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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철의 선율 - 데즈카 오사무 : 별점 3점

타쿠야는 여동생과 절친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우연히 살인 사건을 목격한 뒤, 사건의 증인이 되었다. 그러나 사건은 친구 에디가 속한 마피아 조직 아르바니 가문의 청부였고, 타쿠야는 에디에 의해 양팔을 잃고 버려졌다. 그러나 타쿠야는 초능력을 이용해 강철 의수를 조종하는 능력을 얻은 뒤 복수를 시작한다...

표제작 중편 외에도 서스펜스 심리 멜로 "하얀 환영"과 타임슬립 로맨스 "레볼루션"이 실려 있는 데즈카 오사무 만화전집 문고본입니다. 우연찮게 구해서 읽게 되었네요. 

표제작인 "철의 선율"은 근래 "풀어헤드 코코"의 작가 요네하라 히데유키가 장편인 "다이몬즈"로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사실 별 기대를 한 것은 아닌데 상당히 괜찮았습니다! 표지만 보면 초인물 같은데, 의외로 하드하고 진지한 복수극이라서 의외였습니다. 복수를 위해 강철 의수를 조종하는 능력을 익혔지만, 의수가 타쿠야의 무의식 깊은 곳의 지시까지 받아들여 걷잡을 수 없이 살육을 펼친다는 아이디어도 무척 좋았고요. 이 아이디어를 극대화하는 마지막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었습니다. 모두를 증오한다고 절규하는 타쿠야와 그를 둘러싼 에디, 경찰들의 뒤로 의수가 기어오는데 와, 정말 대단했거든요. 조금 설정을 더 보여주고 이야기의 밀도가 깊었더라면 하는 아쉬움 - 특히 에디의 개심은 이해가 잘 되지 않음 - 은 있지만, 지금도 먹힐 만한 멋진 복수극이라 생각합니다.

이어지는 두 편의 단편 중 첫 번째인 "하얀 환영"은 조난 사건에 휩쓸린 여주인공이 연인 노리오의 마지막 순간을 망막 속에 새긴 채 살아가게 된다는 이야기로 "블랙잭"의 한 에피소드, 즉 연쇄살인 사건 피해자의 각막을 이식받은 소녀의 이야기와 유사합니다. 각막 속에 뭔가 새겨진다는 측면에서 말이죠. 그러나 우직한 분위기와 결말까지 깔끔했던 "블랙잭"에 비하면 초반부의 심리 서스펜스 분위기에서 순애물로의 전환이 너무 급작스러운 등 전개면에서 어설프고 너무 뻔한 느낌이 드는 등 많이 부족했습니다. 마지막 여운을 남기는 엔딩 정도만 괜찮았어요. 여러모로 평작 수준에서는 살짝 아래로 보이네요.

마지막 작품 "레볼루션"도 소품입니다. 중상을 입은 아내 야스에가 정신이 든 뒤, 자신은 홋타 미치코라고 주장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일종의 영혼 타임슬립물이지요. 그려진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전공투 시대를 암시케 하는 몇몇 설정이 눈에 뜨입니다. 암울한 미래관도 뭔가 전공투 시대를 떠오르게 하고요. 그러나 딱히 새롭거나 인상적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몇몇 장면은 독특했지만, 주인공이 그 고생을 하고도 아기의 이름을 테츠지라고 짓는 이유도 설명되지 않는 등 허술한 점도 많은 편입니다. 역시나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웠어요.

이렇듯 평범한 소품들이 감점 대상이기는 하나 핵심 중편 "철의 선율"이 시대를 넘어 지금도 재미와 충격을 가져다주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근래 개작(리메이크)된 것이 이해가 됩니다. 개작된 작품은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 "증오의 감정으로 현실을 초월한다"가 갈수록 희석되어 뻔한 이능력 배틀물이 되어버린 탓에 읽다가 포기하기는 했지만...

