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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8

미스터리 심리학 - 리처드 와이즈먼 / 김영선 : 별점 3.5점

미스터리 심리학 - 8점
리처드 와이즈먼 지음, 김영선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세상에 알려진 각종 기현상을 파헤치는 내용의 교양서적입니다. 마술의 비법을 밝히고 사기꾼들의 수법을 폭로하는 책들과 유사한데, 저도 전에 "신비의 사기꾼들"이라는 책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심리학적으로 접근한게 특징이며, "재미있게 쓰여졌다"는 큰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용 자체가 상당히 위트 있고 유머러스하게 구성되어 있어 쉽게 읽을 수 있어요.

또한, 각종 기현상을 꼭지별로 나누어 역사부터 소개하는 자세한 설명이 좋았으며, 심리학자 등이 전문적 능력과 다양한 실험을 통해 수수께끼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추리소설적인 재미도 느껴졌습니다. 이런 류의 책들은 항상 기본 이상의 만족도를 주는 것 같습니다.

실려 있는 모든 내용이 흥미진진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영매나 점술가의 콜드 리딩을 설명하는 첫 번째 꼭지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상대를 칭찬하며 애매모호하게 말하고, 듣는 사람이 자신의 상황에 맞게 해석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인데, 결국 듣는 사람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뽑아내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이 여러 실험을 통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정말 무릎을 칠 만한 내용이었어요. 이건 단순한 콜드 리딩이 아니라 사기의 기법이기도 하니까요!

이왕이면 동양의 사주팔자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그 점이 조금 아쉽긴 했습니다. (사주팔자는 일종의 DB 개념으로 봐야 할까요?)

그 외에도 영화 제목으로까지 사용된 영혼의 무게, 강령술과 테이블 움직임, 위저보드에 대한 해석, 영혼과 유령에 대한 과학적 접근, "오렌지로드" 팬들에게는 익숙한 예지몽의 허구성, 독심술과 최면 등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또한, 사기는 단순할수록 효과적이라는 명제를 다시금 깨닫게 해 주기도 했고요.

문체는 좋았지만, 이론적인 설명이 지나치게 직역에 가까워 약간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고, 뒤로 갈수록 주제 면에서 흥미와 몰입도가 조금 떨어진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감점하여 별점은 3.5점입니다. 그래도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신다면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2012/02/26

어둠의 변호사 - 도진기 : 별점 2.5점

어둠의 변호사 - 6점
도진기 지음/들녘(코기토)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둠의 변호사라 불리는 고진은 남광자라는 여인에게서 오빠의 유산 상속과 관련된 의뢰를 받았다. 유산 문제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남씨 집안과 같은 저택 1층에 거주하는 서씨 집안 사이에서 벌어졌던 과거의 참극, 그리고 2년 전 살인사건에 대해 전해 듣고 흥미가 생긴 고진은 남씨 집안의 무남독녀 남진희를 만난 뒤, 시각장애가 있는 그녀를 돕기 위해 과거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기 위해 분투했다. 그러나 남진희가 살해당하는데...

오래전 남씨, 서씨 가문에서 벌어진 이분희 살인사건, 2년 전의 박은순 살인사건, 남진희 살인사건, 마지막의 서형일 살인사건까지 총 4건의 연쇄살인이 벌어지며, 의외의 진상과 함께 다양한 트릭이 사용된 한국 본격 추리물입니다.

복잡하고 치밀한 인간관계, 과거에서 이어진 비극, 악마적인 핏줄에 의한 범죄 등 여러 비현실적인 설정 - 요코미조 세이시가 떠오르네요 -을 지극히 한국적인 상황에 녹여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두 가문이 얽히게 된 이유인, 전 남편이 도망간 뒤 아이들을 데리고 재혼한 이분희와의 관계라든가, 서형일을 입양시킨 이유 등은 실제로 있을 법한 이야기로 보이거든요. 주요 등장인물의 설정, 주택 명의, 집을 나간 아버지, 죽은 어머니에 대한 설명 등도 상세하게 덧붙여 설득력이 높습니다.

