 않았겠지만….."
"그렇게 고집많은 분으로 보이지는 않던데요."
"당신은 처음 봤겠지만 나는 어렸을 때부터 데츠바를 압니다. 꽤나 대단한 녀석이에요. 첫째, 그 나이가 되어도 의사에게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건강해서 그런게 아닐까요."
"그럴리가, 나야 건강하지만 데츠바는 얼마 전에 가벼운 뇌출혈로 쓰러진 적도 있어요."
"그런데도 병원에 가지 않으셨다고요?"
"아니, 그때는 갔죠. 그런데 약을 먹자마자 이번에는 혈압이 너무 내려가서 2주일 동안 머리가 아팠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온 의사를 돌려보내고 말았죠. 그런데 데츠바의 의사 혐오증은 이 때 시작된 것이 아니에요. 그의 아내가 죽은 이유가 의사의 오진 때문이었거든요. 장폐색을 잘못 진단했었지요. 데츠바의 동생 류키치, 그는 토모히로의 아버지인데, 류키치의 죽음도 의사 탓으로 믿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마사오 씨에게 혈압을 재도록 하고 있어요."
"마사오 씨가?"
“그녀는 원래 큰 종합병원의 간호사였어요. 혈압 강하제도 마사오 씨가 구해 온 것만 마십니다. 매일 아침 한 알씩, 캡슐에 든 약을 계속 복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만사가 그런 식이에요. 그 고집스러움은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데츠바의 아버지는 어른스러운 분이셨지만…..."
"데츠바의 할아버지라고 하면 해바라기 공예를 만들었던 호도라는 분인가요?"
"맞아요. 호도씨는 내가 어렸을 때 두세 번 만난 적이 있는데, 데츠바를 꼭 닮았어요. 다만 스케일은 더 컸지요. 메이지의 낭만도 가지고 있었고요. 어쨌든 저 이상한 나사 저택을 지은 사람이었으니까."
"나사 저택... 이름만 들어봤어요."
"마침 절로 가는 길에 나사 저택 앞을 지날 거예요. 한밤중의 나사 저택은 또 다른 묘한 분위기를 풍기죠."
"오싹한 건물인가요?"
"지금은 낡아서 그래요. 새 건물이었을 때는 묘하게 활기차고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있었어요."
"데츠바 씨는 지금도 그 집에 살고 있다고 하더군요."
"네, 아들 소우지, 딸 카오리와 함께요. 살기 불편할 것 같지만, 소우지는 일종의 호사가고, 카오리는 화가 지망생이니 그 집에 잘 어울립니다."
"언제쯤 지었습니까?"
"다이쇼 초기, 아직 서양 건축이 드물었던 시대. 정석적인 건축법에 맞지 않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화제가 되었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아요. 슈발의 궁전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없을 겁니다."
"슈발의 궁전?"
"프랑스 남부 드롬주 오트리브 마을에 세상에 보기 드문 건축물이 있습니다. 소문을 듣고 프랑스에 갔을 때 관람료를 내고 구경해 본 적이 있지요. 돌과 시멘트로 마구잡이로 만든 궁전입니다. 궁전이라고는 해도 인도 사원을 연상시키는 건물이 있는가 하면, 옆은 페르시아풍으로 되어 있기도 합니다. 벽면에는 여기저기 기괴한 짐승과 사람의 형상이 새겨져 있고요. 마치 아이가 종이 한 장에 생각나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자유자재로 성을 그려나간 것처럼 슈바르의 궁전에도 온갖 상상력이 쏟아 부어졌습니다. 단 한 사람의 손길 하나로요."
"단 한 사람의?"
"네, 우편배달부 페르디난트 슈발이라는 사람이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나서 돌을 주워와서 짓기 시작했고, 완성될 때까지 무려 34년의 세월이 흘렀다고 하네요."
"그러고 보니 조개껍데기를 주워다가 집을 지은 사람, 빈 병으로 건축을 한 사람 등의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인간이라는 존재는 한가하면 이상한 것을 만들고 싶어하는 동물입니다. 돈이 없어도 그러한데, 돈과 권력이 있으면 오죽하겠습니까. 엄청난 건물을 만들고 싶어하는 것이지요. 다이묘들은 더욱더 큰 성을 짓고 싶어했지만, 절반은 도락이라고 할까, 취미라고 할까, 장난 같은 부분이 있었어요."
"그렇지 않으면 천수각과 같은 아름다움은 만들 수 없죠"
"아름다움 못지않게 기묘한 동물인 인간에게 중요한 것이 바로 장난감이었습니다. 고대로부터 신전이나 궁전에는 반드시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장치가 있었습니다. 크로커다로폴리스의 미궁이라는 것을 알고 있나요?"
"아니요."
