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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20

아집과 실패의 전쟁사 - 에릭 두르슈미트 : 별점 4점

아집과 실패의 전쟁사 에릭 두르슈미트 지음, 강미경 옮김/세종서적

종군기자 출신의 에릭 두르슈미트가 저술한 전쟁 관련 역사서. 목차는

  1.  「하틴의 뿔」전투, 1187년7월4일 - 원칙에 대한 무관심
  2. 아쟁쿠르 전투, 1415년10월25일 - 승리에 대한 집착
  3. 카란세베스 전투, 1788년9월20일 - 콤플렉스와 자신감 부재
  4. 워털루 전투, 1815년6월18일 - 열정과 책임감의 상실
  5. 발라클라바 전투, 1854년10월25일 -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부재
  6. 쾨니히그래츠 전투, 1866년7월3일 - 실패에 대한 감정적 대응
  7. 스피온 콥 전투, 1900년1월24일 - 기술 발전에 대한 무지
  8. 타넨베르크 전투, 1914년8월28일 - 사적 감정에 대한 집착
  9. 탕가 전투, 1914년11월5일 - 정보에 대한 긴장감의 결여
  10. 아라스 전투, 1940년5월21일 - 시대 흐름에 대한 무관심 

입니다. 이 10개의 전투를 서술하고 그 내용 및 승, 패에 대한 요인을 분석하고 있는데 특이한 점은 승전보다는 패전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거의 예외없이 전쟁을 수행하는 "리더"의 아집과 무책임 때문에 패했음을 지적하고 있죠.
각 단락마다 그다지 길지 않은 분량이지만 각종 정보를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저널리스트다운 능력을 보여주는 모범적인 글로 드라마도 잘 살아 있어서 보는 동안 흥미진진하게, 쉬지 않고 읽을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독일은 예상대로 이긴 내용이 많고 러시아는 1승 1패지만 영국군은 1승 3패 (연합군을 구성했던 전투를 뺀다면), 그나마 근대에 들어와서는 전패군요. 역사에 남는 강대국이라고 보기에는 뜻밖의 전과네요. 어쨌건 개인적으로 가장 웃기는 실패담은 역시 영국군의 "발라클라바 전투" 였습니다.^^ 

여튼, 전쟁 역사라는 쟝르를 좋아하고 상당히 많은 책을 읽었다고 생각합니다만 이렇게 실패한, 그것도 희대의 실패담만 모아놓은 전투 역사서는 처음 접해보네요. 실패에서 교훈을 얻자는 취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좋은 아이디어인것 같아요. 일단 "재미" 하나는 확실히 보장해주니까요. 서양 중심의 시각이라는 점으로 약간 감점하지만 재미는 물론이요 자료적인 가치도 충분하기에 별점은 4점입니다.

각 전투별 간략한 소개는 아래와 같습니다.

첫번째의 십자군 전쟁에서 살라딘이 결정적 승리를 거둔 "하틴의 뿔" 전투는 그나마 유능했던 트리폴리의 레몽 백작의 조언을 정적들의 비판으로 채택하지 않은 "무늬만 왕"이었던 기 왕의 무능력과 무책임, 특히 식수가 없음에도 과감하게(!) 사막을 가로지르는 그 무모함을 냉철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두번째의 "아쟁쿠르" 전투는 100년 전쟁 초기에 헨리왕이 엄청난 숫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수만명의 프랑스 군사를 무찌른 유명한 전투죠. 역시 병력 우위만을 믿고 상대편에게 유리한 진형을 내준 프랑스 지휘관들, 그리고 비 때문에 진흙탕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승리에 도취되어 무모한 돌격작전을 펼친 프랑스 기사들에게 전투 패배의 거의 모든 책임이 있다고 기술합니다. 물론 헨리에게는 기사를 제압하는 거의 유일한 무기였던 영국의 "장궁" 이 있었고 기사도에 위반하는 과감한 작전도 있었지만 근본적인 패배 요인은 먼저 기술했던 요인에 있다고 보고 있네요.

