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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2

문호의 식채 - 미부 아츠시 / 혼죠 케이 : 별점 2.5점

문호의 식채 - 6점
미부 아츠시 원작, 혼죠 케이 그림/대원씨아이(만화)

독신 기자 카와나카 케이조가 본사 정치부에서 후카가와 지국으로 좌천된 후, 메이지 시대 일본 문호가 즐겼던 음식을 소개하고 그에 얽힌 드라마를 탐구하는 기획 기사를 쓴다는 내용의 연작 단편 만화입니다. 총 6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등장하는 요리는 별로 대단치 않지만 해당 요리가 작가가 남긴 작품, 그리고 작가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에 대한 시선이 생각보다 깊이가 있어서 놀랐습니다.

문제라면 등장하는 작품들이 별로 친숙하지 않다는 겁니다. 작가들도 반 정도 - 나츠메 소세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다자이 오사무 - 를 제외하면 모르는 작가들이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만, 여러모로 색다른 식도락 만화로써 한번 읽어볼 만한 가치는 충분합니다. 일본 근대 작가들에 대한 공부가 뒷받침 된다면, 즐길 거리가 더 많을 것 같네요.

덧붙이자면, 후속권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만약 나온다면 좀 더 친숙한 작가가 등장해 주면 좋겠습니다. 이왕이면 추리작가로 말이죠.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작가와 작품, 요리는 아래와 같습니다.

나츠메 소세키 "도련님" 모미지 야키 

마돈나로 대표되는 가짜 서양식, 가짜 근대의 대척점에 있는 유모 키요를 상징하는게 모미지 야키라는 내용입니다. 가짜 근대화에 경종을 울리기 위함이라는 해석인데 꽤 그럴듯합니다.

마사오카 시키 "앙와만록" 한 끼 식사. 

"앙와만록"은 먹는 것, 심지어 싸는 것까지 디테일하게 기록한 시키 만년의 일기라고 합니다. 누워서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작가가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살아 있는 것이다'는 것을 상기하며,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썼다는 식으로 풀어가는데 깊은 울림을 전해 주네요. 

재료를 따지거나 화려함보다는 소박한 밥상을 추구한 삶은 하이쿠에서 기교를 거부한 시키의 작품과도 닮았다고 하는데 과연 어떤 작품을 발표했는지도 궁금해지고요. 조금 찾아보니, "고추잠자리, 추쿠바에 구름도, 한 점 없구나" "어린 연어가, 둘로 나위어, 오르는구나" 등의 시가 검색됩니다. 형식에 집착한 하이쿠에서 현실을 본 그대로, 느낀 그대로 시로 표현해 나간 최초의 인물이라고 하는군요. 운율과 발음 모두 굉장히 일본적인 시라 한국어로 번역하면 여러모로 애매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새로운 시대를 열은 인물임에는 분명해 보입니다.

히구치 이치요 "탁류" 카스텔라 

이 시리즈의 또다른 주제인 "작가가 먹었던, 혹은 작품 속에 등장한 음식은 무엇인가?"에 가장 충실했던 에피소드입니다. 약간 식탐정스러운 분위기와도 일맥상통합니다. '히구치 이치요가 다녔던 학교 선배가 쓴 소설 속에 등장한 카스텔라는 "후게츠도 (風月堂)"의 것으로 아마 히구치 이치요도 먹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탁류"의 주인공인 창부 오리키가 산 카스텔라는 후게츠도의 것과 같은 고급이 아닌 빈민가에서 팔았을 "닌교야키" 였을 것이다'라는 일종의 추리가 등장하는 덕분입니다. 그냥 허튼 소리도 아닙니다. 가게 이름은 모르겠지만, 이치요 사후 그녀의 집에 하숙한 소세키의 제자 모리타 이치요에 따르면 축제날 근처에 닌교야키 포장마차가 와 있었다는 글을 남겼다는 식으로 증거에도 충실하거든요. 이 정도면 한편의 짤막한 추리 꽁트로 보아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가이 카후 "단장정일승" 비프 스튜, 치킨 리버 크레올 (애리조나 키친), 카시와 남반 (오와리야), 야나가와 나베, 누타, 초시 1병 (이다야), 돈가스 덮밥, 오신코, 초시 1병 (다이코쿠야) 

이른바 '단골'이라는 것에 대한 정의가 신선합니다. 항상 똑같은 자리에 앉아 별다르게 주문하지 않아도 똑같은 음식이 나오는, 그게 단골이고 편하다는 논리는 꽤 새로왔어요. 나이든 카후가 기름진 음식을 고집한 이유, 즉 젊은 시절의 노스탤지어라는 것도 나쁘지 않은 해석이고요.

하지만 이러한 논리와 해석보다 이 에피소드가 중요한 것은 유일하게 등장하는 모든 음식을 아직 남아있는 가게에서 먹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재현' 측면에서 그야말로 압도적이죠. 언제 일본을 또 가게될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나 기회가 된다면 '애리조나 키친'은 한번 가 보고 싶습니다.

그러고보니 "술 한잔 인생 한입"에서도 소다츠가 카후의 식도락 순례를 똑같이 하던 에피소드도 떠오르네요. 거기서는 '나가이 가후'라고 소개되었지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혼죠 료코쿠" 쿠즈모치 (후나바시야) 

굉장히 짤막한 내용입니다. 수필 "혼죠 료코쿠"는 아쿠타가와가 자살 2개월 전 마지막 작품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작품 치고는 묘하게 밝다고 하네요. 여기서의 해석은 어린 시절, 정든 고향을 떠올리며 쓴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겁니다. 등장하는 음식점이 아직도 실존하고 있어서 찾아가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은 나가이 카후 에피소드와도 같고요. 단, 멧돼지 전골 등 딱히 땡기는 음식이 아니라는 차이점은 있습니다. 그냥저냥한 평작입니다.

다자이 오사무 "비잔" 비잔 세트 (장어 덮밥 세트) (와카마츠야) 

다자이 오사무는 그 속마음을 당쵀 알 수 없는 작가라는 결론이 전부였던 작품. 상당히 허무했습니다. 다른 에피소드에 비하면 내용과 깊이 모두 찾아보기 어렵고요. 다자이 오사무라는 유명 작가를 등장시키기 위한 목적 외의 가치를 찾아보기는 힘들었습니다. 이 책 수록작 중에서 워스트입니다.

2024/01/12

일본 현지 아이스크림 대백과 - 아이스맨 후쿠토메 / 김정원 : 별점 1.5점

일본 현지 아이스크림 대백과 - 4점
아이스맨 후쿠토메 지음, 김정원 옮김/클

일본의 대형 제과사의 시판 제품이 아닌, 현지 밀착형 아이스크림 제품을 소개하고 있는 도감. 사진 중심이며 동일 제품의 다양한 변주를 함께 묶어 소개하는 구성 등 모든 점에서 같은 시리즈인 "일본 현지 빵 대백과"(이하 "빵 대백과")와 동일합니다. 

하지만 "빵 대백과" 보다는 별로였습니다. 소개되는 아이스크림들에 대해서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는게 가장 큽니다. 빵은 우리나라에서는 접하기 힘들고, 맛이 궁금한 빵들이 많았는데 여기 소개된 아이스크림들은 대체로 맛이 예상이 되었던 탓도 큽니다. 예를 들어 아래 나가사키의 카스텔라와 아이스크림을 결합한 카스텔라 아이스크림은 분명 맛있겠지만, 그 맛은 충분히 짐작이 되거든요. 저렴한 카스텔라와 투게더 아이스크림으로 비스무레하게 만들 수도 있을테고요.


상당한 분량으로 소개되는 아이스모나카는 '싸만코' 맛과 별로 다르지 않아 보였습니다. 빙수들도 마찬가지고요. 맛이 쉽게 연상되지 않는건 아래의 철 아이스 정도입니다만, 그리 먹고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네요.



또 "빵 대백과"는 삼각 샌드위치를 대각선 45도로 컷팅한 이유 등 여러가지 빵들의 탄생 비화와 같은 역사와 정보도 여러가지 알려주었던 반면, 이 책은 단순히 지역 특산품 소개에 그칩니다. 기대했던 정보는 말차가 들어간 소프트 아이스크림의 원조가 아래 스이교쿠엔의 '그린소프트'라는 것 정도 뿐이었습니다

소개되는 가게와 아이스크림들이 일본 지방에 특화되어 있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가고 싶어도 가기 힘든 곳들이 대부분이니까요. "빵 대백과"처럼 도쿄 중심의 가게도 몇 군데 소개해주는게 훨씬 좋았을겁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특정 분야에 특화된 도감임에도 불구하고, 제공하는 정보가 별로 매력적이지 못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그래도 휴양지 오키나와라면 한 번 가 볼 만하다 싶은데, 언젠가 가게되면 아래의 히가시 식당, 후지야는 꼭 들려볼 생각입니다. 마리야 유업 제품도 먹어보고요. 그게 과연 언제가 될지.....

