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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0

보기왕이 온다 - 사와무라 이치 / 이선희 : 별점 2.5점

보기왕이 온다 - 6점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arte(아르테)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부
다하라는 어린 시절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와 집을 볼 때 정체불명의 회색 덩어리 그림자를 응대했다. '치가쓰리'라는 기묘한 말을 하며 집에 들어오려는 '그것'을 할아버지가 모처럼 맑은 정신으로 소리쳐 퇴치했다. 그리고 몇 년 뒤, 할머니로부터 사람을 끌고가는 요괴 '보기왕'을 집에 들이거나 대꾸를 하면 안된다고 들었다.
세월이 흘러 직장을 얻고 결혼한 다하라에게 수수께끼의 전화가 걸려왔고, 수상쩍은 인물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회사 후배 다카니시가 큰 상처를 입고 아내와 딸 치사마저 위험에 처하자 다하라는 고교 동창인 민속학 교수 가라쿠사를 통해 오컬트 작가 노자키와 퇴마사 마코토를 만났다. 그러나 퇴마사 마코토가 알려준 대책이라고는 "부인과 아이에게 다정하게 대해주라'는게 전부였다. 다행히 노자키와 마코토는 다하라의 집에 정기적으로 찾아와 아내 가나와 아이에게 힘이 되어 주었고, 다하라도 그들에게 마음을 열지만 '보기왕'이 집에 찾아와 부적을 찢고 난동을 부렸다. 겨우 침입을 저지한 마코토는 자신의 힘이 미력하다며 언니를 불러냈다. 언니는 당장은 시간이 없다며 지인들을 부르나 고명한 스님을 비롯한 지인들 모두 겁을 먹고 거절했고 딱 한 명, 부탁을 수락한 영매사 세쓰코마저 한 팔을 잃는 큰 부상을 입고 죽고 말았다. 다하라는 마코토의 언니 도움으로 결계를 치려 하지만 그것 역시 언니를 위장한 '그것'의 음모였다. 결국 '그것'에게 다하라는 죽었다.

2부
아내 가나는 다하라의 죽음이 기뻤다. 다하라는 자신만의 가치관에 따라 아내와 딸을 심리적으로 학대했기 때문이었다. 노자키와 마코토의 도움으로 가나와 치사 모녀는 어느정도 안정을 찾아가나 다시 '그것'의 습격이 시작되었다. 마코토가 목숨을 걸고 저지하지만 실패했고, 도망치던 모녀를 덥친 '그것'은 치사와 함께 사라졌다. 그 뒤 미쳐버린 가나는 병원에서 깨어났다.

3부
가나와 치사를 습격한 '그것'으로부터 치사를 지키다가 중상을 입은 마코토를 병원으로 옮긴 노자키는 드디어 마코토의 언니 고토코를 만났다. 그녀는 자신이 직접 치사를 구하겠다며 중상을 입은 마코토에게 휴식을, 노자키에게 협조를 부탁했다. 다하라의 본가에 찾아간 둘은 다하라 가족의 숨겨진 끔찍한 과거를 알아냈다. 오래전 할아버지 긴지의 가혹한 폭행으로 다하라의 외삼촌, 외숙모가 죽었고, '그것'은 할머니가 복수와 원망으로 할아버지를 저주했기 때문에 찾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둘은 치사를 구하고 보기왕을 퇴치하기 위해 최후의 결전에 나선다...

제22회 일본 호러소설대상 대상 수상작으로 작가의 데뷰작입니다. '보기왕' 이라 불리우는 크리쳐와 맞서 싸운다는 정통파 크리처 호러물이죠. 그렇지만 이유없이 괴물이 튀어나와 사람을 도륙하는 흔해빠진 고어 크리처물과는 다릅니다. '보기왕' 이라는 크리처의 정체와 그것이 나타난 이유를 설득력있게 포장하고 있다는 차이점 덕분입니다.

'보기왕'이라는 이름의 유래부터 그러합니다. 일찍이 일본에 진출했던 유럽인들에게서 비롯된 명칭이라고 설명하고 있거든요. "부기맨"이 변형된 말이라는데 그럴듯하죠? 또 노자키가 "기이잡설" 등의 이런저런 자료와 고문헌을 뒤지다가 밝혀낸 정체도 꽤 괜찮습니다. 오래전, 먹고 살기 위해서 K시에서는 산에 사는 요괴에게 노인과 아이를 일부러 바쳤다는게 그 유래가 된 것입니다! 실제로 요괴가 있건 없건 간에 사람을 납치하는 요괴와 입을 줄이기 위한 마을의 이해관계가 일치했다는 이야기로 굉장히 설득력이 높아요. '고려장' 이야기와 별 다를 것도 없으니까요. 이렇게 크리쳐물인데도 일본 역사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은 "요괴헌터"가 떠오릅니다. 대단한 이론적 배경이 있는건 아니지만 몇몇 디테일 들이 괜찮다는 점도 비슷하네요.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저주하여 마도부를 통해 불러내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섬찟합니다. 할아버지 긴지의 가혹함과 외삼촌의 죽음 등 앞부분에서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던 복선을 통해 이를 뒷받침하는 전개도 일품이고요. 데뷰작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의 솜씨입니다.
이러한 전개는 1, 2, 3부로 나뉜 구성에서도 돋보입니다. 1부는 다하라, 2부는 가나, 3부는 노자키가 주인공인데 각각의 이야기의 구멍을 메워나가며 새 주인공의 시각에서 새로운 사실을 드러내기 때문에 독자를 몰입하게 만듭니다. 1부에서 다하라가 굉장히 가족에게 지극 정성을 다하는 아빠로 '괴물, 혼령은 대부분 빈틈으로 들어온다. 이는 가족 간에 생기는 마음의 빈틈인 '골'을 의미한다.'는게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2부의 가나 시점 묘사를 통해 다하라가 사실은 나쁜 아빠였다는게 밝혀지는 과정이 좋은 예입니다.
'알고보니 나쁜 놈' 인 다하라와 소극적으로 상황에 끌려만 다니는 가나가 아닌 진 주인공 노자키와 마코토, 고토코가 전면으로 부상하여 힘을 합쳐 괴물을 퇴치하는 왕도적인 결말도 나쁘지 않아요. 정의롭고 착한 주인공이 악을 물리친다는 이야기는 너무 전형적일 수 있지만 이 작품에는 정말 딱 어울립니다. J호러 특유의 찝찝한 결말이었다면 더 마음에 들지 않았을거에요.

크리처물 다운 섬찟한 묘사도 볼거입니다. 일종의 영적 덩어리로 입과 이빨만 강조되는 보기왕에 대한 묘사는 별 거 없지만 '그것'이 고토코를 가장하여 다하라를 농락하는 장면이라던가 '그것'은 뒷문으로부터 들어오는게 진짜 공포라는 앞 부분의 복선이 이어져서, 가나가 화장실 입구에 결계를 치지만 뒷문이 있다며 변기로부터 '그것'이 기어나오는 장면이 특히 압권입니다. 얼마전 일본에서 영화화되어 개봉되기도 했는데 예고편을 보니 화장실 장면은 제대로 등장하는 듯 해서 기대가 됩니다. 소설에서도 아주아주 무서웠으니 영화로 보면 효과는 그 이상일거라 확신이 드네요.

이렇게 대상을 받을만한 좋은 점도 많지만 단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앞서 칭찬한 전개에서 딱 한 가지, 가라쿠사가 다하라를 저주했고, 다하라의 남은 가족까지 저주했다는 설정은 과합니다. 술 자리에서 쓸데없는 이야기 좀 들었다고 돈과 노력을 더해 '마도부' 까지 선물한다? 그것도 정작 원망의 대상은 죽은 다음인데? 이래서야 설득력이 너무 떨어져서 등장하지 않는 것만 못해요. 또 마코토는 그럭저럭이지만 그녀의 언니 고토코 캐릭터는 지나치게 만화적입니다. 뛰어난 능력으로 괴물들 사이에서도 이름이 높고, 경찰 최고위층도 움직일 수 있는 어둠의 실력자라는 설정인데, 식신만 나오지 않을 뿐 "마법사의 딸" 에 나오는 일본 최고의 음양사 스노즈키 무잔과 판박이니까요. 만화였다면 모를까 소설에 등장하기에는 비현실적입니다. '보기왕' 처럼 설득력있게 그 존재에 대해 설명해 주었더라면 조금 나았겠지만 그런 설명도 전무하고요. 이런 점에서 보면 "요괴 헌터"의 한 에피소드로 그려지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소설 보다는 영화나 만화 쪽이 더 잘 어울렸을 것 같아서 조금 감점합니다만, 재미도 있고 흡입력도 괜찮아서 킬링 타임용으로는 적당한 작품입니다. 호러물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8/09/29

그것 1~3 - 스티븐 킹 / 정진영 : 별점 2점

그것 세트 - 전3권 - 4점
스티븐 킹 지음, 정진영 옮김/황금가지

메인 주 데리 시에는 수십년 주기로 대형 사건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 왔다. 정체모를 '그것'에게 동생 조지가 희생당한 소년 빌 덴브로는 절친 '악동 클럽' 멤버들과 함께 '그것'을 퇴치했지만, 대신 그것과 그것에 관련된 모든 기억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이십 여년이 지난 후, '그것' 이 돌아오자 악동 클럽 멤버는 이전의 약속대로 다시 모여 '그것'을 퇴치하기 위해 나서는데...

스티븐 킹의 장편 호러 모험 소설입니다. 얼마전 영화화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지요. 예전부터 관심이 가던 차에 새롭게 셋트 버젼이 출간되어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실망스러웠습니다. 이건 정말 해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긴 탓입니다. 초반 빌 덴브로의 동생 조지의 죽음 이후, 데리에 다시 광대 귀신이 나타났다는 전개까지는 괜찮아요.

하지만 그 뒤 38살 성인이 된 빌 덴브로와 어린 시절 왕따 클럽 친구들 모두의 시점을 바꾸어가며 과거의 기억과 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전개부터는 걷잡을 수 없습니다. 재미가 없는건 아니지만 비슷비슷한 묘사가 너무 많습니다. 캐릭터들도 비슷하고요. 빌 덴브로와 벤, 에디와 리처드는 서로 캐릭터가 많이 겹치니까요. 분량 정리를 위해서라도 캐릭터는 좀 줄였어야 했습니다. 스탠리가 공포에 이기지 못해 자살한다는 설정은 공포를 드러내는데 효과적이었던 만큼 스탠리는 등장시키더라도 리더(인간 기사) 빌 덴브로, 떠벌이(음유시인, 힐러) 리처드, 행동파이자 과묵한 덩치(몸빵 탱커이자 장인) 벤 한스컴, 홍일점이자 명사수인(원거리 딜러) 비벌리 마시의 4인 파티면 충분했습니다.
'그것' 페니와이즈에 얽힌 이야기만 풀어나가도 충분한데 11살 때 왕따 클럽이 모이고 뭉치게 된 계기인 헨리 바워스 패거리와의 충돌에 관련된 묘사도 너무 길고 많습니다. 이와 비슷한, 시골 마을에 만연한 가정 폭력, 아동 학대, 왕따, 인종 차별 등의 묘사도 천편일률적이라 지루함을 가중시키고요. 이런 건 "시체 (스탠 바이 미)"로도 충분했어요. "시체 (스탠 바이 미)"의 등장 인물들을 가지고 공포 소설을 써 보려고 한 시도라고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건 아닙니다만, 분량은 확실히 더 줄였어야 합니다.

그리고 별로 무섭지 않다는 문제도 큽니다. 페니와이즈라는 초월적 존재인 절대악이 가진 능력에 비하면 하는 행동이 유치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뜯어버리는 괴력에 자연 현상을 거스르고, 변신 자재에 공간 이동까지 할 수 있으며 데리라는 중형 도시를 지배하여 희생자들에게 극도의 공포심을 안겨주는 존재가 하는 짓이라곤 주로 약한 어린 아이를 환각에 빠트리고, 꾀어 내 죽이는 정도라니 밸런스가 심하게 안 맞습니다. 살짝 언급되는 대로 초기 데리 마을 정착자 480 여명을 한 번에 휩쓸어 사라지게 만든 정도의 위력은 보여 줬어야 합니다. 페니와이즈보다는 차라리 바워스나 헨리와 같은 개막장 정신병자 인간들이 더 무서웠어요. 귀신보다 사람이 무섭다는 건 불변의 진리지요. 그러나 이들의 이야기까지 섞여 쓸데없이 길어진건 역시나 문제입니다.
게다가 최후는 그야말로 최악입니다. 꽤나 독특하고 인상적이었던 광대 모습 대신에 흔해 빠지고 식상한(지금 시점이기는 하지만요) '거미' 형태를 취하고, 리처드에게 휘둘려 패배하고 마는 결말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어요. 그야말로 "소드마스터 야마토" 급이었다 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사람의 의지와 상상력으로 악을 없앨 수 있다는 주제야 나쁘지 않지만, 고작 리처드 한 명에게 휘둘려 무너질 정도라면 성인이 된 악동 클럽을 다시 불러 대결을 벌일 이유가 있었을까요? 자신이 조종할 수 있는 헨리 바워스 한 명 보다도 떨어지는 전투력으로 퇴장하는 마지막 장면은 헛 웃음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페니와이즈에서 비롯되는 갖가지 현란한 환각에 대한 묘사는 그나마 괜찮지만, 쓰여진지 이제 삽십 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공포감을 불러 일으키는 건 무리입니다. 지금은 워낙 자극적인 컨텐츠가 많으니까요. 페니와이즈 자체가 혐오스럽고 무섭다는 묘사라면 모를까, 동상이 움직이고 개수대에서 피가 솟구치는 등은 화려하긴 하나 무섭다는 느낌은 딱히 받기 어렵습니다.
또 이러한 묘사를 위해 불필요한 전개가 이루어지는 것도 불만스러워요. 왕따 클럽이 다시 모인 후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다" 는 이유로 위험천만한 상황임에도 개인 행동을 하면서 각자 무서운 환각을 보는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저 같으면 하늘이 무너져도 친구와 함께 했을겁니다.

전개도 너무 쉽게 쉽게 흘러갑니다. 모든 건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다" 는 것들이 모두 딱딱 들어맞으며 다음으로 이어지는데 이런 전개의 정점은 인터넷 상에서도 논란거리인 베벌리와 왕따클럽 멤버들 간의 성관계지요. 이야기 전개와는 큰 상관도 없으며, 이유도 베벌리가 '우리가 위기를 벗어나려면 하나가 되어야 한다!' 고 생각했을 뿐이거든요. 생각한걸 실천하면 그냥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그야말로 의식의 흐름대로 써 내려간 느낌이에요.

물론 30년이 지난 후 다시 영화화가 될 정도로 매력이 없지는 않아요. 성장기스러운 부분은 나름 가치가 있고, 어린 시절 왕따 클럽 멤버들이 다시 모여 페니와이즈를 상대한다는 전형적인 모험물 서사도 재미는 있습니다. 사십대 중반에 접어든 어린 시절 친구들이 고향에 깃든 악마를 퇴치한다는 설정도 매력적이고요. 어린 시절과 성인 시점의 교차 전개도 절묘한 부분이 있으며 이 과정에서 아이들과 어른의 차이를 설명하는 부분도 기억에 남아요. 아이들은 늘 죽을 고비를 넘기며 이상한 현상을 삶 속에 잘 받아 들이지만, 어른들은 그런 일이 벌어지면 신경망이 마비되고 결국에는 미치거나 죽는다는 것인데 이 책의 핵심이 아닐까 싶네요. 그래서 아이들 때에는 페니와이즈와의 대결을 용감하게 준비했지만, 능력있고 부자가 된 어른 시점에서는 그를 두려워 하며 심지어 자살까지 하는 것이겠지요. 그 뒤 다시 하나로 뭉쳐 옛 기억을 떠올린 후에나 맞서 싸울 결심을 하는 것이고요.

하지만 지금 읽기에는 지나치게 길고 낡았으며 별로 무섭지 않아 감점합니다. 무엇보다 큰 감점 요소는 페니와이스의 허무한 결말입니다. 등장인물을 쳐내서 한 권 분량으로 줄이기라도 했더라면 조금은 좋았을텐데, 제 별점은 2점입니다. 혹 궁금하시더라도 영화만 보셔도 충분할 듯 싶네요. 1,8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읽어야 할 가치는 없습니다.

2019/04/21

초크맨 - C. J. 튜더 / 이은선 : 별점 1.5점

초크맨 - 4점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다산책방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에디는 열두 살 어린 시절 개브, 니키, 호포, 미키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미키의 형의 죽음, 니키 아버지의 폭행 사건 등을 겪으며 친구들과의 거리가 멀어지던 중, 그들은 그들만의 장난인 분필 낙서의 인도를 따라가다가 '댄싱걸' 일라이저의 토막난 사체를 발견했다.
그리고 30년이 지나 에디와 친구들은 목을 매단 막대인간의 그림과 흰색 분필 조각이 담긴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에디는 과거의 고통스러운 추억을 떠올리면서 다시 친구들을 만나 댄싱걸 사건의 진범이 누구인지를 추적해 나가는데.... 

스티븐 킹이 추천했다는 띠지의 소개에 혹해서 읽었습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실망스럽습니다. 스티븐 킹의 "그것"과 "스탠 바이 미"의 저열한 모방작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캐릭터 구도와 전반적인 전개는 "그것"을, 어린아이들이 시체를 찾아 나선다는 테마는 "스탠 바이 미" 그대로에요.

물론 "그것"의 '악동 클럽' 멤버들이 초자연적인 크리쳐가 아니라 실제 살아 숨쉬는 살인마와 만나면 어떻게 될까? 를 그리려는 시도는 나쁘지 않습니다. 현실 소재라 보다 높은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도 분명하고요.
하지만 이 작품은 완벽한 실패작입니다. "그것"의 광대귀신 페니와이즈는 악동 클럽 멤버들에게 실질적인 위협으로 등장하는데 이 작품 속 아이들과 범죄는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는 탓입니다. 살인마와 아이들의 접점은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분필과 분필 낙서에 불과해요. 어차피 살인 사건은 댄싱걸 일라이저의 토막 살인 뿐이기도 하고요.
그 외로 펼쳐지는 다양한 아이들과 관련된 사건들 - 에디를 잔혹하게 괴롭히던 미키의 형 션이 강물에 빠져죽고, 호포의 애견 머피가 독살당하고, 니키의 아빠 마틴 목사가 잔혹하게 폭행당하는 등 - 은 결국 아이들과는 거의 무관한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은 실제로 위험에 처하지도 않습니다. 

