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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4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1 : 살인자 외 - 어니스트 헤밍웨이 외 / 신예용 : 별점 2점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1 : 살인자 외 - 4점
어니스트 헤밍웨이 외 지음, 신예용 옮김, 박광규 기획.해설/코너스톤

1890년대 후반에서부터 1940년대 까지, 추리소설의 여명기와 황금기까지의 시기에 발표된 여러가지 단편들을 모아 놓은 앤솔러지입니다. 이런 류의 앤솔러지는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을 비롯하여 그동안 많이 접해보았지만, 국내에 비교적 소개되지 않았던 유명 시리즈 작품들 위주라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절반 정도는 '퀸의 정원 ("탐정, 범죄, 미스터리의 간략한 역사")'을 통해 선정된 작품들이기도 하고요. 최소한 역사적 가치는 확실히 있다는 의미지요.

그러나 역사적 가치 외의 다른 가치를 느끼기는 함들었습니다. 너무 오래 전 작품인 탓입니다. 여러모로 설득력도 떨어졌고요. 전체 평균한 별점은 2점입니다. 

하지만 저와 같은 고전 본격 추리 애호가에게는 선물과도 같은 책이라는건 분명합니다. 초창기 추리 소설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쯤 읽어보셔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저같은 사람이 많이 없는지 재정가로 가격이 3000원 수준으로 떨어져서 가격도 착하거든요.

수록작 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스터들리 농장의 공포" 

의사인 나에게 스터들리 부인이 찾아와 자기 남편의 병을 치료해줄 것을 부탁했다. 나는 스터들리 농장으로 찾아가 준남작과 만났는데, 준남작은 자신이 밤마다 유령을 보는 탓에 공포로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준남작과 방을 바꾸어 유령의 정체를 밝혀내려 하는데...

코난 도일이 "마지막 문제"를 발표하며 '스트랜드 매거진'에 셜록 홈즈 단편 연재를 중단했을 때, '스트랜드 매거진'이 구멍을 메꾸고자 투입한게 바로 이 작품이 포함된 '어느 의사의 일기 시리즈' 였다고 합니다. 제목 그대로 '어느 의사'인 핼리팩스 박사가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시리즈로 '퀸의 정원' 에서는 최초의 '의학 미스터리' 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퀸의 정원'에서 매긴 가치는 '역사적 중요성'과 '희소 가치'고요. 아쉽게도 '퀄리티' 점수는 받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작품 발표 계기, 그리고 연재 시점을 보면 정통 본격물의 시조 중 하나로 보아도 무방하겠지만, 추리 소설의 여명기 작품이기 때문인지 완성도가 영 기대에 미치지 못한 탓입니다. 

스터들리 준남작과 부인의 방은 옷장의 비밀 문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폐결핵으로 죽어가던 부인이 저승길 동행을 위해 준남작에게 밤마다 유령쇼를 펼쳤다는게 진상인데, '나' (핼리팩스 박사)가 침실을 바꾸고 유령을 목격한 뒤, 유령이 나타난 옷장을 수색한 것 외에는 별다른 추리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셜록 홈즈가 변장만 하고 추리를 펼치지 않는다면, 이를 정통 본격 추리물로 보기는 어렵잖아요?

스터들리 부인이 '나'를 부르지 않았다면 계획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았다는 점에서 이야기 전개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부인은 '나'가 준남작에게 두뇌 질환으로 환영을 보는 걸로 이야기해줄걸 기대했다는데, 과학을 신봉하는 의사가 유령 이야기를 곧이 곧대로 믿을거라 생각한건 영 납득이 가지 않네요. 아무리 시대를 감안한다고 해도 말이지요. 아울러 '의학 미스터리'라고 볼 수 있는 부분도 전무해서 아쉬웠습니다.

본격 추리 소설 초창기 단편 중 한 편을 만나 보았다는 기쁨, 그리고 오스틴 프리먼손다이크 박사 이전에 '과학을 신봉하는' 의사 탐정이 있었다는 사료적 가치, 마지막으로 스터들리 부인이 유령을 만들어낸 장치가 배터리에 연결된 전등이라는 상당한 하이테크 제품이라는 점 등 눈길을 끄는 요소가 없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금고실의 다이아몬드" 

헤드와 친구 두프라이어는 둘의 세계적인 악녀 마담 콜루치가 다이아몬드 상인 칼튼의 파티에 초대된 걸 알고 파티 초대를 받아들였다. 마담 콜루치는 칼튼 부인의 전남편이 살아있다며 그녀를 협박하는 것과 동시에, 칼튼 부인을 시켜 빼돌린 로체빌 다이아몬드를 칼튼의 철벽 그곳에서 훔쳐낼 계획이었다....

L.T. 미드와 로버트 유스터스가 합작하여 1890년대 후반 발표되었던 연작 단편집 "일곱왕 연맹" 수록작이라고 합니다. 희대의 악녀로 비밀 범죄 조직 '일곱 왕 연맹'의 총수인 마담 콜루치와 과학자이자 탐정 노먼 헤드의 대결을 그리고 있는 시리즈라고 하네요. '퀸의 정원'에서 매긴 가치는 '역사적 중요성'과 '희소 가치'고요.

역시 '퀄리티' 점수는 받지 못했는데, 이해가 갑니다. 특히 이 단편은 그 수준이 아주 미흡해요. 내용부터 딱히 건질게 없거든요. 헤드와 마담 콜루치와의 대결이 등장하지 않는 탓이 가장 큽니다. 헤드의 활약이라고는 고작해야 칼튼 부인을 설득해서 전 남편에 대한 사실을 고백하라고 이야기하는게 전부거든요. 그나마도 실패하고요. 게다가 다이아몬드도 놓쳐버리기 때문에 이래서야 명탐정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합니다.

못하는게 없는 희대의 악녀인 마담 콜루치 캐릭터는 분명 시대를 앞서갔다고 생각됩니다. 또 열쇠를 돌리면 비상벨이 울리는데, 울리지 않은 이유에 대한 트릭도 괜찮았습니다. 칼튼의 열쇠를 조작해서 열쇠의 머리 부분만 헛돌게 만든 거지요. 즉, 열쇠를 돌려도 잠기지 않은거고, 당연히 다시 열어도 벨이 울리지 않은 것입니다. 열쇠를 돌릴 때의 저항감, 소리, 마지막으로 금고가 정말 잠겼는지 확인을 왜 안했는지 등 딴지를 걸자면 끝도 없지만, 열쇠 하나의 조작으로 모든걸 일이루어 낸, 대담한 발상의 트릭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연작 단편을 이어서 다 읽는다면 모를까, 이 작품 하나만 읽고 점수를 주기에는 부족한 점이 더욱 많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탐정 스페이드" 

맥스 블리스가 협박 받고 있다는 전화를 스페이드에게 남긴 뒤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샘 스페이드는 아는 형사 던디 등이 수사하는 와중에 끼어들어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낸다.

대실 해밋이 쓴 샘 스페이드 단편입니다. 묵직하고 거친 사나이 매력을 담뿍 풍기는 이야기이며, 피해자의 딸이 몰래 만나던 불륜남, 광신도이면서 못생긴 가정부 에피 부인이 묘하게 엮여서 사건이 복잡해 지는 전개는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소설과 다를게 없는데 정통 추리물이기도 하다는게 놀랍습니다. 유력한 용의자인 피해자의 동생 시어도어가 알리바이를 조작하고, 증거를 인멸하여 살인을 저지른 것이며, 시체에 놓여져 있던 '새 넥타이' 가 중요한 단서가 된다는 점 등은 본격 추리물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거든요. 피해자는 옷을 벗던 중 살해된 것 처럼 보이지만, 그럴 경우 매고 있던 넥타이가 아니라 새 넥타이가 놓여져 있는건 이상하다는 이유입니다. 이를 발견한 스페이드의 눈썰미도 대단하지요. 

샘 스페이드는 피해자로부터 전화를 4시 5분전 쯤 받았는데, 시어도어는 4시에 법정에서 결혼을 했다는 철벽의 알리바이에 대한 트릭도 간단하고 깔끔합니다. 시어도어는 3시 30분 쯤 피해자를 죽이고 법원으로 가서, 그 곳에 있는 전화로 자신이 피해자인 척 하고 전화를 걸은 겁니다.

물론 스페이드가 한 추리의 증거가 범인 시어도어 손에 난 상처 뿐이라는건 빈약합니다. 상처가 났다고 범인이라는 증거는 될 수 없으니까요. 가정부 에피 부인도 손에 상처가 있었다는 점에서, 그렇게 특이한 상처도 아니고요. 손의 상처보다는, 법원에서 전화를 건 기록을 찾아서 시간을 대입해 보는 식으로 풀어갔더라면 더 깔끔했을 겁니다. 아울러 피해자가 시어도어에게 협박?의 댓가로 지불한 돈은 2만 5천불일텐데 2'억'으로 기입된 오타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하드보일드와 본격 추리와의 결합에 성공한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퀸의 정원'에 소개된 "샘 스페이드의 모험" 수록작으로 이 책은 역사적 중요성, 희소성은 물론 퀄리티까지 인정받고 있네요. 당연합니다.

"의사와 그의 아내 그리고 시계"

80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의 여성 탐정 바이올렛 스트레인지 시리즈로 "Mystr 럭키팩 8 - 탐정 소설 : Mystr 컬렉션" 수록작과 동일합니다. 

