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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3

춤추는 술고래의 수학 이야기 -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 별점 2점

춤추는 술고래의 수학 이야기 - 4점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지음, 이덕환 옮김/까치글방

주로 확률에 대해 다루고 있는 수학 교양서입니다. 확률, 패턴과 관련된 중요한 인물, 발견을 시대순으로 배열한 역사서적인 측면도 있고요. 

딱딱하고 지루하지 않게 재미있는 사례나 누구나 흥미를 가질만한 이야기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합니다. 이 중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던 내용들을 몇 가지 소개해 드립니다.

요크셔의 면화공의 몬테카를로 대승부 이야기. 

당시에는 룰렛 기계 자체가 불균형해서 기계마다 나올 수 있는 숫자의 확률이 다르다는 것을 이용한 것이라고 합니다. 즉, 모든 숫자가 공평하게 1/37이 아니라 1/9의 확률이었다는 것인데, 기대이익을 한번 계산해 보고 싶네요.

측정과 오차의 법칙을 설명하면서 와인 평가에 대해 예를 든 부분.

한마디로 "신의 물방울은 구라다!" 라네요. 1990년의 실험 결과로는 전문가들도 감정의 성공률이 70%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하거든요. 어차피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감정 평가라 생각하기에 믿지도 않았지만, 예상보다도 성공률이 너무 낮아서 실망스럽더군요. 칸자키나 잇세도 별 거 아니군요.

푸앵카레가 제빵사의 범죄행위(?)를 알아차리게 된 계기.

케플러의 법칙입니다. 우연의 패턴은 신뢰할 수 있는 것이어서 그런 패턴에서 벗어나는 자료는 범죄의 증거가 되기도 한다는, 이른바 "범죄 경제학"을 다룬 이야기인데, 추리소설의 한 꼭지로 사용해도 괜찮겠더라고요.

우생학과 평균회귀의 원칙, 그리고 제목에도 사용된 춤추는 술고래의 패턴.

"과거의 성공은 미래의 성공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펀드매니저 분석법은 눈여겨볼 만했습니다.

다만, 이렇게 재미있는 주제들을 설명하는데도 불구하고 내용이 뭔가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하는건 아쉽습니다. 제가 수학 실력이 젬병인 탓도 있겠지만 좀 더 쉬운 표현으로 설명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지요. 특히 공식이나 수식 설명에서 부족함이 많이 느껴졌는데, 이건 명백히 번역의 문제라 생각됩니다.

좀 긴 호흡의 역사서적인 구성이기 때문에 단순히 비교는 어렵지만, 유사한 주제를 다루었던 "1% 확률의 마술"이나 "기회를 만드는 확률의 법칙"보다는   재미나 실용적인 측면 (도박?)은 약하지만 깊이는 더 있는 책입니다. 아무래도 저와 같은 수학음치에게는 재미가 더 중요한 요소이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만, 깊이가 있는 것은 확실하니 이쪽 분야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06/09/29

기회를 만드는 확률의 법칙 - 아미르 D 악젤 / 윤상운 : 별점 2.5점

삶을 살아가면서 뭔가를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그러한 경우 "감"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선택하는데 도움을 얻기 위해 우연히 서점에서 발견한 이 책을 구입해 읽게 되었습니다. 일단 표지에 혹했죠. "주식, 결혼, 도박을 둘러싼 확률에의 도전과 함정"이라는 카피가 너무나 근사해 보였거든요.

읽어보니 제목과 카피 그대로의 책입니다. 다양한 확률의 법칙을 정말 쉽게 풀어서 쓴 책으로 여러가지 사례를 적절하게 인용함으로써 보다 재미있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것 처럼 느끼게 만들어 주더군요. 예를 들면 카지노에서 항상 잃은돈의 2배수로 돈을 걸면 언젠가는 딴 다는 유명한 법칙이 있죠. 그러나 이 책을 읽어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예컨대 1달러를 걸어서 잃은 뒤 2달러를 다시 걸어서 4달러를 딴다고 치면 결국 배팅액은 3달러, 즉 딴 돈은 1달러밖에 안됩니다. 수가 늘어도 마찬가지죠. 즉 처음에 배팅한 금액 이상은 절대 따지 못한다는 이야기. 또 31명이 모였을 경우 그 중 적어도 2명의 생일이 똑같을 확률은 95%가 넘는다는 수학적 설명이라던가 불행이 일어날 확률을 수학적으로 설명하는 랜덤위크 그래프, 그리고 머피의 법칙을 설명하는 관찰 패러독스. 우연까지 풀어내는 확률의 법칙, 최고의 배우자를 찾는 가장 과학적인 방법 등 재미있는 사례를 확률적으로 풀어낸 흥미진진한 내용이 가득합니다.

