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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7

31번지 뉴 여인숙의 수수께끼 - 리처드 오스틴 프리먼 / 민웅기 : 별점 2점

31번지 뉴 여인숙의 수수께끼 - 4점
리처드 오스틴 프리먼 지음, 민웅기 옮김/바른번역(왓북)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용 의사로 일하던 저비스는 어딘지 알 수 없는 장소로 왕진을 나가서 모르핀 중독으로 보이던 환자 그레이브스를 치료했다. 이후 저비스는 감금되다시피 이동했던 상황, 심상치 않았던 환자의 상태 때문에 사건을 친구 손다이크와 상의했다. 손다이크는 그 집이 어딘지 알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두 번째 왕진에서 저비스는 그레이브스가 거의 사망 직전이라는걸 알고나서 왕진 후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당장은 사건성이 없다며 묻혀버리고 말았다.

이후 저비스는 고용 의사를 그만두고 손다이크 박사와 일하기 시작했는데, 첫 번째 수임한 사건은 기묘한 유언장 사건이었다. 의뢰인은 사망한 제프리 할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받게 된 스티븐이었다. 그는 별 것 아닌 삼촌의 유언장 수정으로 거액을 상속받지 못할 처지에 놓여 있었다. 사건을 조사한 손다이크 박사는 이 사건이 저비스가 접했던 기묘한 환자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걸 밝혀내는데...

손다이크 박사 시리즈 장편입니다. 저자 사후 70년이 지나 저작권이 풀려서 번역된 것 같네요. 저작권 만료된 작품이 주로 발매되는 전자책 전문 출판사 '왓북'에서 출간되었습니다. 당연히 종이책은 없습니다.

읽기 전 기대가 컸습니다. 제가 사랑해 마지 않는 고전 본격물이기 때문입니다. 셜록 홈즈의 라이벌 중 한명이었던 손다이크 박사의 장편으로, 이전에 읽었던 손다이크 박사 장편은 모두 괜찮았기도 했고요. 그러나 기대에는 살짝 미치지 못했습니다.

물론 장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손다이크 박사 시리즈다운 부분은 전부 장점입니다. 첫 번째는 현장을 방문하여 온갖 쓰레기를 샅샅이 뒤져 단서를 모으는 등 당시의 과학 수사가 치밀하게 펼쳐진다는 점입니다. 특히 초반에 저비스가 철저하게 마차에 가두어진 채로 미지의 장소로 왕진나갈 때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는 경로 추적도를 만드는 장면이 일품입니다. 단순한 나무판에 나침반을 부착하고 수첩을 곁들인 정도지만, 그래도 방향이 바뀔 때의 시간 및 상세한 정보를 수첩에 자세하게 기록하는 방법은 꽤나 유용해 보였습니다. 서명을 분석하기 위해 사진 확대를 이용하는 장면은 확실히 시대를 앞서간 느낌이고요. 

두 번째는 본격 추리물로서 충실하다는 점입니다. 독자는 화자 저비스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쫓아갑니다. 그래서 탐정과 독자에게 모든 정보와 단서는 공정하게 제공됩니다. 디테일도 상당히 좋아요. 바이스 씨는 분명히 독일인이라고 했는데 집에 커피가 없고 차만 있었다는게 대표적입니다. 독일인은 보통 커피를 마시지 차를 마시지 않는다고 하네요.
물론 몇 가지 단서들(기묘하게 생긴 갈대, 깨진 유리 조각 등) 은 직접 눈으로 보지 않으면 그 정체를 알기 힘들다는 문제는 있지만, 이 정도 단서는 없어도 진상에 이르는데 큰 문제는 없습니다. 

세 번째는 당연히 손다이크 박사의 팬으로 즐길거리가 많다는 점이죠. 저비스가 의사를 떼려 치우고 손다이크 박사의 조수로 일하게 된 첫 번째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손다이크 박사가 법의학자가 아니라 변호사로 소개되는게 특이했습니다.

그러나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크고 많습니다. 가장 큰 단점은 진상이 너무 알아차리기 쉬운데, 저비스만 알아차리지 못하는 점입니다. 당대 독자 수준이 저비스 수준이라 이렇게 썼겠지만 지금 읽기는 너무너무 답답했습니다.
이미 독자는 초반부, 저비스가 왕진나가 진찰했던 환자 그레이브스가 시체로 발견된 제프리라는걸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아편에 취해 결국 약물 과용으로 사망했다는 사인, 그리고 한 쪽 눈에 두드러진 실명에 가까운 증상 등의 단서 때문이지요. 과연 누가 그를 감금하여 살해했을까?라는 질문의 답은 당연히 유일하게 이득을 보는 피해자의 형 존이 유력하고요. 그리고 존이 제프리와 꽤 닮았으며 배우로 활동했다는 이력을 듣고나면 그가 제프리로 변장해서 뉴 여인숙에 거주했다는걸 모르면 바보입니다. 설형문자 액자가 뒤집혀 있었다는 증거까지 있는데 말이죠. 그러나 저비스는 이런 점을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우왕좌왕할 뿐입니다. 

저비스라는 인물의 설정에도 문제가 있어요. 초반부 저비스는 분명히 능력이 있는 걸로 묘사됩니다. 홀로 그레이브스에게 왕진갈 때가 좋은 예입니다. 그레이브스 코의 안경 자국을 보고 이건 얼마 전 까지 안경을 쓰고 있다는걸 나타내므로 오랜 기간 혼수상태였다는 바이스 씨의 말은 사실이 아니라는걸 추리해 내거든요. 그러나 두 번째 왕진부터 바보가 되어버립니다. 의식을 찾은 피해자는 저비스가 계속 "그레이브스 씨"라고 말을 걸 때마다 당황해합니다. 누가 봐도 자기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런걸 계속 놓칩니다. 손다이크 박사의 표현을 빌겠습니다. "저비스, 자네는 정말 구제불능이군". 단지 바보일 뿐 아니라 제프리 죽음에 분명한 책임이 있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누가 봐도 위험한 상황이고 범죄의 가능성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그를 죽게 내버려둔 셈이거든요. 손다이크가 악당들의 위치를 알아낼 방법까지 알려줬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핑계는 단지 바쁘다는 것 뿐이고요.
이래서야 아무리봐도 추리 소설의 사이드 킥으로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저비스를 자신의 파트너로 불러온 손다이크도 언젠가는 크게 후회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에요.

추리에 있어서도 헛점이 눈에 뜨입니다. 바이스 박사가 은신처를 떠나면서 편지가 올까 두려워 열쇠를 가지고 자주 왕래했다는 설정이 대표적입니다. 곧바로 다음 세입자가 입주해버리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던걸까요?
변장용 안경에 반드시 돗수가 있어야 한다는 추리는 현 시점에서 보면 그닥 일리있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안경용도 아니고, 회중 시계용도 아닌 유리의 정체가 범인을 밝혀내는데 핵심 역할을 한다는 점도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작위적인 우연, 불필요한 장치도 지나치게 많습니다. 저비스의 왕진이 사건과 겹치는 부분이 대표적입니다. 저비스가 그레이브스 씨라고 불리운 제프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사건이 어떻게 되었을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부분을 덜어내고 추리를 펼치는게 더 완성도는 높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바이스 씨의 부인이 사시였다던가, 바이스 씨와 마부는 동일인물이었다는 등의 장치는 불필요했고요.

마지막으로 사건이 밝혀지는 계기가 된 다시 쓴 유언장의 문제가 무엇인지 잘 확인이 되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원래 존은 250 파운드만 받도록 되어 있었지만, 바뀐 유언장에 의해 '잔여 재산 수여자' 가 되어서 죽은 고모의 유산 3만파운드를 받는다는게 이해가 되지 않더라고요. 모든 유산의 수령인은 조카 스티븐인데, 왜 고모의 유산이 잔여 재산이 되어 존에게 넘어가는지 알 수가 없었던 탓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너무 쉬운 내용이라 이렇게까지 길 필요가 없었고, 특히 저비스의 왕진 부분은 빼는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손다이크 박사의 팬이시라면 모를까, 구태여 구해 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05/01/14

노래하는 백골 - 오스틴 프리맨 / 김종휘 : 별점 2.5점

노래하는 백골 - 6점 오스틴 프리맨 지음, 김종휘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과학수사"의 원조, CSI 수사대의 할아버지뻘 되는 존 손다이크 박사의 단편집으로 총 8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장점이라면 무엇보다도 추리소설 초창기인 1900년대 발표된 작품으로서는 굉장히 획기적이고 색다른 시도를 보인 작품들 (첫 두편만이지만)이라는 점입니다. 이 점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추리소설 역사에 이름을 남길 작품집이라 생각되네요. 프리맨 평소의 지론이었던 "독자는 범인이 누구냐보다는 수사 과정에 더 흥미를 느낀다"를 너무나 잘 구현했달까요?

그러나 손다이크 박사의 과학적인 증거 수집에 의한 범인 색출에 중점을 두고 있고 (ex : 1. 사건의 진행 과정 서술 (범인의 범행 및 간단한 증거인멸 작업 등) >> 2. 발견된 증거를 토대로 한 손다이크 박사의 조사 >> 3. 현장검증을 통한 범인 확정 / 검거)범인의 트릭이나 소설적 재미는 적어서 처음 2편의 단편은 추리적인 맛이 많이 부족하더군요. 아무런 트릭도 없고 복선이나 반전도 없이 단지 수사과정 자체만 보여주는 이야기 구성 역시 지루했고요.

처음 2편의 반응이 별로였었는지 이후 작품들은 위의 프리맨의 명제대로 서술된것이 아니라 전형적인 단편 추리물의 원칙에 충실한 작품들입니다. 때문에 약간 논지가 흐려지기는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보다 재미있게 읽을 수는 있었어요. 물론 추리적인 측면에서도 우연과 특정 상황에 기댄 것 같은 작품들이 많은 것은 분명 약점이지만요.
그래도 전체적으로 과학적 추리라는 뼈대는 계속 잘 살려 나가고 있으며, 동시대 라이벌들은 주로 "안락의자"형이지만 손다이크 박사는 어디까지나 증거 위주로 공정하게 게임을 진행한다는 점에서 다른 유명 단편집들과 차별화 되는 요소가 분명 있긴 합니다. 확실히 추리계에 한 획을 그을만한 작품들이에요. 개인적으로 기대에 못 미치는 부분도 있으나 시간이 너무 오랜 탓이지 작품의 흠결은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아쉬운 점은 동시대 라이벌 탐정들과 비교해 보면 손다이크 박사의 개인적 매력이 너무 드러나지 않는, 개성적이지 못한 평면적인 캐릭터로 그려진 점입니다. 손다이크 박사보다 오히려 범인들에게 촛점을 맞춘 전개 방식이나 전체적으로 건조한 묘사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간적이고 뭔가 평범한, 진솔한 묘사보다는 수사 방식과 해결에 너무 작가가 집중한 것 같습니다. 추리적으로는 마땅한 방법이겠지만 독자를 위해서, 그리고 극 중 탐정을 위해서라면 좀 더 따뜻한 묘사를 해 주어도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드네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재미를 떠나서 추리소설 역사에 남을만한 작품임에는 분명하기에 추리 애호가분들께서는 꼭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작품별 간략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오스카 브러트스키 사건 :
가장 잘 알려진 작품 중 하나로 다이아몬드 상인 오스카 브러트스키의 살인사건을 밝혀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우발적이고도 우연한 상황에서 자살이나 사고로 보이게끔 위장한 사건을 파헤치는 것이 핵심으로 범인과 범행과정을 먼저 보여주는 도서 추리적인 성격에 손다이크 박사의 과학 수사를 결합한 독특한 작풍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손다이크 시리즈의 핵심 특징을 모두 갖춘 기념비적인 작품이죠.
그러나... 위에서 언급했던 모든 단점들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기도 합니다. 즉, 재미는 없다는 뜻이죠.

2. 노래하는 백골 :
역시 대표작중 하나.
사고로도 보일 수 있는 한 등대지기의 죽음을 시체 (백골)의 상처에 집중하고 현장 검증을 통해 진상을 알아내는 손다이크의 활약을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재미면에서는 많이 떨어지는, 너무 설정과 과정에 집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작품입니다.

3. 계획된 살인사건 :
탈옥수 출신의 성공한 사업가가 자신의 과거를 알고 협박하는 전 간수를 죽이기 위한 치밀한 노력이 빛나는 괜찮은 단편.
손다이크의 활약보다는 범인 펜베리의 살인을 위한 계획과 그 과정이 더 길고 재미나게 그려진 이색적인 작품으로 추리적으로나, 과학 수사 측면에서나 상당히 읽을만한 작품입니다.

