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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2

시시리바의 집 - 사와무라 이치 / 이선희 : 별점 2.5점

시시리바의 집 - 6점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arte(아르테)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남편 유다이의 전근으로 도쿄로 이사왔지만, 도시에 적응하지 못해 외로워하던 가호는 고향친구 도시아키를 우연히 만나 그의 집에 초대 받았다. 그런데 집에서 만난 도시아키의 아내 아즈사는 공포에 질려있였다. 집에 원령이 출몰하기 때문이었다. 도시아키 불륜 상대의 저주 탓이라는 걸 알고 난 후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두 부부가 집 안 가득한 모래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건 문제였다. 

가호는 도시아키 집이 이상하다고 확신했지만 잃어버린 결혼 반지를 찾으려 그 집에 방문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때 도시아키가 모시고 사는 할머니가 친할머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채고 놀라 달아나던 중, 도시아키 부부의 공격으로 남편 유다이는 살해당했다. 가호는 도주와 격투 끝에 아즈사를 죽이는데 성공하나, 집 안에 있는 '무언가'가 모래로 변해 가호를 덮쳐 버리고 말았다. 

과거 버려졌던 도시아키 집을 탐험하다가 머리에 이상이 생겨버린 데쓰야는, 같이 탐험했다가 퇴마사로 각성해버린 히가와 함께 도시아키 집에 있는 '무언가'인 '시시리바'를 제령하기 위해 찾아오는데....

"보기왕이 온다"로 데뷰했던 작가 사와무라 이치의 최신작 호러 장편 소설입니다. 

집에 깃든 지박령(?) 탓에 벌어지는 공포와 그에 맞서 싸우는 퇴마사의 활약을 그린 전형적인 일본식 퇴마물입니다. 퇴마사 히가 자매가 주인공인 일련의 시리즈 중 한 권으로 보이는데 다른 작품은 읽지 않아서 모르겠군요. 이 작품만 읽어도 내용 이해에 큰 지장은 없습니다.

작품에서 핵심은 평범한 가정주부 가호 시점에서 그려지는 도시아키 가(家)의 괴이 현상입니다. 각 에피소드마다 깜짝쇼를 통해 섬찟함을 가중시키는 솜씨가 돋보이는데, 맨 첫 번째 에피소드의 깜짝쇼는 바로 '모래'입니다. 에피소드 내내 괴현상은 도시아키의 불륜 상대가 저주한 탓에 벌어졌다고 설명됩니다. 그러나 정작 문제가 해결된 뒤에도 가장 눈에 보이는 괴현상인 '모래'는 없어지지 않았고 도시아키와 그 아내 아즈사 모두 모래를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결말로 이어지는데 상당히 섬찟했어요.
그 다음 에피소드에서는 도시아키가 모시고 살던 할머니가 알고보니 친할머니가 아니었다는 반전으로 놀라움을 안겨줍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도시아키의 “필요 없어? 그럼 죽일 거야? 이제 마리는 필요 없다고? 그렇구나..."라는 대사도 인상적이고요. 

또다른 화자인 '나', 이가라시 데쓰야 시점의 이야기도 재미있었어요. 지금 도시아키가 살고 있기 전, 하시구치 가족이 살고 있을 때 놀라갔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프롤로그는 짧지만 꽤 놀라왔거든요. 마지막에 엉망인 글로 채워버리는 센스 덕분입니다.
하시구치가 이사간 뒤 폐가 탐험을 하다가 '시시리바'라는 무언가를 만나 모두가 망가져버리고 만다는, 전형적인 '귀신들린 집' 탐험 에피소드도 뻔하지만 흥미롭습니다. 스멀스멀하게 불쾌한 느낌이 차오르게 만드는데 확실히 재주가 있는 작가에요.

원래는 영적(靈的)인 가정 보안시스템, 즉 수호신으로 집 안에 있는 사람이 누구든 안전한 집안, 원만한 가정, 번창하는 가족을 지키는 존재가 2차 대전 때 폭탄을 맞고 이상이 생겨 폭주하고 말았다는 '시시리바'에 대한 설정도 그럴 듯 했습니다. 폭주한 나머지 죽은 할머니 대신 도시아키가 동네 다른 할머니를 모시며 살게 만들었고, 임신했던 아즈사가 죽자 가호를 임신시켜 도시아키 집에 살게 만드는 식으로 지킬 집을 설정대로 만드는데 집착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 역시 좋은 아이디어였어요. 결국 제령에 성공해서 가호와 도시아키 모두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가호가 아이를 죽게 만든다는 에필로그는 가장 섬찟했던 부분 중 하나였고요. 그동안 다른 괴담물에서 보지 못했던, '모래'를 주요 도구로 삼는 능력에 대해서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영상화하면 괜찮겠다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누가 봐도 이상하고 괴기한 집에, 심지어 남편이 증거를 찾아서 알려주며 가지 말라고 하는데 구태여 방문해서 화를 자초하는 가호의 몰상식적인 행동은 답답함을 자아냅니다. 결국 두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진 뒤, 도시아키 집에서 시시리바를 제령하는 데쓰야와 히가의 활약이 펼쳐지는 결말 부분도 진부했고요. 시시리바가 모래를 조종하여 사람들을 위험에 빠트리고, 집에 있는 사람들을 조종하여 공격하는 일련의 과정은 이미 앞 에피소드에서 써먹었기 때문입니다. 