당시에는 혹평했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꽤 괜찮은 점도 많았습니다. 자브라스키 박사가 순간적인 충동으로 살인을 저지른 과정이 훨씬 설득력있게 다가온 덕분입니다. 흥분한 자브라스키 박사가 '층을 착각해서' 살인을 저질렀다는 우연도 그렇게 어색하지 않았고요. 번역의 차이 때문이었을지 궁금하네요. 

물론 우연에 의한 작위적인 범죄라는 한계를 벗어나진 못했고, 전체적으로 지나치게 오래된 작품이라는 티는 물씬 납니다. 그래도 예전처럼 별점 1.5점을 줄 작품은 아니에요. 다시 매긴 별점은 2.5점입니다.

"두 번째 총알" 

여성 탐정 바이올렛 스트레인지 시리즈 두 번째 작품으로 '사장'에게 고용되어 돈 하나만 바라보고 일하는 사립 탐정 바이올렛과, 부유하고 젊은 사교계의 꽃 바이올렛이라는 설정이 재미나게 묘사된 작품입니다.

맨해튼의 한 아파트에서 해먼드 씨가 자신의 아기와 함께 죽은 시체로 발견됩니다. 그는 총을 들고 있었고 가슴에 총을 맞았으며, 아기는 죽은 해먼드 씨의 손에 눌려 질식사했지요. 해먼드 씨 가슴의 총알은 그의 총에서 발사된 것으로 밝혀집니다. 그러나 근접 거리에서 손 총격은 아니었고, 해먼드 부인인 열린 창문을 통해 누군가 해먼드 씨를 쏘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게 사실이라면, 해먼드 씨 몸 속 총알과 함께 해먼드 씨가 쏜 총알도 발견되었어야 했습니다. 바이올렛이 이 두 번째 총알이 어디있는지 추리해내는게 주요 내용입니다.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문제가 많습니다. 해먼드 씨 몸속 총알은 해먼드 씨의 총에서 발사된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법과학의 수준은 많이 부족했겠지만, 아무리 그렇다 한들 앞서 거의 단언하다시피한 정황을 손바닥 뒤집듯 쉽게 뒤집는다는 점에서 제대로 된 본격 추리물로는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두 번째 총알을 아기가 삼켰고, 그것 때문에 질식한 것이었다는 진상은 괜찮았습니다. 해먼드 씨가 아니라 총알이 후두를 막은게 질식사의 원인이 된 거지요. 어디론가 사라진 총알의 행방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 손 꼽을만한 이야기라 생각되네요. 이 진상 덕분에 별점은 1.5점입니다.

참고로, '퀸의 정원'에서는 A.K 그린 (애나 캐서린 그린)의 "미스터리의 걸작들" 이라는 단편집을 '역사적 중요성'과 '희소성'에만 가치를 부여하고 소개하고 있는데, 바이올렛 스트레인지 시리즈는 아닌 듯 하네요. 가치가 크게 다를거라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급행열차 안의 수수께끼" 

급행열차 안 객실에서 르웰린 부부가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권총이 사라진 탓에 자살은 아니었는데, 객실 문은 1인치 정도 열린 채 쐐기로 고정되어 도저히 열 수 없었다. 남아 있던 승무원과 승객의 신분도 모두 확실했으며, 그들이 범인일리 없었다. 그렇다면 범인은 살인을 저지르고 열차를 떠났을 텐데, 객차의 앞 쪽 침대칸은 승객과 승무원 모두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다고 증언했으며, 뒷 쪽 3등칸에는 아이가 울어 달래러 나온 부부가 있었다. 객실 문 옆 승객이 바라보고 있었다. 범인은 열차를 어떻게 떠났을까?

고전 본격물의 걸작 "통"과 '프렌치 경감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 F.W. 크로포츠의 단편입니다. 

굉장히 복잡한 장치 트릭이 사용되고 있는데, 별로 와 닿지 않습니다. 절반 가까운 내용을 F.W. 크로포츠 본인이 오랜 철도업 종사자라 쓸 수 있었을 상세한 기차 구조 설명에 할애하고 있지만, 열차의 구조와 얼마나 불가능한 범행이었는지를 이해하기는 어려웠던 탓입니다. 이런 기차 여행이 흔했던 발표 당시라면 모를까, 기차를 별로 타지도 않는 지금 독자들이 이해하기는 더욱이 역부족이었어요. 차라리 만화라던가, 최소한 삽화 등으로 트릭을 설명해 주어야 했습니다.

게다가 범행이 밝혀지는건 추리의 결과가 아니라 범인의 고백이라는 점에서도 추리물로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범인이 친구 르웰린에게 연인을 빼앗기자 복수심에 저지른 치정 범죄라 트릭은 알 수 없어도 동기만 확인되면 범인은 충분히 체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경찰은 도대체 뭘 한 건지 잘 모르겠네요.

한마디로 추리물로 보기도 어렵고, 지금 시점에서는 이해조차 하기 어려웠던 작품이기에 별점은 1점입니다. '퀸의 정원'에도 소개되지 않았을 정도니 지금 와서 읽을 가치는 별로 없겠지요. "통"이나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살인자" 

서밋 이라는 도시에 찾아온 맥스와 알은 식당에서 식사를 시킨 뒤, 사장 조지와 요리사, 그리고 손님 닉을 협박하며 그들의 목적을 말해 주었다. 그들은 올레 앤더슨을 죽이기 위해 온 것이었다. 올레 앤더슨은 식당 단골로, 킬러들은 그를 기다리는데...

미국 현대 문학 거장인 헤밍웨이의 작품인데 추리 소설은 아닙니다. 하드보일드 느낌이 나는 드라마거든요. 킬러가 등장해서 식당 관계자들을 협박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살인 이 일어나지는 않으니까요. 그래서 추리 애호가에게 어필할 수 있는 내용은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불운과 죽음을 의인화하여 드라마로 풀어낸 짤막한 꽁트라 생각됩니다. 2인조 킬러는 식당 관계자에게는 급작스러운 소나기와 다를게 없는 불운, 올레 앤더슨에게는 필연적으로 찾아올 죽음과 같은 존재로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닉은 불운과 죽음 모두를 맛 본 뒤, 서밋이라는 도시를 떠날 생각을 하는걸 보면 운명에 순응하지 않는 일종의 이단자인 셈이지요.

짤막하지만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바닥없는 우물" 

전쟁 영웅인 노장 헤이스팅스 경이 고대 아랍 전설이 얽혀있는 오래된 바닥없는 우물 옆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함께 있었던 보일 대위가 유력한 용의자로, 그는 헤이스팅스 부인과 불륜 관계였었다.

브라운 신부 시리즈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어서 놀랐던 체스터튼의 단편입니다. '너무 많이 아는 사나이'라는 단편집에 수록된 연작 단편 중 한 편으로, 시리즈 제목 그대로인 '너무 많이 아는 남자' 혼 피셔가 주인공입니다. 중동 어딘가에 있는 영국 식민지 공무원이지요.

눈여겨 볼 부분이 많았던 작품인데, 그 중에서도 영국 제국 주의를 비판하는 시각, 영국 정부가 국가와 국민이 아니라 자본에 의해 움직이고,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는 시각이 강하게 드러나 있다는게 인상적입니다. 브라운 신부가 아니라 식민지 공무원을 주인공으로 삼아 이야기를 쓴 이유가 명확해 보였어요. 신부님이야 아무래도 용서와 화해를 권했을테니, 이런 류의 독설에는 적합하지 않았을테지요.

추리적으로도 작가의 명성에 값합니다. 누가 보아도 보일 대위가 범인으로 여겨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는게 진상인데, 그 이유와 방법이 설득력있게 설명되기 때문이에요. 특히 헤이스팅스 경이 먼저 보일 대위에게 끝이 보이지 않는 우물가로 산책을 제의했다는게 결정적 단서가 된다는게 좋았어요. 보일이 죽으면 시체를 우물로 던져넣을 생각이었던 거지요. 보일은 범인이 아니기에 시체 앞에서 멍하니 있을 수 밖에 없었고요.
범인이 독을 마신건 순전히 회전식 책꽂이 때문에 찻잔이 뒤바뀌어 일어난 사고라는 점도 재미있었습니다 . 물론 충동적인 범행에 우연에 의해 벌어진 사고라는건 합리적인 본격 추리물로 보기에는 단점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를 설득력있게 포장한 솜씨는 과연 거장의 그것이었어요.
'너무 많이 아는 남자' 시리즈를 더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시카고의 여성 상속인" 

롬니 프링글은 대영 박물관 열람실에서 이상한 남자가 공들여 편지를 쓰는 광경을 본 뒤, 그의 편지 압지를 빼돌렸다. 암호와 같은 압지 문구 해독을 통해 '실링하머'라 자칭하는 남자가 런디 후작을 협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는데...

'손다이크 박사'로 잘 알려진, R.A. 오스틴 프리먼의 롬니 프링글 시리즈 단편입니다. '퀸의 정원' 분류에 따르면 엄청난 희귀본이라고 하네요. 롬니 프링글은 도둑이자 사기꾼인 안티 히어로인데, 이 작품에서는 협박자 실링하머의 돈을 빼돌리는 과정이 차분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링하머가 후작을 협박하는게 모두 이미 발표되었던 신문 기사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게 무슨 범죄가 되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당연히 런디 후작이 형들과 아버지를 살해하고 작위를 물려받았을 줄 알았는데, 단지 그들이 '자살'했다는 진상도 협박거리가 될 걸로 보이지 않았고요.