2011/10/27

피의 굴레 - 한동진 : 어쨌건 나에게는 별점 5점!

피의 굴레 - 10점
한동진 지음/북홀릭(bookholic)

그간 격조했습니다. 뜻밖의 집안 공사 관계로 외지를 떠돌다 보니 블로그에 신경을 쓰지 못했네요. 다들 안녕하셨나요? 이번에 리뷰할 소설은 바로 "경성탐정록" 후속작이자 두 번째 이야기인 "피의 굴레"입니다.

제 블로그를 방문하신 분들은 이미 아시겠지만, 제가 원안이라는 이름으로 참여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작과 달리 이번에는 제가 첫 아이 출산과 이직 등 개인적인 사정으로 거의 신경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원안을 맡았다고 소개되기에는 부끄럽네요. 총 네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지만, 제 비중은 많이 줄었습니다.

어쨌든 작품을 소개해 보자면, 첫 작품 "외과의"는 범인의 일기 형태로 전개되는 독특한 1인칭 도서 추리물입니다. 형이 부산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작은 고모부의 경험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집필한 작품이지요. 범인 시점에서 하나씩 단서가 밝혀지며 심리적으로 쫓기는 묘사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과학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진상을 증명해낸다는 점도 흥미로운데, 범인의 심리 묘사와 과학적 증명의 조합은 에도가와 란포의 "심리시험"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두 번째 작품 "안개 낀 거리"는 이전에 "무가"라는 제목으로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문학'에 소개된 바 있습니다. 미두 시장의 거물 신타로 살해 사건을 설홍주가 풀어나가는 과정이 당시 조선의 사회상과 맞물려 전개되는데, 일제 강점기라는 역사적 배경 속에서 하드보일드 탐정물의 분위기를 제대로 살린 작품입니다. 사실 제 오리지널 시놉은 정통 추리물 형태였는데, 형이 피해자 설정만 가져와 재창조했지요. 셜록 홈즈보다는 필립 말로우 스타일에 가까운데, 주인공 이름이 '마노우'였다면 더 어울렸을 것 같네요.

세 번째 작품이자 표제작인 "피의 굴레"는 원래 장편으로 완성했으나, 학산출판사 담당 편집자의 의견에 따라 지금의 형태로 개작되었습니다. 원래의 장편 느낌이 좋았었기에 다소 아쉽지만, 현재의 형태도 충분히 만족스럽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고안한 트릭만큼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등장인물 설정 및 시대적 배경과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니까요. 빠른 전개 속에 연극, 여배우, 사진관 등 당대 분위기와도 어울리는 요소들을 적절히 배치하여 팩션 느낌도 전해줍니다. 때문에 한국 추리문학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수준의 정통 역사 추리물이라 감히 자부합니다.

마지막 작품은 비교적 소품 느낌이 강한 "날개 없는 추락". 제가 쓴 시놉을 형이 마음에 들어 해 거의 그대로 쓰여진 작품입니다. 정교한 트릭 없이, 단서를 통해 진범을 추리하는 과정에 더 비중을 둔 작품으로, 추리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경쾌한 단편이지요. 마지막에는 잘 알려진 게임이론 '죄수의 딜레마'까지 등장하며, 다양한 요소가 어우러져 흥미로운 구성을 보여줍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5점! 제가 직접 참여한 작품이라 5점을 주는 것이 막장일까요? 하지만 누구에게 소개해도 부끄럽지 않은 결과물이라 자신합니다. 최근 부흥하는 국내 창작 추리소설계에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꼭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2011/10/21

일본의 탐정소설 - 이토 히데오 / 유재진 외 : 별점 3점

일본의 탐정소설 - 6점
이토 히데오 지음, 유재진 외 옮김/문

메이지 시대 구로이와 루이코로 대표되는 다양한 번안소설과 실화소설, 다이쇼 시대 영화 지고마의 인기로 촉발된 모험·탐정 활극의 유행, 그리고 잡지 신청년을 중심으로 한 창작 단편들, 마지막으로 쇼와 전기의 에도가와 란포와 오구리 무시타로의 번안·창작 소설까지—추리 강국 일본의 초기 추리소설 역사를 시대별 대표 작가와 작품을 통해 설명하는 책입니다.