4. 전과자 :
절도 현장에서 자신의 지문이 발견된 것 때문에 범인으로 몰린 한 전과자가 손다이크에게 결백을 호소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단편. 특징이라면 당시 지문에 대한 인식을 잘 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5. 파란 스팽글 :
굉장히 독특한 작품. 우연에 기댄 것 같은 사건 자체는 조금 불만이지만 이른바 "사고"를 밝혀내는 손다이크의 활약이 드라마틱하게 보여지는 수작입니다. 재미있었어요.

6. 어느 퇴락한 신사의 로맨스 :
손다이크 박사보다 범인의 행동과 생각에 촛점을 맞춘 소품.
유일한 추리적 장치인 "범인의 유실물인 코트에 묻은 먼지"를 가지고 범인의 거주지를 알아낸다는 내용은 좀 억지스럽더군요. 당시 도시가 좁아서 거주지를 특정할 수 있었을 지는 모르겠지만요...

7. 모아브어 암호 :
뭔가 있을것 같다가 좀 허무하게 풀리는 단편.
제목 그대로 암호트릭은 아닙니다. "복잡하게 보이는 암호보다 그 종이 자체"에 집중한 트릭이죠.
트릭 자체는 꽤 매력적이지만 지나치게 산만한 느낌을 주어서 약간 아쉬웠어요.

8. 버너비 사건 :
상당한 수작으로 독살을 위한 색다른 방법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예정된 피해자의 특이한 체질이 전제조건이라는 약점이 있기는 하나 잘 짜여진 드라마와 반전으로 충분히 상쇄하고 있는 멋진 작품입니다.

개인적인 베스트 3편을 뽑는다면 "계획된 살인사건", "파란 스팽글" 그리고 "버너비 사건" 입니다. 베스트 오브 베스트는 "버너비 사건".

2011/03/06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 - 리처드 오스틴 프리먼 / 원은주 : 별점 3.5점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 - 8점
리처드 오스틴 프리먼 지음, 원은주 옮김/시공사

귀금속 거래업자인 존 혼비는 자신이 금고에 넣어둔 다이아몬드 원석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증거는 금고 바닥 메모지에 선명한 피 묻은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 수사 결과, 그 지문의 임자가 혼비 씨의 조카 루벤의 것으로 밝혀져 그는 곧바로 경찰에 체포되었다. 손다이크 박사는 사건 의뢰를 받은 뒤 루벤의 무죄를 확신하고 친구 저비스, 충직한 하인이자 기술자 풀턴과 함께 독자적인 과학 수사 기법을 활용하여 그를 돕는데...

1907년에 출간된 법의학의 선구자 손다이크 박사 시리즈 첫 작품. 국내에는 동서에서 중단편집 "노래하는 백골"이 출간되어 있고, 국일미디어의 "암호 미스터리 걸작선"에 단편 한 편이 수록되어 있는 정도로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캐릭터인데 이렇게 소개되니 무척 반갑습니다.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지문'에 대해 깊게 탐구하고 있으며, 범인이 누구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단지 루벤 혼비의 누명을 벗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게 특징입니다. 즉, '트릭' 자체에만 깊이 파고들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는 손다이크 박사 시리즈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저자인 오스틴 프리먼의 지론이 "독자는 범인이 누구냐보다는 수사 과정에 더 흥미를 느낀다"였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무려 100년도 전에 나온 작품이니 만큼 대단한 추리가 펼쳐지지는 않습니다. 핵심 트릭 자체가 많이 낡은 발상이니까요. 또, 낡은 방식의 뻔한 전개 덕분에 독자는 범인이 누군지 쉽게 짐작하게 된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아울러 화자인 저비스 박사의 애정 행각이 작품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도 전통적인 추리 애호가에게는 와닿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무척 재미있었지만요..)

하지만 범인이 쉽게 드러나고 트릭이 별 볼 일 없다고 해서 이 작품이 추리 소설적인 가치를 잃는 것은 아닙니다. 현대인들도 잘 모르는 '지문'에 대한 속성을 이미 이 시기에 작품으로 쓸 만큼 (그것도 재미있게!) 깊게 파고들었다는 점만으로도 높은 점수를 줄 만하거든요. 특히 법의학과 과학수사에 기초하여 트릭을 파헤친 손다이크 박사가 마지막에 벌이는 법정에서의 반전쇼는 여타의 법정 추리물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흥미진진했습니다.

게다가 중간에 벌어지는 손다이크 박사 암살 음모에 대한 디테일 역시 대단합니다. 기묘한 총알에 대한 설명, 불시에 날아온 소포의 포장만 보고도 범죄를 예감하는 추리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펼쳐지는데, 그 아이디어가 100년 전 작품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수준이 높기 때문입니다. 중반에 잠깐 등장하는 역장에 대한 추리 역시 당대 셜록 홈즈의 라이벌다운 풍모가 느껴졌고요.

앞서 말한 일부 단점들, 지금 읽기에는 낡은 전개는 감점 요소지만 그래도 이 작품의 장점을 훼손할 정도는 아니며 출간 자체만으로도 기쁜 일이기에 별점은 3.5점입니다. 고전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절대 놓치지 마시길.

덧붙여 아주 예쁜 디자인과 판형이라는 점과 함께 충실한 번역 역시 마음에 들었습니다. 동서판은 특유의 일본어 중역 덕분인지 손다이크 박사의 매력을 느끼기는 어려웠는데, 이 작품에서는 과묵하지만 냉철한 지적인 미남자(!) (여기서 제일 놀랐습니다. 왜인지 할아버지 이미지였거든요)로서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니까요. 과거 불만이었던 "노래하는 백골"도 제대로 된 완역본으로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2013/12/06

오시리스의 눈 - 리처드 오스틴 프리먼 / 이경아 : 별점 3점

오시리스의 눈 - 6점 리처드 오스틴 프리먼 지음, 이경아 옮김/엘릭시르
하기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백만장자이자 이집트학의 권위자인 존 벨링엄이 친척집에 방문한 뒤, 집 밖으로 나오지 않은 채 실종되었다. 근처에서 실종 당일 몸에 지니고 있었던 스카라베 장식만이 발견되었을 뿐이었다.

2년 후, 의사 버클리는 왕진 중에 존의 동생 고드프리를 진료하게 된 인연으로 그의 딸 루스와 서로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 존의 실종과 그의 기이한 유언으로 인해 궁핍해진 고드프리와 루스를 돕기 위해, 그리고 불거진 유산 문제로 버클리는 은사인 손다이크 박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뒤이어 늪지대에서 존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되는데...

오스틴 프리먼의 명탐정 손다이크 박사가 활약하는 장편. 1911년에 발표된 작품입니다. 이 책까지 나오다니 정말 세상 많이 좋아졌네요.

국내 출간된 손다이크 박사 시리즈 중에서도 손꼽힐만한 작품입니다(그래봤자 서너권이지만...). 대표작이라는 명성에 어울리네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재미있거든요. 사건은 딱 한 개, 존 벨링엄 실종 사건 뿐인데 복잡한 유언장을 엮어서 흥미롭게 전개하고 있으며, 추리적으로도 두 개의 트릭이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어서 마지막 순간까지 독자를 사로잡습니다. 트릭 두 개 모두 지금은 널리 알려진 단순한 것이지만 사건에 딱 맞게 적절하게 쓰여 감탄을 자아내고요. 단순해서 설득력도 높습니다. 특히, 제목에서부터 중요하게 언급하는, 고대 이집트 유물을 이용한 기상천외한 사체 은닉 트릭이 볼거리입니다. 지금은 흔한 수법이지만 작품 발표 시기를 고려하면 충분히 원조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제공되는 정보를 바탕으로 추리하여 트릭을 파헤쳐 진상을 밝혀내는, 고전 "정통 본격물"다운 미덕도 장점입니다. 추리의 과정이 합리적이고 설득력이 넘치는 것은 당연하고요. 과학 수사로 유명한 손다이크답게, 시대를 앞서간 증거 수집 방법도 인상적이었습니다. X선을 이용하여 미라의 내부를 촬영하는 장면이 묘사될 정도니까요.

아울러 중간중간에 버클리와 루스의 알콩달콩한 연애이야기가 적절하게 삽입되는 식의 완급조절도 아주 탁월합니다. 이러한 연애이야기는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과도 비슷해요. "붉은.."에서 화자였던 저비스가 손다이크 박사의 조수로 격상(?)되었을 뿐, 그의 후배인 버클리가 동일한 역할로 등장하여 읽는 사람을 흐뭇하게 만드는 애정 행각을 큰 비중으로 펼친다는 점에서요. 저는 아주 즐겁게 읽었습니다.

악역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도덕적인 면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 똑똑한 소시오패스 캐릭터인데 출간 시대를 생각해보면 상당히 독특하게 잘 그려낸 것 같네요.

악역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도덕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똑똑한 소시오패스 캐릭터로, 출간 시대를 고려하면 상당히 독특하게 잘 그려졌습니다.

그러나 문제도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범인의 동기가 설득력있게 그려지지 않은 점입니다. 유언장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이 유언장의 맹점을 이용해 거금을 확보할 생각으로 잔꾀를 부렸다는 설정인데, 그 이유와 방법이 설명되지 않거든요. 그의 말대로 사건의 발단이 애시당초 완전한 우연이 아니었다면, 과연 이 유언장의 맹점을 활용해 무엇을 할 수 있었을지 전혀 모르겠어요. 작중 손다이크 등의 입을 빌어 설명되듯 "그의 동생에게 유산을 남겨주기 위한" 목적의 유언장인데 말이죠. 벨링엄을 살해하고 시체를 다른 곳에 숨길 생각이었을까요?

또 이 동기를 독자는 마지막 순간에서나 알 수 있다는 점도 정통 본격물로는 약간 아쉬운 점이었습니다. 동기가 전혀 드러나지 않으니, 독자가 범인을 추리하기는 어려울 수 밖에 없으니까요. 손다이크 박사의 추리대로 범인은 그 사람일 수 밖에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혐의를 둘만한 설정이 있더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

아울러 이집트 미라 안에 시체를 넣는다는 생각도 기발하지만, 그다지 효과적이었을것이라 생각되지 않습니다. 작품 내에서도 엄청나게 복잡한 과정으로 묘사되는데 그러한 작업을 할 시간과 장소가 있었다면, 다른 식으로 처리하는게 훨씬 빠르고 효과적이었겠죠. 예를 들어 염산같은걸로 녹인다는 식으로요.

그래도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쓰여진 시대를 감안한다면, 그리고 재미를 생각한다면 별점 3점은 충분하죠. 저와 같은 고전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절대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덧붙이자면 책도 예쁘게 잘 나왔지만 뒤의 해설 역시 꽤 풍성해서 좋네요. 무엇보다도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시리즈 연재로 유명한 유영규 기자가 쓴 글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2020/10/04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1 : 살인자 외 - 어니스트 헤밍웨이 외 / 신예용 : 별점 2점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1 : 살인자 외 - 4점
어니스트 헤밍웨이 외 지음, 신예용 옮김, 박광규 기획.해설/코너스톤

1890년대 후반에서부터 1940년대 까지, 추리소설의 여명기와 황금기까지의 시기에 발표된 여러가지 단편들을 모아 놓은 앤솔러지입니다. 이런 류의 앤솔러지는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을 비롯하여 그동안 많이 접해보았지만, 국내에 비교적 소개되지 않았던 유명 시리즈 작품들 위주라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절반 정도는 '퀸의 정원 ("탐정, 범죄, 미스터리의 간략한 역사")'을 통해 선정된 작품들이기도 하고요. 최소한 역사적 가치는 확실히 있다는 의미지요.

그러나 역사적 가치 외의 다른 가치를 느끼기는 함들었습니다. 너무 오래 전 작품인 탓입니다. 여러모로 설득력도 떨어졌고요. 전체 평균한 별점은 2점입니다. 

하지만 저와 같은 고전 본격 추리 애호가에게는 선물과도 같은 책이라는건 분명합니다. 초창기 추리 소설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쯤 읽어보셔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저같은 사람이 많이 없는지 재정가로 가격이 3000원 수준으로 떨어져서 가격도 착하거든요.

수록작 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스터들리 농장의 공포" 

의사인 나에게 스터들리 부인이 찾아와 자기 남편의 병을 치료해줄 것을 부탁했다. 나는 스터들리 농장으로 찾아가 준남작과 만났는데, 준남작은 자신이 밤마다 유령을 보는 탓에 공포로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준남작과 방을 바꾸어 유령의 정체를 밝혀내려 하는데...