제가 수학쪽은 원래 싫어했고 젬병이었지만 이야기 자체가 워낙 흥미로와서인지 쉽게,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두께나 내용에 비하면 가격은 좀 센편인 것이 좀 아쉽네요. 부록으로는 도박, 게임할 때 최고의 승률을 보장하는 방법이 실려있는데 이쪽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서점에서 뒷부분의 짤막한 부록만 참고하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물론 도박은 안 좋은 것이지만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4/07/05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 정재승 : 별점 3.5점

일상과 과학 이론을 연결하여 알기 쉽게 설명해 주는 책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수학에 관련된 책들과는 달리, 이 책은 수학은 물론, 작가의 전공 분야인 물리학에다가 심리학, 건축학 등 많은 분야를 포괄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예시와 쉬운 설명을 통해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게 해 준다는 특징도 있고요. 토스트를 떨어트렸을 때 버터를 바른 면이 바닥에 떨어지는건 토스트가 한 바퀴를 회전할 만큼 지구의 중력이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카운터에 줄을 섰을 때 다른 줄이 먼저 줄어드는 이유는 1/n이므로 어떤 줄을 선택하든 다른 줄 중 하나가 먼저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으로 머피의 범칙은 실제로 존재하며, 이건 재수의 문제가 아니라는걸 알려주는 식입니다.

지프의 법칙과 파레토의 법칙을 통해 실제 우리 생활에 멱법칙이 관련되어 있다는 이야기도 매우 흥미로왔습니다.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 효과를 얻으려는 인간 본성과도 관련이 있다는데 꽤 그럴듯했어요. '진부하다는건 남들도 많이 썼다는 뜻인데, 남들이 많이 썼다는건 그만큼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는 제가 일하는 바닥(?) 격언과도 일맥상통하는게 아닐까 싶네요.

추리 애호가로서는 O.J.심슨 사건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피해자 측이 평소 O.J. 심슨이 아내를 때리고 폭언을 일삼았다고 하자, 심슨의 변호사는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는 아내 중 남편에 의해 살해된 경우는 0.1퍼센트도 안된다는 통계를 바탕으로 심슨이 아내를 때린건 아내를 살해했을 가능성과 별 관계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심슨 사건에서는 실제로 아내가 죽었습니다. 매 맞던 아내가 죽었을 때 평소 그녀를 때리던 남편이 범인일 확률은 80%가 넘고요. 전형적인 오류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건축과 인간 심리를 연결하여 파헤친 쇼핑의 과학이라던가, 소음과 뇌파에 대한 이야기들 등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천장이 높은 건물에서 아이디어가 잘 나온다는 이론도 기억해 둘 만 하겠더라고요. 천장이 끝없이 높게 만들어진 오래전 교회 건축물에서 영적 체험이 잦은 이유도 비슷한 이유가 아닌가 싶네요. 

하지만 내용 모두가 이해하기 쉬웠던건 아니었으며,  몬티홀 문제, 잭슨 폴록의 그림은 그냥 물감을 뿌린게 아니라 정교한 자연의 패턴(카오스)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 크리스마스의 산타클로스 이야기 등은 다른 책들에서 많이 다뤄진 내용들이라는 점은 아쉬웠습니다. "왜 버스는 한꺼번에 오는걸까?"와 똑같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기도 하더군요.
그리고 프랙털 음악으로 히트곡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는 재미있었지만, QR코드를 활용하여 직접 샘플을 들을 수 있도록 해 주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장기간 사랑받는 베스트셀러인 이유는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유사한 다른 책들과 비교해도 그 수준이 결코 뒤쳐지지 않는데, 해외에 번역 출간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011/12/09

일상생활 속에 숨어있는 수학 - 사쿠라이 스스무 / 전선영 : 별점 2점

일상생활 속에 숨어있는 수학 - 4점
사쿠라이 스스무 지음, 전선영 옮김/살림Math

일상생활 속에서 무심히 지나가는 것들에서 수학적인 요소를 끄집어내어 소개한다는 취지의 교양서. 중고등학교 때 누구나 한 번쯤 궁금해했을 법한, 즉 "이걸 배워서 어디다 쓰지?"라는 질문에 대해 좋은 답이 될 수 있는 책입니다. 특히 앞부분의 삼각함수, 지수와 로그를 설명하는 부분이 그렇습니다. 사람의 감각 크기가 자극의 로그에 비례한다는 베버-페히너의 법칙 같은 새로운 이야기도 꽤 흥미로웠습니다.

