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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31

소년탐정 김전일 2부 11~12 연금술 살인사건 - 아마기 세이마루 / 사토 후미야 : 별점 0.5점

소년탐정 김전일 2부 12 - 2점
아마기 세이마루 지음, 사토 후미야 그림/서울문화사(만화)

이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권을 한 번에 읽었네요. 장편에 조금 못 미치는 길이의 "연금술 살인사건"과 단편 "고도 1만 미터의 살인" 두 편이 실려 있습니다.

먼저 "연금술 살인사건"을 소개하자면, 김전일이 주식 투자로 저축을 날려버린 겐모치 경부의 부탁을 받고, 거액의 금이 숨겨져 있다는 섬 '연금도'로 떠난 후 연쇄살인사건에 휘말린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정말 해도 너무한 망작입니다. 하나의 통짜 금속으로 이루어진 문을 하룻밤 사이에 원하는 부분만 녹여서 돌파한 뒤, 나오면서 다시 완벽하게 메꾸어 밀실을 만든다는 트릭이라니... 벽을 뚫고 나간 후 다시 메워서 밀실을 만든다는 황당한 아이디어보다도 더 말이 안 되는 , 만화적 상상력에 불과한 이야기였습니다. 아무리 융점이 낮은 금속이라 해도, 하룻밤 만에 이 모든 작업을 완벽하게 마무리한다는 건 범인이 용접의 신이라도 불가능했을 겁니다.

게다가 범인을 옭아매는 단서인 제비뽑기도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종이 한 장의 번호가 다르다는 게 그렇게 중요한 단서인지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처음에 카미오카가 "나는 후카모리 호타루의 팬이라 참여했다"고 말했던 만큼, 충분히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었으니까요.

또한 경찰이 신상만 조사해도 동기가 누구에게 있는지 뻔히 드러나는데, 이런 외딴섬에서 불편하게 살인을 저지를 이유를 찾을 수 없다는 점도 지나치게 작위적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인기 있을 만한 소재들—외딴섬의 저택, 보물찾기, 밀실 살인사건, 연쇄살인, 고정 캐릭터 출연 등—을 긁어모아 작위적인 모래성을 쌓은 것, 그것이 이 작품의 정체입니다. 모든 면에서 부실하고 허술하기 짝이 없어요. 별점은 0.5점입니다.

두 번째 작품 "고도 1만 미터의 살인"도 마찬가지로 어처구니없는 내용이었습니다. 뻔한 전개도 문제지만, 그나마의 증거라는 것이 '냄새'라는 점도 황당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마약 밀수를 파헤친 부하와 함께 비행하는 기장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을지 궁금하기 짝이 없네요. 간만에 등장한 아케치 경시가 또다시 슈퍼맨 같은 능력을 선보이는 것 외에는 건질 것이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역시 0.5점.

그래서 두 작품 합친 별점도 0.5점입니다. 이제는 정말 이 시리즈가 왜 계속되는지 모르겠네요. 최근 몇 년 사이 계속된 망작들 출간에도 사람들에게 기대감을 남겨준 이름값이 있었지만, 이젠 그마저도 완전히 사라진 느낌입니다. 차라리 김전일이 죽어버려서 시리즈를 끝내는 것이 늦었지만, 남아 있는 유일한 선택이 아닐까 싶네요. 어쨌든 저는 이제 더 이상 이 시리즈를 찾아볼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2011/07/27

명탐정은 밀항중 - 와카타케 나나미 / 권영주 : 별점 2점

명탐정은 밀항중 - 4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노블마인

이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와카타케 나나미의 쇼와 시대 초기 국제 여객선을 무대로 한 연작 단편집입니다. 설정에 걸맞게 많은 등장인물과 특이한 장소, 상황을 이용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각 작품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작가 특유의 연작 단편 분위기 외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습니다. 시끌벅적한 소동은 정도가 과했고, 무엇보다도 추리적으로 너무 부족해서 좋게 평가할 점이 거의 없네요. 작가의 장점이라 할 수 있는 블랙코미디 요소는 어느 정도 살아있었지만, 단순히 웃음이 목적이라면 차라리 개그 프로그램을 보는 것이 나은 선택이겠지요.

그나마 스즈키 류자부로의 기묘한 여행기가 에필로그와 연결되는 아이디어는 괜찮았는데, 마지막 부분에서의 작위성이 너무 심해서 전체적인 인상을 망쳤습니다. 처음부터 노리고 썼다는 티가 너무 많이 났거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추리적인 요소가 너무 빈약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가 어렵습니다.  좋아하는 작가이긴 하지만, 최근 작품들은 만족스럽지 못하군요. 추리소설 애호가나 작가의 팬, 그 누구에게도 추천하기 어려운 작품이었습니다. 다음 작품에서는 조금이라도 만회해 주었으면 좋겠네요.

수록작별 간단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살인자 출범하다"

롤러스케이트장에서 발생한 기묘한 살인사건. 범인이 하코네호에 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신문기자 후지키의 추적이 펼쳐진다는 이야기.

문제는 후반부의 갑작스러운 진상이 흐름을 망친다는 겁니다. 진범의 독백으로 범인이 누구인지 독자에게 알려주는데, 배경 설명도 부족하고 관련된 단서도 거의 없어 당황스러울 뿐이었어요. 이런 전개라면 추리소설이라고 부르기 어렵죠. 별점은 1점입니다.

