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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2

살인 현장은 구름 위 - 히가시노 게이고 / 김난주 : 별점 2점

살인 현장은 구름 위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재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 단편집입니다. 신일본 항공 승무원인 하야세 에이코를 탐정으로 내세운 시리즈이지요. 에이코는 통칭 A코로 불리우는, 도쿄 대학을 중퇴하고 입사하여 훈련생 수석까지 차지한 재원으로, 마른 몸매의 고전적 외모의 미녀이기까지 하지요. 그녀가 겨우 합격하고 훈련생에서도 꼴찌인 동기 후지 마미코(통칭 B코)와 콤비로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읽어보면 구태여 승무원이 주인공일 필요는 딱히 없어요. 승무원 설정을 살린 이야기가 한 편 정도? 때문에 버블 시대에 승무원 관련 컨텐츠 유행에 편승한 설정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B코 역시 등장할 필요가 없습니다. 추리에 도움을 주지도 않고, 민폐만 끼칠 뿐이니까요. 사실 등장할 때 마다 짜증만 날 정도였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볼 만한 이야기는 많이 없어요. 무리한 설정이 너무 많은 탓입니다.

이런 단점들 때문에 시리즈가 이어지지 않았으리라 생각됩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수록작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합니다.

"K호텔 살인의 밤" 

가고시마로의 비행 후 언제나처럼 바 '와이키키'에 모여 한 잔 하던 승무원들 모임에 그날 승객이었던 혼마가 동석했는데, 마침 그 때 혼마 아내의 전화가 걸려와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웨이터가 그녀의 호텔 방으로 샌드위치를 배달하는건 호텔에 있던 B코가 목격했다. 4시간 정도 술을 마시고 새벽 1시 경 호텔로 돌아간 그들은, 혼마 아내의 시체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그 때 A코의 눈에 들어온건, 혼마 씨 부인 시체가 하이힐을 신고 있었던 것이었다....

강도가 구태여 트윈룸에 침입할리 없으며(두 명이 있을 수 있으니), 오토록으로 잠긴 문을 돌파할 방법도 없습니다. 여기에 누구나 알리바이 공작임을 알아챌 수 있는 술자리 설정을 더하면 범인이 혼마 씨라는건 쉽게 짐작 가능합니다. 이렇게 범인이 뻔하기에, 트릭이 중요합니다. 독자의 흥미를 잡아 끌기 위해서는요.

그러나 트릭은 단순한 변장 트릭이라 시시합니다. 배달된 샌드위치를 받았던 건 변장한 조카였거든요. 둘은 자신들의 유산을 혼마 씨 부인이 멋대로 주식에 투자해서 큰 손해를 보자, 의기투합하여 살인을 공모했던 겁니다. 간단하고 현실적이기는 한데, 재미있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그나마 사체 부검 결과 위장 속에 있었던, 먹은지 30분 정도 지난 샌드위치는 배달 전에 따로 구입한걸 혼마 씨가 부인에게 먼저 먹였다는 조금 고심한 트릭이 곁들여져 있기는 합니다만, 이 역시 새롭거나 기발한 발상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 추리를 경찰이 증명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조카가 피해자로 변장했다는걸 밝혀내기는 불가능하니까요. 혼마 씨가 따로 샌드위치를 샀다는걸 결정적 증거처럼 취급하고 있는데, 이건 단순한 정황증거일 뿐입니다. 혼마 씨 조카의 지문이 피해자 방에서 나왔다면 모를까, 증거가 샌드위치가 전부라면 무죄 판결을 받는게 그리 어려워보이지는 않네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분실물에 유의하세요" 

베이비 투어에 참가했던 25쌍의 가족이 탑승했던 비행이 끝난 뒤, B코는 실내를 정리하다가 남겨진 아기를 발견했다. 서둘러 베이비 투어 일행을 찾았지만 아이는 25명이 모두 있었다. 아이는 누구이며, 왜 혼자 남겨져 있었을까? 결국 사건은 방송을 타게 되는데, 다행히 교토에 사는 아기 엄마가 나타난다. 아기는 엄마와 함께 산책 중 실종되었었다...

A코는 베이비 투어 일행이 교토에서 그 공원에 들렸던 걸 알아낸 뒤, 참석했던 부부 중 누군가가 자기들 아기와 똑같은 옷을 입은 남의 아기를 착각해서 데려왔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추리라고 할 것도 없는, 상식 수준의 이야기에요.

그래도 비행기에서 내린 베이비 투어 참석자의 아기가 25명이었던 이유에 대한 추리는 꽤 괜찮습니다. 남편이 먼저 자기 아기를 데리고 도쿄로 먼저 출발한 겁니다. 부인은 남의 아기를 데리고 원래의 투어용 비행기에 탑승했고요. 착륙 후 남의 아기는 자리에 남겨두고, 공기 인형 따위에 아이 옷을 입혀 위장한 뒤 비행기에서 내렸고, 곧바로 남편을 만나 자신들의 진짜 아기를 안고 있던 겁니다.

그러나 사건 자체가 지나치게 작위적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실수로 데려온 남의 아이와 함께 비행기까지 탄 뒤 비행기에서 유기한다는건 너무 억지스럽지요. 투어였다면 가이드와 상의해서 처리하는게 상식적이잖아요? 비행기에서 유기하는 순간 애가 울기라도 했으면 빠져나갈 방법도 없고요. 마찬가지로 남의 아기를 태연히 버린 부모를 용서할 수 없던 A코와 B코가 그 부부의 아기를 인형과 바꿔치기 한 뒤 옥상에서 떨어트리는 쇼를 펼쳐 응징한다는 결말도 별로 와 닿지 않았습니다. 이 역시 중범죄인 탓입니다. 경찰에 신고하는게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상황은 흥미롭지만, 억지로 만들어 낸 이야기라는 티가 너무 많이 났습니다.

"중매석의 신데렐라"

B코는 비행 중 친해진 나카야마라는 승객으로부터 데이트 신청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운전사 딸린 벤츠로 B코를 에스코트한 뒤, B코에게 청혼했다. B코는 재산을 노리는 나카야마 친척들의 욕심을 좌절시켜야 한다며 A코에게 완벽한 신부 연기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친척들을 만나러 가는 길, 나카야마의 벤츠로 이동하던 A코는 운전사 다무라를 어디선가 보았다고 느끼는데...

간단한 일상계 소품. 나카야마와 B코의 결혼은 나카야마의 부탁으로 진행했던 연극이었습니다. 나카야마가 진짜 연인과 함께 하기 위해 연극을 꾸민거지요. 나카야마의 연인이 남자인 운전수 다무라였기에 친척들이 반대할게 뻔했기 때문이라는게 그 이유인데, 2020년 관점으로 보기에는 그렇게 특이한 설정이나 반전은 아니었어요. 게다가 마지막에, 다무라를 성전환 시키겠다는 이야기는 이게 뭔가 싶더군요. 그럴거라면 성전환 후에 당당하게 결혼하면 되잖아요? 이렇게 억지 연극을 벌일 이유는 없죠.

전체적으로 억지스럽고 작위적일 뿐 아니라, 결말이 황당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나카야마가 연극 상대로 B코를 점찍은 이유가 다무라와 B코가 닮았다는 것 정도만 재미있었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길동무 미스터리" 

후쿠오카 전통 과자 가게 도미야의 주인 도미타 게이조가 호리이 사키코라는 여성과 함께 도쿄의 호텔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남자는 욕조에서 손을 그어 출혈사하였고, 여자는 칼에 가슴이 찔린 채였다. 처음에는 치정에 의한 자살로 생각되었지만, 그들이 마셨던 커피 잔 두 잔 중 한 잔은 지문이 지워져 있던 상태였고, A코와 B코를 통해 둘은 아무 관계도 아니었으며 같은 호텔에 투숙한 것 역시 우연이라는게 드러났다.
도미야가 경영 위기였고, 도미타가 거액의 생명보험에 가입되어 있어서 아내의 범행도 의심했지만 알리바이는 철벽이었다. 또 자살 시 보험금을 받을 수 없는데 자살로 보이는 애매한 상황을 만들리도 없어서 그녀는 용의선상에서 빠져나가는데...

진상은 도미타가 보험금을 목적으로 자살하려 했다는 겁니다. 그는 누군가에게 살해당한걸로 위장하려고 열쇠를 쓰레기통에 버린 뒤 손을 그었지요. 그러나 투숙객 사키코가 열쇠를 주운 뒤, 친절하게도 방에 가져다 주었습니다. 도미타는 자살 시도가 밝혀지면 보험금을 받을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죽이고 자살했고요. 찻잔을 위장할 수는 있었지만, 열쇠를 다시 버리러 갈 여유는 없었습니다. 

이렇게 지나친 우연이 겹친 작위적인 사건이라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도미타의 유서가 발견되지 않는 이상 경찰이 진상을 밝혀내는건 불가능하겠지만, 그렇다고 살인사건으로 처리될지는 확실치 않다는 점도 마찬가지로 문제고요. 자살로도 처리될 수 있는 애매한 상황이니까요.

무엇보다도 도미타의 아내가 진상을 알고 나서도 보험금을 꼭 받겠다고 단언하는 마무리는, 개죽음당한 사키코에 대한 배려는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영 마음에 들지 않네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아주 중요한 분실물" 

A코는 비행 중 화장실 앞에서 유서를 주웠다. 27명의 승객 중 화장실을 간 승객은 모두 여섯 명이었다. 직장인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 일흔살 쯤 되어 보이는 은발의 노부인, 여자 중학생, 머리가 벗어진 중년 남자, 인텔리 남자 회사원, 염치없는 중년 여성, 그 중 누구의 유서인가?

유서에 서명이 없는게 결정적 단서가 되는게 독특했던 작품. 소녀는 어머니의 재혼으로 성이 바뀌게 되어서, 어떤 성을 써야 할 지 몰랐던 것이지요. 그러나 그 외에는 딱히 건질게 없는 소품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허깨비 승객" 

신일본 항공 객실과 승무원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남자는 A코에게 자신이 어제 신일본 항공 승객을 죽인 뒤 도쿄만에 유기했다고 털어놓으며, 돈을 내 놓지 않으면 비행기 승객을 계속 죽일거라고 협박했다. 경찰은 수사에 나서지만, 찾은 건 피가 묻은 핸드백 뿐으로 시체는 발견되지 았다. 핸드백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 상황에서, 핸드백 속 탑승권으로 수소문한 끝에 그녀를 목격했다는 승객이 나타났다. 그러나 조사 결과 그런 여자 승객은 없었다는게 드러나는데...

앞서 협박 전화가 있기는 했지만, 핸드백 주인이 왜 나타나지 않는지가 핵심 수수께끼인 일종의 일상계 작품입니다.

이 모든건 그녀를 목격했다는 승객 나리타의 계획이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만난 여성에게 마음을 빼앗겨, 그녀를 다시 만나기 위해 꾸민 범행이지요. 피 묻은 핸드백을 버려두고 협박 전화를 건 뒤, 핸드백 주인을 보았다고 하면 얼굴을 확인시키기 위해 다른 승객들을 만나게 해 줄 것으로 기대했던 겁니다.

이를 핸드백 속 립스틱으로 알아챈 A코의 추리력은 빛납니다. 립스틱은 신상으로 출시된지 일주일도 안됐는데 많이 닳아있던걸 보고 조작을 간파했던 것이지요. 일부러 쓰던 것 처럼 보이게 만들었다는 의미니까요. 장난이 아니라 협박이 사실이라면, 피해자의 신원이 드러나야 범인에게 유리한데 그렇지 않다는건 아주 공들인 장난일 거라는 추리 역시 합리적이고요.

무엇보다도 여성 승객이 나타나지 않은 이유가 가장 마음에 들어요. 승무원 중 한명인 A코들의 선배 기타지마 가오리가 그날따라 승객으로 탑승했던겁니다! 그녀가 핸드백 주인이 아니라는건 전 승무원들이 아는 만큼 수사 초기에 밝혀졌으니, 범인 나리타에게 그녀의 사진을 보여줄 이유가 없었지요.

그러나 일반인이 선뜻 실행하기에는 너무 큰 범죄라는 점에서는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장난이라도 형사 처벌을 피할 수 있어 보이지 않아요. 또 B코가 번호를 잘못 눌러 발신번호 추적이 실패했다는 설정은 황당했습니다. 이건 경고 정도로 넘어가기는 불가능한 실수잖아요?

그래도 승무원이라는 직업과 예상치 못했던 동기가 잘 결합되어 있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이 단편집 최고의 작품이었습니다. 

"누가 A코를 노리는가" 

결혼과 함께 승무원을 그만 둔 전 선배 기타지마 가오리가 승객으로 탑승한 비행을 마친 A코는 가오리로부터 그녀 옆에 앉았던 이상한 승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뒤 휴일에 쇼핑을 나선 A코는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걸 깨닫고 불안해서 귀가하던 중, 차량의 습격을 받았다. 다음날, 출근한 A코에게 형사가 찾아왔다. 어떤 남자가 그녀가 기타지마 가오리와 함께 했던 비행편에 탑승했는지 확인해 달라는 부탁 때문이었다. A코는 경찰이 보여준 사진을 보고, 그가 대학 동창이자 전 연인 쓰카하라라는걸 알고 놀랐다. 그는 모리오카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의 주요 참고인이었다. A코는 쓰카하라의 연락을 받고 그를 만나게 되는데...

