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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4

마음의 지배자 - 김현중 : 별점 3점

마음의 지배자 - 6점
김현중 지음/온우주

언젠가 인터넷에서 원사운드가 그린 "묘생만경" 만화를 읽고 관심이 가던 차에, 알라딘 헌책방에서 저렴하게 파는걸 확인하고 구입한 작품입니다. 헌 책을 충동 구매하지 말자고 결심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가격이 너무 착했단 말이지요. 

다행히 결과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꽤 재미있게 읽었거든요.
특징이라면 우선 독특하고 기발한 설정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점입니다. 듀나의 작품들처럼요. 그러나 듀나 작품들보다는 완성도는 훨씬 높습니다. 설정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작가의 생각을 충실히 이야기에 담아낸 덕분입니다. 남과 다른, 뛰어난 존재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는 특징도 있는데, 작가의 영원한 화두가 아닐까 싶습니다.

결말도 확실하고, 작가의 고민과 다양한 시도 및 이야기 별 다양한 결말 -그냥 한 계단 위에서 바라만 본다는 "묘생만경", 남들의 두려움을 통해 신으로 거듭난다는 "마음의 지배자", 블랙 코미디인 "그의 지구 정복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남과 다르다고 가장하고 있을 뿐 다 똑같다는 "우리는 더 영리해지고 있는가", 능력을 발휘 못하고 찌질하게 살다가 한걸음 더 내딛는다는 "물구나무 서기" 등 - 을 선보이는 점도 마음에 듭니다.

기존에 널리 알려진 아이디어의 변주가 많은 등 아쉬움이 없지는 않지만, 단순한 설정 바꿔치기는 아닙니다. 나름의 아이디어가 바탕이 되어 있으며 재미도 수준급인 좋은 단편집입니다. 한국 SF 와 장르 문학이 착실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걸 알려주네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아직 읽지 않으신 장르 문학 팬이시라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덧붙이자면, 원사운드가 그린 리뷰 만화를 읽고 책을 산게 이번이 두 번째인데(첫 번째는 이거) 제게는 100% 확률입니다. 원사운드는 리뷰 만화만 그려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지 않을까요? 하여튼, 제가 언젠가 책을 낸다면 제 책 리뷰를 좀 부탁드리고 싶네요.

단편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묘생만경" 

이 책을 구입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원사운드 만화의 원작입니다. 만화는 3~4페이지 분량에 불과한데, 원작을 굉장히 잘 압축한 결과물이라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대사도 그대로인데 만화에 적절한 것만 잘 가져다 썼고, 꼭 필요한 설정 중심으로 이야기를 짤막하게 잘 풀어내었더라고요.

그런데 반대로 이야기하면, 원작에는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많다는 말도 됩니다. 무엇보다도 화자인 고양이 '나'가 영물로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을 갖추었다는 설정은 불필요했어요. "펠리데"처럼 뛰어난 지능 자체가 설정과 이야기의 핵심으로 활용되면 모를까, 이야기에는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군더더기였을 뿐입니다.

그래도 세 가족과 닭 스무 마리, 개 세 마리라는 전원 주택을 무대로, 닭들 사이의 치정극을 통해 무시무시한 사건이 휘몰아친다는 범죄 스릴러라는 독특함은 누가 뭐래도 최고였습니다. 이런 작품을 또 볼 수나 있을까요? 이런 작품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부럽네요. 별점은 4점입니다.

"마음의 지배자" 

표제작으로 초능력자가 어떻게 주위의 두려움을 불러오고, 어떻게 박해 받으며, 또 어떻게 신이 되는지를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보통 이런 류의 이야기는 초능력자들이 능력을 각성한 뒤 무언가 사명을 짊어진다는 이야기, 혹은 자신이 세계 정복 같은 야심을 드러내는 이야기가 많은데 이를 고등학교를 무대로 하여 일상계처럼 담담하게 풀어내었다는 나름의 차별화 요소가 돋보입니다. 초능력자인 민국이 아니라 주변인물들 중심으로 묘사와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도 신선했고요.

두려움과 탄압만 있을 뿐 추종자는 없다는 점이 실제 현실과 괴리감을 느끼게 하며, 초능력자가 악인들과 손을 잡는 이유도 불분명한 등 아쉬운 부분도 없지는 않아요. 그래도 신과 기적 등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그의 지구 정복은 어떻게 시작됐나" 

김사장의 맘모스 마트와 우주행성 K9242의 정복 유닛이 서로의 이해가 일치한 행위를 하고 있었다는 블랙 코미디 SF입니다.

사람이 많이 오가기를 원하는 김사장, 그리고 기억 유닛을 찾기 위해 이동하는 사람들에게 부분체를 부착하기를 원하는 정복 유닛이 같은 목적을 위해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이 화려하게 펼쳐집니다. 김사장의 계획은 충분히 그럴듯할 뿐 아니라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것들이며, 정복 유닛의 씨앗 옮기기 계획 역시 전형적인 식물의 행태를 잘 응용하고 있어서 설득력도 아주 높아요. 작가의 첫 작품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완성도입니다.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지배인의 머릿 속에 기억 유닛이 들어가 있었다는 결말입니다. 앞 부분에서 약간의 설명이라도 있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겁니다. 이대로라면 급작스러운 감이 없잖아 있거든요. 그래도 재미 만큼은 보장할 수 있는 좋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우리는 더 영리해지고 있는가" 

아인 시술이라는, 머리가 좋아진다는 수술이 유행한 뒤의 세계를 그린 SF 단편입니다. 아인 시술은 효과는 증명되지 않았지만 비용, 그리고 흉터가 남기 때문에 부자들이 주로 시술 받고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이룬다는 설정이 핵심이고요. 

사실 이 시술을 통해 선민 의식을 갖는다는 설정은 특별한 건 없습니다. 부자만 기계 인간이 된다는 이야기와 다를 건 없으니까요. 그러나 이 시술이 효과가 없을 수 있다!는 반전이 기가 막힙니다. 시술이 사기인지 아닌지 결국 밝혀지지 않는 점도 좋으며, 시술의 효과를 입증하기 위한 일종의 트릭도 효과적으로 사용되어 재미를 더하네요. 수진을 통해 상류층도 결국 허상일 뿐이라는 진실을 드러내는 것도 마음에 들고요.

다만, 앞서 언급했듯 뻔한 설정 탓에 이야기의 전체 분위기와 느낌에서 여러 다른 작품들이 떠오르며(개인적으로는 "가타카" 가 많이 연상 되었습니다), 등장인물들이 스테레오 타입이라는 건 아쉽습니다.

그래도 매력적인 이야기 임에는 분명하기에 제 별점은 4점입니다. 우리나라에 장르 문학 원작을 주로 다루는, 미국으로 따지면 "환상특급" 같은 TV 쇼가 있다면 영상화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구나무서기" 

일종의 투시 능력을 갖춘 초능력자 김서권의 일대기입니다. 종도라는 섬에서 물구나무 서기를 혼자서만 못했던 김서권이 어느새 모든 것이 거꾸로 투영되는 투시력을 갖추고, 이를 이용하여 여러가지 일을 경험하다가 최후를 맞는다는 내용이지요.

김서권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종도에서의 이야기와 현재의 대형 운석으로 인한 지구의 위기가 교차 편집되다가 '물구나무 서기'로 현재의 초능력이 시작됨을 알려주고 끝나는 구성입니다. A와 B가 동시에 전개되는데, A는 B의 발단이라는 결말과 함께 B도 끝나는 식이지요.

우선 '물구나무 서기'라는 것을 키워드로 한 디테일이 볼거리입니다. 한번도 물구나무 서기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이런걸 이런 이야기로 만들어 낸 작가의 상상력이 참 대단하구나 싶었어요. 물구나무 서기와 초능력이 연결되다니! 그 외에도 김서권이 꿈에서 보는 "검은 옷을 입은 남자" 의 정체가 운석이라던가, 한발두발 내딛어 물구나무 서기를 함으로 투시를 하고, 물구나무 서기와 같은 원리라 투시는 뒤집혀서 보인다는 등의 디테일들도 볼 만 합니다.