"아가씨 승선하다"

어딘가의 앤솔로지에서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정확히 어디에서 봤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네요.... 남작가의 딸이 벌이는 탈출 소동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장난스러운 소동 자체는 즐길 만했지만, 핵심 트릭이 단순한 말장난이라는건 아쉽습니다. 그래도 탈출을 막기 위한 주변 인물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가상했기에 별점은 1.5점입니다.

"고양이는 항해 중"

항해 중 발생한 살인사건과 그에 대한 진상을 다룬 작품인데, 기본 설정이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황당할 뿐이었습니다. 아무리 닮았다 해도 남자가 여자로 완벽하게 변신할 수 있을까요? 이 정도면 변장이 아니라 변신이죠. 애초에 이렇게 변장을 할 계획이었다면 구태여 살인사건을 일으켜 복잡하게 만들 필요도 없었을 테고요. 점수를 줄 여지가 전무합니다. 별점은 0.5점입니다.

"명탐정은 밀항 중"

표제작으로, 전통적인 트릭인 1인 2역 트릭이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작가 특유의 일상계스러운 분위기와 등장인물들 간의 밀고 당기는 심리 묘사가 괜찮았어요. 길치인 탐정역의 삼장스님 캐릭터도 매력적이었고요. 일상계적인 요소, 설득력 있는 트릭, 유쾌한 캐릭터와 심리 묘사가 잘 어우러진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유령선 출몰"

승객들이 선상에서 괴담회를 열고 발표한 이야기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범인을 옭아맨다는 독특한 구성을 가진 작품입니다. 특정 무대에서 펼쳐지는 괴담회라는 설정은 에도가와 란포나 고사카이 후보쿠 등의 작품에서도 볼 수 있었던 것이지요. 쇼와 시대 초기라는 작품 배경과 잘 어울렸어요. 

문제는 전개와 결말이 너무 진부했다는 점입니다. 결말이 조금만 더 신선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너무 뻔한 내용이라 아쉽더군요. 현대 독자가 읽기에는 어중간한 작품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선상의 악녀"

아이의 일기장을 통해 전개되는 과정이 흥미로웠던 소품입니다. 결말도 깔끔하게 마무리되었고요. 그러나 설정이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는 점은 아쉬웠어요. 아이디어를 뒷받침할 만한 깊이 있는 고민이 더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이별의 뱃고동"

항해의 마지막을 앞두고 벌어진 가면무도회에서의 ‘장난’을 파헤치는 이야기와 주요 등장인물들의 결말을 그리는 에필로그로 이어지는 작품입니다. 소소한 일상적인 분위기는 괜찮았지만, 과연 이게 이야기로서 의미가 있는 사건인가 싶을 정도로 지나치게 평범했습니다. 대미를 장식하기에는 다소 아쉬운 작품이었어요. 그래도 깔끔하게 마무리되는건 좋았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사실 이 단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가면무도회에서의 기상천외한 분장이었습니다. 온몸을 종이로 둘둘 말고 벽에 머리를 기대 서 있는 분장, 과연 무엇일까요? 정답은 ‘피사의 사탑’!

2011/07/24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 페르디난트 폰 쉬라크 / 김희상 : 별점 4점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 8점
페르디난 트 폰쉬라크 지음, 김희상 옮김/갤리온

이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유명 변호사 페르디난트 폰 쉬라크가 직접 맡았던 11건의 기막힌 사건을 담담하게 풀어놓은 논픽션. 현실이 영화나 소설보다 더욱 놀랍다는 명제를 잘 보여줍니다. 책에 실린 모든 사건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막힌 이야기들이거든요. 혼인 서약을 지키기 위해 악처의 잔소리를 40년이나 참아온 존경받는 의사가 아내를 도끼로 무자비하게 살해한 사건, 일본인 사업가 타나타의 금고를 털려다 오히려 범죄 조직 보스까지 엮이며 모두 무참히 살해당한 사건, 교통사고로 폐인이 된 동생을 살해한 누나의 이야기 등이 그렇습니다. 하나하나가 한 편의 소설보다도 더 놀라운 이야기로 설정도 극단적이고 묘사 역시 끔찍해서 오히려 비현실적인 픽션이라 의심될 정도였습니다.

그중에서 추리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건 세 가지를 꼽자면, 첫 번째는 ‘고슴도치’ 편입니다. 범죄자들로만 이루어진 가족에서 유일하게 똑똑했던 주인공 카림이 뛰어난 작전으로 형을 무죄로 만드는 재판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요. 작전이 대단히 교묘하지는 않지만, 형제들의 얼굴이 비슷하다는 점을 잘 이용한 현실적으로도 와닿는 내용이라 인상 깊었습니다. 이러한 변호를 진행한 저자도 사실 썩 양심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손해 본 사람이 없으니 결과적으로는 모두가 만족한 사건이었겠죠.