저처럼 일본 추리소설을 애호하는 독자나 다이쇼·쇼와 시대 자료가 필요한 창작자에게는 반드시 구입해야 할 책이긴 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추리소설 애호가에게 선뜻 추천하기는 어렵네요. 가장 큰 이유는 각 시대별 대표작의 줄거리 요약이 지나치게 간략하고 건조해서 읽기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실존했던 탈옥의 명수를 소재로 한 "실화소설 탈옥수 후지쿠라", 타이완의 광산 조사를 배경으로 한 "광산의 마왕", 메이지 시대를 풍미한 모험소설 작가 오시카와 슌로의 "전기소설 은산왕", 마에다 쇼잔의 "뒤쫓는 그림자",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요시카와 에이지의 "에도 삼국지" 등 흥미로워 보이는 작품이 다수 소개되지만, 정작 본문에서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

원작 자체가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만, 좀 더 보기 좋고 읽기 쉽게 각색했더라면 자료적 가치뿐만 아니라 읽는 재미까지 더할 수 있었을 텐데요.

덧붙이자면, 이 책에서 다루는 작품들이 엄밀한 의미의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탐정소설'—즉, 정교한 트릭보다는 모험담에 가까운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라는 점도 조금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래도 자료적 가치가 크다는 점은 분명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단, 순전히 개인적인 기준에 따른 평가이며, 일본 추리소설의 깊은 애호가가 아니거나 근대를 무대로 한 창작물을 준비하는 분이 아니라면 다소 흥미를 느끼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점을 참고해 주세요.

2011/10/18

경성탐정록 2- 피의 굴레

표지이미지 공개! 전권보다 훨씬 마음에 듭니다.

지금 인쇄 중이라니 다음주 안에는 만나보실 수 있을 듯! 많은 사랑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2011/10/16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2 - 페르디난 트 폰쉬라크 / 김희상 : 별점 1.5점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2 - 4점
페르디난 트 폰쉬라크 지음, 김희상 옮김/갤리온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 페르디난트 폰 쉬라크 / 김희상 : 별점 4점

1권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기에 후속작도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1권에 비해 여러모로 부족했습니다. 전편만 한 속편이 나오기 힘들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네요.

가장 큰 문제는 작가가 어설프게 '문학'의 탈을 쓰려고 했다는 점입니다. 저는 논픽션을 기대했는데, 저자는 피해자와 가해자, 범행 당시 분위기를 상상해 하나의 소설처럼 구성했습니다. 나쁜 방식은 아니지만 균형을 잡는 데 실패하면서 소설도, 논픽션도 아닌 애매한 형태가 되어버렸어요. 등장인물의 심리 묘사에 의존한 전개가 지나치게 많아 천편일률적이고, 저자인 변호사의 역할도 거의 없어서 "도대체 뭘 하려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제목에서 기대할 법한 요소는 거의 없었죠. 이래서는 "뺑끼통"같은 한물간 범죄 실화 소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또한, 등장하는 사건들도 1권에 비하면 충격적이지 못합니다. 성범죄나 폭력 사건이 많기는 하지만, 선악 구도가 뚜렷해 예상 가능한 전개로 흘러가 버렸습니다. 1권에서 보여줬던 '픽션을 능가하는 현실'이라는 충격을 주기엔 부족했어요. 어쩌면 1권에서 이미 밑천을 다 드러내버린 탓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15편의 이야기 중 아래의 몇몇은 전편 못지않았습니다. 

