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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8

클레이모어 1~27 - 야기 노리히로 : 별점 2.5점

클레이모어 Claymore 27 - 6점
야기 노리히로 지음/대원씨아이(만화)

클레이모어: 여전사의 싸움을 그린 다크판타지

"엔젤 전설"로 오해 학원 개그물의 한 장을 열은 야기 노리히로의 다크 판타지 장편 액션 만화입니다. 햇수로 따지면 거의 20년 가까이 된 작품이지만, 몇 주 전에야 겨우 완독하였습니다. Lionheart님 리뷰를 읽고 몇 자 적습니다.

이전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초반부 한 두어 권 읽다가 접은 이유는 도무지 정이 가지 않은 작화 탓이 컸습니다. 개그 만화에는 적당했지만 다크 판타지 액션에 걸맞는 작화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액션 장면은 여러모로 문제가 많았어요. 인간을 먹는 요마와 요마를 사냥할 수 있는 반인반요의 여성 전사 설정도 너무 뻔하다 싶었고요.

그러나 전 권을 몰아서 읽어보니 확실히 인기가 있었던 이유도 알 것 같습니다. 뻔하고 도식적인 것은 초반부 뿐, 이른바 '각성' 이라는 것이 핵심 설정이 되면서 부터는 독특한 맛이 느껴집니다. 이후 밀리아에 의해 밝혀지는 요마, 전사의 정체와 조직의 존재 이유도 꽤 그럴 듯 했고요. 결말도 깔끔해서 마음에 듭니다. 좀 급하게 끝낸 것 같다는 의견도 더러 있지만 저는 괜찮았어요. 불필요하게 질질 끄는 것 보다는 훨씬 나으니까요.
떡밥 회수도 충실합니다. 요마가 아닌 전사를 취해, 전사가 된 클레어가 각성한 형태가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이 대표적인데 이야기 결말에 잘 어울리는 아이디어였어요.
작품의 파워 밸런스가 일정하다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강적들인 '심연의 주인들'과 주인공 멤버들 간의 밸런스가 끝까지 유지되는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밀리암을 리더로 하는 7명의 전사들이 무려 7년 동안 은신하여 수련했지만, 심연의 주인들과의 전투는 그들 한 두 명으로는 어림도 없고, 어쩌다 이기는 것도 전원이 달려들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야 한다는 식인 덕분입니다. 의외로 아주 현실적인 설정이라서 기억에 남네요.
강적을 쓰러트리면 또다른, 더 강한 강적이 등장하는 전형적인 소년 만화 전개에서 벗어나 상당히 초반부에 등장한 적이 마지막 결전 상대가 된다는 점도 독특했습니다.

덧붙이자면, 다크 판타지이며 주인공의 처절하고 외로운 싸움을 그렸다는 점에서 "베르세르크"의 영향이 짙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각성자들과 심연의 강자들의 디자인, 그리고 '대검(클레이모어)'를 활용하여 전사들이 요마들과 사투를 벌이는 부분이 그러한데, 그래도 전사들을 모두 여성으로 설정하는 등의 디테일과 앞서 이야기한 파워 밸런스, 그리고 전투에서 두뇌 배틀 속성이 들어가는 식으로 확실히 차이점을 전해 주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베르세르크"보다는 희망을 듬뿍(?) 담고 있다는게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베르세르크"만큼 한 획을 긋지믄 못했어도 당대의 인기작으로서의 재미는 충분합니다.

2010/01/21

그림자 잭 - 로저 젤라즈니 / 이수현 : 별점 3점

그림자 잭 - 6점
로저 젤라즈니 지음, 이수현 옮김/페이퍼하우스

다크사이드의 권능자이자 도둑인 그림자 잭은 자신을 괴롭힌 박쥐군주와 일당들에게 복수를 맹세하고 데이사이드로 들어가 그들의 컴퓨터를 이용하여 '잃어버린 열쇠' 콜위니아를 얻어 전능자로 거듭난다. 그러나 그에게 다른 다크사이더와 권능자들은 반감을 갖게 되며, 그들을 모두 처형한 잭은 권능자들이 필요한 다크사이드를 유지하는 실드를 돌보는 것에 실패하자 다른 방법을 찾아 나선다...

로저 젤라즈니는 제가 추리 이외 장르문학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가죠. 국내에 출간된 대표작들은 다 읽어봤을 정도로요. 때문에 이 책도 기대가 무척 컸답니다.

하지만 생각과는 좀 달랐습니다. 전형적인 히어로 판타지인데 단편을 억지로 길게 늘려놓은 느낌이 없잖아 있거든요. 저 위의 줄거리 요약이 전부일 정도로 이야기도 별다를게 없고요. 주인공이 절벽같은데서 떨어진 뒤 괴물을 잡아먹거나 기연을 만나 무공이 증진되어 돌아와 복수한다는 무협지와 별 다를 것 없는 내용이잖아요.
또 뭔가 있어보이는 설정 자체는 매력적이지만 이야기에 별로 등장하지 않는 것도 아쉬웠습니다. 여러 캐릭터들과 다크사이드, 데이사이드의 세계관은 분위기는 있는데 별로 치밀하지도 못하고 많이 등장하지도 않는 등 좀 대충대충 분위기가 많이 나네요.

그래도 특유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다채롭고 디테일한 묘사, 작품 내내 보여주는 후까시는 젤라즈니라는 이름에서 기대한 것 만큼 독자를 즐겁게 해 줍니다. 마지막의 다크사이드와 데이사이드가 결합하여 "낮"과 "밤"이 생긴다는 아이디어는 정말 탁월한것 같아요! 거장이 달리 거장이 아니겠죠. 앞서 말했든 자세하지는 않지만 마법의 다크사이드와 과학의 데이사이드라는 설정 등 세계관은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매력적이고요. 세계관과 설정이 보다 치밀하게 등장했더라면 거의 "반지의 제왕"급의 판타지가 될 수도 있었을텐데 정말 아까운 작품이 아닌가 싶네요. 혹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한 거장의 배려였나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별점은 3점입니다. 

PS : 렛츠리뷰에 당첨되어 받은 책으로 좋은 기회를 주신 이글루스와 페이퍼하우스에 감사드립니다.

2014/03/04

다크 존 - 기시 유스케 / 한성례 : 별점 2점

다크 존 - 6점
기시 유스케 지음, 한성례 옮김/씨엘북스

장려회 프로 장기기사 출신 쓰카다 히로시는 어느 날 어두컴컴한 폐허에서 정신을 차렸다. 그곳은 "다크 존"이라는 공간이었다. 쓰카다는 다크존의 "홍왕"이 되어 17명의 병사를 이끌고 "청왕"과 7전 4선승제의 기묘한 시합을 벌이게 되는데...

다양한 장르물에서 필력을 과시해 왔던 기시 유스케의 장편 소설입니다. 이 작품은 장르를 뭐라고 정의하면 좋을지 망설여지지만, "판타지 호러 게임 스릴러"라고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폐쇄된 공간을 무대로, 작자가 창조한 호러블한 게임이 벌어지는 내용이니까요. 

일본 장기를 바탕으로 한 게임이 작품의 핵심 요소로, 탄탄한 설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설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1. 각 말들은 그리스 신화에서 따온 이름으로 이루어져 있다.
  2. 상대방의 말을 잡으면 내가 불러내어 사용할 수 있다.
  3. 시간, 적을 죽인 포인트가 모이면 승격이 가능하다.

