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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1

넘버스 - 케이스 데블린, 게리 로든 / 정경훈 : 별점 2.5점

넘버스 - 6점
케이스 데블린 & 게리 로든 지음, 정경훈 옮김/바다출판사

"넘버스" 라는 미드가 있습니다. FBI 요원인 형 돈을 수학 천재 동생 찰리가 돕는 내용인데, 이 책은 드라마 속에서 활용된 다양한 수학 이론을 소개해 줍니다. 범죄와 수학 이론의 결합은 제 영원한 관심사 중 하나라서 읽기 전 기대가 컸습니다.

13개의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모두 "넘버스" 속 에피소드에서 찰리가 설명해 주었던 수학 이론에 대해 상세하게 알려주는 구성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핫존'을 찾는 이야기로 저도 방영 당시 시청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연쇄 살인범이 다음에 어디서 범행을 저지를지 예측할 수는 없다, 스프링클러의 물방울이 다음에 어디에 떨어질지 알 수 없는 것처럼. 그러나 물방울이 튄 자리의 패턴을 가지고 있다면 스프링클러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있다!"는 이론이지요. 아주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제가 "넘버스" 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도 이 에피소드가 아주 괜찮았던 덕분이기도 하고요. 드라마에서는 이 공식이 찰리의 창작으로 그려지지만, 책을 통해서 '지리적 프로파일링' 이라고 불리우는 기법으로 공식 원리에서부터 실제 범인 체포 사례까지 상세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넘버스 속 스프링클러 비유 역시 이 공식의 창안자 로스모가 즐겨 애용하는 비유라고 하네요.

통계 분석을 범인 기소 및 각종 증명에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아주 흥미로왔습니다. 특히 이른바 '통계의 함정' 설명이 재미있었어요. 예를 들어 오클랜드 거주 인구의 35퍼센트만 차지하는 흑인이 교통 단속 건 비중에서 56퍼센트를 차지하는건 인종적 문제를 암시하느냐?는 연구가 있습니다. 답은 당연히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경찰은 우범 지역을 보다 높은 비율로 순찰하는데, 우범 지역에 소수 인종 집단이 더 많이 밀집하기 때문에 당연히 더 높은 비율로 단속에 걸릴 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집 근처에서 사고가 훨씬 더 많이 일어난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 역시 집 근처라 마음을 놓거나 하기 때문이 아니라 당연히 집 근처에서 운전을 할 일이 가장 많은 탓이지요. 이런 조작 아닌 조작을 많이 접하는 게 현실인데, 앞으로는 통계도 좀 더 면밀히 따져보는 자세가 필요해 보입니다.

또 '연결 고리 분석' 은 최근 블록 체인 열풍과 맞물려 있는 부분이 있어서 눈길을 끕니다. 데이터 마이닝, 신경망과 같은 친숙한 용어도 다수 등장하고요. 

변화의 조짐을 알아내는 '변화 시점 탐지'는 수학 이론보다는 "넘버스" 의 에피소드가 더 기억에 남네요. 수학자인 세이버 매트리션이 선수 자료를 분석하다가, 금지 약물을 사용하기 시작한 시점을 알 수 있는 수학적 감시 시스템을 고안했다는 이야기라는데 야구 팬으로 관심이 안 갈 수가 없었거든요. 이 수학적 감시 시스템은 실제로 존재하며, 현재 '증후군 감시' 등에 이용된다고도 합니다.
아울러 이 이야기는 '미래 예측' 이야기와 연결됩니다. 수학은 테러리스트들의 위험 평가를 위한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일종의 통계 - 확률론입니다. 새로운 자료를 얻을 때 마다 확률이 변한다는 내용인데, 실제 범죄와 밀접하게 사용될 수 있어 보여서 재미있었어요. 이런 수학적 시스템이 실제로 적용되어 운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테러가 끊이지 않는걸 보면 과히 성공적인 시스템은 아닌 듯 하지만 앞으로 더 많은 발전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수록되어 있지만, 완독하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유는 너무 어려운 탓입니다. 이론과 설명 모두 어느 수준 이상을 넘어가면(정확하게는 "넘버스" 속 에피소드와 관련된 소개 정도) 이해하기 쉽지 않더라고요. 어떤 이야기는 설명하고 있는 수학 이론이 어떻게 드라마 속 사건 해결에 이용되는지 그 연결 고리마저도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이건 책의 문제는 아닙니다. 제 공부가 부족한 탓이지요. 하지만 일반인 독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또 내용의 많은 부분이 통계, 확률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도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넘버스" 에 활용될 정도로 괜찮은 수학 이론이 그만큼 없다는 뜻이기도 하겠지요.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어려운 수학 이론을 되도록 쉽게 설명하려는 저자들의 노력은 눈물겹지만 그래도 어려웠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저같은 일반인보다 수학에 대해 이해도가 높으신 분들이 읽어야 할 책입니다.

