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연애 - 마키 사쓰지 지음, 김선영 옮김/문학동네 |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작가 마키 사쓰지의 작품으로 (굉장히 낯선 작가인데 꽤나 평이 좋아서 읽게 되었네요. 프로필을 보니 오랜 경력을 지닌 작가라서 좀 놀랐습니다) 일본 서양화의 거장 나기라 다다스 화백, 본명 혼조 기와무를 주인공으로 하여 2차대전 직후, 쇼와 43년(1968), 쇼와 61년(1986) 세 건의 사건을 펼쳐 그리는 대하 장편 추리 연애 드라마입니다. 크게 연애물과 추리물, 두 가지로 읽힐 수 있는 작품이죠.
먼저 연애물 속성부터 살펴보지요. 사랑에 절대적으로 복종하여 사건을 저지르고, 복수한다는 설정의 작품은 널리고 널렸습니다. 그러나 혼조의 사랑은 약 칠십여 년에 걸친 그의 일생과 함께 다루어질 정도로 장대하기 때문에 스케일 면에서는 가히 독보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설득력 부분에서 별로 와닿지 않아서 좋다고만은 말할 수 없어도, 최소한 유사 작품들과 차별화는 됩니다.
그리고 제가 연애 소설을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딱 한 번의 관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또 다른 주변인의 존재 등은 "노르웨이의 숲" 느낌도 전해주는 등
연애물로서는 제법 괜찮은 수준이 아닌가 싶었어요.
마지막의 반전도 괜찮았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마스코가 등장할 것은 예상했지만
KIWAMU => MIWAKU라는 애너그램을 이용한 이름이라는 장치가 꽤 그럴싸했고,
혼조 임종 시의 마지막 말과 그에 얽힌 마스코의 상념은 사람을 울컥하게 만들거든요.
그러나 문제는 결국 진상이 혼조 혼자만의 착각으로 한 여자만 바라본 것이라는 허무한 결말입니다. 이거 참... 무려 세 건의 범죄가 얽힌 한 대화백의 일대기가 고작 장대한 짝사랑 이야기라니 뭐라 할 말이 없네요. 도모네의 밀당에 넘어간 희생자로 보이기도 하는데 과연 여자가 제일 무서운 것 같습니다.
또 낡아 보이는 여러 장치들이 좀 거슬리더군요. 평생 단 한 번 가진 하룻밤 관계로 아이가 덜컥 생겼다는 설정이 대표적이겠죠. 무슨 정자왕도 아니고.... 그 외에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케 하는 관계 설정도 진부했고요.
추리적 속성도 첫 번째 사건은 혼조 기와무의 시선이라서 사건과 동시에 진상이 밝혀지지만, 이후 두 건은 혼조의 제자 미와쿠의 시선이라 마지막 부분에서 진상이 밝혀지는 독특한 전개 방식은 매력적입니다. 첫 번째 사건의 경우, 식칼로 첫 번째 상처를 위장한다는 트릭과 대나무 조릿대 등의 디테일한 소품 및 미 군정 당시 시대 상황, 피해자의 도착증적인 성벽에 대한 증언과 같은 여러 가지 요소가 잘 맞물리는게 굉장히 좋았고요. 이 사건 하나만큼은 별 네 개가 충분하다 생각될 정도로 말이죠.
그러나 극한의 밀실이라는 두 번째 사건, 순간이동 알리바이 트릭이 사용된 세 번째 사건은 솔직히 기대 이하였습니다. 두 번째 사건은 진상을 너무 쉽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제가 추리 애호가로 쌓아온 나름의 덕력도 있겠지만, 트릭이 너무 쉽고 의외성이 별로 없어요. 시공을 초월한 단도에 의한 살인과 발자국 하나 없는 밀실이라는 만화 같은 상황 자체가 자살을 반증하는 요소잖아요? 솔직히 경찰 수사를 통해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게 더 의외입니다. 별명에 대한 진상 등 디테일한 부분의 장치가 몇 개 눈에 뜨이기는 하나 딱히 특출난 수준도 아니고요.
세 번째 사건은 범인의 오랜 고민과 노력이 투입된 나름 거대한 장치가 사용되었고, 해결에는 여러 관계자 - 미와쿠, 오세키에다가 탐정 마키 사쓰지까지 - 머리를 맞대는 노력이 필요했다는 점에서 가장 공을 들인 트릭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동기부터 문제입니다. 외도로 아이를 낳았는데, 그 사실을 진짜 남편이 깨달았다고 살의를 품는다는 게 말이 되나요?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게다가 트릭을 만들기 위한 억지도 지나쳤습니다. 용의가 갈 수 없는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모습을 드러내어 피해자를 유인한다는 발상, 알리바이 트릭을 위해 샴쌍둥이까지 등장시킨 설정은 어이를 상실케 했거든요. "쌍둥이를 등장시키면 안 된다"라는 녹스의 규칙을 딱히 예로 들지 않더라도, 집 가정부에게 증언을 시키기 위한 트릭에 들인 공치고는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공정성도 떨어져서, 어렸을 적 자는 모습에 대한 술회라든가 가슴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는 독자가 정보를 얻어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장치였어요. 게다가 3억 엔 사건까지 녹여내려 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수였습니다.
그래도 혼조라는 인물의 일편단심, 변치 않는 애정을 그리는 장대한 드라마가 당시 일본의 사회상과 얽혀 현실적으로, 그리고 지루하지 않게 그려져 사백여 페이지가 넘어가는 대장편임에도 쉽게 읽히는건 분명합니다. 여러 호평에는 수긍이 가네요. "회귀천 정사"처럼 첫 번째 사건까지만 잘 정리된 중편이었다면 훨씬 좋았겠지만, 현재의 모습으로도 드라마와 추리 모두 평작 수준은 충분히 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어딘가 긴 여행을 떠나실 때 적절한 선택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