진상은, 쓰카하라는 범인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직장 동료 다구치가 범인이었지요. 다구치가 알리바이 조작을 위해 비행기로 이동 중, 우연히 기타지마 가오리 옆 자리에 앉았던게 발단입니다. A코가 기타지마 가오리에게 "오랫만이에요"라며 아는 척 했는데, 승무원끼리는 개인적인 대화를 삼가하는 관습 때문에 대 놓고 아는척 하지 못한 기타지마 가오리가 눈인사만 전한게 화근이었어요. 다구치가 인사말을 자기에게 한 걸로 오해했거든요. 그래서 A코가 자신을 알아보았다고 생각한 나머지 그녀를 죽이려고 한게 자동차 습격 사건의 진상입니다. 3개월 전, A코의 옛 연인이기도 했던 쓰카하라가 A코와 우연히 재회했을 때, 다구치는 쓰카하라와 함께 있었던 탓도 큽니다. 그래서 더 쉽게 오해했던 것이지요.

우연에 의지하고 있고, 조금은 작위적이라는 단점은 있습니다. 그래도 승무원의 업무에 대해 잘 이해하고 쓰여졌다는 생각이 드네요. 별점은 2.5점 입니다.

2022/03/12

부자연스러운 죽음 - 도로시 L. 세이어즈 지음/블루프린트 : 별점 3점

부자연스러운 죽음 - 6점
도로시 L. 세이어즈 지음/블루프린트

<<아래 리뷰에는 동기, 진범 등을 밝히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피터 경과 파커 경위는 한 의사로부터 흥미로운 사건 이야기를 들었다. 3년 전, 부유했던 도슨 부인이 급작스럽게 사망했던 사건이었다. 당시 의사의 주장으로 부검도 진행되었었다. 사망 원인이 불명확했던 탓이었다. 그러나 아무런 이상을 발견할 수 없었고, 오히려 마을 사람들은 도슨 부인의 유산을 물려받을 메리 위태커 양을 모함했다며 의사를 따돌렸고, 결국 그는 병원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사건의 냄새를 맡은 피터 경은 노처녀 클림슨 양을 투입했다. 그녀는 사건이 벌어졌던 햄프셔 주 리햄튼 시에 방을 구한 뒤, 이런저런 정보들을 수집하여 알려주었다. 이를 통해 피터 경은 사건 직전에 해고되었다는 도슨 부인의 하녀 고우트베드 자매가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여겼고, 그녀들을 찾기 위해 신문에 광고를 냈지만 자매 중 동생인 버사 고우트베드가 시체로 발견되고 말았다. 현장에서 발견한 단서들과 관련되어 있던 포레스트 부인에게서도 별다른 혐의를 찾아낼 수 없었고, 위태커 양은 절친 핀들레이터 양을 통해 버사 고우트베드가 살해되었을 당시 알리바이가 증명되었다.

무엇보다도 도슨 부인은 불치병인 암을 앓고 있어서 곧 죽을 예정이었는데 그녀의 죽음을 앞당길 이유가 없었고, 죽였다 해도 범행 방법도 알아내지 못했으며, 버사 고우트베드 양 살해 방법도 밝혀낼 수 없어서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마는데...


도로시 세이어즈의 피터 윔지경 장편 (이하 피터 경). 사실 저는 피터 경 시리즈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트릭 면에서 그렇게 마음에 들었던 작품도 별로 없었고, 피터 경의 잘난척도 도가 지나쳐서 호감을 갖지 못했던 탓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미스테리아 35호>>에서, 샌드위치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언급되어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끔 쓰는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미발표 원고 - 추리소설과 요리'라는 글에서 샌드위치를 다루어볼까 하던 차여서, 과연 어떻게 샌드위치가 사용되었는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읽어보니, 의외로 재미있어서 놀랐습니다. 트릭도 여러가지가 사용되고 있고, 피터 경의 추리도 눈부시며, 동기도 공들여 만들어져 있어서 추리적으로도 아주 괜찮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암에 걸려서 살 날이 머지 않았을 도슨 부인을 왜 위태커 양이 죽였는지?에 대한 동기가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위태커 양은 도슨 부인 유산의 유일한 상속자로 누구나 알고 있었기에 도슨 부인을 서둘러 살해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도슨 부인이 사실은 위태커 양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유산을 물려주려 한 게 아닐까? 라고 생각되었는데, 도슨 부인이 유언장을 쓰지 않았다는게 밝혀지며 이는 부정됩니다. 오히려 변호사와 위태커 양이 유언장을 쓰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도슨 부인이 유언장을 쓰면 재수가 없어질까봐 극렬하게 거부했다고 하고요.
그러나 알고보니 명확한 동기가 있었습니다. 1926년 1월부터 새로운 법률이 시행되어서, 유언장 없이 누군가 사망할 경우 그 재산은 가장 가까운 친척에게 넘어가게 되어 있어서 메리 위태커가 전부 물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생겼던 겁니다! 그래서 위태커 양은 도슨 부인에게 유언장을 쓰게 만드는데 실패한 다음에는, 어쩔 수 없이 부인을 1925년 안에 살해했어야 했던 거지요. 정말 생각하지도 못했던 놀라운 동기였습니다.

독극물의 흔적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던 범행의 트릭도 기발했습니다. 간호사였던 위태커 양이 피하주사로 '공기'를 주사하여, 일종의 공기 탄환으로 심장 마비를 일으켰던 거지요. 많이 알려져 있어서 지금은 조금 식상하지만, 이 작품이 발표된 시기에는 굉장히 참신한 트릭이었을겁니다.
메리 위태커가 런던에서 이런저런 범행을 계획하고 실행하기 위해 포레스트 부인으로 변장하여 살고 있었다는 트릭도 효과적이었습니다. 저는 포레스트 부인이 공범으로 절친 핀들레이터 양이라 생각했었는데, 제 생각보다 더 과감하면서 괜찮았어요. 메리 위태커의 사진은 거의 구할 수 없었다, 메리 위태커는 일종의 동성애적인 관계에만 몰두했다 등의 복선으로 잘 뒷받침하고 있기도 하고요. 확실히 유명 작가는 저 같은 일반인과는 뭔가 달라도 다른 법이지요.
마지막에 핀들레이터 양을 살해한 뒤, 도슨 부인의 먼 친척인 할렐루야 목사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고 했던 계획도 나름 정교했습니다. 특히 이 부분은 '흑인'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편견과 증오심을 잘 활용한게 눈에 뜨입니다. 범행 현장에서 여러 남자가 덮친듯한 현장 발자욱이 모두 동일인의 것이라는걸 알아내고 계획을 파헤쳐버린, 당시 기준으로 최첨단(?) 과학 수사 기법을 활용한 피터 경과 파커 경위의 추리도 아주 괜찮았고요.
일종의 데이트 폭력 범죄로만 여겨졌던 버사 고우트베드 사건을 명확한 살인 사건이라고 생각하게 만든게 '샌드위치'라는 것도 제 기대를 충족시킨 부분이었습니다. 이 정도면 작품 전개에 큰 역할을 한 요리라는걸 부정하기 힘들 정도에요. 이건 앞서 말씀드렸던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미발표 원고"로 다시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건 아닙니다. 가장 큰 문제는 메리 위태커는 버사 고우트베드를 살해할 이유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녀가 도슨 부인을 속여 유언장을 쓰게 만들려 했던 과거가 폭로될 수는 있었겠지만, 이건 죄가 아닙니다. 어차피 도슨 부인은 공식적인 부검을 통해 자연사로 확인되었고, 시체가 재발굴되어 검시되더라도 독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을테니까요. 오히려 포레스트 부인이라는 존재가 드러났고, 결국 위증을 하게 만들었던 절친 핀들레이터까지 살해해서 사건을 키워버렸으니 안 하느니만 못한 범행이었습니다.
또 새로운 법률에 대해 상담했던 변호사 트리그를 살해하려 했던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입을 막을 정도는 아니었는데 일을 벌렸다가, 트리그를 죽이지도 못해서 위기에 빠진 셈입니다. 트리그가 겁을 먹고 사건에 대해 입을 닫았기에 망정이지, 진작에 꼬리가 잡힐 뻔 했었지요.

그리고 메리 위태커가 포레스트 부인이라는걸 알아내는 마지막 장면을 클림슨 양의 탐문 수사를 통해서도 알려주는 부분은 전개에서 불필요했다 생각됩니다. 그냥 피터 경과 경찰들이 진작에 입수했던 포레스트 부인의 지문과 메리 위태커의 지문이 같다는걸 알게 되는 장면만으로 반전의 맛은 충분했어요. 정체만 알아내면 메리 위태커를 핀들레이터 살인범으로 체포하는건 어렵지 않았으니 전개에도 무리가 없었고요. 여성의 능력도 남성 못지 않게 뛰어나다는 메시지를 전해 주기 위했던 장치라 여겨지는데, 당시라면 모를까 지금 읽기에는 식상했습니다. 피터 경 시리즈를 많이 읽었을 여성들에 대한 서비스에 불과해 보였습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하며, 그동안의 제 편견을 모두 깨주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저와 같은 이유로 피터 웜지 경 시리즈를 싫어하시는 분들께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4/01/25

오무라이스 잼잼 - 조경규 : 별점 2점

오무라이스 잼잼 - 4점
조경규 글.그림/씨네21북스

국내 요리 만화 중에서는 첫 손가락에 꼽는 웹툰 "오무라이스 잼잼" 출판 버젼입니다.

웹툰 연재물은 한 회도 빼먹지 않고 챙겨보는 나름 팬이라 자부합니다만, 책은 가격이 꽤 센 편이라 구입을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알라딘에서 20% 할인을 하길래, 충동 구매를 하게 되었네요.

그러나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솔직히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가성비가 영 꽝이거든요. 제 값 주고 샀더라면 정말 돈이 아까웠겠구나 싶을 정도예요. 이유는 만화는 인터넷으로 언제 어디서든 무료로! 접할 수 있기 때문에 뭔가 부가적인 다른 요소가 있었어야 하는데 거의 그렇지 못한 탓입니다. 물론 에피소드별로 이런저런 곁가지들이 삽입되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1~2페이지 분량에 그치며, 그다지 색다르거나 재미있는 내용도 없습니다. 등장 요리에 대한 사진이나 관련된 맛집 탐방류의 정보,  - 예를 들면 일본의 카스테라 맛집이나 울릉도 먹을거리 기행 - 는 인터넷에 넘쳐나는 이야기와 다를게 없으며, 중국에서 만나는 한국 과자라던가 컵라면의 짤막한 역사, 활명수병의 변천사 등은 솔직히 왜 실려 있는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딱히 재미가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자료적 가치가 있지도 않으니까요. 아주 약간 실려 있는 한 페이지짜리 일상툰도 재미와 정성 모두 기대 이하였습니다.

그나마 마음에 든 것은 샌드위치 편에 소개된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샌드위치"와 "엘비스 샌드위치" 레시피를 만화로 그린 것 뿐입니다. 샘 초이의 파인애플 스팸 같은 스팸 요리 부록이나 대만 팥빙수 이야기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분량이 너무 짧고(한 페이지), 별로 맛있어 보이지 않아서 아주 마음에 든다고 하기는 어렵네요. 예전 작가의 다른 대표작 "팬더 댄스"에서 하와이 스팸 요리편을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러한 에피소드라도 엮어서 책 출간 시 포함시켰어야 했습니다.

또 웹툰 대비 단행본의 볼륨이 많지 않아 보이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웹툰 특성상 여백이 많은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단행본에 맞게 좀 더 꽉 짜여진 편집을 할 수는 없었을까요? 왠지 페이지를 늘리기 위한 아이디어가 전편에 넘쳐나는 느낌이 들 정도였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소소한 일상을 요리와 엮어 전개하는 솜씨와 작품 전체에 흐르는 잔잔한 분위기, 그리고 탁월한 음식 그림 등 좋은 요소가 많기는 하나 이 돈을 주고 구입할 가치는 솔직히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래서야 후속권을 구입해서 읽을 일은 없겠지요.

그나저나 이놈의 충동구매를 자제 좀 해야 할 텐데...

2020/05/23

레베카 - 대프니 듀 모리에 / 이상원 : 별점 2.5점

레베카 (초판 출간 80주년 기념판) - 6점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이상원 옮김/현대문학

'나'는 남편 맥심과 함께 작은 호텔에 머물며, 과거 함께 시간을 보냈던 대저택 맨덜리에서의 생활을 회상한다.

'나'는 결혼 후 드 윈터 부인으로 맨덜리에 살게 되었다. 그러면서 맥심 드 윈터의 전처 레베카가 비참하게 사고로 죽었지만, 아직도 맨덜리에 그녀의 그림자가 짙게 남아있다는걸 느꼈다. 그런데 우연히 레베카의 시체가 발견되었고, 그녀 죽음에 대한 재조사가 시작되었다. 맥심 드 윈터는 '나'에게 자신이 그녀를 살해한 뒤 시체를 숨긴 것이라고 고백하는데...

