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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30

속임수의 심리학 - 김영헌 : 별점 2.5점

검찰 수사관으로 오랜 기간 일해온 저자가 다양한 사기 범죄를 심리학적으로 고찰한 범죄 인문·심리 교양서입니다. 각종 사기의 수법과 사람들의 심리적 허점을 교차 분석하며 ‘왜 사람은 속임수에 쉽게 넘어가는가’에 대해 알려줍니다. "심리 조작의 비밀"과 약간 비슷한데, 더 우리나라 중심의 사례와 사기 범죄 위주의 내용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선급금 사기’ 등 대표적인 수법을 비롯해 다양한 사기의 유형이 등장하는데, ‘경품 당첨’을 가장한 사기의 뿌리가 1800년대 후반 ‘스페인 죄수의 편지’에서 시작되었다는 등 그 소개가 무척 상세합니다. 사기 수법은 오래전부터 있었고, 지금도 형태만 바뀌어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걸 잘 알려줍니다. 역사는 반복되는 법이지요.

그리고 사람들이 사기에 잘 걸리는 이유를 인간의 유전적 본성 때문이라고 정의합니다. 인간은 본래 집단 내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존재이고, 집단의 의견에 따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고대 사회에서 무리에서 떨어지는 것이 곧 생존의 위협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생겨난 본능적인 성향이라고 하고요. 또한, 누구나 손실을 피하고 싶어하는 본능이 있는데 바로 이 부분을 사기꾼들이 파고드는 겁니다. 대표적인게 댓글과 별점 조작입니다. 최근 유행하는 주식, 코인 투자 열풍과 연결되는 ‘FOMO(Fear of Missing Out, 놓칠까 봐 두려운 심리)’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고요. 그래서 사람들이 모이는 리딩방에서 쉽게 사기 행각이 일어나는건 당연합니다.

사기꾼들이 흔히 사용하는 심리 기법인 '콜드 리딩’에 대한 설명도 흥미롭습니다. 상대방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신뢰를 얻는 화법, 예를 들어 “당신은 외향적이면서도 내성적인 면이 있군요”처럼 누구에게나 해당될 수 있는 모호한 표현을 하는 것으로 이런 애매한 화법은 점술가나 역술인이 자주 쓰는데, 이런 화법으로 상대의 반응을 보면서 점점 더 정보를 얻고 맞춰가는 구조라고 합니다. 특히 건강, 돈, 인간관계에 대해 넘겨짚어 질문을 던지고, 반응을 유도하는 방식은 사기성 상담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신흥 종교의 포교 방식도 다루고 있습니다. ‘미끼 – 끌어올리기 – 격리 – 사랑 – 헌신’이라는 5단계 전략을 통해 상대를 통제하는 방식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심리를 조작하고 세뇌하는 것입니다. "시체가 켜켜이 쌓인 밤"의 겐조의 수법도 이런 방식이었겠지요. 우리 나라에서도 최근 이슈가 되는 사이비 종교들, 그리고 해외의 세뇌 범죄가 다 이런 방식이고요. 핵심은 '격리'라고 하니, 어딘가에서 합숙으로 무언가를 한다는 단체 모임은 정말 조심해야 할 것 입니다. 

결혼 사기의 심리적 기제도 설명되는데, 여성은 대체로 사랑에 신중하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깊이 빠지는데, 그 시점이 되면 상대의 실체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된다고 합니다.
반대로 남성의 경우는 성욕과 관련된 유전적 특성으로 인해 여성의 신호를 과도하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데, 이 역시 사기에서 빈번히 이용되는 심리적 허점이니 역시 조심해야 할 부분이고요.

‘사기를 피하는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조언도 풍부합니다. 공짜에는 반드시 숨은 목적이 있다는 사실, 욕망이 클 때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말라는 조언, 후회라는 감정이 오히려 사기의 브레이크를 무디게 만든다는 설명 등은 관련된 사기 범죄와 함께 소개되어 굉장히 와 닿습니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는 반드시 조사하고, 정과 감정에 휘둘리지 말며, 거절은 분명하게 해야 한다는 말도 당연하지만 실제로 행하기 어려운 것인데 명심해야 할 테고요.

이런 내용들이 가득 담겨있는데, 전반적으로 유사한 사례가 반복되며, 목차 간 구성의 차이도 뚜렷하지 않아 중후반부로 갈수록 흥미가 떨어진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사기라는 주제가 기본적으로 ‘속인다’는 공통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사례 중심, 수법 중심, 예방 중심으로 명확히 분리했더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 사례도 실제 유명 사건보다는 소설처럼 각색된 예시가 많은데 이 역시 아쉬운 부분이고요.
사기를 피하는 방법에 대한 조언도 전반적으로는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 상식적인 말들을 정리해 둔 느낌이 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같은 사기 과잉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으면서도 자주 잊고 실천하지 못하는 것들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는 점에서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025/11/29

내 시체를 찾아주세요 - 호시즈키 와타루 / 최수영 : 별점 1.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스터리 작가 아사미는 개인 블로그에 불치병에 걸려 자살할 생각이니 자신의 시체를 찾아달라는 글을 올리고 사라졌다. 뒤이어 블로그에 예약 갱신으로 시어머니의 치부와 고등학생 시절 친구들과 벌였던 동반 자살극에 대한 진상을 그린 소설을 차례로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아사미의 남편 마사타카와 아사미의 편집자 사오리는 자신들의 불륜이 드러나지 않을까, 그리고 아사미가 다른 무언가를 고백할까 두려워하며 필사적으로 블로그 패스워드를 찾았지만 실패했고, 결국 마지막 갱신글로 동반 자살극의 진상과 사오리의 치부가 드러났다. 모든걸 잃은 사오리는 마지막 글에서 이상한 점을 눈치채고 마사타카가 은거하는 별장으로 향하는데...

유명 작가의 자살과 자신의 시체를 찾아달라는 블로그 글로 시작되는 구성이 인상적인 장편 범죄 복수 스릴러입니다. 

블로그 글, 마사타카, 아사미 시점을 오가면서 아사미가 정말로 자살한 것인지? 시체는 어디에 있는지? 라는 의문과 아사미 고교 시절 동반 자살극에 대한 진상이 서서히 드러나는 전개는 흡입력이 뛰어납니다.
편집자 사오리가 마지막 블로그 글의 용어 선택이 평소와 다르다는 점을 알아채고 진상을 눈치챈 장면은 '편집자'라는 직업의 전문 지식을 활용한 추리라는 점에서 괜찮았고요.

그러나 전체적인 완성도는 낮습니다. 우선 주요 인물들의 설정부터 비현실적이에요. 모리바야시 아사미는 극단적인 학대를 겪은 뒤 고아로 자라 정상적인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인물로 묘사되고, 남편 마사타카는 데이트 강간을 일삼고 아사미에게 질투심을 품은 채 얹혀 사는 인간 말종입니다. 사오리 역시 아사미에게 집착한 나머지 마사타카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설정이고요. 이렇게 주요 등장인물 대부분이 과장되거나 극단적인 상태에 놓여 있어 현실감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핵심은 복수극으로 '아사미는 자살한게 아니라, 복수를 위해서 마사타카를 일부러 자극해 살인에 이르게 만들었다'인데, 복수로 보기에는 애매하고 부족합니다. 마사타카가 살인을 저지른 후의 계획이 전무한 탓입니다. 살인범으로 만든 뒤 파멸시키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범행을 덮어주기 위해 자살로 가장한 블로그 글을 올리기까지 하니까요. 이렇게 되면 마사타카는 뻔뻔하게 아사미 증쇄본 수익, 그리고 실종 신고 7년 후에는 남은 유산으로 떳떳이 살아갈 수 있는데 이걸 복수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결국 ‘살해당하는 것만 목표였고 그 뒤는 상관없다’고 유서에 쓰여있는 걸로 퉁치고 끝내는데, 허무하기 짝이 없네요. 이보다는 정교하거나 복잡한 추가적인 이야기가 필요했습니다. 아사미가 불러낸 사기꾼에게 속아 전 재산을 날린 마사타카의 어머니가 유산을 노리고 아들을 죽였다는 식으로 말이지요. 하지만 아사미가 실종 중에는 마사타카에게 유산이 상속될 수 없으니, 아들을 죽여봤자 헛짓거리였다!는게 밝혀지면 괜찮지 않았을까요?