2010/09/30

범죄수학 - 리스 하스아우트 / 오혜정 : 별점 3점

범죄 수학 - 6점
리스 하스아우트 지음, 오혜정 옮김, 남호영 감수/Gbrain(작은책방)

주인공인 수학 천재 라비가 지방 검사인 아버지, 시카고 경찰국의 돕슨 과장을 도와 사건을 해결하는 13편의 단편이 수록된 수학 추리 단편집입니다.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수학을 알기 쉽게 소개하는 것이 주목적인 책으로, 이러한 방식으로 수학을 쉽고 재미있게 이해시키기 위해 하나의 이야기로 녹여낸 작품을 몇 편 보아왔습니다. '추리'와 접목시킨 책도 "왓슨. 내가 이겼네!"라는 작품이 있었고요. 추리소설 애호가이자 창작자의 입장에서 바라보자면, 이러한 책의 핵심은 수학을 추리적인 요소에 잘 녹여냈는지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 생각합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절반 정도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그랜드캐니언의 흰머리 독수리 가족"과 "폭설이 내린 오크가의 아침" 두 편은 수학을 이용한 알리바이 깨기 트릭이 절묘하게 구현되어 있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약간만 내용을 보강한다면 추리적으로도 뛰어난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될 정도였어요. 그 외의 이야기에서도 도박에서의 확률 계산 같은 요소는 흥미로웠습니다. 충분히 다른 곳에서 활용할 만한 아이디어였습니다. 물론 추리적으로 별로인 이야기들도 있지만, 수학과 결합시켰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아쉬웠던 점은 모든 이야기들이 수학적 설명에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설명도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트릭을 독자에게 설명하는 데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은, 추리물 창작을 추구하는 제 입장에서는 한계로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드 "넘버스"를 보면서 들었던 느낌과 비슷합니다. "넘버스"는 반대로 '수학'에 대한 설명이 너무 부족한 것이 단점인데, 결국 창작자는 이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겠지요. '수학'에 대해 조금만 더 연구한다면, 정말 좋은 추리물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지만, 이러한 한계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더욱 커지네요.

빛나는 아이디어도 있고 재미도 있지만, 아무래도 추리 애호가보다는 수학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이 보기에 적합한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수학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학생분들께 추천합니다.

수록작별 소개는 아래와 같습니다.

"그랜드캐니언의 흰머리 독수리 가족"

희귀종인 흰머리 독수리를 잡아간 범인을 잡기 위해 근처에서 운동하던 두 명의 선수가 스쳐 지나간 시간과 각자의 목적지에 도착한 시간을 토대로 계산하여 거짓 증언을 밝혀내는 내용입니다. 추리물에 그대로 적용해도 괜찮을 수준의 이야기라고 생각됩니다. 수학적인 공식이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애초에 이 책에 가졌던 기대를 충족시키는 작품이었습니다. 일상적인 분위기도 좋아서 "Q.E.D."가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카지노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사장 슬릭이 살해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건의 동기가 도박의 확률과 밀접한 관련이 있죠. 등장하는 도박은 '100장의 카드 중 55장은 성공 / 45장은 실패' - '참가자는 항상 판돈의 절반을 걸고 카드를 뒤집어 '성공'이 나오면 돈을 따고 '실패'가 나오면 돈을 잃는다' - '모든 카드를 다 뒤집어야 게임이 끝난다'라는 방식입니다. 수학적인 설명을 통해 '성공'이 64장 있어야 승산이 있다는 결론이 도출되는데,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조금 응용하면 카드 배틀물에서도 활용할 만한 아이디어라 생각됩니다.