트릭도 뛰어납니다. 이분희 사건의 진상도 놀랍고, 서형일 사건의 다잉 메시지도 설득력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박은순 사건과 남진희 사건 두 건에서 사용된 여러 트릭은 풍성하면서도 추리 애호가를 충분히 만족시킬 만한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굳이 흠을 잡자면, 박은순 사건에서 알리바이를 조작하기 위해 ‘위조 여권 전문가’라는 특이한 전문가가 필요했다는 점, 그리고 현지에서 벌인 돼지피 사건은 경찰에 검거될 위험성이 컸다는 점(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위조 여권 등이 밝혀지며 모든 것이 끝장날 상황)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또한, 남진희 사건의 경우 별장의 설계 자체와 함께 수원 톨게이트에서의 소동 등이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점도 감점 요소였고요.

그러나 이는 극의 흐름을 저해할 정도는 아닙니다. 오히려 전개의 문제가 더 컸는데, 탐정 역할을 맡은 고진을 비롯해 용의자로 등장하는 서씨 가문의 형제들의 캐릭터가 천편일률적이었고, 주요 용의자들에 대한 수사가 지나치게 알리바이에만 집중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현대물이라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애매하게 빠져나가는 부분이 많아서 뒤로 갈수록 지루해집니다. 주요 용의자들에 대한 혐의를 독자들이 끝까지 가져가도록(특히 서두리) 구성한 것 같지만, 방식이 세련되지 못했어요. 차라리 서씨 가문의 형제들을 동시에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소거법 형태로 진행했더라면 더 흥미로웠을 겁니다.

단서 제공 방식도 공정하지 못합니다. 유언장의 첫 번째 버전이나, 서형일의 배낭여행 당시 친구의 행적 등 당연히 조사되었어야 할 단서들이 뒤늦게 등장하는데, 현대 경찰 수사에서 이런 일이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전개에 우연이 많이 개입된 것도 본격 추리물로서는 감점 요소입니다. 예를 들어, 더부살이하는 노인의 정체와, 그로 인해 밝혀지는 저주받은 핏줄의 정체가 우연히 밝혀지는 과정은 다소 개연성이 부족했습니다.

그 외에, 판사 출신 작가가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음에도 법률적인 요소가 두드러지지 않는데, 단점은 아니지만 전문 분야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면 더욱 흥미로운 작품이 될 수도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단점을 많이 언급했지만, 오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본격 추리소설일 뿐만 아니라, 완성도와 트릭 면에서도 한국 추리소설 장르에 깊이를 더해줄 수 있는 좋은 작품입니다. 첫 장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놀랄 만한 수준이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만,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작가와 시리즈였습니다. 시리즈 후속작을 빨리 읽어보고 싶네요.

2012/02/23

조금 특이한 아이 있습니다 - 모리 히로시 / 안소현 : 별점 2점

조금 특이한 아이, 있습니다 - 4점
모리 히로시 지음, 안소현 옮김/노블마인

지금은 실종 상태인 동료에게서 소개받은 기묘한 식당에 찾아가, 코스의 하나인 "낯선 여인과의 식사"를 즐긴다는 이야기. 설정만 보면 풍속업계를 다룬 것 같지만, 전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녀들과는 단지 식사만 할 뿐이며, 이름을 비롯한 개인적인 정보 교환은 없고, 두 번 다시 얼굴도 보지 않는다는 설정이거든요.

읽고 난 첫 느낌은 기묘하고 이색적이라는 겁니다. 색다른 시각으로 사물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각 단편마다 등장하는 여성이 굉장히 절도 있는 동작으로 식사를 한다는 디테일이나, 간혹 등장하는 기발한 이야기들도 괜찮았습니다. 예를 들면, 고지라 테마파크 이야기 같은 것들이요.

또한, 묘사보다는 트릭으로 승부하는 느낌이 강했던 작가의 전작들과 달리, 깊이 있는 심리 묘사가 중심이라는 점도 특이했고, 비교적 탄탄한 캐릭터 설정을 바탕으로 주인공이 확고한 신념을 지닌 채 낯선 여인과 보내는 낯선 시간 동안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그러나 이런 독특한 느낌은 초반 두세 개 에피소드뿐, 뒤로 갈수록 ‘모르는 여자와 밥을 먹는다’는 천편일률적인 이야기가 반복되면서 지루해졌습니다. 솔직히 재미가 없어요. 작가의 색다른 모습이라 느낀 묘사들 역시 개인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고, 머리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 점도 감점 요소입니다. 묘사의 양도 지나친데, 아무래도 욕심이 과했던 듯 싶습니다.그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알쏭달쏭하지만 기대했던 것과 달랐고, 재미도 없었던 탓입니다. 차라리 더 기묘했거나, 더 일상적이었거나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어중간한 느낌이에요. 작가의 팬이라면 독특함을 즐길 만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딱히 읽어볼 필요는 없습니다.