2023/06/09

All of panpanya

최근 푹 빠진 작가 panpanya의 국내 소개된 작품 8편을 모두 완독하였습니다. 제 순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주먹밥이 굴러가는 마을>> (5)
  2. <<두 번째 금붕어>> (4)
  3. <<동물들>>, <<구아바노 홀리데이>>, <<게에게 홀려서>>, <<물고기 사회>> (3)
  4. <<침어>> (2.5)
  5. <<아시즈리 수족관>> (1.5) 
전권 평균 별점이 3점 이상이라니 놀랍네요. 
완독 기념으로 전권 리뷰를 올립니다. 상세한 내용은 아래를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시즈리 수족관 - 4점
panpanya 지음/미우(대원씨아이)

초기작 중심 단편집. 작화는 안정되어 있지 못합니다. 편안함과 거침이 공존하고 있어요. 특유의 부드럽고 편안한 그림체가 아닌, 정석적인 만화식 펜 드로잉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몇 편 수록되어 있는게 특이했습니다. 뎃생력은 영 아니었습니다만.
수록작은 기묘한 수족관, 기묘한 상점가, 기묘한 박물관, 두 번째 교토 타워와 같은 비현실적인 공간을 방문한 방문기가 많습니다. 심지어 프랑스까지 가서 망자의 거리를 방문할 정도입니다. 환상적인 공간 구성을 보여주기는 하는데, 문제는 대부분 '우연히' 그 곳에 가서 기묘한 공간을 보고 올 뿐 특별히 기승전결이 갖추어진 완성된 이야기가 없다는 점입니다. 설정이 치밀하지 않고 기존 작품들의 재구성이나 패러디가 많아서 신선함도 부족하고요.
그나마 이야기로 볼 수 있는건 <<심부름>> 정도입니다. 어머니가 써 준 심부름 메모에서 알 수 없는 글자로 쓰여진걸 사기 위해 없는게 없다는 완전 상점가 까지 여정을 떠나 알지도 못하는 무언가를 구입해 온다는 이야기죠. 

주인공의 기묘한 착안에 따른 노력과 그 결과를 보여주는 특유의 매력 포인트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자판기 안에 동물들이 들어가 움직인다는걸 알고 나서, 전기의 힘으로 움직이는 자동 자판기를 자유연구 과제로 제출하여 동물들에게 자유를 선사한다는 <<자판기>> 정도만이 기대에 값합니다.
그 외에는 수족관에서 보여줄 물고기를 잡으러 떠나는 이야기로 주인공을 구하고 격류에 휩쓸린 레오나르도가 물고기가 되어 돌아온다는 결말의 <<너의 물고기>>가 눈여겨볼만 했습니다. 딱히 재미가 있던건 아니지만, 파트너 레오나르도가 첫 등장한다는 점에서 말이지요.
반면 제목의 수록작이야말로 일종의 맥거핀에 가깝습니다. 열 페이지도 안되는 짤막한 작품으로 별 비중은 없거든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기대와 전혀 달랐고, 습작 수준의 수록작도 많아서 점수를 줄 여지가 없습니다. 팬이 아니시라면 구태여 구해 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침어 - 6점
panpanya 저자/미우(대원씨아이)

단편보다 짧은, 쇼트쇼트라 부를 만한 초단편이 많이 수록된게 특징. 
벌 서면서 이런저런 새로운 걸 깨닫는다는 <<벌 서는 법>>, 일상 속 이야기를 짧은 분량 안에서 무려 12년에 걸쳐 빌드업하고, 평범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끝맺는 <<가로수의 순서>> 등이 기억에 남습니다. 비교적 긴 이야기로는, 비가 올락말락 하다가 갑작스럽게 폭우가 쏟아질 때 우연히 만난 개구리 덕분에 무사히 귀가한다는 <<비 오는 날>>이 기묘하면서 따뜻하고 서정적인 느낌이라 좋았고요.

표제작, 그리고 젤리같은 물고기 뉴 피시의 정체를 밝히는 과정을 그린 <<뉴 피시> 두 작품은 '물고기'를 주 소재로 삼은 단편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뉴 피시>>는 물고기들이 살기 위해 만들어낸 식품이었는데, 맛이 없어서 외면받았지만 주인공 활약으로 기사회생하게 된다는 내용이고, 표제작은 전설의 편안한 오더메이드 베개 '침어'의 존재를 알고 쿠슈 카고시마로 떠난 주인공과 레오나르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너무 편안해서 베개로 쓰이던 물고기 '침어'는 실존했습니다. 그러나 하룻밤 베고나면 죽어버려서 (물밖에 나와 하룻밤이 지나게 되니까), 그것과 최대한 비슷하게 베개를 만든게 현재의 '침어'였습니다. '침어' 베개를 구입한 주인공은 운 좋게 해변에서 진짜 침어를 한 마리 주웠고, 그래서 가끔 침어에 얼굴을 파묻곤 한다는 결말로 끝나는데,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일상 이야기처럼 펼쳐놓는 전개가 매력적이었습니다. 수록작 중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반면 신주쿠 지하의 이상한 공간에서 피자 만두를 찾는 <<지하답사>>는 제법 길지만, 작화나 전개 모두 초기작 느낌으로 <<아시즈리 수족관>>과 비슷하더군요. 솔직히 별로였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아직은 스타일이 완성되지 않았기에 감점합니다만, 볼 만한 작품도 제법 많았습니다.


두 번째 금붕어 - 8점
panpanya 지음/미우(대원씨아이)

'연구'를 바탕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가 많다는게 특징. 소재도 다양합니다. <<멜로디>>는 저녁이 되면 마을에 울려퍼지는 음악의 정체가 무엇인지 찾아나서는 이야기입니다. 어디서 울려퍼지는지를 찾아내기 위해 고민해서 아이디어를 짜내는 과정도 재미있고, 결국 찾아낸 음악의 정체도 기발했어요. '숨바꼭질'을 잘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와 고민이 펼쳐지는 <<숨바꼭질의 주의사항>>, 매미 소리를 겨울에 틀면 따뜻함을 느낄지도 모른다는 <<계절 보내는 법>>, 완벽한 등교길에 대해 연구한 결과를 펼쳐보이는 <<통학로의 소양>> 등도 모두 독특하고요. 그 외에도 소품 서랍을 정리하는 방법, 풍선 편지를 개조했더니 영원히 날게 될 지도 모르는 물건이 되었다는 등 다른 수록작들도 갖가지 분야에 대한 연구와 고민을 망라하여 선보여줍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주인공이 항상 무언가를 깨닫거나 익히고 끝나는데, 그게 예상대로 흘러가지만은 않는다는 것도 재미요소였어요.

연구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상 생활 속 사물에 대한 독특한 고민을 보여주는 작품도 많습니다. 전자동 부적 제작 기계가 어떻게 '공덕'을 부여 받는지를 그려낸 <<길흉화복 챙기기>>는 정말 생각도 못했던 전개를 보여줍니다. 해변의 집과 해수욕장의 시즌 오프 방법이 등장하는 <<바다 폐장하는 법>>도 그러하고요.

학교에서 키우던 금붕어를 잃어버린 뒤 새로운 금붕어를 구입하러 나서는 표제작은 그닥이었지만, 전체적으로 panpanya의 독특함과 기발함을 한껏 만끽할 수 있는 좋은 단편집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구야바노 홀리데이 - 6점
panpanya 지음, 장지연 옮김/미우(대원씨아이)

단편집이기는 한데, 무려 3부작 여행기 <<구야바노 홀리데이>>가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
표제작 외에는 작가의 다른 단편들처럼 뭔가를 만들고, 찾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엉터리 일기술>>, <<비교 비둘기학 입문>>, <<부호>> 등 일상에 밀착해 있는 이야기가 많다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일상 속에서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린다는건 분명 대단한 재능이라 생각됩니다. <<고구마 줄기 원더랜드>>는 는 고구마를 캐면서 땅 속을 헤집고 다닌 끝에 진짜 맛있는 군고구마를 알게되지만, 다시 캐 낼 수는 없게 되었다는 다소 환상적인 이야기인데, 결말만큼은 현실적이라는게 인상적이었고요.

그런데 표제작은 구야바노를 찾기 위해 필리핀을 간 여행기라 달리 기발한 상상력이 발휘되고 있지는 못해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바라보는 시각이 독특해서 재미있기는 했는데, 작가의 특징이 온전히 발휘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게에게 홀려서 - 6점
panpanya 지음/미우(대원씨아이)

기묘한 반전들이 있는 작품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는게 특징. 
워싱턴 조약에 위배되는 왕도룡뇽을 키우다가 아마존으로 가서 놓아주지만, 알고보니 왕도룡뇽은 일본 원산의 고유종이었다는 <<왕도룡뇽 사건>>처럼요. 최고는 완벽한 일요일을 보내기 위해 토요일 하루를 온전히 일요일 준비에 바치는 <<perfect sunday>>입니다. 완벽한 일요일을 위해 온갖 기계 장치를 만들고, 일요일 산책 코스까지 사전에 답사하는 등 준비를 마치지만 '소풍은 당일보다 전날 준비와 저녁이 더 설레었던 것 같다'는걸 깨닫고, 알고보니 그 날이 일요일이었다는 반전, 다행히 다음날도 공휴일이었다는 반전이 계속 이어집니다.
 
