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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3

손자병법의 탄생 - 웨난 / 심규호, 유소영 : 별점 2.5점

손자병법의 탄생 - 6점
웨난 지음, 심규호.유소영 옮김/일빛

1972년 산동선 임기현 은작산 1호, 2호묘에서 발굴된 죽간과 출토물들에 대해 여러가지를 풀어놓는, 580여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고고학, 미시사, 역사 서적입니다. 웨난 작가의 고고학 관련 책을 워낙 좋아하기에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부활하는 군단"은 진시황릉에 대한 바이블같은 책이죠. "마왕퇴의 귀부인"은 그만 못했지만 역시 괜찮았고요. "삼성퇴의 고대문명"을 절판 전에 구하지 못한 게 한스럽기만 합니다.

이 책의 구성은 "부활하는 군단"과 같습니다. 먼저 발굴 과정에 얽힌 이야기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이후 유물에 대한 실제 역사적 이야기를 소개하고, 마지막으로 지금 현재의 상황을 알려주며 마무리됩니다.

첫 시작인 발굴 과정부터 드라마틱합니다. 문화대혁명 직후의 어수선한 분위기와 전문가가 아닌 지역 담당자의 무식한 발굴이 겹쳐져 일어난 엄청난 피해, 고고학자들의 유물을 복원하기 위한 분투가 생생하게 펼쳐지는 덕분입니다. 흙탕물 속에서 죽간을 그러잡아 뜯어 올리는 식의 엄청난 발굴이 보여집니다! 이 와중에 정치적인 논리가 개입되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었고요.
그리고 제목 그대로 발굴된 죽간이 "손자병법"이었다는 것도 놀라웠습니다. 묘는 한나라 무제 때로 추정되지만 이 죽간의 필사 연대는 한나라 문경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늦어도 서한 전기), 한나라 시대 죽서 "손자병법"은 손무가 직접 쓴 원본일 가능성이 많기에 그야말로 초기 "손자병법"에 대해 생생하게 알게 된 것이라고 하네요. 송나라 판각본과의 대조 결과, 명확한 차이를 보인 부분이 있다고 하고요.
또 "손자병법", "육도", "관자" 등의 고적이 실존하며, "손빈병법"이 발굴되어 손무와 손빈이 각기 병법서를 세상에 전했다는게 밝혀진 것도 큰 성과입니다.
참고로 죽간을 수장품으로 묻은 이유는, 인쇄술이 시작된 당나라 이전에는 모두 손으로 필사했기 때문에 서적이 굉장히 귀해서 수장품에서 서적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고 합니다. 그런데 은작산 한묘의 죽간은 크게 열 묶음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수량인데 유가의 경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재미있습니다. 이는 진시황의 분서갱유와 법가 사상이 퍼져나가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해석되네요. 후대의 '비림비공(임표와 공자를 비판함)'과 크게 다름없는 상황인 것이죠!

여기까지가 약 120페이지에 이르는 분량이고, 이어서 360페이지에 걸쳐 발굴된 죽간을 연대별로 구분한 후 실제 해당 시기의 역사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항목별 간단한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육도" 

강태공이 주문공을 만나고, 주나라가 천하를 재패한 후 봉지로 제나라를 하사받는 과정까지의 이야기.
주문공과 첫 만남에서 강태공이 말한 '삼상주의'는 은작산 한묘 발굴로 알려지게 되었다는데, 최순실에 농락당한 대한민국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네요. '그 능력에 관계없이 사돈에 팔촌을 엮어 관직에 앉힐 경우 그 화가 나라와 백성에게 미쳐 결국 나라를 망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는 내용이니까요. 

"육도"에 대한 설명이 뒤에 이어지는데 주로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방법에 대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화복과 길흉에 대해서, 인사가 하늘에 달린게 아니라 사람에게 달렸고, 백성 사랑이 치국과 치군에 가장 중요한 전제라는게 분명히 지적됩니다. 천하가 평화로와야 모든 것이 이롭다는 것, 인심에 순응해 천하의 일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 등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인데 3천년도 더 전에 쓰여진 죽간 속 내용이 지금도 통용될만 하다는게 신기하기만 할 따름입니다.

"왕병"

'절개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고집스럽고 답답한 서생에 불과합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지금 세상은 사람 노릇을 하는 데 그리 진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 포숙이 관중을 데려오려 할 때 한 말. 

주 왕조가 쇠학하여 춘추 시대로 돌입하게 되고, 제나라가 관중과 포숙을 얻어 제후국의 맹주를 차지할 때까지의 이야기입니다.
관중이 죽은 후 그의 언설을 정리한 책이 "관자"입니다. 대체로 군사 사상으로 다섯가지 원칙으로 정의되는데 부국강병, 우병어농, 군정일체, 선계후전, 이인위본, 선전준비가 그것이죠. 은작산에서 출토된 "왕병"은 관중의 정치, 군사 사상에 대한 완전한 작품이며 후대에 전해진 "관자"는 불완전한 작품이라네요.

"안자춘추"

'귤은 회수 남쪽에 심으면 귤이 되지만 북쪽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명언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안자는 처음 들은 이름이네요. 사마천 왈 "관중이 죽고 백여년이 지나 안자가 나왔다."고 할 정도의 인물인데 말이죠. 

안자 안영과 전양저가 힘을 합쳐 제나라에서 세력을 확대하는 이야기는 재미있습니다. 이후 제나라 위왕이 양저의 군사 사상을 책으로 정리한 것이 "사마병법"이라지요. 전양저의 친척이자 전씨 가문의 유력인인 전서가 공을 세워 "손"씨 성을 하사 받았으며 이후 손무, 손빈 등의 후손들로 이어집니다.

"손자병법" 

손무가 오나라 국경 궁륭산에 터를 잡고 혁명을 위한 군사조직을 이끌다가 오자서를 만나는 데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 뒤는 "열국지" 등에서 본 이야기 그대로, 초나라에 복수하기 위해 오자서가 오나라왕 합려와 함께 전쟁을 일으키고, 이후 오나라가 패망할 때 까지의 흥망성쇠가 그려집니다.

잘 알고 있는 이야기라 신선함은 덜했지만 특이한 점이 있었습니다. 손무가 일종의 도적단 두목같은 포지션으로 등장해서 오자서와 밀약을 나눈다는 설정이 그것입니다. 손무가 오나라의 왕이 되고, 오자서는 초나라의 왕이 된다는 밀약인데, 작가의 창작인지 아니면 뭔가 유래가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아울러 초나라가 정벌된게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라는 연구자들의 의견도 신선했습니다.

"손빈병법" 

오나라를 떠난 손무가 제나라에 정착한 후 증손자 손빈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역시나 "열국지"를 통해 알고 있는 내용이에요. 방연과의 인연, 귀곡자 문하에서의 생활, 위나라에서 방연에게 뒤통수를 맞은 뒤의 처참한 생존 과정과 탈출, 그리고 복수가 차례대로 펼쳐집니다. 

그런데 읽다보니 이상한 점이 있더군요. 미친 척을 해서 방연의 눈을 피하는 것은 그럴듯한데 제나라 묵적의 제자 금활리라고 자신을 밝힌 인물에게 너무 쉽게 속 마음을 드러내는 전개는 전혀 납득이 되지 않았어요. 실제로는 수차례 연극을 더 했을 수 있겠지만요.