물론 마사타카가 자살하기는 했지만, 이는 계획된게 아니라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습니다. 아사미가 사라진 뒤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면서 책은 큰 화제를 얻었고, 그에 따라 인세 수입도 늘어날 상황에서 마사타카같은 쓰레기가 극단적 선택을 한다는 것도 영 와닿지 않고요. 앞서 그의 내면을 묘사할 때 죄책감이 큰 인물로 그려지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작중 마사타카가 아사미를 살해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그의 작품 혹평에 대한 분노와 증오인데, 그게 사람을 죽일 정도의 결정적인 트리거라는 것 역시 잘 설명되지 못했습니다. 

또한 소설 속 소설인 "하얀 새장 이야기"도 중반까지는 미스터리한 분위기로 흥미를 이끌지만, 결말은 결국 동반 자살로 귀결될 뿐이라 추리적 가치는 없고, 아사미의 성격이나 내면을 깊이 있게 드러내지도 못해서 왜 삽입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친구들 이야기 설정도 새로운게 없어서 시시하니까요.

그 외에도, 마사타카가 블로그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알아챈 방법도 대충이고, 사오리가 멍청하게 혼자 마사타카를 찾아가 살해당한 것도 비현실적이며, 아사미야 그렇다 쳐도 사오리 실종 이후에 경찰 수사가 시작되지 않은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 등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눈에 많이 띕니다. 사체 은닉도 그냥 잘게 나누어(?) 버렸다 정도로 넘어가는건 아니다 싶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흡입력 있는 출발과 일부 매력적인 장치는 있지만, 여러모로 비현실적이고 복수극으로도 미흡하여 완성도 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구태여 찾아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5/11/28

두산 베어스 스토브리그 : 기아 지명 선수 및 FA 단상

기아의 지명 선수는 작년 지명 신인 홍민규 선수로 결정되었습니다. 이전에 올렸던 글에서 박치국 선수가 풀리지 않으면 박신지, 윤태호, 최준호, 양재훈, 홍민규, 김유성, 제환유 선수 등 중에서 지명되리라 예상했는데(그중에서도 김유성 선수), 역시 예상대로였습니다. 반드시 보호해야 했던 주력 선수들에 더하여 작년 지명 선수 중 박준순, 최민석 선수를 보호해야 했으니 이 정도 급 선수들을 지키는 건 무리였으니까요.
올 시즌 30여 이닝을 던지며 가능성을 보여준 선수라 무척 아쉽지만, 팀으로서는 제법 많은 우완 정통파 투수들이 있어 공백은 최지강, 윤태호, 양재훈 선수 등이 메꿀 수 있으리라 보여 선방했다고 생각합니다. 홍민규 선수도 기아에서 대성하기를 바랍니다.

박찬호 선수 FA 계약은 이렇게 마무리되었고, 우선 베어스의 FA 선수인 조수행, 이영하, 최원준 선수는 모두 잡았습니다. 오버페이 논란은 있지만, 조수행 선수 외에는 납득이 가는 수준이라 생각합니다. 이영하 선수는 젊은 나이에 고점이 높았고, 죄원준 선수는 FA 직전인 올 시즌 계투 전환을 받아들이며 팀에 헌신한 측면도 감안해야 하고요. 특히 이영하 선수는 최 전성기 코치였던 김원형 감독 및 바뀐 코치진의 지도에 따라, 과거 활약을 재현해 준다면 오히려 좋은 계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김재환 선수가 아무런 대가 없는 방출 선수 신분으로 시장에 풀린 건 의외였어요. 그런데 그로 인해 여러모로 욕을 먹고는 있는 상황은 저는 이해하기 힘드네요. 이건 선수를 비난할게 없으니까요. 4년 전 계약 당시, 이 조항을 삽입하는 조건으로 구단이 돈을 아낀 건 사실이잖아요. 양측 합의하에 계약했던 걸 지금 와서 일방적으로 한쪽을 비난하는 건 말이 안 되지요(마찬가지로 저는 케이브 선수 보류권 문제는 구단 잘못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4년 전 계약 시 이런 옵션과 조건에 대해 공개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요.

하여튼 김재환 선수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라 베어스와 다시 계약하는 건 무리로 보이며, 다음 시즌 구상에서는 없는 선수로 쳐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박찬호 선수 영입에 김재환, 홍건희 선수가 빠진 셈이 되고, 박찬호 선수가 좋은 선수이긴 하지만, 또 김재환 선수의 올해 활약이 기대 이하였다 하더라도 베어스 전력에는 흠집이 가는 상황입니다. 수비야 그렇다 쳐도, 타선에서 그 정도 역할을 대신할 선수? 당장은 없지요. 넘치는 내야에 비해 외야 선수층이 빈약하게 문제인데, 이는 기대를 모았던 김대한, 김민석 선수가 자리를 잡지 못하는 탓이 큽니다.
그래도 다른 커뮤니티의 의견처럼 김현수 선수나 강백호 선수에게 투자를 했어야 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김현수 선수는 나이가, 강백호 선수는 최근의 부진과 포지션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보다는 새로 계약한 외국인 선수 다즈 카메론이 어느 정도 활약해 주고, 제발 '나는 좌익수다 시즌 2'에서 누구든 기회를 잡아 주전으로 자리 잡아 주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넘치는 내야 자원 중 몇 선수가 외야 컨버젼을 하는 것도 방법이겠지요.
스토브리그와 외국인 선수 계약이 모두 마무리되고, 전지훈련도 끝나면 다시 제대로 시즌 예상을 해 보겠습니다만, 이래서야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는 좀 어려워 보이기는 하네요. 

덧붙이자면, 김재환 선수가 어디로 갈지도 궁금합니다. 키움과 LG는 영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김현수 선수와 강백호 선수를 영입한 KT와 한화도 빼야 할 테고, 최형우 선수 계약이 더 급한 기아는 아닐겁니다. 그렇다면 SSG, 삼성, 롯데, NC가 후보인데 이 네 팀 모두 김재환 선수가 그렇게 필요해 보이지는 않네요. 네 팀 중에서 그래도 필요하다면 NC인데, 시장 상황과 선수 상황 모두를 볼 때 거액을 배팅하지는 않을테고요. 지금의 상황을 초래한 4년 전 FA 계약은 김재환 선수에게도 그리 좋게 작용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2025/11/23

딸과 함께 본, 무간도

세 번째로 딸과 함께 본 홍콩 영화는 "무간도"입니다. 느와르의 탈을 쓴 무협지 "영웅본색", 느와르인줄 알았던 멜로물 "천장지구"를 봤으니 이젠 정말 제대로 된 홍콩 느와르를 볼 차례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는 다시 봐도 여전히 탄탄했습니다. 경찰 내부에 잠입한 조폭 스파이, 반대로 조직에 잠입한 경찰,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내기 위해 벌이는 치열한 두뇌 싸움을 그린 각본과 절제된 연출, 그리고 유덕화와 양조위의 대립은 지금 보아도 흠잡을 데 없이 뛰어났기 때문입니다. 2000년대 초반이라는 시점에도 불구하고 촌스러운 느낌 없이 도시적이고 세련된 영상미도 빼어나고요. 

덕분에 저는 끝까지 몰입하며 보았는데, 딸 아이의 반응은 이전 작품들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별로 재미없어 하더라고요. 두 남자 외에도 조직과 경찰, 또 다른 스파이의 존재 등이 계속 얽히는 식으로 이야기가 복잡한 탓으로, 숏폼 세대에게는 어려웠던 듯 합니다.
게다가 지금 세대에는 이처럼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임무에 충실하거나, 조직에 충성하거나, 정체성을 지키는 인물들이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희생이 죽음으로 이어지는 결말도 마음에 들지 않아 했고요. 확실히 이런 정통 홍콩 느와르의 정서는 21세기 소녀인 딸에게는 별로 와 닿는 점이 없을테지요.

그래서 이번 "무간도"가, 딸과 함께하는 홍콩 영화 감상의 마지막이 될 것 같습니다. 마침 딸아이가 "귀멸의 칼날" TV 시리즈를 보기 시작했으니, 몇 달 간은 다른 걸 볼 여유도 없네요. 딸과 함께 한 시간이 좋았는데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귀멸의 칼날" 감상이 끝날 때 함께 볼 영화를 지금부터 고민해 봐야 겠습니다.

