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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5

미스테리아 34호 - 미스테리아 편집부 : 별점 2점

미스테리아 34호 - 4점
미스테리아 편집부 지음/엘릭시르

미스테리아는 주제가 흥미로울때만 가끔 읽곤 합니다. 34호는 일본 본격 추리 소설이 특집이라서 읽게 되었습니다. 나름 고전 본격물의 팬을 자부하고 있으니까요. 표지부터 마음에 들어요. "니가 범인이야!" 라는 느낌이니까요. 강렬합니다.

특집은 일본 본격물의 역사에서 시작합니다. 본격과 변격이라는 말의 유래, 그리고 본격이라는 말의 정의, 최초의 본격물에서 신본격, 그리고 근래 라이트 노벨류까지 이어지는 역사와 대표작, 대표 작가들이 소개되지요. 큰 흐름으로는 본격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고가 사부로에서 시작하여 에도가와 란포"D언덕의 살인사건", 하마오 시로의 "그 남자가 죽였을까", 요코미조 세이시"혼진 살인사건", 그리고 마쓰모토 세이초사회파 미스터리의 대 유행에 이은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 아야쓰지 유키토의 "십각관의 살인", 아리스가와 아리스"월광 게임 - Y의 비극 '88", 니시자와 야스히코"일곱 번 죽은 남자", 모리 히로시"모든 것이 F가 된다"신본격 전국 시대를 넘어 우타노 쇼고"벛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이마무라 마사히로의 "시인장의 살인"으로 이어진다는 식입니다. 

뒤로는 본격물이 일본에 받아들여진 당시 일본 추리 문단에 대한 상세 설명, 여러가지 유명 작품 속 트릭에 대한 소개, 점점 캐쥬얼화 되어가는 신본격 장르물에 대한 기사가 이어집니다. 자료 조사도 탄탄하고, 담고 있는 내용도 풍성한 편이었어요.

두 번째 특집 기사 '체인질링'은 인간의 아이와 바꿔치기된 요정 아이에 관련된 민담을 분석하는데, 중세 유럽에서 왜 아이가 바뀐 것에 대한 전설이 만들어졌는지를 당시 역사적 배경으로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아이가 기형일 수도 있고, 아이가 죽는 일이 다반사였던 탓이라는데 아주 그럴듯했어요. 관련된 다른 전설, 우리 나라의 예도 들어서 설명해 주는 것도 좋았습니다. 

홍한별 번역가와 곽재식 작가의 옛 사건 탐구도 흥미로왔어요. 특히 명동 한복판에 일제 강점기 시절 빼돌리지 못했던 보물이 묻혀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는 한 편의 영화나 소설로 만들어도 손색없어 보였습니다. 레이철 쿠시너의 "마스 룸" 속 등장하는 요리들을 소개한 컬럼은 '추리 소설과 요리'에 대한 글을 써 온 저로서는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는 내용이었고요. 요리들도 아주 신기하더군요.

그런데 불만족스러운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우선 본격물 관련 특집은, 이미 대충 알고 있던 내용들로 새로운 건 없었습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저도 쓸 수 있었을 기사였달까요? 물론 캐쥬얼화 되어가는 최근의 흐름은 잘 몰랐던 내용이긴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쪽 작품들 찾아 읽을 정도로 좋아하지 않아서 몰랐던거에요. 구태여 구해 읽을 필요가 있었던 기사는 아니었습니다. 

유성호 법의학자의 아동 학대 흔적에 대한 컬럼, 이은의 변호사의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 속 법적 대응 방법 등 다른 기사, 컬럼들은 볼륨이 대체로 빈약합니다. 인터넷 검색 결과와 별다를게 없는 수준이에요. 반대로 정성일 평론가의 영화 "포제서" 평론은 볼륭은 풍성했지만 글의 가독성이 너무 낮아서 지루했고요.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평론만 봐도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어요. 이렇게 가독성이 낮은 글은 이외에도 많아서, 쉽게 읽히지도 않았습니다. 심지어 짤막한 리뷰들 하나하나까지 모두요.

마지막에 수록된 3편의 단편들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관심있는 특집이더라도 더 이상은 구매할 생각이 없습니다. 정은지, 홍한별, 곽재식의 컬럼과 논픽션 기사나 추후 단행본이 출간되면 구입해 볼 생각입니다.

수록 단편에 대한 짤막한 소개로 리뷰를 마칩니다.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콩알이를 지켜라!" 

자신이 창조해 낸 인기 동화책 콩알이가 인생의 전부인 일러스트레이터 지혜정의 남편 김진석 교수가 살해되었다. 범인은 제자 최은비였다. 진석이 그녀를 강간하려 해서, 우발적으로 저지른 일이었다. 혜정은 은비를 꼬드겨 시체를 강원도 의천에 있는 별장에 유기하러 출발했다. 콩알이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별장에는 진석의 변태 친구 한동철이 머무르고 있었고, 혜정은 동철마저 살해한 뒤 시체 두 구를 함께 유기해 버렸다.

듀나범죄 스릴러 단편인데 이야기할 가치가 없는 졸작입니다. 

우선 범죄에 대한 설득력이 너무 낮습니다. 아무리 남편이 쓰레기였다 한들, 피해자 아내가 남편을 죽인 살인자와 함께 시체 유기를 한다는걸 제대로 설명하고 있지 못한 탓입니다. '콩알이'의 존재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그에 대한 설명과 묘사가 부족해서, 그다지 절박한 이유로 보이지 않았거든요. 혜정이 처음부터 한동철을 죽이려 했고, 이를 위해 앞서 시체 유기를 일부러 훤히 드러나게 시도했다는 식으로 범죄 계획을 정교하게 세우기라도 했다면, 범죄물로 볼 만한 여지가 있었을텐데 그렇지도 않고요.

전개도 혼란스럽습니다. 진석이 제자의 고백을 녹화하여 한동철과 공유하고, 성적인 대상으로 삼았다는 진상이 드러나는건 뜬금없었고, 이 때문에 한동철을 죽였다는 것도 급작스러워서 이해가 힘들었습니다. 애초에 진석은 여태 은비의 고백을 녹화해서 잘 쓰다가, 왜 갑자기 강간을 저지르려고 한걸까요? 문학하는 남자들을 모두 성범죄자로 단정짓는 설정도 황당하기 그지 없더군요.

듀나의 특기이자 장점인 기발한 설정이 빠져버리니, 뭐 하나 건질게 없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웃는 탐정" 

초월탐정 김재건과 미소년 조수 마곤이 등장하는 단편으로 집주인 여사와 김재건 사이에 택배로 인해 발생한 트러블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엉망진창이에요. 마곤이 초능력자로 일종의 투명 인간이 되어 집주인 여사가 가지고 있던 김재건의 택배를 훔쳐내는게 이야기의 거의 전부인데, 마곤이 이 택배를 왜 훔쳐내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초월탐정 어쩌구하는 김재건의 능력인지는 모르겠지만요. 

