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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26

세계를 매혹한 돌 - 윤성원 : 별점 3점

 

세계를 매혹한 돌 - 6점
윤성원 지음/모요사

보석과 주얼리가 주제이기는 한데, 이전에 읽었었던 <<보석 천 개의 유혹>>과는 많이 다릅니다. 이 책은 19세기 후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보석과 주얼리의 유행과 디자인 변천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행이 사회적인 분위기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건, 얼마전에 읽었던 <<감히 넘볼 수 없게 하라>>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었지만, 이 책은 보석과 주얼리를 통해 그러한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보석과 주얼리는 가격 때문에 사회 지도층이 관련될 수 밖에 없어서, 실제 역사 속 실존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로왔습니다. 이런 점에서는 단순한 보석, 주얼리 유행 통사가 아닌, 약간 미시사적인 측면도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국가별로 달랐던 유행의 이유는 그 국가의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도 했으니까요.
예를 들어, 베를린 아이언은 철로 만들어진 주얼리로 프로이센의 대 나폴레옹 해방전쟁 당시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기념품이었습니다. 귀부인들이 군자금에 보태기 위해 금 주얼리를 기부하고, 철로 만든 베를린 아이언 주얼리를 대신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독일 민족의식 발현이라는 속 뜻과 무관하게, 적국이었던 프랑스에서는 1 제정 몰락 후 왕정복고기에 문학, 건축 등 전 분야에서 중세 고딕 문화가 유행했던 탓에 베를린 아이언이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왕정복고기에는 고가의 큰 보석을 사용할 수 없었던 현실도 한 몫 했었고요.
반면 영국에서는 19세기에 16세기 르네상스를 베낀 주얼리가 유행했습니다. 상류층이 19세기의 놀라왔던 예술, 문학, 과학 기술의 진보를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와 동일시했던 덕분이었습니다. 영국이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갈 때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유행이었겠지요. 아울러 이 때 로마, 이집트, 헬레니즘 및 에트루리아 유적 발굴로 고고학적 복고 양식도 함께 유행했다고 합니다.

특정 아이템의 변천사도 흥미로왔습니다. 여성의 목을 감싸는 초커는 18세기 프랑스 혁명 이후, 단두대 희생자를 기리는 의미로 유행이 시작되었었습니다. 색깔도 빨간색이었고요. 허나 19세기에 접어들며 검은색 초커는 매춘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는 마네의 <<올랭피아>> 등으로 잘 알 수 있고요. 이후 영국 알렉산드라 왕세자비가 갑상선 수술 흉터를 감추기 위해 다이아몬드와 진주가 여러 줄 세팅된 폭넓은 초커를 착용하기 시작한 뒤, 19세기 말 ~ 20세기 초 유럽 상류층의 필수품으로 자리잡게 되었다네요. 지금의 문신 (타투) 유행과도 조금 비슷하지요?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문신은 범죄 등 안 좋은 이미지의 대명사였는데 요새는 인스타그램 셀러브리티 등을 통해 일종의 패션 아이템이 되어 버렸으니까요.
초커의 유행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으로도 잘 알 수 있는데, 클림트의 그림 속 초커 실물은 나치의 압류 이후 사라졌다니 이 역시 하나의 흥미로운 역사 속 일화로 재미있게 읽었던 내용입니다.

이러한 흥미로운 역사 일화는 그 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인류 역사상 안정과 번영을 가장 길게 누렸고, 그 어느 때 보다 탐미적이었던 '벨에포크' 시대에서 유행을 선도했던 사교계의 중심지 막심 레스토랑을 무대로 화려함을 뽐냈던 3대 고급 매춘부인 라 벨 오테로, 리안 드 푸지, 에밀리엔 달랴숑의 승부 이야기처럼요. 이 일화와 함께 소개되었던 당시 쥬얼리는 도판만 보아도 그 화려함이 남다른 수준이라 과연 '벨에포크'라는 말이 허언이 아님을 새삼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비슷한 시기, 미국 사교계를 주도했던 에스터 가문의 안주인 캐럴라인과 신흥 부호 밴더빌트 가문의 안주인 알바 밴더빌트의 승부와 거래 역시 흥미롭기는 마찬가지였고요.

그 외에도 벨에포크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었던 오스트리아 엘리자베트 황후와 그녀의 쥬얼리, 영국 메리 왕비가 혼란기에 수집했던 당대 유럽 왕실의 명품 쥬얼리들 이야기도 여러 왕조의 흥망성쇠와 함께 소개되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상징과도 같은 '블라디미르 티아라'가 어떻게 영국 왕실까지 흘러가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독일 공주로 러시아 차르 알렉산드르 2세의 셋째 아들 블라디미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과 결혼했던 마리아 파블로브나 '미첸' 블라디미르 대공작 부인이 러시아 혁명 당시 몸을 피하면서 진짜 값비싼 보물을 블라디미르 궁전 비밀 장소에 숨겨두었었는데, 그녀의 친구였던 영국인 예술품 딜러 앨버트 스토퍼드가 노동자로 변장해서 궁에 잠입한 뒤 보물을 꺼내어 런던으로 빼돌렸다는, 혁명과 모험이 모두 들어가있는 낭만적인 이야기입니다. 이를 메리 여왕이 구입하여 지금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공식 석상에 착용하고 나오게 되었다는건 참 많은걸 느끼게 해 주고요. Winners takes it at all 인 거겠지요?
그리고 1차대전 후, 아르누보와 벨에포크 복고풍 로코코는 모두 옛 것이 되었고, 미래지향적이고 기하학적인 모티브의 디자인의 유행은 야수파, 입체파 등의 미술사조, 디자인의 바우하우스의 등장과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네요. 부족해진 남성들 대신 여성들이 실제 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활동적이고 실용적인 쥬얼리 디자인이 많아졌다는 것도 눈에 뜨이고요.
인도 마하라자들의 어마무시한 쥬얼리 컬렉션들과 1922년 투탕카멘 발굴을 통한 동서양이 융합된 디자인의 유행과 2차 대전 후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주얼리 유행 테마들 소개도 볼만했습니다.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다이아몬드 제국 드비어스의 탄생과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로 기억되는 성공 공식에 대한 설명도 재미있었습니다. 이 광고를 누가 어떻게 집행했는지를 다루는 글은 처음 읽어보기도 했고요.

전문적으로 쓰여진 글로 보기에는 저자의 개인 경험과 개인 생각에 대한 비중이 높으며, 미시사 서적으로 보기에는 쓰여진 내용에 대한 근거가 빈약하다는 약점은 있지만, 이 정도면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재미도 있으면서 여러가지 자료적인 가치도 높은 책인 덕분입니다. 도판만 보아도 값어치는 충분히 합니다. 보석, 주얼리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이시라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1/01/01

더 마블 맨 - 밥 배철러 / 송근아 : 별점 2.5점

더 마블 맨 - 6점
밥 배철러 지음, 송근아 옮김/한국경제신문

안녕하세요! 2021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1년 첫 리뷰는 마블 슈퍼 히어로들을 탄생시킨, 슈퍼 히어로물의 아버지로 유명한 스탠 리의 전기입니다. 1922년 출생하여 2000년대 이후 마블 영화 카메오 출연까지 거의 전 생애가 설명되고 있습니다.

인상적이었던건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정규직 일자리를 얻었어야하는 상황이 그를 만화 작가로 만들었다는 겁니다. 대공황의 여파로 '직장'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었고, 집안을 지탱할 가장 역할 수행이 필요했기 때문이죠. 첫 직장 타임리 코믹스에 취직하게 된 건, 삼촌이 꽂아 주었던 덕분이었고 만화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잡일을 도맡았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출판사 사장인 굿맨이 만화 사업이 돈이 된다는걸 깨닫고 영입했던 편집자 사이먼과 당대 최고의 작가였던 '잭 커비' 가 "캡틴 아메리카"를 탄생시켜서 큰 인기를 끌어 너무 바빠진 탓에, 스탠 리도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로 작가 데뷔를 할 수 있었다네요. 천재의 위대한 첫 발이 순전히 낙하산에 운이 결합된 결과였다니 재미있습니다. 세상 사 다 뜻대로 되는건 아니지만, 이런 우연도 참 갚지다 싶군요.

이 과정에서 보여지는 출판 업계의 거물이자 스탠 리의 보스였던 굿맨의 전략도 눈여겨 볼 만 합니다. 인기 있는 유행에 편승해서 그 유행이 끝날 때 까지 융단폭격하는 방식으로, 거의 언제나 큰 성공을 거둔걸로 나옵니다. 결국 굿맨과 마블은 결국 업계의 제왕이었던 DC를 능가하는 성공을 거두게 되었고요. 삼성이 애플을 따라하는 이른바 '패스트 팔로워' 전략인데, 역사가 증명하는 멋진 성공 사례인 셈입니다.

이후 굉장히 빠른 나이에 편집장이 되어 판타스틱 4, 스파이더맨, 헐크, 토르 등 인기 작들을 쏟아내며 자신과 마블의 독특한 창작법을 확립해 가는 과정도 흥미로왔습니다. 지금도 인기 많은 히어로들 탄생을 다루었으니 관심이 안 갈래야 안 갈 수 없는 부분이었어요.
스탠 리의 방식을 요약하자면, 우선 이야기 개요 이전에 캐릭터를 확실히 설정하는 것, 그리고 이야기 뼈대만 구성하여 만화가들에게 주고, 그림 작업이 완성되면 글과 대사를 적어넣는 방식이 특징으로 설명됩니다. 엄청난 작업량을 소화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네요.