2025/11/22

오랫만의 베어스 이야기 : 두산 베어스 보호 선수 20인과 기아 지명 선수 예상

실망스러운 2025시즌도 끝났습니다. 스토브리그가 다 마무리되면 글을 좀 쓸까 했는데, 두산이 이번에 계약한 기아의 FA 유격수 박찬호 선수 보상 선수 관련 커뮤니티 글을 읽다가 20인 선수에 대해 생각하게 되어 몇 자 적어 봅니다.

우선, 두산이 반드시 보호해야 할 선수는 아래와 같습니다. 아마 누가 뽑아도 이 11명의 선수는 보호 선수에 포함될거에요.

투수 (5) : 곽빈, 최승용, 최민석, 이병헌, 김택연

포수 (1) : 양의지

내야수 (4) : 안재석, 박준순

외야수 (1) : 정수빈

여기에 제가 단장이라면, 젊은 군필 야수 오명진, 박지훈 선수에 젊은 투수 - 박신지, 윤태호, 최준호, 양재훈, 홍민규, 김유성, 제환유 선수 - 를 보호할 겁니다.

그러면 박치국, 최지강 (투수) / 김기연, 김재환, 양석환, 김동준, 이유찬, 임종성, 여동건, 강승호, 박계범, 김대한, 김인태, 김민석, 홍성호 (야수) 선수가 풀리게 되지요.

보호하지 않은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투수 중 박치국 선수는 ABS 도입 이후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이드암 투수 중에서는 좋은 활약을 선보였지만, 좌타에 약하다는 약점이 큽니다. 최지강 선수는 부상 이후 제 폼을 찾지 못했고 올 시즌 박신지 선수가 역할을 완벽히 대체했지요. 마찬가지로 올 시즌만 보면 홍민규, 윤태호, 양재훈 선수가 불펜에서 같은 역할 수행이 가능해 보이고요.

야수들도 고참급은 물론 30대 이상 선수들은 양의지, 정수빈 선수를 제외하면 모두 보호 선수에서 제외하였습니다. 젊은 야수들 중에서 내야수 이유찬, 임종성, 여동건 선수는 모두 박찬호-안재석 선수의 백업 역할일테니, 좋은 선수들이지만 유출 시 크게 타격을 받지 않을 걸로 판단했고요. 김대한, 김민석 선수의 경우는 기대치는 높지만 보여준게 애매해서 제외했습니다. 김민석 선수는 미필, 김대한 선수는 부상이 잦다는 문제도 있지요. 
김기연 선수 제외는 도박수이기는 한데, 기아가 세 번째 포수를 20인 외에서 뽑지는 않을걸로 생각합니다. 퓨처스에서 엄청난 성적을 올린 윤준호 선수도 돌아오고요. 물론 김기연 선수는 100% 보호되겠지만요.

제 보호 선수 명단대로라면, 기아 타이거즈는 박치국 선수를 지명할 가능성이 100%일거라 확신합니다. 올 시즌 중간 계투가 부진했고, 강속구 투수가 별로 없기도 했으니까요. 만약 박치국 선수가 보호된다면, 제가 마지막에 뽑은 투수들 중 빠지는 선수가 지명될 겁니다. 그 중 가능성 높은건 김유성 선수겠지요.
야수라면 박찬호 선수 부재와 김선빈 선수의 노쇠화를 대비할 수 있는 강승호 선수 지명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데, 젊은 강속구 투수가 많이 풀릴 명단에서 노장급 야수를 뽑지는 않을거라 확신합니다.

하지만 이건 순전히 제 생각일 뿐입니다. 보호 선수 명단은 통상 공개되지 않으니 확인할 길도 없고요. 다만 어떤 선수가 지명되더라도, 모쪼록 좋은 활약으로 기아 타이거즈에서도 사랑받으면서 오래 선수 생활하기를 바랍니다. 

2025/11/21

다크 플레이스 - 길리언 플린 / 유수아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5년 전, 오빠 벤이 저질렀던 가족 몰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 리비 데이는 '킬 클럽' 라일의 요청으로 사건 재조사에 나섰다.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벤이 유죄 판결을 받는 결정적 증언을 했던 리비는 조사를 통해 오빠가 범인이 아니라는 확신을 품게 되었다... 

"나를 찾아줘"로 확 뜬 길리언 플린의 또 다른 범죄 스릴러입니다. 568페이지라는 어마무시한 분량으로 제목은 주인공 리비의 어둡고 질척한 과거 추억을 의미하며, 리비가 이런 '다크 플레이스'의 진실을 파헤치는 내용이지요. 

길리언 플린 특유의 치밀한 묘사가 가장 큰 장점입니다. 데이 가족에게 닥쳤던 경제적 몰락, 심리적 붕괴, 특히 패티와 벤의 절망적인 내면 묘사는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생생합니다. 읽다 보면 나 역시 빠져나올 수 없는 진흙탕에 함께 잠기는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입니다. 
주인공 리비가 어린 시절 증언으로 벤을 교도소에 보냈는데, 25년이 지나 성금이 다 떨어진 탓에 오빠가 무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돈으로 조사에 나서는 딜레마도 리비에 대한 묘사를 통해 생생하게 다가오고요.

전개도 여러 복선을 통해 정교하게 짜여져 있습니다. 진범 중 한 명인 캘빈 딜이 '킬 클럽' 모임 초반에 언급되고, 리비의 도벽이 디온드라의 DNA를 입수하는 결정적 역할을 하는 식으로요. 특히 벤을 흠모하던 크리시의 거짓 고발로 인해 패티가 아들 벤을 아동 성추행범으로 오해하게 되는 부분이 탁월합니다. 디온드라가 임신해서 벤은 중고 아기 옷을 잔뜩 사고 아이 이름을 정하기 위해 여러 이름을 노트에 써 두었는데, 이걸 본 패티가 심증을 굳히게 되거든요.
또 현재 시점인 리비의 시선과, 1985년 사건 당일을 시간대별로 따라가는 패티(엄마)와 벤의 시점을 교차해 보여주는 구성도 좋습니다. 현재 시점의 리비의 조사와 실제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 순서대로 이어지며 결국 진실에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추리적으로도 정통 추리 소설이라고 보기 어렵고, 특별한 트릭이 있지는 않지만 결정적 장면 하나는 인상적입니다. 당시 살해된 미셸이 짝사랑하던 남학생 '토드 델헌트'의 이름을 크리스탈이 언급하면서 사건의 실마리가 풀리게 되는데, 이미 살해된 가족만 아는 이야기를 만난 적도 없는 크리스탈이 알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리비는 미셸이 딱 9일 동안만 썼던 1985년 일기장에만 그 이름을 적었고, 크리스탈이 일기장을 읽었다고 추리합니다. 일기장은 범인밖에는 가져갈 사람이 없으니, 디온드라가 범인이라는 의미이고요. 이는 꽤 타당하고 설득력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작품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일단 지나치게 깁니다. 정신적으로 온전한 인물도 별로 없는데, 그들의 심리 묘사가 많아서 읽는 내내 피로감을 느꼈고요. 그 중에서도 리비의 아버지 러너 데이와 벤의 여자친구 디온드라가 등장하는 거의 모든 장면은 독자의 인내심을 시험할 정도로 거북했습니다. 읽으면서 여러차례 그만 두게 만들 정도로요. 

후반부로 갈수록 우연이 너무 과도하게 겹치는 점도 아쉽습니다. 사건 당일, 패티가 생명보험금으로 빚을 갚기 위해 캘빈 딜에게 자신의 살인을 의뢰한 날, 공교롭게도 디온드라가 집에 들어와 미셸을 죽이고, 이를 본 데비가 엄마를 찾아 나섰다가 캘빈의 모습을 본 탓에 살해당했다는 전개는 너무 작위적입니다.

긴 분량에도 불구하고 설명이 부족한 부분도 거슬립니다.  벤이 디온드라의 가명을 문신으로 새긴 이유, 일가족 몰살이라는 대형 사고 이후 실종된 디온드라가 사건과 엮여 함께 수사되지 않은 이유처럼요. 그 작은 시골 동네에서 벤과 디온드라가 사귄다는 걸 아무도 몰랐다는게 말이나 될까요? 트레이마저 조사를 받았는데 말이지요.