"폭설이 내린 오크가의 아침"

폭설이 내린 날, 유력한 보석 강도 용의자의 알리바이를 깨기 위해 눈이 내린 시간을 알아내는 이야기입니다. 제설차가 오전 6시부터 눈을 치우기 시작해서 처음 한 시간 동안 4블록을 이동하고, 그다음 한 시간 동안에는 2블록밖에 이동하지 못했다는 증언을 토대로 미적분을 동원하여 눈이 처음 내리기 시작한 시간을 밝혀냅니다. 알리바이 깨기의 수학적 응용이라는 측면에서는 백만 점을 주고 싶을 만큼 좋은 아이디어로 보입니다. 다소 어렵기는 했지만, 재미있었습니다.

2009/08/31

미스터리 채널

일본은 역시 장르문학 강국답게 미스터리 전문 채널이 있네요. 이름하여 "미스터리채널!!"

자주 방문하는 추리동호인 커뮤니티 "하우미스터리" 게시판에서 보고 찾아가 보았습니다.

찾아본 결과는 역시나 왕부럽~ 주간 편성표만 봐도 대단하네요. 미스마플과 포와로 시리즈 등 아가사 크리스티 시리즈, 셜록 홈즈 시리즈 및 쿠르트 발란더 시리즈 등 친숙한 시리즈는 물론이고, 국내에는 번역조차 되지 않은 프로스트 시리즈, 달지엘 시리즈 등 다양한 시리즈 물을 비롯해서 에드가 알란 포 극장, 로열드 달 극장과 같은 다양한 단편 미니시리즈 물 등 편성이 너무나 화려해서 눈이 부실 지경입니다.

국내에도 이런 방송이 들어온다면 참 좋을텐데 아쉽네요. 캐드펠 시리즈나 홈즈 시리즈, 모스경감 시리즈 등은 간혹 국내 케이블에서 방영해 줬던 기억이 나긴 하지만 아무래도 단발성에 그친 느낌이 강한데 좀 지속적으로 방영해 주면 어떨까 싶어요. CSI 와 같은 최신 미드와 같이 병행 방영한다면 나름 장르 드라마 전문 케이블로 특화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죠. 즉 저같은 고전 팬을 위한 고전과 미출간 정통 추리 시리즈와 국내에도 팬이 많은 최신 추리 미드들 (CSI는 물론이고 넘버스 등등 많죠) 을 교차 편성해서 다양한 팬을 흡수하면 어떨까요? 장르전문 채널이니 SF나 스릴러(히어로스, 갤럭티카, 스타트렉, 로스트 등) 까지 아우르면 더욱 좋을테고 말이죠... 하아....

방송 도입이 어렵다면 여기 등장하는 여러 시리즈 원작물이라도 도입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2015/01/23

연쇄살인범 지도 매핑 - 브렌다 랠프 루이스 / 이경식 : 별점 2점

연쇄살인범 지도 매핑 - 4점
브렌다 랠프 루이스 지음, 이경식 옮김/휴먼앤북스(Human&Books)

이런 류 연쇄살인범 관련 논픽션은 그동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꾸준히, 많이 읽어왔습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애호가로서의 흥미, 그리고 창작을 지망하는 사람으로서 자료 및 아이디어 확보 측면에서 말이죠. 허나 세계적인 연쇄살인마가 흔한 것도 아닌만큼 몇권 읽으면 충분하기는 합니다. 특히나 미국에서 발표된 책이라면 미국 중심이기에 미국의 유명 살인마들 - 에드 게인, 테드 번디, 샘의 아들, 나이트 스토커 등등 - 은 이제 지겨울 정도로 많이 알고 있기도 하고요.

그래도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제목 때문입니다. 연쇄 살인범의 범죄 행각을 지도에 매핑했다는 제목에서 뭔가 색다른 것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거든요. 미드 <넘버스>의 에피소드 하나가 떠오르기도 했어요. 수학자 동생이 무작위로 보이는 범죄 행위가 실제로는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수학이론을 통해 밝혀내고 (범인이 범행 장소와 자신과의 연관성을 숨기기 위해 무작위적으로 범행 장소가 바뀌지만 이러한 무작위는 외려 작위적인 수열을 형성하므로 그 시작점을 수학적으로 알아낼 수 있다.. ) 범인이 어디 있을지 추론하던 에피소드였죠.

