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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8

사무라이 SAMURAI - 스티븐 턴불 / 남정우 : 별점 2점

사무라이 SAMURAI - 4점
스티븐 턴불 지음, 남정우 옮김/플래닛미디어

영국 오스프리 출판사에서 발간한 스티븐 턴불의 책을 번역한 책입니다. 제목 그대로 사무라이 계급의 역사를 차분하게 설명하고 있는 미시사 서적이지요. 10세기 겐페이 전쟁에서 대두되기 시작한 사무라이 계급이 전국 시대를 거쳐 메이지 유신 후 사라지기까지의 과정을 주요 사건(주로 전쟁)과 주요 인물들과 함께 설명해 줍니다. 이전에 "도해 전국무장"을 읽고 한 번 데이긴 했는데, 워낙 이쪽에 관심이 있던 차에 다시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오스프리의 책들은 왠지 신뢰가 가기도 했고요.

그런데 역시나, 슬픈 예감은 틀리지가 않네요. 자세히 소개될 것으로 기대한 이른바 "사무라이"들과 "무사도" 및 그들의 문화를 설명하는 내용은 절반도 채 되지 않습니다. 3장의 '조상 숭배의 열정'과 4장의 '사무라이식 죽음' 정도가 비교적 관련 내용에 충실하며, 그 외에는 실제 역사상 전쟁 이야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전쟁 관련 도서로 유명한 오스프리의 책 답게요.

물론 전쟁 이야기가 재미없는 것은 아닙니다. 신식 화승총을 도입한건 사쓰마의 시마즈 가문이었다, 그들의 라이벌이었던 규슈의 오토모 문은 화포를 최초로 전쟁에 도입했다는 내용은 그 자체만으로도 군웅물을 보는 재미가 있거든요. 그냥 보면 외부에서의 공격에 엄청나게 취약해 보이는 일본식 성이 사실은 일본 지형과 전술에 특화되어 개발되었으며, 전 세계적인 흐름과도 일치하는 결과물이었다는 석축 성곽 설명 부분도 아주 흥미로웠고요.

'7장 사무라이의 바다'를 통해 왜구로 알려진 해적들의 해상 활동 외에 시암 왕국에서 일본인 용병들이 활약했다는걸 처음 알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야마다 나가마사' 관련 이야기는 인상적이었어요. 17세기에 시암 왕국으로 건너간 뒤 용병으로 활약하다가 왕국의 공주와 결혼하여 영주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로, 그냥 삶 자체가 드라마더라고요. 인터넷을 뒤져보니 제법 잘 알려진 인물이기도 한데, 좀 더 공부해 봐야겠습니다.

하여튼, 이런 전쟁 이야기를 통해 사무라이에 대해 다시금 조망하게 해 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전쟁사와 전쟁에 대해 소개하는 부분이 기대와 너무 달라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대표적인건 일본 황실에 얽힌 전설과 함께 유명한 "3종 신기"에 얽힌 역사를 설명하는 제2장, 사무라이 계급의 몰락을 다룬 8, 9장입니다. 일본 역사가 궁금했다면, 그것도 전국 시대와 메이지 유신 당시의 세이난 전쟁 이야기라면 구태여 이 책을 구입해 읽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사무라이 계급의 몰락은 사이고 다카모리보다는 신센구미의 히지카타 토시조를 다루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아울러 전체적으로 번역도 좀 매끄럽지 않게 느껴진 것도 단점입니다. 플래닛 미디어의 "KODEF 안보 총서" 시리즈는 번역은 비슷한 문제가 있는 듯 싶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재미있는 부분도 있고 처음 알게 된 내용도 많기는 합니다. 도판도 괜찮고요. 그래도 앞서의 단점 및 2만 원에 육박하는 가격을 감안하면 별로 권해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인터넷에서 전국시대 무장들을 검색해 보는 것이 훨씬 저렴하고, 그리 뒤쳐지지 않는 경험이라 확신합니다.

2016/02/25

대한민국, 활명수에 살다 - 전병길 : 별점 2점

대한민국, 활명수에 살다 - 4점
전병길 지음/생각비행

제목만 보고 활명수에 관련된 미시사 서적이라 생각했는데 생각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그것도 안 좋은 방향으로요. 최근 이런 식으로 많이 속았는데 이유를 잘 모르겠네요. 하여튼, 저는 활명수 관련된 이런저런 역사 속 이야깃거리를 전해주는 책이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관심 있는 일제 강점기 중심으로 영친왕이 활명수를 먹고 급체가 나았다는 식으로요. 하지만 실제 내용은 동화약방의 창업자 가문인 민씨 가문이 독립운동에 매진하였다, 동화약방을 인수한 윤창식 역시 선각자였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동화약방 찬양입니다. 활명수는 단지 이들의 이야기를 하기 위한 소품일 뿐이고요.
그나마도 1/3 정도 분량에 해당하는 일제 강점기까지는 괜찮은데, 해방 이후는 짜증날 정도로 억지스럽습니다. 근대사와 동화약품과 활명수를 무리하게 연결시키는 정도가 너무 지나친 탓입니다. 예를 들자면 '아폴로 달 착륙에 대해 설명하면서 당시 한국도 관련된 생중계 등으로 열풍이었다, 동화약품도 "파이오니어"라는 단어를 내세워 광고를 했다.'라는 식입니다. 영화 "국제시장"에 대해 한참 썰을 풀다가 주인공 덕수가 활명수를 먹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고요. 심지어 활명수와 별 상관없는 동화약품의 권투 시합 스폰서 기사까지 가져오는걸 보면, 신문 기사 검색 사이트에서 "동화약품", "활명수"를 입력해서 나온 기사는 모두 수집해 모아 놓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활명수에 대한 미시사적인 내용이 없지는 않습니다. 1897년의 창업과 창업 후 초창기 동화약방이 어떻게 성장하였는지는 당대의 사료와 함께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됩니다. 활명수 상표권 도용과 등록에 얽힌 이야기, 활명수의 라이벌들인 발매 당시의 활명액과 생명수, 현대의 까스명수, 위청수와의 격돌에 대한 내용들, 그리고 활명수의 초창기 가격과 복용 방법, 병 디자인의 변천사 등은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아울러 비록 기사 검색에 불과하지만 자유당 부정투표 당시 경찰이 민주당원을 구금한 죄목 중 하나가 활명수 부정 판매였다는 것, 60년대 말 70년대 초 쎄시봉과 통기타 열풍이 불었고 윤형주로 대표되는 CM송도 활성화되었는데 이때 동화약품의 CM송이 1위를 차지했었다는 등 시대상과 관련 있는 내용도 없지는 않고요.

