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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28

비밀기지 만들기 - 오가타 다카히로 / 임윤정, 한누리 : 별점 2점

비밀기지 만들기 - 4점 오가타 다카히로 지음, 임윤정.한누리 옮김, 노리타케 그림/프로파간다

일본의 기지학회 회장이라는 건축가 오가타 다카히로의 저서로, 이런저런 독특한 책들을 내놓고 있는 출판사 프로파간다에서 출간되었습니다.
그동안 프로파간다에서 출간했던 책들을 몇 권 읽어보았었는데, 컨셉은 괜찮지만 정작 결과물은 여러모로 애매했었고 이 책 역시 딱 그렇습니다.

우선 주 독자층이 누구인지 불분명합니다. 어린 시절 비밀 기지를 만들어 본 적이 있거나 그러한 것을 동경하는 키덜트들인지, 아니면 여러 '비밀 기지'에 대해 상세하게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인지 모르겠어요.
첫 번째 독자층인 '키덜트'들을 위해서는 설문 조사를 통해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비밀 기지를 나름대로 분류하여 소개하는데, 내용만큼은 나쁘지 않습니다. 일러스트도 괜찮고요. 하지만 설명이 너무 빈약합니다. 아동용 그림책 수준의 내용에 불과합니다. 이 내용이 페이지를 너무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요.
저는 앞서 이야기한 독자층 중 후자에 가까운 독자이기에 실망이 더 컸습니다. 토관이라는 소재가 등장할 때마다 언급되는 "도라에몽"이라던가, 비밀 기지가 큰 역할을 차지하는 "20세기 소년" 등의 작품을 소개해 준다던가, 역시나 작중에서 언급된 대로 "스탠 바이 미"에서의 비밀 기지 장면을 보여준다던가 하는 식으로 동서고금의 역사와 다양한 콘텐츠에 등장했던 비밀 기지를 선보여 주기를 기대했는데 말이지요.

함께 수록된 전문가들을 위한 듯한 콘텐츠도 내용이 애매합니다. 예를 들어 플레이파크라는 공원 소개에 대한 칼럼은 비밀 기지가 아니라 새로운 놀이 공간?에 가까운 개념이라 책의 주제에는 적합치 않았으며, "건축가가 비밀기지 설계도를 그린다면"이라는 칼럼은 몇몇 실존하는 비밀 기지를 단순히 설계도로 옮긴 것에 불과합니다. 별다른 해석이 개입되어 있지도 않고요.
게다가 이런 식의 전문가적인 정보 제공 영역은 앞서 수록되어 있는, 설문조사를 통해 재현한 이이들의 비밀 기지와 비밀 기지에서의 활동이라는 판타지와는 너무 어울리지 않습니다. 두 개의 전혀 다른 책을 합친 느낌마저 들 정도에요. 이런 류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면 앞부분의 비밀 기지들도 전부 이런 도면, 실제 제작된 예시 사진과 함께 더욱 디테일하게, 정말 건축물 관련 글처럼 쓰는 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프로파간다의 전위적인 편집도 다른 책만큼 심하지는 않지만, 포스트잇 노란색 같은 용지는 그림과 글자는 괜찮더라도 사진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요소였으며, 뒤에 메모지 영역이 있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12,000원이라는 가격도 담긴 콘텐츠 내용에 비하면 과한 편이고요.

그나마 뒷부분의 "어른이 만드는 비밀 기지"와 편집부가 썼다는 "이야기 속의 비밀 기지"가 정보 제공이라는 제 의도에 조금이나마 부합합니다만, 문제는 이 부분을 다 합쳐도 10페이지가 될까 말까 하다는 점입니다. 일러스트와 몇몇 디테일도 좋았지만 대세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여러모로 추천하기는 어렵습니다. 키덜트를 위한 그림책으로 재편집하여 판매하는 것이 보다 낫지 않을까 싶네요.

2016/08/25

12전환점으로 읽는 제 2차 세계대전 - 필립 M.H. 벨 / 황의방 : 별점 3점

12전환점으로 읽는 제2차 세계대전 - 6점 필립 M. H. 벨 지음, 황의방 옮김/까치

추리소설만큼은 아니지만 역사와 전사, 특히 2차대전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제목만 보고 구입한 책입니다.

읽기 전에는 "12전환점"은 특정 전투들, 예를 들면 덩케르크 철수, 진주만, 미드웨이, 스탈린그라드, 노르망디, 아르덴 대공세 등을 의미하며, 이러한 전투들이 상세하게 소개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생각과는 조금 다르더군요. 훨씬 폭넓은 시각으로 2차대전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진주만, 미드웨이, 노르망디처럼 특정 전투가 언급되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 세 개 항목을 제외하면 보다 길고, 특정 전투라고는 보기 힘든 일련의 군사 행동들이 주로 소개됩니다. 독일이 분위기 좋았던 1940년 7~9월 사이의 영국 전투, U보트와 수송선, 호송선이 대결한 1943년 3~5월 사이의 대서양 결전, '바르바로사 작전'(독일의 소련 공격) 등 처럼요.

또 특이한 것은 '테헤란 회담'과 '얄타 회담'입니다. 사실 이 회담을 통해 폴란드의 주도권이 소련에게 넘어가는 등 이후 유럽의 질서가 재편되었기 때문에 그 중요성은 웬만한 전투보다 높지만, 전투가 아니기에 그동안의 2차대전 전사 관련 서적에서는 비중 있게 소개되지 않았었지요. 이러한 내용은 소개도 의미있지만, 심지어 재미있기까지 해서 놀랐습니다. 스탈린, 루즈벨트, 처칠 시점에서 각자 원하는 것을 확보하기 위해 벌였던 치열한 외교전은 전사 못지않다 생각되네요. 외교에 능한 스탈린, 스탈린과 친구가 되고 싶은 병약한 루즈벨트, 늙고 고집세지만 힘은 없는 처칠이라는 캐릭터도 확실해서 삼국지 군사들의 지략 싸움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고요.

연합국과 추축국은 각종 물자 생산력에서 큰 차이를 보였으며, 이것이 승패와 연결되었다는 "공장들의 전투"도 잘 알고 있던 내용이지만 디테일들을 명확한 숫자로 확실히 비교해 주고 있어서 이해가 쉬웠습니다.