경박하고 유치찬란한 김재건 묘사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초월 탐정' 이 뭘 뜻하는 별명인지 감도 오지 않지만, 별로 궁금하지도 않는군요. 서두의 시점을 가지고 독자와 장난치는 부분은, '메타 미스터리' 운운했던 앤솔로지 "Y의 비극"에서 니카이도 레이토가 썼던 단편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그 작품도 엄청난 졸작이었지요.

마곤이 할머니와 김재건 사이에 있었던 일을 추리하는 일상계 추리스러운 부분은 괜찮았지만, 다른 부분은 그저 그랬어요. 앞으로도 이 시리즈를 읽을 일은 없을 듯 합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죽음의 세트장" 

배우 잭 하터가 영화 촬영용 세트장에서 살해당했다. 사건 당시 21번 방음 세트장 안에는 현장 제작자 조 캐츠키와 감독 샘 매스터퍼드 등 모두 열 세 명의 사람이 있었다.

1930년대를 무대로 하고 있는 단편인데 옛스러운 영화 촬영장 분위기를 상세하게 그려낸 묘사는 아주 좋았습니다. 잭 하터와 마리 플레밍, 두 주연 배우 간에 사랑의 불길이 타오르게 되는 마지막 촬영 장면 묘사가 특히 그럴싸 했어요. 이 부분은 여배우를 연모하고 있었던 감독 샘의 살인 동기가 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기도 했는데, 잘 그려냈습니다.

'스크립터'가 탐정역을 소화한다는 설정도, 과연 영화를 잘 아는 사람이 썼구나! 싶더군요. 스크립터는 씬마다 있는 오류를 잡아내기 위한 사람으로, 당연히 관찰력이 남다를 수 밖에 없으니까요. 

관찰력을 바탕으로, 일종의 닫힌 공간인 촬영 스튜디오에서 소거법으로 범인을 찾아내는 추리 과정도 설득력이 높습니다. 거의 대부분 목격 증언으로 소거되는 덕분이에요. 결국 조 캐츠키와 샘 매스터퍼드만 남는데, 발소리를 듣지 못해서 샘이 범인이라는게 드러납니다. 조 캐츠키의 발소리는 독특했고, 샘은 고무 장화를 신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단서가 별다르게 제공되는건 없어서 본격물로 보기 힘들며, 추리도 일사천리라 의외성은 없습니다. 사실 샘이 범인이라는 스크립터의 추리는 증거가 명확하다고 볼 수 없어서, 경찰 수사가 추가로 필요한 부분이었다 생각되네요. 그래도 다른 단편들에 비하면, 최소한 읽을만한 수준의 추리물이기는 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21/05/05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41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점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41 - 4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C.M.B도 40권을 넘어섰네요. 이번 권에는 4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수록된 이야기 모두가 설득력 측면에서는 많이 부족했습니다. C.M.B의 또다른 매력인 현학적인 정보 제공 측면에서도 건질게 많지 않고요. 그래서 좋은 점수는 주기 힘드네요. 전체 평균한 별점은 2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가득합니다.

"운영위원" 

신라와 타츠키가 학교 운영위원을 맡은 날, 원예부원들은 이사장이 지시했던 화단과 백엽상 철거에 반대하며 철거업자와 대치했고, 화장실 변기가 막혔고, 학교 입구가 진흙 발자욱으로 지저분해졌고, 요코아리가 식사용 빵을 도둑맞는 등 학교 안에서 여러가지 사고와 문제가 잇달아 일어났다. 원예부가 화단 철거를 막은 이유였던, 원예부 아이돌 소녀가 맡긴 씨앗의 정체는 신라가 밝혀낸다. 그러나 검역 문제로 결국 철거가 수포로 돌아가자, 철거업자는 항의하는데...

신라는 철거업자 중 한 명이 학교에 있는 고가의 그림을 훔치기 위해 잠입해 있었다고 추리합니다. 진흙발로 학교로 들어와 변기를 일부러 막았던 거지요. 사용금지 팻말이 붙은 화장실 안에 숨어 있으려는 생각이었습니다. 요코아리의 빵은 먹으려고 훔쳤고요. 이렇게 별 거 아닌 걸로 보였던 디테일이 모여서, 의외의 진상이 드러나는 전개는 꽤 볼만합니다.

그러나 원예부 소동은 예상할 수 없었기에, 이를 도둑과 엮는건 무리입니다. 애초에 무언가를 훔치려면, 소동이 일어난 날이 아니라 다른 날을 선택하는게 당연하지 않을까요? 오스트리아에서 허가받지 않고 들여왔다는 씨앗의 검역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라가 직접 나설 필요는 없었어요. 

이렇게 억지스러운 부분이 많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봉인의 기담" 

메이지 시대 화족 부나가와 가문의 별장은 과거 2명이 죽고, 1명이 실종된 탓에 봉인되어 유령이 나온다는 전설 때문에 '봉인장'이라고 불리우고 있었다. 현재에 이르러 철거를 앞둔 봉인장은 기록을 위한 건설회사 조사가 시작되었고, 신라도 부나가와 당주의 부탁으로 조사에 참여했다. 

지하에서 죄인을 가두어두는 시설을 발견한 조사팀은 비싼 장비를 이 안에 넣고 휴식을 취했지만, 잠든 과장을 제외한 조사팀원은 차례로 습격받은 뒤 장비마저 도난당하는데...

봉인장 지하의 '치도리 격자'라는 독특한 감옥 구조를 이용해서 탈출구를 만드는 설정은 재미있었습니다. CMB 특유의 현학적인 재미를 잘 살리고 있어요.

그러나 다른 내용은 별로였습니다. 동기에 큰 문제가 있는 탓입니다. 특히 이렇게 용의자가 제한적인 상황에서까지 도둑질을 할 이유는 불분명합니다. 과장은 잠들어 있었고, 장비를 잃어버리면 책임을 져야 합니다. 편의점에 심부름을 갔던 직원은 영수증이라는 증거가 명확하고요. 이 둘을 제외하면 용의자는 세 명에 불과해요. 이 정도라면 당장은 빠져나갈 수 있더라도 장치를 회수하거나, 현금화하는 과정에서 범인이 누구인지는 쉽게 드러났을겁니다. 

신라의 추리도 빈약합니다. 범인만이 얻어맞고 기절한 쿠로마츠라는 직원이 어디있는지 알 수 있었다는 증거가 대표적이에요. 찾아다니다가 우연히 발견할 수도 있었잖아요? 때문에 격자에서 지문을 채취한다던가 하는 보강은 필요했습니다. 

전개도 문제가 많습니다. 초반에는 과거 봉인장에서 일어났던 사건이 무엇인지 궁금하게 만들지만, 이 역시 치도리 격자 구조를 이용해서 일으켰던 거라고 짤막하게 언급될 뿐입니다. 이래서야 '봉인장' 어쩌구 하면서 거창하게 접근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하마구리 가 사람들" 

경찰서에서 나오던 신라와 타츠키에게 하마구리 가 사람들이 자신들 아버지에 관련된 사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부탁했다. 도내에 맨션 여러 채를 가지고 있는 부자 아버지 하마구리 기치사부로가 이웃집에 사는 수수께끼의 여자 마야에게 홀려 요가 강습료라는 명목으로 거액의 현금을 주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경찰은 사건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방관했지만 하마구리 기치사부로가 사라졌고, 타츠키와 하마구리 가 사람들은 미행을 통해 마야가 다치가와류라는 기묘한 불교 분파 수행자라는걸 알게 되었다. 그 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라는 유서를 남긴 채 하마구리 기치사부로가 시체로 발견되자, 유족은 경찰에게 책임을 물었고 경찰은 어쩔 수 없이 기치사부로의 죽음을 사고사로 처리하는데....

