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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28

비밀기지 만들기 - 오가타 다카히로 / 임윤정, 한누리 : 별점 2점

비밀기지 만들기 - 4점 오가타 다카히로 지음, 임윤정.한누리 옮김, 노리타케 그림/프로파간다

일본의 기지학회 회장이라는 건축가 오가타 다카히로의 저서로, 이런저런 독특한 책들을 내놓고 있는 출판사 프로파간다에서 출간되었습니다.
그동안 프로파간다에서 출간했던 책들을 몇 권 읽어보았었는데, 컨셉은 괜찮지만 정작 결과물은 여러모로 애매했었고 이 책 역시 딱 그렇습니다.

우선 주 독자층이 누구인지 불분명합니다. 어린 시절 비밀 기지를 만들어 본 적이 있거나 그러한 것을 동경하는 키덜트들인지, 아니면 여러 '비밀 기지'에 대해 상세하게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인지 모르겠어요.
첫 번째 독자층인 '키덜트'들을 위해서는 설문 조사를 통해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비밀 기지를 나름대로 분류하여 소개하는데, 내용만큼은 나쁘지 않습니다. 일러스트도 괜찮고요. 하지만 설명이 너무 빈약합니다. 아동용 그림책 수준의 내용에 불과합니다. 이 내용이 페이지를 너무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요.
저는 앞서 이야기한 독자층 중 후자에 가까운 독자이기에 실망이 더 컸습니다. 토관이라는 소재가 등장할 때마다 언급되는 "도라에몽"이라던가, 비밀 기지가 큰 역할을 차지하는 "20세기 소년" 등의 작품을 소개해 준다던가, 역시나 작중에서 언급된 대로 "스탠 바이 미"에서의 비밀 기지 장면을 보여준다던가 하는 식으로 동서고금의 역사와 다양한 콘텐츠에 등장했던 비밀 기지를 선보여 주기를 기대했는데 말이지요.

함께 수록된 전문가들을 위한 듯한 콘텐츠도 내용이 애매합니다. 예를 들어 플레이파크라는 공원 소개에 대한 칼럼은 비밀 기지가 아니라 새로운 놀이 공간?에 가까운 개념이라 책의 주제에는 적합치 않았으며, "건축가가 비밀기지 설계도를 그린다면"이라는 칼럼은 몇몇 실존하는 비밀 기지를 단순히 설계도로 옮긴 것에 불과합니다. 별다른 해석이 개입되어 있지도 않고요.
게다가 이런 식의 전문가적인 정보 제공 영역은 앞서 수록되어 있는, 설문조사를 통해 재현한 이이들의 비밀 기지와 비밀 기지에서의 활동이라는 판타지와는 너무 어울리지 않습니다. 두 개의 전혀 다른 책을 합친 느낌마저 들 정도에요. 이런 류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면 앞부분의 비밀 기지들도 전부 이런 도면, 실제 제작된 예시 사진과 함께 더욱 디테일하게, 정말 건축물 관련 글처럼 쓰는 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프로파간다의 전위적인 편집도 다른 책만큼 심하지는 않지만, 포스트잇 노란색 같은 용지는 그림과 글자는 괜찮더라도 사진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요소였으며, 뒤에 메모지 영역이 있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12,000원이라는 가격도 담긴 콘텐츠 내용에 비하면 과한 편이고요.

그나마 뒷부분의 "어른이 만드는 비밀 기지"와 편집부가 썼다는 "이야기 속의 비밀 기지"가 정보 제공이라는 제 의도에 조금이나마 부합합니다만, 문제는 이 부분을 다 합쳐도 10페이지가 될까 말까 하다는 점입니다. 일러스트와 몇몇 디테일도 좋았지만 대세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여러모로 추천하기는 어렵습니다. 키덜트를 위한 그림책으로 재편집하여 판매하는 것이 보다 낫지 않을까 싶네요.