하지만 한 편의 이야기로서의 완성도는 좀 애매했습니다. 죽음 직전에 신을 본다는 신학적 담론을 SF의 형태를 빌어 써내려간 작품인가? 싶은데 그렇다고 보기에는 너무 부수적인 이야기가 많아 혼란스럽거든요. 어린 시절 종도에서의 할아버지 환갑 잔치에 대한 장황한 묘사, 현재의 김서권이 무당과 손 잡았다던가 결혼에 실패했다던가 하는 이야기들이 그러합니다. 재미는 있는데 주제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솔직히 모르겠더라고요.

책 뒤의 편집자 글이나 인터넷 상에서의 리뷰를 보면 이 작품을 최고로 치는 분위기인데 개인적으로는 그냥 그랬어요. 너무 멋을 부리려고 하지 말고 핵심에 집중하는게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피노키오" 

로봇들을 활용한 전쟁이 끝난 후, 이야기를 꾸며내는 재주가 있는 로봇이 발견되었다. 그 로봇은 자신의 사명을 잃은 채 극장에서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는데...

역시나 재미있는 설정을 갖춘 작품이지만,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작위적인 요소가 강하고 설정도 별로 디테일하지 않으며 결말도 예상에 가까운 범작입니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우화에 가깝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거짓말만 하는 로봇 둘이 일종의 논리 게임을 펼치는 식으로 전개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서로 진짜 사명이 무엇인지, 폭발하는 조건이 무엇인지 거짓말만 하면서 내용을 파헤치는 두뇌 게임 스타일로 말이지요. 이러려면 지금보다 거짓말 조건이 더 상세하게 설정되었어야 했지만요.

하여튼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평범합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부안 왕손이" 

거대 포크레인이 약간의 고장으로 무의미한 작업만 반복하는 현장으로 팔려간 후, 아파트 단지에 거주하는 소녀의 하트 수신호를 받은 후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 거대한 하트를 그린다는 일상계 판타지입니다.

실제로 전라도 사투리 가득한 왕손이의 의인화 묘사가 돋보이며, 아파트 단지 소녀의 하트 수 신호의 진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수수께끼 풀이도 흥미롭습니다. 무엇보다도 롯데 월드 공사 시에 작가가 목격했던, 단지 공사가 진행되고 있음을 드러내기 위해 진행된 무의미한 단순 반복 작업을 가지고 이러한 이야기를 그려낸 작가의 상상력에는 박수를 칠 수 밖에 없네요.

그러나 하트 수 신호의 진상은 조금 생뚱맞은 데가 있고, 결말도 지나치게 낙관적인 해피 엔딩이라는 건 별로였습니다. 매력적인 도입부, 설정, 전개에도 불구하고 결말 때문에 맥이 풀리는 느낌까지 들거든요. 분위기 상으로는 판타지 버젼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처럼 사회 고발적인 내용으로 흘러가는데 훨씬 좋았을 거에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뱀과 소녀" 

뱀 신을 모시는 섬에서 뱀을 죽인 아이들에게 닥치는 일을 그린 단편입니다. 초자연적 존재(?)에 의한 일종의 호러물로 섬을 벗어날 수도 없고, 재앙이 다가오는 막막한 상황은 인상적입니다. 

그러나 어떤 마을이 있고, 이방인이 그 마을의 금기를 어겨 끔찍하게 살해 당한다는 흔해빠진 이야기를 이방인이 아니라 그 마을 주민, 그것도 반항심 많은 꼬마 아이가 금기를 어긴다는 약간의 변주만 준 셈이라 애초에 새롭거나 신선한 느낌을 받기는 힘듭니다.
또 민박집 손님은 누구고, 뱀을 어떻게, 왜 모시는 지와 뱀의 영향력도 설명되지 않아서 공포심을 자아내기는 무리입니다. 뭐가 어떻게 될지 대충은 알아야 무서운데, 지금은 그냥 수희 혼자 어둠 속에 남은게 전부니까요. 이래서야 한 편의 이야기로 성립하기도 힘들죠.

지금의 결과물은 주인공 소녀 수희가 어둠 속에서 무언가 흔적을 남기고(뭐 그런 거 있잖아요, 뱀 신상 뒤에 피로 글자를 쓴다던가), 그것이 이후 섬을 찾아와 금기를 어기고 쫓기는 신세가 된 이방인에게 발견되는 장면에서 효과적으로 쓰임직한, 긴 이야기의 도입부 정도에 불과해 보입니다. 이 단편집을 위해 새롭게 쓴 작품이라는데 이래서야 차라리 수록하지 않는 게 더 좋았을 거에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2019/11/24

엘데가인 - 인도하는 신 1~3 - 츠부라 히데토모 : 별점 2.5점

아먀야데와 루아이소테라는 두 제국이 10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날개달린 용족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계에서 살고 있는 소년 장은 우연히 루아이소테의 비행정에서 떨어진 류미르라는 소녀를 만났다. 그녀는 '엘데가인'의 비밀을 알고 있는 불사신 소녀로, 스스로 세계의 지배자가 되려고 하는 루아이소테의 가로우즈 준장이 노리는 탓에 다시 납치되었다.
모진 고초를 겪던 류미르를 장이 대활약하여 구조했지만, 엘데가인의 기동을 멈추기 위해 찾아간 죽음의 섬에서 결국 장은 죽고 류미르는 가로우즈에 흡수되고 말았다.

강대한 힘을 손에 넣은 가로우즈는 세계를 멸망시키고 모든 동식물을 스스로 만들어내어 새 시대의 창조주가 되려고 나섰고, 용족이 초능력으로 가로우즈의 공격을 필사적으로 막아내는 상황에서 장은 류미르의 아버지의 도움으로 재생되어 가로우즈와 최후의 결전을 벌이는데....

츠부라 히데토모의 판타지 액션 만화입니다. 국내에서는 잊혀진 전설의, 비운의 명작 쯤으로 추억되고 있는 덕분에 절판된 국내판 해적판의 중고가가 엄청난 가격으로 형성되어 있지요.
"우주 영웅 전설"과 "사일런트 메비우스" 정도만이 그나마 이름을 남긴 가도카와 계열의 월간 코믹 COMP에 연재되었던 작품으로 고등학생 때인가.... 강남 고속 터미널에 있었던 일본 서적 판매 서점에서 단행본으로 구입해 보았던 책인데, 우연찮게 다시 보게 되어 리뷰를 남깁니다.

그런데, 솔직히 다시 보니 '잊혀진 비운의 명작'은 절대 아닙니다. 전형적인 '보이 미트 어 걸' 이야기의 재탕이니까요. 게다가 "라퓨타"나 "미래소년 코난"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기도 했고요. 여주인공 류미르가 강력한 힘을 가진 인간형 로봇과 함께 엮여 있으며, 그녀가 기묘한 최종 병기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설정은 이 두 작품과 판박이입니다. 현재의 세계는 과거의 고대 문명이 멸망한 뒤의 세계라는 설정, 판타지와 SF가 기묘하게 섞여 있는 묘사들도 '미야자키 월드'의 한 부분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고요. 심지어 지배자인 '흑룡'의 생각과는 다르게 이 힘을 자신이 손에 넣어 세계를 자기 뜻대로 하려는 가로우즈 준장 역시 '무스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전형적인 미야자키 악당입니다.

물론 미야자키 월드와의 분명한 차이점은 존재합니다. 가장 큰 특징은 주인공 장이 '순동술'이라는 기술을 쓸 수 있는 초능력자로 액션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장의 형인 소시유와 시안 등 술사 동료들, 가로우스와 루아이소테 제국의 술사들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러나 초능력자들의 대결은 별다른 새로움을 주지는 못합니다. "바벨 2세"이후 "초인 로크" 등 수많은 작품에서 반복된 것을 또 보여줄 뿐입니다. 오히려 가로우즈가 마지막에 융합한 류미르와 분리되며 '칩'을 잃은 뒤 살아있는 고깃덩어리같은 형태로 폭주하는 장면 등에서 당대에 큰 충격을 안겨다주었던 "아키라"의 영향만 강하게 느껴지고요.

이야기도 많이 허무합니다. 달랑 3권 분량인데, 1권과 2권에서는 장이 납치된 류미르를 구한다, 다시 류미르가 납치된다, 그녀를 다시 구해온다, 다시 납치된다...만 반복되며 3권에서는 가로우즈와 장이 파워업하여 일기토를 벌이는 내용이 전부라 밀도가 높다고 할 수 없으며 독특한 세계관과 매력적인 술사들의 개성을 모두 다 잘 살렸다고 보기도 힘듭니다.