아울러 이러한 전환점들이 어떻게 전환점이 되었는지도 각국별로 공평하게, 그리고 상세하게 소개해 줍니다. 일본의 항복을 다룬 "일본의 패배와 원자폭탄"에서는 미국이 원자폭탄을 사용한 이유—오키나와 상륙전에서 전사자가 너무 많아 본토 상륙을 주저하게 됨—와 일본이 항복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소련이 중재자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하고 항복을 미루었지만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소련의 선전포고와 진격, 두 번째 원자폭탄 투하 후 천황이 마음을 돌리는 부분과 항복 선언—이 공평하게 서술되는 식입니다. 편향된 시각이 아니며 각국의 상황을 상세하게 알 수 있던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다른 책에서 많이 접했던 내용도 제법 되며 가격도 비싼 편이지만, 나름의 독특한 점과 보다 넓은 시각으로 2차대전을 바라보는 데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추천작입니다.

2016/08/22

일러스트 칵테일북 - 오 스툴 / 황소영 : 별점 3점

일러스트 칵테일북 - 6점 오 스툴 지음, 황소영 옮김, 엘리자베스 그레이버 그림/봄엔

제목에 혹해서 충동구매한 책입니다. 저자는 실제 바를 운영했던 전문 칼럼리스트로, 58종의 칵테일에 대해 유래 및 간략한 관련 에피소드, 레시피일러스트와 함께 전해 줍니다. 7편의 짤막한 칼럼도 함께 수록되어 있고요.

160페이지 정도 분량에 페이지 디자인도 일러스트가 많이 좌우하고 있어서 깊이 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단점은 아닙니다. 짧지만 그만큼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특히 책의 독자를 '홈 바텐더'와 '아마추어'에게 맞추고 있어서 레시피, 도구 등에 대해 쏠쏠한 정보가 많은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집에 바 용품을 구입할 때 어떤 것을 구입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칼럼이 대표적입니다. 웨딩 파티에서 칵테일을 마시는 방법도 마찬가지에요. 버번 & 사과 주스, 데킬라 & 사과 주스 등 정말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의 조합으로 만드는 칵테일을 소개해 주거든요. 그 외의 레시피들 모두 집에서 쉽게 만들 수 있는 팁을 제공합니다. 참고로 저자가 추천하는 칵테일은 '네그로니'입니다. 맛있고 간단하기 때문으로 진, 스위트 베르무스, 캄파리를 동량으로 섞기만 하면 된다고 하는데 꼭 한번 만들어 보고 싶네요.

이러한 정보와 레시피 외에도 애주가들, 그리고 만화 "바텐더"를 재미있게 읽었던 사람이라면 흥미로울 만한 이야기도 제법 많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제가 좋아하는 '김렛'이 사람 이름이었다거나, 제임스 본드의 유명한 마티니 주문 방법은 엉터리였고 다니엘 크레이그의 "카지노 로열"에서야 비로소 '베스퍼'라는 진짜 칵테일이 등장했다는 것, 그리고 빌 맥코이라는 주류 밀매업자가 금주 시대에 진품만을 취급하여 좋은 평판을 쌓은 뒤 '리얼 맥코이'라는 표현이 생겨났다는 것 등이 그러합니다. "리얼 맥코이"라는 20년도 더 된 킴 베이싱어 주연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지는 정말이지 처음 알았네요.

아울러 엘리자베스 그레이버의 일러스트도 뛰어난 수준으로, 제목에 혹하기는 했지만 후회가 없을 정도로 멋진 그림들입니다. 이 정도면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아요.

물론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분량에 비하면 과하다 싶은 가격, 그리고 제본이 유선(?) 제본으로 되어 있어서 쉽게 펼쳐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살림 지식 총서'나 '시공 디스커버리 문고' 스타일로 제본하고 보다 저렴하게 출간하는게 나았을 거에요 일러스트 칵테일북 -  오 스툴 지음, 황소영 옮김, 엘리자베스 그레이버 그림/봄엔

제목에 혹해서 충동구매한 책입니다. 저자는 실제 바를 운영했던 술 전문 칼럼리스트로, 58종의 칵테일에 대해 유래 및 간략한 관련 에피소드, 레시피를 일러스트와 함께 전해 줍니다. 7편의 짤막한 칼럼도 함께 수록되어 있고요.

160페이지 정도 분량에 페이지 디자인도 일러스트가 많이 좌우하고 있어서 깊이 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단점은 아닙니다. 짧지만 그만큼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특히 책의 독자를 '홈 바텐더'와 '아마추어'에게 맞추고 있어서 레시피, 도구 등에 대해 쏠쏠한 정보가 많은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집에 바 용품을 구입할 때 어떤 것을 구입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칼럼이 대표적입니다. 웨딩 파티에서 칵테일을 마시는 방법도 마찬가지에요. 버번 & 사과 주스, 데킬라 & 사과 주스 등 정말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의 조합으로 만드는 칵테일을 소개해 주거든요. 그 외의 레시피들 모두 집에서 쉽게 만들 수 있는 팁을 제공합니다. 참고로 저자가 추천하는 칵테일은 '네그로니'입니다. 맛있고 간단하기 때문으로 진, 스위트 베르무스, 캄파리를 동량으로 섞기만 하면 된다고 하는데 꼭 한번 만들어 보고 싶네요.

이러한 정보와 레시피 외에도 애주가들, 그리고 만화 "바텐더"를 재미있게 읽었던 사람이라면 흥미로울 만한 이야기도 제법 많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제가 좋아하는 '김렛'이 사람 이름이었다거나, 제임스 본드의 유명한 마티니 주문 방법은 엉터리였고 다니엘 크레이그의 "카지노 로열"에서야 비로소 '베스퍼'라는 진짜 칵테일이 등장했다는 것, 그리고 빌 맥코이라는 주류 밀매업자가 금주 시대에 진품만을 취급하여 좋은 평판을 쌓은 뒤 '리얼 맥코이'라는 표현이 생겨났다는 것 등이 그러합니다. "리얼 맥코이"라는 20년도 더 된 킴 베이싱어 주연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지는 정말이지 처음 알았네요.

아울러 엘리자베스 그레이버의 일러스트도 뛰어난 수준으로, 제목에 혹하기는 했지만 후회가 없을 정도로 멋진 그림들입니다. 이 정도면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아요.

물론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분량에 비하면 과하다 싶은 가격, 그리고 제본이 유선(?) 제본으로 되어 있어서 쉽게 펼쳐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살림 지식 총서'나 '시공 디스커버리 문고' 스타일로 제본하고 보다 저렴하게 출간하는게 나았을 거에요. 비슷한 스타일의 시리즈로 묶어서 말이죠.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재미있게 읽었기에 만족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구입해서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리기는 애매한 부분이 없지 않으나, 애주가이자 독서가인 친구에게 선물하기 좋은 그런 책입니다.

