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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9

빵의 역사 - 하인리히 야콥 / 곽명단, 임지원 : 별점 3.5점

빵의 역사 - 8점 하인리히 야콥 지음, 곽명단.임지원 옮김/우물이있는집

이전 올렸던 "빵의 지구사" 리뷰에 댓글로 홍차도둑님이 추천해 주셔서 읽게 된 세계사, 식문화 서적입니다. 새로 복간된 버젼은 아니고 예전에 절판되었던 버젼입니다. 

그런데 '빵의 역사'라는 제목과는 담고 있는 내용이 달라서 굉장히 의외였습니다. '농사'와 '농부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희생되고 숨겨진 역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대 이집트부터 책이 쓰여진 2차대전 이후까지 주요 문명별로 6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으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담고 있는 내용이 무척 깊고 넓어서 간략한 리뷰로 정리하기는 불가능한 역작입니다만 저자 주장의 몇 가지 포인트를 짚어보자면, 일단 처음 '빵'(효모로 부풀리는)과 '오븐'이 태어난 이집트는 모든게 신성화된 왕의 소유였습니다. 그래서 관료가 엄청 많을 수 밖에 없어서 농업에 기반을 둔 농업 국가였음에도, 모든 영광은 관료들이 차지했습니다. 농민들은 농노에 가까왔지만 신성화된 왕에게 소유됨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아서 문명은 잘 유지되었지요.

반면 그리스 문명은 토지 특징 상 농업이 주가 될 수 없었습니다. 곡물은 주로 수입에 의존했어요. 저자는 '황금 양털 가죽'을 찾아 모험을 떠난 이아손과 영웅들은 곡물상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대신 목축이 주였는데, 이는 그리스 신화나 서사시에서 소유한 가축의 양과 질로 부유한지 아닌지가 결정되었다는걸로 알 수 있습니다. 헤라클레스가 하룻만에 아우게이아스의 마굿간을 청소한 신화도 그들이 농사를 짓지 않았다는걸 의미한다네요. 농부였다면 소중한 퇴비의 재료가 되는 마굿간 퇴적물을 물로 씻어 버렸을리가 없다는 이유인데, 그럴듯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솔론의 개혁으로 토지가 분배되었고, 그 덕분에 농민들이 아테네를 다스리게 됩니다. 사유지 확장을 금하고, 정해진 이상의 개인 토지를 몰수한 이 법은 소농들 권한을 강화시켜 아테네를 농업 민주 국가로 변모시켰고, 농민 신분도 상승했습니다. 대지와 곡식, 그리고 '빵'의 여신 데메테르를 숭배하는 엘레우시스교가 아테네의 국교가 될 정도로요. 엘레우시스교는 뒤이은 로마에서도 나름 건재했습니다. 그러나, 부자들이 토지를 점차 장악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농지 분배를 받지 못한 뒤 로마 토지는 이윤이 많이 남는 축산업에 활용되고, 곡물은 수입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주로 아프리카 정복지를 통해 수입되었죠. 그러나 반달족 습격으로 아프리카를 잃고, 유대 지방 곡물의 수탈이 시작되자, '농업인' 예수가 세력을 넓히지만 로마에 의해 살해당하게 됩니다.

로마가 식량 부족으로 동과 서로 나뉜 뒤, 북방 민족이 로마 제국 영지를 차지합니다. 목축 중심이었던 그들의 경제 활동이 농사로 바뀐 건 필연이었어요. 6인 가족의 중앙 아시아 유목민이 보통 환경에서 생활하기 위해서 가축 300마리가 필요하다니, 굶어죽지 않으려면 당연했겠지요. 그러나 농사를 싫어하는 민족 특성으로 로마식 노예 제도가 이 때부터 뿌리내리게 됩니다. 그래도 중세 초기에는 지주는 농노를 잘 보살폈습니다. 일을 잘 하게 만들기 위함으로, 자유민들도 군복무를 하지 않고 안전을 얻기 위해 자발적으로 농노가 되었고요. 

농민들이 그나마 살 만 했던건 이 시기까지였습니다. 곧바로 가진자들의 수탈이 시작됐거든요. 도시 문명이 발달하며 도시민, 상인, 그리고 길드 소속 장인들 권리는 신장되었지만 농민들의 노동은 홀대받았습니다. 이는 '농사는 아담과 이브가 죄를 저질러 낙원에서 쫓겨난 탓에 어쩔 수 없이 종사해야 했던 원죄'라는 기독교적 사고 방식이 바탕에 깔려 있었던 탓으로 설명됩니다. 결국 13세기, 농민들에 의한 봉기가 일어났지요. 그런데 조금 재미있는건 당시 종교 개혁이 이 농민 봉기와 관련이 있다고 해석한 부분입니다. 교회의 토지 수탈을 비판하던 종교 개혁가들이 농민 편에 섰기 때문이라는군요. 그러나 놀랍게도 종교 개혁의 핵심 인물 루터가 배신(?)한 탓에 봉기는 실패로 돌아갑니다. 루터의 교회도 수탈로 토지를 확보했을 뿐더러, 루터가 책임 전가를 겁내어 자기를 추종했던 농민 전쟁 참가자들을 배신했던 걸로 보입니다. 봉기 실패 이후 농민들은 더 가혹한 삶을 강요받게 되었고요.