또한, 다소 식상하긴 했지만 컴퓨터 관련 설명에 등장했던 2진법 전환에 대한 새로운 공식이나 컴퓨터 작동의 기본 원리는 상당히 잘 설명되어 있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공식을 조금만 더 빨리 알았더라면, 최근 모 작품 때문에 벌였던 삽질을 조금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뒤의 이야기들은 영 별로였습니다.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GPS 이야기는 그냥 그랬고, 컴퓨터의 2진법 관련 이론과 암호에 대한 내용도 다른 곳에서 많이 접했기 때문입니다. 황금비는 말할 필요도 없고요. 그나마 황금비 이야기와 함께 소개된 일본 특유의 백은비에 대한 이야기는 괜찮았지만, 이어지는 단위, 움직임과 미적분 항목도 그냥저냥이었으며, 맨 마지막의 "일상생활 속에 숨어있는 수학"이라는 주제는 초등학생을 상대로 숫자의 기원을 설명해주는 동화에 불과해서 화가 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이쪽 분야의 다른 책을 너무 많이 읽은 탓도 있겠지만, 재미와 지적 호기심 양쪽 측면에서 모두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중고등학생에게 더 적합한 책이라 생각되네요.

2004/04/09

MIT 수학천재들의 카지노 무너뜨리기 - 벤 메즈리치 / 황해선 : 별점 3점

MIT 수학천재들의 카지노 무너뜨리기 - 6점
벤 메즈리치 지음, 황해선 옮김/자음과모음
3학년이 된 MIT 전기공학도 케빈은 같은 학교를 중퇴한 피셔와 마르티네즈에 이끌려 ‘동부의 라스베가스’ 애틀랜틱시티로 첫 원정 도박에 따라 나선다. 짧은 시간에 800달러를 딴 것은 우연한 불행의 단초가 아니라, 그를 도박판에 끌어들이려는 치명적 유혹이었다. 
블랙잭 비밀 조직은 뛰어난 두뇌를 지닌 데다 ‘중국계’라는 자격 요건을 갖춘 그를 발탁한다. '동양계 큰 손'이 도박장에서 오히려 어색하지 않다는, 인종적 선입견마저도 철저히 계산에 넣은 것. 조직은 블랙잭의 모든 것을 학구적으로 파헤쳤고, 조직원들은 리더인 MIT 퇴직 교수 로사를 사교(邪敎)집단 교주처럼 숭배했다. 케빈은 카지노를 유린하는 체계적 분업인 '스포터(spotter)', '고릴라', '빅 플레이어' 같은 도박사 수련 단계를 밟아 최고 지위에 오른다. 

평일엔 캠퍼스 모범생, 주말엔 욕망의 천국 라스베가스의 승부사로 위태로운 두 겹의 생활은 짧은 기간 전업(專業) 갬블러 생활을 했지만, 졸업 후 시카고 투자은행에 들어간 뒤에도 계속 되었다. 변장하고 가명을 쓰거나 어리숙한 척 연기하는 일은 일상이 됐다. 한판 수입 40만달러, 수익률 80% 

이후 조직은 '공룡'으로 커가면서 내홍을 겪고, 케빈을 끌어들였던 피셔가 앞장서 은사인 로사 교수로부터 '젊은 세대의 독립'을 선언한다. "도박사가 해야 할 가장 중대한 결정은 떠나야 할 때를 결정하는 것일세…" 자신이 최저점에 위치해 있다는 승부처에서의 자기 합리화가 중대 결심을 미루게 한다는, 피셔의 고별사가 복선(伏線)으로 깔린다. 