이번 주말에는 이 책에 실린 대로 대충대충 제 맘대로의 '진 토닉'이나 한 잔 만들어 봐야겠습니다.

2016/08/20

용의 학교는 산 위에 - 구이 료코 / 김동주 : 별점 2점

용의 학교는 산 위에 - 4점
구이 료코 글.그림, 김동주 옮김/㈜소미미디어

"던전밥", "서랍 속 테라리움"의 작가 쿠이 료코의 단편집입니다. 전작들을 너무나 재미있게 읽었기에 출간 소식을 듣자마자 주저 없이 구입했습니다. 

"던전밥"보다는 "서랍 속 테라리움"과 같은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무척 실망스럽습니다. 9편이라는 수록 작품의 수에서 알 수 있는 것 처럼 긴 호흡의 단편들이 많지만,  "서랍 속 테라리움"만큼 기발하거나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 드문 탓입니다. 딱히 재미있지도 않고요.
예를 들자면 "대감산의 신부 찾기"는 전형적인 신화로 작가 특유의 변주가 거의 없습니다. 그나마 곤페이가 사실은 신이었다는 반전이 있기는 하지만, 설득력 있게 드러나지 않는 전개 탓에 별로 와닿지 않았고요.
"용의 학교는 산 위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용이 실재하지만 용의 실용성이 극도로 낮은 상황에서, 어떻게든 반전의 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용학부' 학생들 설정만큼은 그런대로 재미있습니다. 대학생들의 다양한 시행착오도 나쁘지는 않고요. 하지만 제대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지 않아서 아쉽습니다. 이런저런 노력은 모두 벽에 막힌 상태에서 "도움이 안 될지도 모르지만 간단히 포기하지 않겠다"는 부장의 말로 마무리되는 건 너무 급작스러웠거든요. 딱히 결말을 생각하지 않고 대충 얼버무린 느낌이 강하게 들 정도였어요.
그 외에 그림도 전작들에 미치지 못하며, 장르의 다양성이 부족한 것도 감점 요소입니다.

물론 용사가 피곤한 현실에 직면한 상황을 일상계처럼 담담하게 다룬 "귀향", 전형적인 진학 관련 청춘 로맨스인데 대상이 날개 달린 소녀라는 점에서 차별화되는 "진학 천사", 좀 뻔하지만 평균 이상은 되는 "쓰레기"처럼 기대에 부합하는 작품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별점은 2점입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 점과 분량에 비해 비싼 가격으로 감점합니다.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구태여 찾아 읽지 않으셔도됩니다.

2016/08/17

그림책 상상 그림책 여행 - 천상현, 김수정 : 별점 3점

그림책 상상 그림책 여행 - 6점
천상현.김수정 엮음/안그라픽스

국내 유일의 그림책 전문 계간지였던 "그림책 상상" 폐간 후, 수록되었던 특집 기사를 토대로 단행본으로 만든 책입니다. 그림책 강국인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일본, 러시아의 나라별 그림책 역사 및 유명 작가, 대표작 소개, 유명 출판사, 그림책 관련 어워드 소개가 이어지는 구성입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그림책 전문 서적이라는 점입니다. 그림책 관련 레퍼런스로는 감히 국내에 견줄 만한 콘텐츠가 없으리라 생각될 정도에요. 이 책 한 권이면 그림책의 역사는 물론 유명 작가와 작품에 대해 이해가 가능하니 과장된 찬사는 아닙니다. 읽으면서 딸아이를 위해 구입하고 읽어주었던 작품이 가끔 등장하는 것도 아주 반가왔고요.

그림책의 역사에 관심이 없다 하더라도 수록 작품들의 그림 수준이 워낙 빼어나기 때문에 26,000원이라는 부담스러운 가격임에도 본전 생각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이 자체가 일종의 '어른용 그림책'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안그라픽스' 출간 서적답게 책의 완성도도 높으며 인쇄의 질도 좋은 편이에요.

다만 이전 "시작, 그림책"에서도 지적했듯이 국내 그림책 시장과 현황에 대한 부분이 없다는 것은 단점입니다. 우리나라가 그림책 강국은 아닐지라도 전문 출판사도 있고 꾸준히 창작 그림책이 발표되고 있으며, 해외에서 인정받고 있는 작품도 나오고 있는 만큼 국내에서 출간된 그림책 전문 서적에서 당연히 언급해주었어야 하지 않나 싶은데 말이지요. 출판사나 작가들의 인터뷰도 해외보다 용이했으리라 생각되는데 왜 빠졌는지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소개된 작품들이 국내에 모두 출간되지 않은 것은 단점이라고 하기는 좀 뭐하지만 아쉽습니다.

그래도 단점보다는 장점이 압도적이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작가와 작품도 많은데 아래와 같습니다. 전부 국내 출간된 작품으로만 꼽아봅니다. 조금 시간이 나면 딸아이를 위해 발품(?) 좀 팔아봐야겠네요.

  • 존 버닝햄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
  • 올리버 제퍼스 "마음이 아플까봐"
  • 토미 웅거러 "세 강도"
  • 그레고와르 솔로타레프 "난 꼬마 토끼가 아니야!"
  • 필립 코랑텡 "풍덩!"
  • 먼로 리프 "꽃을 좋아하는 소 페르디난드"
  • 클라우스 엔지카트의 삽화들
  • 비네트 슈뢰더 "개구리 왕자"
  • 로트라우트 수잔네 베르너의 수잔네 사계절 시리즈
  • 크빈트 부흐홀츠 "책 그림책"
  • 완다 가그 "백만 마리 고양이", "투명 강아지 아무개의 마법"
  • 버지니아 리 버튼 "작은 집 이야기"
  • 레오 리오니 "프레드릭"
  • 크리스 반 알스버그 "해리스 버딕의 미스터리"
  • 피터 시스 "왕자와 매 맞는 아이", "생명의 나무"
  • 초 신타 "양배추 소년"
  • 안노 미쓰마사 "이상한 그림책", "여행 그림책"

2016/08/14

시작, 그림책 - 도이 아키후미 / 김민지 : 별점 2점

시작, 그림책 - 4점 도이 아키후미 지음, 김민지 옮김/안그라픽스

제목 그대로 그림책을 만들기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입니다. 