코난 도일이 "마지막 문제"를 발표하며 '스트랜드 매거진'에 셜록 홈즈 단편 연재를 중단했을 때, '스트랜드 매거진'이 구멍을 메꾸고자 투입한게 바로 이 작품이 포함된 '어느 의사의 일기 시리즈' 였다고 합니다. 제목 그대로 '어느 의사'인 핼리팩스 박사가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시리즈로 '퀸의 정원' 에서는 최초의 '의학 미스터리' 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퀸의 정원'에서 매긴 가치는 '역사적 중요성'과 '희소 가치'고요. 아쉽게도 '퀄리티' 점수는 받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작품 발표 계기, 그리고 연재 시점을 보면 정통 본격물의 시조 중 하나로 보아도 무방하겠지만, 추리 소설의 여명기 작품이기 때문인지 완성도가 영 기대에 미치지 못한 탓입니다. 

스터들리 준남작과 부인의 방은 옷장의 비밀 문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폐결핵으로 죽어가던 부인이 저승길 동행을 위해 준남작에게 밤마다 유령쇼를 펼쳤다는게 진상인데, '나' (핼리팩스 박사)가 침실을 바꾸고 유령을 목격한 뒤, 유령이 나타난 옷장을 수색한 것 외에는 별다른 추리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셜록 홈즈가 변장만 하고 추리를 펼치지 않는다면, 이를 정통 본격 추리물로 보기는 어렵잖아요?

스터들리 부인이 '나'를 부르지 않았다면 계획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았다는 점에서 이야기 전개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부인은 '나'가 준남작에게 두뇌 질환으로 환영을 보는 걸로 이야기해줄걸 기대했다는데, 과학을 신봉하는 의사가 유령 이야기를 곧이 곧대로 믿을거라 생각한건 영 납득이 가지 않네요. 아무리 시대를 감안한다고 해도 말이지요. 아울러 '의학 미스터리'라고 볼 수 있는 부분도 전무해서 아쉬웠습니다.

본격 추리 소설 초창기 단편 중 한 편을 만나 보았다는 기쁨, 그리고 오스틴 프리먼손다이크 박사 이전에 '과학을 신봉하는' 의사 탐정이 있었다는 사료적 가치, 마지막으로 스터들리 부인이 유령을 만들어낸 장치가 배터리에 연결된 전등이라는 상당한 하이테크 제품이라는 점 등 눈길을 끄는 요소가 없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금고실의 다이아몬드" 

헤드와 친구 두프라이어는 둘의 세계적인 악녀 마담 콜루치가 다이아몬드 상인 칼튼의 파티에 초대된 걸 알고 파티 초대를 받아들였다. 마담 콜루치는 칼튼 부인의 전남편이 살아있다며 그녀를 협박하는 것과 동시에, 칼튼 부인을 시켜 빼돌린 로체빌 다이아몬드를 칼튼의 철벽 그곳에서 훔쳐낼 계획이었다....

L.T. 미드와 로버트 유스터스가 합작하여 1890년대 후반 발표되었던 연작 단편집 "일곱왕 연맹" 수록작이라고 합니다. 희대의 악녀로 비밀 범죄 조직 '일곱 왕 연맹'의 총수인 마담 콜루치와 과학자이자 탐정 노먼 헤드의 대결을 그리고 있는 시리즈라고 하네요. '퀸의 정원'에서 매긴 가치는 '역사적 중요성'과 '희소 가치'고요.

역시 '퀄리티' 점수는 받지 못했는데, 이해가 갑니다. 특히 이 단편은 그 수준이 아주 미흡해요. 내용부터 딱히 건질게 없거든요. 헤드와 마담 콜루치와의 대결이 등장하지 않는 탓이 가장 큽니다. 헤드의 활약이라고는 고작해야 칼튼 부인을 설득해서 전 남편에 대한 사실을 고백하라고 이야기하는게 전부거든요. 그나마도 실패하고요. 게다가 다이아몬드도 놓쳐버리기 때문에 이래서야 명탐정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합니다.

못하는게 없는 희대의 악녀인 마담 콜루치 캐릭터는 분명 시대를 앞서갔다고 생각됩니다. 또 열쇠를 돌리면 비상벨이 울리는데, 울리지 않은 이유에 대한 트릭도 괜찮았습니다. 칼튼의 열쇠를 조작해서 열쇠의 머리 부분만 헛돌게 만든 거지요. 즉, 열쇠를 돌려도 잠기지 않은거고, 당연히 다시 열어도 벨이 울리지 않은 것입니다. 열쇠를 돌릴 때의 저항감, 소리, 마지막으로 금고가 정말 잠겼는지 확인을 왜 안했는지 등 딴지를 걸자면 끝도 없지만, 열쇠 하나의 조작으로 모든걸 일이루어 낸, 대담한 발상의 트릭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연작 단편을 이어서 다 읽는다면 모를까, 이 작품 하나만 읽고 점수를 주기에는 부족한 점이 더욱 많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탐정 스페이드" 

맥스 블리스가 협박 받고 있다는 전화를 스페이드에게 남긴 뒤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샘 스페이드는 아는 형사 던디 등이 수사하는 와중에 끼어들어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낸다.

대실 해밋이 쓴 샘 스페이드 단편입니다. 묵직하고 거친 사나이 매력을 담뿍 풍기는 이야기이며, 피해자의 딸이 몰래 만나던 불륜남, 광신도이면서 못생긴 가정부 에피 부인이 묘하게 엮여서 사건이 복잡해 지는 전개는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소설과 다를게 없는데 정통 추리물이기도 하다는게 놀랍습니다. 유력한 용의자인 피해자의 동생 시어도어가 알리바이를 조작하고, 증거를 인멸하여 살인을 저지른 것이며, 시체에 놓여져 있던 '새 넥타이' 가 중요한 단서가 된다는 점 등은 본격 추리물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거든요. 피해자는 옷을 벗던 중 살해된 것 처럼 보이지만, 그럴 경우 매고 있던 넥타이가 아니라 새 넥타이가 놓여져 있는건 이상하다는 이유입니다. 이를 발견한 스페이드의 눈썰미도 대단하지요. 

샘 스페이드는 피해자로부터 전화를 4시 5분전 쯤 받았는데, 시어도어는 4시에 법정에서 결혼을 했다는 철벽의 알리바이에 대한 트릭도 간단하고 깔끔합니다. 시어도어는 3시 30분 쯤 피해자를 죽이고 법원으로 가서, 그 곳에 있는 전화로 자신이 피해자인 척 하고 전화를 걸은 겁니다.

물론 스페이드가 한 추리의 증거가 범인 시어도어 손에 난 상처 뿐이라는건 빈약합니다. 상처가 났다고 범인이라는 증거는 될 수 없으니까요. 가정부 에피 부인도 손에 상처가 있었다는 점에서, 그렇게 특이한 상처도 아니고요. 손의 상처보다는, 법원에서 전화를 건 기록을 찾아서 시간을 대입해 보는 식으로 풀어갔더라면 더 깔끔했을 겁니다. 아울러 피해자가 시어도어에게 협박?의 댓가로 지불한 돈은 2만 5천불일텐데 2'억'으로 기입된 오타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하드보일드와 본격 추리와의 결합에 성공한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퀸의 정원'에 소개된 "샘 스페이드의 모험" 수록작으로 이 책은 역사적 중요성, 희소성은 물론 퀄리티까지 인정받고 있네요. 당연합니다.

"의사와 그의 아내 그리고 시계"

80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의 여성 탐정 바이올렛 스트레인지 시리즈로 "Mystr 럭키팩 8 - 탐정 소설 : Mystr 컬렉션" 수록작과 동일합니다. 

당시에는 혹평했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꽤 괜찮은 점도 많았습니다. 자브라스키 박사가 순간적인 충동으로 살인을 저지른 과정이 훨씬 설득력있게 다가온 덕분입니다. 흥분한 자브라스키 박사가 '층을 착각해서' 살인을 저질렀다는 우연도 그렇게 어색하지 않았고요. 번역의 차이 때문이었을지 궁금하네요. 

물론 우연에 의한 작위적인 범죄라는 한계를 벗어나진 못했고, 전체적으로 지나치게 오래된 작품이라는 티는 물씬 납니다. 그래도 예전처럼 별점 1.5점을 줄 작품은 아니에요. 다시 매긴 별점은 2.5점입니다.

"두 번째 총알" 

여성 탐정 바이올렛 스트레인지 시리즈 두 번째 작품으로 '사장'에게 고용되어 돈 하나만 바라보고 일하는 사립 탐정 바이올렛과, 부유하고 젊은 사교계의 꽃 바이올렛이라는 설정이 재미나게 묘사된 작품입니다.

맨해튼의 한 아파트에서 해먼드 씨가 자신의 아기와 함께 죽은 시체로 발견됩니다. 그는 총을 들고 있었고 가슴에 총을 맞았으며, 아기는 죽은 해먼드 씨의 손에 눌려 질식사했지요. 해먼드 씨 가슴의 총알은 그의 총에서 발사된 것으로 밝혀집니다. 그러나 근접 거리에서 손 총격은 아니었고, 해먼드 부인인 열린 창문을 통해 누군가 해먼드 씨를 쏘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게 사실이라면, 해먼드 씨 몸 속 총알과 함께 해먼드 씨가 쏜 총알도 발견되었어야 했습니다. 바이올렛이 이 두 번째 총알이 어디있는지 추리해내는게 주요 내용입니다.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문제가 많습니다. 해먼드 씨 몸속 총알은 해먼드 씨의 총에서 발사된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법과학의 수준은 많이 부족했겠지만, 아무리 그렇다 한들 앞서 거의 단언하다시피한 정황을 손바닥 뒤집듯 쉽게 뒤집는다는 점에서 제대로 된 본격 추리물로는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두 번째 총알을 아기가 삼켰고, 그것 때문에 질식한 것이었다는 진상은 괜찮았습니다. 해먼드 씨가 아니라 총알이 후두를 막은게 질식사의 원인이 된 거지요. 어디론가 사라진 총알의 행방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 손 꼽을만한 이야기라 생각되네요. 이 진상 덕분에 별점은 1.5점입니다.

참고로, '퀸의 정원'에서는 A.K 그린 (애나 캐서린 그린)의 "미스터리의 걸작들" 이라는 단편집을 '역사적 중요성'과 '희소성'에만 가치를 부여하고 소개하고 있는데, 바이올렛 스트레인지 시리즈는 아닌 듯 하네요. 가치가 크게 다를거라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급행열차 안의 수수께끼" 

급행열차 안 객실에서 르웰린 부부가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권총이 사라진 탓에 자살은 아니었는데, 객실 문은 1인치 정도 열린 채 쐐기로 고정되어 도저히 열 수 없었다. 남아 있던 승무원과 승객의 신분도 모두 확실했으며, 그들이 범인일리 없었다. 그렇다면 범인은 살인을 저지르고 열차를 떠났을 텐데, 객차의 앞 쪽 침대칸은 승객과 승무원 모두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다고 증언했으며, 뒷 쪽 3등칸에는 아이가 울어 달래러 나온 부부가 있었다. 객실 문 옆 승객이 바라보고 있었다. 범인은 열차를 어떻게 떠났을까?

고전 본격물의 걸작 "통"과 '프렌치 경감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 F.W. 크로포츠의 단편입니다. 

굉장히 복잡한 장치 트릭이 사용되고 있는데, 별로 와 닿지 않습니다. 절반 가까운 내용을 F.W. 크로포츠 본인이 오랜 철도업 종사자라 쓸 수 있었을 상세한 기차 구조 설명에 할애하고 있지만, 열차의 구조와 얼마나 불가능한 범행이었는지를 이해하기는 어려웠던 탓입니다. 이런 기차 여행이 흔했던 발표 당시라면 모를까, 기차를 별로 타지도 않는 지금 독자들이 이해하기는 더욱이 역부족이었어요. 차라리 만화라던가, 최소한 삽화 등으로 트릭을 설명해 주어야 했습니다.

게다가 범행이 밝혀지는건 추리의 결과가 아니라 범인의 고백이라는 점에서도 추리물로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범인이 친구 르웰린에게 연인을 빼앗기자 복수심에 저지른 치정 범죄라 트릭은 알 수 없어도 동기만 확인되면 범인은 충분히 체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경찰은 도대체 뭘 한 건지 잘 모르겠네요.

한마디로 추리물로 보기도 어렵고, 지금 시점에서는 이해조차 하기 어려웠던 작품이기에 별점은 1점입니다. '퀸의 정원'에도 소개되지 않았을 정도니 지금 와서 읽을 가치는 별로 없겠지요. "통"이나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살인자" 

서밋 이라는 도시에 찾아온 맥스와 알은 식당에서 식사를 시킨 뒤, 사장 조지와 요리사, 그리고 손님 닉을 협박하며 그들의 목적을 말해 주었다. 그들은 올레 앤더슨을 죽이기 위해 온 것이었다. 올레 앤더슨은 식당 단골로, 킬러들은 그를 기다리는데...