승승장구하던 새 팀에게 그림자 같은 미행이 뒤따른다.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하는 것을 도박사로서의 덕목으로 강요하는 라스베가스의 불문율 탓에, 팀은 시카고나 슈리브포트(루이지애나)로 활동 공간(카지노)을 넓히고 철저한 준비로 라스베이거스를 역습하기도 한다. 그러나 '철옹성' 으로서의 자존심을 잃은 라스베이거스가 고용한 사립 탐정들의 추격과 보복, 그리고 단 25,000달러에 조직의 비밀을 판 배신자 때문에 피 끓는 20대의 5년을 불살랐던 라스베이거스. 1년에 20번 왕복하며 매주말 40시간, 시간당 60판, 모두 4만8000번의 피 말리는 승부를 치렀던 케빈의 삶은 라스베가스를 떠나 벤처기업에 취직함으로써 현실로 돌아온다.
블랙잭(숫자 합계가 17~21 사이에서 높은 패를 쥔 쪽이 승리하는 딜러와의 1대1게임)의 허점을 공략하는 묘수인 '카드 카운팅(card counting)'으로 1990년대 중 후반에 실제로 라스베가스의 카지노에서 수백만 달러를 땄다는 MIT 출신 천재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입니다.

비교적 자세하게 쓰여진 카드 카운팅 방법이 가장 인상적으로 실제로 도전의식(?)을 불태우더군요. 낮은 점수의 카드를 +1, 높은 점수의 카드를 -1로 하여 그 숫자를 순간적으로 더해서 지수가 높아질 때 판에 뛰어들어 딜러와 승부한다는 것이 기본 개념입니다. 그 때가 높은 점수 카드가 많이 남았을 때라는 거죠. 그 외에도 순간적으로 여러명의 카드를 분석하여 계산한다던가, 카드 셔플 시 특정 카드의 위치와 순서를 추적한다던가, 팀을 여러 명으로 나누어 운영함으로써 카드 카운팅의 위험을 최소화 하는 방법 등의 여러가지 노하우까지 공개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수학적인 게임이라는 블랙잭, 펼쳐진 카드로 다음에 나올 카드를 예상할 수 있다는 확률의 법칙이 수학 천재들에 의해 분석되었기에 거의 완벽한 방법이라 할 수 있겠죠.

물론 카지노 측이 더 현명하여 자동으로 카드를 섞는 기계나 여러 감시 장치의 도입으로 이러한 방법에 따른 위험을 줄이고, 카드 카운터를 세심하게 적발하는 등 몰락의 과정도 충실히 묘사됩니다. 실제로 불법도 아니고 단지 새로운 방법을 개발했을 뿐인 천재들에게 카지노가 가한 응징은 좀 무자비하더군요. 물론 그들의 파워..를 막기에는 멤버들의 힘이 너무나 미약했던 탓이 크겠지만요.

이런 류의 책 치고는 나름대로 교훈적이기도 한데, 보안회사에 인터뷰 차 찾아간 케빈이 카드 카운팅의 우월성을 입증하며 카지노를 나서는 마지막 장면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제 도박은 하지 않고 그동안 잃어 왔던 것을 되찾기 위해 애쓰지만 한편으로는 카드 카운터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인데 과연 케빈은 도박의 유혹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찾은 것일까요? 저는 그렇다고 봅니다.

여튼, 실화를 바탕으로 한 설득력도 높이 평가할만 하고 꽤 재미있게 읽었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수학과 도박, 확률 이론에 관심있으신 분들께서는 한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덧 : 하나 못 마땅한 것은 카지노에서 큰 금액을 베팅하는 인물은 “동양인” 이라고 하는 설정이더군요. 한국계 가명도 당연히 등장하고요. 졸부 아들들이 얼마나 돈을 흥청망청 써대길래…

2020/12/12

탐정 혹은 살인자 - 지웨이란 / 김락준 : 별점 3점

탐정 혹은 살인자 - 6점
지웨이란 지음, 김락준 옮김/북로드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청은 한때 대만 연극계에서 잘 나가는 교수였지만 술자리에서 주변 사람들을 크게 상처 입혔던 사건을 계기로 교수직을 그만둔 뒤, 슬럼가같은 골목 워룽제로 옮겨갔다. 그리고 허가도 받지 않은 '사설 탐정'이라는 일을 시작했다. 첫 의뢰인 린부인의 의뢰는 갑자기 남편을 미워하게 된 딸아이 행동의 원인을 밝혀달라는 것이었다. 미행과 탐문을 통해 린씨와 불륜 관계로 보였던 미스 추는 병원 대상으로 협박을 일삼던 범죄자였다는게 드러나고, 린부인은 이혼했다.