히가의 능력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고작 담배 연기를 내 뿜는 정도로 수백년 이어온 지박령을 이길 수 있을거라고는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지요. 시시리바가 '개'를 무서워 한다는걸 알아낸 뒤 데쓰야의 애견 긴의 활약으로 제령에 성공하는 마무리도 너무 쉽게 간 느낌이에요.

마지막으로, 히가와 데쓰야가 도시아키 집을 찾은 건 가호가 도시아키의 아이를 임신하고 그 집에 살게된 몇 개월 후로 묘사됩니다. 가호의 배가 제법 나왔다고 설명되니까요. 그렇다면 왜 이전에 경찰이 이 집을 찾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깁니다. 살해당한 가호의 남편 유다이는 주말에도 출근할 정도로 바쁜 회사에 다니고 있었어요. 그런 유다이가 무단으로 출근하지 않았는데 회사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게 말이 될까요? 심지어 유다이는 도시아키 집에 대해 근처에 사는 동료에게 물어보기까지 했으니, 경찰에 신고했다면 분명 바로 조사가 들어왔어야 마땅합니다. 이런 류의 퇴마물이 경찰력을 지나치게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아예 등장시키지 않는건 좀 아니지 않나 싶네요.

그래도 전체적인 설정과 구성이 꽤 잘 갖추어진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무엇보다도 섬찟함 만큼은 충분히 제공하고 있어서 호러, 공포물 본연의 가치에 충실하다는게 마음에 드네요. 킬링 타임용으로는 제격이에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14/02/21

시공건축환시담 메모리즈 1 - 토우메 케이 : 별점 2.5점

시공건축환시담 메모리즈 1 - 6점
토우메 케이 지음/학산문화사(만화)

건축물에 남겨진 의식을 느낄 수 있는 여자와 볼 수 있는 남자가 만난다. 그들은 서로의 능력을 합쳐서 건축물이 남긴 염원(?)을 풀어준다...

토우메 케이의 독특한 건축물을 소재로 한 일상계 옴니버스 단편 시리즈입니다. 주인공인 니와가 자신의 능력을 깨닫는 도입부 성격의 "집의 기억", 니와의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함께 후카자와 마유리에 대해 서서히 알아가는 "할아버지의 사진", 그리고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고 니와가 자신의 능력에 대해 자각하게 되는 "바다의 추억", 이렇게 모두 세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집이 가진 잔류사념을 해결해 준다는 점에서 지박령을 퇴치하는 퇴마물로 보이기도 하지만, 내용은 평범한 일상계에 가깝습니다. 주인공들의 능력도 별게 없어요. 하는 일도 고작해야 남겨진 편지를 보낸다던가, 숨겨진 인형을 찾아낸다던가, 건물에게 예전의 바다 풍경을 보여준다는 것에 불과하고요. 그러고 나서도 특별히 달라지는 것도 없어서 큰 드라마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애시당초 건물이 피를 흘리거나, 폴더가이스트 현상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니 뭐 해결할 것도 없지요. 

그래도 수록작 중에서 마지막 이야기는 아주 괜찮았습니다. 그 집에 살던 사람들의 의식이 아니라, 그야말로 집 자체의 의식이 핵심이었다는 약간의 반전과 더불어 실제로 성불시켜주는 방법이 꽤 그럴듯하면서도 따뜻한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토우메 케이 스타일이 살아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선 굵은 거친 스타일의 펜화로 그려낸 작화, 그리고 전형적이라 해도 좋은 토우메 케이 스타일 캐릭터인 니와와 후카자와 마유리 컴비가 대표적이지요. 일종의 조력자인 사카모토, 아키라 컴비도 좋았고요. 캐릭터가 약간 "환영 박람회"와 겹치는데 (특히 마유리), 작가도 "환영 박람회" 캐릭터들이 뛰어든 현대 무대의 일상계 판타지를 그리고 싶었던 게 아니었나 싶네요. 여튼. 별점은 2.5점입니다.