롬니 프링글의 작전 역시 별다른게 없어서 실망스럽습니다. 그가 실링하머에게서 범죄의 냄새를 맡은건 순전히 우연이었고, 마지막에 경찰을 자칭하여 그를 잡아서 돈 지갑을 빼앗는 것도 여러모로 어설퍼보였거든요. 압지의 글귀 해독도 논리가 뒷받침 되어있는 암호 해독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고요.
경찰을 자칭하고 후작을 찾아가, 협박자에게는 현금을 주는게 낫겠다는 조언을 하는 장면만 조금 그럴듯 했을 뿐입니다. 

'퀸의 정원'에서 '역서적 가치', '희소성'에 '퀄리티' 가치까지 부여받은 3관왕인데, 동의하기 어렵네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2010/01/20

퀸의 정원 (クイーンの定員)

리뷰는 아니고 정보입니다. <퀸의 정원>이라고 추리애호가들에게 알려져있는 목록이 있죠. 인터넷을 뒤지다가 우연찮게 관련 사이트를 찾게되었네요.

원래 <퀸의 정원>은 엘러리 퀸이 1845년부터 1967년까지의 기간 중 전세계에 출판된 미스터리, 추리 단편집들을
  • Historical Significance : 역사적 중요성
  • Quality : 문학적 가치
  • Rarity : 희귀성
의 3가지 관점으로 선택한 서지학책입니다. 대상은 모두 초판본이며, 정원의 각 책에 대해 H, Q, R의 평가가 내려져 있습니다. 아직 "휘귀성" 단계의 희소가치는 없다 하더라도 입수곤란한 책에는 "Scarcity : 입수곤란" 이라고 덧붙여져 있고요. (물론 그 당시 시점에서의 이야기입니다)

1951년에 Little Brown 사에서 출판된 오리지널판에는 에드거 알란 포의 "이야기들" 에서부터 로렌스 G 블록맨의 "진단은 타살" 까지 106개의 작품이 선정되어 있었는데, 그 후 1969년 Biblo&Tannen 사로부터 출판된 증보판에는 해리 케멜먼의 "9마일은 너무 멀다" 까지 19개의 작품이 추가되어 모두 125 작품이 정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단 증보판에 추가된 작품에는 H, Q, R, S 의 평가는 붙어있지 않다고 하네요.

목록은 여기서 확인하시면 됩니다. 단지 "재미"의 관점으로 선정한 목록이 아니라 취향을 많이 탈 것 같은 목록이더군요. 어차피 국내 번역된 책은 20여권도 안되는 듯 하니 읽기도 힘들겠지만...

2010/07/19

살인, 미스터리 그리고 결혼 - 마크 트웨인 / 김욱동: 별점 3점

살인, 미스터리 그리고 결혼 - 6점
마크 트웨인 지음, 김욱동 옮김/문학수첩

마크 트웨인 단편집입니다. 총 5편의 단편과 왠만한 단편 길이의 해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전에 읽었던 "뜀뛰는 개구리"와 유사한 성격입니다. 그런데 "퀸의 정원"에도 선정되었던 "뜀뛰는 개구리"보다 더욱 범죄소설에 가까운 작품이 많이 실려있어서 의외였습니다. 그래봤자 유머 소설의 범주를 벗어나는 작품은 별로 없긴 하지만, 그래도 이 단편집쪽이 더 "퀸의 정원"에 가깝다고 생각되네요. 혹 "퀸의 정원" 때문에 마크 트웨인을 찾아보시려는 분들이 있으시다면 이 책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작품 중 베스트는 "해들리버그를 타락시킨 사나이"입니다. 하나의 사기극으로만 놓고 보아도 상당한 완성도의 작품이기 때문이죠. 또한 해설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각 작품별로 정말로 상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는데 이 해설만 읽어도 마크 트웨인에 대해서 어느정도 아는척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어요. 워스트는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서 보기 어려운 허클베리 핀 이야기인 "귀신 이야기"를 꼽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13.5 나누기 5해서 2.7점이지만 반올림에 해설을 더해서)
수록작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해들리버그를 타락시킨 사나이"
"정직"이 모토인 마을 해들리버그를 한방에 타락시킨 사나이의 이야기. 작전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거액을 자신을 도와준 것에 대한 답례라며 마을에 맡긴 뒤, 마을 유력자 주민들이 모두 그 돈의 주인이라고 나서게끔 꾸미는 것이거든요. 그야말로 "돈 앞에 장사없다"라는 것이죠.

나름 진지한 사기극이기도 한데 워낙에 분위기가 시끌벅적하고 유머러스할 뿐 아니라 끝까지 통쾌한 맛이 있어서 이 책의 베스트 작품으로 꼽고 싶네요. 그야말로 마크 트웨인 작품이다라는 생각이 드는 그런 작품이었어요. 별점은 4점입니다.

"100만 파운드 은행권"
과거 이원복의 "사랑의 학교"에서 인상적으로 봤었던 에피소드의 원작입니다. 우연히 빈털터리로 영국에 도착한 미국인에게 영국 부자 형제 2명이 100만파운드 수표를 맡긴 뒤 1개월 뒤에 다시 자신들을 찾아오라고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랑의 학교"에서의 만화적인 과장된 표현이 잘 어울릴법한 만화같은 내용에 모두가 행복해지는 결말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같다는 느낌을 전해줍니다.

하지만 결국 주인공이 마지막에 사기와 진배없는 행위로 한몫 잡는다는 결말은 좀 씁쓸하네요. 역시 있는놈이 더 한 법이겠죠. 그러고 보면 돈이 돈을 부른다는 주제의 이야기도 될 수 있겠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캘러베러스 군의 악명높은 점핑 개구리"
뭐가 그렇게 대단한지는 모르겠지만 마크 트웨인의 출세작이라죠. 초간단 사기극인데 이전 리뷰 참고하세요.

참고로, 책 뒤의 해설에 따르면 동부와 서부의 가치관이 충돌할 때를 배경으로 한 깊이있는 사회 풍자가 들어있다고 합니다. 지금와서 한국 독자가 그러한 뉘앙스를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만... 별점은 2.5점입니다.

"살인, 미스터리 그리고 결혼"
서로 사랑하는 메리 그레이와 휴 그레고리에게 장애물은 유산 상속 문제로 휴를 멀리하는 그레이 가문 사람들과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자칭 폰테인블로 백작입니다. 백작이 메리에게 열렬히 구애하기 시작하거든요. 그 와중에 휴를 싫어하는 메리의 백부 데이비드 그레이가 살해되고 휴가 곧바로 체포됩니다. 옷조각, 칼, 혈흔 등의 증거 때문이죠.

이 단편집의 표제작으로 원래는 마크 트웨인이 여러 유명작가들과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쓴다는 시리즈 형태로 기획한 작품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희한할 정도로 정통 추리 소설같은 설정이 가득합니다. 복잡한 인간관계와 거액의 유산, 칼과 혈흔이라는 증거 등 이야기 자체는 고전 본격물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고요. 중반부까지는 이런 기대에도 충분히 값 합니다.
그러나 막판에 갑자기 휴가 불쌍하다는 이유로 범인 중 한명이 자백해서 진범에 체포된다는 결말은 어떻게 보아도 추리 소설로 보기는 무리겠지요.

하지만 이 작품의 최대 매력은 마크 트웨인이 라이벌 의식을 느꼈다는 쥘 베르느 조크에 있습니다. 폰테인블로 백작이라 자칭하는 범인의 마지막 고백서를 통해 쥘 베르느가 희대의 사기꾼이라고 폭로하고 있거든요. 뭐 그냥 보면 열등감이 폭발하는 모양새이긴 하지만 워낙에 농담을 즐겼던 작가이니 만큼 그러려니 해야죠. 그리고 추리적인 요소는 없다시피 하지만 딱 하나! 하늘에서 떨어진 이유에 대한 설명이 그런대로 합리적이고 내용과 부합하기에 만족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2001년에 미발표 원고가 발견되어 발표된 따끈따끈한 작픔으로 마크 트웨인의 작풍이 변해가는 것을 알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는군요.

"귀신 이야기"
허클베리 핀과 늙은이 짐이 폭우가 쏟아지던 시기에 한 동굴에 거처하면서 나누던 괴담인데 결말도 없고 내용에 대한 설명 역시 전무하기 때문에 하나의 작품으로 보기는 힘드네요. 대관절 왜 실렸는지조차 의심스러운 미완성 잡문이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2010/01/28

클로버의 악당들 - 퍼시벌 와일드 / 정태원 : 별점 4점

클로버의 악당들 - 8점
퍼시벌 와일드 지음, 정태원 옮김/태동출판사

1900년대 초반의 미국을 무대로, 어렸을 때 집을 뛰쳐나와 6년간 프로도박사로 활동하다가 코네디컷에 농부로 눌러 앉은 25살의 빌 파믈리가 친구이자 주로 "사건"을 일으키는 트러블메이커를 전담하는 토니 클랙혼과 함께 사기 도박을 밝혀낸다는 류의 총 9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유쾌한 단편집입니다.