허나 앞서 말씀드린 대로 실망이 더 컸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격동의 근현대사에 함께했던 제품과 회사를 엮어 풀어내려고 한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았지만, 이래서야 이도 저도 아닌 결과물이죠. 부채표 동화약품의 사보에 실려서 애사심을 고취시킬 목적이 아니라면 출간될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덧붙이자면, 고등학교 동창 한 명이 부채표 동화약품 후계자였었는데 지금 뭐 하고 지내는지 좀 궁금하군요. 이름도 까먹은지라...

2016/02/23

조선의 武와 전쟁 - 박금수 : 별점 1.5점

조선의 武와 전쟁 - 4점
박금수 지음/지식채널

조선의 무예에 대해 궁금해서 읽기 시작한 책. EBS의 동명 다큐를 책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대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국가 주도의 편찬 사업으로 체계적으로 정리된걸 소개해 주는 것에 그치거든요. 

물론 이러한 국가 주도에 의해 체계화된 무예에 대해서는 충실하게 전해주기는 합니다.

  1. 임진왜란 후 창설된 훈련도감에서 한교에 의해 우리 역사상 최초의 공식 무예서 "무예제보" 편찬. 명나라 척계광의 "기효신서"에 수록된 무예를 참고하여 만들어짐.
  2. 북방 기마병을 대처하기 위해 한교는 전투용 수레 전거를 활용하는 척계광의 "연병실기"를 응용하여 "연병지남" 편찬.
  3. 광해군 때 훈련도감에서 "무예제보번역속집" 출간.
  4. 사도세자의 지시로 "무예신보" 편찬.
  5. 정조 때 총 4권의 "무예도보통지" 편찬.

으로 구분되는 일련의 흐름과 십팔기에 해당하는 각종 무술들에 대해서는 아주 약간이지만 짚어주는 덕분입니다. '십팔기'라는 용어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네요.

허나 이러한 역사적인 흐름보다는, 내용에서 살짝 소개된 본국검이나 신검 등 전통 무예에 대해 보다 심도 깊게 알려주는 책으로 생각했던 탓에 개인적으로 실망이 더 큽니다. 다큐가 존재한다는 장점을 전혀 살리지 못한, 부실한 도판 역시 마음에 들지 않고요. 아울러 모든 조선의 무예가 '십팔기'로 정리되었는데, 이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기에 제대로 대접받아야 한다는 논리도 공감하기 어려웠습니다. 저자가 '십팔기'의 전수자인 탓에 펼치는 억지 논리라는 생각만 들었네요.

그나마 무예 관련 이야기는 괜찮다 치더라도 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자호란 및 이후 서양 열강의 개항 압력과 군란 등에 대해 소개해 주는 분량이 많은건 정말 별로였어요. 내용도 부실하고 유사한 다른 서적, 예를 들자면 "조선 전쟁 생중계" 등과 비교해서 장점을 찾아보기도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러한 역사적 이야기와 "무"는 '임진왜란 후 국가 주도로 체계화된 것' 외에는 별 상관이 없다는 점, 그리고 '무'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점도 문제입니다. 이 역시 저자가 무술인인 탓이 클 텐데 역사의 흐름을 '무'로 어쩔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예를 들어 병자호란의 경우라면, 우리가 어떻게 준비했어도 결과는 별 차이가 없었겠죠. "겨울전쟁"의 핀란드처럼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얻을 수 있는 내용에 비해 과한 가격과 분량의 콘텐츠입니다. 그냥 다큐로 보는 게 훨씬 좋겠습니다.

2016/02/20

산적 다이어리 2 - 오카모토 켄타로 / 주원일 : 별점 1점

산적 다이어리 2 - 2점
오카모토 켄타로 지음, 주원일 옮김/애니북스

"산적 다이어리 1" - 오카모토 켄타로 / 주원일 : 별점 2점

1권이 별로라 다시 읽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방문한 만화가게에 비치되어 있어서 읽게 되었습니다.

1권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는 했지만, 사냥 초보자가 조금씩 사냥에 대해 익혀 가는 과정이나 잡은 동물들을 조리해 먹는 과정 등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권은 이러한 기존의 재미 요소마저도 사라져 버린 희대의 졸작이더군요.

이유는 이미 사냥에 익숙해진 켄타로와 동료들의 핵심 타깃이 멧돼지인 탓입니다. 상세하지만 너무 길고 지루했어요. 멧돼지 해체 같은 것은 전혀 와 닿지도 않았고요. 사냥 과정에서 별다른 에피소드도 눈에 띄지 않습니다.