최근 몇 년간 딸아이를 위해 그림책을 많이 읽어주었는데, 그러면서 그림도 좋고 아이디어도 재미난 책들이 많다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한 번 쯤 도전하고 싶은 생각이 들던 차에, 마침 좋은 기회가 되어 읽게 되었네요.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1. 그림책이란 무엇일까 : 제목 그대로 그림책에 대한 정의와 종류, 각 종류별 대표 그림책이 소개됩니다.
  2. 책 만들기의 기본 지식 : 책의 각 부분별 명칭이라든가 종이의 크기, 면지 및 인쇄에 대해 설명해 줍니다.
  3. 실제 그림책 만들기 : 실제로 그림책을 만드는 과정이 상세한 예와 함께 소개됩니다.
  4. 다섯 작가 이야기 : 유명 그림책 작가 5인의 인터뷰
  5. 그림책 워크숍 : 저자가 주관하는 듯한 톰즈박스라는 그림책 워크숍과 그 워크숍을 통해 그림책을 출간한 김민지 씨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6. 그림책 출판 : 실제로 그림책을 출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실무자 관점으로 설명해 줍니다.

이 중 가장 유용하고 재미있던 부분은 3번인 '실제 그림책 만들기'입니다. 직접 경험하지 못하면 알지 못했을 그림책 만드는 방법론이 정말로 자세히 소개되기 때문입니다. 몇몇 실제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단계별 — 스토리보드, 러프 스케치, 원화 그리기, 표지 그리기 등 — 로 제대로 보여주거든요.

책에서 소개해주는 여러 가지 그림책들도 아주 인상적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사사키 마키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여러모로 괜찮은 듯싶어요. 국내에 몇 작품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문제도 많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책의 내용이 '일본에서 그림책을 만드는 법'이라는 것이죠. 디테일한 제작 방법이야 국가를 불문하고 동일할 수 있습니다. 허나 출판사와 만난다든가, 작가로 활동을 시작하는 부분은 많이 다르겠지요. 이 부분은 국내 기준의 보충 설명이 반드시 필요했는데 전무합니다.

또 그림책을 만드는 작가를 위한 그림 그리는 방법론, 글을 쓰는 방법론은 잠깐 건드리고 마는 수준이라는 것도 아쉽습니다. 상세하게 소개되는 그림책 제작 방법론과 비교하면 실망스러운 수준이에요. 물론 방법론이 이 책에서 알려주는 것처럼 '즐거운 마음, 기쁜 마음으로 만들어라, 아이들이 읽는다는 것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 정도가 전부라면야 어쩔 수 없겠지만, 그렇다면 이런 능력을 키우기 위한 설명은 해 줘야 했습니다.

독자에 대한 고려와 배려도 부족합니다. 소개된 그림책들 모두 일본 출판물 기준인데 국내 출간된 책에 대해 별도로 표기해 주지 않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이전에 읽었던 "책장의 정석"과 심히 비교되네요. 책 소개가 병행되는 책들의 경우 대부분 지원해 주는데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습니다. 소개된 책과 소개된 페이지에 대한 설명 및 번역이 전무하다는 것 역시 배려의 문제로 보이고요.

문체 역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림책을 읽는 듯한, 조금 낮은 연령대를 위한 글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림책 만드는 법에 대해 썼다 하더라도 이 책이 그림책은 아닌데 왜 이렇게 썼는지 도무지 모르겠네요. 원서가 이런 문체인지 확인하고 싶을 정도예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보기 드문 그림책 저작에 대한 책이라는 독특함은 좋지만 디테일한 부분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해 감점합니다. 문고본이라면 모를까, 22,000원이나 되는 책으로는 많이 부족했어요. 동화책을 만들기는 정말 어렵구나! 라는 것을 느낀 것이 유일한 수확이랄까요? 그냥 딸아이하고 둘이서만 즐길 수 있는 소소한 이야기와 소소한 그림으로 저는 만족하렵니다.

2016/08/11

스누피 : 더 피너츠 무비 (2015) - 스티브 마르티노 : 별점 3점

동네에 새로 이사온 빨간 머리 소녀에게 첫 눈에 반한 찰리 브라운은 그녀의 호감을 사기 위해 장기자랑 대회, 댄스 파티, 독후감 쓰기 등에 정열을 불태우지만 모두 실패하는데...

오랫만에 돌아온 피너츠 무비입니다. 피너츠 완전판도 착실히 구입하고 있는 팬이라 도저히 안 볼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 주말 딸과 함께 감상했습니다.

극장판답게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등장하고, 다양한 이벤트가 펼쳐져서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게 큰 장점입니다. 스누피의 활약도 대단해서 찰리 브라운의 거의 하나뿐인 유일한 친구이자 조력자로, 그리고 사랑하는 피피를 위해 붉은 남작과 대결하는 액션씬까지 소화합니다. 치명적일 정도로 귀여운건 물론이고요!

아울러 최신작답게 3D지만 그냥 깔끔하게 떨어지는 3D는 아닙니다. 클레이 같은 질감과 효과, 후처리를 통해 원작의 느낌을 잘 살리고 있습니다. 제 딸은 클레이로 만든 것으로 확신할 정도로 놀라운 수준이었어요.

내용도 마음에 듭니다. 찰리 브라운의 노력은 여러 가지 이유로 — 장기자랑에서는 동생 샐리를 위해 희생, 댄스 파티는 마지막 순간에 스프링쿨러를 터뜨리는 사고 발생, 독후감은 제출 전에 산산조각이 남 — 무위에 그치고, 오히려 학력고사에서 만점을 받은 이유가 실수로 패티의 답안지에 본인 이름을 쓴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고백하여 잠깐 누렸던 인기까지 사라지지만, 그래도 찰리 브라운은 꾸준히,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절대 좌절하지 않고요. 독후감을 쓰기 위해 "전쟁과 평화"를 독파하는 장면이 그중에서도 압권이죠. 덕분에 결국 친구들도 찰리 브라운을 인정하게 되는 마지막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그동안의 찰리 브라운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눈물이 핑 돌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렸을 적 국내 방송에서 피너츠 옛날 영화판을 방영해 준 적이 있는데 그때 보았던 빨간 머리 소녀가 등장하는 에피소드와는 조금 다르더군요. 우여곡절 끝에 빨간 머리 소녀를 찾아가지만 초인종을 누를 용기가 없어 라이너스에게 부탁하고, 라이너스를 만난 소녀는 라이너스처럼 담요를 들고 있어서 둘이 엮인다는 내용으로 기억되거든요. 사랑하는 여인에게 편지를 100통 썼는데 그 여인은 우편 배달부와 결혼했다는 고사(?)가 떠오르는 그런 이야기였는데 전혀 다른 내용이라 조금 의외이긴 했습니다.