그래도 지금도 가끔 회자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인상적인 작화 때문일 겁니다. 꼼꼼한 펜터치가 돋보이는 정성 가득한 아날로그 시절의 작화로 작가의 노력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이 작화로 그려낸 액션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에요. 정말 손으로 한 땀 한 땀 그려내고 있거든요. 주요 등장인물 및 몬스터까지 아우르는 캐릭터 디자인도 좋습니다. 무엇보다도 류미르가 굉장히 귀엽게 묘사되어 읽는 재미를 더해주고요. 류미르의 매력이 작품의 절반 이상은 충분히 차지한다고 생각되네요. 솔직히 3권에서 장이 파워업한 뒤 급작스럽게 성장한 외모는 전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요.

지금 읽기에는 많이 낡았고, 시대를 뛰어넘을만한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작품은 아닙니다. 신인급 작가가 정성들여 그린 작화와 통통 튀는 매력이 넘치는 등장인물들, 화려한 액션 모두 평균 이상이지만 기본적인 이야기에서 참신함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시대에 이름을 남기는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새삼 느끼게 해 주네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13/08/01

세계사를 뒤흔든 발굴 - 이종호 : 별점 3점

세계사를 뒤흔든 발굴 - 6점 이종호 지음/인물과사상사

유명한 역사적 발굴과 발굴 대상에 대해 다룬 책.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 [1장] 발굴의 황금시대를 열다 - 거대한 무덤 건축물의 상징이 된 마우솔레움
  • [2장] 알렉산드로스의 청을 거절한 자존심 - 고대인의 마지막 도피처, 아르테미스 신전
  • [3장] 고고학 발굴사의 기념비를 세운 슐리만 - 트로이 목마의 진실은 무엇인가?
  • [4장] 신화와 역사가 만나는 곳 - 사라진 대륙, 아틀란티스를 찾아서
  • [5장]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를 찾아 - 니네베의 점토판에서 발견한 길가메시와 노아
  • [6장] 무와탈리와 람세스 2세 - 카데시 전투에 대한 두 가지 기억
  • [7장] 또 다른 메시아의 이름은 무엇인가? - 사해문서와 기독교인들의 딜레마
  • [8장] 세계사를 움직인 공포 - 황금의 제국, 스키타이
  • [9장] 제국의 영원한 지배자를 꿈꾼다 - 지금도 시황제의 명령을 기다리는 병마용
  • [10장] 오빌의 전설과 인간의 탐욕 - 밀림 너머의 낯선 풍광, 대짐바브웨

목차만 보아도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빠져들 수밖에 없겠죠? 이 중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마우솔레움, 아르테미스 신전, 아틀란티스와 크레타 섬의 유적, 스키타이 유적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마우솔레움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지만 피라미드, 로도스의 거상, 바빌론의 공중정원 등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못했죠. 개인적으로도 잘 몰랐고, 그동안은 뭐 딱히 대단할 게 있을까 싶기도 했고요. 그러나 왠걸! 피라미드와 비교할 만한 거대한 건축물로, 이름 자체가 거대 무덤 건축물을 뜻하는 고유명사가 되었다는 이 건물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대단했어요. 건축에 대한 역사와 발굴에 얽힌 일화도 재미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출토된 유물들의 수준이 정말로 대단해서 입을 다물기 어려울 정도더군요. 제가 보아왔던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 유물 중에서도 최고급이더라고요. 이 거대 유적을 파괴하여 자신들의 요새를 만드는 데 사용했다는 무식한 야만인 십자군 기사들이 원망스럽기까지 한데, 뭐 대부분 천벌을 받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두 번째의 아르테미스 신전 역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잘 몰랐던 내용을 많이 알게 되어서 좋았습니다. 다산의 상징 같아 보이는 여신상 등 유물들은 물론 발굴에 얽힌 이야기도 흥미로웠고요. '이교도'의 유적이라 하수도나 건축 보강 자재로 쓰였다는 운명이 안타까운데, 제대로 복원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크레타 섬의 미노스 문명을 소개하며 아틀란티스 전설에서 시작하여 그에 얽힌 다양한 이론들을 펼쳐내는 부분은 이런 류의 가상 역사물(?)을 보는 재미가 있더군요. 모든 문명의 기원이 아틀란티스일 것이라는 대담한 견해 등이 펼쳐지니까요. 무엇보다도 다른 자료에서는 많이 접해보지 못했던 크레타 섬의 유적 역시 압권이었습니다. 직접 크레타 섬에 가서 보고 싶어질 정도로 말이죠. 크레타 섬의 멸망이 이웃 산토리니섬의 화산 폭발 때문이라는 마지막 결말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재미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스키타이 이야기도 마우솔레움, 아르테미스 신전 이야기와 같이 잘 모르던 것을 알려준다는 게 마음에 들었어요. 이래저래 많이 들어봤지만 실체는 잘 몰랐던 스키타이 민족에 대한 상세한 소개는 물론 그 뒤를 이은 사르마트족은 아마존의 후손으로 알려졌다는 내용 등 여러 가지 설명이 가득하거든요. 이른바 황금의 민족이라는 스키타이의 유물 소개 역시 충실하고요. 사실 유물은 딱히 대단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만...

이외에도 길가메시 서사시와 노아의 방주 이야기의 유사성을 다룬 내용도 괜찮았어요. 아라라트산 방주 유적으로 끝맺는 마무리는 좀 뜬금없긴 했지만 말이죠.

그러나 위의 이야기를 제외한 나머지는 너무 잘 알려진, 또는 잘 알고 있는 것이라는 단점은 있습니다. 특히 슐리만과 트로이, 미케네 제국 발굴 일화와 병마용갱은 이 책에 수록될만한 비중 있는 발굴이라는 것은 동의하나, 새로운 정보가 하나도 없어서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병마용갱은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웨난의 "부활하는 군단"을 이미 읽었기에 더욱 그러했어요. 각종 다큐 등에서 많이 접했던 사해문서 이야기도 뻔하기는 마찬가지였고요.

또 중반 이후에는 유적과 역사에 대한 내용에 집중하고 있어서 제목에서의 "발굴"의 비중이 많이 줄어든다는 점도 아쉬웠습니다. 마지막 대짐바브웨 유적에 대한 것은 인종차별 정책으로 인한 폐단 이외에 역사적, 고고학적으로 다루어지는 내용은 별게 없어서 이 책에 실릴만한 이야기는 아니라 생각되었고요.

그래도 결론적으로는 추천. 고대 문명, 유물, 유적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누구나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는 책임에는 분명합니다. 도판도 무척이나 충실하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영상물로 접하는 게 훨씬 나은 콘텐츠라 생각되는데, 다큐멘터리로 나와주면 좋겠네요.

2021/01/17

향신료의 지구사 - 프레드 차라, 강경이 : 별점 2.5점

향신료의 지구사 - 6점
프레드 차라 지음, 강경이 옮김, 주영하 감수/휴머니스트

기대가 컸던 "스파이스"에 큰 실망을 한 뒤 집어들게 된, 향신료를 주제로 한 식문화사, 미시사 서적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스파이스" 보다는 훨씬 나았습니다. 주요 향신료 5개 - 시나몬cinnamon(석란육계), 클로브clove(정향), 블랙페퍼 blackpepper(흑후추), 넛메그 nutmeg(육두구), 칠리페퍼chilli pepper(고추)- 에 대한 상세한 설명부터 시작하는 도입부부터 마음에 듭니다. 어떤 물건에 대해 설명하려면, 그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려주는게 먼저인게 당연하니까요.
또 큰 세계사 흐름과의 연결도 잘 정리되어 있는 편입니다. 동서간의 만남, 신대륙의 발견에는 향신료가 주요한 목적 중 하나였다라는걸 잘 알 수 있었거든요. 이러한 노력에 의해 대항해 시대와 제국주의 식민지 시대로 진행되는 과정과 향신료 교역의 관계에 대해서도 잘 알 수 있도록 설명해 주고요.