대프니 듀 모리에의 전설적인 장편 소설입니다. 18~20세기 초반 큰 인기를 끌었던, 상류 사회와 로맨스, 범죄호러를 결합한 '고딕'이라는 장르를 대표하는 미스터리 소설 중 한 편이지요. 'MWA 추천 미스터리 100'이나 '동서 미스터리 100' 같은 이런저런 리스트에 포함될 정도로 명성만큼 큰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거의 600페이지 가까운 분량으로 이렇게 두꺼운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오래된 숙제를 끝내기 위한 사명감 비슷한걸 가지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숙제를 끝내기는 정말로 어렵더군요. 이야기의 2/3 대부분이 드 윈터 부인의 1인칭 심리묘사인데, 그녀의 마음에 전혀 공감할 수 없던 탓이 가장 큽니다. 어린 철부지 소녀가 급작스럽게 대저택의 안주인이 된 당황스러운 마음은 이해가 되지 않는건 아니에요. 그러나 맨덜리 저택과 그 주인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신분이라는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쳐져 시종일관 소심함을 드러내고, 주변 사람들 눈치를 신경쓰고 그들의 반응을 상상하며 괴로워하는 모습에는 짜증이 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당황스럽고, 철부지였다 하더라도 대저택 안주인으로 몇 개월 보냈으면 당연히 적응을 했어야죠. 몇 개월이 지나도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마다 스스로 극복 하지 못하고 손톱이나 물어 뜯는 모습에는 공감을 할래야 할 수가 없네요. 

이렇게 그녀의 어리버리함이 지나치게 부각되기 때문에, 저택 주변에 항상 맴도는 '레베카'의 그림자가 그리 무섭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레베카를 숭배했다는 저택 관리인의 우두머리 댄버스 부인의 악의만큼은 실감나게 느껴집니다만, 이 역시 그녀가 어설퍼서 댄버스 부인의 증오를 초래한 것에 불과합니다. 드 윈터 부인이 댄버스 부인에게 자신이 이제부터 드 윈터 부인이며, 그녀의 윗 사람이라는걸 처음에 확실하게 인지시켰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거든요. 댄버스 부인이 굴복하던가, 받아들이지 못했다면 알아서 떠나버렸을테니까요.
심지어 지나치게 상황 인식이 부족한 탓에 스스로 사건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합니다. 독자들은 이미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레베카가 정숙하지 못했다는걸 눈치채고 있습니다. 저택을 몰래 방문했던 사촌 파벨이 레베카의 문란한 생활 속 상대 중 하나라는 것도 쉽게 예측 가능하고요. 왜 그녀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지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도 맨덜리에서 오랫만에 수많은 손님이 방문하는 무도회가 열리는데, 댄버스 부인이 사근사근하게 도움을 주려고 하는 모습에서 무언가 사악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건 너무나도 뻔합니다. 그러나 딱 한 명, 주인공 드 윈터 부인만 모를 뿐이지요. 이래서야 드 윈터 부인이야말로 문제의 원흉이 아닌가 싶을 정도에요.

남편 맥심이 그녀의 적응에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건 이해합니다만, 그녀가 속 시원하게 사실을 털어놓고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게 더 큰 문제에요. 맥심지어 유일한 그녀의 편인 영지 관리인 프랭크에게는 어려운 상황과 댄버스 부인의 적의에 대해 명확한 사실을 이야기했었어야 했습니다. 그냥 그렇게 느낀다, 와 같은 말로는 부족했어요. 특히나 댄버스 부인이 아무도 모르게 레베카의 사촌 파벨을 맨덜리에 들였던게 탄로난 건은 하인으로서 하면 안될 일입니다. 이걸 꾸짖을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댄버스 부인에게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지루함을 참고, 2/3 정도를 지나면 다행히 명성을 회복합니다. 무도회에서 드 윈터 부인이 댄버스 부인의 복수로 레베카의 옷을 입어 주변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든 사건이 벌어진 직후, 레베카의 사체가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곧바로 맥심 드 윈터는 아내에게 자신이 레베카를 죽이고 배를 침몰시켰다고 고백하고요. 레베카가 저질렀던 온갖 부정들이 여기서 맥심의 입을 통해 드러납니다. 이후 명백한 침몰 흔적때문에 벌어지는 재심리, 자살로 대충 결론내려지지만 이의를 제기한 사촌 파벨의 협잡 등 여러번의 위기가 몰아치기 때문에 손에서 떼기 힘든 재미를 선사합니다. 이렇게 맥심 드 윈터에게 위기가 연이어 닥치고, 하나씩 위기를 넘는 듯 하지만 위기가 계속되는 전개는 그야말로 '서스펜스'가 뭔지 그 답을 제시해 주는 느낌입니다.
특히나 파벨이 찾아와 협작질을 벌이는 날, 여러 명의 관계자들을 소환해 진상이 무엇인지를 추궁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맥심! 그렇게 하면 안돼!'라는 심정으로 손에 땀을 쥐게 만들더라고요. 아울러 이를 함께 극복해 나가며 소녀에서 진짜 귀족 여성이 되는 드 윈터 부인의 성장기로서도 볼 만합니다. 그녀의 맥심을 향한 장황한 심리 묘사에 더해, 맥심은 레베카를 진짜로 사랑하지 않았고, 진짜 사랑한건 자신이라는걸 깨닫는 장면 등은 이 작품이 로맨스가 중요한 요소인 고딕이라는 장르라는걸 새삼 깨닫게 해 주고요.

그러나 치안판사 줄리언 대령이 직접 수사에 나설 정도의 단서를 파벨이 제시한게 맞는지는 솔직히 의심스럽습니다. 그가 레베카가 만나자고 보낸 쪽지를 들고 있던건 사실이지만, 그 쪽지가 레베카가 사망한 날 쓰여졌다는 증거는 없으니까요. 오히려 정체를 알 수 없는 쪽지로 지역 명사를 협박한 파벨을 체포하여 재판하는게 당연한 수순이에요.

레베카가 몰래 의사를 찾아간 뒤, 자신이 시한부 인생이라는걸 알게 되었다는 결말도 지나치게 작위적이었습니다. 그녀가 이 사실을 알고, 자살 겸 해서 일부러 맥심 드 윈터를 도발한게 진상이라고 해도, 그렇다면 쪽지를 남긴 이유는 설명되지 않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댄버스 부인에게 사실을 알리지 않은 이유도 잘 모르겠고요. 

무엇보다도, 맥심 드 윈터가 어찌되었건 아내를 살해한건 명백한 사실입니다. 정숙하지 못한 아내에 대한 응징으로 포장하기에는 지나치게 큰 범죄에요. 빅토리아 시기 직후, 20세기 초반에야 레베카의 부정이 죽을 죄였을지는 몰라도 지금 시점에서 그렇게 생각하는건 무리지요. 어떤 식으로건 단죄는 필요하다 생각되어서 별로 개운치 못합니다. 단지 저택을 잃은 정도로 끝나기는 부족했어요. 이 때문에 작은 호텔 등에 숨어산다는 현재 역시도 그게 얼마나 큰 벌인지 잘 와 닿지도 않습니다. 히치콕의 영화에서는, 레베카의 사인은 사고사이며 결말은 해피엔딩이라는데 저같은 의문을 품은 사람들을 위한 각색이라 생각됩니다. 헐리우드식이기는 하지만, 이 쪽이 더 명확해서 좋다는 생각도 드네요. 아울러 진상을 눈치 챈 댄버스 부인의 복수도 허망합니다. 저라면 드 윈터 부부가 돌아온 직후, 불을 질렀을 거에요. 그깟 저택이 뭐가 대단하다고....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후반부 1/3은 고딕 미스터리의 대명사다운 놀라운 서스펜스와 몰입감을 자랑하지만, 2/3 분량의 지루함에 대한 압박이 커서 감점합니다. 지금 읽기에는 낡은 요소가 많다는 점에서, 시대를 뛰어넘은 걸작은 아니라 생각되네요. 현대 독자라면, 영화 쪽을 감상하는게 더 나은 선택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나저나 "조용한 무더위" 수록작인 "파란 그늘"에서 중요한 요소로 쓰였던, 다과회에 나왔다는 비밀 샌드위치는 어디에 등장하는지 잘 모르겠네요. 샌드위치는 맥심의 할머니가 티 타임에 먹은 물냉이 샌드위치, 맨덜리에서 먹는다고 언급된 오이 샌드위치가 기억에 남을 뿐인데 말이죠.
여기서 무언가 요리를 발췌한다면, 드 윈터 부인이 처음 보고 놀란 호화스러운 아침 식사나, 매형 자일즈가 감탄하는 영국에서 제대로 된 음식의 대표격인 수플레, 차를 마실 때 빠지지 않는 스콘과 카스텔라가 더 나은 선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2019/07/30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제 블로그를 자주 찾아주신 분들이라면 기억나실지 모르겠지만, 오래전 '추리 소설 속 요리'에 대해 몇 편의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우연찮게도 이야기가 잘 되어 그 글들이 책으로 묶여 나오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정식 출간 전이며, 출판사에서 텀블벅을 통해 펀딩 진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상세 정보는 위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추리 소설 속 요리에 관심있으시다면 한 번 둘러봐 주셨으면 합니다. 제발요~

2019/09/29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 한상진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 6점
한상진 지음, 황은영 그림/CABOOKS(CA북스)

얼마 전, 텀블벅에서 펀딩을 한다고 알려드렸던 저의 졸저가 정식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오래전 "경성탐정록" 출간 시에도 이래저래 발을 담그기는 했었지만, 온전히 제 이름으로 책이 나오는건 이번이 처음이라 무척 감개무량하네요.

소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런저런 추리 소설 속에 중요하게 등장했던 여러가지 요리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종의 에세이 모음집입니다. 요리나 음식들이 단순하게 스쳐 지나가는게 아니라 작품 속에서 나름 중요한 소재, 단서로 쓰인 작품들 위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소시스 미뉴이, 양다리 통구이 등 이 바닥에서 유명한 요리도 있지만 많은 분들이 접하지 못했을 작품에서 뽑은 요리들도 있다는게 나름의 자랑거리지요.

물론 당연하게도 판매는 부진하고, 반응도 악평보다 나쁘다는 무반응인게 현실입니다. 모쪼록 후속권이 이어질 수 있을 정도의 유의미한 결과를 낳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2024/10/11

이상한 그림 - 우케쓰 / 김은모 : 별점 2.5점

이상한 그림 - 6점
우케쓰 지음, 김은모 옮김/북다
"아래 리뷰에는 트릭과 진상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사키는 후배 쿠리하라의 도움으로 '나나시로 렌'이라는 블로거가 올린 이상한 내용과 그림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림의 크기를 원래대로 맞추고, 기준점(번호) 중심으로 정렬하자 나나시로 렌의 아내 유키가 출산하는 모습이 드러났다.
아들 유타와 둘이서 살고 있는 나오미는 어린이집 선생 하루오카로부터 유타가 그린 이상한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다음날, 누군가가 나오미를 쫓다가 집의 위치를 알아낸 후 유타가 사라져버렸다. 하루오카 선생은 그림을 통해 유타가 학대받았다고 추리했지만, 유타가 그린 그림은 '묘비'였다. 묘비의 주인은 유타의 친모 유키였고, 알고보니 나오미는 유타의 할머니였다.
1992년, 고등학교 미술 교사 미우라 요시하루가 살해당했다. 3년 뒤, 사건을 다시 조사하기 위해 미우라의 제자였던 신문기자 이와타는 실제 사망 당일 미우리의 행동 그대로 등산에 나섰다. 그리고 미우라가 죽기 전 영수증에 그린 풍경 그림은, 미우라가 사망했다는 시각에는 역광이라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는걸 알아냈다. 이를 통해 미우라의 사망 시각이 조작되었기 때문이라고 추리했지만, 그날 밤 이와타도 진범에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이상한 집"으로 유명한 우케쓰의 후속작. 크게 세 편의 단편이 연결된 연작 소설로, 모든 이야기에 미우라 요시하루의 아내 나오미가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선, 책 서두에 등장하는, 모친을 살해했다는 소녀 - 그리고 이상한 그림을 그린 - 가 나오미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블로그 속 글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그 존재가 암시되어 있는 인물도 나오미입니다. 그녀는 나나시로 렌의 친모이며, 유키를 죽게 만든 범인이기도 합니다. 유타의 모친처럼 보였지만 알고보니 할머니였다는 나오미도 바로 이 나오미입니다.
그녀는 남편 미우라가 아들 다케시를 힘들게 하자 그를 살해했습니다. 어린 시절 모친으로부터 당했던 학대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유키가 낳는 아기도 자신이 모친이라는 이상한 모성애가 발동하여 유키가 출산 중에 사망하도록 몸을 악화시켰고요. 이 사실을 알게 된 다케시가 자살했던 겁니다. 유타와 함께 살아가던 나오미를 쫓았던 건 이와타의 선배 구마이였습니다. 그는 이와타의 죽음에 책임을 느끼고 지난 10년간 고민하고 추리하여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냈습니다.