그러나... 지도 매핑은 그냥 범죄 행위를 지도에 그려놓은 것일 뿐이라 실망스러웠습니다. 지도가 실려있을 뿐 연쇄살인범들과 그들의 범죄행각을 요약해서 소개해주는 방식은 다른 책들과 대동소이해요.
물론 이 책만의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도가 별 정보를 전해주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없는 것 보다는 당연히 있는 것이 낫고 그 외의 도판들, 예컨데 피해자 사진들이 조금 더 많이 수록되어 있는 점도 괜찮았어요.
무엇보다도 다른 책에서는 보지 못했던, 비키니 살인마 찰스 소브라즈, 트럭 운전사 연쇄 교살범 폴커 에케르트 등의 연쇄살인마들이 수록되어 있는 점에서는 나름 가치가 있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씌여졌기에 최근의 범죄, 배낭여행객 살인자 이반 밀라트나 유명한 사건이었던 워싱턴의 저격수 존 앨런 무하메드와 리 보이드 말보, 베르사체 저격범 이야기가 실려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얼마전 보았던 영화 <툼스톤>의 원작 <무덤으로 향하다>의 범인들 모델로 생각되는 싸이코패스 컴비인 태평양 연안 고속도로 살인마 비태커와 노리스 이야기도 충격적이고 놀라왔습니다.


다른 책들에 비해 소설처럼 조금 더 생생하게 쓰여진 것과 체포와 수사 과정 및 범인들이 체포된 이후 사법거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던가, 사형을 기다리고 있다던가, 사형을 당했다던가, 아니면 놀랍게도 해당 국가의 형법이 정해져 있어서 석방되었다던가! (안데스의 괴물 페드로 로페즈) 등의 후일담까지 꼼꼼한 것도 특징입니다. 이반 밀라트 차에 탔던 영국인 여행자가 가방과 여권을 모두 버려두고 달아난 사례처럼 적극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한 경우 의외로 살아난 경우가 많거나, 최소한 범인을 잡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경우가 많다는 것은 처음 알았네요.

허나 장점보다는 제목에 낚인 듯한 기분도 크며 내용도 아주 새롭거나 하지는 않아서 별점은 2점입니다. 이제 이런 책은 좀 많이 지겹습니다...

그나저나 외국 살인자들은 자칭이건 타칭이건 별명이 있는데 참 기묘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식으로 별명을 붙이면 장난스럽다고 엄청 공격받을 것 같은데 말이죠. 국가마다 문화가 달라서 그런 걸까요?

2022/12/04

덜미, 완전범죄는 없다 1 - 한국일보 경찰팀 : 별점 4점

덜미, 완전범죄는 없다 1 - 8점
한국일보 경찰팀 지음/북콤마

국내에서 과학 수사를 통해 해결했던 여러 사건들을 정리한 논픽션입니다. 2부 구성으로 모두 22건의 사건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1부는 특정 과학 수사 기법이 해결에 핵심 역할을 담당했던 대표적인 사건들과 함께 해당 수사 기법이 상세히 소개됩니다. 현장 검증과 검시는 물론이고, 비산 혈흔 등 혈흔 형태 분석, DNA 분석, 프로파일링, 법 최면, 지문 감식, 지리 프로파일링 등이 등장하고, 수사 기법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물론 전문가들에 대한 인터뷰 등 부가 자료들도 빠짐없이 수록되어 있어서 이해를 돕습니다. 사건도 밝혀진 모든 내용이 소개되고 있으며, 사건 현장 사진과 도해로 구성된 사건 상황 등 도판도 완벽합니다. 

2부는 완전 범죄를 노렸지만, 수사관들이 끈질긴 수사로 밝혀낸 사건들이 담겨 있습니다. 사건에 대한 소개는 1부와 마찬가지로 완벽한 수준이에요. 

그래서 별점은 4점입니다. 우리나라 범죄를 다룬 논픽션 중에서는 최고 수준이라 생각됩니다. 아직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께 적극 추천드립니다.