그리고 나머지 200여페이지에서는 현재 도출된 각종 의문과 문제에 대해 다루어 집니다. 대표적인 건 방연이 죽은 마릉의 정확한 위치, 후대에 수차례 대두되었던 손무 허구인물설에 대한 상세한 내용과 은작산 손자병법에 의해 밝혀진 진실, 손자병법과 손빈병법의 차이점 - 춘추 말기 낙후된 생산력과 경제력 탓에 손자병법은 속전속결을 주장하며 공성전을 피해야 한다고 했지만 손빈병법이 쓰여진 전국 시대에는 쇠뇌, 투석기와 같은 선진 무기의 도입과 기병전의 증가, 전쟁 규모의 확대 및 도시의 발전으로 공성전을 적극 주장하는 등 전략, 전술, 진법이 크게 변하였음 - 등 입니다. 손무의 고향이 어디인지에 대한 지역과 학계 간 암투 - 저자의 말에 따르면 '고향 소유권 쟁탈' - 도 소개되고 있고요.

그런데 손무 허구설, 손자병법과 손빈병법의 차이는 재미있었지만, 마릉의 위치나 손무의 고향이 어디인지는 중국 내에서야 관심사일 뿐 저에게는 하등의 가치가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지역 경제 부흥을 중요시 여기는 듯한 저자의 글도 와닿지 않았고요.

그나마 이를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사료가 소개, 인용되는데 그 중 기억에 남을 만큼 재미있는 항목이 몇가지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학자 곽말약, 여공아의 주장 중 '춘추'와 '전국'을 나누지 않고 한데 묶어 '춘추 전국 시대'라고 부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대목입니다. 저는 여태까지 당연히 '춘추 전국 시대'로 알고 있었는데 중국 내에서 '두 시기는 사실상 연결되어 있고 그 간격은 약 28년에 불과하여 분명하게 차이가 나기 어렵기 때문에 묶어야 한다!'는 주장이 의외로 소수파라는 것이 굉장히 의외였습니다. 지금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손무 무덤 발굴에 관련된 이야기 중 합려의 무덤인 검지 발굴을 위해 물을 뽑았었지만 검지 붕괴 위험과 비밀로 남겨두는 편이 지역 관광산업 발전, 경제 효과를 높이는데 유리하여 발굴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는 처음 알았네요. 어장검 등 각종 보검이 궁금했는데 아직은 때가 아닌 듯 싶군요.
손빈의 후예라는 손노가 손씨 가족을 연구할 때 '일부 당성이 탁월하고 정치적 견해가 뚜렷하고 영리한' 사람들을 모아 좌담회를 가졌다는 중국 공산당식 마인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여기서 '문화대혁명' 때 손씨 가문 족보를 태우겠다고 소란을 피웠으며, 손씨 가문의 어른인 손지일이 홍위병에게 끌려가 고초를 겪었지만 족보는 잘 숨겨놓아 결국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기억에 남고요.
손씨 가문 내력을 조사하여 손빈의 무덤 위치와 말년을 알아내는 과정은 조상과 제사를 중시하는 우리나라 현실과도 잘 맞아떨어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중국 내 사학계에서 손씨 족보의 발견이 굉장한 성과로 인정받고 있을 정도라니 족보라는게 참으로 중요하구나 싶더라고요.

이어서 1996년에 벌어진 손자병법 82편의 영인본을 발견했다는 사기극이 등장합니다. 역시나 홍위병이 등장하여 고대 죽간을 태워버리는 바람에 일부만 건졌고, 필사한 사본만 남았다는 주장에서 시작되는데 고대 죽간을 손에 넣었다는 조부 장서기의 일대기를 분석하여 사기꾼의 주장을 반박하고, 장서기의 진짜 직계 후손이 등장하여 이름 돌림자를 가지고 사기꾼들을 박살내는 전개는 우리나라 상황과 유사하여 재미있었습니다. 가짜임을 증명하는 고고학적인 분석 결과와 사기에 가담했던 국방대학교 강사 방립중이 벌인 민사 소송으로 벌어진 재판 과정도 법정 추리물 느낌이라 아주 흥미로왔고요. 솔직히 너무 유치하고 어설픈 사기극이라 이렇게까지 크게 이슈가 된 것도 잘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요.

마지막 에필로그에서는 죽간과 다른 출토물들의 후일담을 그립니다. 죽간은 그나마 신경써서 보존되었지만, 성 박물관도 문화대혁명에 휩쓸려 직원들이 밭을 경작하느라 관리가 소홀해진 탓에 훼손이 심해졌다니 문화대혁명이 정말 문화와 역사에 몹쓸 짓을 한게 맞는 것 같네요. 그리고 최초 발견자들과 관계자들 후일담도 소개되는데 첫 발견자인 '당나귀'는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아내의 외도를 보고 자살했으며, 한묘도 지금은 고층빌딩이 들어섰고 이후 죽간 소유권을 놓고  벌인 추잡한 암투가 벌어졌다니 이것도 무슨 저주 비스무레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하기사 발굴이라고 해 봤자 멀쩡한 묘를 대놓고 터는 것이니 좋은 결과일리 없겠지요.

이렇게 방대한 분량에 이런저런 이야기로 꽉 채워져 있기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만 "부활하는 군단"이나 "마왕퇴의 귀부인"에 비하면 유물과 역사적 사실에 대한 도판이 극도로 부족, 부실하고 잘 알고 있는 열국지 내용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현대에 이르러 별 관심 없는 중국 지방 행정부의 관광 수익을 노린 이권다툼이 많이 소개되는건 좀 아쉬웠습입니다. 다른 곳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역사편과 쓸데없는 지방 행정부 이야기를 덜어내는게 훨씬 좋았을 것 같네요. 핵심인 은작산 출토 "손자병법"의 발굴 과정과 이로 인해 밝혀진 새로운 사실들 중심으로만 소개하는 식으로요.  물론 저자의 허락없는 제멋대로의 편집은 안될 말이겠지만요.

하여튼, 별점은 2.5점입니다. "손자병법"과 춘추 전국 시대(중에서도 춘추 시대?)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한 번 쯤 볼만합니다. 허나 그렇지 않다면 딱히 권해드리기는 어렵습니다. 불필요한 내용도 많은 편이고요. 가격도 상당한 만큼 구입하실 것이라면 신중을 기하시기 바랍니다.