작화도 별로입니다. 1권도 그닥이었는데 그보다 더 별로예요. 캐릭터 조형까지 무너지는 등 정말 마음에 들지 않네요.

한마디로 재미도 없을 뿐더러 완성도 면에서 심대한 결함이 있습니다. 구입하지 않아서 정말로 다행이에요. 별점은 1점입니다.

2015년 하우미스터리 선정, 올해의 추리소설!

2014년 하우미스터리 선정, 올해의 추리소설!

국내 최대의 추리문학 동호회 하우미스터리에서 진행한, 2015년도 출간된 추리소설에 대한 투표 이벤트 결과입니다. 매년 초의 연례 행사죠. 이번에는 모두 33분의 추리 애호가가 투표에 참여하셨네요. 1~3위는 아래와 같습니다. 이외 작품은 링크를 통해 확인하시길.

1위 : "13.67" 찬호께이

2위 : "미스터 메르세데스" 스티븐 킹

3위 : 미치오 슈스케 "랫맨"

후보작은 241권이나 되지만 1인당 3표씩 해도 100표가 안 되는 표의 절대 부족으로 많은 작품이 순위에 오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후보작 중 제가 읽은 작품은 극히 일부인 20권에 지나지 않는데도 7위까지의 순위권 작품은 총 10권 중 무려 6권이나 읽었더군요! 60%! 2표, 1표를 받은 작품 모두 포함하면 39권 중 13권을 읽었으니 1/3이나 되는 것이고요. 비슷한 경향의 투표 참여자가 많은 것 같습니다. 과연 추리 애호가들끼리는 서로 통하는 바가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마지막으로 제가 선정한 작품은 아래와 같습니다.

기준은 제 블로그 리뷰 별점이며, 순서는 무순입니다.

"13.67" 찬호께이 : 잘 알려지지 않은 중국 추리문학의 저력을 알게 해 준 수작

"소름" 로스 맥도널드 : 구관이 명관. 하드보일드 3대장의 귀환!

"특별 요리" 스텐리 엘린 : 구관이 명관 (2). 이 바닥 최고의 유명 요리는 역시 아미르스탄 양 요리!

표지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도서

"두 사람의 거리 추정" 요네자와 호노부

2016/02/17

그것이 알고 싶다 - SBS그것이알고싶다 제작진 : 별점 2점

그것이 알고 싶다 - 4점
SBS그것이알고싶다 제작진/엘릭시르

TV를 그다지 많이 보는 편은 아닌 제가 본방 사수를 하는 몇 안 되는 프로그램 중 하나가 "그것이 알고 싶다"입니다. 인터넷에서 화제인 "그것이 알고 싶다 레전드" 등의 글들은 스크랩해 놓고 가끔 찾아볼 정도로 미제 사건을 다룬 에피소드들을 흥미롭게 보아왔습니다. 추리 애호가인 탓이겠지요. 이런 제가 "그것이 알고 싶다"에 대한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찾아 읽어버린건 당연합니다.

그러나 기대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저는 방송된 에피소드 중 가려 뽑은 충격적인 에피소드들에 대해 소개하는 식의, 앞서 말씀드린 인터넷 상의 "그것이 알고 싶다 레전드"와 같은 글을 기대했습니다. 당연히 추가 취재를 통한 방송 이후의 후일담, 현재 상황에 대해서도 알려줄 거라 생각도 했고요.

하지만 책은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방송 소개에 더 가깝습니다. 총 7장의 큰 카테고리로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소개하고는 있지만 실제 방송된 내용을 요약한 것에 불과하며, 오히려 관련자들이 방송을 어떻게 만들었고 방송이 어떤 파급 효과를 불러왔는지 소개하는 부분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심도 깊게 사건에 대해 다시금 되짚어 보는 글들도 적지는 않으나 제가 기대했던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요약된 내용도 대부분 그냥 글로만 정리되어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이래서야 인터넷상을 떠도는 글들보다 나을 게 없죠. 일전 읽었던 논픽션 "완전범죄"와 다르지도 않고요.

게다가 뒷부분은 정말로 무가치합니다. "빅데이터로 보는 "그것이 알고 싶다""는 이름만 거창할 뿐 왜 실려 있는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지배하는 키워드가 무엇이며 어떤 단계를 거쳐 현재에 이르렀는지를 나름의 분석으로 설명하는데, 방송 제작에 관심이 있는 PD라면 모를까 일반인이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온라인 화제 10, 시청률 10, 팬들이 뽑은 레전드 10 목록은 그나마 볼 만했지만 빅데이터와는 관계가 없는 다른 곳에서 가져온 것들인 데다 실제 내용도 빅데이터를 제대로 활용한 것으로 보이지 않아서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였고요.

마지막 200페이지 분량의 1,000회 방송 목록 요약도 소용 없기는 마찬가지, 관심 주제에 대한 검색 키워드 제공과 '아 이런 것도 방송했구나' 정도의 의미밖에는 없어요. 목록에서 관심 가는 주제가 있다 하더라도 다시 볼 수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물론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처럼 다시금 묵직한 울림을 주는 내용도 없지는 않습니다. 이에 관련하여 쓰신 인권 운동가 고상만 씨의 글이 참으로 명문이더군요. 이렇게 역사적,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서는 저 개인적으로는 소홀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의 무관심을 환기시켜 주는 좋은 계기가 된 것은 분명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인 미제 사건, 흉악한 범죄에 대해서 정리된 '제7장 범죄의 재구성'은 여러모로 아주 인상적이었고요.