덧붙여, 몇 가지 기억에 남는 사건들을 아래와 같이 소개해 드립니다.

첫 번째는 "마포 만삭 의사 부인 살해 사건"입니다. 의사 남편이 만삭 부인을 살해했던 엽기적인 범행으로, 피고인 남편 측에서 캐나다 법의학 전문가까지 증인으로 불러 법정 다툼이 있었던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이번에 내용을 읽어보니, 남편 범행이 확실하더군요. 피해자의 목졸림 흔적과 얼굴과 몸의 멍자국, 저항하다 생긴 것으로 보인 손톱 밑의 남편 DNA 등 현장 증거가 뚜렸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남편 쪽에서 주장했던, "욕조에서 넘어져 죽은 것 같다"는걸 설명할 수 없는, 피해자 몸의 혈흔과 상처가 결정적인것 같아요. 욕조에서는 혈흔이 발견되지 않았으니까요. 

"양양 일가족 방화 사건"은 무식한 범인이 교과서처럼 단서를 남긴 범행이라 기억에 남습니다. 현장 검증과 검시로 피해자 일가족 시신에서 수면제가 검출되어 누군가 방화를 저지른게 명백하다는게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범인은 경찰 진술에서 필요도 없는 말을 해 가며 자살이 맞다고 주장했고, 결국 현장에서 발견된 차용증 등으로 동기마저 드러나버리고 말았지요. 범행 직후 소방차를 따라 다시 현장에 나타난 것까지, 하는 행동 모두가 추리 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단순 무식한 범인을 연상케합니다.
그나저나, 고작 2,000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어린 소녀가 포함된 네 명의 일가족을 참혹하게 살해한 범인에게 무기징역은 너무 관대한 선고네요. 능지처참하고 저잣거리에 효수를 했어야 하는데 말이지요.

"서울 광진구 주부 성폭행 사건"은 그야말로 한 편의 추리 소설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DNA 감식을 통해 드러난 범인은 범행 당시 수감 중이었지만, 과학수사관 권경사의 추리 덕분에 진범이 체포되기 때문입니다. 범인은 수감 중인 용의자의 일란성 쌍동이라는 추리였지요.

"60대 남녀 변사 사건"은 단순 자연사로 보였지만, 현장 검증을 통해 몇 가지 이상한 정황이 포착되어 살인 사건이라는게 드러났습니다. 현장에서의 구토 흔적과 기묘한 자살 시도 흔적, 그리고 자연사는 이불 한 장만 반듯이 덮고있는게 일반적인데 이불 두 장이 포개져 쌓여 있었던 것, 피해자 옷과 맞지 않았던 방에 떨어져 있던 단추 등이 단서가 되었지요. 검시 결과도 살인 사건임을 증명해 주었고요. 현장 상황과 시신의 모습 등을 분석하는 과정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안성 부부 살인 사건"은 프로파일링이 사건 해결에 핵심 역할을 했다는 데에서 주목할 만 합니다. 잔혹한 현장 모습으로 청부 살인이나 원한 살인이 의심되었지만 프로파일러들은 "돈을 목적으로 한 범죄이며, 근처에서 일어났던 침입 사건의 범인과 동일인물일 것이다. 침입이 발각되어 과도한 공격으로 피해자들을 살해했고, 불을 지르고 도주했다. 최근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몰린 사람이며, 피해자들은 물론 마을을 잘 알고 있는 면식범일 것이다"는 그림을 그려냈습니다. 이는 실제 범인 모습과 일치했지요. 어떻게 보면 좀 뻔한데, 현실은 픽션과는 엄연히 다르다는걸 새삼 깨닫게 됩니다. 