하여튼 별점은 3점입니다. 굉장히 즐겁게, 재미있게 감상했습니다. 제 딸도 무척 좋아했고요. 흥행에 그다지 성공하지는 못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도 후속작이 나와주면 참 좋겠습니다.

2016/08/09

사쿠라코 씨의 발밑에는 시체가 묻혀 있다 1 - 오타 시오리 / 박춘상 : 별점 1.5점

사쿠라코 씨의 발밑에는 시체가 묻혀 있다 1 - 4점
오타 시오리 지음, 박춘상 옮김/디앤씨북스(D&CBooks)

소설 리뷰를 하면서 별점을 주는 데에는 나름의 기준이 있습니다. 캐릭터가 얼마나 매력이 있는지, 이야기는 재미가 있는지, 묘사를 비롯한 전체적인 완성도와 설득력, 독특한 아이디어가 있는지, 그 외의 다른 가치가 있는지 등을 놓고 검토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기준으로 볼 때 이 작품은 점수를 줄 부분이 거의 없습니다.

전통적인 양갓집 아가씨로 엄청난 미인이지만 별난 성격에 "뼈"에 집착한다는 설정의 탐정역인 사쿠라코 씨 캐릭터부터 별로입니다.
양갓집 미인 아가씨라는 것은 진부함의 극치, 그리고 별난 성격은 도가 지나쳐 거북합니다. 누구를 대하더라도 반말조에, 상대방을 위한 배려 등 최소한의 예절도 갖추지 않아서 호감을 갖기 어려운 탓입니다. 만화에서 봄직한, 외계에서 와서 지구 습관을 잘 모르는 미녀 외계인 캐릭터 같은데 만화라면 모를까 현실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어요. 왜 이런 성격이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전무하고요.
탐정이 건방진건 문제가 아닙니다. 고전 본격물 황금기의 명탐정들은 대체로 잘난 척 대마왕들이기도 했으니까요. 허나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실력, 지위, 실적이 그들의 건방짐을 뒷받침했고, 아무에게나 무례하게 대하지는 않았습니다. 실력, 지위, 실적 중 그 무엇도 갖추지 못하고 그냥 건방지기만 한 사쿠라코 씨는 인간 말종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아서 혐오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사건에 엮이는 원인이 되는 "뼈"에 대한 집착도 문제입니다. 진부함을 타개하기 위한 작가의 노력은 눈물겹지만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이야기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도 못하고요. 왜 이렇게까지 독특함에 집착했는지 알 수 없지만, 차라리 진부하더라도 뼈와 연관이 있는 전문 직종을 엮는 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이렇듯 캐릭터 문제가 너무 심각해서 이야기가 대단히 재미있지 않다면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든데, 재미 역시 합격점을 주기 어렵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별볼일 없고요. 세 편 모두 정교함이나 트릭이 돋보이지도 않고 억지가 너무 심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특이한 점이라면 북일본 아사히카와라는 독특한 지역을 무대로 그곳의 지형이라던가 명소, 특산물 등에 대한 묘사가 이루어진다는 정도인데, 딱히 중요한 부분은 아닙니다. 그냥 지엽적인 묘사에 그칠 뿐이거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라이트*캐릭터*미스터리*읽는 재미'라는 취지로 디앤씨북스에서 나온 시리즈 중 하나인데, 이 중 라이트(가볍게 읽을 만하다는 정도?) 외에는 해당되는 게 없네요. 사쿠라코 씨 신상에 뭔가 변화가 있을 것 같은 암시를 주는 등 노골적으로 시리즈임을 드러내지만, 후속작을 읽을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추리물을 좋아하시는 애호가라면 근처에도 가지 마시고, 제 덕분에 지뢰 하나 피했다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수록작별 상세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합니다. 제 리뷰를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이 책을 읽으시리라 생각은 되지 않지만요.


"아름다운 사람"

화자인 나는 사쿠라코 씨의 호출로 그녀를 찾았다. 그녀가 가자미 뼈를 선물하는 와중에 화자 어머니의 전화가 걸려왔다. 여러 채의 임대 주택을 운영하는 어머니가 연락이 두절된 입주자 방문을 여는데, 입회해 달라는 부탁 전화였다. 내용을 전해들은 사쿠라코 씨는 자신이 사체 전문가라며 동행을 요구했고, 일행은 입주자 미즈시마 키요미의 방문을 열어 그녀의 사체를 발견했다. 그런데 방은 완벽하게 밀폐된 상태였다...

사쿠라코 씨와 주인공 소개와 함께 이야기가 펼쳐지는 시리즈 첫 작품입니다. 

밀실을 만드는 것은 제삼자가 개입했다는 사실을 지우기 위해서로, 얼핏 보아도 살인 사건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밀실을 꾸며야 할 이유는 없다는 사쿠라코 씨의 이론만큼은 그럴싸합니다. 

그러나 이 이론은 20여 년 전 "nervous breakdown"에서 이미 접했던 것이라 신선하지는 않습니다. 그 외의 추리적인 내용은 거의 모두 억지스러웠고요. 우선 피해자의 동생 요시미와 피해자의 약혼자 하시구치가 불륜 관계였다는 것을 밝히는 추리부터 억지입니다. 언니의 죽음을 접하고 예비 형부에게 안겨 우는 것이 뭐 그리 이상한 일일까요? 요시미의 스타일을 언급하는 것도 불필요했고요.
또 피해자가 독초 열매를 따먹고 죽은 것이라는 진상은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약사가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식물원까지 가서 열매를 몰래 따는 수고를 감행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극심한 고통도 예상되고, 사후 동공 확장 등으로 아트로핀 과다 섭취가 충분히 의심될 수 있어서 진상을 숨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고통 때문에 방이 어질러졌다는 상황을 만들기 위함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작위적이며 설득력이 낮아요.

때문에 별점은 1.5점입니다. 캐릭터, 내용, 추리 모두 수준 이하로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이 없네요.

"머리"

사쿠라코 씨의 "뼈 줍기"에 동행한 나는 마시케 초로 향했다. 해변에서 사람 두개골의 일부를 발견한 나는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 야마지 씨로부터 동반 자살 시체가 발견되었다는걸 들은 사쿠라코 씨는 잠깐만 사체를 보게 해 줄 것을 부탁했고, 잠깐의 관찰로 사건의 진상을 알려주는데...

오른손잡이가 오른손을 묶은 이유, 보우라인 매듭이라는 독특한 매듭을 사용한 것과 매듭의 위치 정도의 단서로 자살이 아니라 타살임을 주장한다는 내용입니다.