그 뒤 워룽제 주변에서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 용의자로 우청은 체포되었다. CCTV로 피해자들과 근처에 있었다는게 드러났으며, 결정적으로 범인이 우청으로 변장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네번째 사건에서 범인 스스로 변장을 드러내 우청은 풀려난다. 경찰과 수사에 함께 참여한 우청은 범행 장소가 자신(의 집)을 중심으로 정확히 4방향을 그리고 있다는 것, 범인의 변장 기술은 전문가에게 배웠을 거라는 것 등 여러가지 추리를 선보이고, 결국 범인이 자신을 추종하던 극작가 쑤훙즈라는걸 알아낸다. 그러나 경찰은 꼭꼭 숨은 쑤훙즈를 체포하지 못하고, 결국 다섯번째 범행이 벌어지는데....

"내 심경이 어땠냐 하면 좆나 엿같았습니다!"

중국 추리 소설은 몇 편 읽어보았지만 대만 추리 소설은 처음 읽어 보네요. 그런데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재미에는 주인공 우청의 지분이 상당합니다. 독특하면서도 생생한 매력을 그야말로 '분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공 가도를 달리다가 본인 실수로 스스로 루저의 길을 택했다는건 정신병을 앓는 탐정, 주정뱅이 탐정, 패배자 탐정 등 다른 루저 탐정들과 조금은 비슷합니다. 그러나 본인 스스로 '살아있다!'는 걸 생생하게 드러낸다는 차이는 큽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숨기려고 하는 다른 루저들과는 정 반대지요. 우청 역시 루저가 되는걸 선택한 뒤 워룽제 골방으로 숨어든건 혼자 우울하게, 어둡게 지내보겠다는 취지이기는 했습니다. 한데 뒤로 가면 갈 수록 경찰, 언론은 물론 범인까지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맞서 싸우면서 전방위적인 활약을 펼칩니다. 루저가 아니라 시민 영웅인 셈입니다.

또 우청은 사회에 대한 불만도 딱히 없고, 내면에 특별한 분노도 없습니다. 가족과도 그런대로 원만하고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아요. 그냥 자연스럽게 루저의 길을 택한 평범한 우리 이웃이라서 현실감이 넘칩니다. 루저가 된 계기인 공황장애라는 병과 연극인들에게 상처를 준 '구이산다오' 사건 설명도 상세하고 현실적이고요. 어린 아이를 죽이거나, 믿었던 아내가 바람나서 도망갔다던가, 가족이 몰살당했다는 상황보다는 훨씬 와 닿는 이유였어요. 

하지만 당연히 그냥 루저는 아닙니다. 명확한 주관이 있으며 추리력도 갖춘 실력자이기도 합니다. 자신만의 생각, 견해를 드러내는 언변과 재치도 대단하고요. 루저 탐정들이 보통 경찰 출신이라서 자연스럽게 먹고 살려고 탐정이 된 반면, 우청이 '사설 탐정'이 된건 지병 탓이라는 독특함도 눈에 뜨여요. 공황장애로 생긴 불면증으로 많은 책을 읽어서 사람 내면을 파악하는 기술을 습득했다는게 이유거든요. 스스로 추리력은 대단하지 않지만, 추리 소설을 셀 수 없이 많이 읽었고 타이완에 대한 독특한 견해를 갖고 있는게 자신의 무기라고 생각하지요. 한 마디로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비범한 루저 탐정입니다. 이런 기묘한 캐릭터를 이렇게 잘 그려낸 작가에게는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네요.

추리적으로도 볼 만 합니다. 우청 탐정에 대한 여러가지 설정을 독자에게 소개하는 도입부라고 할 수 있는 린 부인, 천제루가 의뢰한 첫 번째 사건부터 흥미로운 부분이 있거든요. 미행과 탐문, 단도직입적 질문으로 답변을 끌어내어 해결되기 때문에 추리할 여지가 많지는 않지만, 린 선생이 받은 분재 동호회 회원 메일에 포함된 상품 번호가 날짜와 버스 번호, 내릴 정류장을 알리는 일종의 암호문이라는걸 찾아내는건 재미있었어요.