그런데 이 방식을 따르면 만화가들의 역할이 클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초창기 판타스틱 4를 비롯한 대부분 인기 작품들은 천재 작가 잭 커비가 기여한 바가 스탠 리 못지 않은걸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스탠 리는 커비 계약 종료 후 재계약을 하지 않는 방법으로 마블에서 그를 쫓아내는데 힘을 보탠 것으로 보입니다. 잭 커비를 배제하고 자기 혼자 오롯이 각광받을 수 있도록 수를 쓴 거지요. 이 책에서는 둘의 결별은 오해와 판단 착오였을 뿐이며 잭 커비가 지나치게 돈을 욕심내었다는 식으로 스탠 리를 변호하지만, 그가 동료의 노고를 은근슬쩍 묻어버리고 혼자 영광을 독차지한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렇게 잭 커비를 쫓아낸 것 이외에도 스탠 리가 마블의 '더 맨' 이 되기 위해, 자신을 마블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하도록 만들기 위한 가열찬 노력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처음 출판사에 취직한 이유와 마찬가지로 결국 돈 때문이었다는 것도 씁쓸하고요. 회사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가 됨으로써 일자리를 보장받으려 했던 것이지요. 이는 군대에서 복무하면서도 타임리 코믹스 스토리 작업을 함께 해서 별도의 돈을 벌었던 등, 돈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강하게 보인 에피소드들로 설명됩니다. 어린 시절 경험이 이렇게나 중요합니다! 만약 스탠 리가 풍족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면, 잭 커비와 마블에서 더 많은 걸작을 쏟아낼 수도 있었을텐데,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그래도 이런저런 노력의 일환으로 비교적 젊은 나이에 마블의 '더 맨'이 되는데 성공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 뒤 '작가'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더 큰 성공을 위해 기울였던 노력들은 모두 실패에 가깝다는게 이채롭더군요. '작가'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시도들은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만화를 만든다'는게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하고 말았거든요. 시도는 좋았지만 1960~70년대에 행하기에는 무리수였던 듯 합니다. 말년에 행했던 헐리우드 도전은 눈물없이는 보기 힘들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고요. 특히나 거대한 사기극이었던 SLM (Stanlee.net) 에 참여함으로서 거의 경력이 끝장날 뻔 했던 사건은 처음 알았네요. 그 외에도 실패하거나 사장된 기획은 수도 없고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성공하여 자리매김한건 어떻게보면 천운이 아닌가 싶어요.

이렇게 한 장르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인물의 명암, 성공과 실패에 대해 잘 알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좋은 독서였습니다. 그러나 스탠 리에 대한 지나치다 싶은 변명, 방어는 거슬렸습니다. 기대했던 캐릭터들의 창작 비화도 다른 콘텐츠에 소개된 내용과 다른 이야기가 별로 많지도 않고요. 무엇보다도 이런 류의 책 치고는 거의 없다시피한 도판은 분명한 감점 요소입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스탠 리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딱히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0/10/08

디미트리오스의 가면 - 에릭 앰블러 / 최용준 : 별점 2.5점

디미트리오스의 가면 - 6점
에릭 앰블러 지음, 최용준 옮김/열린책들

영국인 추리 소설 작가 레티머는 터키 이스탄불을 여행하다가 우연히 디미트리오스라는 범죄자의 시체를 보게 되었다. 래티머는 디미트리오스에게 강한 흥미가 생긴 나머지 디미트리오스의 행적을 좇아 유럽을 횡단해 가며 이런저런 조사를 벌이는데...

에릭 앰블러가 발표했던 스파이 소설의 고전입니다. 이쪽 바닥에서는 일찌기 걸작으로 인정받은 작품이지요. MWA 선정 베스트 미스터리 100 순위도 17위라는 고순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스파이 소설로 알려진 바와 다르게, 범죄자를 쫓는 탐정 수사물로 보는게 맞습니다. 물론 래티머는 제대로 된 탐정은 아니고, 수사도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을 소개받아 추억담같은 이야기를 듣고 수집하는 정도에 그칩니다. 옛 동화나 민요를 수집하는 민속학자 활동에 가깝지요. 차이점이라면 디미트리오스는 정말로 사악한 범죄자이며, 이야기되는 추억담은 모두 범죄라는 정도고요.

읽으면서 아직도 걸작으로 회자되는 이유는 잘 알 수 있었습니다. 흔해빠진 스파이 소설이나 느와르, 하드보일드 물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고급스러움이 곳곳에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는 빼어난 묘사들과 생생한 캐릭터들 덕분입니다. 유유부단하며 체면을 중시하는 속물이자 샌님인 주인공 래티머부터 눈부실정도로 생생해요. 뭔가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알맹이는 없고,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모습은 실존하는 인물이라는 느낌을 전해 줄 정도입니다. 탐정 수사, 모험물 주인공이 이렇게 평범하고 소심하기도 힘든데, 거의 백여년전 작품에서 자연스럽게 해 내고 있는게 놀랍네요.

조역들도 현실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범죄물, 특히 느와르나 하드보일드에서 자주 등장했던 쌍욕을 하는 범죄자, 보자마자 사람을 죽이는 킬러, 여성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마초와 폭력배들은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사악한 범죄자 디미트리오스조차도 나름 신사적이며, 그를 등쳐 먹으려는 시시한 사기꾼 악당 피터슨조차 철학사를 옆에 끼고 사는 인물로 그려지는 등, 후대의 느와르나 하드보일드와는 캐릭터가 사뭇 달라요. 요즘 작품이라면 당연시되는 불필요한 정사 장면 묘사나 고어, 포르노에 가까운 혐오스러운 폭력 묘사 역시 찾아보기 힘들고요.

실제 등장은 마지막 몇 페이지에 그치는 디미트리오스의 존재감도 발군입니다. 그야말로 '씬 스틸러' 로 돈과 권력을 탐하는 순수한 악당이지만, 기묘한 조직력과 행동력, 관찰력이 잘 설명되기 때문입니다. 가난뱅이 악당 시절, 이웃이었던 프레베자를 범죄에 끌어들이며 한 말이 기억에 남네요. "내가 당신을 고른 건, 비록 당신이 무르고 감상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약삭빠르고 쉽게 흥분하지 않기 때문이야. 내가 그날 당신 방에 갔을 때, 나는 당신이 커튼에 돈을 숨겨 놓았을 거라고 생각했어. 왜냐하면 당신 같은 사람들은 늘 커튼에 돈을 숨겨 놓거든. 낡은 수법이지. 하지만 당신은 초조한 눈으로 핸드백을 계속 주시했고, 그래서 나는 당신이 현명하다는 것을 알았어." 라는데, 그럴듯하지 않습니까? 프레베자는 자기 자신이 현명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이 말에 넘어가 버리고 말지요.

디미트리오스의 여러 악행을 1920~30년대 유럽에서 일어났던 실제 역사에 잘 녹여낸 전개도 그럴듯합니다. 예를 들자면, 디미트리오스는 1922년 터키와 그리스 전쟁으로 벌어진 스미르나 대학살 당시, 피난민들 움직임을 이용하여 그리스로 도주했고, 1924년에 터키 지도자 케말 퍄사 암살 음모에 가담했었으며, 1926년에 유고슬라비아가 오트란토 해협에 설치한 기뢰 위치가 기록된 지도를 빼돌려 프랑스에 팔아먹으려고 했다는 식입니다. 이런 부분에서 약간 팩션 느낌도 전해 주고요.
래티머가 당시 교통 수단을 이용하여 이스탄불에서 스미르나, 아테네, 소피아, 제네바를 거쳐 파리로 향하는 여정도 마찬가지로 볼 만 합니다. 그런데 구글 지도로 확인해보니 4,162Km에 달하는 거리더라고요. 단순한 호기심으로 이렇게 긴 수사 여행을 떠나는 래티머도 확실히 보통 사람은 아니긴 하네요.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그닥 도드라지는 부분은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수사는 별 볼일 없고 - 영국인 작가가 밝혀낼 수 있는 상식적인 수준에 그칩니다. - 디미트리오스의 악행과 범죄는 모두 관계자 증언만 있는 탓입니다. 증거라고는 전무합니다.

그나마 딱 한 가지, 이전 디미트리오스를 협박했던 피서르가 살해된 후 디미트리오스로 위장된 경위를 설명하는 피터슨의 추리 정도만 볼만 했습니다. 여러명이 함께 요트 여행을 간 뒤, 다른 승객이 내릴 때 피서르에게만 따로 이스탄불로 함께 가자고 유혹했다는 추리지요. 그리고 이스탄불에서 피서르를 살해하고 자기 옷을 입혀 바다에 버린 후, 자신은 피서르의 이름으로 투숙한 뒤 떠난 겁니다.
다만 피서르가 자신이 협박하던 디미트리오스와 선뜻 단 둘이 항해를 떠났다는건 설명하기 어렵고, 역시나 증거라곤 하나도 없다는 문제는 큽니다.

또 래티머가 확인했던 사체가 사실은 디미트리오스가 아니라 피서르였다 한 들, 이를 밝힐 수 있는 방법은 없으며 프랑스 경찰이 뭘 할 수 있지도 못해서 딱히 디미트리오스에게 위협이 될 사건도 아닙니다. 피터슨이 협박하자 디미트리오스는 살인으로 입을 막으려 하는데,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전혀 그럴 필요가 없어보였거든요. 