2015/02/26

젊은 목수들 : 일본의 새로운 가구 제작 스튜디오를 찾아서 - 프로파간다 편집부 : 별점 1.5점

젊은 목수들 : 일본의 새로운 가구 제작 스튜디오를 찾아서 - 4점
프로파간다 편집부 지음/프로파간다


일본에서 소규모 가구 공방을 운영하는 오너 목수들을 취재한 결과물. 총 22인(팀)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디자인적으로 뭔가 영감을 얻을만한 것이 있지 않을까 싶어 읽어보았는데 기대에는 전혀 미치지 못했습니다. 가구를 만드는 사람들의 생각과 삶 중심의, 제목 그대로 "목수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만든 가구는 몇 개만 부록처럼 소개될 뿐이며 심지어 본문 인터뷰에 등장하는 목수들의 작품이나, 그들이 영향을 받았다는 유명 가구조차 별다르게 실려 있지 않은 탓에 디자인적으로 영감을 받을 여지는 거의 없습니다.

문제는 목수들의 이야기도 별 재미가 없다는 겁니다. 다른 일을 하다가 가구 제작에 뜻을 품고 전문 학원 등에서 배운 뒤 공방을 오픈한 오너들이 많다는 점, 아직도 도제식으로 이루어지는 수업이 있다는 점은 기억에 남습니다만, 결국 같은 일을 천직처럼 여기고 열심히 한다는 내용이라 교과서적일 뿐더러, 22인(팀)의 사고방식이나 삶의 과정에서 큰 차이점도 없습니다.

또 이전 리뷰에서도 언급했지만, 출판사 '프로파간다'의 책들은 디자인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이런 류의 책에서 흔히 쓰지 않는 굴림체 스타일 폰트, 기묘한 그래픽 사용은 전혀 좋아 보이지 않아요. 10년 이상 지난 키치 유행 시절 스타일이 연상될 정도로 별로였습니다. 일반적인 폰트와 담담한 디자인으로 꾸몄다면 훨씬 나았을 것 같습니다.

* 책 뒷페이지를 보니 북디자인은 "구엔엠"이라는 업체에서 진행했더군요. 궁금하신 분들은 사이트에서 주요 페이지를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입니다. 재미도 없지만 분량에 비해 가격도 비싸고, 디자인 때문에 소장욕구마저 희박해져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어떤 독자를 위한 책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굳이 꼽자면 "목공에 관심이 있어 하던 일을 접고 새롭게 시작하려는 젊은이" 정도겠지만, 이런 독자가 아니라면 누구든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이자면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읽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과연 이런 목수들이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이런 공방의 최대 수요 계층으로 묘사되는, "자신의 집에 어울리는 독특한 디자인의 가구"를 원하는 소비자들이 앞으로도 목수들에게 의뢰를 계속할까요? 3D 프린터가 대세가 되어 원하는 조형물을 저렴하게 뽑아내는 시대가 오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을텐데 말이지요. 3D 프린터 대비 유리한 점은 나무를 깎고 다듬는 기술 뿐인데, 재료 차이를 제외하면 동일한 디자인의 제품이라면 대부분의 소비자는 더 저렴한 쪽을 선택할 것입니다. 소개된 목수들의 작품들을 보아도 가장 단순한 스툴이 4만 엔 이상 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고요. "장인"으로 대접받는 정말 일부를 제외하면 결국 도태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뭐, 제가 걱정할 문제는 아니긴 하지만요.

2014/07/30

공포영화 서바이벌 핸드북 -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 / 강상준 : 별점 2.5점

공포영화 서바이벌 핸드북 - 6점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 지음, 강상준 외 옮김/프로파간다

독자가 공포 영화 속 캐릭터라고 가정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책입니다.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와 유사하지만,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는 "좀비"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반면, 이 책은 순수하게 다양한 공포 영화 속 상황만을 다룬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때문에 살아남기 위한 방법도 영화의 맹점을 이용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공동묘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움직이는 거면 뭐든지 다 쏴버리라고 조언하는 식입니다. 남편의 묘에 꽃을 놓으려는 무고한 미망인을 죽였더라도 자책하지 말고 그녀를 묻고 꽃을 불태우라고 하죠. 죽는 것보다는 낫다는 논리입니다.
또 "옥수수밭의 아이들" 편에서는 공포영화 육아법을 짤막하게 소개하는데, "아이가 나에게 욕설을 퍼붓고 면전에서 문을 쾅 닫아버리며 내가 영원히 지옥에서 썩어버릴 것이라고 말한다"는 증상의 치료법으로 "당신의 아이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써 놓는 식의 개그도 많습니다.