그래도 600페이지 가까운 책에서 280여 페이지 ("빅데이터..."와 방송 목록)가 저에게는 무가치했으며 그 외의 내용들도 기대와는 많이 달랐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2만 원에 육박하는 가격도 감점 요소고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1,000회 동안 보여준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의 노고에는 경의를 표하고 이런저런 긍정적 파급 효과에는 박수를 보냅니다만 노고를 치하하는 책까지 찾아 읽어야 할지는 의문이네요. 방송의 대단한 팬이 아니라면, 아니 팬이라도 찾아볼 필요 없습니다.

2016/02/16

여자 친구 - 마리 유키코 / 김은모 : 별점 2.5점

여자 친구 - 6점
마리 유키코 지음, 김은모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십 층짜리 맨션 리틀 타워에 거주하는 두 명의 독신 여성 요시자키 마키코와 다미야 요코가 살해당했다. 마키코는 죽은 뒤 자궁을 적출당하는 등 난도질당했고, 다미야 요코는 범인이 도망가는걸 목격해 살해된 것으로 보였다. 유력한 용의자로 매춘을 일삼던 요시자키 마키코의 고객 야마구치 게이타로가 체포되었다. 그러나 게이타로가 범인이 아님을 직감한 르포라이터 나라모토 노에는 사건의 진상을 쫓으며 취재한 내용을 연재 기사로 발표하는데...

그간 격조했습니다. 설 연휴 등으로 최근 며칠간 책을 읽기 힘들었거든요. 이제 언제나처럼의 일상이 시작되었으니 블로그도 다시 달려봐야죠. 이 작품은 어딘가에서 추천을 받고 체크해 두었었는데 추천의 출처는 기억이 나지 않네요. 여튼, 읽기 전에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작가가 생소한 탓이 컸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생각보다 재미있더군요. 나라모토 노에의 르포 연재물과 현실이 섞인 전개도 흥미롭지만, 문체와 잘 짜여진 내용을 통해 '이것이 진실이다!'라고 독자를 설득하다시피 하는 르포가 사실은 잘못된 것이었고 진상은 따로 있다는 중반부 클라이맥스까지는 정말 손에서 떼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나라모토 노에의 르포를 통해 밝혀지는 충격적인 진상들도 재미에 한몫 단단히 합니다. 와세다 대학 법대생으로 재학 중 이미 사법고시에 합격했지만 이후 평범한 직장을 전전하며, 연극 배우에게 너무나 빠진 나머지 사채에다가 입던 속옷, 심지어 몸까지 팔고 임신과 낙태를 반복했다는 마키코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나라 네이트 판 등에 올라오는 ‘판춘문예’ 고백 수기에 못지않을 정도로 흡입력 있었습니다. 인터넷에 올렸다면 상당한 반향(혹은 어그로)을 불러일으켰으리라 생각될 정도입니다.
중반에 나오는, 한때 잘나갔지만 지금은 맨션 구입비 융자 상환으로 허덕이는 가정 파탄 직전 상태로 약간의 허영심만 남아 있는 이자와 시오리, 르포에서는 별 볼 일 없고 허점투성이로 묘사되지만 사실은 실력 있는 꾸준한 노력파인 여검사 다마키 등 다른 등장인물들도 아주 생생하고요.

추리적으로도 알고보니 야마구치 게이타로가 정말 마키코를 살해했다는 진상이 괜찮습니다. 동기의 설득력이 넘친 덕분입니다. 마키코가 매춘 상대에게 임신했다고 협박하며 돈을 뜯어냈지만, 야마구치 게이타로는 임신한 아이를 책임지겠다, 결혼하자는 진심을 밝혀 비극이 시작된건데 아주 그럴듯했어요.

여기에 더해 부동산 거품 시절 분양받은 맨션이 분양가의 반값 이하로 거래되는 등, 잘 알기에 더욱 와 닿는 설정도 읽는 재미를 더해 줍니다. 뉴스에 흔히 회자되었던, 고액 전세를 끼고 분양받았는데 팔려고 보니 전세금보다도 떨어진 깡통 아파트와 같은 경우이지요. 분양가보다 저렴하게 구입한 사람의 이사를 분양받은 입주민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막았다는 뉴스도 떠오르네요.

그러나 아쉽게도 좋았던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이후 마키코에서 다미야 요코로 이야기의 중심축이 옮겨지고 나서는 재미가 크게 반감됩니다. 충격적이지만 그래도 있음직해 보이는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다미야 요코는 정말 비현실적이었고, 밝혀지는 진상 —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달래기 위해 낙태한 태아를 섭취한다, 그것을 위해 살해당한 마키코의 자궁까지 적출한다는 — 이 너무 과해서 전혀 와 닿지 않았습니다. 인육을 섭취한다는 류의 작품은 많지만, 낙태한 태아라니... 솔직히 불편하기까지 했습니다.
요코가 마키코의 시체를 발견하고 자궁을 적출하는 일련의 과정도 우연으로 이루어져 잘 짜여졌다고 보기 힘듭니다. 피, 식인을 바토리 에르제베트 백작 부인과 연결하는 식의 작위적이면서도 유치한 발상의 연장선상이지요. 자살했다는 결말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말도 안 되는 설정보다는 남편의 불륜 상대(마키코)와 자신이 오래전 구입했지만 반값 이하로밖에 팔 수 없었던 집을 저렴하게 구입한 입주자(요코) 모두에게 극심한 살의를 품은 이자와 시오리가 범행을 저질렀다는, 나라모토 노에의 실패한 시나리오가 더 그럴듯했습니다. 아니면 차라리 마키코의 충격적인 과거, 즉 어린 동생을 살해하고 그 피를 빨아먹었다는 어린 시절 기억과 고등학교 시절 절친한 친구 가나에에게 결혼을 약속한 남자를 빼앗기지만 그 뒤에도 교우 관계를 유지하여 결국 부부 사이를 파탄 나게 만들었다는 것을 중심으로 풀어내는게 더 나았을거에요.