그나저나, 이 작품의 장르는 대체 무엇일까요? 동료의 실종과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화자가 고야마 선생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는 약간의 반전이 있기는 하나, 이 정도로는 추리물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사건도 없고, 단지 화자가 밥을 먹은 감상이 전부니까요. 그렇다면 기이한 일상 드라마? 하지만 심리 묘사가 어렵게 쓰여 있고, 내용 전개에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일상계’라고 하기에는 애매하긴 합니다. 그렇다면 현대 배경 우화? 알 수 없는 말들을 통해 자아 성찰을 하는 과정이 그려지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개인적인 심리 묘사가 주를 이루어 우화라고 부르기에도 어울리지 않네요. 혹시 정확한 답을 주실 분 안 계실까요?

2012/02/20

해적판 스캔들 - 야마다 쇼지 / 송태욱 : 별점 2.5점

해적판 스캔들 - 6점
야마다 쇼지 지음, 송태욱 옮김/사계절출판사

어떻게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생겨났고, 복제와 판매가 허락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문화사 - 미시사 책입니다. 깊이 있는 다양한 정보를 소개해 주시는 네이버 블로거 "반거들충이 한무릎공부" 님의 소개 글을 읽고 구해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핵심이 되는 사건은 18세기 영국에서 벌어진 대형 서점주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출신의 '해적판' 출판업자 도널드슨 간의 법정 소송 대결입니다. 기본적으로 ‘저작권’이란 무엇인지 역사적으로 훑어보며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에 더해, 탐욕스러운 서점주에 맞선 도널드슨의 치밀한 작전이 흥미롭게 펼쳐집니다(영국의 대법관이 영구 카피라이트를 인정하자, 도널드슨은 일부러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뒤 재판을 스코틀랜드로 옮겨 승소하고, 이를 바탕으로 상원에 대법관부의 오심을 제소하는 방식).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법정 공방은 마치 잘 짜인 법정 추리물을 연상케 할 정도로 흥미롭습니다.

또한, 자료적인 가치도 가히 독보적입니다. 저작권의 역사를 다룬 책 자체가 거의 없는 데다, 비록 영국에 한정된 내용이지만, 실제로도 저작권의 초기 역사는 이 책에 등장한 '앤 여왕법'과 이후의 재판이 거의 전부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 책이 담고 있는 핵심 주장—"저작권은 분명 필요하지만 특정 개인에게 영구히 소유되는 권리라면 대중이 책을 접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수정과 개정을 통한 발전도 늦어질 것이다. 문화는 누구 한 사람의 소유물이 아니다."—도 논지가 확실하여 마음에 들었습니다. 여러모로 되새겨볼 만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단점도 제법 많습니다. 일단 배경 설명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역사나 등장 인물들의 후일담까지 상세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었고, 예를 들면 당시 스코틀랜드 문예를 상징하는 앨런 램지에 대한 설명은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저작권에 대한 관습법상의 해석이 가장 중요한 이슈인데, 내용이 다소 어렵게 느껴진 점도 아쉬웠습니다. 상세한 설명이 뒷받침되어 있기는 하나,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수준은 아니었거든요. 저자의 권리와 서점의 권리(출판권)를 좀 더 명확하게 구분하여 설명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일본인 작가가 쓴 책을 번역한 탓에 일본의 저작권법을 예로 들거나 일본 자료를 인용하는 부분이 많은데, 최소한 국내 저작권법 정도는 조사해서 함께 실어주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전반적으로 무난하지만, 누구에게나 권할 책은 아닙니다. 저작권법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하지만, 현재의 상황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셔야 할 것 같습니다.

2012/02/16

오래된 책들 (1) - 다카기 아키미쓰 시리즈

가족모임 때문에 오랜만에 본가에 찾아갔다가 예전에 구입한 책들을 보았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구했는지 신기하기도 하고, 옛 생각도 나서 몇 장 사진을 찍어 소개해 드립니다. 아래의 "야망의 덫", "실험부부", "제로의 밀월"로 구성된 다카키 아키미쓰 3종 세트입니다. 가미즈 교스케가 아니라 다른 캐릭터인 기리시마 사부로 검사 시리즈입니다. 정말 헌책방에서 어렵게 한 권 한 권 모았던 기억이 납니다.