걱정이라면 1권부터 "환영 박람회"와 비슷하게 이런저런 떡밥을 던져놓는데 제대로 마무리될 수 있나.. 하는 점이죠. 작가의 전작을 보면 더욱 신경쓰일 수 밖에 없는데, 후속권을 지켜봐야 될 것 같군요.

2004/01/06

주작의 활

로쿠죠 신사에서 장난을 치다가 사당을 부순 뒤에 왼팔에 신기 "주작"이 깃들게 된 고등학생 스루가 요스케. 그는 별 생각없이 답한 한마디 때문에 자신의 미래를 담보 잡힌 채 "주작의 활"을 무기로 여러 동료, 친구와 함께 "권족"이라 불리우는 마물과 싸워 나가게 된다.

요스케가 마을 사람들을 위협하는 "권족"과 싸워나가는 퇴마만화. 동료로는 로쿠죠 신사에 새로 온 신주의 딸인 이나바 요모기 -여우귀신을 부리며 귀신을 볼 수 있는 "견귀"라는 능력자 - 와 "청룡의 창"을 쓰는 마찬가지로 신기를 받은 자인 국사선생 에조 류이치, 그리고 2권 막판에 등장하는 현무의 초등학생 미카와 이로리 등이 있습니다.

퇴마만화는 이제 하나의 장르를 이룰 만큼 많은 만화가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에 나온것만 해도 "블리치"(꽤 재밌더군요)나 "소름", "귀도천외 카나메" 등등 다 보기도 힘들정도로 많지요.

하지만 이 만화 "주작의 활"은 이 수많은 퇴마 만화 중에서도 나름대로 자리매김할 미덕이 존재합니다.
일단 무대가 되는 마을은 "미야코노"라는 굉장히 좁은 마을이며 주인공들도 소박하기 그지 없다는 점입니다. 물론 권족이라는 강력한 괴물들은 존재하지만 이에 대항하는 주인공들의 능력은 별로 대단하지 않아서 나름대로 한계가 있고, 서로의 협력이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그래서 스케일이 다른 퇴마물보다 작으면서도 소박합니다. (요새는 왠지 이런 소박함에 마음이 끌립니다^^) 그래서인지 퇴마만화이지만 이상하게 다른 만화에 비해 괴물의 비중이나 묘사는 적고 주인공들과 동료, 친구들과의 다양한 관계를 중심으로 그려집니다.
원래 게임업계에서 10년 넘게 일했다는 작가의 독특한 그림체와 캐릭터들 역시 이상할 정도로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데 일조하고 있고요.

2권이 최근 출간되었는데, 1권보다는 보다 소박해지고 유머러스해진 2권때문에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네요. 특히 간만에 보는 "착하고 순진한" 여주인공 이나바 요모기 때문에 더욱 흐뭇합니다.
모쪼록 앞으로 마왕과 싸운다.. 같이 스케일을 키운다던가 하지 말고 미야코노시만 지키는 소박한 주인공들을 보게 해 주었으면 합니다.

PS : 요새 안나오던 만화들이 나오는 붐인가요? 이그젝션 6권에 할아버지와 나의 사건수첩 4권에... 볼게 너무 많군요. 천천히 읽어봐야죠^^

2005/04/12

헬로 네즈미 - 히로카네 켄시 : 별점 2.5점

헬로 네즈미 28 - 6점 켄시 히로카네/대원씨아이(만화)

아카츠카 탐정 사무소라는 탐정사에서 근무하는 일명 "고슴도치"인 고로와 그의 동료인 전 도박사 출신 큐사쿠, 통칭 "구레"를 중심으로 한 사무소의 멤버들이 펼치는 옴니버스 드라마입니다.

작가의 대표작인 "시마과장"은 이래저래 욕도 많이 먹고 문제도 많은 작품이긴 하지만 작품 자체를 끝까지 읽게 하는 통속적인 재미 하나는 대단하지요. 이 작품 역시 그러한 재미만큼은 상당한 수준입니다. 
그러나 작가의 스타일이라고는 해도, 감수성에 치우친 드라마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더군요. 눈물이 너무 많고 사랑도 너무 많은 순정파적인 전개라, 2000년대에 보기에는 짜증날 정도였거든요. 거기에 그림체 역시 전통 극화체에 가까운 탓에 뎃생력과 구성력은 나무랄데 없다 하더라도, 역시나 요즘 독자들에게 어필하기는 좀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대로 내용 자체는 재미있습니다. 눈물 쏙 빼놓는 에피소드들 뿐만 아니라 웃기는 이야기에서 대하 액션, 거기에 괴담과 사극, SF까지 통통 튀는 전개는 옴니버스 캐릭터 극의 장점을 잘 살린 이야기로 보여지며, 어느정도 성공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추리물도 포함해서요. 물론 "인간 교차점" 스타일의 드라마들은 좀 지루한 맛도 없지 않습니다만....