2024/08/24

식탁 위의 중국사 - 장징 / 장은주 : 별점 2.5점

식탁 위의 중국사 - 6점
장징 지음, 장은주 옮김/현대지성

제목만 보면 여러가지 중국 요리를 통해 중국사의 단편을 엿보게 해 주는 미시사 서적같은데, 읽어보니 생각과는 살짝 달랐습니다. 여러가지 요리에 대해 그 기원과 발전 과정을 다양한 사료를 바탕으로 설명해 주는 형식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생각대로 당시 시대상과 역사를 엿볼 수 있기도 합니다. 탄탄한 사료 기반 설명들 덕분입니다. 대표적인게 개고기에 대한 설명입니다. 중국 요리에 대해서는 "다리 4개 달린 건 책상과 의자 빼고 다 먹고 다리 둘 달린 건 사람빼고 다 먹으며 하늘의 전투기, 땅위의 탱크, 바닷속의 잠수함 빼고 다 먹는다."라는 말이 널리 알려져있을 정도로 온갖 식재료를 먹기 때문에 개고기도 식용으로 널리 퍼졌으리라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요. 오래 전에는 가장 많이 사육한 가축이자 춘추전국 시대에는 제사에 쓰였고, 심지어 유방의 부하 번쾌는 구도(개잡이)였을 정도로 널리 먹었지만 현재는 알려진 조리법이 극단적으로 적을 정도로 먹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책에서는 북방 유목민이 개를 좋아했는데, 북망 유목민 세력이 강해지면서 서서히 개고기 식용 습관이 쇠퇴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육조시대 때부터 '개를 먹으면 벌이 내린다'는 동물관, 식습관이 등장했고 이후 당대, 송대에 지속적으로 쇠퇴하다가 유목민 왕조인 원대에는 심지어 개고기가 몸에 나쁘다는 이론마저 득세하여 개고기 식용 습관을 거의 끝장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후 명대 기록에 따르면 개고기는 천한 사람들만 먹는 음식으로 전락했다네요. 세력의 변화에 따라 식문화마저 변해버린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돼지고기 인기가 떨어지고 양고기 인기가 높아진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흉노족의 남하, 그리고 거란의 요나라 세력이 중원에 미친게 원인이니까요. 거란족은 평소에 양고기를 많이 먹고 제사에도 사용할 정도라, 이 식문화가 중원에 전파된 것이지요.
원래 중국인들은 알곡을 먹었는데, 밀가루를 먹게된건 한대. 장건의 서역 방문으로 전래된게 아닐까라는 추측도 그럴싸 했습니다. 마르코폴로에 의해 국수 문화가 이탈리아에 전파되어 스파게티가 되었다는 설과 왠지 비슷하네요. 물론 이 설은 정설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속설로 널리 퍼진건 그만큼 설득력이 있기 때문인데 장건 서역방문설도 설득력 측면에서는 뒤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특정 요리로 주요 세력이나 외교를 엿볼 수도 있고, 고대에 회가 많았던 이유에 대한 설명처럼 당시 시대 상황을 요리로 알려주는 부분도 있습니다. 음식을 가열하려면 손이 많이 갔으며, 고대에는 그릇도 전부 도기라서 찌거나 조리는 조리법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도기는 열 전도율이 낮아 가열하는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생식을 많이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즉, 고대에는 '에너지'를 잘 쓰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는 겁니다(당연하지만요).

요리와 음식, 재료별 사료를 통한 여러가지 에피소드들도 재미있습니다. 몇가지를 소개해드리자면,
'노나라 애공은 공자에게 복숭아, 기장법을 먹도록 권했다. 공자는 먼저 기장밥을 먹고 그 다음 복숭아를 먹었다. 그 모습을 본 일동은 모두 입을 가리고 웃었다. 기장밥은 먹는게 아니라 복숭아털을 벗기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공자는 "기장은 오곡 중 가장 으뜸이라 조상의 제사를 모실 때도 최상의 제물로 쓰입니다. 하지만 복숭아는 여섯 가지 나무 열매 중 가장 아래에 있습니다. 군자는 천한 물건으로 귀한 물건을 벗길 수는 있으나, 그 반대는 할 수 없습니다." 라고 했다.' 공자의 말주변을 잘 알 수 있는 고사네요. 그런데 기장 밥으로 복숭아 껍질을 어떻게 벗기는 것일까요? 궁금합니다.
 
완탕과 교자의 차이도 재미있었습니다. 우선 교자피는 둥글고 완탕피는 사다리꼴입니다. 물교자는 삶아서 그대로 접시에 담아 먹지만, 완탕은 간을 한 국물에 넣어 먹고요. 완탕은 피에 간수를 넣지만 교자는 소금을 넣습니다. 마지막으로, 교자는 소를 넣고 피를 붙이지만 완탕은 먼저 붙이고 비튼다는데, 이 마지막 차이점은 그림으로 설명해주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먹어본 완탕은 피에 소를 넣고 붙이는 방식은 똑같았는데 말이지요.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제갈공명의 만두 기원설은 속설이라고 합니다. 현재 가장 오래된 교자는 당대 발굴된 것으로, 투루판 지역에서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사료들에 등장하는 '혼돈'은 완탕으로 알려져 있지만 원대 문서에 나온 조리법을 보면 교자라고 하고요. 의외로 군교자(군만두)는 비교적 최근 음식입니다. 남송 중궤록에 언급되어있다고 합니다.

상어 지느러미는 연골 부위로 아무 맛도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급 요리가 된 건 질 좋은 육수로 걸쭉함을 더해 육수의 진한 맛이 연골에 스며들고 지느러미 사이에 배게하여 만들어낸 농후한 맛과 독특한 혀의 감촉 때문입니다. 젤라틴같은 매끄러움과 야들야들함에,삶아도 남아있는 연골 탄력을 통해 환상적 식감을 제공하지요. 그러나 의외로 역사는 400년 남짓 밖에 되지 않았고, 전국에 퍼져 진미로 극찬받은건 청나라 중기로 겨우 300년 전이라고 합니다. 요리법이 고도로 발달해야 하는 요리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합니다.
역사가 짧은건 북경오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북경오리의 원형은 오래되어야 남송 시기이며, 재료인 진압이라는 품종 사육도 명대에나 시작되었습니다. 지금과 같은 북경오리를 만든 원조집 편선방은 1869년 개점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북경오리점 전취덕은 1901년 개업했고요. 흔하디 흔해서 오래되었을 것 같은 피단도 명 말기에나 등장했습니다. 사료에 따르면 피단의 식용 역사는 고작 300여년 전에 그친다고 하네요.

이외에도 젓가락 사용에 대한 역사적인 흐름이라던가 - 춘추전국시대만 해도 밥을 먹을 때 젓가락을 쓰지 않았다. 음식을 집을 때만 젓가락을 사용했다. 국도 채소가 든 것은 젓가락으로 먹지만, 들어 있지 않은 것은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예기"에 쓰여 있다. - , 원래 다양한 요리법이 있었지만 '볶음'요리가 중화 요리의 대세가 된 조리법의 흐름과 같이 재미있는 주제가 가득합니다.

그러나 목차가 연대순이 아니고, 설명도 두서가 없는게 많은건 아쉽습니다. 이렇게 쓸 바에야 그냥 "중국요리 백과사전"처럼 특정 요리에 집중해서 설명해주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도판이 거의 전무하다는 단점도 크고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18/09/22

모략의 기술 - 장스완 / 유아이북스 : 별점 3점

모략의 기술 - 6점
장스완 지음/유아이북스

춘추 전국 시대 처세의 달인이었다는 귀곡자의 '모략' 을 현대 사회에 응용 및 적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처세술 - 자기 계발 서적입니다. 귀곡자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솔직히 전혀 몰랐지만, '모략' 이라는 제목이 왠지 모르게 와 닿아서 구입했습니다. 조금 찾아보니 그의 저서는 유세가들을 위한 처세를 다룬 책으로, 덕분에 당대에는 희대의 소인배라고까지 불리웠다네요. 그런데 이 정도 처세의 달인이 혼란했던 춘추 전국 시대 당시 한자리 차지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조금 신뢰가 떨어지는군요.