그나마 분필 낙서 때문에 살인마는 아이들 주변 인물, 혹은 아이들 중 한명인가? 하는 수수께끼는 발생하지만 이 역시 제대로 묘사하고 있지 못합니다. 에디 시점에서 무언가 초자연적인 존재 - 션 쿠퍼의 유령 같은 - 가 얽혀있는게 아닌가 하는 식으로 풀어나가다가, 결국 에디가 낙서를 했다는 결말로 이어지는데 황당하기 짝이 없어요. 공정하지도 않고요. 이럴거라면 어린 시절 추억담 맨 뒤로 진상은 빼 놓더라도 혼란스러운 묘사 따위는 집어 치우는게 더 나았을 겁니다.

에디와 친구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도 지나치게 길고 지루합니다. "그것"과 너무 비스무레한 것도 문제고요. 동네 깡패 일당과의 대립이라던가, 폭력적인 아버지에게 시달리는 홍일점 니키 등은 그냥 표절 수준이에요. 그 중에서도 니키는 왜 나왔는지도 모르겠더군요. 에디의 아련한 첫사랑을 그리기 위함도 아니고, 마틴 목사의 폭력성을 스스로 증명하지도 않고, 심지어 성인 시점에서 사건 해결에 도움을 주는 부분도 없으니까요. "그것"을 충실하게 베끼기 위한 목적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에 대한 자세한 묘사, 예를 들어 에디 아버지의 치매에 대한 묘사 등도 지나쳤어요.

하긴 이런 단점은 진범의 정체에 비하면 약과입니다. 진범이 마틴 목사라는 결말은 뜬금없기 그지 없어요. 크게 폭행을 당해 의식을 잃은채로 병원에 입원했는데, 몰래 빠져나와 살인을 저지르고 시체를 토막내어 유기까지 하다니 이게 말이나 됩니까? 뭐 당시 영국 시골 병원의 보안과 환자 관리가 그만큼 허술했다 칩시다. 하지만 이후 무려 30년의 세월동안 요양소에서 반 송장처럼 지내면서 주위 사람들을 속여왔다는건 도무지 납득이 안됩니다. 그 전에 미치거나, 퇴원하거나 했어야지요. 일라이저 사건의 범인이 핼러런 선생으로 알려진 상황에서 정신이상, 산 송장 상태로 버티는 상황부터가 말도 안되고요. 설령 그걸 몰랐더라도 공소시효가 끝날때까지만 버티면 되잖아요?
수십년간 휠체어 생활을 했는데 불구하고 젊은 처녀인 클로이와 장년의 성인 남성인 에디와 호포를 제압한다는 마지막 클라이막스도 와 닿기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도끼를 들고 습격하기야 했지만 뭔가 어설퍼서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도 않더라고요. 그리고 애초에 습격할 이유 자체도 없습니다. 증거도 없을 뿐 아니라 앞서 말했듯 공소시효도 이미 끝난지 오래니까요. 찾아온 에디와 친구들을 만나 그냥 정신 이상을 가장한 채 휠체어에 앉아 있기만 했어도 아무 탈이 없었을겁니다. 정신 이상으로 일어나서 과거의 망령들을 습격했다? 그렇다면 진작에 일어나서 날뛰지 않은게 설명되지 않지요. 이 모든 걸 엮는 단서라는게 댄싱걸과 클로이가 머리를 금발로 염색했다는 정도라는 것도 웃기는 일이고요. 

그 외에 추리적인 부분은 모두 함량 미달입니다. 초크맨 낙서를 보낸건 에디였다던가, 미키를 죽인건 호포였다던가 하는 이야기 모두 뜬금없으며 공정하지 못한건 마찬가지거든요. 마틴 목사를 폭행한건 토머스 순경과 친구들이라는 것도 역시나였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인물 설정과 묘사는 스티븐 킹의 표절인데다가 추리적인 부분은 비합리적인데다가 우연으로 점철되어 있고, 심지어 공정하지도 못합니다. 무엇보다 범인의 정체는 최악이고요. 그 어떤 점으로도 점수를 줄 부분이 없습니다. 그냥 소설로 성립은 한다는 점 정도만 괜찮네요. 절대로 읽어보시지 마시길. 스티븐 킹이 호평했다는건 자신의 충실한 모방작을 만난 탓에 한 실언이 아닐까 싶습니다.

2016/05/14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 - 오노 후유미 / 정경진 : 별점 2.5점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 - 6점
오노 후유미 지음, 정경진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오노 후유미일상계 호러 단편집으로 모두 6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모두 평범한 사람이 오래된 집으로 이사온 후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와 마주치는데, 이것을 '영선 가루카야'라는 상호의 수리점 목수 오바나가 약간의 수리를 통해 해결해 준다는 동일한 구조를 갖추고 있고요. 

일상계 호러물이라는 표현이 적합하다 싶을 정도로 일반인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것으로 담담하게 묘사한 장면들이 인상적입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전문가의 일상계 퇴마(?)물이라는 점에서는 "충사"와 비슷한 느낌도 드네요. 전체적인 분위기도 유사하고요. 대체로 그곳에 있는 존재들을 인정하고 어르고 달래는 수준이라는 해결 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일상계'인 덕분에 독자를 몰입시킬만한 요소는 확실히 부족합니다. 지나치게 담담하거든요. 흥행(?)을 위해서라면 충격적인 설정이나 이야기를 한두편 선보이는게 좋았을텐데 말이죠.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호러 매니아 기준으로는 맹숭맹숭한 순정물에 불과한 작품들로 제 기대에 미치지는 못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군요. 호러 및 괴담물 초보자에게 권해드립니다.

이야기별 간략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뒤뜰에서"

쇼코는 고모에게서 물려받은 오래된 주택으로 이사했다. 그런데 서랍장으로 막혀있는 미닫이 방의 문이 스스로 열리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랍장을 치우고 정리하던 날 밤, 쇼코는 여자 형체의 무언가가 그곳을 통해 기어나오려는 것을 목격하는데...

앞서 말씀드린 이야기의 기본 구조를 잘 보여줍니다. 유령의 첫 등장, 고모가 예전에 미닫이를 아예 막은 적도 있지만 긁는 소리가 집안 전체에 울려 견디지 못했다라는 일화 등 섬찟한 부분도 제법 있고요. 오바나가 등장한 후 설명하는 진상 - 유령은 위협을 가하려는 것이 아니라 목이 말라서 그런 것이다 - 이 앞부분의 거리 묘사 및 방의 과거 수리 이력과 엮여 드러나는 전개도 깔끔합니다.

한마디로 시리즈의 첫 시작으로는 차고 넘치는 작품. 수록작 중 가장 무서운 작품이기도 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천장 위에"

오래된 무가 저택에 사는 고지는 어머니가 천장 위에 누군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자 치매를 의심했다. 천장 수리 후 아이들에게도 무언가가 나타나자, 고지는 천장을 수리한 목수 구마다에게 연락했다. 구마다는 '영선 가루카야'의 오바나와 함께 찾아오는데...

합리적으로 설명되는, 깔끔한 맛이 부족합니다. 천장에 있는 존재가 무엇인지, 왜 나타나는지 제대로 설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말도 설명 없이 옛날부터 있던 일종의 봉인을 원상복구 시키는게 전부고요. 뭐 이게 현실적인 것일 수는 있지만 독자로서는 많이 아쉽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방울 소리"

조모의 집으로 이사온 유코는 비오는 날마다 정체불명의 상복입은 여자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몇년간, 그 거리의 집들에 정체모를 상복입은 여자가 찾아오면 집안 사람 중 누군가 죽는 일이 연이어 벌어졌다는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 상복입은 여자의 이동 경로의 마지막은 유코의 집이었다!

작품들 중 유일하게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죽이는) 무언가가 나옵니다. 이대로라면 유코가 곧 죽을 수 밖에 없는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지요. 그런대 전개는 담담해서 묘한 맛이 느껴집니다.

허나 이러한 묘한 괴리감이 작품에 어울리지는 않습니다. 가장 무서울 수 있었던 작품인데, 소재를 허투루 낭비한 느낌이에요. 작가가 원한 것이 이러한 담담함이라면 그건 그것대로 의미가 있겠지만, 곧 죽을 예정인 유코마저 담담하게 묘사한건 실수로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무언가의 정체는 끝까지 불분명해서 전작과 마찬가지로 개운한 맛도 부족하고요.

그나마 해결책은 마음에 듭니다. 맞서 싸우는게 아니라 그냥 순응하는 것으로 '그것'이 그냥 지나갈 수 있도록 우회로를 내어준다는건데, 작품 분위기와 잘 어울릴 뿐 아니라 현실적이라는게 좋았어요. 오래된 거리가 자동차가 들어오면서 문의 위치가 바뀐 탓에 문제가 일어난 것이라는 설정도 나쁘지 않았고요.

이렇듯 단점, 장점이 명확한데, 그래도 평작 수준은 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이형의 사람"

할아버지의 가업을 잇기 위한 아버지를 따라 시골로 이사온 마나카는 언제부턴가 집 안 어딘가의 공간에서 노인의 유령을 만나기 시작했다...

마나카가 할아버지 유령을 만나는 장면의 묘사들은 섬찟한데 그 뿐입니다  나머지는 딱히 마음에 들지 않네요. 집안에서 학대받았다는 할아버지의 유령의 정체도 진부했어요. 오바나도 제대로 등장하지 않아서 이게 같은 시리즈인가 싶기까지 했습니다. 해결책 역시 구마다와 오바나가 집을 수리한  나타나지 않더라... 가 전부이고요.

이래저래 부족함만 많이 느껴진 작품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만조의 우물"

마리코는 결혼과 함께 조모가 살던 집을 물려받아 살게 되었다. 남편 가즈시가 취미로 정원 우물을 복구한 뒤, 정원수와 식물이 모두 죽어나가고 집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들어오는데...

정원의 식물들이 죽은 이유가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것이 특이했던 작품입니다. 이유는 우물물이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라서 물을 준 식물들이 죽었다는 겁니다. 해결 방법도 '우물을 메워야 한다'는 단순명쾌하며 현실적이라서 다른 작품들과 확실히 다른 느낌이에요.

허나 집 안에 들어온 것이 무엇인지 등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등 단점도 여전합니다. 그냥저냥한 평작 수준이랄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우리 밖"

이혼 후 딸과 함께 친정으로 돌아온 마미는 친정 식구에게 쫓겨나다시피 오래된 고택을 빌려 살게된다. 그런데 주차장에서 아이의 유령을 보게 되는데...

호러물의 기본 공식 중 하나인 '이형 존재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우는 작품.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이 전부터 있었으며, 유령 때문에 이전 거주자가 해를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결혼에 실패하고 돌아온 꼴보기 싫은 딸자식을 치워버리기 위해 싸다는 이유만으로 유령 집에 살게 만든 친정 식구들의 행동이 그것입니다. 시골이라 더 이웃 눈치를 본다는 설정도 살짝 들어가 있기는 한데 여튼, 어딜가나 참 사람이 무섭다 싶더군요.

여기에 더해 아이가 등장하는 장면이 호러영화 스타일로 묘사된 것이 이채로왔습니다. 자동차 후방 카메라 등을 활용한 장면들이 그러한데 글로만 읽어도 섬찟한 맛이 있었어요. 차가 없으면 생활이 어려운 시골 마을의 환경과 유령을 엮은 설정도 마음에 들었고요,

딱 한가지, 학대로 아이가 죽었다라는 뻔하디 뻔한 설정만 뺀다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대미를 장식하기에 부족함은 없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20/03/26

[번역] A 사이즈 살인사건 (2) - 아토다 다카시


[번역] A 사이즈 살인사건 (1) - 아토다 다카시

"매니저 다무라라는 남자는 어떤가? 그...... 알리바이는......?"
사무라가 고심한 끝에 바둑판 위에 돌을 내려놓자, 스님은 응수를 생각하며 중얼거렸다.
"사건 당일 오후에는 아타미에 가 있습니다. 다음 공연을 위한 미팅이 있어서요. 도쿄를 오전 11시에 출발해서, 미팅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치가사키에 있는 누님 집에 들러 여러 명의 지인을 만난 게 확인되었습니다. 의심할 여지는 전혀 없어요."
"드러머는?"
사무라가 편의상 종이에 적어놓은 11명의 악단원 이름을 건네주었지만, 스님은 그쪽에는 눈도 돌리지 않고 물었다.
"우치노는 집이 코가네이인데요. 오후에는 동네 아이들과 캐치볼을 하면서 놀고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조사해봤겠지?"
사무라가 이번에 놓은 수로 열 집 가까이 확보했지만, 스님의 쪽 세력도 만만치 않은 형국이었다. 그러나 사무라는 첫판에서 이겼기 때문에 이번 판은 마음이 편했다. 그것보다도 사건에 대해 스님으로부터 뭐든 좋은 의견을 듣는 게 더 중요했다.
"틀림없어요."
"다른 멤버들은......?"
"반년 정도 전까지 에토 준코와 관계가 있었던 오오이다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자는 문제의 오후엔 추가 시험을 2개나 봤기 때문에 아무리 의심해도 범행은 절대 무리에요."
"과연"
"그리고 기타의 오오스기. 이자가 제일 수상하다면 수상합니다, 알리바이 측면에서는 말이죠. 느긋하게 12시 넘어서 하숙집에서 일어나서 밤까지 영화를 보거나 빠칭고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알리바이를 증명해 줄 사람이 없어요."
"하지만 인간은 누구라도, 그렇게 알리바이를 의식해 행동할 수는 없으니까. 진범 이외의 인간은 특히 더 그럴 테고......"
"예, 그건 뭐......"
"나도 독경 때문에 보살님들 댁을 돌 때면 몰라도, 그냥 훌쩍 밖에 나왔을 때 말이야,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고."
"맞습니다. 그래서 오오스기 카즈야가 단지 알리바이가 없다는 것만으로는 저희도 어쩔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살해된
에토 준코와는 별로 친한 사이도 아니었고요." "두 아가씨 멤버는?"
"치노라는 아가씨는 집에서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데 1일은 마침 그 수업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와카이는 집이 오오미야인데, 마작 견학차 마작 그룹 방문을 위해 오후 1시 쯤 집에서 나왔습니다. 야시로의 집에 도착한 게 세 시를 조금 넘었을 때이니, 가는 시간을 생각해보면 알리바이는 확실합니다."
"오오스기를 제외하면 모두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다는 말이로군."
스님의 흑돌은 오른쪽 구석의 세력을 살려 중반 이후부터 조금씩 판세를 넓혀가기 시작했다. 어지간한 묘수라도 찾지 못하면 이 세력을 가로막기는 어렵다. 사무라는 체념하듯 아무렇게나 돌을 내려놓았다.
"그래요. 그래서 수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되었죠. 에토 준코의 옛 친구라던가, 호텔 종업원 등을 차례대로 조사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쪽에서도 그럴듯한 범인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말이구먼."
"네에, 뭐......"
그때 승리를 의식한 스님이 약간의 실수를 범했다. 스님이 내려놓은 수로. 오른쪽 구석에 뜻밖의 패가 생겨버리고 말았다.
"이런! 이건 안 돼!"
스님은 큰 소리를 지르며 바둑판 위에 몸을 던졌다.
"2연승인가요."
"아니지, 아니야, 그렇게는 안 돼."
그리고 한동안, 바둑판 위에서 사투가 계속되어, 사건 이야기는 뒷전으로 밀렸다. 사무라는 조금 전 스님의 실수로 얼마간 이득을 보았지만, 그래도 그 이전에 스님이 얻은 세력이 너무 큰 탓에 결국 승부를 뒤집지는 못한 채 돌을 던지고 말았다.
"일승일패입니다."
"어때, 한 판 더."
"가시죠."
물론 사무라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바둑 자체도 즐겁기는 했지만, 아직 스님에게서 아무런 추리를 들은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소득 없이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세번째 판은 서로 과묵하게 승부를 진행했다. 그러나 스님이 바둑 이외의 일을 고민하고 있다는 것은 모습으로 잘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바둑이 소홀해지는 건 아니었다. 그게 바로 스님의 이중구조식 두뇌의 신기한 점이었다. 추리는 추리, 바둑은 바둑이라기보다 오히려 추리가 잘 진행될 때가 바둑 쪽의 수도 느긋하면서도 뛰어났다.
스님과 사무라의 대전 성적은 지금까지, 아주 약간 사무라가 좋은 편이었다. 표를 만들어 정확하게 기록한 건 아니지만, 사무라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스님 쪽도 어렴풋이 그 사실을 인정하고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님은 항상 말했다.
"자네는 언제나 기묘한 사건 이야기를 꺼내서 내 머리를 교란하니까 말이지. 그것만 아니라면 내가 자네보다 훨씬 셀 거야. 그렇지?"
이 말에 사무라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스님의 바둑은 어려운 문제를 추리하고, 추리가 핵심에 가까워질 때가 더 날카롭기 때문이었다. 이론보다 증거이니 가까운 시일 내에 아무 사건도 가져오지 말고, 그냥 훌쩍 놀러 와 볼까? 그렇다면 스님은 분명 말도 안 되는 수를 놓을텐데. 하지만......흉악범 담당 형사에게 그럴 여유가 생길 수 있을까? 오늘도 사건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한가롭게 잡담을 나누며, 술을 마시며 바둑을 둘 수 있는 것이다.