저자는 농민들의 미대륙 이주를 이러한 처절한 삶을 탈출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던, 즉 독립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를 지주와 농민 세력의 싸움이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요. 다른 국가들의 군대는 농민이 아니었지만 미국 독립군은 사실상 농민군으로, 전쟁에서 질 경우 모든걸 잃고 다시 도망쳐 나왔던 대토지 소유 제도 하에서 고통받아야 했기 때문에, 승리할 수 박에 없었다는 해석이지요. 이 해석이라면 13세기 농민 봉기가 실패한 이유가 잘 설명되지는 않지만, 꽤 그럴싸했습니다. 농민들이 주도권을 쥐게 된 미국은 광대한 땅에서 농사를 효율적으로 짓기 위해 여러가지 참신한 시도로 세계 최대의 농업 생산국이 되었고, 결국 빵이 풍부해서 세계의 패권을 차지했다는게 저자의 결론입니다.

유럽 정국이 요동치고, 그들이 패권을 잃은 과정 역시 저자에 따르면 농민 세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프랑스는 루이 14세 이후 농민을 포함한 민중이 이런저런 인쇄물과 매체를 통해 여러가지 '생각'을 접하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근대화에 접어듭니다. 그러나 일부 중농주의자들을 제외한 왕의 측근들이 농업보다는 상공업이 국가의 미래라고 생각했던 탓에, 기근과 가뭄이 닥쳐 방앗간에서 밀가루 생산이 멈추자 시민들이 빵을 달라며 혁명을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나폴레옹도 마찬가지로 공업을 신봉한 탓에 무너졌습니다. 그는 백성과 군대가 잘 먹어야 한다는 현실 자체는 인지했지만, 러시아와 전쟁을 벌여 곡물 수입이 막히자 패망한 거지요.

러시아 혁명은 노동자들이 일으켰다는 차이가 있지만, 노동자들은 농민들과 타협했습니다. 1921년 농민들은 농작물 세금만 납부하면 남은건 자유롭게 처리할 수 있게 되었지요. 스탈린이 러시아를 공업 국가로 만들기 위해 모든 토지를 국영화하고 농민들을 집단 농장 소속 농부로 만들었지만, 이는 스탈린이 그만큼 막강한 권력을 지닌 독재자였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농민들보다 강했던 파시즘이 유럽을 휩쓸었던 시기이기도 했고요.

이렇게 세계 역사의 주요한 흐름을 농민들의 존재와 그들의 사회적 위치를 통해 풀어내는게 아주 신선했습니다. 그동안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시각이었으니까요. 각 시기별로 주요한 에피소드, 인물, 콘텐츠를 인용하여 설득력도 높이고요. 

그러나 유럽 중심의 역사만 다룬다는 점에서는 분명한 한계와 약점이 느껴집니다. "빵"이 아니라 농민 중심으로 흘러간 문명사를 쓰려는게 의도였다면 당연히 중국 역사도 포함시켰어야 했습니다. "고문진보"만 보아도 농부의 노고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노래한 고시 - “봄에 곡식 한 알 뿌리면, 가을엔 만 알의 곡식 거두네. 천하에 놀리는 밭이 없는데, 농부들은 굶어 죽는다네 (春種一拉東, 秋收萬顆子, 四海無閑田, 農夫餓死)." - 가 등장하는데 말이지요.

또 농민들의 존재, 그들의 위치로 큰 세계사 흐름을 설명하려다 보니 억지스러운 점도 많았습니다. 대표적인게 미국 남북 전쟁은 북부가 곡물 생산량이 높아서 승리했다는 주장입니다. 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친 해석이에요. 유럽 역사에서 주요한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던 유대 민족에 대한 비중이 높다는 점도 좋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이는 저자가 유대인인 탓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엘레우시스교 축제에 대한 장황한 설명같이 지루한 이야기나 주제이기는 동떨어진 이야기 비중도 만만치 않다는 단점도 큽니다. 성찬 의식에 대한 견해 차이의 역사를 서술한 부분이 좋은 예입니다. 몰랐던 내용이라 신기하긴 했으나, 이 책 주제와는 별 상관이 없었다 생각되네요. 단점이라고 하기는 좀 뭐하지만, 발표 시기가 오래된 탓에 최신 정보를 담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약점이고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새로운 시각으로 세계사를 바라보게 해 주는 좋은 책이었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추천해주신 홍차도둑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빵의 지구사 - 윌리엄 루벨 / 이인선 : 별점 2.5점