이어지는 본편 사건인 연쇄 살인 사건은 무려 다섯 명이 살해당하는 사건이라서 당연히 추리적으로 훨씬 풍성합니다. 우청이 체포되었을 때 당했던 부당한 처사를 이용하여 경찰 수사에 합류한다는 설정부터 괜찮습니다. 허가도 받지 않은 사설 탐정이 연쇄 살인에 뛰어들어 범인을 잡기 위해서는, 현대 사회에서는 당연히 경찰과 협조해야 하니까요.
이후 수사 과정에서 우청이 단서를 하나씩 짚어내는 과정도 볼만해요. 우청이 7월 7일 타이베이에 없었다는걸 증명한 뒤, 7월 7일 CCTV를 뒤져 자신으로 변장한 범인 행적을 추적하는 식으로요. 이를 통해 범인이 변장의 달인이라는걸 알아낸 우청은 이 정도 변장은 어딘가에서 배웠을 것이다!고 추리합니다. 그래서 관련 세미나와 강의를 뒤져 수강생 명단에서 범인 쑤훙즈를 찾아내게 되지요.

불교의 사상, 이론과 상징을 연쇄 살인 사건에 녹여낸 설정도 인상적입니다. 연쇄 살인 사건이 기독교 상징에 따라 일어난 작품은 있었습니다. 묵시록 예언을 따르는 식으로요. 동요그림, 수학 법칙, 음악, 바둑, 체스, 심지어 추리 소설에 따라 일어났거나, 주요 소재가 된 작품도 읽어 보았었고요. 그런데 불교라니! 그동안 제가 읽어왔던 거의 1000편에 가까운 추리 소설 중 이런 작품은 없었습니다.

불교적인 상징이 사용된건 피해자들이 선택된 이유가 만(卍)자에 해당한다는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최초 피해자들은 우청을 중심으로 위도, 경도가 정확한 정4방향 꼭지점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범인이 해당 위치에서 무작위로 희생자를 선택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좌우 대칭의 정사각형이 완성되었으니, 가운데 있는 우청만 남은 셈이지요.
그러나 5번째 사건이 일어난 위치를 확인하여 도형이 정사각형이 아니라 불교의 만(卍)자를 그리고 있다는게 드러나게 됩니다! 범인 쑤홍주가 사건을 일으킨 동기도 우청을 깨우치게 만드는 종교적 목적이었고요. 물론 이는 불교 사상은 아닙니다. 불교를 믿었지만 지금은 자신만의 세계에 사로잡힌, '우리에게는 현생만 있는데 현생은 지옥이라는' 정신병자 쑤홍주 자신만의 주장이지요. 하지만 이 주장에 이르기까지 과정은 불교 사상에 닿아 있으며, 여러가지 소재를 통해 잘 설명되고 있습니다.
특히 핵심 키워드였던 금강경의 한 구절 - "마음이 어딘가에 머물러 있으면 머물러 있는게 아니니라" - 해석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울림을 줍니다. 사람들은 편안하게 살기 위하면서 겉모습에 미혹된다는 거지요. 즉, 어떻게 사는게 편안한지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질구레한 일을 걱정하고, 인간관계 때문에 울고 웃는 거고요. 그래서 진짜 편안해지려면, 겉 모습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외에도 불교에 바탕을 둔 깊이 있는 이야기들이 스쳐가듯 등장하는데, 모두 기억에 남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곁가지로 진행되는 황색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와 사회 지도층이 얼마나 썩었는지를 풍자하는 장면들도 재미납니다. 우청이 범인으로 몰렸던 상황에서 언론의 부정확한 추측 보도와 취재 경쟁이 블랙 코미디처럼 묘사되거든요. 우청의 보복 고소에 대한 묘사도 속 시원합니다. "언론 건드려 봤자 좋을 것 하나 없다는 거 잘 압니다. 하지만 이번에 언론이 사람 잘못 건드린 줄 알라고 하세요. 나는 공익을 위해 싸우지 않습니다. 난 그저 법원에서 언론에 한 방 먹이고 싶을 뿐입니다." 라고 일갈하는데, 멋지더라고요. 이런저런 결탁으로 큰 성과를 얻지는 못하지만, 고소라도 한 게 어딥니까. 우리 나라도 이런 고소, 그리고 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손해 배상제가 일상화, 법죄화되면 좋겠네요.