"3월 1일 7시 30분에 그 어쩌고저쩌고 하는 악단 사람들이 모였다고 했지?"
대국은 중반, 한창 패싸움이 벌어지는 지점에 접어들었다. 스님의 수가 의표를 찔러왔다. 사무라는 허둥지둥하면서도 속으로 싱글벙글했다. 스님의 바둑이 쾌조라는 건, 스님의 두뇌가 순조롭게 회전하여 명추리가 진행되고 있는 게 틀림없다는 뜻이니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이 판단에는 단연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맞아요"
"모인 순서는?"
"순서요? 잠깐만요. 공책에 적혀 있습니다."
사무라는 일어서서, 아까 수행승이 옷걸이에 걸어 준 양복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게 매니저 다무라, 이게 6시 50분입니다. 다음이 치노 카즈요. 그리고 오오이다, 다음에 마작 그룹 멤버 5명과 와카이 요코가 야시로가 운전하는 승합차로 도착. 그 뒤로 오오스기, 우치노 순서인데 모두 일곱 시 반까지 왔다고 합니다. 죽은 에토 준코를 제외하고 말이지요."
"연주자가 한 명 없는데, 곤란하지 않았나?"
"곤란하죠. 매니저는 상당히 초조하게 기다린 것 같더라고요. 결국 공연 시간이 임박하자 어쩔 수 없이 클라리넷을 하나 뺀 채로 공연했다고 합니다."
"그런 게 쉽게 가능한가?"
"저도 좀 의아해서 물어보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멤버들이 아픈 적도 있고 해서, 여러모로 편성 교체는 익숙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연주가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단, 콘트라베이스 같은 특별한 악기는 그렇게 하는게 어려워서 결원이 생겼을 때 부랴부랴 보충했다고 하네요."
"그렇군."
스님은 다시 잠자코 바둑판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럴 때는 섣불리 말을 걸지 않는 것이 좋다.
"이 돌은 살아있나?"
스님이 고개를 흔들고, 사무라의 세력 한복판에 돌을 놓았다.
"엣......?"
사무라가 소리를 질렀다.
"그런 수가 있었나요?"
묘수였다. 아무리 쳐다보아도 대마가 빠져나가기 힘든, 멋진 수였다.
"살기 어렵겠는데요. 괴롭군요."
"그런 듯하네."
스님이 고개를 숙인 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런 묘수가 나오다니......? 사무라는 그 뒤에도 돌을 계속 내려놓기는 했지만, 패배를 예감했다. 스님의 수는 묘수 이후에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끝났습니다."
"계가해 볼까."
계가해 보니, 사무라가 덤을 빼고도 일곱 집 부족했다. 완패였다.
"창피한 바둑을 두었네요."
"희한하게도 2승 1패구먼."
스님은 유쾌한 듯 웃었으나, 이내 근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
"그런데 자네도 마작을 하나?"
"아니요, 저는 안 합니다."
"호오, 그렇군. 그런데 마작도 바둑처럼 더 센 사람이 이기지 않나? 오늘의 나처럼."
자신이 2승 1패로 이겼다고 멋대로 말하고 있다.
"후후, 마작은 아무래도 운이 따라야 하니 약한 사람이 이길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니, 아니, 자네처럼 마작을 하지 않는 사람의 의견은 필요 없다고. 학생들은 밤을 새워가며 마작을 했다며? 그렇게 오래 하면, 반드시 강한 사람이 이겼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해. 그랬는지 어땠는지 한 번 물어봐 달라고. 마작 그룹의 누군가에게."
"예...?"
"그리고, 야시로 씨라고 말했지? 그 사람 외삼촌 집 뜰에 어떤 나무가 심겨 있는지도. 정원에 심은 나무라면 진달래, 등대꽃, 칠엽수.... 동백나무도 있을지 몰라. 그리고 현관까지의 길은 콘크리트인지, 돌을 깔았는지도 알아봐 주지 않겠나?"
스님의 추리는 언제나 마지막에 진짜 질문이 튀어나온다.
"그리고 죽은 에토 준코 씨, 브래지어 사이즈는 어떻게 될까? 분명 A 사이즈는 작았을 테고, C 사이즈는 컸을 텐데..."
정말이지 이 스님은 모르는 게 없다. 하지만 브래지어 사이즈가 살인사건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그것뿐인가요?"
"그리고 악단의 여성 멤버 중 누가 가장 매력적이었는지도."
"네"
"그럼 오늘은 그 정도면 된 것 같네."
"네에..."
"내일 오후에 나는 계속 집에 있을 거라네. 오늘 부탁한걸 전부 조사하고 나면, 우리 집에 바둑두러 오라고. 아마 내일은 세 판이나 둘 필요는 없을걸세. 자네도 여러모로 바쁘기도 할 테고..."
스님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두세 번 고개를 끄덕였다. 추리는 거의 80% 정도 진행된 게 틀림없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질문해봤자 대답해 줄 스님은 아니다. 좋게 말하면 완벽주의자, 나쁘게 말하면 거드름을 피우는 것이고.... 아니, 스님이라고 해도 아직 추리가 제대로 되어 있는 건 아닐 것이다. 몇 가지 의문이 남아 있고, 그것이 스님 생각대로라면 추리를 확신할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그 의문은... 아무래도 브래지어의 사이즈와 정원의 정원수, 그리고 누가 제일 매력적인 여성 멤버인지와 같이 두서없는 질문의 답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늦게까지 실례했습니다."
"그럼 내일 보자고. 잘 가게."
사무라가 스님과 수행승의 배웅을 받으며 묘법사를 나선 건 거의 자정 무렵이었다.

2006/09/19

[번역] 이콜 Y의 비극 (4)

제 3 막

다음날인 4월 30일은 연휴 이틀째의 일요일이었다. 그러나 노리츠키 경시에게는 평일과 다를바 없는, 아침부터 바쁜 하루였다. [벨코포 시모다]의 살인사건은 사건 발생 이틀채로 접어들었지만 해결이 어려울 것 같은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세이쥬서에서 개최된 제 1회 수사회의에서는 무사시노 외국인 강도단 전속 수사팀의 모습도 보였지만, 그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수사본부의 통일 견해도, 경시의 생각과 같이, 범행의 단서로부터 볼 때 결국 다른 사건일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일요일 이른 아침에 있었던 사법 해부의 결과 역시, 감찰의 나카지마의 소견을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사망 추정 시각은 전날 오후 6시부터 7시 사이. 흉기인 나이프는 슈퍼 등에서 대량으로 판매되고 있는 상품이어서 흉기의 입수 경로를 추정하는 것은 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 예상된다는 것 이외의 특기할 만한 발언은 없었다.또한 수상한 사람의 목격 정보도 접수되지 않았다. 그동안의 수사 방침에 따라 사카자키 요우스케와 미도리 부부를 둘러싼 치정, 원한의 선, 그리고 피해자 다치가와 아카네의 교우관계의 방편 등 여러 방향으로 수사를 진행시켜 나갈 것이 결정되었을 뿐이었다.

한편 오전중에 야마네코 운송의 도리야마 영업소에 조사를 갔던 구노우 경부는,

"야마네코 운송의 배달원이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라고 확신에 가득찬 얼굴로 보고했다.

전달 저녁, [벨코포 시모다]에 물건을 배달한 담당자는 이시와타리 효우 라고 하는 삼십세의 운전수로 그도 직업 특성상 골든 위크와는 무관한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었다. 다행히 구노우는 운 좋게도 그날 첫 배달에서 돌아와 영업소에서 자고 있던 이시와타리 본인을 만나 진술을 얻어낼 수 있었다.

쯔부라야 아케미로부터 전해받은 부재자 연락표를 보고, 이시와타리는 부정하지 않고 곧바로 자신이 썼다는 것을 인정했다. 아케미가 이야기 한 것과 같이 그 이전에도 205호실의 물건을 206호실의 사카자키 부인에게 전달해 준 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양쪽 어떤 집에서도 그 일로 불평을 들은 적도 없었다고 했다.

"-주소지에 '부재시 이웃집 가능'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허용되는 것은 아니고 손님과 짐의 종류에 따라 가능한 것이지만요. 그런데 어제는 언제나의 사카자키 부인과는 다른 분이었습니다. 아아 동생이셨습니까. 에, 살해당했다고요? 정말입니까? 내가 갔을 때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고 건강했었는데, 믿을 수 없군요. 아니 집 안에 다른 손님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배달 시간이요? 거기 쓰여있는데로, 오후 5시 32분이 틀림없습니다. 의심되신다면 업무일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업무일지는 문자 그대로, 분 단위의 스케쥴이 가득 적혀있었고, 그 안에는 범행에 필요한 시간을 속일 수 있을만한 의심스러운 기록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시와타리 역시 좋은 인상을 주는 인물로 영업소내의 평판도 좋았고, 손님과의 문제도 전혀 없었으며 우량 사원으로 회사로부터 표창을 받은 적도 있다고 했다. 말할 필요도 없이, 구노우가 상상속에서 그린 범인과는 동떨어진 인물이었다.

오후에는 다른쪽 수사에 나섰던 수사팀 보고가 이어졌다. 먼저 피해자의 신변조사에 관해서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돌연 죽음을 알게된 다치가와 아카네의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녀가 살해당할 것 같은 이유는 전혀 알 수 없다고 답할 뿐이었다. 이콜 Y라고 하는 다이잉 메시지를 보여주어도 뾰족한 해답은 얻을 수 없었다. 생전의 남성관계에 대해서도 이렇다 할 만한 유력한 정보는 없었다. 아직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한다면, 아카네가 아르바이트를 했던 미니-코미 잡지의 편집을 둘러싼 트러블의 가능성 이었지만 그것도 희박해 보였다.

그나마 도다시의 니시나마 마유미의 맨션 주변의 조사는, 착실히 성과를 올리고 있었다. [니이조 그랜드 하이츠] 1층에 위치한 카페 "챨스턴"의 주인은 전일 오후 4시를 지나서 5시 30분까지, 커피 한잔만을 시켜놓고 자리에 계속 앉아있던 여성 손님의 일을 잊어버리지 않고 있었다. 창옆 좌석에 앉아 계속 밖을 바라보고 있다가, 어느순간 서둘러 가게를 나가버렸기 때문에,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마유미의 맨션으로부터의 가까운 거리에 있는 편의점의 점원도 미도리의 얼굴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어제 7시 30분경, 전에는 본 적 없는 여성 손님이 찾아와 가게의 동전 투입식 복사기로 손으로 쓴 유인물을 대량으로 복사했다고 말했다. 직접 도와주지 않아서 별다른 접촉은 없었지만 슬쩍 보기에도  '뭔가 싫은 느낌' 이었다고 했다.

마유미 집에 피자를 배달한 배달원은 맨션 앞에 있었던 미도리의 모습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 대신, 512호실까지 피자를 가지고 올라갔을 때, 입구에 서 있던 마유미의 어깨 너머로 방에 남성이 와 있던 것을 슬쩍 쳐다보았다고 했다. 배달시각은 6시 55분경. 가게의 전표에 따르면, 주문 전화가 걸려온 것은 6시 45분이고 품목은 S사이즈의 피자 2장과 사이드 메뉴가 2인분. 전화는 마유미의 방에서, 주문했던 것은 여성의 목소리였다고 했다. 모두가 미도리의 진술과 부합하고 있었다.

노리츠키 경시의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모든 수사가 결국은 미도리의 진술의 뒤를 따라 확인하는 것이었을 뿐이고 수사가 진행되면 될 수록, 남편 요우스케와 마유미의 알리바이를 재 확인하는 작업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카자키 요우스케가 세이쥬서의 수사본부에 스스로 출두한 것은 그날 오후 3시가 막 지날 때였다. 경시의 예상대로라면 좀 더 빨리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사정청취는 구노우가 담당했고, 경시도 그 자리에 동석했다. 사카자키는 럭비선수 같은 체격과, 그에 어울리지 않는 동안을 가진, 뭔가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이 옅보이는 인물이었다. 회사에서는 그런대로 실적을 올리고 있었다고 했다. 슈트 케이스를 가지고 걸어들어온 것을 볼 때, 어젯밤은 자택에 돌아가지 않고, 어디선가 외박을 한 것으로 보였다.

"-신쥬쿠 비지니스 호텔에서 1박했습니다. 일 관계로 자주 가는 곳이라 일반인보다는 싼 요금으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거든요. 저녁까지 그 곳에서 시간을 보내다라가 집에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TV 뉴스를 보고 어제 사건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인으로부터는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하셨습니까?"
"예. 휴대폰 전원이 꺼져 있어서..."
"그렇습니까. 사실은 어제 [니이조 그랜드하이츠]의 니시나마 마유미씨에게 연락해서 이 사건에 대해 들으신 것은 아닌가요?"

구노우가 추궁하자 사카자키는 일순 놀라며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곳에 오기 전부터 불륜의 건을 드러낼 각오를 한 듯, 생각을 조금 정리하는 듯 하더니 곧 그 사실을 인정했다.

"어제 오후의 제 행동은 아내 입에서 일부 들으셔서, 어느정도는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미도리는 저에 대해 뭐라고 이야기했습니까?"

구노우는 싸늘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확실히 부인에게서 당신에 관한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여기서 전해드릴 수는 없습니다. 집에 돌아가셔서 직접 본인에게 듣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것보다도 수사를 위해서라도 당신 자신의 입으로 들려 주셨으면 하는데요"

사카자키 요우스케가 직장 부하로 있는 니시나마 마유미와 친밀한 관계가 된 것은 작년 여름경의 일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불장난 정도로 생각했지만, 서서히 관계가 깊어져서, 결국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어 버렸다고 했다. 물론 도다시의 마유미의 맨션에 출입하게 된 것도 어젯밤이 처음은 아니었다. 1개월 정도 전에 거리에서 마유미와 우연하게 마주치게 되었을 때 부터, 아내가 자신을 의심의 눈으로 쳐다본다는 것을 눈치채었지만, 요우스케는 도를 더해가는 애인의 유혹을 거부할 수 없었다.

"연휴 첫날에 맞춰, 교토까지의 여행에 동행한 뒤, 이틀째 저녁부터 마유미를 만나기로 했었습니다. 그래서 저 혼자 먼저 도쿄로 돌아오는 출장일정을 맞춰 놓았습니다. 물론 회사에는 그렇게 이야기 했지만 아내에게는 2박 3일이라고 거짓말을 했죠. 하룻밤을 마유미의 방에서 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동행했던 부하 직원에게 뒤를 맡기고, 어제 오후 신칸선으로 귀경하여 그길로 도다시로 향했습니다"

"교토를 떠난 것은 몇시의 신칸선이었습니까?"
"15시10분발의 '노조미18호' 였습니다. 동경 도착은 17시 24분 이었고요. 2시간 반 까지는 투어의 손님들과 함께였기 때문에 그것보다 빠른 열차를 타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사카자키는 술술 발차시각을 말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했지만 알리바이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 확실해 보였다. 도쿄역에 도착해서부터, 사카자키는 츄오선과 사카케이선을 갈아타서 도다역에 내렸다. 마유미의 맨션에 도착한 것은 6시 15분 정도. 5시반에 도쿄역을 나왔다면 다른 곳에 들릴 시간 여유는 없었다. 그 때의 모습을 버스 정류장에서 아내에게 목격당했다는 것은 아직 본인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사카자키의 표정을 차가운 눈으로 관찰하던 경시는 그렇게 생각했다.

"니시나마씨 집에 도착한 이후, 밖에 나간 적은 없습니까?"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담배가 떨어져서 가까운 자판기까지 사러 갔었습니다. 마유미의 집에 도착한 뒤 15분 정도 뒤였던 것 같네요"
"6시 30분 경이라는 말씀이시군요. 혹시 그때, 니시나마씨의 담배도 같이 사시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그걸 아시죠? 그렇구나! 미도리가 보고 있었던 거야! 이 여자가 정말..."

사카자키는 분하다는 듯 그렇게 외쳤지만 구노우는 별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사정청취를 계속 진행했다. 마유미가 전화로 주문한 피자가 배달되었을때, 7시 직전 - 미도리가 인터폰을 눌러 마유미와 문답을 시작한 것은, 두 사람이 피자를 먹고 있던 도중 일어난 일이었다고 했다. 요우스케는 깜짝 놀랐지만 절대로 자신이 온 것은 인정하지 말고 집에서 나가지도 말라고 마유미에게 명령했다. 인터폰을 끊은 뒤에도 계속 벨이 울려서 그것이 멈췄을 때에는 두사람 모두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사카자키는 [니이조 그랜드 하이츠]를 떠날 생각까지는 없었다고 말했다. 어차피 이제와서 집에 돌아가는 것도 부자연스럽다. 만의 하나 미도라가 맨션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그자리에서 들킨다면 어차피 변명은 통하지 않을 테고, 차라리 마유미의 방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저녁에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돌아가 당당하게 이야기한다면 불륜의 증거는 아무것도 없을거야...라는 등의 이야기를 마유미와 나누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밤에 경찰이 찾아왔을 때 결국 사카자키는 마유미의 맨션에서 도망나올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 때 설마, 우리 집에서 그런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은 알지 못했습니다. 미도리가 골탕을 먹이기 위해 경찰에 장난처럼 신고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어쩔 수 없이 곧바로 도망을 치게 되더군요. 마유미가 인터폰으로 경찰과 대화하는 틈에 집을 나와, 맨션의 비상구를 통해 밖으로 나왔죠. 집에 돌아갈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신쥬쿠까지 가서 아까 이야기했던 비지니스 호텔에서 하루 묶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도망친 것은 불륜의 현장을 들키는 것이 싫었기 때문일 뿐이지 경찰에 대해서 아무런 숨기는 것도, 그리고 숨길 이유도 없습니다"

사카자키는 보기에 괴로울 정도로 마지막 말을 강조했다. 사카자키의 진술이 일단락 된 후, 경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남자에게는 꼭 한마디 해 줄 것이 있다.