미국 현대 문학 거장인 헤밍웨이의 작품인데 추리 소설은 아닙니다. 하드보일드 느낌이 나는 드라마거든요. 킬러가 등장해서 식당 관계자들을 협박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살인 이 일어나지는 않으니까요. 그래서 추리 애호가에게 어필할 수 있는 내용은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불운과 죽음을 의인화하여 드라마로 풀어낸 짤막한 꽁트라 생각됩니다. 2인조 킬러는 식당 관계자에게는 급작스러운 소나기와 다를게 없는 불운, 올레 앤더슨에게는 필연적으로 찾아올 죽음과 같은 존재로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닉은 불운과 죽음 모두를 맛 본 뒤, 서밋이라는 도시를 떠날 생각을 하는걸 보면 운명에 순응하지 않는 일종의 이단자인 셈이지요.

짤막하지만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바닥없는 우물" 

전쟁 영웅인 노장 헤이스팅스 경이 고대 아랍 전설이 얽혀있는 오래된 바닥없는 우물 옆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함께 있었던 보일 대위가 유력한 용의자로, 그는 헤이스팅스 부인과 불륜 관계였었다.

브라운 신부 시리즈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어서 놀랐던 체스터튼의 단편입니다. '너무 많이 아는 사나이'라는 단편집에 수록된 연작 단편 중 한 편으로, 시리즈 제목 그대로인 '너무 많이 아는 남자' 혼 피셔가 주인공입니다. 중동 어딘가에 있는 영국 식민지 공무원이지요.

눈여겨 볼 부분이 많았던 작품인데, 그 중에서도 영국 제국 주의를 비판하는 시각, 영국 정부가 국가와 국민이 아니라 자본에 의해 움직이고,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는 시각이 강하게 드러나 있다는게 인상적입니다. 브라운 신부가 아니라 식민지 공무원을 주인공으로 삼아 이야기를 쓴 이유가 명확해 보였어요. 신부님이야 아무래도 용서와 화해를 권했을테니, 이런 류의 독설에는 적합하지 않았을테지요.

추리적으로도 작가의 명성에 값합니다. 누가 보아도 보일 대위가 범인으로 여겨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는게 진상인데, 그 이유와 방법이 설득력있게 설명되기 때문이에요. 특히 헤이스팅스 경이 먼저 보일 대위에게 끝이 보이지 않는 우물가로 산책을 제의했다는게 결정적 단서가 된다는게 좋았어요. 보일이 죽으면 시체를 우물로 던져넣을 생각이었던 거지요. 보일은 범인이 아니기에 시체 앞에서 멍하니 있을 수 밖에 없었고요.
범인이 독을 마신건 순전히 회전식 책꽂이 때문에 찻잔이 뒤바뀌어 일어난 사고라는 점도 재미있었습니다 . 물론 충동적인 범행에 우연에 의해 벌어진 사고라는건 합리적인 본격 추리물로 보기에는 단점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를 설득력있게 포장한 솜씨는 과연 거장의 그것이었어요.
'너무 많이 아는 남자' 시리즈를 더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시카고의 여성 상속인" 

롬니 프링글은 대영 박물관 열람실에서 이상한 남자가 공들여 편지를 쓰는 광경을 본 뒤, 그의 편지 압지를 빼돌렸다. 암호와 같은 압지 문구 해독을 통해 '실링하머'라 자칭하는 남자가 런디 후작을 협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는데...

'손다이크 박사'로 잘 알려진, R.A. 오스틴 프리먼의 롬니 프링글 시리즈 단편입니다. '퀸의 정원' 분류에 따르면 엄청난 희귀본이라고 하네요. 롬니 프링글은 도둑이자 사기꾼인 안티 히어로인데, 이 작품에서는 협박자 실링하머의 돈을 빼돌리는 과정이 차분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링하머가 후작을 협박하는게 모두 이미 발표되었던 신문 기사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게 무슨 범죄가 되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당연히 런디 후작이 형들과 아버지를 살해하고 작위를 물려받았을 줄 알았는데, 단지 그들이 '자살'했다는 진상도 협박거리가 될 걸로 보이지 않았고요.

롬니 프링글의 작전 역시 별다른게 없어서 실망스럽습니다. 그가 실링하머에게서 범죄의 냄새를 맡은건 순전히 우연이었고, 마지막에 경찰을 자칭하여 그를 잡아서 돈 지갑을 빼앗는 것도 여러모로 어설퍼보였거든요. 압지의 글귀 해독도 논리가 뒷받침 되어있는 암호 해독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고요.
경찰을 자칭하고 후작을 찾아가, 협박자에게는 현금을 주는게 낫겠다는 조언을 하는 장면만 조금 그럴듯 했을 뿐입니다. 

'퀸의 정원'에서 '역서적 가치', '희소성'에 '퀄리티' 가치까지 부여받은 3관왕인데, 동의하기 어렵네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2019/09/07

세 가닥의 머리카락 - 구로이와 루이코 외 / 김계자 : 별점 1.5점

세 가닥의 머리카락 - 4점
구로이와 루이코 외 지음, 김계자 옮김/이상미디어

과거 이런 책이나 이런 책을 읽을 정도로 추리 소설의 역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오래전 작품으로 일제 강점기 시절 작품 모음집이라던가, 아니면 일본 작품으로 작가 사후 50년이 지나 저작권이 소멸된 작품 - 주로 페가나 북스로 대표되는 - 들도 여럿 읽어보았고요. 이 책도 추리 소설의 역사를 상징하는 작품들의 모음집입니다.

하지만 역사적인 가치 외의 다른 가치는 거의 없습니다. 표제작인 구로이와 루이코의 "세 가닥의 머리카락" 정도만 어느 정도의 재미와 완성도에 아슬아슬하게 닿을 뿐, 다른 작품들은 한 편의 완성된 추리 소설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시리즈가 계속 출간되고 있던데 이래서야 후속권들은 도무지 읽을 생각이 들지 않네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추리 소설의 역사까지 관심이 있으시다면 모를까, 평범한 추리 소설 애호가시라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가 일부 있는 점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세 가닥의 머리카락"

표제작으로 구로이와 루이코의 작품입니다. 일본 최초의 창작 추리소설이라고 합니다. 신원을 알 수 없는 처참한 시체가 쥐고 있던 머리카락을 단서로 사복 형사 오토모와 다니마다가 범인을 알아낸다는 이야기지요.

두 형사 중 구세대를 대표하는 다니마다는 머리카락이 곱슬머리라는 것, 그리고 피해자의 처참한 상태를 보고 여럿이 그를 죽였으며 옆에 곱슬머리 여자가 있었다고 추리합니다. 이는 여럿이 한 사람을 죽이고 신원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소지품을 빼앗은 곳은 도박장이다! 라는 추리로 이어지고요. 다니마다는 도박장에 있던 곱슬머리 여자는 과거 다른 수사 때 알게 되었던 오콘이라고 단정하고 오콘을 찾아 나섭니다. 누가 봐도 추리의 비약이 심하고 결론이 심히 엉터리라는 점에서 당시 수사가 어땠을지 쉬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 수사를 신봉하는 신세대 오토모는 세 가닥의 머리카락으로 이런 저런 실험을 하여서 그 머리카락은 천연 곱슬이 아니라는 것, 세 가닥 중 한 가닥은 역방향이라는 것, 머리카락은 염색했다는 것 등을 알아냅니다. 그리고 건장한 남자를 죽였다는 점에서 범인은 남자일 것이며, 긴 머리를 곱슬머리 형태가 되게 틀어 묶은 남자라면 '지나인'이 분명하다고 추리합니다. 피해자 머리의 기묘한 상처는 팽이에 찍힌 것으로, 이를 통해 어린 아이를 둔 중년의 염색한 지나인을 조사하여 범인을 알아내게 됩니다.
주어진 몇 안되는 단서 - 머리카락, 피해자의 상태 - 만 가지고 추리하여 결론을 이끌어 낸다는 점에서는 전형적인 귀납법적 고전 트릭물이 떠오릅니다. 머리카락을 가지고 실험하는건 과학 수사의 원조 손다이크 박사를 연상케하고요. 

그런데 재미있는건 결국 다니마다도 오콘을 통해 오토모와 똑같이 범인을 찾아낸다는 겁니다. 오콘이 사건의 동기가 된 범인의 아내이자 피해자의 정부였기 때문입니다.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법! 구세대 다니마다의 건투에 박수를 보냅니다.

하지만 오래 전 작품이라는 티가 물씬 나는건 단점이긴 합니다. 고색창연한 대사가 난무하고 추리 역시 그다지 과학적이지 않고 설득력도 높다고 보기 어렵고요. 아무리 고전이라도 번역을 이렇게 낡아보이게 할 필요가 있었을지는 좀 의문입니다.

그래도 앞서 말씀드렸듯 재미있는 부분이 없지는 않아요. 낡고 고즈넉하지만 왠지 유쾌한 분위기도 괜찮고요. 무엇보다도 한 장르의 시작, 태동을 볼 수 있다는 역사적인 가치가 큽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두 명의 여인"

구로이와 루이코가 윌키 콜린스의 "두 인연", 그리고 휴 콘웨이(본명 프레드릭 존 풀거스)의 "떳떳하지 못한 날들"을 읽은 뒤 "떳떳하지 못한 날들"을 원작과 동일한 내용으로 재 창작한 작품입니다. 본인 스스로 번역물이 아니라고 언급할 정도이니 굉장히 각색이 많이 되었을 걸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내용은 굉장히 간단합니다. 뭔가 멋진 트릭이라도 사용되었다면 이해가 됐을텐데, 이 정도 내용에 감명을 받아 재창작했다는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알맹이가 없어요. 구로이와 루이코가 재창작한건 고색창연한 메이지 시대 문체로 가득찬 낡아빠진 묘사에 불과해 보입니다.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영국에 사는 의사 '다쿠조'(!)가 환자의 딸인 '리파'와 사랑에 빠지지만 리파가 '히라야마'(!) 자작과 결혼한 뒤 시름에 잠겨 은둔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리파'가 악랄한 히라야마에게 농락당한걸 전해듣고 그녀의 도주를 돕다가 히라야마가 살해된걸 보고 해외로 도주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다가 히라야마 살해범으로 누군가 체포되어 재판을 받는걸 알고 자수하기 위해 귀국하죠. 여기서 모든 사건의 진상은 범인의 자백 뿐입니다. 그 외에 이야기에 추리적으로 가치가 있는 부분은 전무해요. 범죄물이라고 보기도 어렵고요. 범인이 누군지 알고 있는 협력자의 심리를 처절하게 다루어 독자에게 공포를 불러 일으키려는 목적이라면 메이지 당시에는 먹혈을지 모르니 지금은 개그 요소같은 묘사 덕분에 전혀 효과가 없습니다.

21세기도 한참 지난 지금 시점에 읽을 이유는 없는 낡아뻐진 고대 유물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유령"

구로이와 루이코의 작품. "두 명의 여인"처럼 기묘한 현지화가 눈에 뜨입니다. 영국의 수도 런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가로메다'라는 마을에 사는 오래된 시골 무인 지쿠부 요시나리의 여동생 오시오가 가로메다의 차남 나쓰오와 결혼을 한 뒤 벌어지는 이야기거든요. 부부는 심지어 결혼 후 '미국'으로 갔다가, 죽은 오시오를 두고 돌아온 나쓰오가 오토시와 재혼하지만 병사한 뒤 유령이 되어 나타난다는 내용입니다.

진상은 나쓰오가 죽은 척 했던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도 "두 명의 여인" 보다는 조금 낫긴 해요. 최소한 의외성은 있고, 죽은 척 했던 이유도 오시오의 오빠 요시나리에게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는 진상도 나름 설득력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 정도로 좋은 작품이라고 부르기는 힘듭니다. 다른 여러가지 장치들, 특히나 오토시가 사고사하고 다시 오시오와 결혼한다는 억지스러운 결말은 지금 읽기에는 한 없이 유치한 탓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검은 고양이", "모르그 가의 살인"

일본풍 문체가 눈에 뜨이기는 하지만 원작에 충실한 번역이라 별도로 언급할 부분은 없습니다.

"탐정 유벨"

빅토르 위고가 영국에 망명했을 때, 나폴레옹에 대항하는 공화파 인사들 사이에 나타난 유벨(Herbert)이 사실은 나폴레옹의 탐정(첩자) 였다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글로 빅토르 위고가 직접 쓴 르포르타쥬의 번역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추리적으로 특기할 내용은 전무합니다. 유벨이 나폴레옹의 첩자임이 밝혀지는건 드러난 여러가지 증거 때문이고, 결국 '공복' 때문이었다는 동기마저 유벨이 직접 밝혀서 의외성도 없거든요. 빅토르 위고 시점에서 당대 망명객들의 삶을 그린 묘사는 좋지만 딱히 관심있는 분야는 아니라서 이 역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그나마 인상적인건 첩자를 '탐정'이라고 부른다는 점 밖에는 없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2003/03/24

암호 미스터리 걸작선 - 0. 헨리 외 지음, 정태원 옮김 : 별점 2.5점

암호 미스터리 걸작선 - 4점
0. 헨리 외 지음, 정태원 옮김/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제목 그대로 암호 미스터리를 다룬 단편을 모아놓은 앤솔러지입니다.
기획은 좋지만 영문권 암호 미스테리이기 때문에 한국어권 독자가 그 내용을 모두 파악하고 재미있게 읽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은 조금 아쉽고 홈즈 시리즈 중 하나인 '춤추는 인형'같은것은 이 단편선에 끼기에는 너무 유명하고 알려진 것이고 그 외에도 모험소설이나 유머소설같은 작품들이 끼어 있는 등 단편 선정이 무슨 기준인지는 잘 모르겠더군요.