그리고 피터슨이 디미트리오스에게서 백만 프랑을 울궈낸 뒤, 당연한 보복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건 마찬가지에요. 온갖 범죄를 저질러 왔던 악당인데, 협박범을 그냥 놔 둘리 없잖아요? 래티머도 위험한건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협박은 엄연한 범죄인데 래티머가 공범으로 함께 자리하는 전개도 쉽게 납득하기는 어려웠어요.

피터슨과 래티머를 궁지에 모는 데 성공한 디미트리오스가 래티머를 제압하지 못해 최후를 맞는 결말도 많이 시시했습니다. 래티머는 바닥 양탄자에 미끄러진 탓에 디미트리오스가 쏜 총알을 피할 수 있었고, 이어진 격투로 총을 빼앗는데 성공하는데, 이렇게 운과 우연에 의해 살아남는게 소시민 래티머에게 어울리기는 하지만 조금 더 정교한 무언가를 기대했는데 아쉬웠습니다.

마지막으로 단점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고급스러움을 얻기 위해 도입한 장황하면서 옛스러운 묘사, 그리고 느릿느릿한 전개와 말투는 독서를 방해하는 요소였습니다. 고급스러움의 반대급부로 지루함이 생겨난 셈이지요. 예를 들어 제목은 래티머가 디미트리오스를 처음 만났을 때 떠오른, '인간은 악마의 가면처럼 얼굴을 사용한다. 얼굴은 자기감정을 보충해 주는 감정을 타인의 가슴속에 불러일으키기 위한 도구다.' 라는 상념에서 비롯된겁니다. 얼굴이 가면같다니! 멋지긴해도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발표 당시에는 걸작이었을테고, 지금 읽어도 멋진 작품이기는 하지만 기대만큼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추리적인 요소와 재미 측면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에 감점합니다. '추리' 보다는 '순문학'에 가까운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열린책들'에서 '세계문학' 으로 출간한게 이해가 됩니다.

덧 1 : 해설이 아주 좋습니다. 서점에서 뒷부분 해설만이라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덧 2 : 원래 "디미트리오스의 관"이라고 알려져 있었는데, 해설에 따르면 원래는 "가면"이 맞다고 하는군요. 미국 출간 당시 제목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제 생각에도 관 보다는 가면 쪽이 작품에 더 적절합니다.

2020/05/09

이웃집 소녀 - 잭 케첨 / 전행성 : 별점 2점

이웃집 소녀 - 4점
잭 케첨 지음, 전행선 옮김/크롭써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독서광의 모험은 끝나지 않아"에서 구라타 히데유키가 이 책을 산 그날,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책을 다 읽지 않으면 오늘은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을 정도라고 극찬했던 말 때문에 구입해서 읽게 된 책입니다.

그런데 제 취향과는 백만광년정도 거리가 떨어진 작품이더군요. 너무나 예쁜 소녀 메그에게 닥치는 처절한 학대가 이야기의 골자로, 미국 시골에서 벌어지는 무식한 광기를 극한으로 그려내는데 묘사가 너무 끔찍한 탓입니다. 제대로 읽기가 어려울 정도였어요.

시골 촌 사람들의 비뚤어지고 무식한 광기를 극한으로 그려내었다는 점에서는 스티븐 킹의 "1922"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끔찍한 묘사도 그에 못지 않고요. 그러나 순수한 픽션으로 나름 '공포'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데 성공한 킹의 작품과는 다르게, 저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는 혐오스럽다는 감정밖에는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무식한 아이들의 행동거지 하나하나, 학대의 주체인 루스의 언행 하나하나 모두가 혐오스럽기 짝이 없으며, 이들이 벌이는 고문과 폭행도 마찬가지거든요. 왜냐하면 이들의 행동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순수한 싸이코패스들이 모여서 벌이는 광기의 축제인데, 이를 생생한 작가의 묘사력으로 그려낸 탓에, 더욱 혐오스럽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러하고요. 

주인공 데이비드가 이들에 휩쓸리는 과정과, 나름대로 이들에 맞서 펼치는 발버둥도 전혀 와 닿지 않았어요. 뭔가 자기 합리화에 불과해 보여서 기분도 별로였고요. 그나마 루스를 살해하는 데이비드의 행동도, 권선징악의 카타르시스보다는 자위행위와 같은 감정의 배설로만 보일 뿐이었습니다. 이 역시 아무런 의미가 없거든요. 차라리 그녀가 대중의 질타를 받으며 죗값을 받는게 더 큰 형벌이었을텐데 말이지요. 이 정도면 너무 쉽게, 편하게 죽은 셈이라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이후의 에필로그, 데이비드의 어정쩡한 인생과 루스의 아들 중 한명인 우퍼가 살인마가 되었다는 뉴스 등도 사족일 뿐입니다. 다른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그리고 있지 않아서 애매하기도 하며, 솔직히 그래서 뭐가 어쨌는데? 라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아요. 잔혹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뒤, 정상적으로 살 수 없었다는 결말을 그리려고 한 모양인데 이건 너무 뻔하죠.
이렇게 작가의 의도가 뻔하게 드러나는 설정과 묘사는 그 외에도 많습니다. 루스가 엄청나게 예뻤고, 그림에 대해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는 설정이 대표적입니다. 그렇게 죽기에는 너무나 안타까운 소녀였다는걸 독자에게 각인시키려는 의도였겠지만, 뻔하다는걸 부인하기 힘듭니다. 

전개가 흡입력 있고, 묘사가 걸출하다는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읽는내내 끔찍했고 혐오스러웠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하드코어 포르노 혹은 하드고어 호러물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잔혹함이 극대화되었던 범죄들, 예를 들자면 일본 시멘트 살인 사건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면 이런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개인적으로는 소설처럼 재구성하기 보다는, 실제 사건에 대한 논픽션이었다면 차라리 더 나았을것 같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좀 객관화된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다는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촉법 소년' 들이 일으키는 범죄에 대해서 용서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초등학생이라도,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서는 죗값을 치루는게 맞지요. 부디 빠른 시일 내에 어리다는 이유로 무죄 방면되는 어처구니 없는 법이 시정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2018/11/04

악몽을 파는 가게 2 - 스티븐 킹 / 이은선 : 별점 2.5점

악몽을 파는 가게 2 - 6점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황금가지

스티븐 킹의 최신 단편집 2편입니다. 원초적인 공포보다 순문학 쪽으로 이동하는 느낌을 물씬 풍기던 최근 작풍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편보다는 수록작들 수준이 높습니다. 전권에서는 "우르"라는 기대 이하의 졸작도 수록되어 있었지만, 이번에는 수록작 대부분 완성도가 평균 이상이에요. 과거와 같이 화끈하지는 않더라도, 일정 경지에 오른 거장이 맘먹고 쓴 쉼표같은 작품들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고요.

한마디로 스티븐 킹의 현재를 보여주는 좋은 단편집입니다. 전체 평균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만 뛰어난 작품이 많아요. 작품 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합니다.

"허먼 워크는 여전히 건재하다"

도망친 여러 남자들 사이에서 얻은 각각 4명, 3명의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떠난 재스민과 브렌다의 이야기로 암담한 아줌마 버젼의 "델마와 루이스"라 할 수 있습니다. 둘의 암담함과 자기 파괴로 이어지는 심리 묘사 외에 별다른 내용은 없습니다. 오히려 연로한 두 시인의 등장은 뜬금없습니다. 허먼 위크가 아직 건재한 것도 딱히 상관이 없고요.

하지만 두 아줌마들의 암담함에 대한 묘사가 그야말로 압권이라 그 둘이 순식간에 사로잡히는 자기 파괴적 생각에 동의하게 만드는 수작입니다. 이제는 스티븐 킹을 호러의 제왕이 아니라 암담함의 제왕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아요. 같은 암담함이라도 "1922"는 픽션 느낌이 좀 있었는데, 이 작품은 너무 현실적이라 더 와 닿고 무섭습니다. 작품을 쓰게 된 발단이 되었다는 기묘한 교통 사고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컨디션 난조"

아내 엘렌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시체를 집 안에 방치해 놓은 광고쟁이 프랭클린의 이야기입니다. 

이전의 킹이었다면 프랭클린이 아내를 죽였거나, 아내의 시체가 모종의 이유로 되살아났거나, 아니면 시체 냄새를 맡은 아파트 주민들이 좀비같이 변해 거대한 학살을 불러 일으키는 식으로 전개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의 프랭클린은 아내를 사랑하는 평범한 인물이며, 그의 행동은 "사랑" 때문으로 묘사됩니다. 결말도 그냥 아내 시체 옆에 머물 뿐이고요.

이렇게 대단한 드라마는 없지만, 킹이 쓴 순애보라는 점 만큼은 독특합니다. 오지 오스본의 발라드같은 느낌이랄까요? 과거의 킹 스타일도 좋지만 이런 이야기도 나쁘지는 않네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철벽 빌리"

전 메이저리그 관계자 조지 그래섬이 스티븐 킹에게 1957년 뛰었던 '철벽 빌리' 라는 선수에 대해 이야기하는 형식의 작품입니다.