"어쨌건, 사카자키씨. 부인이 '그랜드하이츠'의 현관에 니시나마 마유미씨를 욕하는 유인물을 뿌린 것은 알고 계십니까?"
"예. 마유미로부터 그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요"
"자. 천천히 봐 주십시오. 이것이 그 유인물입니다"

라고 말한 뒤, 경시는 미도리가 쓴 유인물 복사본을 들이 밀었다. 사카자키는 순식간에 얼굴이 굳은 채, 그 여자가 이런 노골적인 글을 썼다는 건가.. 라고 중얼거렸다. 경시는 엄한 목소리로

"부인은 어젯밤, 니시나마씨가 동생을 살해한 범인이라고 지목했습니다. 자신을 죽이는 대신에, 착각해서 아카네씨를 찔렀다는 것이죠. 물론 처음에는 당신도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진술에 의해 당신들의 알라바이가 성립되어 버렸지만, 우리들은 당신이나 니시나마씨 중 한명이 살인범이라고 판정하고 있었습니다. 당신들 두 사람이 자유의 몸이 된 것은 미도리씨의 덕분임을 잊지 마십시오. 부인은 이번 일을 계기로 당신이 정신을 차리고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사카자키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애절한 눈빛으로 경시를 바라 보았다. 경시는 내뱉듯이 말했다.

"오늘 일은 이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돌아가셔도 됩니다"

사카자키 요우스케를 돌려 보내고 경시는 소지품을 정리하여 경시청으로 돌아가기 위해 세이쥬서를 나왔다. 차 안에서, 운전석에 앉은 구노우 경부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채, 운전과는 다른 무언가를 생각하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 사카자키의 진술을 들을때, 좀 이상한 점을 눈치 채신게 있으십니까?"

경시가 담배불을 붙였을 때,구노우가 물었다.

"니시나마 마유미의 알리바이에는 구멍이 있는 것 같지 않나?"
"-라고 하신다면?"

"마유미는 5시 30분에 집으로 돌아온 후, 계속 맨션의 자기 집에 있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7시 전에 피자를 배달한 배달원의 증언을 제외하고는 오후 6시대의 알리바이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방에서 같이 있었다고 말하는 사카자키의 진술 뿐이야. 그러나 사카자키와 니시나마가 공모하여 미리 말을 맞추어 놓았다면 어떻겠는가? 마유미는 5시 30분에 돌아와 화장품 세일즈를 가장한 사카자키 미도리와 대화를 나눈 뒤 그녀에게 들키지 않게 비상구를 통해 맨션을 빠져나와 [벨코포 시모다]로 향했지. 한편 교토로부터 신칸선으로 도쿄에 돌아온 사카자키는 6시 30분에[니이조 그랜드 하이츠]를 방문해서 스페어 키로 문을 열고 아무도 없는 512호실에서 마유미가 돌아오는 것을 기다렸다면? 1시간 반 정도라면 니시나마 마유미가 차로 세타가야의 시노다까지 왕복해서 7시 직전에 [니이조 그랜드 하이츠]의 자기 집으로 돌아오는 것은 불가능 하지는 않다고 생각이 드는구만"

"하지만 6시 40분에 피자주문을 한 것은 여자의 목소리였다는 증언을 잊으셨습니까? 덧붙여 연휴 행락객으로 꽉 차 있을 시간대인데 범행과 현장의 위장공작에 필요한 시간을 더한다면 한시간에 도다에서 세타가야까지 왕복한다는 것은 조금 어렵지 않겠습니까?"
"전화 목소리 정도는 얼마든지 속일 방법이 있었을 거야"

구노우가 말하자 경시는 웃으며 답했다.

"뭔가, 우리 아들놈 말버릇 같구먼. 하지만 두사람의 공모설에는 큰 문제가 있긴 하네. 마유미의 알리바이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사카자키의 증언 뿐만은 아니거든. 아까 사카자키에게 말한 것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아내의 목격증언이 없었다면, 애인과 어떻게, 얼마나 입을 맞추어 놓았어도 결국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거든. 어제 오후 미도리가 마유미의 맨션을 방문한 것은 정말 우연히 남편 출장 일정에 의문을 품고, 그 의문을 집에 놀러온 동생에게 털어놓은 탓이거든. 만약 미도리가 동생의 충고를 무시했다면 두사람의 알리바이는 애매하기 그지없는 것이 되어버렸을 뿐이지. 그 정도의 알리바이로는 경찰의 추적을 피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두 사람도 알고 있었을 거야. 사카자키와 마유미가 그런 위험한 다리를 건넌다는 것은, 아무래도 생각하기 힘들군"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포인트가 아닐까요? 역으로 생각해 보면 어떻겠습니까? 사카자키는 아내의 성격을 고려하여 그렇게 행동할 것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어서 이번의 범행계획을 세웠다는 것은? 미도리가 남편의 불륜을 눈치채고 출장일정에 의심을 품은 것도, 사실은 사카자키 자신이 그의 생각대로 움직이도록 먼저 포석을 깔아 놓은 것은 아닐까요? 서재의 잘 보이는 장소에 마유미의 연하장을 방치해 놓은 것도 범행 당일의 오후에 미도리를 도다시의 [그랜드 하이츠]로 불러내기 위해서겠죠. 사카자키는 아내의 감시를 눈채채지 못한 척 했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았던 거죠. 처음부터 그녀를 알리바이 증인으로 만들 생각이었을 겁니다. 6시 30분에 자기와 그녀의 담배를 사러 나온 것도 밖에서 감시하던 미도리가 마유미가 방에 있다고 생각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구태여 그런 행동을 취한 것이 아닐까요?"

"공교롭지만 그 추리는 근본적으로 완전히 앞뒤가 뒤바뀐걸세"

경시는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말했다.

"왜 그런가 하면, 범행 당일의 오후, 아내를 알리바이 증인으로 만들기 위해 도다시로 꾀어낼 것을 사카자키가 계획했다면, 같은 시각에 [벨코포 시모다] 206호실에 미도리가 없다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이잖나? 당연히 공범자 마유미가 미도리를 죽이러 간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지. 사카자키와 마유미 두명 모두 미도리가 아니라 동생 아카네를 살해할 동기가 있다고 한다면 이야기는 다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가능성은 생각하기 힘들군. 남편과 아내, 그리고 애인의 증언을 종합해 본다면 , 진상은 아직이야. 뭔가 다른 부분이나 가능성, 놓칠 수 있는 사소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네"

구노우를 위로하며 담배불을 끈 경시는 경시청으로 돌아오자마자 안경을 쓴 뒤, 부재 중 책상에 놓여진 서류더미로 눈을 돌렸다.

그 속에는 [벨코포 시모다]의 범행현장에서 압수한 증거물건에 관한 감식 결과 보고서가 놓여있었다. 이콜 Y라고 하는 다이잉 메시지가 남아있던 메모패드와 피해자가 오른손에 쥐고 있던 2색 볼펜의 철저한 검사결과를 읽고 있던 도중, 경시는 보고서의 한 문장에 깜짝 놀라 외쳤다.

"응? 이건 도대체 무슨 의미지?"

보고서를 보던 구노우도 고개를 들어 올렸다. 경시는 곧바로 내선 번호를 눌러 감식 담당관을 호출하여 보고서에 기재된 것을 물어았지만 '검사의 결과에 이상은 없습니다'라는 확신에 가득찬 답변만을 들었을 뿐이었다.

보고서를 사이에 두고 경시와 구노우는 얼굴을 마주보았다. 두사람 모두 그 검사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곧 구노우가 천천히 말했다.

"완전히 두 손 들었습니다. 역시 아드님에게 지혜를 빌리는 편이 좋겠네요"

**********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노리츠키 경시는 철저히 시간을 들여 [벨코포 시모다]의 살인에 관한 조사의 상황을 자세하게 아들에게 전해 주었다. 린타로는 황금연휴이기 때문에 여러모로 바빠서 시간이 없다고 말하며 처음에는 그다지 사건에 뛰어들 생각이 없는 것 같았지만, 화제가 이콜 Y라고 하는 다이잉메시지 대목에 이르자 눈을 빛내며 강한 호기심을 나타내었다. 경시가 마음 속으로 미소지은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라고 하는 것이 지금까지 알고 있는 사실인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구나"

사건의 개요를 설명한 뒤, 경시는 아들에게 물었다. 린타로는 다이잉 메시지의 사진 (편광 렌즈로 자국이 떠오르도록 촬영한 것)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음- 이것을 니시나마 마유미의 니시(仁)라고 읽는 것은, 좀 억지로 같다 붙인 느낌인데요. 사카자키 미도리가 그렇게 주장하고 싶은 기분은 알겠지만, 만약 그렇다고 할 경우 한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습니다. 살해당한 다치가와 아카네는 마유미와 한번도 면식이 없었을 텐데 동생이 형부의 애인 이름을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찔린 순간 아카네가 얼굴도 알지 못하는 상대를 마유미라고 특정한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요?"
"너가 말하는 대로다. 뭐 범인이 스스로 이름을 말했다면 모르지만, 그런 연극같은 짓을 할 필요는 없었겠지"

"그리고, 택배 배달부가 범인이라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서 야마네코 운송의 트레이드 마크를 그려서 남겼다고 하는 것은 확실히 재미있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만, 어쩌면 좋을까요.... 얼굴 그림을 그리는 순서가 다릅니다. 그림의 위, 아래가 반대로 되는 경우는 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보통은 귀, 눈부터 먼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것이 보통의 순서가 아닐까요? 물론 그것만으로는 부정하는 근거로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요"

린타로가 미소지으며 말하자 경시는 안색을 붉히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 건에 대해서는 좀 봐주거라. 하여간 이젠 정말 두손 다 들었다. 너의 의견을 좀 들려줄 순 없겠니?"
"그렇다면, 한가지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요- 아버지는 이 다이잉 메시지가 위조되었을 가능성은 생각해 보셨나요? 예를 들면 제 1 발견자인 사카자키 미도리가 남편의 애인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기 위해서요"
"미도리가 범인이라는 뜻이냐? 그렇지만 그녀에게는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다구"

경시가 소리치자 린타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는 않고요. 동생의 사체를 발견했을 때, 미도리는 분명히 남편의 범행이 아닌가 의심했을 것입니다. 남편을 감싸고 그 의심을 불륜 상대인 니시나마 마유미에게 향하게 하기 위해, 그 장소에서 순간적으로 가짜 다이잉 메시지를 만들어 내었을 가능성이 있죠. 집에 돌아온 미도리가 거실에서 사체를 발견했기 때문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쯔부라야 아케미가 있는 곳으로 가는 사이, 아주 잠깐이지만 빈 틈이 있었겠죠. 그 때 아카네의 볼펜으로 전화용 메모 패트에 仁, 다름아닌 니시나마 마유미를 가르키는 메시지를 쓴 뒤, 볼펜을 피해자의 오른손에 쥐여 주었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정도로는 확실히 일부러 만든 듯한 티가 나기 때문에 메모 패드의 첫장을 찢어낸 후, 범인이 가져간 것으로 위장한 것이죠. 물론 아래 종이에 볼펜 자국이 남아 있을 것은 계산한 것일테고요"
"흠, 가설이지만 꽤 흥미롭구나. 하지만 실제로는 확실히 무리야. 피해자의 손가락에는 사후경직이 시작되고 있었기에 너의 가설대로라면 미도리가 사체를 발견했던 8시 30분의 경에는 그 흔적이 남아 있어야만 하거든. 사체의 오른손에 볼펜을 쥐어 준다는 것 자체가 아마 불가능했을거다. 아카네가 죽을 때부터 볼펜을 쥐고 있어서 사체의 오른손을 메모 패드 위에 올려놓고 눌러서 메모를 썼다고 해도, 감찰의가 뭔가 이상을 눈치채는 것은 당연해. 마침 그렇게 이야기하니 한가지 놓친것이 있는데, 감식 결과로는 보고서에 이해불능을 기술했던 것이거든. 그 문제가 계속 머리를 떠나지 않는구나"

경시는 머리속을 꽉 채우고 있던 것을 말했다. 아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 제일 흥미로운 먹이를 최후까지 남겨놓았던 것이었다. 린타로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해불능이라고 적혀 있다고요?"
"피해자가 쥐고 있던 적과 흑 2색 볼펜을 철저히 조사한 결과, 검은 쪽 볼펜은 잉크가 없었다더구나. 훨씬 전 부터 아무것도 쓸 수 없는 상태였다는 거지"
"검은 쪽이 쓸 수 없는 상태? 그래도 아버지가 현장에서 조사했을 때에는 검은쪽 버튼이 눌려져 있었다고 했잖아요?"
"그렇단다. 덧붙여 보고서의 기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메모패드에 남아있던 이콜 Y의 흔적은 잉크가 나오지 않는 볼펜의 끝으로 눌러 쓴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 필압이랑 메모 용지 표면의 상태로 볼 때, 한장 위의 용지에 적은 글자 자국이 남은 것이 틀림 없다더구나. 나에게는 그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검은 쪽은 쓸 수 없는 상태였다지만 빨간 쪽은요?"
"그것은 쓸 수 있는 상태라고 했다. 현재 아카네는 습격당하기 직전까지 미니코미지의 인터뷰 원고에 빨간 색 볼펜으로 수정사항을 기입하고 있었던 탓에, 그렇지만 그게 도대체-"
"잠깐 기다려 주세요"

린타로는 곧바로 얼굴 앞에 손을 모아 경시의 말을 막았다. 얼마간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생각하다가, 다이잉 메시지지의 사진을 끌어 당겨 놓아서, 팔짱을 낀 채로 방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흡사 동물원 우리안의 곰 같은 모습이었다.

이윽고 흥분 상태가 가라 앉은 뒤, 린타로는 경시 쪽으로 허리를 굽혔다.

"빨강과 검은 2색 볼펜. 정말이지 재미있군요"

라고 말했다.

"감식의 검사결과로부터 뭔가 알아낸 것이 있냐?"

경시가 묻자 린타로는 미소지으며 답했다.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확실히 이 다이잉 메시지가 범인, 혹은 관계자가 고의로 조작한 가짜 단서가 아니라는 것은 알았어요"
"사카자키 미도리의 일인가? 확실히, 그건 아까 들었지"
"아뇨. 그것도 있지만, 뒤에서 다치가와 아카네를 찔러 살해한 범인이 범행 직후에 다이잉 메시지를 위조했을 가능성이 없어졌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이콜 Y의 해석은 우선 제껴두고, 그것이 작성되었을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보죠. 이 메시지가 가짜 단서라면, 그것은 어떠한 수순으로 남겨진 것이겠습니까? 아까 말한바와 같이 위조한 메시지는 그 대로 메모패드에 붙어 있다면 확실히 너무 작위적이라 부자연 스럽죠. 그래서 범인은 메모 패드 제일 윗 장 종이에 볼펜으로 이콜 Y라고 쓴 뒤, 그 종이를 찢어 가져가 버렸다- 라고 가정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물론 밑의 종이에 자국이 남는것은 감안한 것이겠죠"

경시는 알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확실히 나는 현장 상황을 봤었지만, 나도 너가 말한 대로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 경우, 범인은 메모패드에 메시지를 쓴 뒤, 절명한 직후의 피해자의 손에 2색 볼펜을 쥐어 주었을 것입니다. 아까의 사카자키 미도리의 위조설과 다른 것은 이 점 뿐이지만, 그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경우에는 범인 자신이 실제로 이 2색 볼펜을 사용했다고 하는 점입니다. 즉 사체 발견시에 피해자가 쥐고 있는 볼펜, 검은쪽 버튼이 눌러져 있는 상태였다는 사실은, 범인이 검은 글씨로 위조 메시지를 썼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사체에 볼펜을 쥐여준 뒤에 펜의 글자색을 바꾸었을 가능성은 제가 보기에는 의미가 없습니다. 조사가 허술한 틈을 노렸다 하더라도, 결국 지금처럼 메시지의 진실성이 사라져 버릴 뿐입니다. 그러나 범인이 검은색으로 위조 메시지를 작성했다는 것은, 그 시점에서 볼펜의 검은 잉크가 막 떨어져버리고 쓸 수 없는 것에 눈치 챘을 것입니다"
"흠.. 그건 너가 말한 대로지"
"그래서 범인은 빨간 색 버튼을 눌러 빨간 글씨로 메시지를 썼겠죠. 빨간 쪽은 쓸 수 있었으니까, 그것이 제일 자연스럽고 이치에 맞습니다. 그리고 빨간 색 버튼을 누른 채, 즉 빨간 색 볼펜을 밖으로 끄집어 낸 상태로 볼펜을 피해자의 손에 쥐여 주었더라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죠. 이것은 확실히 모순됩니다. 따라서, 이 가설의 전제조건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 이콜 Y라고 하는 기호는, 범인이 고의로 조작한 가짜 단서가 아니라 피해자 본인이 써 남긴 진짜 다이잉 메시지라는 것이죠"

경시는 머리의 혈액순환을 돕기 위해 담배불을 붙였다. 아들의 이야기에 홀딱 넘어가 버린 탓도 있었지만, 이제까지의 논증에 있어서는 별달리 이견을 이야기 할 것도 없었다.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그러면, 다음 문제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다치가와 아카네가 2색 볼펜의 어느쪽 색을 사용하여 메시지를 남겼을까, 라고 하는 문제입니다. 우선 검은쪽을 검토해보죠. 물론 피해자에게 있어서는 자기가 사용하는 볼펜이기 때문에 검은쪽 잉크가 떨어져서 쓸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을테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은쪽 버튼을 눌러 메모패드에 메시지를 남겼다고 한다면 그 이유는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아버지?"
"아아, 그 정도는 알겠다. 뒤에서 범인이 돌아올 경우를 대비해서, 잠깐 보더라도 아무것도 써 있지 않은 상태로 보이게끔, 자국밖에 없는 백지의 메시지를 써서 남겼을테지. 그렇게 한다면 범인을 그냥 가버리게 할 수 있었을테니까"
"명답! 역시 아버지. 대단하십니다"

린타로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만 그래도 이 경우에는 들어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감식 결과로 밝혀진 것과 같이, 메모 패드에 남겨진 메시지는 잉크가 없는 볼펜 끝으로 쓰여진 자국이 아니라 바로 위에 있는 종이에 쓴 글자가 밑의 종이에 자국이 남았다는 것 때문이죠. 그렇다고 한다면 제일 위의 종이에 쓰여진 오리지널 메시지는, 아버지가 생각하는 대로 범인이 찢어서 가져가 버렸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결국, 피해자가 보이지않는 백지에 메시지를 남긴 것을 범인이 방심하고 가버리는 대신에 범인은 그 흔적을 눈치챈 것이겠죠. 그러나 아버지. 조금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 잉크가 나오지 않는 볼팬으로 쓴 백지위의 메시지의 존재를 눈치챈 뒤 그것을 찢어서 가져갈 정도로 주의깊은 범인이 메모패드 바로 한장 아래에 있는 종이에 남은 볼펜 자국을 그냥 지나친다고 한다는 것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요?"