그러나 접하기 힘들었던 오스틴 프리맨의 손다이크 박사 시리즈 단편인 <문자조합 자물쇠>, 엘사 베이커의 탐정 덱스터 드레이크 시리즈 단편인 <미카엘의 열쇠>와 같은 작품은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도 엉클 애브너 시리즈로 유명한 멜빈 데이비슨 포스트의 <대암호>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단순한 암호 트릭물이 아니라 지금의 서술 트릭물의 원조격의 풍모까지 느껴지는 작품이었거든요.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절반의 성공이었달까요? 기획 자체는 괜찮았고 영어를 잘 하신다면 읽는 재미가 두배 이상이 될 듯 하니 영어에 자신이 있으시다면 추천드립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04/08/26

부부탐정 - 애거서 크리스티 : 별점 2.5점

부부탐정 - 6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기원 옮김/해문출판사

토미와 터펜스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집. 토미와 터펜스 부부 시리즈는 부부탐정이라는 설정과 부부가 함께 하는 모험이라는 이야기 구조로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걸작 시리즈죠.

장편 "비밀결사"에서 등장하여 결혼에 이른 부부 토미와 터펜스. 그들은 토미 숙부의 유산으로 넉넉하게 살아가지만 이전의 모험적인 삶을 그리워 하며 지루한 일상을 보냅니다. 그러던 중 정부의 카터라는 인물로부터 데어도어 블런트라는 탐정의 사무소를 운영하면서 수수께끼의 "16"이라는 숫자에 주목해 달라는 의뢰를 받게 된 이후 벌어지는 사건들이 펼쳐지는 내용입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아마 연재때문이 아닐까 하는 가정을 해 봅니다) 모두 23편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전-후편으로 나뉘어진 작품도 많고 부부가 탐정 사무소를 운영하게 된 경위가 나오는 첫번째 작품은 제외한다면 총 14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약간의 트릭이 가미된 유머스러운 추리 모험 활극으로 토미와 터펜스라는 부부의 유머와 재치때문에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집입니다. 무엇보다 여러 명탐정을 각 편마다 인용하며 나름의 경의를 표한 크리스티 여사에게 감탄했습니다. 현재는 잊혀진 탐정들도 있고 아직 접해보지 못한 탐정들도 있지만 이런 인용으로 보다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네요.

때문에 별점은 2.5점. 추리적으로 굉장한 논리나 사건은 없지만 읽는 재미 하나만큼은 확실한만큼, 부부탐정 팬 분들에게는 강추드립니다.

작품별로 상세하게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첫번째 작품 "차라도 한잔" 은 파리를 날리는 사무소의 손님을 유치하기 위한 터펜스의 사기극(?)으로 부부의 익살과 접수 소년의 재치 등 유쾌함이 넘치는 소품입니다. 하지만 추리적 가치는 빵점이네요... 뭐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죠.

두번째 작품 "분홍색 진주 사건"은 첫번째 사건에서 만족한 의뢰인이 소개한 의뢰인이 자신의 집에서 사라진 값비싼 진주를 찾아 줄 것을 요청하는 이야기입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경찰에 알리지 못하고 은밀한 조사를 의뢰받는데 손다이크 박사를 흉내내는 토미가 단순한 사실에서 진상을 꿰뚫고 사건을 해결합니다. 그런데 등장하는 수수께끼가 모두 풀린 것 같지는 않아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는 것은 단점입니다.

세번째 작품 "이상한 불청객 사건"은 첫머리에 등장하는 블런트라는 원래 인물이 연루된 국제적인 범죄조직에 납치된 토미가 기지를 발휘해 위기를 벗어나는 이야기로 첫부분에 등장하는 담배갑과 연관된 재치가 상당히 돋보이지만 추리적인 요소는 거의 없습니다. 다만 토미가 인용하는 불독 드러먼드라는 캐릭터는 조금 궁금하더군요.

네번째 작품 "킹을 조심할것 & 신문지 옷을 입은 신사"는 초반에 토미와 터펜스가 이야기하는 신문지의 인쇄오류와 가장 무도회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을 연관시켜 진상을 추리하는 내용으로 변장 트릭이 등장합니다. 조금 흔한 트릭이긴 하지만 재치와 유머가 넘쳐 꽤 재미있습니다. 전형적인 크리스티 여사의 트릭과 전개방식이지만 캐릭터를 달리 함으로써 또 다른 재미를 만드는 이야기 구성력이 돋보였어요.

다섯번째 작품 "부인 실종 사건"은 유명한 탐험가에게서 실종된 약혼녀를 찾아달라고 의뢰받은 뒤 그녀가 사라진 마을에 찾아가 악덕 의사의 소굴에 잠입하여 진상을 밝혀내는 부부의 활약이 그려집니다. 서두에 토미의 셜록 홈즈 흉내가 굉장히 인상적이며 웃깁니다. 또한 상상하지 못했던 부분을 복선으로 인용하는 막판 반전이 꽤 재미나는 좋은 작품이었어요.

여섯번째 작품 "장님 놀이"는 제목 그대로 장님 탐정 (맥스 캐러도스가 아니라 콜튼이라는 모르는 탐정이더군요)을 흉내내기 시작한 토미가 안대를 착용하고 다니다가 세번째 작품의 조직에게 다시 위협받는데 요리 주문할때의 숨겨진 암호문으로 살아난다는 이야기입니다. 전체적으로 긴박감이 좀 떨어지고 토미의 안대에 대한 비밀이 말 한마디로 끝나는 구조는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더군요. 범작입니다.

일곱번째 작품 "안개속의 남자"에서는 토미가 브라운 신부를 흉내내네요. 하지만 이야기는 브라운 신부 시리즈와는 전혀 다른 크리스티 여사의 전형적 구조로 진행됩니다. 안개에 묻혀 통행이 뜸한, 입구에서는 경찰이 서 있었던 밀실과 같은 집에서 한 여배우가 살해당한 후 진범을 잡는 내용으로 트릭이나 범인은 후대 작품에서 비슷하게 써먹은 것이 많아 신선하진 않았지만 이 작품이 발표된 연대를 볼 때는 분명 여사님이 시대를 앞서 가신 것이죠. 여사님의 상상력에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네요.

여덟번째 작품 "위조지폐범을 찾아라"는 제목 그대로의 내용입니다. 범인역도 신선했고 모험소설적인 분위기도 잘 살아있어서 꽤 재미있었습니다.

아홉번째 작품 "서닝데일의 수수께끼"에서는 "구석의 노인"까지 등장합니다! 구석의 노인 흉내를 내던 토미와 터펜스 부부가 신문을 읽으며 미궁에 빠진 서닝데일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으로 안락의자형 탐정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구석의 노인의 이야기 진행방식까지 유사하게 차용한 재치가 돋보이며 추리적으로도 상당히 완성도 있는 작품입니다.

열번째 작품 "죽음이 숨어있는 집"에서는 꽤 재미있게 읽었던 "독화살의 집"의 아노 탐정이 인용되네요. "독화살의 집" 탐정의 인용작품 답게 저택에서 독살당한 가족의 범인을 찾는 이야기로 구성과 마무리까지 깔끔한 수작입니다만 모처럼 찾아온 미인 의뢰인이 독살당해 죽는다는 설정은 조금 마음에 안 들더군요....

열한번째 작품 "철벽의 알리바이"는 동시에 두곳에 존재한 한 여인의 알리바이를 파헤치는 트릭인데 알리바이 깨기의 명수 프렌치 경감이 인용됩니다. 하지만 트릭 자체는 실망스러운 범작이었어요.

열두번째 작품 "목사의 딸 & 레드하우스"는 암호해독 트릭입니다. 부유한 아버지의 백모로부터 돈은 없이 저택만 상속받은 목사의 딸이 집을 팔라는 끊임없는 권유와 집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현상으로 괴로워 하다가 토미와 터펜스에게 조사를 의뢰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이미 이 부분부터 눈치빠른 독자들은 "저택에 무언가 숨겨져 있다!"라고 느끼실 것 같은데 이야기는 예상대로 흘러갑니다.^^ 일종의 보물찾기로 꽤 괜찮은 암호문 (간단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잘 만든 암호문입니다)이 재미있습니다.

열세번째 작품 "대사의 구두"는 설정이 상당히 기발합니다. 자신의 구두 가방과 똑같은 가방을 가진 사람과 가방이 바뀌었던 미국 대사가 가방이 바뀌었다고 하며 되찾아간 사람이 사실은 다른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고 그 이유를 알고 싶어서 토미와 터펜스 부부를 찾아오는 것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거든요.
가방안에 들어있던 것은 대사의 구두 뿐이었기 때문에 토미와 터펜스는 구두 안에 무언가 다른것이 숨겨져 밀수 되었으리라 짐작하고 범인을 밝혀내게 됩니다. 이 작품에서는 포튠이라는 탐정이 인용되는데 아직 작품을 읽지 못해서 아쉽더군요. 트릭은 대단치 않지만 워낙 설정이 독특하고 모험소설적인 부분이 많아서 빠져드는 맛이 있는 작품입니다.

마지막 작품 "16호 였던 남자"는 작품집 초반에 등장했던 수수께끼의 "16"이라는 숫자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러시아 스파이로 경찰이 체포를 노리는 수수께끼의 16호를 잡기 위한 마지막 모험이 벌어지는 내용으로 첩보물 적인 성향이 강하지만 트릭도 제법 괜찮았습니다.

2005/07/13

엘러리 퀸 미스터리 매거진 (EQMM) 1,2 : 각권 별점 3점


유명한 단편 추리 전문 잡지 엘러리 퀸 미스터리 매거진(EQMM) 한국판 1, 2호. 우연찮게 헌책방에서 발견해서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워낙 유명해서 자세한 설명은 필요 없겠죠? 짧게만 소개해 드리자면, 추리작가 엘러리 퀸이 간행하기 시작한 잡지로 유명한 단편 앤솔로지나 단편집, 단편 작가들은 거의 다 여기를 통해서 알려지고 배출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에드가상 단편 부분 수상작으로도 선정된 작품도 많은, 그야말로 단편의 보물창고 같은 잡지죠.

각 권별 전체 평균 별점은 3점. 제가 뽑은 베스트는 1호에서는 "여행중에 생긴 일". 2호에서는 "평생동안의 기다림"과 "클레머티스의 향기" 입니다. 2호보다는 1호가 좀 더 고전파에 가깝다 보이는데 취향에 맞춰 골라보는 재미도 쏠솔하네요. 그러나 한국판은 제가 알기로는 2호가 마지막인듯 싶군요. 좋은 기획인데 역시나 판매부수가 문제였을테죠. 단편 추리물 팬으로서 무척 아쉬운 일입니다. 이 정도 두께와 가격에 이 정도의 수준을 보여주는 잡지라면 계속 구입했을 것 같은데 말이죠. 이후에도 계속 출간되었으면 합니다만... 힘들겠죠?

수록 작품은 아래와 같습니다.
1호 수록작
"욕실살인"
나름대로 개인적 인연이 약간 (아주 약간!) 있는 에드워드 D 호크의 작품으로 아무도 없는 욕실 안에서 단검에 찔려 살해된 시체때문에 범인으로 몰리는 백화점 직원 수잔 홀트의 이야기입니다. 수잔 홀트는 수많은 작가의 시리즈 캐릭터 중 한명인 모양이네요. 에드워드 D 호크 특유의 "불가능 범죄" 이야기를 잘 풀어나가고 있기는 하나 트릭은 좀 시시한 편입니다. 별점은 2.5점.