이러한 룰과 말들의 특징을 잘 활용한 7전 4선승제의 게임 묘사만큼은 발군으로, 다양한 전략과 전술이 화려하게 펼쳐져서 굉장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게임 외의 부분은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이 별로 없습니다. 주인공 쓰카다에게 전혀 공감할 수 없는 전개 탓이 큽니다. 동거하던 이구치를 임신시킨 것, 함께 방문한 군함도에서 그녀를 내버려 둬 결국 과다 출혈로 사망하게 만든 것, 장려회에 남아있을 수 있는 기회를 건 마지막 승부에서 오쿠모토에게 진 것 모두 본인의 잘못입니다. 따라서 이구치 죽음의 책임을 물어 오쿠모토를 죽인건 순전히 자기 합리화에 불과했습니다.

그 외에 여러가지 행동들도 — 유원지에서 커플에게 시비를 건다던가, 대학 강의실에서 여교수에게 지적을 받고 쫓겨난다던가 — 쓰카다의 잘못이 없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한마디로 전형적인 민폐 캐릭터에요. 이 놈만 없었어도 이구치와 오쿠모토는 훨씬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겁니다. 옮긴이의 말에서 극단적인 경쟁사회에서 누구나 무너질 수 있다는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라고 해설하고 있는데, 글쎄요... 극단적인 경쟁사회에서 실패한다고 사람을 죽이거나 하는 건 아니죠.

또 지나치게 게임 위주라는 것도 불만입니다. 작가의 또 다른 클로즈드 서클 호러 액션 스릴러 "크림슨의 미궁"은 상황에 대한 설명이 나름대로 등장하지만, 이 작품은 순수하게 쓰카다의 마음속, 죄책감과 죄악감이 불러온 연옥이라는 설정이거든요. 이럴 거면 그냥 게임에 대해서만 쓰는게 나았습니다. 불필요한 쓰카다 이야기는 왜 나왔나 싶네요. 초반부에 게임 디자이너 메카로 겐고를 비중 있게 등장시켜 뭔가 합리적인 설명을 기대하게 만드는데, 단순한 떡밥일 뿐이라는 것도 불만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더 이야기하자면, 연인 이구치가 다크 존의 모태인 "군함도"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다는 설정이라던가 쓰카다의 과거 회상 모두 역시나 별거 없는 떡밥이라 실망스러웠어요.

또 홍왕 쓰카다는 물론, 독자에게 게임에 대한 공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정교한 맛이 떨어집니다. 게임을 하면서 그 내용을 하나씩 알아가는 식인데, 게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룰에 대해 명확히 숙지부터 하는 게 더 몰입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스타크래프트" 전성기 시절 임요환 선수의 플레이가 놀라움을 자아냈던 것은 익히 잘 알고 있는 유닛의 창의적인 활용 때문입니다. 그러한 맛은 부족해요. 이러한 점에서 이전 작품들에 비하면 깊이 고민하고 쓴 작품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작가 스스로 창조한 기묘한 게임으로 박진감 넘치게 이야기를 전개한 솜씨는 분명 놀라운 재능이고 본받을 만한 점이지만, 게임 외의 다른 요소는 건질 게 거의 없는 작품입니다. 여태 읽은 작가 장편 중 최악인데 차라리 "스타크래프트" 게임 중계를 소설로 옮기는 게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그나저나 찾아보니 출간된 지 2년도 안 되었는데 이미 절판되었더군요. 딱히 어렵게 구해볼 책은 아니지만 의외이기는 합니다. 그렇게 인기가 없었나?

2012/08/23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 (상) - 스티븐 킹 / 조영학 : 별점 2.5점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 - 상 - 6점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황금가지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 (하) - 스티븐 킹 / 조영학 : 별점 2.5점

먼저 읽었던 하권에 이은 상권.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제4호 부검실
검은 정장의 악마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다
잭 해밀턴의 죽음
죽음의 방
엘루리아의 어린 수녀들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

그다지 무섭지 않으며 강한 심리 묘사가 중심이라는 특징은 하권과 동일합니다. 그래도 교훈적인 주제는 하권만큼 많지는 않더군요. 조금 더 재미에 치중한 작품들이었습니다. 별점은 2.5점. 개인적인 베스트는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다>입니다.

<제 4호 부검실>
의식이 있지만 몸 전체가 마비된 주인공이 부검실에서 부검을 기다리는 신세가 된 것을 깨닫는다는 스릴러. 그에게 닥칠 부검이 언제 시작될 것인지에 대한 긴장감이 부검실 의사들의 유머러스한 대화와 맞물린다는 점에서 블랙코미디같은 느낌도 큽니다. 결말이 예상대로이긴 하나 코미디로 보면 괜찮은 듯. 별점은 2.5점입니다.

<검은 정장의 악마>
한 노인이 20세기 초엽, 자신이 아홉살 때 만났던 악마에 대해 털어놓는다는 내용. 너새니얼 호손의 <영 굿맨 브라운>에 대한 개인적 헌사이며 킹 본인은 별볼일 없는 결과물로 생각했지만 반응도 좋았고 상도 탔다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킹 의견에 동의합니다. 별볼일 없었어요. 호손 시대에 쓰여진듯한 오래된 감수성이 확실히 느껴지기도 했을 뿐더러 별로 무섭지도 않았거든요.
게다가 전개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악마가 왜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거짓말을 했는지 알 수가 없고 제대로 추격하지 않은 이유도 명쾌하지 못한 등 떡밥만 가득할 뿐이라서 말이죠. 중후반부 악마와의 추격전 하나만큼은 긴장감이 넘치지지만 단점이 워낙 명확하기 때문에 별점은 2점입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다>
한 세일즈맨이 자살을 하려다 평생 모은 화장실 낙서에 대한 노트의 처리를 놓고 고민한다는 드라마. 탁월한 심리묘사에 화장실 낙서라는 이질적인 소재를 잘 어우른 걸작 소품. 길이도 적당할 뿐더러 삽입된 낙서들이 참 적절하더군요. 그리고 열린 결말이 정말 잘 어울렸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잭 해밀턴의 죽음>
딜린저 갱단의 일원이었던 잭 해밀턴의 죽음을 딜린저의 오른팔 호머 반미터가 회고하는 안티 히어로 물이자 신화이자 팩션. 실제로 있었음직한 생생함이 압도적입니다. 딜린저에 대해 모르면 즐기기 어렵다는 단점은 있지만... 저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창작 동기가 킹이 호머 반미터가 파리에 올가미를 던지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라고 하는데 단지 그 정도의 소스로 이렇게나 그럴듯하게 이야기를 꾸며내다니, 역시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 하나만큼은 타의추종을 불허하는구나 싶더군요. 별점은 3점입니다.

<죽음의 방>
남미 한 국가 고문실에 잡혀온 미국기자 플레쳐의 탈출을 그린 모험물.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전개가 일품인, 서스펜스 하나만큼은 최고로 치고 싶은 작품입니다. 금연한 사람에게 담배를 피고 싶게끔 만드는 효과도 있는데 흡연 장려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지나치게 낙관적인 결말은 그닥이나 흥미진진한 것은 확실하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엘루리아의 어린 수녀들>
<다크 타워> 시리즈의 번외편 단편이라고 합니다. 원전을 읽지 않아 세계관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느낌은 <북두의 권> + <트라이건> 정도 되려나요? 이 작품집에서 가장 긴, 중편에 가까운 길이를 자랑합니다.
일단 수녀들의 정체, 녹색 괴물들과 끔찍한 벌레들이 등장하는 등 호러 판타지로서의 묘사와 설정은 좋습니다. 그러나 포로가 된 히어로와 그를 돕는 비련의 히로인 그리고 둘에게 닥친 비극적 결말이라는 전형적인 이야기 구조에서 조금도 더 나아간 것이 없어서 아쉽습니다. 이래서야 인어공주의 다크버젼일 뿐이죠. 물거품이 아니라 벌레가 되었을 뿐.
때문에 제게는 알맹이가 별로 없는 흔해빠진 호러 판타지였을 뿐입니다. 젤라즈니가 왜 대단한지 다시금 느끼게 해 주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
사람을 자살로 유도하는 초능력을 가진 딩크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관에 고용되어 안락한 삶을 누리지만 자신이 살인에 이용되었음을 깨닫고 탈출을 결심한다는 이야기.
설정도 흥미진진하고 이야기도 재미있기는 한데 영화로 따지면 기본 설정과 주인공 소개 후 막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려 할 때 끝나는 느낌이에요. 기-승 까지만 있다는 느낌? 그래서 완성도는 높이 쳐주기 어렵네요. 뒷부분을 따로 본다면 모를까.
덧붙이자면 작가 스스로 밝힌, 창작 동기인 잔돈을 버리는 청년에 대한 설명도 그닥 잘 되어 있지 않더군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17/02/18

갓 오브 이집트 (2016) - 알렉스 프로야스 : 별점 1.5점



'옥수수' 무료 영화로 감상했습니다. 