두 번째는 콜걸로 일하는 여대생 살인 사건 재판을 다룬 ‘서머타임’입니다. 제목 그대로 서머타임을 이용해 가장 유력한 용의자를 무죄로 만드는 극적인 재판 과정이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검찰 측의 결정적 사진 증거, 즉 용의자가 주차장을 빠져나갈 때 찍힌 사진에서 손목시계 시간을 보여주는 장면은 한 편의 영화 클라이맥스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용의자가 여대생을 돈으로 산 부도덕한 인간이라는 점은 문제지만, 이후 이혼 소송을 당하는 등의 결말이 나오니 나름대로 죗값을 치른 셈이겠죠?

마지막으로는 자신을 칼과 야구방망이로 협박하던 네오나치 양아치를 단 한 번의 반격으로 죽음에 이르게 한 정체불명의 인물 변호를 다룬 ‘정당방위’입니다. 스티븐 시걸 영화에서나 봄직한,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두 명의 건달을 쓰러뜨린 수수께끼의 인물이라는 도입부부터가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이 인물을 위해 국제적인 조직이 움직이며 결국 그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이 내려집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그가 정체를 숨긴 채 또 다른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될 수도 있다는 반전이 더해지면서 이야기가 끝을 맺죠. 현실 세계의 "자칼" 같은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처럼 놀라운 사건들이 가득해 읽는 재미도 뛰어나지만, 법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든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모든 범죄가 일률적으로 같은 벌을 받아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던지기도 하고요.

재미와 더불어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이기에 별점은 4점입니다. 2권이 출간되어 있던데, 빨리 구해서 읽어봐야겠네요.

2011/07/23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 히가시가와 도쿠야 / 현정수 : 별점 2.5점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 6점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현정수 옮김/21세기북스(북이십일)

이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부호 호쇼 가문의 딸이지만 신분을 숨기고 형사로 근무하는 레이코가 자신이 맡게 된 괴상한 사건을 집사 가게야마에게 털어놓으면 – 제목 그대로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 식사 후에 – 가게야마가 그 이야기만 듣고 진상을 추리해내는 전통 안락의자 탐정물입니다.

이 작품의 장점이라면 읽기 편하고 유머러스한 전개, 그리고 정통 안락의자 탐정물에 걸맞은 추리적인 재미와 공정한 단서 제공을 들 수 있습니다.

특히 추리적인 재미는 상식을 뛰어넘는 괴이한 사건 현장이 굉장히 상식적인 이유로 그러한 결과가 빚어졌다는 점을 밝혀내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 과정은 정통 본격물이라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로 잘 짜여져 있고요. 단편으로 구성된 점 역시 고전물 느낌을 강하게 전해주고, 트릭들도 꼼꼼하고 치밀하게 배치되어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해 줍니다.

그러나 지나칠 정도로 과장된 캐릭터와 배경 설정 때문에 작품을 읽는 내내 소설보다는 만화나 드라마에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부호 형사와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는 명탐정 집사 가게야마라는 캐릭터의 설정과 성격은 재미는 있지만, 정통 추리소설 애호가에게는 다소 가벼워 보이거든요. 물론 모든 추리소설의 명탐정들이 팍팍하게 살아가는 알코올 중독 독신남일 필요는 없겠지만, 최소한의 현실성은 유지하는 것이 좋았을 것 같습니다.

또한, 트릭이 꼼꼼히 배치된 것은 맞지만 다소 작위적이며, 몇몇 트릭은 추리 퀴즈 수준이라 더더욱 만화나 드라마로 완성되는 게 더 나았을 것 같네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 밝고 가벼운 분위기 속에서 유머러스한 전개와 트릭이 잘 결합된 작품이라 추리소설 입문자에게는 적합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권해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살인 현장에서는 구두를 벗어주십시오.

부잣집 아들 형사, 재벌가 아가씨 형사 컴비와 전형적인 안락의자 탐정인 집사 캐릭터가 소개되는 단편집의 도입부 역할을 수행하는 작품입니다. 집 안에서 부츠까지 신은 채 살해된 시체가 발견된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경찰의 치밀한 수사로 해결될 수도 있지만, 목격 증언의 맹점을 찌르는 전개와 시체 상태에 대한 설득력 있는 추리가 잘 결합된 소품으로 범인에 대한 추리까지 깔끔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별점은 2.5점. 도입부로는 적절했어요.

독이 든 와인은 어떠십니까.

자살로 보이는 동물병원 원장의 죽음이 사실은 타살일 수도 있다는 의문을 풀어내는 작품으로, 밀폐된 와인병에 독을 주입하는 트릭과 한밤중 촛불 같은 불빛에 의지해 범행의 뒷처리를 한 범인의 정체를 밝혀내는 두 가지 수수께끼가 등장합니다.

그러나 트릭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죠. 추리 퀴즈 수준의 내용이라 다소 아쉬웠어요. 꼼꼼한 묘사가 필요 없는 만화라면 더 괜찮았을지도 모르겠지만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아름다운 장미에는 살의가 있습니다.

장미 덤불 안에서 미녀의 시체가 발견된 사건을 그린 작품입니다. 고양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추리의 과정이나 논리가 합리적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동기도 명확하지는 않지만, 설득력은 있었고요. 

그러나 시체를 옮긴 방법이 독자에게 단서를 제공하기 위한 설정일 뿐, 실제로는 그다지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일부러 장미 덤불에 시체를 옮겨 놓은 이유도 작위적인 느낌이 들고 말이죠. 본격물다운 공정함에 너무 신경 쓴 탓일까요? 과유불급이란 말이 떠오르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신부는 밀실 안에 있습니다.