추리만 놓고 보면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연히 발견된 변사체에 대한 추리를 펼치는 것이기에 사건성이 있다기보다는 그냥 '여흥'에 불과하다는게 아쉽네요. 매듭을 묶은 손, 매듭의 위치 등 매듭 관련 추리는 이전의 많은 작품에서 반복된 것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주지도 못하고요.

이 추리보다는 차라리 우연히 발견한 반려동물의 사체를 주인에게 가져다 주며 펼치는 추리가 더 괜찮습니다. 왜 사체가 정류장 지붕 위에 있었는지, 사인이 무엇인지 등을 담담하게 설명하는데 설득력이 아주 높아요. 이 이야기만 가지고 일상계처럼 푸는 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이렇게 본편 이야기보다는 곁다리 이야기, 그리고 마시케 초의 먹거리(단새우 등)에 대한 소개가 더욱 돋보였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그나마 수록작 중에서는 베스트네요.

"장미 나무 아래"

나와 사쿠라코 씨는 사쿠라코 씨의 지인인 장미원 운영자 쇼코 씨의 저택으로 향했다. 병문안을 위한 장미꽃을 얻기 위해서였다. 쇼코 씨의 부탁으로 저택에서 진행되는 강령회에 참석한 둘은, 강령회에서 영매를 통해 쇼코 씨의 죽은 남편 아키히토 씨가 사실은 살해당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아... 뭐라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총체적 난국인 작품입니다. '강령회'라는 주요 설정부터가 그러합니다. 이게 현대 일본에서 가당키나 한 것일까요? 게다가 강령회를 이용하여 사기극을 벌인 이유가 사실은 피해자와 동성애 관계였다, 그것을 찍은 은밀한 비디오가 있었다는 진상은 어이를 상실케 만듭니다. 잘나가는 기업가, 정치가, 신부 등이 엮인 단체 동성애 그룹이라니 이거 참 소라넷을 능가하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 아닌가 싶네요. 그 외 영매를 가장한 요크 신부의 몇 가지 사기극은 너무나 유치했고요.

현실적이지도 않고, 설득력도 없고, 추리적으로도 뭐 하나 내세울 게 없는 이야기로 별점은 0.5점입니다. 이 시리즈를 다시 볼 이유가 없게 만들었다는 것이 유일한 가치라 할 수 있습니다.

2016/08/05

제라르 준장의 회상 - 아서 코난 도일 / 김상훈 : 별점 3.5점

제라르 준장의 회상 - 6점
아서 코난 도일 지음, 김상훈 옮김/북스피어

나폴레옹 휘하에서 싸웠던 제라르 준장의 소싯적 모험담이 수록된 연작 단편집입니다. 모두 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셜록 홈즈의 아버지 코난 도일 경의 작품으로 "코난 도일을 읽는 밤"에서 마이클 더다가 극찬했던 탓에 관심을 갖던 작품인데, 얼마 전 국내에 정식으로 번역 출간되어서 여름 휴가 기간을 이용하여 읽어보았습니다.

읽어보니 확실히 극찬받을 만하더군요! 발표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읽는 재미만큼은 정말 발군이었던 덕분입니다. 준장의 생명을 건 모험들의 긴박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 손에 땀을 쥐고 읽었습니다.
여섯 명의 펜싱 사범과 결투를 벌였다는 식의 허세 끼 있으면서도, 황제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과 여성들에게 한없이 관대한 매너를 보여주는 제라르 준장도 아주 매력적이고요. 시기적으로 본다면 얼마 전 읽은 "내 방 여행하는 법"의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가 떠오르는데, 허세는 동급이더라도 유머 감각은 월등합니다. 그래서 모험담도 전반적으로 유쾌해요. 잘난 척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유쾌한 친구인 셈이지요.

아울러 역사 모험물답게 나폴레옹, 네 원수, 탈레랑, 워털루 장군, 뮈라 원수 등 다양한 실존 인물들과 실제 전쟁이 벌어졌던 곳들이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도 좋습니다. 군복을 비롯한 여러 세세한 디테일들과 전투 장면의 묘사 역시 큰 볼거리에요.

결론적으로 추천작으로 별점은 3.5점입니다. 약간 시대는 다르지만 "스카라무슈""삼총사", "몽테크리스토 백작"과 비교할 만한 좋은 작품입니다. 후속작도 빨리 읽어보고 싶네요. "잃어버린 세계"로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도일 경은 추리물뿐 아니라 모험물에도 확실히 대단한 역량을 보여주는 작가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프랑스 군인의 이야기를 영국 작가가 이렇게나 실감나게 쓴 것도 정말이지 놀라와요. 영국 군인을 지나치게 영웅시하지 않은 것도 신기했습니다.

각 단편별 간략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제라르 준장, 음울한 성으로 가다"

1807년 2월, 제라르 중위는 연대 본부에 출두하던 중 우연히 경기병 연대 순찰대를 만났다. 순찰대의 지휘관 뒤로크 소위는 아버지의 원수 슈트라우벤탈 남작에 대한 복수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둘은 남작의 계략으로 성에 갇혀버리는데...

제라르 준장의 회고에서 시작되는 모험담의 첫 이야기입니다. 나이 지긋한 인물의 1인칭 방백에서, 본 이야기는 3인칭의 소설로 전환되는 구조인데 예전 "샘 호손의 사건부"와 같은 방식입니다. 이야기의 현실성을 높이는데에는 아주 좋은 방법이라 생각되네요.

시리즈의 시작으로 나무랄 데 없습니다. 지하에 갇힌 후 탈출하는 과정, 그 와중에 남작을 중오하는 의붓딸의 도움, 그리고 남작과의 최후의 결투와 완벽한 해피엔딩 등 모험물로서의 재미를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라르 준장의 캐릭터가 뚜렷하게 각인될 뿐 아니라, 사악한 남작의 캐릭터도 잘 살아 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제라르 준장, 아작시오의 자객들을 처단하다"

1807년, 제라르 중위는 퐁텐블로 궁에서 나폴레옹 황제의 밀명을 받았다. 밤 10시에 황제와 함께 어떤 사내들을 상대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폴레옹이 코르시카에서 '아작시오 형제단'이라는 단체에 가입했었는데, 그 단체로부터 협박을 받는다는 설정입니다.

그런데 나폴레옹이 등장하는 팩션적 요소 외에는 딱히 눈에 띄는 부분은 없습니다. 황제가 암살될 수 있다는 긴장감이 핵심인데, 이미 결과(암살 실패)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별다른 재미를 주기 어려운 탓입니다. 검술로는 상대도 안 되는 두 명의 자객과 대결하는게 모험의 전부이기도 하고요.