그런데, 한마디로 최악의 영화입니다. 본 사람들이 돈을 받아야 할 것 같아요. 제일 큰 문제는 각본입니다. 기둥이 되는 복수극 - 아버지 오시리스를 죽이고 자신의 두 눈을 가져간 삼촌 세트에게 호루스가 복수한다 - 은 뻔하지만, 원전인 이집트 신화 그대로인만큼 문제는 아닙니다. 호루스가 겪는 고통은 시련이며, 배려와 백성(?)에 대한 사랑을 깨달아야 시련을 극복하고 진정한 왕이 될 수 있다는 극적 흐름도 나쁘는 않고요. 그러나 진행되는 과정이 엉망입니다. 이런 시나리오에 1억불이 넘는 돈을 투자한 제작진이 이해가 안됩니다. 라이언스 게이트가 망해가는 이유겠죠.
우선 인간 벡, 그는 죽은 연인 자야를 되살리기 위해 호루스의 복수를 돕는 인물입니다. 허나 극초반 호루스의 눈을 훔쳐낸 다음부터는 영화는 과묵한 액션 마초(호루스)와 떠벌이 재담꾼(벡)이 함께하는 전형적인 미국풍 버디 코미디 액션 영화가 되어버립니다. 연인은 죽고 세계는 멸망하기 직전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세트가 가진 힘의 원천이라는, 불길이 있는 피라미드의 길을 안다는 유일한 장점도 불을 끄는데 실패함으로써 무위로 돌아갑니다. 그나마 마지막 호루스의 선택으로 시련을 극복하는 장면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하긴 합니다만 그 전까지 보여준 존재감은 최악이에요.

최종 보스 세트도 엉망인건 마찬가지입니다. 그 중에서도 파워 밸런스 문제는 최악 중 최악으로 토트의 지혜, 호루스의 눈 , 오시리스의 심장, 네프티스의 날개에 라의 창까지 한 몸에 지닌 완전체인데 이 모든 것을 갖추기 전에 떡으로 만들었던 호루스에게 결딴나는 마지막 격투는 이게 뭔가 싶더군요. 시련을 극복한 호루스가 파워업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만... 정말 그랬다면 일본 애니메이션처럼 한번 더 변신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대사만으로도 - '새로운 힘이 느껴져!' 뭐 이런거요 - 강해졌다는 설명을 해 줬어야 합니다.

CG도 끔찍합니다. 번쩍번쩍할 뿐 일본 특촬물 과 다를게 없어요 . "세인트 세이야" 실사판이 나오면 이렇지 않을까요? 디자인이라도 괜찮았어야 했는데 뻔한 이집트 메타포를 활용, 복제한 수준에 머뭅니다. 호루스 변신 형태는 깡통 로보트를 보는 느낌이며 라의 거인 변신도 어이가 없었고요. 이 쯤 되면 이집트를 무대로, 이집트 신들과 인간이 등장하지만 주인공들은 모두 백인이라는 문제는 문제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나마 신은 인간보다 크다던가, 각 신들의 특수 능력을 떼어내면 일종의 오브제 (토트의 뇌와 호루스의 눈은 보석, 날개는 날개모양 판때기...)가 되는 등 몇몇 설정 외에는 건질게 하나 없는 졸작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혹시나 공짜로 볼 수 있어도 피해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시간은 가치있는 무언가를 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니까요. 그게 뭐든 이 영화 감상보다는 가치가 있는 행동일 겁니다.

덧붙이자면, "300"처럼 어두운 다크 판타지로 만들면 좀 더 나았을 듯 합니다. 벡이라는 인간말고 그야말로 신들의 전쟁으로요. 눈을 훔치는 것은 호루스를 위하여 세트에게 몸을 바친 하토르에게 맡기고, 하토르는 그 때문에 세트에게 죽음을 당하지만 그녀를 죽게 놔두고 백성을 택한 호루스의 각성으로 이집트가 평화를 되찾는다... 정도의 이야기였으면 깔끔했을 거에요. 마지막은 2편을 위해 하토르를 구하러 죽음의 나라로 떠나는 호루스를 그리는 것으로 화룡정점! 이렇게만 나왔으면 별점 2.5점은 줬을 듯?

2022/02/06

디오게네스 변주곡 - 찬호께이 / 강초아 : 별점 3.5점

디오게네스 변주곡 - 8점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중화권 추리 소설의 대표작가 찬호께이의 단편집입니다. 본격적인 작가 데뷰 초창기에서부터 최근작까지 10여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작업했던 결과물을 모아 놓았는데 본격 추리는 물론 호러, SF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고 있어서 찬호께이라는 작가의 새로운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책 뒤에 실려있는 작가의 작품별 후기도 굉장히 좋습니다.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어떤 생각으로 그 작품을 썼는지를 잘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습작 1,2,3"가 쓰여진 방법이 아주 대박이었습니다. 임의로 키워드를 제공하는 웹사이트에 가서 다섯 개의 단어를 얻은 뒤, 그 키워드를 순서대로 연결해서 아주 짤막한 엽편 소설을 쓴 결과물이라고 하거든요. 읽을 때는 이런걸 뭐하러 실어 놓았나? 싶었는데, 쓰여진 방법을 알고나니 달라 보이더라고요. 특히 "습작 1"이 놀라와요. 이런 키워드로 어떻게든 말이 되는, 그것도 반전까지 있음직한 엽편을 만들어 냈으니까요. 과연 잘 나가는 작가는 다르구나! 싶었습니다. 저도 이 방법은 한 번 따라 해보고 싶어지네요.

전체적으로 작품들 수준이 고르지는 않지만, 장르문학 팬이라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단편집입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범인, 진상 등을 까발리는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파랑을 엿보는 파랑"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란유웨이는 겉보기에는 유능하고, 사회성 좋은 청년이지만, '삼람소옥'이라는 블로그를 엿보며, 다크 웹에 접속하는 은밀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삼람소옥'의 운영자 샤오란의 가족 관계, 거주지, 체형, 취미 등 모든걸 알아낸 그는, 결국 샤오란의 집에 침입하여 여자를 살해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마는데.... 

초기작으로 제 7회 타이완추리작가협회 공모전 결선작입니다. 고작 사흘 걸려서 썼다는데, 그렇게는 믿어지지 않는 완성도를 갖추고 있습니다. 란유웨이가 완전 범죄를 저지르는 과정이 시작부터 상세하게 설명되는 도서 추리물로도 뛰어나지만, 란유웨이가 살해한게 샤오란이 아니라 이웃에 사는 린치칭이라는 반전의 서술 트릭물이라는 복잡한 구성을 잘 살려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린치칭이 샤오란을 죽이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사고를 위장해서 죽였다는 설정인데, 이러한 반전이 다크 웹에서의 회원들 사이 의견 교환, 삼람소옥의 글 들을 통해 교묘하게 등장해서 설득력이 높았습니다. 삼람소옥 글만으로 사용자를 추리해내고, 감시하는 과정은 "망내인"을 연상케하는 점도 작가의 팬이라면 즐길 수 있는 재미 요소고요.