디온드라가 미셸을 살해한 동기도 석연치 않습니다. 아무리 분노가 폭발했다고 하더라도, 10살 아이를 죽인다는건 영 납득하기 힘듭니다. 어차피 도망갈 생각이었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아울러 이 때 디온드라가 미셸을 살해하는걸 방조한 벤 역시 지은 죄가 없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25년 동안의 수감 생활은 했어도 쌉니다.

결정적으로 절정부에서 리비가 크리스탈에게 공격받는 장면과 탈출극은 정말 억지스럽습니다. 크리스탈이 ‘토드 델헌트’라는 이름을 언급했다는 이유만으로 리비를 죽이려 한다는 설정도 납득이 잘 가지 않았고요. 리비가 의심을 품기는 했지만, 그게 디온드라가 범인이라는걸 입증할 결정적인 증거라고 보기는 어려우니까요.
미셸의 침대 시트에서 디온드라의 DNA가 검출되었다는 점 역시 명확한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벤과 디온드라가 사귀었고, 디온드라가 벤의 아이까지 가졌는데 그녀의 DNA가 집 안에 남아 있는게 뭐가 그리 이상할까요? 미셸의 시신에서 디온드라의 DNA가 검출되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겠지만, 그것도 아니라서 핵심 증거로 보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합니다. 25년간 디온드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던 벤이 진범이 그녀라고 밝힐 까닭도 없을테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작가 특유의 문체와 분위기, 구성은 뛰어나고 완성도도 높지만 과한 작위성과 무리한 전개 탓에 설득력이 부족해서 감점합니다. 길리언 플린 특유의 어두운 심리 묘사를 즐기고 싶은 독자라면 도전해볼 만하겠지만, 일반적인 추리 소설 독자에게는 추천드리기 어렵습니다. 영화화 되었지만 망했다는데, 이해가 됩니다.

2025/11/16

고독한 용의자 - 찬호께이 / 허유영 : 별점 2.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년간 은둔형 외톨이로 살아오다가 자살한 셰바이천의 방 옷장 안에서 수십 개의 표본병에 토막난 채 담긴 두 구의 남녀 사체가 발견되었다. 쉬유이 경위는 수사를 진행하며 바이천의 이웃이자 친구 칸즈위안을 의심했지만, 칸즈위안은 바이천의 외삼촌 셰자오후가 진범이라 주장하며 경찰에 협력을 제안했다. 유명 추리소설가인 칸즈위안의 추리대로 셰자오후가 범인일 수 있다는 증거가 하나 둘 씩 드러나지만, 경찰 고위 층은 진범은 바이천이라며 사건을 마무리하라고 지시했다....

현대 중국을 대표하는 추리작가 찬호께이의 신작 장편 범죄 스릴러입니다. 밀리의 서재를 통해 감상했습니다.

"기억나지 않음, 형사"의 쉬유이가 주인공이지만, 전작과의 연결고리는 거의 없는 독립적인 작품으로 이번에도 작가 특유의 촘촘한 트릭과 복선, 마지막의 반전까지 추리소설 팬이라면 즐길거리가 많습니다. 특히 ‘은둔자 살인마’ 셰바이천이 실제 범인이 아니라는 가정 아래 수수께끼가 하나둘씩 풀려나가는 전개가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는 덕이 큽니다.

셰바이천은 은둔형 외톨이로 방 안에서만 생활하던 인물인데, 그의 방 옷장에서 다수의 표본병이 발견되면서 사건이 시작됩니다. 경찰은 당연히 셰바이천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지만, 칸즈위안이 셰자오후가 범인이라는 가능성을 제기하며 수사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이때부터 하나씩 드러나는 단서들과 그 단서들을 조합해 수수께끼를 풀고 진실을 밝혀나가는 과정이 이 작품의 묘미이지요.

첫 번째 수수께끼는 셰바이천이 방 안에만 머무르는 은둔자인데, 어떻게 셰자오후가 수십 개의 표본병을 셰바이천 몰래 옷장 안에 넣을 수 있었냐는 겁니다. 수사 결과, 그 날 어머니 메이펑은 외출했습니다. 식사권을 선물받고 친구와 저녁을 먹으러 나갔었지요. 그런데 이 식사권을 선물한 사람이 셰자오후였습니다. 그는 누나 메이펑이 나간 틈에 셰바이천의 저녁 식사에 수면제를 타 재운 뒤, 몰래 표본병을 옷장 안으로 옮겼습니다. 이후 평소처럼 그릇을 씻지 않고 그대로 방 문 앞에 내 놓았던 점이 증거입니다.
두 번째 수수께끼는, 셰바이천이 오랜 시간 동안 옷장 속의 사체를 왜 몰랐느냐는 것인데, 셰바이천은 은둔형 외톨이라 옷을 갈아입을 일이 거의 없었던 탓에 옷장을 열 일이 없었고요.

그리고 밝혀지는 셰자오후의 범행 동기도 놀랍습니다. 그는 과거부터 어린 궈쯔닝을 노려서, 먼저 궈타오안을 살해한 뒤 그의 아내 쑨수칭의 동거남이자 기둥서방이 됩니다. 이후 궈쯔닝을 장기간 성폭행했는데, 궈쯔닝이 집을 가출한 뒤 만나지 못하다가 우연히 다시 발견하여 살해했습니다. 증거는 궈쯔닝 사체에 남겨졌던 담배로 지진 흔적들입니다. 셰자오후가 운행하는 택시에도 혈흔과 머리카락 등의 증거가 남았고요.
이후 셰자오후는 궈타오안과 궈쯔닝 사체를 버리면 범행이 들통날까봐 두려워 작은 병에 담아 토막 보관했고, 살던 집에서 쫓겨나게 되자 새 거처인 레지던스로는 사체를 옮길 수 없어서 셰바이천의 방에 숨겼던게 진상입니다. 

이 과정에서 셰자오후가 범인이라는걸 밝혀내는 칸즈위안의 관찰력과 추리력도 볼거리입니다. 쑨수칭의 기둥서방일 때 찍혔던 사진 속 손목시계가 무엇인지 알아채고, 당시 상황을 추리해내는게 대표적입니다. 회사에서 범죄 혐의로 해고당하고 빚더미에 올랐던 셰자오후가 명품 시계를 차고 있었다는 건, 쑨수칭의 수입이 좋았다는걸 의미하며 쑨수칭이 셰자오후를 경제적으로 부양하고 있었다는 추리로 이어지며, 이는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중요한 실마리가 됩니다.

이 정도만으로도 훌륭한 스릴러지만, 작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셰자오후를 체포한 이후 충격적인, 진짜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반전이 펼쳐지거든요. 바로 옷장에서 발견된 사체가 셰바이천이었다!는 반전입니다. 바이천은 이미 20년 전 뇌종양으로 사망했고, 친구 칸즈위안이 사체를 숨기고 어머니 메이펑을 위해 살아 있는 것처럼 꾸며왔던 겁니다. 은둔형 외톨이였던 덕분에 외부와 접촉이 거의 없었고, 이를 이용해 오랫동안 존재를 숨길 수 있었지요.
그렇다면 자살한 남성은? 그는 칸즈위안의 동거인이자 또 다른 은둔자인 ‘더듬이’였습니다. 온라인 게임을 통해 궈쯔닝과 친구가 된 그는, 궈쯔닝이 자살한 뒤 그녀의 과거를 알게 되어 복수를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셰자오후를 덫에 빠뜨리기 위한 계획을 짠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셰자오후는 살인은 저질렀지만, 토막 살인의 진범은 아니었던 겁니다. 모든 것은 더듬이와 칸즈위안이 함께 짠 복수극이었습니다.
이 반전을 셰바이천과 더듬이 시점의 교묘한 전개로 독자를 속이고 있어서 일종의 서술 트릭물로 볼 수도 있고요.