신라가 추리한 사건의 진상은, 이 사건은 하마구리 가 사람들의 조작이라는 겁니다. 기치사부로가 갑작스러운 심장발작으로 죽게 된게 이유였어요. 상속 확정까지는 기치사부로의 계좌가 동결처리되어 돈을 빼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치사부로의 돈으로만 먹고 살던 기생충들은 어쩔 수 없이 아버지 사망 확인을 최대한 늦추면서, 서둘러 계좌 속 돈을 현금화한겁니다. 거액을 인출한걸 설명하기 위해서, 아버지가 여자에게 속아 돈을 건넸다는 이야기를 만든거지요. 

이를 증명하기 위해 핏빗(?)을 스마트폰에 동기화시키는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기치사부로가 매일 1만보 걷기 등을 실천하던 사람이라, 어느 시점에서 움직이지 않았는지가 동기화를 통해 드러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잠깐 떼어 놓을 수야 있겠지만, 이전 이력과 비교하면 이상 여부를 쉽게 알 수 있을테니, 확실한 증거는 아니더라도 참고 이상으로는 충분히 쓰일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였어요. 웨어러블 장치가 일상회된 현재라면 말이지요.

하지만 하마구리 가 사람들의 조작은 거창하기만 할 뿐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수상한 옆집 여자 마야에게 현금을 주더라, 정도로 끝내는게 합리적이었어요. 돈을 건네 주다가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죽었다는건 별로 이상하지 않잖아요? 사이비 종교를 엮어서 구원 어쩌구 하는 이유를 들먹일 필요는 없었습니다. 외려 다치가와 류는 살아있는 채로 부처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기 때문에, 신라에게 의심을 사고 말았을 뿐입니다. 경찰도 아니고, 경찰 관계자도 아닌 평범한 고등학생 신라와 타츠키에게까지 사건을 이야기할 이유도 딱히 없었고요. 

설명도 부족합니다. 기차사부로의 사체를 어디에 보관했는지부터가 애매해요. 부검에서 사망 추정시간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이유도 설명되지 않고요. 경찰에 신고하며 소동을 일으키려면 적어도 1주일 이상은 걸렸을 거잖아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설득력만 높여 주었더라면 훨씬 좋은 작품이 되었을텐데 조금 아쉽습니다.

"돌과 사진" 

마추피추 유적에서 스페인 여성 관광객 알마가 낙석에 맞아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 뒤 잉카의 저주라는 소문이 퍼졌다. 피해자가 잉카를 정복했던 스페인인이었고, 낙석은 다른 돌로 가로막혀 떨어질 수 없었던 위치에 놓여 있었던 탓이었다.

살인의 동기가 인스타그램일 수 있다는 전개는 꽤 시의적절했습니다. 피해자가 친구들 사진 아이디어를 도용해 사진을 올리고, 그걸로 인기를 얻었다는 내용이거든요. 물론 결정적인 동기는 따로 있기는 합니다만....

문제는 인스타그램 관련 내용 외의 모든 것입니다. 돌이 떨어진 진상부터가 허무하고 유치했어요. 가로막고 있던 돌을 피해서 굴린 뒤 피해자에게 떨어트린게 전부거든요. 밑에 굴리기 쉽게 태피스트리를 깔았다는데, 이건 트릭도 뭐도 아닙니다. 증거인 유리 구슬 파편도 너무 쉽게 드러나고요. 상식적으로도 자연스럽게 낙석이 일어난 것으로 위장하는게 당연합니다. 이렇게 억지로 불가능한 상황을 연출할 이유는 전혀 없어요. 다른 친구 두 명이 범인 엘자가 위로 올라가 돌을 떨어트린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2020/03/22

희망장 - 미야베 미유키 / 김소연 : 별점 3.5점

희망장 - 8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북스피어

미야베 미유키의 시리즈 탐정 중 하나인 스기무라 사부로가 등장하는 단편집입니다.

미야베 미유키는 유명세에 비하면 제가 많이 읽은 작가는 아닙니다. "화차"는 제 올타임 베스트 10에 언제나 꼽을 수 있는 걸작이고, 다른 작품들도 대체로 평균 이상이지만 이상하게 손이 잘 가지는 않더라고요. 가장 큰 이유는 500페이지는 훌쩍 넘기는 대장편이 많은 탓입니다. 두께만 봐도 먼저 질리는 느낌이거든요. 에도 시대물은 재미있긴 했지만 별로 취향이 아니었고요.
이 책 역시 거의 500페이지에 이르는 두께를 자랑합니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외부 활동이 극히 적어진 요즈음, 이런 책이 집에서 진득하게 읽기에는 오히려 좋겠다 싶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작품에 대한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시작했는데, 너무 재미있고 괜찮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재미의 핵심 요소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탐정과 일반인의 경계에 묘하게 걸쳐있으며, 추리력과 더불어 인간 그 자체에 대한 깊은 관찰력을 선보이는 주인공 스기무라 사부로입니다. 스기무라 사부로는 "탐정 사전"을 통해 존재를 알게된 뒤,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만 해 왔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니 더욱 감개무량하네요. 평상시 흠모하던 스타와 우연히 동석하여 식사를 했는데, 스타가 밥값까지 내 준 격이랄까요. 두 번째는 평균 이상되는 추리물로서의 완성도고요.

단점이 없지는 않지만, 평균 이상의 좋은 작품들이었습니다. 전부 평균한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스기무라 사부로 시리즈의 전작을 꼭 찾아서 읽어봐야겠네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은 참고 부탁드립니다.

"성역"

이혼한 독신남으로 사립 탐정업과 조사로 먹고 사는 38살의 스기무라 사부로에게 기념할 만한 첫 손님이 찾아왔다. 이웃 맨션 파스텔 다케나카에 사는 독신 여성 모리타였다. 그녀의 의뢰 내용은 유령의 정체를 밝혀달라는 것으로, 그녀의 아래층에 살다가 사망한 할머니 미쿠모 가쓰에를 꼭 닮은 사람을 보았는데 가난에 허덕이던 미쿠모 할머니와는 다르게 그녀는 유복해 보였다고 했다.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조사의 의뢰비는 착수금 5천엔과, 2년 동안의 쓰레기장 청소 당번 대행이었다.