제목처럼 '이상한 그림'을 가지고 펼치는 수수께끼도 재미있습니다.
특히 '나나시로 렌 블로그' 속 그림에 대한 수수께끼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하나하나의 그림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그림에 포함된 번호의 동그라미를 기준으로 크기를 맞추고, 번호대로 겹치면 무서운 그림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산모 배에서 아이를 억지로 꺼내는 듯한 그림이지요.
미우라 요시하루 사건에서의 그림도 흥미롭습니다. 보이지 않는 풍경 그림을 왜 그려서 남겼을까?라는 수수께끼인데, 이는 사망 시각이 조작되었을거라는 증거로 그림을 남겼다는 다이잉 메시지로 설명됩니다. 미우라가 먹은 하나야기 도시락의 소화 상태로 사망 시각이 추정되었는데, 그건 아침에 범인이 억지로 먹였던 것이고요.
그 외의 수수께끼들도 소소하지만 적절하게 사용됩니다. 나나시로 렌 블로그 속 글을 통해 드러나는 또다른 동거인, 미우라 사건에서 범인이 팥빵과 침낭을 가져간 이유 - 전날 저녁에 미우라가 먹은건 돈가스 샌드위치였고, 침낭으로 하룻밤을 보냈기에 범인은 이를 숨기기 위해 샌드위치와 함께 샀던 팥빵과 침낭을 가지고 사라졌던 것. 범인이 먹을걸 전부 가져갔다고 속이기 위해서, 그리고 침낭은 잤다는 흔적이 남아있어서 가져갈 수 밖에 없었다 -, 연약한 여자가 미우라와 이와타를 살해할 수 있었던 방법 - 침낭에서 자던 피해자들이 나올 수 없게 침낭 자체를 묶어버렸다 - 등이 그러합니다. 유타의 엄마로 보였던 나오미가 할머니라는게 밝혀지는 이야기는 서술트릭 기법이 사용되어 재미를 더해주고요. 나오미가 범행을 저지른 동기도 앞서의 사건으로 설득력을 높여주며, 사뭇 달라 보이는 이야기가 결국 하나로 묶이는 구조도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전작은 인터넷에 올렸던 상상에 허황된 설정이 결합되어 있을 뿐인, 완성된 소설로는 보기 어려운 망작이었던 반면에 이 작품은 최소한 한 편의 완성된 소설입니다. 실력이 많이 늘었네요.

하지만 그림을 가지고 풀어내는 수수께끼 자체만큼은 주택 평면도에서 기묘한 범행을 추리해내는 전작이 더 괜찮기는 합니다. 이 작품에서의 그림 수수께끼는 재미는 있는데 상황 자체가 억지스럽기 때문입니다. 유키가 그린 그림을 결합한다는 아이디어는 좋아요. 하지만 이렇게 복잡하게 그림을 남길 이유는 알기 힘듭니다. 그냥 남편에게 사실을 고백하면 됐을 겁니다. 왜 가만히 죽음을 받아들였을까요? 또 이 그림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낸들, '아이를 낳다가 죽는 미래'로만 보일 뿐입니다. 특별한 범죄를 나타낸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프로 일러스트레이터였던 유키가 그린 기도하는 모습의 여성이 '나오미'였다는걸 남편이 눈치채지 못한 것도 설명되지 않고요. 유타가 묘비를 그리려다가 지운 이유도 잘 모르겠습니다.
미우라 사건의 풍경화는 더 억지스럽습니다. 나오미가 풍경화를 눈치챘지만, 오히려 '알리바이가 있는 오전에 사건이 일어났다는 증거'로 삼기 위해 남겨두었다는게 특히 그러합니다. 용의자 중 그 시간에 알리바이가 없는건 유키 뿐인데, 애초에 유키가 알리바이가 없다는걸 이 시점에 나오미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흉폭하게 사체를 훼손했다 한 들, 1992년의 법의학이 사망 추정 시각을 단순히 소화 상태에만 의지해 발표했다고 보기도 어렵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단점들은 있지만 흥미로운 소재를 잘 풀어냈다는건 분명합니다. 작가로서 실력이 일취월장했으니, 다음 작품도 기대되네요.

2022/03/05

미스테리아 35호 - 미스테리아 편집부 : 별점 2점

미스테리아 35호 - 4점
미스테리아 편집부 지음/엘릭시르

별로 관심은 없었지만, 알라딘 온라인 중고로 미스테리아 36호를 사다가 곁다리로 구입하였습니다. 배송비를 내지 않기 위해서였지요.
관심이 없었던건 '少年'이라고만 적혀있는 뭔지 모를 특집 때문이었는데, 읽어보니 역시나였습니다. 제목의 소년은 <<20세기 소년>>에서 따온 것으로, <<20세기 소년>>에서 중요하게 언급되었던 오사카 만국박람회, 그리고 올림픽과 1970년대 전기 소설의 유행을 다루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도 잘 모를 정도로 두서없는 글들이더군요. 전기 소설에 대한 부분만 괜찮았는데, 차라리 이 부분만 조금 더 깊게 파고드는 특집을 꾸미는게 훨씬 나았을 겁니다.
뒤이은 '피서지에서 생긴 일'이라며 휴가 여행에서 생기는 사건들을 다룬 글은 완전히 뜬금없었어요. 앞의 글들과 맥락이 맞지도 않았을 뿐더러, 소개되는 작품 절반 이상이 크리스티 여사님 작품들이라 딱히 건질게 없었습니다. 소개라도 다양했더라면 좋았을텐데 말이지요.

그나마 여기까지는 추리 문학 애호가로서 참고 볼만한 내용이기는 했는데, 영화 <<스파이의 아내>>에 대한 정성일 평론가의 27페이지에 달하는 리뷰와 분석은 지루함의 끝판왕이었습니다. 보지도 않았고, 볼 생각도 없는 영화 리뷰가 재미있을리도 없지만, <<미스테리아>>라는 잡지에 이렇게 많은 분량으로 소개될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더군요, 이 영화가 정통 추리물이거나, 혹은 그 쪽 장르에 부합하는 영화일까요?
그 외의 글들도 대부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제가 쓰는 글과 코드가 비슷해서 좋아하는 정은지 작가의 '미스터리 속 음식 이야기'가 이번에는 피터 윔지 시리즈 전반을 다루는데 눈여겨 볼 부분이 많있습니다. 저도 미스터리 속 샌드위치에 대한 짤막한 글을 써볼까 하고 있었는데, <<부자연스러운 죽음>>에서 샌드위치가 결정적 단서라는 글이 특히 눈길을 끌었고요. 전자책으로 출간된 모양인데, 이번 주말에 읽어봐야 겠습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특집과 인터뷰, 리뷰 등 기사 대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아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 정도? 중고책으로 저렴하게 구입해서 별다른 내상은 없기는 한데, 앞으로는 특집이 별로면 절대 구입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수록 단편의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해피엔딩>> 서미애
데이트 폭력을 그린 단편. 전기 충격기로 디지털 도어 잠금을 풀 수 있다는 생활 상식(?) 말고 기억에 남는 부분은 없었던 단편. 전개가 너무 뻔한 탓이었습니다. 도무지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탐정이 살인하는 법을 배우다.>> 곽재식
1949년, 탐정은 친분이 있던 이 선생님 행사에 게스트로 초대되었다. 이 선생이 완전범죄 비결을 탐정에게만 - 관객들에게 알려주면 완전범죄가 늘어날거라는 이유로 - 알려주고, 탐정이 비결은 그럴듯했다고 인정하며 마무리되는 행사였다. 그 뒤 누군가 탐정을 납치했다. 완전범죄 비결을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는 탐정에게 협박과 고문을 가했고, 탐정은 '거래'를 위해 믿을만한 사람이 필요하다며 유명한 해결사 황금지네의 전화번호를 건네주었다. 그러나 전화를 받고 나타난건 복수를 위해 황금지네를 쫓던 사채업자 용산쌍룡이었다....

해방 직후를 무대로 해결사 황금지네, 황금지네에게 원한이 있는 사채업자 용산쌍룡, 정체불명의 남자와 탐정, 완전범죄에 대해 떠벌이는 전직 형사 이선생 등 기묘한 등장인물과 완전범죄 좌담회라는 비현실적인 설정이 가득했던 작품. 뭔가 만화같기도 했는데, 이런 설정을 잘 살린 묘사만큼은 일품이었습니다. 특히 가난하지만 입담하나는 최고인 탐정 캐릭터 묘사가 괜찮았어요. 이 선생이 황금지네였다는 반전도 나쁘지는 않았고요.

그러나 완전범죄 계획은 실망스러웠습니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낯선 승객>> 등에서 익히 보아왔던, 일종의 살인 대행업을 조금 키운 형태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아이디어를 다크 웹 형태로 운영한다는 <<디 아더 피플>> 속 설정과도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양념 정도라면 모를까, 비중있게 가져갈 설정은 아니었습니다. 이보다는 차라리 범죄자들끼리 쫓고 쫓기는 구도를 조금 더 정교하게 배치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래도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범죄물이라는건 분명합니다. 시리즈를 계속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으니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3시 정각>> 코넬 울리치
시계 장인 스텝은 아내의 불륜을 눈치챈 뒤, 그녀를 지하실에 설치한 폭탄을 터트려 죽일 계획을 꾸몄다. 이를 위해 오랫동안 조금씩 화약을 모으고, 장치를 만들어나간 끝에 마지막 D-day에 맞춰, 지하실에 잠입해 자명종을 셋팅했다.
그러나 스텝은 집에 들어온 강도들에 의해 지하실 기둥에 묶이는 신세가 되어버리는데....


스스로 설치한 시한 폭탄 타이머가 눈 앞에서 움직이는걸 보는 상황의 묘사가 실로 일품인 작품. 왜 코넬 울리치 (윌리엄 아이리시)가 서스펜스 스릴러의 제왕인지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명편이었습니다.
지하실에서 아내의 불륜이 사실이 아니라는걸 깨닫고 개과천선하는 장면에서 시작해서, 가스 검침원과 공놀이하던 꼬마를 통해 어떻게든지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는 과정의 빌드업이 특히 대단했어요. 희망을 아주 약간 주었다가 곧바로 빼앗아버리는 장면을 이렇게 잘 묘사할 수 있는 작가가 또 있을까요?

스텝이 급작스럽게 강도들에 의해 갇혀버린다는 작위적인 설정, 그리고 결국 스텝은 미쳐버렸고, 아내가 화약을 모르고 버린 탓에 폭발은 없었다는 다소 진부했던 결말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래도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2023/11/19

식민지의 식탁- 박현수 : 별점 4점

식민지의 식탁 - 8점
박현수 지음/이숲

일제 강점기 시대 발표되었던 문학 작품들을 통해 당시의 먹거리, 식문화 및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고찰하도록 해 주는 미시사, 식문화, 인문학 서적.

일제 강점기 시대는 관심이 많아서 예전부터 이런저런 미시사 서적을 읽어왔었는데, '문학 작품'을 가지고 식문화를 조망하는 책은 처음 봤습니다. 크게 10개의 작품으로 목차는 구분되어 있는데, 실제로 등장하는 작품은 훨씬 더 많습니다. 이광수의 "무정", 이상의 "날개",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김유정의 "동백꽃", 심훈의 "상록수" 등 누구나 아는 유명 작품들에서 이름 모를 작품까지 그 폭도 굉장히 넓고요. 
샌드위치, 우동, 설렁탕 등의 요리와 관부 연락선 내 식당, 선술집, 카페와 바, 시골 주막, 백화점과 호텔, 명치제과 등의 장소, 그리고 요리의 가격과 그 유래, 당시 레시피까지 심도깊게 알려줘서 자료적 가치도 높습니다. 여러 작품들에서의 해당 요리와 장소에 대한 묘사를 뽑아내어 생생하게 알려줌은 물론이고, 관련된 다른 자료들도 충실히 소개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그래서 선술집이 술 한 잔을 시키면 안주 하나가 공짜였다, 서울 시내에서 약수를 돈을 받고 팔았다, 당시 '지짐이'는 찌개와 국 사이에 위치한 국물 요리였다, 식민지 조선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위스키 중 하나는 '화이트 호스'였다는 등 새롭게 알게된 지식도 많습니다. 김남천의 "사랑의 수족관" 속 묘사를 통해 당시 커피에 설탕을 넣어 먹는게 일반적이었다는 것도 그러하고요. 하긴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다방' 이란 곳에 가면 항상 설탕 단지가 놓여있었지요.
또 조선 최고의 고급 식당이었다는 조선호텔의 1936년 정통 코스 순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래와 같이 가짓수가 다소 부족하지만, 지금 보아도 손색없는 구성이더라고요. 1936년에 조선에서 자몽 소르베라니!
  1. 애피타이저 : 콘소메와 레터스 샐러드
  2. 메인요리 : 오리간 구이와 로스트 비프
  3. 디저트 : 자몽 소르베와 바닐라 아이스크림
아침, 점심, 저녁 각각 1원 50전, 2원, 3원 50전으로 현재 물가로 환산하면 45,000원에서 105,000원 정도라는 가격도 꽤 상식적이고요.
그 외에도 송이 산적 레시피는 새송이 버섯으로 대체해서 한 번 도전해보고 싶어지는 등, 제 흥미를 끈 내용은 굉장히 많습니다.