제목이기도 한 "철벽 빌리" 캐릭터가 아주 인상적입니다. 인터넷 용어로 따지면 "야모순바(야구밖에 모르는 순진한 바보)" 그 자체인데, 그래서 무섭거든요. 야구를 하고 싶은 소년에게서 야구를 빼앗으려 하자 모든걸 없애버리고, 친구의 승리가 빼앗겼다고 느끼자 심판을 살해해 버리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압도적인 캐릭터가 존재함에도 빌리와 그의 잔혹한 행각의 비중보다는 1957년 당시 야생적이었던 메이저리그와 선수들, 시합 장면에 대한 묘사 비중이 높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그래서인지 이야기도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오고요. 또 이는 직접 살해 현장을 목격하지는 않은 조지 그래섬 1인칭 시점인 덕분도 큽니다. 조지 그래섬의 입을 빌어 실제 존재했던 팀과 선수들에 대해 조금씩 풀어가며 설득력을 높이는 솜씨도 일품입니다.

딱 한가지 아쉬움이라면 빌리의 사연을 너무 대충 넘긴 부분입니다. 빌리 블레이클리와 그 가족을 살해한 원래의 유진 캣서니스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탓에, 다른 평범한 싸이코 살인마와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유진 캣서니스 시기의 암담함을 특유의 묘사로 풀어내었더라면 "1922" 수준의 수작 중편이 되었을텐데 말이지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미스터 여미"

노인 요양원에서 '미스터 여미'라고 불리우는 존재를 목격하면 죽을 날이 머지 않았다는 뜻이라는 내용의 단편입니다.

노인들이 아직 젊었을 때 빛나던 존재를 목격하고 얼마나 설레었는지, 그리고 노인들이 죽기 전 젊었을 때의 설레임을 잠시나마 느끼게 된다는 묘사는 킹도 늙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드네요. 한마디로 죽을 날이 머지 않은 킹의 바람(?)을 그린 소품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토미"

조금 독특한 운문(?) 형태의 짤막한 작품. 그런데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습니다. 1960년대를 추억하기 위해 쓴 개인적인 습작이 아닐까 싶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초록색 악귀"

미국에서 여섯 번째로 돈이 많은 뉴섬은 비행기 사고를 당한 뒤, 지속적인 통증을 해결하기 위해 그 바닥에서 잘 알려진 목사 라이드아웃을 초빙했다. 전속 물리치료사인 캣(캐서린)은 그가 사기꾼이라고 확신하는데... 

사기꾼으로 알았던 라이드아웃의 캐릭터가 돋보입니다. 실제로 몸 속에 존재하는, 통증을 불러일으키는 악귀를 끄집어 내어 잡을 수 있는 능력자라는게 밝혀지는 전개도 좋았고요.

하지만 악귀를 끄집어내는 과정까지의 전개가 너무 길고, 악귀와의 사투도 심심하며 결말도 그냥저냥이라 아쉬움이 더 큽니다. 정전 상태에서 캣의 손으로 무언가 스물스물 올라온다는 정도로는 약합니다. 결국 라이드아웃의 용기에 담지 못한 초록색 통증 악귀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여러모로 보았을 때, 이 작품만큼은 과거의 크리쳐물 형태로 썼더라면 훨씬 좋았을 겁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저 버스는 다른 세상이었다"

뉴욕의 러쉬 아워에 갇힌 광고쟁이 월슨이 우연하게 나란히 선 옆 버스에서 한 여성이 살해당하는걸 목격했지만, 중요한 프리젠테이션 생각에 그 사건을 무시해 버린다는 내용입니다.

윌슨에게 연이어 닥치는 불행에 대한 묘사는 재미있는데 그 외에는 딱히 건질게 없네요. 윌슨이 프리젠테이션에 늦지 않을까?라는 드라마가 살인 사건보다도 비중이 클 정도로 사건이 건조하게 묘사되는 탓입니다. 한마디로 대단한 드라마가 없는거지요. 주위 사람들에게 무심한 현대인들, 돈이 더 중요한 현 세태를 풍자한다고 보기에는 풍자 요소도 많지 않고요.

한마디로 평범 이하 수준의 범작입니다. 창작 의도는 알겠지만 제대로 구현되었다고 보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부고"

인터넷 뉴스 매체에서 부고 기사를 쓰는 찐따 마이크에게 가짜 부고를 실제로 만드는 힘이 있다는게 밝혀지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2016년 에드가상 단편 부문 수상작이지요. 

작가가 의도치않게 쓴 글이 현실로 벌어진다는 설정 자체는 평범합니다. 오래전 킹 스스로도 "신들의 워드프로세서"라는 비슷한 작품을 쓰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 작품은 부고를 쓴 인물 뿐 아니라 근처에 사는 같은, 혹은 비슷한 이름의 인물들이 함께 죽어나간다는 차별화되는 설정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마이크가 오지 와이오밍의 라라미에서 숨어 산다는 결말도 괜찮습니다. 마이크는 (꿈자리는 사납지만) 꽤 괜찮은 슬로우 라이프를 즐기는 듯 하고, 그의 능력으로 도움을 준 몇몇 사람들에게는 좋은 일이 생겼다는 해피엔딩인데 나쁘지 않아요. 최소한 모두 파멸해 버리는 뻔한 결말은 아니었으니까요. 인터넷 매체 '네온 서커스'와 거기 실리는 기사들, 소속 기자들에 대한 정신나간 묘사들도 최신 트렌드 느낌으로 잘 그리고 있어서 마음에 듭니다.

그러나 이런 류의 작품들 중에서 돋보이냐 하면 그 정도는 아닙니다. 에드가상을 수상할만한 작품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비슷한 이름의 사람들이 죽는다는 설정을 잘 살리지 못한 탓이 큽니다. 그 사실을 알고 그냥 도망친다? 이야기를 너무 쉽게 마무리한 느낌이에요. 솔직히 부고를 쓴 후 그것을 기자가 실제로 만든다는 다른 단편들쪽이 더 오싹하죠.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예전에 "라라미에서 온 사나이"라는 고전 서부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라라미가 정말 미국에서도 유명한 깡촌인가 보네요. 라라미로 도망치면 아무도 그를 찾지 못하고 사건이 해결될 정도라니...

"취중 폭죽놀이"

호수 산장에 사는 올던과 어머니가 호수 건너편 대저택에 사는 마시모 가족과 매년 7월 4일, 폭죽 놀이 배틀을 벌인다는 흥겨운 이야기. 결국 올던이 마지막에 구입한 2000달러 짜리 폭죽 "제 4종과의 조우"가 마시모 가족 저택을 홀랑 태우는 결말까지 한 치의 방심도 할 수 없이 유쾌하게 전개되는 작품입니다.

전작에서도 그렇고 킹이 여러 작가의 작풍을 모방하는 취미가 생긴 듯 한데, 이 작품은 어디로 보나 마크 트웨인이 떠오르더군요. 전편에 걸쳐 흐르는 유머도 그렇고, 마지막에 두 가족 모두 집을 태워먹고 화해한다는 결말까지 말이죠.

올슨과 어머니가 알콜중독이었다는 등의 불필요한 설정은 조금 거슬리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집 수록작 중에서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킹 작품 중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흔쾌히 권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작품이에요. 별점은 3.5점입니다.

"여름 천둥"

핵전쟁 이후 후유증으로 죽어가는 로빈슨이 유일한 친구 팀린과 애견 간달프마저 죽자 할레이 데이비슨을 타고 여행을 떠난다는 소품입니다. 

특징은 죽어가는 생존자들이 보이는 인간미가 돋보인다는 점입니다. 킹의 예전 작품이라면 이들이 사는 마을에 지옥도가 펼쳐졌을텐데 말이지요.

하지만 지옥도 대비해서 화끈한 재미가 부족하다는건 단점입니다. "카페 알파"도 나쁘지야 않지만 "세기말 구세주 전설"이 아무래도 더 화끈한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제 별점은 2점입니다.

2017/08/18

물건의 탄생 - 앤디 워너 / 김부민 : 별점 3점

여러가지 일상 속 물건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알려주는 미시사 만화책입니다. 욕실, 옷장, 거실, 주방, 카페, 사무실, 마트, 술집, 야외라는 8개 항목의 대분류로 구분된 44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정말로 우리 생활 속에 맞닿아 있는 사소한 물건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게 특징입니다. 불과 수 십년 전만 해도 대세였던 고리가 달린 캔 뚜껑 따개를 누가 만들었는지, 지금과 같이 뚜껑이 떨어지지 않게끔 누가 개선했는지 알려주는 식으로요. 덕분에 익히 잘 알려진 이야기들의 비중이 높고요. 문제는 그 중에서도 면도기, 고양이 모래, 비단, 찍찍이(벨크로), 옷핀, 슬링키, 전자레인지, 볼펜, 종이, 포스트잇, 종이봉투, 인스턴트 라면, 아이스크림 콘, 감자칩, 철조망의 15종은 이미 다른 책에서 상세하게 접한 내용이라는 것이지요.
또 220페이지에 불과한 분량으로 머릿말, 참고 문헌, 감사의 말 등을 제외하면 이야기 하나 당 4페이지를 갓 넘는 정도라 그다지 밀도가 높다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만화로서 꽤나 재미있는 덕분입니다. 별 것 아닌 이야기에서 나름 드라마를 뽑아내어 전개하고 있어서, 이야기 하나하나가 만화 한 편으로 볼 만 하거든요. 유머러스하게 전개도 즐거웠고요. 흑백 톤으로만 그려져있지만 정확한 뎃셍으로 그려진 작화도 이야기에 딱 맞아 떨어집니다. 이런 부분은 "만화로 보는 맥주의 역사"와는 다른 명확한 장점이죠. 