추리적으로 본다면 탐정 사무소의 탐정이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의뢰들어오는 사건은 단순한 조사나 사람 찾기 같은 일(이게 물론 현실적인 것이라는 것은 인정합니다)이 비중있게 다루어지는 탓에 관련 에피소드가 많지는 않습니다. 전 29권 분량 중에서 진정 "추리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부분은 별로 없어요. 하지만 소수 정예인지 나름대로는 제법 재미있는 이야기가 몇 개 있습니다. 특히 감금장소나 스토커 잠복 장소를 알아내는 실질적인 조사 방식은 개인적으로는 높이 평가합니다. 꽤 현실적이면서도 나름 추리적 요소가 괜찮거든요.

그러나 중반이후에는 소재고갈인지 너무 이야기가 비약해 버려 실망스러운 에피소드가 많습니다. "심령퇴마물", "흡혈귀", "UFO" 에피소드들은 사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에요. 또 일상적인 이야기와 단순 범죄 사건에서 상당한 스케일의 범국가적 스파이 액션까지 다루므로 이야기의 고저가 심해서 적응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그래도 일단은 평균정도의 재미는 가져다 주는 만화입니다. 별점은 2.5점. 지금은 구하기가 쉽지 않고 일본에서도 대표적인 보수 우익 취향의 만화가로 알려진 히로카네 켄시의 작품이라 앞으로도 구해 볼 생각도 없지만 그냥저냥 지나다가다 눈길한번 줄 만 합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추리물"로 보기에는 문제가 있을 듯 하군요.

PS : "아"로 시작하는 탐정 사무소 이름때문에 전화번호부에서 찾아보고 제일 위에 있어서 의뢰한다는 고객들 에피소드가 꽤 많더군요. 가가 탐정 사무소도 실패한 전략은 아닌 듯....

에피소드 중 추리물을 뽑아본다면

5~6권 - 고로의 애인인 란코의 아버지가 관련되어 있던 비리에 대한 에피소드 :
이 에피소드는 일종의 정경유착에 따른 거대한 음모를 다루고 있는데 킬러까지 등장하며 과격한 액션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로 정경유착에 관한 디테일이 굉장히 좋습니다. 추리적으로는 다이잉 메시지 해독이 등장하는데 꽤 괜찮습니다. 좀 더 소규모의 음모였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오버하는 경향이 있어서 약간 아쉽지만 재미있는 에피소드였습니다.

7권 - 기억상실중에 벌어진 살인사건을 다룬 "공백의 격류" :
십수년전에 살인을 저지르고 사고로 당시의 기억을 잃어버린 의뢰인의 과거를 조사하는 에피소드로 만화에 딱 어울리는 단서들과 내용전개가 독특하며 마지막 반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8~9권 - "유괴" 에피소드 :
한 대기업의 데릴사위 사장이 내연의 아내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유괴당해 탐정 사무소에 도움을 요청하는 에피소드입니다. 돈을 주고 풀려나기는 하지만 사회적 응징을 위해 유괴범을 조사하여 소재를 파악하는 과정이 현실적이면서도 흥미진진합니다.

14권 - 연쇄 살인마 이야기인 "빨간색의 혼란" :
싸이코 연쇄 살인범 이야기인데 내용 전개는 뻔하지만 꽤 재미있더군요.

14권 - 정체모를 인물이 가입한 보험금을 타게되는 한 주부의 에피소드인 "정체불명의 사례" :
어느날 아무 생각 없이 베푼 선행으로 보험금을 받게되는 한 주부, 그리고 그 보험금에 얽힌 진상을 파헤치는 이야기로 정통 추리적 요소가 많으면서도 내용 전개도 깔끔하며 반전도 상당히 괜찮은 에피소드입니다.

16~17권 - 의학교수와 브로커가 관련된 스캔들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진상을 다룬 에피소드 :
범행 장소와 공개된 장소 양쪽에서 동일 시간대에 존재하는 알리바이 트릭을 파헤치는 에피소드로 트릭은 생각외로 시시하지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과정이 꽤 재미있습니다.

19~20권 - 한 여인의 완벽한 복수극을 다룬 "의문의 편지" :
자신이 살해될 것을 예상한 한 정치인의 정부가 펼치는 완벽한 복수극인데 시한 장치를 이용한 편지 발송 트릭이 등장합니다.