린치칭이 연쇄 살인마는걸 어떻게 알았는지에 대해 설명이 부족한 등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산타클로스 살인 사건" 

금융 위기로 전재산을 잃은 테일러는 가족을 떠나 노숙자가 되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다른 노숙자 샘을 만나 기묘한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이브날, 산타의 집에 산타클로스를 살해하겠다는 살인 예고 편지가 날아온 뒤 산타가 머리 없는 시체로 돌아왔다는 이야기였다... 

굉장히 짤막한 꽁트인데, 나름 추리물로 제 역할을 다 합니다. 존의 짤막한 이야기의 몇몇 디테일을 통해 펼치는 테일러의 추리가 일품인 덕분입니다. 그는 썰매 위에 흰 수염이 흩어져 있었다는 설명을 듣고, 빠른 속도로 이동할 때 피아노줄로 목을 잘리게 만든 트릭이 아닐까 생각했지요. 그러나 죽은 뒤 목이 잘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산타클로스가 대역이 살해당한 걸로 꾸미고 숨었다는 진상을 밝혀냅니다. 존이 산타클로스였고, 일련의 이야기는 테일러를 가족에게 돌려보내려는 계획의 일환이었다는 결말도 깔끔했어요.

길이를 조금 더 줄였더라면 좋았겠지만 지금 이 정도도 아주 좋았던, 크리스마스에 적합한 소품입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참고로 왜 무대가 미국 뉴욕일까?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작가 후기를 보니 '존'이라는 이름을 '존 도'에서 따 왔다는 복선을 사용할 생각이었다고 하네요.

"정수리" 

아홍은 어느날부터 사람들 정수리 위에 떠 있는 '그것'을 보기 시작했고, 어쩔 수 없이 정신과 진료를 받게 되었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들이 자기 머리 위를 쳐다보지 않는다는걸 깨달았다. 모두가 똑같은걸 보지만 못 본채 해 왔던 것이었다! 지친 아홍이 결국 현실에 순응하기로 결정하자 아홍의 머리 위 천 뭉치가 열리고 도마뱀같은 괴물이 나타났다... 

2018년에 발표된 비교적 최신작입니다. 한 매체로부터 '귀신'이라는 주제로 단편을 써 달라는 요청을 받고 썼다고 합니다. 쓰여진 이유답게 판타지 일상계 호러물로 볼 수 있습니다. "환상특급"에 나오면 괜찮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요. 획일화되고, 개성이 존중받지 못하는 현대 사회를 상징하는게 아닐까 싶기도 했는데, 관련된 언급은 없네요.

그러나 흥미로왔던 도입부를 지나 뒤로 갈 수록 재미를 찾기는 힘듭니다. '왜'라는 측면에서 부족함이 많은 탓입니다. 결국 머리 위 이상한 물체들에 대한 묘사 외에는 건질게 없었어요. 작가 후기를 보니 의도적으로 논리나 추리 요소보다는 황당무계한 현실이 주는 스릴에 집중했다는데, 이래서야 고어 포르노와 크게 다를바 없는 셈이지요. 별점은 2점입니다.

"시간이 곧 금" 

리원은 시간 거래 센터를 방문하여 자기 시간을 팔게 되었다. 고통을 잊고, 돈과 성공을 빠르게 누리기 위해서였다... 

2010년에 발표된 비교적 초기작으로 이 역시 "환상특급"이 떠오르는 단편입니다. 

제일 재미있던건 시간 거래에 대한 설정입니다. 시간을 팔면, 해당 시간이 곧바로 지나가고 그 시간에 대한 기억은 남지만 현실감은 사라집니다. 시간을 사면 시간이 길어졌다고 느끼게 되고요. 돈 벌이, 그리고 힘든 기억과 고통을 피하기 위해 시간을 적극적으로 판 리원, 그리고 필요한 시간을 조금씩 사서 인생을 풍요롭게 만든 연적 아리의 대비가 인상적으로 그려집니다. 특히 아리가 시간을 샀다는걸 마지막에 반전처럼 등장시켜서,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극적으로 드러내는 전개가 일품입니다. 아리의 말대로 인생에 고통이 있어야 기쁨도 있는 법이지요.

하지만 지나치게 양비론적인 접근이 아닌가 싶기는 합니다. 극단적으로 팔거나 살 필요는 없고, 적당히 사고 팔면서 인생을 사는게 합리적일테니까요. 예를 들어, 군대에 가게되면 이 시간은 당연히 파는게 낫잖아요? 좋은 설정을 잘 활용하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추리 소설가의 등단 살인" 

유명 편집장이 작품을 가져온 신인 작가에게 사람을 죽여봐야 한다고 말했다. 현실감을 부여하기 위해서라는 이유였다. 신인 작가는 등단을 위해 서점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사람을 죽일 결심을 했다. 그녀가 추리 소설, 특히 밀실 살인을 비난했기 때문에, 완벽한 밀실 트릭을 만들어 살해하는데... 

초반의 편집자의 주장은 아주 와 닿았습니다. 직접 살인을 저지를 정도로 고민해야 현실감을 느끼게 만들 수 있을거라는 취지는 공감하거든요. 주인공 신인 작가의 범행도 그래서 설득력있었습니다. 신인 작가라면 혹할만한 주장인건 분명합니다.

추리적으로도 괜찮았습니다. 밀실에는 사람이 드나들 수는 없지만 창이 있었는데, 이 창을 통해서 끈만 집어넣어 피해자를 교살했다는 트릭이 특히 좋아요. 피해자가 직접 목을 집어 넣어야 하기에 '이게 가능하겠어?'라고 생각이 들게 하지만, 피해자가 참가했던 연극 연습을 위해 스스로 밧줄 안에 목을 집어 넣었다는걸 꽤 설득력있게 풀어내고 있는 덕분입니다. 과학 수사를 통해 경찰이 진상을 밝힌다는 결말도 좋았습니다. 이런 밀실 트릭이 21세기에 먹힌다는건 사실 말도 안되니까요.

무엇보다도, 이 모든걸 뒤집는 반전이 놀랍습니다. 편집장은 가짜였고, 유명 작가가 신인 작가를 부추켜 살인을 저지르게 만든 후, 진상을 듣고 자기가 사건을 해결한 것 처럼 꾸며 경찰에 제보했다는건데 정말 생각도 못했네요.

반전이 너무 많은 감이 없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좋은 수작이었습니다. 제 별점은 4점입니다.

"필요한 침묵" 

지옥의 수용소에 처 넣어진지 10년만에, '나'는 친구 라오왕이 죽은 뒤 과거에 자신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나'는 킬러였다는 짤막한 꽁트. 특기할 만한 점은 없습니다. 설명도 너무 부족하고요. 작가 후기에서 작품을 쓰게 된 동기와 작품 내용도 잘 연결되지 않습니다. 차라리 영화 "언디스퓨디드" 시리즈처럼 화끈하게 풀어내는게 더 재미있었을겁니다. 별점을 따로 줄 만한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가라 행성 제 9호 사건" 

가라 행성에서 아홉번째 (제 9호) 사고가 일어났다. 이전의 사고들을 일으켰던 316형 중력 붕괴 엔진의 문제를 해결한 신형 317형 엔진을 탑재한 카로카호는 정상 작동 중이었다. 그러나 3명의 승무원은 상륙정으로 가라 행성에 상륙했다가, 끔찍하게 죽고 말았다. 사고 당시, 장거리 통신 시스템만 분해되어 상륙정에 실려 있었다. 