2021/01/15

외국어 전파담 - 로버트 파우저 / 혜화 1117 : 별점 2.5점

외국어 전파담 - 6점
로버트 파우저 지음/혜화1117

외국어 전파 과정을 통해 시대별로 당대 패권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알려주는 사회사, 미시사, 문화사 서적입니다. 책 속 저자의 주장은 명확합니다. 모어 외의 외국어를 개인이 배우는 이유는 '권력과 자본'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 주장을 역사적인 흐름을 통해 잘 설명해 줍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중세 유럽에서는 기독교가 모든 권력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지도층은 모두 모어 외 외국어로 라틴어를 배웠습니다. 그러나 르네상스 이후 귀족과 상인 세력이 성장하고, 제국이 붕괴되고 도시 국가가 융성하면서 고대 그리스어가 유행하게 됩니다. 유명한 메디치 가문이 고대 그리스어 문헌을 라틴어로 번역하는걸 지원하고,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 문헌을 모은 도서관을 설립하는 등 카톨릭 교회 견제를 위해 고대 그리스 문화를 재발견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종교 개혁 과정에서 금속 활자로 독일어 성경이 출간되며 라틴어 영향력은 더 줄어들었고, 대항해 시대와 제국주의 시대에는 영국과 프랑스가 유럽 최고의 강대국이 됨으로써, 영어와 프랑스어가 외국어에서도 패권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2차 대전 이후 세계 최강국이 된 미국의 영향하에 프랑스어도 밀려나 버렸습니다. 영어의 세계화는 외교에서 사용되는 언어가 영어로 통일된 것으로 대표됩니다. 한국과 일본은 당대 동아한시아 최강국 중국 영향권하에서, 모어와는 다른 한자어를 지배계층이 열심히 배웠다는 측면에서는 이와 다르지 않겠지요.

이러한 유럽 중심의 흐름과 함께, 제국주의와 식민지 하에서 유럽 국가의 언어가 제 3세계로 어떻게 뻗어나갔는지에 대한 설명도 상세합니다. 권력과 자본에 의한 외국어 학습이라는 맥락은 동일하고요. 침략과 선교를 위해서, 일단 유럽인들이 현지 언어를 배웠다는 시작만 조금 다를 뿐입니다. 얼마전 읽었던 "빨간 리본"에서도 중국으로 향하던 선교사들이 중국인 '싼'으로부터 중국어를 배우는 장면이 등장했었죠. 그러나 일단 자리를 잡고 난 뒤에는 현지인들이 권력, 자본을 손에 쥐고자 침략자들의 언어를 배우게 된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그 뒤에는 식민지의 피지배층이 독립을 꿈꾸는 민족의식을 생성하지 못하게끔, 침략자들이 해당 식민지의 모어를 의도적으로 말살시키려 하는 과정이 소개됩니다. 공식 언어로 침략자들 언어를 쓰는 간단한 정책에서부터, 아예 민족 고유의 이름까지 바꿔버렸던 일본 제국 주의처럼 강력한 정책 등이 모두 이에 해당됩니다. 이 책에 따르면 이렇게 식민지를 '내국인화' 하려는 강력한 정책은 식민지와 지배국 거리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면서 그 예로 아일랜드와 조선을 들고 있습니다. 꽤 그럴듯한 발상이에요.
민족 고유 언어를 중요시하는, 민족주의가 극대화된 파시즘적인 발상과 이 때문에 세계 공용어를 꿈꿨던 에스페란토어 관계자들이 히틀러에게 학살당했다는 이야기도 비슷한 관점으로, 눈여겨 볼 만 했습니다. 꼭 필요한건 아니겠지만 화려한 도판도 여러모로 흥미를 자아냈고요.

그러나 이렇게 세계사 흐름과 동기화되는 언어 전파 과정은 굉장히 흥미로왔지만 책의 또다른 축인 '어떻게' 배우는지, 즉 '외국어 학습법'에 대한 내용은 솔직히 지루했습니다. 문법을 참고하는 학습법은 1471년 시작되었으며, 17세기에 예문으로 단어를 설명했고, 19세기 말, 벌리츠가 말하기 교육이 중요하다는 학습법을 크게 유행시켰고 이후 습득 이론, 청각 구두 교수법, 의사 소통 중심 교수법 등으로 진화했다는 내용 등인데, 우선 각 학습법의 차이가 명쾌하게 머리에 들어오지는 않더라고요. 글보다 말이 중요하고, 독해보다 회화가 중요하다는 개념 정도만 이해될 뿐이었어요.

또 외국어 학습법과 외국어 전파 과정이 잘 연결된다는 느낌도 받기 어려웠습니다. 물론 전파와 학습은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처럼 세계사 흐름과 병행해서 설명할 필요는 없었어요. 세계사 흐름과 일치하여 머리에 쏙속 들어오는 외국어 전파 과정이 흐려질 뿐이였거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외국어가 전파되는 부분, 그리고 학습 방법의 진화 부분은 분리해서 따로 소개하던가, 외국어 전파 과정만 더 상세하게 서술하는게 훨씬 좋았을 것 같네니다.

2020/05/16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 야마모토 요시타카 / 서의동 : 별점 4점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 8점
야마모토 요시타카 지음, 서의동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과학기술이 주요 축의 하나였던 일본의 근대화 150여년에 대한 역사서입니다. 메이지 초기 이후,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뒤 전쟁을 거쳐 현대,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이르기까지 일본 내에서의 과학 기술의 역할과 '총력전' 이라는 형태의 방식에 대해 7장, 400여 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상세하게 조망합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굉장히 유익했던 독서였습니다. 그동안 항상 궁금했었던 여러가지 의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도 있었고, 잘 몰랐던 여러가지 사항에 대해 새롭게 알게된 것은 물론, 일본의 현재 모습이 어떻게 비롯된 것인지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이를 반면교사 삼아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기본적인 방향도 가늠할 수 있게 되었고요.