아울러 1/3이 다른 책에서 나온 것이라 해도 2/3는 새로운, 신선한 정보들이라 이러한 것들을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특히 미국에서 비롯된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괜찮았어요. 1904년 흑인 여성 마담 C.J 워커가 샴푸로 대박을 쳐서 미국 최초로 자수성가한 여성 백만장자로 기록되었다는 이야기, 흑인 혼혈 청년 마첼리허르가 네덜란드령 기아나에서 필라델피아로 이주한 후 구두 골 위에 가죽을 씌우는 라스팅 공정을 자동화하는 기계를 발명한 이야기, '요요'는 필리핀에서 유래되었는데 1915년 미국으로 이주한 요요의 달인 페드로 플로레스가 대량 생산을 처음 시작한 후 던컨이라는 미국인에 의해 전국적 인기를 얻지만, 이후 '요요'라는 말은 필리핀어로 장난감을 뜻하는 일상 용어라 제품명 저작권을 상실하고 결국 도산했다는 이야기, 감자칩을 과자의 왕으로 만든 사람은 서부의 감자 칩 여왕 로라 스커더로 그녀가 처음으로 바삭한 감자칩을 유통했다는 이야기, 1922년 흑인 발명가 개릿 모건이 신호등 특허를 출원했다는 이야기 등이 그러합니다.

수박 겉핥기 수준이라도 관련된 Trivia를 소개하고 있는 점도 괜찮았어요. 주로 후일담이나 관련된 이야기들인데, 몇 컷 되지는 않지만 본 편 만큼이나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발명품으로 돈을 벌지 못한 실패자들이 등장하는 장면처럼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예전에 많았던 "학습 대백과" 류의 만화가 떠오르는, 만화의 장점을 잘 살린 재미있는 책이었습니다.

2016/12/18

해가 저문 이후 - 스티븐 킹 / 조영학 : 별점 2.5점

해가 저문 이후 - 6점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황금가지

스티븐 킹의 최신 단편집입니다.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이후 6년만이라고 하네요. 모두 13편의 중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수록 작품 수 부터가 남다른데, 내용도 확실히 최신 작품답습니다. 작가의 이전 작품들과는 확실히 궤를 달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초적인 부분을 건드리는 작품은 거의 없고, 심리나 특정 상황에 대한 묘사에 기대는 작품이 대부분이거든요. 심지어 특정 몇몇 작품은 아예 공포라는 감정보다는 그냥 인간에 대한 묘사, 환상에 대한 묘사로만 이루어져 있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작품이 기묘한 '강박'을 다루고 있다는 것도 눈여겨 볼 만 해요. '강박'을 주제로 한 앤솔로지 수록작이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전부터도 느낀 것이지만 음악을 전면에 드러내어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작품이 많다는 점도 눈에 뜨입니다. 대표적인 것은 "N"에서 환자 N이 괴물을 보고 달아나면서 차에서 라디오를 켰을 때 록 음악이 터져나오는 것에 대한 묘사입니다. 더 후의 노래가 끝나고 흘러나온건 도어스의 "세상의 이면으로 건너오라"였는데 참으로 절묘했어요. 오싹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저는 직접적인 공포가 드러난 작품을 좋아하는 탓에, 이런 변화가 좋게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습니다. 작가의 연륜이 쌓이고, 내면의 성찰이 깊어졌다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는 작품들이지만 이런 류의 작품을 스티븐 킹이 쓸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 탓입니다.

대표적인 예는 사후세계를 환상적으로 묘사한 "윌라", 홀로 헬스 자전거 운동을 하다가 강박적인 상황에 빠져든다는 "헬스 자전거", 9.11 테러 때 회사를 땡땡이 쳐서 운 좋게 살아남은 스콧에게 죽은 동료들을 상징하는 물건이 갑자기 찾아온다는 "그들이 남긴 것들" 입니다. 사후세계초자연 현상을 다루고 있지만 단지 소재일 뿐, 내용과 전개는 인간 관계나 강박적인 심리 묘사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인간 관계가 그다지 드라마틱하지 않고, 딱히 반전도 존재하지 않으며, 기묘한 현상에 대한 설명도 없고, 심지어 무섭지도 않아서 지루하기만 했다는 겁니다. 스티븐 킹만의 문체와 묘사로 환상 세계를 그린 묘사는 나쁘지 않지만 이 역시 새롭다기보다는 변주에 불과해 보이기도 하고요.

이는 남편이 꾼 꿈을 통해 공포가 실체화 된다는 "하비의 꿈"과 비행기 사고로 죽은 남편의 전화를 받는다는 "뉴욕 타임스 특별 구독 이벤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핵폭탄이 투하된 순간을 그린 초단편 "졸업식 오후" 역시나 지극히 익숙한 소재임에는 분명하고요.

다행히 과연 스티븐 킹이구나! 싶은 작품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전체 별점은 2.5점. 아래 소개해드릴 4편이 바로 그것입니다. 짤막하게 소개해 드리며 리뷰를 마칩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진저브래드 걸"

에이미는 아이가 죽은 후 강박적인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웃에 사는 연쇄 살인마 피커링의 살인 현장을 목격했고, 그에게 쫓기게 되는데...

피커링에게 사로잡힌 에이미가 살아남기 위해 탈출하는 과정의 서스펜스가 어마무시한 작품입니다. 묘사가 장난이 아닌 덕분입니다. 아이가 죽은 후 슬픔을 잊기 위해 에이미가 달리기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과정을 충분히 설명함으로써, 이후 탈출에 대한 설득력을 부여해주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최후의 순간에 피커링이 수영을 못 한다는 설정을 갑자기 드러낸 것은 약간 반칙 같고, 어떻게보면 조금 뻔하다는 단점은 있지만 강박증과 추격전이라는 두 개의 테마 만큼은 잘 그려낸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N"

저명한 정신과 의사 조니 본세인트가 자살하고, 그가 남긴 원고는 여동생에 의해 오랜 친구 찰리 킨에게 보내졌다.
원고는 1년 전, 조니에게 N.이라는 강박증 환자가 찾아온 날부터 시작되었다. N.은 충동에 의해 찾아간 한 장소에서 태고의 무시무시한 존재의 봉인이 풀리려는 것을 발견했고, 그것을 막기 위한 사명을 갖게 되었지만 이로 인해 엄청난 강박증에 시달렸던 환자였다...

대부분 1인칭으로 쓰여진 의사의 원고와 서간문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작품입니다. 고대로부터 유래된 절대자, 봉인, 심연, 심지어 크쑨이라는 이름까지는 러브크래프트를 연상케하지만, 환자 N.이 이야기하는 그의 과거, 즉 그가 애커먼 들판에서 '크쑨'이 처음 나오려는 것을 발견한 후 그것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의 설득력이 실로 대단하며, 이 과정을 모든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고 배열하려고 하는 강박증과 잘 연결시켰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또 유일한 증거는 N.의 증언밖에 없지만 그것을 단계별로 정신과 의사가 기록했다는 식으로 설득력을 보장함은 물론, 일종의 주간 드라마 같은 방식(환자가 더욱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므로) 독자의 흥미를 지속시키는 전개 방식도 아주 빼어났어요.
이에 설득당한 조니 본세인트, 그리고 그의 여동생 셰리아가 자살하고 이 사명을 찰리 킨이 받게 된다는 "링" 스타일의 저주의 연쇄 역시 볼만했고요.

그러나 N.이 이야기한대로 이 사명을 가진 자가 그냥 죽어버리면 '크쑨'의 봉인이 풀릴리 없다는 법칙이 잘 설명되지 않는다던가, 여러명이 크쑨을 바라보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묘사가 없는 등 디테일은 조금 아쉽습니다. 혼자서 그렇게 두려움을 느낀다면 누군가와 같이 가면 되잖아요?

그리고 "링" 수준 만큼은 아니더라도 뭔가 연결고리, 법칙을 부여했더라면 훨씬 좋았을겁니다. 예를 들면 N.이 조니 본세인트를 찾아온 이유와 조니의 동생으로 이어지는 관계에 이름의 이니셜이 이어진다던가 하는 식으로 법칙을 넣는 방법이 있을 수 있겠지요.

그래도 러브크래프트의 진전을 이어받기도 했고, 거장이 달리 거장이 아님을 보여주기도 하는 재미와 공포에 있어 압도적인 작품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벙어리"

영업사원 모네트는 성당에서의 고해 성사에서, 영업 출장 중 태웠던 벙어리 히치하이커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모네트는 히치하이커에게 아내 바브가 직장에서 거액을 횡령한 뒤, '카우보이 밥'이라고 부르는 애인과 흥청망청 쓴 후 도망가 버렸다고 했는데... 

태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 벙어리 스탠리 두세트

그게 누구건 선의를 베풀면 보답을 받는다는 전래 동화같은 이야기입니다. 고해성사를 하면서 아내 바브와 그에 얽힌 범죄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는 모네트의 입담도 볼거리고요. 보답이 불륜과 범죄를 저지른 아내와 정부를 때려 죽이는 거라는건 스티븐 킹 다왔습니다. 실제 뉴스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창작 비화 역시 인상적이었고요.