물론 나폴레옹을 위장한 일종의 가게무샤가 대신 죽었다는 약간의 반전, 그리고 제라르가 궁을 나갈 때 처음 들어올 때와 똑같은 인간이 되어서, 즉 모든 걸 잊고  나가겠다고 하자 나폴레옹이 한 답변 — "그럴 수는 없을걸, 그때 자넨 중위였으니까 말이야. 이제 가서 푹 쉬게, 제라르 대위" — 등 재치 있는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단점이 더 크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제라르 준장, 왕을 잡다"

1810년, 부상으로 후방에 머무르던 제라르 대령은 연대 복귀를 위해 산을 넘다가 게릴라들에게 사로잡혔다. 잔혹한 게릴라 엘 쿠치요에게 사지가 찢길 뻔했던 제라르를 구해준 건 우연히 근처를 지나던 영국군 용기병대였다.
용기병대의 지휘관 바트와 친해진 제라르는 그와 카드 게임 '에카르테'를 벌여 당당하게 탈출할걸 계획하는데...

산적에게 습격받았다가 영국군에 사로잡히고, 마지막에는 웰링턴 장군까지 나오는 드라마틱한 구성이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제라르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위기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스페인 산적들의 묘사도 생동감 넘치며, 프랑스인이 영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들, 카드 게임의 박진감 등 모든 요소 하나하나가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고요. 에카르테를 프랑스 전체를 뒤져 자기보다 잘하는 사람이 세 사람이나 될까라는 식의 귀여운 허세도 여전합니다.

마지막 웰링턴의 한마디도 인상적입니다. 급작스럽게 나타난 웰링턴에게 제라르가 하는 말 — "내가 카드 게임에서 이겼다, 약속대로 자유를 달라, 자신은 킹을 잡고 있다" — 에 대한 답변으로 웰링턴이 "자넨 우리 킹에게 잡혔거든" 이라고 하는 장면은 영국적이면서도 재치 있더라고요.

모험물로도 재미있고, 팩션으로도 괜찮은 작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왕, 제라르 준장을 잡다"

1810년, 다트무어 감옥에 수감된 제라르는 탈출을 감행했다.

"몽테크리스토 백작"까지는 아니지만 나름 치밀한 탈출 — 창의 철봉을 뽑고, 벽돌을 빼낸 후 이중 벽을 철봉에 침대보로 만든 밧줄을 묶어 넘음 — 도 재미있지만, 탈출 후 이야기가 훨씬 재미있습니다.
우선 찰스 메러디스의 마차를 우연히 만난 후 그의 외투를 훔칩니다. 그러나 그 사이 바람의 방향이 바뀐 것을 몰라서 왔던 길을 되돌아와 다시 형무소 근처에 오고 말지요. 기지를 발휘하여 자신이 말한 방향과 반대로 향했지만, 영국 복싱 챔피언 브리스톨 버슬러를 만나 격투를 벌인 끝에 사로잡힌다는 좌충우돌 행각이 정말 흥미진진한 덕분이에요.
메레디스의 편지로 풀려난다는 반전도 아주 기막히며, 이 와중에 편지를 끝까지 읽지 않는 기사도 정신도 반짝반짝 빛납니다. 메레디스 부인과 나누는 농짓거리도 인상적이었고요.

한마디로 탈출기로서도, 모험담으로서도 빼어난 수작입니다. 제 별점은 4점입니다.

"제라르 준장, 밀플뢰르 원수와 맞서다"

1810년, 마세나 원수는 제라르 대령에게 탈주병 출신으로 엄청난 세력의 산적 집단을 만든 밀플뢰르 원수 타도 및 그가 사로잡은 부유한 백작 부인을 구해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부하들과 산적의 근거지로 향하던 제라르는 도중에 영국군을 만났다. 다행히 지휘관이 친분이 있던 바트이며, 그도 같은 명령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공동 작전을 펼치기로 했다. 그러나 산적의 근거지인 수도원은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마침 그 수도원에서 쫓겨났다는 수도원장의 말을 듣고, 패잔병을 가장하여 잠입할 것을 모의하는데...

일단 바트의 재등장은 반가웠고 수도원장의 정체가 밀플뢰르 원수였다, 그리고 백작 부인은 원수에게 푹 빠져버렸다!는 반전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허나 중간에 제라르의 목숨을 노릴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는 등 전개 면에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영국군을 사로잡은 방법과 똑같이 아침에 제라르를 유인하여 프랑스 군도 일망타진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지요. 방심을 노렸다 치더라도 밀플뢰르 원수가 직접 나설 이유는 당연히 없습니다. 또 반가운 캐릭터였던 바트가 전사한다는 내용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여러모로 제라르보다는 밀플뢰르가 더욱 주인공에 가까운 일종의 안티 히어로물로 보는 게 타당할 듯싶네요. 결국 밀플뢰르가 승리하는 결말 역시 그러하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제라르 준장, 왕국을 걸고 도박을 하다"

1812년, 프랑스는 러시아 원정에서 패배한 후 괴멸적 상황에 빠졌다. 때문에 제라르 대령은 프랑스로 복귀하여 부대를 재건할 것을 명받았다.

독일을 가로질러 귀국하는 와중에 제라르는 항상 프랑스와 친밀했던 분위기가 바뀐 것을 눈치챘고, 협력자를 통해 곳곳에 표시된 기묘한 "T"자 마크의 정체를 알아냈다. 그것은 프로이센 상류층의 비밀 결사 투겐트분트의 표식이었다. 

그리고 제라르는 죽어가는 군위대 장교 아르노 후작을 만나 황제의 밀서를 건네받았다. 그의 마지막 부탁은 호프성의 작스-펠슈타인 대공에게 밀서를 전해 독일이 황제에게 거역하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실패, 그리고 전 유럽이 나폴레옹에게 거역하는 상황의 한가운데 놓인 제라르의 모험이 펼쳐진다는 점에서 팩션 느낌이 강합니다. 하지만 실상 모험이랄 것은 대단치 않습니다. 대공을 찾아가 이야기하는 게 거의 전부인 탓입니다.

제라르가 팔로타 백작부인을 자칭한 대공비에게 서류를 뺏기는 과정, 궁지에 몰려도 최후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역사를 거스르지 못하는 제라르의 실패만큼은 인상적이지만 아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제라르 준장, 훈장을 타다"

준장이 된 제라르는 전우 샤르팡티에 소령과 함께 나폴레옹의 부름을 받았다. 황제는 당면한 작전 내용과 밀서를 스페인 국왕인 자기 형에게 전하라고 명령한 후, 친히 경로까지 정해 주었다. 하지만 그 경로는 프로이센 군 등에 이미 점령당한 상태였다. 제라르는 사로잡힐 위기에 처하지만 기지를 발휘해 탈출하여 명령을 완수하는데...