척 보기에도 무척 낡아 보이고, 싼티나는 표지 디자인과 "D. 아끼미쯔(쓰)"라는 저자 표기에서 세월이 많이 느껴지죠? 이 작품들에 더하여 동서판 "문신 살인사건"이 포함되면 국내 출간된 다카키 아키미쓰 장편 컬렉션이 완성됩니다. 혹시 제가 모르는 작품 중에 출간된 것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는 한 이 작품들을 제외하고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 쓸데없는 자부심도 아주 살~짝 느끼고 있답니다.

그나저나 좋은 작가인데, 작품들이 좀 더 많이 소개되면 좋겠네요. 제가 가지고 있는 헌책 절판본의 가치가 떨어져도 괜찮습니다!





2012/02/12

야오요로즈당의 고양이신 1~3 (미완) : FLIPFLOPs - 별점 2.5점

야오요로즈당의 고양이신 3 - 6점
FLIPFLOPs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지난 한 주는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네요. 대신 만화를 몇 권 읽었습니다. 이 작품은 그 중 하나입니다. 골동품상 야오요로즈당의 식객(?)인 고양이신 마유를 주인공으로, 친구인 야오요로즈당의 주인 유즈와 다양한 신들이 벌이는 시끌벅적한 소동을 그린 잔잔한 일상계 판타지 개그 만화입니다.

제목이 신토의 많은 신들을 의미하듯이, 정말 많은 신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이 일종의 "법률"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섞여 살아간다는 아이디어가 독특합니다. 신들의 능력과 밸런스가 나름 잘 맞춰져 있어 어색하지 않게 전개되는 것도 꽤 그럴듯했고요. 예를 들어 "오 나의 여신님"을 보면 여신들의 능력이 굉장히 막강한데, 이 작품에서의 신들은 인간계에서는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스스로의 힘을 잘 제어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주인공과 굴러들어온 식객 - 유령 / 지박령 / 침략자 / 미래에서 온 로봇 / 신 / 천사 / 악마 / 외계인 / 요정 / 머나먼 미래에서 온 후손 / 과거에서 날아온 어떤 존재 / 누군가 만든 것 등과 티격태격하면서도 우정을 쌓아가는 이야기’는 수많은 작품에서 반복된 클리셰이지만, 한두 가지의 변주만으로도 아직도 새로운 무언가를 끄집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아이디어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끼게 해줍니다.

그 외에도 이야기가 크게 옆길로 새지 않고, 일상계 개그라는 주제에 충실하다는 점, 개그뿐만 아니라 감동적인 요소도 적절하게 균형을 맞추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림도 깔끔한 점 등 여러모로 마음에 드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잘 진행되었으면 좋겠네요. 전체 별점은 2.5점입니다.

2012/02/11

명탐정 코난 74 - 아오야마 고쇼 : 별점 2점

명탐정 코난 74 - 4점
아오야마 고쇼 지음/서울문화사(만화)

이번 권에는 전편에서 이어지는 추리소설가 살인사건 해결편과 아유미 납치사건, 헤이지와 신이치(코난)의 탐정 대결, 그리고 해결편이 없는 디자인 회사 사장 살인사건이 실려 있습니다.

추리소설가 살인사건은 신 캐릭터 소개 측면 이외에는 추리적으로 별로 볼 것이 없었고, 전개도 억지스러웠습니다. 또한, 아유미 납치사건은 하이바라와 엮어서 뭔가 있어 보이려 한 것 외에는 사건의 발단, 동기, 결과 모두가 설득력이 부족한 평균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그나마 간만에 등장한 헤이지가 신이치와 탐정 대결을 벌인다는 패밀리 레스토랑 살인사건은 말장난이기는 하나, 관서 사투리와 도쿄 토박이의 말버릇을 이용해 범인을 끌어낸다는 점에서 합격점을 줄 만했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가장 큰 맹점은, 결국 사건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모리 코고로 탐정의 수사법이라는 점입니다(용의자들이 시킨 음식을 다 먹어본다는 것). 탐정 대결의 승자는 사실 모리 탐정이라는 거지요. 경찰 수사 없이도 요리의 맛만 보면 범인을 알아낼 수 있는 트릭이라니, 다소 허무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헤이지가 오랜만에 등장해 코난과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은 팬으로서 즐길 만했고, 평균 정도는 충분히 되는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마지막 사건은 해결편이 없어 평가를 보류한다고 치면, 전체적인 별점은 2점 정도 될 것 같네요. 최근 몇 권 중에서는 괜찮은 축에 속하긴 하지만, 아주 좋았던 시절과 비교하면 격차가 많이 느껴지는 수준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오랜 캐릭터들의 우정 출연(?)을 통해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려는 의도가 너무 많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저도 즐겁게 보기는 했지만, 예전처럼 추리적인 부분으로 승부하지 않는다면 이 효과는 오래가지 않을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관성으로 보고 있지만, 이대로라면 저의 애정이 80권을 넘기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2012/02/05