결말이 좀 뻔하긴 하지만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아주 비좁은 것"

이웃 그룬왈드와 땅, 그리고 애견의 죽음에 얽힌 송사에 휘말린 주식 거래인 커티스는 어느 날 그룬왈드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모든 요구를 수용할테니 이 모든 것을 끝내자는 제안이었다. 이후 커티스는 홀로 그룬왈드를 만나러 폐허처럼 버려진 공사 현장으로 찾아갔다가 권총으로 협박당한 후, 공사 현장 화장실에 갖히고 말았다...

묘사력으로는 수록작 중 최고로 꼽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그야말로 거장의 글 솜씨가 제대로 발휘되어 있습니다. 바로 직전에 읽었던 "별도 없는 한밤에"의 첫번째 작품 "1922"<1922>가 떠오를 정도로 읽는 사람을 미치게 만들거든요. "1922"<1922>가 생지옥, 그리고 쥐에 대한 묘사로 독자를 미치게 만든다면, 이 작품은 화장실과 오물에 대한 묘사가읽는게 힘들 정도로 생생합니다.

또 화장실에서 커티스가 죽게되더라도 일종의 사고사로 보이게 된다는 정황 묘사도 그럴싸 하며, 그룬왈드가 사업에 실패한 뒤 아내가 도망갔고, 심지어 암까지 걸린걸 커티스 탓으로 돌리는 범행 동기 역시 설득력이 높습니다. 특히나 범행 방법은 완전 범죄를 그린 범죄물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잘 짜여져 있습니다.
아울러 화장실을 탈출하기 위한 커티스의 노력도 흥미진진합니다. 커티스가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이 애견 벳시의 인식표 덕분이라는 소소한 디테일도 마음에 들었어요.

그러나 딱 한가지, 커티스가 탈출 이후 보여준 행동과 그룬왈드의 자살은 석연치 않습니다. 특히 그룬왈드가 어차피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면 커티스를 다시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닐텐데, 왜 포기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저 같으면 자살하기 전에 커티스에게 알고 있는 것 중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복수했을텐데 말이지요.

그래도 별점은 3.5점입니다. 두번 다시 떠올리기 싫을 정도로 악취미이긴 한데 재미만큼은 명불허전입니다.

2016/11/20

별도 없는 한밤에 - 스티븐 킹 / 장성주 : 별점 3점

별도 없는 한밤에 - 6점
스티븐 킹 지음, 장성주 옮김/황금가지

호러의 제왕 스티븐 킹의 중단편집입니다. "사계"처럼 4편의 중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작품들 모두 어디선가 봤던 설정들이 대부분인 탓에 아이디어는 대단치 않습니다. 대단한 복선이나 극적인 반전이 있지도 않고요. 그러나 독자를 몰입시키는 능력은 정말이지 극에 달해 있습니다. 읽으면서 정말이지 손에서 떼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600쪽 가까운 분량을 하루에 읽을 정도로 말이죠.

한마디로 왜 제왕이 제왕인지를 다시금 느낄 수 있게 하는 단편집입니다. 스티븐 킹과 장르 소설 애호가분들 모두에게 추천드립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합니다.

1922

1922년, 네브래스카 주 헤밍퍼드홈에 사는 윌프리드 릴런드 제임스는 아들 행크와 함께 아내 알렛을 살해했다. 이유는 그녀가 땅을 팔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뒤, 그의 삶은 지옥으로 변해갔다. 시체를 은닉하던 중, 쥐떼에 뜯어먹히던 처참한 아내의 시체를 목격한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서서히 정신적으로 붕괴되어 가던 아들 행크는 이웃집 딸 섀넌을 임신시켰지만, 섀넌의 아버지가 둘을 갈라놓자 가출했다. 그리고 섀넌을 되찾기 위해 강도가 되고 말았다. 결국 섀넌을 만나 도주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연인 강도단'으로 연이어 강도 행각을 벌이다가 둘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쥐에 물린 상처로 사경을 헤매이던 중, 아내의 유령과 함께 행크의 최후를 실시간으로 바라본 제임스는 이후 팔 하나와 그렇게까지 지키려 했던 땅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끝까지 가기 싫어했던 오마하로 가 홀로 8년을 버티다가 자살했다....

"자살한 사람과 살인자는 지옥에 떨어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길을 못 찾아서 헤멜 일은 없을 것이다. 지난 8년간 나는 그곳에서 살았으니까."

아들과 함께 아내를 죽인 뒤, 파멸해 가는 남자를 1인칭으로 그린 작품입니다. 내용은 별게 없습니다. 아내를 죽인 뒤 죄책감과 공포로 인해 서서히 붕괴해가는 주인공, 마찬가지로 비정상이 되어가는 아들 행크, 그리고 그 둘의 삶에 휩쓸려 무너져가는 이웃들을 그려내는 적나라한 묘사가 전부입니다. 이렇게 범죄, 살인 이후 무너져가는 인물을 그린 작품이야 "죄와 벌"을 비롯해서 차고 넘칠 정도로 많지요.

그러나 이런 뻔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제왕의 필력이 너무나 압도적인 덕분에 읽는 내내 손에서 떼기 힘듭니다. 그야말로 생지옥이 펼쳐지거든요. 220여 페이지에 달하는 중편인데 거의 모든 페이지에 공포와 혐오, 증오가 가득차 있습니다.

단순히 죄책감에서 비롯된 심리 묘사뿐 아니라 제왕다운 고어한 묘사도 대단합니다. 그 중에서도 누구나 혐오스러워하는 '쥐'를 매개체로 한 일련의 묘사는 정말 최고에요. 아내의 시체는 물론 자살한 아들 시체까지 쥐에게 파먹히고, 본인 스스로는 환각을 보고 자기 자신을 씹어먹어 죽는다는 결말에 이르는 과정까지의 묘사는 흡사 크리쳐물을 읽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어요.

그리고 생지옥에 대한 고어스러운 묘사만 반복적으로 펼쳐졌다면 조금은 둔감해질 수도 있었을텐데, 순수했던 아들 행크가 변해가는 과정과 천사와 다름없었던 희생자 섀넌과 같은 피해자들에 대한 묘사로 극적인 효과를 배가시킵니다.

무엇보다도 아이러니라면 알렛이 한 말대로 했더라면, 이 가족은 최소한 지옥을 겪지 않았으리라는 점입니다. 특히나 만취한 알렛의 주정을 통해 행크가 어머니 살해를 결심하게 만든 "임신은 시키지 마. 원 없이 훑어도 좋아, 네 물건이 만족해서 토할 때까지. 하지만 안에다 토하면 절대 안 돼. 그랬다간 엄마랑 아빠처럼 평생 한 집에 갇혀 살게 될 테니까"라는 말은 정말로 진실이었어요. 최소한 행크가 임신만이라도 시키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역시 어른들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네요.

물론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상황부터가 문제이긴 해요. 아무리 아내를 'bitch'로 묘사했더라도 아내를 살해하는데 아들을 끌어들인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죄인지라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누가 보아도 인간 이하의 범죄니까요.

또 흔한 설정만큼 캐릭터들도 진부합니다. 책을 좋아하며 소들에게 여신들 이름을 붙여주는 주인공 제임스도 기시감이 많이 들지만, 행크와 섀넌이 강도가 되어 극으로 달리는 부분은 '보니 앤 클라이드' 그 자체입니다. 여기서 보니와 클라이드는 범죄에 중독된 것이라 하더라도, 행크가 섀넌을 만난 이후 강도행각을 계속한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건 문제에요. 아울러 장점이라고는 했지만 행크와 섀넌을 다룬 부분은 약간 신파 멜로물같을 정도로 지나치게 감성적이라 호불호가 조금은 갈리지 않을까 생각되고요. 주인공이 결국 땅을 잃는 과정도 뻔하고 작위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류의 작품 초심자는 견디기 힘들 정도의 섬찟한 작품이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뭐 이 책을 읽으시려는 분들께는 당연히 칭찬이겠죠?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5점. 장점, 단점이 명확한데 읽는 내내 눈길을 떼기 힘든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빅 드라이버

'뜨개질 클럽 시리즈'라는 코지 미스터리 시리즈를 쓰는 추리작가 테스는 강연회에서 돌아오는 길에 한 남자를 만나 강간당해 버려졌다. 시체가 쌓여있던 현장에서 겨우 도망쳐 나온 후, 그녀는 스스로 복수할 것을 결심하고 단서를 찾아 나서는데...

전작과 마찬가지로 설정은 뻔합니다. 성폭행 피해자가 스스로 범인을 단죄한다는 복수극은 널리고 널렸죠. 영화 쪽으로는 "네 무덤에 피를 뱉어라"라던가, 본 작에서도 언급된 "왼편 마지막 집" 등등이 떠오르네요.

하지만 독자를 사로잡는 매력은 전편 못지 않습니다. 특히 한편의 범죄 스릴러로 손색 없는 디테일이 아주 좋아요. 테스가 강간범의 모습을 떠올리고, 범행의 강연회를 주선한 라모나 노빌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 그녀의 주변을 캐고 범인이 어디 사는 누구인지 확인하여 복수를 위해 벌이는 과정이 생생하며 설득력이 높은 덕분입니다.

복수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돌발상황, 예를 들어 라모나 노빌이 진짜 사건에 연루된 것이 맞는지?에 대한 고민, 라모나에게 총을 빼앗기는 상황, 그리고 처음 죽인 남자가 범인인 동생이 아니라 큰 형 빅 드라이버였다 등의 상황이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것도 읽는 내내 흥미를 더해 주고요.