이전에 소개했던 "퀸의 정원"의 "제 1기 근대"에 포와로, 뤼팽, 피터경 등과 함께 분류되어 있으며, 수록작 중 몇 안되는 국내 출간작이기도 합니다. "퀸의 정원" 분류표에서도 H.Q.S, 즉 역사적 중요성, 문학적 가치, 입수 곤란하다는 3관왕을 달성하고 있네요. 국내 출간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었는데 저도 이번에야 알고 냉큼 구입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일단 "퀸의 정원"에 선정된 작품답게 추리적인 내용이 상당히 비범한 편입니다. 사기 도박을 밝혀낸다는 것이 범죄자가 완벽하게 만들어 놓은 범죄를 몇 안되는 단서를 통해 탐정이 밝혀내는 추리의 과정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일 텐데요. (뭐 사기 도박이 아니라 사기라는 범죄를 밝혀내는 여러 작품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겠죠) 이러한 작품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정교한 사기"가 무려 100여년 전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 대단한 점이겠죠. 주로 다양한 장치 트릭이 등장하는데 이러한 장치를 뒤집어 써먹는다던가 하는 두뇌싸움도 효과적으로 써먹고 있다는 것도 재미를 더해주고요.

또한 1900년대 초반 발표된 작품이지만 뭔가 개척시대의 유쾌한 도박사 일당 이야기 - 매버릭 - 와 같은 시끌벅쩍 유쾌한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와 더불어 젊지만 느물느물한 속을 알 수 없는 고수이자 장난꾸러기인 주인공 빌 파믈리, 사고뭉치에 주제를 파악할 줄도 모르지만 미워할 수 없는 멍청이인 토니 클랙혼 등 등장인물들도 톡톡 튀며 재치있는 대사와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넘치는 것이 왠지 예전에 읽었던 "O.헨리의 미스터리 걸작선" 느낌을 가져다 주더군요.

추리 애호가 뿐만 아니라 오 헨리의 팬이시라면 한번 읽어보셔도 후회하지 않으실 것 같네요. 별점은 4점. (솔직히 희귀하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주긴 했습니다^^)

아울러 국내 추리문학을 위해 노력하시는 정태원 선생님이 손수 구한 책을 가지고 번역하신 것이라 더욱 뜻깊은 작품이기도 한데, 앞으로도 이런 고전 명작들이 번역 출간되면 정말 좋겠습니다. 작품 해설을 통해 알려주신 이 작가의 다른 대표작인 검시재판이나 탐정 피트 모란 시리즈라면 더할나위 없겠죠.

심벌 (The Symbol)
집을 뛰쳐나와 도박사로 먹고살던 빌 파믈리가 고향 코네티컷에 돌아가 아버지와 포커 승부를 벌인 뒤 개심하여 농부가 되는 과정을 그린 시리즈의 서두에 해당하는 작품입니다.
빌이라는 주인공의 성장 배경을 독자에게 알려주는 핵심 이야기로 두건의 사기 도박이 등장합니다.
첫번째는 빌이 벌이는 사기도박으로 카드 바꿔치기에 대한 내용으로 별다른 건 없습니다. 두번째 아버지와의 승부는 빌이 카드를 조작하지만 결국 아버지의 "정직한 승부"에 패하게 된다는 내용으로 갑작스러운 빌의 난조가 명쾌하게 설명되지는 않지만 승부 자체도 재미있고 부자의 관계 회복도 설득력 있는 작품이죠.

사기꾼의 카드 (The Run of the Cards)
빌 파믈리가 토니 클랙혼과 만나는 시리즈 두번째 이야기. 사기 도박으로 거액을 잃은 토니의 아내와 우연히 만나게 된 빌이 토니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를 도와주게 된다는 내용입니다.'사기 방법에 대한 단서 제공도 공정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포커 승부 자체가 굉장히 박진감있게 그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죠. 마지막의 상대방의 사기를 역으로 공격하여 승리하는 장면이 압권입니다. 마지막 공정한 승부에 대한 짤막한 반전도 인상적이고요. 별점 5점짜리 단편입니다.

포커 도그 (The Poker Dog)
토니가 또다시 처남 테드와 함께 사기에 걸려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빌은 슈워츠라는 그 사기꾼과 대결하기로 한다. 그러나 그가 정작 토니에게 부탁한 것은 개를 한마리 사달라고 한 것 뿐.
전보로 시작하는 유쾌한 서두 - 완벽한 사기꾼 슈워츠에 대한 묘사로 분위기 고조 -갑작스러운 빌의 강아지 찾기를 통한 의외성 도출 - 마지막 승부에서의 화끈한 결말 이라는 기-승-전-결 에 충실한 교과서같은 단편입니다. 운에 의지하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즐겁게 읽을 수 있었는데, 이런게 완벽한 기승전결의 힘이겠죠.

레드 앤 블랙 (Red and Black)
부자이지만 천하의 싸가지 덩어리인 휘트니가 룰렛에서 큰 돈을 잃고 토니와 그의 친구 빌에게 사건 해결을 의뢰하는 이야기.
이번편 부터 의뢰를 통한 본격적인 "사기꾼 박살내기" 시리즈로 돌입하게 됩니다. 전편들과는 달리 "룰렛"이 등장하고 이를 파헤치기 위한 도구 역시 카메라와 쌍안경을 조합한 장치라는 점이 특이하더군요. 사실 사기행각보다는 휘트니라는 싸가지의 행동거지와 말로를 보는게 더 재밌는 작품이었습니다.

양심의 문제 (A Case of Conscience)
유서깊은, 그래서 회원이라는 것이 명예인 "윈저클럽" 회원인 토니는 항상 있는 필 터너와 램지 폴웰의 카드게임에서 램지 폴웰이 언제나 일방적으로 진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잘 모르는 "카지노"라는 카드 게임을 소재로 했기에 몰입하기가 약간은 힘들었지만 미덕이 넘치는 반전 탓에 (그래서 지나칠 정도로 오 헨리 스럽긴 했지만) 훈훈한 느낌이 전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역시 발상의 전환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고 말이죠. 사고뭉치 토니의 캐릭터가 극단적일 정도로 부상하기에 짜증까지 나기는 했습니다만, 뭐 원래 이런 캐릭터니까요.^^

초보의 행운 (Beginner's Luck)
피트 커니라는 도박사의 사기를 밝혀달라는 앨런 그레이엄의 편지를 받은 빌과 토니. 빌은 자기 대신 토니를 보내며 여러가지 조언을 해 준다.
캐릭터 바꿔치기의 묘미와 더불어 반전을 거듭하는 줄거리가 인상적인 좋은 작품입니다. 혼자 착각한 토니의 좌충우돌이 굉장히 웃기기도 하고요. 무적의 갬블러 피트의 비결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약간 아쉽지만 별점 4점은 너끈할 것 같네요.

불기둥 (The Pillar of Fire)
해변가에서 포커를 하는 특이한 섬 리그스에 빌과 토니가 참가한다. 하지만 빌 파믈리는 연이어 대패하고, 수영복만 입은 해변가에서 그 어떤 사기의 흔적도 발견할 수 없는 난감함에 처하는데...
빌 파믈리가 한번 궁지에 몰리는 전개가 이색적인 단편입니다. 그런데 독자에게 너무 정보를 공정하게 제공해 준 탓에 사기의 방법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재미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결말이 화끈해서 재미있게 읽은 작품입니다. 덧붙이자면, 작품 내 등장하는 "최고의 독심술 마법"은 다른 책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작품내에서 제대로 써먹었더군요.

붉은 느릅나무 (Slippery Elm)
J 햄프톤 후지스트라튼이라는 이름의 사나이가 메트로폴리턴 체스 클럽에 입회한다. 그리고 그는 강자들을 차례로 꺽으며 강자로 부상하지만 모든 회원들은 그를 미워한다.
빌이 29달러 55센트의 사례금을 받고 뛰어든 이색 사건. 즉 후지스트라튼을 클럽에서 쫓아내기 위한 체스 사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거창한 천국 입장을 다루며 시작하는 분위기부터 오 헨리 스타일의 작품인데 이후의 전개도 치밀하고 마지막 승부에 대한 조작 및 결말까지 완벽해서 재미있게 읽은 작품입니다. 역시나 별점 4점은 충분하겠죠.^^

타락 천사의 모험
브리지에서 항상 이기는 테리스를 조사해 달라는 친구들의 요청을 수락한 토니는 사기수법을 지적하지만 외려 역공을 당한다...
일단 이 작품은 원본 단편집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국내 출판본만의 특전과 같은 작품입니다. 일단 정태원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작품은 브리지 사기 수사에서 의외로 포커 클럽인 히말라야 클럽의 과거 사기사건으로 이동하여 전개되는 내용으로 사기꾼의 집념이 잘 그려진 독특한 작품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데 정말 사기의 세계란 대단한 거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 테리스가 사기를 쳤는지 안 쳤는지도 불분명한 등 사건이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은 듯 싶어서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약간 처지긴 하더군요. 그냥저냥한 평작이었습니다.

2010/02/09

이시드로 파로디의 여섯 가지 사건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외 / 권영주 : 별점 3점

이시드로 파로디의 여섯 가지 사건 - 6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외 지음, 권영주 옮김/북하우스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 아르헨티나 추리소설.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보르헤스"가 공동 저자의 한명이라는 것으로 국내에서는 더욱 유명하지 않을까 싶네요. 출간된지는 꽤 되었지만 그닥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는데, "퀸의 정원"에 선정되었다는 것을 알고나서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몇주동안 우려먹을대로 우려먹은, 퀸의 정원을 통해 알게되어 구입한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죠. 퀸의 정원 분류는 "르네상스", 딱지는 "H.Q.R" 입니다.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제목 그대로 여섯편의 단편이 실린 옴니버스 단편집입니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전직 이발사 죄수 "이시드로 파로디"가 탐정역으로, 여러 방문객들의 이야기를 듣고 사건의 진상을 추리하는 전형적 안락의자 탐정물입니다.

