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겐자야역 상점가 좁은 골목에 위치한 바 "가나리야"는 주인인 구도가 주방장을 겸해 운영하는 작은 바입니다. 도수별 4단계로 나뉘어진 필스너 생맥주와 맛있는 요리가 강점인 곳이지요. 이 곳을 찾은 손님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은 구도가 자신의 추리를 들려 준다는 안락의자 탐정물 형식의 단편집입니다.
그러나 뻔한 트릭풀이물은 아닙니다. 뛰어난 문학성을 바탕으로 한 서정적인 전개가 돋보이는 덕분입니다. 묘사력과 서정적인 전개가 좋아서 읽는 재미와 함께 애잔한 여운을 남겨줍니다. 일상계 성격이 강한 내용도 매력적이고요.
덧붙이자면 맛있는 요리가 각 단편마다 디테일하게 삽입되는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뛰어난 묘사력으로 입에 군침이 돌게 만드는 것은 물론,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소재였다 생각됩니다. 몇몇 요리는 재현해보거나 찾아가서 먹고 싶을 정도였어요. 책의 모양새와 장정도 아주 좋았고요.
물론 '실제 사건, 진상과는 동떨어진 추리를 들려줄 수도 있다'는 단점이 눈에 조금 뜨이기는 합니다. 이러한 안락의자 탐정물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단점이기도 하지만, 수록된 몇몇 이야기에서는 진상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추리는 추리에 불과할 뿐이라는게 좀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느낌을 받지 못했어요.
허나 단점은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회귀천 정사"가 연상되는 좋은 단편집이었어요. 별점은 3점입니다.
수록작별 간단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꽃아래 봄에 죽기를"
하이쿠 동호인 가타오카 소교가 병사한 뒤, 소교는 주민등록이 없는 무적자라는 것이 밝혀졌다. 같은 동호회 회원이었던 나나오는 그가 고향을 버린 이유를 조사하고, 유골을 보리사에 묻을 계획으로 조후로 향했다.
요리바 "가나리야"와 탐정역인 마스터 구도가 첫 등장하는 표제작.
소교가 왜 고향을 버려야 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실제 조후에서 있었던 대화제와 연결하여 가상 역사 소설처럼 꾸민 솜씨가 탁월합니다. 여성 장애인 살인 사건과 소교가 마지막 남긴 습작노트에서의 '벚꽃이 피었다'를 연결시켜 진범이 누구인지를 밝혀내는 본격 추리물로의 가치도 높고요. "하이쿠 동호인"들이 등장하는 작품답게 멋드러진 하이쿠들이 적절하게 삽입되어 읽는 재미를 더해주는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와카타케 나나미와 심포 유이치의 장점만을 섞은 느낌입니다. 묘한 매력이 넘치는 작품으로 별점은 4점입니다.
"가족사진"
지하철 역 시민 기증 서가의 추리소설들에서 발견된 흑백 가족사진에 대한 진상을 풀어가는 이야기.
정말로 가볍고도 가벼운 일상계 작품으로, 구도가 제시한 수수께끼에 대해서 가나리야의 단골손님들이 각자 자신의 추리를 이야기한다는게 특징입니다. 일종의 역발상 안락의자 탐정물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극중 주인공인 노다의 역할이 굉장히 작으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게 좋았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마지막 거처"
사진작가 쓰마키는 "마지막 거처"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진 자신의 작품전 포스터 도난사건으로 고민하다가, 구도에게 상담을 요청한 뒤 어떻게 사진을 찍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해 주는데...
역시나 전형적인 일상계. 그러나 포스터 도난에 대한 진상은 별로 설득력이 높지 않습니다. 구도의 추리는 볼만했지만 새롭거나 의외성 있지도 않고요. 그래도 등장하는 요리인 '가지 겨자 절임'이 꽤 임팩트 있게 사용된게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별점은 3점입니다.
"살인자의 빨간 손"
젊은 여성의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현장 주변에서는 빨간 손의 악마가 초등학생을 노린다는 괴담까지 퍼졌다. 괴담과 사건을 조합하여 단골손님들 사이에서 추리의 향연이 펼쳐지는데...
1편의 주인공 나나오와 단골손님들이 등장하는 작품.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사사구치 히즈루의 과거사를 비롯해서 경찰 모모세 겐지의 존재까지 추리에 가담시키는 복잡한 전개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작품부터 실제 진상을 속 시원하게 밝혀주지 않는다는 단점이 시작될 뿐더러 실제 빨간 손이 어떤 것이었을지에 대해 추리하는 마지막 부분은 범위를 극단적으로 좁힌 것으로 보이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었어요. 그렇게 따지자면 오토바이나 자전거 배달원은 모두 마찬가지였을 텐데 말이지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일곱 접시는 너무 많다"
회전 초밥가게에서 참치만 일곱 접시를 먹은 남자에 대해 이야기하며, 수수께끼 풀이를 던지는 단골 히가시야마의 이야기.
기이한 일상을 소재로 하여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회전 초밥가게 메뉴 리스트를 이용한 독특한 암호 트릭이 등장하는 등 신선한 요소는 많습니다.
그러나 진상이 속 시원하게 밝혀지지도 않으며 모든 것은 추론에 불과해서 좀 맥이 빠집니다. 구도의 말대로, 쓸데없는 이야기에서 시작된 말장난에 불과한 작품으로 보이거든요. 그리고 추리가 어찌 되었건 참치를 일곱 접시나 먹는 것만으로도 누구나 호기심을 가질 특이한 행동인데, 그러한 행동을 보이면서까지 불륜을 저지르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죠.
수수께끼를 위한 수수께끼에 불과해서, 이 작품집의 워스트로 꼽겠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물고기의 교제"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나나오가 다시 등장하여 가타오카 소교에 얽힌 과거 사건의 진상을 추적한다는 내용입니다. 중간에 나나오에게 프로포즈를 한 다카쓰카의 폭행사건 증인 찾기가 끼어들고 있어서 내용적으로는 풍성합니다.
그러나 역시나 진상은 밝혀지지 않고 모든 것은 추론에 불과하다는 단점은 전작과 동일합니다. 때문에 추리적으로 별로입니다. 소교가 장님 행세를 했다는 핵심 트릭에 대한 진위가 밝혀지지 않는 것도 문제고요. 무엇보다도 기누에가 자살한 이유가 잘 설명되지 않는 게 아쉬웠습니다. 여운을 남기는 맛은 좋지만 보다 친절했더라면 더 좋았을겁니다.
묘사도 좋고 상상력도 뛰어나며 등장하는 하이쿠도 아름다우나, 추리적으로는 부족해서 별점은 3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