저녁싸리 정사 - 렌조 미키히코 / 정미영 : 별점 3점

저녁싸리 정사 - 6점 렌조 미키히코 지음, 정미영 옮김/시공사

"회귀천 정사"에서 이어지는, 꽃을 주제로 한 연작 미스터리입니다. 메이지~쇼와 시대를 배경으로 한 서정적인 꽃 미스터리 단편 세 편과, 가벼운 현대물 유머 미스터리인 "양지바른과 사건부" 시리즈 세 편이 실려 있습니다.

꽃 미스터리 시리즈는 꽃을 소재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 표면적인 사건과는 다른 진상이 숨어 있다는 점에서 전작과 동일하지만, 전작에 비해 다소 처지는 작품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전작은 "도라지꽃 피는 집"과 "회귀천 정사"라는 확실한 투톱 에이스가 중심을 잡아준 반면, 이번에는 "국화의 먼지" 한 편만이 이름값을 하기 때문이죠. "양지바른과 사건부" 시리즈는 유쾌하고 즐겁기는 했으나, 추리적인 면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별점은 3점. 전체적으로 평범하지만 "국화의 먼지" 한 편이 압도적인 완성도를 보여 점수를 많이 끌어올렸습니다. 이 작품 한 편만큼은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붉은 꽃 글자"

"내 몸 안에 동백꽃이 떨어진 거야.... 떨어진 채 빨간, 새빨간 피 같은 색으로 피어 있어...."

자신의 친구와의 가슴 아픈 사랑 후 죽어간 여동생을 위한 복수극… 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철저한 계획살인이었다는 의외의 반전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진짜 동기가 뒤에 숨어 있는 구조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근친상간의 감정마저 보이는 캐릭터들을 꽃잎으로 대표되는 탐미적인 묘사로 넘칠 듯이 그려낸 전개가 인상적이었어요.

하지만, 진짜 악당인 주인공의 1인칭 시점에서 그려지는 이야기가 너무 탐미적으로 묘사되다 보니, 심리묘사가 지나치게 아름다운 쪽에만 치우쳐 있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반전이 밝혀지는 부분에서 악당다운 모습을 더 보여주었더라면, 반전이 더욱 극대화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말이지요. 또한, 복수를 위해 동기(미즈사와와 미쓰의 관계)를 설정하는 과정이 과연 생각대로 가능했을까 하는 점도 다소 미심쩍었습니다.

그래도 "정사" 시리즈의 이름값에는 준하는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저녁싸리 정사"

유명한 정사 사건과 관련된 당사자의 일기를 토대로, 어린 시절 우연히 정사 사건을 목격했던 주인공이 감추어졌던 진상을 밝혀낸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세간에 아름답게 알려진 사랑 이야기와는 다른 진상이 있었다는 점, 그 와중에 몇몇 본격물스러운 트릭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회귀천 정사"의 판박이입니다.

그러나 "회귀천 정사"에 비하면 확실히 처집니다. 정사 사건에 감춰진 진상, 즉 몰락한 사족의 후예인 신노스케가 가진 사회주의자로서의 야망과, 그를 이용해 오히려 사회주의자를 말살하려 한 다지마의 계획은 정사 사건과 어울리지 않아 괴리감이 느껴졌어요. 화자의 어린 시절 짧은 기억에 의지하는 부분은 논리적 비약이 심했고요.