"아이들"

어린아이들의 잘못된 증언으로 인해 성폭행범으로 몰려 인생이 망가진 남자의 이야기. 아동 성범죄 관련 증언의 신뢰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자신의 집을 마약 제조 공장으로 빌려주었던 노인이 체포되었는데, 흉기 소지 혐의로 중형을 받을 위기에 빠집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칼을 휴대한 이유는 이가 하나도 없어서 음식을 잘게 썰기 위함이었습니다. 진상이 드러나는 법정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열쇠"

25만 유로라는 거금과 마약을 둘러싼 암투를 다루는데, 전체적인 분위기가 코믹합니다. 영화 "펄프픽션"을 연상시킬 정도로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심판"

인간 말종 남편 살인 사건에서 흉기와 가해자 체포 당시의 사진을 통해 의외의 진상을 밝혀낸다는 내용으로 한 편의 추리소설을 방불케 합니다.

하지만 위와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전체 분량의 1/4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나머지는 기획된 후속작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1권의 성공에 기대 제작된 작품이라는 느낌이 강했기에, 별점은 1.5점입니다.

2011/10/12

실종일기 - 아즈마 히데오 / 오주원 : 별점 3.5점

실종 일기 - 8점
아즈마 히데오 지음, 오주원 옮김/세미콜론

1980년대를 호령했던 인기 만화가 아즈마 히데오의 갑작스러운 탈출 이후 노숙자 생활, 그리고 작가로서의 간단한 개인 이력과 알코올 중독 치료소에서의 생활을 담은 일종의 체험 수기 작품집입니다.

크게 세 개의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초반부는 노숙자 생활 이야기, 중반부는 개인 일대기, 마지막은 알코올 중독 치료소에서의 생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노숙자가 되는 초반부터 흡입력을 발휘하며 끝까지 손에서 놓기 힘들 정도로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이러한 몰입감의 가장 큰 이유는, 우울한 상황을 개그스럽게 풀어낸 표현 방식 덕분입니다. 힘들고 처절한 이야기를 유머로 승화시키는 솜씨는 아사리 요시토오에 버금갈 정도로 뛰어납니다. 노숙자 생활 중 경찰서에 갔다가 자신을 아는 경찰을 만나는 장면, 술 만드는 방법 소개 등, 생활 속에서 나온 개그는 그 자체로도 흥미롭고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자아냅니다.

특히 노숙자 생활의 디테일은 압권입니다. 잠자리 해결 방법, 먹거리와 담배 조달, 술과 용돈 마련, 시간 보내는 법 등 꽤 현실적인(?) 정보가 가득해서 전문가 만화라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두 번째 노숙자 생활 중 우연히 취직해 가스 배관공으로 일했던 경험 역시, 공사 현장의 세세한 디테일과 다양한 동료들과의 에피소드가 어우러지며 색다른 재미를 줍니다. 마지막으로, 알코올 중독 치료소에서의 생활은 중증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환각과 몽상의 묘사부터 금단 증상을 거쳐 회복되는 과정, 다양한 동료들을 바라보는 작가만의 시선까지 조화롭게 그려져 웃음과 함께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만화가이자 평론가인 이시카와 슌의 말대로 (in "만화의 시간") 개그 만화를 너무 오래 그려서 머리가 이상해진 것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조금 독특했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일반인은 상상하기 어려운 감각으로 그려낸 체험 잔혹 개그 만화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3.5점. 두께에 비해 가격이 다소 비싸다는 점에서 약간 감점했지만, 좋은 작품입니다.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덧붙이자면, 중간에 소개된 작가의 SF 단편집을 한 번 찾아보고 싶어졌습니다. 시간이 나면 북오프라도 뒤져봐야겠네요.

2011/10/09

4페이지 미스터리 - 아오이 우에타카 / 현정수 : 별점 1.5점

4페이지 미스터리 - 4점
아오이 우에타카 지음, 현정수 옮김/포레

초단편 장르문학은 엘러리 퀸의 '미니 미스터리'나 호시 신이치의 '쇼트쇼트' 처럼 기존에도 있던 장르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전 작품을 단 4페이지로 완결한다는 아이디어로 초단편의 한계에 도전하는 이색 단편집입니다.