하여튼, 책은 "1부 귀곡자와 생존 전략" 아래 총 네 장의 소주제, 그리고 "2부 귀곡자 핵심 구절 강설"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의 분량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특정 상황에 대한 중국 역사 속 실재 사례와 그 상황에 대한 귀곡자의 글을 연결시키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고요.

하지만 1부 1장 '처세의 기술'과 2장 '현명한 조직 관리'의 경우는 그럴싸한 소주제와는 다르게 귀곡자의 말에 상황을 억지로 가져다 붙인 이야기가 많아서 실망스럽습니다. 송나라 군대가 금나라 군대 몰래 후퇴하는데 성공했던 필재우의 작전 사례에 '일의 변화가 심하여 어떻게 돌아갈지를 잘 알지 못할 때는 물러나 자신의 몸을 안전하게 하는 것이 큰 도리다." 라는 말을 연결시키는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필재우의 작전은 후퇴하여 후일을 도모하겠다는 결심이 중요한게 아니라서 전혀 맥락이 맞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다행히 '3장 기업 경쟁령 높이기'부터는 읽을만 합니다. 실제 사례와 귀곡자의 말의 연결도 매끄럽고, 정말 현재 상황에 어울리는 내용이 많기 때문입니다. 미국 쉐보레 자동차 회사의 세일즈맨 윌리엄의 부동산 구매 일화를 통해 '판매는 남의 비위만 맞추는게 아니라 세심히 관찰해 사용자가 원하는걸 알아내는게 더욱 중요하다'는 비결을 이끌어내고, 연이어 '칭찬으로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하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사용해야 한다.'는 귀곡자의 말을 설명해 주는 것 처럼요. 쉐보레 외에도 아마존의 사례가 등장하는 등 친숙한 주제가 많은 것도 마음에 듭니다. 그 외에도 '욕쟁이 할머니' 같은 마케팅 비법도 고객 중심 경영의 하나로 이는 귀곡자의 '깊은 곳을 헤아려 속사정을 파악한다' 는 말과 같은 이치라던가, 일본 대표 세일즈맨 하이라치헤이의 일화를 통해 상대방에게 자기 말을 듣게 하려면 같은 부류, 같은 욕망을 가지고 말해야 한다는 등 재미난 이야기가 많습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제 때에 균열을 미리 차단하기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 성실과 신용이 중요하다, 부자가 되려면 타이밍을 잘 잡아야 한다는 등 당연한 이야기들이 많은 건 아쉽지만, 그래도 옛 지식이 아직도 통용될만한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는 여러모로 반가웠어요.

다음에 이어지는 '4장 직장에서 살아남기'는 유용한 정보가 가득한 이 책의 하일라이트입니다. 소주제 명칭부터 아주아주 마음에 들어요. 우리네 평범한 직장인의 처세라면 직장에서 살아남는 정도가 고작일테니까요. 여기서 몇가지 귀곡자의 비결을 알려드리자면, 라이벌인 동료가 있다면 그에게 뭔가 부탁을 하던가 최소한 한번 쯤 그를 칭찬해보라는군요. 적보다는 친구가 생기는게 낫다는 논리입니다.
또 어떤 사람을 이해하려면 그가 한 말이 아니라 말하지 않은 말을 들어야 하고, 누군가에게는 3할만 말해야 한다는 등의 화법 관련 이야기는 모두 새겨들을만 합니다.
사내에서 내 진급 문제로 논의 중인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남들보다 한 발 앞서 기회를 잡고 과감하게 결단해야 한다는군요. 어차피 인간 세계는 모두 경쟁이니 모략을 이용해서라도 자리를 쟁취해야 하기 때문이랍니다. 아.. 정말 놀라운 식견입니다.
또 조직 관리를 위해서 엄격한 상벌은 필수라는 것도 굉장히 와 닿았던 부분이에요. 특히 벌의 목적은 교육이지 처벌이 아니며, 이는 투명하게 적용되고 공개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무릎을 치게 만드네요. 

2부 "핵심 구절 강설" 은 처세의 달인 귀곡자의 엑기스만 정리한 60여 페이지 정도의 짤막한 내용으로 부록에 가까운데, 워낙 핵심 정보들이라 이 부분만 따로 정리하여 소개드리고 싶을 정도로 유용한 내용이었고요.

모든 내용이 재미있거나 가치가 있지는 않고, 책을 읽는다고 직장에서의 출세나 생존을 보장하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이천년도 더 전 인물이 한 말이 현대에도 조금이나마 통용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는 의의가 컸던 독서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결국 사람 사는 이치는 별로 달라진게 없다는 뜻이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역사나 처세술 관련 서적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실 만 합니다.

2014/10/20

삼국지가 울고 있네 - 리동혁 : 별점 2.5점

삼국지가 울고 있네 - 6점
리동혁 지음/금토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갑작스러운 해외 출장으로 한 주 정도 블로깅을 쉬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소개해드릴 책은 삼국지 관련 서적입니다. 중국 동포 출신 작가가 이문열의 삼국지를 읽고 오류가 너무 많다 느껴 이를 지적하기 위해 썼다고 하네요. 한자를 잘못 본 번역 오류는 물론, 당대 역사에 대한 잘못된 이해까지 포함해 깨알같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이문열 삼국지에 얼마나 많은 오역과 오류가 있었는지를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하나하나 다 들기도 어려울 정도인데요, 물론 이야기의 큰 줄기를 바꾸는 오류는 아니지만, 유비가 조조와 술자리를 가지다가 천둥이 치는 것을 겁내는 장면처럼 원작자의 의도가 무시된 부분은 심각한 각색이자 오역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기억에 남는 오역, 류를 몇 가지 꼽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장수들이 "창을 끼고" 달려 나간다는 표현은 원래 "꼬나쥐다" 또는 "들다"가 맞고, "대도를 찬다"는 표현도 틀렸습니다. 고대의 다다오(대도)는 자루가 긴 언월도 형태로, 허리에 찰 수 없는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원술이 겨드랑이에 두 벌의 보검을 걸고 있었다는 표현 역시 오류이고요. "손을 어루만지며 크게 웃다"라는 표현도 현대어로는 자연스러울 수 있지만, 고대에서는 "손을 두드리다"라는 뜻이라 "손뼉을 치며 크게 웃다"가 정확한 번역이라고 합니다. 코미디에 가까운 오역도 있습니다. 춘추전국시대의 자객 예양을 "예"와 "양"이라는 지명으로 잘못 번역했다든지, "하늘이 가죽띠에 그 뜻을 밝혀 무왕이 주를 치게 했다"는 문장은 사실상 "혁명"이라는 단어를 잘못 해석한 결과라고 합니다.