무엇보다도, 신노스케가 다카미 내무대신을 살해한다면 다지마가 굳이 유우와 함께 알리바이 트릭을 만들지 않더라도 진신샤를 타도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을 거라는 큰 약점이 있습니다. 실제로도 진신샤의 암살이라고 공표된 후, 신노스케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잖아요? 게다가, 다지마 유우의 장지문을 이용한 그림자 트릭을 신노스케가 고심 끝에 알아내 살인에 이용한다는 설정도 억지스러웠으며, 신노스케의 이름과 싸리꽃의 발음이 같다는 점을 이용한 증언 역시 일본어 말장난에 가까워 한국 독자가 읽기에는 다소 와닿지 않았어요..

서정적인 묘사는 여전히 뛰어나지만, "전편만 한 속편이 없다"는 격언이 떠오르는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국화의 먼지"

1909년, 이토 히로부미가 죽은 날을 배경으로 한 단편입니다. 그날 자살한 전 육군 기병연대 장교의 죽음에 우연히 관련된 "나"가 사건에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된다는 내용인데, 걸작이라 할 만합니다.

짧지만, 작가 특유의 서정적인 묘사와 "나"의 일기가 교차되며 전개되는 방식이 훌륭하고, 적절한 "원격조종" 트릭을 활용한 정통 추리물로서의 가치 역시 뛰어납니다. 무엇보다도 막부가 몰락하고, 막부를 따르던 무사 가문의 후예들과 천황을 추종하는 군인이라는 인물들, 그리고 "이토 히로부미"의 죽음 등 20세기 초반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십분 활용하여 역사 추리물로서의 완성도를 높였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합니다.

이 시대가 아니면 그려내기 힘든 트릭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가치가 있어 보입니다.

별점은 5점. 이 단편만큼은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양지바른과 사건부 제 1화 하얀 밀고"

다이토 신문사의 잔반처리과인 신문 자료부 제2과는 ‘양지바른과’라고 다른 부서 직원들에게 놀림받는 신세였다. 그러한 양지바른과에 다이토 신문사 기자 살인사건의 범인이 신문사 직원 "시즈타"라고 밀고하는 전화가 걸려왔다. 여사원 아이코가 그 이야기를 사회부에 전한 얼마 뒤, 같은 목소리로 269명에 대해 추가로 밀고하는 전화가 걸려오는데...

작가의 다른 작품과는 사뭇 다른, 현대를 배경으로 한 코믹 미스터리 연작입니다. 결함 있는 사원들만 모여 있는 독특한 집단 ‘양지바른과’의 설정과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상당히 유쾌합니다. 와카타케 나나미의 코지 미스터리가 연상될 정도로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었습니다. 너무 만화 같지 않나 싶을 정도로 과장된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스타일은 이 바닥 고전인 마크 트웨인의 작품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니 감안해야겠죠. 덧붙여, 작가의 묘사력은 감출 수가 없는지 "범인의 목소리가 하얗다"라는 아이코의 느낌에서 ‘하얀 밀고’라는 단어를 이끌어내는 표현이 인상적이었고, 아이코와 타로의 밀고 당기는 사랑 이야기 또한 귀여웠습니다.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일단 협박 전화를 건 이유부터가 설득력이 부족하며, 이러한 협박 전화를 걸면 결국 범인이 신문사 모든 직원을 알고 있는 내부 직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질 뿐이라는 점에서 현실성이 떨어집니다. 또, 사건의 발단이 된 아이코가 이름을 잘못 알아듣는 것도 지나치게 작위적이었고요. 게다가, 과정이야 어쨌든 범인을 체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는데도 시마다 과장이 왜 욕을 먹어야 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경찰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겁고 유쾌한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이러한 유머 미스터리를 작가 자신만의 스타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감탄스럽네요. 역시 재능이라는 것이겠죠. 작가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기에 만족스러웠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제 2화 네잎 클로버"

1화의 5개월 뒤, 양지바른과 멤버인 오가와가 학예부로 이동하는 송별회에서 아이코는 다시 타로와 재회했다. 재회의 장소는 타로가 신문사를 그만두고 개업한 좁디좁은 라면집이었다...

오가와가 인터뷰를 맡은 인기 혼성 듀엣 ‘라라와 루루’의 라라가 살해된 사건을 다룬 단편입니다. 라라가 쌍둥이였다는 가십이 터진 후, 사라진 라라의 쌍둥이가 용의자로 급부상하는 이야기인데, 루루의 독특한(?) 취미 등 억지스러운 설정이 많아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웠습니다. 라라의 성형수술 등 불필요한 이야기가 많다는 점도 감점 요소였습니다. 한마디로, 추리적으로는 부족한 작품이었습니다.