조사 시작과 거의 동시에, 스기무라는 곧 죽을거라는 전화만을 남기고 사라진 미쿠모 할머니가 죽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남겨진 몇 가지 단서를 통해 이루어진 죽지 않은 그녀가 지금 유복해보이는건 뭔가 인생 역전의 계기가 있었다고 추리하고, 옛 주소지에서 연을 끊다시피한 딸 역시 행방불명이라는걸 알아내 둘 사이에 뭔가 연결 고리가 있다는걸 알아내지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복권 당첨에 당첨된 할머니가, 딸에게 다시 전화를 해서 둘이 새로운 삶을 찾아 과거를 모두 버리고 떠났다는 결말까지 차분히 이어집니다.
이를 위한 중간중간의 디테일들도 꼼꼼합니다. 38살 밖에 되지 않았지만(그런데 작중 배경인 2010년에 38살이면, 저와 동갑이네요. 호감도가 더욱 증가했습니다!), 사람으로서의 배려를 소중히 여기는 스기무라 사부로도 무척이나 호감가게 그려지고요.

조금 특이했던건, 불쌍한 할머니를 염려하는 동네 주민의 의뢰와 조사 중 자상한 동네 주민들의 도움을 받는 따뜻한 분위기와 딸인 지독한 이기주의자 미쿠모 사나에의 표독스러움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부분입니다. 심지어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사이비 종교집단으로 보였던 스타차일드 멤버들마저도 알고보니 착하고 불쌍한 사람들이라는게 밝혀집니다. 이들에 비하면 사나에는 그야말로 자기만 아는 압도적인 악역이에요. 문제는 사나에같은 인물이 우리 주위에서 더욱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겠죠. 할머니의 무사는 축하할 일이지만 이런 딸과 함께 산다면, 결말은 안 봐도 뻔할 거라는게 무섭게 다가옵니다.

스타차일드 멤버인 벨과 사나에의 악연, 그로부터 비롯된 가노쿠라 풍아당과의 관계는 사족이었다 생각되지만, 이 정도면 아주 좋은 작품입니다.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희망장"

세상을 떠난 무토 간지는 죽기 전, 양로원 관계자와 아들에게 과거 사람을 죽인 적이 있다고 고백했고 아들 아이자와는 스기무라에게 이 사실의 진위여부를 밝혀줄 것을 부탁했다. 주변인들을 통해 밝혀진건, 간지 씨가 쇼와 50년 8월, 젊은 여성이 습격당해 살해된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것이었다.

아이자와의 말에 따르면, 무토 간지는 데릴사위로 들어간 아이자와 가문으로부터 절연당한 뒤 어렵게 살아왔습니다. 어머니의 외도 탓으로, 그가 특정 여성에게 발끈하여 살해했을 수도 있다는건 충분히 가능했을거라고 설명되지요. 하지만 스기무라의 조사로, 그가 '사람을 죽였다'고 직접 표현한 적은 없다는게 곧바로 밝혀집니다. 그렇다면 진상은 무엇이었을까요?

이를 밝혀내기 위해 성실하게 발품을 팔아 단서를 찾는 스기무라 사부로의 조사 활동은 정겹습니다. 오래전, 35년 전 거주했던 흔적을 찾아 거리를 헤메는데, 나름의 노하우가 눈에 띕니다. 음식점, 이발소, 미용실, 세탁소나 술가게 등 배달도 하는 업종의 가게 등을 돌아다니지만, 바나 스낵에는 기대지 않는다는 겁니다. 바둑 모임이나 장기 살롱은 있으면 좋은 정보원이지만 마작이나 파친코는 그 반대이고, 편의점은 별로 도움이 안되지만 학원은 도움이 된다던가, 파출소에는 들르지 말아야 한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류의 조사를 한다면 참고할 만한 정보네요.

하여튼, 이러한 스기무라 사부로의 조사로 35년 전 강간 살해 사건의 범인과 무토 간지가 같은 아파트 '희망장'에 살았다는게 밝혀집니다. 처음 방문했던 술가게에서 정보를 얻었더라면 이후의 조사는 별로 필요가 없었지만, 이런 시행착오가 오히려 현실감을 더해줍니다. 또 이 과정에서 탐정은 아무리 일상계라도 비정할 수 밖에 없다는걸 전해주는 부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좋은 사람들에게, 차가운 질문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이유인데, 굉장히 와 닿더라고요.

그리고 이어지는 스기무라의 추리에 따른 가설도 그럴듯합니다. 35년 전 사건의 진범이 무토 간지였거나, 진범 가야노 지로의 아주 친한 지인이었을거다라는 가설이지요. 당연히 35년전이라고 해도, 경찰을 우습게 보면 안되니 두 번째 가설이 정답이고요.
그렇다면 왜 무토 간지가 죽기 전 양로원에서 이상한 말을 했느냐는 의문이 생기는데, 이는 스기무라가 양로원 청소 스태프가 청소할 때 스포츠 타월을 접어 바닥에 까는 걸 보고 알아채게 됩니다. 무토 간지는 살인범을 본 적이 있어서, 그가 어떤 변화를 보이는지 알았던 겁니다. 그래서 양로원 청소 스태프 하자키가 살인을 저질렀다는걸 알고 그걸 은밀히 드러내려 했다는게 진상입니다.
최근에 일어났던 성폭행 미수 살인사건과, 35년전인 쇼와 50년 8월 사건 두가지가 마지막에 맞물리는 전개가 정말 멋집니다. 일평생 고독하지만, 정직하고 한결같이 살아온 무토 간지의 매력도 빛을 발하고요.

하지만 욕심이 조금은 지나친 느낌입니다. 35년전 피해자 다나카 유미코의 동생을 이야기에 포함시킬 필요는 없었어요. "그녀는 원래부터 재였다. 사람의 모습을 한 재다."와 같은 멋드러진 묘사에 비하면 등장해서 하는게 없고, 묘사도 담담하게 전개되는 이야기에 담아내기에는 지나친 편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4.5점입니다! 지금도 좋은 작품이지만 불필요한 요소를 들어내는게 더 좋았을겁니다. 아니면 다나카 유미코 사건도 더 깊숙히 파고들어 더 긴 호흡의 이야기로 전개하던가요. 그랬다면 별점 5점도 충분했을텐데, 약간 아쉽습니다.

"모래 남자"

스기무라의 이혼 후 야마나시에서의 삶, 가키가라 스바루를 만나 조사원으로 일하게 된 계기 등이 차분히 펼쳐지는 작품입니다. 호토 가게 '이오리'의 주인 마키타 히로키가 이노우에 다카미와 불륜 끝에 사랑의 도피를 한 사건의 조사와 추리와 함께 진행되지요.

남편 마키타 히로키는 과거 문제아로 아버지에게 절연당했다, 지금 그의 사진은 남아있는게 없다, 사진을 확인조차 못했다는 이야기에서 당연히 과거 문제아 가가와 히로키는 지금의 마키타 히로키와는 다른 인물이라는건 쉽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다카미가 문제아 시절 과거를 노리코와의 친분 덕분에 알게 되었고, 돈이 궁해진 지금에 와서 그 정보를 협박의 도구로 썼으리라는 추리도 역시나 상상력 범주 안에 있고요.
하지만 이를 마키타 집에서 풍겨온 염소 냄새, 집 근처에 묘지가 있다는 상황 등과 연결하여 풀어나가는 전개는 오싹합니다. 협박을 '공포'의 문제로 풀어나가는 감각, 섬세한 심리 묘사를 통해 피해자들의 공포, 후회를 드러내는 솜씨도 실로 발군입니다.