이렇게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데, 아쉬움도 있습니다. 이야기의 분량이 지나치게 긴 편이고, 경찰의 수사가 비현실적으로 무능하게 묘사되는 탓입니다. 칸즈위안을 의심해 미행하는 장면이 대표적이에요. 누가 보아도 셰바이천이 범인임이 명백한데, 구태여 다른 사람에게 혐의를 둘 필요는 없습니다. 이는 경찰의 유치한 복수심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마지막 반전도 드라마틱한 힘에 비하면 이를 뒷받침하는 논리적 설계는 조금 약합니다. 어머니가 더듬이의 시신을 아들이라고 착각한다거나, 같은 아파트에 은둔자가 둘이나 살았는데 누구도 더듬이의 존재를 몰랐다는 설정 때문입니다. 20년 전 죽은 셰바이천의 사체가 보관 상태가 좋았음에도, 그 정체를 끝내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는 점도 설득력이 떨어지고요. 20년 동안 은둔자였다면, 20년 전의 사진이나 기록을 찾아보는게 당연합니다. 때문에 사체의 정체가 경찰 수사에서 드러나지 못한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인간 관계 부분의 작위적인 설정도 거슬립니다. 은둔형 외톨이 더듬이는 궈쯔닝과 온라인 게임 친구가 되었다가 그녀를 자기 방에서 돌봐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웃집이 궈쯔닝을 어린 시절 성폭행했던 셰자오후의 외조카 셰바이천의 집이었고, 조카집을 방문한 셰바이천을 목격한 궈쯔닝이 자신의 거처가 드러났다 여겨 자살했습니다. 아무리 홍콩이 좁아도 그렇지, 주요 인물들이 이렇게까지 밀접하게 엮인다는건 억지죠.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찬호께이 특유의 기획력과 구성력은 좋고 추리와 반전 모두 괜찮은 편입니다. 단점도 명확해서 감점도 약간 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평균 이상의 재미는 보장해 줍니다.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덧붙이자면, 표지 디자인은 정말 최악이네요. 최근 출간작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에요...

2025/11/15

딸과 함께 본, 천장지구

"영웅본색"에 이어 딸과 함께 본 오래된 홍콩 영화입니다. 이번에는 아내의 선택이었지요. 1990년 작품이니, 이것도 벌써 35년 전 영화입니다.

저에게는 순진무구하고 청순가련한 이미지를 대표하는 배우로 오천련이 기억에 남아 있었는데, 이번에 다시 보아도 그 느낌은 여전하더군요. 영화 속 철없고 순수한 부잣집 아가씨 죠죠 역에 너무도 잘 어울렸습니다. 한편 유덕화는 폭주와 싸움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거리의 건달로 등장하는데, 전성기의 매력이 그대로 녹아 있어 보는 내내 몰입감이 높았고요.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영화가 생각보다 훨씬 잘 만들어졌다는 점이었습니다. 푸른 빛이 감도는 세련된 화면, 홍콩의 전설적인 록 밴드 Beyond의 음악, 그리고 1시간 30분 남짓한 러닝타임 안에 완벽한 기승전결을 갖춘 각본까지, 지금 봐도 수준 높은 상업 영화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전에 함께 봤던 "영웅본색"은 여러모로 완성도 면에서 아쉬움이 있었는데, 이 작품은 크게 흠잡을 데가 없더군요. 딱 한 가지, 갑자기 아화가 다쳐서 마카오로 간 뒤 둘이 잠깐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장면은 좀 뜬금없었지만 문제될 정도는 아닙니다.

딸 아이의 반응도 흥미로웠습니다. 몰입해서 재미있게 봤는데, 21세기에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자기파괴적인 결말을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하더라고요. 왜 아화가 죽어야 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화가 나요.”라는 말로 표현했는데, 그걸 보고 확실히 ‘80년대의 정서는 이제 정말로 유통기한이 지났구나’ 싶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비극이 낭만이었고, 희생이 미덕처럼 받아들여졌지만, 지금 세대에게는 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감성이 변했고 시대가 바뀌었더라도, 좋은 영화는 여전히 마음을 움직인다는걸 딸 아이가 알려주네요. 영화의 결말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영화 자체는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으니까요(아래는 딸 아이의 지금 핸드폰 바탕화면입니다). 홍콩 영화 특유의 낭만과 감성, 오천련과 유덕화, 그리고 Beyond의 음악이 함께 만들어낸 정서가 지금 봐도 빛나는 덕분입니다.

다음 번에는 무슨 영화를 함께 보면 좋을지,벌써부터 고민이 되네요.

2025/11/14

주식시장은 어떻게 반복되는가 - 켄 피셔, 라라 호프만스 / 이건, 백우진 : 별점 3점

책 소갯글을 보면, 원래 성공한 투자자는 책을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실제로 투자에 몰두하다 보면 글을 쓸 시간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투자 책을 쓴 사람은 실전 투자자라기 보다는, 책 판매가 목적인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켄 피셔는 실제로 큰 성과를 이룬 전문 실전 투자자이자 여덟 권이나 되는 책을 출간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의 주장들은 흘려듣기 어렵습니다.

주장은 간단하지만 확실합니다. 시장에는 영원한 약세장도, 끊임없는 경기 침체도 없었다는 것이지요. 켄 피셔는 과거 데이터를 근거로, 하락장이라 불리는 시기에도 배당까지 포함하면 대부분의 경우 수익이 발생했으며, 침체 뒤에는 빠르고 강한 반등이 뒤따랐다는 걸 보여줍니다. 흔히 말하는 V자 반등입니다. 결국 시장은 순환하고, 위기는 오래가지 않으며, 장기적으로 주가는 반드시 고점을 갱신해 왔다는 것이 주장의 골자입니다.
이런 말이 먹히는 이유는 사람들이 쉽게 비관론에 끌리기 때문이며, 저자는 인간 심리가 본질적으로 비관적인 예측에 더 큰 신뢰를 부여한다고 말합니다. 공포를 자극하는 목소리는 과장되어 보이지만 그럴듯하게 들리는 법이지요. 그러나 시장의 역사는 이런 비관론을 무수히 부정해 왔고, 결국 반등하고 회복하는 흐름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장기 투자 관점에서 시장을 바라보면, 일시적인 하락에 크게 흔들릴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시기를 견디지 못한 투자자들이 더 큰 기회를 놓쳤다는 점을 여러 사례를 통해 설명해 줍니다. 강세장은 대체로 약세장보다 길고, 상승폭도 크며, 평균 수익률을 훨씬 웃도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이유로 투자자는 겁먹지 말고, 분산된 포트폴리오를 유지하면서 시장에 꾸준히 머무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또 '지나치게 빠른 상승은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만, 저자는 강세장이 원래 그런 속성을 지녔다고 말합니다. 천천히 오르는 장보다 단기간에 크게 오르는 장세가 오히려 일반적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단기 조정은 불가피하지만, 기업의 펀더멘털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덧붙입니다.

아울러 시장 변동성에 대한 접근도 기존 상식과는 결이 다릅니다. 많은 이들이 변동성이 클 때는 투자를 미루라고 말하지만, 피셔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합니다.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려면 일정 수준의 변동성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안정성과 수익률은 본질적으로 상충 관계이며, 만약 변동 없는 수익을 원한다면 낮은 금리의 예금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면서요. 심지어 변동성 없이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말은 대부분 사기에 가깝다고 경고합니다. 메이도프의 폰지 사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투자 지평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설명도 현실적입니다. 대부분 은퇴 시점을 기준으로 투자 계획을 짜지만, 저자는 오히려 그 방식이 문제라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자산이 얼마나 오래 유지되어야 하느냐이지, 나이가 몇 살이냐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본인의 삶은 물론, 배우자와 가족까지 고려한다면 생각보다 훨씬 더 긴 투자 지평이 필요할 수 있고, 이런 상황이라면 주식 비중을 과감히 줄일 이유도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다른 어떤 투자보다 주식 투자를 오래, 길게 가져가라는 이야기"입니다.

국가 부채에 대한 시각도 흥미롭습니다. 일반적으로 재정 적자는 경제에 부정적이라고 생각되지만, 피셔는 역사적 사례를 통해 이와 반대되는 결과를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미국은 재정 흑자일 때 대공황이 발생했고, 재정 적자 이후에는 오히려 시장 수익률이 개선된 경우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기업에 일률적인 부채 기준이 없는 것처럼, 국가에도 획일적인 부채 한계선은 존재하지 않으며, 국채는 통화 정책을 운영하기 위한 핵심 수단이라는 점도 강조됩니다.

미래를 지나치게 예측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시선을 보입니다. 24개월을 넘는 시장 전망은 의미가 없으며, 한때 시장을 이끌었던 종목이나 섹터에 대해 '이제는 끝났다'고 단정 짓는 것도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현재 흐름이나 기존의 가정에 의존한 예측보다는, 데이터와 구조적인 분석을 통해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편이 낫다는 의미입니다.