그래도 단순한, 시덥잖은 개그물은 아니고 공포 영화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파고들기는 합니다. 공포 영화에서 도출해낸 클리셰와 아이템들도 전부 공포영화에 대해 알고 있다면 무릎을 칠 만큼 대표적인 것들이고요. 이를 소재로 활용하는 개그들도 피식 웃을 수 있는 수준은 됩니다. 

또 몇몇 내용은 저도 그간 생각해왔었던 의문을 짚어주고 있어서 더욱 반가웠습니다. 그중 하나는 "인형이 어떻게 움직이든 사람이 훨씬 크고 강하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인간은 모든 면에서 좀비보다 우월하다"는 것이죠. 당연한 상식이지만 그동안 너무 많이 간과된 게 아닌가 싶네요.

그 외에도 맨 마지막에 걸작 공포영화와 쓰레기 5편의 목록을 실어준 것도 좋았습니다. 양이 적고 평도 거의 한 줄이지만 숨겨진 작품들이 많고 평 자체도 인상적인 것이 많아서 잘 정리된 리스트라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김시광의 공포영화관"과 비교해도 될 정도였어요.

허나 워낙에 내용 자체가 개그로 일관하는 책이기 때문에 무언가 의미나 가치를 부여하기 어렵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냥 더운 여름 킬링타임용으로 읽기에 그런대로 어울리는 수준이었달까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덧 1 : 저도 "추리소설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이라는 책을 한번 써볼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이런 식입니다. 만약 당신이 부유한 큰아버지의 유산 상속자로, 도박빚에 빠진 큰 조카, 가벼운 정신병에 시달리는 둘째 조카, 백수 남자친구와 사귀고 있는 셋째 조카딸이 있는 상황에서 주말에 파티에 참석해야 한다면? 그날 저녁을 넘기기 어려울 겁니다. 살아남으려면 파티에 가지 말아야 하고, 가더라도 그 어떤 것도 먹으면 안 되고, 밤에 혼자 자면 절대 안 됩니다! 조카들과 카드게임이라도 밤새 하시길~

덧 2 : "탐정사전", "연필 깎기의 정석" 등 출판사 프로파간다의 책들은 편집이 영 마음에 들지 않네요. 폰트의 사용이나 편집 구성 자체가 지나치게 독특한데 제 취향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이 책 역시 편집과 아트워크 측면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높은 점수를 줄 수 없습니다.

2014/06/02

탐정사전 - 김봉석, 윤영천, 장경현 : 별점 1.5점

탐정사전 - 4점
김봉석.윤영천.장경현 지음/프로파간다

제가 어렸을 적, 국내 최고의 추리문학 출판사였던 해문은 "세계의 명탐정 50인"(이후 일본 탐정을 뺀 44인으로 축약 재간)이라는 책을 출간했었습니다. 명탐정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에 명탐정이 등장하는 추리 퀴즈를 한 개 선보이는 형식으로 구성된 책이었죠. 이런 핵심 내용 외 일러스트, 수록된 여러가지 추리 관련 정보도 인상적이었고요. "스포일러"라는 점에서는 비난받을 수 있지만, 추리문학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나가던 추리 키드에게는 정말로 좋은 선물 같은 책이었습니다. "세계의 위인은 명탐정"이라는 동일 구성의 유사 도서가 연이어 출간되었던 걸로 보면 꽤 인기를 끌었던 것 같네요.

이 책 "탐정 사전"의 출간 정보를 들었을 때에는 "세계의 명탐정 50인"의 현대적인 재구성이 될 걸로 예상했습니다. 스포일러 문제 및 저작권 이슈로 추리 퀴즈 부분이 빠지더라도 그만큼 잘 만들어진 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좋아할 수밖에 없을거라는 확신이 들었기에, 출간과 거의 동시에 구입했습니다.

그러나 생각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솔직히 실망이 큽니다. 이 책이 대체 누구를 위한 목적으로 쓰여졌는지 알 수가 없는 탓이 큽니다. 추리 문학 초보자를 위한 책이라면 정말로 추리 소설사에 길이 남을 걸작들을 엄선하여, 그중 등장한 탐정들을 중심으로 소개했어야 했습니다. 애호가를 위한 책이라면 잘 알려지지 않은 탐정을 소개하거나, 기존에 소개된 탐정이라도 다양한 정보를 충실히 실었어야 하고요. 그런데 이 책은 이도 저도 아닙니다. 뷔페에서 맛이나 코스 구성은 염두에 두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음식을 얹어놓은 쟁반을 보는 느낌이 들 정도로요.