쇼트쇼트 중에서는 <<decoy>>가 기억에 남습니다. 호수에 띄워놓은 가짜 나무 오리를 디코이라고 하는데, 동료로 착각하고 찾아온 오리를 그리는 사람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림을 계속 그러다보니 수면을 잘 그리게 되있다는 다소 황당한 결말로 끝납니다.
암흑 전골 세트가 초심자 용이 있었다는 <<전골>>, 파인애플이 어떻게 열리는지 몰라 조사하러 나섰지만 결국 사실을 알아내지 못한다는 <<파인애플을 모르신다>>, 살아있는 돌고래 계산기가 리만 가설을 풀어낸다는 <<계산기의 마음>>도 재미있었고요. 인터넷에서 먼저 유명해진, 단무지만드는 프라모델이 나오는 <<DANMUJI DREAM>>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다만 별다른 내용이 없었던 표제작이나, 전철에서 몸을 두고 내린다는 등으로 비교적 평이한 발상의 이야기도 수록되어 있어서 수록작별로 재미와 수준에 있어 다소 편차가 있습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동물들 - 8점
panpanya 지음/미우(대원씨아이)

앞 부분은 일상 생활을 소재로 - 특히 이사에 대해서 - 에서 지극히 평범하지만 비현실적인 느낌을 전해주는 단편들이, 뒤에는 제목에 걸맞게 붉은귀 거북이라던가, 야생동물 마미와 같은 동물들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중 주인공을 쫓아다니는 동물 마미에 대해 그려낸 <<마미>>는 panpanya 작품 치고는 꽤 큰 스케일 - 일종의 대형 로봇까지 등장하는 등 - 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반면 <<무지나>>는 마미와 똑같은 동물인 무지나가 등장하는데, <<마미>>와는 다르게 일상과 결합된 전개를 보여준다는게 재미있었어요. 주인공이 무지나를 구해주자, 무지나는 은혜를 갚기위해 도토리를 가져오고 주인공이 도토리로 빵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는 식으로 전개되거든요. 같은 동물로 정 반대 분위기의 이야기를 그려낸, 일종의 '빛과 그림자'인 셈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일상계 쪽이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다른 작품들도 panpanya 특유의 상상력과 기발함이 가득하며, 뒤에 용어집이 수록되어 있는 등의 디테일도 좋았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주먹밥이 굴러가는 마을 - 10점
panpanya 지음, 장지연 옮김/미우(대원씨아이)

환상의 동물 츠치노코를 발견하고 난 뒤 생활을 그린 <<츠치노코 발견하다>>, 츠쿠바산 관광 이벤트에 당첨되어 말하는 여행권과 함께 투어를 떠나는 꽤나 긴 이야기인 <<츠쿠바산 관광 불안내>>, 쓰레기도 돈을 주고 사는 상점에 대한 <<도가니>>는 기발한 상상력을 토대로 한 가공의 세계관을 재미나게 묘사한 작품들입니다.
표제작인 <<주먹밥이 굴러가는 마을>>은 주먹밥이 굴러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연구하는 내용인데, 비현실적인 설정을 일상과 결합하고, 그것을 '연구'하면 어떤 결과물이 될까?에 대해 상상력을 발휘한 작품이고요.
언덕 위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올라가는 <<거기에 언덕이 있으니까>>와 카스텔라풍 찜케이크의 맛에 빠져 잘 수급되지 않는 찜케이크 확보를 위해 노력하는 <<카스텔라풍 찜케이크 이야기>>는 일상의 디테일을 극대화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끔 등장하는 짤막한 일기도 이러한 일상성을 강화시켜 주는 역할을 합니다.
환상, 기발한 설정, 연구, 일상 등 panpanya의 대표적인 매력 포인트를 잘 알려주는 좋은 작품집입니다. 별점은 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엘리베이터와 케이블카의 차이가 뭘까요? 좌석이 있고 없고의 차이라고 하네요. <<츠쿠바산 관광 불안내>>에 나옵니다!


물고기 사회 - 6점
panpanya 지음, 장지연 옮김/미우(대원씨아이)

'일상'을 특별하게 그려내는 panpanya의 매력 포인트가 잘 살아있는 작품집. 
<<맞지않는 계절>>은 크리스마스 산타 썰매의 순록은 아르바이트였고, 썰매도 평상 시에는 주차 중이라는 독특한 일상성이 좋습니다. 일상과 환상의 결합을 보여준달까요. 기묘한 일상성이 돋보이는 작품들도 매력적이었어요. 여행을 갔다가 이상적인 기념품을 직접 만드는 <<선물의 마음가짐>>이 대표적입니다. 최애빵 '카스텔라 풍 찜 케이크'를 소재로 한 연작은 일상성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카스텔라 풍 찜 케이크 생산 종료를 앞두고 마지막 생산품을 구하기 위해 편도 2시간 반 걸려 3개를 확보한다던가 -서울에서 대전 정도를 가서 호두과자를 사온 느낌 -, 직접 만들기위해 다양한 연구를 거치고, 생산이 재개된 후 재 구입을 위해 발품을 팔다가 안정적인 주문 방법을 알아내는 과정을 담담하지만 매력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레시피 소개도 충실하고요. 한 번 만들어 보고 싶을 정도에요.


하지만 물고기가 진화하여 인간의 해산물 가공 공장을 인수하여 자체 통조림을 납품하게 된다는 표제작은 별로였습니다. 일상도 아니고, 환상으로 보기에는 상상력이 다소 부족했습니다. 일상 쪽에 집중하는게 더 나았을겁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20/09/26

카스테라와 카스텔라 사이 - 고영 : 별점 3.5점

카스테라와 카스텔라 사이 - 8점
고영 지음/포도밭출판사

'음식문헌 연구자 고영이 읽고 먹고 생각한 것들'이라는 부제대로, 음식문헌 연구자인 저자가 본인이 경험했고, 맛보았던 식문화먹거리에 대해 개인의 생각과 느낌을 풀어놓은 에세이 모음집입니다.

크게 "아, 침이 고인다"와 "떠나고 먹고 감각하다", 그리고 "온전한 밥 한 그릇"이라는 세 개의 대 분류로 구분됩니다.
이 중 "아, 침이 고인다"와 "떠나고 먹고 감각하다"에 식문화와 먹거리에 대한 정보 전달 측면에서 가치있는 글들이 많습니다. 마지막인 "온전한 밥 한 그릇"은 주로 저자의 '느낌'과 단상이 가득한, 에세이에 가까운 글들이 많고요. 

개인적으로는 앞의 두 주제가 훨씬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가 식문화, 먹거리에 대해 관심이 많은 탓이지요. 단순히 이미 널리 알려져있던 정보를 전달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저자가 음식문헌 연구자인 덕분에 본인의 연구가 바탕이 된, 깊이 있으면서도 새로운 내용이 많습니다. 대부분의 글들이 오래전 한시와 옛 문헌의 한 토막에서 시작한다는 점에서도 잘 알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제일 첫 글인 "융도, 두 자의 뭉클함"를 보자면, 김려가 남긴 서사시 "고시위장원경처심씨작"의 소개와 해설을 토대로 당시 먹거리에 대해 일람하다가 '융도'라는 두 글자에 주목합니다. 융도는 건국 초기 조선의 북쪽 끝, 여진과의 접경지대에서 나는 벼를 의미합니다. 이른바 조생종 벼인데, 보리를 먹어 치우고 벼를 수확하기 전 식량의 징검다리 역할과 냉해를 견디는 품종 확보를 목적으로 조선은 세종 때 도입 육종을 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고 소개합니다. 시 한 구절에서 이러한 전문적인 역사 관련 지식까지 풀어내는 그 식견이 사뭇 놀랍습니다.

이 책 덕분에 옛 문헌 속 이런저런 몰랐던 식문화와 먹거리에 대해 알게 된 것도 많습니다. 세종 때의 문헌 "산가요록"을 통해 우리에게는 일찍이 다양한 김치가 있었다는 소개처럼요. 복숭아 김치, 살구 김치, 수박 김치 등이 있었다는데, 그 맛이 사뭇 궁금해지네요.
일본 헤이안 시대 중기 수필집 "침초자"에 소개된 아마즈라와 13~14세기 원나라의 갈수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빙수의 원형 이야기, 제빙 기술이 발달하여 1910년대 조선에서도 여름에 얼음 띄운 화채나 빙수 먹기가 어렵지 않았다는 등의 이야기가 소개되는 빙수 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광수 소설 "무정"에서도 빙수를 먹으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널리 퍼졌었다는건 처음 알았네요.

개인적으로는 한국에서 와인에 대해 최초로 상세한 기록을 남긴 이기지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는 1720년 북경 천주당에서 와인을 맛보고 "소림과 대진현이 또 나를 어떤 방으로 이끌었다. 탁자에 수정병이 하나 있는데, 높이는 세 자(약 30.3cm)쯤이고 술이 떠 있는 듯 담겨 있었다. 술을 따라 내게 권하는데 술맛이 감미로우면서도 상쾌하고 이채로운 향이 코를 찔렀다. 마시고 난 다음에는 그저 조금 취기가 오를 뿐이고 취하지는 않았다."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호기심이 왕성했던 이기지가 이후 와인 제조법을 물어보아 남긴 기록을 보면, 이 와인은 '포트 와인' 이었습니다. 저자의 해석에 따르면 북경 천주당의 예수회 신부들이 먼 북경까지 포도주를 옮기기 위해 선택한 방법으로 설명됩니다. 도수가 높아야 쉽게 변질되지 않기 때문이라는데, 꽤 그럴듯하지요. 하지만 포트 와인은 높으면 도수가 20도를 넘어가는 제법 센 술이라 마시고 나면 취할텐데, 이기지는 술이 꽤 셌나 봅니다. 이 뒤 다른 자리에서 포도주 세 잔을 거푸 마셨지만 취하지 않았다고 하거든요.
저자의 글은 뒤에 조선 땅에 상륙한 여러가지 외국 술에 대한 글로 이어집니다. 각 글이 항목별로 분리가 되어 있기는 해도, 와인과 브랜디 등 각종 서양 술, 맥주, 사케와 정종, 청주 등의 일본 술,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 등이 어떻게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렀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이 항목만 따로 떼어 놓아도 충분히 가치있는 술에 대한 미시사 문헌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드네요. 그만큼 자료적 가치도 충분합니다.

익히 알고 있었지만 풍성한 사료를 통해 깊이를 더한 이야기들도 많습니다. "냉면 먹방"에서 소개되는 냉면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흔한 이야기이기는 한데 당대 여러 기사들을 통해 냉면 먹는 방법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조망해 주기 때문입니다. 단지 '겨울에 평양 냉면'을 먹었다는게 전부가 아닌 것이지요. 1936년 "조선중앙일보" 기사를 통해 '냉면 미각의 절정은 삼복 (더위) 이전' 임이 이미 널리 알려졌습니다. "매일신보" 1936년 기사에서도 여름 관청, 회사 점심시간이면 냉면집 전화통에는 불이 날 지경이라고 소개되었다고 하고요. 그러나 지금과 다른 점은, '경성 냉면은 평양 냉면의 연장에 지나지 않았으며', '냉면을 주문하면 20분은 기다릴 각오'를 했어야 한다는 부분입니다. 패스트 푸드가 아니었던 겁니다.