게다가 마지막의 나라모토 노에가 사실은 요코의 인터넷 친구 아키였다는 것,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영광을 위해 친구였던 요코의 추악한 비밀을 폭로하려 한다는 마지막 에필로그는 사족인데다가 인터넷 친구였다는건 심각한 모순을 불러옵니다. 나라모토 노에의 르포에서는 한결같이 요코가 컴퓨터가 없어서 인터넷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을 견지했기 때문입니다. 요코의 노트북을 아버지가 경찰 수사 전 몰래 챙겨 갔다는 사실까지는 몰랐어도, 어떤 식으로든 요코가 인터넷을 이용했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그녀가 잘 알고 있었을 테니까요.

요약하자면 중반까지는 역대급 재미였다 생각했는데 마무리에 실패한 작품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래도 전개와 발상은 독특한 점이 있는 만큼, 한 번쯤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덧붙이자면, 저도 네이트 판 등에 올라오는 이른바 ‘판춘문예’를 좀 더 열심히 들여다봐야겠습니다. 잘 정리하면 이 작품 속 마키코처럼 소설로 구체화할 만한 무언가 나올지도 모르니까요.

2016/02/12

극비수사 (2015) - 곽경택 : 별점 1.5점

1978년 실제로 일어났던 '정효주양 유괴 사건'을 영상화한 작품입니다. 설 특선으로 TV에서 방영해주길래 감상했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실망이 컸습니다. 실화 바탕의 정통 수사극을 기대했는데, 수사물로는 기대 이하였던 탓입니다. 사건 해결부터가 수사보다 김중산 도사의 예지력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에요. 아무리 실화 기반이라도 그렇지, 너무 비현실적이라 와 닿지 않더군요. 그나마도 재미있게 풀어내지도 못했고요. 전체 내용에서 수사가 차지하는 비중도 한없이 낮습니다. 유괴 수사에 초점을 맞추면 됐는데, 필요도 없는 조직 내 더러운 거래에 많은 시간을 소모하기 때문입니다. 이게 수사물인지 풍자물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에요.
조직 내 암투에 비중을 둘 거였다면 실제 정효주 양이 두 번 유괴당했다는 드라마를 잘 활용하는 것이 나았을 겁니다. 공 형사의 공을 빼앗아 독식한 중부서 형사들이 두 번째 유괴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고 공 형사에게 석고대죄하다시피 사건 해결을 부탁한다는 식으로요. 두 번이나 유괴당하는 것도 굉장히 드라마틱한 일인데 왜 살리지 않았을까요?

또 주인공 공길용 형사(김윤석 분)의 캐릭터도 전형적이라 지루했습니다. 여러모로 그간의 김윤석 캐릭터, 그 외 형사물 주인공들과 상당 부분 겹쳐요. 현실적이었을지는 몰라도 전혀 도사 같지 않았던 김중산 캐릭터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2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흥행작다운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78년 당시를 충실히 구현한 화면은 상당한 볼거리였으며, 수사물로서도 몇몇 장면은 괜찮게 느껴지긴 했습니다. 극 초반 공길용 형사가 '극비 수사'를 주장하며 범인에게 경찰이 개입되었다는 것을 최대한 감추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여러모로 제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기에 별점은 1.5점입니다. 극장에서 보지 않은 게 다행이다 싶네요. 덧붙이자면, 담배 피는 장면에서 담배에 모자이크를 한 방송국의 행태도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거 좀 가린다고 뭔지 모를 것도 아닐 텐데,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2016/02/10

초콜릿칩 쿠키 살인사건 - 조앤 플루크 / 박영인 : 별점 1.5점

초콜릿칩 쿠키 살인사건 - 2점
조앤 플루크 지음, 박영인 옮김/해문출판사

미네소타주 레이크 에덴에서 "쿠키단지"라는 베이커리 카페를 운영하는 노처녀 한나 스웬슨은 가게에 우유 배달을 하는 청년 론 라샬르의 시체를 발견했다. 그는 배달 트럭 안에서 총에 맞아 죽어 있었다.

사건을 담당하게 된 한나의 제부 빌은 그녀에게 비공식적으로 도움을 요청했고, 한나는 개인적으로 수사를 벌여 사건의 진상에 접근하는데...

코지 미스터리의 대명사같은 한나 스웬슨 시리즈 1작입니다. 장기 시리즈로 이어진 인기작이지요. 추리 소설에 등장하는 요리들에 깊은 관심이 있기에 읽게 되었습니다.

조금 찾아봤는데, 영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코지 미스터리는 섹스와 폭력의 비중이 낮고 유머러스하며, 작고 친밀한 커뮤니티 내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루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이 정의에 100% 부합합니다. 두 건의 살인 사건이 벌어지지만 시체만 발견될 뿐, 그 외의 폭력적인 묘사는 전무하며 섹스 관련 이야기는 언급조차 되지 않으니까요. 주인공 한나와 주변 인물들의 묘사도 유쾌하고, 소설의 무대가 되는 레이크 에덴은 경찰도 몇 명 없고 주민들 모두 서로를 너무나 잘 아는 작은 마을입니다. 그야말로 코지 미스터리 그 자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재미는 없습니다. "미스터리"라는 말을 붙이기에는 미안할 정도로 추리적으로 별 볼일 없는 탓입니다. 진범이 벤톤이 아니라 주디스라는 것 정도는 의외성이 있기는 하지만 그 외에는 딱히 건질 게 없고, 별것 아닌 단순한 사건을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려고 기를 썼을 뿐이거든요. 보이드 건이 대표적인데, 문제는 동기를 갖다 붙인건 억지스럽고 작위적으로만 보였다는 겁니다. 