아울러 코지 미스터리 작가인 주인공 테스도 마음에 듭니다. 성격적으로 아주 개성이 넘친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코지 미스터리 작가가 하드보일드스러운 응징을 계획하고 수행한다는 이질적인 매력에 더해 애완동물이나 네비게이션 등과 대화하면서 디테일을 잡아나간다는 묘사, 작품을 위해 권총을 사고 사격 연습을 받았다는 식으로 그녀의 작가적 능력 몇 가지가 이야기에 도움을 준다는 아이디어가 괜찮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경찰에 신고하기 전, 자신에게 닥칠 상황을 상상하고 신고 대신 복수를 선택하는 장면도 아주 인상적입니다. 피해자가 또다른 피해를 우려하여 신고를 포기한다는 이야기는 참 여러모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네요.

하지만 "1922"에 비해서 완성도가 높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앞서 범죄물로서 괜찮은 연결고리를 갖추었다고는 했지만, 라모나 노빌 - 레스터 스트렐키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너무 뚜렷해서 딱히 추리의 여지가 없는 탓이 큽니다. 대놓고 '내가 범인입니다' 라는 식인데 그런 것 치고는 연쇄 강간-살인이 너무 오래 지속된 거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테스가 실종되었다면 마지막 강연 의뢰인인 라모나에게 경찰 수사가 미쳤으리라는 것은 불보듯 뻔한데, 테스의 귀걸이를 라모나가 가지고 있다는 것도 석연치 않았습니다. 팔기도 뭐하고, 잘못 들통나기라도 하면 명백한 증거가 될 텐데 너무 부자연스러워요.

마지막으로 빅 드라이버를 죽인 후 자살을 기도하던 테스의 죄책감이 사라질 만큼 빅 드라이버 역시 사건에 깊숙이 개입한 인물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과정, 유일한 증인이 될 수 있는 벳시 닐이 마찬가지로 성폭행 피해자로 범행을 눈감아 준다는 결말은 지나칠 정도로 작위적입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딸자식 가진 부모로서 분노를 가지고 몰입해서 읽기는 했지만 명확한 단점으로 감점합니다.

덧붙이자면, 2014년 TV용 영화로 영상화가 되었더군요. 그런데 예고편을 보니 작중 애완동물, 네비게이션과 1:1로 나누는 대화 부분을 테스의 인기 시리즈 '뜨개질 클럽' 주인공 할머니가 가상으로 등장하는 것으로 살짝 각색이 된 듯 했습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 중 하난데 이렇게 각색을 하다니... 여러모로 딱히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네요.

공정한 거래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던 스트리터는 우연히 만난 노점상 엘비드와 거래했다. 그의 수명을 늘리려면 누군가에게 그것을 옮겨야 했고, 스트리터는 불알친구 톰을 미워한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 씨발놈이 내 여자를 뺏어 갔다고요!"

악마와 거래한다는 내용의 작품 역시 쎄고 쎘죠. 굳이 예를 들자면 졸문 "계약은 충실하게"가 있고요.

그래도 노점상이 악마라는 것에서 시작하여, 시한부 인생 대신 15년 이상의 수명을 약속하고 이후 받게 될 수익의 15%를 요구한다는 등의 디테일은 독특했습니다.
또 거래 후 톰에게 닥치는 불행의 연쇄반응 역시 스티븐 킹답더군요. 과정이 정말 끔찍하기 그지 없거든요. 1인칭으로 그리면 1922가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죠. 아울러 스트리터와 톰의 행복 - 불행의 지수가 한쪽에 쏠리는 일종의 '행복 질량 보존 법칙' 같은, 흡사 동양의 윤회 사상 비스무레한 전개도 볼 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수록작 중에서는 가장 처지긴 합니다. 악마와의 거래 후에는 일방적인 행복 - 불행의 과정만 나열될 뿐 딱히 반전도 없고 결말도 애매한 탓입니다. 스트리터가 톰이 가졌던 행운까지 차지하고 만다는 결말은 영 와 닿지 않았어요. 악마와의 거래가 이렇게 해피 엔딩으로 끝날 리가 없는데 말이지요.

하긴, 애초에 스트리터가 톰을 팔아넘긴 것도 딱히 설득력이 없습니다. 여자를 빼앗긴 남자는 그게 수십 년이 지나더라도 복수한다는 교훈을 주려고 했던 걸까요? 저는 솔직히 스트리터가 가공할 정도로 찌질하고 속이 좁다는 느낌밖에는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다른 악마와의 거래 소재 작품에 비하면 딱히 쳐줄 부분이 없는 소품입니다. 딱히 찾아 읽어볼 필요는 없습니다.

행복한 결혼 생활

다아시는 1982년에 만난 회계사 밥 앤더슨과 결혼하여 27년간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오던 중, 우연히 밥이 유명한 연쇄살인마 '비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밥이 출장간 어느 날 리모컨 건전지를 찾기 위해 차고를 뒤지다가 밥의 비밀 창고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뭐 이 역시 소재는 뻔합니다. 아내, 혹은 남편에게 자신의 정체를 비밀로 한 배우자, 혹은 다른 가족을 다룬 작품은 널리고 널렸으니까요. 수많은 슈퍼 히어로물이 대체로 그러하고, "트루 라이즈" 같은 작품 역시 마찬가지겠죠. 이 작품처럼 배우자가 범죄자라는 설정 역시 많고요.

이런 류의 작품은 보통 배우자의 정체를 눈치챈 순간부터 극적 긴장감이 생기는데,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결말 두 가지, 즉 '배우자의 은밀한 생활에 동참하거나', '그만두게 하거나' 중 '그만두게 하는' 쪽으로 흘러가는 것 역시 예상대로에요. 보통의 드라마가 부부 동반으로 비밀 정보원이 되거나 슈퍼 히어로가 된다면, 살인마 이야기는 함께 하는 쪽보다는 그만두게 하는게 정상이니 당연하지요. 결국 다아시가 밥을 죽인다는 결말도 솔직히 너무 뻔했어요.

하지만 거장의 솜씨가 작품을 살립니다. 우선은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묘사가 대박입니다. 다아시가 밥의 비밀 창고를 발견하는 과정과 정체를 알아가는 과정의 묘사, 이후 자신의 정체를 아내가 알았다는 것을 눈치챈 밥이 다아시에게 찾아가 이야기하는 장면 묘사 등에서 서늘함과 긴장감이 잘 살아 있는 덕분입니다. 아들과 딸을 생각하여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는 다아시의 딜레마 역시 설득력 있어서 뻔한 전개에 충분한 긴장감을 불어넣어 줍니다.

결말도 뻔하지만 노형사 홀트가 등장하여 깔끔하게 마무리하는건 마음에 들었습니다. 밥의 잔인한 범행을 경찰 입으로 밝혀주면서 응징의 정당성을 높여주면서, 결국 다아시가 밥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체포되었을 것이라는 말로 다아시의 죄책감을 줄이는 좋은 선택이었다 생각되거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뻔한 소재로도 볼만한 이야기를 뽑아내는 거장의 솜씨를 볼 수 있었던 작품입니다. 이래저래 많은 공부가 되었어요. 과연 비슷한 소재로 쓸 때 저라면 어떻게 쓸지, 한번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2013/11/29

코난 도일을 읽는 밤 - 마이클 더다 / 김용언 : 별점 2.5점

코난 도일을 읽는 밤 - 6점
마이클 더다 지음, 김용언 옮김/을유문화사

퓰리처 상을 받은 평론가 마이클 더다가 쓴,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탐정 셜록 홈즈와 그의 창조자 코난 도일에 대한 일종의 헌사 에세이집입니다. 본인이 얼마나 셜록 홈즈와 코난 도일을 사랑하는지에 대한 글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더다가 어린 시절 "바스커빌가의 개"를 처음으로 접했던 것으로 시작하는데, 어린 시절 "계림문고"로 처음 홈즈의 단편 시리즈들을 접했던 제 기억과 묘하게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굉장히 공감이 많이 갔습니다. 홈즈의 단편을 하나씩 작은 소책자 형태로 낸 시리즈였는데, 정말이지 아껴가며, 두근대며 읽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남자아이들이 모험, 공포, 추리물에 열광하는 것은 세계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겠지요. 국내에 소개된 작품이 많지는 않지만 "잃어버린 세계"로 대표되는 챌린저 교수 시리즈를 높이 평가한다던가 "셜록 홈즈의 라이벌들"을 고이 보관하고 있다는 등, 저와 취향이 비슷한 점도 아주 반가웠습니다. 저보다 나이는 많지만, 만나면 바로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러한 개인적 경험담과 함께 여러가지 도일의 작품들을 소개해 주는데, 이러한 소개글도 최고 수준입니다. 오랫동안 워싱턴 포스트지에서 서평을 담당했고, 퓰리처상도 받은 전문 리뷰어인 덕분이지요. 서평으로 밥먹고 사려면 이정도는 써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독서 리뷰 중심의 블로거로서 많이 반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그러면서도 또 이 책의 리뷰는 이 모양이니...). 하여튼, 이 책에서 추천하며 소개하는 여러가지 작품들은 방법만 있다면 어떻게든 찾아보고 싶네요. 이런 류의 소갯글 멘트 중 최고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을 아직 읽지 않은 여러분들이 부럽다"라는 말까지 등장하니 말 다했지요. 