궁금했었던 의문이 해결된 것 중 가장 대표적인건 "일본은 고작 몇 년 정도 앞서 개항한 걸로 어떻게 20세기 초중반, 세계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는지?" 입니다. 그 해답은 한마디로 '운이 좋았다'는 것이네요. 서구에서도 물리학에서 신학적 내용과 같은 불필요한 내용이 추방되고, 수학도 정리되어 세련되어 갔으며, 과학 연구와 연구자 양성이 사회적으로 제도화되어 학문의 습득이 쉽고 체계적이 된 19세기 후반에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덕분인겁니다. 여기서 조금만 빨랐어도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을테고, 50년만 늦었어도 양자역학, 상대성 이론이 태동한 뒤라 습득 장벽이 높아서 서구 물리학과 관련 학문을 쫓아가는건 굉장히 어려웠을거라는군요.

그리고 흔히 이야기하는 '과학기술'이라는 용어의 유래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되었습니다. 원래 과학은 순수한 학문적 영역이었으니 두 단어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일본이 서구 문물을 받아들인 19세기에는 여러가지 과학 분야의 연구가 실제 기술 개발에 적용되는 사례가 부각되었기 때문에, 일본은 두 단어를 구분하지 않고 하나로 쳐서 받아들였습니다. 어떻게보면 '과학' 보다 그 결과물인 '기술' 분야에 집중했고, 과학이라는 학문 영역도 '기술'에 도움이 되는 분야에 보다 촛점을 맞추었고요. 한마디로 과학은 기술을 위한 보조학인 셈입니다. 이는 지금까지 이어져서 일본의 과학 교육은 세계관, 자연관 함양보다는 실용성에 큰 비중을 두고 있고요. 덕분에 일본이 근대화에 빨리 성공하기도 했지만, 이는 일본 근대화의 바닥이 얕은 원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근대화가 시작되면서 '사농공상' 대신 학력에 의한 질서 형성을 추진하는, 이른바 '사민평등'의 시기에 접어들었지만 이는 진정한 의미의 평등은 아니었습니다. 서구 과학기술 수입의 핵심기관인 공부성이 주도한 방침 자체가, 재래의 직인층을 독려해 종래 기술을 개량하고 발전시키는게 아니었던 탓입니다. 사족 중 유능한 자를 기술관료로 육성한 뒤 서구 과학기술을 그대로 도입하는게 핵심이었거든요. 그래서 상급학교에 진학한건 거의 사족의 자제였고, 메이지 시대 기술자의 태반이 사족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사족은 직인, 상인의 일을 경멸했던 터라 이런 계급적 편견을 불식시키기 위해 기술을 지배층만의 것으로 권위를 부여하고, 이들을 엘리트로 재래의 직인과 차별화하는 작업이 필요했던거지요. 그래서 대학생들에게 강렬한 엘리트 의식을 함양시켰다고 합니다. 국가와 나라를 위해 일하는걸 당연히 여겼고요.
이 탓에 상급 기술자들은 엘리트 의식 과잉에 배타적 성격을 지니나, 반면 관료적이고 조직과 국가에 순종하는 특성을 갖게 되었는데, 문제는 이게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본의 학제, 시스템을 식민지 시절 도입당한 우리나라에서도 문제가 되는 이야기라 여러모로 와 닿네요.

책에서 소개하는 근대화와 함께 한 과학기술 진흥의 흐름을 간략히 살펴보면, 메이지 초기 해외 사절단 등을 통해 일본 지배층은 상공업의 발전이 선진국의 필수 조건이며, 특히 과학이 기술에 직결되고 산업 발전과 군사력 강화의 불가결한 요소일 뿐 아니라 국가가 과학과 기술의 진흥과 혁신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는걸 알게 됩니다. 막말 연달아 일어난 대지진으로 지배층의 권위 실추와 새로운 사정, 문물의 유입이 이루어지던 시기라 여러모로 혼란스러웠던 민중에게 합리적이면서 과학적인 사고를 추구하는 '궁리窮理학'이 대 유행하게 되고요. 이를 통해 서양과학기술 계몽서가 유행하는데, '궁리'라는 라쿠고까지 나왔다니 그 유행을 미루어 짐작할 만 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제목의 '총력전' 이 소개됩니다. 메이지 유신 후 국가 주도 개혁에서 군부 독재에 의한 제국 주의가 심화되며 국가가 통제하는 경제 발전으로 이어지는 과정에 대한 설명으로 무척이나 상세해요. 전쟁에 대비하여 총력을 다해 이를 준비한다는 '총력전' 체제로 모든 산업, 경제가 이루어진다는 의미로, 일부는 우리나라와도 겹치는 부분이 많아 보이더군요. 군부 독재에 의한 것이지만 미국의 뉴딜 정책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시각도 흥미로왔고요. 또 이러한 '통제'는 좌, 우익 모두 찬성했다는데, 우익이야 그렇다쳐도 좌익은 좀 의외였습니다만 그 이유도 책에서의 설명으로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좌익은 자본의 이윤 추구를 억제한다는 그 자체에 무조건 찬성한거라네요. 제목처럼 총력전 과정에서 '과학기술'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었다는 내용도 잘 알려줍니다. 군부 주도의, 군사 목적의 발전이면 기술 개발이 빠질 수 없으니 당연하겠지요. 덕분에 과학기술 분야에 엄청난 연구비가 투입되고, 여러가지 혜택도 많았다고 하고요. 전후 과학자들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전시가 가장 연구 환경이 좋았다고 할 정도로요.