그러나 성공적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호시 신이치, 아토다 다카시의 쇼트쇼트 작품은 짧기 때문에 더 효과적이었는데, 여기 수록작들은 '4페이지'라는 아이디어만 있을 뿐, 길이와 상관없이 수준 이하의 작품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형식의 특성상 대부분의 작품들이 지나칠 정도로 반전에 의지하는데, 그러다 보니 시점의 변화, 우연이 겹치는 급작스러운 상황, 어처구니없는 오해 등으로 이야기가 이루어집니다. 내용의 설득력도 부족하며, 별다른 묘사 없이 화자의 심리묘사나 대화만으로 진행되는 전개 탓에 뒤로 갈수록 지루해집니다. 트릭도 눈여겨볼 만한 것이 많지 않았고요.

물론 워낙 실려 있는 작품이 많기에 건질 만한 것도 있습니다. 변장 알리바이 트릭을 다잉 메시지를 통해 파헤치는 정통 도서 트릭물 "최후의 메시지", 나름 서술 트릭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록 온", 실종된 아버지와 신원불명의 시체를 연결시키는 "예쁘지 않아도 괜찮아" 등은 기획 의도와 잘 맞아 떨어지는 수작입니다. 그러나 60편 중 이 정도라니, 비율로 따지면 너무 낮네요.

빨리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나, 이런 작품 100편을 읽느니 완성도 높은 400페이지짜리 작품 한 편을 읽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 전체적인 별점은 1.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이 책 출간 이벤트로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4페이지 미스터리를 공모했는데, 그쪽이 더 기대되네요.

2011/10/07

로감독님이여 오라~!

신임감독 선임을 두고 말이 많은 요즈음. 개인적 단상을 몇자 적어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저는 두산 감독으로는 로이스터 감독이 더 나아보입니다.

첫번째 이유 - 선발투수를 길게 가져가는 운영. 중간이 별로인 팀 사정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선발이 최소 5이닝을 책임지게 하는 모습을 많이 보였고 운영에 큰 무리수도 두지 않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그에 반해 선감독은 전형적인 중간 야구죠. 솔직히 중간에 구위좋은 선수를 오래 가져가는 팀은 장기적으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두산의 많은 가능성있는 영건들에게는 꾸준한 선발수업이 나아보이고요. 올해야 어쨌건 로감독 시절 이재곤같은 영건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꾸준한 기용과 믿음의 결과겠죠.

두번째 이유 - 초공격형 야구. 두산 달감독님의 뚝심처럼 번트없이 노피어 스윙으로 공격하는 모습이 주산 타선에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번트 따위는 곰들에게 어울리지 않잖아요. 수비는 당시 롯데 선수들에 비교하면 두산에 조금 더 무게가 실리는 만큼 좋은 결과를 보이이라 예상합니다. 이성렬, 윤석민, 김재환 선수 등에게도 바람직한 일일테고 말이죠.

세번째 이유 - 효과적인 외국인 선수 수급. 로이스터 감독 이후 영입한 외국인 선수들은 최소한 쪽박은 없었다고 기억됩니다. 중도 퇴출되었던 메클레리조차도 방어율은 별로였지만 이닝과 승수는 괜찮았었죠. 두산이 지난 몇년간 한명 이상의 외국인 선수로 골머리를 썩혔는데 최소한 일정 수준이상의 선수는 볼 수 있으리라 기대됩니다.

이렇듯 오랜 팬으로서는 로감독님을 더욱 원합니다. 단기전에 약하다는 우려는 일단 단기전에 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한 문제이니 논외! 허슬~~~ 두!