뒤이어 고대와 로마, 중세, 대항해시대, 산업혁명기, 현재에 걸쳐 각 시대별로 향신료가 어떤 향신료가 어떤 경로로, 무엇을 위해 누구에 의해서 유통되었는지를 소개하고 있는데, 이 역시 핵심만 잘 짚고 있어서 깔끔하고 이해하기 쉽습니다. 특히 "스파이스"에서는 설명되지 않았던 여러가지 사항에 대한 소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간략히 소개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우선,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단순한 '선물' 정도만 전해주고 페퍼를 싣고 올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다 가마 일행부터가 캘리컷 힌두 지배자 사마린에게 보잘것없는 선물을 바쳤다고 하니까요. 선물이 통하지 않는다는걸 알고 난 뒤, 대포로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고요. 덕분에 포르투갈은 16세기 초반, 유럽에서 소비되는 페퍼 대부분의 공급을 장악했습니다.
그러나 홍해로 들어가는 길목의 이슬람 항구를 함락할 수는 없어서, 주도권을 결국 네덜란드에게 내어 주고 맙니다. 이유는 설명되지 않지만, 홍해 길목의 항구는 당시 최강대국이었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관할하에 있었을테니, 엄청나게 먼 항로를 거쳐 와야 하는 포르투갈 함대가 공략해서 정복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을겁니다. 아울러 이 책에 따르면, 포르투갈의 성공은 아시아 세력이 해상 무역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고도 하고요. 당연히 홍해를 거친 육로를 통한 향신료 거래가 유통의 중심이었고, 포르투갈이 차지한건 전체 향신료 거래의 약 5퍼센트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궁금했었는데 속이 다 시원하네요.

포르투갈 이후 네덜란드가 포르투칼의 동방 교역로를 차지할 수 있었던건 향신료 거래 시 현지 세력과 은화로 거래했기 때문이라는건 새로 알게 된 사실입니다. 물론 네덜란드도 동인도 제도의 세 가지 주요 향신료는 반다 제도는 정복 후 노예화 과정을 통해 장악했지만요. 2006년 세계적인 사학자 펠리페 페르난데스 아르메스토가 유럽인의 열대지방 진출에 대해 요약한 말 그대로, “그들은 포옹으로 시작해서 학대로 태도를 바꾸더니 유혈 사태로 마무리했다." 인 셈이지요.
또 포르투갈처럼 네덜란드도 향신료 교역을 완전히 장악하지는 못했는데, 이유는 중국인을 비롯한 동아시아인이 해상을 지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포르투갈과 네덜란드가 향신료 생산지역의 내륙으로 침투할 수 있었던 것은 토착 세력이 공백 상태에 있었던 덕분이었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중국인은 무슨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약간이지만 설명되어 있어서 마음에 듭니다. 유럽이 아시아에 진출하기 몇 세기 전부터 중국인은 향신료 교역망에 뛰어들어 페퍼, 클로브, 넛메그, 시나몬을 구해갔고, 아시아 내 교역은 서로간에 쉽고, 상호 존중하는 관계로 이루어져서 중국인은 원하는 향신료를 얻기 위해 그다지 많은 노력을 들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페퍼는 베트남, 인도네시아에서 재배되었으니 중국은 굉장히 가까왔고, 시나몬과 넛메그는 중국에서 재배되었기 때문이지요. 만약 중국이 항로를 장악할 생각이었다면, 유럽과의 동서 대전이 훨씬 이른 시기에 일어났을지도 모르겠어요.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그랬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사뭇 궁금합니다.

이후 향신료가 쇠퇴하는 과정은 "스파이스" 설명과 거의 같지만, 훨씬 깔끔하게 요약되어 있습니다. 향신료 산업의 현재도 알려주면서 마침표를 찍는 구성도 마음에 들고요. 도판도 최고 수준인 등 책 자체의 완성도도 높습니다.

번역이 아주 마음에 들지는 않고, 주요 부록이라 할 수 있는 조선 시대 향신료에 대한 설명은 단순히 문헌 번역 인용에 그칠 뿐이라 조금 아쉽습니다만, 이 정도면 기본은 된다고 생각되네요. '지구사' 시리즈는 항상 기본은 해 주는 것 같아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05/04/06

피의 수확 - 대쉴 해미트 : 별점 2.5점

피의 수확 - 6점
대쉴 해미트 지음, 이가형 옮김/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컨티넨털 탐정사의 탐정인 일명 "컨티넨탈 옵"은 파슨빌(포이즌빌)이라는 광산촌 마을의 신문사 사장인 도널드 윌슨에게 모종의 일을 의뢰받고 찾아왔지만, 도널드는 이미 살해된 상황이었다. 옵은 도널드의 아버지이자 실질적인 마을의 지배자인 에리휴 노인을 찾았고, 에리휴로부터 새로운 의뢰를 받았다. 에리휴가 마을을 지배하기 위해 불러왔지만, 오히려 그를 넘어서는 권력을 휘두르게 된 악당들 - 핀란드인 피터, 루 야드, 경찰서장 누넌, 도박사 호이스퍼-을 제거해 달라는 의뢰였다. 옵은 책략을 통해 악당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갔고, 자신이 살해한 것으로 오해받은 다이나 브랜드라는 호이스퍼의 정부 살인 사건의 진범까지 밝혀낸 후, 파슨빌의 재건을 뒤로 한 채 샌프란시스코로 복귀했다.

더쉴 해미트의 첫 장편입니다. 컨티넨탈 옵의 마쵸적인 활약을 극대화하여 보여주는 작품으로 등장인물과 스케일도 굉장히 방대합니다. 그래서 흡사 대형 헐리우드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전해 줍니다. 여러 사건으로 죽어나가는 사람의 숫자도 여태까지 읽었던 추리소설 중에서는 기록적인 숫자일 정도지요. 바로 전에 읽었던 컨티넨털 옵 단편 역시 마을 하나가 관련되는 전쟁과도 같은 상황이 배경이었는데, 주로 이런 작품에서 활약하는 탐정인지 좀 궁금해 집니다. 

이렇게 스케일은 큰데 한 마을을 좌지우지하는 거부와 각각의 조직을 가지고 있으며 암약하는 악당들, 이들을 모두 이간질시키고 스스로의 책략으로 자멸하게 만드는 컨티넨털 옵의 활약은 중심이 똑바로 잡혀있으며 재미 역시 충분해서 장편임에도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 자신부터 정의를 위한 싸움이 아니니 만큼 굉장히 비열하고 사악하지만 오히려 현실적이라 마음에 듭니다.

하지만 추리 소설로 기대하고 본다면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하드보일드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 타이틀을 달고 나오기에는 추리적 요소가 적은 탓입니다. 두 가지 사건 - 경찰서장 누넌의 동생인 팀의 과거 살인 사건의 진범을 밝혀내는 것, 호이스퍼의 정부 다이나 살인 사건의 진범을 밝혀내는 사건 - 이 눈에 띄는데, 트릭적으로는 별볼일 없습니다. 등장인물들의 갈등관계 정리에 큰 도움을 주고 스토리에 적합할 만큼 앞뒤는 잘 맞지만 캐릭터와 상황 설정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펄프픽션의 전형적인 냄새와 마쵸적인 느낌이 너무 강한 문제도 일부 독자들에게는 거부감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을테고요.

하드보일드의 원조격으로, 그리고 마쵸 탐정의 대부격이긴 하지만 그 역사적인 가치에 준하는 품격까지 기대하는 것은 약간 무리였을까요?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탓도 있겠지만 저는 아주 약간(!)은 실망스러웠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PS : 이 전쟁과도 같은 상황에서도 현실감이 느껴지는 것이 묘한데 뒷 해설을 읽어보니 저자의 실제 탐정사에서 근무했던 사건이 바탕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예전 미국에서의 생활이 어떤 것이었는지 도저히 상상이 안가네요. 금주법 시대 배경의 소설들은 다 비슷한데, 역시 사람은 술을 마셔야 하나 봅니다...

2018/12/31

2018 내 블로그 리뷰 총 결산

2017 내 블로그 리뷰 총 결산

15차, 열 다섯번째!를 맞는 블로그 결산입니다. 숫자부터 정리해보면, 2018년 읽은 책 중 리뷰를 남긴 책은 추리 / 호러 장르문학 40 (52)권, 기타 장르문학 3 (3)권, 역사서 9 (15)권, Food 및 구루메 관련 도서 18 (9)권, 기타 도서 21 (20)권으로 모두 91 (101)권입니다(괄호는 작년). 