"고대 이집트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미궁인데 열두 개의 궁전으로 이루어져 있고, 삼천 개의 방이 있었다고 해요. 그 기술과 규모는 피라미드를 훨씬 능가하는 것으로 상상도 할 수 없는 미로였다고 할 수 있어요. 또한, 궁전 안에는 여러 가지 큰 장치들이 설치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문을 열면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는 방. 한 발자국만 들어서면 강렬한 빛이 쏟아져 눈부시게 빛나는 방. 바닥이 파도처럼 움직이는 방…… 알렉산드리아의 헤론은 이 미궁의 수수께끼를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있어요."
"그 미궁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었나요?"
"아무도 갈 수 없는 그 미궁에는 왕과 신성한 악어가 조용히 묻혀 있었습니다. 미궁이라고 하면 테세우스가 잠입했다는 크레타 섬의 미노스 왕의 미궁도 유명하죠. 테세우스는 아름다운 아리아드네가 준 비단실을 풀면서 미궁을 빠져나갔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사람들의 시심을 자극하지요. 아무래도, 미녀가 등장하니까요. 미녀는 어디에 곁들여도 좋지요"
"그건 그렇겠죠."
마이코는 여유롭게 웃었다.
"로마 시대에는 시빌의 신전이 유명한데요. 이 신전에 있는 제단에 불을 붙이면 저절로 안쪽의 성소 문이 열렸다고 합니다. 이 속임수는 잘 먹혔던 모양이에요. 후대에 이르러서는 여기저기서 같은 장치를 갖춘 신전이 만들어졌다니까요. 속임수를 모르는 신도들은 상당히 놀라고 두려워했다죠. 옛날에는 신기한 작용을 하는 사술이 곧 종교와 연결되곤 했습니다. 사실 이 장치는 이제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불에 달궈진 공기의 팽창하는 힘이 신전 문에 전달되는 것 뿐이니까요. 옛날 사람들은, 아니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예컨데 자동문에는 조금도 놀라지 않는 사람이라도 종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스님이 장난을 치면 속아넘어가 버릴 겁니다."
"스님도 그런 수법을 사용한 적이 있나요?"
"안타깝게도, 아닙니다. 그래서 가난합니다. 종교나 돈과 무관하게 속임수를 써서 사람들이 즐기는 것은 사실 대단한 문화에요. 서양에는 취미로 하는 카라쿠리 집들이 즐비하게 있어요. 실제로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일본 영사관이 카라쿠리 저택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집이란 살 수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어요. 사무실에는 책상과 전화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되면 스님 같은 건 쓸모없는 존재가 되겠지요."
스님은 큰 소리로 웃었다.
"쓸모없는 존재라고 하면, 마와리의 나사 저택 정원에는 정교한 라비린토스가 만들어져 있답니다."
"미궁이라고요?"
"미로입니다."
토시오는 스님의 기상천외한, 초현실적인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호랑가시 나무 울타리로 만들어진 미로죠. 호랑가시 나무가 너무 빽빽하게 자라 있어서 건너편은 아예 보이지도 않습니다. 길은 한 사람이 편하게 걸을 수 있을 정도인데, 여러 가지 막다른 골목이 만들어져 있어 쉽게 미로의 중심에 도달할 수 없도록 고안되어 있습니다."
"미로의 중심에는 뭐가 있는 건가요?"
"아무것도 없어요. 중앙은 다다미 10쪽 정도 넓이인데, 그냥 돌로 된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을 뿐이에요. 이 미로를 만든 호도는 자주 미로 중앙에 앉아 명상에 잠기곤 했다고 합니다. 미로 안에서는 어떤 방해물도 들어오지 않으니 아주 좋았겠지요.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이런 미로 속을 돌아다니는 호도를 미치광이라고 불렀답니다. 일종의 루드비히 2세 같은 느낌인데 뭐, 서양식 미로는 지금도 드물겠죠."
"서양에서는 정원 안에 미로를 자주 만들지 않나요?"
"미로가 많이 만들어졌던 것은 바로크 시대였을 거예요. 미술사에서 말하는 매너리즘의 전성기였어요. 이상향 '유토피아'로서의 우주를 세련된 모습으로 창조하는 것을 중시했던 시대입니다. 정원에는 반드시 미로와 분수, 카라쿠리와 시계인형이 놓여졌어요. 지하에는 동굴을 파고 물장난으로 움직이는 동물 등을 모아 놓았고요. 17세기 프라하 궁정에는 전 세계의 기괴한 물건들을 모아 놓은 박물관, '스펙타클라 파라독스렘(Spectacula Paradoxa)'이 있었습니다. 황제 루돌프 2세는 알킨볼트라는 예술가를 마음에 들어하며, 그에게 기괴한 그림 '트롱프뢰유'를 그리게 하고, 여러 가지 기괴한 물건을 만들게 했습니다. 황제의 취미의 영향일까요? 17세기 프라하에는 연금술사, 수정술사, 예언가, 마술사, 점성술사, 주술사 등이 우글거렸다고 하네요. 코펠리우스의 모델이 된 기계공 코펠키, 골렘을 만든 레웨 베자렐도 이 시대 사람입니다. 악기를 연주하는 카라쿠리와 금발의 마녀와 같은 움직이는 인형을 제작한 트로이의 오르간 연주자 레잔도 이 시대 사람이었고요. 금발의 마녀는 훗날 존 팬리 경 살해 사건에서 신비한 역할을 맡게 됩니다."