비슷한 글자를 오독한 경우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뜻하는 "훠"라는 글자를 순욱의 이름인 "위"로 착각한 것, 손책을 "주둥이 노란 어린놈"으로 번역한 것도 오역인데, 황구(黃口)는 단순히 "어린아이"를 의미한다고 하네요. "카이"라는 말은 갑옷을 뜻하는데, 작품에서는 계속 투구로 묘사되었다고 하고요. 또 "물이 쏟아지고 흙이 밀려오듯 적군이 덮쳐 와야 맞서겠다는 뜻입니까?"라는 하후돈의 말도 잘못된 번역으로, 실제 의미는 "물이 밀려오면 흙으로 막고, 장수가 오면 군사로 막는다"는 말입니다. 그야말로 적군이 오니 맞서 싸우자는 의미죠. 산과 관련된 표현도 너무 어이가 없어서, 저자의 말처럼 실제 전투 상황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문열 삼국지의 오역과 오류 지적 외에도 이 책은 다양한 조사와 고증을 통해 당대 무기나 진법, 역사적 상황 등에 대한 정보를 상세히 알려줍니다. 예를 들어 장팔사모가 뱀 모양이라는 주장은 허구일 가능성이 높고, 실제로는 "삭모"라는 말에서 유래된 긴 창일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도 흥미로웠습니다.
무게 단위 관련해서는 후한 시대의 1근이 지금의 약 500g이 아닌, 222.73g 정도였다는 정보가 대표적입니다. 정사에서 유일하게 언급된 전위의 쌍철극이 80근이라고 하니, 약 18kg 정도로 장사라면 들 수 있는 무게였겠죠.
신체 치수도 당대 척도의 차이에 따라 정리되어 있습니다. 춘추전국시대 1자는 약 19.91cm라 공자의 키는 약 191cm, 후한 시대의 1자는 약 23~24cm로, 제갈량의 키는 184~196cm로 추정되며 관우의 경우 정사에는 키에 대한 기록이 없다고 합니다. 

조운의 활약도 당대 사료들을 바탕으로 보면 과장된 측면이 많았다고 설명하고, 조조가 언제부터 악의 화신이 되었는지, 관우가 언제부터 신으로 떠받들어졌는지 등에 대한 탐구도 흥미롭습니다. 특히 촉나라 인물들이 유독 미화된 이유로, 촉은 사관이 없었던 반면 위나 오에는 사료가 남아 있어 인물들의 전설화가 어려웠다는 분석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초한지 인물과 삼국지 인물을 연결한 전설도 흥미로웠는데, 명나라 후기 소설집 "유세명언"에 실린 내용에 따르면 초한지의 인물들이 삼국지 속 인물로 환생한 배경이 꽤 논리적으로 설명되더군요.

중국 역사를 인용한 실제 사례들도 흥미로웠습니다. 예를 들어 모택동이 실제 공성계를 실행에 옮겼다는 이야기나, 항일전쟁 시기 허베이성 민병들이 금속 조각을 구하기 위해 가짜 목표를 설치해 일본군의 총포 사격을 유도하고 파편을 회수한 일화는 "풀 실은 배로 화살을 얻다"는 고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또, 유비의 관상을 설명하며 1970년대 말 백전풍을 앓던 한 농민이 황제를 자칭하면서 자신의 몸에 있는 흰 점을 근거로 들었던 이야기도 전해지는데, 결국 그는 체포되어 총살당했다고 하네요. 그 외 흥미로운 이야기로는 제갈량과 같은 사주팔자가 1981년 8월 3일 12시~14시 사이에 태어난 사람과 동일하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말은, 중국인들은 삼국지를 인생 지침서나 성전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삼국지를 한 번도 읽지 않은 사람과는 대화를 하지 말라"는 말은 실제로는 허구이며, 광고 문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이문열 삼국지에 대한 오류 증명이 중심이라 피식 웃게 되는 재미 외에는 큰 깊이는 없지만, 삼국지 팬이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국내에서 이문열 삼국지가 정본처럼 여겨지는 현실에서는 더더욱 의미 있는 작업일 수도 있겠죠. 이 책이 조금이나마 영향력을 발휘해, 지적된 오류들이 수정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물론 제가 다시 이문열 삼국지를 읽을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만.

2018/04/08

술상 위의 중국 - 고광석 : 별점 2.5점

술상 위의 중국 - 6점
고광석 지음/섬앤섬

"중화요리에 담긴 중국" 이라는 책으로 음식과 관련된 중국 문화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알려주었던 고광석 작가가 "" 을 주제로 삼아 쓴 후속작입니다. 전작을 재미있게 읽었기에 구입하여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내용은 현재 판매되는 중국 현대 술을 망라하여 소개하는 '제 1부 중국의 술', 그리고 술과 관련된 다양한 고사와 일화를 소개해주는 '제 2부 술이 빚어낸 역사', 마지막으로 다양한 안주와 주법, 조리법 등을 소개하는 '제 3부 안주와 주법' 이라는 세 부분으로 크게 구분됩니다. 1, 3 부는 각각 100 페이지, 60 페이지 정도의 분량으로 총 340여 페이지의 절반 이상이 제 2부에 속해 있고요.

우선 풀 컬러로 도판과 함께 현대 중국 술을 잘 요약하여 소개하는 1부는 아주 근사합니다. 황주와 백주, 노주 등 종류별 구분 및 각각 상세한 유래 설명도 재미있고, 맛과 향기 등은 저자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기록하고 있어서 굉장히 생생한 덕분입니다. 수십 종의 술들이 소개되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건 '마오타이주'의 유래입니다. 저는 그냥 모택동을 위해 만든 술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더군요. 원래부터 귀주 지역에 있던 향토주로 대장정 직전, 홍군이 귀주에 머물며 향토주를 마시며 혁명 의지를 불태웠던 이후 국가 연회용 술로 지정되어 현재에 이르렀다고 하네요. 이름도 모택동에서 따온게 아니라 '모태진'이라는 마을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고요.
반대로 '수정방'은 유명세와는 다르게 비교적 최근인 1998년 수정가 양조 시설 발굴 후 개발된 현대 술이며, '공부가주' 역시 공자 집안과 관계가 없는 현대 술이라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아, 이래서 공부가 필요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현대 술 말고 이 책에서 소개된 전통주를 더 찾아 마셔봐야겠네요.