경시는 감탄했다. 이 녀석, 확실히 날카로운데가 있어.

"역시. 확실히 그런 실수는 있을 수 없겠지, 라고 하는 것은 그 가능성도 아니라는 것이겠군. 그렇다면 남아있는 가능성은 단 하나. 아카네는 빨간색 볼펜으로 메시지를 써서 남겼다는 것밖에는 없을텐데, 그것도 역시 의문을 완전히 풀 수는 없는것 같다. 피해자가 쥐고 있던 볼펜의 글자 색이 바뀌었다는 것은 왜인가, 라는 의문이"
"예. 그게 문제입니다"

라고 답하고 린타로는 이야기를 계속하기 위해 바른 입술을 적셨다.

"-피해자 본인이 메시지를 남긴 직후, 검은 버튼을 눌러 볼펜의 글자색을 바꾸어 놓았을 가능성은 없겠죠. 도대체 그런 짓을 할 이유도 없고, 그녀는 그 때 거의 숨이 넘어가는 상태에서 메시지를 써서 남기는 일에 모든 힘을 다 하고 있었을 테니까요. 때문에 볼팬 글자색을 바꿀 여유같은것은 없다고 보아도 좋겠죠. 또 그녀가 숨진 직후에, 근육의 반사적인 운동이 이상한 작용을 해서 검은 버튼이 눌려졌을 가능성도 희박하고요. 그같은 우연이 일어날 가능성은, 물론 제로라고 할 순 없겠지만 한없이 낮을 것입니다. 이 두가지 가능성이 모두 아니라고 한다면, 결국 검은색 버튼을 눌러 볼펜의 글자색을 바꾼 것은 그녀를 살해한 범인의 소행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논리에 모순이 있잖냐? 너는 아까, 조사가 허술하지 않는 한 드러날 염려가 있기 때문에, 범인이 볼펜의 글자색을 바꾸어 놓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 했을 텐데"

경시가 묻자 린타로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답했다.

"아뇨.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은, 범인이 검은색 볼펜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경우에 한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범인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한거죠. 또한 범인은 피해자가 빨간색으로 적은 메모용지를 찢어서 가지고 가 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볼펜 글자색이 바뀌어 있는 것을 드러날 염려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 분명합니다"
"알겠다. 그렇다고 한다면 왜 범인은 그런 짓을 한건가?"

린타로는 숨을 들이 마셨다.

"이제부터, 제 추측이 많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만... 범인이 볼펜의 글자색을 바꾼 것은 빨간색 잉크로 기록된 피해자의 다이잉 메시지를 메모 패드로부터 찢어서 가져가 버린 것과 같은 이유에 근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능하다면 한 피해자의 손에서 볼펜을 빼서 메시지가 남겨져 있다는 흔적 그 자체를 없애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그 때는, 뭔가 다른 사정으로 - 그것은 뒤에 설명드리겠습니다만 - 그렇게 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거죠. 때문에 범인은 차선책으로 볼펜의 글자색을 바꾸는 짓을 한 것입니다"
"기다려봐라. 범인이 메모 패드의 메시지를 찢어서 가져가버리고, 볼펜도 가지고 가 버리고 싶어했다는 것은 납득할 수 있다만, 차선책으로 글자색을 바꾼다고 하는 것이 납득되지 않는구나. 왜 그게 차선책인거냐?"

"메모 패드에 남겨진 메시지의 내용에 관계없이 처음부터 범인은 다이잉 메시지가 빨간색 잉크로 쓰여졌다는 것 자체를 알리고 싶어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요? 물론 피해자가 그렇게 한 것은 그것 외에는 뭔가 쓸 수 있는 수단이 없었던 탓도 있지만, 범인은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죠. 빨간색 볼펜으로 기록된 메시지를 보았을 때, 글자색의 선택에도 피해자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한 있습니다. 때문에 범인은 메모 패드의 메시지를 찢어버리는 것 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쥐고 있던 볼펜의 쪽에도 손을 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검은색쪽으로 바꾸지 않더라도 빨간색 볼 버튼을 잠구어 놓기만 하면 충분한 것 아니었겠냐?"
"상식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아버님 말씀대로입니다. 그러나 범인은 억지로 무리해서까지 볼펜의 글자색을 검은색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바꿔 말한다면, 그만큼 빨간색으로 쓰여졌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닐까요? 간단히 볼펜을 속에 넣어 잠궈놓는 것 만으로는 어떤 색이 사용되었을지 추측할 가능성이 반반이기 때문이죠. 즉, 범인은 검은 버튼을 눌러 끄집어 내면서까지 피해자가 빨간색 메시지를 기록했다는 사실 자체를 완전히 은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틀림없이 순간적 판단으로 그렇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흠. 그렇다면 범인이 그 정도로 빨간색 글자를 싫어한 이유는 왜냐?"

경시가 묻자 린타로의 눈이 지금까지 이상으로 예리해졌다.

"그렇죠. 거기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범인이 빨간색 메시지를 싫어한 이유는 어쩌면 잉크색 자체가 범인을 나타내는 수단이 아니었을까 하고요. 예를 들면 범인 이름 일부에 赤, 혹은 적색계통의 색을 표시하는 문자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범인이 필요 이상으로 신경질적이 된 것도 이상하지는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확실히 사건의 관계자 속에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없나요?"
"적색계통 이라고 한다면 아카네의 이름 뿐이지만 그녀는 피해자잖냐. 해당하는 인물은 전혀 없는걸. 음.. 잠깐 기다려라. 너가 말한대로라면 주색의 주(朱), 205호실의 쯔부라야 아케미(朱美)를 말하는 것이구나!"

린타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시는 놀란 채로 눈을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무리라고 생각되는데? 그리고 이 정도의 증거로는-"
"하지만 근거는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쯔부라야 아케미의 일을 머리속에 떠올리고, 또 한번 이 이콜 Y라는 메시지에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좋습니까? 아버지는 지금까지 이 두개의 기호, 혹은 문자의 위치관계에 대해 별로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잊어버리면 안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 이콜 Y라고 하는 메시지는 피해자가 직접 종이 위에 기록한 오리지날 필적은 아니고, 메모 패드 종이 한장 밑에서 자국이 남은 흔적에 불과하다는 것을요. 라고 하는 것은 그 흔적이 넘는 과정에서 뭔가의 실수가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지요"

실수? 경시는 잠깐 생각하며 목을 갸웃했다

"하지만 흔적이 남는다는 것은 메모 용지를 위에서 무겁게 내리 누르는 글자가 아래에 남았을 뿐이다. 실수가 생길 가능성은 아무것도... 그런가! 중요한 메시지를 쓰고 있는 도중에, 위 종이가 움직여 버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냐?"
"그렇습니다. 그 메모 패드라고 하는 물건은 사용한 종이를 찢어낼때 백지의 아직 사용하지 않은 부분까지 반 정도는 중심에서 어긋나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피해자가 오리지널 메시지를 기록했던 첫번째 메모 용지도 그런 일이 일어났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급하게 빨간색으로 메시지를 쓰고 있는 도중에, 그 종이가 움직여버리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겠죠? 어쨌건 그 결과 이 '='과 'Y'라고 하는 두개의 기호의 위치관계가 처음 썼을 때와는 다른 흔적으로 두번째 종이에 남겨져 버린 것입니다"

경시는 다이잉 메시지의 사진을 집중해서 관찰했다. 잠시 뒤, 그 입에서 부터 깜짝놀란 외침이 터져나왔다.

"- 이콜 Y가 아니라 엔인가? 엔(円) 확실히 쯔부라야 (円谷)이라고 하는 것이구만!"
"예. 그렇게 그 기호는 빨간색 볼펜으로 쓰여져 있었던 것입니다. 쯔부라야 아케미라는 이름을 표시하고 있다는 것은 불보듯 뻔했죠. 제가 생각하기에는 아케미가 이 메시지를 눈치챈것은 범행 직후가 아니라 사카자키 미도리가 귀가해서 동생 시체를 발견한 뒤의 일인것 같습니다. 미도리가 밖의 통로로 뛰쳐나왔을때, 아케미가 혼자서 범행현장으로 들어간 것은 알고 계시죠? 그 때, 빨간색으로 엔이라고 하는 메시지가 기록된 메모 패드를 발견한 아케미는, 곧바로 자신의 범행을 나타내는 단서라는 것을 알고 급히 메모를 찢어버렸죠. 곧바로 아케미는 사체의 손에서 볼펜을 꺼내려고 했지만, 그때는 사후경직이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만은 불가능했고요. 미도리의 눈이 있기때문에 그렇게 꾸물거릴 수도 없었을겁니다"
"흠, 아까 말했던 뭔가의 사정이라는 것은 그 이야기인가"
"그렇습니다. 그래도 아케미는 피해자가 빨간 볼펜으로 메시지를 남겼던 것에 주의를 쏠리게 하고 싶지 않았겠죠. 그래서 자선책으로 피해자의 손에서 튀어나온 검은색 버튼을 눌러 놓았습니다. 검은색 볼펜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몰랐기 때문에 그랬겠죠. 그 때 지문을 남기지 않으려고 손톱 끝으로 버튼을 눌렀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요"

경시는 아직 반신반의했었다. 경시는 자신의 머리속을 떠돌아 다니는 의문을 린타로에게 믈었다.

"확실히 다이잉 메시지에 관해서는 그것도 말이 되는 것 같구나. 그러나 쯔부라야 마유미가 범인이라면 살인의 동기는 뭐겠냐? 동생 아카네와는 얼굴 정도는 알고 있었다고 말했기 때문에, 언니 미도리와 사람을 착각해서 살인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구나. 그렇다고 하는 것은 특별히 친하지도 않은 동생 쪽을 죽일 이유가 있었다는 걸까?"
"제 생각이긴 하지만, 범행은 발작적인 것으로 보이는군요. 어제 저녁, 택배편으로 배달된 짐 때문에 아케미와 아카네 사이에 뭔가 다툼이 생겼던 것이 아닐까요? 그 이전 옆집에 맡겨 놓았던 짐들은 문제가 없었다고 했지만, 어제에 한해서는 전례가 깨진것이죠. 205호실의 짐을 받아 놓은 것은, 친한 이웃 사람인 사카자키 미도리가 아니라 동생인 아카네 쪽 이었다고 했잖습니까. 부재연락표를 보고 짐을 받으로 간 아케미는, 뭔가 사소한 일 때문에 현관에서 아카네와 말다툼을 벌인 것일테죠. 순간적으로 머리에 피가 치솟은 아케미는 빈 손이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서, 칼을 숨긴채 다시 206호실을 방문했을 겁니다. 사과한다는 핑계를 대고 안으로 들어섰겠죠. 그때 방심하고 있던 아카네의 등 뒤를 있는 힘껏 칼로 찔렀을 겁니다-. 미도리가 귀가했을 때, 아케미가 아무것도 모르는 척 206호실에 나타났던 것은, 애시당초 택배물을 놓고 아카네와 말다툼한 일을 숨기기 위한 위장행위였다고 생각합니다. 쯔부라야 아케미의 어젯밤 알리바이에 대해, 뒤는 캐 보셨습니까?"

아들에게 지적당할때 까지 왜 그 가능성은 눈치채지 못했을까? 경시는 스스로 자괴감이 들며 자신의 실수를 통감했다. 경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사카자키 부부에게 완전히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가능성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구나. 가족이랑 유원지에 갔다 오며 초저녁에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7시 30분에 돌아왔다고 말했지만 의심이 가는구먼. 좋아, 내일 아침이 되자마자 아케미의 알리바이를 수사하도록 하겠다"

******

그렇지만, 사건이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는 깨끗하게 빗나갔다. 다음날 수사관의 수사에 의해, 쯔부라야 아케미의 오후 6시대의 알리바이가 입증되었기 때문이었다.

범행 당일 오후 6시부터 6시 50분까지, 아케미와 가족 3인은 [요미우리랜드] 근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은 것이 확인되었다. 레스토랑 점원이 쯔부라야 일가의 좌석과 테이블을 기억하고 있었고, 영수증도 기록되어 보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케미의 진술은 결국 사실로 입증되었다. 어디에도 의심스러운 부분은 없었다.

즉, 쯔부라야 아케미는, 다치가와 아카네를 살해한 범인일 수 없었다.

믿고 의지했던 린타로의 추리도 틀려버렸던 것이다.

PS : yuuhi님이 글을 남겨주셨는데 노리"츠"키 린타로가 아니라 노리"즈"키가 맞다고 하시더군요. 지금 다시 확인해보니 말씀대로셨습니다. 그래도 번역을 블로그에 후루룩 해버린 탓에 글자 검색을 일일이 해서 고치기가 어려우니 감안해서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yuuhi님의 좋은 정보 감사드리며^^

2006/09/21

[번역] 이콜 Y의 비극 (5)

에필로그 [무대 뒤에서]

꽉 막혀 도무지 진전이 없던 수사 선상에 생각하지도 못했던 돌파구가 열린것은, 다치가와 아카네가 살해된 뒤 5일이 지난 5월 3일, 헌법 기념일의 일이었다.

그 날 아침, 세이쥬서의 수사본부에 얼굴을 내민 노리츠키 경시는, 수사관 한명으로부터 기묘한 보고를 들었다. 세타가야 서 관내에서 발생했던 살인사건 수사에 관련하여, 어제 동서로부터 사카자키 부부에 관련된 사항이 있다는 것이었다.

"세타가야 서 관내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라고 한다면, 4월 30일 저녁, 타이지도우의 공원에서 나고야에 살고 있던 여성이 강도에게 습격당해 죽은 사건의 일인가?"
"그렇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여성이, 살해당하기 전날 [벨코포 시노다]의 206호실에 전화를 걸었던 것 같습니다-"
"사카자키 부부 집에 전화를?"

여성이 살해당하기 전날이라고 한다면, 다치가와 아카네가 살해당한 4월 29일의 일이다. 연속해서 일어난 이 2개의 사건에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인가?

경시는 지푸라기 라도 잡고 싶은 기분이었다. 곧바로 세타가야서에 연락하여, 30일에 일어났던 강도 살인 사건에 관한 수사정보를 이쪽으로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그래부터 계속 생각한 뒤 집에 전화를 걸어 자고 있던 아들을 깨웠다.

" 무척 급한 일이라서 그러니 곧바로 세이쥬서까지 와 주었으면 좋겠구나"

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4월 30일 오후 2시 30분경, 타이지도우 X쵸메의 공원의 공중 화장실에서, 20대 후반의 여성이 쓰러져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발견한 것은 근처의 주부로, 목에 나일론 끈이 감겨져 있었다. 누군가가 목을 졸라 살해한 것은 명백했다.

사망 추정 시각은 그날 오후 1시 30분 전후. 백주 대낮의 범행임에도 불구하고 유력한 목격정보는 없었다. 사체에 난폭한 짓을 한 것 같은 흔적은 보이지 않았고, 지갑 등의 소지품이 없어진 것으로 보아 당초 사건은 노상강도에 의한 범행으로 생각되었다.

소지품이 모두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피해자의 신원은 곧바로 확인할 수 없었지만, 공원 쓰레기통에서 차 공원 호텔이름이 적힌 봉투가 발견되었고, 지문 등으로부터 피해자가 소지하고 있던 물건이라는 것이 판명. 종이 봉투의 내용물은 결혼식의 초대장으로, 짐을 줄이기 위해 범인이 버린 것 같았다. 곧바로 호텔에 문의한 결과, 살해당한 여성의 신원이 확인되었다.

피해자는 나고야 시에 거주하는 토고 유카리라고 하는 28세의 여성으로, 4월 29일 아침,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신칸선으로 상경했다고 했다. 그날 밤은 피로연 잔치 때문에 호텔에서 1박한 뒤, 살해당한 당일 오전 11시에 호텔을 체크 아웃 했다고 했다. 양친에 따르면 유카리는 도쿄의 대학을 졸업한 뒤, 곧바로 도내의 회사에서 근부하다가 2년전에 나고야로 돌아와 집안 일을 돕고 있었다고 했다. 30일은 도쿄의 동창 친구와 만난 뒤, 밤까지 나고야의 자택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고 했다.

살해당하기 직전 피해자의 발자취를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은, 옷 주머니에서 새것인 성냥 상자가 발견된 덕분이었다. 그 성냥 상자에 범행 현장에서 300미터 정도 떨어진 상점가에 위치한 카페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인쇄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카페 [카자미도리]의 주인은, 피해자의 일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토고 유카리는 학생시대부터 가게의 단골로,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도 자주 얼굴을 내밀곤 했었다고 했다. 그러나 방문이 점차 뜸해져 슬슬 얼굴 보기 힘들어 졌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30일 오후, 시계바늘이 1시를 가르키기 직전에 유카리가 오랫만에 가게에 나타났다고 말했다.

"친구 결혼식때문에 상경했다가 들렸다고, 대학 동창 친구와 만나기로 했다고 말했었습니다만-"

그러나, 약속 시간이 지나도록 만날 상대는 오지 않았고 유카리가 안절부절 못하고 있던 때에, 가게에 남자 목소리로 전화가 걸려와서 '그곳에 토고 유카리라고 하는 여성분은 계십니까?' 라고 물었다. 시각은 1시 10분경. 주인은 유카리에게 전화를 건네주었지만, 전화를 건 남자는 자기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다고 했다.

전화를 받은 유카리는 곧바로 상대와 이야기 했고, 이야기가 끝나자, 만나기로 한 상대는 오지 않게 되었다고 주인에게 말하고, 서둘러 계산을 했다. 그 때 '담배는 피지 않지만, 모처럼 가게에 온 기념으로' 라고 말하고, 계산대에 놓여 있던 가게 이름이 들어간 성냥 상자를 집어 들고 주머니에 넣었다고 말했다-

노리츠키 경시는 타이지도우의 사건 개요를, 요약해서 아들에게 설명했다. 린타로는 잠버릇 탓에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넘기며 물었다.