실용적인 조언도 많습니다. 시장 상황에 따라 유망한 자산군이 달라진다는 설명이 대표적입니다. 약세장 바닥을 벗어나는 시기에는 소형주가 강세를 보이며, 장기금리와 단기금리의 차이가 좁아질 때는 성장주가, 차이가 벌어질 때는 가치주가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분석은 실제 투자 전략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내용입니다.

다만 마지막에 등장하는 정치와 주가의 관계에 관한 내용은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습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시장이 뚜렷하게 반응하지는 않으며, 이 부분은 미국 정치 중심의 설명이라 국내 독자 입장에서는 큰 공감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주식 투자자라면 흥미를 느낄만한 내용이 많지만 미국 기준으로 서술되었다는건 분명한 한계입니다. 기본적으로 국내 주식 시장은 미국 시장만큼 투명하다고 보기 어려우니까요.
아울러 주식에 대해서는 굉장히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반면, 부동산과 금에 대한 평가가 다소 단호한데 이 역시 납득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저자가 이야기한 부동산 관련 투자 근거 - 미국 기준으로 지난 40년간 상업용 부동산의 수익률이 주식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고, 주거용은 그보다 더 낮았다는 통계 - 는 충분히 말이 되지만 이건 미국 기준이니까요.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10년만 보아도 대출 및 전세라는 레버리지를 활용해서 3~4배(300~400%) 되는 수익을 거둔 사례가 즐비하니 동의할 수 없어요.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전세 제도가 사라지고, 대출은 어려워지며 부동산의 매매가 실거주와 밀접하게 연결되는 정책이 자리잡으면 모르겠지만요.
금 역시 장기적인 수익률이 낮고, 포트폴리오 다변화에도 큰 기여를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지만 '안전 자산' 측면에서 충분히 투자 효과가 있다는건 이미 증명된게 아닌가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최근 화제인 전자 화폐에 대한 내용이 없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책의 주제에 걸맞는 오랜 기간, 최소 50년 이상 역사가 없는 탓이겠지만, 최근 10년 정도의 흐름만 짚어 주어도 엄청난 상승률을 보인 자산이라는걸 부정할 수 없을텐데 말이지요. 저자가 이를 '튤립 버블'과 같은 무가치한 거품 자산으로 볼건지, 진지한 투자 대상으로 볼건지 궁금했는데 언급되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여러모로 참고할 내용이 많고 미국 주식 대세 상승론에 대한 이견도 없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금과 국내 증시에도 분산 투자하는게 맞다고 생각됩니다. 코스피는 장기적으로 우상향한다!는 확신을 가지기는 힘드니 미국 주식에 직, 간접적으로 투자해야 하는데, 이 역시 환율과도 연동되는 만큼 국내 투자자로서는 확신을 가지고 장기 투자하기는 어려우니까요. 1:1:1 비율로 분산하는게 그나마 괜찮은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2025/11/09

더 하더 데이 폴 (2021) - 제임스 새뮤얼 : 별점 1.5점

냇 러브는 어린 시절 부모님을 살해하고 자신의 이마에 십자가를 새긴 루푸스 빅에게 복수하기 위해, 사면받은 그의 근거지로 동료들과 함께 향했다. 절대적인 숫자에서 뒤지던 냇의 애인 메리는 루푸스 빅과 협상하다가 인질로 잡혔고, 냇은 루푸스의 협박으로 은행까지 털며 자금을 모은 뒤 최후의 결전에 나선다...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제임스 새뮤얼 감독의 장편 서부극 영화로, 전통적인 백인 중심 서부극의 문법과 다른 독특함이 눈에 띕니다. 첫 번째 독특함은 등장인물 전원이 흑인이라는 점입니다. 진취적인 여장부 스테이지 코치 매리와 잔혹한 루푸스 빅 일당 2인자 트루디, 남장 여자 바운서 코피와 같은 강한 여성들이 비중있게 활약하는 점 역시 전통적인 서부극과는 다르고요.
애송이 짐이 빠른 사격 실력 하나만 믿고 승부에 집착하다가, 상대 체로키 빌의 비열한 저격으로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은 관객에게 익숙한 '결투의 미학'을 허물고, 캐릭터의 허망한 말로를 통해 오히려 서부극의 현실감을 강조하는 좋은 장면이었습니다.

조너선 메이저스와 이드리스 엘바의 묵직한 연기도 돋보입니다. 화면을 꽉 채운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압도적인 카리스마가 느껴졌어요.

하지만 상술한 극소수 장점을 제외하면, 영화는 망작에 가깝습니다. 특히 각본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루푸스 빅을 구출하기 위해 갱단이 기차를 습격하고, 수많은 군인을 학살하는 도입부부터 전혀 설득력이 없습니다. 이미 사면받은 인물이라면 굳이 군을 적으로 돌리면서까지 데려올 이유가 없으니까요.

클라이맥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짐마저 전사하고 고작 다섯 명만 남은 냇 러브 일당이 수십 명의 루푸스 빅 패거리를 일망타진한다는 전개는 현실감이 없고, 황당함만 더합니다. 특히 냇 러브는 작전도 없이 단독으로 적진에 뛰어들어 대부분을 처리하는데, 그런 전투 능력이 있었다면 애초에 메리를 인질로 보내 협상을 시도할 필요가 없었지요. 

그나마 마지막 총격전이라도 화끈했더라면 괜찮았을텐데, 이 역시 별로입니다. 냇의 일격 필살 방식이 대부분인 탓입니다. 게다가 서부극 같지도 않은 메리와 트루디의 육탄전은 필요도 없이 길어서 짜증만 나게 만들고요.
루푸스 빅의 최후도 허무합니다. 그는 냇 러브의 이복 형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총 한 번 쏘지 않고 조용히 죽습니다. 그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 죽어간 수많은 부하들은 대관절 왜 죽었단 말일까요? 이걸거라면 그냥 자살을 하면 되잖아요? 강함도 느껴지지 않고, 거대한 서사의 무게감도 느낄 수 없었던 최악의 결말이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연출과 연기보다 각본이 훨씬 중요하다는걸 새삼 느끼게 해 줍니다. 같은 흑인 중심 서부극이라면, 차라리 30년 전 작품인 "파씨(Posse)"가 더 괜찮았던 것 같네요.

2025/11/08

그녀가 마지막에 본 것은 - 마사키 도시카 / 이정민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경시청 앞에서 노숙자 여성 마쓰나미 이쿠코가 살해당했는데, 그녀의 지문이 1년 4개월 전 지바현에서 살해된 히가시야마 요시하루의 가방에서 검출된 지문과 일치한다는게 밝혀졌다. 이쿠코의 과거 행적 수사를 통해, 그녀가 요시하루를 살해한 뒤 도쿄로 도주하여 노숙자가 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공무원이었던 요시하루가 이쿠코의 생활보호지원금 지급을 거절했던게 동기였다.
하지만 경시청의 ‘파스칼’이라 불리는 순간 기억 능력자, 미쓰야 슈헤이는 주변 인물들의 진술을 분석하며 사건 이면의 진실을 파헤쳐 나가는데...

이 작품은 마사키 도시카의 장편 소설로, 경시청 미쓰야 슈헤이 시리즈 중 한 권입니다. 전통적인 본격 추리나 수사물이라기보다는, 사회파 추리 소설에 더 가깝습니다. 현대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로는 마쓰나미 부부의 실직을 계기로 한 장년층 빈곤 문제입니다. 부부에게 닥친 경제적 어려움과 이를 무시하는 공무원의 행태는 직접적인 사건의 동기는 아니지만, 중요한 배경이 되지요. 보호가 필요한 시민에 대한 공무원의 무관심이라는 설정은 나카야마 시치리의 "보호받지 못한 사람들"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두 번째는 SNS를 통한 허상의 행복 이미지에 중독된 현대인의 문제입니다. 행복해 보이려는 욕망과 실제 삶의 괴리, 그로 인해 놓쳐버리는 진짜 삶의 가치가 이야기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는 현재 우리나라 현실과도 맞닿아 있어 강한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이외에도 빈곤 부부를 노린 사기, 부부간 불화와 히키코모리가 된 자식과 같은 사회 문제들이 단편적으로 등장합니다.