사건 조사 중 승무원이 최후를 맞는 동영상에서, 외계 행성으로의 진출을 위해 통제와 소수 희생을 강요하는 발전파의 거두 모모코 사령관이 범인임을 암시하는 파우스타 함장의 발언이 녹화되어 있다는게 밝혀지자, 조사 위원회는 탐정 두핀핀을 불렀다. 맥켄넨 총독은 자유를 강조하는 보수파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SF 추리물인데 추리적으로는 본격 추리물로 보아도 될 정도로 수준이 높습니다. 단순하지 않고, 반전과 함께 진상이 드러나는 전개도 일품이고요. 우선 함장의 발언으로 모모코 사령관이 승무원들을 매수해 사건을 일으켰다는 추리가 먼저 선보입니다. 모든 주민 행동을 녹화하는 시스템 '눈'으로 모모코 사령관이 통신병을 만났다는게 증거고요.

그러나 사건은 맥켄넨 총독이 일으켰다는 진상이 드러납니다. 그는 선체 엔진이 316형 엔진인 것 처럼 조작했던 겁니다. 함장은 폭발할까봐 카로카호를 버리고 탈출했고요. 장거리 통신 시스템은 상륙 후 본성과의 통신을 위해 떼어 갔던 겁니다. 그러나 사고로 승무원들 모두가 사망했고, 총독은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자 스스로 두핀핀 탐정을 불러 이 모든걸 밝히끔 유도했다고 설명됩니다. 개인을 통제하고, 오로지 외계 행성으로의 진출만 경주하는 발전파도 '탐정'이라는 쓸데없는 직업의 도움을 받은 셈이라 보수파도 나름의 명분을 세울 수 있었다는 내용과 함께요. 추리와 전개 모두 합리적이며, 단서 제공도 공정한 편입니다. 작가가 스스로 세운 설정 중심이라 추리가 쉽지 않다는 단점은 있지만요.

무엇보다도 작가 후기를 통해 드러난 작가의 의도가 놀라왔습니다. '후기 문제'로 인한 본격 추리의 불완전성을 드러내는 본격 추리 소설을 쓰기 위해서였다는데 그 의도에 완벽하게 부합하거든요. 후기 퀸 문제는, 소설 속 탐정은 자기가 알고 있는 정보가 전부이고 자기의 결론이 유일무이한 진실인지 여부를 작품 속에서 증명할 수 없다는 것, 즉 작가와 독자 사이의 공정함은 탐정에게는 해당되지 않는게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엘러리 퀸도 후기작에서는 독자에의 도전을 없앴다지요. 찬호께이는 완벽한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모든 단서는 '눈' 시스템에 기록된 내용을 기준으로 합니다. 두핀핀 탐정은 아예 사건과 무관한 탐정으로 이 기록만 가지고 추리를 진행하며, 무엇보다도 탐정 스스로가 '사건의 이유'가 되기까지 합니다! 

SF로도 생각할 거리가 많았어요. 특히 가라 성 거주 생명체 바보우에 대한 설명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들의 수명은 인간에 비하면 극도로 짧은데, 이렇게 모든건 서로 상대적이라는걸 지구에서 있었던 여러가지 재해를 빗대는 부분이 특히요. 이 부분만 따로 떼어서, 제대로 된 하드 SF를 써도 좋겠다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 지루한 설정만 참는다면, 그 이상의 보답을 얻을 수 있는 걸작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내 사랑 엘리" 

나는 처제 수와 그 남편 토니를 초대해 저녁을 대접했다. 아내 엘리는 아프다고 했지만, 사실은 2층에서 시체로 누워 있었다... 

완벽한 알리바이를 수와 토니 앞에서 만드는 '나'의 작전이 먼저 상세하게 펼쳐집니다. 알리바이 트릭의 핵심은 시체를 끈을 당겨 움직이게 만드는 정도로 현실적이라서 괜찮았어요. 수를 죽인게 토니였다는 반전도 나쁘지 않았고요. 

하지만 엘리와 토니가 불륜 관계였다는걸 입증하는 증거가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둘이 불륜 관계로 함께 도망갔다고 수와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려면 말이지요. 단순 실종으로 수사가 시작되면 어떻게 뒤집힐 지도 모르니까요. 이런 점에서 좋은 추리, 범죄물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습작 2" 

고독을 주제로 한 짤막한 꽁트. 전염병 숙주인 남자 혼자 세상에 살아남았다는 이야기. 그다지 의외성도 없고 너무 짧아서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커피와 담배" 

시사 잡지 포커스의 기자인 나는 일요일 오전 10시 8분에 모르는 공원 벤치에서 정신을 차렸다. 지난 수요일 이후 기억은 잃은 상태였다. 몸은 간절히 커피를 원했고, 커피를 마시고자 편의점과 여러 가게를 돌아다닌 나는 지금 세상은 담배가 합법이고 커피가 불법이라는걸 알게 되었다. 결국 몰래 커피를 판다는 약국에서 커피를 입수하다가 경찰에 체포된 나는 난동을 부리다가 기절해 버리고 마는데.... 

모든건 흡연자였단 '나'의 금연 치료를 위해 루 박사가 행했던 IC 금연 치료 실험 탓에 벌어진 착각이었다는게 진상인 이야기입니다. 측두엽, 후두엽, 전두엽 간 관계 문제로 '나'는 담배를 커피로 인지했고, 이를 언어로 구성할 때는 '마약'으로 말했던 겁니다. 루 박사의 시계를 붕대로 착각하고 있어서, '나'의 치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결말도 나쁘지 않았고요. 

기묘한 상황을 나름대로 잘 설명하고 이는 독특한 SF이자 판타지로, 이 작품도 "환상특급"에 사용되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되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자매" 

'나'는 여자친구 아쉐가 기생충인 언니 아신을 죽여서 시체를 숨길 계획을 세웠다. 우선 중고 냉장고를 구입하여 아쉐 집으로 옮긴 뒤, 원래 집에 있던 냉장고에 아신의 시체를 담아 들고 나왔다. 그리고 컨테이너 화물차 안에서 시체를 꺼냈고 냉장고는 버렸다. 아신으로 변장한 아쉐가 경비원에게 눈도장을 찍고 외출하도록 시켰고, 아신의 시체는 밤에 바다에 버렸다... 

시체를 바다에 버리는 범행 과정만큼은 그럴싸하게 그려진 범죄물입니다. 그런데 '나'가 아쉐와 결혼할 경우. 600만 홍콩 달러에 달하는 집 명의자에 추가되고 아이가 생기면 아예 상속자가 되어버려 아신은 집 상속권을 잃게 되기 때문에 아신이 먼저 아쉐를 죽일 계획을 꾸몄었고, 이를 알아챈 '나'가 아신을 죽였다는 반전은 뜬금없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악마당 괴인 살해 사건"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던, 지구 정복을 꿈꾸는 악마당 본부에서 간부 감자 괴인이 머리가 으깬 감자가 되어 죽은 채 발견되었다. 우두머리 바다 대왕과 살아남은 간부인 양파, 사마귀, 해삼 괴인 앞에서 코작 참모는 사건이 감자 괴인의 자작극이라는 추리를 펼치는데... 