또 총력전을 통해 결국 빈부 격차가 줄어들게 되었다는 의외의 이야기도 재미있었습니다. 징병제 때문에 농촌의 인구와 생활 수준을 유지시켜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를 위해 의료 보험 등 복지에 대한 여러가지 제도가 만들어지는 등의 긍정적인 효과는 눈여겨 볼 만 합니다. 그러나 총력전 이전, 근대화 과정에서 있었던 일반 민중들의 희생도 잊으면 안 될 역사입니다. 이 책에서는 '기계화'가 생각했던대로 인간의 노동을 경감시킨게 아니라 오히려 환경 오염을 일으키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야간 근무가 도입되고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해져서 민중은 그만큼 희생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급속한 자본주의화의 성공과 기적은 운이 좋았던 덕분인데다가, 효과적인 교육제도가 형성된 등의 이유도 크지만, 농촌 노동력의 가혹한 수탈과 농촌 공동체의 무참한 파괴가 불가결의 요인이었던거죠. 제국주의가 되면서 이러한 수탈, 파괴는 식민지로 옮겨지고, 우리나라는 그러한 수탈과 파괴, 희생의 직격탄을 맞있다는 점에서 더욱 뼈저린 역사입니다.

그리고 2차 대전 이후의 이야기도 새롭습니다. 대표적인게 일본의 패배를 파시즘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로 보지 않는다는 시각입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군부 독재 시기에 총력전 체제에 의한 사회의 구조적 변경과 재편성이 이루어졌는데, 이 구조가 전후에도 그대로 유지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저자의 시각으로는 지금도 일본은 '전시 체제'인 셈입니다! 아직도 소수의 관료, 선택받은 엘리트들이 국가 주도의 정책을 세우고 이를 모든 사회에 강요하는 구조라는 뜻입니다. 제대로 된 민주화는 생각할 수도 없는 상황인거지요. 최근 드러나는 일본 정치의 후진성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덕분에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소수의 관료, 엘리트들이 새로운 일본의 재건에 나서는데, 이 역시 총력전 체제와 다름이 없다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또 여기에서도 일본은 운이 대단히 좋다는 걸 알게 되었고요.전쟁 당시 추진해서 만들어놓은 생산 설비가 비교적 온존되어 있었고, 전시하에서 급성장하고 축적된 기술과 기술자층이 많아서 고도 성장의 주역이 되었으며, 은행과 군수 기업은 망하지 않은게 다시금 총력전의 바탕이 되기도 했다네요. 식민지 시절 수탈과 희생을 발판삼아 만들어 놓은 사회 구조로 다시 고도 성장을 한 것이죠. 또 고도 성장의 핵심은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통한 시장의 급성장 덕분이었다니, 이 정도면 천운을 타고났구나! 싶은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이러한 고도 성장도 전전의 '총력전' 처럼 약자의 생활과 생명 경시를 동반한게 오늘날의 '후쿠시마' 사태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니, 역시나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에요. 이러한 고도 성장 과정에서 여러가지 환경 문제나 사고가 일어났지만 정치가들이나 기업가들의 거짓말, 그리고 이들의 지원을 받는 지식인들과 기술자들이 기업편에서 진실을 왜곡하고 날조하며 언론 역시 이에 동조하여 거짓 기사를 써 낸 행태를 보면 우리나라의 과거가 겹쳐지기도 해서 조금 씁쓸했습니다. 사실 우리의 예를 보아도 "무슨무슨 5개년 계획" 등으로 국가 주도로 산업을 일으켰지만, 그 과실의 혜택을 직접적으로 받은건 재벌과 권력자라는걸 부인하기는 어렵기도 하고요.

마지막으로 현재 일본의 문제점에 대한 상세한 분석이 이어지는데, 이는 그냥 좌시하기 힘든 내용이었어요. 바로 원자력이 핵심으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일본의 정치 권력은 예나 지금이나 '성장'에 모든걸 걸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는 전시에서의 발상으로, 지금 시점에 맞는 방향은 절대 아닙니다. 기술 혁신만으로 인구 감소에 따른 시장 축소를 감당할 여지는 많지 않으니까요. 결국 일본은 가격이 유지되는 시장인 군수 산업에 올인해서 전쟁 유발을 획책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으며, 이를 위해 일본이 집중한게 바로 원자력이라는 해석입니다. 그래서 과거 평화적 이용이라는 환상을 과대 포장하여 원자력 개발을 진행하였으나, 1980년대에 이르르면 이미 전력 수요는 넘어서는 원전을 보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즉, 원전 비즈니스를 위해 원자력 개발을 하고 원전을 지은 것에 불과한거죠. 국가 주도의 총력전이 지금은 원자력에 집중되고 있다는 이야기에요.

그러나 원자력은 수백년 사용하면 수십만년 보관해야 하는 폐기물 문제가 더 큰, 무한한 미래를 희생하여 당장의 현재를 사는 굉장한 낭비에 불과하다는걸 통렬하게 알려줍니다. 원전 자체가 불완전하기도 하고요. 게다가 원전에 큰 투자를 감행했던 도시바의 몰락은 일본식 총력전을 무력하게 만들어, 조만간 '일본 주식 회사'의 실패를 불러올거라고 하니 무서울 정도네요. 우리나라 모 회사가 어려워진게 국가에서 원전을 더 이상 짓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런 말을 하는 분들께 이 책을 한 번 권해드리고 싶네요. 원자력은 현재라고 하기 어렵고, 미래는 더더욱 아닙니다. 후쿠시마의 예를 꼭 들지 않더라도,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친환경,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이 더욱 시급한 시점이 맞습니다. 그리고 일본처럼 국가 주도의 비즈니스 드라이브를 걸다가 나라가 망해가는건 그 누구도 원치 않으실거라 믿고요.