그런데 찾아오는 방문객들 모두가 자기 중심적인 속물들인데다가 멍청하기가 서울역에 그지 없을뿐 아니라, 겉멋만 가득차서 외국어를 섞어가며 장황하게 늘어놓는게 정도가 지나쳐서 한마디로 짜증나는 놈들이라는 것이 문젭니다. 모든 이야기들이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한없이 간단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짜증나는 속물들의 거지같은 말주변때문에 쓸데없이 복잡해지거든요.
예를 들어 두번째 단편인 "골리아드킨의 밤" 같은 경우 유명 배우 몬테네그로가 자신이 뒤집어쓴 범죄에 대한 해결을 이시드로 파로디에게 요청하며 팬아메리칸 특급에서 있었던 며칠을 이야기하는데, 이 작자의 설명이 너무 자기 중심적이라 중요한 단서를 독자가 포착하는데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설명하면 "수상쩍은 보석상과 그 주변의 더욱 수상한 3명의 용의자" 일 뿐인데 이러한 관계가 몬테네그로라는 화자에 의해 불필요한 세부묘사와 더불어 대폭 각색되어 묘사되는 탓에, 추리는 별게 없는데 이야기만 지루하게 늘어집니다

하지만 이러한 장황한 묘사만 견뎌낸다면 작품 자체는 특이하고 괜찮긴 합니다. 개인화되어 각색된 이야기이지만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진상을 밝혀낸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재미있는 요소일 수 있으니까요. 동기는 변변찮지만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마술 트릭이 등장하는 "황도십이궁"은 첫 단편으로서 충분히 효과적인 작품이었고, 치밀한 동기에 더하여 서사적인 내용과 비교적 공정한 단서 제공이 돋보이는 "산자코모의 숨은 뜻"은 정말 파격적인 발상이 내포된 좋은 작품이었어요. 발상의 전환을 노리는 "타데오 리마르도의 희생자"와 합리적 전개의 "타이안의 기나긴 탐색" 역시 괜찮았고요.

무엇보다도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 제 3세계 추리문학이라는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그 외에도 상세한 주석이 포함된 번역과 책의 디자인도 마음에 들었고 말이죠.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조금은 스테레오 타입일 수 있는 추리문학에 식상하신 분들이라면 한번쯤 읽어보셔도 괜찮을 것 같네요.

PS : 일본에서는 원저자인 "부스토크 도메크" 이름으로 책이 출간되었는데, 국내에서도 아무리 보르헤스의 문명이 높다고 하더라도 원저자 이름으로 책이 나오는 것이 온당한 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작가들의 의도를 따라 줬어야죠.

2010/02/04

뜀뛰는 개구리 - 마크 트웨인 / 김소연 : 별점 2점

뜀뛰는 개구리 - 4점
마크 트웨인 지음, 김소연 옮김/예문

최근 너무 우려먹어 사골곰탕이 된 듯한 "퀸의 정원"에 실린 단편집입니다. 분류는 "최초의 50년"으로 "H.Q.R" 딱지가 붙은 나름 희귀본으로, 무려 34편의 단편이 실려 있기에 일단 양적으로도 풍성할 뿐 아니라 19세기 후반 ~ 20세기 초반의 분위기가 잘 살아있는 문체와 묘사도 좋고 상상을 초월하는 발상의 유머들이 넘치는 아주 매력적인 작품집이었습니다.

개중 개인적인 베스트로는 "열차 만행 사건"을 꼽고 싶습니다. 이야기는 폭설로 고립된 기차안에서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희생자를 선출해 식량으로 삼는다는 엽기적인 발상에서 시작되어 열차내에 투표 및 심사를 위한 위원회가 구성되어 투표를 통해 한명씩 차례로 식탁에 오른다는 내용인데 발상도 희한하지만 전개가 그야말로 대폭소입니다. 공포스러운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중간중간 "그 친구는 맛이 정말 상큼했다네". "양념맛이 진해서 그렇지 메식도 제법 괜찮았지"라는 멘트가 섞이니 웃을 수 밖에 없잖아요. 잘 달려주다가 막판에 너무 상식적으로 끝맺는다는 것이 좀 아쉽지만 굉장히 재미있게 읽은 단편입니다.
"샴 쌍동이의 특이한 버릇"은 제목이 스포일러이긴 하지만 나름의 반전과 더불어 "붙어야 산다 (2003)"의 원형같은 아이디어가 돋보이고요. 그 외에도 신문사를 풍자하는 단편들이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추리물이라고 보기는 불가능한 작품들이 실린 단편집임에는 분명합니다. "퀸의 정원" 선정기준이 너무 애매한거 아닌가 싶기도 한데, 어딜봐도 추리물은 절대 아니거든요. 그나마 범죄물이라면 표제작이기도 한, 그리고 마크 트웨인 최초의 히트작이라는 "뜀뛰는 개구리"를 들 수 있긴 합니다만, 내기에 환장한 시골뜨기가 개구리를 훈련시켜 최고의 뜀뛰기 개구리로 만들지만 사기에 걸려들어 돈을 잃는다는 내용의 가벼운 농담같은 이야기라 추리물, 아니 범죄물로 보기는 절대 무리더라고요.

때문에 별점은 2점입니다. 유머와 마크 트웨인이라는 작가를 좋아한다면 별점 4점도 충분하며, 영문학도라면 원서로 읽어봄직할만한 좋은 책이지만 저같이 "퀸의 정원"에 실려있다는 이유로 추리적인 요소를 기대한 독자에게는 아무래도 실망감이 너무 컸습니다. 추리물을 원하는 독자라면 구태여 찾아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2010/01/23

이름없는 사나이 (결정적 증거 중) - 로드리게스 오토렌기 (1895) : 별점 3점

결정적 증거 (決定的証拠 / Final Proof) / Rodrigues Ottolengui

New York: G. P. Putnam

수록단편 : 

  • The Phoenix of Crime
  • The Missing Link
  • The Nameless Man
  • A Singular Abduction
  • A Frosty Morning
  • A Shadow of Proof 외 6편

명탐정 반즈에게 한 남자가 찾아와서 자신이 호텔에서 눈을 뜬 직후 자신의 이름조차 잊어버린, 완벽한 기억 상실임을 자처하고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반즈는 사건 해결을 자신하며 이틀 뒤 자신에게 다시 찾아오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반즈는 사건해결에 나서는데...

얼마전 소개했던 "퀸의 정원" 관련 글을 구글링하다가 찾은 일어로 번역된 단편소설입니다. 원문은 여기서 읽어보세요.

이 작품은 "퀸의 정원"에서도 "도일의 10년" 분류에 포함된 작품답게 홈즈의 라이벌다운 풍모를 느끼는 단편입니다. 전형적 명탐정 등장 단편 시리즈거든요. 주인공인 명탐정 반즈는 한편만으로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부하들을 부리면서 수사에 가까운 정보 수집 활동을 보인다는 등 특징이 비교적 확실하고, 추리적으로도 귀납적 추리론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등장하고 있다는 점 등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가 워낙 고전을 좋아라 하기도 하니까요. 작품도 무겁지 않게 전체적으로 유쾌한 분위기가 넘쳐흐르기 때문에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설정이 굉장히 기발하잖아요^^

물론 발표된 시기가 시기인지라 독자에게 주는 정보가 공정하지 않다는 것 - 유일하게 독자에게 제공되는 단서는 "M.J.G 레밍턴" 이라는 호텔 방명록에 적혀진 이름 뿐이죠 - 과 추리적인 비약이 있는 것 등 본격 황금기로 접어들기 직전의 과도기적인 모습도 갖추고 있다는 단점도 있긴 하죠. 전부 12편 수록 단편집에서 한편만 읽었기에 판단하기는 좀 어렵겠지만요.

뭐 어쨌건 무척이나 즐거운 독서였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퀸의 정원" 에서도 H.S 마크가 붙어 있는, 그러니까 "Historical Significance : 역사적 중요성" 에 더해 "Scarcity : 입수곤란" 딱지가 붙어있을 정도로 역사적 의미도 있지만 희귀하고 접하기 힘든 단편이니만큼 일본어 실력이 약간만 있으시다면 꼭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번역도 비교적 쉬운 문장으로 되어 있어서 읽기에 별 어려움은 없으실 거에요. 별점은 3점입니다.

그나저나 전편을 다 읽어볼 수 있는 기회가 오면 정말 좋을텐데... 힘들겠죠?

2017/11/19

탐정, 범죄, 미스터리의 간략한 역사 - 엘러리 퀸 / 박진세 : 별점 1.5점

탐정, 범죄, 미스터리의 간략한 역사 - 4점
엘러리 퀸 지음, 박진세 옮김/북스피어

북스피어의 박람강기 프로젝트 일곱 번째 책입니다. 박람강기(博覽强記)는 국어사전 풀이로는 "여러 가지의 책을 널리 많이 읽고 기억을 잘함." 이라는 뜻으로, 북스피어에서는 장르 소설이 아니라 소설 외의 다른 책들을 이러한 이름으로 펴내고 있지요. 저도 이 중에서 작가의 수입, 지출에 대한 일종의 보고서인 "작가의 수지", 서간문집인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기행문인 "미야베 미유키 에도 산책"을 읽고 리뷰도 올린 적이 있습니다.