2011/10/03

타임머신 - 허버트 조지 웰즈 / 한동훈 : 별점 3점

 

타임머신 - 6점
허버트 조지 웰즈 지음, 한동훈 옮김/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펭귄클래식 완역본입니다. 펭귄클래식 넘버도 외우기 쉬운 100이네요.

1960년에 제작된 걸작 클래식 영화를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작품이라 그동안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었는데, (참고로 2002년에 나온 리메이크작은 완전 쓰레기였죠) 급관심이 동해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상외로 영화와도 다르고, 제 생각과도 다른 부분이 많아 깜짝 놀랐습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사회주의적인 사상이 많이 들어가 있다는 것과, 절대로! 아동용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8만 년 뒤의 엘로이와 몰록이라는 지상-지하 세계로 분리된 설정이 계급 간 격차 때문이라는 것은 19세기의 시각을 감안하더라도 정말 놀라운 설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웰즈 본인의 말대로 조너선 스위프트스러운 부분도 보이고요.

여기에 더해 평이하게 전개되다가 전형적인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던 영화와는 달리, 위나의 죽음, 식인 행위, 몰록을 향한 주인공의 가공할 폭력과 파괴 행위 뒤에 이어지는 암울한 지구의 미래라는 결말은 지금 읽어도 몸서리가 처질 정도로 끔찍했습니다.

딱 한 가지 아쉬웠던건 웰즈의 작가로서의 능력이 상상력에는 미치지 못해 여러 부분에서 묘사나 전개가 어색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웰즈의 초기작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할 뿐더러, 기본적인 상상력의 크기가 압도적이기에 충분히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한마디로 '올타임 클래식'이라 칭해도 될 정도로 시대를 앞서간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3점. 저처럼 영화만 보셨거나 아동용인 줄 아셨던 분들은 길이도 길지 않으니 꼭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웬만하면 상세한 서문 역시 볼거리인 펭귄클래식 버전으로 말이죠.

2011/10/01

조선의 베스트셀러 - 이민희 : 별점 3점

조선의 베스트셀러 - 6점
이민희 지음/프로네시스(웅진)

'세책'이라고 불렸던, 조선시대부터 일본 강점기 초기까지의 상업적 도서 유통 방식에 대한 책입니다. 영화 "음란서생"으로도 친숙한 바로 그 방식, 즉 인기 작품을 손으로 베껴 대여해 주던 시스템이지요. 

책은 세책의 역사와 독자층, 대여료와 대여 방식, 세책점의 위치, 인기 있었던 작품들까지, 세책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를 상세한 자료와 함께 제공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대여 도서의 여백 등에 남겨진 낙서까지 분석할 정도로 깊이가 있습니다. 책의 두께에 비하면 도판도 충실한 편입니다. 학술서에 가까운 책이지만, 소재 자체가 흥미로운 데다 글도 딱딱하지 않고 편안한 문체로 쓰여 있어 쉽게 읽힙니다. 분량도 부담스럽지 않은 적절한 수준이고요.

다만, 후반부의 중국과 일본의 출판·서적 유통 관련 내용은 이 책의 방향과는 다소 맞지 않더군요. 예를 들어, 중국에서는 "홍루몽"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지만, 국내에서는 1800년 전후 이미 국문으로 번역된 시리즈가 384권이나 있었음에도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는 등의 정보는 당대 서적에 대한 자료로서의 가치는 높지만, 책의 중심 주제와는 약간 동떨어진 느낌이었거든요. 차라리 우리나라 실학파 관련 자료에서 자주 언급되는 북경 서점가 '유리창'에 대한 정보가 더 많았더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료적 가치와 읽는 재미를 적절히 만족시키는 훌륭한 책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관련 자료가 필요하다면 반드시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 생각됩니다.

그나저나 영화 "음란서생"이 비교적 고증에 충실했지만, 실제 베스트셀러는 음란도서가 아니라 영웅소설 등이었다고 하네요. 핵심 소재가 픽션이었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