이런 저런 일들이 많아 작년보다는 독서에 소홀했지만 그래도 한달에 7~8권 수준이면 뭐 나쁘지는 않네요. 각 항목별 베스트 - 워스트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올해 발표된 작품 기준이 아니라 제가 올 한해 보고 읽은 것들 기준입니다.

2018년 베스트 추리소설 : "살인범은 그곳에 있다" 

올해 추리 분야 도서 중 유일한 별점 4점짜리 책입니다. 소설이 아니라는게 유일한 단점입니다. 재미 뿐 아니라 생각해 볼만 한 메시지를 함께 전해주는 좋은 작품이에요.

2018년 워스트 추리소설 : "유령탑" 

사실 모리 히로시의 사이카와 모에 시리즈 중 한 권인 "지금은 더 이상 없다"도 올해 별점 1점을 받은 망작이기는 합니다만, 이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름과 그림을 전면에 내세워 홍보하고 팔아먹었다는 점에서 죄질이 더 나빠 단독 워스트로 선정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림과 설명을 제외하면 건질만한 부분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부디 다른 분들은 속지 마시길 바랍니다.

2018년 베스트 / 워스트 기타 장르문학 : 올해 기타 장르문학은 딱 3권, 그 중에서도 두 권만이 정식 출간된 책이라 따로 선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고양이 발 살인사건"과 "마음의 지배자" 모두 좋았어요. 두 작품 모두 단편집인데 별점 4점, 5점짜리 작품도 수록되어 있을 정도로 말이죠. 장르 문학에 관심있으신 모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2018년 베스트 역사 도서 : "원더랜드"

역사 관련 서적을 10권 이하로 읽은건 오랫만이네요. 다행히 별점 4점짜리 책은 언제나처럼 존재합니다. 유희와 놀거리에 대해 심도깊게 고찰한 이 책입니다. 제 리뷰로는 이 책의 가치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데, 취미와 오락, 유희 관련 문화에 대해 관심있으시다면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2018년 워스트 역사 도서 : "만물의 유래사" 

미시사 서적과 백과 사전류를 좋아해서 충동 구매한 책인데 프랑스인이 프랑스를 위해 만든 시대 착오적인 결과물입니다. 확실히 백과 사전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지나갔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2018년 베스트 Food / 구루메 도서 : "늑대를 요리하는 법"

올 한해 제법 많이 읽었는데 별점 4점짜리 책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도판과 번역만 충실했더라도 별점 4점은 충분했을터라 베스트 도서로 선정합니다. 재미도 있고 여러모로 참고가 될 내용도 많은 좋은 책이에요.

2018년 워스트 Food / 구루메 도서 : "소주 이야기"

미시사 서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두서가 없고, 소주 자체에 대한 고찰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무엇보다도 저자 스스로 석달 자료 조사를 거쳐 열흘 만에 쓴 책이라고 하는 말 만큼이나 내용이 두서없는 졸작입니다. 저렴한 가격만이 장점입니다.

2018년 베스트 기타 도서 : "범죄 과학, 그날의 진실을 밝혀라"

이번 해에 기타 도서의 베스트는 별점 4.5점에 빛나는 이 책입니다. "깃털", "클래식 음반세계의 끝", "아주 오래된 서점"의 별점 4점 트리오는 조금 아깝네요.

2018년 워스트 기타 도서 : 올해 기타 도서는 별점 2점 아래가 없어서 워스트는 딱히 꼽지 않겠습니다. 별점 2점으로 워스트가 되는 것도 괴로운 일이니까요.

결산평 : 15년 째라니... 강산이 변해도 이제 한번 반이 변했네요. 올 한 해 무탈하게 보냈다는게 너무나 기쁩니다.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모든 분들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에 원하시는 일 다들 이루시는 그런 한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작년, 그리고 재작년에도 말씀드렸지만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분들이라면 남들이 관심갖지 않는 사소하고 디테일한 것들에도 관심을 가지시는, 정말로 세심한 분임이 분명할테니 내년에는 더욱 잘 되실거에요. 사랑합니다~!

2009/12/23

별난 전쟁, 특별한 작전 - 조셉 커민스 / 채인택 : 별점 4점

별난 전쟁, 특별한 작전 - 8점
조셉 커민스 지음, 채인택 옮김/플래닛미디어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전쟁들 중에서의 기발한 전략과 전술을 되짚는 책입니다. 병력 숫자만으로 밀어붙이는 어택땅이 아니라, 천재들의 전략을 중심으로 세밀한 설명과 자세한 지도 등의 도판과 함께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설명이나 묘사도 감칠맛나는지라 총 4부 254 400여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쑥쑥 읽히는 맛이 있더군요. 익히 알고있던 전투은 한니발의 포에니 전쟁 당시 칸나에 전투와 데미스토클레스의 살라미스 해전에 불과할 정도로 새로운 정보가 가득하다는 점도 무척 마음에 드는 점이었고요.
무엇보다도 "천재적인 전략과 전술"을 중심으로 하는 책이니만큼 아무래도 약자 쪽에서의 위대한 승리를 기술한 내용이 많다는 것이 아주 좋았는데 (전 루저들의 편이랍니다^^)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제일 먼저 꼽고싶은 이야기는 위대한 줄루족 지배자 샤카가 고안한 황소의 뿔 전략과 이 전략을 이용해 줄루족이 압도적인 장비의 영국군 분견대 천여명을 괴멸시킨 이산들와나 전투 이야기입니다. 빠른 이동과 부대지정이 전략의 핵심포인트였다는 점에서 아드레날린 업그레이드를 마친 저글링이 시즈탱크 부대를 가공할 속도와 완벽한 부대지정으로 휩쓸어버리는 모양새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야말로 상상만 해도 전율이 올 정도죠. 더불어 카리스마 넘치는 샤카에 대한 묘사도 흥미진진해서 재미를 더해 줍니다.

그리고 섬도시 티레를 정복하기 위해 아예 섬까지 다리를 놓아버린 알렉산드로스의 티레 점령기도 빼놓기 어렵겠죠. 이 이야기는 막강한 절대자가 반항하는 섬도시를 뭉갠 이야기라 루저들의 승리라는 전체적인 감상 포인트 측면에서는 좀 어긋나긴 하지만 워낙 스케일과 발상이 황당해서 인상적이었어요. 과연 과거의 절대자나 할 수 있었던 절대왕자다운 전략이라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꼽고싶은것은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오하에아와이 전투 이야기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베스트 오브 베스트, 최고의 이야기라 생각합니다! 용맹한 마오리족 전사들이 위대한 추장 헤케와 카위티의 지휘와 과학적이면서도 치밀한 구조물 파-벙커와 참호를 결합한 듯한 특이한 건물- 를 잘 활용하여 단 백명으로 이백오십명의 대포 등으로 중무장한 영국군을 격퇴했다는 내용으로 마오리족의 능력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울러 영국군의 멍청함은 부록삼아 즐길거리로 충분했고요.
저의 무지함탓에 야만인 정도로만 알고있었던 마오리족이었는데 정말 반성하고 사과해야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위의 전투들 외에도 당대 최정예 로마군이 숲속의 함정과 같은 완벽하고 치밀한 작전에 괴멸한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 어이가 없어서 차라리 웃기기까지한 남북전쟁 때의 구덩이 전투, 제 3차 가자전쟁때의 여러 속임수 작전 등 상세히 언급하지 않은 내용들도 모두 재미있었습니다.

이렇듯 재미만 따져도 최고수준이지만 다양한 자료와 도판 등 책의 완성도 역시 뛰어나기에 별점 4점은 충분하겠죠? 별 5점을 줄까도 했는데 사례로 든 전투들이 전부 서양쪽 시각에 가깝다는 단점이 약간 눈에 띄여서 감점했습니다. 어차피 학익진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면 하니발의 이야기 대신 이순신 장군 이야기를 끼워넣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뭐 그래도 4점도 굉장히 높은 점수죠!
전략과 전술에 관한 역사서를 좋아하시는 모든 분들께 강추합니다.