일단, 어떤 기준으로 탐정들이 선정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동서고금의 모든 탐정을 담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지만, 선정 기준은 막연하게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출판물이라면 판매 부수나 시리즈 권수, 방송물이라면 시청률이나 방영 횟수, 또는 역사적 의의 등의 기준이 있어야 했을 텐데 말이지요. 솔직히 선정 기준은 그냥 저자들의 팬심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IWGP"의 마시마 마코토, "트릭"의 야마다 나오코와 우에다 지로, 니시오 이신의 이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이 일본의 3대 탐정 중 하나인 가미즈 교스케, 다카기 아키미쓰의 기리시마 사부로 검사, 시마다 소지의 요시키 형사, 우치다 야스오의 시나노의 콜롬보 다케무라 이와오나 경시청의 오카베 경부, 여정 미스터리의 대가 니시무라 교타로의 도쓰가와 경부 등을 제치고 소개될 만큼 비중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꼭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더라도, 수많은 걸작에서 활약했으며 추리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탐정들 중 소개되지 않은 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프렌치 경감, 커크릴(콕크릴) 경감, 방코랑은 그렇다쳐도, 대체 뤼뺑은 왜 빠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유명 탐정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고 보기엔, 그 외의 황금기 명탐정은 거의 수록되어 있으니까요.

"차일드 44"의 레오 데미노프와 같은 스탠드얼론 작품의 주인공이 포함된 것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해당 작품이 추리 역사에 길이 남을 걸작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레오 데미노프가 전통적인 ‘탐정’ 역할에 충실한 인물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구소련이라는 특수한 환경을 평가하고 싶었다면, 시리즈 캐릭터인 아르카디 렌코가 더 타당했을 것입니다. "토로스 & 토르소"의 헥터 라시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시리즈라고는 하나 국내에선 한 권만 소개되어 있어 스탠드얼론으로 보이고, 탐정 같지도 않은 인물인데 뤼뺑마저 빠진 명단에 포함되었다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탐정이라면 이해하겠지만, "시티헌터"의 사에바 료가 실려 있는 부분은 어이없음의 극치입니다. "지뢰진"의 이이다 쿄야까지는 그러려니 하겠지만요. 굳이 추리만화에서 뽑고 싶었다면 "Nervous Breakdown"의 두 컴비나 "절대미각 식탐정"의 다카노 세이야를 꼽는 게 나았을 겁니다. 완성도를 떠나 최소한 ‘추리 만화’이긴 하니까요. 대중문화적 아이콘으로 넣고 싶었다면 "춤추는 대수사선"의 아오시마가 더 적절했을테고요.

지금은 구하기 어려운 절판본이나 국내 미출간작에 등장한 탐정을 소개한 점도 아쉬웠습니다. 카렐 차페크의 메이즈리크 시리즈를 소개하며 국내 절판이라 언급했는데, 이런 식이면 독자보고 어쩌라는 건가요? 커트 캐넌 시리즈도 한 권만 출간되었는데, 현재 절판입니다. 뒤렌마트의 베르라하(베를락) 경감 시리즈, 모돌이 탐정도요.

캐릭터별 글 수준이 들쭉날쭉한 것도 문제입니다. 말 그대로 사전이라면 구성 면에서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캐릭터는 단순히 정보만 나열하는 반면, 어떤 경우는 작품 분석과 작가 소개까지 이어집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정보 이상의 가치를 제공하지 못한 항목도 많습니다. 반 두젠(밴 듀슨) 교수의 경우, '생각하는 기계'라는 별명과 대표작 "13호 독방의 문제" 언급만으로 그치는데, 이런 내용이라면 하루에도 수십 개 작성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차라리 소개를 하지 않는 것이 나았을 겁니다. 대부분의 항목에서 주요 작품과 그 속에서의 활약상이 생략되어 있다는 점도 문제에요. 