결혼식장에서 벌어진 밀실 살인미수 사건을 다룬 소품입니다. 트릭은 뻔하지만, 사람을 지칭하는 표현을 이용해 진상을 밝혀내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이었어요. 일상계 추리물로는 상급으로 평가할 만합니다.

재벌가의 결혼식이라는 과장된 설정이 필수적이라는 점이 약점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이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을 전개에 녹여냈다는 점에서는 플러스 요소가 될 수도 있겠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양다리는 주의하십시오.

자신의 집에서 알몸 상태로 발견된 키 작은 남자 사건을 다룬 이야기로, 현대인의 필수 소품이라 할 수 있는 '키높이 깔창'을 가장 중요한 트릭으로 사용한 점이 돋보였습니다. 시의적절하기도 하고, 정말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흥미로웠어요.

그러나 범인이 무려 두 명이나 되는 목격자에게 목격된 상황에서 단순히 키 차이만으로 빠져나간다는 설정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졌습니다. 인상착의에 대한 별다른 언급 없이 두루뭉술하게 넘어간 점도 아쉬웠고요. 또한, 키 차이를 부각하기 위해 허리를 삐끗한 환자를 등장시킨 설정이 너무 작위적이었어요. 불가사의한 현장을 일상적인 트릭과 결합한 구성은 좋았지만, 전개가 아쉬웠달까요. 그래도 여러모로 재미있는 요소가 많은 작품이라 별점은 3점입니다.

죽은 자의 전언을 받으시지요.

사설 금융업체 여사장 살해 사건을 다룬 이야기로, 대단한 트릭은 등장하지 않지만 지워진 다이잉 메시지와 창문으로 던져진 흉기 등 몇 가지 단서를 통해 결말로 이어지는 과정이 합리적이고 깔끔했습니다. 또, 가게야마가 액션을 펼치며 대활약하는 등 팬서비스적인 요소도 확실히 느껴졌어요. 무리수가 좀 보이긴 했지만, 평균 수준은 되는 것 같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11/07/16

헤드헌터 - 요 네스뵈 / 구세희 : 별점 3점

헤드헌터 - 6점
요 네스뵈 지음, 구세희 옮김/살림

이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업계 최고의 헤드헌터 로게르 브론은 사실 자신에게 찾아온 고객의 정보를 이용하여 그들이 가진 귀한 그림을 훔치는 도둑이었다. 사랑하는 아내와의 사랑을 유지하기 위하여 많은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수익이 시원치 않아 고민하던 그는 GPS회사 CEO로 영입대상인 클라스 그레베가 루벤스의 그림 '칼리돈의 멧돼지 사냥'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엇다. 곧바로 그림을 훔치기 위해 클라스 그레베의 집에 잠입한 로게르는 그림을 훔쳐내는데 성공했는데, 그의 귀에 아내의 휴대폰 벨소리가 들려왔다...

국내에서는 비교적 보기 힘든 북유럽, 노르웨이 작가 요 네스뵈의 범죄 스릴러 소설입니다. 도서출판 살림에서 좋은 기회를 주셔서 읽게 되었네요. 리뷰에 앞서 살림 출판사와 담당자분께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노르웨이 작품이기는 하지만, 전형적인 헐리우드 서스펜스 스릴러 형식이기에 북유럽이나 노르웨이 특유의 분위기를 느끼기는 어려웠어요. 작가 이름과 무대만 바꾸면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요.

물론 '전형적'이라는 말은 그만큼 잘 먹히는 요소가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재미 하나만큼은 확실한 편입니다. 그야말로 불쾌지수가 높은 여름에 어울리는 작품이었어요. 로게르 브론이 점점 궁지에 몰리는 과정이 숨 쉴 틈 없이 진행되며, 사건의 진상이 중반부에 밝혀짐에도 불구하고 이후에도 로게르 브론의 두뇌 싸움이 살벌하게 펼쳐져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들거든요.

이러한 스릴러적 속성과 함께 정교하게 짜인 구조는 추리적으로도 상당한 만족감을 선사합니다. 전개 도중에 별것 아닌 것처럼 던져진 단서들이 모두 의미가 있고,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죠. 두뇌게임도 적절하게 구성되어 결말도 무척 깔끔했습니다.

또 로게르 브론이라는 초엘리트 헤드헌터이자 미술품 절도범이라는 이중적인 캐릭터를 잘 형상화한 점도 작품의 재미를 높이는 데 큰 몫을 하고 있습니다. 부유한 시내 거리를 바라보며 "이것이야말로 산업노동자들을 짓누른 서비스업의 승리, 주택 부족 현상을 덮어 버린 디자인의 승리 그리고 현실을 가린 허구의 승리가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캐릭터를 만나는건 쉽지 않은 일이지요 (홍대 거리에 적합한 표현이 아닐까 싶네요.)"나는 내 시각대로 삶을 묘사하고 설명하는 것, 그러니까 파울로 코엘료 같은 방식으로 말하는 솜씨가 꽤 좋았다. 지적 수준이 떨어지는 사람에게는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만, 조금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짜증만 안겨주는 그런 식 말이다."라는 대사도 인상적이었고요.