"소금 한 톨에 깃든 사연"을 통해 풀어놓는 우리나라 소금 산업의 역사도 흥미로왔습니다. 우리나라는 원래 굽는 방식의 제법을 사용하였는데, 일본이 조선 강점 시기에 한국 해안에 대단위 천일 염전을 조성한게 대단위 소금 산업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소금을 만드는 염호가 옛부터 고단하고, 노비나 군역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강해 중국 산동 출신 노동자를 대거 투입할 수 밖에 없었다네요. 이후 중국 노동자들의 파업, 퇴사 이후 1930년대에는 조선 노동자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고요. 고되고 힘든데다가 사회적 인식까지 부족한, 지금의 염전 노예 사건의 단초가 이렇게 일본에 의해 강제된 천일염 제조 산업 초창기부터 있었다는게 참 가슴 아픈 사실이네요.

그러나 이렇게 정보 전달 측면에서 우수하며, 많은걸 생각하게 해 주는 글들에 비해 저자의 느낌, 에세이에 가까운 글들은 좀 별로입니다. 저자의 생각 - 식문화와 먹거리는 빈부에 상관없이 평등해야 한다 - 도 옛 문헌을 통해 먹거리가 빈부에 따라 큰 격차를 보였다는걸 소개하면서, 이런 격차가 그나마 평등해진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식으로 알려주는데 비슷한 주장의 반복이 많은 편입니다. 이러한 격차가 현대에도 이어지는걸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는 바입니다만, 지나치게 과했어요.

그래서 별점은 3.5점입니다. 정보 전달 측면의 글들은 별점 4점도 아깝지 않으나, 비슷비슷한 에세이 류의 글로 약간 감점합니다. 저자의 음식 관련 미시사, 문화사 전문 서적이 있다면 읽어보고 싶네요.

2024/12/21

이세린 가이드 - 김정연 : 별점 2점

이세린 가이드 - 4점
김정연 지음/코난북스

"혼자를 기르는 법"을 그렸던 김정연 작가의 두 번째 만화로, 음식 모형 제작자 이세린의 이야기입니다. 이세린이 음식 모형을 만들며, 해당 음식과 관련된 기억과 감정을 떠올리며 독백 형식으로 전개되는 15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주로 가족과의 추억이라던가 현재의 고민,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찾는 과정이 펼쳐집니다. 

이 작품의 가장 눈에 띄는 장점은 다양한 음식 모형을 만드는 방법을 상세하게 알려준다는 점입니다. 라면 모형을 만들기 위해서, 시판되는 플라스틱 면에 열을 가하여 구불구불하게 만드는 등, 작가가 실제로 음식 모형을 만드는 일을 했던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디테일이 뛰어납니다. 
작가 특유의 다소 기발한 상상력도 볼거리입니다. 컬러칩에 자신만의 이름을 붙이는데, 음식 모형 제작가답게 '대만 카스텔라', '진도 구기자', '초당 두부' 등으로 이름을 붙이고 "올해의 색은 광천토굴 새우젓입니다!"라는 발표를 하는 상상을 하는 장면처럼요.
해당 음식이나 음식 모형과 관련된 소소한 에피소드들도 재미를 더합니다. 한국 라면이 매워진 이유가 박정희 대통령의 전화 한 통 때문이었다던가, 국회의사당 건축 당시 해태상 밑에 ‘노블 와인’ 200병을 묻었다는 이야기, 모카포트의 창안자인 비알레티의 유골함이 모카포트라는 사실 등 흥미로운 정보도 많아요. 그동안 음식 관련 책을 많이 읽어왔지만, 이렇게 새롭게 알게 되는 일화들이 계속 있는게 신기합니다.

하지만 단점도 존재합니다. 이 작품은 이세린 혼자만의 독백이 중심이라 드라마틱한 요소가 부족합니다. 그녀의 과거사와 가족사가 그려지기는 하지만, 극적인 재미를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여성 서사에 대해 많이 언급되었으나, 이 역시 뻔한 이야기로만 가득 차 있어 특별히 와닿지는 않았고요. 작화도 전작에 비하면 좀 별로였습니다.
무엇보다 음식 모형보다는 음식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기대했던 저에게는 많이 부족했습니다. 다수의 음식이 등장하지만, 마지막의 ‘주말 전골’ 에피소드를 제외하면 음식과 연계된 매력적인 이야기는 없다시피 하거든요. 모형 제작에 더 무게중심이 쏠려있는 탓입니다. 참고로 주말 전골은, 혼자 사는 독신 여성이 재료를 남기지 않고, 설겆이 거리도 최소화하면서 주말 하루를 차려 먹기 위해 고안한 것으로 냄비에 물과 장국을 넣은 뒤, 온갖 재료를 넣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끓여먹는 것입니다. "술 한잔 인생 한입"의 소다츠라면 정색을 할 요리라고 할 수 있지만, 여러모로 와 닿았어요.

결론적으로, “이세린 가이드”는 음식 모형 제작이라는 독창적인 소재와 이를 통해 엮인 감정적 서사를 담아냈으나, 극적인 재미와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실망스러울 작품입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2023/08/19

일본 현지 빵 대백과 - 타쓰미출판 편집부 / 수키 : 별점 3점

일본 현지 빵 대백과 - 6점
타쓰미출판 편집부 지음, 수키 옮김/클

제목 그대로 일본 전국 각지에 있는 여러 빵집들의 대표 빵과 특징적인 빵들을 모아 놓은 빵 사진 도감. 모두 264종의 빵이 소개됩니다. 맛있는 빵들이 가득하니 보는 것만으로도 무척 즐거웠습니다.

목차는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됩니다. 특정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소울빵', 똑같은 빵이지만 지역별로 변주가 이루어진 빵들, 현지인들에게 사랑받는 동네 빵집과 대표 빵, 전국 어디에나 있는 일본의 대표빵으로요.

인상적이었던 건 일본의 크림 빵들은 크림이 정말 가득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식빵을 쓰는 크림빵들도 테두리까지 크림이 발라져 있던데, 이런건 많이 부러웠습니다.
여러가지 빵들의 탄생 비화 (?) 등 빵들의 역사가 소개되는 부분도 재미있었어요. 모리오카 시의 후쿠다 빵집에서는 50여가지의 크림을 가지고 주문을 받으면 바로 콧페빵에 발라 팔았는데, 어느날 따로 주문이 들어왔던 앙금과 버터를 실수로 함께 바른데서 탄생하게 유명한 '앙버터 빵' 이었다는게 대표적입니다. 야키소바 빵의 유래도 비슷한데, 1950년대에 야키소바와 콧페빵을 동시에 팔던 도쿄의 한 빵집에서 손님이 '번거로우니까 안에 넣어달라'고 한 데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카레빵은 도쿄 메이카도(현 카토레이)의 2대 점주가 1927년 실용신안등록한 양식빵이 원조로 추정된다는데, 이는 일본 카레빵 협회(별 협회가 다있네요)의 공식의견이라는군요. 그리고 내용물이 잘 보이도록 비닐에 넣은 삼각 샌드위치의 원조는 1967년의 산케이입니다. 대각선 45도로 컷팅했던 이유는 단면이 가장 길게 보이고, 양쪽 끝은 예각으로 먹기 편하며, 가운데 내용물을 듬뿍 넣을 수 있기 때문이라네요. 이게 이유가 붙을 정도로 획기적인 아이디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컬럼버스의 달걀같은걸 수도 있겠지요.

일본의 3대 간식빵도 상세하게 소개됩니다. 단팥빵, 잼빵, 크림빵인데 이 중 단팥빵과 원조인 긴자 기무라야 이야기는 다른 책에서도 많이 접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초창기 긴자렌가 거리에 있던 점포 사진 등 도판이 충실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잼빵도 기무라야에서 처음 만들었는데, 초창기에는 딸기가 귀해서 살구잼을 넣었고, 원형의 단팥빵과 구별하기 위해 타원형으로 만든게 지금 모든 잼빵의 원형이 되었다는군요. 크림빵은 신주쿠 나카무라야에서 처음 만들었는데, 창업자 부부가 슈크림을 먹고 그 맛에 감동하여 커스타드 크림을 빵에 넣은게 대성공을 거둔 것에서 시작되었고요.
그 외에 메론빵의 원조는 쇼와시대 초기 고베 빵집 긴세이도의 빵이었다는 등 다양한 정보가 가득합니다.

당연히 먹어보고 싶어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먹기 힘들 뿐더러 일본 여행을 간다해도 일본 전역에 걸친 빵집이 소개된 탓에 찾아보기 쉽지 않지요.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부분을 할애하여 '도쿄'에 위치한 빵집만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는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도쿄는 진입 장벽이 비교적 낮은 편이니까요. 소개된 빵집 중 아다치구 기타센쥬에 있는 '마루기쿠 베이커리'가 가장 땡겼습니다. 쇼와시대 레트로 빵 백화점 느낌이라는 말에 꽂혔거든요. <<맛의 달인>>에서 처음 접했던 시베리아(카스텔라 사이에 앙금을 샌드한 과자빵), 전국적으로 유명하다는 단팥빵이 끌리네요. 앞서 말씀드렸던 카레빵의 원조 카토레아의 카레빵도 놓칠 수 없고요. 여기까지 왔다면, 당연히 긴자 기무라야와 신주쿠 나카무라야에도 가 봐야겠지요.

그런데 읽다보니 이전에 읽었던 <<오이시이 빵>>에 나온 빵들이 많은 것 같아서 찾아보니 실제로 그러했습니다. 비교해보니 재미가 더 쏠쏠했어요. 출판사도 다르고, 책 성격도 좀 다르지만 두 책을 합쳐서 정보를 좀 더 보강하고, 목차를 빵 종류 중심으로 깔끔하게 정리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용어도 통일하고요. (같은 빵을 쿠페 빵 / 콧페빵으로 각각 소개함)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도감답게 딱히 남는건 없지만, 보기만 해도 즐거운 책입니다. 빵을 좋아하는 모든 분들께 권해드립니다.