당시 시대상을 작품 속 인용하는 부분으로 분석하여 알려주기도 하는데, 심훈의 "상록수"에서 동혁과 영신을 초대한 백 선생이 입만 살아있는 속물이었다는건 그녀가 대접한 카레라이스, 하이라이스 등으로 알 수 있다는 식입니다. 농촌 계몽을 부르짖지만, 본인은 부유한 생활을 하면서 그걸 과시까지 한다는걸 잘 드러내기 때문이거든요. 어린 시절 "상록수"를 읽었을 때에는 카레라이스가 '새로운 화양절충'을 대표하는 음식이라는걸 몰랐었기에 저런 은유나 비유를 잘 알 수 없었는데, 확실히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갖추고 있느냐가 작품을 해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영신이 일본에 갔다 온 뒤, 선물로 가지고 온 바나나를 잘게 썰어 아이들에게 먹여주었던 장면만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만큼 귀했다는건데, 이렇게 직접적으로 묘사되지 않으면 저는 잘 이해할 수 없었던 거지요. 조금 부끄럽네요. 앞으로 좀 더 책을 생각하면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다른 일제 강점기를 소개하는 책들과 겹치는 내용이 많은건 다소 아쉬웠습니다. 예를 들어 바와 카페는 이미 많은 책을 통해 접했었습니다. 이 책처럼 문학 작품을 이용하여 소개해 준건 아니지만요. 낙랑파라 역시 마찬가지고요. 또 시골 주막의 풍경 등은 주제와 조금 벗어나는 이야기였으며, 가끔 저자의 주장이 뭔가 촛점을 벗어난다는 느낌을 주는 부분이 있다는건 단점입니다. 샌드위치와 된장찌게의 비유에서 갑자기 레비스트로스의 요리의 삼각형으로 튀는 부분처럼요. 그냥 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이는게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장점이 훨씬 더 많은 책인건 분명하기에, 별점은 4점입니다. 일제 강점기 시대 식문화에 대해 관심이 있으시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0/02/09

타르트 타탱의 꿈 - 곤도 후미에 / 문기업 : 별점 2.5점

타르트 타탱의 꿈 - 6점
곤도 후미에 지음, RYO 그림, 문기업 옮김/영상출판미디어(주)

비스트로 "파 말"은 미후네 셰프와 요리사 시무라, 소믈리에 가네코 씨와 갸르송인 다카쓰키 도모유키 4명만으로 운영되는, 카운터 일곱 석, 테이블이 다섯 개 뿐인 상점가의 작은 프렌치 레스토랑이다. 투박하고 소박하지만 맛있는 요리를 그다지 비싸지 않은 가격에 내 놓아 인기가 많은 가게.
이 곳에 온 손님들이 이런저런 경험담, 과거 일화를 이야기하면, 무뚝뚝한 미후네 셰프는 항상 그만의 추리로 손님들의 궁금증을 해결해 준다.

곤도 후미에의 프렌치 비스트로를 무대로 한 일상계 미스터리 연작 단편집입니다.

저자 곤도 후미에의 일상계는 이전에 "샤를로트의 우울"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딱히 좋은 작품은 아니었지만 디테일한 묘사와 번득이는 재치는 느낄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프렌치 비스트로를 무대로 여러가지 요리들이 주요 소재라는 점에서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이라는 추리 소설과 요리에 대한 책을 쓴 작가라면 읽어봐야 할 것 같아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특정 가게의 주인이나 능력있는 종업원이 방문한 손님들의 수수께끼를 해결해 준다는 일상계 추리물은 정말 수도 없이 많습니다. 가게도 서점, 헌책방, 사진관, 중고매장이나 골동잡화점과 같이 다양하지요. 하지만 절대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술집이나 음식점입니다. 화과자점니혼슈 바도 포함해서요. 아무래도 주인과 손님과의 대화가 다른 가게들보다는 더 활발하게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래도 음식보다는 손님이 가져온 수수께끼가 중심인 작품들이 많은데 반해, 이 작품은 프렌치 비스토로라는 장소와 요리의 특징을 살린 이야기가 많아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몇몇 이야기는 아이디어도 돋보였고요.

그러나 모든 이야기가 좋은 수준이냐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또 "파 말"의 손님들이 주인에게 고민거리를 이야기하지 못해 안달난 것 처럼 보이는 작위적인 전개도 거슬렸어요. 추리를 시작하기 전에 고민거리가 있는 손님들에게 셰프 특제 뱅쇼를 서비스하는 단계 역시 폼은 나지만 작위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뻔한 캐릭터도 감점 요소에요.

그래도 이 정도면 다음 권도 찾아서 읽어볼 만한 이야기라 생각되네요. 가벼운 일상계를 좋아하신다면 한번 쯤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이야기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타르트 타탱의 꿈"

다카라즈카 연극 배우인 나쓰미, 아니 구시모토 씨가 니시다 씨와 결혼한 뒤 연기를 그만둔다고 하자, 그녀의 팬이었던 여자아이는 앙심을 품었다. 마침 약혼자 니시다 씨가 프랑스 요리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자, 요리 학원에 다니던 여자 아이는 자신이 만든 요리를 나쓰미가 만들었다고 하고 대접할 것을 제안했고, 이를 나쓰미는 기쁜 마음으로 승낙했다. 그러나 이는 함정으로, 여자 아이는 니시다 몫의 전채 주키니와 게 갈레트에 날달걀 껍데기를 갈아 넣었다...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로 표제작이기도 합니다. 이야기의 소재는 제목 그대로 타르트 타탱으로, 미후네 셰프는 배탈이 났다는 손님 니시다 씨의 이야기를 듣고 그가 먹은 타르트 타탱이 이상하다는걸 간파하고 진상을 추리해냅니다. 이상한건 오븐에서 구워지던 타르트 타탱의 캐러멜색이었지요.

그러나 추리와 전개가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범인인 소녀를 바로 잡아온 것도 작위적이지만, 핵심 단서인 캐러멜리제 된 타르트 타탱이 오븐에서 보였던게 저는 그리 이상하다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니시다씨가 다 구워져서 먹기 직전인 상태를 봤을 수도 있으니까요.
또 구시모토 씨가 향신료 강한 음식을 싫어한다는 복선이 등장하기는 하나, 니시다 씨와 확실하게 음식을 나누어 먹는게 절대적이지 않았으리라는 점도 아쉬웠어요. 곧 결혼할 연인과 둘만 나누어 먹는 식사에서는 얼마든지 변수가 발생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지나치게 프렌치 비스트로를 염두에 둔 작위적인 이야기입니다.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로뇽 드 보의 결의"

편식이 심한 가스야 씨는 "파 말"의 골칫덩이 손님으로 항상 똑같은 미녀와 함께 찾아와 온갖 투정을 부려 셰프를 곤란하게 만들곤 했다. 그러나 어느날 셰프가 만든 특선 요리에 감탄하고, 그 모습을 본 동행했던 미녀 오케타니 유리코는 따로 시간을 내어 미후네 셰프를 만나 큰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가스야 씨와 불륜 관계인데, 아내와 맞서 싸울 용기를 얻었다고. 이유는 그의 아내 요리는 정말로 심각했고, 재료를 맛있게 하려는 고민이 전혀 담겨있지 않았기에 유리코는 아내가 가스야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미후네 셰프는 이를 반박하고, 얼마 뒤 사랑에 실패하여 찾아온 유리코에게 자신이 생각한 진상을 들려주는데...

가스야씨의 극단적인 편식부터가 작위적이지만, 가스야 씨가 맛없는 아내의 요리를 먹는게 사랑이라는 진상도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사랑한다면 영양소가 풍부한 맛있는 요리를 해 주면 되잖아요? 하다못해 먹을 수 있는 재료에서나마 많은 영양소를 얻었으면 하고 바랬다면 말이지요. 양파나 토란을 물에 담근다고 영양소가 유의미할 정도로 빠질 것 같지도 않고요. 게다가 불륜녀가 자신의 불륜과 결심을 비스트로 셰프에게 이야기 한다는 것 역시 이해할 수 없는건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어떤 면에서도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운 졸작으로 수록작 중 워스트입니다.

"갈레트 데 루아의 비밀"

크리스마스에 요리사 시무라의 부인인 샹송 가수 아사미의 공연이 취소되자 "파 말"의 셰프 미후네는 자신의 가게에서 공연할 것을 부탁했다. 공연은 성공적으로 끝나고, 영업 후 관계자들만 모여 조촐한 크리스마스 파티를 가졌다. 미후네 셰프가 신 메뉴로 개발한 갈레트 드 루아를 내 놓자, 아사미는 예전 프랑스 파리 유학 시절에 있었던 미스터리를 풀어 놓는데...

오래전, 시무라가 만들었던 갈레트 데 루아 속 페브(도자기 인형)가 사라진 사건의 진상을 풀어내는 이야기입니다. 아사미를 마음에 들어했던 티에리로부터 그녀를 지키기 위해, 시무라가 페브가 자신이나 그녀에게 가도록 케이크를 구워냈고 자기가 당첨되자 몰래 먹어버렸다는게 진상입니다. 파티에 참석했던 파트리스, 파트리스의 여자 친구인 주디, 시무라에게 티에리가 페브 당첨 시 테이블 아래 쪽으로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지요. 당첨되면 그날의 왕이 될 수 있어서 티에리는 그 기회를 이용해 아사미와의 사랑을 성사시키려 했거든요.

그러나 유일한 단서는 갈레트 데 루아가 '못 생겼다'는 것 정도라서, 이걸로 추리를 이끌어내는건 과장이 심합니다. 또 페브가 어디로 이동했는지도 아몬드 크림이 한쪽으로 쏠리기 때문에(오븐의 쟁반을 기울여 놓아서) 조금 부풀어 있는 곳을 찾으면 알 수 있다고 했는데, 이를 몸수색까지 감행한 모든 파티 참석자들이 무심히 넘겼다는 것도 솔직히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마지막으로 '도자기 인형'을 삼키는게 과연 가능했을지도 잘 모르겠고요.

그래도 크리스마스 파티와 특별한 케이크라는 주제는 좋고, 사랑 이야기에 해피 엔딩이기까지 하니 마음은 푸근해지네요. 젊은 청춘이라면 사랑을 위해서 도자기 인형정도 소화는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최소한 전작들보다는 나았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오소 이라티를 둘러싼 불화"

와키타라는 손님이 이틀 연속 "파 말"을 찾아와서, 아내가 아무 말도 없이 집을 나갔다고 한탄했다. 이유를 물어보지만, 잼 한 통을 지인에게 준 것 밖에는 모르겠다는 와키타에게 미후네 셰프는 한 번 더 가게를 찾아줄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다시 "파 말"을 찾은 와키타에게 바스크 지방의 요리들을 대접한 후, 마지막으로 프로마쥬 서비스 단계에서 하드 치즈 한 개만을 내어 놓았다. 그것은 바스크 지방의 양젖 치즈 브르비였다. 그리고 미후네 셰프는 브르비에 검은 체리 잼을 발라 먹는 방법을 알려주며, 와키타 씨의 부인이 가출한 이유를 알려주는데...

이전 부부가 가게를 방문했을 때, 부인의 말을 와키타 씨는 제대로 경청하지 않았고 잼도 이전에 이야기했지만 와키타 씨가 염두에 두지 않았을 것이라는게 추리의 전부입니다.

그래도 단지 잼 한 통을 선물한 것 때문이 아니라, 과거 와키타가 "파 말"에서 부인과 함께 있을 때 보였던 무관심을 토대로 부인이 실망하여 가출한 이유를 밝혀낸다는 전개는 나쁘지 않아요. 한 번의 실수가 아니라 계속 누적된 불만이라는걸 효과적으로 전해주니까요. 잼을 곁들여 먹어야 맛있는 바스크 지방의 양젖 치즈 오소 이라티를 통해 이 과정을 드러내는 방식도 그럴듯했고요.

여러모로 작위적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라면 비스트로를 무대로 특정 요리가 활약하는 일상계 추리물로는 아슬아슬하게 합격선이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불가사의한 술주정뱅이"

젊은 화과자 가게 주인 하기노 씨가 고등학교 친구들과 "파 말"에서 식사를 즐겼다. 그러면서 그들은 학창 시절, 갑자원을 노리고 분투하던 야구부였는데 불미스러운 사고로 출장이 취소되었던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당시 말썽꾼이었던 2학년 '야마다'가 합숙소에서 술에 취한 채 난동을 부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철저한 신체 검사 및 소지품 검사, 출입 통제 및 감시로 술을 입수하기가 불가능했었는데 야마다가 술을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 방법은 아직까지 알 수 없었다. 미후네 셰프는 이 이야기를 듣고 이틀 뒤 가게를 다시 방문해 줄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이틀 뒤 세 명에게 미후네 셰프가 내어 놓은 것은 냉장고에 들어있던 수박이었다.

수박에 구멍을 뚫어 독주를 집어 넣은 뒤 밀봉하고, 이를 배달시켰다는게 진상으로 설득력있는 동기, 그리고 충분히 실현 가능한 트릭이 잘 어우러진 작품입니다. 

딱 한 가지 아쉬웠던 건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요리가 중요하게 활용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미후네 셰프가 이 트릭에서 영감을 얻어 '술주정뱅이 수박 프루트 샐러드'라는 새로운 디저트를 만들기는 하지만, 정통 프렌치도 아닐 뿐더러, 딱히 새로운 요리로 보이지도 않으니까요. 오히려 하기노 씨가 만든다는 '매실주 수박이 들어간 미쓰마메' 가 더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일상계 추리물로는 거의 완벽합니다. 이 단편집에서 거의 유일하게 트릭다운 트릭이 등장한다는 점도 높이 평가하고 싶네요.별점은 3.5점입니다.

"텅빈 카슐레"

단골인 편집자 미키모토 씨가 유명 에세이스트 데라카도 고유키 씨와의 식사 예약을 하며, 거위 콩피로 만든 카슐레를 주문했다. 미후네 셰프는 데라카도 고유키 씨가 실연했던 과거를 그린 에세이 "최악의 카슐레"를 통해, 그녀가 맛 보았던 최악의 카슐레에 대해 알게 되었다. 식사 당일, 셰프는 요리와 함께 5년 전 그녀의 애인 앙리가 준비했던 거위 콩피 카슐레의 진상에 대해 알려준다. 

최악의 거위 콩피 요리는, 메인인 푸아그라를 빼 내고 남은 오리로 만든거라 맛이 없었다는게 진상입니다. 앙리는 푸아그라를 이용하여 제대로 고유키 씨 생일을 축하해줄 생각이었던거죠. 우리나라 식이라면, 메인인 생선 요리를 준비할 때 딸려온 서더리로 먼저 매운탕을 끓여 내 놓았다는 식으로 변주할 수 있겠죠? 이렇게 특정 요리를 아주 잘 활용하고 있으며, 이야기의 설득력도 높아서 만족스러웠어요. 손님이 고민거리를 자의적으로 털어놓는게 아니라, 고유키 씨의 기묘한 주문과 그 이유를 전해듣고 미후네 셰프가 그녀가 썼던 에세이를 읽어본 뒤 추리를 펼친다는 전개도 설득력있고요.