캐릭터를 형상화하는 디테일도 빼어납니다. 헤드헌터로서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이야기하는 다양한 심문 기술, 미술품 절도 행각에서의 세세한 묘사는 굉장한 설득력을 보여줍니다.

반면 단점도 확실합니다. 클라스 그레베가 로게르를 옭아매는 이유가 영 현실성이 없다는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로게르가 변심했지만, 클라스 그레베의 능력이라면 원하는 자리를 차지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테니까요.

또한, 우연에 의지한 전개가 많다는 것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초·중반부 두 번의 위기(우베의 외딴 은신처와 도로에서의 교통사고)에서 로게르가 살아남은 것은 정말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마지막 반전에서 로게르가 클라스 그레베를 이길 수 있었던 것 역시, 클라스 그레베가 전날 디아나를 찾아갔다는 점과 자신의 생각대로 일이 풀릴 것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에 기초한 것이었고요.

마지막으로 이야기 구조 자체가 너무 의도적으로 짜였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앞서 정교하게 짜인 구조가 좋다고 이야기하긴 했지만, 완벽한 구성을 만들기 위한 의도가 지나친 나머지 몇몇 단서는 너무 노골적으로 배치되고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로게르 브론이 그림 도둑이라는 설정은 상당히 중요해 보이지만, 디아나의 불륜을 눈치채는 계기가 된 것 외에는 딱히 필요한 설정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잘 짜인 두뇌 싸움이 서스펜스 스릴러와 어우러지며 시너지 효과를 제대로 느낄 수 있거든요. 별점은 3점. 이번 휴가 때 챙겨 읽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2011/07/14

뿔났다 (구 : 엄마는 저격수) - 오기와라 히로시 / 박현석 : 별점 2점

뿔났다 - 4점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박현석 옮김/나래북.예림북

엄마는 저격수 - 4점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박현석 옮김/나래북.예림북

이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코는 두 아이의 어머니이자 평범한 회사원의 아내로 30년 상환의 집에 살며, 손바닥만한 정원 가꾸기가 취미인 극히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그러나 그녀는 어릴적 미국에서 외할이버지에게 양육되며 온갖 종류의 총기에 달통하며 다양한 호신술을 익힌, 그리고 16세 때 사람을 암살한 과거가 있는 킬러이기도 했다...

"벽장 속의 치요", "하드보일드 에그"를 통해 접했던 오기와라 히로시의 작품입니다.

이 작품처럼 ‘소녀가 킬러’라는 설정이나 ‘평범해 보이는 가정주부나 남편이 사실은 비밀요원이었다’ 같은 설정은 굉장히 흔한 편입니다. 그래서 설정 자체는 별로 새로울 게 없죠. 하지만 "하드보일드 에그"에서 느꼈던, ‘평범한 삶에 급작스럽게 찾아온 위기’라는 소재에서 극적 재미와 서스펜스를 이끌어내는 작가의 솜씨가 잘 발휘되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성장하며 킬러로 거듭나는 소녀의 이야기와, 평범한 가정주부에서 의뢰받은 암살을 성공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요코의 이야기가 번갈아 보여지는 전개도 무난하면서도 매끄럽습니다. 특히 암살 과정을 다룬 중반부는 정말 최고였어요.

만화 같은 이야기지만, 꼼꼼한 작가의 묘사 덕분에 작품도 설득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30년 상환의 집을 가지고 있고 두 자녀가 있는 가정주부 요코의 캐릭터가 잘 표현된 것은 물론, 총과 암살 방법에 대한 디테일도 상당한 수준이거든요. 또 전형적인 캐릭터 구축 방식이긴 했지만, 딸 다마키의 왕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감정이입할 만했습니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조금 별로다 싶더니, 결말은 그야말로 대형 사고급이었습니다. 정체불명의 암살 의뢰인 K의 정체에 대한 일종의 반전과 급격한 심리 변화를 그리고 있는데 너무 극단적이었던 탓입니다. 자신이 암살한 대상자들이 나타난다는 환영에 대한 두려움과 죄책감을 묘사한 부분은, 그동안 자녀와 가정을 지키기 위해 분투해온 요코라는 캐릭터와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았어요. 또 작가 특유의 유머, 블랙코미디적인 요소가 거의 담겨 있지 않은 것도 아쉬웠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현실적인 가정주부 킬러라는 소재를 비교적 설득력 있게 그려내긴 했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지는 못한 작품입니다. 대체로 예상 가능한 상상력의 범주 안에 속했다고 할까요. 물론, 더 나아가면 그야말로 만화가 될지도 모르지만요. 킬링 타임용 작품으로 재미는 있지만, 구태여 찾아 읽을 작품은 아닙니다.

2011/07/09

목요일의 남자 - G.K 체스터튼 / 유슬기 : 별점 2점

 

목요일의 남자 - 4점
G. K. 체스터튼 지음, 유슬기 옮김/이숲에올빼미

이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인 가브리엘 사임은 무정부주의자 조직을 수사하는 비밀경찰이라는 또다른 정체가 있었다. 그는 ‘일요일’이라는 명칭의 위원장이 통솔하는 무정부주의 조직에 잠입한 뒤, 조직의 간부인 ‘목요일’이 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조직의 다른 간부들과 만나며 테러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데...