결론과 후기를 통해 저자는 앞으로는 총력전 체제에 따른 경제 성장 자체가 불필요할 것이라 합니다. 경제가 성장해봤자 국민 개인은 성장하지 않는다는게 이미 증명되었으니까요. 때문에 글로벌 교류를 통한 전쟁없으며 연대를 이루는 시민 사회의 성장, 이를 통한 실업없는 제로 성장 사회로 연착륙 하는게 맞는 방향이고, 여기에 과학적 미래는 없다고 봅니다. 저 역시 이 생각에 100% 동의합니다. 문제는 최근의 코로나 사태가 시민 사회의 교류와 국가간 교류를 단절시켰다는 점이지요.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세상이 바뀔거라는 이야기가 왜 나오는지 이제야 조금 와 닿는 느낌입니다.

이렇게 굉장히 얻은게 많은 독서였습니다. 물론 저자 혼자만의 주장이 담겨있어서 다양한 시각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일본 전시 체제를 뒷받침한 가장 중요한 동력인 식민지 수탈을 너무 짧게 짚고 넘어간 것도 적절치 못하고, 일본 원자력 산업도 정확한 파악을 위해서는 보다 많은 자료가 필요해 보이고요. 과연 공평한 논리와 시각인지도 깊이 고민해 봐야할 부분입니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을 평가하고 검증해야 하는건 오롯이 독자의 몫일 겁니다. 새로운 시각만으로도 무척 반가왔으며, 현재의 일본과 우리를 알기 위해서는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책이 아닐까 싶네요. 심지어 가격까지 저렴한 편이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네요. 제 별점은 4점입니다.

2014/03/05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 시마다 소지 / 한희선 : 별점 2.5점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 6점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엮음/시공사

아사쿠사의 건어물 가게에서 소비세 12엔을 내려 하지 않던 노인이 가게 주인을 칼로 찔러 살해하고 말았다. 범인이 명확해서 사건은 쉽게 종결될 수 있었지만, 노인의 범행 동기에 석연치 않은 점을 느낀 요시키 형사는 수사 끝에 사건이 30여 년 전 있었던 기이한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는걸 알아내는데...

시마다 소지의 요시키 형사 시리즈.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사회파 추리소설과 같은 사회 고발 의식이 강하게 담겨 있습니다. 범인인 나메카와 — 여태영이 일제 강점기 때 강제징용된 조선인으로 본인과 가족 모두가 불행한 삶을 살았다는걸 드러내는게 작품의 핵심이라는 점이에서요. 여태영의 인생은 일본 때문에 그야말로 기구하다는 말로 표현이 안 될 정도로 꼬일 대로 꼬여서 불행의 극을 달리기에 굉장히 처절한 느낌을 전해줄 뿐 아니라, 작중에서 "전쟁 탓이라고 해도 변명이 되지 않는다. 이런 도리에 어긋난 일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일본은 진정한 일등 국가가 못 될 것이다"라고 일갈하기까지 합니다. 최근 일본의 우경화가 심각한 상황인데, 일본인이 사죄해야 한다는 글을 보니 작품 완성도와는 별개로 무척 반갑더군요. 덕분에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감정이입이 용이하다는 점도 장점입니다.

또 "누명"이란 무리한 질서 유지 혹은 치안 유지의 결과로 경찰에 대한 불신을 심어주지 않기 위한, 이른바 '일본인의 행복을 위해 행해지는 정의라는 명목의 불합리한 폭력'이며, 데이코쿠 은행 사건, 시마다 사건, 마루쇼 사건, 무레 사건의 범인들은 모두 누명을 썼다고 확신한다고 작중 인물인 하타노의 입을 빌어 말하고 있는 점, 일종의 파시즘적인 광기를 비판하는 점 역시 마찬가지로 사회파적 사회 고발로 볼 수 있습니다. 단체로 광기를 벌이지 않으면 일본인은 타인을 죽이는 전쟁을 거국적으로 행할 기력을 일으킬 수 없는 인종이라고 단정짓는데 상당히 그럴듯했어요.

그리고 요시키 형사 시리즈가 다 이런지는 모르겠지만 여정 미스터리 느낌을 준다는 게 특이했는데, 홋카이도나 센다이는 물론이고 도쿄를 상세히 설명해주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감성으로 접할 수 있으니까요. 첫 사건이 벌어지는 아사쿠사라던가 요시와라, 구레시타 노인의 산책길인 세이로카 병원 – 쓰쿠타오하시 다리 근처에 대한 묘사 등이 대표적입니다. 아사쿠사만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한 번 가 보고 싶어집니다. 그러고 보니 일본 여행도 갔다 온 지 참 오래되었군요.

아울러 거의 50여 페이지에 걸쳐 에도시대 요시와라 유흥 문화에 대해 설명해 주는 것도 현학적인 측면에서 나쁘지 않았습니다. 요시키 형사가 피해자의 과거 근무처였던 요시와라를 탐문하며 요시와라와 에도시대 유곽 문화에 대해 설명을 듣는 식인데, 디테일이 상당한 수준이었거든요. "에도 일본"에서 읽었던 것과 비슷하지만 훨씬 상세했어요.