2021/06/11

범죄 캘린더 - 엘러리 퀸 / 배지은 : 별점 1.5점

범죄 캘린더 - 4점
엘러리 퀸 지음, 배지은 옮김/검은숲

엘러리 퀸 단편집으로 비교적 후기작입니다. 엘러리 퀸이 주인공인 라디오 드라마를 책으로 엮은 결과물이라고 합니다.

읽다보니 확실히 라디오 드라마구나 싶었습니다. 설득력있는 동기, 복선으로 뒷받침되는 탄탄한 이야기 구조보다는 극적인 상황을 쉽게 전달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트릭도 정교하기 보다는 말로 전달하기 쉬운 트릭들이고요. 

그런데 문제는 책으로 읽을만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겁니다. 트릭들은 추리 퀴즈 수준이고, 이야기 구조가 단순한 탓에 동기와 사건이 벌어진 상황에 대한 설득력도 낮은 탓입니다. "~ 모험" 이라는 제목 때문에 걸작 단편집이었던 "엘러리 퀸의 모험" 수록작 수준이라고 생각했는데, 여러모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또 '캘린더'라는 제목답게 1월부터 12월까지 매월 한 편씩의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는데, 해당 월에 이야기가 진행될 필요가 있었던 작품은 많지 않습니다. 3월의 소득세 신고, 5월의 전몰 장병 기념일 정도만 특정 날짜와 사건이 연결되어 있을 뿐이에요. 10월의 할로윈과 12월 크리스마스에 사건이 벌어지는 두 작품은, 날짜를 사건과 무리하게 연결해서 오히려 거부감이 드는 망작이었고요.

그래서 전체 평균한 별점은 1.5점입니다. 라디오라면 모를까 책으로는 점수를 줄 부분이 믾지 않고, 권해드리기도 어렵습니다. 엘러리 퀸의 이름만 믿고 읽으시면 실망하실 거에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내부자 모임의 모험" 

이스턴 대학교의 유서깊은 야누스 클럽의 멤버 빌 업다이크가 엘러리 퀸을 찾아왔다. 야누스 클럽은 13학번들로 이루어진 모임으로, 현재 생존자는 7명 뿐이었는데 그 중 3명이 최근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업다이크는 야누스 클럽 안에 5명으로 이루어진 내부자 모임이 20만달러라는 돈을 공유하고 있었으며, 자신과 또 다른 멤버 중 생존자가 모든 걸 갖게 될 것이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48시간 뒤, 빌 업다이크는 살해되고 말았다.

1월의 야누스 클럽 정기 모임 날짜에 맞춰 벌어지는 이야기로 야누스 클럽이니, 내부자 모임이니 뭔가 있어보이는 설정을 장황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핵심은 암호 트릭입니다. 피해자 업다이크가 내부자 모임 멤버들 이름에 공통점이 있다는 말을 남겼었고, 그 말이 유일한 증거가 되기 때문이지요. 

이 트릭은 미국인이 아니면 풀 수 없는, 하지만 미국인이라면 쉽게 풀었음직한 트릭입니다. 우리나라 식으로 멤버들 이름을 변주하자면, 황연세, 한국민, 양홍익, 김아주, 서인하인 식이지요. 업다이크의 경우는 부부의 이름을 합쳐 윌러임 앤 메리 칼리지라는 약간의 변주가 들어가기는 하지만, 이 역시 우리나라식으로 박성균, 최관이라는 식이니 딱히 정교한 장치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한 마디로 라디오에 적합한, 추리 퀴즈에 가까운 아이디어였습니다. 전개도 정교하지 못하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3명의 회원이 우연찮게 자연사한 뒤, 살의를 품었다는 동기를 잘 풀어내는게 더 나았을 겁니다.

"대통령의 5센트 은화 모험" 

미모의 아가씨 마사 클라크는 전보로 엘러리 퀸과 죠지 워싱턴 관련 골동품 수집가 패치, 희귀 주화 수집가 체크 남작부인, 희귀 서적 수집가 쇼 교수를 불러모았다. 죠지 워싱턴이 남긴 칼과 은화를 찾기 위함이었다. 이는 오래 전 죠지 워싱턴이 마사의 조상 시미언 클라크를 만났을 때 농장에 묻었던 물건들이었다.

2월 죠지 워싱턴 생일에 맞춰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추리적으로는 눈여겨 볼 부분이 전무합니다. 시미언 클라크가 남긴 일기에 따르면, 워싱턴이 당시 심었던 나무 중 하나 아래에 칼과 은화를 묻었다고 쓰여 있거든요. 이건 암호도 아닙니다. 당연히 별다른 트릭도 없어서 추리의 여지도 없고요.

이 말에 따라 마사 클라크 가족이 워싱턴이 심었다는 나무 12그루 밑을 모두 파 보았지만, 칼과 은화를 발견하지 못했던 이유는 더 황당합니다. 원래 13그루를 심었는데, 한 그루가 죽어 버린 탓이라는데 정삼각형 모양으로 간격까지 정확하게 심은 12그루의 나무는 멀쩡하고, 삼각형 한 가운데 심은 나무만 죽었다는건 지나치게 작위적입니다. 

게다가 13그루 나무를 심었다는 엘러리 퀸의 주장도 설득력이 낮습니다. "미국 건국은 13개 주였기에 나무는 13그루를 심었어야 한다!"라는게 근거의 전부인 탓입니다.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는 아무 것도 없어요. 또 애초에 농장을 잃을 위기였다면, 나무 밑이 아니라 나무 근처 땅을 모두 파 보는게 정상 아니었을까요? 전개도 이상합니다. 이야기 처음에 패치 등 관계자들을 불러 모을 필요는 없었어요.

이런 문제 투성이의 본편 이야기보다는, 엘러리가 대통령을 만났는데 그게 누구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도입부가 추리적으로 더 볼만했습니다. 돈이 많지만 자동차를 소유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는 이야기인데, 꽤 그럴듯했거든요. 엘러리의 비서 니키가 미인인 마사 클라크를 질투하는 묘사도 재미있었고요. 하지만 그 외에는 건질게 거의 없네요. 추리물이라고 할 수도 없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마이클 마군의 3월 15일 모험" 

퀸 경감의 옛 동료였던 사립탐정 마이클 마군이 엘러리를 찾아왔다. 3월 15일 소득세 신고를 앞두고 관련 서류를 도난당했기 때문이었다. 서류 도난 당시, 사무실에서 갑자기 화재가 발생한게 이상하다고 생각한 엘러리 일행은 다시 사무실에 방문하지만 그곳에서 사무실을 관리하는 카슨 부인이 참혹하게 살해된걸 발견하는데...

이야기 초, 중반부까지는 "왜 도둑은 소득세 신고와 관련된 서류를 훔쳐갔을까?"가 핵심입니다. 이는 마군의 서류 중에 사교계 지배자 벤돔 부인의 딸이 도벽이 있다는 증거가 있기 때문으로 밝혀지고요. 이렇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기묘한 사건이 특별한 강력 범죄와 연결되는 전개는 재미있었습니다. 소득세 신고일이 3월 15일이고, 소득세 신고용 자료가 협박의 근거가 된다는 식으로 3월이라는 날짜와 이야기를 엮은 방식도 마음에 들었고요.

그러나 마군이 화재 소동을 일으킨 뒤 서류가 도난당한걸로 위장했고, 이를 카슨 부인이 눈치채 죽였다는 진상은 여러모로 불합리합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엘러리를 찾아와 서류가 도난당했다고 하소연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앨러리를 찾아가지 않았다면 그냥 강도가 살해한걸로 무마할 수도 있었을테니까요. 엘러리 말대로 벤돔 부인을 협박할 생각을 버리고 카슨 부인을 죽인거라면, 더더욱 서류가 도난당했다는걸 드러낼 필요는 없었어요. 협박할 생각을 버렸다면, 카슨 부인에게 불을 지른 이유를 둘러대는게 살인보다는 훨씬 나은 해결책이었을겁니다. 살인을 저지르고 누명을 뒤집어 씌우려고 했던게 오피스를 쉐어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안일한 발상도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 모두 알리바이가 확실했다면 어쩔 생각이었을까요?