잘 모르는 대만의 복잡한 도시 묘사, 이런저런 문화와 풍습들 묘사도 새로움이 많았습니다. 경찰서에서 풀려난 뒤 족발 국수를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처럼요. 서민적이고 사람사는 느낌 가득한 묘사도 정겨움을 더해 줍니다. 우청과 어머니의 관계는 물론, 우청과 주변의 이웃과 친구들 모두 서민적이고 정감가는 인물들로 그려지고 있거든요. 왁자지껄하면서 잔 정이 넘치는게 우리나라와도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수선스럽고 요란한 점은 옛날 보았던 홍콩 코미디 영화 정서와 비슷하다고 생각도 되네요.

그러나 정교함이 부족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왜 쑤훙주가 우청을 함정에 빠트렸다가 바로 풀려날 수 있도록 범행을 저질렀는지부터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아요. 우청을 고난에 빠트리려면 그를 살인범으로 모는게 당연했을텐데, 너무 쉽게 혐의를 벗겨주는 느낌이거든요. 우청도 이에 대해 고민하지만, 결국 그 이유는 등장하지 않고 작품은 마무리됩니다.
추리도 기발함은 있지만 대단한 트릭이 등장하지는 않아서 정교함을 느끼기 힘든건 마찬가지입니다. 범인 쑤훙주가 변장의 달인이라는게 전부니 어쩔 수 없지요.
경찰도 너무 하는게 없습니다. 우청과 동료들의 노력으로 범인이 쑤훙주라는게 드러난 이후에도 체포하지 못하는 모습은 지나치게 무능해 보였고요. 쑤훙주의 집과 변장한 모습을 우청이 어렵지 않게 알아냈다는 점에서 변명의 여지도 없어요. 대만의 치안이 심히 우려되더라고요.

마지막 결말은 지나치게 전형적입니다. 우청을 사로잡은 쑤훙주가 우청을 죽이기 전에 왜 범행을 저질렀는지 장황하게 설명한 뒤, 때맞춰 나타난 경찰에게 사살당하는데 여러모로 너무 시시했어요.

그래도 독특함, 신선함이 가득차 있는 재미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우청 시리즈가 계속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여러모로 영상물에 어울릴 듯 싶은데, 영화가 있는지 한 번 찾아봐야겠네요.

2011/09/10

1% 확률의 마술 - 제프리 S 로젠탈 / 박민서 : 별점 3.5점

1% 확률의 마술 - 8점
제프리 S. 로젠탈 지음, 박민서 옮김/부표

확률이란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교양서적이지만, 실생활에서 누구나 궁금해할 만한 재미있는 예를 들어가며 설명해 주기 때문에 쉽게 읽을 수 있다는게 장점입니다. 대표적인 예는 도박의 법칙으로, 주사위를 던지는 확률은 물론이고 포커, 블랙잭의 확률까지 제대로 분석해 줍니다.

일상생활에서 확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하며, 아래와 같이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방법으로 소개되는 "효용함수" 이론도 흥미로왔습니다.

효용함수 이론 :
결혼 장소로 밝은 날의 야외 오두막은 +1,000점이고 일반 결혼식장은 +800점을 부여한다. 그런데 만약 비가 오면 오두막은 결혼을 하기에는 최악인 상황으로 0점이 된다. 결혼식 날 비 올 확률이 25%라면, 효용함수를 계산하면 야외 오두막 : +1,000 × 75% + 0 × 25% = 평균 효용점수 750점 결혼식장은 800점 그대로이므로, 결혼식장이 더 나은 선택이다.

또한 연구 결과를 판단하는 확률인 p-value 계산법을 소개하며, 야구팬이라면 익숙할 새미 소사 코르크 배트 사건의 예를 들어, 그의 "단순한 실수였다"는 주장에 어느 정도 신빙성을 부여하는 등의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이야기되는 여론조사의 함정 같은 이야기도 아주 재미있었고요.

번역이 다소 딱딱한 느낌이 있고, 아는 내용도 많으며, 표나 그래프를 보다 정교하고 자세하게 실어주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재미와 지식을 동시에 전달하는 보기 드문 책이기에 별점은 3.5점입니다. 수학, 특히 확률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