"브라운 신부 시리즈"로 유명한 G.K. 체스터튼의 장편입니다. 브라운 신부 시리즈를 좋아하기도 하고, 책 소개에서도 ‘20세기 추리소설의 걸작’, ‘환상적 추리소설’이라는 표현이 있어 기대가 컸던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책은 제 기대를 완벽하게 깨버렸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최소한 ‘정통 추리소설’은 아닌 탓입니다.

각 요일별로 구분되어 독특한 개성을 뽐내는 무정부주의 조직 간부들 설정은 상당히 기발했고, 중반부까지 사임이 무정부주의자들의 테러를 막기 위해 벌이는 사투와 추격전 - 특히 사임과 교수의 추격전, 서기가 이끄는 기마병과의 추격전 - 은 박진감이 대단했습니다. 추리소설은 아니더라도 근사한 첩보·모험물 분위기를 물씬 풍길 정도였죠.

그러나 종반부는 기대와 너무 달랐습니다. 가공할 존재인 ‘일요일’과의 어이없는 추격전에서 시작해 알 수 없는 형이상학적 선문답, 그리고 마지막에는 기이한 파티로 끝나는 결말은 황당하기만 했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싶을 정도였어요. 오묘한 종교적 상상력과 시대를 앞선 느낌도 들고, 신적인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고급스러운 재치와 풍자로 표현한 것은 분명하지만,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유머러스하면서도 깊이 있는 묘사—“이 마을 부자 다섯 명 중 네 명은 사기꾼이오. 아마 이 비율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비슷할 것이오.”—와 전개는 과연 브라운 신부 시리즈의 저자가 맞구나 싶게 만들지만, 작품의 성격 자체가 예상과 너무 달라서 평가하기가 쉽지 않네요.

고전임은 분명하고, 발상 자체는 경이로운 부분도 있지만, 종교적 요소와 거리가 있는 저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굳이 평가하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저처럼 고전 정통 본격 추리소설을 기대하고 읽는다면 분명 실망하실 겁니다.

2011/07/06

디케의 눈 - 금태섭 : 별점 2점

디케의 눈 - 4점
금태섭 지음/궁리

이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검사 근무 후, 유학을 거쳐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인 저자의 법률 수필집입니다. 신변잡기스러운 글이 아니라 철저하게 판례 위주로 구성되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자가 직접 참여했던 국내 판례가 많이 실려 있는 것도 흥미로웠고요. 특히 히로뽕 강간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은 한 편의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까지 있었습니다. 얼굴이 비슷한 형제라는 점을 이용한 나름의 트릭도 등장하는데, 조금만 다듬으면 꽤 그럴싸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았습니다.

가끔 화제가 되는, '성폭행을 당하기 직전의 여성을 구해줬는데, 여성은 사라지고 오히려 상대방 남성이 폭행죄로 고소한 상황'이 저자의 실제 경험담으로 실려 있다는 점도 신선했습니다. 항상 궁금했었는데 현실은 역시 냉정하더군요. 상대 여성의 증언을 확보하지 못하면 결국 합의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하거든요. 저자의 친구인 서울대 법대 출신 사법연수생마저 빠져나올 방법이 없었다고 하니, 평범한 일반인들은 오죽하겠습니까...

국내 판례뿐만 아니라 유학파답게 해외 판례도 실려 있는데, LA 자신의 슈퍼에서 미성년자를 사살했던 두순자 사건이 자세하게 소개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법정에서 설명되는 피상적인 텍스트와 실제 사건 간의 괴리감을 잘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외국 서적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이야기라 더욱 흥미로웠습니다.

그 외에도 미란다 원칙의 유래와 그 후일담, 그리고 관련된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름만 들으면 탄산음료처럼 상큼한 느낌을 주는 미란다가, 사실은 인간쓰레기 연쇄 강간범이었을 줄은 상상도 못했네요.

하지만 이러한 판례들이 책의 절반도 차지하지 못하다는건 아쉽습니다. 개인적인 생각도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수필집이기도 해서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제가 기대했던 방향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또한 법에 대한 비판보다는 긍정적인 요소만 강조하는 것도 편향된 시각이었다 생각되고요.

그래도 장점이 확실한 책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유명 추리소설들의 명장면이 각 항목 서두에 실려 있다는 점도 반가웠습니다. 특히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이 인용된 점이 좋았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만, 법률에 관심이 있다면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2011/07/04

사냥꾼의 밤 - 찰스 로턴 (1956) : 별점 2.5점

이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기꾼 전도사이며 결혼 사기꾼인 해리는 형무소에서 알게 된 사형수 벤이 은행에서 훔친 돈 1만 달러를 두 명의 아이들에게 맡겨 놓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해리는 출소하자마자 아이들이 사는 마을에 나타나 벤의 아내로 과부가 된 윌라와 결혼했다. 그 뒤 그는 1만 달러를 숨겨 놓은 곳을 찾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데...

배우 출신 감독 찰스 로턴의 유일한 감독 작품인 고전 서스펜스 스릴러입니다.

1956년도 작품임에도 20세기 초엽의 무성영화, 그중에서도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영향을 짙게 느낄 수 있습니다. 로버트 미첨을 중심으로 한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와 세트 중심으로 촬영되었는데 세트의 구도가 기이하고, 조명 효과가 많이 사용되었다는 점이 그러합니다.

