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새빌 경의 범죄 - 오스카 와일드 지음, 고정아.이승수 옮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해제/바다출판사 |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14번째 작품. "목소리 섬"을 읽고 탄력받아 읽게 된 책으로, 오스카 와일드의 단편 다섯 편이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앞에 수록된 "행복한 왕자", "저만 아는 거인"은 다른 책에서 이미 접했던 우화에 가까운 작품들로, 오스카 와일드라는 작가에게 기대했던 유머나 반전이 별로 드러나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물론 "행복한 왕자"는 어렸을 적 접했던 동화 버전에서는 찾기 힘들었던 현실 풍자적인 요소가 눈에 띄긴 했지만요.
다행히 그다음에 이어지는 작품들은 기대했던 그대로더군요. 사랑의 무용함을 작가 특유의 시각으로 표현한 "나이팅게일과 장미"는 솔로 부대를 위한 헌사로 보여 기대에 값했습니다.
중단편 표제작 "아서 새빌 경의 범죄"는 수상학자의 예언을 들은 뒤 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결심한 아서 새빌 경의 좌충우돌 범죄 계획을 다룬 작품으로, 내용은 사뭇 진지하나 작가 특유의 블랙코미디 같은 해학이 잘 살아있어서 마음에 들었고요. 나름 정교한 계획이 계속 실패한 뒤, 충동적으로 저지른 마지막 범행이 성공한다는 전개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작품 "캔터빌 유령"은 이 단편집의 백미입니다. 캔터빌 가문 저택의 오래된 유령이 새로 이사 온 미국인 가족에게 되려 된통 당하고 우울해하다가 성불한다는 내용인데, 현대 퇴마물을 보는 듯한 묘사와 전개가 압권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령의 핏자국을 지우기 위해 최첨단 세제를 동원하고, 유령의 쇠사슬 소리가 시끄러워서 윤활유를 권해주는 등의 깨알 같은 디테일이 정말 최고였어요. 마지막 성불에 이르는 과정과 완벽한 해피엔딩 결말까지, 뭐 하나 단점을 찾아보기 힘든 좋은 작품이었어요.
그래서 별점은 3점. 앞부분의 교훈적 우화들이 기대와 전혀 다르기는 하나 뒤의 두 편, 특히 마지막 작품 한 편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덧: "저만 아는 거인"은 제가 아주 어렸을 적 읽었던 동화 버전이 기억에 생생한데 아직도 출간되고 있더군요! 지나친 종교적 결말은 지금의 제 취향은 아니나 반가운 마음에 같이 포스팅합니다.
![]() | 저만 알던 거인 - ![]() 오스카 와일드 지음, 이미림 옮김/분도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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