그러나 이러한 사회파, 여정 미스터리, 현학적 요소 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작가의 명성에서 기대했던 신본격 추리소설로의 가치는 기대 이하라 아쉽습니다. 무려 500페이지나 되는 대장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사건만 놓고 보면 스케일 크고 전개도 꽤 흥미롭긴 합니다. 열차 안에서 피에로가 화장실에 틀어박혀 권총 자살을 하였는데 그 직후 시체가 사라졌다, 투신 자살로 머리가 잘린 시체가 벌떡 일어나 걸어 나왔다, 달리던 열차가 갑자기 하늘로 들려 올라가 기차가 탈선했다는 등의 상상하기 어려운 불가능 범죄가 연이어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불가능 상황에 여름벌레의 날갯소리와 같은 소리가 들려왔고, 빨간 색으로 눈이 빛나는 거인이 보였다는 등의 기이함도 더해져 있고요.

하지만 밝혀진 진상은 지나치게 작위적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피에로 사건만 해도 여태영이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라는게 동기라는고 설명되데, 여태영은 그냥 도망쳤어도 아무 상관없었습니다. 여태명과 아라마사의 시체가 함께 발견되면 서로 싸우다 죽은 것으로 사건이 종결되었을 테니까요. 아니면 여태명의 시체만 중간에 숨기고 그냥 삿쇼선을 타고 도주하면 되잖아요? 어릿광대가 여태영이라는 게 밝혀지는 것도 아니고... 여튼 들인 노력에 비하면 얻은 게 별로 없습니다. 실제로 아라마사 사건의 경우 여태영은 용의선상에조차 오르지 않았으니 완벽한 뻘짓이었어요.

게다가 열차의 탈선은 순전히 우연이었고 거인의 정체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다는 점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작중에서 "기발한 발상이 하늘을 움직인 결과"라고 설명될 정도로 우연에 기인한 현상으로, 불필요한 장치였습니다. 이야기의 복잡성을 더하기 위해 억지로 집어넣은 느낌이에요. 어차피 독자가 여태영 – 여태명 형제의 존재를 알게 되면 투신 자살한 시체와 트릭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는 사건이기도 하고요.

그 외에도 기차 시간표가 등장하지만 핵심 요소는 아니고, 오히려 공정한 추리를 방해한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지도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탓에 핵심 트릭이 뒤늦게 밝혀지는데, 그 동네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 법한 트릭이라서 오랫동안 밝혀지지 않은 게 외려 더 이상했습니다. 참고로, 조금 이채로웠던 것은 우시코시 형사가 요시키와 만나기 위한 편지에서 기차 시간표를 보고 어떤 기차 몇 호를 타라고 지정하는 문구가 있다는 것입니다. 뼛속까지 기차 시간표 형사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좀 웃겼어요.

마지막에 진상이 밝혀지니 나메카와(여태영)가 처음에 살인 사건을 저지르는 상황에 대한 설득력이 없어진다는 것도 그닥입니다. 소비세 때문에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하거나, 과거 사건의 복수 때문으로 밝혀지거나 아무 상관이 없잖아요? 아라마사를 죽인 것 때문이라면 어차피 공소시효가 지난 것일 뿐 아니라 당시 상황은 충분히 정상 참작을 받을 만한 것인데... 왜 치매에 걸린 것처럼 위장해서 입을 다물었는지가 설명되지 않아 답답했습니다. 초절정 미소녀였던 사쿠라이가 30년이 지난 뒤 폭삭 삭아버린 것에 대해서 설명이 없는 것도 조금 의아한 점이었고요.

그리고 일본 연호로 연도를 표시한 것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국내 독자를 위해 모두 현대의 서력을 병기하여 주는 배려가 필요했습니다. 조금은 어색한 문체, 예를 들자면 "신호에 멈추어 섰다. 횡단보도의 신호가 빨강이었다. 바람에 봄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것은 벚꽃 냄새와 비슷했다. 따뜻하지만 희미한 광기를 품고 있는 것 같았다. 노인은 학생처럼 보이는 옆에 선 젊은이의 어깨 밑에 가려질 정도로 키가 작았다"와 같은 묘사는 신호에 멈춘 것과 벚꽃 냄새, 노인의 체구를 두서없이 나열한 느낌이고요. 보다 깔끔하게 "신호가 빨강이라 멈추어 섰다. 따뜻하지만 희미한 광기가 느껴지는 봄 냄새 섞인 바람이 불어왔다..." 라는 식으로 정리하는 게 더 좋았을 것 같아요. 뭐 제가 문체를 지적할 수준의 전문성이 있는건 아닙니다만.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 사회고발적인 성격은 높이 평가할 만하고 특히 강제 징용 조선인에 대한 부분은 만점을 주고 싶습니다. 시마다 소지의 또 다른 면을 접한 것도 반가왔고요. 그러나 추리적인 요소가 500페이지나 되는 대장편치고는 알맹이가 없어서 감점합니다.

그래도 일본인 작가가 반성의 의미로 쓴 "강제 징용된 조선인"에 대한 텍스트로는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시마다 소지라는 작가에 대해 다시 보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2/11/26

라디오 체조의 탄생 - 구로다 이사무 / 서재길 : 별점 2.5점

라디오 체조의 탄생 - 6점
구로다 이사무 지음, 서재길 옮김/강

다양한 일본 컨텐츠에서 보았던 "라디오 체조"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설명하는 미시사 서적. 단지 라디오 체조만 설명하는 책은 아닙니다. 라디오 체조, 그리고 더 넓게는 "라디오 방송"을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당시 일본의 모습과 사회상을 알려줍니다.