사회적 문제와 엮이는 이야기도 볼만합니다. 이쿠코는 남편이 무리한 노동 끝에 사고사한 뒤, 행복해 보이는 히가시야마 부부를 원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실상 히가시야마 부부는 SNS와 주변 시선에 얽매여 행복한 부부인 척을 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이후 아내 리사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 요시하루가 딸 루미나를 자신의 친딸이 아니라 여겨 성적으로 접근하려 했고, 이에 충격을 받은 루미나가 그를 살해했으며 이 장면을 몰래 지켜보던 이쿠코가 루미나를 돕기 위해 자신이 죄를 뒤집어쓰고 도주했다는 진상으로 이어지는 전개도 깔끔합니다. 여기서 드러나는, 이쿠코가 노숙자 소년인 줄 알았던 ‘에이군’이 사실은 루미나였다는 반전도 괜찮았고요.

수사 과정에서 순간 기억 능력자 미쓰야 슈헤이의 관찰력도 잘 활용됩니다. 리사는 SNS 중독자였고, 노숙자 신분이 된 이쿠코를 도와준 이들은 이자와 유스케, 다카하시 형제, 그리고 루미나였다는 사실을 몇몇 사소한 상황의 관찰로만 추리해내는 덕분입니다.
초반부의 토끼 인형으로 일부러 가린 가족 사진이나 집 바깥에 꾸며놓은 꽃꽂이 장식, 그리고 중반 이후 햄버거 가게에서의 손님들 관찰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요시하루 사건과 이쿠코 사건 모두 우연이 지나치게 많다는 단점은 큽니다. 이쿠코가 미행한 날 우연히 루미나가 요시하루를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거나, 크리스마스 이브에 전남편의 무관심에 분노한 기무라 나루미가 이자와 유스케를 몰래 따라가 이쿠코와 마주치고 격분한 끝에 그녀를 살해한다는건 모두 과한 우연이라 억지스럽게 느껴집니다.
이자와 유스케가 사실은 이쿠코 남편의 사고를 일으킨 트럭 운전사였고, 다카하시 형제가 이쿠코 남편을 빚쟁이로 만든 회사 사장의 아들들이라는 설정 역시 마찬가지에요. 인물들을 어떻게든 얽어놓으려는 시도가 지나쳤습니다.
이자와의 전처 나루미가 이쿠코 사건의 범인이라는 사실도 이자와 유스케의 동선과 SNS에 올라온 크리스마스 케이크 사진이라는 간접적인 증거를 통해 밝혀지는데, 이마저도 운에 가까운 단서에 의존한 것이고요. 

추리물로서의 완성도 역시 아쉽습니다. 미쓰야 슈헤이의 관찰력은 몇몇 장면에서 돋보이지만, 이를 통해 밝혀지는 사실들은 사건과는 크게 관련이 없는 탓입니다. 예를 들어 리사가 SNS 중독이라는 사실을 밝혀내는건 작품 분량만 소비했을 뿐, 사건 해결과는 무관합니다. 이자와, 다카하시 형제, 루미나가 서로 알고 있었다는 사실 역시 실제 범행과 직접 관련이 없고요. 그들이 범행 현장을 훼손(?)한 것도 일부러는 아니며, 범인에게 도움이 되는 행위도 아니었기에 추리적인 재미를 느낄 여지는 거의 없습니다.
이렇게 미쓰야의 관찰력을 강조하려는 설정은 실제 사건 해결 과정에 효과적으로 녹아들지 못해서 분량 낭비에 불과하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이외에도 이자와 유스케의 아들이 히키코모리라는 설정, 다카하시 형제의 등장도 분량 낭비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다카하시 형제가 건물 관리 업무를 통해 이쿠코의 은신을 도왔다는 설명은 있지만, 굳이 그런 인물들이 필요했는지 의문입니다.

어머니가 살해당했던 과거사가 있는 순간 기억 능력자 미쓰야에 대한 설정과 기계같은 언행 묘사도 별로입니다.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어서 현실감을 느끼기 어려웠던 탓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볼 만한 부분이 없는 건 아닌데, 뚜렷한 장점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별로 권해드릴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이 시리즈도 더 볼 일은 없겠습니다.

2025/11/07

딸과 함께 본, 영웅본색

요즘 딸아이가 무협 웹툰 "화산귀환"에 푹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진짜 무협이 뭔지, 진짜 의리가 뭔지”를 보여주겠다고 큰소리치며 함께 감상한 영화가  바로 이 영화, "영웅본색" 입니다.

이 영화는 제게는 두말할 필요 없는 인생 영화인데, 딸도 재미있게 봐줘서 참 뿌듯했습니다. 함께 영화를 보고, 각자의 감상을 이야기하는 시간도 참 특별하게 느껴졌고요. 요즘 아이 눈에도 주윤발, 장국영 두 배우는 여전히 멋지고 잘생겨 보였다는 점에도 놀랐습니다. ‘미’라는 기준이 시대가 변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새삼스럽지만 인상 깊었어요.

하지만 역시 요즘 세대는 다르긴 다르더군요. 마크가 죽는 장면에서 “꼭 이렇게까지 해야 했냐”고 물을 때, 80~90년대에 흔했던 자기파괴적인 정서가 지금의 감성과는 거리가 있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이번에 다시 보니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아쉬운 부분들이 보이더군요. 편집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고, 음악의 연결이나 활용도 부자연스러웠습니다. 액션 장면도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확실히 낡은 느낌이었어요.
게다가 티빙을 통해 감상했는데, 담배에 블러 처리를 해 놓은 건 정말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몰입을 심하게 방해하는 최악의 편집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봐도 여전히 명작이라는 건 분명했습니다. 제가 중학생일 때 감탄하며 봤던 그 영화를, 이제는 중학생이 된 딸과 함께 다시 보며 감정을 공유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참 고맙고도 의미 있는 경험으로 남았고요.

앞으로도 이런 명작들을 몇 편 더 골라서 딸과 함께 감상하고, 또 이야기를 나눠봐야 겠습니다.

2025/11/02

일상 감각 연구소 - 찰스 스펜스 / 우아영 : 별점 3점

우리의 오감이 어떻게 일상에 영향을 주는지를 흥미롭게 풀어내는 과학, 인문학 서적입니다. 감각은 단순히 받아들이는 수단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 행동, 관계, 심지어 생산성과 건강까지 좌우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요. 

'일상의 감각들을 어떻게 더 나은 방향으로 해킹할 수 있을까'에 대한 여러 가지 팁들이 가득한데, 특히 실생활에 적용해볼 수 있는 구체적인 팁들이 인상적입니다. 예를 들어, 수면의 질을 높이기 위해선 귀마개를 '오른쪽 귀'에 꽂아야 한다는 연구처럼요. 이는 수면 중 좌뇌가 경계 태세를 유지한다는 뇌의 편측성에 근거한 것으로, 처음 알게 된 사실이라 꽤 놀라웠습니다. 잠들기 전 발을 따뜻하게 해주는게 수면을 유도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도 기억에 남고요. 자기 전 따뜻한 물로 샤워하거나, 발 밑에 뜨거운 물병을 두는 것만으로도 수면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아진다고 하니, 잠이 잘 오지 않는다면 시도해 볼 만 해 보이네요.

또 하나 흥미로웠던건, 운동 경기력에 영향을 주는 ‘탄수화물 음료 헹구기’ 실험이었습니다. 단 몇 초간 입 안에서 단 음료를 헹구는 것만으로도 뇌가 에너지 유입을 예측하며 운동 성과가 향상된다는데, 우리가 얼마나 무의식적으로 감각에 영향을 받는 존재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향기 하나, 소리 하나, 피부에 닿는 감촉 하나까지도 우리의 뇌는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반응을 달리한다는걸 이만큼 잘 드러내는 실험도 없지 않을까 싶고요.

이렇게 과학적 실험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일반 독자들도 쉽게 이해하고 일상에 적용할 수 있도록 잘 정리되어 있고, 실용적인 팁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례가 가득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목차가 좀 정리되지 않은 느낌은 들고, 도판이 전무하다는 단점은 있지만 사소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기획, 마케팅 전문가들이 꼭 참고해야 할 도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주제별로 아래와 같이 간략히 정리하여 소개드립니다. 