2019/03/01

맛있는 요리에는 과학이 있다 - 코야마 켄지 외 / 김나나 외 : 별점 2.5점

맛있는 요리에는 과학이 있다 - 6점
코야마 켄지 외 지음, 김나나 외 옮김/홍익출판사

각종 조리법을 과학적 근거로 설명하는 요리 과학 교양서. 크게는 조리, 음식 재료, 간, 물의 4 챕터로 구분되어 있으며 각 챕터별로 상세하게 항목을 다룹니다. 예를 들어 조리의 경우는 튀김과 볶음, 찜 등 모두 6개의 소 챕터로 이루어져 있는 식이죠. 300여 페이지의 분량을 챕터별로 낭비없이 빼곡하게 채우고 있습니다.

그동안 별 생각없이 행했던 조리법들이 나름 과학적 근거가 있다는게 굉장히 신기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것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 아이스크림 튀김은 아이스크림을 얇은 카스텔라나 스펀지 케이크로 감싸서 만든다. 기포가 많아서 열이 아이스크림까지 전달되지 않는다네요.
  • 볶음 요리 중 간을 맞출 수도 있지만 볶은 재료는 기름 막에 둘러 싸여 있어서 간을 제대로 맞추려면 재료에 밑간을 해 놓는게 좋다. 
  • 과학적인 맛있는 볶음밥을 만드는 방법 : 계란의 단백질은 열이 가해져 익을 때 기름과 수분을 감싸므로, 풀어놓은 계란은 맨 처음에 넣어야 한다. 볶음밥에 수분은 적이므로, 계란은 처음에 볶아 단단하게 만드는 것. 계란이 반숙이 되면 밥을 넣는다. 계란은 기름을 흡수하기 시작하지만 아직 완전히 익지 않아서 계란의 기름이 밥에 달라붙게 된다. 이로써 밥이 뜨거운 기름에 코팅되어 고슬고슬한 볶음밥이 완성된다. 계란이 다 익은 후 넣으면 기름이 이동하지 않으므로 재빨리 해야 하며, 밥을 잘 풀어 계란과 섞은 뒤 고기와 채소를 넣고 마지막에 간을 맞추면 완성. 양념은 볶는 도중에 넣으면 소금에 의해 수분이 빠져나가 축축해지므로 금물이고, 채소도 수분이 적은 당근이나 피망, 고기도 구운 돼지고기나 햄이 좋다. 건더기가 많은 볶음밥을 먹으려면 따로 볶은 뒤 계란 볶음밥과 섞는 것과 방법임. 
  • 조릴 때 양념을 넣는 순서 : 소금은 설탕보다 분자량이 작아 그만큼 식품에 침투되기 쉬우므로 설탕을 먼저 넣고 소금을 넣으면 소금 맛이 나지만, 반대의 경우는 설탕의 분자량이 커 좀처럼 침투되지 않는다. 소금을 먼저 넣으면 재료에서 수분이 빠져나와 조직이 단단해져 다른 양념이 맛을 내기도 어렵다. 하지만 설탕을 먼저 넣더라도 양 조절을 잘 해야 한다. 설탕은 물에 대한 친화성이 커서 수분을 꼭 끼고 놔주지 않는 탓에 다른 양념 침투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 이래저래 어려운게 조림 요리인 듯 싶습니다.
  • 찜의 비결은 찜기 안에 수증기가 가득 찰 때까지 기다렸다가 재료를 넣는 겁니다. 수증기와 달리 공기는 열의 전도율이 높지 않아서 미리 찜기 속에서 공기를 몰아내지 않으면 온도가 충분히 올라가지 않는다. 온도가 낮을 때 재료를 넣으면 재료가 차가운 재료 표면에 수증기가 물방을로 맺혀 물을 뒤집어 쓴 것 처럼 축축해진다. 
  • 구멍이 송송 뚤리지 않는 계란찜의 비결은 온도. 계란 단백질은 60~70도에서 응고되기 때문에, 100도 정도의 높은 온도에서 계란 단백질은 급격하게 응고되는데 수분은 수증기가 되려 해서 응고되어 가는 계란 속에 기포를 만들게 된다. 

그리고 일본에서 발표된 책이라 전자레인지의 활용도를 다양하게 선보이는게 독특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천천히 가열'같은 기능이 대표적이죠. 어차피 전자레인지 조리는 잘 하지 않지만 채소나 과일 등 데우고 싶지 않은걸 알루미늄 은박지에 포장하고 도시락을 데우는 아이디어는 눈길이 가네요. 마이크로파는 알루미늄을 통과하지 못하니까요.

재료 쪽에서도 몰랐던 내용이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연어는 붉은살 생선인줄 알았는데 실은 흰살 생선 쪽이라고 합니다. 살색은 먹이인 새우와 개의 적색색소로부터 물든 것이라는군요. 같은 이치로 연어에 흰살 생선을 먹이면 살이 하얗게 된다고 합니다. 또 밥을 가장 맛있게 보관하는 방법은 냉동 -> 냉장 -> 보온의 순서라고 합니다. 보온 밥통의 보온 기능은 실은 별 쓸모 없는 기능이네요. 차라리 "급속 냉동"이나"냉장" 으로 기능을 바꾸면 더 잘 팔릴지도 모르겠어요. 특허라도 내 볼까요? 이런 내용 외에도 요리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도움될 만한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하지만 문제라면 너무 과학적이라 읽기에 지루하고 쉽게 지친다는 점, 그리고 번역에 오류와 오타가 많다는 점입니다. 조리법과 재료로 책을 나누더라도 조금 더 넉넉하고 실제 사례 중심의 재미있는 내용을 추가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고요, 조금 더 철저한 교정은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별점 2.5점은 충분하죠. 제가 읽은 구판은 절판되었고 개정판이 나왔던데 개정판은 저의 바램이 조금이나마 반영되었기를 기대해봅니다.

2020/09/30

중화미각 - 김민호, 이미숙, 송진영 외 : 별점 3점

중화미각 - 6점
김민호.이민숙.송진영 외 지음/문학동네

다양한 중국 음식에 대해 써 내려간 음식사, 문화사 서적이자 넓게 보자면 일종의 에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책입니다. 바로 얼마 전 읽었던 "카스테라와 카스텔라 사이"와 비슷해요. 전문 연구자들이 각종 음식에 대해 사료 기반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도, 개인의 느낌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요. 이 책이 훨씬 가볍고 쉽게 쓰여졌다는 차이점은 있지만요.

목차는 크게 전채, 주요리, 식사류, 탕, 후식, 음료, 간식으로 구분되며 각 항목별로 많게는 5종, 적게는 1종의 요리와 음료가 소개되면서 마지막 '연회 차림표'까지 모두 열 아홉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해당 음식에 대한 전문적인 글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오향장육"을 소개하는 첫 번째 글에서 잘 알 수 있어요. 오향장육의 현재 생김새와 구성, 주요 재료 소개, 오향장육 본고장인 산동 소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기서 오향장육에 대한 깊이있는 이야기는 주요 재료 소개에 그치는 탓입니다. 산동성 소개도 재미는 있었지만, 무송이 호랑이 때려잡는 이야기 비중이 높아서 이게 오향장육과 무슨 관계가 있나 싶고요.

그래도 건질게 없는건 아닙니다. "량반황과"에서 식초에 대한 깊이있는 고찰은 좋았습니다. 음식 재료로서의 식초보다는 '초'라는 한자어는 깨끗하고 가난한 선비를 가리킨다던가, 동양화 소재로 자주 쓰이는 "삼산도"에 대한 이야기가 좋았습니다. 유가 소동파, 도가 황정견, 불가 스님 불인이 각각 식초를 맛보고 짓는 표정이 다르다는 고사를 통해 유가, 도가, 불가의 인생관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솔직히 와 닿지는 않았지만, 이런 생각도 있었구나 싶었거든요.
"농어회"에서는 중국 회의 역사와 회의 조리에 대한 여러가지 고사, 시를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진나라 관리 장한이 초가을 농어회와 순채탕이 그리워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향한 뒤, 그가 모시던 왕과 측근이 모두 반란군에 의해 죽었다는 고사를 통해 '순갱노회 (순로지사)'라는 4자성어가 남아 있을 정도라는데, 중국에서도 진나라 때 부터 회를 먹었다니 놀랍네요. "쑹수구이위"를 통해 소개해주는 중국 물고기 요리, 그 중에서도 잉어 요리에 대한 정보도 좋습니다.

특히 마음에 든 건 "호떡"입니다. 당나라 백거이가 쓴 호떡이 등장하는 시에서 시작하여, 곡물가루로 반죽해 발효시키지 않고 화덕에 구운 '병'의 역사와 그 발전 과정, 발전 과정에서 생겨난 다양한 분류 - 기름에 지진 젠병, 쪄는 증병, 튀겨낸 유병, 화덕에 구워낸 소병, 뜨거운 국물과 같이 끓여 낸 탕병 등 -, 당 이후 송, 청의 사료를 통한 '병'의 여러가지 조리법들, 마지막으로 어떻게 우리나라와 일본에 전래었는지까지, 그야말로 '호떡' 이라는 길거리 음식에 대한 한 편의 깊이있는 미시사로 손색없는 글인 덕분입니다. '병'이 어떻게 발효를 거쳐 푹신하고 달콤하며 기름진 한국식 호떡으로 변했는지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가 없는건 조금 아쉬웠지만 "중화미각" 이라는 책에서 한국식 호떡 이야기를 깊이있게 다루기는 어려웠겠지요. 이 부분만 보강된다면, "호떡의 역사"라는 별도의 책으로 팔아도 충분할, 좋은 글이었습니다. 