"사건 내용은 대체로 알겠습니다만, 그것과 [벨코포 시모다]의 사건과의 사이에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 것입니까?"
"그렇게 재촉하지 말거라. 토코 유카리가 숙박한 호텔 프론트를 조사한 결과, 객실에서 걸은 전화의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하더구나. 유카리가 전화를 건 것은 29일 오후 5시 2분부터 4분까지의 하나 뿐이였다. 그런데 건 곳의 전화번호를 확인한 결과, 그것이 세타가야구의 맨션 [벨코포 시모다]의 206호실이라는 것이 밝혀졌거든"

경시가 그렇게 말하자 린타로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사카자키 부부의 집이요?"
"그렇다. 아직 본인에게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토고 유카리와 사카자키 미도리는, 확실히 같은 대학에 적을 두었던 동급생이었던 것 같다. 때문에 30일 오후ㅡ 유카리가 타이지도의 카페에서 만나기로 해서 기다렸던 상대라고 한다면, 사카자키 미도리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지"
"토고 유카리의 29일 오후 6시대의 알리바이는? 설마 그 다이잉 메시지는 (=)등호 (토고), Y의 말을 조합했을 지도..."

경시는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건 아니다. 유카리는 친구 결혼식의 피로연에 출석한 뒤, 오후 6시부터 롯퐁기의 가게에서 끝날때 까지 2차 모임에 참석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날 밤은 늦을 때까지 술을 마셨던 것이 확인되었다. 같이 있던 회사시대의 친구들의 증언이 있기 때문에, 알리바이는 확실하다고 볼 수 있지. 그렇다는 것은, 토고 유카리가 [벨코포 시노다]의 사건에 직접 관여한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것이란다"

경시는 거기까지 말하고 어깨를 으쓱였다. 린타로는 턱에 손을 대고 천장을 바라보다가

"2시 지나서 전화를 걸어왔던 남자라고 말하신 부분이 신경이 쓰이는군요"
"아아, 아마 그 남자가 유카리를 살해한 범인일거야. 뭔가 구실을 대고 유카리를 가까운 공원까지 유인해 낸 뒤, 그 장소에서 목을 졸라 살해한 것이겠지. 밝혀진 대로 계획적인 범행이야. 지나가던 강도의 짓은 아니야. 소지품을 훔쳐간 것은, 강도를 당한것 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위장일 뿐이지"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발적인 범행이 아니라면, 범인은 어떻게 유카리가 그 카페에 있다는 것을 알았을까요? [카자미도리]라고 했죠? 가게 이름은"
"그렇다"
"- 어? 잠깐 기다려 주세요"
린타로는 눈을 감고, 카자미도리, 카자미도리 라고 여러번 중얼거리다가 갑자기 등을 곧게 펴고 번쩍 눈을 떴다.

"그렇구나. 그 다이잉 메시지는 그런 뜻이었구나!"
"뭔가 알아낸거냐?"

경시가 조심조심 물어보자, 린타로는 싱긋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 쯔부라야 아케미 범인설이 부정된 것에 대한 휴유증은 없는 듯 했다.

"예. 이번에는 틀림 없습니다. 같은 실패는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조금 정리해 보도록 하죠- 토고 유카리는 29일 오후 5시를 지나 [벨코포 시노다]의 206호실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마 유카리는, 학생시대의 동급생이었던 사카자키 미도리와 이야기를 할 생각이었겠지만, 미도리는 그 때, 담편 애인 맨션을 감시하고 있어서 집에 없었죠. 전화를 받은 것은 집을 지키고 있던 동생 아케미였던 것이 분명합니다. 말할 것도 없이 아카네는 그때까지는 아직 살아 있었기 때문에 전화를 받는 것이 가능했었죠. 유카리의 용건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세요?"
"수사 결과로 미루어 볼 때, 아마 다음날 만날 약속을 하는 것이었겠지. 혹은 전에 약속을 했었다면, 그 확인을 하기 위한 전화였을 수도 있고. 시간이나 만날 장소 같은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뒤에 전화를 건 흔적이 없는 이상, 유카리는 집을 지키고 있던 동생 아카네에게 언니에게 메시지를 전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 자연스럽겠죠?"
"흠, 그래서?"
"다음날 유카리의 발자취대로라면, 메시지의 구체적 내용을 추정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토고 유카리씨로부터 전화. 타이지도우의 [카자미도리]라는 카페에서, 오후 1시에 만나자] 최소한 이 정도의 정보를 아카네에게 전해준 것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다음은, 유카리로부터 전화를 받은 아카네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도록 하죠. 그녀는 확실히 메시지를 전해주기 위해서, 전화 옆에 놓여져 있던 메모 패드에 지금 말한 내용을 기록했던 것입니다. 거실의 사이드 보드 위에 메모용의 필기용구가 없었나요?"

라고 린타로가 물었다. 경시는 범행 현장의 상태를 떠올렸다.

"음, 그렇게 말하니, 메모 패드 옆에 검은 사인펜이 있었던 것이 기억 나는구나"
"검은 사인펜. 그것으로 분명해 졌습니다. 아카네는 유카리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만날 장소와 시간의 메모를 적었다- 그러나 [風見鷄 (카자미도리)]라고 하는 가게 이름이나, 喫茶店(카페)라고 하는 단어는 항상 한자를 적는 것은 획수가 많기 때문에 메모에 적는 것은 귀찮은 글자죠.  전화를 계속 하던 도중이었기 때문에 분명히 미도리는 히라가나나 가타가나로 생략하여 메모를 남긴 것이 분명합니다. 종이와 펜을 좀 주시겠습니까? 뭐 이런 식으로-"

"아카네가 살해당할때 까지, 이 메모는 메모 패드 제일 위에 놓여져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결국 그녀가 누군가에게 등을 찔리고 빈사 상태로 범인을 가리키는 단서를 남기는 순간에도 메모 패드 위에 이 문자열이 있었던 것이죠. 우리들이 그 가능성을 놓쳤던 것은, 아카네가 메시지를 적은 메모를 사인펜으로 후루룩 써서 2장째의 종이에 흔적이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그 다이잉 메시지는, 새 메모지에 써서 남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글자가 적혀 있었을 가능성은 생각하지 못했다. 나의 완전한 실수야. 그런데 그렇다고 하는 것은, 피해자는 사인펜으로 쓴 메시지 메모 위에 붉은색 볼펜으로 이콜 Y라고 써서 남긴 것이었군"
"그렇습니다. 이런 식이죠"

"아카네는 범인에게 습격당하기 직전까지, 빨간 볼펜을 써서, 미니-코미 잡지의 인터뷰 원고에 손을 대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최후의 체력과 기력을 짜내어 단서를 써서 남겼을 때도 편집자로 일하던 발상의 연장에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는 등호가 아니고 문자열을 소거하기 위해 쓰는 이중선, [Y]는 필요한 문자를 보충하기 위해 사용하는 삽입기호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어쨌건, 그녀는 메시지를 쓰던 도중에 힘이 빠져서 삽입해야 하는 문자를 써 넣지는 못했죠. 메시지를 완성하기 전에 숨이 끊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설령 미완성이라도 이 문자열을 본다면 그녀가 추가로 써 넣고 싶었던 문자가 무엇인지는 일목요연합니다. 다름아닌-

"-사카자키 미도리인가... 하지만 미도리에게는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네. 전에도 그렇게 말했을텐데?"

경시가 의견을 내자 린타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도 아까까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미도리의 진술을 다시 한번 잘 검토해 보도록 하죠. 사건의 관계자가 사카자키 미도리의 모습, 아니 목소리라도 실제로 확인한 것은, 오후 5시 30분 이전과 7시 20분 이후의 일에 한정되는데, 그 사이에는 2시간 가까운 공백이 있습니다. 그 정도의 사간 여유가 있다면, 전차를 갈아타서 세타가야의 시노다 까지 왕복하고, 동생인 아카네를 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확실히 그렇게 말한다면야 미도리의 알리바이는 없는것이나 마찬가지지. 그러나 그 2시간 사이에 미도리가 계속 남편과 그 애인의 행동을 감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되지 않나? 특히 6시대의 미도리의 진술은 모조리 사카자키의 행동과 부합하고 있다. 만약 그 때, 미도리가 니시나마 마유미의 맨션으로 부터 떨어져 있었다면, 어떻게 해서 사카자키의 행동을 감시하는 것이 가능했겠니?'
"단순합니다. 너무나 단순해서 오히려 맹점에 빠져버린 것이죠. 미도리가 남편과 공모해서 미리 그 날의 행동에 관해 입을 맞춰 놓았다고 한다면 어떻습니까?"

경시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미도리가 사카자키와 공모했다고? 그런 바보같은!"
"그렇게 바보같은 것입니까? 타인의 눈에 어떻게 보이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두 사람은 침식을 같이하는 부부였습니다. 운명 공동체라고 하는 것이죠. 사전에 세밀한 시나리오를 세워 세세한 곳 까지 입을 맞출 시간이라면 얼마든지 있었겠죠. 범행 당일, 사카자키가 그 시나리오 대로 행동하기만 한다면, 마유미의 맨션에 숨어서 감시하지 않아도 미도리는 그 사이의 움직임을 손에 잡듯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뒤에는 사람들 앞에서 두사람의 부부 사이가 위험한 것 같은 연기만 하면 되지요"
"- 기다려라. 자, 배달 피자의 건은 어떻냐? 미도리는 7시 조금 전에, 피자 배달원이 마유미의 맨션에 온 것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 일은 그 장소에 있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일 아니냐?"
"아뇨. 그것도 아닙니다. 미리 배달 시각이 7시 전후가 되도록 사카자키가 타이밍을 맞춰서 피자를 주문하도록 마유미에 시킨 것일 뿐입니다. 확실히 그 전후의 미도리의 진술은 시간의 기억이 애매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피자 배달원도 미도리의 모습은 보지 못했고요"

"그렇게 한다면 구노 경부가 생각했단 사카자키와 마유미의 공모설과는 반대로, 니시나마 마유미는 간접적인 알리바이 증인으로 삼기 위해, 사카자키 부부에게 이용당했을 뿐이란 말이냐?"
"아마도, 그렇겠죠"

라고 린타로는 동의했다.

"사카자키 부부의 계획의 교묘한 점은, 니시나마 마유미에게 알리바이가 성립 하는 것 같이 타임 테이블을 만들어 놓고, 미도리의 입으로 그녀가 범인이라고 고발하게 한 점입니다. 물론 그들은, 마유미에게 아카네 살인을 뒤집어 씌울 생각은 전혀 없었죠. 다만 마유미의 알리바이가 성립한다는 것을 경찰에게 확인 시키면서, 반대로 마유미와 사카자키의 행동을 감시하고 있다고 말한 미도리의 알리바이를 보강하는 것이 진짜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제 3자일 뿐인 마유미를 끌어들인 것도, 부부의 비밀스러운 관계를 언뜻 보기에는 미워하는 것 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경시는 깊은 한숨을 내 쉬었다. 드디어 이 사건의 전모가 드러난 것을 느꼈다. 린타로는 계속 말했다.

"이야기를 처음으로 되돌려 보지요. 미도리가 이 다이잉 메시지를 눈치챈 것은, 범행 직후는 아니고 8시 30분에 집에 돌아와서 사체의 발견자를 가장했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미도리는 메모패드를 보고, 그곳에 자신의 이름이 거의 적혀 있는 것에 깜짝 놀라, 메모 용지를 찢어서 숨겼습니다. 그 때, 한장 아래의 종이에 볼펜 자국이 남아 있는 것까지는 눈치채지 못한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죠"
"흠. 그렇게 된다면 이 전날 밤, 너가 쯔부라야 아케미에 관해서 세웠던 가설은, 그대로 사카자키 미도리에게도 적용되는 것이겠군. 그러나 미도리가 범인이라면, 2색 볼펜의 글자색을 검은색으로 바꾸어 놓은것은 왜지? 검은색 잉크가 나오지 않는 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녀에게는 빨간 색을 싫어할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에에 굉장히 사소한 것이지만, 이유는 확실합니다"

"어떤 것이지?"
"미도리가 남긴 단서는, 단적으로 말한다면 [수정해 넣는다] 라는 뜻이기 때문이죠. 다시 한번, 범행 현장의 상황을 머리속에 떠올려 주십시오. 거실의 테이블 위에는, 아카네가 수정하고 있던 인터뷰 원고가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메모패드의 메시지와 동시에 그것을 본 미도리는 [수정해 넣는다]라고 하는 말을 연상해서, 당연히 그것을 피하려고 서둘러 볼펜의 글자색을 바꿨겠죠."

경시는 목을 숙이고, 불만의 뜻을 표명했다.

"그러나, 미도리는 그렇게까지 신경질적으로 반응할 필요가 있었을까? 메모 용지를 찢어 낸 이후에는 [킷사카자미도리]라고 하는 원래의 문자열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수정하던 뭘하던 아무것도 신경쓸 필요는 없어진 것 아니냐?"
"아뇨. 아버지. 잊어버리면 안되는 것은, 그 시점에는 그 메모를 남기게 한 토코 유카리가 아직 살아 있었기 때문에, 뭔가의 우연으로 아카네가 남겼던 메모의 내용이 밝혀질 가능성이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두려워 했기 때문에 미도리는 생각을 거듭, 아카네의 메시지가 문자 그대로 [수정해 넣는다]라는 것을 숨기려 했던 것이죠. 아마도, 유카리가 미도리가 집에 없었을 때 전화를 걸었던 것 자체가 미도리에게는 정말로 예상외의 사고였기에, 그 시점에는 아직 그녀의 입을 봉하는 것 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을겁니다"
"역시나"
"미도리가 당황하고 급해진 것은, 사정청취를 받고 있던 도중에, 이콜 Y라고 하는 볼펜 자국이 메모페드 아래 용지에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된 때라고 생각합니다. 망연자실한 미도리는, 간신히 그 형태가 니시나마 마유미의 仁이라는 글자와 닮았다는 것을 떠올리고 그럭저럭 그 자리를 빠져나왔지만, 유카리를 살해할 결의를 굳히게 된 것은 그 때, 그 순간임이 분명합니다. 유카리의 입으로부터 [카자미도리]라고 하는 카페의 이름이 드러난다면, 자신의 범행이 들통날지도 몰랐기 때문이지요"

경시는 그 때의 일을 떠올렸다. 확실히 린타로의 말대로였다. 메모 패드를 보던 순간, 미도리가 숨을 멈췄던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다만 경시는, 그녀의 반응이 의미하는 것을 완전히 잘못 이해했던 것이다.

경시는 기분을 돌리며,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너의 말 대로, 사카자키 부부가 공모했다라고 한다면, 토고 유카리를 살해한 것은 미도리가 아니라 남편 사카자키의 짓일 가능성이 높겠군. 사카자키가 세이쥬서에 출두했던 것은 30일 오후 3시를 지났을 때였다. 유카리의 사망추정시각은 오후 1시 30분경. 타이지도우의 공원에서 그녀의 입을 봉한 뒤, 흔적을 없에고,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세이쥬서에 나타날 여유는 충분히 있었겠구나"
"그렇습니다. [카자미도리]에 걸려왔던 전화도, 남자의 목소리였기 때문에- 무서울 정도로 철저한 사카자키 부부는, 사람 앞에서는 부부 사이가 안 좋은 것 같은 연기를 했지만, 실제로는 비밀리에 연락을 주고 받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범행을 위해 연락용 휴대전화를 준비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미도리는 메모 패드에 남겨진 메시지로부터, 토고 유카리가 30일 오후 1시에 타이지도우의 카페에 나타난다는 것을 알고, 남편에게 사정을 이야기해서, 선수를 쳐서 유카리의 입을 봉하라고 명령한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동기는 뭐지? 사카자키 부부가 이 정도의 수단을 동원해서 연극을 꾸미면서 까지, 동생 아카네를 살해할 수 밖에 없었던 동기는?"

린타로는 싱긋 웃으며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어이어이 아버지. 그것을 밝혀내는 것이 아버지의 일 아닌가요?"

******

세이쥬서에 임의출두를 명령받은 사카자키 교우스케가 범행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 3일후의 일이었다. 기운을 잃고 어깨를 늘어트린 사카자키의 입에서 사건의 전모와 다치가와 아카네 살해의 동기가 밝혀지게 되었다.

다치가와 아카네 살해 범인과 알리바이 공작에 관해서는, 대부분 린타로가 추측한대로였다. 곧바로 사카자키는 토고 유카리를 타이지도우의 공원에 불러내어, 그 자리에서 살해한 사실을 인정했다. 29일 심야에 휴대전화를 통해 미도리가 범행을 지시했기 때문이었다. 사카자키는 20일 오후 [카자미도리]에 전화를 걸어 '아내가 급한 병으로 나올 수가 없게 되었다. 대신 내가 말했던 가게에 가려고 했지만 장소를 잘 알지 못해서 찾기가 어렵다. 가까운 공원에 있으니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다'라고 유카리에게 전했다. 사카자키는 몇번 아내와 같이 토고 유카리와 만난 적이 있어서, 그녀는 공원에 와서도 전혀 의심을 품지 않았다. 준비한 나일론 끈으로 목을 조를 때에도 거의 저항다운 저항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카리의 가방을 가지고 간 것은, 강도의 범행으로 보이게 하기 위한 것이 목적은 아니었고, 그녀의 휴대전화를 처분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말할 것도 없이, 유카리가 [벨코포 시모다]에 전화한 것이 발각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유카리가 호텔 객실 전화로 걸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사카자키는 굉장히 허탈해했다.