20권 - 모닝콜을 통한 알리바이를 파헤치는 "모닝콜" :
아침에 모닝콜을 받았다는 용의자가 그 시간에 절도를 행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내는 것인데 사실 굉장히 간단하긴 하지만 일상적으로 쓰이는 소재를 트릭에 이용하는 발상을 높이 평가하고 싶네요.

24권 - 일본 전통 이야기에 대한 숨은 진상을 파헤치는 "사랑밖에 난 몰라" :
일종의 번외편으로 에도시대에 있었던 방화사건에 관련된 진상을 풀어내는 이야기입니다. 이 원전격 이야기를 잘 몰라서 몰입은 쉽지 않았지만 역사 추리물 적인 요소가 강하고 트릭과 전개도 재미납니다.

26권 - 한 여인의 밀실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긴머리의 여인" :
시체 이동을 통해 자살로 위장된 한 여인의 살인 사건을 다루는 이야기로 전편을 통해 가장 독특한 트릭이 등장합니다. 현실감은 왠지 많이 떨어지는 트릭이지만 발상이 무척 기발하며, 사건의 발단이 되는 단 하나의 단서를 쫓아 현장 조사 등을 통해 범인을 밝히는 과정이 좋습니다.

29권 - 도쿠가와의 매장금을 찾는 "보물 찾기" :
암호 트릭이 등장합니다. 암호 자체의 수준은 평이하고 일본어를 좀 알아야 해독할 수 있어서 아쉽지만 너무 어렵지도 않고 나름의 바탕이 있어야 풀 수 있어서 꽤 재미있는 암호로 보입니다.

2012/07/15

아서 새빌 경의 범죄 - 오스카 와일드 / 고정아, 이승수 : 별점 3점

아서 새빌 경의 범죄 - 4점
오스카 와일드 지음, 고정아.이승수 옮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해제/바다출판사

이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14번째 작품. "목소리 섬"을 읽고 탄력받아 읽게 된 책으로, 오스카 와일드의 단편 다섯 편이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앞에 수록된 "행복한 왕자", "저만 아는 거인"은 다른 책에서 이미 접했던 우화에 가까운 작품들로, 오스카 와일드라는 작가에게 기대했던 유머나 반전이 별로 드러나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물론 "행복한 왕자"는 어렸을 적 접했던 동화 버전에서는 찾기 힘들었던 현실 풍자적인 요소가 눈에 띄긴 했지만요. 

다행히 그다음에 이어지는 작품들은 기대했던 그대로더군요. 사랑의 무용함을 작가 특유의 시각으로 표현한 "나이팅게일과 장미"는 솔로 부대를 위한 헌사로 보여 기대에 값했습니다.

중단편 표제작 "아서 새빌 경의 범죄"는 수상학자의 예언을 들은 뒤 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결심한 아서 새빌 경의 좌충우돌 범죄 계획을 다룬 작품으로, 내용은 사뭇 진지하나 작가 특유의 블랙코미디 같은 해학이 잘 살아있어서 마음에 들었고요. 나름 정교한 계획이 계속 실패한 뒤, 충동적으로 저지른 마지막 범행이 성공한다는 전개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작품 "캔터빌 유령"은 이 단편집의 백미입니다. 캔터빌 가문 저택의 오래된 유령이 새로 이사 온 미국인 가족에게 되려 된통 당하고 우울해하다가 성불한다는 내용인데, 현대 퇴마물을 보는 듯한 묘사와 전개가 압권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령의 핏자국을 지우기 위해 최첨단 세제를 동원하고, 유령의 쇠사슬 소리가 시끄러워서 윤활유를 권해주는 등의 깨알 같은 디테일이 정말 최고였어요. 마지막 성불에 이르는 과정과 완벽한 해피엔딩 결말까지, 뭐 하나 단점을 찾아보기 힘든 좋은 작품이었어요.

그래서 별점은 3점. 앞부분의 교훈적 우화들이 기대와 전혀 다르기는 하나 뒤의 두 편, 특히 마지막 작품 한 편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덧: "저만 아는 거인"은 제가 아주 어렸을 적 읽었던 동화 버전이 기억에 생생한데 아직도 출간되고 있더군요! 지나친 종교적 결말은 지금의 제 취향은 아니나 반가운 마음에 같이 포스팅합니다.