경찰이 너무나 하는 게 없다는 것 역시 문제입니다. 론 라샬르가 시체로 발견된 시점에서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주변 인물에 대한 수사조차 하지 않는 게 말이 되나요. 어차피 관계자도 몇 명 없는데 말이지요. 이 시점에서 론의 상사 맥스에 대한 수사가 이루어졌더라면 그의 시체도 바로 발견됐을 테고, 론의 죽음은 곁다리였을 뿐 범인의 핵심 목표는 맥스였다는 것도 쉽게 드러났을 거예요. 범인을 찾기 위해서는 동기가 중요하다는 원칙을 되새겨 보면, 맥스를 죽인 동기는 빚 문제라는게 명확하니 채권자들만 훑어도 사건은 해결할 수 있었을 테고요. 시대를 짐작하기 어려우나 최소 90년대 이후라면 맥스가 단지 서류 한 장으로 대출을 처리했으리라는 발상도 안이합니다.
한나가 사건 담당 경찰 빌의 처제라고는 하더라도 사건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 역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 사건은 이래저래 경찰의 직무 유기로밖에는 보이지 않네요.

물론 인기 시리즈다운 부분도 있긴 합니다. 한나와 주변 인물들, 한나의 어머니나 동생 안드레아, 빌, 조수 리사 등의 심리 묘사만큼은 유쾌하고 재미있습니다. 여성 작가인 덕분인지 확실히 심리 묘사의 디테일은 뛰어납니다. 다양한 쿠키들에 대한 레시피도 읽는 재미를 더해주고요. 미스터리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입문자 분들이 가볍게 읽기에 적당한 분위기와 내용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이네요.

하지만 이런 건 미스터리와 관계가 멀죠. 추리적인 요소가 들어간 로맨스 소설에 가깝기에 별점은 1.5점입니다. 이 시리즈를 더 읽을 일은 없을 겁니다. 참고로 제목과는 다르게 초콜릿칩 쿠키 역시 살인사건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감점 요소였습니다.

2016/02/05

탐정 매뉴얼 - 제더다이어 베리 / 이경아 : 별점 3점

탐정 매뉴얼 - 6점
제더다이어 베리 지음, 이경아 옮김/엘릭시르

주인공 언윈은 비가 그치지 않는 이름 없는 도시를 지키는 탐정 회사의 서기. 자신의 일에 만족하며 살아가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탐정으로 승진했다는 통보를 받는다. 언윈은 일을 바로잡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상사가 살해되고 회사를 대표하는 명탐정이 실종되면서 점점 종잡을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리고 마는데… (책 소개 인용)

제목과 수상 경력 (2009년 대실 해밋 상과 크로퍼드 환상 문학상)만 보고 별 생각없이 읽기 시작한 작품.
솔직히 처음은 무척 지루했습니다. 현실이 아닌, 판타지에 기인한 세계관에서 펼쳐지는 독특한 '모험물'인데 너무 복잡하게 꼬아놓아서 어렵고 복잡했거든요. 다 읽는데 3일이나 걸렸네요.

그래도 다행히 중반 이후부터는 상당히 흥미롭게 진행되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설정과 분위기를 익혀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그런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죠.
특히나 마지막에 관리관 아서와 대결을 펼치는 장면에서 선보인, 이 세계관의 핵심 설정인 "꿈의 탐정술"을 활용한 정교한 두뇌 게임이 아주 기가 막혔습니다. 이 "꿈 탐정"이라는 설정은 <파프리카>가 살짝 떠올랐는데 단지 "꿈과 현실이 뒤섞인다"라는 발상을 1차원적으로 접근한 <파프리카>보다는 장자의 호접지몽을 그럴듯하게 풀어낸 이 작품의 클라이막스가 훨씬 좋았어요.

또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세계관과 그에 대한 묘사도 아주 매력적으로 여태까지 발표되었던 온갖 장르물에 등장한 설정을 재구성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철저하게 세분화되고 조직화된 탐정 회사의 묘사는 <브라질>이 떠오르고, 칼리가리의 카니발과 꿈과 현실이 모호한 상태의 묘사는 앞서 말씀드린 <파프리카>를 비롯한 콘 사토시 감독의 애니메이션이 떠올랐어요. 그 외의 설정과 묘사 모두 장르문학 팬이라면 무척 친숙한 느낌을 받았고요. 하지만 그냥 베낀게 아니라 작품에 잘 녹아들도록 '재구성' 했기에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야말로 '온고지신'이랄까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재미있게 읽기는 했습니다만 앞서 말씀드린대로 추리물로 보기는 어렵고 약간 초기 진입 장벽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게 있어서 선뜻 권해드리기는 어렵네요. 초반 설정과 분위기는 <모모>나 <위고 캬브레>가 살짝 연상되었는데 이렇게 어른을 위한 동화 스타일로 조금 더 쉽게 써 주었더라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덧붙여, 콘 사토시 스타일로 영상화하면 최고일 듯 한데 콘 사토시 감독이 고인이 되신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2016/02/03

음식으로 읽는 한국 생활사 - 윤덕노 : 별점 2.5점

윤덕노 씨의 음식 문화사 책으로 저자의 구작들과 비교해 볼 때 보다 역사에 기반한 이야기가 많다는 것이 차이점입니다.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사료들을 통해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일단, 저자의 박식함에는 경탄을 금할 수가 없네요. "주례"와 같이 유명 서적도 있지만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다양한 책들, 예를 들면 고종 때 영의정을 지냈다는 임유원의 "임하필기" 등을 인용하는 식이니까요. 우리나라와 중국 고문서 중 음식 관련 이야기만 쉽게 검색할 수 있는 저자만의 DB가 있는 것일까요? 여튼, 덕분에 자료적인 가치는 빼어납니다.