공간과 감각

- 집의 냄새는 그 공간의 인상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이며, 바닐라나 커피 향은 긍정적인 인상을 주는 반면, 반려동물이나 담배 냄새는 집값을 낮출 수 있다.
- 인간은 진화적으로 개방된 조망과 은신처가 있는 공간을 선호하며, 이는 실내 식물, 곡선 구조, 원형 테이블 등을 더 편안하게 느끼는 이유로 설명된다.
- 원형 테이블은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 테이블보다 협동적 분위기를 만들고, 음악이 흐르면 사람들 간의 거리도 좁아진다.

자연 노출의 효과

- 잠깐의 자연 노출만으로도 기분과 건강, 집중력이 향상되며, 이는 용량 의존적이다.
- 숲 가까이 사는 사람은 실제로 뇌 구조에서 회백질 밀도가 높아지는 변화가 나타났고, 병원 창밖에 자연 경관이 보이는 경우 회복 속도도 빨라진다.
- 자연의 시각 자극 외에도 자연 소리나 냄새 등 감각 자극 역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수면과 환경

- 최적의 수면 환경은 조용하고 어둡고 서늘해야 하며, 온도는 16~24도 사이가 이상적이다.
- 잠자기 전 따뜻한 목욕은 심부 체온을 낮추고 수면 유도를 돕는다. 이때 이상적인 수온은 40~42.5도이다.
- 귀마개는 오른쪽 귀에 착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며, 이는 좌뇌가 경계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 수면 중에는 간단한 학습이 가능하다는 연구도 있으며, 좋은 수면은 창의성 향상에도 기여한다.
- 낯선 공간에서의 첫날 밤 효과는 진화적 경계 반응으로, 익숙한 향기나 소리로 완화할 수 있다.

소리와 경계 반응

- 운전자의 뒤에서 들리는 경고음이 가장 효과적인 이유는 뇌가 머리 뒤 공간을 감지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 자동차 문 소리, 대시보드 두드림, 방향 지시등 소리까지도 소비자의 감정과 신뢰감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사무실과 소음

- 개방형 사무실은 생산성과 만족도 모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많으며, 소음이 특히 문제가 된다.
- 갈색 소음은 자연 소리보다 실제로 집중력 향상에 더 효과적이었으며, 자연 소리는 실내보다는 야외에서 더 효과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운동과 감각 피드백

- 빠른 템포의 음악은 운동 능력을 향상시키며, 자신이 음악을 통제하고 있다고 느끼면 그 효과가 더 커진다.
- 에너지 음료를 마시지 않고 입 안에서 헹구는 것만으로도 뇌는 에너지를 예측하고 운동 성과를 높인다.

매력과 진화심리

- 얼굴의 대칭성, 미소, 시선, 목소리, 피부색 변화 등은 모두 진화적 적합성 신호로 작용하며,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 남성은 여성의 엉덩이 움직임에, 여성은 남성의 상체 움직임(특히 오른쪽 무릎)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춤 관련 연구도 있다.
- 빨간색 옷이나 하이힐은 요추 곡률을 강조하며, 남성에게 성적으로 더 매력적인 신호를 줄 수 있다.

향기와 매력, 마케팅

- 링스 데오도란트처럼 쾌적한 향기는 사진 속 얼굴의 인상까지 바꿀 수 있으며, 뇌의 보상 중추가 활성화된다.
- 다카사고와의 협업 연구에서는 특정 향기가 여성의 나이를 더 젊게 보이게 만든다는 결과도 있다.
- 향기는 의식하지 못할 정도의 약한 농도에서 더 효과적이며, 사람의 판단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소비 행동과 감각

- 레스토랑에서는 느린 음악이 손님의 체류 시간을 늘리고 소비 금액을 증가시키며, 매장 온도가 낮을수록 제품을 더 고급스럽게 느낀다.
- 소비자가 듣는 음악의 국가 분위기에 따라 와인 구매 선택이 달라지는 등의 사례도 있으며, 감각 자극은 소비 결정에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간단한 센스 해킹 방법

- 좋은 냄새가 나는 수건이 더 부드럽게 느껴진다.
- 샤워를 좋아한다면 냉수샤워를 해보자. 병가 일수를 줄일 수 있다.
- 주름을 일시적으로 제거하는 페이스 크림의 주요 기능은 향이다.
- 자연의 소리는 평온한 느낌을 주며, 새소리가 많이 들릴수록 더 효과적이다.
- 옆집이 시끄럽다면 같은 소리를 들으면 더 잘 잘 수 있다.
- 가족용 자동차는 스포츠 모드에서 빨간 조명과 엔진음을 키워 성능 향상 느낌을 준다.
- 실내 식물은 사무실 공기 오염을 줄이고, 깨끗한 공기는 업무 생산성을 높인다.
- 여성은 사무실에서 더 추위를 많이 타므로 온도를 높이면 생산성이 증가한다.
- 스트레스를 유발한 회의 뒤에는 다른 냄새를 맡아 정신 상태를 전환해보자.
- 개방형 사무실에서는 하루 평균 86분이 방해받는다. 배경음악을 들으면 생산성이 오른다.
- 패스트푸드점에서 빵 굽는 냄새는 고객의 구매 가능성을 높인다.
- 느린 음악이 흐를 때 쇼핑객은 돈을 더 많이 쓴다.
- 운동할 때 음악 속도를 10퍼센트 빠르게 하면 운동 효과와 즐거움이 향상된다.
- 테니스 경기에서 포효는 실제 경쟁 우위를 제공한다.
- 관중의 소음은 심판의 판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 운동 중 웃으면 달리기 효율이 향상된다.
- 운동 중 7~8분마다 탄수화물 맛만 봐도 운동 능력이 증가한다.
- 스포츠 팀의 장비 색상을 검은색으로 하면 승률이 높아질 수 있다.
- 데이트 중엔 스릴러 영화를 보면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 사람의 나이는 냄새로 알 수 있지만, 성별은 알 수 없다.

2025/11/01

백 인 액션 (2025) - 세스 고든 : 별점 1.5점

넷플릭스 제작 액션 코미디 영화입니다. 전직 비밀 요원 부부가 아이들을 낳고 평범한 삶을 살다가, 정체가 들통나면서 다시 거대한 음모에 휘말린다는 이야기입니다.

초반 비행기 액션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잘 설계되어 있고, 비행기 내에서의 사투와 추락, 이후 탈출까지의 과정이 설득력있게 묘사된 덕분입니다. 정체가 들통난 가족의 집을 습격한 악당들과의 자동차 추격씬도 볼만합니다. 변변한 무기가 없던 부부가 머리를 짜내 악당들을 상대하는 장면이 펼쳐지기 때문으로, 그 중에서도 멘토스를 넣은 콜라를 악당들 차로 던져넣어서 사고를 유도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에요.
사춘기 딸과 부모가 펼치는 티키타카도 재미있고, 왕년의 명배우 글렌 클로즈가 노익장을 과시하며 등장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고요. 전 동료 척이 흑막이라는 반전도 잘 짜여진 편입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볼 때에는 망작에 보다 가깝습니다. 우선, 영화는 전직 요원이 신분을 숨기고 살다 복귀한다는 진부하고 수없이 반복된 구조를 답습합니다. 새로운 점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워요. 사춘기 딸과의 갈등도 "트루 라이즈"의 복사판일 뿐입니다.

그나마도 가족이 영국으로 향한 이후는 각본과 액션 모두 엉망이 되어 버립니다. 척이 사이버 키를 손에 넣고도 가족을 죽이지 않는 상황부터 납득이 어렵습니다. 이미 목적을 달성했다면, 후환을 없애는게 당연합니다. 구태여 부부를 살려두고 아이들을 납치할 이유가 없어요. 척의 정체가 드러나서 MI6 요원 배런이 같은 편임을 알고난 뒤에도, 배런에게 연락하여 같이 행동하지 않을 이유 역시 없고요.
액션의 밀도 역시 한없이 떨어집니다. 총이 있는데도 맨몸으로 싸우는 장면이 반복되는 탓이 큽니다. 맨몸 액션도 최근의 실전 액션 영화들에 비하면 타격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요. 

한 마디로, 중반 이후는 모든게 비논리적인 망작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부부의 정체가 드러나기 전까지는 그런대로 버틸 만하지만, 이후는 도저히 점수를 줄 부분이 없습니다. 후속편을 암시하며 끝나지만 기대감은 전무합니다. 추천하기도 어렵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