그러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2부의 내용은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옛 고사에서 술이 등장한걸 무작위로 가져다 쓴 탓입니다. 술이 무엇인지, 안주로는 무엇을 먹었는지는 중요하게 소개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술과는 거의 상관이 없는 이야기까지 소개될 정도에요.
자객 예양이 주군의 복수를 위해 조양자를 죽이려하다 잡힌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술과 관련된 부분은 조양자가 예양의 주군 지백의 두개골을 술잔으로 썼다는 언급이 전부거든요. 이게 술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네요. 그 외의 이야기들도 춘추, 전국 시대와 삼국 시대, 한나라까지는 대부분 잘 알려진 일화들이며, 역시 술이 중요한 이야기들은 거의 없어서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워낙 분량이 많은 탓에 아예 건질게 없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자면 "술 배는 따로 있다" 라는 말은 오대십국 시절 대주가였던 주유약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작은 몸집의 그가 어떻게 술을 많이 마실 수 있는지 왕이 묻자, "술을 위해서 몸 안에 장이 따로 있다" 고 답했던게 유래입니다.
근대로 넘어온 이후의 이야기들도 비교적 새롭고 재미있었습니다. "열국지", "삼국지", "초한지" 등 유명 고전을 벗어난 시점은 잘 모르는 저에게는 중국 근, 현대는 그야말로 미지의 영역이니까요. 마오타이주를 국빈용 술로 정한 주은래를 소개하면서, 그는 굉장히 꼼꼼하고 확실한 성격이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일화들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아마도'라는 모호한 표현을 싫어했다는데 많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군 사령관 허세우를 술로 제압하고 주도에 대해 훈계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고요. 참고로 이 허세우는 소림사 출신으로 실제 무술 고수였다는데 좀 찾아봐야겠다 싶을 정도로 독특했습니다.
또 두보와 이백 등 술을 좋아했던 유명 인사들의 소개와 그들이 술을 마시고 술에 대해 쓴 시들도 좋습니다. 워낙 멋드러진 시들이니 당연하겠지요? 개인적인 베스트는 왕안석과 그의 친구 정협 사이에 오간 글입니다. "술이 임자를 만나면 천 잔도 적고, 뜻이 맞지 않으면 반 마디도 많다"는데, 지금 읽어도 확실한 울림을 주는 멋진 글이에요.
아울러 제가 원했던, 술과 관련된 시시콜콜한 역사 속 잡학도 소개되고 있습니다. 두보가 이백을 기려 지은 시 중 '이백은 한 말의 술이면 시 백수를 짓는다' 고 읆었는데 이 한 말이 바로 두주 (斗酒)입니다. 우리도 흔히 쓰는 '두주불사' 의 두주와 같은 말이지요. 한 말, 두주는 열 되와 같은데, 주나라 때는 2리터였지만 당나라 때는 6리터, 청나라 때는 10리터가 되는 등 시대에 따라 변화된 단위입니다. 이백의 주량은 당나라 기준으로 술 6리터, 돗수가 약한 소흥주를 마셨다 쳐도 어마어마합니다. 일찍 죽은게 이해가 됩니다.

마지막 3부는 그냥 유명한 안주거리, 음식 소개와 여러 요리에 쓰이는 한자어 소개로 재미가 없지는 않지만 부록같은 느낌입니다. 한자어 부분만 잘 기억해 두면 중국 여행갔을 때 유용하겠다 싶은 정도에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읽는 재미가 아주 없지는 않고 나름 건질만한 부분도 있습니다. 다만 '술상 위의 중국' 운운하며 술과 관련된 중국 역사와 문화를 논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습니다. 이런 점에서는 분명 기대 이하고요. 술이나 안주의 정체가 명확하고, 정말로 술이 큰 역할을 한 이야기에 집중해서 더 자세하게 풀어내는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중국 술과 요리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한번 쯤 읽어보셔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 18,000원이라는 가격은 과한 감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004/12/11

부활하는 군단 1,2 - 웨난 / 유소영 외 : 별점 4점

부활하는 군단 1 - 8점
웨난 지음, 유소영 외 옮김/일빛
부활하는 군단 2 - 8점
웨난 지음, 유소영 외 옮김/일빛

"진시황이 즉위하여 여산에 치산 공사를 벌였다... 지하수를 세번 지날 만큼 땅을 깊이 파고, 녹인 구리를 부어 "곽"에 이르게 했다... 장인들로 하여금 자동으로 발사되는 기계 장치가 된 쇠뇌를 만들게 하여 접근하는 자가 있으면 즉시 발사되도록 했다. 수은으로 온갖 하천과 강, 바다를 만들고, 기계를 이용해 수은이 흐르게 했다. 인어 기름으로 초를 만들어 영원히 꺼지지 않게 했다... (사마천, 사기)"

중국의 최초의 진정한 황제라 할 수 있는건 시황제죠. 이 책은 진시황의 병마용갱을 발굴하며 얻어진 고고학적 성과를 자세히 고찰하면서도 당시 시대상황과 중국 고고학계에 던지는 메시지까지 담겨있는 저서입니다.
2권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1권은 병마용갱의 발견과 발굴에 이르는 숨가쁜 상황과 발견된 유물들을 자세히 분석하는 것이 주 내용입니다. 각종 사료들, 발굴된 유물에서 유추한 당시 무기들과 군대 편제, 진법, 그리고 춘추 전국 시대와 진 왕조의 사회 구조와 법령 등 역사적 사실까지 고찰하고 유사 유물들과의 비교를 통한 해석을 덧붙여 책의 충실도를 높이고 있죠.

2권은 병마용갱의 또 다른 대 발견이었던 "동거마" 발굴에 관련된 일화와 동마에 관한 자세한 고고학적 연구 및 고찰이 전반부의 주요 내용입니다. 1권에 못지 않을 정도로 자료적 가치가 상당합니다.
중반부에는 병마용을 찾아왔던 각국 유명인사들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으며 (레이건과 닉슨 등), 후반부에는 2번에 걸쳐 발생했던 "장군용두"도난 사건과 도난 사건에 연루되었던 관계자들의 증언, 그리고 도굴과 문화재 밀반출이 심할 뿐 아니라 기껏 발굴한 유물도 도난과 관리 소홀로 인한 문제점 등의 중국 고고학의 현실과 병마용의 현실도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도굴및 유물 보존에 대한 문제점은 유흥준 교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지적한대로 국내에도 거의 비슷하게 적용될 것 같지만 하나 부러운 것은 용두 도난사건의 범인들에게 이례없는 중형 (사형, 무기징역 등) 을 선고한 중국 정부의 태도입니다. 너무 가혹하지 않나 싶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중형은 꼭 필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진시황릉 지하궁에 대한 각종 사료 조사 및 향후 발굴 계획 등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며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항우가 진시황릉을 불태우고 유물을 약탈한 등 여태까지의 사료에서 밝힌 도굴에 관한 것이 역사적, 과학적으로 볼때 거의 신빙성이 없다고 단정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아직 발굴 계획은 없다고는 하나 사료적으로 밝혀진 여러 내용만으로도 지하궁에 대한 기대를 높여줍니다.

비록 2권 중반부의 방문한 사람들에 대한 묘사나 도굴에 대해 지나치게 길게 서술한 점, 너무 공산당 정부측 입장을 대변하는 것 처럼 보이는 후반 묘사는 분명 거슬리고 불필요한 부분이며 권당 12,800원이라는 가격도 부담되는건 사실이에요.

허나 역사와 고고학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충분히 그만한 가치를 가진 책입니다. 무엇보다도 고고학-역사 관련 서적이 그다지 많지 않은 국내 현실에서 거의 독보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세한 도판과 해설이 곁들여져 지적 만족감을 충실하게 해 준다는 것 만큼으로도 높은 점수를 줄 만 하죠. 저자의 문장력도 상당한 편이라 읽는 내내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재미까지 주기도하고요. 때문에 별점은 4점입니다.

이런 책만 출판해도 출판사가 버틸 수 있는 문화적 풍토가 국내에 조성되기 위해서라도 저자의 다른 책 "마왕퇴의 귀부인"도 구입해 봐야 겠습니다.