앙리가 무려 5년 동안 연락을 하지 못해 전전긍긍했다는건 인터넷과 SNS가 널리 활성화 된 작금의 상황에 잘 맞아 떨어지지는 않습니다만, 단점은 사소할 뿐입니다. 수록작 중 최고로 별점은 4점입니다.

"나누어지지 않는 초콜릿"

"파 말"에 방문한 커플이 서로 싸우는 심각한 상황에서, 남자는 "파 말"에서 내 놓은 봉봉 오 쇼콜라가 맛없다고 지적했다. 쇼콜라는 외부에서 구입한 제품으로 실제로 맛이 변했던게 맞았기 때문에, 미후네 셰프는 남자의 정체를 궁금해하던 차에 잡지 기사를 통해 그 남자가 최근 유명한 쇼콜라티에 쓰루오카 다다시라는걸 알게 되었다.

갸르송 다카쓰키 토모유키는 쓰루오카의 가게 "놈브르 프르미에"를 방문하여 셋트 메뉴를 구입해 오고, "파 말" 관계자 모두 맛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 리플릿을 통해 특이한 사실을 알게 된다. 세트 메뉴의 구성이 2개, 3개, 5개, 7개......에서 41개로 불규칙한 숫자로 구성되어 있던 것이었다. 요리사 시무라 씨는 이 숫자들이 소수라는걸 알아낸다. 그런데 왜 세트 메뉴를 소수로 구성했을까? 

쓰루오카와 싸우던 여자는 그의 동생으로, 암에 걸려 임종을 앞 둔 어머니 병문안을 오빠에게 부탁하고 있지만 거절당해서 울었던 겁니다. 그러나 쓰루오카가 불효막심해서 그런건 아닙니다. 어머니를 사랑한 탓에 마음의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였던거죠. 이는 세트 메뉴 구성으로 밝혀집니다. 어머니가 쓰루오카를 비롯한 아이들에게 초콜릿을 나누어주고 딱 한 개만 남았을 때만 먹었다는 과거에서 비롯된 것이거든요. 즉, 쓰루오카는 어머니가 어떻게 초콜릿을 나누어 주어도 꼭 먹을 수 있도록, 어떤 숫자로 나누어도 1이 남게끔 소수로 구성한 것입니다.

일단, 소수라는 숫자를 이런 이야기에 활용한건 정말 대단합니다. 제가 여태까지 보았던 일상계와 수학 관련 아이디어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뛰어나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이 세트 메뉴 구성이 어머니에 대한 쓰루오카의 애정을 잘 나타내고 있다는건 대충 이해가 되지만, 정작 당장 병문안을 가지 않는걸 단지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을 것이다' 정도로 퉁치고 넘어가는건 그다지 매끄럽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사랑한다면 중간 과정이야 어쨌건, 만사 젖혀두고 병원으로 달려갔어야 맞는거잖아요?

한마디로 빼어난 아이디어를 이야기가 잘 받쳐주지는 못한 작품이에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018/09/16

역사를 만든 백가지 레시피 - 윌리엄 시트웰 / 안지은 : 별점 2.5점

역사를 만든 백가지 레시피 - 6점
윌리엄 시트웰 지음, 안지은 옮김/에쎄

제목 그대로 특정 역사를 대표하는 요리사 - 미시사 서적입니다. 레시피 소개에 이어, 해당 레시피가 어떤 역사를 만들었는지 여러 페이지에 걸쳐 설명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당연하겠지만 상상 속 레시피는 아니며 모든 레시피가 명확한 근거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첫 번째 레시피인 고대 이집트의 빵은 룩소르 세네트 묘실 벽 기록이 근거이며, 두 번째인 바빌로니아의 카나수 수프는 설형문자 점토판이 출처라고 하네요.

레시피만 보면 이게 뭔가 싶기도 한데, 읽어보면 "역사"를 만들었다는 제목에 수긍이 갑니다. 인류사, 아니면 최소한 요리계에 영향을 준 것들 중심으로 수록되어 있는 덕분입니다. 고대 로마 카토의 햄 레시피는 그 자체가 특별한건 아니지만 이를 '염장 보관' 과 연결하여 그 중요성을 드러내며, 로마 문화의 절정은 소스가 가장 맛있었던 시대였다는 해석처럼 설명도 아주 그럴듯합니다. 소개되는 소스는 후추, 로바지, 파슬리, 말린 박하, 회향, 포도주에 적신 꽃, 구운 견과류나 편도 열매, 소량의 꿀, 포도주, 식초를 섞은 수프를 가열하여 휘젖다가 녹색 셀러리 씨와 개박하를 넣는 소스인데, 이 정도의 재료를 갖추어 요리할 정도의 문명이라면 대단히 번성한건 분명할테니까요.
그 외에도 샌드위치가 이동이 잦아진 시대에 유행했다는 해석, 키치너 박사의 레시피와 책을 통해 영국의 쓸데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거추장스러운 형식주의를 드러내고, 카렘의 유명한 과자 레시피로 프랑스 요리의 화려함을 극명하게 알려주는 등 볼거리가 많습니다.
레시피를 통해 새로운 식재료가 전파된 것, 그리고 요리가 국가와 대륙 사이로 이동이 이루어 졌다는걸 당대 문화 교류사와 엮어 설명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초콜릿의 전파와 식민주의를 연결하는게 대표적인 예이고요.

근대 이후는 라디오 방송에서 시작된 쿡방으로 레시피가 널리 알려지고, 전자 레인지로 대표되는 여러 도구들의 도입을 통해 획기적으로 식생활이 변하는 과정, 전쟁 당시 배급제로 빚어진 열악한 레시피들, 풍요의 시대를 거쳐 즉석 식품의 유행, 그리고 방송과 언론, 미슐랭 가이드를 통해 연예인 수준의 유명인이 된 셰프들의 등장, 각종 먹거리의 범람에 대한 반동과 환경 운동으로 등장한 채식주의와 슬로 푸드 운동, 인터넷과 앱으로 매체가 변하고 마지막에는 다시 중세의 레시피 재해석 소개로 마무리됩니다.
절대적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실제 역사의 흐름과 요리, 레시피가 특별한 해석 없이도 대부분 일치하고 있다는게 재미있어요. 브리아 샤바랭의 말 처럼 "무엇을 먹는지"를 통해 그 사람과 시대를 알 수 있다는 뜻이지요. 그나저나, 다시금 중세 요리로 복귀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추세라면 중세의 그 으리으리하고 시끌벅적했던 쇼와 같은 만찬이 다시 등장하지 말라는 법도 없겠네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직접 연출을 지휘하기도 했다는 르네상스 연회는 항상 궁금했었는데, 곧 실제로 보게 될 지도 모르겠어요.

이렇게 세계의 역사와 밀접하게 연관된 레시피를 다루고 있기에 당연히 범위도 넓습니다. 고대의 경우는 중국을 포함해 모든 고대 문명의 레시피가 수록된건 물론이고 역사적으로도 고대 - 중세를 거쳐 타이방 이후 체계를 갖추는 과정, 중세 이후 근대, 현대, 그리고 지금 현재까지를 대표하는 레시피가 소개됩니다. 타이방과 카렘에서 줄리아 차일드, 제이미 올리버 등 유명 셰프들의 레시피도 많으며 지금도 널리 알려져 있고 많이 먹는 에그 베네딕트, 흘렌다이즈 소스, 피치 멜바 등 친숙한 요리 소개도 반가왔어요.

하지만 주로 "영국" 기준으로 쓰여진건 아쉬웠습니다. 세계사와 관련된 요리를 다루는 것도 앞부분의 잠깐일 뿐 결국 영국의 요리, 영국의 요리사, 영국의 식당이 관련된 레시피 비중이 높은 탓입니다. 근대 이후에는 동양권 요리는 찾아보기도 힘들고요. 그리 큰 비중은 아니더라도 일본의 제국주의의 시작과 "고기 감자 볶음" 정도는 연결해서 설명해줄 만 했을텐데 말이지요.
그리고 번역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읽기 쉬운 글도 아니었습니다. 도판이 부실하여 글만으로 요리와 그 맛에 대해 상상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딱딱하고 단순한 번역투 문체가 상당히 거슬렸어요.
아울러 정말로 역사적인 레시피이냐? 라고 할 때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레시피도 제법 수록되어 있다는 점도 약점이에요. 어떤 역사를 대표한다거나, 요리 역사에 있어서 변곡점이 되었다거나 하는 레시피가 많은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기획 자체의 아이디어는 좋고 소장 가치가 있는 단락도 있지만 600페이지 가까운 분량 모두가 흥미롭지는 않습니다. 요리와 역사에 대해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괜찮지만, 재미가 있는 책은 아닌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025/08/15

리버스 - 미나토 가나에 / 김선영 : 별점 2.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명문 대학을 졸업했지만 작은 사무용품 회사에 근무하는 후카세에게는 숨기고 싶은 비밀이 하나 있었다. 10년 전, 대학 친구들 - 아사미, 다니하라, 무라이, 히로사와 - 과 떠났던 여행에서 술을 마신 친구 히로사와가 운전대를 잡게 하여 죽게 만들었던 사건이었다. 취미인 커피와 연인 미호코 덕분에 안정을 찾은 후카세에게 ‘후카세는 살인자다’라는 의문의 편지가 배달되었고, 다른 친구들에게도 똑같은 메시지가 공개적으로 뿌려졌다는 사실을 들었다.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낀 후카세는 휴가를 얻어 범인을 찾는 대신, 죽은 히로사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아보기 시작하는데...

"고백"으로 잘 알려진 미나토 가나에의 중편 소설입니다. 이전, 한 유튜버의 '결말이 충격적인 미스터리 5편'에 선정되었길래 관심을 갖고 있다가, 여름 휴가를 맞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후카세가 히로사와의 옛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히로사와는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탐색해 나가는 과정이 중심입니다. 때문에 정통 추리물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열등감으로 가득찬 후카세가 탐색을 통해 성장한다는 점에서 성장기로 볼 수도 있고요.
이 과정에서 모두가 의지했던 말이 없고 묵묵한 히로사와가 — "뽀로로"의 포비가 떠오르는 — 오히려 후카세나 후루카와처럼 존재감 없는 친구들에게 의지하고 있었다는게 밝혀지는건 신선했습니다. 꽤 묵직한 여운을 남기기도 하고요.

이러한 드라마 외에도 10년 전 사건을 고발하는 편지를 보낸 인물이 누구인지에 대한 수수께끼도 흥미롭고, 히로사와의 과거를 되짚는 여정도 군더더기 없이 빠르게 전개되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살인자라는 메시지를 보낸게 미호코라는 진상은 좀 아쉽습니다. 운과 우연에 의지한 측면이 많기 때문입니다. 후카세가 여자친구 사진을 친구들에게 공개했더라면 금방 들통났을테지요. 졸업 앨범을 통해 아사미의 동료 기다가 히로사와의 동창이라는걸 알아냈더라도 마찬가지고요. 그리고 히로사와의 연인이었던 미호코가 히로사와 사망 이후 후카세와 교제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도 억지스럽습니다.
이외에도, 미호코가 유독 후카세에게만 간접적인 방식으로 고발장을 보낸 이유도 명확히 설명되지 않고, 후카세가 진상 - 그들이 히로사와가 운전대를 잡게끔 만들었다 - 을 술술 털어놓은 것도 역시 잘 납득이 되지 않네요.

무엇보다도 미호코가 메시지를 보낸 동기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게 문제입니다. 메시지를 보낸게 자기라는게 드러나면 형사 처벌 대상이 될겁니다. 심지어 다니하라는 기차에서 밀치기까지 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려 10년 전 죽은, 잠깐 사귀었던 연인을 위해 증명도 하지 못할 범죄를 고발하려 한다? 전혀 와 닿지 않아요.

히로사와가 메밀 알레르기가 있었기 때문에 술이 아니라 후카세 만들어 준 메밀꽃 벌꿀 커피가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었다는 반전도 과합니다. 솔직히 나올 필요가 없었어요. 불운한 사고를 딛고 후카세가 한 뼘 성장해 가는 흐름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마무리가 가능했으니까요.
아울러 벌꿀을 넣은 커피, 지역 특산물 벌꿀 등의 언급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히로사와의 알레르기 설정이 반전 직전에야 언급된다는 점에서 치밀함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급작스럽기만 했어요.
한마디로, '결말이 충격적인'게 아니라 '충격적인 결말'을 위해 억지로 만들어낸, 강박에 가까운 반전일 뿐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인간 드라마에 가까운 작품으로, 미스터리적 재미보다는 인간 관계와 내면 심리에 집중한 구성이 돋보입니다. 흥미롭고 빠르게 읽히는 장점도 크고요. 다소 과했던 반전만 없었더라면 더 좋았을겁니다.

덧붙이자면, 벌꿀을 넣은 커피는 한 번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력적으로 등장하는데,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후속 권이 나온다면 소개해드리고 싶네요.