마군이 서류가 도난당했다고 주장한 시점보다 나중인 신문지가 들어있었던 증거는 명확했지만, 이러한 이유들로 아주 잘 만든 이야기로 보이지는 않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황제의 주사위 모험" 

퀸 경감은 엘러리, 니크와 함께 오랜 친구 짐 해거드의 가족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역으로 마중나온 짐의 아들 마크 해거드는 아버지 짐이 살해당했다며 10년 전 사건 이야기를 꺼냈다. 해거드 가족은 아버지를 쏜 건 가족 중 한 명이라며 지난 10년간 지옥처럼 살아왔다고 말했다. 엘러리는 짐이 죽었을 때 손에 쥐고 있던 '황제의 주사위'에 주목해서 범인을 알아내는데...

짐이 쥐고 있던 주사위는 일종의 다이잉 메시지였습니다. 두 개 중 한개가 항상 6만 표시한다는 의미로, 6번 피스톨에 의해 살해당했다는걸 의미했던 거지요. 그런데 이 뒤는 가관이에요. 6번 피스톨은 왼손잡이가 잡기에 용이해서, 가족 중 유일한 왼손잡이인 딸이 범인이라는 추리가 펼쳐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됩니다. 총을 쏘는 것도 아니고, 꺼내는데 왼손잡이냐 아니냐가 뭐가 중요할까요? 중요했다 한 들 이 정도로 딸이 범인이라고 주장하는건 불가능합니다. 최소한 그 총은 '왼손잡이만 잡을 수 있었다'는걸 명확하게 알려주었어야 했는데 그런 설명은 전혀 등장하지 않거든요. 칼리굴라와 주사위 속임수에 대해 이런저런 소개도 이야기에는 하등 상관이 없는 쓸데없는 잡지식에 불과했고요.

무엇보다도, 3월 마지막 날에 수수께끼를 풀어내며 이 모든게 퀸 경감과 니키, 해거드 가족이 함께 4월 1일 만우절에 엘러리 퀸을 속이기 위함이었다는 반전은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40년 전 결혼식과 10년 전 40번째 결혼 기념일에 선물을 드렸다는 모순은 말장난이면서도, 너무 명확하게 드러나서 속임수같지도 않았고요.

그래서 별점은 1점입니다. 점수를 주기 어려운 망작입니다.

"게티즈버그 나팔의 모험" 

엘러리가 니키와 함께 한 충동적인 게티즈버그 여행 중에 자동차가 고장나버렸다. 그 때 잭스버그 군수 스트롱이 그들을 도와준 뒤, 마을에서 진행하는 남북전쟁 전몰장병 추모일 행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날 남북전쟁 생존자가 게티즈버그 나팔을 부는게 전통이었는데, 작년에 생존자 중 가장 고령이었던 케일럽이 나팔을 불다가 사망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고령이었지만 건강했고, 다른 생존자 2명과 남북 전쟁 중 찾았던 보물에 대한 비밀을 공유하고 있었기에 군수는 수상쩍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전몰장병 기념일 아침에 또 다른 생존자 애브너 체이스가 뇌졸증으로 사망하고, 기념일에서는 나팔을 불던 마지막 생존자 잭 비글로마저 나팔에 묻힌 독으로 죽고 마는데...

어디선가 읽었던 작품. 4월 전몰장병 기념일에 맞춘 이야기는 깔끔합니다. 노인들이 이야기하던 거액의 보물은 휴지조각과 같은 남부 정부가 발행했던 지폐라는 설정도 좋았고, 애브너 체이스의 손녀 시시가 진범이라는 반전도 그럴듯했거든요. 이를 드러내기 위한 엘러리의 추리도 감탄을 자아냅니다. 잭 비글로가 마지막 생존자로 남게된건 애브너 체이스가 급작스럽게 사망한 우연 덕분이었다는게 핵심이지요.

하지만 이 추리로는 시시가 진범인지, 잭 비글로의 손자 앤디가 진범인지는 드러낼 수 없습니다. 앤디가 할아버지가 남긴 돈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기에, 그 돈을 보다 빨리 갖고 싶어서 할아버지를 죽였을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즉, 엘러리는 그냥 용의자를 한 명 추가한거에 불과합니다. 이래서야 법정에서도 유죄 판결을 내리기는 쉽지 않았을 거에요.

그래도 본격 추리물로는 완벽한 얼개를 갖추고 있고, 이야기도 재미있게 전개되는 수작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약 손가락의 모험" 

트로이는 딸 헬렌 결혼식에 엘러리를 초대했다. 헬렌을 흠모했던 루즈 때문이었다. 그는 헬렌이 헨리 예이츠와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살의를 드러내다가, 이후 갑자기 변심해서 사죄하고 신랑 들러리로 결혼식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심한 불안감을 느낀 트로이의 부탁으로 엘러리는 벨리 경사와 결혼식에 참석해서 루즈를 철저하게 감시했다. 그러나 식 직후 헬렌은 결혼 반지 속 독침에 의해 살해되고 마는데...

이 작품의 특이한 점은 엘러리가 범행을 막지도 못했고, 경찰보다 범인을 찾아내는데 늦어버린 완벽한 실패담이라는겁니다. 엘러리는 루즈가 아닌 신랑 헨리 예이츠를 범인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근거는 결혼만 하면 헬렌의 유산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는 것이고요. 하지만 결혼 반지는 왼손에 끼고, 압력을 가해 독침이 튀어나오게 하려면 왼손으로 악수를 해야 했기 때문에 왼손잡이가 범인이다! 라는 논리로 루즈가 범인이라는게 드러납니다. 이 사실은 흉기인 반지 조사로 경찰이 밝혀내고요. 이렇게 엘러리는 체면만 구긴 셈이며, 사건은 경찰 수사를 통해 종료되기 때문에 추리물로는 볼 여지가 많지 않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점. 추리적으로 별볼일 없고, 이렇게 길게 풀어낼 필요도 없는 졸작입니다.

"추락한 천사의 모험" 

센터 저택에는 기괴한 키마이라 조각이 튀어나와 있었다. 현재 센터 제약 사장인 마일스의 아내 도로시는 니키의 친구로, 그녀가 니키에게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는걸 고백한 뒤 마일스가 저택 지붕에서 떨어진 키마이라 조각상에 깔려 죽을뻔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 조각상은 마일스의 동생 데이비드의 아틀리에 지붕 쪽에 위치했었다. 데이비드를 의심한 마일스는 엘러리 퀸에게 관련된 조사를 의뢰했고, 데이비드 아틀리에를 조사하기 위해 엘러리가 방문한 날 마일스는 총상을 입은 채 발견되었다. 데이비드는 실종되었고, 도로시가 범행을 자백하는데...

도로시의 불륜 상대가 밝혀지기 전 까지, 범인은 데이비드 아니면 마일스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데이비드는 마일스만 없으면 센터 제약과 그 아내까지 손에 넣을 수 있었고, 마일스는 아내의 불륜에 대한 복수심으로 데이비드를 실종으로 위장해서 죽이고, 다친걸로 위장했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진상은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 비서 하트가 폭죽으로 알리바이를 만든 뒤 살해했다는 겁니다. 즉, 도로시가 사랑에 빠진게 마일스의 동생 데이비드가 아니라 비서 하트였다는 반전이 이야기의 핵심인데, 상식을 깨는 맛은 괜찮았습니다. 7월 4일 독립 기념일과 '폭죽'을 연결한 아이디어도 좋았고요. 캘린더라는 주제에도 잘 맞을 뿐더러, 간단한 트릭이지만 효과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진상을 드러내는 핵심 증거 중 하나가 '떨어진 키마이라 조각상'이라는 전개도 마음에 들고요.

물론 편의적인 전개를 위해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는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마일스가 총에 맞았을 때, 누가 쐈는지 보지 못했다는게 대표적이지요. 여기서 그가 죽지 않은 것도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것에 불과하다는 것도 작위적이고요. 차라리 죽는게 전개면에서는 더 깔끔했을거에요. 또 45Kg이나 되는 조각상에 데이비드를 죽인 뒤 매달아 물에 빠트리는게 혼자서 어떻게 아무한테도 들키지 않고 가능했을 일인지도 잘 모르겠네요. 도로시가 자기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한 이유가, 하트가 총을 쏘는걸 목격했기 때문이었다는 설명도 잘 이해는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정통 본격 추리 단편으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면 평작은 충분히 되는, 군더더기가 별로 없는 잘 짜여진 단편이었으니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바늘 귀의 모험" 

유명 탐험가 에릭슨은 결혼한 조카딸 잉가의 남편과 그 아버지에 대한 조사를 엘러리 퀸에게 의뢰했다. 잉가의 남편 홉스-왓킨스 부자가 에릭슨이 거주하는 섬에서 잉가와 자기를 살해하지 않을까 의심했기 때문이었다. 그 섬에는 캡틴 키드가 보물을 숨겨 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고, 엘러리는 보물 찾기 핑계를 대고 섬으로 향하는데..