태사자가 홀로 북해성 밖의 원군을 청하는 것과 같은, 혈혈단신으로 적진 한복판을 가로지른다는 화끈한 모험이 펼쳐집니다. 태사자처럼 제라르의 기지도 돋보입니다. 시장 저택에서 벌어지는 프랑스군 - 프로이센군 전투, 그리고 이후 프로이센 군에게 다시 점령된 상황에서 코사크 장교 부트킨 백작을 속여 탈출하는 과정은 정말 기가 막히거든요.

게다가 황제의 의도는 그들이 사로잡히게 만들어 거짓 정보를 적에게 노출시키려 했다는 것, 그래서 황제는 사로잡힌 샤르팡티에게 레지옹도뇌르를 수여하고 제라르에게는 특별 명예 훈장을 수여한다는 결말까지도 완벽합니다. "저 친구는 우리 군에서 최악의 돌대가리일지도 모르지만 가장 용감한 군인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니까 말이야."라는 말과 함께요. 그 말 정말이지 정확합니다! 아무래도 제라르는 주어진 명령을 수행하기 위한 머리는 타고났지만 좀 더 큰 그림은 볼 줄 모르는 인물인 것 같아요.

여튼 별점은 4점. 모험도 화끈하고 결말까지 완벽하니 더할 나위 없습니다.

"제라르 준장, 악마의 유혹을 받다"

나폴레옹 군대의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제라르 준장은 프랑스 군 내에서 최고의 용사로 알려진 다른 전우 2명과 함께 베르티에 원수의 호출을 받았다. 그는 나폴레옹을 적군에 넘기자고 제안했다. 3명 모두 분노와 함께 제안을 거절했지만, 직후 황제가 나타나 그들을 시험했다며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그것은 그의 후계자를 증명하는 서류와 4천만 프랑에 해당하는 증권을 숨겨 놓는 것이었다.

그러나 탈레랑의 지시를 받은 악당들에게 서류를 빼앗겼고,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건 추격과 격투를 벌이게 되는데...

이 단편집의 아쉽지만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마지막답게 황제 나폴레옹의 최후를 다루고 있습니다.

세인트헬레나에서 나폴레옹이 단 한통의 편지를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는 도입부로부터 그 편지의 내용이 무엇이었을지 밝히는 전개는 괜찮습니다. 허나 무려 전우 2명이 죽었음에도 대단한 모험으로 보기는 힘듭니다. 그리고 이 임무를 성공하더라도 나폴레옹에게 내일이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기에 좀 맥이 빠고요. 나폴레옹 2세는 결국 한 게 아무것도 없을 뿐더러 이 서류들이 그의 존재를 어떻게 한 건 아니니까요.

결론적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한 이야기였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16/08/03

그래도 마을은 돌아간다 1~10 - 이시구로 마사카즈 : 별점 3점

그래도 마을은 돌아간다 10 - 6점 이시구로 마사카즈 지음/서울문화사(만화)

"탐정 훈령 하나! 사람을 보이는 걸로 판단하는 녀석은 탐정 실격이다!"

아 더워라...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할 정도로 더운 날씨네요. 책이 손에 잘 안 잡힐 정도로요. 그러다가 여름 휴가를 맞아 몰아쳐 본 만화입니다.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정발이 띄엄띄엄이라 중간에 흥미를 잃었었지요.

그런데 읽지 않았더라면 크게 후회할 뻔 했습니다. 단순히 일상계 개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추리물'의 성격도 강하고 수준 또한 높은 덕분입니다. 확실히 "외천루"의 센스가 그냥 나온 것은 아니더라고요. 온천 여행을 갔다가 술 취한 호토리와 타츠노 방에 갇힌 사나다의 탈출 작전, 사나다의 추억 속 국수 찾기, 설녀가 찾는 남자의 정체, 호토리의 외가댁에서 일어난 수로가 넘친 이유 등 일상 속에 추리 속성을 녹인 일상계 에피소드들이 특히 좋았습니다. 그냥 보면 별거 아닌데 묘하게 추리를 포함시키는 전개는 이게 바로 궁극의 일상계가 아닐까 싶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보물찾기 이야기, 학교 불가사의 탐험이라든가 호토리가 의뢰를 받아 사건을 해결한다는 전통적인 추리물도 좋습니다. 제법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안락의자 탐정' 스타일의 작품들도 괜찮고요.

다른 장르문학 속성(호러, SF 등) 작품들도 기본 이상이며, 의외로 진지한 이야기들도 상당합니다. "사람은 추억이 뭉쳐진 거다. 추억이란 엄청 크다. 그렇게 커다란데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가끔 추억이 늘어가는 것이 벅차다."라는 생각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지요. 작가의 스펙트럼이 정말 광범위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네요.

그 외에도 미스터리 마니아인 호토리가 새 책을 읽기 전 하는 행동들 - 추천문에 선입관을 갖지 않도록 띠지를 벗기고, 스토리의 흐름을 인식할 수 없게 차례를 건너뛰고 표지로 감싼다 - 라든가, 추리 작가 '카도이시 우메카즈'이기도 한 시즈카 언니가 호토리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평가받고자 한다는 에피소드도 인상적입니다. 추리 애호가로서, 창작자로서 한번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였던 것 같네요.

아울러 이를 뒷받침하는 꼼꼼한 작화 역시 볼거리입니다. "외천루"보다 디테일한 묘사들을 선보이는데 실력이 범상치 않습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제대로 완결되지 않는 에피소드들도 있고 너무 뻔한 청춘물 스타일의 이야기들로 조금 감점하지만 장점은 확실합니다.

그런데 확실히 국내 시장에서 잘 먹힐만한 내용은 아니에요. 일상계 학원 개그물로는 그럭저럭한 수준이지만 그 외의 에피소드들은 그 쪽 분야의 소양이 없다면 완벽하게 즐기기 어려운, 조금 매니아 취향의 이야기들이 많은 탓입니다. 물론 저는 재미있게 읽었지만 적극 추천하기는 여러모로 애매하네요. 이왕지사 잘 팔리지 않는다면 추리 에피소드만 뽑아서 별도의 애장판으로 재발매해주면 어떨까요? 아예 추리물로 홍보하면서 말이죠. 아니, 제발 그래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