호떡과 비슷한, 과자 이야기들도 괜찮은게 많습니다. 후식에서 소개되는 "장원병" 이야기도 역사와 깊이가 장난이 아니거든요. 장원병의 시초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데 그 중 하나가 '과거 시험을 준비하던 소년이 무려 49일이나 표류하게 되었는데, 어느 요리사가 준 과자만 전혀 상하지 않아서 그걸 먹고 목숨을 부지한 뒤 장원급제를 하였던 일화'에서 시작되었다는 겁니다. 바삭한 껍질에 마른 견과류와 달콤한 소가 필수인 장원병이 오랜 기간 상하지 않는건 이해가 됩니다만, 정말로 상온에서 49일을 버틸지는 잘 모르겠네요. 여튼 이 후 장원병은 널리 퍼져서, 지금은 행운과 부귀영화를 상징하게 되었다니 중국에 가면 한 번 맛 보어야 할 것 같습니다. 맛보다는 의미와 상징적인 측면에서 말이지요.

"반도 복숭아"에서 중국에서의 복숭아의 의미와 우리나라에서 그 의미가 달라진 것에 대한 고찰은 개인적으로 아주 관심있게 읽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왜 복숭아가 에로틱한 느낌을 줄까? 에 대해 개인적으로 조사했던 적이 있는데, 이 글에서 '보수적인 유교적 가치관' 때문일 거라고 알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왜 조선 시대에서 복숭아가 여성의 욕망과 에너지를 상징했는지를 알려주지 않는건 조금 아쉽더군요. 중국에서 복숭아가 여신 서왕모의 이미지이기 때문일까요? 그런 설명을 조금 더 보강해주었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말이지요.
"산양뤄우"와 "훠궈"라는 탕 요리 소개도 다른 곳에서 흔하게 보았던건 아니라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익히 알고 있었던 요리들이 많이 등장하는건 단점이기는 합니다. "북경오리구이", "동파육" 이 대표적입니다. 요리법과 역사가 상세하게 소개되는 편이지만, 거의 모든 중국 요리 소개서 (이런거) 에서 소개될 정도로 다른 곳에서 이미 많이 접했던 이야기라 신선함이 떨어집니다. 물론 "동파육"에서 실제 해당 요리와 상관없는 동파 소식의 인생과 그의 시를 소개하는 식으로 차별화 요소를 가져가고 있기는 한데, 나쁘지는 않았지만 책 취지에는 많이 어긋난 내용이었다 생각되네요.
"만두"에서의 만두의 여러가지 종류에 대한 소개도 단순한 형태와 만두소에 따른 분류가 전부라 깊이가 부족했고요. "짜장면"도 차별화된 컨텐츠로 보기에는 어려웠습니다. "백주와 약주", "용정차" 역시 중국술과 차에 대한 방대한 책들에 비하면 딱히 내세울 내용은 없어요. "용정차"에서 "삼국지" 속 유비가 구하려고 했던 차는 무엇인지?에 대한 고찰 정도만이 기억에 남을 뿐입니다.
"훠궈"도 앞서 좋다고 설명드리기는 했지만 말미에 중국에서 훠궈 먹는 방법을 소개한건 어색했어요. 솔직히 필요없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나마 "마파두부"는 굉장히 널리 소개된 소재임에도 다행히 '두부'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두부의 역사에서부터 시작되거든요. 마파 두부도 흔한 진 마파의 조리법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사천 요리의 핵심인 '두반장' 소개로 다른 마파두부 컨텐츠들과는 조금은 다른 내용을 선보이고 있어서 괜찮았습니다. 다른 유명 요리들도 이렇게 다른 디테일을 파고 들었다면 더 나았을 겁니다.

그래도 재미와 자료적 가치도 적당하며, 책의 빼어난 만듦새도 좋습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중국 요리를 좋아하시는 분들이시라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1/12/03

붕어빵에도 족보가 있다 : 한국인이 즐겨먹는 거리음식의 역사 - 윤덕노 : 별점 2점

제목과 책 소개만 보면 우리나라의 분식이나 거리 음식들에 대한 역사적 고찰 및 소개를 하는 책으로 생각되지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빵과 과자는 물론 해산물과 주식까지 망라하는 포괄적인 음식 칼럼이었습니다.

물론 주제가 많고 방대한게 단점은 아닙니다. 그러나 부제에 명백하게 '한국인이 즐겨먹는 거리 음식의 역사'라고 적어 놓고, 정작 내용에는 땅콩버터, 오징어 먹물이나 빠에야, 리조또, 꾸스꾸스, 타타르 스테이크 등을 소개하는건 명백하게 독자를 기만한 것이지요. 또한, 각 주제별로 다루는 내용도 딱히 깊이가 없고 단지 유래만 다루거나, 몇 가지 재미있는 일화만 곁들여 소개하는 수준이라 얄팍합니다. 단팥빵이나 카스텔라, 단무지, 오뎅처럼 간단하게 인터넷을 검색해도 훨씬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들을 구태여 소개하는 것도 페이지 낭비고요. 이럴 바에야 그냥 우리나라 거리 음식에만 초점을 맞추고 그 음식과 관련된 사회적인 분위기와 현상까지 포괄적으로 묶어서 깊이 있게 정리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돈가스의 탄생"이 좋은 예가 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워낙에 방대하고 저자의 아시아 쪽 자료 조사 하나만큼은 확실하기에 생각과는 다르게 건질 만한 자료도 다수 있기는 합니다. 붕어빵의 원조는 1909년 도쿄 아사부의 나니와가 제과점의 도미빵 (다이야끼)이고, 도미빵의 꼬리에 팥을 넣는 것이 좋은지 아닌 것이 좋은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져 1953년 요미우리 신문에서 지상 중계까지 했다는 일화(결론은 꼬리에는 팥을 넣지 말자는 쪽이었다고 합니다. 손가락으로 집어먹기에 좋도록, 또 입가심하기에 좋도록) 등은 흥미로왔습니다. 또한, 소보로빵과 메론빵이 사실 같은 것이며, 메론빵은 1932년 일본 특허청에 실용신안이 등록된 아이디어 상품이었다는 점도 재미있었어요.

엿을 소개하면서 조선에 엿장수가 굉장히 많았었다는 점, 그리고 정조 21년 황해도 황주에서 신착실이라는 사람이 술에 취해 엿장수 박형대의 엿을 빼앗아 먹고, 엿장수가 엿값으로 두 푼을 달라고 하자 엿장수를 땅에 밀어 넘어뜨렸는데, 하필이면 지게의 뾰족한 부분에 넘어지면서 항문에 지게가 꽂혀 사망한 사건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는 점도 기억에 남네요.

또한, 문어는 중국 북쪽 지방에서는 잘 먹지 않았는데, 임진왜란으로 어려움에 처한 조선에 파병 온 이여송을 접대하기 위해 정성껏 문어국을 내어놓았다가 명나라 장수들이 먹지 않아서 낭패를 보았고, 반대로 선조에게 명나라 장수가 "계두"를 바쳐서 선조가 당황했다는 고사도 소개됩니다. (계두는 계수나무속에서 자라는 벌레로, 한나라 역사서인 한서 남월전을 보면 남월의 왕이 중국에 공물을 바치면서 비취 40쌍, 공작새 두 쌍을 보낼 때 계두는 한 그릇만 바칠 정도로 귀한 음식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다양한 음식에 대한 잡학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괜찮을 듯합니다. 저는 제목과 책 소개에서 좀 더 깊이 있는 자료를 접하리라 기대가 컸고, 제 기준으로 이러한 책에 반드시 소개되어야 할 거리 음식 – 닭꼬치, 번데기, 튀김 – 도 빠져 있기에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겠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2026/02/28

상점가의 전진 - panpanya / 유유리 : 별점 3점

국내에 출간된 전권을 구입해 읽을 정도로 사랑하는 작가 panpanya의 신작입니다. 출간 사실을 뒤늦게 알아 구입이 조금 늦었습니다.

이번에는 단편 열여섯 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대부분 언제나처럼 일상 속에서 기발한 발상을 끌어내 독특한 재미를 전해 줍니다.

이번 권의 특징이라면 ‘건물’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는 점입니다. 간략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집의 집"은 집 가족이 자라고 성장해 하나의 큰 집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개연"은 멀리 보이던 집들이 사실은 건설업체의 간판이었다는 설정입니다.
"슈퍼 하우스"는 집이 일종의 로봇이 되어 외부의 공격을 격퇴합니다.
"즐거운 부동산"에서는 복권으로 택지에 당첨된 뒤 집 프라모델을 구입해 집을 건설합니다.
"윤번지"는 상속받았지만 사라진 땅을 탐정인 주인공과 레오나르도가 찾아 나서는 이야기입니다. 알고 보니 그 땅은 과거 투영법 제작 과정에서 오류가 생긴 평면 지도로 인해 발생한 사기였습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입체를 평면으로 만들 때 발생하는 어긋남을 다시 분석해, 이 ‘윤번지’가 지하에 위치했다는걸 밝혀냅니다.
"빌딩"은 빌딩이 원래 싹이며, 그것을 잘 키워 만들어낸다는 내용입니다.
"상점가의 전진"에서는 확장하고 이동하는 상점가를 따라 주인공이 집을 상점가에 포함시켜 가게를 열고 이사까지 하지만, 다른 현으로의 이동까지는 동참하지 못해 결국 상점가를 떠납니다.

이 가운데에서는 특유의 상상력과 과학적 설명이 잘 결합된 "윤번지"가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구체를 평면으로 만들 때 발생하는 오류를 이런 방식으로 풀어내는 작가가 또 있을까요? 신선하고 재미있었어요.