그 외, 탐정들의 배열도 시대순이나 장르순이 아니라 이름순이라는 점도 의아했으며 실제 캐릭터가 묘사된 일러스트조차 특별함을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물론 건질 만한 부분도 없진 않았습니다. 결과물 자체는 아쉬웠지만, 고전 본격물부터 하드보일드, 현대물, 대체역사 판타지, SF, 만화, 드라마까지 아우르는 풍성한 범위는 장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리노 나쓰오의 무라노 미로, 하라 료의 사와자키에 대한 소개는 흥미롭게 읽었고, 미야베 미유키의 스가무라 사부로 시리즈, 센도 타카시의 "폐허에 바라다"는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클로버의 악당들"의 빌 파믈리, 토니 힐러만의 인디언 탐정 조 리프혼과 짐 치처럼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Q.E.D"의 토마 소같이 많이 소개되었지만 의외로 아는 사람이 적은 탐정 소개도 반가왔던 점입니다. "Q.E.D" 소개글은 작품의 매력을 잘 전달하지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요.

그러나 장점보다 단점이 훨씬 크게 느껴졌기에,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괜찮았던 몇몇 항목에 비해 전체적인 만족도가 너무 낮기 때문입니다. 방향성이 없는 기획과 인터넷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수준의 정보들이 대다수인 탓이지요. 30여 년 전 읽었던 "세계의 명탐정 50인"과 비교해 특별히 나은 점도 없고요. 가격까지 고려하면 도저히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덧붙여 눈에 띈 몇 가지 오류를 정리해봅니다. 엉클 애브너 항목에서 "나보테(나봇)의 포도원"을 "나보프의 포도밭"이라 오기한 부분, "차이나타운" 작가 소개 영역에서 감독 로만 폴란스키가 표기된 점(각본가가 언급되었어야 함), 유불란의 후속작이 없다고 언급한 점 등입니다.

2015/08/13

연필 깎기의 정석 - 데이비드 리스 / 정은주 : 별점 2점

연필 깎기의 정석 - 4점 데이비드 리스 지음, 정은주 옮김/프로파간다

자칭 연필 깎기 장인이라는 저자가 쓴 연필 깎이의 모든 것입니다. 연필 깎는데 필요한 준비물들, 주머니 칼에서 시작해서 외날 휴대용 연필깎이, 다구형·다단식 휴대용 연필깎이, 이중날 회전식 연필깎이 등의 도구를 이용한 연필 깎기 방법,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하거나 폭포에서와 같은 다양한 장소, 환경에서 연필 깎는 법과 뒤로 깎기와 같은 진기한 묘기 등 연필 깎기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설명은 물론 도판도 충실하고, 내용도 신뢰할 수 있도록 잘 꾸며져 있습니다. 

그러나 연필 깎기 장인은 개뿔, 만화가 출신 저자가 실존하지 않는 세계를 진지하게 접근하여 웃음을 선사하는, 그런 류의 책입니다.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나 "공포영화 서바이벌 핸드북"처럼 말이죠. 다만, 예를 든 책들은 독자도 모두 "허구"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 설정이 널리 공유되어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는 반면에, 이 책은 실제 "연필깎기 장인"이 존재한다는 것을 독자에게 설득하기 위한 설정에 상당한 노력을 들이고 있습니다. 진지한 수준도 상상을 초월하고요. 손상된 연필심 제거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연필의 몸통을 칼로 베고 촉을 제거하는 행동을 아래의 시, 엘리너 와일리의 "나의 영혼에 부치는 시"에 빗대어 설명하는 것이 좋은 예가 될 수 있겠네요.

"꾸밈없는 담흑빛의
순순하고 완전한 형태가
숙명의 포물선을 그리며
폭풍우 속에서 균형을 잡네"

전체 내용이 모두 이런 식이에요. 크게 빵빵 터지지는 않지만 피식할 만한 수준은 됩니다.

하지만 전동 연필깎이를 다룬 부분처럼 의도적으로 웃기려고 하는 부분이 많은 것은 단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작가 스스로 웃음기를 배제하고 더 진지하게 쓰는 게 좋지 않았을까 싶은데, 이도저도 아닌 결과물이 된 것 같아 아쉬워요. 별점은 2점입니다.

그래도 별 것도 아닌 내용을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쓰면 그 자체가 하나의 컨텐츠가 된다는 것은 주목할 만할 것 같아요. 저 역시도 몇 가지 아이디어가 있는데 진심을 담아 더욱 열심히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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