2023/08/19

일본 현지 빵 대백과 - 타쓰미출판 편집부 / 수키 : 별점 3점

일본 현지 빵 대백과 - 6점
타쓰미출판 편집부 지음, 수키 옮김/클

제목 그대로 일본 전국 각지에 있는 여러 빵집들의 대표 빵과 특징적인 빵들을 모아 놓은 빵 사진 도감. 모두 264종의 빵이 소개됩니다. 맛있는 빵들이 가득하니 보는 것만으로도 무척 즐거웠습니다.

목차는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됩니다. 특정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소울빵', 똑같은 빵이지만 지역별로 변주가 이루어진 빵들, 현지인들에게 사랑받는 동네 빵집과 대표 빵, 전국 어디에나 있는 일본의 대표빵으로요.

인상적이었던 건 일본의 크림 빵들은 크림이 정말 가득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식빵을 쓰는 크림빵들도 테두리까지 크림이 발라져 있던데, 이런건 많이 부러웠습니다.
여러가지 빵들의 탄생 비화 (?) 등 빵들의 역사가 소개되는 부분도 재미있었어요. 모리오카 시의 후쿠다 빵집에서는 50여가지의 크림을 가지고 주문을 받으면 바로 콧페빵에 발라 팔았는데, 어느날 따로 주문이 들어왔던 앙금과 버터를 실수로 함께 바른데서 탄생하게 유명한 '앙버터 빵' 이었다는게 대표적입니다. 야키소바 빵의 유래도 비슷한데, 1950년대에 야키소바와 콧페빵을 동시에 팔던 도쿄의 한 빵집에서 손님이 '번거로우니까 안에 넣어달라'고 한 데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카레빵은 도쿄 메이카도(현 카토레이)의 2대 점주가 1927년 실용신안등록한 양식빵이 원조로 추정된다는데, 이는 일본 카레빵 협회(별 협회가 다있네요)의 공식의견이라는군요. 그리고 내용물이 잘 보이도록 비닐에 넣은 삼각 샌드위치의 원조는 1967년의 산케이입니다. 대각선 45도로 컷팅했던 이유는 단면이 가장 길게 보이고, 양쪽 끝은 예각으로 먹기 편하며, 가운데 내용물을 듬뿍 넣을 수 있기 때문이라네요. 이게 이유가 붙을 정도로 획기적인 아이디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컬럼버스의 달걀같은걸 수도 있겠지요.

일본의 3대 간식빵도 상세하게 소개됩니다. 단팥빵, 잼빵, 크림빵인데 이 중 단팥빵과 원조인 긴자 기무라야 이야기는 다른 책에서도 많이 접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초창기 긴자렌가 거리에 있던 점포 사진 등 도판이 충실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잼빵도 기무라야에서 처음 만들었는데, 초창기에는 딸기가 귀해서 살구잼을 넣었고, 원형의 단팥빵과 구별하기 위해 타원형으로 만든게 지금 모든 잼빵의 원형이 되었다는군요. 크림빵은 신주쿠 나카무라야에서 처음 만들었는데, 창업자 부부가 슈크림을 먹고 그 맛에 감동하여 커스타드 크림을 빵에 넣은게 대성공을 거둔 것에서 시작되었고요.
그 외에 메론빵의 원조는 쇼와시대 초기 고베 빵집 긴세이도의 빵이었다는 등 다양한 정보가 가득합니다.

당연히 먹어보고 싶어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먹기 힘들 뿐더러 일본 여행을 간다해도 일본 전역에 걸친 빵집이 소개된 탓에 찾아보기 쉽지 않지요.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부분을 할애하여 '도쿄'에 위치한 빵집만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는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도쿄는 진입 장벽이 비교적 낮은 편이니까요. 소개된 빵집 중 아다치구 기타센쥬에 있는 '마루기쿠 베이커리'가 가장 땡겼습니다. 쇼와시대 레트로 빵 백화점 느낌이라는 말에 꽂혔거든요. <<맛의 달인>>에서 처음 접했던 시베리아(카스텔라 사이에 앙금을 샌드한 과자빵), 전국적으로 유명하다는 단팥빵이 끌리네요. 앞서 말씀드렸던 카레빵의 원조 카토레아의 카레빵도 놓칠 수 없고요. 여기까지 왔다면, 당연히 긴자 기무라야와 신주쿠 나카무라야에도 가 봐야겠지요.

그런데 읽다보니 이전에 읽었던 <<오이시이 빵>>에 나온 빵들이 많은 것 같아서 찾아보니 실제로 그러했습니다. 비교해보니 재미가 더 쏠쏠했어요. 출판사도 다르고, 책 성격도 좀 다르지만 두 책을 합쳐서 정보를 좀 더 보강하고, 목차를 빵 종류 중심으로 깔끔하게 정리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용어도 통일하고요. (같은 빵을 쿠페 빵 / 콧페빵으로 각각 소개함)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도감답게 딱히 남는건 없지만, 보기만 해도 즐거운 책입니다. 빵을 좋아하는 모든 분들께 권해드립니다.

2010/05/14

영화처럼 사랑을 요리하다 - 송정림 지음 / 전지영 그림 : 별점 1.5점

영화처럼 사랑을 요리하다 - 4점
송정림 지음, 전지영 그림/예담

도서관에서 이쁘장한 일러스트가 마음에 들어 읽게 된 책. 29편의 영화 줄거리와 함께 영화속에 등장한 요리 레시피가 실려있는 책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왕실망했습니다. 영화 줄거리는 좀 달착지근하게 썼다 뿐, 흔히 접할 수 있던 줄거리 요약과 별로 다르지 않은데다가 요리가 중요한 영화도 아닌데 억지로 요리 이야기를 끄집어낸게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프리퀀시"의 굴 튀김과 살사 소스,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샌드위치, "러브레터"의 샤브샤브 등등등... 영화는 보았지만 이런 요리가 등장하는 것 자체가 기억도 나지않는 사소한 음식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려니 억지스럽고 부자연스러웠어요. "레옹"의 흰 우유는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황당하기까지 했고 말이죠. 이런 식이라면 저도 끝도없이 쓸 수 있겠네요. 톰 행크스가 나왔던 "빅"의 콜라라던가...
그나마 영화와 요리가 매치가 되는 것은 "글루미 선데이", "카모메 식당', "집으로" 정도였습니다. "카모메 식당"도 이 책에서 예를 든 주먹밥보다는 시나몬 롤이 더 중요하다 생각됩니다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영화 줄거리 요약에 영화와 별 상관없는 요리 레시피가 부록처럼 실려있는, 구태여 같이 실어 놓을 이유를 찾기 힘든 책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1점 주려다가 일러스트는 마음에 들기에, 그리고 종이질과 책 만듬새는 좋았기에 0.5점 더 얹습니다.

2018/12/30

10년 만의 인사이트 밀 - 요네자와 호노부 / 최고은 : 별점 2.5점

The Incite mill 인사이트 밀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학산문화사(단행본)

2008년 발표된 작품입니다. 저 스스로는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 라고 부르는 장르물의 대표작이자, 요네자와 호노부의 출세작 중 하나이지요. 2010년에는 영화까지 제작되어 개봉되었을 정도로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연말을 맞아 책 정리를 하다가 10년만에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서 그런지,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아서 처음 읽는 것처럼 읽을 수 있었네요.

재미는 있지만 비현실적인 설정은 조금 거슬린다는 개략적인 느낌은 10년 전과 별로 다르지는 않습니다. 특히 이후 읽었던 다른 유사 장르물에서는 "일단의 무리를 폐쇄 공간에 모으는 이유"를 설득력은 떨어지지만 복수, 살육극의 중계 등으로 어떻게든 설명하려고 노력하지만 이런 내용을 전부 무시하고 "암귀관" 에서의 이야기만 묘사하는게 특이합니다. 문제는 선택과 집중 측면에서는 바람직할 수는 있는데 솢릭히 완성도 측면에서 좋다고 하기는 어렵다는 점이지요.
또 유사 장르물에 비하면 "암귀관" 에서의 게임 조건(?) 도 그다지 잘 짜여져 있지 않습니다. 작중에서는 니코틴을 가장한 "약살"이 파워 밸런스를 붕괴시킨다며 문제삼지만, 사실 전체적인 흉기의 파워 밸런스 자체가 문제인 탓입니다. 멋을 부리면서 유명 추리소설에 등장한 흉기를 배치하고, 이를 트릭으로 삼은건 그렇다쳐도 공기 피스톨과 보우건, 슬링샷같은 원거리 무기를 확보한 사람이 유리한건 당연하니까요. 밧줄이나 자살용 칼은 정말이지 이게 뭔가 싶네요.
그리고 10년 전에는 무심히 넘겼지만, 모든 식사가 포크나 나이프와 같은 흉기가 될 도구가 불필요한 샌드위치나 도시락으로 준비되었다는 이야기도 역시나 문제입니다. "젓가락"도 충분히 흉기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마지막 에필로그는 솔직히 불필요했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10년의 세월 동안 0.5점이 감점되었는데, 이는 보다 나은 다른 유사 장르물이 많이 발표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기 작가 요네자와 호노부 작품의 원형 중 하나로 다시 읽어도 충분한 재미를 선사하는건 분명합니다. 다만 유사 장르물에서 손에 꼽을 걸작은 아닌 것이지요. 이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020/08/17

나도 먹어봤다. 신라호텔 애플 망고 빙수

휴가철도 지나가네요.
지난 휴가 때 아이 병원 때문에 서울로 나갔다가, 갈 데도 없고 해서 신라 호텔에서 브런치 겸 애플 망고 빙수를 먹어 보았습니다. 몇일 전 일이지만 기념삼아 기록을 남깁니다.

식전 빵은 무난 했습니다. 한 번 리필이 된다는데 하지는 않았습니다.
파스타를 좋아하는 딸 아이를 위해서 주문한 파스타,
아내와 저를 위해서 주문한 클럽 샌드위치. 전부 무난한 맛이었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애플 망고 빙수! 6만원에 육박하는 가격도 놀랍지만, 확실히 맛은 있었습니다. 특히 저와 우리 딸은 망고의 끈끈한 식감을 좋아하지 않아서 망고를 잘 먹지 않는데, 그런 우리 부녀 입맛에도 맞을 정도로 망고가 정말 맛있더군요. 식감도 쫀쫀하고, 단 맛도 풍부하며 시원해서 정말 여름에 딱이었습니다. 빙수는 팥과 망고 셔벗을 별도로 얹어 먹을 수 있는데, 역시나 맛있었고요.
그런데 맛 보다는 유행하는 여름 행사?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희가 나올 때 대기가 무려 70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로 대기를 할 만한 맛은 아니지 않나 싶었는데 말이지요. 가격도 만만치 않으니, 저는 한 번 먹어본 걸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혹시라도 딸아이가 먹고 싶어 한다면 또 방문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다행히 또 먹고 싶다는 이야기는 아직까지는 하지 않는군요.

2024/01/12

일본 현지 아이스크림 대백과 - 아이스맨 후쿠토메 / 김정원 : 별점 1.5점

일본 현지 아이스크림 대백과 - 4점
아이스맨 후쿠토메 지음, 김정원 옮김/클

일본의 대형 제과사의 시판 제품이 아닌, 현지 밀착형 아이스크림 제품을 소개하고 있는 도감. 사진 중심이며 동일 제품의 다양한 변주를 함께 묶어 소개하는 구성 등 모든 점에서 같은 시리즈인 "일본 현지 빵 대백과"(이하 "빵 대백과")와 동일합니다. 

하지만 "빵 대백과" 보다는 별로였습니다. 소개되는 아이스크림들에 대해서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는게 가장 큽니다. 빵은 우리나라에서는 접하기 힘들고, 맛이 궁금한 빵들이 많았는데 여기 소개된 아이스크림들은 대체로 맛이 예상이 되었던 탓도 큽니다. 예를 들어 아래 나가사키의 카스텔라와 아이스크림을 결합한 카스텔라 아이스크림은 분명 맛있겠지만, 그 맛은 충분히 짐작이 되거든요. 저렴한 카스텔라와 투게더 아이스크림으로 비스무레하게 만들 수도 있을테고요.


상당한 분량으로 소개되는 아이스모나카는 '싸만코' 맛과 별로 다르지 않아 보였습니다. 빙수들도 마찬가지고요. 맛이 쉽게 연상되지 않는건 아래의 철 아이스 정도입니다만, 그리 먹고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네요.



또 "빵 대백과"는 삼각 샌드위치를 대각선 45도로 컷팅한 이유 등 여러가지 빵들의 탄생 비화와 같은 역사와 정보도 여러가지 알려주었던 반면, 이 책은 단순히 지역 특산품 소개에 그칩니다. 기대했던 정보는 말차가 들어간 소프트 아이스크림의 원조가 아래 스이교쿠엔의 '그린소프트'라는 것 정도 뿐이었습니다

소개되는 가게와 아이스크림들이 일본 지방에 특화되어 있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가고 싶어도 가기 힘든 곳들이 대부분이니까요. "빵 대백과"처럼 도쿄 중심의 가게도 몇 군데 소개해주는게 훨씬 좋았을겁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특정 분야에 특화된 도감임에도 불구하고, 제공하는 정보가 별로 매력적이지 못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그래도 휴양지 오키나와라면 한 번 가 볼 만하다 싶은데, 언젠가 가게되면 아래의 히가시 식당, 후지야는 꼭 들려볼 생각입니다. 마리야 유업 제품도 먹어보고요. 그게 과연 언제가 될지.....

2014/04/14

전쟁이 요리한 음식의 역사 - 도현신 : 별점 2점

전쟁이 요리한 음식의 역사 - 4점
도현신 지음/시대의창

전쟁과 관련된 음식들 및 해당 음식과 요리의 역사적 배경을 함께 소개해 주는 식문화사 서적이자 일종의 미시사 서적입니다.