주인공과 파트너인 충견 레오나르도가 어딘가에 도착한 뒤, 현재 위치가 어디인지 밝혀내는 "여기는 어디일까요?" 시리즈도 여러 편 수록되어 있습니다. 확보할 수 있는 단서를 최대한 모은 뒤, 과학적이면서도 논리적인 추론으로 정답에 접근해 나간다는 점에서 일종의 추리물 같은 재미를 줍니다. 단순한 귀납적 추리가 아니라 과학적 논리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점이 특히 매력적이었습니다. 직사각형 모서리 방의 양쪽 끝에서 도쿄 스카이트리와 후지산이 각각 보이면 ‘원주각 정리’가 성립하고, 거리를 감안하면 현재 위치는 미우라 아니면 이타미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시리즈 8편이 대표적입니다.


"올바른 주먹밥 개봉 방법"은 주먹밥 스티커를 훼손하지 않고 뜯어내는 방법을 상세히 설명합니다. 뒤의 해설을 보니 작가가 실제로 주먹밥 스티커를 수집하며 연구한 듯한데, 그런 경험이 없다면 알기 어려운 디테일이야말로 panpanya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구야바노 홀리데이", "카스텔라풍 찜케이크 이야기" 처럼 말이지요.

다만 "집의 집"이나 "빌딩"처럼 설정이 다소 단순한 작품과, "슈퍼 하우스"에서 보이는 panpanya답지 않은 액션물 분위기의 전개는 조금 아쉬웠습니다. 공격을 내선번호로 시도한다는 디테일은 재미있었지만요.


"여기는 어디일까요?" 시리즈 역시 몇 편은 다소 식상하게 느껴졌고, 이야기로서 충분히 설득력 있게 성립하는지 의문이 드는 작품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anpanya 특유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다음 작품도 빨리 나와주면 좋겠네요.

2016/09/16

변두리 화과자점 구리마루당 1 - 니토리 고이치 / 이소담 : 별점 2.5점

변두리 화과자점 구리마루당 1 - 6점 니토리 고이치 지음, 이소담 옮김/은행나무

제목 그대로 아사쿠사 변두리의 3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화과자점 구리마루당의 주인 구리타 진과 수수께끼의 미녀 아오이가 소소한 수수께끼와 갈등을 해결해 나간다는 내용의 일상계 중단편집입니다. 모두 3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동일하게 화과자점을 주제로 한 일상계 작품인 "화과자의 안"을 이전에 읽어보았는데 두 작품을 비교해보자면, 이 작품이 추리적 요소는 덜하고 로맨스, 인간 드라마가 더욱 강조되어 있습니다. 특정 영역의 전문가가 등장하는 로맨틱 일상계라는 점에서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 히트에 편승한 느낌이 듭니다. 

이러한 선입견 탓에 그동안 선뜻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비슷한 류인 "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가 명백한 지뢰였던 탓도 컸고요. 하지만 추석 맞이로 가볍게 집어들고 읽어 본 결과, 의외로 만족했습니다.

물론 "추억의 시간을..."과 마찬가지로 추리적 요소가 많이 부족하다는 단점은 명확합니다. 과연 이 작품을 일상계 추리물로 부를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에요. 그러나 그런대로 재미있게 읽었던건 제가 "요리"와 "음식"이라는 분야에도 큰 관심이 있는 덕분입니다. 수록작 세 편 모두 "음식의 맛"이 가장 중요한 소재거든요. 첫 번째 이야기에서 '과거의 맛이 현재에 재현되지 못한 이유'가 대표적이며, 다른 이야기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화과자를 싫어하는 친구에게 화과자를 좋아하게 만드는 방법, 와산본이 무엇인지 등 "화과자"와 해당 분야의 전문 지식에 집중하여 이야기를 풀어가서 음식, 요리에 대해 흥미를 느낀다면 즐길거리가 제법 많습니다.

또 첫번째 이야기 "마메다이후쿠" 만큼은 부족하더라도 분명한 일상계 추리물이기도 합니다. 브라질로 출국한 후 20년만에 구리마루당을 찾은 다나베의 말 실수를 토대로 숨겨진 진상을 알아낸다는 전개는 그야말로 일상계의 왕도죠. 이에 더해 "곶감 맛 자체는 담백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는 표현에서 수상함을 느낀 이유가 "주인공이 화과자 전문가"였다는 점에서 작품의 특징과 잘 어울리고요. 하기사 주어진 정보를 토대로 맛의 비결이나 레시피를 찾는 이야기 역시 넓게 보면 추리의 영역이지요.

아울러 만화적이기는 해도 캐릭터의 매력도 상당합니다. 특히 주인공인 구리마루당 3대인 구리타 진이 괜찮았어요. 화과자 가게를 잇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수련을 쌓았지만, 반항기에 한창 엇나가다가 부모님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마음을 다잡고 가게를 이었다는 설정입니다. 이러한 독특한 이력 덕분에 이런저런 이야기에 위화감 없이 녹아듭니다. 어린 시절의 수련과 재능으로 실력은 나름 확실하나 그에 걸맞는 연륜과 경험은 갖추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맛의 달인" 지로와 약간 비슷하네요.

컴비로 등장하는 화과자에 정통한 정체불명의 미녀 아오이 역시 설정만큼은 완전 스테레오 타입이지만 지독할 정도로 순진하고 착한 면에 관심 분야에 대한 초인적인 호기심이 부각되어 나름의 매력을 전해줍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조용하고 고즈넉한 동네 풍경 속 잔잔한 드라마라는 측면에서는 볼만합니다. 단, 추리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수록 이야기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마메다이후쿠"

화과자점 구리마루당에 20년 전 신세를 졌다는 다나베라는 손님이 찾아왔다. 그는 20년 전 먹었던 마메다이후쿠를 주문했지만, 맛이 다르다고 말했다. 구리마루당 주인 구리타 진은 충격을 받은 나머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인인 카페 마스터가 소개해 준 아오이라는 수수께끼의 미녀에게 의지하게 되는데...

요리만화에 흔히 나옴직한 "추억의 맛을 찾아드립니다." 스타일의 이야기입니다. 첫번째 에피소드답게 구리타 진과 그 주변 인물 관계도 상세하게 설명되고요.

수록작 중 거의 유일한 추리물로 "왜 마메다이후쿠의 맛이 다른지?"에 대한 설명(시부키리가 너무 많았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던대로 다나베의 "곶감"에 대한 말실수를 "곶감"의 정의를 통해 밝혀 진상을 드러내는 전개는 괜찮습니다. 망해가는 구리마루당을 살리려는 소꼽친구 유카의 작전이라는 동기도 그럴듯했고요.

다나베가 20년 전 먹었던 마메다이후쿠의 맛과 지금의 맛이 다르다는 것을 강력하게 주장할 정도로 절대 미각의 소유자라는 것은 영 설득력이 없으며, 구리타 진은 기본적인 부분에서 새로운 시도는 하지 않는 무능한 장인인지 의심스럽다는 약점은 있지만 시리즈의 첫 작품치고는 괜찮았던 소품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도라야키"

"이러쿵저러쿵해도 이미지는 실체가 없는 거니까요. 실제 체험에는 절대 못 이겨요.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손으로 만지고...... 그렇게 실제로 경험하면 이미지는 간단히 바뀌죠. 말하자면 이미지란 불완전한 정보, 즉 선입견이니까요."

어렸을 때부터 구리타의 라이벌인 아사바가 대학 축제에 구리타를 초대했다. 구리타는 아사바가 만든 "베이비 카스텔라"의 맛을 인정했지만, 아사바는 화과자를 싫어한다는 말로 구리타를 자극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아오이는 아사바에게 화과자 혐오를 고쳐주겠다고 약속하는데...

드라마는 별게 없지만 카스테라, 다이나곤 팥과 같은 기본 재료 설명은 물론, 1등 상품인 팥을 구하기 위해 "화과자 퀴즈 대회"에 나가 각종 화과자 관련 상식을 화려하게 펼쳐내는게 특징인 작품입니다.

또 카스테라는 좋아하는 아사바의 화과자 혐오를 고쳐주기 위해, 카스테라 반죽에 팥소를 더하여 도라야키를 만들어 준다는 결말은 깔끔하며 설득력 높습니다. 다툼과 갈등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해결!" 된다는 "맛의 달인" 류의 작품에서는 억지스러운 전개가 가끔 보이기도 하는데, 이 작품 정도면 잘 마무리된 것 같아요. 이게 맛이 없을리가 없을 뿐더러, 맛이라는 것은 작중 아오이의 말 그대로 경험이 가장 중요한 것이니까요.

그래서 추리적으로는 별볼일 없지만 별점은 3점입니다. 화과자 관련 이야기로는 최고라 할 수 있겠습니다.

"히가시"

"화과자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고안할 방법은 딱 한 가지. 입으로 말해서 못 알아듣는 사람에게는 먹여서 알게 해주자고요!"

어린 시절 공부를 가르쳐주곤 했던 동네 누나 고하루를 오랫만에 만난 구리타는 고하루의 집을 누군가 엿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바닥에 흘린 과자 부스러기와 엿보기를 당한 날짜를 토대로, 범인은 고하루와 거의 의절상태인 친아버지 기라라는게 드러났다. 구리타는 기라를 찾아가 설득하려 했지만 실패하는데....

수록작 중 가장 처지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부터가 별게 없는 탓입니다. 엿보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려면, 그가 남긴 과자 부스러기를 조사하는 것보다 잠복해서 잡는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니까요.

게다가 맛있는 과자를 먹었다고 모든 갈등이 눈녹듯 사라지는 마무리는 솔직히 어처구니 없습니다. 이런 류의 이야기에서 가장 조심해야 하는 전개였습니다. "도라야키"에서처럼 설득력 있게 넘어가면 모를까, 갈등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는 과자를 맛보고 갈등이 해결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아요. 그렇다면 북경오리나 프랑스 요리를 먹어도 되는 게 아니었을까요?