2016/02/03

음식으로 읽는 한국 생활사 - 윤덕노 : 별점 2.5점

윤덕노 씨의 음식 문화사 책으로 저자의 구작들과 비교해 볼 때 보다 역사에 기반한 이야기가 많다는 것이 차이점입니다.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사료들을 통해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일단, 저자의 박식함에는 경탄을 금할 수가 없네요. "주례"와 같이 유명 서적도 있지만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다양한 책들, 예를 들면 고종 때 영의정을 지냈다는 임유원의 "임하필기" 등을 인용하는 식이니까요. 우리나라와 중국 고문서 중 음식 관련 이야기만 쉽게 검색할 수 있는 저자만의 DB가 있는 것일까요? 여튼, 덕분에 자료적인 가치는 빼어납니다.

하지만 저자의 구작들 대비 재미는 조금 처집니다. 이야기가 딱딱하고 그냥 '음식'에 대한 이야기들인 탓입니다. 이전 저서들은 음식 관련 '잡학'에 가까웠다면 이 책은 '미시사' 서적에 가깝다는 형식적인 부분도 지루함에 한 몫하고요.

게다가 마지막 페이지에 수록된 한성 김치 광고는 정말 깼습니다. 돈 주고 산 독자를 모독하는 거나 다름없어요. 이게 한두 푼짜리 책도 아니고 왜 독자가 광고지가 포함된 책을 돈 주고 사서 봐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네요. 비록 한 장밖에는 안 되지만 충분히 감점 요소입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음식의 가짓수를 줄이고 조금 더 사료적인 것을 보강하던가, 아니면 단순히 사료 기반이 아니라 조금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추가했더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

덧붙여, 무려 100개나 되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기에 마음에 들었던 이야기를 요약하기도 쉽지 않습니다만, 몇 가지 기억에 남는건 아래와 같습니다.

배춧국. 북촌 양반의 가을 별미

예전 무교동의 배춧국은 청진동 선짓국 못지않게 서울의 한량들에게 해장국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중 유명했던 것이 일제강점기에 나온 "해동죽지"라는 책에서 조선 팔도의 별미 중 하나로 꼽은 효종갱이라는 배춧국이다. 지금은 낯선 이름이 된 이 배춧국은 경기도 광주의 남한산성 아랫마을에서 하루 종일 배춧국을 끓여 항아리에 담아서 밤새 한양으로 올려 보내면 새벽종이 울릴 무렵 북촌의 양반집에 도착하였다고 해서 "새벽종이 울릴 때 먹는 국"이라는 뜻의 효종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해동죽지"에 있는 설명대로의 재료와 레시피는 '배추속대인 노란 고갱이를 주재료로 콩나물, 송이버섯, 표고버섯, 소갈비, 양지머리, 해삼과 전복을 넣고 토장을 풀어 하루 종일 끓인다.'

보신탕. 한국인은 왜 보신탕을 먹을까?

가장 큰 이유는 고대에는 개고기가 좋은 식품이었기 때문이다. 춘추전국시대 왕과 귀족의 어록을 모아 놓은 "국어"에 따르면 월나라 왕 구천이 오나라에 복수하려고 군사력을 키우면서 백성들에게 출산을 장려하였다. 남자아이는 술 두 병에 개고기를, 여자아이는 술 두 병에 돼지고기를 출산 장려금으로 지급하였다. 돼지고기보다 개고기를 더 귀하게 여겼다는 증거이다. 주나라 때 예법을 적은 "주례"에도 개고기가 말, 소, 양, 돼지, 닭과 함께 제왕이 먹는 여섯 가지 고기 중의 하나로 포함돼 있다.

생태찌개. 장작더미보다 흔했던 명태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임유원의 "임하필기"라는 문집에는 "함경도 원산을 지나다 명태 쌓여 있는 것을 보았는데 마치 한강에 땔나무를 쌓아놓은 것처럼 많아서 그 숫자를 헤아릴 수조차 없다"고 적었다. 허나 지금은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예전처럼 찾아보기는 어렵다. 마침 이유원의 "임하필기"에 민정중이라는 사람이 "지금은 명태가 땔나무처럼 많지만 300년 후에는 이 생선이 지금보다 귀해질 것"이라고 예견했다는 기록이 있다. 민정중은 숙종 때 좌의정을 지낸 인물로 1692년에 사망했으니 그의 예언이 맞은 셈. 신기하다.

준치. 준치를 맛보면 다른 생선은 모두 가짜

"썩어도 준치"의 준치. 준치의 한자 이름은 여럿이 있지만 그중 하나가 진짜 생선이라는 뜻의 "진어"로 맛으로 보면 준치만이 진짜 생선이라는 것이다, 다른 이름은 물고기 어 변에 때 시자를 쓰는 "시어"로 제철이 명확하기 때문에 생긴 이름. 맛이 좋은 데다 아무 때나 맛볼 수 없는 생선이니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시어를 고대의 산해진미인 팔진미 중 하나로 꼽았다. 산해진미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흔히 곰 발바닥, 낙타 등, 사슴 꼬리, 바다제비 집, 상어 지느러미, 시어를 꼽았다.

중국에서는 시어를 미녀에 빗대어 비유하기도 했다. 중국의 4대 미인은 양귀비, 서시, 초선, 왕소군을 꼽는데 시어는 바로 "물속의 서시"라고 한 것. 생김새가 아닌 맛을 기준으로 꼽은 것인데 황하에서 잡히는 잉어, 이수의 방어, 송강의 농어, 그리고 양자강의 시어다. 중국에서는 양자강의 시어를 최고라고 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한강의 시어를 가장 맛있다고 했다.

농어회. 역사상 가장 맛있는 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생선은 무엇일까? 동서고금을 통틀어 볼 때 아마 농어일 듯. 고향의 농어회가 먹고 싶다며 높은 벼슬마저 팽개치고 낙향을 한 사람 - 4세기 무렵 중국 진나라의 재상이던 장한 - 이 있는가 하면 온갖 진수성찬에 입맛이 길들여진 황제마저 농어를 먹고는 맛있다며 젓가락을 놓지 못했다고 하니 말이다.

그중에서도 최고는 금제옥회. 수나라 양제가 순시 여행 중 쑤저우 근처에서 먹은 요리. 금처럼 빛나는 양념장인 금제와 회로 뜬 농어의 살이 옥처럼 하얗다고 해서 옥회라고 부른 것에서 생긴 이름이다. 사실 수양제가 맛보기 이전부터 있던 요리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농업서인 "제민요술"에 금제라는 양념장을 만드는 법이 실려 있다.

금제는 여덟 가지 맛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뜻에서 팔화제라고도 하는데 마늘과 생강, 소금, 좁쌀, 멥쌀, 소금에 절인 백매(白梅)를 귤껍질과 함께 장에 버무려 만든다. 횟감이 없으면 쏘가리로 대신하는 것도 가능하다.

파김치. 왜 하필 '파김치가 됐다'고 했을까?

싱싱한 파는 꼿꼿하게 힘이 들어가 있고 다듬어 놓아도 빳빳한데 김치가 되면 축 늘어지기 때문. 고문헌을 찾아보면 늦어도 18세기에는 '파김치가 됐다'는 표현이 보인다. 정조 때 규장각 검서관을 지낸 실학자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 피곤한 모습을 파김치에 빗대어 묘사한 표현이 보인다. 18세기 초반까지 살았던 권상하의 문집 "한수재집"에도 파김치라는 표현이 수록되어 있다.