일본 전대물 설정을 본격 추리물에 끌어들였는데, 의외로 수준이 높아서 깜짝 놀랐던 작품입니다. 감자 괴인의 목을 자를 수 있었던건 사마귀 괴인과 가면전사 1호의 무기였다는 단서가 앞 부분에 제공되고, 코작 참모의 기묘한 행동을 통해 코작 참모가 가면전사 1호였다는게 드러나는 반전이 아주 일품인 덕분입니다. 코작 참모가 이를 가자 괴인 자작극이라고 설명하는 것도 나름대로 합리적이라 설득력 높은 추리였고요. 재미와 추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걸작으로 별점은 5점입니다. 수록작 중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영혼을 보는 눈" 

나는 담배를 피우다가 한 노인을 알게 되었다. 노인은 자신이 잘나갔던 영매였지만, 30년 전 사건으로 몰락했다며 그 사건 이야기를 해 주었다. 프로그래머 A씨 아내가 몸을 열 번 넘게 칼에 찔려 살해되었던 사건이었다. 아내의 영혼은 A씨를 범인으로 지목했고, A씨 지문이 묻은 흉기를 찾는 것도 도왔기에 결국 A씨는 사형당했다. 그러나 다른 사건이 벌어졌고, 진범은 시체를 발견했던 가정부였다는게 밝혀졌다. A씨 아내 영혼은 A씨가 불륜녀와 행복하게 살 까봐 거짓말을 했던 것이었다.... 

잡지 요청으로 귀신을 주제로 썼다는 점은 "정수리"와 비슷하네요. 하지만 공포 자체에 집중했던 "정수리"보다 못했습니다. 무섭지도 않고, 그리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래도 영혼이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처음 접했는데, 나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그렇게 효과적으로 살리지 못했습니다. '나'는 킬러였으며 노인은 방금 죽인 타겟의 영혼이 '나'의 뒤에 있는걸 보았다는 결말도 진부했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숨어있는 X" '

나'는 강의 후 급작스러운 폭우가 쏟아진 탓에 옆 강의실의 '추리소설의 감상, 창작, 그리고 분석'이라는 강의를 청강하게 되었다. 강의 시작 후, 학생들과 대화를 하던 교수 '수염남'은 학생들에게 추리 게임을 제안했다. 지금 강의실에 조교가 학생인 척 숨어있는데, 그게 누구인지 이유와 증거를 제시해 보라는 게임이었다. 정답을 맞춘 한 명에게 무조건 A학점을 주겠다는 말에, 강의실 학생들 모두가 참여하게 되는데.... 

찬호께이는 후더닛물을 싫어한다고 합니다. 클리셰를 벗어날 수 없고(아마 가장 수상해 보이지 않은 사람이 범인이라던가, 그런걸 의미하는 말 같습니다), 독자가 직감으로 범인을 지목할 수 있기 때문이라네요. 그래서 이런 점을 보완할 수 있는 후더닛물의 변주를 고민해서 이 작품을 썼다고 합니다. 

창작 의도에 걸맞게 클리셰는 먹히기 힘듭니다. 애초에 강의실에 있는 모든 학생들은 그 자리에서 처음 만나서 대화를 시작했기 때문에 각자의 별명. 그리고 생김새와 성격 묘사만 있을 뿐이니까요. 이 정도 단서로는 수수께끼를 풀어내기에 벅차지요. 범죄도 아니기에 동기나 범행 수법으로 당사자를 찾아내는 것도 불가능하고요.

하지만 누군가에게 지목받은 사람은 자기 정체를 드러내야 하고, 지목에 실패한 사람은 탈락한다는 게임의 기본 룰과 서로간의 대화를 통해 합리적으로 수수께끼는 풀리며, 교수인 줄 알았던 수염남이 조교였고 학생인 줄 알았던 '코다 쿠미'가 교수였다는 진상도 깜짝 놀랄만해서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화자이자 주인공 '냉커피' 역시 학생이 아니라 교수여서 수수께끼를 풀어냈다는 반전섞인 결말도 아주 깔끔했고요. 눈으로 고립된 산장에 초대받아 방문한 서로를 모르는 투숙객들 중 초대받지 못한 불청객을 찾아내는 정통 추리물을 현실감있게, 그리고 완성도높게 구현한 수작이에요.

물론 게임이 이렇게 강의 시간안에 딱 맞게 잘 끝났을지는 사실 의문이에요. 교수가 수수께끼를 마지막까지 숨기려는 의도가 더 많았을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무조건 차례대로 한 명씩 지목하면, 결국 마지막에 남는 사람이 한 명 생기고 그 사람이 진상을 깨우칠 수 있다는 결정적 약점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게임'이 작위적이라고 감점하는건 말도 안되겠지요. 제 별점은 4점입니다.

2020/05/01

무라카미 하루키의 100곡 - 구리하라 유이치로 / 문승준 : 별점 2.5점

무라카미 하루키의 100곡 - 6점
구리하라 유이치로 엮음, 문승준 옮김/내친구의서재

제목 그대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이런 저런 곡들에 대해 해설해 주는 책입니다.
몇 년 전 "애프터 다크"를 읽었을 때, 이런저런 곡들이 무척 많이 소개되어 리뷰에 따로 적어놓았던 적이 있는데, 이런 책이 나올 정도로 다른 작품 역시 많은 곡들이 쓰였네요. 하긴, 대표작인 "노르웨이의 숲"은 제목부터가 비틀즈의 곡 제목일 정도이니 당연하겠지요? 책은 1960년대적 가치관 소멸을 상징한다는 1980년대 이후의 음악들 (주로 팝), 록, , 클래식, 재즈의 5가지 장르로 하루키 작품 속 곡들을 분류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그렇게 많이 읽어본 편은 아닙니다. 그래서 아는 곡 역시 그리 많지 않았고요. 하지만 짤막한 해설들이 꽤 재미있어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아는 작품, 아는 곡의 경우는 더욱 반갑더군요.

특히 좋았던건, 곡이 특별한 '상징'이나 '메타포'로 사용된 경우와 그 의미에 대해 설명해 주는 부분들이었습니다. 냇 킹 콜이 불렀다는 'South of border' 소개가 대표적입니다. 노래 속의 이상향으로 등장하는 '멕시코'가 실재하지 않듯이, 이 노래를 냇 킹 콜이 부른 버젼도 실재하지 않고, 그래서 이 곡이 등장하는 장면은 비현실적이지만 이상하게 현실적인, 무라카미 하루키 특유의 판타지를 상징한다는데 이 정보를 알고 책을 읽으면 참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런 부분은 팝 보다는 클래식, 재즈 쪽 소개에 많은 편입니다. 클래식은 저자의 전공 분야인듯 싶고, 재즈는 하루키가 소싯적, 재즈 카페를 운영했을 정도의 재즈 매니아인 덕분이겠지요.

특히 클래식은 곡 마다의 소개도 다른 장르에 비하면 비교적 긴 편이며 내용도 굉장히 충실합니다. 일례로, "태엽갑는 새" 1부의 부제인 "도둑까치"를 통해, 까치의 장난에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마지막에 행복한 결말을 맞는 오페라 "도둑까치"와 작품의 내용이 연결되며, 각 부마다의 부제 모두 해당되는 오페라와 일맥상통한다는걸 알려주는 식입니다.
단지 곡 뿐만이 아니라, 누가 연주했는지에 따라 각 버젼별로 좋아하는 사람들의 캐릭터를 드러낸다는 디테일도 아주 좋았습니다. "해변의 카프카" 속 호시노가 듣고 반한 "베토벤 피아노 3중주 제 7번 대공"은 야샤 하이페츠 등 '백만불 트리오' 세 명이 조화따위는 무시하고 제멋대로 연주하는 버젼인데, 오시마 씨가 좋아하는건 앙상블에 주축을 둔 수크 트리오의 잘 정돈된 연주라는게 대표적이지요. 정말 아는만큼 보이는 것 같네요.