이 책 역시 박람강기 레이블로 출간된 책답게 추리 소설은 아닙니다. 엘러리 퀸이 추리 소설을 연대별로 구분하여 각 연대별로 걸작을 꼽은, 추리 소설의 큰 역사와 대표작을 소개하는 일종의 가이드 북이자 서지 정보 책입니다.

그러나 제목만 다를 뿐, 추리 소설 애호가들에게는 익히 잘 알려져 있는 "퀸의 정원"의 단순 번역본에 불과해서 아주 실망스러웠습니다. 제가 이전에 관련해서 글을 남긴 적이 있을 정도로 이미 이런 저런 곳에서 공개되어 있는 내용이거든요.

물론 저는 일본어 사이트로 접했고, 영어나 일본어를 못하는 독자분들께는 유용한 정보가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의미가 있으려면 제가 링크한 일본 사이트처럼 국내에 번역되었는지, 어떤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지, 간략한 내용이 무엇인지는 알려주었어야 했습니다. 대충 훝어보니 약 30권 정도만 국내 소개된 듯 한데 간단한 수고 만으로도 이 정도 정보는 제공해 줄 수 있었을 거에요.
한 마디로 돈 받고 파는 책이 공짜 일본 사이트보다 담고 있는 정보가 부실합니다. 이 정도 수고도 하지 않고 그냥 책을 출간한건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아요. 지금 이 책을 읽어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희귀한 책을 소장하고 있다는 엘러리 퀸의 책 자랑 정도 밖에는 없습니다.

그나마 내용이라도 재미있다면 괜찮겠지만 선정된 125 편의 책 소개 대부분은 작가와 탐정 이야기가 전부입니다. 제일 궁금한 내용은 정작 알려주지 않으니 뭘 어쩌라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스포일러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완벽하게 성공하기는 했습니다만, 이래서야 이게 책 가이드로 의미가 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또 이 책이 발표된 해는 1969년 증보판 기준으로 보아도 이미 50년 전이며, 선정 기준에 "역사적인 중요성"이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게다가 "단편" 이어야 한다는 기묘한 기준도 있기 때문에(아마도 잡지 EQMM의 홍보를 겸한 듯 싶어요) 국내에 소개되었다 하더라도 재미나 완성도 측면에서는 부족한게 많습니다. 제가 읽었던 잘레스키(자레스키) 왕자 시리즈 중 한편인 "오번 가문의 비극"이 대표적이지요. 도저히 눈 뜨고 보기 힘든 수준이었거든요. "아마추어 괴도"(래플스 시리즈)도 마찬가지고요. "뜀뛰는 개구리" 처럼 그 어떤 기준을 들이 대어도 추리 소설이라고 보기 어려운 작품도 선정되어 있는 것도 문제고요. 그래도 이 작품은 재미라도 있으니 좀 낫긴 하네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추리 애호가로서 한 번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 번역되었다는 점 외에는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이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이유들에 더해 번역도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고요. 추리 소설 명작 리스트가 궁금하시다면 이런 것 같은, 인터넷에 여러가지 공개된 자료를 참고하시는 것이 훨씬 나을 겁니다.

2011/08/15

탐정 피트 모란 - 퍼시벌 와일드 / 정태원 : 별점 1.5점

탐정 피트 모란 - 4점
퍼시벌 와일드 지음, 정태원 옮김/해문출판사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직업은 운전수지만 통신으로 탐정 교육을 받으며 나름대로 좌충우돌 활약을 펼치는 피트 모란을 주인공으로 한 유머 단편집입니다. 통신 교육을 받는 과정을 제목으로 하는 7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퀸의 정원"에도 선정된, 초창기 황금기 시절 단편의 강자 퍼시벌 와일드의 작품이라 기대가 컸습니다. 이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클로버의 악당들"도 그렇고, 여러 커뮤니티에서의 평도 좋았으니까요.

그러나 솔직히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좋은 유머 소설이라고는 할 수 있지만, 추리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유머도 철자법조차 제대로 모르는 멍청한 주인공의 의도하지 않은 행동에서 벌어지는 극적인 결과라는 패턴이 대부분이라 지금 읽기에는 다소 낡아 보였습니다. "핑크 팬더"나 "겟 스마트", "형사 가제트", "미스터 빈" 같은 작품과도 비슷한 설정이라 차별화된 요소를 찾기 어려웠고요. 오히려 억지스러운 부분도 많았습니다.

책 뒷부분의 소개처럼 후반부로 갈수록 추리소설 형식을 띠긴 하지만, 오히려 이야기가 더 이상해집니다. 초반에는 멍청하지만 운이 좋은 피트 모란이 사건을 해결하는 구조인데, 후반부로 가면 피트 모란은 그저 멍청하기만 하고 사건은 다른 사람들이 해결합니다. 이 변화로 인해 단편집의 성격이 모호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추리소설을 표방했더라도 대단한 트릭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요. 차라리 "훈련을 쌓은 탐정이라면 99명은 그대로 지나치게 하더라도 100명째의 남자에게 수갑을 채우는 일쯤은 문제없지" 같은 피트 모란의 대사를 강조하며 초지일관 웃겨주는 게 더 나았을 것 같습니다.

통신으로 탐정 교육을 받는다는 독특한 설정과 멍청한 탐정이라는 콘셉트는 흥미롭지만, 추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정태원 선생님의 유작이라는 점은 안타깝지만, 이 작가의 작품을 읽고 싶다면 똑같이 단편집이면서 유머러스하면서도 추리소설 형식을 보다 제대로 갖춘 "클로버의 악당들"을 추천드립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수록작별 간단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미행"

통신 교육 강좌로 미행을 학습한 뒤, 마을에서 실습하다가 우연히 마리화나 밀매 조직을 검거하는 데 일조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인 피트 모란의 캐릭터와 서간문 형식의 전개, 그리고 의도하지 않은 행동이 뜻밖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내용이 모두 잘 표현된 대표 단편입니다. 유머러스한 전개가 적절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추리법"

사람의 특징을 보고 직업을 간파하는 전통적인 추리법이 주요 설정으로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패러디적인 요소가 있지만, 오히려 추리법 자체는 정확했다는 결말이 다소 애매했습니다. 유머는 좋지만, 억지스러운 전개가 아쉬웠습니다.

"방화범"

피트 모란의 통신 강좌 선생인 주임 경감의 비교적 정확한 조언이 인상적이긴 했지만, 역시나 억지스러운 전개가 거슬렸습니다. 당구가 문제였다면 당구대를 치우는 게 더 싸고, 빠르고 쉬웠을 텐데요...

"호텔 탐정"

피트 모란이 호텔 탐정으로 일하며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헐리우드 코믹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 강했습니다. 딱히 인상적이지도, 그렇다고 빠지는 부분도 없는 소품이었습니다.

"협박장"

협박장 사건을 의뢰받은 피트 모란이 마을 목사의 사악한 계획(?)에 걸려든다는 이야기로, 이 작품부터 피트 모란이 실패하기 시작합니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평범한 수준이었습니다.

"다이아몬드 헌터"

파티에서 분실된 다이아몬드를 찾으려는 피트 모란의 활약이 눈부신 단편으로, 수많은 고전 단편물을 패러디하여 인용한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인용된 작가는 코난 도일, 에드거 윌리스, 길버트 체스터튼, 애거서 크리스티, 도로시 세이어즈 등으로, 피트 모란의 활약과 맞물려 상당한 웃음을 선사합니다. 추리적으로도 깔끔한, 이 단편집의 베스트라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다만, 추리의 주역이 피트 모란이 아니라 하녀 마릴린이라는 점이 문제겠죠.

"지문 전문가"

'주임 경감'이 일선에서 활약하며 단편집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다소 어이없습니다. 지문 채취로 범죄 용의자를 잡아 한몫 보려는 피트 모란의 계획부터가 말이 안 됩니다. 지문을 채취한다고 해도 그것을 검증할 방법 자체가 없으니까요. 의외의 진상이 드러나는 전개도 이제는 힘이 많이 딸리는 느낌이랄까? 이 시리즈도 여기까지구나!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게 만듭니다.

2020/11/14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2 : 모래시계 외 - 로버트 바 외 / 이정아 : 별점 2.5점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2 : 모래시계 외 - 6점
로버트 바 외 지음, 이정아 옮김, 박광규/코너스톤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두 번째 권입니다.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 문학의 초기인 19세기 후반 ~ 20세기 초반 발표되었던 단편들이 수록된 앤솔러지입니다.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1"과 마찬가지로 정가 할인되었기에 구입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셜록 홈즈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탐정들 등장이 많은게 이채롭습니다. 유명한 외젠 발몽, 마틴 휴잇을 비롯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당대 탐정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산사나이, 자연인 명탐정 노벰버 조와 초창기 퇴마 탐정 플랙스먼 로우는 독특해서 인상적이더군요. 플랙스먼 로우는 시리즈를 더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하지만 수록작들 수준이 모두 높지는 않습니다. 셜록 홈즈의 영향을 짙게 받은, 모방작이 많은 탓입니다. 시대와 유행에 충실했지만, 뛰어넘지는 못한 셈이지요. "두 개의 양념병"이라는 걸작이 수록되어 있기에, 전체 평균 별점은 2.5점입니다만, 수준 이하 작품도 많습니다. 하지만 정가 인하된 가격이 워낙 저렴하기에 만족스러운 독서였습니다. 고전 추리 소설 애호가시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기 전 참고하세요.