오이. 과년한 딸과 오이의 상관관계

'과년한 딸자식이 있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과過년'으로 나이가 들어 혼기를 놓쳤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과년(瓜年)한 딸'로 한창 나이, 결혼 적령기의 딸이라는 뜻이다. 과는 오이라는 한자인데 오이와 여자 나이가 무슨 관계가 있다고 과년을 결혼 적령기라고 한 것일까?

오이 '과'라는 한자의 가운데를 칼로 자르듯 반을 자르면 팔(八)과 팔(八)로 나누어진다. 여덟이 둘이니 더하면 열여섯이다. 그러니까 이팔청춘 열여섯 살이 바로 과년이다. 성춘향이 이도령과 사랑을 속삭인 때와 동일하다.

2023/03/25

삼성퇴의 청동문명 1, 2 - 웨난 / 심규호 : 별점 2점

삼성퇴의 청동문명 1 - 4점
웨난 지음, 심규호 외 옮김/일빛
삼성퇴의 청동문명 2 - 4점
웨난 지음, 심규호 외 옮김/일빛
중국 촉 지방에서 발견되어서 고대 문명 중 하나로 유명한 삼성퇴 문명의 발굴에 대한 이야기. 
고대 유물 발굴에 대한 괜찮은 논픽션을 많이 발표했던 웨난의 저작입니다. 제가 읽었었던 작가의 다른 논픽션들 모두 기본 이상은 했기에 이 책도 진작부터 읽고 싶었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절판된 탓에 구하지 못하다가 얼마 전에서야 읽게 되었네요.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드리자면, 무척이나 실망스러웠습니다. 이유는 제 기대와 많이 달랐던 탓이에요. 제가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삼성퇴 문명이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나라에서 누가 이 유물들을 남기게 되었는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두 권 분량의 책에 가득 담겨있을 것으로 기대했지요. 화려한 도판은 물론이고요. 
그런데 정작 책에는 삼성퇴의 문명 발굴에 대한 에피소드만 넘쳐날 뿐입니다. 게다가 그 설명도 무척이나 장황합니다. 처음 삼성퇴에서 의미있는 유물을 발굴했다는 연도성의 일화만 보아도 그러해요. 연도성이 청나라 시기 지방 관직을 맡았지만 이후 민국이 되면서 자리를 잃었다는 설명이 3~4페이지 씩이나 길게 이어질 필요가 있을까요? 이런 설명보다는 실제 발굴이 진행되었던 삼성퇴 지역에 대한 상세한 지도와 도판이 추가되는게 훨씬 나았을겁니다. 연도성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가 뭐가 중요하단 말입니까. 
이후 연씨 일가가 보물을 하나씩 풀면서 그 정보가 학계에 알려지는 과정, 2차 대전과 문화혁명을 거친 뒤 삼성퇴에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벽돌 공장이 세워져 유적 일대가 훼손되지만, 학계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결국 1호갱, 2호갱이라는 두 차례의 큰 발굴 성과를 내는 이야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너무 길어요. 저는 삼성퇴 문명의 수수께끼가 궁금했을 뿐, 이런 발굴 이야기가 궁금했던건 아닙니다. 성과 현에서 출토된 유물 소유권을 둘러싸고 싸우는 이야기는 반복이 지나쳐서 짜증이 날 정도였고요. 
물론 이런 발굴에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재미가 없던건 아닙니다. 길지만 않았더라면 좋았을거에요. 그나마 한가지 웃겼던건 성 고고연구소에서 현과의 협상을 위해 진덕안을 보낼 때 두 청장이 삼국지 고사를 인용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제갈량의 출사표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진덕안을 파견하여 삼성퇴에 주둔하도록 했고, 현에서 변화가 있을 때 그가 나가서 단기필마로 응대한다, 그 뒤 우리와 같은 대장군이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지원한다고 말하는데 이게 대체 뭔가 싶더라고요. 고고학 연구원들이라 이런 인용이 자연스러운건지, 아니면 중국인 특유의 허풍인지 감이 오지 않네요. 

이런 발굴 에피소드들 중심의 1권보다는 2권은 그래도 삼성퇴 문명에 대한 학술적인 설명이 많이 있어서 좀 낫기는 합니다. 
그런데 가장 현실적이고 이치에 맞는 이론을 엄선하여, 요약 설명해주는게 아니라, 여러가지 이론을 정제하지 않고 모두 수록하고 있어서 다소 복잡했습니다. 대충 제가 판단한 바로는, 고대 사천 지역에 여러 개의 부족 국가(마을)가 있었고, 이 마을의 왕들이 잠총, 백관, 어부, 두우, 개명 등이었던 걸로 보입니다. 즉 파국이 고대 기록에서처럼 수도가 사방으로 천도했던게 아니라 애초에 나라가 여러개 있었던 겁니다. 시초라 할 수 있는 잠총 부족은 이유가 무엇이었건 중원에서 남하하여 나라를 만들게 된 것이고요. 이후 두우 시기에 초나라에서 도망쳐 온 별령이 치수 기술을 활용하여 민심을 장악한 뒤 스스로 왕이 되어 개명 왕조를 열었다고 합니다. 이 왕조는 춘추전국 시대를 거치면서 진나라에 제압당하고 '촉군'이 되고 말았고요. 이후 청동기 문명이었던 촉도 철기 문명인 진나라에 융합된게 간략한 이 지역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삼성퇴의 1호갱, 2호갱에 보물들이 부장되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단순 묘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근거는 갱내 기물이 모두 불에 탔다는 사실이죠. 하지만 화장한 왕의 유골이 없다는 점에서 화장묘라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재사갱이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출토 유물이 모두 제사에 사용되는 기물이고, 불에 탔다는건 불을 이용한 제사에 사용되었다는 논리죠. 그런데 출토된 유물의 양이 너무 많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낮아요. 한 나라의 재력을 모두 모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유물들이라서, 제사에 한 번 쓰고 버리기는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삼성퇴 유적은 어부 왕조 당시 수도로 두우 왕의 공격으로 멸망할 때 마지막 제사를 벌이고 전멸한 흔적이다, 거대한 홍수 탓이었다는 등의 이론들이 발표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전쟁으로 전멸하고 남은 유산이라는 설이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고대 국가에서 승리한 국가가 망한 국가의 신묘에 있는 제사용 보기들을 훼손하여 묻어버리는건 충분히 있음직했으리라 생각되거든요. 이 책에서도 이른바 '망국 보기 매장갱' 과 '상서롭지 못한 보기 매장갱' 이라는 해석이 합리적일 것이라고 결론내리고 있고요. 
그리고 주요 출토 유물의 형태와 용도에 대한 설명, 다른 국가 유물들과의 관계 등에 대한 설명도 자세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래와 같은 특유의 안구 형태와 대담한 문양은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허나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나쁘지는 않은데 앞서 말씀드렸듯 기대와는 사뭇 달랐다는게 가장 큰 감점 요소입니다. 기이할 정도로 잡다한 주변 이야기가 많은 탓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웨난의 다른 책들과 다르게 독자에게 그리 친절하지도 않고요. 2권 내용을 보다 결론 중심적으로 요약 정리하고, 1권 내용은 에피소드 중 중요한 것만 짧게 인용하는 식으로 분량을 조절했더라면 훨씬 나았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