그러나 이런 요소가 너무 과합니다. 공들여 연출했지만, 이미지 위주로 만들어졌다는 느낌이 강해요. 연기도 어색합니다. 로버트 미첨이 아무리 명배우라지만, 무성영화 스타일의 과장된 연기는 살리기 어려웠나 봅니다. 아이들을 상대로 한 추격전은 어설픈 슬랩스틱으로 보일 정도였으니까요. 이러한 연기와 장면에 깔리는 뻔하면서도 과한 음악도 관객을 지치게 만듭니다. 

무엇보다도 1만 달러가 어디 숨겨져 있는지에 대한 서스펜스를 제대로 끌고 가지 못한 것이 이 영화 최대의 패착입니다. 중반부 펄이 돈을 꺼내 종이공작을 하는 장면에서 약간의 서스펜스를 느낄 수 있었을 뿐, 이후에는 완력과 우격다짐으로 숨겨진 장소를 알아내고 아이들을 끝없이 뒤쫓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 뒤의 추격전도 별다른 요소 없이 단조롭게 전개되면서 스릴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로버트 미첨의 찬송가를 이용한 연출은 인상적이었으나, 스릴보다는 은근한 분위기 정도였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이 영화를 구닥다리 영화라고 평가절하하기는 어렵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재평가를 받은 이유도 분명합니다. 사이비 전도사로 양손의 문신을 이용하여 카인과 아벨을 연기하는 로버트 미첨의 모습은 시대를 초월한 독특한 살인마 캐릭터로 길이 남을 만하니까요. 핸섬한 외모와 목소리는 그가 스무 명이 넘는 여자를 등쳐먹었다는 설정을 충분히 뒷받침 해 줍니다. 또 서스펜스 스릴러와 느와르, 아동 모험물 등 다양한 장르를 하나의 영화에 녹여 냈다는 점도 대단했습니다. 윌라의 사체가 낡은 포드 차에 태워진 채 물속에 잠겨 있는 등 인상적인 장면도 많았고요.

압도적인 포스를 내뿜던 악역이 점점 개그 캐릭터로 전락하며, 마지막에는 안쓰럽게 무너져서 황당했던 후반부만 좀 더 잘 다듬어졌더라면 걸작이 되었을겁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11/07/03

네코지마 하우스의 소동 - 와카타케 나나미 / 서혜영 : 별점 1.5점

네코지마 하우스의 소동 - 4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작가정신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네코지마 섬'은 고양이가 우글대는 고양이의 낙원으로 관광지로 유명해졌다. 섬에서 고양이가 칼에 찔린 채 발견되는 사건이 벌어졌고, 고마지 반장은 자신의 알레르기 덕분에 기묘한 사건 뒤에 감춰진 마약 관련 범죄를 눈치채고 수사를 펼쳤다. 그러나 용의자 알베르토가 기묘하게 추락사하면서 사건은 더욱 미궁에 빠지는데..

'하자키 일상 미스터리' 세 번째이자 마지막 작품. 이번에는 하자키시에서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고양이의 천국 '네코지마 섬'을 무대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런데 이전 두 권에 비하면 많이 처집니다. 기발한 설정이라서 기대가 컸던 전대미문의 추락사고는 단순한 우연에 불과했고, 쓰레기 더미 속 시체 역시 주요 사건과의 접점을 찾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극적 반전이 별다른 복선 없이 갑작스럽게 등장했다는 점에서 추리적으로 점수를 주기도 어려웠고요. 몇몇 캐릭터는 단순히 이야기를 늘리기 위한 장치였다는 것도 감점 요소입니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3억 엔'을 둘러싼 수수께끼와 '페르시아'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물건의 정체입니다. 허무하기 짝이 없었거든요. 이건 수수께끼도 뭐도 아닙니다. 차라리 보석이라도 하나 사서 숨겨놓았다면 모를까, 도피 중이면서 3억 엔짜리 융단을 어디서 어떻게 샀다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작가 특유의 냉소적인 유머는 곳곳에서 살아 있었고, 이전 시리즈와의 접점도 탐정역의 고마지 반장을 비롯해 '라디오 하자키'나 아야 - 마야 쌍둥이 자매의 등장 등을 통해 보여주고 있어 즐길 거리가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주요 사건은 깔끔하게 해결되기도 하고요. 하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해 별점은 1.5점입니다.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유머소설을 읽는 느낌마저 드니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2011/07/02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독비도) - 장철 (1968) : 별점은 2.5점이지만...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의로운 무림 고수 제대협은 독으로 습격한 적으로부터 자신을 구하고 죽은 하인의 아들 방강을 제자로 삼아 성심껏 키웠다. 그러나 방강은 출신 때문에 사형제로부터 미움을 받았고, 떠날 결심을 했지만 사부의 딸이기도 한 사매에게 한 팔을 잃고 말았다. (신조협려?) 다행히 그를 구해준 여인에게서 아버지의 유산이기도 한 비급을 얻고, 외팔에 맞는 새로운 무공을 익혔다.

한편, 제대협을 노리는 장비신마는 제가도법을 제압할 수 있는 기이한 무기와 초식을 창안했다. 제가문중 제자들은 장비신마 일당에게 한 명씩 습격당해 죽어갔고,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방강은 장비신마를 처치한 뒤 사문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향한다...