사카자키는 토고 유카리의 살해가 결국 실패한 범행으로 끝나 버린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범행은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유카리가 전화를 걸어왔던 것은, 계획외의 사고였고, 아카네가 남긴 다이잉 메시지의 의미를 깨닫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유카리가 아카네의 죽음을 알기 전에, 입을 막아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메모 패드의 적혀진 메모를 본 미도리는 유카리가 휴대폰으로 전화 했다고 생각해서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한번 그녀의 번호를 걸어 보았지만, 그 번호는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것 같았다. 새로운 휴대폰 번호는 알지 못했기 때문에, 유카리와 접촉할 수 있는 방법은 [카자미도리]에서 기다리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것도 이것 역시 너무나 위험한 방법으로 보였다고 했다.

또한 밝혀진 것은, 사카자키 부부가 아카네의 살해을 떠올리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사카자키가 니시나마 마유미와 불륜의 관계에 빠진 것이었다. 마유미는 돈 씀씀이가 헤픈 여자로, 사카자키가 돈을 계속 쏟아부어도, 바닥이 없는 눞과 같아서 좀 더, 좀 더라고 말하곤 했다고 했다. 여자의 기분을 계속 맞추어 주기 위해 사카자키는 결국 회사의 돈을 빼돌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들통나지 않고 맛을 들여 회사의 장부를 조작해서 결국 백만단위의 돈을 횡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다. 그리고 그가 회사 돈을 빼돌리고 있다는 소문마저 사내에 퍼지게 되어 6월의 결산기를 앞두고 사카자키는 자신의 목을 지키기 위해 조급히 장부의 구멍을 메우지 않으면 안되는 궁지에 몰렸다.

그렇다 해도, 그만한 돈을 쉽사리 융통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사카자키는 고민끝에 아내 미도리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이 궁지를 벗어나기 위한 수단이 없는지 상담했다.

"이것을 기회로 니시나마 마유미와 완전히 손을 끊겠다고 약속해준다면, 뭔가 당신을 도울 방법이 없다고 할 순 없을 것 같아요"

라고 미도리는 말했다. 수년전, 미도리의 양친이 차례로 돌아가신 직후, 두 자매가 서로를 의지하기 위해 동생 아카네와 같이 서로를 상호 수취인으로 하는 생명보험에 가입했다고 했다. 아카네를 살해, 사망보험금을 받아넨다면, 지금까지의 회사 장부의 구멍을 메우는 것이 가능하다고.

사카자키는 처음에는 아내가 진심으로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사카자키 이상으로 미도리 쪽이 진심이었다. 그 진심에 이끌려 가게 되어, 곧바로 사카자키도 아카네를 살해하는 일을 결의하게 된 것이었다. 사카자키에게도 생각이 닿는 것이 없지는 않았다. 미도리와 결혼하고 얼마간이 지나서, 대수롭지 않은 불장난의 결과로, 동생 아카네와 관계를 가진 적이 있었다. 서로가 거북했기에 계속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미도리는 그 사실을 희미하게 눈치채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이 출장으로 집을 비웠을때에 한해서만 동생을 집으로 부른것은, 남편과의 관계를 의심하고 있는 탓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할 때가 종종 있었다.

아카네의 살해에는 1개월전부터 시간을 들여 철저히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했다. 니시나마 마유미를 알리바이 증인으로 세우자고 말한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미도리 쪽이었다. 아니, 그것에 한해서가 아니라 모든 계획과 실제 범행 전부에 있어서 주도권을 쥔 것은 아내쪽이었다. 범행당일이 가까와 오자, 사카자키는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아내의 진짜 동기는, 보험금도, 나를 도와주기 위해서도 아니고, 물론 동생에 대한 질투때문도 아닌것 같습니다. 나를 생각하는 대로 조종해서 같이 범죄에 손을 담그도록 움켜쥔 뒤, 영원히 자신의 손에서 내가 도망칠 수 없도록 속박하는 것, 미도리는 단지 그것만을 위해서 이번 범행계획을 세운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 한편, 아내 미도리는 범행을 부인. 의연하게 침묵을 지키고 있다.

PS :   읽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재미있으셨나요? 오타와 의역 투성이라 죄송스럽기도 하지만 내용 전개는 되는 수준이라 자평하고 있습니다^^ 재미있으셨으면 감상이라도 한줄~

2023/05/29

亂れからくり 복잡한 기계장치 : 12. 카라쿠리 미로

亂れからくり (創元推理文庫) (文庫) - 8점 泡坂 妻夫/東京創元社

12. 카라쿠리 미로
다음 날, 토시오가 니시키 빌딩의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마이코는 자신의 책상에 앉아 한 장의 종이를 놓고 몰두하고 있었다. 토시오의 얼굴을 보자 그녀는 종이를 들고 일어섰다,
"차나 마시자"
평소와 다름없이 사무실을 나섰다.
카페 테이블에 가져온 종이를 펼쳤는데, 그것은 소우지의 노트에서 복사한 미로의 개략도였다.
"카츠 군, 이 미로,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마이코는 미로가 그려진 그림을 토시오 앞에 내밀었다.
"커피, 커피로, 괜찮지?"
토시오는 우물쭈물 대답하며 미로를 바라보았다. 이상하다는 말을 듣고도 그 의미를 바로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토요일에 카츠 군은 카오리와 함께 미로에 들어갔지만, 미로의 중심부에는 도착하지 못했다고 했지?"
"네, 맞습니다."
"너의 말에 따르면, 미로에는 단연결형과 복연결형 두 종류가 있는데, 단연결형 미로에서는 한 손을 미로 벽에 대고 진행하면 돼. 손이 항상 벽에 닿아 있기만 하면 막다른 골목에 들어가도 언젠가는 골인 지점에 도착할 수 있으니까. 맞지?"
"맞습니다."
"이 미로는 위에서 내려다보면 그다지 어려운 미로는 아니야. 그게 문제였어. 나도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이 미로의 진정한 의미를 몰랐었고. 그런데 오늘 아침 문득 생각나서 네가 시도한 방법으로 미로를 진행해보았어."
마이코는 성냥개비를 꺼내 토시오에게 건넸다.
"자, 이 그림으로 네가 실제로 미로에 들어갔을 때와 똑같이 미로를 통과해 봐."
토시오는 성냥개비 끝을 미로의 왼쪽 벽에 대고 조용히 따라갔다. 성냥개비는 몇 개의 막다른 골목길을 돌았지만, 놀랍게도 마지막에는 정확하게 오각형의 중심에 도달했다.
"어때?"
마이코가 미로를 들여다보았다.
"중앙에 도착했어요."
"반대편 벽으로도 시도해 봐."
토시오는 성냥개비를 오른쪽 벽에 대었다. 결과는 같았다. 성냥개비는 똑같이 마지막에 중앙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카츠 군은 그때 벽에서 손을 뗀 적은 정말 없었어? 아니면 앞만 보고 가다가 막다른 골목에 들어가는걸 빼먹은건 아니었어?"
"아니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절대로 벽에서 손을 떼지 않았어요."
"이 그림이 잘못 그려진건 아니야. 실제로 그날 소우지가 미로를 안내할 때 나는 이 그림을 보면서 굽이굽이마다 구석구석 확인해 두었어. 이 미로는 단지 단연결된 미로에 불과해."
"그럼 저는 왜 미로 중심부로 골인하지 못했을까요?"
커피가 나왔다. 마이코는 설탕을 컵에 듬뿍 담아 제대로 섞지도 않고 마셨다.
"이 미로를 만든 사람은 꽤나 머리를 쓴 것 같아."
"그렇습니까?"
"이렇게 그림으로 보면 별 것 아닌 미로로 보여. 하지만 실제로 미로에 서보면, 조금만 실수해도 골인할 수 없도록 여러 가지 장치가 되어 있어. 이 미로를 만든 사람의 세심함에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고 싶을 정도야."
"그런가요 ......"
"첫째, 이 모양에 주목해야 해. 오각형말이야. 이 모양이 인간의 방향 감각을 잃게 하는 첫 번째 원인이야."
"오각형이 사람을 미치게 한다고요?"
"그래. 이상하게도 인간의 머릿속에 있는 기본 형태는 삼각형도 아니고, 오각형도 아니야. 언제나 사각형이야. 네모난 집, 네모난 테이블, 네모난 침대, 네모난 종이, 네모난 책 ...... 인간이 보통 접하는 대부분의 물건이 네모야. 잘 정비된 도시는 반드시 바둑판의 눈처럼 깔끔한 사각형으로 구분된 길이 붙어 있기도 하고. 길을 잃기 쉬운 길은 그것의 형태와 구분이 깔끔한 사각형이 아니기 때문이야. 그런데 오각형의 굴곡은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가면 사각형의 굴곡으로 인식될 것 같아."
"이 미로의 모든 면이 휘어져 있는 것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더욱 강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군요."
"그것도 있지. 그리고 또 하나는 미로에 들어간 사람의 시야를 없애는거야. 미로를 나아가다가 갑작스럽게 돌발적인 느낌으로 갈림길이 나타나도록. 실제로 그렇지 않았어?"
"그랬어요. 정말 불안한 느낌이 들었어요."
"햄튼 코트의 미로를 백과사전에서 찾아봤는데, 일부에 이런 갈림길이 쓰여 있더라고. 하지만 부채꼴 모양으로 장식성은 있을지언정, 나사 저택의 미로처럼 현기증을 유발하는 용도로 사용되지는 않은 것 같아. 나사 저택처럼 모든 길에 현기증이 나는 갈림길이 준비되어 있는 예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어. 또 이 미로를 자세히 보면........"
마이코는 빨간 연필을 꺼내 미로의 바른 길을 빨간색으로 칠했다.
"이 바른 길 말이야. 미로에 들어가는 사람은 중심부를 향하게 돼. 그래서 당연히 중심부 방향으로 길을 선택하려고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른 길은 미로의 중심을 등지고 돌아가야만 하는 갈림길을 여러 개 만들어 놓았어. ……. 뭐, 이것은 미로의 상식이기 때문에 당연하기는 하겠지. 그런데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건 이렇게 다양한 장치를 담은 미로가 결국 단연결 미로였다는 점이야."
"단연결 미로는 안 됩니까?"
"안 돼지. 카츠군이 시도한 방법, 즉 손을 벽에 대고 나아가는 방법은 미로를 소개하는 책에는 반드시 설명되어 있어. 그렇다는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방법으로 쉽게 풀 수 있는 미로를 만들었다는 뜻이야. 오각형 등 여러가지 장치로 사람을 미치게 하는 데 열중하던 사람이 말이야. 어딘가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지 않아?"
"하지만 실제로 저는 미로의 중심부에 도달할 수 없었죠......"
"그게 핵심이야. 이 미로를 굳이 단연결로 만든 것은, 때로는 미로에 들어간 사람이 절대 미로의 중심에 도달할 수 없도록 하는 장치가 되어 있는 게 분명해."
"절대로 골인할 수 없는 장치?"
토시오는 무심코 미로 그림을 다시 보았다.
"실제로 토요일에 카츠 군이 미로 중심부에 골인하는데 실패했잖아? 그거야말로 단연결 미로 해결 방식으로는 중심부로 갈 수 없도록 만들어졌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지."
"그런가요?"
"다시 한 번 그 미로 안으로 들어가 봐야 할 것 같군."
밖으로 나오니 이상하게 따뜻했다. 마이코는 비가 오는 것 같다고 말하며 오렌지색 코트를 에그의 뒷좌석에 던져 넣었다.