"여행중에 생긴 일"
보험 조사원 숀 콜란 (마스터 키튼? ^^)이 우연히 여행 중 사고를 당해 한 농장에 머물게 됩니다. 그리고 농장 여주인 남편의 교통 사고를 알고나서 나름의 호감과 정의감으로 보험금을 받게 해 주려고 애쓰던 중, 이유를 알 수 없는 습격을 받게 된다는 서스펜스 스릴러입니다.
이런저런 앤솔로지에서 몇번 접해보았던 도그 앨린의 작품으로 단편보다는 중편에 가까운 길이지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한편의 영화처럼 서스펜스 가득한, 긴박감이 넘치는 묘사가 일품이었기 때문이에요. 마지막 부분에 공격받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설명해 주는 부분도 아주 좋았고요. 그야말로 무릎을 칠 만 했달까요. 별점은 4점!  1호의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여자의 행복조건"
생소한 작가 도날드 올슨의 작품. 유산을 둘러싸고 조카딸의 도박꾼 남편 윌리와 베스타 이모가 대결한다는 일종의 완전범죄물로 도박꾼이자 인간 쓰레기인 윌리라는 인물과의 두뇌싸움이 흥미진진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놀라운 돼지들"
역시나 생소한 작가 조지 체스브로의 작품. 시리즈 캐릭터라고 하는 갈쓰 프레더릭슨이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돼지를 둘러싼 소송때문에 갈쓰가 머리를 써서 소송을 낸 사기꾼 어크맨을 속여먹는 부분은 좋았는데 후반부가 황당해서 점수를 다 깎아먹네요. 상상력은 기발한데...글쎄요, 저는 적응이 잘 안되더라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계산 착오"
완전 범죄를 노리는 여인의 이야기를 다룬 단편.
여성작가 캔디스 앨리엇의 작품으로 '현대 범죄에서 동기는 그다지 중요하게 다루어지거나 분석되지 않는다'는 뒷부분 작품 해설처럼 동기보다는 완전 범죄를 위한 주인공의 계획에 촛점이 맞춰지고 있습니다. 나름 설득력있는 발상이라고 생각되네요. 제목에서 암시하는 것 처럼 결국 완전 범죄는 실패로 돌아가는게 문제지만...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다쟁이의 질투"
존 몰티머의 작품으로 원래는 TV용 시나리오였다고 합니다. 짧지만 변호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긴박감있는 법정 장면까지 보여주는 알차고 임팩트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정통 추리물로 보기에는 어렵지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호 수록작
"비상을 꿈꾸며"
클라크 하워드의 작품으로 악당 조직의 두목이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할 인물을 없애기 위해 항공기 관제사 제드의 가족을 인질로 삼는다는 인질극입니다.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서스펜스와 스릴이 확실해서 시종일관 긴장을 늦추지 않게 만드는 전개는 대단하더군요. 허나 마지막이 너무 허무한 편이라 아쉽습니다. 단편의 한계였던 것일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이번엔 진짜 실탄?"
윌리엄 뱅키어의 작품입니다. 30여년만에 고향에 돌아온 조 헉은 보험 사기를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현재 도피중인 인물이라는 이야기로 두번의 반전이 돋보입니다. 충격적이거나 놀랍다기 보다는 아기자기한 소품같은 느낌이 좋고, 해피엔딩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악녀의 죽음"
피터 턴블의 드라마에 가까운 소품. 우연하게 순찰경관이 발견한 방치된 차에서 범죄가 드러나는 과정, 그리고 범인의 심리를 밝히는 결말부가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정통 추리물은 아니지만 작가가 글을 참 잘 쓴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어요. 별점은 3점입니다.

"평생동안의 기다림"
1호에도 실려있는 도날드 올슨의 작품입니다. 이 작가 EQMM과 인연이 깊나 보네요. 두명의 노파가 등장하여 갈등관계를 보여주다가 한 노파가 고향 마을로 여행을 떠난다는 단순한 내용인데 범죄와 드라마가 모두 포함되어 있는, 깊이있는 전개가 인상적인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트릭보다는 드라마가 중시되는 현대 추리 단편의 좋은 예라 생각되네요. 별점은 3.5점입니다.

"페트라코브와 고릴라"
러시아에서 망명한 병리학자 일리아 페트라코브 시리즈로 벤 클라인의 작품입니다. 동물농장의 주인이 고릴라 우리에서 굉장한 힘으로 짓이겨져 타이어에 쑤셔넣어져 있는 시체로 발견되고 범인으로 의심받는 고릴라가 사형(?) 당할 위기에 처한다는 이야기로 캐릭터 측면에서는 손다이크 박사가, 수사 측면에서는 CSI 느낌이 많이 나는 단편이었습니다. 괜찮긴한데 시리즈 캐릭터라는 병리학자 일리아의 매력이 별로 드러나지 않는 것은 단점으로 보입니다.별점은 2.5점입니다.

"콜럼버스의 얼굴을 훔친 사나이"
에드워드 D 호크의 괴도 닉 벨벳 시리즈로 거대한 콜럼버스 동상의 11톤이나 되는 머리 부분만 훔쳐내는 이야기입니다. 유명한 시리즈이긴하나 전개와 설정 모두 납득이 잘 가지 않는 평균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작가와 시리즈 명성에 비하면 무척 실망스럽더군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비밀을 털어 놓은 남자"
H.R.F 키팅의 인도 봄베이 경찰국의 가니쉬 고케 경감이 등장하는 단편으로 시리즈라고 하는군요. 일종의 "윤회"를 테마로 하고 있는 지적이면서도 몽환적인 단편이었습니다. 추리적으로 별로 눈여겨 볼 것은 없지만 문체와 전개방식이 독특해서 읽는 맛은 좋았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클레머티스의 향기"
미뇽 F 발라드의 작품으로 한 노처녀의 의문의 죽음을 다루고 있습니다. 정통 추리에 가까운 작품으로 애거서 여사의 단편같은 느낌의, 영국 정통 추리물의 명맥을 잇는 듯한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럼 비지니스"
마가렛 요크의 그랜트 교수가 등장하는 시리즈 단편. 내용과 전개방식은 고전적이고 정통 추리물에 가까우나 사건의 해결 방식이 쉽게 납득 되지 않고 그다지 공정한 편은 아니라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었습니다. 갑자기 마약 밀매로 이야기가 급진전 되는 것도 문제있는 설정으로 보이네요. 그냥저냥한 작품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2005/07/04

Japan 미스터리 걸작선 1 - 한국, 일본 추리작가협회 추천 / 정태원 번역 : 별점 3점

J 미스터리 걸작선 1 - 6점
정태원 옮김/태동출판사

일본 추리 작가 협회 창립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펴낸 책입니다. 그런데 선정을 한국 추리 작가 협회에서 했다는 점이 특이하네요. 예전에 읽었지만, 다시 구입했기에 읽고 리뷰 남깁니다.

낯선 작가의 낯선 작품들이 많다는 것이 눈에 띄는데, 책 뒤의 설명을 보면 다른 단편선 등에서 이미 소개된 작품이 아닌 새로운 작품을 선정하려는 의도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도는 50주년 기념 앤솔로지라는 주제와는 좀 맞지 않는다 생각됩니다. 그동안 소개된 작품들이 일본 추리 문학의 대표작에 더 가까운게 당연하잖아요. 또 이러한 기획 의도를 충족시키기 위해서였다면, 진짜 국내에 초역되는 작품들만 모아 놓았어야 했습니다. 정작 그렇지 않은 작품들이 수록된 건 이상해요.
정통 추리나 스릴러가 아닌 환상문학과 호러, 그리고 SF에 가까운 작품까지 실려 있어 기준이 약간 모호하다는 것도 솔직히 잘 납득이 가지는 않습니다.

그나마 수록된 작품들도 특정 시대나 작가별로 편찬된게 아니라 무작위로 수록되어 있는데, 에드가상 수상작품집처럼 어느 정도는 목차에서도 시대순 같은 기준을 가지고 분류하는게 더 좋았을 겁니다.

그래도 한국 추리문학 협회가 선정한 일본 추리 단편이라는 기획 자체가 그냥 놓치기에는 너무 흥미로울 뿐더러 전체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재미까지 가져다 주는건 분명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개인적인 베스트로는 "광기의 계보", "정사의 배경" 그리고 "살의" 를 꼽겠습니다.
총 세 권이 발간되었는데 제가 가지고 있는건 이번에 구입한 이 1권 뿐인데, 언젠가는 2, 3권도 발견하여 책장에 추가하고 싶네요.

작품별 상세 소개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아파트의 귀부인 - 아카가와 지로

새로 이사온 옆집의 미모의 귀부인이 하는 요리의 냄새를 알아 맞출 정도로 후각이 민감한 아내를 가지고 있는 구보는 옆집의 부인에게 호감을 느껴 아내가 집에 없는 틈에 옆집에 찾아간다. 

다른 앤솔로지에서도 많이 소개된 아카가와 지로의 단편입니다. 추리 문학이라기 보다는 반전의 맛이 있는 스릴러에 가까운데, 너무 뻔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군요.

2. 나체의 방 - 호시 싱이치

일본 단편의 거장 중 한명인 호시 싱이치(호시 신이치)의 작품입니다. 우연히 여러 남녀들과 복잡한 관계를 가지게 된 남자의 이야기로 상황 설정이 재미있고 여운을 주는 맛도 잘 살아있어서 역시나 단편의 거장이구나! 싶네요. 다만, 추리물은 절대! 아닙니다.

3. 나폴레옹 광 - 아토다 다카시

아토다 다카시의 초 유명 단편이지요. 제가 이전에 "Y의 거리" 소개 때에도 리뷰했기에 패스합니다. 

4. 고양이의 목 - 고마츠 사쿄

고양이를 키우면 죽는 미래의 어느 도시에서 일어나는 짤막한 이야기입니다. 고양이를 워낙 좋아하는 일본이라서 나올 수 있던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반전의 맛도 어느정도 있고 재미도 있지만 추리물도 아니고 호러도 아니고 SF도 아니고... 여러모로 좀 어정쩡한 느낌입니다.

5. 광기의 계보 - 후지이 레이코

초등학교 교사 게이코는 우연히 들춰본 학생 기누코의 일기를 통해 그녀의 계모가 기누코를 광기로 몰고 가고 있는 상황을 알게 된다... 

여성작가의 느낌이 잘 살아있는 작품으로 일기를 주요 매개체, 단서로 하여 전개된다는 특이함에 더해 극적 반전까지 뛰어납니다. 약간의 호러 분위기가 잘 살아있다는 것도 마음에 들고요. 그런데 왠지 영상물에 더욱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6. 3억엔의 악몽 - 니시무라 교타로

평범한 올드미스 여사원 교코는 어느날 찾아온 변호사에게서 자신이 친절을 베푼 한 노인에게 3억엔의 유산을 상속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알고보니 그 변호사는 자신과 다른 인물을 착각하고 있었고, 교코는 유산을 상속받는 진짜 인물인 아리사와 나미코를 찾아가 담판을 지으려 하는데... 

여정 미스테리의 달인이라는 니시무라 교타로지만 이 작품은 의외로 "지푸라기 여자" 같은 인물 설정을 가진 완전 범죄물입니다. 조금 의외였달까요. 그러나 기발한 발상에 비해 전개가 뻔하고 치밀함이 많이 부족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7.얼굴 - 마츠모토 세이쵸

살인 사건을 저질렀던 배우 이노 료기치는 자신이 주연인 영화가 전국 개봉되기 전에 자신이 저지른 살인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이시오카를 살해하려 하는데... 

"거장" 세이쵸 선생의 작품입니다. 세이쵸 선생 단편은 대표작들에 비해 많이 격이 떨어지는 편인데 이 작품은 꽤 괜찮네요. 특히 범인이 배우이고 영화 개봉 때문에 목격자를 죽이려 한다는 설정은 참신합니다. 하지만 결말이 너무나, 너무나 심하게 아닙니다...

8. 정사의 배경 - 츠츠야 다카오

한 주부가 음독 자살했다. 그녀는 죽기 직전, Y타임즈의 독자 투고란에 과거의 애인에게서 협박받고 있다는 투고를 보내 상담을 의뢰한 상태였다. Y타임즈의 기자 소네는 단순 자살 사건은 아니라는 판단에 독자적인 조사를 개시하는데... 

잘 모르는 작가인데 작품이 굉장히 좋아서 놀랐습니다. 독자 투고와 음독 자살한 여인을 연결시키는 발상도 뛰어나지만 실제 사건의 트릭도 괜찮고 무엇보다 전개가 굉장히 깔끔합니다. 진범과 동기도 납득할 수 있고 단서도 공정한 편이고요. 이 단편집 최고의 단편 중 하나입니다.

9. 조건반사 - 오타니 요타로

여배우 미즈사와 미나코는 연기지도 담당 오모리 세이지에게 혹독한 훈련을 받아 그의 동작 하나하나에 희로애락을 표현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르며 그와 결혼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결혼 후 알콜 중독으로 바닥으로 추락한 세이지를 거추장 스러워한 미나코는 그를 살해할 계획을 세우는데... 

이른바 "조건반사"에 의한 다이잉 메시지가 등장하는 작품인데 여기서처럼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네요. 때문에 기발하긴 하지만 현실성은 떨어져 보입니다. 그래도 꽤 재미있었어요.