가장 궁금했던 라디오 체조의 역사 자체는 꽤 단순한 편입니다. 1928년, 미국 메트로폴리탄 사의 라디오 체조를 베낀 것이긴 하나 당대 일본인들이 가지고 있던 "근대화"를 위한 "근대적 신체로의 교정"이라는 생각에 합치했기 때문에 방송이 시작될 수 있었으며, 이후 비교적 낮은 수신기 보급률과 파시즘적 정책 등의 이유로 아침 일찍 모여서 라디오 체조를 한다는 집단 조기 체조로 진화했다고 합니다.

그다지 어렵게 쓰여지지 않아서 쉽게 읽을 수 있으며, 라디오 체조에서 구령을 맡았던 사람은 육군 도야마 학교 장교인 에기 리이치로로 전전 라디오 체조의 상징과 같은 인물이 되었다는 것, 일본의 여러 식민지에서도 집단 조기 라디오 체조를 시행했다는 것 등 새롭게 알게 된 것들도 꽤 많습니다. 라디오 방송 관련 이야기들도 자료로서 괜찮았고요.

그러나 읽기 전의 기대에 값한 책은 아닙니다. 라디오 체조에 대한 다양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풀어낸 책을 기대했는데, 역사적인 의미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거든요. 재미보다는 지식에 치중한, 한마디로 말하면 논문에 가까운 책입니다. 물론 읽는 재미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아울러 라디오가 인기를 끌게 된 "소케이센 (도쿄 6대학) 야구 중계"라던가 베를린 올림픽 중계 시 전설이 된 멘트 "마에바타 힘내라!" 같은 자세한 설명이 등장하는 라디오 방송 관련 이야기들도 나쁘지는 않으나, 다른 책에서 이미 접했던 것이기에 신선함이 떨어졌다는 것도 단점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자료적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나 재미로 보기에는 어려운 책입니다. 저 같은 근대에 관심 있는 일반인에게는 아무래도 에피소드 중심의 미시사 서적이 더 맞는 것 같네요. 정말로 라디오 체조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께만 권해드립니다.

덧붙이잠녀, 당시 군국주의 파시즘 하의 일본에서 전략적으로 보급한 측면도 분명 있지만, 일찍 일어나서 체조를 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 그 명맥이 유지되는 것이겠죠. 저도 건강을 위해서 아침에 일찍 체조를 할까 생각이 들기도 하는군요.

2010/11/02

라블레의 아이들 - 요모타 이누히코 / 양경미 : 별점 4점

라블레의 아이들 - 8점
요모타 이누히코 지음, 양경미 옮김/빨간머리

저명인사와 예술가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을 재현해 먹어본 뒤, 그 음식과 해당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총 25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는 책입니다. 요리를 단순히 레시피와 결과물로만 보지 않고, 그 요리를 즐겼던 인물과 연관 지어 설명하는 방식이 독특합니다.

제목은 음식 이야기를 즐겨 등장시킨 16세기 프랑스 작가 라블레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수많은 예술가들의 식탐을 '그들이 선천적으로 품고 있던 세상에 대한 탐욕스러운 호기심과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라고 정의하여, 그들 모두가 라블레의 아이들이라는 뜻을 담고 있지요.

등장인물과 레시피, 요리들 모두 동서고금의 다양한 문학과 예술에서 가져와 현학적인 재미가 넘쳐납니다. 복잡하거나 어렵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유명인사의 레시피를 재현한 사진과 그 맛에 대한 설명, 그리고 음식과 유명인사에 대한 에피소드들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워 아주 만족스럽게 읽었습니다.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재미있었지만,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네 종류의 요리와 디저트로 구성된 '미래파의 이탈리아 통합 디너 세트'였습니다. 조명과 벽지 등 모든 요소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미래파적 시각과 함께, 단순히 시각적인 요소를 넘어 미각까지 결합시켜 요리를 예술로 승화하려는 시도가 독특하게 느껴졌습니다. 게다가 이 요리에는 단순한 미학적 의미를 넘어, 결국 파시즘적 이데올로기를 나타내는 정치적 의미까지 담겨 있다니 더욱 흥미로웠습니다.

그로테스크했던 권터 그라스의 장어요리, 잘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어떤 것을 먹었는지 알 방법이 없었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과자 이야기 등도 기억에 남았습니다. 요시모토 다카아키의 우스터 소스 요리는 가정에서 당장 만들어볼 수 있는 레시피라 직접 도전해 보고 싶어졌고요.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요시모토 다카아키의 우스터 소스 설명 부분에서 사진이 잘못 편집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전체적으로 번역과 사진의 완성도가 높다 보니 더욱 눈에 거슬리더군요.

그래도 별점은 4점. 뻔한 레시피 중심이거나 맛집 순례에 불과한 요리·미식 관련 에세이와는 달리, 개념 자체가 색다른 책이라 요리와 미식을 좋아하는 모든 분들께 일독을 권합니다.

덧붙이자면, 제가 썼던 '장르문학과 함께하는 음식 이야기'라는 짧은 칼럼이 부끄러워지더군요. 아무리 취미의 일환이라지만, 좀 더 보강하고 제대로 의미를 담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제 칼럼은 재현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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