나사 저택 안에는 많은 차들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제복을 입은 경찰이 차를 세웠다.
마이코는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나라키와 아는 사이라고 말했다.
잠시 후, 나라키 대신 호시자와가 저택에서 나왔다.
"당신이 오면 항상 나쁜 일만 일어나."
호시자와는 잠에서 깬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많이 혼잡한 것 같네."
마이코는 늘어선 차를 보며 말했다.
"해바라기 공예의 간부들이 모였어. 사장님을 중심으로 잠시 후 회의가 시작될 예정이야."
해바라기 공예의 핵심 간부를 두 명이나 잃었으니, 회사로서도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는 셈일 것이다.
"데츠바씨는 잘 지냈어?"
"건강해 보여. 강인하더군. 아들과 딸을 잃고도 우리 앞에서는 한 번도 약한 소리 한 번 내지 않으셨어. 대단한 분이야."
"마사오 씨를 만나고 싶은데..."
"안 돼."
"안 된다고? 설마, 용의자로 지목된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니지만 안 돼. 바빠서 말이야."
"언제 만날 수 있어?"
"중요한 용건인가? 내가 대신 전해줄 수 있어."
"나라 공이 그렇게 시켰겠지. 변함없이 융통성 없는 남자로군."
"우리가 알면 안돼는 용건인가?"
"뭐, 됐어. 그 대신 정원을 산책하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냄새를 맡으면서 돌아다닐 거라면 그만두는 게 좋을 거야"
"그런 술에 취한것 같은 짓거리는 당연히 하지 않아. 잠깐 바깥 공기를 마시고 싶을 뿐이야."
"나쁜 말은 하지 않겠어. 그냥 돌아가는 게 나을거야."
"경찰이 민간인의 협조를 거부하게 된 건가?"
"그럴 생각은 없어"
"그럼 괜찮지 않아? 호위병이 있어도 상관없어."
호시자와는 마지못해 차를 통과시켰다.
"이상한 짓은 하지 말고, 쉬고 나면 바로 돌아가. 오늘은 마사오 씨와 만날 수 없어."
라며 말렸다.
마이코는 어슬렁어슬렁 정자 쪽으로 걸어갔다. 호시자와는 한 순경을 붙잡고 무언가 지시를 내렸다. 정말로 호위병과 함께 걷게 되었다.
정자의 흙에는 아직 피가 묻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흙에 흡수되어 신경써서 확인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 있을 정도의 흔적이었다.
마이코는 정자 앞의 다소 가파른 언덕을 내려와 돌다리를 건너 미로 쪽으로 걸어갔다. 토시오는 마이코를 따라 천천히 미로를 돌았다. 마지막 모퉁이를 돌자 마이코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서둘러!"
라고 말하며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토시오도 뒤따라 달렸다. 마이코는 그대로 미로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마이코는 미로의 길을 훤히 꿰뚫고 있는 것 같았다. 모퉁이를 돌아도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정확하게 길을 선택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로의 중심부에 도착했다.
"지도대로야."
마이코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 지도는 틀리지 않았어. 그렇다면, 카츠 군은 왜 그날 실패했던 걸까?"
마이코는 돌 의자에 앉아 가방에서 지도를 꺼냈다.
"뭔가 있는 모양인데.... 뭔가 ......."
마이코는 돌로 된 테이블을 쓰다듬었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를 발견하고, 탁자 밑으로 몸을 굽혀 떨어진 물건을 집어 들었다. 성냥개비의 타버린 조각이었다. 끝이 씹혀서 부서져 있었다. 마이코는 지겹다는 듯 성냥개비를 탁자 밑에 버렸다.
"미로 안에 돌 의자가 놓여 있었어요."
토시오는 처음 미로에 들어갔을 때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건 이 그림에도 제대로 적혀 있어요."
마이코는 그림의 ○표를 가리켰다.
"올바른 길은 의자 앞을 지나치지 않도록 되어 있군요."
"맞아. 올바른 길로 지나가면 의자 앞을 지나치지 않아. …….잠깐만. 의자 앞을 지나쳤다고?"
마이코가 깜짝 놀랄 정도로 눈을 크게 떴다.
"너, 그날 의자 앞을 지나쳤어?"
"네."
마이코는 지도를 두드렸다.
"이 지도에서는 의자가 막다른 골목 안쪽에 표시되어 있어."
마이코는 지도를 들고 일어섰다. 중앙을 벗어나 미로를 거꾸로 따라간다. 몇 번 모퉁이를 돌자 막다른 골목 안쪽에 타원형의 돌이 보였다.
"의자는 이걸 말하는거지?"
"맞습니다. 바로 이거였어요. 하지만 막다른 골목에 있던건 아니었습니다. 이 앞을 지나갔던 기억이 나는데요."
마이코는 몸을 굽혀 타원형 의자를 면밀히 살폈다. 얼마간 시간이 흘렀다. 마이코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아무래도 미로의 속임수를 알아챈 것 같아."
마이코는 막다른 골목에서 나와 다시 미로의 중심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중심부 입구의 울타리를 살피기 시작했다.
"이 울타리의 바로 뒷편에 돌 의자가 놓여 있어."
마이코는 계속 울타리를 만지작거리다가 울타리 밑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레버 같은 것이 나와 있어. 잡아당겨 보지."
반응이 있는 것 같았다. 동시에 울타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심해."
마이코는 몸을 움츠렸다. 울타리는 마치 문처럼 움직여 오각형의 중심부 광장을 꽉 막아 버렸다.
"즉, 의자 앞의 통로가 열려있으면 ……. 이쪽은 막다른 골목이 아니야. 반대로 이 중심부는 닫힌 방으로 변해버리게 돼지. 여기가 닫히면 더 이상 아무도 이 안으로 들어올 수 없게 되는 거야."
마이코는 다시 한 번 닫혀 방처럼 변해버린 미로의 중심부를 둘러보았다.
"사람을 못 들어오게 하기에는 너무 신경을 많이 쓴 것 같군."
이 장난이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은 곧 알게 되었다.
토시오는 문득 귀를 쫑긋 세웠다. 땅속에서 물이라도 흐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그 소리에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그때 오각형 방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중앙에 있는 오각형의 돌 테이블이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돌탁자는 튕겨져 나오듯 일어섰고, 탁자 밑에 있던 오각형의 포석이 가라앉으면서 오각형 모양의 검은 구멍이 뻥 뚫렸다.
구멍에는 가파른 돌계단이 바닥으로 이어져 있었다. 토시오는 조심스럽게 구멍의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구멍은 꽤 깊었고, 돌계단은 어둠의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었다. 습한 공기가 희미하게 불어왔다.
"이게 뭐죠?"
토시오는 깜짝 놀라며 마이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동굴이야."
마이코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금방이라도 몸을 날려 구멍 속으로 들어가려는 모습이었다.
"르네상스 이후의 조경은 인공적인 도원향을 만드는 것이 이상적이었어. 정원에는 이국적인 정자, 분수, 미로, 실물 크기의 자동 인형이 놓여 있고, 동굴 안에는 다양한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지."
"이 동굴은 만들어진 것입니까?"
"그건 직접 들어가 봐야 알 수 있겠지. 하지만 내 상상으로는 반반인 것 같아. 오나와라는 땅에서는 고대인의 토기 등이 발견되고 있으니, 고대인이 살던 동굴을 조금 가공해서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오나와라는 지명은 다혈(多穴)이라는 뜻의 '오아나(おおあな)'가 사투리로 전해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거든."
"이 큰 돌 탁자를 움직인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전력인가요?"
"전력 따위가 아니야. 수력의 힘을 이용한 것 같아."
"그러고 보니 물소리가 들리네요."
"이 동굴은 꽤 넓은 것 같아. 연못의 물이 흘러서 동굴 안에 물이 고여 있는 곳이 있는데, 저 레버를 당기면 그 물이 한꺼번에 흘러서 그 힘으로 테이블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되는군.”
"이 동굴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나사 저택은 마와리 호도가 만들었지만, 이 동굴은 호도의 아버지인 사쿠조가 만든 것 같아"
"그 시대 사람들처럼 사쿠조는 이상향으로 이 동굴을 만들었을까요?"
"그건 아닌것 같아. 이 미로부터가 매우 폐쇄적이니까. 단지 재미나 장식을 위해서라면 이런 장난은 불필요했을거야."
"그러니까 동굴이 열려 있을 때는 아무도 모르게 미로를 닫아놓는 거군요."
"내려가 보자."
마이코는 아무렇게나 말하면서 가방을 열었다. 가방 안에는 손전등과 양초가 준비되어 있었다.
"우다이 씨는 미로 안에 동굴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나요?"
토시오가 놀랐다.
"마와리 가문의 철야 때 만났던 스님이 미로를 만드는 동기도 다양하다고 말했었지. 그 말이 마음에 남아 있었어."
마이코는 직접 촛불을 들고 손전등 쪽을 토시오에게 건넸다.
"지금도 이 미로가 정확하게 움직이는 걸 보면 최근에 누군가가 이 미로를 손질한 적이 있는 게 틀림없어. 그래서 아마 괜찮을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만일의 사태가 발생하면 치명적일 수 있으니 양초가 필요해. 만약 양초의 불이 꺼지면 산소가 없다는 뜻이니까."
마이코는 촛불에 불을 붙이고 구멍 옆에 섰다. 동굴의 바람이 불어서 양초의 불이 꺼져버렸다. 마이코는 불을 다시 붙인 뒤 바람을 피하면서 돌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토시오는 뒤따라가며 손전등으로 마이코의 발밑을 비춰주었다.
돌은 검고 축축하고 가팔랐다. 동굴 안은 따뜻하고 곰팡이 냄새가 났지만 불쾌하지는 않았다. 마이코는 돌계단 중간에 몸을 굽혀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아까의 성냥개비 조각이 떨어져있었다. 동굴의 문이 열렸을 때 안으로 들어온걸로 보였다. 마이코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조각을 주머니에 넣었다.
돌계단은 꽤 깊었다. 희미하게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토시오는 손전등으로 마이코의 발밑을 조심스럽게 비췄다.
돌계단을 내려가자 여섯 장 정도의 넓이의 돌방이 나왔다. 바닥 곳곳에 물이 고여 있어 손전등 불빛을 비추자 하얀 거미 같은 벌레들이 도망쳐 나갔다. 석실 벽에는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구멍 두 개가 나란히 눈동자처럼 열려 있었다.
"보라고."
마이코의 큰 목소리가 동굴에 울려 퍼졌다. 마이코는 방금 내려온 계단 아래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박쥐의 손아귀처럼 녹슨 쇠막대기가 튀어나와 있었다.
"이걸로 미로의 문을 열고 닫을 수 있겠지."
마이코는 막대기에 손을 대었다가 바로 물러섰다,
"지금 테이블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곤란하겠지. 호위 아저씨에게 들킬지도 몰라."
마이코는 두 개의 동굴 안쪽에 촛불을 비췄다. 하나는 완만한 오르막길이고, 다른 하나는 가파른 내리막길이었다. 물론 안쪽까지 빛이 닿지는 않았다.
"카츠 군이라면 어느 쪽을 선택할래?"
마이코는 촛불의 반짝임 속에서 섬뜩하게 웃었다.
토시오는 땅을 주의 깊게 살폈다. 최근에 누군가가 지나갔다면 발자국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이하게도 이론적으로 풀려고 하네."
마이코는 토시오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듯 말했다. 하지만 두 동굴 어느 쪽에도 발자국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면 또 한 쪽 손을 벽에 붙이고 가야할까? 이 구멍은 꽤 길 것 같은데?"
"그럼, 우다이 씨는 어느 길이 맞는지 알 수 있나요?"
불만을 품은 듯한 토시오의 목소리에 마이코는 다시 웃었다.
"물론, 왼쪽이야."
마이코는 망설임 없이 왼쪽의 가파른 경사면에 있는 구멍으로 들어갔다.
"꺾는 순서를 메모해 둘까요?"
"아니, 이미 가지고 있어."
"그럼 동굴의 길찾기 지도를 찾았나요?"
"그런 것, 있다고 하면 있고, 없다고 하면 없지."
천장이 낮아 두 사람은 허리를 굽혀 걸어야 했다. 한참을 가다가 마이코가 걸음을 멈추고 땅을 바라보았다.
"왁스가 흘러내린 흔적이 있네. 우리처럼 걸어온 사람이 있었구나. 내 생각이 옳았던 것 같군."
그러다 길이 다소 넓어지고 평탄해지자 두 갈래로 갈라진 길로 접어들었다.
"봐."
마이코는 동굴 벽을 가리켰다.
"두 개의 구멍은 자세히 보면 서로 다를 거야. 한쪽은 벽을 깎은 흔적이 새롭지. 그러니까 이 두 구멍이 생긴, 혹은 만들어진 시대에 차이가 있다는 뜻이야."
"......알겠습니다. 즉, 새로운 구멍은 동굴을 복잡하게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니, 거기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오래된 길을 선택하면 되겠군요."
"그렇다면 그 반대도 생각해 볼 수 있겠지. 새로운 구멍은 불완전했던 동굴을 완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올바른 길 순서는 새로운 구멍을 선택해야 한다."
"어느 쪽 해석이 옳은가요?"
"결국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마이코는 얼른 오래된 쪽의 구멍으로 들어갔다.
길의 폭이 넓어지고, 왼쪽에 좁은 도랑이 뚫려 물이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마이코는 걸음을 멈추고 귀를 쫑긋 세웠다.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이상하네. ...... 누군가가 미로의 문을 닫은걸까?"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계속 걸음을 옮길수록 물소리가 더 커졌다.
"...... 폭포가 있어."
"폭포가? 동굴에?"
토시오는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이코는 촛불을 들었다. 그 빛 끝에 실 같은 무언가가 보였다. 가느다란 폭포였다.
폭포가 있는 곳은 꽤 넓고 천장도 높았다. 석실 양 옆에는 큰 구멍이 뚫려 있고, 두 구멍 사이로 튀어나온 듯한 바위가 있고, 물은 바위 위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바위 표면은 물보라로 빛나고, 떨어지는 물은 도랑을 따라 조용히 흘러내렸다.
폭포는 두 갈래로 꼬불꼬불하게 휘어져 각각 뾰족한 바위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바위 사이에 접시처럼 움푹 패인 곳이 있는데, 그곳에 고인 물은 손전등 불빛 아래에서도 맑고 깨끗해 보였다.
"이번에는 이쪽이야"
폭포를 바라보던 마이코가 몸을 돌렸다. 촛불이 흔들리며 동굴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어떻게 아는 거지요?"
토시오는 마이코가 선택한 동굴에 전등을 비췄다.
"아하, 동굴의 지도가 있었군요."
마이코가 돌아보았다.
"있었어. 엄청나게 큰 녀석이."
"어디에요?"
마이코는 천장을 가리켰다. 토시오는 깜짝 놀라 위를 올려다보았다.
"여기서는 보이지 않아. 땅 위에 있었어."
토시오는 무슨 말인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 마이코는 양초를 토시오에게 건네주며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이 나사 저택의 주인인 마와리 호도는 장난감을 싫어했다고 하지. 장난감의 창작보다는 상술에 능숙했기 때문에 작은 회사였던 츠루슈도를 해바라기 공예라는 큰 회사로 키울 수 있었어. 그런 사람이 왜 장난감 나라에나 나올 법한 나사 저택 같은 집을 지었을까?"
"단순한 변덕이 아니었나요?"
"아니야. 호도는 장사도 잘한걸 보면 굉장히 계산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일거야. 변덕스럽게 이런 이상한 건물을 만들지는 않았을테지."
"그럼 또 다른 동기가 있었나요?"
"그래. 나는 나사 저택 같은 기괴한 건물이라면, 정원에 이상한 미로가 만들어져도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있을 거라는게 이유라고 생각해. 만약 일반 가정집에 미로가 있다고 해봐. 미로만 너무 눈에 띄어서 사람들의 시선이 미로에 집중되었을거야."
"그럼 미로를 만들고 싶어서 호도는 나사 저택을 만든 건가요?"
마이코의 말은 상식을 뛰어넘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럼, 그 미로는 왜 만들었나요?"
토시오는 그때까지 미로를 만들어야만 했던 호도의 마음을 도무지 읽을 수 없었다.
"그래, 좋은 질문이야. 장난감을 싫어하는 호도가 왜 미로를 만들었을까?"
마이코는 가방을 열어 오각형의 미로 그림을 펼쳤다.
 
"이건 땅에 그린 동굴의 지도인 것 같아."
"지도? ...... 에서도 이 동굴은 오각형이 아니잖아요."
"지도라는건 실물과 똑같은 축척으로 그려야 한다고 정해져 있는 건 아니야. 도쿄의 야마노테 선의 지도는 만두에 꼬챙이를 꽂아놓은 것처럼 그려지기도 하잖아. 즉, 실제 길과 그림이 상대적으로 동일하다면 그림은 아무리 변형되어도 상관없다는 뜻이야."
"알겠습니다."
"즉, 나사 저택의 미로와 이 동굴의 길은 위상적으로 동일하다는 거지."
"위상적?"
"오각형 미로의 입구와 골목을 잇는 길에 밧줄 하나를 놓았다고 하자. 그 밧줄에 갈림길, 즉 막다른 길에도 밧줄을 뻗어 본길과 연결해 주는 거지. 미로 안의 모든 길에 밧줄이 깔렸을 때, 밧줄을 빼내어 양 끝을 잡고 잡아당겨 보라고."
"내 팔은 그렇게 길지 않아요."
"융통성 없는 남자네. 로프를 훨씬 더 짧게 만들어서 생각해 보라고. 그러면 이런 모양이 될 거야."
마이코는 미로 그림을 토시오에게 보여주었다. 마이코는 그림의 모서리에 나뭇가지 같은 그림을 그려 넣었다.
"미로나 동굴의 길을 생각할 때 길의 길고 짧음, 오르막과 내리막, 길의 굴곡 등은 생각할 필요가 없어. 길이 아무리 구불구불하고 각이 져 있어도 상관없다고. 다만 문제는 갈림길에서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지."
"오각형의 미로와 동굴의 길이 같다는 의미는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갈림길에서는 미로와 같은 방식으로 꺾어 왔던 거군요."
"맞아. 막다른 골목에 부딪히지 않은 것을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이 맞았던 것 같네."
"동굴의 지도를 그리는 데 왜 이런 엉뚱한 방법을 택한 거죠?"
"호도는 일반인에게 동굴이 알려지는 것을 절대 원치 않았어. 그런데 지도를 세밀하게 그려놓을 경우, 다른 사람이 보면 이 저택 안에 동굴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도둑맞을 수도 있으니 문제가 많지. 그래서 호도는 동굴의 그림을 미로로 바꾸어 놓는 방법을 생각해냈던거야."
"미로 자체가 지도였던 거군요"
"호도는 동굴의 그림을 지상에 크게 그린 거지. 설마 이것이 동굴의 길을 표현한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거야."
"그렇게까지 해서 숨기려고 한 동굴 안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는 걸까요?”
크로커다일폴리스의 미궁에는 왕과 크로커다일이 묻혀 있었다고 했다.
"그건 아직 알 수 없지. 호도는 그저 통로로 이용했을지도 모르고."
"그럼 이 길은 어디로 이어져 있는 건가요?"
"확실하진 않지만, 내 생각에는 아마 나사 저택 안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싶은데?"
마이코는 다시 한 번 지도를 훑어본 후 촛불을 들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길의 굴곡은 점점 심해져 불규칙한 계단과 언덕이 이어졌고, 땅바닥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의 갈림길을 지나니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공간이 나타났다. 바위로 둘러싸인 복잡하고 넓은 공간이었다. 길은 바위 틈새를 통과하듯 세 갈래로 나뉘어져 있었다.
"오각형의 미로에 대응시키면 E의 지점에 해당되지."
마이코는 지도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미로의 E 지점은 세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마이코는 주변의 바위를 둘러보며 돌아다녔다,
"르네상스 이후에 만들어진 동굴 안에는 물속에서 움직이는 인형이 놓여 있었다고 해. 물론 다양한 장식도 가득 차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고. 또 종교적 수행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동굴에는 벽면에 많은 불상 등이 새겨져 있었어.”
"이 동굴 안에 그런 것이 있나요?"
"없군. 보이지 않아. 그냥 맨땅과 흙이 있을 뿐."
"이상한 말이지만, 이 동굴에서는 실용주의적인 냄새가 나네요."
마이코는 바위 틈새에 몸을 넣었다.
"오각형의 미로에는 본 길에 대해 여섯 개의 갈림길이 있어. 지금 막 여섯 번째를 지나고 있는 중이야. 내 생각대로라면 드디어 출구가 나오는 거지."
하지만 그 출구에 도달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었다. 길은 쉴 새 없이 굽이굽이 이어졌고, 좁은 곳은 몸을 옆으로 눕혀야만 빠져나갈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다소 곧게 뻗은 길을 따라 올라가면 작은 공간이 나왔다. 그곳은 처음에 돌계단을 내려왔던 곳과 느낌이 많이 비슷했다. 넓이도 거의 비슷했고, 위로 올라가는 가파른 돌계단도 있었다. 토시오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문을 열고 닫는 레버가 없어."
마이코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마이코도 똑같은 생각을 한 것으로 보였다. 마이코의 말대로 돌계단 옆에 있던 막대가 이 방에는 없었다. 막대기뿐 아니라 물건을 움직일 수 있는 장치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다.
"일단 올라가 보자"
마이코가 먼저 서서 돌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돌계단 중간쯤에 뾰족뾰족한 흰 풀이 자라고 있었다.
돌계단을 다 올라간 곳에 두꺼운 판자로 된 문이 있었다. 녹슨 철제 틀이 끼워져 있고, 나무 껍질은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기름을 바른 흔적이 있네."
문의 경첩을 보고 있던 마이코가 말했다.
마이코는 문에 살며시 체중을 실었다. 문이 작은 소리를 냈다. 마이코는 촛불을 껐다. 문틈 사이로 가느다란 빛이 보였다.
"전등을 아래로 향하게 해."
마이코가 작게 말했다. 토시오는 시키는 대로 전등을 아래로 향하게 하고 문 반대편 상황을 살폈다.
마이코는 몇 숨을 쉬고 나서 문을 반대편으로 밀었다. 문은 무거운 소리를 내며 크게 움직였다. 문 반대편에서 곰팡이 냄새가 나는 공기가 흘러들어왔다.
희미하고 먼지가 자욱한 방이었다. 사방이 거친 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빛은 천장 가까이 열린 작은 사각형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토시오는 어렸을 때 친구 집에 있던 낡은 창고를 떠올렸다. 바로 그 창고 안과 똑같았다. 낡은 인형, 제등, 검은 상자 더미, 큰 화로 등이 무질서하게 쌓여 있었다.
토시오는 무심코 방금 들어온 문을 닫았다. 묵직한 소리가 나더니 문이 스르륵 사라졌다. 문은 방에 면한 쪽이 사방의 벽과 같은 색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토시오는 당황하여 문을 찾으려고 벽을 쓰다듬고 돌렸다.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 손바닥이 순식간에 검게 변했다.
"문이 없어졌어요."
토시오는 마이코에게 말했다. 마이코는 벽의 위아래를 살폈다,
"이렇게 하는 거야."
마이코는 문이 사라진 곳의 기둥을 세게 잡아당겼다. 기둥과 벽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문 뒤에 기둥과 벽이 붙어 있었던 것이다.
마이코는 문을 다시 닫으면서 오른쪽 벽에 주목했다. 이 벽이 미닫이문 역할을 하는 것 같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동굴의 출입구는 모두 동굴로 들어가려는 사람의 눈을 속이도록 고안된 것이었다.
마이코가 벽에 손을 얹고 힘을 주자 벽이 옆으로 움직이면서 좁은 틈이 나타났다. 마이코는 틈새에 눈을 대고 반대쪽을 들여다보았다.
"내 생각대로군. 데츠바의 방이야."
마이코는 벽을 크게 당겼다. 벽의 구멍 맞은편에 갈색 종이가 걸려 있었다.
"아무도 없나요?"
토시오는 마이코의 대담함에 놀라며 말했다.
"여기 있는 종이는 족자야. 이곳은 데츠바의 다실 다다미방 안쪽이고. 이 족자는 산수화지. 그날 나는 이 방에서 산수화를 보며 데츠바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 ......"
마이코는 족자를 치우고 방 안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마이코의 몸이 굳어지는 것이 뒷모습으로도 확연하게 느껴졌다.
"어?"
마이코는 신발을 걷어차고 구멍을 빠져나갔다. 토시오도 서둘러 신발을 벗었다.
여섯 장의 다다미방. 검은색으로 칠해진 책상 위에 데츠바가 엎드려 있었다. 데츠바는 시커먼 피를 토해내고, 열린 눈은 완전히 생기를 잃은 듯 했다.

亂れからくり 복잡한 기계장치 : 1 달그락달그락 새 亂れからくり 복잡한 기계장치 : 11. 베이지 않는 말