10. 벽 - 고다카 노부미츠

아내와 그녀의 정부에 의해 벽속에 파묻히게 된 남자의 이야기. 이 한줄이 이 작품의 전부입니다....

11. 살의 - 다카키 아키미츠

옆집의 이마노 부부를 돌봐주던 타누마 변호사는, 이마노의 부인 준코가 질투로 저지른 살인 사건 변호를 맡게 되었다. 타누마는 그녀를 감형시켜 집행유예를 받게 하는데 성공하지만, 어느 날 이마노로부터 충격적인 고백을 듣게 되는데... 

거장 다카키 아키미츠의 단편입니다. 

이른바 "살인을 하기 위한 살의의 정도를 법적으로 판단하는 잣대가 어디에 있는가?"가 이 작품의 핵심입니다.이 살의를 최소한으로 나타내기 위한 범인의 치밀함, 법의 헛점을 잘 꿰뚫고 저지른 범행이 아주 충격적입니다. 1952년에 발표된 작품이라고는 보이지 않게 세련되고 꽉 짜여진 구성이 놀랍네요.

12. 소라 - 야마무라 마사오

추리물은 아닙니다. 못살던 시대의 불우한 가족의 이야기를 리얼하게, 적나라하게 그린 순문학에 가까운 단편입니다.

13. 무서운 선물 - 유키 소지

한 여자에게 가벼운 마음으로 키스했다가 저주(?) 받는 한 바람둥이의 이야기. 전해주는 꽃들의 꽃말로 마음을 나타내는 이야기 전개는 괜찮지만 마지막에 저주니 어쩌니 하며 마무리하는 결말은 납득이 안됩니다...

14. 연습게임 - 후지무라 쇼타

가지키는 아내 구니코의 수다를 겨우겨우 참고 살다가 우연찮게 불륜을 저지른 상대 미와와의 달콤한 미래를 위해 그녀를 살해하려 했다. 하지만 그가 아내와 몰래 만나기로 한 장소에 아내는 오지 않고, 오히려 다른 장소에서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되어 가지키는 함정에 빠지게 되는데... 

함정에 빠지는 인물이 등장하는 "함정물"인데, 어차피 가지키는 아내 구니코를 죽이려 했으므로 그다지 용서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네요. 전혀 관계없는 인물이 함정에 빠지는 것이라면 모를까... 반전의 여운을 남기기는 하지만 좀 약합니다.

15. 우물이 있는 집 - 미나카와 히로코

과거 자신이 유괴당한 집에 신혼여행을 오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입니다. 전개가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 흘러가는데,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함과 미묘함이 잘 살아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하지만 흥미진진한 줄거리에 비해 결말이 시시해서 아쉽습니다.

16. 복안 - 소노 다다오

일본의 손다이크 박사라고 불리운다는 복안전문 범의학자 고이케 고로라는 캐릭터가 나와 두개골 복안을 보여주는 것이 전부인 작품. 캐릭터 이외의 설정과 전개는 평이합니다.

17. 사랑 - 미야자키 준

동물 뇌세포를 집어넣은 육아 로봇이 저지른 아동 살해 사건 이야기. 아시모프 작품과 유사한 분위기지만 반전은 인상적입니다.

18. 산키치의 식욕 - 와타나베 게이스케

어려운 시대, 어렵게 살아가는 고학생 산키치가 우연히 주운 3엔으로 한끼를 해결하는 이야기. 이야기는 꽤 재미있고 진지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만 순문학 단편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네요. 작가도 그렇고 작품도 그렇고 왜 이 단편선에 실려있는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19. 쇼윈도의 연인 - 요코미조 세이시

소설에 빠져드는 기이한 습성이 있는 청년 다마루 소진은 최근 간행된 소설 "쇼윈도의 연인"을 읽은 직후, 한 양품점 쇼윈도의 마케팅을 사랑하게 되는데...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드문 요코미조 세이시의 단편이라는 점만으로도 가치가 있지만, 작품도 인상적입니다. 처음에는 다른 외국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일종의 성도착적인 애정에 대해 다루는 듯 했는데, 급변하여 놀라운 반전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발표 시대를 감안한다면 정말 기발한 상상력과 아이디어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네요. 거장다운 작품입니다.

20. 범인은 누구인가 - 구사카미 진

쌍동이 중 한명이 범인인 것은 확실한데 누구인지를 몰라 궁지에 몰린 경찰이 사건을 결국 해결한다는 이야기. "음악"을 주요 소재라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다지 인상적이진 않지만 트릭과 설정은 마음에 들었어요.

21. 계단을 오르는 남자 - 마유무라 다쿠 

세계가 거대 빌딩화되어 엘리베이터가 기차처럼 다니는 세계. 한 남자가 25.000층의 건물을 걸어 올라가기 시작하고 그는 계단을 올라 새로운 층에 도착할 때마다 점차 여행자에서 모험가, 그리고 성자로까지 추앙받게 된다. 그리고 결국 그가 꼭대기 층에 다다르게 되는 날이 오고 군중이 그를 보기 위해 운집한다... 

아이디어가 정말 기발합니다! 엘리베이터가 기차처럼 다니는 초고층 빌딩 사회에서 목적없이 그냥 계단을 오르는 남자가 주변 인물들에 의해 성자로까지 추앙받게 되는 과정이 묘하게 현실감 있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말은 너무나 시시해서 아쉽습니다. 좀 더 생각했더라면 정말 마음에 드는 걸작 단편이 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말이죠.

2020/11/14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2 : 모래시계 외 - 로버트 바 외 / 이정아 : 별점 2.5점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2 : 모래시계 외 - 6점
로버트 바 외 지음, 이정아 옮김, 박광규/코너스톤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두 번째 권입니다.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 문학의 초기인 19세기 후반 ~ 20세기 초반 발표되었던 단편들이 수록된 앤솔러지입니다.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1"과 마찬가지로 정가 할인되었기에 구입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셜록 홈즈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탐정들 등장이 많은게 이채롭습니다. 유명한 외젠 발몽, 마틴 휴잇을 비롯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당대 탐정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산사나이, 자연인 명탐정 노벰버 조와 초창기 퇴마 탐정 플랙스먼 로우는 독특해서 인상적이더군요. 플랙스먼 로우는 시리즈를 더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하지만 수록작들 수준이 모두 높지는 않습니다. 셜록 홈즈의 영향을 짙게 받은, 모방작이 많은 탓입니다. 시대와 유행에 충실했지만, 뛰어넘지는 못한 셈이지요. "두 개의 양념병"이라는 걸작이 수록되어 있기에, 전체 평균 별점은 2.5점입니다만, 수준 이하 작품도 많습니다. 하지만 정가 인하된 가격이 워낙 저렴하기에 만족스러운 독서였습니다. 고전 추리 소설 애호가시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기 전 참고하세요.

"거브 탐정, 일생 일대의 사건"

파일로 거브는 마대 자루에 꿰메어진 채 익사한 헨리 스미츠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나섰다. 그의 활약을 모든 리버뱅크 주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거브 탐정은 피해자가 끊어진 전구를 쥐고 있었던 사실에 주목하는데...

도배 및 인테리어 사업을 하면서, 통신 교육으로 탐정이 된 파일로 거브가 활약(이라고 쓰고 좌충우돌이라고 읽는)하는 시리즈 단편입니다.

통신 교육을 받은 탐정은 "탐정 피트 모란"이 유명합니다. 그런데 피트 모란은 겉에 드러난 것들만 1차원적으로 해석하는 단순한 인물이었습니다. 고민따위는 하지도 않지요. 당연히 추리보다는 코미디가 핵심인 이야기 들이었고요. 이 작품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탐정에 대한 희화화에 주력하고 있다는 점에서는요. 마을 주민 모두가 변장이라는 걸 알아채는 변장을 한 뒤 탐문 수사에 나선다던가, 파일로 거브가 펼치는 수사를 마을 주민 모두가 지켜본다는 등의 묘사 등이 그러합니다.

그래도 "피트 모란" 보다는 조금 낫습니다. 웃음거리를 제외하면, 나름대로는 추리물이기 때문입니다. 작 중 기묘하게 죽었던 헨리 스미츠 사건의 결정적 단서는 피해자가 쥐고 있던 전구였으며, 거브 탐정은 피해자가 "어디서 전구를 갈았는지?"를 파악한 뒤 피해자의 작업실로 올라가 전구를 가는 동작을 따라하다가 진상을 알게 되거든요.
피해자는 자신이 만든 '양고기 자동화 포장 기계'로 넘어져 마대 자루로 포장된 뒤 강물로 던져졌던 겁니다. 단서를 찾고, 추리한 뒤 추리를 검증한다는 순서만큼은 제대로 지키고 있는 셈이에요. 추리라기 보다는 겉에 드러난 단서를 '추적'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넓은 범주의 추리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대단한 추리는 아니며, 흡사 "월레스 앤 그로밋"을 연상케 하는 황당무계한, 일종의 다고베르트 머신같은 기계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퀸의 정원"에서도 언급되긴 했는데, 단지 '역사적 중요성'에 대해서만 점수를 받았을 뿐입니다. 당연합니다.

"두 개의 양념병" 

로드 던세이니가 1934년에 발표했던 작품으로 장르 문학을 사랑하시는 모든 애호가 분들이라면 누구나 아실 고전 걸작 단편입니다. 마지막의 의외성이 돋보이는, 이른바 '기묘한 맛' 장르의 대표작이지요.

이전에 다른 앤솔러지에서 읽었었는데, 정통 추리물 성격이 강할 뿐더러 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분량이 충실해서 놀랐습니다. 이는 마지막 반전을 훨씬 돋보이게 만들기도 합니다. 상세한 묘사를 통해 반전을 탐정역인 린리 씨가 룸 메이트인 스메더스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은근히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스메더스는 살인 용의자 스티거가 구입했다는 양념 '넘누모'를 파는 행상인이라서 린리씨는 샐러드에 뿌려먹게 넘누모 좀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스메더스는 거절합니다. "고기와 짭짤한 음식에만 뿌려 먹는 겁니다"며, 잘 모르고 채소에 뿌려 먹더라도 "두 번은 안 하죠"라고요. 이 말로 진상이 드러납니다!

2주일 동안 고기를 어떻게 보존했을지, 뼈와 정말 먹을 수 없는 내장 같은 부산물은 어떻게 처리했을지 등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기는 합니다. 그래도 후대에 많은 영향을 준 고전 걸작임에는 분명해요. 제 별점은 4.5점입니다. 린리 씨와 스메더스가 등장하는 시리즈를 더 많이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백작의 사라진 재산" 

외젠 발몽 시리즈 단편으로 "위풍당당 명탐정 외젠 발몽"에도 수록되었던 작품입니다. 다시 읽어보니 트릭이 황당해서, 이전만큼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작품인지 잘 모르겠네요. 지금 주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모래시계" 

버트럼 이스트퍼드는 골동품상에서 오래된 모래 시계를 구입했다. 시계는 30분 정도 지나면 시간이 멈추는 문제가 있었다. 그날 밤, 모래 시계를 바라보며 멍을 때리던 (?) 버트럼 앞에 옛날 군복을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그 모래 시계가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며, 190여년 전 자신이 참전했던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과 시계에 얽힌 이야기를 해 주는데...

표제작으로 저자는 '외젠 발몽' 시리즈 작가인 로버트 바인데, 작품은 외젠 발몽 시리즈와는 관계없는 역사 판타지입니다.

일단, 모래 시계 소유권을 주장하던 캐스퍼 센토어 중위가 해 준 전쟁 이야기는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중위는 장군으로부터 기습 공격 작전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모래 시계가 멈춘걸 몰라서 명령을 이행하지 못했지요. 그래서 작전 실패 후 체포되었습니다. 장군은 '모래 시계 모래가 다 떨어지면 총살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자리를 떠나고요. 그러나 모래 시계가 멈춘 탓에 총살을 집행할 수 없었고, 장군도 그 사실을 확인한 뒤 총살 지시를 철회한다는 내용입니다. 긴박하면서도 왠지 모를 유머, 여유가 느껴지는 좋은 이야기였어요.

그러나 설명되지 않는게 너무 많았어요. 캐스퍼 센토어 중위가 어떻게 버트럼 앞에 나타났는지부터 이유 불명이니까요. 왜 모래 시계가 파괴되고 중위는 사라졌는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래서야 버트럼 이스트퍼드가 꾼 꿈이라고 해도 될 정도에요. 그래서 점수는 2.5점입니다. 여러모로 마무리가 아깝습니다.

"일곱 명의 벌목꾼" 

노벰버 조를 벌목꾼 막사 책임자 클로즈 씨가 찾았다. 작년에 나타났던, 벌목꾼을 대상으로 강도 행각을 벌이는 검은 가면이 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클로즈 씨로부터 범인 체포를 부탁받은 조는 파트너 쿼리치와 함께 막사로 향했다. 다음날, 강도를 막기 위해 여섯 명이 뭉쳐 떠났던 인부들이 강도를 당했다며 돌아 오는데...