하지만 이노우에 다카미가 살아있었으며, 이 모든건 히로키의 부탁으로 벌인 연극이었다는 진상 이후부터는 시시해집니다. 히로키가 지나치게 착한 탓에 벌어진 일이라서 마음이 무겁기도 했고요. 한 번 희생양은 영원히 그 속박을 벗어날 수 없다는 이야기로 느껴졌거든요.
같은 이유로 진짜 히로키로부터 위협받던 가짜가 진짜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는건 의외이기는 했지만 와 닿는 이야기는 아니었고, 모든걸 알게 된 다카미가 어머니와 함께 사과했다는 후일담은, 결국 히로키의 연극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결말이라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다카미의 철없는 악의가 결국 모든 걸 망쳐버렸다는 뜻이니까요. 게다가 본인은 잘못을 느끼지 못하며, 잘못을 깨닫고도 결국 민폐만 끼치고 말았다는 점에서 아예 사악함을 뿜어냈던 "성역"의 사나에보다도 더 질이 나빠요.

결론내리자면, 사건보다는 스기무라의 과거 이야기가 더 재미있었던 소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도플갱어"

후쿠시마 사태를 일으킨 도호쿠 대지진을 소재로 한 작품. 대지진과 후쿠시마 사태가 일본인에게 얼마나 공포였는지가 작품에서 은근하게 표현되는게 이채로왔습니다. 스기무라 사부로의 입을 통해 '일본은 키를 잃고 폭주할 것이다, 우리는 망망대해를 절망 속에서 떠돌 것이다'라는 비관적인 예측이 대표적이지요. 소시민과 상대적인 약자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는 미야베 미유키의 특성이 잘 드러난 말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핵심 사건인 유타카 실종 사건의 추리는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지진으로 실종된 줄 알았지만 사실은 살해되었다는건 좀 뻔한 이야기죠. "브라운 신부"에서도 시체를 숨기려면 전쟁을 일으키라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그래도 동기가 그의 결혼 결심이었다는건 꽤 괜찮은 아이디어였어요. 결혼을 결심하면 프로포즈를 해야 하고, 프로포즈를 위해 고가의 반지를 구입했으며 이를 범인이 유타카를 살해하고 빼돌렸다는 진상은 충분히 합리적이니까요.

그러나 전반적으로 작위적인 전개가 눈에 거슬립니다. 애초에 아스나가 스기무라에게 실종 조사를 의뢰한 것 부터가 작위적이에요. 스기무라가 그 의뢰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조사를 한 것도 석연치는 않고요. 작 중 묘사되듯 '자원 봉사'로 할 일은 아니잖아요. 이런 실종은 전문 단체에 의뢰하는게 맞는 상황이니까요.
마쓰나가가 유타카를 살해한 직후, 대형 재해가 때마침 벌어진 것 역시 작위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차라리 재해가 일어난 후, 유타카가 프로포즈를 결심하고 , 그 탓에 마쓰나가와 트러블이 일어났다고 이야기를 끌어나가는게 더 나았을 겁니다. 또 사부로가 결정적인 단서를 잡게 된 계기인 아스나를 괴롭히는 나쁜 친구들이 사건에 엮인 과정도 설득력이 약합니다. 단서를 끄집어 내기 위해, 이야기를 전개시키기 위한 억지스러운 느낌이 강했어요. 이 친구들이 등장하느니, 마쓰나가가 아스나에게 직접 연락하여 사귀자고 한 뒤, 그 징표로 비싼 반지를 선물한다는 식으로 풀어나갔더라면 더 어땠을까 싶네요.

명백한 살인 사건을 스기무라 사부로가 해결하는 정통 추리물로, 수록작 중에서는 가장 본격물에 가까운 작품이지만 그만큼 본격물이 현대 사회에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지를 깨닫게 해 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경찰도 아니고, 정식 탐정도 아닌 스기무라 사부로 수준에서는 더욱 한계가 느껴질 수 밖에 없지요. 수록작 중에서는 가장 처집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19/05/12

메이지의 도쿄 - 호즈미 가즈오 / 이용화 : 별점 2.5점

메이지의 도쿄 - 6점
호즈미 가즈오 지음, 이용화 옮김/논형

저는 우리나라 구한말, 일제 강점기 시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일본의 메이지 시대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많고요. 마침 일본 메이지 시기 도쿄에 대해 방대한 그림 자료와 함께 소개한 책이 출간되었기에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책은 총 8개의 대주제하에 365페이지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메이지 시기의 개막에서부터 도쿄가 어떻게 발전되어 나갔는지를 그림과 함께 차분하게 설명해 줍니다. 그동안 말로만 들어왔지 그 형태, 구성이 궁금했던 각종 건축물에 대한 상세한 소개가 특히 인상적으로 쓰키지 호텔관, 긴자 벽돌거리, 서양 요리점 세이요켄, 정부 주도의 각종 공장과 관공서, 은행, 학교, 기차역, 로쿠메이칸, 민간 사진관, 각종 다리, 료운가쿠 등 종류도 방대합니다. 도쿄 도심을 일러스트로 지도처럼 표기한 삽화도 이해를 돕고요.
새로운 건물과 새로운 직업군의 출현 뿐 아니라 실제 서민들의 삶과 문화도 쉽게 알 수 있게 도와줍니다. 서민들이 살던 곳은 심지어 슬럼가까지 소개되고 있으며, 당시 유행하던 옷과 헤어스타일, 여가를 위한 여러가지 문화와 풍물, 아이들의 놀이까지 소개되거든요. 깔끔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삽화가 포함된 것은 물론입니다. 그림은 정말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할 정도로 괜찮네요. 단지 잘 그렸을 뿐 아니라 정보 전달 역할에도 충실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가지 램프에 대한 상세한 일러스트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정보죠.

당연히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많습니다. 료운가쿠와 더불어 아사쿠사에 파노라마가 설치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던가 유명 가부키 레퍼토리, 당대 아이돌이었다는 무스메 기다유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메이지 10년에 요코하마에서 프랑스 자전거를 수입해서 팔았는데 가격이 200엔으로 엄청난 고가였다는 것 (당시 순사 첫 급여는 8엔), 도쿠가와 요시노부도 시즈오카에 은거하며 자전거에 푹 빠졌다는 등의 소소하면서도 신기한 이야기가 가득해요.
심지어 당시 일어났던 여러가지 유명 범죄에 대해 알려주기까지 합니다. 유명한 여성 살인범 오키누와 오덴, 하나이 오우메 사건 등에서 어딘가에서 읽었던 노구치 오사부로의 엉덩이 살 사건 등으로 이어지는데 조금 더 자세하게 소개되어도 좋겠다 싶었어요. 지금 읽어도 흥미로운 내용이 제법 있더라고요.