하지만 저자의 구작들 대비 재미는 조금 처집니다. 이야기가 딱딱하고 그냥 '음식'에 대한 이야기들인 탓입니다. 이전 저서들은 음식 관련 '잡학'에 가까웠다면 이 책은 '미시사' 서적에 가깝다는 형식적인 부분도 지루함에 한 몫하고요.

게다가 마지막 페이지에 수록된 한성 김치 광고는 정말 깼습니다. 돈 주고 산 독자를 모독하는 거나 다름없어요. 이게 한두 푼짜리 책도 아니고 왜 독자가 광고지가 포함된 책을 돈 주고 사서 봐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네요. 비록 한 장밖에는 안 되지만 충분히 감점 요소입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음식의 가짓수를 줄이고 조금 더 사료적인 것을 보강하던가, 아니면 단순히 사료 기반이 아니라 조금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추가했더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

덧붙여, 무려 100개나 되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기에 마음에 들었던 이야기를 요약하기도 쉽지 않습니다만, 몇 가지 기억에 남는건 아래와 같습니다.

배춧국. 북촌 양반의 가을 별미

예전 무교동의 배춧국은 청진동 선짓국 못지않게 서울의 한량들에게 해장국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중 유명했던 것이 일제강점기에 나온 "해동죽지"라는 책에서 조선 팔도의 별미 중 하나로 꼽은 효종갱이라는 배춧국이다. 지금은 낯선 이름이 된 이 배춧국은 경기도 광주의 남한산성 아랫마을에서 하루 종일 배춧국을 끓여 항아리에 담아서 밤새 한양으로 올려 보내면 새벽종이 울릴 무렵 북촌의 양반집에 도착하였다고 해서 "새벽종이 울릴 때 먹는 국"이라는 뜻의 효종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해동죽지"에 있는 설명대로의 재료와 레시피는 '배추속대인 노란 고갱이를 주재료로 콩나물, 송이버섯, 표고버섯, 소갈비, 양지머리, 해삼과 전복을 넣고 토장을 풀어 하루 종일 끓인다.'

보신탕. 한국인은 왜 보신탕을 먹을까?

가장 큰 이유는 고대에는 개고기가 좋은 식품이었기 때문이다. 춘추전국시대 왕과 귀족의 어록을 모아 놓은 "국어"에 따르면 월나라 왕 구천이 오나라에 복수하려고 군사력을 키우면서 백성들에게 출산을 장려하였다. 남자아이는 술 두 병에 개고기를, 여자아이는 술 두 병에 돼지고기를 출산 장려금으로 지급하였다. 돼지고기보다 개고기를 더 귀하게 여겼다는 증거이다. 주나라 때 예법을 적은 "주례"에도 개고기가 말, 소, 양, 돼지, 닭과 함께 제왕이 먹는 여섯 가지 고기 중의 하나로 포함돼 있다.

생태찌개. 장작더미보다 흔했던 명태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임유원의 "임하필기"라는 문집에는 "함경도 원산을 지나다 명태 쌓여 있는 것을 보았는데 마치 한강에 땔나무를 쌓아놓은 것처럼 많아서 그 숫자를 헤아릴 수조차 없다"고 적었다. 허나 지금은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예전처럼 찾아보기는 어렵다. 마침 이유원의 "임하필기"에 민정중이라는 사람이 "지금은 명태가 땔나무처럼 많지만 300년 후에는 이 생선이 지금보다 귀해질 것"이라고 예견했다는 기록이 있다. 민정중은 숙종 때 좌의정을 지낸 인물로 1692년에 사망했으니 그의 예언이 맞은 셈. 신기하다.

준치. 준치를 맛보면 다른 생선은 모두 가짜

"썩어도 준치"의 준치. 준치의 한자 이름은 여럿이 있지만 그중 하나가 진짜 생선이라는 뜻의 "진어"로 맛으로 보면 준치만이 진짜 생선이라는 것이다, 다른 이름은 물고기 어 변에 때 시자를 쓰는 "시어"로 제철이 명확하기 때문에 생긴 이름. 맛이 좋은 데다 아무 때나 맛볼 수 없는 생선이니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시어를 고대의 산해진미인 팔진미 중 하나로 꼽았다. 산해진미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흔히 곰 발바닥, 낙타 등, 사슴 꼬리, 바다제비 집, 상어 지느러미, 시어를 꼽았다.

중국에서는 시어를 미녀에 빗대어 비유하기도 했다. 중국의 4대 미인은 양귀비, 서시, 초선, 왕소군을 꼽는데 시어는 바로 "물속의 서시"라고 한 것. 생김새가 아닌 맛을 기준으로 꼽은 것인데 황하에서 잡히는 잉어, 이수의 방어, 송강의 농어, 그리고 양자강의 시어다. 중국에서는 양자강의 시어를 최고라고 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한강의 시어를 가장 맛있다고 했다.