길은 좁아지고 오르막길이었다. 오노는 언덕을 오르는 길목에 있다. 도시의 불빛은 멀리 눈 아래로 사라졌다.
"그 시대는 예술과 과학, 주술과 마법, 속임수, 사술이 혼돈의 미분화 상태였습니다. 예를 들어 헝가리의 켐페른 남작이 만들고 레겐스부르크의 기계학자 레오나르드 멜첼의 손에 의해 유명해진 자동 체스 기사가 있습니다. 이것은 기계 안에 사람이 들어가서 인형을 움직이는 물건이었죠. 실제로는 속임수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당시 카라쿠리의 대부분은 이런 속임수를 많이 사용했던 것 같아요. 이는 에도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훈몽감초(訓蒙鑑草)”라는 마술의 수수께끼를 풀이한 책이 1730년에 간행되었는데, 기적적으로 현존하고 있어 당시의 마술을 알 수 있는데, 그 안에 천신기 승려의 차술이라는 속임수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열 살 정도의 어린이를 차대 위에 올려놓고 입과 팔다리로 인형을 다양하게 움직이게 하는 것이죠. 중국인 인형 휘파람 불기 장치 속임수도 비슷한 속임수에요. 인형의 휘파람 관이 지하를 통해 대기실로 연결되어 있어서, 다른 사람이 이 관에 숨을 불어넣거나 목소리를 보낼 수 있도록 만든 것이지요. 그런데 66년이 지나 1796년에 출판된 “기교도휘(技巧図彙)”를 보면 그런 속임수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오직 기계적인 장치만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유명한 차 운반 인형을 비롯한 모든 카라쿠리는 지금도 복원이 가능합니다. 하여튼, 이 시기에 기술과 사술은 깨끗하게 분리된 겁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멜첼의 자동 체스기사와 같은 다소 마술적이지만 매력 넘치는 아이디어도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자동 인형이 진지하게 '진지'해졌다는 것이군요."
"네. 옛날에는 연금술사들도 금을 만드는 것과 동시에 다른 물질을 어떻게 금으로 바꿀 수 있는지에 열중했던 것 같아요. 1780년대에 카리오스트로라는 이름의 연금술사의 실험은 많은 추종자를 낳았습니다. 도가니 안에 구리와 마테리야프리마라는 비약을 넣고 봉인합니다. 무게는 정확하게 측정되고, 도가니는 교체할 수 없는 상태에서 도가니가 뜨거워진 뒤 봉인을 풀면 용해물 속에서 의심할 여지없이 금이 나타났습니다. 다시 모든 무게를 재는데, 실험하기 전의 무게와 실험 후의 무게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고요."
"정말인가요?"
"지금 이대로 실험을 해도 학자라면 속아 넘어갈지도 모르지요. 학자는 마술사가 아니니까."
"그렇다면 속임수가 있는 거군요."
"그렇져. 카리오스트로는 처음에는 도가니를 갈아 끼우는 유치한 방법을 썼는데, 그것이 들통난 뒤, 이 방법을 고안해냈다고 합니다. 자랑할 만한 트릭이에요. 도가니의 바닥에 금을 깔았던 겁니다. 금 위에 아말감으로 만든 얇은 바닥을 만들어 덮었고요. 열을 가하면 저온에서도 녹는 성질이 있는 아말감이 녹으면서 밑에 숨겨져 있던 금이 ......"
그때 갑자기 좌회전하는 차가 앞을 가로막았다. 토시오는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토시오는 천천히 차를 출발시키자 스님이 다시 말했다.
"어이쿠, 어디까지 말했더라?"
"나사 저택의 미로 이야기였어요."
마이코가 말했다.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면 스님의 이야기는 계속 탈선할 것이 뻔했다.
"그랬지. 그 미로는 좀 특이한 형태입니다. 이건 말씀드렸나요?"
"모양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습니다."
"미로는 정오각형의 형태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 중앙에 놓여 있는 돌 테이블도 오각형인 거죠. 울타리로 만드는 형식은 햄튼코트의 미로에서 따온 것이겠지만, 역시 호도답게 똑같이 흉내내지 않았더라고요. 호도는 미로를 만들어내는 재미도 알고 있었던 거지요."