엘러리는 키드가 남겼다는 일종의 암호를 간단히 풀어내고 보물을 찾아내지만 그 보물은 키드가 묻은게 아니었다는 반전이 인상적이었던 작품. 그 증거가 보물 상자 속 '백금' 이라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였어요. 백금은 1900년대 이후 보석 셋팅에 이용되었기 때문으로, 박학다식한 엘러리에게 잘 어울리는 이야기였습니다. 보물은 홉스-왓킨스 부자가 훔친 장물로, 장물을 공식적으로 유통하기 위해 키드 전설을 이용했다는 앨러리의 추리도 감탄을 자아냅니다.

그러나 에릭슨이 죽기 전 쏜 총알이 발견되지 않은 이유는 롱 존의 의족에 박혔기 때문이라는건 많이 뻔했습니다. 그리고 롱 존이 홉스-왓킨스 부자와 공모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그가 에릭슨을 단순한 탐욕으로 죽였다고 보는게 타당할 수도 있어요. 보물을 묻은게 부자라는게 증명될 수는 있어도, 그들이 에릭슨을 살해할 의도가 있었다는건 증명이 불가능했습니다. 롱 존이 자백한다 한들, 증거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롱 존을 이용해서 에릭슨을 죽이는 전개만 빠졌으면 훨씬 좋았을텐데 좀 아쉽네요.

"세 개의 R의 모험" 발로 대학 학장 발로 박사는 엘러리 퀸에게 편지를 보냈다. 미국 문학을 가르치는 칩 교수의 실종 때문이었다. 니키와 함께 미주리 주에 있는 발로 대학을 찾은 엘러리는 칩 교수 방의 핏자국, 그리고 도서관에서 대출 된 책을 통해 교수가 6월 30일 밤에 살해당했다고 추리했다. 그리고 칩 교수가 여름을 보낸다고 알려진 아칸소 주 통나무집에서 칩 교수의 백골화된 사체와 그가 쓰던 추리 소설인 "세 개의 R의 모험" 원고를 발견하는데...

칩 교수가 쓴 추리 소설대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는게 핵심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건 연극이어고, 엘러리 퀸은 발견된 시체가 백골이었다는걸 토대로 진상을 추리해냅니다. 고작 10여주 동안 사체가 백골화될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동기는 칩 교수가 쓴 추리 소설 홍보를 위해서였지요. 유명 탐정이 헛다리를 짚은 이야기를 기사화할 생각이었다고 설명되고 있습니다. 추리적으로 깔끔하고, 주어진 단서도 공정한 괜찮은 본격물이에요.

하지만 교수들이 꾸민 계획은 여러모로 부실했어요. 핏자국을 발견한 시점에 경찰을 부르지 않은 이유부터가 설명되지 않으니까요. 제가 탐정이라면 먼저 경찰에 신고하라고 조언했을 겁니다. 또 백골 사체가 이상하다는 근거도 빈약합니다. 사체를 백골로 만드는 무슨 방법을 썼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설득력이 부족했기에 감점합니다.

"죽은 고양이의 모험" 

니키 포터 양은 저주받은 검정 고양이 모임 회합에 엘러리 퀸과 함께 참석했다. 10월 31일의 챈슬러 호텔에서의 비밀 회합은 니키의 친구가 개최한 할로윈 파티였었다. 파티 중 추리 게임을 하다가 참석자 중 한 명인 크롬비가 살해당했고, 동기는 그의 무분별한 여자 관계 때문으로 드러나는데...

핼로윈 파티에 대한 장황한 묘사를 빼면, 핵심은 한 가지입니다. 파티를 위해 복잡하게 꾸며놓은 호텔 방을, 불이 꺼져 있었던 추리 게임 당시 문제없이 지나갈 수 있었던 사람은 누구냐는 것이지요. 엘러리 퀸의 추리는 이 방을 꾸민 루시 트렌트가 범인이라는 것이었고요. 

하지만 방을 꾸몄다고해도 과연 어두운 상황에서 문제없이 지나갈 수 있었을까요? 또 파티가 시작하고 한참 뒤에 추리 게임이 시작되었다면, 다른 사람들도 외울 수 있지 않았을까요? 루시 트렌트 범인설은 이렇게 설득력이 약합니다. 복잡한 여자 관계가 동기인데, 정작 당사자가 아니라 그 동생이 복수했다는 설정도 영 와 닿지 않았고요. 

무엇보다도 이런 범행을, 세계 최고의 명탐정을 초대해서 추리 게임을 하는 동안 저지를 이유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용의자가 될 만한 사람도 몇 명 없는데 말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1점입니다. 추리 게임이라는 작 중 소재처럼, 추리 퀴즈 수준의 졸작으로 점수를 줄 여지는 전무합니다.

"비밀을 폭로하는 병의 모험" 

추수감사절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선물을 배달하던 엘러리 퀸과 니키는 우연히 방문한 프랑스 레스토랑이 마약을 밀매하고 있다는걸 알아냈다. 그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캐리가 마약 밀매 혐의로 구속되었는데, 그가 누명을 썼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경찰이 체포하기 전에 마약을 건넨 웨이터가 살해되는데...

우연히 방문한 레스토랑에서, 우연히 "샤토 디켐"을 주문하니 마약이 나오고, 우연히 탄 택시에서 그 이야기를 했는데 택시 운전사가 흑막이라서 그가 레스토랑 웨이터를 살해했다는 내용의 작품. 우연으로 점철된 전개로 실소를 자아내는 졸작입니다. 작품이 아니라 입문자용 추리 퀴즈라고 하는게 더 낫지 않을까 싶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황태자 인형의 모험" 

입슨 양이 30년을 쏟아 부어 만든 인형 컬렉션인 '돌렉션'문제로 변호사 본들링이 퀸 부자를 방문했다. 컬렉션 중 가장 가치가 큰, 49캐럿 다이아몬드가 박혀있는 황태자 인형을 유명한 예술품 도둑 코머스가 훔치겠다고 예고했기 때문이었다. 입슨 양 유언으로 돌렉션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백화점 전시가 예정되어 있었고, 퀸 부자는 직접 경찰과 함께 철통같은 방어망을 구축했지만, 인형은 결국 가짜로 바꿔치기 당하는데...

크리스마스를 무대로, 예고장을 보내는 전설적인 괴도가 등장한다는 만화같은 설정의 작품입니다. 

진상은 간단합니다. 변호사 본들링이 도둑 코머스였던 것입니다. 그가 마지막에 인형을 직접 바꿔치기 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본들링이 예고장을 보내면서까지 사건을 키울 필요는 없습니다. 과거 꾸준히 예고장을 보내왔다면 모를까, 예고장을 보낸건 이번이 처음이라고도 하니 더더욱 불필요한 행동이었어요. 다른 사람들을 변장시켜 경찰의 시선을 끈 행동 역시, 대역들이 체포되면 금방 드러날 유치한 작전이었고요. 그냥 다이아몬드가 사라진다면 본들링이 무조건 혐의를 받을 테니 그 혐의를 돌리기 위해서였다는 것도 말이 안됩니다. 본들링이 범인이라는 엘러리의 추리는 너무 당연해서, 그의 정체는 어쨌건 드러날 가능성이 높았으니까요. 이런 위험을 짊어질 이유가 있었을까요?

산타클로스로 변장해서 인형을 지켰던 벨리 경사의 우스꽝스러운 모습, 크리스마스를 무대로 한 작품다운 왠지모를 유쾌함과 활기는 좋았지만, 추리 퀴즈 수준밖에 안 되는 작품이에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중반에 잠깐 라디오 극본을 그대로 옮긴 듯한 부분이 있는데, 의도인지 잘 모르겠지만 작품과 잘 어울리지는 않았습니다. 원래 라디오 극본이라는걸 알려주기 위한 의도였다면, 극본 전체를 부록처럼 수록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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