저만 알던 거인 - 6점
오스카 와일드 지음, 이미림 옮김/분도출판사

2009/09/30

최근 읽은 추리 / 호러만화 짤막한 감상

시귀 屍鬼 1 - 4점
오노 후유미 지음, 후지사키 류 그림/학산문화사(만화)

오노 후유미의 "시귀"의 만화판입니다. 원작을 꽤 재미있게 읽었기에 망설이지 않고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제 생각과는 다르더군요. 무엇보다도 그림이 생각했던 "시귀"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후지사키 류는 과거의 히트작 "봉신연의" 작가인데, 당시에도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집어들지도 않았더랬죠. 작가가 이 친구라는걸 미리 알았더라면 절대 구입하지 않았을겁니다. 전개도 난잡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고요. 
그나마 원작의 후광덕에 별점은 2점입니다만, 다음권은 안살겁니다. 빌려보던가 해야지...

소름 4 - 4점
키지츠 카츠히사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중고서적 파는 행사장에서 우연히 발견하여 무려 6년만에 완독한 일종의 퇴마물(?)입니다.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는 "심잠안"을 타고난 요코와 대학에서 민속학을 연구하는 쿄이치가 여러 이상 현상을 해결해 나간다는 이야기죠. 견귀와 같은 설정도 괜찮지만 실질적으로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은 없고, 머리를 쥐어짜서 유령과 맞서 사건을 해결한다는 이야기들이 괜찮았어요. 
그러나 묘할 정도로 전개가 맥이 빠지고 지루해서 별로 인기는 끌지 못한 듯 싶네요. 조금 더 자극적으로 구성했더라면 좋았을텐데 말이죠. 별점은 2점입니다.

덧붙이자면, 개구리-뱀-달팽이의 이른바 "3자견제"가 중요한 포인트로 쓰이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이 3자견제의 구성에 대해 등장인물들이 전혀 모르고 있더라는 것이 의외였습니다. 일본에서는 널리 알려진 것이 아닌가요? 알려진건 결국 나루토 때문인건가?


그래스 호퍼 1 - 4점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이다 히로토 그림/대원씨아이(만화)

요사이 뜨고 있는 소설가 이사카 고타로의 원작을 만화화한 작품입니다. 이사카 고타로 작품은 "사신 치바" 밖에는 읽어보지 못했지만 그 기묘한 상상력이 마음에 들어 덥석 집어들게 되었는데... 너무 생각과 달라 실망했습니다. 기발한 상상력 대신 흔해빠진 이(異)능력 킬러들의 이야기일 뿐이었거든요. 능력들도 다 거기서 거기고요. 그림도 이야기를 뒷받침해주기에는 이상하게 밋밋해서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역시나 다음권은 전혀 기대가 안되기에 패스합니다. 별점은 2점.

2009/09/27

주작의 활 1~12 - 이노우에 준야 : 별점 2점

주작의 활 12 - 4점
이노우에 준야 지음/삼양출판사(만화)

주작의 활


요새 통 바쁘기도 하고 여유가 없어 책 읽기가 힘드네요. 시간을 보내기 위해 만화를 좀 더 많이 보는 편인데, 그 와중에 완독한 작품입니다. 무려 5년전에 1,2권을 읽고 포스팅을 남겼으니 뭔가 숙제를 끝낸 기분마저 드는군요. 완결이 작년 12월이었으니 무지하게 늦게 끝내긴 했지만요.

작품은 주작 - 청룡 - 백호 - 현무의 4대 신기가 모여 요괴들을 물리친다는, 흔해빠진 퇴마물입니다. 각 신기마다 특성과 제약이 있다는 것, 점점 강해지는 요괴에 대항하여 4대 신기의 능력도 하나씩 업그레이드 된다는 것, 그 외의 다양한 조력자들의 등장 등 이런 류의 만화의 전형에 굉장히 충실해서 진행높은 점수를 주기는 좀 힘듭니다. 전개도 막판에는 너무 급작스럽게 이어져서 마무리도 썩 좋다고 말하기 어렵고요.

그러나 나름의 독특한 점이 몇 가지 있기는 합니다. "주작"이 주인공이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인공 일행과 무고한 시민, 경찰, 군인들이 굉장히 혹사당하는다는 조금은 유별난 특징이 있습니다. 덕분에 기억에는 좀 오래남을 것 같긴 하네요. 포스팅을 작성한 이유이기도 한데, 정말 수도없이 민간인들이 죽어나갑니다. 당황스러울 정도로요. 착해보이는 어른, 친구들이 모조리 죽는 이런 설정은 뭔가 불문율을 깬 느낌이라서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림도 괜찮은 편이라 심심풀이용으로는 적당했어요.