"거브 탐정, 일생 일대의 사건"

파일로 거브는 마대 자루에 꿰메어진 채 익사한 헨리 스미츠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나섰다. 그의 활약을 모든 리버뱅크 주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거브 탐정은 피해자가 끊어진 전구를 쥐고 있었던 사실에 주목하는데...

도배 및 인테리어 사업을 하면서, 통신 교육으로 탐정이 된 파일로 거브가 활약(이라고 쓰고 좌충우돌이라고 읽는)하는 시리즈 단편입니다.

통신 교육을 받은 탐정은 "탐정 피트 모란"이 유명합니다. 그런데 피트 모란은 겉에 드러난 것들만 1차원적으로 해석하는 단순한 인물이었습니다. 고민따위는 하지도 않지요. 당연히 추리보다는 코미디가 핵심인 이야기 들이었고요. 이 작품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탐정에 대한 희화화에 주력하고 있다는 점에서는요. 마을 주민 모두가 변장이라는 걸 알아채는 변장을 한 뒤 탐문 수사에 나선다던가, 파일로 거브가 펼치는 수사를 마을 주민 모두가 지켜본다는 등의 묘사 등이 그러합니다.

그래도 "피트 모란" 보다는 조금 낫습니다. 웃음거리를 제외하면, 나름대로는 추리물이기 때문입니다. 작 중 기묘하게 죽었던 헨리 스미츠 사건의 결정적 단서는 피해자가 쥐고 있던 전구였으며, 거브 탐정은 피해자가 "어디서 전구를 갈았는지?"를 파악한 뒤 피해자의 작업실로 올라가 전구를 가는 동작을 따라하다가 진상을 알게 되거든요.
피해자는 자신이 만든 '양고기 자동화 포장 기계'로 넘어져 마대 자루로 포장된 뒤 강물로 던져졌던 겁니다. 단서를 찾고, 추리한 뒤 추리를 검증한다는 순서만큼은 제대로 지키고 있는 셈이에요. 추리라기 보다는 겉에 드러난 단서를 '추적'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넓은 범주의 추리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대단한 추리는 아니며, 흡사 "월레스 앤 그로밋"을 연상케 하는 황당무계한, 일종의 다고베르트 머신같은 기계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퀸의 정원"에서도 언급되긴 했는데, 단지 '역사적 중요성'에 대해서만 점수를 받았을 뿐입니다. 당연합니다.

"두 개의 양념병" 

로드 던세이니가 1934년에 발표했던 작품으로 장르 문학을 사랑하시는 모든 애호가 분들이라면 누구나 아실 고전 걸작 단편입니다. 마지막의 의외성이 돋보이는, 이른바 '기묘한 맛' 장르의 대표작이지요.

이전에 다른 앤솔러지에서 읽었었는데, 정통 추리물 성격이 강할 뿐더러 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분량이 충실해서 놀랐습니다. 이는 마지막 반전을 훨씬 돋보이게 만들기도 합니다. 상세한 묘사를 통해 반전을 탐정역인 린리 씨가 룸 메이트인 스메더스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은근히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스메더스는 살인 용의자 스티거가 구입했다는 양념 '넘누모'를 파는 행상인이라서 린리씨는 샐러드에 뿌려먹게 넘누모 좀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스메더스는 거절합니다. "고기와 짭짤한 음식에만 뿌려 먹는 겁니다"며, 잘 모르고 채소에 뿌려 먹더라도 "두 번은 안 하죠"라고요. 이 말로 진상이 드러납니다!

2주일 동안 고기를 어떻게 보존했을지, 뼈와 정말 먹을 수 없는 내장 같은 부산물은 어떻게 처리했을지 등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기는 합니다. 그래도 후대에 많은 영향을 준 고전 걸작임에는 분명해요. 제 별점은 4.5점입니다. 린리 씨와 스메더스가 등장하는 시리즈를 더 많이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백작의 사라진 재산" 

외젠 발몽 시리즈 단편으로 "위풍당당 명탐정 외젠 발몽"에도 수록되었던 작품입니다. 다시 읽어보니 트릭이 황당해서, 이전만큼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작품인지 잘 모르겠네요. 지금 주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모래시계" 

버트럼 이스트퍼드는 골동품상에서 오래된 모래 시계를 구입했다. 시계는 30분 정도 지나면 시간이 멈추는 문제가 있었다. 그날 밤, 모래 시계를 바라보며 멍을 때리던 (?) 버트럼 앞에 옛날 군복을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그 모래 시계가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며, 190여년 전 자신이 참전했던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과 시계에 얽힌 이야기를 해 주는데...

표제작으로 저자는 '외젠 발몽' 시리즈 작가인 로버트 바인데, 작품은 외젠 발몽 시리즈와는 관계없는 역사 판타지입니다.

일단, 모래 시계 소유권을 주장하던 캐스퍼 센토어 중위가 해 준 전쟁 이야기는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중위는 장군으로부터 기습 공격 작전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모래 시계가 멈춘걸 몰라서 명령을 이행하지 못했지요. 그래서 작전 실패 후 체포되었습니다. 장군은 '모래 시계 모래가 다 떨어지면 총살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자리를 떠나고요. 그러나 모래 시계가 멈춘 탓에 총살을 집행할 수 없었고, 장군도 그 사실을 확인한 뒤 총살 지시를 철회한다는 내용입니다. 긴박하면서도 왠지 모를 유머, 여유가 느껴지는 좋은 이야기였어요.

그러나 설명되지 않는게 너무 많았어요. 캐스퍼 센토어 중위가 어떻게 버트럼 앞에 나타났는지부터 이유 불명이니까요. 왜 모래 시계가 파괴되고 중위는 사라졌는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래서야 버트럼 이스트퍼드가 꾼 꿈이라고 해도 될 정도에요. 그래서 점수는 2.5점입니다. 여러모로 마무리가 아깝습니다.

"일곱 명의 벌목꾼" 

노벰버 조를 벌목꾼 막사 책임자 클로즈 씨가 찾았다. 작년에 나타났던, 벌목꾼을 대상으로 강도 행각을 벌이는 검은 가면이 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클로즈 씨로부터 범인 체포를 부탁받은 조는 파트너 쿼리치와 함께 막사로 향했다. 다음날, 강도를 막기 위해 여섯 명이 뭉쳐 떠났던 인부들이 강도를 당했다며 돌아 오는데...

탐정 노벰버 조 시리즈 단편입니다. 노벰버 조는 깊은 산 속에서 일하는 벌목꾼이라는 특이한 직업의 소유자이지요.

전개 방식은 셜록 홈즈와 동일합니다. 주어진 단서를 통해 귀납적 추리를 펼쳐 범인을 잡아내니까요. 여섯 명 벌목꾼이 차를 마셨던 주전자를 깨끗이 씻은 행동 등 보통 사람은 생각하기 힘든 사소한 일이 단서가 된다는 점도 마찬가지고요. 그들이 마신 차에는 수면제가 들어있었고, 그걸 숨기기 위해 주전자를 씻었던 겁니다.

그러나 자질구레한 단서가 범인을 드러내는건 아닙니다. 범인을 드러내는건 돈을 숨겨 놓았을 막사를 해체한다는 거짓 정보를 흘린 덕분이거든요. 이에 놀란 범인을 현장에서 잡는게 전부입니다. 차에 수면제가 들어있던건 분명해서, 그걸 씻으나 안 씻으나 별 차이가 없었고, 범인이 특정 시간에 개울가에서 무슨 짓을 했건 별로 중요한 단서가 아니에요.

결론적으로 완성도는 그닥이었습니다. 셜록 홈즈 흉내를 내고는 있지만, 그 수준은 한참 미치지 못해요. 벌목꾼이라는 직업이 유용하게 사용돼지도 못했고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퀸의 정원"에서 부여한 가치도 역사적 중요성과 초판본 희귀성 뿐입니다. 엘러리 퀸도 '오지 탐정' 이라는 개념 도입만 높이 평가한 셈입니다.

"유령 저택의 비밀" 

잘 생각해보게. 톡톡 두드리는 소리, 흐물흐물한 물체 그리고 밴 뉘센 씨가 트리니다드섬에 살았다는 사실을 말이지. 또한 거기에 덧붙여 이 단 하나의 발자국까지 잘 생각해보게 뭔가 번쩍하고 해답 같은 게 떠오르지 않나?" 

심령학에 정통한 '퇴마 탐정' 플랙스먼 로우가 등장하는 단편. 심령 현상도 과학과 추리로 풀어낸다는 아이디어는 좋았습니다. 톡톡 두드리는 소리, 흐물흐물한 물체 그리고 밴 뉘센 씨가 트리니다드섬에 살았다는 사실을 통해 그가 나병에 걸렸다는걸 추리해 내는 과정도 합리적이었고요.

그러나 진짜 유령이 나온거라는 결말 만큼은 영 별로네요. 이 정도까지 추리로 풀어내었다면, 사람이 꾸민거라는 진상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은데 말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아이디어는 좋고, 추리도 볼만하지만 앞서 설명드렸듯 진상, 결말 때문에 감점합니다.

"레이커 실종 사건"

은행에서 수금을 담당하던 사원 레이커가 실종되었다. 그는 1만 5천 파운드를 지닌 채였다. 경찰은 그가 돈을 가지고 도주한걸로 판단했지만, 마틴 휴잇은 몇 가지 단서를 통해 진상을 밝혀낸다.