전쟁 때문에 비롯된 음식들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루리라 기대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서 실망스러웠습니다. 전쟁으로 전파되거나 전쟁에서 요긴하게 사용되었던 음식과 요리들 소개가 없는건 아닌데, 억지로 끼워 맞춘 음식들이 대부분이었거든요. 예를 들면 바이킹이 뷔페와 샌드위치를 만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음식을 조리해 놓고 알아서 덜어 먹는 문화가 과연 바이킹만의 것이었을까요? 예전에는 다 그렇게 먹었을 것 같은데 말이지요. 심지어 전쟁과 전혀 관계가 없는 요리들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의 청어잡이는 청어가 돈이 되어서 잡았던 겁니다. 전쟁과는 관련이 없어요. 실제로 전쟁과 직접 관련되어 만들어진 음식은 오스만 제국을 물리친 기념으로 제빵사 피터 벤더가 초승달 모양을 본떠 만든 크루아상 정도 뿐입니다.

또한 다른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쉽게 얻을 수 있는 내용이 많이 실려 있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예를 들면 스팸 이야기는 너무 많이 접해 지겨울 정도지요. "오무라이스 잼잼"에서도 이미 충분히 다루어졌을 정도로요.

그래도 워낙 많은 음식들이 소개되기 때문에 건질 게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소설과 애니메이션 "보물섬"에서 묘사된, 당시 선원들이 럼주를 마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 - 물 보관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 - 라던가, 나치 독일에서 콜라를 구할 수 없게 되자 "환타"를 만들었다는 등의 이야기는 흥미로왔어요.

처음 알게 된 사실들도 많습니다. 예를 들면, '알라모 전투 이후 몰락해 미국에 망명한 산타 안나가 사진작가 토마스 애덤스에게 치클을 알려준게 껌의 기원이었다, 프렌치 프라이는 프랑스가 아니라 벨기에에서 시작되었다'가 그러합니다. 벨기에 뫼스 계곡 사람들은 원래 작은 물고기를 튀겨 먹었는데, 강물이 얼어버려 물고기를 잡을 수 없게 되자 감자를 길게 썰어 튀겨 먹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이는 세계 최초의 감자튀김이기도 하고요.

또한 탕수육이 청나라 말기에 외국인을 접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설은 진위 여부를 떠나 그럴듯했고, 채만식의 "태평천하"에도 언급될 정도로 탕수육이 일제 강점기 때 이미 널리 알려진 음식이었다는 사실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몇몇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있었어도, 전체의 가치를 끌어올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정말로 "전쟁"에 얽힌 음식들만 심도 있게 파고들었더라면 훨씬 나았을 것 같습니다.

2005/03/18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1,2,3,4,5- 더글러스 애덤스 : 별점 2.5점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세트 - 전6권 - 6점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김선형 외 옮김/책세상

영국인 아서 덴트는 자기의 집이 우회로 건설을 위해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목욕가운 차림으로 불도저 앞에 누워 있던 중 자신이 사실은 외계인이며 지구가 지금 파괴 직전이라고 주장하는 친구 포드 프리펙트에 의해 정말로 지구가 파괴되기 직전 함께 우주로 탈줄하게 된다.

그들은 자포드 비블브락스라는 외계인과 트릴리언 (트리시어 맥밀란)이라는 지구인 여성과 함께 은하계를 여행하며 모험을 하게 되며 그 와중에 지구가 사실은 은하계 제일의 컴퓨터가 우주와 삶에 대한 질문에 대해 "42"라는 답을 내 놓고, 그 질문의 본질을 대답하기 위해서 설계한 거대한 유기컴퓨터였었다는 사실, 그리고 유일한 생존자인 아서의 뇌 속에 그 해답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그 질문의 근본적인 답이 "6 곱하기 9" 라는 것을 깨닫고 황당해 하게 된다.

결국 이 질문에 대해 포기한채 과거의 지구에서 살아가게 된 아서 덴트는 우주의 종말을 가져오려는 크리킷 행성의 계획을 저지하기 위해 과거의 동료들의 모험에 휩쓸리게 되며 삶과 우주에 대한 진실한 해답을 알게 된다.

다시 살아난 지구로 돌아와 펜처지라는 묘한 여자와 사귀게 된 아서 덴트는 우주 창조 신의 메시지를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나며 우주를 여행하다가 차원이동의 실수로 펜처지를 잃고 좌절한 채 조난당하여 이름모를 별에서 "샌드위치의 대가"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어느날 자신이 기증한 정자은행의 정자로 수정된 자신의 딸을 데리고 트릴리안이 찾아오게 되고 지겨움과 외로움을 참지 못해 자신에게 배달된 궁극의 "안내서"와 함께 지구로 도망간 딸을 찾기 위해 포드 프리펙트와 함께 다시 지구로 되돌아가게 된다...

음, 일단 이쪽 바닥 팬들에게는 전설과 같이 전해지던 바로 그 책입니다. 이전 판본으로 어렵게 1,2권만 헌책방에서 구했었는데 읽지 않고 있다가 이번에 (아마도 영화화 소식때문이겠지만) 전권이 새롭게 번역, 출간되어 한번에 읽게 되었습니다.

먼저 놀라운 것은 이 거대한 코미디를 전개시키는 작가의 상상력과 그 기발함입니다. 우주적인 설정과 무대를 굉장히 어처구니 없는 상황과 잘 접목시킴은 물론, 십수년에 걸쳐 아무 개연성없이 쓰여진 작품군임에도 불구하고 책들이 하나의 거대한 줄기를 이루는 것 같이 쓴 점은 정말 대단하네요. 여러가지 말장난으로 읽는이의 실소를 자아내는 솜씨도 좋고요.

하지만 어떠한 목적의식 없이 단지 "흥행"과 "재미"를 추구하는 라디오극이 원형이라 그런지 내용에서 깊이는 전무합니다. 삶과 우주를 논하며 지구, 그리고 우주의 지배자와 창조신의 메시지조차 유머로 다루는 착상은 높이 평가할 만 하지만, 그 착상에서 파생된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이 너무나 가볍고 시니컬해서 아이디어가 상당히 아깝다고 느껴지네요.
이야기 전개가 대부분 "대사"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내용 전개가 복잡한데 등장인물도 로봇 "마빈"만이 독특한(?) 개성을 보여줄 뿐, 다른 인물들은 독특한 척 위장하고 말만 많다 뿐이지 잘 구분되지 않아서 굉장히 혼란스럽거든요. 그나마 1권부터 3권까지는 괜찮지만 4,5권은 억지와 이야기의 비약이 심해지고 멤버도 아서와 포드로만 거의 제한됨으로 인해 단순히 "속편"으로서의 가치만 남아서 더욱 지루하게 느껴지더군요.
"영국식" 코미디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생각만큼 웃긴 장면도 많지 않다는 것도 단점이죠. 번역으로 인해 원문의 많은 유머를 놓쳤을지도 모르지만 역시 국내 정서에는 그다지 유머로 접근할 수 있는 소재는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그리고 도대체 포드 프리펙트가 아서 덴트와 같이 탈출한 이유부터 저는 이해가 안되더군요. 오로지 생각나는 이유라면 라디오에서 현재 상황을 포드의 독백으로 처리할 수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선택된 상대역이라는 것인데, 그러기에는 아서의 비중이 너무나 커져서 결국 시리즈 후반부에는 포드보다도 중요한 인물이 되니 아이러니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하긴 유머소설에서 개연성을 논하는 것부터가 말이 안되긴 하지만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재미만으로 따진다면, 술술 읽히고 웃음을 주기는 합니다. 허나 단지 그것뿐이랄까요? 읽고나서 남는 것은 하나도 없기에 전부 1500페이지 정도의 방대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얄팍하다는 느낌 뿐이에요. 번역되어 나왔다는 사실 자체에는 무척 감사하지만 끝까지 다 읽었음에도 이 작품의 평가가 높은 이유를 아직도 잘 모르겠네요.
큰 재미는 없지만 대체로 쉽게쉽게 읽히면서도 책의 판형도 작으므로 민방위 훈련용이나 지겨운 강의시간 용으로 추천할 만 합니다.

PS : 그나마 영화화 하기에는 범 우주적인 위기와 "우주전쟁"을 다룬 3권의 내용이 가장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두고 봐야 겠네요.

PS2 : 시리즈 권수가 5권이나 되고 페이지도 꽤 많은 편이라 1주일 정도는 후딱 보내는 묘미도 있습니다만....

2020/03/21

문학을 홀린 음식들 - 카라 니콜레티 / 정은지 : 별점 2.5점

문학을 홀린 음식들 - 6점
카라 니콜레티 지음, 매리언 볼로네시 그림, 정은지 옮김/뮤진트리

푸주한이자 전직 페이스트리 요리사이자, 뉴욕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저자가 자신의 유년시절, 청소년기, 성인 시절에 읽었던 문학 작품들 속에서 인상적인 요리들을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본 레시피와 함께 소개하는 책입니다. 저자의 경력에 딱 맞는 책이네요.

그동안 소설이나 영화 속 요리들에 대해 소개하는 책은 제법 많이 읽어보았습니다. 제가 블로그에서 소개한 비슷한 책만 해도 "죽이는 요리책", "문학의 맛, 소설 속 요리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레시피"가 있지요. 그 외에도 무라카미 하루키, 헤밍웨이의 작품 속 요리에 대해 다루는 등의 많은 책이 출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책들이 그동안 불만스러웠었습니다. 그냥 등장한 요리의 나열일 뿐, 그 요리가 작품 속에서 어떠한 역할을 차지하는지를 제대로 설명해주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레시피 소개와 재현에 치중할 뿐 그 요리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는 책도 거의 없었고요.
그래서 저 스스로 이 시장에 뛰어들어 추리 소설 속 주요 등장 요리들을 주제로 레시피와 함께 소개하는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이라는 졸저를 출간한 바 있습니다. 제 원칙은 작품 속에서 인상적으로 등장한 요리라 하더라도, 중요하게 사용되지 않았다면 주제로 삼아 글을 쓰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또 그 요리들에 대한 단순 레시피 뿐 아니라 그 요리에 대해 제가 구할 수 있는 정보를 모두 정리하여 해당 요리에 대해 설명하려고 노력했고요.

이 책은 제가 추구한 방향과 어느정도 비슷합니다. 주제로 선정된 요리들이 작품이나 주인공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는 점에서요. "오만과 편견"에서 "니콜스가 화이트 수프를 흡족하게 만드는 대로" 초대장을 발송하겠다고 한 뜻을 설명해 주는 부분이 좋은 예입니다. 저자 조사 결과에 따르면, 화이트 수프는 역사가 깊은 요리로 부유한 가정에서만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즉, 미스터 다아시나 미스터 허스트 등 프랑스 요리에 정통한 까다로운 손님들을 초대하려면, 화이트 소스를 만들 준비가 되어야 했다는 뜻인 것이죠. 이야기에서 중요한 부분은 아니지만, "오만과 편견" 속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에는 아주 좋은 정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레베카"에서 주인공의 사회적 위치를 음식이 서빙되는 순서로 드러내는 장면이라던가, "안나 카레리나"에서 오블론스키가 굴을 탐식하는 장면을 그의 끝없는 성욕과 연결시키는 부분 등도 마찬가지에요.
정말 핵심 소재라서 등장하는 요리들도 많습니다. 저도 딸 아이가 어렸을 때 읽어주었던 모리스 샌닥의 "깊은 밤 부엌에서"에 등장하는 핫 케이크 반죽이 대표적입니다. "위대한 유산"의 유산을 받게 된 계기가 된 음식 중 하나인 '동그란 돼지고기 파이'도 비중만 놓고 보면 충분히 소개해 줄 만 하고요.

아울러 해당 요리의 역사 등에 대한 자료는 부족하지만 요리사이기도 한 저자의 직업 덕분에, 저자 스스로 만들어 본 상세한 레시피들은 제 책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부분입니다. 저도 제가 주제로 삼은 요리를 실제로 재현해 봤어야 하지만, 전문 요리사도 아니고 재료와 장비의 수급이 어려워 이런 부분에 힘을 쏟지 못했거든요. 이 차이는 "오만과 편견" 속 화이트 수프 레시피를 당시 요리책에서 찾아보고 직접 만들어 본 결과를 소개해주는 부분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18세기 레시피는 모두 끔찍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현대의 '화이트 갈릭 수프'를 제안하지요.
그 외에도 남부식 비스킷을 만드는데는 라프 라드가 꼭 필요하다는 팁 등의 유용한 정보도 많아요. 곁들여진 일러스트들도 최고 수준이고요.

그러나 소개되는 모든 요리들이 그러한건 아닙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처럼, 작품이 아니라 저자의 인생과 관련된 요리가 소개되기도 하고, 또 해당 작품을 읽었을 때의 저자의 경험에 관련된 요리가 소개되는 등 개인적인 경험이 담뿍 담긴, 개인 에세이에 가까운 글들도 많습니다. 원래 개인 블로그에서 시작되어 책이 출간되었다니 어떻게보면 당연한 일이겠죠. 문제는 뒤로 가면 갈 수록 이런 개인적인 글들이 많아진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가면 갈 수록 제 방향성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감점합니다. 그래도 요리에 대한 전문성만큼은 아주 돋보였습니다. 이런 분과 손잡고 추리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요 요리에 대해 합작하면 참 좋겠다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