하지만... 인기, 재미와 연결되지 못한 것도 사실이죠. 요스케와 요모기들의 알콩달콩한 이야기가 좀 더 많이 나와주었더라면 더 재미있었을텐데 너무 진지한 것도 감점 요인이었고요. 추천작 수준은 아닌 그냥저냥한 작품이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2011/08/31

고스트 스토리 상/하 - 피터 스트라우브 / 조영학 : 별점 2.5점

고스트 스토리 - 상 - 6점
피터 스트라우브 지음, 조영학 옮김/황금가지

밀번이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 오래도록 살아온 노인들의 모임 ‘차우더 클럽’이 있다. 클럽 멤버인 에드워드가 돌연사한 이후, 남은 멤버 4명은 자신들이 겪었던 무서운 사건들을 이야기하며 소일하지만, 점차 그들의 괴담이 실체를 가지고 현실화되는 것을 감지한다. 이 공포를 해결하기 위해 그들은 에드워드의 조카 단 원덜리를 초대하여 까닭모를 저주의 진상을 밝히려 하는데...

스티븐 킹이 자신의 저서 "죽음의 무도"에서 현대를 대표하는 호러소설 중 한 권으로 꼽아 극찬한 작품입니다. 저도 그 덕분에 읽게 되었죠.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스티븐 킹의 과찬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낚였어요.

제일 큰 문제는 이야기의 흐름이 혼란스럽고, 균형이 잘 맞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중반부까지는 차우더 클럽을 중심으로 한 전형적인 유령 괴담이 펼쳐지다가, 이후 유령들이 실제로 등장하여 물리력을 행사하는 부분에서는 크리쳐물, 마지막 리키 - 단 - 토미 3인방과 유령들의 한판 승부는 갑자기 퇴마물로 돌변하는 식으로 전개되는데, 이 기묘한 대비가 저에게는 썩 좋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전반부는 혼란스럽고 지루했으며, 후반부는 빠른 템포의 호러 액션으로 진행되었는데, 이러한 흐름이 부조화스럽게 다가왔거든요.

스토리 자체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우선, 유령이 주인공들을 습격하는 이유부터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최초 그들이 ‘그녀’를 죽였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애초에 사고를 유발한 것이 그녀였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또한, 파워 밸런스도 엉망이에요. 초월적인 힘을 지닌 강력한 유령들이 칼과 도끼에 쓰러진다는 결말은 솔직히 황당하더라고요. 특별한 퇴마 도구도 아닌데 말이죠.

그리고 불필요한 등장인물들의 묘사가 지나치게 많아 읽는 내내 짜증이 날 정도였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리키의 아내 스텔라 호손인데, 이 바람둥이 할망구는 비중에 비해 도무지 하는 일이 없습니다. 마지막에 잠깐 활약하기는 하지만, 너무 작위적인 전개로 보일 뿐이었어요. 이런 불필요한 묘사들만 덜어냈어도, 1,2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을 절반 정도는 줄일 수 있었을 겁니다.

물론, 수십 년의 세월과 여러 등장인물이 얽힌 장대한 서사를 매끄럽게 끌고 나가는 솜씨는 제법 훌륭합니다. 결말까지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힘도 갖추고 있고요.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너무 길 뿐더러, 전개에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커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별로 무섭지도 않았습니다...

2019/08/25

테러호의 악몽 1, 2 - 댄 시먼스 / 김미정 : 별점 3점

테러호의 악몽 1 - 6점
댄 시먼스 지음, 김미정 옮김/오픈하우스
테러호의 악몽 2 - 6점
댄 시먼스 지음, 김미정 옮김/오픈하우스

1845년, 최신식 함정 이리버스호와 테러호를 타고 북서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출발한 존 프랭클린 경 탐사대는 무리한 항해 끝에 얼음 속에 고립되고 말았다.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탐사대를 키가 4m가 넘는 하얀색 괴물이 습격하기 시작했고, 괴물과 추위, 식량 부족 등의 문제가 겹치며 프랭클린 경을 비롯한 탐사대원들이 하나씩 죽어가자 테러호의 함장 크로지어는 배를 버린 후 생존한 탐험대 전부와 함께 육로로 탈출을 결행했다.
그러나 계속된 괴물의 습격과 식량 부족은 생존자들을 계속 괴롭혔고, 누수방지공 히키를 중심으로 한 대원들의 반란까지 일어나는데...

"칼리의 노래"로 접했었던 댄 시몬즈의 장편 호러 팩션입니다. 실존했던 싱클레어 탐험대에게 닥친 비극과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를 작가적 상상력으로 그려낸 작품이지요. 실존하는 미해결 미스터리를 풀어낸다는 점에서는 코난 도일"J.하버쿡 젭슨의 진술"이 떠오릅니다.