구리타 진의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넘쳐나는 마무리는 좋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이 없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2020/05/23

레베카 - 대프니 듀 모리에 / 이상원 : 별점 2.5점

레베카 (초판 출간 80주년 기념판) - 6점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이상원 옮김/현대문학

'나'는 남편 맥심과 함께 작은 호텔에 머물며, 과거 함께 시간을 보냈던 대저택 맨덜리에서의 생활을 회상한다.

'나'는 결혼 후 드 윈터 부인으로 맨덜리에 살게 되었다. 그러면서 맥심 드 윈터의 전처 레베카가 비참하게 사고로 죽었지만, 아직도 맨덜리에 그녀의 그림자가 짙게 남아있다는걸 느꼈다. 그런데 우연히 레베카의 시체가 발견되었고, 그녀 죽음에 대한 재조사가 시작되었다. 맥심 드 윈터는 '나'에게 자신이 그녀를 살해한 뒤 시체를 숨긴 것이라고 고백하는데...

대프니 듀 모리에의 전설적인 장편 소설입니다. 18~20세기 초반 큰 인기를 끌었던, 상류 사회와 로맨스, 범죄호러를 결합한 '고딕'이라는 장르를 대표하는 미스터리 소설 중 한 편이지요. 'MWA 추천 미스터리 100'이나 '동서 미스터리 100' 같은 이런저런 리스트에 포함될 정도로 명성만큼 큰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거의 600페이지 가까운 분량으로 이렇게 두꺼운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오래된 숙제를 끝내기 위한 사명감 비슷한걸 가지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숙제를 끝내기는 정말로 어렵더군요. 이야기의 2/3 대부분이 드 윈터 부인의 1인칭 심리묘사인데, 그녀의 마음에 전혀 공감할 수 없던 탓이 가장 큽니다. 어린 철부지 소녀가 급작스럽게 대저택의 안주인이 된 당황스러운 마음은 이해가 되지 않는건 아니에요. 그러나 맨덜리 저택과 그 주인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신분이라는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쳐져 시종일관 소심함을 드러내고, 주변 사람들 눈치를 신경쓰고 그들의 반응을 상상하며 괴로워하는 모습에는 짜증이 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당황스럽고, 철부지였다 하더라도 대저택 안주인으로 몇 개월 보냈으면 당연히 적응을 했어야죠. 몇 개월이 지나도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마다 스스로 극복 하지 못하고 손톱이나 물어 뜯는 모습에는 공감을 할래야 할 수가 없네요. 

이렇게 그녀의 어리버리함이 지나치게 부각되기 때문에, 저택 주변에 항상 맴도는 '레베카'의 그림자가 그리 무섭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레베카를 숭배했다는 저택 관리인의 우두머리 댄버스 부인의 악의만큼은 실감나게 느껴집니다만, 이 역시 그녀가 어설퍼서 댄버스 부인의 증오를 초래한 것에 불과합니다. 드 윈터 부인이 댄버스 부인에게 자신이 이제부터 드 윈터 부인이며, 그녀의 윗 사람이라는걸 처음에 확실하게 인지시켰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거든요. 댄버스 부인이 굴복하던가, 받아들이지 못했다면 알아서 떠나버렸을테니까요.
심지어 지나치게 상황 인식이 부족한 탓에 스스로 사건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합니다. 독자들은 이미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레베카가 정숙하지 못했다는걸 눈치채고 있습니다. 저택을 몰래 방문했던 사촌 파벨이 레베카의 문란한 생활 속 상대 중 하나라는 것도 쉽게 예측 가능하고요. 왜 그녀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지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도 맨덜리에서 오랫만에 수많은 손님이 방문하는 무도회가 열리는데, 댄버스 부인이 사근사근하게 도움을 주려고 하는 모습에서 무언가 사악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건 너무나도 뻔합니다. 그러나 딱 한 명, 주인공 드 윈터 부인만 모를 뿐이지요. 이래서야 드 윈터 부인이야말로 문제의 원흉이 아닌가 싶을 정도에요.

남편 맥심이 그녀의 적응에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건 이해합니다만, 그녀가 속 시원하게 사실을 털어놓고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게 더 큰 문제에요. 맥심지어 유일한 그녀의 편인 영지 관리인 프랭크에게는 어려운 상황과 댄버스 부인의 적의에 대해 명확한 사실을 이야기했었어야 했습니다. 그냥 그렇게 느낀다, 와 같은 말로는 부족했어요. 특히나 댄버스 부인이 아무도 모르게 레베카의 사촌 파벨을 맨덜리에 들였던게 탄로난 건은 하인으로서 하면 안될 일입니다. 이걸 꾸짖을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댄버스 부인에게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지루함을 참고, 2/3 정도를 지나면 다행히 명성을 회복합니다. 무도회에서 드 윈터 부인이 댄버스 부인의 복수로 레베카의 옷을 입어 주변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든 사건이 벌어진 직후, 레베카의 사체가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곧바로 맥심 드 윈터는 아내에게 자신이 레베카를 죽이고 배를 침몰시켰다고 고백하고요. 레베카가 저질렀던 온갖 부정들이 여기서 맥심의 입을 통해 드러납니다. 이후 명백한 침몰 흔적때문에 벌어지는 재심리, 자살로 대충 결론내려지지만 이의를 제기한 사촌 파벨의 협잡 등 여러번의 위기가 몰아치기 때문에 손에서 떼기 힘든 재미를 선사합니다. 이렇게 맥심 드 윈터에게 위기가 연이어 닥치고, 하나씩 위기를 넘는 듯 하지만 위기가 계속되는 전개는 그야말로 '서스펜스'가 뭔지 그 답을 제시해 주는 느낌입니다.
특히나 파벨이 찾아와 협작질을 벌이는 날, 여러 명의 관계자들을 소환해 진상이 무엇인지를 추궁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맥심! 그렇게 하면 안돼!'라는 심정으로 손에 땀을 쥐게 만들더라고요. 아울러 이를 함께 극복해 나가며 소녀에서 진짜 귀족 여성이 되는 드 윈터 부인의 성장기로서도 볼 만합니다. 그녀의 맥심을 향한 장황한 심리 묘사에 더해, 맥심은 레베카를 진짜로 사랑하지 않았고, 진짜 사랑한건 자신이라는걸 깨닫는 장면 등은 이 작품이 로맨스가 중요한 요소인 고딕이라는 장르라는걸 새삼 깨닫게 해 주고요.

그러나 치안판사 줄리언 대령이 직접 수사에 나설 정도의 단서를 파벨이 제시한게 맞는지는 솔직히 의심스럽습니다. 그가 레베카가 만나자고 보낸 쪽지를 들고 있던건 사실이지만, 그 쪽지가 레베카가 사망한 날 쓰여졌다는 증거는 없으니까요. 오히려 정체를 알 수 없는 쪽지로 지역 명사를 협박한 파벨을 체포하여 재판하는게 당연한 수순이에요.

레베카가 몰래 의사를 찾아간 뒤, 자신이 시한부 인생이라는걸 알게 되었다는 결말도 지나치게 작위적이었습니다. 그녀가 이 사실을 알고, 자살 겸 해서 일부러 맥심 드 윈터를 도발한게 진상이라고 해도, 그렇다면 쪽지를 남긴 이유는 설명되지 않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댄버스 부인에게 사실을 알리지 않은 이유도 잘 모르겠고요. 

무엇보다도, 맥심 드 윈터가 어찌되었건 아내를 살해한건 명백한 사실입니다. 정숙하지 못한 아내에 대한 응징으로 포장하기에는 지나치게 큰 범죄에요. 빅토리아 시기 직후, 20세기 초반에야 레베카의 부정이 죽을 죄였을지는 몰라도 지금 시점에서 그렇게 생각하는건 무리지요. 어떤 식으로건 단죄는 필요하다 생각되어서 별로 개운치 못합니다. 단지 저택을 잃은 정도로 끝나기는 부족했어요. 이 때문에 작은 호텔 등에 숨어산다는 현재 역시도 그게 얼마나 큰 벌인지 잘 와 닿지도 않습니다. 히치콕의 영화에서는, 레베카의 사인은 사고사이며 결말은 해피엔딩이라는데 저같은 의문을 품은 사람들을 위한 각색이라 생각됩니다. 헐리우드식이기는 하지만, 이 쪽이 더 명확해서 좋다는 생각도 드네요. 아울러 진상을 눈치 챈 댄버스 부인의 복수도 허망합니다. 저라면 드 윈터 부부가 돌아온 직후, 불을 질렀을 거에요. 그깟 저택이 뭐가 대단하다고....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후반부 1/3은 고딕 미스터리의 대명사다운 놀라운 서스펜스와 몰입감을 자랑하지만, 2/3 분량의 지루함에 대한 압박이 커서 감점합니다. 지금 읽기에는 낡은 요소가 많다는 점에서, 시대를 뛰어넘은 걸작은 아니라 생각되네요. 현대 독자라면, 영화 쪽을 감상하는게 더 나은 선택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나저나 "조용한 무더위" 수록작인 "파란 그늘"에서 중요한 요소로 쓰였던, 다과회에 나왔다는 비밀 샌드위치는 어디에 등장하는지 잘 모르겠네요. 샌드위치는 맥심의 할머니가 티 타임에 먹은 물냉이 샌드위치, 맨덜리에서 먹는다고 언급된 오이 샌드위치가 기억에 남을 뿐인데 말이죠.
여기서 무언가 요리를 발췌한다면, 드 윈터 부인이 처음 보고 놀란 호화스러운 아침 식사나, 매형 자일즈가 감탄하는 영국에서 제대로 된 음식의 대표격인 수플레, 차를 마실 때 빠지지 않는 스콘과 카스텔라가 더 나은 선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