탐정 노벰버 조 시리즈 단편입니다. 노벰버 조는 깊은 산 속에서 일하는 벌목꾼이라는 특이한 직업의 소유자이지요.

전개 방식은 셜록 홈즈와 동일합니다. 주어진 단서를 통해 귀납적 추리를 펼쳐 범인을 잡아내니까요. 여섯 명 벌목꾼이 차를 마셨던 주전자를 깨끗이 씻은 행동 등 보통 사람은 생각하기 힘든 사소한 일이 단서가 된다는 점도 마찬가지고요. 그들이 마신 차에는 수면제가 들어있었고, 그걸 숨기기 위해 주전자를 씻었던 겁니다.

그러나 자질구레한 단서가 범인을 드러내는건 아닙니다. 범인을 드러내는건 돈을 숨겨 놓았을 막사를 해체한다는 거짓 정보를 흘린 덕분이거든요. 이에 놀란 범인을 현장에서 잡는게 전부입니다. 차에 수면제가 들어있던건 분명해서, 그걸 씻으나 안 씻으나 별 차이가 없었고, 범인이 특정 시간에 개울가에서 무슨 짓을 했건 별로 중요한 단서가 아니에요.

결론적으로 완성도는 그닥이었습니다. 셜록 홈즈 흉내를 내고는 있지만, 그 수준은 한참 미치지 못해요. 벌목꾼이라는 직업이 유용하게 사용돼지도 못했고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퀸의 정원"에서 부여한 가치도 역사적 중요성과 초판본 희귀성 뿐입니다. 엘러리 퀸도 '오지 탐정' 이라는 개념 도입만 높이 평가한 셈입니다.

"유령 저택의 비밀" 

잘 생각해보게. 톡톡 두드리는 소리, 흐물흐물한 물체 그리고 밴 뉘센 씨가 트리니다드섬에 살았다는 사실을 말이지. 또한 거기에 덧붙여 이 단 하나의 발자국까지 잘 생각해보게 뭔가 번쩍하고 해답 같은 게 떠오르지 않나?" 

심령학에 정통한 '퇴마 탐정' 플랙스먼 로우가 등장하는 단편. 심령 현상도 과학과 추리로 풀어낸다는 아이디어는 좋았습니다. 톡톡 두드리는 소리, 흐물흐물한 물체 그리고 밴 뉘센 씨가 트리니다드섬에 살았다는 사실을 통해 그가 나병에 걸렸다는걸 추리해 내는 과정도 합리적이었고요.

그러나 진짜 유령이 나온거라는 결말 만큼은 영 별로네요. 이 정도까지 추리로 풀어내었다면, 사람이 꾸민거라는 진상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은데 말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아이디어는 좋고, 추리도 볼만하지만 앞서 설명드렸듯 진상, 결말 때문에 감점합니다.

"레이커 실종 사건"

은행에서 수금을 담당하던 사원 레이커가 실종되었다. 그는 1만 5천 파운드를 지닌 채였다. 경찰은 그가 돈을 가지고 도주한걸로 판단했지만, 마틴 휴잇은 몇 가지 단서를 통해 진상을 밝혀낸다.

사립탐정 마틴 휴잇 (휴이트) 시리즈 단편입니다. 마틴 휴잇은 셜록 홈즈 시리즈가 연재된 스트랜드 매거진 출신 탐정으로 셜록 홈즈의 라이벌 중 한 명이지요. 그래서인지, 작품은 전형적인 셜록 홈즈 스타일입니다. 사건이 벌어지고, 탐정이 사건을 조사하여 추리 한 뒤, 경찰과 다른 결론을 내린다는 내용이니까요. 몇 가지 단서를 통해 추리한 결과가 의외라는 전개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래도 셜록 홈즈의 라이벌답게 추리적으로는 꽤 괜찮습니다. 수금할 때 레이커를 제대로 바라본 은행 직원은 거의 없었다, 은행 중 한 곳은 입구가 수리 중이었다는 수금 당시 정황, 그리고 레이커가 파리행 표를 살 때 본명을 댔고 독특한 우산만 채링크로스 역에 남겨졌다는 도주 정황을 통해 마틴 휴잇은 수금을 한 레이커는 변장한 가짜라고 추리하는데 이는 합리적입니다. 발표 당시에는 의외성있는 반전이었을 테고요.

하지만 마틴 휴잇이 진범을 알아내는건 작위적입니다. 레이커 이름이 적힌 우산 속 광고지가 단서가 된다는 점에서요. 광고지만 없었더라도, 이 범행은 완전 범죄가 되었을거에요. 광고 내용도 작위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범인들에게 진범이 자기 집으로 오라고 광고하다니, 어처구니가 없지요. 최소한 암호 정도는 써 줬어야 합니다. 이럴 거라면 마틴 휴잇이 구태여 발품을 팔 이유도 없습니다. 그냥 신문 광고란 속 수상한 광고만 보아도 되잖아요?

그리고 마틴 휴잇 캐릭터도 문제에요. 유명세에 비하면 별다른 매력은 없기 때문이에요. 이름만 바꾸면 셜록 홈즈라고 생각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전형적이더라고요. 후대에 그나마 이름을 남긴 셜록 홈즈의 라이벌들은 다들 차별화된 특징들이 있었지요. 도둑인 뤼뺑을 비롯해서 장님인 맥스 캐러도스, 이름도 모르고 정체도 모르는 안락의자 탐정 구석의 노인, 멋드러진 별명만큼은 길이 남은 밴 듀슨 (반 두젠), 법의학 탐정의 시조인 손다이크 박사처럼요. 물론 독특하다고 해서 역사에 길이 남는건 아닙니다. 아마추어 괴도 탐정 래플스처럼 지금은 잊혀진 존재도 허다하지요. 그러나 이는 작품 수준이 기대 이하였던 탓입니다. 마틴 휴잇 시리즈는 추리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던 만큼, 마틴 휴잇만의 개성과 매력을 더하지 못한게 아쉽기만 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셜록 홈즈 스타일을 잘 따르고 있는, 추리적으로도 괜찮은 이야기지만 단점이 명확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바다 건너온 살인자"

로프터스 디컨 씨가 자택의 하치만 성상 아래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현장은 거의 밀실이었다. 다음날 아침, 고인의 친구이자 변호사인 헨리 콜슨 씨는 명탐정 호러스 도링턴에게 사건을 의뢰했고 둘은 함께 현장을 찾았다. 현장에서 헨리 콜슨 씨는 고인이 애지중지했던 '마사무네 검'이 사라졌다는걸 알아챘다. 그 검은 일본인 게이고 가나마로가 되찾기 위해 부탁과 협박을 반복했던 과거가 있었다. 가나마로는 원래 검의 소유주 아들로, 아버지 영전에 검을 바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 뒤 헨리 콜슨 씨는 게이고 가나마로가 일본으로 돌아갈 표를 예약했다는걸 알아내는데...

아서 모리슨이 쓴 단편인데 의외로 마틴 휴잇 시리즈가 아니네요. 내용은 전형적인 셜록 홈즈 스타일로, 마틴 휴잇이 등장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을겁니다. 등장하는 명탐정 호러스 도링턴이 마틴 휴잇, 셜록 홈즈와 구분되는 특별한 매력이나 특기, 특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추리적으로는 볼만 했습니다. 추리가 진행되는 과정이 합리적이고, 단서도 공정한 편이거든요. 약간의 범인 심리 분석도 눈길을 끄는 요소였고요. 디컨 씨는 외출했다가 급한 용무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때 집 안에 있었던 누군가가 범인이었을테고요.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집 안으로 들어왔을까요? 경찰은 침실 창문을 주목했지만, 도링턴은 그렇지 않다고 확신합니다. 침실 창문으로 들어왔다면, 디컨 씨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침실로 향했을테고, 그곳에서 범행이 일어났을텐데 그렇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요. 그리고 도링턴은 하치만 성상이 집에 들어온 날 범행이 일어났고, 성상이 원래 있던 상점에서 물건이 없어지고 부서진 사건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통해 '하치만 성상 안에 누군가 숨어서 잠입했다'고 추리하지요. 물건 안에 범인이 숨는 이야기는 많을테지만, 이 정도면 꽤 설득력있는 이야기였다 생각되네요. 범인 카스트로를 특정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로 볼 만 했습니다.

게이고 가나마로를 유력한 용의자로 등장시킨 전개도 좋습니다. 앞서 피해자가 집착했다는 마사무네 검과 보라빛 옻칠 세공품 소개를 통해 가나마로가 한 말 - 큰 돈을 들여서 겨우 검을 되찾을 수 있었다는 의미 - 의 뜻이 드러나는 결말도 마음에 들었고요. 그 외에 여러가지 일본 물품에 대한 설명도 그럴듯 했습니다.

물론 하치만 성상 무게에 대해 좀 대충 넘어가고 있기는 합니다. 사람 한 명 무게가 추가되었다면 이상함을 느끼는게 당연했을텐데 말이지요. 그리고 범행을 저지른 카스트로가 다시 성상에 숨은 뒤 몰래 빠져나갈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았다는 것도 이상했습니다. 한 몫 잡아서 도주 자금을 마련하는게 상식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단점은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습니다. 추리적으로는 빼어난 점이 분명 있고요. 탐정이 조금만 더 매력적이었다면 역사에 남을 작품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그날 밤의 도둑"

프로비던트 은행 지점장 아일랜드가 텅빈 금고를 보고 혼절했다. 그런데 경비원 제임스 페어베언은 전날 밤, 지점장 아내인 아일랜드 부인이 지점장실을 향해 남편을 부르는걸 목격했었다. 아일랜드 부인은 그 사실을 부정했지만, 사람들은 모두 지점장이 지점장실 문을 통해 금고로 들어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일랜드는 건강을 회복한 뒤, 범행 시간에 있었던 완벽한 알리바이를 입증했다. 그리고 그의 재산 상태는 완벽해서 금고 돈을 훔칠 필요가 없다는게 드러나는데...

'구석의 노인' 단편입니다. 이 시리즈는 좋아해서 여러 편 읽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낯서네요. 이전 다른 단편집 수록작은 아닌 듯 합니다.

그런데 읽어보니, 다른 단편집에서 빠진게 이해가 되더군요. 단순하고 뻔한 탓에 재미없고 지루했습니다. '지점장은 범인이 아니다', '지점장 아내는 거짓말을 해가며 누군가를 감싸주려 한다' 이 두 가지 사실만으로 결론은 쉽게 추리할 수 있어요. 범인은 바로 아일랜드 지점장의 아들이었던 거지요. 아들이 사건 발생 후 은행을 바로 그만두었다는 이야기도 이 추리를 뒷받침하고요. 이 정도 사건을 구석의 노인에게 의지하는 버튼 양은 너무 무능력한게 아닌가 싶네요. 경찰도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별점은 1.5점. 좋아하는 시리즈의 미번역 초역을 읽어보았다는 의미 외에는 딱히 건질게 없었습니다.

"대리 살인" 

작가는 M.M 보드킨입니다. 작가는 영국에서 판사까지 역임했던 법조인이었다네요. 그래서인지, 클라이막스는 법정 공방이더군요. 정식 법정은 아니고, 검시이긴 합니다만 배심원이 배석하고, 변호사가 반대 심문을 하는 등 정식 법정과 별로 다르지 않아서, 법정 미스터리라고 해도 무방할 겁니다.

이야기의 핵심은 밀실에서 구식 전장총이 발사된 장치 트릭입니다. 물병을 돋보기처럼 쓴 게 진상이고요. 엉클 애브너 시리즈인 "둠도프 사건"으로 익숙한 트릭이지요. 엉클 애브너는 1918년 발표되었으니 이 작품이 원조일 수도 있겠습니다. 문제는 작가 보드킨과 탐정 폴 벡이 포스트와 명탐정 엉클 애브너만큼 알려지지 못했다는 겁니다. 원조로서의 영광은 커녕, 잊혀져 버린거지요.

읽어보니 잊혀진 이유는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소설 완성도가 별로인 탓입니다. 우선 쓸데없는 묘사가 많고 장황합니다. 에릭 네빌이 정원으로 나가 복숭아를 먹는 묘사가 2페이지에 걸쳐 설명될 이유는 없어요. 그에 비해 추리적인 부분, 트릭은 대충 넘어가는 편입니다. 무엇보다도 에릭 네빌이 압박에 못 이겨 자백하고 쓰러진다는 결말은 최악이었어요. 트릭이 간파되었다 하더라도, 실수인지 살의가 있었는지 증명하는건 쉽지 않은 상황이니까요. 에릭 네빌이 정말로 목이 말라서 물병을 그곳에 놓았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엉클 에브너 시리즈가 훨씬 좋은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