단점이라면, 당시의 문화를 전해주는 것에만 치중하여 실제 역사의 흐름을 알기는 힘들다는 점입니다. 비슷비슷한 건축물 그림이 많다는 것도 사람에 따라서는 조금 단점이 될 수도 있을테고요. 무엇보다도 분량에 비하면 가격이 너무 과하다는 단점은 큽니다. 아무리 일러스트가 괜찮다 하더라도 전부 흑백인데 17,000원이나 할 이유를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메이지 시대에 관심이 있다면 흥미롭게 읽을 내용이 많다는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림만 일람해도 여러모로 도움이 될 정도니까요. 쉽게 이야기하자면 도쿄를 중심으로 메이지 시대를 보여주는 도감이랄까요? 이 정도면 별점 2.5점은 충분합니다.

2014/09/15

백화점의 교수형 집행인 오사카 케이키치 7가지 미스터리 - 오사카 케이키치 / 곽은숙 : 별점 2.5점

백화점의 교수형 집행인 - 오사카 케이키치 7가지 미스터리 - 6점
<오사카 케이키치> 저, <곽은숙> 역/그래출판

"감방"에서 이 작가의 "세 광인"이 마음에 들었다고 리뷰를 올렸었죠. 그래서 작가의 다른 작품도 찾아보았는데, e-book으로 출간되어 있더군요. 퍼블릭 도메인 작품인 덕분이겠지요? 가격도 2,000원으로 착해서 주저 없이 구입했습니다.

참고로 "감방"에서는 오오사카 케이키치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오사카 케이키치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찾아보니 "오오사카" 쪽이 맞는 번역이네요. 그런데 위키를 보니 작가의 인생도 정말 드라마같습니다. 태평양전쟁에 징집되어 출정 전 은사인 고가 사부로에게 장편소설 원고를 맡겼는데, 오오사카는 루손 섬에서 병사했고 고가 사부로 역시 급사해 버린 탓에 원고가 사라져버렸다고 합니다. 안타깝습니다...

하여튼, 이 책은 제목 그대로 7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단편집입니다. 일상계 소품 한 편을 제외하고는 고전 황금기 스타일의 정통 본격물들입니다. 

수록작 전체의 별점 평균을 낸다면 2.5점 정도인데, 별점 3.5점 이상의 작품이 두 편이나 있으며 고전 황금기 스타일을 충실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가치 있는 독서였습니다. 이런 작품이 전전(1945년 이전) 작품이라는 점에서 일본 추리소설의 탄탄한 기반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고요. 고전 황금기 본격물 애호가라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이런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 보다 많이 소개되길 바라며 리뷰를 마칩니다.

마지막으로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제 리뷰에서는 항상 그렇지만,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꼭두각시 재판"

20여 년 동안 법정 정리로 일해온 화자가 겪었던, 무려 세 건의 재판에서 핵심 증인으로 활약한 요정 여주인의 정체는 무엇인가?라는 이야기입니다.

일종의 법정물로 볼 수 있는데 요정 여주인이 사건 피해자나 용의자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으면서도 유·무죄 선고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만드는 증언을 반복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재미있으면서도 설득력 넘치게 그리고 있습니다. 복선 및 단서 제공 역시 적절했고요. 무엇보다도 이런 류의 도박을 그린 작품은 본 적이 없는데 너무 가볍게 소모한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아이디어가 돋보였어요.

조금 낡은 구성과 언젠가는 꼬리가 밟힐게 분명했다는 단점은 있지만, 그야말로 숨어있는 보물 같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향수 신사"

여고생 구루미가 기차 여행 중 우연히 만난 신사가 은행강도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라는 것을 알고 벌이는 작지만 용감한 행동을 그린 작품.

거의 대부분이 구루미의 심리 묘사로 이루어져 있는데

1. 여행 중 앞좌석에 앉은 신사를 불쾌하게 생각한다.
2. 손가락이 하나 없다는 큰 특징을 알게 된 후 왜 그 사실을 숨길까?를 궁금해한다.
3. 우연히 신문기사를 통해 은행강도 사건의 용의자일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어떻게 할지를 고민한다.

라는 순서로 전개됩니다.

여고생이다 보니 딱히 용감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앞서 언급된 사촌에게 줄 결혼 선물을 이용하여 명확한 증거를 남긴다는 재치가 돋보이네요. 딱히 대단한 트릭이나 추리가 등장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귀여운 소품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백화점의 교수형 집행인"

탐정역으로 아오야마 교스케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표제작.

노구치라는 백화점 점원이 교살된 채 추락사한 사건을 가지고 사체의 상태와 범행 현장에서 아래의 단서들

1. 범인은 힘이 셀 것이다.
2. 범행은 옥상에서 일어났다.
3. 흉기는 길고 거친 표면을 가진, 밧줄과 같은 것이다.
4. 동기가 없다.

을 끌어내어 진상을 밝혀낸다는 내용입니다. 그야말로 주어진 증거에서 결론을 이끌어내는 고전 황금기 시대 본격물 스타일에 충실한 작품이죠. 나름 과학적인 트릭이 사용된 것도 인상적이었고요.

그러나 단점도 분명합니다. 일단 트릭이 너무 작위적이었어요. 애드벌룬 안에 목걸이를 숨길 당위성도 좀 부족하고요. 이렇게 숨길 수 있을 정도로 움직임이 자유로웠다면 범인이 통제 가능한 다른 수를 내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차라리 땅에다 파묻던가... 여튼 이래서야 트릭을 떠올리고 억지로 작품을 끼워 맞춘 결과물로 보일 뿐입니다.

전개에 있어서도 피해자 노구치가 목걸이를 훔치지 않았으리라 주장한 귀금속 코너 주임의 증언은 너무 심각한 오류를 독자에게 불러일으키기에 공정해 보이지 않았고요. 아울러 번역도 조금 아쉬웠습니다. 피해자의 사체에서 끌어낸 정보로 추리가 시작되는데 어려운 법의학 용어가 많이 등장할 뿐더러 주요 단서가 되는 특징도 지나치게 직역이라 이해가 어려웠거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조사해보니 작가의 데뷔작이던데, 뭔가 보여주고 싶은 의욕이 과했던 것 같습니다.

"장례식 기관차"

운행 중 유별나게 역살(사람을 치는 것) 사고가 많은 기관차가 어느 날부터 매주 돼지를 들이받는 사고를 일으키는 이유는?

사고가 많은 기관차라는 독특한 소재와 기발한 동기가 결합된 본격물. 돼지 역살 사고가 결국 끔찍한 비극으로 끝나는 전개까지도 어떻게 보면 고전적인 작품이죠.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닌데 추리, 진상 모두 비약이 너무 심하다는 단점이 조금 거슬렸습니다. 예를 들어 복잡한 도구를 이용하여 돼지를 선로에 잡아놓는 범인의 행동에서 범인이 이 도구를 판매한다는 추리를 끌어낸다든가, 범인의 동기가 역살 사고 때 "화환을 사러 오는" 오사센 기관사를 자주 보기 위해서라는 것 등입니다. 첫 번째 추리는 당연히 말도 안 되죠. 누구나 상상 가능한 쉬운 방법이 있는데 손에 넣기 쉽다고 구태여 복잡한 방법을 쓰는 사람이 있을까요? 두 번째의 동기도 범인이 스스로 움직여 자살이 가능했다면, 그게 불가능했더라도 아버지가 업고서라도 근처로 나가보는 식으로 오사센의 얼굴을 볼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을 테고요.