세번째의 "카란세베스 전투"는 투르크와 오스트리아가 대치중이던 당시, 술 한 통을 둘러싸고 오스트리아군 병사끼리 말다툼 도중 한 보병이 "적군이 온다"고 외친 것 때문에 오스트리아군이 실제 전투도 없이 1만명의 병사가 목숨을 잃거나 다쳐 패배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보여줍니다. 우연이 겹쳐져 일어난 어떻게 보면 불우한 사태이지만 근본적으로 지휘 역량이 없던 황제 요셉에게 모든 잘못이 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네번째의 "워털루 전투"는 사실 나폴레옹이라는 걸출한 천재의 패전의 이야기라 조금 아쉬웠습니다. 전략적으로나 전술적으로나 나폴레옹이 그다지 잘못한 것은 없었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아 즉각적 판단이 늦었다는 점, 그리고 휘하의 지휘관들이 무능했다는 점 정도가 나폴레옹의 실책이랄까요....

다섯번째의 "발라클라바 전투"는 위에 언급한 오스트리아 못지 않게 무능했던 러시아군을 상대로 더욱 무능했던 영국 지휘관 이야기입니다. 전설로만 남겨진 기병으로 포병을 향해 정면 돌격한 용감한(!) 영국 기병의 신화를 보여줍니다. 무능할 뿐만 하니라 근본적으로 멍청한 지휘관들때문에 병사들이 죽어나가는 전형적인 이야기인데 그 과정이 너무 황당하고 기막혀서 웃음만 나올 뿐입니다..-.-

여섯번째의 "쾨니히그래츠 전투"는 오스트리아가 패권을 잃게되는 기점이 되는 프러시아와의 전투를 다룹니다. 오스트리아의 장군 베네테크는 비록 용감하고 현실적인, 이 이야기에서 다루어진 지휘관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능력이 있기는 했지만 (나폴레옹을 제외하고 말입니다) 대 병력을 통솔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야전 지휘관이었고 전방 부대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할하지 못해 결국 숫적으로 열세였던 프러시아 군에게 전멸에 가까운 참패를 당하게 됩니다.

일곱번째의 "스피온콥 전투"는 전사에 길이 남은 유명한 전투는 아니지만 남아프리카 보어인들과 영국인의 보어 전쟁때의 이야기입니다. 역시나 용감한 영국군은 무모하고도 멍청한 작전에도 불구하고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만 무식하고도 멍청한 지휘관이 거의 모은 승기를 스스로 포기하며 전투에서 결국 패하고 마는 역시나 전형적인 과정을 보여주네요.

여덟번째의 "타넨베르크 전투"는 1차대전때의 러시아 주력군이 무너지는 전투를 보여줍니다. 이 전투의 패인은 러시아 1, 2군의 지휘관이 서로 앙숙이라는 것, 그래서 1군이 무너질때 2군이 응원을 오지 않았다는 이유이고 지휘관들의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하여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결과는 씁쓸하기 그지 없습니다. 결국 이 전투는 1차대전에서의 참호전으로 인한 독일의 패배 (러시아 군을 막기 위해 프랑스에 진출한 병력을 이동시켰기 때문에 단기전으로 끝날 수 있었던 전투가 장기화 되며 결국 패배로 이어진 결과)를 불러왔고 러시아에는 혁명을 불러오게 된 세계사의 전환점이 된 전투라 할 수 있겠네요.

아홉번째의 "탕가 전투"는 동아프리카 탕가에서 1차대전 당시에 영국-인도 병사 8천명이 탁월한 독일 지휘관 파울 폰 레토브-포르베크 대령이 조련한 원주민 부대 250명(!) 에게 농락당하며 패배한 전투입니다. 총검으로 하는 전투는 끝났다는 사실을 보여준 전투이기도 하고 결정적 순간에 벌떼가 영국군에게 달려들어서 전황이 뒤바뀌는 세계 전사에 길이 남을 희극적인 상황까지 보여주기도 합니다.

마지막 "아라스 전투"는 2차대전때의 독일과 프랑스의 전투입니다. 프랑스가 무너지는 와중에 소수의 탱크로 반격하여 독일군 기갑부대에게 피해를 입힌 아라스 전투가 결국 총통의 판단을 흐리게 하여 영국군이 덩케르크에서 무사히 잔존병력을 이끌고 탈출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제공한 바로 그 전투죠. 일선 지휘관이었던 롬멜 등이 만약 명령에 계속 불복종하고 진격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역시 프랑스 지휘부의 무능함을 지적하고는 있지만 나름의 반격은 높이 평가하며 오히려 히틀러와 괴링 등의 무능함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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