"햄튼코트의 미로라고 하면?"
"윌리엄 3세의 햄튼코트 궁전에 만들어진 미로를 말합니다. 이 미로는 부채꼴 모양으로 되어 있어요. 나도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파란 눈을 가진 여자와 함께요."
"로맨틱하네요"
"그런데 관광객이 가득 차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었죠. 관광객이 가득 차서 빙빙 돌고 있었거든요. 둘만 남게 될 줄 알았는데, 예상이 빗나간 거지요.. 미로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미로에 들어가면 왼쪽으로 가고, 다음 두 갈림길은 모두 오른쪽으로, 그 다음에는 모두 왼쪽으로 꺾으면 미로의 중앙에 도착할 수 있는게 순서거든요. 미국에서는 1941년 미국 인디애나주의 하모니 미로가 복원되어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 미로는 종교적인 교회 미로죠."
"재미로 만든게 아니라요?"
"애초에 인간의 참된 길과 죄악으로의 길이 뒤섞인 미로는 올바른 참된 길을 걷는 것의 어려움을 상징합니다. 아까 말한 크레타 섬 크노소스에 있는 미노스 왕의 미궁 안에는 소머리의 미노타우로스가 서식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이 전설 역시 석기 시대부터 이어져 온 종교적 동굴 숭배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 같아요. 산 하나를 깎아 만든 오부네의 대동굴도 지금까지 종교적 수행의 도장이 되고 있고요. 또한 로자몬드 궁전의 미로는 헨리 2세가 애첩 로자몬드를 왕비의 눈에 띄지 않게 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사람에 따라 미로를 만든 동기도 다양하죠."
"마와리 호도의 경우는 어떨까요. 어떤 사람의 말에 따르면, 호도는 본질적으로 장난감 같은 것을 싫어했다고 하더군요."
"맞아요, 그 사람이라면 무슨 짓을 해도 이상할 게 없지요. 벼락부자 시대에는 10엔짜리 지폐의 10을 1로 바꿔서 요정에서 1엔으로 썼다는 소문도 있을 정도였으니...... 자, 나사 저택이 저기 보이네요."

말해주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길 왼쪽은 다소 가파른 경사면에 관목인 관목이 이어져 있다. 오른편 안쪽, 나무들 사이로 달빛에 비춰진 검푸른 덩어리가 보였다. 그  덩어리는 불규칙하게 늘어선 바위처럼 보였다. 토시오는 속도를 줄였다.
나사 저택은 생각보다 큰 건물이 아니었다. 보통으로 지었다면 평범한 2층짜리 양옥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설계자는 강렬하게 대칭을 기피한 것 같았다. 아메바를 닮은 비대칭 형태가 기괴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
“저 첨탑은 프랑스의 포 성을 모방한 것 같은데, 나사 저택의 탑은 오각형으로 되어 있네요."
탑이라기보다는 건물을 관통하는 창끝처럼 보였다. 건물 중앙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저택의 맞은편은 저지대여서 작지만 연못이 있어요. 바위 사이를 뚫고 물이 솟아나고 있다고 하는데, 크기에 비해 물의 양이 많습니다. 연못 건너편에 예의 오각형 미로가 만들어져 있어요."
물론 차 안에서는 연못도 미로도 볼 수 없었다. 저택 안에는 불빛 하나도 없다. 낡은 대문 기둥에 약한 불빛이 켜져 있을 뿐이다.
차는 곧 나사 저택을 지나쳤다.
5분 정도 더 가니 나사 저택 옆으로 오래된 절이 보였다.
"덕분에 지루하지 않았어요."
스님이 마이코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크로커다일폴리스의 미로, 프라하의 궁정, 햄튼코트의 궁전, 나사 저택 ......
토시오는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와 좁은 집 안을 둘러보았다. 눈에 띄는 물건은 아무것도 없었다. 복서로서의 추억이 될 만한 물건은 모두 처분해 버렸기 때문이다.
우편함에 엽서가 들어 있었다. 에도 시게오(江藤重雄)가 보낸 것이었다. 토시오와 동일본 신인왕전에 출전하기 직전, 에도의 아버지가 사망했다. 에도는 이 소식을 듣고 슈젠지(修善寺)로 돌아간 뒤 체육관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대로 생선가게의 가업을 이었기 때문이었다.
에도는 토시오의 패배를 알고 있었다. 놀러 오세요. 엽서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그것을 읽은 토시오는 차가운 이불에 몸을 파묻었다.
….. 같은 시각, 마사오의 아들 토우이치(透一)가 갑작스럽게 숨을 거두었다. 토시오는 이 사실을 다음 날이 될 때까지 알지 못했다.

亂れからくり 복잡한 기계장치 : 1 달그락달그락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