이전부터 굉장히 기대했었는데 역시나,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1, 2권 합쳐서 9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순식간에 읽어버렸을 정도로요. 재미의 가장 큰 요소는 끔찍한 초극한 상황의 생생한 묘사입니다. 이들에게 닥친 비극은 작 중에서도 언급되다시피 포경선 에식스 호의 비극과도 유사합니다. 그러나 에식스 호는 십 수명의 선원들이 주로 '굶주림' 과 싸우며 그래도 다섯 명이나 생존했지만, 싱클레어 탐험대는 백명을 훌쩍 넘는 대원들이 아무 것도 잡지 못해 줄어드는 자원만으로 버텨야 해서 직면한 굶주림은 물론, 상상을 초월하는 추위와도 싸워야 한다는 점에서 몇 수 위입니다. 최고 영하 60도 이하로 떨어져 맨 손으로 총을 잡으면 살갗이 벗겨질 정도니까요.

탐험대를 곤경에 빠트리는 요소로는 괴혈병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한 묘사도 굉장합니다. 모공 등 모든 몸의 구멍에서 피를 흘리고, 이빨이 빠지고, 붓기가 심해지며 피부의 탄력도 사라지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몇몇 선원들이 걸린 납중독 묘사도 처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죽어가는 핏제럴드 함장의 최후가 특히나 끔찍합니다. 

탐험대를 습격하는 거대 괴물 툰바크의 위협도 어마어마한 수준입니다. 4m도 넘는다는 거대한 체구에 속도도 엄청나며 총을 맞아도 죽지 않는 괴물로 인간은 도저히 제압할 수 없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그나마 탐험대의 발버둥은 테러 호의 항해장 블랭키가 괴물에 맞서 오랫동안 버티며 살아남는 정도에 불과해요. 참고로 블랭키의 사투는 박력이 넘쳐서 전체 내용 중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수많은 어려움에서 드러나는, 인간 관계를 통한 드라마도 탄탄해서 재미를 더합니다. 작중 최고 악역인 누수방지공 코닐리우스 히키의 존재는 비교적 평범한 편이나, 다른 인물들의 묘사와 설정이 아주 빼어납니다. 실력은 없지만 운과 허세에 의존하는 존 프랭클린을 비롯, 실력은 뛰어나나 아일랜드인이라는 출신 성분 탓에 뼛 속 깊이 분노를 품고 사는 크로지어 함장, 순수한 군인이자 '인간' 인 어빙 소위, 체력이나 능력은 딱히 없지만 열정과 신념으로 무장한 해리 굿서 등 모든 인물들이 눈에 보이듯 그려져 정말 살아 숨쉬는 듯 합니다. 스스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다가 죽어가는 인물들과 인간임을 포기하고 살아남기 위해 발악하는 인간 군상들의 대비도 확실하고요. 사실 극한 상황에서 군율과 군기가 유지된다는게 처음에는 영 와 닿지 않았는데, 묘사를 통해 국가와 인간에 헌신적인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는 덕분에 나름 이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탐험대가 전멸할 때 이누이트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게 영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히키가 어빙을 죽이고 이누이트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 탓이라는 설명이 더해진 것도 좋았습니다. 탐험대가 이누이트를 복수 명목으로 학살해서 도움을 받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아쉬운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탐험대의 생존 경쟁만 그렸으면 좋았을텐데, 초자연적이고 신화적인 영역의 이야기가 너무, 지나칠 정도로 많은 탓입니다. 가장 실망스러웠던 건 툰바크, 그리고 툰바크와 관련된 벙어리 여인 실나의 정체입니다. 실존한다기 보다는 결국 이누이트 신화 속의 존재라는 진상은 이게 뭔가 싶더라고요.
크로지어 함장이 '천리안'을 갖춘 인물로 그 역시 실나와 결혼하고 이누이트 주술사로 거듭난다는 결말 역시 전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프레데터'와 총으로 싸우다가 나중에 부적을 붙여 퇴치한다는, 크리쳐 호러물이 갑작스러운 퇴마물로 전환되는 셈인데 영 개운치 못했거든요.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TV 시리즈에서는 툰바크가 실체가 있는 괴물로 그리고 있던데 그게 더 나은 선택인건 분명합니다.

그래도 워낙에 압도적인 내용이 많고 재미 또한 빠지지 않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결말만 더욱 현실적으로 그려내었더라면 4점도 아깝지 않았겠지만 지금 수준으로도 충분히 좋은 작품인건 분명합니다.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은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밀리의 서재' 처음 한 달 무료 프로모션을 통해 읽게 되었는데, 아직 '밀리의 서재' 가입을 하지 않으셨다면 무료로 읽어보실 수 있을 겁니다. 

덧붙이자면 TV 시리즈도 무척 땡기지만, 심하게 무서울 것 같아 망설여지는군요. 호러 무비는 취향이 아니다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