형식과 전개는 마음에 들지만 이러한 비약 때문에 아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위키피디아에는 작가의 대표작으로 소개되어 있는데 이해가 잘 되지는 않습니다...

"꽃다발 속의 벌레"

역시나 전형적인 고전 황금기 스타일 본격물. 한 재산가가 절벽에서 추락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내용입니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홈즈 스타일의 탐정역인 오츠키 변호사의 활약이 볼거리인데 현장의 발자국을 조사하여 "범인은 여성"이라고 추리하고, 떨어져 있던 사과껍질은 범행 당시 떨어진 것이며 방향이 왼쪽이라 왼손잡이가 깎은 것이라는 것을 밝혀내며, 경찰이 놓친 얇은 조각이라는 주요 증거를 발견하는 식입니다.

또 진짜 수수께끼라 할 수 있는, 체구도 작은 연약한 여성이 어떻게 격투 끝에 피해자를 절벽 밑으로 밀어 떨어뜨릴 수 있었는가?라는 것에 대한 해답이 위의 단서들로 밝혀지는 결말도 아주 좋았습니다. 깎는 위치에 따른 사과껍질의 방향성 같은 디테일도 마음에 들었고요.

아쉬운 점이라면 농부라는 목격자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것인데 농부의 규칙적인 생활에 대한 언급 정도를 해 주었더라면 더 나았을겁니다. 아울러 동기 역시도 썩 와닿지는 않았어요. 이래서야 범인이 너무 명백하니까요. 사실 경찰이 원고 조각을 회수한 시점에서 이미 게임은 끝난 거나 다름없지요.

이렇게 단점이 없지는 않으나 앞선 두 편의 본격물보다는 훨씬 정교하고 합리적인, 추리의 과정과 트릭만큼은 수준 이상의 본격물로 고전 황금기 걸작과 겨룰 만한 좋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칸칸충 살인사건"

아오야마 교스케가 재등장하는 단편.

앞선 작품들에 비하면 추리의 비중이 낮은 단순한 살인극이지만 피해자 키사부로의 시체 상태로 범행 장소는 물론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추리해내는 교스케의 모습은 명탐정이라 불러도 손색없어 보입니다. 조선소의 구조를 실제 추리에 응용한 디테일도 나쁘지 않았고요.

허나 내용이 워낙 단순해서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이 별로 없군요. 별점은 2점입니다.

그리고 G.Y라는 이니셜이 어떻게 "야마다 히로노스케"의 이니셜이죠? 번역 오류인가... 여튼 세세한 부분이 좀 아쉽네요.

"등대귀"

시오마키 등대의 불이 갑자기 꺼지고 당직인 도모다 간수에게 닥친 끔찍한 사건. 성인 두 명이 들어도 움직이기 어려운 큰 바위를 등대 꼭대기로 옮긴 계획의 진상은?

임해시험소의 아즈마야 소장이 탐정역으로 등장하여 등대의 기계장치를 이용한 트릭을 밝혀내는데, 등대라는 장소의 특수성에 복잡한 장치 트릭이 더해진 것이라서 크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등대의 구조를 독자가 머릿속에 그리면서 추리를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탓입니다. 동기도 정신병적인 것이라 너무 쉽게 간 느낌이고요.

완고한 옛날 사무라이 같은 카자마 간수의 거짓말을 잡아내는 소소한 활약은 좋지만 그 외의 부분에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12/11/15

혈액형 살인사건 - 고가 사부로 / 박현석 : 별점 2점

혈액형 살인사건 - 4점
고가 사부로 지음, 박현석 옮김/현인

일본 추리소설계의 3대 거성 중 한명이라는 들어보지도 못한 타이틀의 작가가 쓴 단편집. 총 10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초기 형태의 일본 추리 단편물을 접할 수 있는 흔치않은 기회이기에 관심이 가던 책이었습니다. 국내에는 란포 이외에는 고사카이 후보쿠의 "연애곡선" 정도만 소개되어 있으니까요. 그나저나, 나름 추리소설은 읽을만큼 읽었다고 생각하는데 일본 추리소설 3대 거성 중 두명을 들어본 기억조차 없다니 많이 반성해야겠네요.

그런데 읽어본 결과는 실망이 더 컸습니다. 쓰여진 시대를 감안하더라도 최소한의 소설적인 완성도가 부족한 작품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특기가 과학이었기에 과학을 응용한 트릭을 만드는 데에는 제법 많이 공을 들였지만 그 외의 부분은 너무 대충 넘어간 느낌이에요. 한마디로 수수께끼에는 적합하나 소설로는 부적합한 그런 작가였달까요... 감히 일본 추리소설계의 3대 거성 중 한명이 맞는지 의심까지 갖게 만들 정도로요. 그 외에 지나치게 직역스러운 번역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별점은 2점. 자료적으로는 가치가 있고 쉽게 접하기 힘든 당대 작품이기는 하나 이 정도 수준이라면 구태여 찾아 읽을 필요는 없다 생각됩니다.

수록작별 간단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약간의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습니다.

"혈액형 살인사건"

게누마 박사의 죽음과 가사가미 박사 부부의 자살 뒤 1년 후, "나" 우자와가 사건에 대해 공개하는 형태로 쓰여진 중단편 작품.

혈액형이 중요한 동기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게누마 박사의 기묘한 죽음에 대한 트릭 (밀실에서 1시간 30분 정도의 가스 흡입으로 사람이 사망할 수 있도록 한 장치가 무엇인지?)이 굉장히 과학적이라는 점에서 독특함을 풍깁니다. 그야말로 과학 추리 소설이랄까요? 쓰여진 시대를 감안하면 초월적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일산화탄소를 액화한다는건 지금 읽어도 신선하고 좋은 아이디어였고요.

그러나 트릭에 비하면 작품 자체는 평균 이하입니다. 우왕좌왕하는 전개에다가 범인이 너무 뻔하게 드러나버리는 탓입니다. 혈액형이라는 동기도 시대를 감안하면 특이하지만, 지금 읽기에는 낡아빠졌을 뿐이죠. 작가가 너무 과학적인 설정과 트릭에만 신경을 쓴 티가 역력하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사랑을 위하여"

순수한 선의에서 아기를 집에 데리고 오게 된 주인공과 그의 아내, 아기 어머니를 찾아달라고 의뢰받은 사립탐정, 그리고 다시 아내와 주인공의 수기로 이어지는 작품.

아기가 왜 주인공과 닮았는지, 아기 어머니가 왜 아기를 열심히 찾지 않았는지 등 소소한 수수께끼가 잘 배치된 작품으로 괜찮은 일상계 소품이라 생각됩니다. 각각 1인칭 수기로 이어지는 전개도 낡은 방식이기는 하나 작품과는 잘 어울렸어요.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고 싶습니다. 별점은 3점.