사립탐정 마틴 휴잇 (휴이트) 시리즈 단편입니다. 마틴 휴잇은 셜록 홈즈 시리즈가 연재된 스트랜드 매거진 출신 탐정으로 셜록 홈즈의 라이벌 중 한 명이지요. 그래서인지, 작품은 전형적인 셜록 홈즈 스타일입니다. 사건이 벌어지고, 탐정이 사건을 조사하여 추리 한 뒤, 경찰과 다른 결론을 내린다는 내용이니까요. 몇 가지 단서를 통해 추리한 결과가 의외라는 전개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래도 셜록 홈즈의 라이벌답게 추리적으로는 꽤 괜찮습니다. 수금할 때 레이커를 제대로 바라본 은행 직원은 거의 없었다, 은행 중 한 곳은 입구가 수리 중이었다는 수금 당시 정황, 그리고 레이커가 파리행 표를 살 때 본명을 댔고 독특한 우산만 채링크로스 역에 남겨졌다는 도주 정황을 통해 마틴 휴잇은 수금을 한 레이커는 변장한 가짜라고 추리하는데 이는 합리적입니다. 발표 당시에는 의외성있는 반전이었을 테고요.

하지만 마틴 휴잇이 진범을 알아내는건 작위적입니다. 레이커 이름이 적힌 우산 속 광고지가 단서가 된다는 점에서요. 광고지만 없었더라도, 이 범행은 완전 범죄가 되었을거에요. 광고 내용도 작위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범인들에게 진범이 자기 집으로 오라고 광고하다니, 어처구니가 없지요. 최소한 암호 정도는 써 줬어야 합니다. 이럴 거라면 마틴 휴잇이 구태여 발품을 팔 이유도 없습니다. 그냥 신문 광고란 속 수상한 광고만 보아도 되잖아요?

그리고 마틴 휴잇 캐릭터도 문제에요. 유명세에 비하면 별다른 매력은 없기 때문이에요. 이름만 바꾸면 셜록 홈즈라고 생각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전형적이더라고요. 후대에 그나마 이름을 남긴 셜록 홈즈의 라이벌들은 다들 차별화된 특징들이 있었지요. 도둑인 뤼뺑을 비롯해서 장님인 맥스 캐러도스, 이름도 모르고 정체도 모르는 안락의자 탐정 구석의 노인, 멋드러진 별명만큼은 길이 남은 밴 듀슨 (반 두젠), 법의학 탐정의 시조인 손다이크 박사처럼요. 물론 독특하다고 해서 역사에 길이 남는건 아닙니다. 아마추어 괴도 탐정 래플스처럼 지금은 잊혀진 존재도 허다하지요. 그러나 이는 작품 수준이 기대 이하였던 탓입니다. 마틴 휴잇 시리즈는 추리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던 만큼, 마틴 휴잇만의 개성과 매력을 더하지 못한게 아쉽기만 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셜록 홈즈 스타일을 잘 따르고 있는, 추리적으로도 괜찮은 이야기지만 단점이 명확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바다 건너온 살인자"

로프터스 디컨 씨가 자택의 하치만 성상 아래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현장은 거의 밀실이었다. 다음날 아침, 고인의 친구이자 변호사인 헨리 콜슨 씨는 명탐정 호러스 도링턴에게 사건을 의뢰했고 둘은 함께 현장을 찾았다. 현장에서 헨리 콜슨 씨는 고인이 애지중지했던 '마사무네 검'이 사라졌다는걸 알아챘다. 그 검은 일본인 게이고 가나마로가 되찾기 위해 부탁과 협박을 반복했던 과거가 있었다. 가나마로는 원래 검의 소유주 아들로, 아버지 영전에 검을 바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 뒤 헨리 콜슨 씨는 게이고 가나마로가 일본으로 돌아갈 표를 예약했다는걸 알아내는데...

아서 모리슨이 쓴 단편인데 의외로 마틴 휴잇 시리즈가 아니네요. 내용은 전형적인 셜록 홈즈 스타일로, 마틴 휴잇이 등장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을겁니다. 등장하는 명탐정 호러스 도링턴이 마틴 휴잇, 셜록 홈즈와 구분되는 특별한 매력이나 특기, 특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추리적으로는 볼만 했습니다. 추리가 진행되는 과정이 합리적이고, 단서도 공정한 편이거든요. 약간의 범인 심리 분석도 눈길을 끄는 요소였고요. 디컨 씨는 외출했다가 급한 용무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때 집 안에 있었던 누군가가 범인이었을테고요.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집 안으로 들어왔을까요? 경찰은 침실 창문을 주목했지만, 도링턴은 그렇지 않다고 확신합니다. 침실 창문으로 들어왔다면, 디컨 씨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침실로 향했을테고, 그곳에서 범행이 일어났을텐데 그렇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요. 그리고 도링턴은 하치만 성상이 집에 들어온 날 범행이 일어났고, 성상이 원래 있던 상점에서 물건이 없어지고 부서진 사건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통해 '하치만 성상 안에 누군가 숨어서 잠입했다'고 추리하지요. 물건 안에 범인이 숨는 이야기는 많을테지만, 이 정도면 꽤 설득력있는 이야기였다 생각되네요. 범인 카스트로를 특정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로 볼 만 했습니다.

게이고 가나마로를 유력한 용의자로 등장시킨 전개도 좋습니다. 앞서 피해자가 집착했다는 마사무네 검과 보라빛 옻칠 세공품 소개를 통해 가나마로가 한 말 - 큰 돈을 들여서 겨우 검을 되찾을 수 있었다는 의미 - 의 뜻이 드러나는 결말도 마음에 들었고요. 그 외에 여러가지 일본 물품에 대한 설명도 그럴듯 했습니다.

물론 하치만 성상 무게에 대해 좀 대충 넘어가고 있기는 합니다. 사람 한 명 무게가 추가되었다면 이상함을 느끼는게 당연했을텐데 말이지요. 그리고 범행을 저지른 카스트로가 다시 성상에 숨은 뒤 몰래 빠져나갈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았다는 것도 이상했습니다. 한 몫 잡아서 도주 자금을 마련하는게 상식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단점은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습니다. 추리적으로는 빼어난 점이 분명 있고요. 탐정이 조금만 더 매력적이었다면 역사에 남을 작품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그날 밤의 도둑"

프로비던트 은행 지점장 아일랜드가 텅빈 금고를 보고 혼절했다. 그런데 경비원 제임스 페어베언은 전날 밤, 지점장 아내인 아일랜드 부인이 지점장실을 향해 남편을 부르는걸 목격했었다. 아일랜드 부인은 그 사실을 부정했지만, 사람들은 모두 지점장이 지점장실 문을 통해 금고로 들어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일랜드는 건강을 회복한 뒤, 범행 시간에 있었던 완벽한 알리바이를 입증했다. 그리고 그의 재산 상태는 완벽해서 금고 돈을 훔칠 필요가 없다는게 드러나는데...

'구석의 노인' 단편입니다. 이 시리즈는 좋아해서 여러 편 읽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낯서네요. 이전 다른 단편집 수록작은 아닌 듯 합니다.

그런데 읽어보니, 다른 단편집에서 빠진게 이해가 되더군요. 단순하고 뻔한 탓에 재미없고 지루했습니다. '지점장은 범인이 아니다', '지점장 아내는 거짓말을 해가며 누군가를 감싸주려 한다' 이 두 가지 사실만으로 결론은 쉽게 추리할 수 있어요. 범인은 바로 아일랜드 지점장의 아들이었던 거지요. 아들이 사건 발생 후 은행을 바로 그만두었다는 이야기도 이 추리를 뒷받침하고요. 이 정도 사건을 구석의 노인에게 의지하는 버튼 양은 너무 무능력한게 아닌가 싶네요. 경찰도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별점은 1.5점. 좋아하는 시리즈의 미번역 초역을 읽어보았다는 의미 외에는 딱히 건질게 없었습니다.

"대리 살인" 

작가는 M.M 보드킨입니다. 작가는 영국에서 판사까지 역임했던 법조인이었다네요. 그래서인지, 클라이막스는 법정 공방이더군요. 정식 법정은 아니고, 검시이긴 합니다만 배심원이 배석하고, 변호사가 반대 심문을 하는 등 정식 법정과 별로 다르지 않아서, 법정 미스터리라고 해도 무방할 겁니다.

이야기의 핵심은 밀실에서 구식 전장총이 발사된 장치 트릭입니다. 물병을 돋보기처럼 쓴 게 진상이고요. 엉클 애브너 시리즈인 "둠도프 사건"으로 익숙한 트릭이지요. 엉클 애브너는 1918년 발표되었으니 이 작품이 원조일 수도 있겠습니다. 문제는 작가 보드킨과 탐정 폴 벡이 포스트와 명탐정 엉클 애브너만큼 알려지지 못했다는 겁니다. 원조로서의 영광은 커녕, 잊혀져 버린거지요.

읽어보니 잊혀진 이유는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소설 완성도가 별로인 탓입니다. 우선 쓸데없는 묘사가 많고 장황합니다. 에릭 네빌이 정원으로 나가 복숭아를 먹는 묘사가 2페이지에 걸쳐 설명될 이유는 없어요. 그에 비해 추리적인 부분, 트릭은 대충 넘어가는 편입니다. 무엇보다도 에릭 네빌이 압박에 못 이겨 자백하고 쓰러진다는 결말은 최악이었어요. 트릭이 간파되었다 하더라도, 실수인지 살의가 있었는지 증명하는건 쉽지 않은 상황이니까요. 에릭 네빌이 정말로 목이 말라서 물병을 그곳에 놓았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엉클 에브너 시리즈가 훨씬 좋은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