그나마 전편에서부터 이어지는 아이코와 타로의 밀당과, 아이코의 복잡미묘하지만 순진하고 귀여운 심리 묘사가 더 재미있었던 작품입니다. 유머 미스터리라기보다는 미스터리 터치의 로맨틱 코미디에 가까웠달까요. 이런 분위기도 나쁘지는 않지만, 미스터리로서의 매력은 다소 부족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제 3화 새는 발소리도 없이"

"증발 중인 부인이 돌아왔다 뭐 그런 거요."
"그 여잔 앞으로도 당분간 기체로 지낼 걸."

로쿠스케에게 정체불명의 여자가 접근하여, 수배 중인 테러범 "철뇌조"의 거처에 대해 밀고하게 한 뒤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더해 로쿠스케의 가출한 아내 이야기, 아이코와 타로의 여전한 사랑 이야기가 곁가지로 펼쳐집니다.

앞선 두 편과는 달리 폭탄 테러범 등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야기의 핵심은 장난스러운 밀고 전화를 중심으로 한 일상계 추리물에 가깝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시리즈는 일상계 미스터리에 더욱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유머와 재기 발랄한 대사, 알콩달콩한 사랑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죠. 전작들은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강력 범죄가 등장해 조화가 깨진 느낌도 있었는데, 이 에피소드는 일상계 느낌이 아주 잘 어울려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추리적으로 너무나 별 볼 일 없다는 것입니다. 예상 가능한 이야기였을 뿐만 아니라, 애초에 사건성도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래도 유쾌한 캐릭터들의 소동은 읽는 내내 즐거웠고, 완벽한 해피엔딩 역시 귀여운 작품에 걸맞은 마무리였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거장이 그린 소품으로는 아주 적절했어요. 귀여운 이야기를 계속 접하고 싶은데, 시리즈 후속작이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2012/02/03

단상 - 초등학교 5학년의 추리소설을 읽고

인터넷에서 우연히 초등학교 5학년이 썼다는 추리소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제목은 "폐쇄공포증"입니다.

솔직히 완성도를 논하기는 힘듭니다. 그래도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폐쇄공포증, 신종 마약 엑스터시 등의 소재를 엮어 하나의 글로 만들어 냈다는 것만으로도 기특하고 장해서 칭찬하지 않을 수 없네요. 부디 초심과 열정을 잃지 말고 한국 추리문학계에 우뚝 서기를 바랍니다. 요즘 좋은 국내 추리문학이 많이 발표되는 와중에, 초등학생마저 창작에 뛰어들다니 위기의식도 샘솟네요. 저도 어떻게든 짬을 내서 더 열심히 써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렇게 창작이 많아지면 발표할 공간도 늘어나면 좋지 않을까요? 회사 화장실에 거치되어 있는 잡지 "좋은 생각"을 우연히 뒤적이다가, 이 잡지가 간행된 지 20년이 되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권당 2천 원에, 주로 독자 투고 원고에 의지하는 120여 페이지짜리 잡지가 무려 이십 년을 버티다니요! 그렇다면 화장실에서 읽는 책을 목표로, 추리 작가들의 10~20페이지짜리 단편과 약간의 특집 기사로 이루어진 120여 페이지짜리 잡지를 2천 원에 판매하면 어떨까요?

고료는 무조건 페이지당 4만 원 정도로 하고, 추가 이익금을 독자 투표에 의한 인기 순위에 따라 나누는 방식으로 재미와 경쟁을 함께 가져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하면 대충 손익분기를 맞출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부족한 창작 원고는 저작권이 만료된 외국 작가의 작품 번역으로 충당하고, 독자 투고도 활발하게 전개하면 어떨까요?

하지만 요즘은 화장실에서도 모두 스마트폰을 보는 시대라, 책이나 잡지가 자리 잡기 힘들어지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아마 이런 추리 잡지도 보나 마나 성공하기 어렵겠죠... 그래도 혹시 이러한 잡지를 기획하시는 분이 계시면 연락 주시길 바랍니다. 저의 바람이기도 한 한국판 EQMM 출간이나 편집은 어렵더라도, 상기 고료로 작가로서 참여할 생각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