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라진 소년 - 
아즈마 나오미 지음, 현정수 옮김/포레 |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중학교 학생 쇼이치가 실종되고, 실종 직전 함께 있던 소년 한자와 마사카즈는 산 채로 성기가 능욕당한 처참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쇼이치의 담임 안자이 하루코의 부탁, 그리고 개인적인 인연으로 '나'는 쇼이치를 찾기 위한 개인적 수사를 시작했다. 돈으로 친한 야쿠자 기리하라의 도움을 얻는 등, 여러 과정을 거쳐 쇼이치가 영화 동호회에서 만난 지인 아베 미쓰코 집에 숨어있다는 걸 알아냈다. 그러나 축배를 든 것도 잠시, 정체불명의 인물들이 아베 미쓰코를 폭행하고 쇼이치를 납치해 갔다…
영화화까지된 "탐정은 바에 있다"로 유명한 스스키노 탐정 시리즈 세 번째 작품입니다. 어쩌다 보니 1, 2편은 건너뛰고 이것부터 읽게 되었네요.
일본 추리 문학계의 한 축인 '고독한 늑대' 스타일의 하드보일드 범죄물인데 그런대로 재미있습니다. 단순히 액션만 장황하게 펼쳐지는건 아니고, 그런대로 정교한 복선이 잘 짜여 있는 덕분입니다. 대표적으로 "복지센터 건립 반대 운동"이 사건의 핵심으로 밝혀지는 장면을 들 수 있습니다. 단순히 분량 늘리기, 혹은 복잡도를 높이기 위한 떡밥이라 여겼는데 의외였어요.
그 외에도 쇼이치와 마사카즈가 "세면기"라는 말을 나누었다라던가, 라면 가게에서 안자이 하루코에게 전화했을 때의 위화감, 교체한 건전지는 있지만 녹음기는 없는 상황 등 여러 가지 복선과 단서가 조합되어 진실이 드러나는 전개는 꽤 그럴듯합니다. 중요 포인트마다 중요한 순간임을 알려주는 묘사가 덧붙여진건 정통 본격물 느낌도 났고요.
주인공의 매력도 상당합니다. 특히 작 중 묘사로 볼 때 전형적인 탐정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해결사인데 이게 참 독특하게 다가왔습니다. 앞 부분에 회삿돈을 횡령한 사람을 미행하기는 하지만, 돈 되는 용역의 일환일 뿐으로 탐정 사무소를 운영하는 탐정이라는 직업의 인물로 소개되지는 않거든요. 작 중에서 돈벌이는 도박, 또는 마리화나 재배 및 거래라고 언급되고요. 한 마디로, 그냥 뭐든 돈 되는 건 다 하는 해결사입니다. 범죄에 한 발 걸치고 있다는 점에서는 "불야성"의 류젠이가 살짝 떠오르기도 했어요.
그러나 천성적으로 악인은 아니며, 정의감만큼은 가득하다는 점에서는 '신주쿠의 사에바 료'의 판박이입니다. 스스키노 거리의 여러 사람, 심지어 야쿠자나 기자까지 연이 닿을 정도로 발이 넓고, 해결사로서의 기본적인 능력도 충분하며, 여자에게 반해서 사건에 뛰어든다는 점까지 똑같기 때문입니다. 안자이 하루코에게 반한 나머지 자신의 돈 250만 엔까지 투자하여 쇼이치를 찾아 나서는걸 보면 하드보일드하고 거리는 먼, 그냥 순정 마초일 뿐이지만 나쁘지는 않습니다. 장점이라고만 보기는 좀 어렵지만요. 사에바 료와는 다르게 반한 여자와 '거사'에 성공하는 결말도 좋았어요.
그리고 시대가 언제인지 특정하기 힘들지만 삐삐 등 세세한 곳에서 보이는 90년대 초반을 나타내는 여러 묘사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좋게만 보기에는 단점이 너무나 명확합니다. 그것은 바로 한자와 마사카즈 살인 사건의 설득력이 제로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변태적인 성행위가 들통난 사기사카 남매에 의해 마사카즈가 사로잡힌 현장에서 쇼이치가 탈출에 성공했다면, 남매가 마사카즈를 살해하는 것은 말이 안 되니까요. 시체가 발견되면 사기사카 남매가 유력 용의자가 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수치심과 분노에 마사카즈를 살해했을 수도 있지요. 그렇다 치더라도,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쇼이치를 찾아 나서는데 시간을 쓴다? 최대한 증거를 인멸하려 노력하고, 달아날 준비를 하는 게 상식입니다. 쇼이치가 불량학생으로 그의 증언에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해도 엽기적인 살인 사건인 이상 수사는 진행될테니까요. 최소한 소각로에 있던 한자와의 옷이라도 치웠어야 했는데 그 정도 노력도 하지 않은건 도대체 무슨 배짱인지 모르겠습니다. 사기사카 남매의 가문 영향력이 경찰까지 미치고 있다면 모를까, 기껏해야 중학교 정도에 머물 뿐인데 말이지요.
또 앞서 복지센터 건립 반대 운동이 사건의 핵심이며, 이게 사기사카 마히토 아내 실종 사건과 연결되는 구조는 좋지만 이 이야기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한자와 마사카즈의 시체도 당연히 그곳에 묻었어야 합니다. 후미코가 출산 경험이 있으며 아기들은 모두 복지센터 자리에 묻혔을 것이라는 암시를 줄 정도면 더더욱 그러하죠. 지난 10년간 발견되지 않았다는 실적까지 뛰어나잖아요. 사체만 발견되지 않았다면 남매가 이후 쇼이치를 찾아나서는 것이 말이 되는 만큼,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서는 같은 방법으로 사체가 발견되지 않았어야 합니다.
그 외에도 허점이 너무 많습니다. 카페 '산책로'에서 사기사카가 구타당한 것, 그리고 그것을 '나'가 구해주는 묘사가 대표적입니다. 사기사카를 용의 선상에서 빼기 위한 치졸한 설정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후반부를 보면 엄청난 수의 조직원들을 동원할 수 있는 정도의 능력자 남매인데, 왜 혼자서 쇼이치를 찾으려고 무리를 하는지 설명도 부족합니다.
아베 미쓰코가 목숨을 걸고 쇼이치를 보호해 준 것도 설명이 부족한 것은 마찬가지에요. 게다가 며칠에 걸쳐 중요 참고인을 보호만 하고, 진상을 경찰에 알릴 생각을 하지 않은 이유도 불분명합니다.
마지막으로 결말 부분에서 사기사카 후미코가 나중에 폭주하여 모든 장애물을 파괴하는 묘사는 시원하기는 한데 역시나 설득력은 떨어집니다. 거구라고는 하지만 중년을 넘은 나이의 일반 여성을 성인 남성 여러 명이 어쩌지 못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너무 떨어집니다. 흉기를 들었다거나, 프로레슬러라는 설정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크리쳐 물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과한 묘사였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흥행작으로 인기를 끌 만한 요소는 많지만,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는 어렵네요. 세 번째 작품이라 아이디어나 좋았던 기세가 고갈된 탓일지도 모르겠는데, 주인공은 마음에 들었던 만큼 1편부터 찬찬히 읽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