"푸른 옷의 사내"

자택에서 협심증으로 숨진채 발견된 오바마(!) 신조의 죽음을 둘러싼 수수께끼를 파헤치는 이야기. 그러나 지금 읽기에는 너무 뻔했습니다. 오바마 신조가 죽었다면 가장 득을 보는 것은 상속자 다쿠이치일테고, 그가 오바마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정도로 닮았다는 설정까지 있으니 이야기가 길어질 이유가 하나도 없거든요.

다쿠이치가 상속세 때문에 시체를 방조했다는 진상 하나만큼은 조금 독특하나 그 외에는 별로 건질게 없는 평범 이하의 작품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덫에 걸린 사람"

빚때문에 발버둥치는 도모키 - 노부코 부부가 각각 고리대금업자 다마시마를 죽일 결의를 한 뒤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무려 500엔이라는 거금을 갑자기 입수하게 된다던가, 지나가던 다케야마가 500엔을 분실한 뒤 우발적으로 다마시마를 죽이게 된다던가 하는 식의 우연치고도 너무 지독한 우연이 연달아 벌어지기 때문에 도저히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김화백 작품을 보는 기분마저 들 정도에요. 막나가는 것도 정도가 있어야 되잖아요?

죄책감을 묘사하는 부분이라던가 마지막의 "운명이라는 녀석은 항상 덫을 놓고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운명이다" 라는 도모키의 대사는 멋지지만 그냥 그 뿐입니다. 별점 1점 이상은 주기 힘든 몹쓸 작품이에요.

"위조지폐 사건"

중학생 화자인 "나"와 동급생 모리 하루오가 친구 도비야마의 고향에 방문해서 그 마을에서 벌어진 위조지폐 사건의 진상을 파헤친다는 내용으로 셜록 홈즈 느낌이 가득 나는, 전형적인 셜록 홈즈 스타일 작품입니다.

탐정역의 모리 하루오가 강아지 발바닥의 잉크를 단서로 하여 절에 방문한 뒤 논리적인 추리를 통해 진상을 알아낸다는 과정은 셜록 홈즈물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깔끔하면서도 설득력이 넘쳤습니다. 만약 시리즈가 있다면 읽어보고 싶을 정도로 괜찮았어요. 개인적으로 이런 류의 작품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러나 아동용으로 창작된 듯한 조금 저렴한 문체와 묘사, 그리고 탐정역인 모리 하루오의 인간적 매력이나 개성이 전혀 표현되지 않는 점 등이 점수를 깎아먹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진주탑의 비밀"

경찰과 협력하여 일하는 하시모토 빈이 감쪽같이 가짜로 바꿔치기 당한 진주탑의 행방을 밝혀낸다는 작품으로 역시나 셜록 홈즈 스타일입니다. 의뢰인의 의뢰와 주요 단서를 놓고 벌이는 탐문 수사, 그리고 마지막에 등장인물을 모두 모아놓고 벌이는 깜짝 추리쇼까지 완벽하게 고전적이기도 하고요.

허나 사세의 간단한 공작으로 이루어지는 트릭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점이 좀 아쉽네요. 어차피 전문가들도 제대로 알아채지 못한다면 사세 입장에서 진주탑을 만들 때 몇몇 진주만 바꿔치기 했다면 훨씬 용이하게 돈을 손에 넣었을 텐데 이런 공작을 할 필요가 없잖아요? 그것도 무려 7만 엔이나 되는 거금을 쓴다는 점에서 더욱 현실성이 없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 스타일은 잘 따라 했지만 내용면에서는 부족함이 많았습니다.

"거미"

쓰지카와 박사와 시오미 박사라는 두 박사 간의 알력 다툼과 그로 인해 비롯된 살의에 대한 이야기로 동기는 "혈액형 살인사건"과 좀 비슷하고 트릭은 "웃지 않는 수학자"와 동일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웃지 않는 수학자"에서는 나름 폐쇄 공간에다가 특정 시기에서만 이루어진다는 제한 조건이 있기는 하나, 이 작품에서의 연구실 회전은 상시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정말로 트릭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까라는 의문이 생기기는 합니다. 에도가와 란포 스타일인 거미에 대한 광기 묘사도 뭔가 2% 부족할 뿐더러 좀 뻔했고요. 그냥저냥한 당대 분위기스러운 평작이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꾀꼬리의 탄식"

명문 화족 후타가와 가의 후계자 시케유키의 죽음, 그리고 상속자 시케타케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써내려간 중단편. 제법 긴 분량인데 시케유키가 사망할 때까지의 전반부, 노무라의 아버지와 시케유키가 남긴 문서로 이루어진 중반부, 시케타케의 정체와 시케유키 죽음에 얽힌 트릭을 파헤치는 후반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케유키가 일본 알프스를 파헤치는 작업을 하는 이유가 서서히 밝혀지는 과정까지의 긴장감은 그럴듯하고, 시케유키를 독살한 트릭도 괜찮은 편입니다. 문제는 진상이 정말로 무엇이었는지 알려주지 않고 유력 용의자를 급작스럽게 단죄하며 끝내버리는 마지막 결말입니다. 작품을 망쳐버렸어요. 어차피 증거도 없고 주인공이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겠지만 이렇게 끝내는 건 너무 안이한 처사였습니다. 최소한 진상은 밝혀줬어야죠. 때문에 시대를 감안하더라도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호박 파이프"

한 집에서 피살된 일가족, 남겨진 방화의 흔적, 그리고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백주강도 사건의 관계자 이와미가 얽혀 의외의 진상이 드러난다는 본격 추리물. 간단한 암호 트릭, 그리고 방화에 이용된 염산가리와 설탕의 혼합물에 유산을 떨어트리는 장치라는 복잡한 트릭이 사용된 작품입니다. 전개도 흥미로운 편입니다. 이와미라는 평범한 회사원이 범죄에 어떻게 관계되었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완성도는 그닥입니다. 백주강도가 탐정역을 자연스럽게 수행하는 과정에서의 설득력이 전무하고, 트릭의 과학적 설명은 합당하나 범인이 그렇게까지 정교한 장치를 만들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거든요. 그야말로 트릭을 위한 트릭일 뿐이었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니켈 문진"

묵직한 니켈 문진에 맞아 죽은 시체로 발견된 시미즈 박사의 사인을 둘러싸고 그의 서생인 시모무라와 우치노가 두뇌 싸움을 펼쳐 진상을 밝혀낸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녀인 야에코를 화자로 하여 전개하는 구조는 독특하긴 하나 이야기의 설득력이 낮습니다. 왜 시미즈 박사가 독가스를 연구했는지, 또 왜 독일어로 그 연구를 기록했는지도 설명되지 않고 비밀을 훔치려는 사람들의 공작도 너무나 허술한 탓입니다. 솔직히 어이가 없을 정도였어요.

순수한 니켈이 자석에 반응한다는 과학 상식을 알게 된 것 이외에는 건질 부분이 전무한, 그야말로 너무한 수준의 졸작으로 별점은 1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