외팔이 시리즈의 기념비적인 1탄입니다. 오랫동안 소문만 들었지 접해 보지는 못했었는데, 우연찮게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무척 실망스러웠습니다. 이야기의 개연성, 무술 장면의 합, 촬영, 배우와 연기 뭐 마음에 드는 게 없었거든요.

당대의 인기작답게 건질 게 없는건 아닙니다. 외팔에 맞는 무공을 익히기 위해 반토막이 난 아버지의 유품인 도를 사용한 덕분에, 장비신마의 도를 잡는 기이한 무기에 걸려들지 않는다는 핵심 아이디어 하나만큼은 괜찮았어요. 왕우가 연기한 외팔이 고수 캐릭터도 굉장히 매력적이었고요. 모든 면에서 어설프지만 확실한 캐릭터 하나만으로 당대의 신화가 되고 후대에 지속적으로 인용되었다는 점에서는 "007 닥터 노"와 일맥상통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단점이 너무나 확연했기에... 시대를 뛰어넘는 걸작이 되지 못한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단 스토리부터 문제가 많습니다. 구멍이 한두 개가 아니지만, 스토리 전개의 가장 큰 요소인 장비신마의 계획부터 그러해요. 장비신마는 제가도법을 막기 위해 개발했다는 무기와 무공으로 제가문 중 제자들을 하나씩 암습하여 제거하는데, 이유는 이 무기와 무공의 특징이 드러나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실제로도 도를 봉쇄하는 기이한 무기와 그 순간 헛점을 노리는 단검이 중심인 유치한 무공인지라 한 번만 본다면 대비하는 게 충분히 가능해 보였어요.

그런데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 장비신마는 달랑 제자 두 명만 데리고 십여 명이 넘는 제씨 문중 제자들이 결집한 곳으로 직접 쳐들어갑니다! 그런데 제가문 중 제자들은 이 무공을 직접 눈으로 보고도 같은 수법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버립니다! 무능한 제자들의 모습을 보고 제대협의 속이 얼마나 상했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플 지경입니다. 이럴 거면 장비신마가 애써 무공을 숨길 이유는 없었지요.

또 60년대 영화라는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무술 장면이 너무 어설픕니다. 합이라는 것이 존재하나 싶을 정도거든요. 마지막 클라이맥스 대결에서 방강이 장비신마 채찍에 걸려 휘둘리는 장면은 영화 "에드 우드"에서 문어 인형과 싸우는 벨라 루고시이 떠오를만큼 형편없었고요. 거의 대부분 실내 세트로 이루어진 촬영도 몰입을 방해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작품적 가치보다는 역사적 가치를 따져야 하는 작품이기에 별점은 따로 부여하지 않겠습니다. 굳이 준다면 2.5점 정도? 무협 영화를 좋아하시는 아버님과의 이야깃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는 것으로도 제게는 가치 있던 영화였습니다. 추천은 하기 힘들지만...

2011/07/01

캐릭터 소설 쓰는 법 - 오쓰카 에이지 / 김성민 : 별점 3점

캐릭터 소설 쓰는 법 - 6점
오츠카 에이지 지음, 김성민 옮김/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제목 그대로 캐릭터 소설—여기서는 스니커 문고라고 하지만—쓰는 법을 다룬 책입니다. 넓게 보면 '라이트 노벨 쓰는 법'이라고 해도 무방하겠죠.

책의 본분에 걸맞게 내용은 충실합니다. 정말 캐릭터 소설을 쓰고자 한다면 큰 도움이 될 만해요. 캐릭터 창작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예를 드는 '두 눈 빛깔이 다른 여주인공'에 대한 아이디어를 만드는 과정, 플롯을 만들고 배치하는 카드 활용법 같은 것은 저도 한 번 써먹어 봐야겠더라고요.

작법 뿐 아니라 캐릭터 소설의 정의와 역사, 특징은 물론 관련된 다양한 서브 컬처까지 소개하고 있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로도스도 전기"와 함께 TRPG가 캐릭터 소설의 원형이라며 소개한 사례 등 그 폭이 상당히 넓기도 하고요. 꼭 작법서가 아니라 이쪽 바닥 입문·소개서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관련해서 소개된 몇 권은 꼭 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세계관'에 대한 사고방식도 눈여겨볼 만했습니다.

다만 불필요하게 문학을 의식하며 사생 소설과 비교하는 부분은 조금 지루했습니다. 천만 부 이상을 팔아치운 프로 작가로서의 작법이 좀 더 강조되었더라면 더욱 좋았을 텐데 말이지요.

그래도 실용성과 재미 측면에서 모두 만족스러웠습니다. 아이디어만 가지고 있는 누군가에게 최소한 소설로 보일 만한 무언가를 만드는 데는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약간 번역에서의 오류가 아쉽긴 하지만, 크게 흠잡을 정도는 아니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그나저나 이렇게 그럴듯한 작법 이론을 가진 이 작가의 대표작이 "마다라"와 "다중인격탐정 싸이코"라는 점은 조금 애매하네요. 하긴, 명선수가 항상 뛰어난 감독이 되는 것도 아니고, 만년 후보가 명감독이 되는 사례와도 비슷한 것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