재즈의 경우는 곡 자체보다는 그 곡의 발표된 배경이나 연주자의 특징 등 좀 더 깊고 디테일한 정보를 작품과 엮었다는 점에서 상당한 깊이가 느껴집니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A gal in calico'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유명하지 않은 1950년대 (1955년) 앨범의 유명하지 않은 곡으로,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배경인 1970년대에서는 이미 잊혀진 앨범입니다. 때문에 이 앨범을 찾는 '나'의 모습은 '나'의 허영심과, 1970년대 은퇴 선언 후 칩거에 들어간 마일스 데이비스의 모습으로 결코 되돌아갈 수 없는 어떤 시대를 의미하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해석합니다. 정말 작가의 의도인건지, 꿈보다 해몽이 좋은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용은 참 좋네요. 저도 음식과 추리 소설에 대한 책을 썼는데, 이런 내용을 많이 담고 싶었습니다. 잘 된 것 같지는 않지만요...

그 외에도, 하루키 작품과는 무관하지만 이런저런 재미있는 정보도 많습니다. 하루키 작품에서 유독 많이 등장했다는 보비 다린이라는 가수는, 이 책에서 소개한 가정사가 아주 놀라왔어요. 키워준 어머니가 사실은 외할머니이고, 누나가 친어머니였다는데, 하드보일드 막장 드라마에서나 봄 직한 설정이지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등 그 자신의 인생도 파란만장해서, 이 책에서 소개된 대표곡 'Beyond the sea'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된게 당연하다 싶네요.
 개인적으로는 듀란듀란과 보이 조지에 대한 신랄한 비평 - 특히 "댄스 댄스 댄스"에서 '끔찍하다'의 대명사처럼 인용되었다니 - 이 눈에 띄였습니다. 제 초등학생 때 좋아했던 밴드이고, 특히 컬쳐 클럽의 'Do You Really Want to Hurt Me'는 많이 들었던 곡이었기 때문이거든요. 진짜 팝 애호가라면 좋아하기 힘든 곡일 수는 있지만, 이렇게까지 신랄한 평을 들어야 할 밴드는 아닐텐데, 조금 슬펐습니다.

아는 가수와 곡으로는 밥 딜런, 비치 보이스 소개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밥 딜런이야 시대의 총아였으니 그렇다 쳐도, 비치 보이스는 좀 의외죠? 비치 보이스의 최고 명반인 'Pet sounds'의 일본 소개 당시 야마시타 타츠로가 라이너 노트를 썼다는 건 처음 알았는데, 정말 잘 어울린다 싶네요.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와 비치 보이스의 리더 브라이언 윌슨이 공통점이 느껴진다며 시작된 소개와 해설은 모두 동의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비치 보이스의 음악은 죽음, 상실과 연관되는 내용이 많다는데, 이는 밴드의 운명과 브라이언 윌슨의 생애와는 별로 관계없는 작가의 기호일 뿐이라 생각되니까요. 덧붙이자면, 개인적으로 비치 보이스의 곡에 관련된 작품으로는 도리 미키의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단편이 최고라 생각합니다. 비치 보이스의 불운한 싱글인 'Child of winter'를 소재로 한 작품이에요. 비치 보이스의 크리스마스 앨범을 계기로 대학교 동창과 썸을 타는 관계가 되는데, 그녀는 다른 친구의 연인이 됩니다. 그 뒤 졸업을 앞 둔 겨울 방학의 어느날, 그녀가 자취방에 찾아오지만 나는 그녀를 내쫓습니다. 오해받기 싫다는 이유로요. 떠나면서 그녀는 "비치 보이스는 별로 좋아한게 아니었다..."는 말을 남기는, 83년도 단편입니다.

당연히 하루키 작품에 대한 소개, 평도 많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노르웨이의 숲"이 멋지게 마무리된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저는 사랑이 이루어졌는지, 아니 '나'의 미도리에 대한 마음이 사랑인지 아닌지도 모를 애매한 결말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하지만 하루키 작품 속 이런저런 곡들을 100곡 채우겠다! 는 의도가 지나친 나머지 무리한 부분도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보비 비의 'Rubber ball'에 대한 설명은 지나쳤어요. "1973"에서 이 노래가 1960년을 상징하는 것 처럼 - 1960년, 보비 비가 'Rubber ball'을 부른 해다' - 언급되지만, 1960년 최대의 히트곡은 다른 곡이라고 알려주죠. 이로써 객관적인 의미의 히트곡이 아니라 등장인물의 사적인 선곡을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으로 이는 독자가 각자의 경험에 근거한 곡을 대체할 수 있도록 하여 공감의 회로가 발생한다는데, 설명도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을 뿐더러, 이렇게 오타쿠, 매니아만 알 수 있는 기호가 어떻게 공감을 일으킨다는건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배경 음악에 지나지 않는 곡에 대한 침소봉대식 소개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곡들은 그냥 제목, 아티스트만 소개하고 작품 소개 및 기타 주변적인 요소에 집중하는데 책의 취지에는 벗어나는 듯 하여 여러모로 별로였습니다. "춤추는 난쟁이" 속 프랭크 시나트라의 "Night and day'가 대표적이죠. 곡에 대해서는 정확한 정보도 없이 4줄 정도의 소개로 그치고, 나머지는 전부 작품에 대한 줄거리와 인용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정보 측면에서 나쁘지 않고, 작품 자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설명도 적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내용도 절반 정도 됩니다. 설명도 곡의 장르에 따라 편차가 있는 편이고요.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의 팬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셔야 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조금 애매한 책입니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곡들이 궁금해서 유튜브에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습니다. 모든 곡들의 연주자, 발표 버젼이 일치하는건 아닙니다만 대체로 비슷은 하니 궁금하신 분들은 들어보셔도 좋겠습니다. 링크는 여기 입니다.

2016/04/27

토르: 다크 월드 (2013) - 앨런 테일러 : 별점 2.5점

아주 오래전에 감상했지만 이제서야 리뷰를 올립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Phase 2에 속한 슈퍼 히어로 영화입니다. 그러나 마블의 슈퍼 히어로 영화라기보다 독특한 설정의 판타지 SF로 보아도 무방합니다. 

장점으로는 1편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던 기계화된 신화 분위기의 아스가르드 묘사를 꼽고 싶습니다. 헐리우드 대형 자본으로 상당히 그럴듯하게 구현해냈습니다.
각본도 괜찮습니다. 토르의 어머니와 로키가 죽는 등 무거운 내용을 다루면서도, 지나치게 심각하지 않게 유머를 적절히 섞어 풀어낸 덕분입니다. 로키의 매력이 제대로 폭발하기도 하고요. 특히 마지막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하지만 메인 악당이 너무 약한 탓에 결말이 허무하다는건 큰 단점입니다. 액션도 중반부까지는 돈을 아낌없이 쓴 느낌을 주지만, 클라이맥스는 단순한 일기토라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단점이 없지는 않지만 전작보다 재미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동급 마블 영화 수준의 재미는 충분히 전해주었기에 후속작이 기대됩니다.