방대한 소개 작품 중 우선 읽고 싶은 것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 "북극성 호의 선장", "249호 경매 품목"
  • 나폴레옹 시대 군인의 회고담이라는 "준장 제라르의 위업"과 "제라르의 모험"
  • 1922년에 도일이 잡다한 단편을 모아 출간했다는 총 6권짜리 "코난 도일 작품선"
  • 가장 궁금했던 "코르스코의 비극". "그들은 기독교를 포기할 수 있을까, 없을까? 그리고 갑자기, 답을 찾기도 전에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끝나고 결정의 순간이 다가온다"... 이건 인터넷을 뒤져서라도 결말을 찾아봐야겠어요.
  • 도일이 높이 평가했다는 다른 작품들도 흥미롭기는 마찬가지죠. 도일에게 세계 최고의 단편이었다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모래 언덕 위의 별장"
  • 열정적으로 추천했다는 러디야드 키플링의 "연대의 북 치는 소년들", "왕이 되려한 사나이"
  • 최고의 유령 이야기라고 극찬했다는 에드워드 불워-리턴의 "귀신 들린 집과 유령들"
  • 로드 던세이니의 "조켄스 시리즈" 소개도 멋드러집니다.

약간 우려되는건 소개된 작품 중 "아서 코난 도일, 미스터리 걸작선"에 실려있는 "사라진 특별열차"와 "시계를 많이 가진 남자"는 소개글만큼 뛰어나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역시나 좀 입에 발린 소개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뭐 세상사는 게 다 그렇겠지요.

코난 도일의 글솜씨가 좋았다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확실히 시대를 초월한 거장에게는 남다른 점이 분명히 있었겠지만 번역본으로 접하면 그런걸 알기는 어러운데, 도일의 문체와 스타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어서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에세이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특정 주제는 재미도 없고 별다른 흥미도 자아내지 못한다는 단점은 존재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더다가 "베이커 가 특공대"에 초대된 뒤, 가입하는 일련의 과정을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특히나 그가 특공대에 가입하면서 '랭데일 파이크'라는 호칭을 받은 뒤, 랭데일 파이크에 대한 디테일한 가공의 약력을 창작하는 것은 지나쳤습니다. 별 관심도 없는 인물인데다가, 창작한 약력이 너무 픽션과 현실을 오가고 억지스러운 인용도 많으며 당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즉 셜로키언이 아니라면 딱히 즐길거리가 없는 글이었습니다.

부제가 "셜록 홈즈로 보는 스토리텔링의 모든 기술"이라서 약간은 작법서에 가까운 정보가 등장할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거의 그렇지 않다는 것도 역시나 단점이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홈즈와 도일의 팬이거나 장르문학 애호가라면 즐길거리가 많은 에세이집입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성향이 강해서 감점합니다. 추천하기도 애매하네요. 단점도 명확하니까요. 코난 도일의 작법과 셜록 홈즈 작품들의 스타일을 철저히 분석한다던가, 국내 미발표 작품들 중심으로 이야기되었더라면 별점 5점도 줄 수 있었을 텐데 조금 아쉽습니다.

2005/03/26

샘 호손의 사건부 : 서문 - 에드워드 D 호크

시리즈 캐릭터의 발단을 떠올리는 것이 쉽지 않을때도 있지만 닥터 샘 호손의 경우 그 때의 상황을 확실히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1974년의 1월의 일입니다. 새 달력을 타이프라이터 옆에 걸었습니다. 달력 각 월의 페이지에는 과거의 전원풍경 수채화가 그려져 있었고 1월은 겨울의 유개교(有蓋橋 : 덮개있는 다리) 의 그림이었습니다.

1월내내 그 그림을 보고 있다가 어느날 마차가 그 다리의 한쪽 편에서 들어가서 반대쪽으로 나오지 않는 경우는 어떨까? 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이틀정도 고민해서 그것에 어울리는 해답과 플롯을 생각해 내었습니다. 이제 그밖에 필요한 것은 탐정 뿐이었습니다.

이 이야기의 시대는 과거로 설정하지 않으면 안되었기에 새로운 종류의 탐정, 새로운 시리즈, 새로운 캐릭터가 필요했습니다. 주인공은 시골의사로 하고, 이름은 간단하게 "닥터 샘 선생"으로 하였습니다. 아마 당시 악명이 높았던 닥터 샘 세펴드의 이름이 아직 기억에 새로웠기 때문이었겠죠. 이야기의 닥터 샘 선생은 의학교를 졸합한지 아직 1년밖에 지나지 않은 젊은이로 보물은 1921년형의 "피어스애로우-런어바웃", 양친이 졸업 축하 선물로 준 차로 설정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거의 전 단편을 그렇게 했듯이 이 작품을 "EQMM (엘러리퀸스 미스테리 매거진)"에 보냈습니다. "엘러리 퀸"의 한사람이자 이 잡지의 편집장이었던 프레더릭 더네이씨는 곧 이 이야기를 마음에 들어해서 두세가지의 수정을 제안했습니다.

먼저 릴리안 데 라 토레가 창조한 닥터 샘 죤슨 시리즈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닥터 샘 선생의 성이 필요하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었죠. 프레더릭은 두세개의 이름을 제안해 주었는데 저는 그자리에서 바로 "호손"을 선택했습니다. 뉴잉글랜드의 탐정으로써 이보다 잘 어울리는 이름이 있을까요?

두번째의 제안은 저를 조금 동요하게 만들었는데 추억담을 이야기하는 늙은 샘 선생의 어미의 "g"발음을 없는 것 처럼, 시골의 사투리로 이야기하는 것 처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한 것입니다. 저는 극중의 다른 여러 등장인물들 (특히 렌즈 보안관) 에게 그렇게 사투리를 사용하도록 하였지만 닥터 샘 선생만은 사용하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저는 동의 했습니다만 이 모든 수정사항은 프레더릭 더네이씨의 지시였다는 것을 알아 주십시오.
그래도 그 후의 여러편에 사투리의 사용은 점차 줄어들게 하였는데 후에 이 시리즈의 작품은 사투리를 사용 하지 않았지만 전부 같은 시리즈로 보여서 좋다고 프레더릭이 말해 주더군요.

처음부터 저는 샘 호손 시리즈를 밀실살인 등의 불가능범죄를 취급하는 시리즈로 계획했습니다. 프레더릭 더네이도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어서 제가 시리즈의 두번째 편을 보내자 이후 시리즈의 작품 전부가 불가능범죄를 취급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해 주었습니다. 저는 기쁘게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여러 종류의 범죄소설이 있지만 탐정소설의 서브 쟝르 중에서는 뛰어난 불가능범죄나 밀실살인처럼 호기심을 자극하고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없죠.

본서에 수록되어있는 작품들은 닥터 샘 호손 시리즈 최초의 12편입니다. EQMM의 1974년 12월호부터 78년 7월호까지 사이에 처음 발표되었던 것들이지요. 1편에서의 시대를 1922년 3월로 설정했고 그 후는 연대순으로 이어집니다.

단, 인쇄오류의 탓으로 인해 연대가 바뀌어 들어간 예가 하나 있습니다. 무대는 노스몬트 마을과 그 주변으로 노스몬트는 코네디컷주 동부에 있는 것 같고, 그 위치는 조금 달라지고 있습니다. 후의 작품에서 이웃 마을이 진 코너스라고 알려지는데 그것은 엘러리 퀸의 장편소설 "유리의 마을"의 무대이기도 합니다.

초기에는 연로한 닥터 샘 선생이 노스몬트에서의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술친구들을 환영하는 장면에서부터 작품이 시작하며, 대부분의 경우 다음 사건을 암시하고 끝났었습니다. 이것도 프레더릭의 생각으로 긴 시간동안 잘 진행해 왔습니다만, 이야기의 전개를 빠르게 하기 위해 저는 도입부를 상당히 줄이고 결말의 예고부분을 전면적으로 없앴습니다. 최근에는 1년에 약 두편의 샘 호손 시리즈밖에는 쓰고있지 않아서 육개월뒤의 다음 작품의 내용을 생각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저의 수많은 시리즈 캐릭터 대부분이 두근두근한 불가능범죄에 도전하지만 그 서브,서브쟝르에 있어서 저의 최고의 작품은 샘 호손 시리즈 속에 있습니다. 최초의 12편을 자세히 살펴 보자면 "유개교의 수수께끼"가 제일 많이 재록되어 있는 것으로 마음에 들며 밀실물의 전문가 로버트 에이디에 따르면 "투표부스의 수수께끼"가 "호슨 시리즈 속에서도 최고로 만족을 주는 작품의 하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쨌건 이 작품집의 12편은 닥터 샘 호손 선생의 제 1 단편집에 수록하기에 모자라지 않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즐겁게 쓴것 같습니다. 여러분들도 좋았던 옛 시절의 이야기를 즐겁게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에드워드 D 호크 / 뉴욕주 로체스터에서 1995년 11월


일본에서 구입한 국내 미발표 단편선의 작가 서문입니다. 에드워드 D 호크는 다른 앤솔로지에서 레오폴드 경감 시리즈로 접해본 작가인데 이 작품 평이 꽤나 괜찮은 편이라 구입해 보았습니다. 먼저 소개격인 서문을 한번 번역해 보았는데 실력이 많이 부족하군요. 의역과 생략 투성이이니 감안해서 보셨으면 합니다. 국내 초역(?)이라는 자부심으로 단편들도 한두편 번역해 보려고 하는데 워낙 실력이 딸려서.... (혹 하게된다면 많은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전 마음이 약하므로 번역에 대한 너무 많은 태클은 삼가해 주시길...푸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