"양주 전원 주택 살인 방화 사건"을 통해서는 지문은 고온에서는 수분이 증발하면서 흔적 자체가 사라지는 특성이 있어서, 화재 현장에서는 '열 사각 지대'에서 집중적으로 지문을 채취한다는 등 실제 현장에서의 지문 감식에 대해서 상세하게 알 수 있었고, "의정부 연쇄 절도 사건"은 이름도 생소한 '지리 프로파일링'을 접하게 해 주어 좋았습니다. 범죄가 발생한 장소와 시간을 토대로 범인이 머무는 곳과 다음 범행 장소를 예상하는 과학수사 기법이라는데, "넘버스"에서 비슷한 이야기가 소개되었던 적이 있지요. 실제 사건을 해결할 정도로 정립된 기법이라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2부의 "고급 전원주택 연쇄 강도 사건"은 완전 범죄를 노린 3인조 일당들이 증거를 남기지 않고 전원 주택을 털었던 사건으로, 집에 설치된 폐쇄 회로 TV는 본체까지 뜯어서 들고갔고, 현장에 남긴 담배 꽁초도 어디선가 주워와 일부러 흘리는 등 굉장히 치밀하게 범행을 저지른 사건입니다. 범행 장소를 오간 차량이 없었다는게 특히 주목할만 합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전원 주택이 산과 가깝다는걸 이용하여, 목표지 인근까지 대포차로 이동한 뒤 야산에서 하루 노숙을 하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하는군요. 현장에 일부러 뿌린 꽁초 중 동일한 DNA가 검출된 탓에 덜미가 잡히고 말았지만, 정말로 대단한 지능범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산 교수 부인 살인 사건"은 한 때 뉴스를 도배했던 사건이라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당시는 범죄 전문가 교수가 경찰과 두뇌 싸움을 벌인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사건 개요를 읽어보니 별다르게 머리를 쓴 부분은 없어서 놀랐습니다. 내세운 알리바이도 엉망이었고, 내연녀를 동원한 시체 유기도 곧바로 경찰에 발각되어 버리고 말았으니까요. 언변만 빼어날 뿐 일개 잡범 수준에 불과했어요. 차라리 앞서의 고급 전원주택 연쇄 강도 사건 범인들 수준이 더 높았습니다. 범인의 직업이 선입견을 만든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겠네요. 이런것도 일종의 미스디렉션이겠지요.

2021/10/03

법정에 선 수학 - 레일라 슈넵스.코랄리 콜메즈 / 김일선 : 별점 3점

법정에 선 수학 - 6점
레일라 슈넵스.코랄리 콜메즈 지음, 김일선 옮김/아날로그(글담)

수학이 법정에서 중요하게 사용되었던 재판에 대해 소개하는 책입니다. 숫자가 잘못 사용되어서 재판 결과가 왜곡된 경우가 많습니다. 독립적인 조건으로 판단하고 곱하면 안되는데, 곱해서 숫자가 엄청나게 커진 경우처럼 대부분 통계와 확률 계산의 오류들이고요. "루시아 더베르크 사건", "샐리 클라크 사건", "콜린스 부부 사건", "조 스니드 사건" 이 대표적입니다. 

루시아 더베르크는 2001년 네덜란드에서 아동 연쇄 살인마로 몰렸던 간호사입니다. 여러 아이가 심정지로 사망했을 때,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었지요. 그리고 그녀가 현장에 있었을 확률이 왜곡되어 재판에 사용되었습니다. 수학은 단지 거들었을 뿐이고, 사실 무리했던 기소와 수사, 그리고 무능했던 변호사의 환장의 콜라보였기에 그녀는 결국 무죄로 풀려났습니다. 오류가 일어난 이유는, 모두 개별적으로 보아야 하는 독립 사건을 곱했기 때문입니다. 

두 아이를 영아 돌연사로 연달아 잃은 뒤, 영아 살해 혐의로 기소되었던 샐리 클라크 사건도 마찬가지에요. 샐리는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을 명명한 메도 박사의 증언으로 종신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박사는 아이 두 명의 죽음을 모두 독립적이라고 생각하고 확률을 계산했었고요. 그러나 유전적일 경우 두 죽음은 독립적이지 않을 뿐더러, 설령 확률이 맞았다 하더라도 이게 샐리의 범행을 증명하는건 아닙니다. 운 나쁘게 불행한 죽음이 닥친 것에 불과하니까요. 여러모로 확률이 잘못 사용된 거지요.