농어회. 역사상 가장 맛있는 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생선은 무엇일까? 동서고금을 통틀어 볼 때 아마 농어일 듯. 고향의 농어회가 먹고 싶다며 높은 벼슬마저 팽개치고 낙향을 한 사람 - 4세기 무렵 중국 진나라의 재상이던 장한 - 이 있는가 하면 온갖 진수성찬에 입맛이 길들여진 황제마저 농어를 먹고는 맛있다며 젓가락을 놓지 못했다고 하니 말이다.

그중에서도 최고는 금제옥회. 수나라 양제가 순시 여행 중 쑤저우 근처에서 먹은 요리. 금처럼 빛나는 양념장인 금제와 회로 뜬 농어의 살이 옥처럼 하얗다고 해서 옥회라고 부른 것에서 생긴 이름이다. 사실 수양제가 맛보기 이전부터 있던 요리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농업서인 "제민요술"에 금제라는 양념장을 만드는 법이 실려 있다.

금제는 여덟 가지 맛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뜻에서 팔화제라고도 하는데 마늘과 생강, 소금, 좁쌀, 멥쌀, 소금에 절인 백매(白梅)를 귤껍질과 함께 장에 버무려 만든다. 횟감이 없으면 쏘가리로 대신하는 것도 가능하다.

파김치. 왜 하필 '파김치가 됐다'고 했을까?

싱싱한 파는 꼿꼿하게 힘이 들어가 있고 다듬어 놓아도 빳빳한데 김치가 되면 축 늘어지기 때문. 고문헌을 찾아보면 늦어도 18세기에는 '파김치가 됐다'는 표현이 보인다. 정조 때 규장각 검서관을 지낸 실학자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 피곤한 모습을 파김치에 빗대어 묘사한 표현이 보인다. 18세기 초반까지 살았던 권상하의 문집 "한수재집"에도 파김치라는 표현이 수록되어 있다.

오이. 과년한 딸과 오이의 상관관계

'과년한 딸자식이 있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과過년'으로 나이가 들어 혼기를 놓쳤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과년(瓜年)한 딸'로 한창 나이, 결혼 적령기의 딸이라는 뜻이다. 과는 오이라는 한자인데 오이와 여자 나이가 무슨 관계가 있다고 과년을 결혼 적령기라고 한 것일까?

오이 '과'라는 한자의 가운데를 칼로 자르듯 반을 자르면 팔(八)과 팔(八)로 나누어진다. 여덟이 둘이니 더하면 열여섯이다. 그러니까 이팔청춘 열여섯 살이 바로 과년이다. 성춘향이 이도령과 사랑을 속삭인 때와 동일하다.

2016/02/01

홀리랜드 1~18 - 모리 코지 : 별점 2.5점

홀리랜드 18 - 6점
모리 코지 지음/학산문화사(만화)

그간 격조했네요. 설 전에 고향에 다녀오느라... 오랫만에 리뷰 남깁니다.

이 작품은 처음 접한 게 10년도 더 전이었습니다. 완결까지 읽지는 못하고 놓고 있던 차에, 우연찮게 읽고 싶어져서 완독하였습니다. 

내용은 흔해 빠졌습니다. 왕따가 짱이 된다는 이야기니까요. 하지만 실제 격투기에 대한 세세한 정보를 만화에 잘 녹여내어 차별화하고 있습니다. 작가가 실제 격투기를 수련했던 경험을 톡톡히 살린 셈이지요. 10여 년 전 불었던 이종격투기 인기도 잘 활용했고요.

뻔한 내용도 긴 호흡으로 잘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거리의 카리스마 이자와 마사키가 주인공의 조력자이자 진정한 끝판왕으로 존재하고, 주인공 카미시로 유우가 계속된 수련을 거쳐 결국 이자와 마사키를 쓰러트리는데, 이를 중간중간에 도전하는 다양한 격투가들과의 1:1 승부를 곁들여 흥미와 재미를 유지시키거든요. 이자와 마사키가 쓰러진 뒤에라도 또 다른 강자들이 얼마든지 등장할 수 있고, 이 경우 파워 인플레 역시 걷잡을 수 없었을 텐데 마무리도 적절했습니다. 요새 같은 세상에 끝내야 할 때 끝내는 것은 정말이지 미덕이니까요. 다만 마지막의 "킹"은 완전 사족 느낌이라 별로이긴 했습니다.

대부분의 학원 폭력물들처럼 폭력을 미화하지 않는다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결국 거리에서 서로 싸워서 뭔가 증명하려 해 봤자 한때일 뿐, 결국 거리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 작품의 주제인데 확실히 와 닿더라고요.

그러나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캐릭터의 매력과 설득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겁니다. 주인공 카미시로 유우는 수련(?)으로 강자가 되는 왕따의 스테레오 타입 그 자체라서 설정부터 지루합니다. 강해진 뒤에도 왕따일 때의 순진함과 나약함을 지니고 있다는건 납득하기 어려웠고요.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스즈란 고교의 깡패들같이 폭력과 강함을 숭배하는 것이 당연하잖아요? 이런 점에서는 강함에 대한 동경, 유우에 대한 질투로 무너져 가는 친구 가라데카 쇼고가 더 매력적이었습니다.
그 외의 등장인물들, 마사키 동생 마이는 왜 나오는지도 잘 모르겠고, 친구 신이치 역시 싸움은 못하면서 주인공 옆에 붙어다니는 전형적인 떨거지라 별다른 매력을 느끼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단점이 없는건 아니지만 리얼 학원 폭력물(?)이라는 독특함은 독보적이라 충분히 가치는 있습니다. 분량도 적절하고요.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께서는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좀 오래되기는 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