2023/08/20

꿀딴지곰의 레트로 게임 대백과 - 꿀딴지곰 : 별점 2.5점

꿀딴지곰의 레트로 게임 대백과 - 6점
꿀딴지곰 지음/보누스

저는 레트로 게임을 좋아합니다. 아래와 같은 패미컴 관련 책을 여러 권 구입해 읽을 정도로요. 제 추억을 공유하는 시기의 게임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제목부터 대놓고 레트로 게임 소개를 천명하고 있어서 궁금한 마음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한국 레트로 게임 전문가의 저서라는게 신기하기도 했고요. 꿀딴지곰의 글은 어딘가에 연재하는 게임 컬럼을 통해 잡했었고, 그 식견에는 감탄하고 있었기에 쉽게 손을 댈 수 있었습니다.
읽다보니 저와 비슷한 세대라 반갑더군요. 89년 경에 재수했다니까요. 심지어 학창 시절 사는 동네마저도 - 꿀단지곰은 방배동, 저는 반포동 - 비슷해서 더욱 그러했습니다. 같은 세대, 같은 지역에서 같은 관심사를 공유했으니 취미와 관심사가 비슷한건 어떻게보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일본의 관련 서적과는 다른 구성을 보여줍니다. 챕터별로 초반에 개인 회고담이 수록되어 있고, 그 뒤에 꿀딴지곰이 즐겼던 해당 챕터에 관련된 게임을 소개하는 식이거든요. 게임에 대한 연대별, 콘솔이나 게임 종류별 정확한 소개보다는 이렇게 개인 추억 위주인 덕에 갖는 장점도 있습니다. 실제 당시 시대를 잘 알 수 있음은 물론이고, 게임에 대한 개인적이기는 하지만 조금은 더 치밀한 소개와 게임별 장, 단점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거든요. 게임들의 우리나라 명칭 - 샐러드를 똥파리라고 불렀다던가 - 이 소개되는 식으로요.
글을 통해서 제가 즐겼던 게임들과 여러 공간들이 언급되는 것도 재미있었는데요, 첫 시작인 80년대 게임 소개부터 저 역시 어릴 때 즐겨했던 방구차, 미스터 도, 너구리, 푸얀, 엘리베이터 액션, 서커스, 올림픽, 너클조 등이 소개되기 때문입니다. 올림픽 할 때 자 등으로 버튼을 연타했던 추억은 어디가나 똑같은 것 같군요. 이 중 저의 베스트는 누가 뭐래도 1942였습니다. 꿀딴지곰은 싫어했다고 하지만요.
두 번째는 콘솔 게임 재믹스에 대한 소개에서는 주로 MSX 게임들이 언급되는데 남극 대모험, 왕가의 계곡, 루이스 정도가 기억이 납니다.
세 번째는 진짜 MSX, MSX2 이야기입니다. 제 주위에도 유저들이 많았었지요. 또 당시 강남권 게임 키드들의 메카였던 파파 상사에 대한 소개가 반가왔어요. 고속터미널 상가에 있었는데, 이 쪽에 이런 가게들이 참 많았었던 기억이 납니다. MSX는 안 해본 게임인 우샤스와 스내처 내용이 궁금하네요. 우샤스는 반전이 인상적이라고 해서 찾아보았는데, 주인공들의 모험은 오히려 고대 문명이 개발했던 폭탄을 폭발시켰을 뿐이라는건 확실히 특이했습니다. 시대를 꽤 앞서간 설정이 아닌가 싶어요.




 MSX2 최고의 2인용 퍼즐 액션 게임이라는 퀸플도 모르는 게임이라 호기심이 생기고요.
네 번째 챕터는 패미컴입니다. 패미컴이야 뭐 저도 유저였고, 관련 책도 여러 권 읽어보아서 특별한 내용은 없겠지 싶었는데, MSX에 꽂아쓰는 컨버터는 처음 봤습니다. 꿀딴지곰은 RF 단자만 지원하는 정품이 아니라 AV단자도 지원했던 대만제를 샀다는 것도 신기했어요. AV 단자가 일반적이지 않았던 시대 같은데 말이지요. 게임 소개는 특별한 건 없지만 그래픽이 좋은 패미컴 게임의 대표예로 소개한 크라이시스 포스는 아래의 게임 같은데, 지금 보면 그닥이지만 당시에는 획기적이었나 보네요.


그리고 1990년의 게임 환경에 대한 이야기, 오락실 전성기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1991년 스트리트파이터 2는 정말 대단했었죠. 당시 대입을 앞두고 있던 저와 친구들의 공부 시간을 빨아들였던 원흉이기도 했고요. 글과 게임 소개들을 읽다 보면 그 외에도 여러가지 추억이 떠오릅니다. 수왕기, 콘트라 - 우리 동네에서는 곤두라였는데 -, 다크실, 뉴질랜드 스토리. 에어리어 88, 파이널파이트, 더블 드래곤, 골든 액스, 천지를 먹다 (삼국지), 다이너마이트 형사, 캡틴 코맨도, 심슨, 어밴져스, TMNT (닌자 거북이) 등등등에 얽혔던 추억들이지요. 캡틴 코만도는 본가에 만화도 있을 정도로 좋아했었고요. 만화나 한 번 다시 찾아봐야겠습니다. 
격투 게임의 전성기를 다루며 소개되는 스트리트파이터, 용호의 권, 사무라이 스피리츠, 아랑전설, 킹오파도 모두 기억에 생생하고요. 모르는 게임도 당연히 몇 개 있는데, D&D 세계관의 오락실용 아케이드 게임이라는 던전 앤 드래곤스 섀도 오버 미스터리는 궁금하네요. 황당해서 실소를 터트리게 만든다는 골든 액스의 오락실 엔딩은 찾아보았는데, 꽤 기발하더군요. 오락실용 아케이드 게임에 스토리를 부여했다는 것도, 게임을 할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입니다. 

체감형 게임 중에서는 스페이스 해리어만 해 봤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정말 놀랄만한 그래픽이었었죠. 다라이어스는 모르겠지만요.

6장은 가정용 게임기의 부흥을 다룹니다. 16비트 게임기가 등장했기 때문으로 메가 드라이브, 슈퍼패미컴이 그것입니다. 꿀딴지곰의 말로는 메가 드라이브 최고의 액션 게임은 슈퍼 시노비 2이고, 최고의 오프닝은 무자 알레스터, 그 다음이 엘리멘탈 마스터라고 하네요. 슈퍼패미콤 게임 소개도 많은데 슈퍼패미콤은 제가 해본 적이 없어서 딱히 와 닿는게 없었습니다. 게임보이는 테트리스에 푹 빠졌던 기억만큼은 생생합니다. 나름 엄청 열심히해서 겨우겨우 로켓트(?)를 쏘아 올리기까지 했었지요. 그게 제 한계였습니다.
7장은 오락실의 쇠퇴를 다룹니다. 아무래도 2000년대부터 PC방과 스타크래프트의 전설이 시작되었기 때문인데, 꿀딴지곰은 그 사실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다만 음악 게임과 댄스 게임이 반짝 흥행했다는 정도만 알려줍니다.
8장은 플레이스테이션과 세가 새턴으로 대표되는 차세대 게임기 전쟁을 다루고 있습니다. 플레이스테이션은 대학 생활 막바지에 정말 많이 했었습니다. 파이널판타지, 바이오하자드, 메탈기어 솔리드 등등등.... 이 중 제 베스트는 누가 뭐래도 철권입니다. 그러나 세가 새턴은 버츄어 파이터 말고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 게임들이었습니다. 새턴은 주위에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어서 해보지도 못했고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레트로 게임 유행에 따른 레트로 게임 즐기는 법, 팁을 소개하며 마무리 됩니다.

이렇게 이 책을 통해서 8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대략의 한국 게임 유행사를 통사적으로 짚을 수 있습니다. 당시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추억담으로도 볼만합니다. 큼직한 도판과 함께 하는 게임 소개도 좋았고요.

그러나 게임 소개가 개인 취향인 탓에 소개되는 기준이 없다는 단점이 크게 느껴집니다. 심지어 발표 연대별로 소개되지도 않을 정도에요. 정상적으로 게임이 유통되지 않았던 국내 현실상 큰 의미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게임 자체가 발표된 시기는 명백한 만큼, 최소한 연대별로 소개되었어야 했다고 봅니다. 장르도 되도록 묶어서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자료적 가치가 없지는 않지만, 개인 에세이와 추억담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습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이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