콜린스 부부는 범인과 인상착의가 같을 확률 때문에 체포되었는데 검사측은 LA 시민 중 비슷한 특징을 지닌 커플이 존재할 확률을 계산해서 증거로 제시했었습니다. 부부의 유죄를 입증할 증거는 없었지만, 배심원은 유죄를 선고했고요. 그러나 이 확률 계산이야말로, 오류의 결정판이었습니다 .우선 사용된 값이 문제였어요. "여성이 머리를 묶었을 확률" 은 통계학적 근거에서 나온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든 조건이 독립적이라고 확정하고 곱한 것도 실수였고요. 마지막으로, 설령 그 숫자가 맞다고 하더라도, 이건 샐리 클라크 사건처럼 실제 범인을 찾아낼 확률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대법원에서 판결은 뒤집혔습니다. 이 재판에서 그나마 긍정적이었던건 검찰측 오류를 밝혀내는데 활약했던 트라이브가 법조계 유명인사가 되었고, 법정에서 수학 사용이 자제되도록 영향을 끼쳤다는 것 정도네요. 

"조 스니드 사건"은 1964년 뉴멕시코 실버시티에서 스니드 부부가 살해된 뒤, 용의자였던 아들 조 스니드 재판을 다루고 있는데 재판의 승패는 조 스니드와 권총을 구입했다는 로버트 크로셋이 동일 인물인지를 입증할 수 있느냐에 따라 갈리게 되었습니다. 검찰은 이를 수학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권총을 구매한 사람의 특징 - 신장, 머리 색, 눈동자 색, 사서함 번호, 이름 등 - 을 독립적으로 보고 값을 뽑은 뒤 곱했는데, 이건 수학에 어두운 제가 봐도 설득력없는 숫자로 보입니다. 전체 인구에서 크로셋이라는 이름이 나올 확률을 추산했다? 가명을 썼다면서 그 이름이 존재할 확률을 계산한다는건 이상하지요. 다른 조건과 값도 비슷해서, 결국 이 확률 계산은 재판과는 관계가 없는, 무의미한 숫자일 뿐입니다. 설령 숫자가 어느정도 근거가 있다 하더라도, 이 숫자는 조 스니드와 로버트 크로셋이 동일 인물이라는 결론과는 상관도 없고요. 오히려 이런 검찰의 삽질이 드러나서, 수학이 사용되지 못했던 항소심 이후의 법정 공방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검찰은 다른 한 방을 준비해야 했기에, 변호인측과 드라마틱하면서 치열한 공방을 벌였으니까요. 참고로, 여기서 검찰이 마지막 날린 한 방은 스니드의 전처를 증언대에 세웠던 겁니다. 그녀가 스니드의 폭력 성향을 입증했던 덕분에, 스니드는 종신형을 받게 되었지요.

이렇게 수학이 재판 결과를 왜곡시킨 사건도 있지만 수학이 잘 사용된 경우도 있습니다. 2007년 11월, 이탈리아 페루자에서 영국인 유학생 메러디스 커처가 살해된 뒤, 룸메이트였던 미국인 어맨다와 남자친구 라파엘이 체포되었던 "어맨다 녹스 사건"은 재판 결과야 어찌 되었건, 수학은 증거로 유의미하다는걸 나름대로 증명했습니다. 여기서 앞 뒤가 나올 확률이 다른 동전을 이용한 설명도 좋았어요.

그런데 몇몇 사건은 주제와 벗어나 좀 아쉬웠습니다 .폰지 사기의 원조 찰스 폰지 사건 재판은 그의 사기가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설명하기 위하여, 월가의 마녀로 불렸던 해티 부인 재판과 역사적으로 유명한 드레퓌스 재판은 수학이 서명과 필적 위조를 입증하는데 사용되었지만, 실제 재판 결과와는 별 상관은 없었으니까요. 재판 이야기는 굉장히 재미있었지만요. 드레퓌스 재판은 워낙 유명해서 이 책에서 따로 짚고 넘어갈 필요도 없어 보였고요. 저 같은 초보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수식이나 계산이 사용된 경우가 많은 점도 단점이기는 합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했습니다. 수학 교양서로도 충분했고, 소개된 재판들 대부분이 한 편의 법정물을 읽는 듯한 재미를 가져다 주었으니까요. 별점은 3점입니다. 비슷한 책으로 "넘버스"가 있는데, 재미 면에서는 이 책의 압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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